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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론] 광복 이후 사과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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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시론] 광복 이후 사과한 사람은 없었다

admin | 금, 2021/08/06- 01:08

친일 행적을 남긴 문화예술계 인사들 중 광복 이후에 사과한 사람이 없었다. 일본은 지금 모든 고등학생에게 독도를 되찾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부끄러운 과거사를 들춰보면서 바짝 긴장해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8·15 광복절을 맞도록 하자.

이승하 | 시인·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일본은 방위백서에 죽도(독도)가 자기네 영토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고등학교 사회과 과목에 독도 영유권을 반드시 명시하도록 했다. 자국 영토를 한국이 강제로 점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반드시 되찾아야 할 독도라는 말이다. 교과서에 그렇게 적혀 있는데 아이들이 그 말을 믿지 않고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생각할까? 우리 세대에 되찾자는 왜곡된 애국심을 심어줄지도 모른다.
1950년대에 “미국을 믿지 말자. 일본은 일어선다. 소련에 속지 말고, 중국에 죽지 말자. 조선은 조심해라”라는 말이 유행을 탔던 적이 있다. 일본이 올림픽을 악착같이 개최한 이유가 다시 일어서려는 몸부림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36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경술국치 한참 전인 1882년 제물포조약 때부터 일본의 반식민지가 되었다. 갑신정변, 을미사변, 을사늑약이 다 침략의 마수를 뻗은 일들이었다. 이름만 대한제국이었지 광산채굴권, 철도부설권, 외교권 등을 빼앗긴 상태였으니 반세기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자라나는 2세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징병에 동원된 청장년들, 일본군 병영에 끌려간 여성들, 공장과 탄광에 끌려가서 죽도록 일하고 돈 한푼 못 받은 징용 인력들의 한을 잊지 말자고?

그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사를 살펴봐야 한다.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친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들이 있었는데 그 행적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 임종국이 1966년에 <친일문학론>을 펴내지 않았더라면 문인들의 친일 행각은 다 묻혀버렸을 것이다. 특이한 것은 임종국의 부친이 친일 부역자였다는 것이다. 천도교 지도자였는데 수차례 일본의 식민지 정책 및 침략전쟁에 동참할 것을 선동한 행적이 있었다. 임종국은 집필 중 아버지의 이러한 행적을 알게 되어 괴로워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친은 “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이 빠지면 죽은 책이다”라고 하여 아버지 임문호의 이름이 들어가게 되었다. 반성을 하고 싶었는데 아들이 대속해주어 기뻤던 것이다. 하지만 책은 학계와 문단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다 덮은 일을 왜 들추느냐는 분위기여서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초판 1500부가 13년 동안 나갔는데 그나마 1000부는 일본에서 연구를 목적으로 구입해간 것이었다.

일제 말기에 수많은 친일 잡지가 나왔다. 1939년 1월에 창간된 <동양지광>은 통권 83호까지 나왔다. 편집 및 발행인인 박희도는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데 변절하여 적극적으로 친일 활동을 했다. 그는 3·1운동 때 2년여 옥고를 치렀고 1922년에 잡지 <신생활>을 창간해 민족의식을 고취하다 또다시 옥고를 치렀는데 그 이후에 그만 변절해, 국민총력조선연맹 등 친일 단체에서 활약했다. <동양지광>의 고정 필자 최린도 33인 중 한 사람이었는데 “조선총독 제1대 데라우찌 님의 시정방침에 대해서는 그 당시 무단정치니 무어니 하면서 여러 가지 비판도 있었습니다마는, 오늘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시대의 조선의 사정으로 볼 때 대단한 성의와 선의로써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은 글을 발표했다. 최린은 이 글에서 3·1운동을 ‘대정 8년의 사건’으로 부르는 망발을 서슴지 않고 있다.

1940년 1월에 창간된 <내선일체>는 38호까지 나왔는데 어떤 목적으로 만든 잡지인지 제호가 말해준다. 창간 목적이 내선일체의 구현 외에도 황도정신의 발양, 총후(銃後) 후원의 강화, 내선 결혼의 실천, 국어(일본어) 보급의 철저 등이었다. ‘총후’는 후방이란 뜻이니 우리가 전시에 후방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말이지만 조선인과 일본인이 결혼을 많이 해 내선일체를 이루자는 주장에는 소름이 돋는다. 이 외에도 54호를 낸 <신시대>, 39호를 낸 <춘추>가 있었다. 태평양전쟁 전과 전시에 나온 <대동아> <총동원> <국민총력> <녹기>가 다 우리 조상이 만든 친일 잡지다. 평론가 최재서는 <인문평론>을 <국민문학>으로 바꿔 일본어로 펴냈다. 이 잡지의 목차를 보니 당시의 유명 문인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그들 중 광복 이후에 사과한 사람이 없었다. 일본은 지금 모든 고등학생에게 독도를 되찾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부끄러운 과거사를 들춰보면서 바짝 긴장해야 한다. 이런 마음으로 8·15 광복절을 맞도록 하자.

<2021-08-05> 한겨레

☞기사원문: [시론] 광복 이후 사과한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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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8/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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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사 작곡 교가·일본신사 잔재 등…교육청 “후속 조치는 자율”

친일 인사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학교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 지역 학교에 대한 일제 잔재 조사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15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지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52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 81건의 일제 잔재 사례가 파악됐다.

이 중 22건은 친일 작사가나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 사례였다.

특히 ‘섬집 아기’와 ‘봄이 오면’의 작곡가로 유명한 이흥렬이 만든 교가도 7개 학교에서 사용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일본음악의 수립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화악단 지휘자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또 다른 친일 인사인 김동진이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도 6곳에 달했다. 김씨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 활동을 했다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친일 인사의 동상이나 일본 신사 잔재 등 일제 관련 기념물이 교정에 남아 있는 학교는 3곳으로 파악됐다.

나머지는 서운, 송월, 백마, 작약도 등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변형된 지명이 교명과 교가 가사에 남은 사례였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각 학교에 알렸으나 개선은 권고 사항에 그쳐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동문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등 내부 협의가 필수적인 만큼 교내 일제 잔재를 없애기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천황을 섬기던 신사의 돌기둥과 석등이 교정에 남아 있는 인천 중구 모 고교의 경우 별도의 시설물 철거 계획을 논의하지는 않은 상태다.

인천 연수구 모 중학교에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나쁜 역사도 역사로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철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동창회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 학교 설립자 동상을 세운 것이라 학교 마음대로 없앨 수 없다”며 “내부 검토를 여러 차례 했지만 역사를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동상을 남겨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들도 대부분 즉각적인 개선 조치에는 나서지 못했다.

친일파가 교가를 작곡한 인천 연수구 모 고교는 추후 학생, 학부모, 동문회와의 협의를 거쳐 교가 일부를 개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천 동구 모 고교도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에 대해 별다른 개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일제 잔재 조사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알리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며 “이후 각 학교의 개선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지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5> 연합뉴스

☞기사원문: 인천 학교들, 일제 잔재 남아 있어도 개선은 ‘거북이걸음’

※관련기사

☞서울신문: 친일파가 만든 교가…인천 각급 학교 일제 잔재 파악하고도 ‘개선‘ 소극적

화, 2021/08/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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