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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임종국 선생 기념관 건립 본격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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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매일] 임종국 선생 기념관 건립 본격 추진

admin | 화, 2021/06/08- 18:47

생가에 도서관 설립, 친일 청산 뜻 받듣다

신부공원에 건립된 임종국 선생의 흉상.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친일 청산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임종국 선생(1929년 10월 26일~1989년 11월 12일) 기념관 건립 추진 프로젝트가 본격 추진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는 4천389명의 친일 행각을 파헤치고, 친일 인명사전의 토대를 마련한 임종국 선생의 뜻을 받들고 있다. 연구소는 후대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임종국 선생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공감대 형성을 위해 공청회 및 친일청산 역사문화 탐방을 추진 중이다.

중부매일은 임종국 선생의 발자취와 그의 뜻을 담은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의 활동 상황을 들여다봤다.

임종국 선생과 천안

임종국 선생./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제공

임종국 선생은 1929년 10월 26일 경상남도 창녕에서 천도교 지도자를 역임한 아버지 임문호와 어머니 김태강 사이의 4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성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광복을 맞았으며 1952년에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경제적 사정으로 2년 후 중퇴했고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 그는 문학평론 자료수집 과정에서 유명 작가들의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 행적들을 발견하고, 이에 분노하면서 본격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연구를 시작해 ‘친일문학론’을 저술했다. 특히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던 중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발견하고 무척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국 선생은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친일문학론에 올렸다.

친일문학론을 펴낸 임종국 선생은 만년(晩年)에 천안시 삼룡동과 구성동에 은거하면서 필생의 과업인 ‘친일파총서’ 편찬에 몰두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89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임종국 선생이 천안을 찾은 건 1980년으로 알려졌다. 당시 지병인 천식이 폐기종으로 전이되면서 요양이 필요했고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집필에 몰두하기 최적인 장소로 천안을 택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천안에 지은 집에 ‘요산재(樂山齋)’라는 이름을 달았으며 요산재는 친일반민족행위 연구의 성지처럼 불리고 있다.

그는 천안공원묘원 무학지구에 안장됐으며, 남긴 자료를 물려받은 것을 계기로 친일파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됐다.

그가 15년간 연구하고 수집한 친일파들의 이름, 주요 친일 행적을 메모한 ‘친일인명카드’는 훗날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됐다.

임종국 선생은 친일 연구의 이유로 “친일한 일제하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참회와 반성이 없었다는 해방 후의 현실이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발본색원의 과정이 없는 민족사회의 기강은 헛말이다. 민족사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조상임을 면할 날이 없게 되는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마지막 살았던 구성동 옛집, 작은도서관 형태의 기념관이 목표

임종국 선생은 생애 마지막을 요산재에서 내려와 구성동의 한 주택에서 1년여 동안 지냈다. 연구소는 삼룡동에 위치한 요산재의 경우 길이 험해 접근하기 어렵다고 판단, 구성동 주택에 기념관 건립을 목표하고 있다. 이 단독주택의 주인은 자신의 집에 임종국 선생이 기거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연구소는 기념관 건립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고 매입 및 기념관 건립비용을 확보했을 때 집주인과 협의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념관은 작은도서관 형태로 계획하고 있다. 임종국 선생의 유품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도교육청과 연계한 학생 체험 프로그램 개발과 천안 역사문화 탐방코스도 운영할 예정이다.

연구소는 천안이 항일운동의 대표적인 지역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공감대를 충분히 이끌 수 있다는 계산이다.

요산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살아생전 임종국 선생의 모습.

이를 위해 상반기 중 충청남도교육청과 임종국 선생 기념사업회 연대 사업으로 공청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들을 발제자로 참여시켜 여론을 환기하고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천안은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열사의 생가가 위치해 있다. 두 곳은 독립과 항일 정신이 깃든 명예로운 고장 천안을 대표하지만 항일 운동 관련 다른 역사적 장소의 관심을 떨어뜨린다는 그늘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소는 목천 동학군 세성산 전투현장 등 관심도가 미약한 독립운동 유적지와 임종국 선생을 매칭해 ‘친일청산 역사문화 탐방’도 기획했다.

