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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팬데믹 시대, 전지구적 위기에서 전환은 가능한가?(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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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팬데믹 시대, 전지구적 위기에서 전환은 가능한가?(08/18)

admin | 화, 2021/08/03- 20:06

팬데믹 시대, 전지구적 위기에서 전환은 가능한가?https://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695/807/001/2092... style="margin:10px;width:800px;height:1132px;" />

 

참여사회연구소는 지난 4월 코로나19 https://www.peoplepower21.org/index.php?mid=Research&document_srl=178054... rel="nofollow">‘팬데믹 시대 전지구적 위기에서 전환은 가능한가?’라는 논제로 두 차례 포럼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당시 그린뉴딜 전환과 국가성격의 전환을 주제로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변화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제기되었던 의문들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현재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작금의 전환과 ‘뉴노멀’이 코로나19 팬데믹 종식 이후에도 '노멀'로 계속해서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습니다.

 

이번 3차 포럼은 이전 포럼들의 질문을 이어받아 ‘국가역할의 전환’이라는 소주제로 진행됩니다. 이전까지의 포럼과 달리 다양한 연구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이 하나의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국가역할에 대한 우리 인식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를 함께 살펴보고 이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과 시각을 공유하는 집담회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포럼3] 국가역할의 전환

2021년 08월 18일(수) 오후 4시-6시

 

김만권(진행, 참여사회연구소)

김효민(토론, 울산과학기술원 인문학부)

민경남(토론, CBS 라디오 PD)

소진형(토론,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송경호(토론,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장 휘(토론, 연세대학교 통일연구원)

장희경(토론, 뒤스부르크-에센대학교 정치학과)


 

행사는 모두 YouTube 스트리밍(https://www.youtube.com/user/pspd1994" rel="nofollow">참여연대 채널)으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문의: 02-6712-5248, [email protected]

주최: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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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열병, 나폴레옹, 아메리카 권력지도의 재편

1802년 나폴레옹은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식민지였던 세인트 도미니크를 다시 프랑스 식민지로 편입시키기 위해 카리브해에 프랑스 정예군을 파병했으나 황열병(Yellow Fever)이 돌면서 5만의 군대가 몰살하자, 나폴레옹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철수를 결정하였다. 나폴레옹의 카리브해 침공의 실패로 세인트 도미니크는 역사상 최초로 흑인 자유공화국이 되었고, 토마스 제퍼슨 미국대통령은 뉴올리안즈에서 록키산맥을 거쳐 캐나다에 이르는 828,000km2에 달하는 거대한 프랑스 영토를 아주 싼 값에 구입함으로써 신흥 미국이 서부 태평양으로 프론티어를 확장할 수 있는 기틀을 쌓음으로써 미국을 아메리카 대륙의 패권국가로 부상시켰다. 황열병이라는 에피데믹이 아메리카 대륙의 권력지도를 바꾼 것이다.

팬데믹은 경제적 생산양식과 생산관계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정치적 권력구도를 바꾼다. 1802년에 중남미를 휩쓴 황열병이라는 에피데믹은 나폴레옹의 신대륙으로의 패권확장을 저지하였고, 미국이 아메리카 대륙의 신흥 패권국가로 부상시키는 지역정치질서의 변화를 초래했다. 이와 같이 팬데믹 재앙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세계경제질서의 변화 뿐만 아니라 새로운 국제정치질서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코로나 팬데믹은 기왕의 국제질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2.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국제질서: 세계화에서 포스트 세계화로

(1) 세계화 시대의 도래: “이 장벽을 허물어라!”(Tear down this wall!)

1987년 도널드 레이건대통령은 베를린 장벽 앞에서 “이 장벽을 허물어라!”(Tear down this wall!)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레이건의 예언대로 1989년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냉전이 종식되었으며, 구 공산권을 비롯해서 전 세계에서 국경의 장벽이 무너지고 자본, 기술, 문화, 노동이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국경이 없는 세계”(borderless world) 또는 세계화의 시대가 열렸다.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는 워싱턴컨센서스로 불리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였다. 미국은 초당적으로 국경개방정책 (open border policy)을 채택하여 값싼 멕시코, 남미, 아시아의 노동자들의 유입을 허용함으로써 조직 노동자들은 손실을 감수해야했으나 자본가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초과 이윤을 얻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미국은 전후 최장기의 호황을 누렸으나, 기실 세계화로 가장 이득을 취한 나라는 중국이었다. 세계화로 중국은 마침내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 통합되었고 “세계의 공장“이 되었고, 곧 이어 세계최대의 소비시장이 되었다. 중국은 1978년 개방이래 30년만에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초강대국(Great Power)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내재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국내적으로는 계급간의 불평등을 낳았고 국제적으로는 부국과 빈국간에 시장의 혜택이 불균등하게 배분되는 결함이 있었다. 극단적인 불평등은 세계화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와 같은 세계화를 주도하는 월스트리트 대금융자본에 대한 저항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이러한 반세계화 운동과 감정이 정치적으로 조직되어 나타난 역사적 사건이 2016년의 브렉시트(Brexit)와 트럼피즘(Trumpism)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피즘의 공통점은 ’국경이 없는 세계‘를 끝장내어야한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국경의 장벽을 철거함으로써 제3세계의 이민자와 노동자들이 국경을 넘어서 밀려들어와 미국과 영국의 백인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뺐고 있기 때문에 이제 국경의 장벽을 다시 세움으로써 토착(native) 미국인과 영국인의 일자리를 보호해야한다는 것이었다.

 

(2) 세계화에서 포스트 세계화로: ”장벽을 쌓아라“ (Build the wall)

브렉시트와 트럼피즘으로 포스트 세계화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트럼프는 대통령선거 유세중에 이미 국경개방정책을 폐기할 것이라고 공언하였다. 트럼프는 당선되자 7개 회교국가 이민자와 피난민의 미국입국을 금지하는 대통령령을 공표하였고, 미국과 멕시코 간에 1,951mile (3,140km)에 달하는 21세기 판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 트럼프의 장벽쌓기 정책은 미국인 대량실업의 책임을 국경을 넘어 들어온 불법 이민노동자와 이주노동자에게 돌리는 포폴리스트 정책이었다.

 

▪세계화 시대와 포스트 세계화 시대의 정책레짐

▪세계화 시대 포스트 세계화 시대

▪규범규칙기반 자유주의, 민중주의와 현실주의

▪국제질서 자유국제주의 민족주의

▪무역규범 자유무역, 다자주의, 보호주의, 양자주의

▪대외정책: 동맹우선주의 자국우선주의

▪시민권 속지주의, 국경개방, 혈통주의, 국경장벽

▪국제안보: 미국단극 헤게모니, G2간 비대칭적 패권경쟁

▪동아안보 중추와 부챗살체제 역외균형과 인도패시픽

▪민주화: 세계적 민주화 물결, 비자유주의적 스트롱맨

트럼프가 추진하고 있는 포스트 세계화 정책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팍스 아메리카나’와 자유무역주의의 전지구적 확산과 같은 국제주의적 개입주의가 퇴조하고 백인 블루칼라 아메리카를 복원하려는 미국 중심주의 (America First)와 중국, 동아시아, 유럽으로부터 밀려오는 시장침탈에 대해 미국상품과 산업을 보호하려는 보호주의(protectionism)가 외교정책의 근간이 되었다. 미국은 더 이상 잠재적 경쟁자인 중국에 ‘호구잡혀서는'(ripped off) 안되며 오로지 미국의 경제와 안보우위를 방어하는데 치중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제조업 중심의 보호무역주의, 백인 우월주의에 기초한 국가주의, 백인 노동자 계층과 같은 ‘보통 미국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외교정책을 펴고 있다. ‘강한 미국’ (strong America)을 표방하는 트럼프의 근육질적 (muscular) 내셔널리즘은 미국의 핵심적 이익(vital interests)이 위협받을 때 군사적 공격으로 대응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국제주의가 퇴조하고 민족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포스트 세계화 시대에는 베스트팔리아 국제체제(1648)의 기본 단위였던 영토적 민족국가가 다시 포스트 세계화 시대의 국제체제의 기본단위로 소환되고 있다. 트럼프의 ‘강한 미국’ (Strong America), 미국제일주의 (America First) 구호들은 전통적인 미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예외주의 (exceptionalism) 구호이다. 트럼프는 보편적 속지주의적(jus soli) 시민권제도를 종교, 종족, 인종에 바탕을 혈통주의적 (jus sanguinis) 시민권제도로 방향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셋째,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자신을 선출해 줄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을 최우선시하는 포퓰리즘(민중주의)이 득세하고 있다. 트럼프는 백인 노동자와 중산층의 표를 얻기 위해 기왕의 자유주의적 무역규범을 폐기하고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그리고 역외에 진출한 오프쇼어링 (offshoring) 미국기업을 다시 미국본토로 되돌아오게 하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으로 중서부 러스트벨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되돌려주려 하고 있다.

넷째, 세계화시대에는 미국은 경쟁자없는 단일 헤게모니 국가가 되었으나 포스트 세계화시에는 중국이 글로벌 파워로 부상함에 따라 미중간에 패권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2019년 3월 5일 중국의 리커창총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우리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도상국이다”라고 선언한데서 볼 수 있듯이 중국과 미국의 패권경쟁은 미국의 압도적 우위 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대칭적 패권경쟁이다.

 

3.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신 국제질서

(1) 1차대전 이후 스페인플루 팬데믹과 국제주의적 협력체제의 실패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신세계질서를 조망하는데 있어서 1차 세계대전 이후 1918년에서 1919년 사이에 유럽과 세계 전역에서 4,000만에서 5,000만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독감(Spanish flu)으로 불리는 팬데믹의 재앙을 겪은 후 유럽에서 국제질서가 출현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흑사병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스페인플루 팬데믹은 윌슨을 비롯한 전후 지도자들로 하여금 민족주의적 국가 간 경쟁체제보다는 국제주의적 협력체제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모색하도록 작용했다. 왜냐하면 스페인플루 팬데믹은 국경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팬데믹이기 때문에 일국단위로 해결할 수 없는 초영토적인 외부효과(extra-territorial externality)를 내는 특성을 갖고 있어서 팬데믹의 퇴치를 위해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1차대전 후 세계의 지도자로 부상한 윌슨대통령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에 기반하여 국제협력체제를 구축하려하였다. 윌슨 14개조를 발표하고 국제연맹이라는 세계정부를 결성하려하였다. 그런데 스페인독감이 윌슨의 전후 자유주의적 국제협력 질서 구축노력에 타격을 가했다. 윌슨대통령 자신이 스페인독감에 걸린 채 베르사이유 협상에 참여하였고, 프랑스의 클레망소는 스페인독감으로 극도로 취약해진 윌슨을 압박하여 패전국 독일에 가혹한 배상금 지불을 강요하는 베르사이유 조약에 사인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자유주의적 국제협력주의 전후질서 수립을 목표로 했던 베르사이유 조약이 이기적인 국가이익 (특히 프랑스)을 우선하는 국가주의 문서로 종결됨으로써 독일의 반발의 씨앗을 뿌렸고 궁극적으로 나치독일의 길을 열어주었다. 스페인플루 팬데믹은 윌슨대통령을 마비시켜 2차세계대전 발발의 간접적 원인을 제공하였다.

 

(2)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국제질서 1: 자국이익 우선주의, 민족주의, 고립주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국내적으로는 “사회적 거리두기”, 국제적으로 “국가간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을 폐쇄하고 공항과 항만을 폐쇄하여 ‘국가간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국가 간 무역과 인적교류와 교환이 급격히 감소함으로써 세계화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국가간 거리두기가 강화되면 국제주의 또는 세계주의는 약화될 것이고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국제적이 되기보다는 국내문제에 치중하는 내향적(inward-oriented) 시민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힘을 얻게 될 것이고 민주주의는 쇠퇴할 것이다. 코로나의 세계화가 일어나면서 방역과 치료에 있어서 종족적 불평등이 민족주의의 불을 지피고 있다. 위그르의 소수 민족에 대한 억압이 강화되고 있고 인도에서 힌두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차드, 리비아, 말리, 니제르, 나이제리아, 소말리아, 시리아, 우크라이나에서 극단주의자들의 폭력이 그 지역을 지키는 외국 군대들이 코로나를 피해서 본국으로 귀환하면서 더욱 격화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국경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국경을 폐쇄하여 자국민들만을 위한 방역과 치료를 하려하였다. 트럼프는 코로나 문제 해결의 국제협력기구인 WHO가 친 중국적이라는 이유로 WHO에 대한 펀딩을 중단함으로써 코로나를 해결하기 위한 다자간(multilateral) 국제협력 거버넌스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그리고 코로나 초기 대응의 실패의 책임을 코로나의 최초 발생지인 중국에 돌림으로써 중국을 희생양으로 하여 민족주의적 감정을 고취시켜 정부의 책임을 모면하려하고 있다. 중국 역시 코로나 진원지가 미국이라는 음모설을 퍼뜨림으로써 미국과 중국 간에 “책임떠넘기기 전쟁”(blame game)이 벌어지고 있다.

