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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지뢰 !!!

지역

지금도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지뢰 !!!

admin | 토, 2021/06/26- 00:50

[후원회원 마당]

지금도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지뢰 !!!

 

이철민 전 고파지부장(현 파주지역신문 <파주에서> 편집위원)

 

 

지뢰 사고,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월 4일(금요일) 오전 9시 50분경, 고양시 장항습지에서 습지 정화작업을 하던 50대 남성이 발목지뢰(M14) 폭발 사고로 무릎 아래가 절단되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장항습지는 람사르 습지에 등록된 생태계의 중요 지역으로 인구 100만의 고양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 지역의 생물 다양성 보전과 인간의 환경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지뢰 폭발은 장항습지의 생태 보전과 정화작업을 진행하던 중 일어난 사고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지뢰’ 하면은 흔히 DMZ나 민통선 인근 군사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고 정도로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지뢰사고는 지금 이 순간 고양, 파주, 김포 등 수도권 일대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도 발생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휴전선 인근 지역에 지뢰가 매설된 것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대량 살포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된 1964년을 기점으로 북한은 휴전선을 넘나들며 게릴라식 도발을 감행하였고, 휴전선의 철책선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이 시절 미군은 이 지역에 플라스틱 재질의 대인지뢰 M14를 대량으로 살포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우리군도 민통선 지역에 M14를 대량 살포한다.
이번에 장항습지에서 발견된 대인지뢰 M14는 강원도 화천, 양구, 인제 등 민통선 이북 지역에 매설해 놓은 이들 M14 대인지뢰가 장마와 폭우 등으로 유실되어 나뭇가지 등에 휩싸여 떠내려오다 장항습지에 가라앉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M14는 그 재질이 플라스틱이어서 폭우에 유실되면 땅으로 가라앉지 않고 나뭇가지 등과 함께 떠내려 오면서 한강 하류의 강기슭에 머무를 확률이 높다. 장항습지 지역은 하루 2회 서해안 밀물이 올라오다가 신곡 수중보에 막혀 물살이 머무는 곳으로 김포지역보다 수심이 얕아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등 생활 쓰레기들이 갈대 및 버드나무 사이로 밀려와 쌓이는 곳이기도 하다. 민통선 지역에는 한국군과 미군이 매설한 M14 이외에도 북한군의 목함지뢰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군의 목함지뢰는 평화의 댐, 화천댐, 소양강댐, 팔당댐 등 강물의 낙차가 심한 댐을 거치면서 목함지뢰 내부의 폭발장치가 분해되어 한강 하류에 이르면 나무상자만 떠내려 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해 플라스틱 재질로 가볍고 작은(지름 4.5센티, 두께4센티 정도) M14는 폭우에 유실되어도 분해되지 않고 떠내려와 갈대밭이나 버드나무 가지 등에 걸리거나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음은 최근 2년 동안 발생한 M14 지뢰사고 내용이다.

2019년 8월 29일 : 김포 해병 2사단 담당 장교(중위)가 철책선 바깥 갈대 제거작업 수행 중 지뢰폭발사고로 왼쪽 발목 절단

2020년 7월 4일 : 김포대교 상류 고양시 한강변에서 낚시하던 시민 지뢰폭발 사고로 다리 절단

2020년 9월 10일 : 강원도 인제군 12사단 이모 중사 수해복구 철책작업을 수행하던 중 지뢰폭발 사고로 발목 절단

2021년 6월 4일 : 고양시 장항습지 정화작업 중 민간인 지뢰폭발 사고로 오른쪽 발목 절단

가장 넓은 지역에 매설된 대인지뢰, M14

우리 국민들은 지뢰 폭발 사고가 발생하면 북한군의 짓으로 알고 있으나 지뢰 폭발사고의 90% 이상은 미군과 한국군이 매설한 대인지뢰에 의한 것이다. M14 대인지뢰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에서 생산되어 DMZ 지역의 남방한계 철책선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던 시기에 북한군의 DMZ 도발을 방어할 목적으로 약 1,300개소에 약 40만 발을 매설하여 놓았다. 한마디로 한반도 곳곳이 지뢰밭이 되어버린 것이다. 1960년대에는 미군이, 1970년대에는 한국군이 주도적으로 매설한 이 지뢰는 폭우가 내리면 빗물을 따라 강과 바다로 떠 내려와 무고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괴물이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군인과 민간인 지뢰사고자 약 6,000여 명 중 90%가 M14 대인지뢰 폭발사고 피해자이다. M14 대인지뢰는 누군가 제거하지 않는 이상 혼자서 없어지지 않는다. 

