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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하기와 민족주의 정서의 때를 벗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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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하기와 민족주의 정서의 때를 벗기

admin | 수, 2021/08/04- 00:15

나는 “동학을 하는” 사람이다. 꽤 오래전부터 한살림생협운동이나 그 근간의 하나인 생명평화운동을 하시는 분들과 어울리면서 천천히 물들기 시작했고 몇년전부터는 소위 ‘개벽파’에도 발을 담게 됐다. 그래서 지금도 조금씩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요새 도올선생이 유튜브에 올리는 동경대전 강의도 구독중이다. 한편으로 보다 실천적이고 주체적인 (탈중화) 관점에서 이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전주에 계신 강주영 선생의 해설도 따라가고 있고, 과거 조선성리학 연구자였고, 지금은 동학과 많이 통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고마한국말철학’을 만들어 나가는 최봉영선생의 이론도 주목하고 있다(* 이미 출간된 서적 외에 페이스북 ‘묻따풀학당’과 유튜브 ‘디자인학교’를 참고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판’에 계시는 어떤 분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과도한 민족주의 정서이고, 이게 가장 부정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유사역사학과 유사제국주의이다.

나는 도올선생도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테면 ‘장문화醬’에 대한 강의에서도 그런 점이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도올선생은 한국의 장문화를 “물과 소금, 콩”이라는 세가지  재료가 “햇볕, 공기, 미생물”이라는 자연환경과 시간의 흐름 속에 빚어지는 과정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메주를 겨우내 온돌방에서 띄운 후에 물, 소금과 함께 한독에 집어 넣어두면 간장과 된장으로 갈라쳐 나온다. 역시 메주에 약간의 재료를 첨가하여 묵히면 다시 고추장이 된다. 그 관계와 형성과정이 참으로 절묘하다. 또, 한국의 집집마다 갖춰진, 이런 장이 만들어지고 보관되는 장독대를 예전 어머니들이 정안수 한사발을 내어놓고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설정하였다. 이는 한국인들이 동아시아의 샤먼전통인 하늘과 통하는 의식을 지켜내려오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먹거리라는 생활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콩(즉 대두)은 동북아시아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도올선생은 두부와 같이 콩으로 만들어진 식물성 단백질 식품과 이런 장이 되는 발효식품이 동아시아인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 우수성과 함께 설명했다. 나는 이 강의가 결과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영성 메타포어를 가진 생활문화의 묘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사한 식문화를 가진 일본이나 중국과 한국을 비교하는 부분이다. 도올선생은 특히 한국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나는 앞에서 설명한 음식문화나 종교문화에 대해서 공부해 본 바는 없지만, 그 단순하고 간결한 구조가 이러한 문화의 원형에 가까울 것이라는 짐작 정도는 할 수 있다. 도올선생은 일본과 중국에는 이러한 구조가 없는 대신, 복잡한 장문화가 있고, 이것은 “원래 이런 음식문화 철학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라는 식으로 설명을 한다. 나는 이런 설명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도올선생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중국 양쪽 다 생활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어떤 장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모두 간장을 가지고 있고, 그것도 상당히 다양한 종류와 맛을 가진 것들이 있다. 또, 일본의 경우 된장과 유사한 미소가 있고, 간장과 마찬가지로 각 지역이나 가정마다 자기만의 비방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맛을 갖도록 만든다. 중국의 경우 된장이나 미소와 같이 전국적으로 압도적 대표성이 있는 한종류의 paste형 발효장은 없지만, 역시 지역별로 다양한 맛을 내는 콩이나 밀을 주재료로 한 발효장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쓰촨 청뚜 피셴의 두반장豆瓣酱이고, 그외에도 달거나 매우 짠 다양한 지역별 황두장黄豆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밖에 광둥지역에 가면 두시豆豉처럼 전혀 다른 질감과 식감을 가진, 콩발효 양념도 존재한다. 다만, 일본이나 중국 모두 맵고, 짜고 달콤한 고추장은 없다. 청면장甜麵醬이 살짝 비슷하긴 하다. 또, 관점에 따라서 콩과 고추가 함께 들어간 두반장을 고추장에 가깝게 볼 수도 있다. 중국에는 대신에 고추를 사용한 다양한 발효장이 있기는 하다. 이런 다양한 매운 맛을 표현하는 마라麻辣,샹라香辣,쑤안라酸辣와 같은 역시 다양한 어휘도 존재한다. 중국에는 음식 매운맛으로 유명한 지역이 여럿 있는데, 내 경험에 의하면 이 지역 사람들은 같은 매운맛이라고 해도 한국의 고추장의 톈라甜辣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이건 한국 사람 모두가 훠궈나 마라탕맛을 즐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요는 한국의 장문화와 또 다르게, 일본과 중국은 자기들의 지역 특성과 재료에 맞게 다양한 장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래서, 삼국의 장문화를 비교해서 우열을 논한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오히려, 제3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제조기술적인 면이나 재료와 맛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일본과 중국쪽이 우월하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그때문인지, 한국사람들도 이제 된장찌게를 끓일 때, 재래식 된장과 미소를 반반씩 쓰는 경우가 많다. 조선간장과 왜간장도 어느쪽이 더 맛있는 것이 아니라 용도가 다를뿐이다.

앞서 말한대로, 나는 도올선생의 메타포어적 해석을 매우 좋아하고, 이런 장문화가 아마도 동아시아 장문화의 원형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데, 설사 이 상상이 맞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장문화의 원조이고, 중국과 일본 민족은 그것을 전수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혹여 한국의 장이 원형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중국이나 일본의 장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논리적인 설명이 아니다. 심지어는 장독대와 하늘숭배 신앙조차도, 그냥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게 동아시아의 하늘숭배나 샤먼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입증할 방법도 없다.

정리하자면, 이런 설명은 재미있고 의미도 있지만, 해석 자체가 훌륭한 것이지. 이것이 우리 민족문화의 상대적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도올선생은 동 강의에서 동이족과 중국의 고대왕조인 은상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다시 유사역사학적 주장을 펼쳤다. 이밖에도 작년에는 노자에 대한 연강에서 노자가 (고)조선 사람이라는 근거없는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일만번 양보해, 노자가 조선 사람이라고 치자. 그의 국적이나 출신종족이 그의 도가사상의 위대함을 더 빛나게 하거나 가릴 수 있는가 ? 공자는 또 어떤가 ? 이 사람들의 race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축의 시대’라는 표현은 사기에 불과한가? 도올선생이 중화문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지만 여기까지만…… )

나는 도올선생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고, 그의 동경대전 강의를 계속 듣고 있는 입장에서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의 반중감정 분위기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면서, 도올이나 동학을 하시는 분들 중 상당히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은 이런 사고방식이 작금의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잡글을 쓰게 됐다.

이것은 소위 동북공정과 ‘문화공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선 여기서 문화공정에 대해서 분명히 이야기해둘 것이 있다. 당연히 이런 공정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김치나 한복과 같은 주제로 한국과 중국의 네티즌들이 다투는 가운데, 한국의 미디어나 유튜버들이 만들어 낸 신조어이다.