 

(3)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국제질서 2: 자유주의적 국제협력주의 대안의 등장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은 일국단위로 해결할 수 없는 세계적 전염병이기 떄문에 자국이익 우선주의나 민족주의는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즉자적 대응 또는 임시방편적 대응은 될 수 있으나 팬데믹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코로나 팬데믹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자주의적 국제협력이 필요하다. 토론토 대학 Lipscy 교수는 코로나 사태 해결에 있어 국제협력을 거부하고 고립주의와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미국을 ‘바보 헤게모니’(hegemonic stupidity)로 부른다. 헤게몬(hegemon) 국가가 바보가 되면 국제체제는 불안정해지고 국제위기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헤게몬 국가인 미국은 민족주의를 버리고 국제적 책임을 다해야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국제적 협력주의로 복귀해야한다는 주장은 96세의 국제정치학 대가인 헨리 키신저로부터 나왔다. 키신저는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미국의 헤게모니를 약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키신저는 먼저 코로나 팬데믹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침투하기 때문에 일국 단위로 코로나에 대해 대응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으며, 반드시 글로벌 협력의 비전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대응해야한다고 한다. 그런데 코로나사태 와중에 중국은 코로나 피해국에 의료진을 파견하는 등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고 있는 반면, 트럼프는 이란, 베네주엘라, 쿠바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상반된 조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키신저는 트럼프에게 자유주의적 세계질서 원리를 포기하지 말고, 공적 신뢰와 사회적 연대가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 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시대착오적인 성벽도시(walled city)를 쌓아서 코로나 팬데믹의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할 해결할 생각을 하지 말고, 반대로 국제협력주의적인 “코로나판 마셜플랜”을 펀딩하여 코로나로 고통받는 국가들의 국민들을 지원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신뢰와 지지를 되찾아야한다고 주장한다.

 

(4)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국제질서 3: 미중패권전쟁의 격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이래, 중국은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코로나 확진과 치료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96만 명의 확진자와 5만 4천명의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엄청난 인명손실과 그로 인한 경제위기에 대한 희생양을 중국에서 찾으려하면서 미중 간에 ‘책임 떠넘기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미중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코로나 대응을 바탕으로 제3세계에 코로나 방역지원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대해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중국에 대해 코로나 발원의 책임을 지라면서 천문학적인 배상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이 코로나 음모론을 퍼뜨려 중국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 이기적으로 전 세계로부터 미국 국가를 자가격리 시킴으로써 국가신뢰를 떨어뜨려 신뢰에 기반한 ‘소프트 파워’가 약화된 반면, 중국은 전 세계 82개 국가들의 방역을 지원하는 ‘코로나 실크로드’를 가동함으로써 중국의 방역 소프트 파워를 높이고 있다. 코로나 대응의 차이로 중국은 미국에 대해 전략적인 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군사력, 경제력, 기술력 패권전쟁에 더한 코로나 사태로 방역 소프트 파워 경쟁이 미중 간에 벌어지고 있다. 미중패권전쟁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승리지상주의자들(triumphalists)들은 제로 섬적인 관계에서 미중관계를 바라보면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 승리를 거둘 때까지 패권전쟁을 밀어붙여야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헨리 키신저같은 공진론자(co-evoultion)들은 미중이 협력과 ‘공진’(co-evolution)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승리지상주의자들과 공진론자 중 누구가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키신저의 공진론에는 매우 위험한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키신저의 공진론은 현실주의 이론으로 1815년 메테르니히가 주도한 유럽협력체제(Concert of Europe)에서 적용되었던 강대국주의(plurilateralism)에 기초하고 있다. 현실주의자인 키신저는 강대국인 미중간의 수교를 위해 약소국인 대만을 희생시킨 것처럼, 강대국인 미중간의 협조체제를 위해 주한미군철수와 같은 약소국인 한국의 안보이익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이 점이 우리가 키신저의 공진론에서 경계해야 하는 함정이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지스트 석좌교수

금, 2020/06/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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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팬데믹의 경제위기를 대응하고 부실한 안전망을 구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한국정부의 취약한 재정수입에 대하여, 다른백년은 MMT라고 불리는 현대금융이론이 하나의 해답을 제공한다고 판단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MMT효과가 혁신을 통한 산업의 구조조정과 자산중심의 증세정책을 통하여 보완되어야 한다.

토마 피케티가 지적하였듯이, 제도와 이론보다는 이를 작동시키는 시대의 이념적 틀과 정치권력의 성격이 현실 속에 우선한다. 아래의 칼럼은 미국을 중심으로, MMT라는 동일한 정책의 수단에 관하여, 이를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 실물경제에 투입하는 것과 소수의 자산가를 위해 금융산업과 부동산에 투입하는 것과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체의 요약

통화론자들을 중심으로 수십 년 간의 비판을 받아온,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용하는 것은 불안정한 것이 아니라 안정을 가져온다는, 현대금융이론의 개념이 갑자기 이를 비판하던 다양한 정치집단으로부터 찬사를 받기 시작한다: 은행 등 금융분야뿐만 아니라 특히 공화당 집단까지 칭찬일색이다. 그러나 이들이 칭찬하는 내용인즉 MMT를 지지해온 사람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현대금융이론은 경제소비활동 영역에서 수요와 실물분야에서 투자를 늘려서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에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오바마 시절인 2008년 은행구제와 이후 트럼프의 세율인하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 재정지원에서 발생하는 적자재정의 운용은 실물경제에 투자를 늘려 고용을 증가시키고 임금을 인상하여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의 자금투입과 양적완화는 금융과 보험 그리고 부동산 (FIRE, finance insurance & rental)분야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MMT가 추구하는 목표와는 정반대로 이를 악용한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금융분야를 지원하고 이들이 짊어진 부채를 탕감하는 것은, 실물경제를 지원하기는커녕, 디플레를 가져오는 정책이 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비생산적이며 수탈적인 형태를 띠면서 신용과 부채만을 만들어내는 은행산업을 강화시켜 주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민간분야의 활동을 다음의 두개 분야로 분리해서 확인하여야 한다: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실물경제 분야가 임대지대, 독점지대 그리고 금융부채의 양산 속에 이루어지는 부채와 지대의 수탈이라는 금융의 망에 포위되어 있다. 이러한 활동영역의 분리를 통해 1) 고용과 생활수준의 향상을 유지하는 것에 기여하는데 정부자금을 투입하여 발생하는 긍정적 적자재정과 2)부패한 정부가 비생산적인 FIRE(finance, insurance & rent)처럼 수탈과 부채의 디플레를 초래하는 영역에 투입하는 악질적이고 만성적인 적자재정을 구분해내야 한다.

 

MMT의 본질과 정책적 목표

MMT는 다양한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서 재정을 적자로 운용해도 무방하다는 화폐이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개발되었다. 이러한 논리는 이미 1930년대에 케인즈에 의해서 공인을 받았는데 그의 개념은 사용자와 임금노동자 간의 선순환이론에 기반한 것이었다 재정적자를 통해서 공공분야의 일자리를 늘리고 수요를 촉진하여 경제활동에서 적정이윤으로 생산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생산품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목표는 합리적으로 완전고용 수준을 유지 또는 회복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만이 경제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MMT는 시카고 학파의 우파적인 정책을 비판하면서 1990년대에 금융분야를 경제활동 전반에 보다 실제적이고 기능적으로 결합시키려는 Abba Lerner의 기능적 금융이론과 Hyman Minsky 등 노력에서 공식적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시카고 학파를 비판하는 핵심은 Warren Mosler의 통찰에 찰 요약되어 있는데 ‘화폐발행권이 있는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돈을 사용하기 전에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내기 전에 돈을 먼저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MMT는 완전고용을 성취하기 위해 경제영역에 구매력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정부의 재정적자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포스트-케인즈에 속했다. 이러한 연구의 노력으로 정부의 재정적자는 민간분야의 부채가 야기하는 불안정을 안정으로 대치시킨다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접근으로 불경기는 정부의 적자재정으로 단순하게 치유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에 2008년 금융위기 과정에 미국과 유럽지역에서 거대한 재정적자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경제는 부진을 면치 못하는 반면에 오로지 금융과 부동산 분야만 활성화되었다.

경제활동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공공기업과 인프라 투자 그리고 재정적자와 시장개입을 반대한 주요 집단은 금융론자들이었다. 소위 오스트리아 그리고 시카고 학파의 금융론자들은 MMT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정부가 재정적자로 운영되면 인플레를 유발할 것이라며, 1920년대의 독일 바이마르 시대와 짐바브웨 등에서 있었던 재정적자 사례를 들먹이면서, 정부의 재정적자를 자유시장에 대한 개입이라고 묘사한다 (MMT는 실제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과 개입을 추구한다).

MMT 학자들은 정부가 흑자재정 또는 균형재정을 이루면 경제활동에서 발생한 수입을 흡수하게 되고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를 축소시키면서 실업을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적자재정을 시행하지 않으면, 경제는 민간분야의 은행에서 대출에 의존해야만 비로소 성장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고 판단한다.

이런 사례로 실제 미국에서 클린턴 행정부시절의 말기에 흑자재정을 시현했다. 그러나 정부가 흑자를 보인 반면에 민간분야에서는 부채가 누적되었다.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무역에서 흑자를 시현하던가 아니면, 민간분야에서 부채를 누적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구조화되면 이자와 상환의 부담으로 불경기가 찾아오고, 궁극적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것처럼 만성적인 불황과 부채에 의한 디플레라는 정치적 부담을 맞이하게 된다.

 

적자재정과 MMT를 반대하는 공화당과 금융분야

정부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적자재정을 통해 충분한 구매력을 제공하지 못하면, 화폐와 신용을 제공하는 역할이 은행으로 넘어가면서 이자와 수익을 위하여 은행들은 주로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채권 구매에 신용대출을 발생시킨다. 이런 측면에서 은행들은 정부와 경쟁관계를 형성하면서 사용목적에 상관없이 경제활동에 자금과 신용을 대여한다.

은행들은 정부가 단순히 화폐를 공급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금융과 가격정책, 조세와 기업을 규제하는 법규제정 활동에서 퇴출되기를 원한다. 금융분야는 정부가 필요보다는 정책적으로 자금이 부족하거나 외환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자금을 제공하면서, 이의 대가로 자연자원 또는 기초공공 인프라를 사들이면서 공공재를 독점하려고 의도한다 (과거에는 전쟁과정에서 그러했고, 현재에는 외채상황을 이용한다)

이러한 지위를 획득하려면 은행은 정부가 필요한 자금을 스스로 만드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민간은행들의 신용제도와 공공영역의 자금창출력 간에 충돌이 발생한다. 공공자금은 기본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성장을 유지하려는 사회적 목적으로 집행된다. 그러나 민간은행의 신용은 토지와 금융자산의 거래, 즉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채권에 집중된다.

 

적자재정의 운용을 반대하는 논리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시절에는 적자재정을 운용하였는데, 이는 사회적 지출을 위해서 지불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세금인하와 특히 부동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안전망을 위시하여 의료와 교육 등에 지출할 예산을 삭감하는 것을 재정절감이라며 시행하였다. 이러한 목표는 클린턴과 오바마 시절에 더욱 노골화되어 ‘책임있는 재정의 개혁을 위한 국가위원회 National Commission on Budget Responsibility & Reform’ 이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이름이 반영하듯이 책임은 균형재정을 뜻하며, 결국 사회지출 프로그램의 축소를 가져왔다.