 

민통선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지뢰 매설 경고판(한국지뢰제거연구소 제공)

핵과 더불어 20세기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유해한 무기 중의 하나이다. 대인지뢰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던가 다리를 절단시키거나 동물의 목숨을 앗아가야만 자신도 소멸되는 아주 비열한 살상 무기이다.
현대식 첨단 무기의 발전으로 대인지뢰가 적의 침투를 저지하는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북한군이 휴전선을 넘나들며 도발하던 1960년에는 대인지뢰가 적의 침투를 저지하는 효과가 높았다. 그러나 이제 대인지뢰는 전방에 근무하는 우리 군장병, 그리고 후방 국민들의 목숨과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대인지뢰 전면 사용금지 협약에 가입해야 지뢰는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1983년 12월 특정 재래식 무기의 사용금지 및 제한에 관한 협약(CCW 제1의정서)에는 가입하였다. 그리고 1996년 9월 재래식 대인지뢰 전면 사용 금지 협약이 ICBL(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에 의해 발효되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미국은 북한과 군사적 대치 상황을 이유로 이 협약에는 가입을 유보하고 있다.
국내의 대인지뢰 금지운동은 시민단체와 종교단체가 주축이 된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가 국내 대인지뢰 피해자 실태 조사와 특별 보상법을 추진하고 있으나 국방부의 비협조로 법 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뢰 문제는 이제는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특히 민통선 지역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파주는 지금도 지뢰의 위험이 상존하는 지역이다. 지뢰 폭발사고의 근본적 해결책은 개인적 차원에서 조심한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다. 지뢰 문제를 공론화하고 여론화하여 군과 자치단체는 물론 지역 주민과 전문가, 정치인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법제화를 이루어야 비로소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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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8일 첫 방송을 시작한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 시즌2가 2018년 8월 20일 마지막 방송으로 9개월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으로 좋은 성과를 냈던 시즌1 〈역적〉을 발판삼아 시즌2는 연구소가 보유한 콘텐츠를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외부단체와 제휴를 통해 청취자를 늘려 장기적으로 연구소 미디어로 발전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내역사 시즌2에서는 박한용 교육홍보실장의 대중역사강의 ‘근현대사 100년의 역사여행’(아쉽게도 개인사정으로 중단됨)을 필두로 조한성 연구원, 방은희 교육팀장, MC노가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간 ‘역전다방(역사를 전하는 수다방)’과 이순우 연구원의 식민지시대 자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돋보인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가다)’ 그리고 역사이슈에 대한 뒷담화를 나누는 ‘방학진 기획실장의 바하인드히스토리’까지 4개의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총 55개의 에피소드를 방송하였다.
국민TV와 협력하여 3개월간 영상방송을 제작하여 영상방송의 가능성도 타진하였다. 특히 역사적인 4.27남북정상회담에 맞춰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와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을 모시고 특별대담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청취자들의 많은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내역사 시즌2는 5천여 명의 고정 청취자를 확보해 월 8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역사 팟캐스트 분야에서 10위권에 진입하여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는 시즌1, 2를 거치면서 안정적인 제작노하우를 습득해 향후 장기적인 방송을 할 수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소는 두 달 간 충전기를 갖고 나서 10월말쯤 시즌3에 들어갈 예정이다. 회원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내역사 시즌2의 모든 에피소드는 오디오 팟빵, 아이튠즈 팟캐스트, 유튜브와 팟티를 통해서 다시 들을 수 있다.

• 김세호 PD

목, 2018/09/0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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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회 회원인 박노정 시인이 7월 4일 6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박 시인의 부고기사가 여러 언론에 났지만 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가 쓴 기사 제목에 가장 공감이 간다. 〈‘진주사람’ 박노정 시인 별세〉.
박 시인을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박 시인이 ????진주신문????대표이사 시절 그의 소개로 진주의 어른인 남성(南星) 김장하 선생을 만났으니 아마도 1990년대 후반으로 짐작한다.