탐방코스는 .삼용동 임종국 선생 요산재-목천 동학군 세성산 전투 현장-구미산 기념탑-아우내 독립운동 기념공원-입장 기미독립만세 기념공원-성거 망향의동산-신부동 천안평화공원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5월 22일 연구소 회원 및 가족을 대상으로 1차 탐방을 실시했으며 6월에는 시·도의원 및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9월에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2·3차 탐방을 실시할 예정이다.

연구소 김기태 국장은 “천안은 항일운동을 대표하는 유관순 열사와 4.1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순국하신 김구응, 최정철 열사, 그리고 입장 양대리 만세운동을 주도한 한이순, 황금순, 민금옥 등의 얼이 깃든 독립운동의 성지로 평가받고 있으나 독립기념관에 치중된 홍보와 미흡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더 이상의 확장이 어려운 상태다”면서 “친일청산의 선구자이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 해방 후 왜곡된 근현대사를 제대로 바로잡기 위해 임종국 선생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창림 기자 [email protected]

<2021-06-06> 중부매일 

☞기사원문: 임종국 선생 기념관 건립 본격 추진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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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지역 김구선생 발자취 탐방 행사’ 참가자들이 출발지인 인천역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는 8일 오전 중구 일대에서 백범 김구선생의 발자취를 탐방하는 ‘인천지역 역사현장 시민답사 프로그램’ 두 번째 행사를 진행했다. 이 행사는 청년 김구(김창수)가 일본인 살해 혐의로 체포돼 인천감옥(감리서)에 갇혀 있으면서 인천 지사들의 도움으로 사상 전환을 한 뒤 탈옥해 민족운동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기획됐다.

장회숙 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장과 이희환 도시공공성네트워크 대표의 해설로 진행된 탐방에는 인천내항살리기시민연합, 구월지역아동센터 어린이 등이 시민들과 함께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참가자들은 인천역을 출발해 중구청(구 일본 영사관 자리)과 인천감리서터(인천 감옥), 김구 선생의 탈옥길(답동 마루터)을 답사했다. 이어 선생의 모친인 곽낙원 여사가 김구 선생의 옥중 생활을 돌보던 ‘옥바라지길과 내리교회, 선생이 수감 중 직접 쌓은 축항 노역길을 둘러 봤다.

– 인천 감옥(감리서) 수감생활과 탈옥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김구 선생과 인천과의 인연은 청년시절부터 시작된다. 일본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다음해인 1896년 3월 김구는 일본인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황해도 치하포에서 스치다 조스케를 살해한 뒤 체포됐다.

인천감옥으로 옮겨진 김구는 미결수로 생활하던 기간 동안 중국에서 발간된 ‘세계 역사·지지’ 등 신서적을 읽으며 사상적 전환을 이뤘다. 22세 때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도 다른 죄수들을 공부시켜 ‘김창수 덕분에 인천 감옥이 학교로 불렸다’는 신문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모친 곽낙원 여사는 감리서 주변에서 기거를 하며 인천 객주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모진 고초를 마다하지 않고 아들의 옥바라지를 했다. 백초 유완무와 인천 서구 서천동 출신 서예가 유희강은 수감 중이던 김구의 사상 전환을 도와준 것으로 알려졌다.

선생은 주변의 도움을 받아 1898년 3월 칠흑 같은 어둠을 틈타 탈옥을 감행했다. 탈옥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남아 있으나 현재 인천시는 대강의 탈옥로를 ‘백범로’로 이름 붙여 기념하고 있다.

– 광복 직후 첫 전국순회 방문지로 인천 찾아

광복 직후 어렵사리 귀국한 김구가 1946년 38선 이남 지방을 순시하면서 처음 들른 곳이 인천이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23세 때 탈옥·도주했고 41세 때 17년 형을 선고받고 또다시 감옥으로 들어간 형극의 장소를 첫 방문지로 선택한 것이다.