정부지출 프로그램을 반대하는 그룹은 재정지출을 축소하고자 하는 정치적 집단을 이용하여 재정적자에서 오는 정부부채의 증가를 비난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공화당파와 중도적인 민주당파들은 오랫동안 사회안전망을 축소시켜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오스트리아와 시카고의 금융학파들이 정부로 하여금 활동을 축소시키고 가능한 역할을 민영화하여 시장이 자원을 배분하도록 촉구하고 나섰다.

이후 대규모의 부채를 발생시킨 금융업계는 자원과 자금의 할당을, 정부에서 금융분야로, 워싱턴에서 월가로, 다시 외국으로 진출하여 런던과 파리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중권가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군사비 지출에 대해서는 일체의 바판을 행하지 않았고, 급기야 정부는 2000년 닷컴버블과 2008년 불량부채의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결국 경제의 신용과 자산분야의 구제를 위해 거대한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였다.

 

MMT를 악용한 오바마와 트럼프의 금융구제 정책 사례들

MMT 지지자들과 포스트-케인즈 경제학자들에게 적자재정의 긍정적 역할은 자금을 ‘경제’의 수입을 위하여 투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라는 것은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실물분야를 의미하는 것이지 금융과 부동산 시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물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 하나는 부채규모를 현실적인 시장가격과 임대수준에 맞추어 축소시키는 것이다. 다른 방식은 돈을 대주고 지원금을 제공하여 채무자인 시민들이 자신의 주택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금융문제의 현안을 해결하고 고용과 주택보유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지지자들을 두 번씩이나 배신하면서, 금융권의 불량대출과 기타부채를 연장시키면서, 현실적인 시장가격으로 조정하는 대신에, 불량대출(사기적인 행위)을 야기시킨 은행들을 지원하고 구제하였다.

은행이 새로운 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재무표를 경감시켜주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자신이 신용을 창출하는 역할에 발을 담았다. 이를 통해 은행과 그림자 은행 그리고 비은행 금융기관들에게 황금을 만들 기회를 제공하면서 이들에게 저당잡힌 주택들을 다시 사들여 임대부동산을 활성화시켰다.

이러한 정책은 Blackstone사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금융의 위기는 오히려 지분 참여자들에게 엄청난 배당을 가져다 주는 기회로 바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양극화가 이루어지면서 이런 기회에 참여하려는 투자자의 지분참여 최저액이 5백만 불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연방준비제도가 시행한 양적완화 액수인 4.6조 달러는 실물경제에 자금을 창출하지 못했고, 마치 알라딘의 램프가 오랜 된 것에서 새 것으로 바뀌는 것처럼, 불량자산이 양질로 교체되는 기술적 스왑을 이루었을 뿐이다. 이러한 스왑은 저축이 유입되는 것과 같다. 은행으로 하여금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능력이 없는 자들을 갈아 치우고, 새로운 채무자에게 대부를 제공하는 재무적 투기를 시행한 것이다. 월가는 MMT를 핑계로 악용하여 실물경제를 살린 것이 아니라 금융자산을 부풀린 것이다.

경제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소수의 1% 또는 10%에게 경제라는 것은 시장이며, 특히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부동산, 주식과 채권)의 시장가치를 의미한다. 이런 자산이 실물의 생산과 소비경제를 포위하면서 임금과 이익에 비례하여 점차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올려간다.

또한 이들의 가치는 정부의 지원과 신용창출(부동산과 금융자산에 대한 세금축소), 경제적 지대, 재무적 수수료와 이자 그리고 서비스 비용 등으로 부풀려 지는데, 이러한 증가가 마치 실물경제에 기여한 것처럼 GDP의 일부로 계상된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개의 경제영역을 다루어야 하는데, 하나는 생산수단과 유동자산 그리고 노동의 영역(이는 일반적으로 GDP로 측정된다)과 금융 및 부동산으로 노동과 실물자본에 의해서 발생한 수입에서 지대비용을 수탈해 가는 영역으로 구분해야 한다.

금융조작이 산업성과를 대체해 가는데 이는 정치적 로비과정을 통해 세금을 인하시키고 지대에 대한 특혜를 제공받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면서 이루어 진다. 부동산과 금융자산 그리고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증대시키기 위해, 이들은 신용과 정부의 지원을 유도해 내는데 이는 생산과 고용을 증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식의 바이백과 배당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주가를 올리는 것이다. 바이백은 소위 ‘자본되사기’로 불리며 투자확대가 아니라 투자축소에 해당한다. 이는 세법에 의해 선호되는데 배당금에 대한 과세에 비교하여 자본이익에는 세금인하 내지 면세가 적용된다.

 

오용된 MMT의 사각지대: 실물경제가 아닌 투기적 FIRE 영역

FIRE 영역과 생산-소비의 실물경제 간의 표면적 착시현상은 전통적 금융공식인 MV=PT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형태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에 의하면 경제는 단순히 민간과 정부의 영역으로만 구분된다. 무역분야인 국제수지균형을 별도로 하고, 정부가 지출하는 것은 국내경제에 자금을 대는 것이고 반대로 재정흑자는 자금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의 문제점은, MMT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정부가 FIRE 및 금융자산의 영역에 지출하는 것과 간접자본투자를 포함한 실물경제의 고용과 생산에 투하하는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이 없으면 고용과 생산활동을 지원하는 생산적인 재정지출과 단순히 금융자산을 지원하는 것을 구별하여 확인할 수가 없으며, 후자의 경우 신용제공자의 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보장하는 과정에서 상환이 불가능한 채권에 대해 정부의 자금을 밑빠진 독에 쏟아붓는 꼴이 된다.

금융분야를 지원하고 이에서 발생하는 악성 부채를 변제하는 것은 실물경제에 긴축을 가하는 것을 의미하며, IMF식으로 말하자면 ‘월가에 MMT를’이라는 모순어법으로, 완전고용을 지향하는 실물경제의 반대편에 서있는 꼴이다.

 

MMT, 공공 그리고 민간의 부채

자금이 생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채이다. 정부의 자금은 공공의 목적, 즉 고용과 생산량을 높이고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현재의 양상을 보면, 민간분야의 부채는 다분히 수탈적이며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 즉 부채디플레를 발생시킨다.

정부는 국내통화만 사용한다는 조건에서 디폴트가 발생하지 않는 공공의 부채를 창출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화폐를 만들어서 갚을 수 있다.  생산량과 고용을 늘려 성장을 지원하는 것에 지출하기만 한다면, 공공의 부채는 인플레를 일으키지 않는다. 정부는 공공부채를 세금으로 되갚으면서 통화에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통화시스템은 본래적으로 재정정책과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의 고전적 전제는 생산과 소비라는 실물분야의 임금과 이익에 과세하기 보다는, 주로 불로소득 즉 경제지대에 과세를 하면서 경제의 비용구조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민간분야의 부채이다. 대부분의 부채는 은행에 의해서 형성된다. 은행의 신용은, 은행 고객이 가지는 채권으로, 채무자가 이를 갚을 수 있는 수입의 능력을 넘어서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배경에는 민간의 부채 대부분이 생산적이고 활동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에 사용되기 보다는 자산소유권의 이전(신용의 증가율에 따라 자산가치가 영향을 받는)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실물경제 활동에 연동되지 않은 신용의 투입은 부채디플레를 유도한다. 정부는 적자재정을 운용하여 경제활동에 구매력을 증가시키는 대신, 민간부채는 약정기간 동안 경제분야에서 이자와 원금상환 그리고 수수료를 빼어 나간다.

대부분 담보대출의 경우, 채무자가 부동산을 처분하여 발생하는 금액을 초과하는 이자비용을 발생시키며 종결된다. 약정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복식이자로 계산되면서, 담보물의 부채는 여러 번에 걸쳐 은행에 원리금을 상환된다. 결과적으로 은행이야말로 담보대출서비스를 통해 지대수입을 회수하면서, 궁극적으로 자본증식(자산가치의 추가획득)의 주요 수혜자가 된다.

은행의 신용제도에 통화의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 부채를 통화로 지급하도록 허용하면서 – 정부가 은행을 공적으로 유용한 기구로 인정하고 은행의 제예금을 보증하고, 궁극적으로 은행을 파산에서 보호하는 것이다.

금융분야를 지원하면서 적자재정가 발생한다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부채의 감당비용을 경제활동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식이자의 계산결과로 감당비용이 늘어나면서, 구제의 규모도 덩달아 커지고, 은행과 금융분야에서 발생한 결손을 보충하는 대안으로 부채의 감당비용을 지원하는 적자재정(스왑의 합의를 포함하여)의 규모도 커지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내용이다. 금융분야에 휘둘리면서 결국 경제의 주요흐름이 적자재정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적자재정이 금융과 FIRE 분야 등에 주로 지원되지만, 일반시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이는 케인즈 경제와 MMT가 의도했던 진짜 경제 – 실물경제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정부적자재정을 MMT의 적용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정책적 목표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레이건 시절의 적자재정은 사회적 지출(사회안전망, 의료보호제도, 교육 등)을 축소시키며 여러 번 펀치를 날렸다면, 최근의 오바마와 트럼프 시기의 적자재정은 금융분야를 구제하기 위하여 사회프로그램을 축소시켜야 균형재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경고로서 작용하였다.

월가가 마술을 부려 ‘경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변신하는 동안에, 오히려 노동과 산업 분야는 중앙은행과 재무부와 공생관계를 형성한 금융분야에 부담을 주는 비용적 요소로 간주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금융분야, 민간자본, 긴축재정과 중앙계획

이제 또다시,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실물경제를 희생시키면서 월가를 구제한다면, 미국은 결정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금권이 지배하는 과두제 국가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적극적인 정부가 민간분야보다 본래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주효하면서,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로비스트의 표현에 의하면 욕조의 하수구에 들어갈 만큼 축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금융분야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허용한다는 것은 경제의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은 저축은행과 금융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상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결국 경제에 대규모로 손실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현시기의 금융분야에 종사하는 은행가들과 금융투자자들은 19세기 당시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지대의 가격은 비용가치를 능가하면서 영국과 중부유럽을 고비용의 경제로 만들었다. 고전경제학이 가르치는 내용이 바로 이것으로, 생산의 비용은 실제적이고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원칙에 따라 시장가격으로 형성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경제지대는 불필요한 비용의 상승요인으로 작용하는데 특혜, 세습적 토지소유, 공공의 영역에서 신용제공자가 제멋대로 행사하는 독점, 전쟁부채를 갚아준다는 구실로 받는 반대급부의 제도적 보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대계급은 경제의 주요 부가가치를 즐기는 주요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의회를 통하여 정부를 조정한다. 현재의 미국정치는 돈많은 후원자들이 해괴한 선거자금법을 이용하여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을 움직인다. 정치인들의 사무소는 민간 경매품이 되어 가장 고가의 응찰자에게 팔려 나간다. 이들 후원자들은 주로 월가와 금융기업에서 활동하는 자들이다.

2008년 이후 주식과 채권은 DJIA 평가기준으로 8,500에서 30,000 포인트로 급상승하였다. 이러한 상승은 소위 자유시장에 지나치게 제공된 중앙은행의 지원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다. 양적완화를 시작하기 전의 주식가격은 지난 세기의 평균가격선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양적완화는 주식가격을 2019년 공황과 2000년의 버플을 뛰어넘어 상종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코로나 사태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주식가격은 그린스펀 의장시절 이전의 가격보다 높이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를 버블이 아니라 기포의 수준으로 받아들이면서, 코로나 이후 실물경제가 극적으로 수축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대폭락없이 버티어 내기만을 기대하면서 정부는 금융분야에 지원을 계속하려는 낌새이다.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구를 살려야 하나? 하루의 고된 생활이 생계수단인 일반 시민들인가? 아니면 생계가 위축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호화생활을 즐기는 과두제의 수탈자들인가?

이런 모든 것이, 경제지대를 배제하고 불로소득을 고립시키려고, 가치이론을 중심으로 설계한 고전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미 설명된 것이다.