▲ 박노정 시인./경남도민일보DB

????진주신문????은1990년진주시민들이모여창간한신문으로지역의수구적인여론에맞서 정론직필 그리고 ‘진주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박노정 시인은 진주정신을 ‘신분해방운동인 형평, 임진왜란 때 2차례에 걸친 진주성 전투에서 민관군이 일체가 돼 보여준 주체, 남명 조식 선생의 호의’ 등 3가지를 꼽았다.
박 시인은 ????진주신문????대표이사뿐아니라형평운동기념사업회장,진주민예총회장,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 진주문인협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를 빼놓고 진주의 시민운동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진주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로 있던 2005년 5월, 박 시인은 지역의 후배들과 함께 진주성 촉석루 옆 의기사에 있던 친일화가 김은호의 ‘미인도 논개’(일명 논개영정)을 뜯어내 박 시인을 포함해 4명이 각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선고가 부당하다며 모두 노역장 유치를 자원했다.
이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벌금 대납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당시 4명의 벌금은 2,000만원이었지만 나중에 보니 성금이 이보다 더 많은 2,370만원이나 모아졌다. 박 시인 등은 나중에 이 성금 중 일부를 연구소 진주지회 결성(2012년 3월) 자금으로 내놓았다. 실제로 박 시인은 연구소 진주지회의 숨은 설계자였다.
박노정 시인은 ????진주신문????대표시절이던1990년대초부터논개영정폐출운동을시작해 2008년 충남대 윤여환 교수가 그린 새로운 논개 영정이 표준영정으로 지정되기까지 거의 20년이 걸렸다. 박 시인은 2006년에 친일잔재청산을위한진주시민운동을 만들어 진주 출신 친일가수 남인수의 이름을 딴 ‘남인수 가요제’를 ‘진주 가요제’로 바꾸기도 했고 ‘을사늑약 100년 남북공동사진전시회’를 개최하였고 ‘친일잔재 지도’ 제작도 추진했다. 이처럼 ‘진주사람’ 박노정 시인의 일생은 올바른 ‘진주정신’의 발굴과 계승이었다. 그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을 간직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방학진 기획실장

 

수, 2018/08/0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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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섭 지도위원 제57차 자료기증, 도서와 문서류 총 50점 보내와
7월 26일 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제57차 자료기증을 했다. 주요자료는
1942년생 황OO가 경기도 강화국민학교, 강화중학교, 강화여자상업고등학교, 경기도농촌진흥
원 등을 거치면서 받은 상장과 수료증이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을 통한 자료 기증 잇달아
8월 2일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의 히구치 유이치 공동대표가 연구소를 직접
방문하여 ????해협????, ????재일조선인사연구???? 등 소장자료 10점을 기증하였는데, 일본으로 돌아간 후인
8월 8일, 자택에서 소장자료를 정리하다가 기증자료를 발견하여 <조선신궁연보>(1936), <조선문
학사>(1981) 등 26점을 추가로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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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2일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의 유족들과 오랫동안 교류를 가지고 있는 사노 미찌오 호우센 대학 교수가 「야스쿠니의 집靖國の家」 문패 1점을 기증했다.
8월 12일 야노 히데키 ‘식민지역사박물관과 일본을 잇는 모임’ 사무국장이 <구일본군조선반도출신군인·군속사망자명부>(2017) 1권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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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 홍종화 작가가 <혈의 누> 등 도서 3권을 기증했다.

8월 18일 김민철 책임연구원이 단행본 등 다수의 책을 기증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후 현재까지 피폭자들의 권익을 확보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운동에 앞장서 온 곽귀훈 회원(경기동부지부)이 8월 21일 <世界>(2016~2017)
총 14권을 기증했다.

8월 25일 김승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이 <民族日報>(1990) 1권을 기증했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

월, 2017/09/2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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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수화 통역자로 활동하고 있는 기타무라 메구미 회원이 교류하고 있는 청각장애우들의 소장자료를 전달받아 5월 29일 연구소에 기증했다. 이번에전달한 기증자료는 도서, 엽서, 박물류이고 기타무라 메구미씨도 <日鮮同祖論>(1943) 등 소장 도서 2권을 기증하였다. 뿐만 아니라 메구미 씨는 역사관 홍보용 사탕을 제작하여 일본인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심정섭 지도위원 자료기증(54, 55차) 도서류, 문서류 총 100점 보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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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섭 지도위원 겸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은 4월 26일과 5월 23일 각각 54번째와 55번째로 자료를 정리해 보내왔다. 조선총독부체신국에서 발행한 보험증서, 보험료영수장와 해방 후에 발행된 생활통
지표, 저축예금통장 등 문서류와 도서들이다.
특히 1938년에 비안(比安)공립 심상소학교에서 발행한 「학교가정통신부」에는 학업성적과 학교 출석상황 및 신체검진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 학생들의 실상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귀중한 자료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 자료실 안미정

