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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독립운동가 초산 김상윤 의사 묘역 찾는 동포들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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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독립운동가 초산 김상윤 의사 묘역 찾는 동포들의 여정

admin | 일, 2021/06/06- 23:45

위성 지도로 푸젠성 천주의 설봉사 일대를 샅샅이 살피며 지형을 분석합니다.

독립운동가 김상윤 의사의 묘역을 찾아 나선 사람들입니다.

[박호균 /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성 지부 단원 : 우리 김상윤 선생님 고향이 경상남도 밀양이고 돌아가신 곳이 중국 푸젠성 천주시입니다. 여기까지 오셔서 돌아가셨습니다. 설봉사 자락을 확대하면서 이 넓은 땅의 어디에 산소를 지었을까.]

의열단 창립 단원으로 의열단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5인 참모부의 일원으로 활동한 초산 김상윤 의사.

지난 1920년대 수차례에 걸친 의열 투쟁에서 의열단 집단지도체제를 이끌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이역만리 푸젠성 천주에서 의열단 재건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31세의 나이로 외로이 숨을 거둔 것으로 기록되어있지만,

정확히 언제, 어디서 생을 마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마지막 기록이 남아있는 설봉사가 유일한 단서.

민족문제연구소 광둥성 지부 단원들은 김상윤 의사의 묘역을 찾기 위해 선전에서 800km 떨어진 먼 길을 달려 푸젠성 천주의 설봉사를 찾았습니다.

[신광용 /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성 지부 단원 : (후손으로서 독립운동가분들에게) 빚을 많이 졌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돌아가셨는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까 일단 여기에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찾아 뵈어야 한다고 해서 찾는데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이들이 설봉사를 찾은 것은 지난 2월에 이어 벌써 두 번째.

당시 김상윤 의사의 묘역으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 좀 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했습니다.

[박호균 /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성 지부 단원 : 지난번 1차 탐사 때도 저희가 산소를 찾는다는 확률은 만 분의 1도 안 됩니다. 만 분의 1도 안 되지만 그래도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라도 하는 것이 선열들께 빚진 후손들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찾는다는 보장은 없더라도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계획입니다.]

지난 2015년 세워진 김상윤 의사 기적비를 들러 주변을 청소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능선을 따라 오르며 쉽사리 지나치기 쉬운 바위 하나하나 꼼꼼히 살핍니다.

다른 사람의 묘를 만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변을 청소하고 인사를 올립니다.

[박호균 /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성 지부 단원 : 이 산을 다니다 보니까 이 산에서 발견한 온전한 산소가 몇 기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할아버지 조상 김상윤 할아버지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묘역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리고 또 바삐 온 산을 누빕니다.

지난 2월 답사 때 찾았던 김상윤 의사 묘역으로 추정되는 곳.

잠시 쉬어가려고 10분쯤 머물던 곳에서 우연히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박호균 /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성 지부 단원 : ‘이 자리면 산소를 이쯤 쓰면 좋겠다’ 하고 가위 가지고 툭툭 두드리는데 돌멩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누가, 이 넓이로 산소를 썼는데 비석에 이름 한 자 없이 산소를 지었을까, 그리고 그동안 봐 왔던 중국 산소의 형태는 절대 아닙니다.]

아직은 김상윤 의사의 묘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준비한 술 한잔으로 간소하게나마 차례를 지내봅니다.

설봉사의 스님들에게도 김상윤 의사에 대해 아는지 물었지만, 아쉽게도 당시에 대한 정보를 잘 몰라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향토사학자를 소개해주며 지속해서 산소 찾기에 협조해나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법도 스님 / 설봉사 주지 스님 : 사실 저희도 이전에 (김상윤 의사 묘역을) 계속 찾았습니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행방불명입니다.]

두 차례의 답사에도 아직 묘역을 찾지는 못했지만 동포들은 독립운동가 초산 김상윤 의사의 업적을 기억하며 계속해서 그의 흔적을 찾아갈 계획입니다.