 

Hudson의 모순 : 재정, 가격 그리고 지대경제

FIRE영역과 실물경제를 구별하지 않고는, 자산-인플레와 상품가격-인플레를 일으키는 정부의 적자재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여기에 일종의 모순이 존재한다. 은행의 신용은 담보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주로 부동산, 주식과 채권 등에 이루어지게 되고, 이런 자산에 투입되는 자금이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오면서, 우선 주택가격이 오르게 되고 뒤를 이어 금융증권이 뒤따른다. 주택가격이 오르면 주택을 사려는 매입자는 더욱 많은 대출액수를 일으켜야 한다. 이런 분야로 대출이 집중되면서 상품과 서비스에 지출할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은행의 대출에서 오는 자산가격 인플레효과(자산효과)는 따라서 상품가격을 낮추는 충격을 주게 되는데 이는 대출비용 부담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살수 있는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은행대출의 디플레 효과는 불량채무를 발생시키고 이에 따라 중앙은행과 민간은행 간의 대출채권에 대한 스왑방식(실제 돈이 거래되는 않는다)을 통하여 정부는 은행을 구제하게 된다.

이는 위의 MV=PT라는 등식의 역방향에 해당하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과 무관하게 통화량만 늘리면 된다는 식이다. 이는 정부의 적자재정의 운용과 비교하여, 은행의 신용창출은 자산을 사들여 자신인플레를 일으킨다는 차이점을 분간하지 못하면서, 공공과 민간 분야 간에 이루어지는 과거의 통화이론과 새로운 MMT간의 구분을 인식하지 못하고, 생산과 소비라는 실물경제에 사용되는 임금과 수익을 FIRE 영역의 자산과 부채간에 이루어지는 거래로부터 분리시킬 필요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은행 시스템에 내재하는 신용창출은 대출에 대한 이자라는 형태를 취한다. 이자를 지불하는 부채가 증가하면 할수록, 산업과 노동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줄어 든다. 그 결과 경제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부채디플레로 나타난다.

이를 다음과 같이 우화적으로 요약할 수 있다.

– 배고픈 사람에게 생선을 주면 하루를 먹일 수 있다.

– 생선을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고객을 잃게 된다.

– 그러나 그에게 생선을 잡을 배와 어망에 사도록 이자증식의 자금을 빌려주면, 그는 자신이 잡은 모든 생선으로 당신에게 갚을 것이다. 당신은 부채라는 노예를 소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미국에서 정부와 금융산업이 MMT를 빙자하여 일반시민들을 수탈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 Global Research Center, 2020.-04-28.

Michael Hudson

캔서스시에 있는 미주리 대학 연구교수이자 Bard 대학의 조세경제 연구소 연구원이다 부채탕감에 대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Dirk Bezemer, 네덜란드 Groningen 대학교수이다.

월, 2020/05/1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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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어디서 출현했는가를 둘러싸고 미중 간에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역병의 발원지를 둘러싼 논쟁은 코로나 팬데믹의 원인을 밝히는데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코로나19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에 의해 황폐화된 자연이 인간과 사회에 대해 복수하기 위해 일으킨 전염병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Tielt, Citizens of Tournai bury Black Plague Deaths와 Oh Father, Why have you abandoned me?입니다. 14세기 이태리에서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를 묻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칼 폴라니 (K. Polanyi)는 20세기 명저인 [거대한 전환 Great Transformation, 1944]에서 고삐풀린 시장의 운동이 인간과 그 주위의 자연환경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자, 시장운동으로 고통을 받는 인간과 자연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반시장운동(counter-movement)에 나서게 되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의 상품화에 저항하면서 자본에 대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국가에 공장입법과 사회입법을 요구하였다. 농민들은 곡물의 자유무역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주의적 곡물법 제정을 요구하였다. 자연도 반시장운동에 동참하여 환경을 파괴하는 시장경제에 환경재앙으로 복수하였다.

칼 폴라니의 딸인 캐리 폴라니 레빗 교수 (97)는 환경재앙은 자연의 복수라는 아버지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시장경제가 자연을 과잉착취하고 환경을 파괴한 결과 생태계가 무너지고, 기후변화로 지구온난화가 일어나 해수면이 상승하여 해안 도시들을 물에 잠기게 하고, 후쿠시마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하여 일본 동북해를 죽음의 바다로 오염시켰다. 시장은 이윤극대화를 위해 대기, 물, 땅, 숲을 과잉개발하고, 유전자 조작으로 곡물과 가축의 생산 극대화를 꾀한다. 이러한 자연을 과잉착취하고 황폐화시키는 시장의 운동에 대해 자연은 환경재앙과 전염병의 창궐로 역습하였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장에 대한 자연의 복수라는 폴라니적인 설명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유는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된 지역이 모두 시장사회가 저발전한 가난한 남반구가 아니라, 시장사회가 발전하여 자연과 자원을 과잉개발하고 착취하고 있는 부유한 북반구 자본주의 국가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북반구 자본주의 국가들 내에서도 시장사회의 특성에 따라 코로나 팬데믹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영국같은 자유시장(liberal market) 자본주의 국가들은 시장이 적정 수준의 공급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공공재인 환경오염처리, 질병관리, 의료서비스 등을 시장에 맡겨버렸다. 시장이 공공재의 최적 공급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아닌 시장에 맡겨야한다는 시장주의의 신조(creed)를 믿고서 코로나 팬데믹이 상륙했을 때 국가는 손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을 때 자유시장 국가들은 팬데믹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해 줄 공적 의료시설 질병관리시스템, 공적의료보험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의료진과 시설을 갖춘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의 광풍에 국민들을 무방비상태로 내버려두고 있는 민낯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자유시장 자본주의 국가에서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시장주의적 대응은 코로나19의 치료에서도 계급적 불평등을 초래하고 있다.

보카치오가 데카메론 도입부에서 보통 부자들은 집안에 콕 박혀 명품 와인과 음악을 듣고 있고, 거부(巨富)들은 시골에 있는 안락한 장원에 은둔하면서 성안에서 벌어지고 흑사병의 재앙에 오불관언하고 있고, 성안에 남은 대다수의 중산층과 도시빈민은 좁은 아파트에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14세기 데카메론의 21세기 버전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심장인 뉴욕에서 일어나고 있다. 뉴욕의 거부들은 멀리 떨어진 전원별장으로 피신하여 자신의 안전과 안락을 즐기고 있으나 뉴욕시에 남은 도시빈민은 치료를 받지 못하고 매일 수백명, 수천명이 죽어 나가고 있다. 코로나질병은 사람들을 계급적으로 차별하고 있다.

지금 코로나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고 있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독일은 모두 조정시장 (coordinated market) 자본주의 국가들이다. 특히 오랜 중앙집권적 국가주의의 전통이 있는 한국의 국가는 조정, 지원, 산파(midwife)의 역할을 통해 시민사회와 경제사회 내에 ‘내장된 자율성’(embedded autonomy)을 확보하였고, 내장된 자율성을 바탕으로 국가는 의료계, 시민단체, 지방정부와 협력하여 협업적인 방역, 검사, 치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민들의 자발적 협력을 유도하여 ‘사회적 격리’를 효과적으로 이루어 낼 수 있었다.

한국의 국가는 코로나 팬데믹의 공격을 ‘고삐풀린’ 시장에 방임하지 않고 시장, 시민사회, 의료사회와의 조정과 협력을 통해 코로나와의 전쟁을 주도함으로써 코로나 판데믹의 재앙을 막은 모범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유교적 국가주의 전통에 따라 국가의 권위를 신뢰하는 정치문화를 내면화한 한국시민들의 빛나는 팔로워십(followership)이 한국을 방역 선진국으로 부상하게 한 주 동력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조정시장 자본주의국가의 전형으로 거론되었던 일본은 코로나 팬데믹의 대응에서는 전 조정시장적이지 않았다. 일본의 아베수상은 올림픽을 개최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코로나가 일본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은폐하였고, 이를 위해 코로나 감염자들을 의도적으로 검사하지 않았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실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올림픽 성화봉송행사와 벚꽃놀이도 허용하여 코로나의 확산을 방치하였다. 일본답지 않은 자유방임과 ‘무결정의 결정’이 아베의 코로나 대응정책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전투에서 지도자 아베가 보이지 않았고, 일본의 국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베의 코로나 은폐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일반시민들의 호흡기 내에서 이미 발효, 배양되고 있었다.

그 결과 올림픽이 취소된 후 코로나의 집단감염이 속속 드러나고 있고 이미 한국의 확진자수를 능가하였고 유럽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이다. 아베의 정치적인 야심이 조정시장 자본주의국가인 일본에서 자유시장 자본주의국가인 미국과 영국에 버금가는 희생자를 낳게 한 핵심 요인이다. 아베의 코로나 방역실패는 최악의 코로나 팬데믹 대응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엄청난 실수를 연발하였으나 봉쇄와 격리를 통해 코로나 팬데믹의 확산을 막은 중국도 어느 정도 성공적인 대응 사례로 거론되고 있으나, 중국이 다른 나라들이 본받아야할 코로나 대응모델을 제시했는가에 대해서 필자는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감시국가 방식으로 코로나의 침공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디지털 경찰국가를 구축하여 우한시를 완전 봉쇄하고 우한 시민 개인을 디지털 원형감옥(digital panopticon)에 집어넣어 감시하고 모니터링하여 사회적 격리를 실현함으로써 코로나가 타 지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우한의 코로나 병마를 잡을 수 있었다.

중국이 시민적 자유의 희생 위에 팬데믹을 극복하려는 권위주의 모델을 채택한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유지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권위주의 감시국가 모델보다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유지하면서 국가가 시장과 시민사회와의 조정과 협력을 통해 판데믹을 극복하려는 조정시장 자본주의 국가모델이 소망스러운 팬데믹 극복모델이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지스트 석좌교수

토, 2020/05/16-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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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출신의 경제학자였던 슘펙터는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에 대한 본질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라는 기제는 새로운 생산과 시장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을 바꾸는 새로운 물류와 조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미국의 North Western 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Joel Mokyr가 산업혁명에 관해 서술하였듯이, 제도와 사고 방식에 새롭고 돌출적인 방식이 도입되는 데는 특정한 시기가 있다.

팬데믹이 진행되는 현재가 한편에서는 생존적 환경을 위협하면서 과거의 제도와 사고방식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기술적 혁명을 요구하는 시기가 아닐까?

모든 세대는 자신들이 역사의 전환점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 그것도 아주 극적인 방식으로. 2001년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도 그러했고,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도래했을 때 우리는 이러한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셈이다. 현재 진행되는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를 구제해야 할 정부와 거대 기업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일상적으로 이들이 우리들 삶에 필수불가결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이다. 정부는 집단적인 안전과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합법적인 기구이고, 현재 84개의 국가들이 적용하고 있듯이, 팬데믹에 대응하여 사회적 안전 프로그램이라는 마지막 구호처로서 사회보험이 존재한다.

시장 역시 사적인 방식으로 재화를 공급해 주는 가장 효율적인 기제로 존재한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일용할 음식이 제공되고 있는 것은 기적과 같다.

그러나 최근의 팬데믹이 가져온 경제적 위기상황은 정부와 시장의 한계, 그리고 사회적 보호망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노출하고 있다. 재무담당 장관들이 재정부담을 가능한 최대화해야만 하고 중앙은행들은 최저 수준으로 이자율을 낮출 수 밖에 없는 시점에 이르면서, 우리는 새로운 경제운용의 수단을 창출해 내야만 하는 시점에 서있는 것이다.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들 역시, 팬데믹 또는 에너지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기에 대규모적 사회기제에 사전적으로 도전하기보다는, 관행적인 소비자들의 수요를 만족시키는데 익숙해 있었다.

미국의 노련하고 저명한 전략가인 헨리 키신저는 현재의 위기가 몇 세대를 거쳐 정치와 경제에 격변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제도가 재난을 극복하고 충격을 견디어 내며 탄력적으로 정상을 회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고수하며 지켜 나가려 한다. 그러나 COVID-19가 지나고 난 후에는 이들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인식하게 될 것이다” 키진저의 판단이 객관적으로 옳은 것이지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현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난 이후 세계는 이전과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정부와 전통적인 민간 기업들은 효율을 추구하는 비교적 닫힌(경직된) 제도를 지니고 있으며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전개되는 새로운 시대에는 후자(민첩한 대응력)에 대한 요구가 지배적일 것이다.  에스토니아와 싱가포르는 유연하게 응동하는 기술적 플랫흠을 제공하는 디지털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정부서비스’라고 부르고 있다. 애플 구글 그리고 아마존과 같은 거대 벤쳐기업들은 예방의료 진단기술을 개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최근의 기술발전은 공공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새로운 집단적 기능을 가능하게 한다: 예건데 정보에 있어서 Wikipedia, 부모층을 위한 영국정부의 Mumsnet 웹사이트, 오픈-소스의 소프트웨어 GitHub 등을 예로 둘 수 있다. 국가의료서비스NHS의 응답어플app이 곧바로 군의 지원으로 직접 연결되는 사례가 75만 건이 넘어섰다. 이런 것들이 21세기형 제도의 새로운 시도가 아닐까?