그런데, 나는 동북공정과 문화공정이라는 단어가 연결되는 지점에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듣기로 지금 반중감정의 코어세력은 2~30대 청년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동북공정은 10년도 전인 2010년 이전에 논란이 됐던 일이다. 동북공정의 핵심은 한반도 북부와 현재 중국의 동북지역인 만주에 존재하던 고대 왕국인 고구려의 역사적, 민족적 귀속여부에 대한 논쟁이다. 이 문제의 기원은 한중수교 직후,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의 동북지역에 소재한 고구려 역사유적을 탐방하게 된 사실에 있다. 그들은 이 유적지와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일종의 ‘심리적 소유권/영유권’주장을 하는 가운데, 구체적으로 이 유적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한중간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하필이면, 직전 강릉단오제의 문화유산 등재때문에 중국도 자국 여론에 대해 민감해진 상황이었다. 또, 결정적으로 중국내의 소수민족인 조선족 동포들의 존재가 일종의 뜨거운 감자로 작용한 탓도 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현재 중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도 않고, 그 결과 일반인들의 뇌리에서는 거의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당시에 문제가 됐던 소수민족 분리독립운동과 같은 극단적인 흐름이 이 지역에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궁금증은 이거다, 지금의 2~30대 청년들은 과거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정말로 분노하고 있을까 ? 만일 그렇다면 그들이 고구려라는 고대왕국, 그리고 그 왕국이 위치했던 중국의 동북지역이나 한반도 북부지역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까? 또, 지금도 거기에 사는 조선족 동포들이나 북조선 주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이들은 실리추구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통일조차 관심이 없다고 한다. 하물며, 기후가 춥고 황량하며, 경제적으로 낙후된 중국의 동북지역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턱이 없다. 부연하자면 그 지역은 한족과 조선족을 막론하고 중국의 젊은이들도 매력을 잃고 점차 떠나가는 곳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한국의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동북공정에 연연해야할 이유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나는 동북공정의 위협이라는 실체 자체가 매우 과장된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글을 얼마전 한 매체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 청년들이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코비드, 미세먼지, 한복, 김치 논쟁 같은 조금 더 자기 삶에 관계된 구체적인 문제들이지, 동북공정에 기댄 한국의 굴절된 민족주의 심리는 아닐 것 같다. 그럼 과연 누가 동북공정을 문제삼고 있는 것일까 ?

유감스럽게도 나는 ‘동학하는 분’들처럼 나와 동류인 분들 중에 이런 분들이 적지 않으신 것 같다는 의심을 품게됐다. 그래서 위에 도올선생의 강의의 예를 들어서 이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게 왜 문제인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동학정신과 어긋나는지 조금만 더 설명해보고 싶다. 일단 하나의 가설을 이야기해보자. “동학의 사상은 이미 180년전에 출현했지만, 매우 근대적인 동시에 근대를 초극할 수 있는 생명평화사상의 씨앗을 품고있다. 이 사상은 또 단순한 공담이 아니라, 한때 한반도 주민중 1/4 이상의 동의와 수십만의 희생이 따른 실천을 통해 동학혁명과 3.1운동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는 아마도 한국 민주화 운동의 배경중 하나가 되어, 여전히 촛불시민정신으로 계승되고 있다.”

여기에 두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동학사상은 구체적으로는 천도교, 원불교 등의 다양한 현대 종교로 진화하거나, 생명평화와 한살림생협 같은 실천운동으로 이어졌으나, 아직 동서양의 고전사상이나 서구의 진보적  근현대사상들처럼 정교한 이론체계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건 당연하다. 수백년 수천년 동안 여러 국가의 수많은 지식인과 천재들이 참여하여 만든, 즉 인류의 지혜가 농축된 사상들과 한국이라는 특정 민족, 그중에서도 아주 소수만이 공을 들여온 사상의 정교함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오히려, 지금부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디테일을 채워갈 필요성이 존재할 뿐이다. 두번째 문제는 사상적 계보이다. 동학에는 동아시아의 전통 사상과 근대 천주교, 기독교의 영향 외에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는가 ? 이걸 찾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통일신라시대의 풍류도, 더 거슬러 올라가 ‘하늘’ 사상이나 고대 동북아의 샤머니즘에서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노력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유사역사학이 고개를 들이민다. 아니 거기까지 나가지는 않더라도, 뭔가 남들과 다른 뛰어나고 근사한 ‘그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기대, 또 우리는 그런 훌륭한 무언가를 만들어낸 남다른 민족이어야 한다는 ‘선민의식’이 싹튼다. 그리고 그 발원지가 바로 만주지역이다. 그래서, 그 민족의 성지는 언젠가 “수복해야 할 고토”가 된다.

사실, 나는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잘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최봉영선생이나 강주영선생의 강의를 즐겨 듣는 이유는 두분 모두 위에서 말한 무리를 범하지 않고, 지금 우리가 가진 것들을 잘 풀어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도올의 강의도 대부분의 내용은 그러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많은 동도들이 ‘그것’에 대한 확신이나 이에 기반한 선민의식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는 느껴진다.

그래서 묻고 싶다. 유대교와 기독교/천주교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묻고 답하자면, 전자는 원시적인 고대의 한 소수민족종교에 불과하고, 후자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속에서 이를 세계 어떤 민족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보편화한 위대한 고등종교라는 차이가 있다. 그래도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니까” 유대교가 기독교 못지 않게 위대하고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되나? 그래서 그 신념에 근거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행하는 비윤리적인 폭격 행위도 동의가 되나?

한가지 더 묻고 싶다. 내가 앞서 이야기한 가설, 즉, 근대를 초극할 가능성이 있는 생명평화사상이 있다고 하자. 이게 ‘고토수복’같은 침략적 사고방식이나 동북공정에 대한 적대감으로 드러나는 반중 혹은 혐중감정과 잘어울리는가?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 위의 가설이 맞는 것이고, 그게 정말 훌륭한 사상이라면 이는 결국 추상화되고 보편화되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사적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 모두 민족감정의 때를 벗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애써 ‘전파’하고 ‘전도’하려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바깥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공부하고 싶어할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이 광주사태와 한국의 민주화가 궁금해서 한국에 와보고 싶었던 것처럼.