지난 1996년 전국순회로 열렸던 백범 김구의 겨레사랑전이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전시실에서 개최된 것을 계기로 ‘백범 김구선생 동상건립 인천시민위원회’가 꾸려졌다. 그 다음해인 1997년 전국 최초로 시민들의 성금으로 인천대공원에 백범광장이 조성됐고 김구 동상에 세워졌다.

이 때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실물크기 동상이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전시관에서 인천대공원 백범 동상 옆으로 옮겨졌다. 곽 여사가 하루 종일 객주집에서 허드렛일을 해서 얻은 찬밥을 바가지에 담아 선생이 갇혀있는 감옥으로 향하는 모습을 새긴 동상이다.

인천시는 현재 백범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중구 신포로 주변에 ‘청년 김구 거리’ 조성을 추진하고 있으며 내년 말쯤 완공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내동 감리서 터 주변의 ‘탈옥로 도보 순례길’과 곽낙원 여사의 노고가 서린 신포시장 주변의 ‘옥바라지길’, 백범의 손길이 남아있는 내항 1부두 일대의 ‘노역길’ 등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정찬흥 기자 [email protected]

<2020-11-08> 인천일보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인천지역의 김구 선생 발자취 탐방’ 행사 개최

 

월, 2020/11/0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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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토픽뉴스]인천광역시교육청(교육감 도성훈)은 지난 29일 제110주년 경술국치일을 맞아 ‘인천 학교 내 남아있는 일제 잔재 및 군사문화 바로 알기’ 조사를 진행했으며, 현재 조사 결과에 대해 정밀화 및 학술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인천시교육청은 작년 12월에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와 업무 협약을 맺고 전문적인 조사를 의뢰했다. 기초 사료 조사를 시작으로 올해 3월부터 5월까지 관내 학교의 상징물(교명, 교가, 교목, 교화, 교표 등)과 조형물에 대한 1차 전수조사를 마쳤으며, 현재 학교 현장의 의견수렴과 협의회를 거쳐 3차 검토가 진행 중이다.

연구진은 일제식 지명과 관련된 교명,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이 작사 또는 작곡한 교가, 학교 내 일본식 석등이나 조형물, 군사문화 일부로 여겨지는 동상 등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향후 연구진이 검토를 완료하면 인천시교육청은 모든 학교에 보고서를 배부할 예정이다. 또한 교육공동체가 일제 잔재와 군사문화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인식을 공유하고, 자율적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다.

도성훈 교육감은 “객관적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충분히 검토한 후 학교에 알리고자 한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육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미래 세대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이다”고 강조했다.

<2020-08-31> 시사토픽뉴스

☞기사원문: 인천시교육청, ‘인천 학교 내 남아있는 일제 잔재 및 군사문화 바로 알기’ 조사 진행

수, 2020/09/0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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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자살특공대 칭송’ 시인 김해강 ‘단죄비’ 전주 덕진공원 설치…잔재 지운다

전주 덕진공원에 있는 김해강 시비. 1993년에 건립되었다.

【파이낸셜뉴스 전주=김도우 기자】 전북 전주시가 110년 전 일본에 국권을 상실한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친일 시인의 행적을 알리는 ‘단죄 비’를 세운다.

또 일본 이름으로 된 공적 장부를 정비하는 등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섰다.

전주시는 29일 제110주년 경술 국치일을 맞아 덕진공원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와 광복회 전북지부 회원 등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친일행적을 알리는 ‘김해강 단죄비’ 제막식을 한다고 28일 밝혔다.

경술국치는 일제가 한일합병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공포한 1910년(경술년) 8월 29일을 일컫는다.

김해강 시인은 ‘전북 도민의 노래’ ‘전주 시민의 노래’를 작사하는 등 오랫동안 지역에서 존경받는 문인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나 일본 자살특공대를 칭송한 ‘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 등의 시를 비롯한 친일 작품을 쓴 것으로 드러나면서 광복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포함됐다.