그의 저서인 ‘계몽의 경제학’에서 Mokyr교수는 계몽적 아이디어의 확산과 새로운 제도를 만들려는 노력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배경이었다고 주장한다. 당시 혁신이라는 단어는 악용(abuse)이 아니라 칭송의 심볼이 되었다. 1660년에 설립된 Royal Society와 같은 획기적인 제도들이 기술과 생산 그리고 상업 등의 계몽에 앞장 섰고, 1799년에 도입된 Royal Institution조직이 영감적 사고와 실용적 지식 간의 대화라는 가교의 역할을 하면서 지성(총명)을 산업으로 연결시켰다. “경제에 계몽이 주는 자극(충격)이 유용한 지식의 축척을 확장시키는 토대가 되었고 이를 실용적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하였다”고 Mokyr 교수는 적고 있다.

RSA의 경영자인 M. Taylor는 사회가 번영하려면, 공공적 권위의 가치를 대표하면서도 개인적인 창의력과 이를 연계적으로 매개하는, 정부와 시장과 시민사회 간에 건설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의 서구 민주주의는 시민사회를 선의 밖으로 밀어내고 시장에 봉사하면서 포플리즘에 의해 채워진 허구적인 연대(solidaity deficit)를 만들어 왔다.

최근의 팬데믹 위기는 사회적인 연대라는 의무적 명령과 시장의 역동적 활력 간에 균형을 이루면서 정부의 합법성을 제고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우리는 실제와 이상의 융합이 필요하다” 위기의 순간을 당하면 파괴로 인해 꼼짝달싹 못하기 쉽지만, 동시에 창조적으로 대응할 실제적 기회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

 

John Thornhill

FT 기술분석가

금, 2020/05/1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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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에 창궐하자, 초기에는 방관으로 일관하던 구미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중심으로 중국에 대해 비난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발생원인은 자연적이거나 불명이며, 아마도 영원히 미제로 남을 공산이 크다. 생태운동가들은 자연생태의 파괴에 따른 자연적 보복이라고 설명하며, 대만의 감염병 전문자는 이미 작년 9월부터 미국의 신종독감에서 변이되어 나타났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혹자는 우한의 연구소 또는 미국 메리랜드 소재 포트 데트릭 군사기지에서 우발적 사고에 의해 발생하였다고 추정한다. 심한 경우에는 이해 관계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작하여 전파시켰다는 시나리오 설까지 나오고 있다. 다른백년은 이미 몇 번에 걸쳐 바이러스의 발생과 창궐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소개해오고 있다.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는 공개적으로 인간의 삶보다 이윤을 우선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 개념이 세계경제의 고질적 질병으로 작용하면서, 세계화를 통하여 중국의 해산물시장과 미국시장 전역으로 COVID-19를 퍼트리는 동력을 제공한다.

황당하게도, 팬데믹이 시간에 따라 지역을 옮겨 가면서, 도날드 트럼프가 이를 ‘’중국바이러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이름을 사용한 것은 사태가 심각해진 3월부터 이미 브랜드가 되어버린 트럼프의 입방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Ben Shapiro(미국 시사평론가)와 같은 보수주의자들이 이에 격찬을 보냈다. 그가 트럼프에게 칭찬을 보낸 의도는 분명하다: 백인들의 중국 문화에 대한 배제와 혐오라는 무엇(something)이 우리에게 전염되고 있다는 것이다.

Shapiro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의 소위 해산물 시장은 뱀과 천산갑 같은 야생동물을 취급하는 곳으로 강장효과가 있다는 미신에 따라 비싼 가격으로 거래가 이루어 진다”. 그의 글에는 한마디로 편견에 가득 찬 것으로 “오, 뱀이네” “이 사람들 참 천박하다” “ 미련하고 미신을 신봉하는군” 등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실에 대한 조작을 상기해 보자 – 미군이 무고한 시민들은 학살한 것에 대하여 기술적 용어를 들이대며 “불가피한 살상”이라고 작명하고, CIA가 행한 비인간적인 고문에 대해 “강화된 심문방식”이라고 변명하며, 이라크에 대한 불법적 침략행위를 “예방전쟁”이라고 명명했다).

Shapiro가 트럼프를 지지하며 ‘중국바이러스’라는 이름으로 중국정부를 비난한 것은, 본래 조 바이든 등이 합법성에 기반하여 바이러스를 잘못 처리한 중국정부를 비난한 그런 의도가 아니었으며, 14세기 중세의 흑사병에 대한 공포와 증오에 따른 희생양으로 유대인을 비난하였던 방식으로 특정 민족에게 질병의 원인을 돌리려는 것이었다.

이들은 질병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있고 있으며, 트럼프와 동맹들은 이 점에 대해 다음과 질문을 전혀 던지고 있지 않다 – 어떤 원인과 방식으로 우한의 해산물시장에서 바이러스가 시작되어 미국의 해변으로 상륙했는가?

우한은 여행의 중심지이자 국제교역이 활달한 곳으로 비즈니스와 여행 방문자들이 몰려들면서 이로 인하여 세계도처에 질병이 퍼지게 된 것이다.

COVID-19는 중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미국으로 전파되었으며, 이탈리아가 유럽 내 전염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이는 중국과 이탈리아 간에 토스카니(이탈리아 주이름)의 유명한 가방과 저렴한 의류 생산 등의 거래를 통하여 급속하게 전파된 것에 기인한다.

유럽과 중국 간의 거래는 아주 깊숙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즈가 보도하였듯이 중국은 유럽연합의 핵심적인 무역의 파트너이기에 유럽의 책임자들은 중국정부를 비난하는 보고서의 내용은 부드럽게 완화시켰다.

최근의 보고서에 의하면, 서부지역 전염의 주요 근거지는 라스베가스에서 지난 1월에 열렸던 소비자 가전전시회(CES)가 유력하다. 뒤에 확진자로 판명되었던 전시회 참석자는 다음과 같은 트위터를 남겼다 “라스베가스의 공항은 마치 응급진료소 같았다.”

우리가 이해하는 한, 바이러스는 우리들 삶의 도처에 존재하며 이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COVID-19는 생명이 만드는 자연계 현상에 의해 나타난 것이며, 미국에 광범하게 퍼지게 된 탓은 올해에 열렸던 CES 전시회를 통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더불어, Biogen이라는 제약회사가 중역들의 연간 정례회의를 통하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미국 내의 여러 주와 많은 나라에 전파시킨 주역(superspreader)이 되었다. Biogen사의 정례임원회의는 팬데믹의 초기에 개최되었는데, 이를 연기할 수도 있었는데 그대로 진행하였다.

뉴욕타임즈는 연기될 수 있었던 회의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4명의 회사 중역진은 Cowen이라는 투자사가 초청한 대규모 의료관련 회의에 참석했었다. 보스톤소재의 메리어트 호텔에서 있었던 회의에는 많은 투자자들이 참석했었는데, 투자자 중 한 사람은 Biogen 중역이 매우 아파 보였다고 전언했다.”

대부분 제약회사들은 이런 “대규모 의료관련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취소하였으나, Biogen 중역진들은 자신들이 새로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홍보하기 위하여 개별적인 상담을 강행하였다.

델타항공사같이 수익추구의 회사들도 바이러스 전염을 확대시켰으며, 트럼프의 백악관과 여러 주정부들은 고집스럽게 바이러스의 전파를 차단시키기 위한 조처를 지연시키고 있었는데, 이는 자기과신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기인한 것이다 (쿠오모 뉴욕 주지사는 3월 2일 매우 솔직하게 고백했다. “뉴욕인의 오만함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우리는 뉴욕이 지구 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료체제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자본주의는 소위 “집단면역”이라는 이름 뒤에서 작동하고 있다 – 텍사스 주지사인 Patrick은 동료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경제를 망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방역격리)보다 중요한 일들이 많다.”

이러한 발언은 인간의 삶보다 수익이 우선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도된 가치개념이 세계경제를 전염시키고, 세계화를 통하여 중국의 해산물시장에서 미국의 자유시장으로 확산시킨 동력이다. 이 바이러스의 이름은 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이며, 동력은 세계화이다. 사망자 숫자가 늘어나면서 비로소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면역시키려 애를 쓰고 있는데, 이는 오래된 탐욕에서 나타나는 최근의 돌연변이 현상이다.

 

Richard Eskow

사회안전망과 관련하여 건강과 경제정의에 대한 전문적 자문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RJ Eskow TV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고 있다.

수, 2020/05/1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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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에 창궐하자, 초기에는 방관으로 일관하던 구미 지도자들이 트럼프를 중심으로 중국에 대해 비난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근원적 원인은 자연적이거나 불명이며, 아마도 영원히 미제로 남을 공산이 크다. 아래의 칼럼기사에서 트럼프가 ‘중국바이러스’를 들고나온 정치적 배경을 살펴본다.


트럼프의 중국메모장 확대사진. 그는 팬데믹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 자리에서 참모들이 준비한 자료 중 코로나라는 단어를 지우고 Chinese라는 단어로 대체시켰다.

COVID-19에 의한 사망자와 실업자 수치가 급증하면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은 다음의 3가지 요소에 의존하게 되었다: 1) 선거과정에 민주당이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 경우, 2) 캠페인을 통해 민주당원들이 바이든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독려하는데 성공할 경우, 3) 중국에 대하여 대대적인 악선전을 진행하는 경우.

우리는 민주당과 바이든이 만들어 내는 돌발적인 사건들에 대해 익숙해 있고, 이는 한편에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신중하게 생각해 보면 별 일도 아닌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 캠프에서 이슈를 제기하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최근에 불거진 바이든의 스킨쉽이 도마에 올라 있지만, 사실과는 상관없이, 트럼프 참모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회언론 환경을 활용하여 대대적으로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

트럼프 진영은 진보적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이든에서 등을 돌려 투표장에 나가지 않거나 제3의 후보에게 표를 찍도록 선동할 것이다. ‘손짓관행’의 바이든보다 ‘상습적인 성추행자’인 트럼프가 더욱 문제가 되겠지만, 이런 종류의 공격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침몰해가는 ‘트럼프’호를 구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는 자신의 무능력이라는 결점을 감추고 대통령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중국에 대해 끊임없이 말폭탄의 비난을 지속하면서 국제적인 긴장을 조성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많은 독재자들이 그러하듯이, 트럼프는 비난해야 할 적과 적국을 만들어야만 한다. 이런 배경으로 그는 중국을 단순히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간 나라일 뿐만 아니라, 미국에 바이러스를 퍼트린 적성국가로 비난해야 한다. 결국 그는 Waco(사이비 종교)가 아니라 Wuhan(우한)을 비난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것은 이미 시작되었다.

내게 이는 분명 미친 짓이다. 뉴욕에 있는 신경과민치료 클리닉의 관리자와 오랜시간 토론하면서 얻은 생각이다. 그녀는 내게 근거없이 말했다 “중국인들은 매우 치밀하게 우리를 바이러스로 죽이려고 해요” 순간에 나는 혈압이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신경치료 전문가들과 수십 년을 함께 일해 온 사람이 중국인들이 바이러스를 배양하고 퍼뜨려서 미국인들과 세계인들 그리고 중국인 자신들을 해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논쟁의 결점을 지적하려는 나의 노력은 그녀의 마지막 답변에 무너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대중매체들이 만들어 내는 수천 가지의 무책임한 견해(meme) 중의 하나인 것에 내기를 건다.

무엇이 이런 망상을 강요하게 했을까?  중국은 단지 바이러스의 감염이 시작된 나라일 뿐만 아니라, 미국에게 강력한 경제적 국제정치적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인들의 외모가 대부분의 미국인들과 달라 보여서, 민족적인 혐오감을 자극하기 쉽기 때문이다.