한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다. 동학하는 분들이 믿는 일종의 백여년전 예언 같은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수운과 해월 어떤 분의 말씀이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개벽이 일어나면 동학하는 이들이 중국에 와서 이를 전파한다…” 와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19세기, 비록 망해가는 청왕조였지만, 조선인들에게 중국은 여전히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리라, 즉, 동학이 조선을 넘어 세상을 구할 거라는 어떤 예지로 해석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동학이라는 사상이 가장 우수하니,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인 일본과 중국에…”라는 생각을 암암리에 많은 분들이 품고 있는 것 같다. 요새 K-XXX 열풍에 올라타고 유행하는 한국문명론이 이런 생각과도 통한다. 나는 이런 생각에 반만 동의한다. 처음의 가설로 다시 돌아가보자. 지금 많은 한국인들이 촛불시민정신으로 나타난 한국의 민주주의를 아시아에 전파하고 싶어한다. 2019년의 홍콩사태, 2021년 미얀마 쿠데타가 발생한 후, 이런 주장이 더욱 호응을 얻고 있다. 앞서 나는 동학 사상이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아마도 다른 나라 사람들도 들여다보고 자신들이 배울 것이 있는지 살필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바람직한 미래는 일본이든 중국이든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학을, 즉 자신의 근대초극사상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중국의 경우 백년전, 량슈밍이라는 사상가가, 중국의 전통사상을 근대화할 것을 꿈꾼 적이 있다. 그는 단순한 사유에 그치지 않고, 그 사상에 기반해서 사회를 바꾸려고 진력했다. 마치 동학의 선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를 향촌건설운동이라고 하는데, 결국 향촌혁명파, 즉 중국 공산당에게 역사의 무대를 내주고 말았지만, 지금도 그 후예들이 사회운동으로서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사상적 측면은 100년전 그 상태에 멈춰있고, 권위주의 일당 독재국가라는 닫힌 체제의 특성상, 자유롭게 발전해 나가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는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현대화할 수 있는 과거의 사상적 자원이나 사회개혁의 열망이 꼭 부족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진도를 나가지 못할 이유도 없다. 아마 일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그들에게 사상을 전파한다기보다는 서로 배우면서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모두에게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그게 150년전 기독교와 민주주의가 대포와 함께 들어와 근대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강요된 것과는 다른, ‘새로운’ 우리들의 방법과 문명이 아닐까?

 

김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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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법 제40조는 국회의원의 상임위원 임기를 2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초 제헌의회 때 상임위원 임기는 의원의 임기와 같이 4년이었다. 그랬던 것이 1953년 1월 22일 국회법 개정에 의한 이승만 정권의 국회 무력화 과정에서 1년으로 단축되었다가 다시 1963년 11월 26일 박정희의 제3공화국에서 2년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제3공화국 당시 본회의 중심 체제를 상임위 중심 체제로 전환한 것은 의회기능 강화의 목적이 아니라 독회제도 폐지 등 행정부 안의 신속한 국회 통과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이 상임위 중심 체제는 말이 상임위 중심이었지 의원의 정책전문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상임위 중심체제에서는 극히 기형적인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改選) 제도”였을 뿐이다. 이 점에서 “임기 중 상임위원 개선제도”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의회 무력화의 도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현재 국회의장 임기도 2년이다. 국회의장 임기도 제헌의회 때는 4년이었다. 그러나 1951년 3월 15일 당초 임기 4년이던 국회의장 임기를 “국회 운영의 원활을 기하기 위해” 1년 임기제로 개정하고자 했다. 이 개정안은 심지어 “토의시간만 허비하는 전원위원회 제도 폐지”를 제안하기도 했다. 결국 반발에 부딪혀 의장 임기는 2년 임기로 수정되었다.

 

국회의원의 업무 전문성은 어떻게 높아질 수 있는가?

우리 국회에서 의원들의 업무 전문성에 있어서의 취약성은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그 취약성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제도적으로 관행적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원의 업무 전문성이란 임기 동안 혹은 선수(選數)를 쌓으면서 “동일한 상임위원회를 유지”함으로써 업무 전문성을 축적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의 경우 의원의 업무 전문성은 상임위를 중심으로 업무 전문성이 축적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집권당 내 위원회를 중심으로 전문성이 축적된다. 미 의회에서 상임위원회는 의회와 행정부 간의 정책결정의 중심무대로서 따라서 자연스럽게 상임위를 중심으로 한 정책형성은 의회 활동의 중심으로 되었다. “한 상임위 내에서의 선임 순위가 위원장이나 간사로 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미 의회의 불문율, 즉 ‘선임우선제’는 위원회 내의 승진에 대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자동적이고 공평한 원칙이었다.

한편 일본은 자민당 일당독재가 고착화되는 과정에서 법안과 예산 심의가 의회 위원회가 아니라 자민당 내 정책결정기구인 정무조사회로 되었고, 이 정무조사회의 각 부회(部會)가 의회 위원회 역할을 대신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동일 위원회와 부회를 유지하면서 관청과의 인적 네트워크 및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이른바 ‘족(族)의원’의 위치를 확보하게 됨으로써 관련분야의 정책전문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의원들이 2년마다 상임위를 변동할 뿐 아니라 상임위 배정 뒤 임기 2년 중에도 수시로 상임위를 변동하고 있다. 실제 역대 국회의원 임기 중 상임위 변동률은 50%를 상회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상임위원장을 1년씩 ‘쪼개기’로 맡는 것이 관행화되고 있다. 또한 현역의원이 재선될 경우 전임기의 상임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비율도 40%를 넘지 못한다. 미국 재선의원의 90%가 전임기의 상임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과 전혀 딴판이다. 더구나 우리 국회는 1963년에 김종필에 의해 도입된 당정협의체제는 행정부 주도 하의 정부여당 협의기구로 오늘날까지 존속하면서 의회와 상임위 위상을 크게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동되어왔다.

임기 중 상임위의 빈번한 변동과 재선 시 상임위 변동은 의원의 업무 전문성 축적에 결정적 저해 요인이다. 상임위 변동으로 소관 업무 및 관련 행정부처 역시 변경되고, 의원은 물론 보좌진도 새로 업무를 파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원과의 통로를 어렵사리 뚫어 놓아봤자 그 다음 만나면 이미 소속 상임위가 바뀌는 바람에 다시 다른 의원을 알아봐야 하는 고충을 겪어야 한다.

의원들의 업무 전문성은 의회 발전의 중요한 토대이다. 우리 국회의 정상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한 의원이 동일 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함으로써 업무 전문성을 축적해야 한다. 상임위원 임기는 의원 임기와 일치되어야 하며, 또한 재선 시에 전임기와 동일한 상임위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국회는 너무 오래 이승만-박정희 체제의 관행에 머물러 있다. 이제 권위주의 정권이 국회 무력화를 위해 만들어놓은 국회 상임위 2년 체제를 벗어나야 한다.

 

적대적 공존’, 그 나눠먹기의 시작

본래 우리 국회도 상임위원장은 다수당이 독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국가 의회든 의회의 일반적 형태이다. 그런데 우리 국회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탄생된 이른바 ‘87 체제’의 여소야대 4당 체제 정국에서 상임위원장을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하게 되었다. 긍정적 측면에서 평가하자면, 이는 의회 상임위 활동에서 독점을 해소하고 공존과 균형 그리고 타협의 공간을 제공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여야 나눠먹기의 전형적 형태라 할 수 있다.

당시 여소야대 4당 체제에서는 교섭단체 정책연구위원 조항도 신설되어 각 당이 정책연구위원을 ‘나눠 갖게’ 되었다. 그리고 줄곧 여당의 몫이었던 국회도서관장 자리도 제1야당의 몫으로 가져가기로 되었고, 이 관행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 과정은 당시 제1야당으로 올라선 평민당의 의도가 관철되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물론 이는 DJ의 구상과 ‘철학’이 반영된 셈이었다. 이러한 DJ식 정치는 “상인적 현실감각”에 대한 강조에서 드러나듯, 독점된 권력을 분배하고 균점하는 계기로 작동되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나눠먹기’, ‘기득권의 공존’ 혹은 개량주의라는 단점 역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우리 국회의 고질적 폐단이기도 한 여야 간 ‘적대적 공존’의 토대로 기능해온 측면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장기적으로 살펴본다면,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우리 국회의 중요한 폐단인 “나눠먹기” 혹은 “적대적 공존”이 관행적으로 구축되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수, 2020/07/01-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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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요 위협국가(중국과 이란)들이 새로운 실크로드라는 명분으로 점차 가까워지면서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21세기형 경제통합을 주도하고 있다. 당연히 미국의 배후세력(deep state)들은 이를 못마땅히 바라보고 있다.