시는 또 토지·임야대장 등 공적 장부에 존재하는 일본식 이름의 공부를 정비하는 ‘공적 장부 일본 이름 지우기’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공적 장부에 일본식 이름으로 남아 있는 일본인, 일본 기업, 일본식 성명 강요자(창씨 개명자)의 귀속재산을 찾아내 국유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는 오는 9월까지 제적등본과 등기부 등본, 토지대장 등 총 250건에 대한 조사 작업을 할 계획이다.

시는 창씨개명 기록이 있는 공부의 실제 토지 존재 여부를 파악한 뒤 공부 정비, 창씨개명 정리, 공공재산에 해당하는 필지 등으로 분류해 조달청에 통보키로 했다.

앞서 시는 일제가 남긴 치욕스러웠던 역사를 잊지 않고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지난 3월 조례 개정을 통해 김해강이 쓴 ‘전주시민의 노래’를 폐지했다.

또 지난해 일본 미쓰비시 창업자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의 호인 ‘동산’을 따 지은 ‘동산동’의 명칭을 ‘여의동’으로 변경했다.

전주 중노송동 기린봉 입구에 명성황후 시해를 도운 이두황의 단죄 비를 세웠다.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친일잔재의 흔적을 지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후손들에게 부끄럽고 치욕적인 역사를 널리 알려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김도우 기자

<2020-08-28> 파이낸셜뉴스 

☞기사원문: ‘日 자살특공대 칭송’ 시인 김해강 ‘단죄비’ 전주 덕진공원 설치…잔재 지운다 

※관련기사 

연합뉴스: ‘日 자살특공대 칭송’ 시인 김해강 ‘단죄비’ 전주 덕진공원 설치 

케이에스피뉴스: 김해강 단죄비 설치 등 일제잔재 청산 ‘앞장’

금, 2020/08/2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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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올해 창간 100년을 맞이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일제하 부역행위를 고발하는 기획전시가 열린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일제가 발행을 허가한 1920년부터 1940년 폐간되기까지 20여 년간에 걸친 두 신문의 부일협력 행위를 추적한다. 전시기간은 8월 11일부터 10월 25일까지이며 장소는 식민지역사박물관(용산구 청파동) 1층 ‘돌모루홀’이다.

전시는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조선의 ‘입’을 열다」에서는 조선·동아의 뿌리를 파헤친다. 일제가 민간신문의 설립을 허용한 배경과 두 신문을 창간한 주도세력의 성격, 발행 초기의 논조 등을 다룬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태생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제2부 「황군의 나팔수가 된 조선·동아」에서는 1937년 중일전쟁 개전을 계기로 경쟁적으로 침략전쟁 미화에 나선 두 신문의 보도 실태를 조명한다. 그리고 두 신문의 투항이 사실상 이해관계에 따른 자발적 선택이었음을 다양한 사료로 입증한다. 전쟁 보도는 조선·동아의 타협과 굴종의 산물로 노골적인 부역행위의 결정판이었다.

제3부 「가자, 전선으로! 천황을 위해」는 조선·동아가 1938년 시행된 일제의 육군특별지원병제도와 전쟁동원을 어떻게 선전·선동했는지를 고발한다. 조선 청년들을 침략전쟁의 희생양으로 내몬 행위는 단순한 부역이 아니라 전쟁범죄로 규정해야 할 두 신문의 흑역사이다.

제4부 「조선·동아 사주의 진면목」에서는 일제하 조선일보 방응모와 동아일보 김성수의 친일행적을 다룬다. 두 사람은 전쟁협력을 위한 각종 관변단체의 임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강연·기고 등을 통해 일제의 대변인 역할을 서슴지 않았다. 방응모가 고사기관총을 국방헌납하고 김성수가 “탄환으로 만들어 나라를 지켜달라”며 철대문을 뜯어다 바친 엽기적인 반민족범죄도 소개한다.