팬데믹에 대처하면서 독불장군이 저지른 자신의 실수를 대신하여 비난하기 쉬운 대상의 적으로 중국인들이 마침 제격인 셈이다. 정보라인의 참모들이 중국인 과학자들이 바이러스를 배양하지 않았으며 자연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을 하였지만, 트럼프는 자신의 손에 묻은 핏자국을 중국인들에게 덧칠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런 인종차별적이고 파괴적인 음모에 대하여 민주당 지지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들 중에는 중국을 옹호하는 부류도 있을 것이고, 트럼프 못지않게 중국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반응 모두가 트럼프가 허튼 논쟁을 즐기게 허용한다. 그는 미국인들 모두가 중국을 좋아하던 싫어하던 중국에 대해서 생각하고 논쟁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류의 논쟁을 통하여 자신의 허튼 발언을 강화시키고, 그가 완화시키는데 실패한 대량사망자의 사태에서 주의를 돌리려고 의도하는 것이다. 중국계 미국인들은 용기를 내어 트럼프가 추구하는 인종차별과 폭력에 대하여 저항하여야 한다. 다만 이는 국제정치적인 것이 아닌 인권이라는 주제로 접근해야 한다. 증오범죄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트럼프가 만들어 놓은 중국이란 함정에서 빠져 나오는 최상의 방법은 그를 자신이 만든 함정에 가두어 두는 것이다. 그를 가두는 방법으로 트럼프가 설명할 수 없는 두 가지 수단이 있다: 죽음과 일자리이다.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주장했던 사실을, 팬데믹은 없었으며 바이러스는 곧 사라질 것이다(기적과 같이 사라진다), 지속적으로 환기시켜야 한다. 5월 2일 현재, 트럼프는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 수치를 넘어서, 사망자가 67,000명에 달했으며 대통령 선거일에는 100,000명이 넘어갈 것이다.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사망희생자들의 수치를 들이대면, 트럼프는 분명히 그가 하던 방식대로 자신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으면 희생자 숫자는 2백만 명이 넘었을 것이라고 응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이런 수치를 언급하면 할수록, 그는 우리의 의도대로 논쟁을 되풀이하면서 자신이 고안해 만든 관속에 머물게 된다.

실업률이 조만간 1930년대의 대공황 수준을 넘어가고 이의 회복이 단시일 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므로,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와 공화당의 무능을 집중 공략하면서 어려움에 처한 수백 수천만 명의 사람들에게 일자리 제공과 생계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확신하건대, 이번 함정에서는 빠져나올 출구가 없다. 봉쇄를 풀고 경제활동을 재개하면, 곧바로 바이러스가 퍼져나가면서 사망자들은 늘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자신이 제시한 활동제한의 지침에 반대하는 무장한 민병대들을 부추기며 경제활동을 재개하려고 안달을 할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한 행동은 자신이 스스로 실업문제라는 함정에 빠져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함정에서 빠져 나오려면 거대한 친-노동정책을 펼치며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바이러스로 고립되어 있는 수백만 명의 비정규직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본성상, 그는 정치적 지원을 받으려는 기대감에 빠져 자신 주위의 부자들에게 자금을 공급해 줄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실업지원금으로 제안된 법안(3rd recapitalization bill)은 실제로는 43,000명의 백만장자들을 지원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부동산업자들에게 1.6조 달러의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대가행위는 그가 갇히는 함정을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것이다.

트럼프가 현안을 무시하고, 게으르게 대응하며, 비난의 화살을 돌리면서 위기를 해결할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를 민주당 지지자들이 비판하고 나서면 나설수록, 중국이라는 핑계의 음모는 그를 현안으로부터 도망치게 할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죽음과 실업문제라는 함정에 가두고 열쇠를 멀리 던져버려야 한다.

 

Les Leopold

노동조합과 노동단체에게 경제교육을 제공하는 뉴욕 소재 노동기구의 책임자. 주요 저서는 Runaway Inequality: An Activist’s Guide to Economic Justice (Oct 2015)가 있다.


<보충기사>

뉴저지 시장이 작년 11월에 코로나에 걸렸다고 주장하다

뉴저지 주의 Belleville 시장인 Michael Melham은 자신이 코로나바이러스의 항체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왔으며, 미국이 첫 확진자를 보고하기 두 달 전인 지난 11월에 이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렸다고 언급하였다.

뉴저지의 지역 방송에 의하면, Melham 시장은 작년 11월에 아틀란틱 시에서 열린 뉴저지 시장단회의에 참석하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고 한다.

“회의에 참석하면서 몸이 아픈 것을 확실하게 느끼기 시작했으며, 회의진행 내내 고통과 싸웠다”라고 그는 지난 주 지역방송에서 말했다. 귀가 후 의사와 자신의 증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높은 열과 한기, 목의 통증, 환각증 등이 있었으며, 증상은 심한 독감처럼 3 주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지난 수요일 그는 COVID-19의 항체를 위한 혈액테스트를 받는 과정에서 양성반응이 나왔고, 자신이 심한 독감으로 생각했던 것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였다고 말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앓고 있으면서 이를 독감으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라고 그는 언급했다. 이에 대해 뉴저지 주정부의 건강담당부서와 대변인실은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 지난해 11월경 대만 감염전문가가 작년 9-10월부터 이미 미국의 독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섞여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자신이 아는 미국 내 기관과 친구들에게 알렸으나 묵살당했다고 확인했다. 상기의 Melham시장의 진술은 대만의사의 이야기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다른백년).

월, 2020/05/1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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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스탠더드, 미국?

봉준호 감독은 미국 매체 ‘벌처’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영화는 지난 20년 동안 큰 영향을 발휘했음에도 왜 단 한 작품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오스카는 국제적인 영화제 시상식이 아니라 로컬시상식”이라고 대답했다. 봉감독의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오스카상이 로컬인데도 국제영화제로 오인되어 왔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오스카상은 로컬일 뿐이다. 또 하나의 의미는 트럼프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글로벌 리더십을 노골적으로 내팽개치고 있는 현실과 이의 결과로 아메리카 스탠더드가 곧 글로벌 스탠드라는 공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봉감독의 발언이 이것을 염두에 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더. 미국연방정부는 4월 3일(현지 시간) 미국 보건복지부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국가전략물자비축량( Strategic National Stockpile)의 용어 정의도 변경했다. 이전에는 공중 보건 비상시 필요한 의약품과 물자를 연방정부가 비축하는 것으로 정의되었지만 이번에 주정부의 물자 부족시 연방정부가 보충한다는 식으로 변경되었다. 비상시 1차적 책임을 주정부로 넘긴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의 주정부는 진단키트, 인공호흡기, 의료용 방호복, 마스크 등 방역물자를 구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말 그대로 주정부마다 각자도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 리더십은커녕 국내에서 내셔널 리더십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경제활동 재개 시점을 두고도 트럼프와 주지사가 실랑이를 벌이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미국의 현주소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숙주가 된 G7G20 국가들

코로나19 팬데믹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고속도로를 타고 순식간에 확산했다. 아래 <표 1>은 ‘코로나19(COVID-19) 실시간 상황판’【1】의 확진자 랭킹 중 25위까지를 나타낸 것이다. 이 표를 기준으로 G7 회원국과 G20 회원국(EU를 제외하면 19개 국가)의 코로나19 랭킹을 보면, G7 회원국이 확진자 수 랭킹 10위안에 5개이고, G20 회원국은 확진자 수 랭킹 20위안에 11개 국가가 속해 있다. 이 표들에서 보듯 이들 G7, G20 회원국들은 소위 말하는 선진국들이다. 물론 G20 회원국들은 좀 다르지만 G7 회원국들은 ‘부자 국가 클럽’이다. 세계에서 의료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능력 또한 가장 높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G7과 G20 국가들이 코로나19 팬데믹의 허브가 되었다. 이렇게 된데는 이들 국가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핵심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무서운 속도로 팬데믹이 된 이유다. 그리고 이 피해자들은 이들 신자유주의 핵심 국가들의 빈민층이 1차적이지만 시차를 두고 변변한 방역 시스템과 물자가 없는 빈곤한 국가들의 몫이 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이를 대처하는 글로벌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은 그렇다치고 미국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제각각 제 코가 석자인양 각자도생의 모습만 보이고 있다.

 

마스크가 계급을 가르다

미국과 EU 국가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추악하기조차 한다.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이들 국가에 확산되자 초기에 강건너 불구경하다가 확산방지의 타이밍을 놓쳤다. 뒤늦게 자국내에서 전면적으로 확산되자 자국 국민들에게 사실상 가택연금과 같은 강제적인 자가격리 조치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지역감염이 되면 개인이 방역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개인 방역의 핵심 물자는 손세정제와 마스크 착용이다. 이들 물품을 구하지 못해 선진국들은 마스크 확보에 비상이 걸린 나머지 하이재킹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스크를 환자들이나 착용하는 물자로 인식하거나, 과학적인 개인 방역물자임에도 불구하고 오리엔탈리즘에 사로잡혀 미개한 동양인이나 착용하는 것으로 여겼던 마스크를 국민들에게 착용하라고 뒤늦게 권고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전면적인 확산으로 공포감에 사로잡힌 시민들은 마스크를 구하려 애를 쓰지만 마스크 공급의 절대적인 부족으로 마스크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해당 국가들은 고가에라도 마스크를 구입할 수 있는 부자들과 마스크를 구입할 수 없는 빈자들로 사회가 양분되고 있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과 스카프 같은 대용품으로 마스크 대신 착용하는 사람들로. 일본은 가구당 천마스크 2장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하여 국제적인 코미디를 보여주었다. 이런 모습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세계다.

 

코로나19가 글로벌 가치사슬(GSC)의 허상을 벗겼다

일이 이렇게 된 이유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이 마스크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어도 자국 국민들에게 마스크 착용을 미리 권고하지 못하고 뒤늦게 한 것은 그들 국가에서 마스크를 제조하여 공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왜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됐을까. 간단하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글로벌라이제이션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교의에 따라 글로벌 공급사슬(GSC)은 지구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생산성을 더 이상 높일 수 없는 범용적 기술에 기반한 산업은 가차없이 해외로 이전했다. 선진국 내에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어서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 확보가 가능한 해외로 이전한 것이다. 이 글로벌 가치사슬이 이번 코로나19가 팬데믹되면서 방역물자의 글로벌공급망(GSC)이 작동되지 못하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선진국들은 자국내에서 이들 물자를 비상명령으로 생산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시간이다. 전염병 확산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지만 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전염병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마스크, 인공호흡기, 의료용 방호복 등 지금 당장 코로나19에 대처할 기본적인 장비의 글로벌 수급 문제를 놓고 국제사회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코로나19 앞에서 제 앞가림도 못하는 미국을 비롯한 소위 선진국들에게 글로벌 리더십 발휘는 기대난망이다. 코로나19 확산 속에서 글로벌 리더십 조건은 간단하다. 임상경험 등 코로나19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와 경험을 다른 나라들과 공유하고 진단키트와 방역물자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제공하는 것이 글로벌 리더십의 내용을 이룬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있듯 선진국들은 이런 리더십은커녕 자국내 확산 방지에 허둥대고 있고 국제 사회에서 방역물자를 놓고 낯 뜨거운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이 이렇게 된데는 아래의 그림들을 보면 명확하다. <그림 1>은 주요 6개국의 자국 GDP중에서 제조업의 몫을 나타내는 그래프다. 전반적으로 자국내 제조업 비중이 낮아지고 있다. 저부가가치 제조는 해외로 나간다는 의미다. 물론 서비스업과 같은 산업의 성장에 따라 제조업 비중이 낮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 2>를 보면 세계 제조업 부가가치 생산액에서 중국은 그 비중을 늘려가고 있지만 미국 등은 그 비중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저부가가치 제조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19 검체 채취에 사용하는 면봉조차 미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전통적인 국제적 비교우위론을 강타한 것이다.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 마스크나 방호복 등을 만들면 미친 짓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비교우위론과 신자유주의 글로벌 밸류체인의 허상을 드러낸 것이다. 전면적인 전쟁 상황에서 이같은 교의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팬데믹된 코로나19는 한 순간에 세계 제2차대전 후 세계적인 전면전이 되었다. 글로벌 밸류체인이 무너지면서 당연하게도 방역물자를 둘러싸고 전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일극체제의 종말?