<2021-06-06> YTN 

☞기사원문: 독립운동가 초산 김상윤 의사 묘역 찾는 동포들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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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고 김한동 선생 유가족에 서훈패 전달

광주지역 독립운동가 고 김한동(1915∼1950) 선생의 학창 시절 모습.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제공

독립운동에 헌신했지만 좌익이었다는 이유로 외면당한 독립운동가에게 광주시민이 정부를 대신해 서훈을 수여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광복 76주년을 맞아 전날 광주 서구 마을카페 ‘싸목싸목’에서 고 김한동(1915∼1950) 선생 유족에게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를 전달했다”고 15일 밝혔다.

1915년 11월18일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김 선생은 1929년 4월 광주고등보통학교(현 광주제일고)에 입학하며 그해 11월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이듬해 1월 퇴학당했다.

그는 1932년 5월 항일·노동운동 단체였던 전남노동협의회에 참가해 체포됐으나 미성년자여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1937년 4월 서울에서 항일 적색노동조합 준비위원회에 참가했다가 1939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 선고받고 1941년 만기 출옥했다.

1945년 8월9일에는 옛 소련(러시아)이 태평양전쟁에 참여하자 진행된 사회주의자 예비검속 때 붙잡혀 해방 뒤에야 석방됐다. 석방 당시 김 선생이 던진 첫마디는 “조선옷 주라”였다고 한다.

14일 광주광역시 서구 마을카페 싸목싸목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고 김한동 선생의 장남 김승일씨(왼쪽)씨가 광주시민 명의로 제작된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를 전달받고 있다.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제공

김 선생은 1948년 11월 미군정청의 군정법령을 위반해 5년형을 선고받고 경북 김천형무소에 수감됐다. 당시 김 선생의 혐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족은 경찰이 여순사건과 엮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는 남쪽으로 후퇴하면서 좌익계열 수감자 등을 적법 절차도 없이 대거 학살했는데, 김 선생도 1950년 7월 중순께 진주시 명석면에서 총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 김승일(78)씨 등 유족은 1998년 국가보훈처에 김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으나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정부가 외면하니 시민 명의로 서훈패를 증정했다”고 말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2019년 지난해 윤윤기·김범수, 지난해 이기홍·장재성 등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게도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를 전달한 바 있다.

김용희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5> 한겨레

☞기사원문: “조선옷 주라”…사회주의자 독립운동가 김한동 시민이 서훈

금, 2021/08/2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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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노래 친일 논란 김해강 시인 작사
전북도, 내년에 새 노래 제작
민족문제연구소, 추모시비에 친일행위 안내판도

전주 덕진공원 안에 세워진 김해강 추모시비(사진=자료사진)

전라북도가 친일 논란이 일고 있는 전주 출신 김해강(1903~1987) 시인이 가사를 쓴 ‘전북도민의 노래’를 대체할 새로운 도민의 노래 제작에 나선다.

10일 전라북도에 따르면 지난 1962년 제작된 전북도민의 노래를 작사한 김해강 시인은 일본제국주의강점기 몇 편의 일제 찬양시를 쓴 전력이 있다.

이 때문에 그는 광복회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그는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명 ‘가미카제’로 불렸던 일제 자살특공대를 칭송한 ‘돌아오지 않는 아홉 장사’란 시를 남겼다.

이에 따라 전라북도는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김해강 시인이 작사한 기존 전북도민의 노래를 대체할 수 있는 새 도민의 노래를 만들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 중 도민의 노래 작곡·작사가를 선정해 노래를 제작한 뒤, 도민 의견을 수렴해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김해강 시인의 친일 잔재는 지역의 명소인 전북 전주 덕진공원에도 남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올해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덕진공원에 있는 김해강 시인 추모시비 옆에 그의 친일 행적을 담은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앞서 덕진공원을 관리하는 전주시는 추모시비를 세운 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등과 안내판 설치 문제를 두고 협의했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전북지부장은 “김해강 시인의 숱한 제자들이 전북 문화계에 견고히 자리 잡고 있어 안내판 설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광복절 안에는 김해강의 친일행위 안내판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라북도는 오는 11월까지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을 진행한다.