1933년 방응모가 조선군사령부 애국부에 국방헌납한 것과 동종의 3년식 중기관총
김성수가 자택의 철문 등을 해군무관부에 국방헌납한 사실을 알리는 기사(매일신보 1943.4.2.)

△에필로그에서는 프랑스의 친나치 언론 숙정과 우리의 반복되고 있는 부역의 역사를 비교한다. 드골이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에 첫 심판에 올려 가차 없이 처단했다”고 말했듯이 프랑스는 부역언론 청산에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반면 해방 후에도 단죄를 피한 한국의 부역언론은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 되어 또 다른 형태의 부역을 자행하고 있다.

동아일보가 정간 해제를 목적으로 총독부에 복종을 서약한 「동아일보 발행정지 처분의 해제에 이른 경과」와 조선일보 폐간 당시 사주 방응모와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의 밀약을 담은 「언문신문 통제에 관한 건」 등 조선총독부의 극비문서와 보고서, 사진화보 등 실물자료는 전시를 한층 알차게 한다. 특히 민족문제연구소가 최근 입수한 재일 조선인 유학생 단체들의 동아일보 ‘성토문’ 원본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1924년 만들어진 이 성토문 전단은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광수가 쓴 사설 ‘민족적 경륜’의 친일 성향과 패배 의식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광수가 쓴 「민족적 경륜」 제하의 사설을 게재한 동아일보를 규탄하는 재일 조선인 유학생 단체들의 성토문 전단(1924년)

전시와 연계하여 개막일인 8월 11일부터 식민지역사박물관 5층 교육장에서 〈지금, 언론개혁을 말한다〉특강도 진행한다. 김종철 뉴스타파 자문위원장(1강)을 시작으로 장신 교원대 교수(2강), 박용규 상지대 교수(3강), 정준희 한양대 교수(4강),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5강),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6강)이 강사로 나서 조선·동아100년의 실상을 분석하고 언론개혁의 방향을 진단한다.


웹포스 1. 일제 부역언론의 민낯

웹포스 2. 지금, 언론개혁을 말한다

일, 2020/08/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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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광복 75주기를 맞아 15일 오후 독립운동가 고(故) 이기홍(1912~1996)·장재성(1908∼1950) 선생에게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를 증정한다고 13일 밝혔다. (사진=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제공). 2020.08.13.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광복 75주기를 맞아 정부가 외면한 독립운동가 고(故) 이기홍(1912~1996)·장재성(1908∼1950) 선생에게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를 증정한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15일 오후 2시 광주 서구 싸목싸목 다목적홀에서 이기홍·장재성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서훈패 증정식을 갖는다고 13일 밝혔다.

이기홍 선생은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독서회 회원으로 시위에 가담했으며 ‘백지동맹’을 주도해 퇴학 당했다. 이후 고향 완도로 돌아가 항일 농민운동을 전개하다가 1934년 ‘전남운동협의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맞서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투쟁하다 12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장재성 선생은 1926년 광주고보 재학 시절 ‘성진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독서회 중앙부를 조직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해방 뒤 1950년에는 시국사범으로 낙인 찍혀 광주형무소에 수용된 뒤 행적이 사라졌다.

정부는 장 선생이 건국준비위원회와 북한에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1962년 독립유공자 서훈을 취소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서훈패 증정 이후 ‘서훈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라는 주제로 특강도 개최한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관계자는 “이기홍·장재성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중심 인물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해방후 75년이 지나도록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증정식은 시민의 이름으로 선생들의 공을 기리고 국가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2020-08-14> 뉴시스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이기홍·장재성 서훈식…광주학생독립운동 주도 

※관련기사 

☞연합뉴스: ‘광주학생독립운동 주도’ 이기홍·장재성 선생에 ‘시민 서훈패’ 

☞광주일보: 민족문제연구소, 광복 75주년 독립운동가 이기홍·장재성 서훈패 증정

일, 2020/08/1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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