이러한 지구촌의 무정부적 상황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명하게 드러났지만 이런 흐름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동구권 사회주의 블록이 시장경제로 체제전환하자 1992년 출판된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에서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냉전의 역사는 끝났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의 이면에는 냉전 종식 이후는 미국이라는 일극체제가 전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다. 하지만 공고할 것 같은 미국 일극체제는 2008년 금융위기와 중국의 등장으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 재균형정책(Pivot to Asia)을 내걸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였다. 일종의 현대판 합종책(合縱策)【2】이라 할 수 있는 반중국연합이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정부는 TPP를 탈퇴하고 신자유주의 교의를 내던지며 중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정책을 추진했다. 군사적으로는 중국봉쇄를 위해 인도-태평양전략에 따라 기존 태평양사령부를 2018년에 인도태평양사령부로 재편하고 한국을 편입시키고자 노력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중국의 굴기를 억누르기 위해 미국은 대중국 관세정책을 지렛대 삼아 중국에 대한 무역전쟁을 시작하였다. 1차 합의를 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그 합의가 지켜질지도 의문이다. 무역전쟁 외에 중국의 ‘Made in China 2025 strategy【3】’ 전략을 무산시키기 위해 화웨이에 제재를 가하는 등 5G 통신, IoT, AI 등 첨단분야에 대한 중국의 굴기를 억누르는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은 신자유주의가 구축한 세계화와 양립할 수 없다. 한마디로 중국의 전국시대에 진나라를 두고 연횡책과 합종책이 씨줄과 날줄로 얽히고 설키면서 미국과 중국은 두 국가 사이에 낀 국가들을 줄 세우고 있다.

또한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오바마정부가 주도하여 체결한 ’파리기후변화협정【4】‘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였다. ’파리기후변화협정‘은 전지구적인 국제적 공조가 반드시 필요한 문제다. 기후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재앙에 성큼성큼 다가가는 것이기에 속도감 있는 국제공조가 절실함에도 트럼프 정부는 이를 내팽개쳤다. 글로벌 리더십의 역할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다. 그동안 ’Pax Americana‘라는 세계 경찰국가의 모습에서 뒷골목 갱스터 국가 같은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해외 미군주둔비용 전가다.

미국의 이러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기실 트럼프만의 독특한 캐릭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단지 트럼프라는 캐릭터가 그 속도를 빠르게 했을 뿐 미국이라는 파워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다. 아래 <그림 3>은 1990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 중국, 일본, 독일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준다. 그래프에서 보듯 미국은 정보통신혁명으로 IT붐이 일어나면서 세계 GDP 중 30%를 넘게 점유한 이후 하락하다가 2014년 이후 약간 높아졌다. 미국의 비중이 낮아진 것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굴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신자유주의 종주국이다. 미국내 제조업 채산성 약화로 전통적인 굴뚝 산업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다. 금융자본과 IT기업들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 경제【5】가 미국을 특징지우고 있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생산직 노동자(블루 칼라)는 일자릴 잃게 되었고, 바로 그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된 사람이 바로 트럼프다. 트럼프의 미국내 정치적 지지세력과 글로벌 리더십은 상충된다. 트럼프는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하고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어 글로벌 리더십 발휘를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코로나19는 인류공동의 위기다. 국경 없는 코로나19에 인류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므로 국제적 협력이 절실하다. 코로나19가 지구촌 어딘가에 남아있다면 결코 끝난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중국은 협력은커녕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협력이 아니라 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3월 26일 화상으로 진행된 G20 특별정상회의에서 우아한(?) 공동성명을 채택했지만 그 실행이 뒷받침될까에 의문이다. 공동성명은 국제적 연대정신을 강조하면서 첫째 팬데믹에 대한 대응, 둘째 세계경제 보호, 셋째 국제무역 붕괴에 대한 대응과 국제협력 증진 등을 담고 있다.

먼저 팬데믹에 대한 대응으로 진단도구, 치료제, 의약품, 백신을 포함한 의료품의 공급을 포함하여 국제적인 팬데믹에 대응하는 WHO의 임무를 더욱 강화할 것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하였으나, 트럼프는 WHO가 중국 중심적이며 미국에 잘못된 조언을 했다고 비난하면서 WHO에 대한 자금지원을 일시 중단했다. 세계 방역전선의 사령탑인 WHO를 무력화 한 것이다. 다음으로 세계경제 보호는 사실 자국 경제 보호다. 이건 합의하지 않아도 국가별로 각종 경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저소득 국가들의 채무취약성 위험을 지속적으로 다룰 것이라 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없다. 국제무역 붕괴에 대한 대응에서는 필수 의료품, 주요 농산물, 그리고 국경을 넘는 여타 상품과 서비스의 흐름을 보장하고, 글로벌 공급체인에 대한 붕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했지만 해결 수단 없는 공허한 발표였다.

마지막으로 국제협력 증진에서는 난민, 개발도상국, 최빈개도국, 아프리카의 보건상황을 우려하고 개발과 인도적 재원을 마련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지만 말잔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당장 확진사와 사망자가 급증하는 이란이 4월7일 긴급하게 코로나19 대응으로 50억달러(약 6조1000억원)의 긴급자금을 국제통화기금(IMF)에 신청했지만 미국이 이를 반대하는 것으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G20의 국제협력 정신은 쓰레기통에 내던져졌다. 그것도 모범을 보여야 할 미국이 주도하여 말이다.

긴급하게 소집된 G20 특별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했지만 그 내용의 빈약함은 차치하더라도 그조차 이행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은 가장 책임있게 리더십을 보여야 할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공고할 것 같은 미국이라는 일극체제가 흔들리면서 무역전쟁을 위시하여 정치군사적인 분야 등 모든 면에서 충돌하고 있다. 중국은 커가는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넓히려 하고 반대로 미국은 중국의 굴기를 억누르려는 구조적 패권경쟁을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패권경쟁은 국제적인 협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COVID-19’라는 정식 명칭 대신 트럼프는 ‘우한바이러스’ 혹은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면서 중국을 자극했고, 이에 중국은 코로나19 발원지가 중국이 아닐 수 도 있다고 하는 등 신경전을 벌렸다. 중국에서 코로나19 초기에 중국이 코너에 몰렸지만 3월 하순에는 중국이 진정되고 미국에서 전면적으로 확산되자 미국이 수세에 몰렸다. 이에 미국은 이러한 팬데믹을 WHO 탓으로 돌리면서 WHO가 중국에 기울어 있다고 비난하는 등 WHO를 사이에 놓고 미국과 중국이 다투고 있다.

 

세계대공황의 교훈을 기억해야

푸드뱅크 앞에서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시민들은 줄을 서기 시작했다. 반면에 농촌의 농장에서는 수요가 없어서 우유와 야채 등 신선식품을 버리고 있다. 지금 미국에서 보이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러한 풍경은 교과서에 나오는 1929년에 시작된 세계대공황의 풍경이기도 하다. 세계대공황도 좀더 일찍 수습할 수 있었지만 국제적 협력 부재로 결국은 2차세계대전을 통해서야 극복된 것을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미국은 국내 상황 대처에 매몰되어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다. 중국 또한 국제적 연대강화보다는 자기 면피하는데 급급해 하고 있다. 국제적 연대가 필요한 시점에 미국과 중국은 패권경쟁에 책임공방 하느라 여념이 없다. 국제사회의 무정부성은 높아지는데 반하여 국제사회 공조를 이끌 리더십은 보이지 않고 있다. 20세기 냉전시대의 제3세계 비동맹운동같은 새로운 연대의 조짐도 없다. 결국 손해는 세계화하고 이익은 자국화하는 경향만 더욱 노골화될 것이다. 하지만 90년 전의 세계대공황의 교훈은 교과서의 얘기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19가 진화한 것 이상으로 인류가 진화했음을 입증해야 한다.

 

【1】 ‘Coronaboard. kr’이 제공하는 통계로서 각 나라의 보건 당국이 공식적으로 매일 발표하는 수치를 집계하여 작성된 것이다.

【2】 중국 전국시대에 최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진나라를 제외한 6개 국가의 연합을 말한다. 반면에 연횡책(連橫策)은 6개 국가의 연합전전에 대항하는 진나라의 외교전략이다.

【3】 중국이 단순 제조업 대국에서 제조업 강대국으로 변화하기 위한 계획으로 첨단산업 등 육성 전략.

【4】 2015년 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본회의에서 195개 당사국이 채택한 협정으로 산업화 이전 기준에서 지구의 평균온도가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협정.

【5】 4차산업혁명에 따른 첨단산업의 융‧복합을 통해 빅데이터, AI, IoT 등의 인프라 생태계를 바탕으로 한 경제.

 

김서진

(사)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 / 북한학(경제·IT)

금, 2020/05/08-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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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은 최근 1939년에 유행했던 노래를 회상시키며 ‘우린 다시 만날 거예요, We will meet again”라고 말했다. 우리를 고무시키는 발언이며 정말 필요한 언급이었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우리가 기대하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위기를 함께 대처해온 경험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사실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의 세상은 온갖 종류의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 불평등은 국가 간뿐만 아니라 개별국가 안에서도 만연했다. 가장 부유하다는 미국 내에서 수천 만 명이 의료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불필요한 질병에 시달렸다. 잘못된 긴축정책으로 유럽연합 내 취약한 시민들이 공적 지원과정에서 소외 당했다.

브라질과 볼리비아부터 폴란드와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반-민주적 정치가 성행하고 있다. 팬데믹 과정에서 공유한 경험들이 상기에 언급한 문제들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여왕이 위에 인용한 노래가 나온 지 오래지 않아, 유엔과 통화기금 그리고 세계은행 등이 1944-5년 사이에 탄생하면서 ‘다시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경험한 후 나라마다 발전을 이루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몇 년간 식량부족을 겪었던 영국의 경우, 심각한 영양실조라는 사태에 직면했다. 필요한 식량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영국은 합리적인 사회적 지원책을 통하여 부족하나마 식량을 골고루 나누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전통적으로 영양실조에 있던 계층은 어느 때보다 상태가 개선되었다. 비슷한 일이 의료분야에서 전개되어 함께 나누는 건강관리가 시작되었다.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전쟁을 겪은 1940년대를 지나면서 영국과 웨일즈 지역의 신생아 평균수명이, 이전 십 년간에 1.2년이 늘어난 반면에 6.5년이 늘어났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1.5년에서 7년이 연장되었다.

복지국가라고 알려진 새로운 시스템이 출현하면서 평등이 추구되고 빈민계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전쟁 중에도 이후에도 보다 개선된 평등을 주장해온 Aneurin Bevan은 1948년 맨체스터에 있는 the Park Hospital에서 처음으로 국가의료서비스(NHS)를 시작하였다.

현재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상기에 언급한 것과 같은 긍정적인 무엇이 전개될 수 없을까?

과거에서의 교훈은 위기를 어떻게 대처했으며, 무엇을 핵심적으로 다루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지점에서 정치가와 일반 시민간의 관계를 포함하여 정치가 매우 중요하다. 영국이라는 공화국이 전쟁과정에 식량부족과 의료관리를 잘 해결하고 개선시킨 반면에, 같은 시기인 1943년 영국 지배하에 있던 인도의 벵갈지역에 지독한 기근이 발생하여 3백만 명이 아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의 통치자였던 Raj 는 사태를 방지하는 데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현재 진행중인 팬데믹에 대응하는 정치과정에 평등이라는 주제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 내 사망자를 보면 백인보다 흑인이 비교할 수 없는 비율로 죽어가고 있다. 시카고의 예를 보자면 주민 구성의 1/3도 안되는 흑인들이 사망자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빈민계층에 대한 불평등한 상황은 브라질과 헝가리 그리고 인도 등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실정이다.

인도는 특히 심각하여 불평등한 상황이 광범하게 존재한다. 인도가 독립하여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한 이후에는 기근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억압 받는자들의 주장을 들어주고 위험에 처한 이들을 보호하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인, 공공적 토론을 다양한 직간접적인 수단을 통하여 여론의 자유를 억제하고 정부기관이 여러 제약을 강화하고 있다.