금, 2017/07/2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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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덕 교수가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군함도의 진실’이라는 영상을 홍보해 여론의 주목을 끌었다. 유네스코세계유산위원회가 유네스코산업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근대산업시설 중 한국인 등의 강제동원 관련 시설에 ‘역사의 전모’를 밝히라고 일본정부에게 권고한 사항을 이행하도록 촉구하기 위해 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상에는 몇 가지 부정확한 사실이 담겨 있다. 영상에서는 군함도에 강제동원되어 죽은 한국인이 120명이라 한다. 그러나 1984년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찾아낸 〈화장인허증하부신청서(火葬認許證下附申請書)〉 등 일명 ‘하시마자료’에 따르면 1925년부터 1945년까지 하시마에서 죽은 한국인은 123명이다. 여기에는 여자와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사망한 수가 64명이니 굳이 따지자면 강제동원 희생자는 50여 명이라 해야 맞다.
영상에 사용된 사진들도 사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누워서 탄을 캐는 장면은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정확한 연도와 지역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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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①


이 글은 2017년 7월 25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군함도의 진실 공방과 한국 정부가 할 일〉을 수정·보완한 글이다. 분량상 싣지 못한 내용을 추가하면서 기고 후에도 계속 유포되고 있는 잘못된 정보를 교정하기 위해서다.


 

(사진①) 한겨레신문에 글을 썼을 때는 연도 미상의 후쿠오카탄광에 는 연도 미상의 후쿠오카탄광에서 일하던 일본인 광부라 했으나 이 또한 정확하지 않다. 유사한 사진으로 훈도시를 입고 누워서 탄을 캐는 사진도 있다.