이란 외무부의 대변인 Mousavi는 이란과 중국간의 포괄적 (전략)파트너십을 진행하는 공개적인 로드맵에 대해서 비난을 일삼은 각종의 거짓말(루머)에 대해서 입장을 분명히 밝혔고, 곧바로 이란 외무부의 공식 입장을 대통령 비서실장인 Mahmoud Vezi가 다음과 같이 재확인되었다.

“이란이 주변국가들, 특히 중국과 러시아와 관계를 확장하는 것을 방해하고 파괴하려는 공공연한 거짓선전이 시작되었다”. 그는 추가하여 다음과 같이 말을 추가하였다.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단위에서 관계를 확대하고자 하는 이번의 로드맵에 곧 서명이 이루어질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이란은 더욱 많은 국가들과 관계를 넓혀갈 것이다.”

대략적으로 상기의 발언들은 이미 잘 알려진 이란과 중국의 포괄적 파트너십에 대한 항간의 기사들을 확인한 것이지만, 이것을 군사적 동맹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예단하는 염려에 미리 일침을 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과 중국 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2016년 시진핑 주석이 테헤란을 방문한 당시에 공식적으로 체결된 것으로 20개 사항에 달하는 많은 지침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중 다음의 두 가지가 특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제7항은 유라시아를 통합하는 새로운 실크로드에 대한 파트너십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이란 측은 중국이 주도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양실크로드를 환영한다. 이러한 방향의 프로젝트를 함께 진흥하는 것과 산업 및 광업의 역량을 강화하는 투자의 건에 대한 양해각서와 관련 문건들에 서명함과 동시에 이와 관련된 역량과 혜택 그리고 기회를 기대하면서, 양국은 수송과 철도, 항만과 에너지, 상업과 서비스 분야 등 다양한 부문에 대하여 상호 간의 협력과 투자를 확대해 나간다.

제10항은 AIIB에 이란이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것에 관련된 내용이다.

“중국은 이란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발기회원국가로 참여하는 것에 감사(평가)한다. 양국은 이를 통하여 아시아의 진보와 번영을 향한 다양한 분야에 협력을 강화하고 함께 노력할 것이다.”

상기의 양해각서가 담고 있는 뜻은 무엇일까?

상기의 양자간 포괄적 파트너십의 핵심은, 이미 지난 해까지 잘 알려진 대로, 중국이 이란의 에너지와 사회간접시설에 향후 25년간 4000억불의 투자계획이다. 이중에는 중국의 첨예한 국가이익을 확보하는 것으로 (이란에서 중국으로) 석유와 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과정에 위험이 잠재된 말레카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 시장평균가격에서 18% 인하된 가격으로, 달러가 아닌 중국 위안화 또는 여러 통화(basket)를 혼용하여 지급하는 조건을 담고 있다.

북경당국은 주로 AIIB를 통하여 2280억불을 이란의 사회간접시설에 투자할 것이며, 대부분의 투자가 2025년까지 이루어질 것이다. 이중에는 에너지산업의 혁신에 긴급히 필요한 생산시설의 건설과 Tehran과 Mashhad를 연결하는 전철화 사업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Tehran-Qom-Isfahan을 고속철도로 연결하며 이를 추후 Tabriz까지 연장할 계획인데, Tabriz는 석유와 가스 및 석유화학공업의 거점지역이자 Tabriz-Ankara 간의 가스공급 라인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이는 유라시아의 핵심통로인 셈이다. 이란을 관통하는 고속철도는 중국신장의 Urumqi에서 출발하여 4개의 칸국들 (Kazakhstan, Kyrgyzstan, Uzbekistan and Turkmenistan)을 통과하며, 곧 이어서 서아시아 지역인 이라크와 터키를 유럽으로 연결한다. 이는 역사적인 과거의 실크로드를 현대적 기술로 재현하는 것이며, 동쪽과 서쪽의 심장을 연결하던 당시의 무역용어인 ‘페르시아’를 상기시킨다.

이란과 중국 및 러시아 간의 공해(空海)군사적 협력에 관한 사항은 상기의 요인들이 밝힌 것처럼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Moosavi 대변인은 트위터를 통해서 이란이 중국에게 섬을 양도한다거나 군인들이 이란에 상주한다는 것에 합의한 바는 없다고 확인하면서 이에 대한 소문은 거짓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이란 내에 중국인민해방군의 주둔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허용하였다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재차 확인하였다.

지난 주말, 외무부 장관인 Zarif는 이란과 중국은 ‘신의와 확신’으로 협상을 진행하여 왔으며, 합의의 내용에는 아무런 비밀사항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란과 중국 및 러시아는 유라시아 통합의 주요한 삼국거점으로 유라시아 안보에 대한 군사적 협력에 대하여 다음 달부터 시작할 것이며 이의 결정에 따른 긴밀한 상호협력은 11월까지 이루어지도록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정학/지경학적으로 해결해야 할 열쇠는 미국의 무자비한 대이란 제재이며 더구나 이를 무기로 삼아 이란과 중국 간의 협상에 대한 광범한 개입여부이다. 이미 미국이 개입한 여러 내용들은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들이다.

이란과 중국 간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아직 중국이 추구하는 예외주의라는 명목으로 취소가 가능한 도상그림 수준이며,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다양한 범위에서 서로 윈-윈을 추구하고자 하는 집단적인 희망을 결집시킨 기획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정부의 요인이자 외교부장인 Wang Yi가 키진저 박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미중 싱크탱크 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 것은 매우 암시적이다.

“최근 몇 년간 형성된 흐름 중에 한가지 잘못된 견해는 중국굴기의 경로가 서구의 체제와 경로에 대한 타격과 위협이라는 것인데, 이는 사실과 부합하지도 않고 우리는 이에 동의할 수도 없다. 침략과 협박은 중국 5천년 역사의 유전인자(gene)에는 없다. 중국은 타국의 방식을 따라 하지도 않지만 역으로 중국의 방식을 타국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게 우리가 하는 것을 모방하라고 결코 요구하지 않는다. 2500년 전(공자의 시대)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모든 존재들은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고도 화합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으며, 서로가 간섭하지 않고 양립하면서 자신들만의 방식을 추구해 갈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 왔다.”

 

관련기사 <한겨레 : 7월 13일자 보도 – 중국과 이란, 포괄적 동반자 협정 준비 중 >

Pepe Escobar is a frequent contributor to Global Research.