부유층에는 현대적 의료가 진행되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의료조치도 이루어 지지 않는 대비(contrast)와 현대화된 카스트 제도의 불평등에 가져오는 치명적인 비대칭 상황에 대하여, 이번 계기를 구실로 삼아 팬데믹의 대처를 평등하게 전개할 수 있는 모범의 기회로 삼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에 관한 관심은 보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기차와 버스 등 공공교통수단을 포함하여 갑작스런 봉쇄조치를 극적으로 취하면서, 고향에서 수백 마일 떨어져 일하고 있는 타지역 이주 노동자들, 가난 중에 가장 가난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

물론 ‘거리두기’가 바이러스의 전염을 억제한다는 것은 확실하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러나 이는 봉쇄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 상응한 조치인 수입, 식량, 의료제공과 접근성 등이 함께 결합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많은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인도에는 NHS같은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거대한 불평등을 방치한 채, 팬데믹에 대처한다면 얻을 교훈은 없다. 현재대로라면, 슬프게도 우리가 다시 만나는 장소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불평등한 세상보다 나아질 것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 우리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의 위기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평등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은 많은 나라에서 고통을 줄일 뿐만 아니라, 미래에 더욱 평등해진 세상을 설계하는 일에 많은 아이디어를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이제 반도 진행되지 않은 듯한 위기의 과정 속에 감히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꿈꿀 수는 없을까?

 

아마티야 센(Amartya Sen)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유엔의 인간개발지수(HDI)를 주도하였고 현재 하버드의 Nobel Thomas W Lamont 과정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참고자료

<보충자료. 한겨레 신문사와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인터뷰기사> 협동조합 가치, 위기 때 더 빛나 “코로나 해법도 연대·협력에서 찾자”

금, 2020/05/0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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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한국정치학계의 큰 기둥역할을 하고 계신 임혁백 교수님이 코로나 사태에 대하여 문명사적 시각으로 매우 소중한 글을 남겨 주셨다. 아래의 글은 첫 번째로 현재의 팬데믹 이전에 있었던 유럽중세의 흑사병에 대한 회상적 성찰이고, 이후 두 번째 글은 현재 진행중인 사태에 대한 분석, 그리고 마지막에는 향후 전개될 인류사회의 미래 모습에 관한 전망으로 향후 격 주간 세 번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이 그림은 부뤼겔이 그린 Triumph of Death입니다. 패스트 창궐로 엄청난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해골이 되어 춤추는 그림에서 부뤼겔은 패스트의 비극과 참상을 너무도 리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에드워드 기본은 “칭기스칸과 그 후손들이 지구를 흔들자 카리프들은 넘어졌고 카이사르들은 왕좌위에서 떨었다”고 하면서 칭기스칸과 후손들의 유럽침공으로 일어난 황화(yellow peril)를 두렵게 바라보았다. 몽골과 타타르인들의 유럽침공은 중동과 유럽의 중세군주들의 권자를 무너뜨렸고, 유럽인구의 1/3을 몰살시킨 흑사병으로 중세의 봉건적 생산양식을 종언시켰고, 중세 소작농과 농노를 임금노동자로 전환시킴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지배적으로 만들었고, 구빈법이라는 국가복지제도를 출현시켰다.

몽골군대에 의한 황화는 역설적으로 중세를 끝장내고 근대의 도래를 앞당기는 “의도하지 않은” (unintended consequences) 진보적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몽골군은 1346년에서 1348년 사이에 크리미아반도의 카파Kaffa시를 포위, 공격하였고 카파의 슬라브 군주가 결사항전하자 몽골군은 페스트 시체를 투석기로 성안으로 던져놓았고 카파성은 페스트가 퍼져 모든 사람들이 죽었고, 이웃 성과 도시로 번졌고, 카파를 탈출한 사람들은 콘스탄티노플, 시실리, 제노아, 베니스로 1347년에서 1348년에 도망하자 페스트는 이태리 반도로 확산되었고 베니스와 제노아의 상선에 탄 페스트 환자들이 프랑스, 스페인, 노르웨이의 번화한 항구에서 내리자 페스트는 유럽대륙으로 확산되었고, 1348년 5월 8일 영국에 상륙하자 흑사병은 유럽전역을 전염시킨 판데믹이 되었다. 흑사병으로 불리는 뷰보닉 플레이그 (bubonic plague)로 유럽인구의 1/3이 사망하는 대재앙이 발생하였다.

지오반니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에서 “교회 뒤뜰에 거대한 참호가 파졌고, 수백구의 시체가 배의 수하물칸처럼 차곡차곡 계속 쌓여져 갔다” 증언하였고, 이븐 할둔은 “파괴적 전염병은 나라를 황폐화시키고 수많은 인구를 소멸시켰다, 모든 인간이 거주하는 땅을 변화시켰다.”

뷰보닉 플레이그는 유럽전역을 휩쓸면서 유럽 전체 인구의 1/3의 생명을 앗아갔다. 페스트는 신분과 계급을 가리지 않았다. 고귀한 분들이 빈민들과 함께 속수무책으로 병마에 쓰러졌다. 엄청난 인구 감소는 봉건제적 생산양식을 파괴하고 중세를 종언시켰다.

인구감소는 엄청난 노동력 부족사태를 불러왔고, 임금을 폭등시켰다. 토지의 가치가 폭락하자 영주와 토지귀족들은 기존의 현물지급에서 현금지급으로, 물납제에서 금납제로 바꾸는데 동의하면서까지 농민들을 자신의 땅에 묶어 놓으려했으나,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지주들은 농민들이 자신의 장원을 탈출해서 자유 노동자로 변신하여 높은 임금을 주는 농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봉건제적 생산양식이 변화하면서 봉건적 계급관계도 변화하였다. 농민들은 지주의 땅에 묶여 현물급여를 받는 농노와 소작인에서 화폐임금을 받는 농촌임금노동자로 변신하여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의 주체가 되었다. 페스트로 인한 엄청난 인구감소는 살아남은 농촌노동자의 협상능력을 강화시켰다. 지주들은 기존 임금의 3배를 주고라도 노동자를 고용하려 했다.

대토지귀족과 영국 왕은 노동조례(Statute of Laborers, 1351)를 통해 노동자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임금을 흑사병 이전 수준으로 고정시키려 했으나, 노동시장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두 배 이상 상승시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임금상승과 지대하락으로 영주와 기사들의 재정은 압박을 받은 반면 노동자들은 귀족들이 입던 옷과 먹던 음식을 소비할 수 있었다. 기득권 영주와 지주들과는 달리 새로운 젠트리라는 신중산계급이 등장하였다.

그들은 토지귀족 출신은 아니나 도시에서 투기를 통해 번 돈으로 파산한 지주의 토지를 사들였고 상업적 농업의 선두에 섬으로써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전환을 주도하는 부르주아지를 형성하였다. 노동력부족은 국가와 토지귀족으로 하여금 농촌빈민들을 땅에 묶어놓는 조치를 강구하게 하였다. 그들은 농촌빈민들의 이동과 유랑을 금지시키고, 그 대신 그들에게 최소한의 구빈을 제공하는 잔여적 복지를 제공하였다.

그 결과 영국에서 최초로 빈민을 위한 구빈법이 출현하였다.(Poor Law Act and Statue of Artificiers, 1388) 뷰보닉 플레이그의 “의도되지 않은 결과”로 서구의 농민들은 봉건적 예속에서 해방되었고 해방된 자유노동자들과 몰락한 토지귀족의 땅을 사들인 젠트리 중산층에 의한 농업의 상업화로 봉건제 생산양식과 그에 기반한 중세의 복합시스템은 종언을 고하고, 유럽의 도시화와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앞당겨졌다. 동구의 국가와 토지귀족들의 대응은 달랐다. 동구의 국가와 토지귀족은 장원에 예속된 농민들이 자유노동자로 해방시켜줄 것을 요구하자, 강압력을 동원하여 그들을 다시 장원의 노예로 가두어놓는 재농노화(reserfdom)를 강요함으로써 봉건제의 종식이라는 시대정신에 역행하였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지스트 석좌교수

금, 2020/05/0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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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전체적인 식량의 수입의존이 70%가 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팬데믹 이후 세계농업의 지형변화와 수급상황은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아래의 칼럼은 남아공 전문가의 관점에서 작성된 것이나, 동남아에서 입국한 외국노동자에게 의존하는 한국농업의 입장에서도 경청하고 고민할 가치가 있는 글이다.


COVID-19 팬데믹이 국가 간의 국경을 닫아버리자, 농업분야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과 같이 식량안보에는 전혀 문제 없을 듯 보이는 국가들마저도 새로운 장애로 인하여 저임금의 노동자들을 추방하면서 농업 필요한 일손이 부족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러한 농업노동자 수급의 붕괴라는 충격은 팬데믹이 멈춘 후에도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계절적으로 외국의 노동자에 의존해온 위험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델란드 등 서유럽 국가들에게서 진행되어 왔는데 이들 국가들은 동유럽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다. 질병과 방역에 대한 공포로 인해 국경이 폐쇄되면서, 동유럽의 노동자들이 계절에 따라 이동하지 못하면서 서유럽구가들의 곡식들이 논밭에 그대로 방치되는 상황이 시작된다.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COVID-19 위기이전부터 농업노동력의 부족을 염려하여 왔다. 미국인들은 논밭 일을 원하지 않아 농부들은 주로 계절적으로 이동해온 멕시코인들에게 의존한다. 예컨데 농업에 고용되어 유효기간이 일년 이내로 제한된 H-2A비자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미국 농업노동자의 10%를 차지한다.

그런데 H—2A 프로그램의 비용과 복잡함으로 인해 이민노동자의 이동에 심각한 장벽을 오랜동안 형성해 왔다. 이제부터 미국의 입국심사 공무원들이 최초신청자와 귀국노동자들에 대해 비자 인터뷰를 취소한다 해도 H-2A의 절차는 매우 느리게 진행된다. 이에 더하여 팬데믹으로 인해 고용인들은 일터에서 ‘거리두기’ 규정 뿐만 아니라 H-2A 해당 노동자들의 이동과 숙박 등에 대한 건강과 안전에 대한 부담을 앉게 되면서, 농업생산량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험을 겪으면서, 농민들은 다시 계절적 외국의 이민노동자에게 의존하는 데서 오는 위험을 되풀이하여 하지 않을 것이고 이러한 위험을 감소시키려고 농업 일에 자동화를 시도할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자동화는 상당한 초기의 투자를 필요로 하며 과일과 채소의 수확 같은 일부 작업은 자동화하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드론, 자동화 트랙터, 씨뿌리는 로봇, 수확작업 로봇 등의 기술발전으로 이민노동자에 대한 의존이 현격히 줄어 들 것이다.

선진 경제권 대규모의 농업인들은 이러한 조처를 취하고 있으며 개발도상 국가들의 농업인들도 노동력 부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경우, 농사일에 적당한 비숙련 및 비고용의 노동자들이 넘쳐나고 있다 (숙련 노동자의 부족을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COVID-19의 봉쇄조치에도 불구하고 식량과 음식 공급은 기본적인 활동으로 분류되어, 농사일은 장애를 받지 않고 지속되어 왔다. COVID-19 이전에도 남아프리카는 2012년에 수립된 국가발전계획(NDP)에 의거 농업과 농업관련 분야에 2030년 까지 백만 명의 고용을 늘리는 목표를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해 논밭의 면적을 넓히고 노동집약적 작업을 촉진하여 왔다.

이런 계획 하에서 각종의 과실과 곡류의 생산량을 증대하여 왔고, 2012년의 72만 명의 고용을 23%가 늘어난 2019년에는 89만 명으로 확대하였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국내 시장여건 때문이 아니라 국제시장에서 자동화를 채택한 선진경제권의 농업인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서 자동화 기술의 도입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남아프리카 NDP도 관게시설, 생산성 향상, 그리고 수출확대를 위하여 투자를 늘릴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자동화가 재정적으로 가능하고 필요하기도 하다.

농토 개간에 대해서도 같은 상황이다. 남아프리카는 자연대지와 돌보지 않은 토지가 풍부하다. 맥킨지 세계보고서에 따르면 KwaZulu-Natal, Eastern Cape, Limpopo 등 지역에 개척하지 않은 농토가 대략 합해서 1.6-1.8 백만 핵타르가 존재한다. 놀고 있는 대지를 농토로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자동화가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개략적으로 정리하자면, COVID-19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대규모 농업을 진행하는 국가들의 정책입안자들과 관계자들은 자동화하려는 경향에 신중해야만 한다. 남아프리카같이 농사일을 해야 먹고사는 풍부한 노동인력과 선진경제권에서 필요로 했던 계절적 농사일에 의존해온 외국 노동자들에게 매우 불안한 미래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 Project Syndicate, 2020.

Wandile Sihlobo

남아프리카 농업위원회 수석경제분석가이며, ‘Finding Common Ground: Land, Equity, and Agriculture’.의 저자이다

금, 2020/05/0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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