26(사진②) 이 사진도 자주 한국인 강제동원피해자 사진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메이지시기 치쿠호탄광에서 탄을 캐는 일본인 광부의 모습이라 한다. 누워서 탄을 캐는 광부의 구도와 이미지가 거의 같기 때문에 두 사진이 혼용되고 있다. 영상에는 폭행을 당해 등에 상처가 나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쓰였다. 1926년 <아사히카와신문>에 실린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은 홋카이도 나카가와군에 있던 노동자 합숙소에서 학대당한 토목노동자를 찍은 것이라 한다.(사진③)
서교수가 사용한 사진①과 사진③ 모두 폭력과 학대, 열악한 노동조건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었던 노동자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 실태를 직접 증명하는 사진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이 받은 차별과 학대, 가혹한 노동조건 등의 실태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은 없다. 통제된, 그리고 전쟁 홍보만 허용되던 시기에 그런 사진 자체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1920~30년대 일본 언론의 고발로 확인된 이런 사진들을 통해 강제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들의 삶을 유추해 볼 수 있으며, 수많은 증언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내친 김에 몇 가지만 더 지적해두자. ‘어머니 보고 싶어요, 고향에 가고 싶어요, 배가 고파요.’라는 글이 탄광벽에 적힌 사진이 있다.(사진④)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한국인 탄광노동자의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진으로 한때 언론에서도 많이 쓴 장면이다. 그러나 이 사진은 훗날 강제동원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탄광을 방문한 조사단들이 연출하기 위해 쓴 걸 찍은 것이라 한다. 그러니 굳이 사용해서 시비를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 앙상한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네 명의 한국인 사진도 강제동원 피해의 증거로 이용되고 있다.(사진⑤)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신기수(辛基秀)의 사진집 <韓國倂合と獨立運動>(1995)에따르면,1945년10월 효고현 오쿠보형무소를 출옥한 조선인들로 강제동원 피해와 직접 관련이 없다.
통계상의 잘못도 있다. 군함도와 함께 등재된 다카시마탄광에 한국인 4만 명이 강제동원되었다는 통계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건 실무자의 단순 실수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외교부가 강제동원지원위원회에 관련 정보를 요청할 때 위원회 직원이 4천 명을 4만 명으로 잘못 적어 보고했다. 나중에 수정되긴 했으나 언론과 인터넷상에는 잘못된 숫자가 이용되었고, 지금도 계속 인용되고 있다. 한 가지 더, 일제시기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가 700여 만 명이라고 한다. 이 수치를 사용할 때는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까지 과거 일본 정부가 발표한 공식문서를 기초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 중국, 사할린, 남양군도 등으로 강제동원된 노동자는 최소 72만 명, 군인․군속으로 끌려간 청장년이 최소 36만 명, 일본군‘위안부’ 등 여성 동원이 십수 만 명으로 해외로 강제동원 수가 최소 120만 명에 이른다.
여기에 1~3개월 단위로 한반도내에 동원된 이른바 ‘도내동원’의 연 인원이 600여 만 명도 있다. 따라서 국내외를 포함해서 총동원된 700여 만 명이라는 수치는 집집마다 한 명씩 동원되었다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다만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1965년 한일협정에서 대상이 됐던 피해자는 ‘해외동원자’들이었고, 노무현정부 때 지원(사실상의 보상)을 받은 피해자들도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도내동원의 경우 그 실태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인 데다 식민지 시기를 살았던 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법을 통한 진상규명과 지원 대상에서 뺀 것이다. 때문에 현재 우리가 강제동원의 피해를 말할 때 대상자는 120여 만 명이라 해야 좀 더 정확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숫자 몇 개 사진 설명 하나 잘못되었다고 강제동원의 본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일본의 우익들은 오류나 실수를 공격하면서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처럼 군함도의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하려 한다. 아니면 피해자들의 주장에 흠집을 냄으로써 한국의 주장이 과잉된 민족 감정에 근거하고 있어 뭔가 사실을 과장하거나 날조하고 있다는 불신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국내는 모르겠으나 국제사회에서는 이게 나름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어 문제다.
군함도를 놓고 국제사회를 향해 일본 정부와 우익은 세 가지 여론전을 펼칠 전망이다. 첫째, 2015년 유네스코 총회 석상에서 일본대사가 인정한 한국인 강제노동(forced to work)은 국제법에서 규정한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 1910년 일본에 의한 조선 ‘강제병합’이 합법이며, 따라서 1938년의 국가총동원법과 1944년의 징용령에 의한 동원 역시 합법이므로 강제노동의 예외규정(전시하의 동원)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군함도에서 한국인들은 차별 받지 않고 일본인과 사이좋게 지냈다는 당시 거주자들의 회고나 미담을 적극 발굴하여 알릴 것이다. 여기에 낙성대연구소 소속 연구원이 발표한 ‘강제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과 일본인 노동자들 사이에는 민족별 임금차별이 없었다. 다만 노동의 숙련도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라고 요약할 수 있는 논문을 영문으로 번역해 홍보전에 나설 것이다. 한국의 연구자가 강제동원에 따른 민족차별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나서니 일본으로서야 얼마나 반가운 일이겠는가.
셋째, 한국은 사태를 과장하거나 심지어 엉터리 자료를 만들어 역사를 왜곡·날조함으로써 일본을 때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 증거로서 서교수의 광고 영상이 좋은 먹이감이 된 것이다.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 이 점에선 한국의 언론들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강제동원 피해 통계를 두고 벌어지는 진실 논쟁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게 있다. 그것은 가해자인 일본정부와 기업이 스스로 진실을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진상규명 대부분은 모두 피해자와 한일의 시민단체가 수십 년간 싸워서 얻어낸 것들이다. 여기에는 한국정부의 책임도 크다. 특히 지난 9년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최악이었다. 피해자 유족과 시민단체가 직접 일본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유골조사와 봉환 문제를 협의해 해결의 물꼬를 텄지만, 정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유초은행에 1945년 이전 일본 내에서 일했던 한국인 우편저금 통장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정부는 모른 체 했다. 국제법에 따르면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국가가 지배국가로부터 관련 문서를 인계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 한다. 식민주의 극복을 위해 지속적인 진상규명과 자료 공개, 기념․기억 사업과 교육 등 새 정부가 해야 할 긴 목록 가운데 하나다.
영화 군함도가 개봉되었다. 무더운 여름이 더 더워질 것 같다.

∷ 김민철 책임연구원

월, 2017/08/0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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