중국과 이란이 기간산업에 대한 막대한 자금 투자를 대가로 값싸게 원유를 공급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포괄적 협력에 관한 협정을 곧 체결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핵 개발을 이유로 이란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는 미국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여, 미-중 갈등이 더욱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12일 <뉴욕 타임스>의 보도를 종합하면, 중국은 향후 25년 동안 이란의 금융, 통신, 항만, 철도를 비롯한 각 분야에 걸쳐 4천억달러(480조원) 규모의 투자를 하기로 했다. 그 대가로 중국 쪽은 대폭 할인된 값에 안정적으로 이란 원유를 공급받게 된다. 신문은 “이런 내용을 담은 18쪽 분량의 ‘중국-이란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초안이 이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며 “조만간 이란 의회에 제출돼 비준 절차를 거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협정문 초안에 언급된 약 100건에 이르는 중국-이란 합작사업 대부분이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에 포함된 것”이라며 공항·고속철도·지하철 등 교통분야 투자와 함께 이란 서북부 마쿠, 걸프 연안 아바단 지역과 케슘 등지에 자유무역지대가 건설되고, 이란의 5세대(5G) 이동통신 사업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도 중국이 맡기로 했다고 전했다.

대테러전과 마약거래·인신매매 등 다국적 범죄에 대한 대처를 명분으로 군사·안보 분야 협력도 대폭 강화된다. 또 양국군 합동군사훈련과 무기류 공동 연구·개발, 정보 공유 등도 추진된다. 일부에선 중국이 투자시설 보호를 명분으로 전략적 요충인 이란에 자국군을 주둔시킬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강대국에 대한 ‘등거리 외교’를 원칙으로 삼아온 이란이 중국과 전략적으로 손을 잡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압박과 봉쇄로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 탓으로 보인다. 특히 이란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원유산업은 미국의 제재로 수출길이 막힌데다, 시설 낙후로 개·보수가 절실한 상황이다. 실제 이란의 유전과 정유시설을 포함한 원유산업 기반시설 현대화에만 최대 1500억 달러가 필요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중국 쪽도 이란과 협력을 강화해 ‘중국-파키스탄-이란’으로 이어지는 3각 체제를 형성해 미국-인도의 영향력에 맞설 수 있다. 이란이 시아파 종주국이란 점에서 ‘이란-이라크-시리아’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를 통해 중동 일대에서 미국과 맞서는 구도를 이룰 수도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기존 중동의 전략균형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신문은 전문가의 말을 따 “이란과 중국의 이번 협정은 단순히 상호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게 아니라, 미국과 맞서는 데도 필요할 일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 협정이 체결되면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행정부로선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이라, 미-중 갈등의 추가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 쪽은 <뉴욕 타임스>에 “중국 업체가 이란과 제재 가능한 거래를 지속하도록 허용·지원함으로써 중국 정부는 스스로 주장해온 안정과 평화 촉진이란 국가적 목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세계 최대 테러지원국인 이란을 지원하는 중국 업체에 지속적으로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 Asia Times via Global Research on 2020-07-12.

Pepe Escobar

브라질 출신 언론인으로 아시아 타임즈와 Sputnik에 기고하며 러시아의 RT 그리고 이란의 국영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고 있다

수, 2020/07/2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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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직후인 1945년 10월 24일 미국의 적극적인 제안과 후원으로 설립되었다. 유엔총회, 안전보장 이사회, 유엔사무국, 경제사회 이사회 등 4개의 공식기구와 국제 원자력 기구, 식량농업기구, 유네스코, 세계은행, 세계보건기구 등 산하의 여러 전문기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2019년 현재 193개 회원국과 37,000 여명의 직원을 두고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주요 공여국인 미국의 상습적인 분담금 납입지연과 불이행 등으로 2019년 현재 수억 불이상의 채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의 글은 유엔에 가하는 미국의 횡포와 압력의 실상을 소상히 밝혀주고 있다.”

유엔은 자금조달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마치 변덕스러운 회원들로 채워진 클럽처럼 유엔은 모든 회비가 제 때 들어올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일부 회원국들은 회비 지급을 미루고 있고 결제는 종종 실종된다. 미국의 경우, 현재 유엔 운영 예산의 약 22%를 담당하는데, 회계연도에 따라 10월 이후에야 회비지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더 큰 문제의 일면에 불과하다. 회비지급 보류는 유엔헌장 17조를 위반하는 사항으로 예산상 행위만큼이나 정치적이기도 하다. 이 조항의 중요성은 유엔의 운영비용을 “총회가 배정한대로 회원국이 부담한다”고 규정하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UN 외교정책과 조직의 개혁 문제는 부과된 회비를 줄이거나 보류하는 주요 사안들로 언급되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렇게 “부과된 회비”가 행정 비용, 평화유지 활동 및 다양한 프로그램에 쓰이는 비용을 부담하는 공식 정규 예산으로 편성되기 때문이다 .”

미국의 경우, 종전에는 기구 운영 비용의 약 40%를 부담해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따라서 UN 조직에 어떤 압력이 가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중반,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추방, 유보, 자격 부인 또는 어떤 식으로든 참여할 권리를 침해” 당하는 경우 “미국이 연간 분담금의 지급을 유보하면서 매달 8.34%” 축소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었다.

재정 지원 문제는 돈주머니를 걱정하는 미 의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수년간 위원회의 붙박이 역할을 한 제시 헬름스(Jesse Helms)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 미국이 유엔 회비를 전액 지불할지, 정시에 지불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불렸다. 그와 함께 조 바이든(Joe Biden) 상원의원은 UN에 전액을 지불 하기 위한 전제로 다양한 “기준들”을 준수하도록 압박하는 협상을 1997년 타결했다. 여기에는 불가피한 UN 직원의 감축, 감찰관과 사무총장 간의 적절한 보고 절차, 타 기관에 대한 자금지원 금지 항목이 포함됐다. 2000년 1월, 헬름스 의원은 수 십 년간 의심해왔던 조직인 이른바 그림자 정부에 대해 충고하고, 참견하며, 잘난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UN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연설에서 독특한 인상을 준 한 미국 의원을 경험하는데, 그는 당시 UN 주재 미국대사였던 리처드 홀브룩(Richard Holbrooke)이었다. 유엔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내비치면서, 그의 목적은 이 기구에 대한 미국의 기여를 “빚쟁이”가 한 것으로 간주하는 비평가들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엔의 최대 공여자인 미국 국민의 대표로서, 우리는 투자에 대한 대가로 구체적 개혁을 요구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라고 공언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의 자금과 유엔 운영비 사이의 훈훈한 협상의 새 장이 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8년 9월,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미국의 인도주의적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회복지 사업, 의료 및 교육 부문을 위태롭게 하는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Jared Kushner)는 이 조치의 타당성을 확신했다.

“이 기구는 부패했고 비효율적이며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8년 예산안에는 유엔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미국 자금의 절반을 삭감하는 조치도 포함됐는데, 이는 특히 기후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 연방의회는 유엔평화유지활동 기부금 상한제 시행 안건에 동의했다.) 이와 같이 자금지원을 중단하여 유엔 기관들을 위협하고 압박을 가하는 사례는 여전히 미국의 관행으로 남아있다.

현재 회원국들이 유엔에 지불해야 하는 13억 달러 상당 중 미국이 체납한 금액은 10억 달러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불량한 수치의 누적은 미국이 다른 회원국들에 불만을 토로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까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회원국들이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6월, 안토니오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사무총장은 5차 위원회의 예산 감독관들에게 급여와 물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명성과 운영 능력에 있어서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모든 회원국들이 분담비를 모두 제 때 지급하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금을 적소에 사용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유엔은 5월 말까지 4억9200만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이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파국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한계점에 다다랐으며, 우리가 이제 어떻게 하느냐가 앞으로 수 년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상황은 예상대로 악화됐다. 지난 10월 첫 주 월요일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10월말 현금 보유고가 고갈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유엔 사무국 소속 37,000명의 직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회원국들이 2019년 유엔 정기 예산 운영에 필요한 금액의 70%만 지불했다. 이는 9월말 2억3000만 달러의 현금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달 말까지 예비 유동자산 보유고가 고갈될 위험에 처했다.”

재정긴축 조치가 내려졌다. 컨퍼런스와 회의가 연기되고 있으며, 필수적이지 않다고 판단된 출장도 취소됐다. 유엔 대변인 스테판 두자릭(Stéphane Dujarric)은 회원국들에 압력을 가하며, 193개국 중 129개 회원국만이 “전 세계적으로 운영 중단을 초래할 수 있는 채무 불이행을 방지하기 위해 연간 분담금을 전액 지불했다”고 밝혔다. 유엔의 의미와 영향은 회원국들에 달려있으므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면 세계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확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리서치, 2019.10.11.

비노이 캄프마크(Binoy Kampmark)

케임브리지 셀윈 대학의 영연방 학자. 현재 멜버른 RMIT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글로벌리서치 및 아시아-태평양 리서치의 기고자로 활동 중이다.

 

More info.

추가 정보

심 심 위스곳(Sim Sim Wissgott), UN 분석가.

안토니오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10월 중 유엔의 재정이 고갈되고 있으며, 11월 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하려면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고 개발을 돕기 위해 설립된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가 어떻게 현금 부족에 시달리게 된 것일까? 유엔의 재정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그리고 왜 허리끈을 조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누가 유엔에 돈을 지불하는가? 193개 회원국은 모두 각 국가의 규모와 경제력에 따라 산출된 유엔의 전반적인 운용을 위한 연간 분담금을 지급하기로 되어 있다. 2019년 총 분담금은 28억5000만 달러로, 미국의 분담금(약 6억7420만 달러)이 가장 많이 책정됐으며 바누아투, 미크로네시아, 소말리아, 벨리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과 같이 국가의 규모가 작거나 빈곤한 경우 각각 최소 2만7883달러 만을 부담했다.

유엔의 재정 규칙 및 규정에 따르면, 이 자금은 해당 국가들이 그 해의 분담금을 통보 받은 후 “30일 이내 전액 지불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매해 지급 기한은 1월 31일이었다. 하지만 기한을 준수하는 회원국은 단 몇 십 개 국가들뿐이다. 2019년 10월 8일 현재, 유엔은 여전히 분담금의 약 30%에 해당하는 63개국의 기금 지급을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의 전년도 미지급 연회비마저도 연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이번 주,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급여를 충당할 현금이 부족한 채로 11월을 맞이할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하며 국가들에 회비 지급을 촉구했다. 유엔이 10년 만에 가장 큰 적자를 기록하며 “우리의 업무와 개혁이 위기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그 돈은 어디에 쓰이는가?

유엔의 정기 예산은 뉴욕의 유엔 본부뿐만 아니라 비엔나, 나이로비, 스위스 제네바 등지에서 통신과 정치, 인도주의 및 경제 업무 등을 운용하는 데 쓰인다. 르완다, 구 유고슬라비아와 같은 평화유지 활동 및 국제 재판소는 별도의 예산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현재의 적자 상황을 “유엔이 직면한 최악의 재정 위기”로 표현했으며, 이는 공석을 채우지 않고, 필수적인 출장인 경우만 허용하고, 회의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등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유지 활동을 위해 따로 떼어 놓은 돈에서 자금을 빌려야 할 수도 있다. 유엔은 전 세계 4개 주요 센터와 아프가니스탄, 말리, 아이티의 현장 사무소에 3만7500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 유니세프, 유엔난민고등판무관과 같은 유엔 기관들은 자체 예산을 가지고 있다.

스테판 두자릭(Stephane Dujarric) 대변인에 따르면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올해 초 이미 상당한 수준의 비용절감 조치를 시작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유엔은 현재 약 6억 달러의 적자로 인해 전 세계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주요 연례 행사인 지난 달 총회를 개최할 수 없었을 것이다. 9월 말, 유엔의 적자는 2억3000만 달러였다.

브라질, 한국,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들은 분담 지급을 미루고 있다. 특히 유엔 총 예산의 3분의 1을 지급하는 상위 6개 회원국 중에는 미국만이 2019년 분담금을 전액 지불하지 않았다. .

뿐만 아니라 각종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금년 분 4억 달러에 육박하는 체납금을 포함하여 지급해야 할 총 납입액은 1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유엔에 상당한 자금 지원을 해온 것에 오랫동안 불평해왔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자 하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는 지난 해 유엔총회에서 “세계주의의 이념을 거부하고 애국주의 원칙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지난 달 그는 세계 정상들에 “모든 파트너들이 공정한 몫의 방위비 및 기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유네스코(UNESCO)의 반 이스라엘 성향 및 근본적 개혁의 필요성과 함께 “증가하는 체납금”을 언급하며, 유엔 산하 교육문화기구인 유네스코를 탈퇴했다.

미국은 자신들이 지원해야 했던 “과도한 분담”에 대해 불평하며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유엔 프로그램인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와 낙태 관련 유엔인구기금(UNFPA)에 대한 지원을 삭감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첫 주 수요일 트위터에 “그러니까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회원국들이 지불하도록 하라!”는 글을 올렸다.

수, 2019/10/2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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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진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살인’은 미국 사회에 만연한 흑인에 대한 차별과 뿌리 깊은 인종주의의 민낯을 드러냈다. 하지만 기실 모든 인종 이슈가 그러하듯 이번 사건의 본질은 ‘순수한’ 인종차별에 기인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백인 우월주의의 핵심은 피부색이 아니라, 백인 중심의 계급사회가 만들어낸 차별이기 때문이다.

조지 플로이드는 대부분 흑인 계층이 미국 사회에서 점하는 하층계급이다. 그로 인한 사회적 편견과 경멸은 미국의 ‘선량한’ 시민을 위협하며, 그는 마침내 미국의 ‘흑인’이 된다. 모든 흑인이 조지 플로이드와 같은 ‘살인’ 위험에 놓이지는 않는다. 미국 흑인 농구 스타 마이크 조던이 미국 경찰 손에 어이없이 살해당할 일은 시카고 슬럼가의 청년이 월스트리트에 입성하는 것만큼이나 낮은 확률일 테니까. 플로이드 죽음을 미국 계급사회의 차별이 부른 살인으로 보는 이유다.

미국 건국이 소수의 앵글로 색슨계 백인들이 주축이 되어 북미 원주민들을 내쫓고, 이후에는 아프리카에서 ‘사냥’해온 흑인들을 노예제로 묶어 부국강병의 기반으로 삼았다는 흑역사 정도는 이미 세계 슈퍼파워로 등극한 이상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 하층계급의 상당수가 흑인과 같은 유색인종들로 이루어진 이상 계급문제가 가려진 ‘인종주의’ 논쟁은 무한 반복될 공산이 크다. 미국의 계급사회에서 유색인종의 처지는, 라틴아메리카 토착 원주민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사회가 흑인에 대한 차별과 사회적 편견이 만연한 곳이라면 원주민을 향한 라틴아메리카의 백인 지배계급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지난 수 세기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그들이 백인과는 다른 ‘인종’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 예를 들면, 마야 원주민이 국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미 과테말라 원주민들의 상황은 과거 스페인 식민지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정복 이전 문명을 이루고 살았던 이들은 백인들에 의해 ‘미개한 인종’이 되었다. 유럽으로 이주한 소수 백인이 아메리카의 경제와 정치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던 이데올로기였으며, 그렇게 그들만의 리그를 안정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 정착시켰다.

“영원한 봄이라고 불리는 과테말라의 화사한 날씨와 푸른 자연환경은 신의 선물이라 해도 가히 손색이 없다. 과테말라 시티의 부촌은 정갈하게 가꾸어진 나무들과 거리,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사람들로 가득 차는 쇼핑몰의 깔끔한 외벽과 실내의 화려함은 눈이 부시다. 반면, 뉴스와 일간지에서는 매일 극심한 영양실조로 인한 유아동의 사망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었으며, 부촌의 저택에서 정원사와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젊은 원주민들의 새벽 발 빠른 출퇴근 모습은 흔하다. 아침마다 ‘주인’집 애완견을 산책시켜야 하는 메이드 복장의 원주민 소녀들의 모습은 흡사 식민지 시대의 봉건 사회를 연상케한다…(중략)”【1】

물론 과테말라의 이 계급 질서를 바꾸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역사상 유일했던 개혁 정부가 백인 지배계급 엘리트와 우파 군부의 쿠데타로 1954년 실각하자, 이후 약 36년에 걸친 내전을 치러야 했다. 1944년부터 약 10여 년 동안 계속된 개혁 정치는 기존의 과두 엘리트 지배계급과 원주민을 비롯한 다수의 피지배 계층 간의 첨예한 갈등으로 이어지며 결국 전쟁을 불러왔다. 내전은 명백한 계급전쟁이었고, 이 과정에서 약 20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의 대부분은 마야 원주민이었다.

군부에 의해 자행된 대대적인 ‘인종’ 학살은 궁극적으로는 당시 마야 원주민들의 정치 세력화를 두려워한 군부의 군사적 선택이었다. “마야 원주민을 섬멸한다”라는 이른바 초토화 작전이 인종 제노사이드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 이유다. 그러나 평화협상 과정에서 과테말라 내전의 원인이었던 계급 갈등은 ‘인종’ 갈등으로 치환되었고, 원주민들의 계급적 요구는 부정되었으며, 오롯이 ‘전통문화’ 회복 운동으로 축소되고 말았다.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던 내전의 결과는 참담했다. 마야인들의 삶은 여전히 힘들고 이대로라면 더 나아질 가능성도 없다.

그리고 남은 것이 있다면 1992년 마야 원주민 여성 리고베르타 멘츄가 ‘최초’ 원주민 출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뿐이다. 마야인에 대한 ‘제노사이드’를 고발하고 이들의 인권을 위해 노력했다는 공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멘츄를 제외하고 내전으로 목숨을 잃은 20만 명에 이르는 마야인들은 멘츄의 ‘평화’상에 가려 더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요지부동한 과테말라 기득권 계층의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자들의 목소리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 사라졌다. 이것이 20만 원주민의 희생 위로 멘츄가 수상한 노벨평화상의 민낯이며, 계급적 요구를 인종 문제로 가려버린 결과였다.

36년 내전 중에 진행되었던 소위 ‘인종청소’는 엄밀히 말하자면 마야인 제거가 아니라, 토지개혁을 요구하며 기득권에 저항한 농민에 대한 학살이었다. 내전의 수많은 희생자에 대한 진실규명은 고사하고 원주민들은 아직도 국가폭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기득권층으로부터 받는 배제와 차별, 그리고 이로 인해 확대 재생산되는 사회적 편견은 견고할 뿐이다. 게다가, ‘공생’이라는 이름으로 우파 정권과 연대하는 멘츄가 보여주는 정치권의 행보는 씁쓸할 뿐이다.

멘츄의 노벨평화상이 과테말라에 새로운 ‘평화’라도 가져올 것 같은 착시를 일으켰다면, 흑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미국에서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오바마의 등장, 그리고 연이은 수많은 기대와 희망들이 좌절된 경험과도 유사하다. 미국 전체 선거 흑인 유권자 중 95%가 오바마에게 표를 주었고, 저소득 계층의 약 73%, 그리고 히스패닉 이민자들의 66%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인 셈이다.

그러나 정작 흑인 대통령 오바마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월 스트리트의 꼭두각시였을 뿐 정작 그는 흑인 대통령으로 흑인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 없다,” 는 그를 향한 미국 흑인 사회의 비판은 뼈아프다. 이에 대해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으로 흑인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 모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 고 맞선다. 그 전체에는 미국 월스트리트의 이해관계도 포함되었으니, 개혁과 변화를 원했던 계층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백인 자본가들의 이해를 더욱 보장해 주었다. 미국 시스템은 견고하게 유지되었고, 계급 차별은 더욱 공고해졌다. 결국, 지금의 극단적인 인종주의자인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반동적’ 동력이 아니었을까.

기득권 계급의 특혜와 질서의 해체 없는 ‘개혁’은 개혁하지 않음과 다르지 않았다. 오바마가 월스트리트의 이해를 더욱 보장하고, 멘츄가 자신이 대변하는 원주민을 학살한 주체인 현 기득권과의 연대를 개혁의 방향으로 설정한 이상, 이들이 누리는 ‘최초’라는 그럴듯한 수식어는 개인의 ‘영광’일 뿐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조지 플로이드와 같은 계급적 살인은 계속되고, 과테말라 원주민의 빈곤과 그들에 대한 사회의 구조적 차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인종 논쟁이 아니라 계급의 재소환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피부색 ‘논쟁’에 가려버린 미국 사회의 계급 질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여전히 ‘열등한’ 국민으로 규정하고 개도하려 드는 인종주의자들의 보편적 지배 담론을 구성하는 주요 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종이 아니라 계급에 의해 차별받는다. 가난해서 차별받는 현실을 피부색 논쟁으로 가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1】 필자의 연구논문에서 일부 차용한 것임. 정이나(2015), 과테말라 마야 원주민 운동 정치: 계급과 문화사이에서. 중남미연구. Vol. 34. No. 2.

월, 2020/08/1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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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조직, 국회사무처

국회 지원부서는 폐쇄적이다. 언터처블이다. 행정부의 감사감찰, 수사기능이 여기에 미치지 않는다. 국회입법고시 출신들이 강한 결속력으로 승진이나 혜택을 독점하고 비리는 서로 감춰준다. 국회의 주인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사무처 직원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 11월 국회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남양주시갑)이 한 발언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극심한 불신은 국회가 그 만큼 힘 있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국회가 반대하면 그 어떤 것도 움직일 수 없다는 일종의 ‘패배감’도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찬찬히 그 실상과 근원을 들여다보면, 국회 시스템의 기본을 장악한 세력은 “4년 계약직인 국회의원”이라기보다 오히려 붙박이 공무원인 국회 입법관료 집단일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국회의원은 빙산의 ‘일각(一角)’이고, 그 빙산의 ‘근저(根底)’는 입법 관료들이다. 이들 입법관료들의 힘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강하다. 사실상 입법권을 좌지우지하는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비롯하여 국회 예산과 운영에서도 실질적 지배자는 바로 입법관료라 해도 결코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국회사무처란 마땅히 명실상부하게, 문자 그대로 국회의 사무 및 관리(administer)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의회 시스템에서 행정 사무관리 업무를 보조, 지원하는 기관이 비대해짐으로써 결과적으로 행정부를 연상하도록 하는 제2의 관료체제로 전환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 사무처의 경우, 바로 이러한 행정관리 업무를 중심으로 관료적 질서를 구축하면서 사실상 제3의 세력 집단으로 성장해 있다. 이는 입법관료가 대표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국회사무처가 단지 국회의원을 보조하는 입법지원 기구일 뿐이라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선실세, 법원행정처와 국회사무처

법원의 행정을 지원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설치된 법원행정처가 실제로는 법원의 최고 권력을 장악한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국회사무처와 같이 본래 행정과 사무의 보조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권한이 점점 확대되어 전도본말의 행태가 나타나기 쉽다. 법원행정처와 국회사무처를 연속 취재해 보도했던 모 방송국 PD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취재과정에서 드러난 국회사무처의 여러 행태는 법원행정처와 완전히 동일했다.”고 밝혔다. 정보공개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전진한 씨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적폐가 어디냐는 온라인매체 ‘오마이뉴스’의 기자에게 질문에 서슴없이 국회사무처라고 단언한 바 있다.

국회 예산 운영도 사실 문제다. 상식적으로 말해서, 어느 기업이든 국가 기관이든 ‘돈줄’을 쥔 자가 가장 힘이 센 사람이고 사실상 주인인 셈이다. 정부에서 기재부가 힘이 센 것은 바로 돈의 힘이 아닌가?

그런데 국회의원도 국회 사무처로부터 월급을 비롯하여 각종 운영 경비를 받는다. 커다란 문제로 부상되었던 ‘특활비’도 사무처로부터 받고 각종 활동에 대한 각종 명목의 비용 역시 사무처로부터 수령한다. 또 ‘우수’라는 평가와 지출 모두 사실상 사무처의 ‘권한’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거꾸로 국회의원들이 사무처에 잘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너무 깊고 큰 것이어서 국회의원에게 돈까지 맡기는 것은 절대로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국회사무처가 검토보고 권한과 함께 이렇게 예산과 관련 운영을 ‘독점’하기 때문에 그 권한 역시 크게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주객전도의 적나라한 현장이다.

이들 국회 사무처를 비롯한 이들 국회 기관들이 사실상 유일하게 감사를 받는 곳은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대개 “자기 식구”라는 차원에서 매우 온정적인 분위기로 처리된다. 그러니 사실상 그 어디에도 국회기관들을 감독, 감사하는 곳이 없다. 이른바 무풍지대이자, ‘온실 속 화초’다. 하지만 감시와 견제가 없는 곳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은 만고의 철칙이다.

그러는 가운데 그간 국회에서는 2천 억 원 예산 규모를 넘는 의원회관을 비롯하여 의정관, 국회 한옥, 어린이집 등등…… 그 아름답던 숲과 아름드리나무들을 베어내고 파괴하면서 건물들은 계속하여 새로이 지어졌다. 지금도 국회 한 켠에서는 신축 건물들이 또 지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다지 투명하지 못한 이 과정에 상당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특히 2천 억대 규모로 진행되었던 의원회관 공사에서는 국회 고위층 비리설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하는 등 국회에서 새 건물이 올라갈 때마다 어느 누구를 위한 사업이라는 풍문이 돌곤 한다. 그 명칭부터 이미 국적 불명인 ‘국회 스마트워크센터’는 총 646억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시작부터 낙찰가가 입찰 예정가격을 초과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전근대적이고’ ‘비정상적인’ 행태는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

 

국회사무처, 문자 그대로 사무와 보조에 그쳐야 할 조직

그러나 선진국 의회에서는 이와 전혀 반대다.

예를 들어, 독일 의회 사무처의 역할은 회의 준비 혹은 회의장 정리 등 그야말로 보조적인 차원의 업무를 수행하고 직원 역시 대부분 실무자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무처가 그 명칭과 실질이 부합하는, 명실상부한 ‘사무처’이다.

독일 연방의회조직도 처국과

덧붙이자면,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영국 등 국가의 의회에서는 의장과 양당 대표들로 구성되는 “이사회”(영국의 경우에는 하원위원회가 이에 해당하고, 독일의 경우는 최고평의회가 이와 유사하다)가 국회 내 조직의 인사와 예산을 총 관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산의 경우에는 ‘이사회’의 ‘재무회의’가 매주 1회 개최되어 재무회의의 승인 없이는 의회의 모든 지출이 될 수 없다. 사실 이러한 시스템이 정상이다. 이렇게 ‘돈줄’을 장악함으로써 의원들은 의회의 진정한 ‘주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국회사무처란 마땅히 명실상부하게, 국회의 사무 및 관리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함으로써 그 명(名; 이름)과 실(實; 내용)이 부합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타이완 입법원에는 별도의 사무처가 없고 대신 입법원 산하에 비서처, 의사처, 공보처, 총무처, 자문처를 비롯하여 법제국, 예산중심(中心), 국회도서관 그리고 의정박물관을 두고 있다.

미국 의회의 사무처 역시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의회의 행정조직은 예외 없이 이러한 형태의 조직으로 구성된다. 의원을 행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설치된 의회 사무처가 오히려 의원 본연의 업무를 침해하는 월권의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차단되어야 한다. 미국 의회의 경우, 1946년과 1970년 두 차례에 걸쳐 ‘입법부 재조직법’을 제정하고 입법지원 조직을 획기적으로 강화시켰다. 우리도 이를 모델로 하여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가칭 ‘입법부강화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입법부 재조직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서 현 국회 행정조직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진정한 입법지원 조직으로서의 국회 공무원 조직을 정립시켜야 한다.

특히 국회 전문위원은 이제 본래의 취지대로 ‘전문가’로 구성되어야 한다. 우리 국회도 처음에는 ‘국회 전문위원’은 의원들을 지원, 보좌하기 위하여 각 분야의 유능한 전문가를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직접 선발했었다. 하지만 이는 유신 정권에 의하여 결국 전문가가 아니라 관료들이 독점하도록 ‘변형’되었다.

이러한 왜곡은 이제 바로잡혀야 한다. 그리하여 국회의원이 진정으로 국회의 주인이 되고 명실상부한 ‘전문가’들의 입법지원 활동에 토대하여 진실로 국회다운 국회,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화, 2020/05/0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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