이번 용역은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하며, 도내 친일파·친일 잔재 현황 조사 및 분석, 청산 등 처리 기준 및 방안 등을 검토한다.

전북CBS노컷뉴스 최명국 기자

<2020-07-10> 노컷뉴스

☞기사원문:친일 논란 ‘전북도민의 노래’ 다시 만든다”

화, 2020/07/1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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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노동역사탐방’ 해설을 맡은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장이 강경애의 장편소설 ‘인간문제’의 배경인 인천 중·동구 일대의 일제강점기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지부장·강태욱)는 24일 인천 중구 북성포구와 동구 만석동 일대에서 ‘인천노동역사탐방’을 개최했다.

회원, 시민 30여명과 함께 진행된 이날 행사는 장회숙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장이 해설을 맡았다.

중구 차이나타운 입구 중국문화원에 모인 참가자들은 장 소장의 해설을 따라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과 기념탑 교회 앞으로 이동했다.

1883년 인천개항 이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역만리 낯선 땅을 찾은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첫 발을 디딘 곳이다.

1884년 매클레이 선교사를 시작으로 알렌, 아펜젤러, 언더우드 등이 차례도 이곳 제물포항에 내려 서울로 들어갔다.

▲ 구한말 조선 땅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발자취가 중부경찰서 옆 기념탑 교회에 상세히 설명돼 있다.

기념탑을 지나 개항기 러시아 공사관 터로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28층짜리 오피스텔을 짓는다며 옛 흔적을 모두 지운 채 높다란 가림막을 둘러놓았다.

주민들은 고층 오피스텔이 들어선 이후에는 수변공간으로 개방될 예정인 8부두와 상상플랫폼 전경을 가로 막는 흉물이 될 것이라는 비판한다.

인천역 뒷길을 따라 대한제분을 지나면, 북성포구 입구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안내판을 등에 지고 맞은 편 원목야적장을 바라보며, 대한제분 담벼락을 따라 400m 가량을 걷다보면 북성포구에 도착한다.

▲ 인천의 바닷가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한 북성포구는 내년 8월 매립이 끝나면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형형색색의 어망들이 햇빛을 받으며 줄지어 누웠고, 어민들이 막 잡아 올린 바닷고기들은 어판장에서 손님을 불러 세운다.

한창 매립이 진행되고 있는 포구 한 켠에서는 갈매기 떼를 꼬리에 단 고깃배 갑판 위에서 ‘파시’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어민들과 주변 횟집 상인들의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북성포구는 내년 8월이면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자갈과 모래, 콘크리트가 바닷길을 메우는 매립공사가 끝난 뒤에는, 그 위로 새로운 어판장이 들어서고 ‘똥바다’ 북성포구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낯선 관광객들의 왁자지껄이 아스라한 추억을 대신하게 된다.

▲ 매립이 진행되고 있는 북성포구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이 곳으로 들어오는 고깃배들의 파시가 관광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포구를 뒤로 하고 작은 골목길을 빠져 나오면 장 소장이 손에 든 강경애의 ‘인간문제’가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궁핍한 농민과 고달픈 노동자의 삶을 그린 ‘인간문제’는 만석동과 동양방적(현 동일방직 자리), 신포동 등이 주 무대다.

이 주변은 현덕의 ‘남생이’,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등 수많은 작품의 배경이 된 곳이다.

▲ 만석동 쭈꾸미집 일대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낸 여러 문학작품 속 배경으로 등장한다.

강경애는 ‘인간문제’에서 농촌을 떠나 공장지대에 흘러온 ‘선비’의 투쟁과 죽음,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풀어냈다.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 여성작가의 작품 중에는 가장 뛰어난 역작으로 평가받는 이외에도, 당시 인천 지역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간무대’에서 여공들이 투쟁을 벌이던 방직공장은 이후, 1970년대를 대표하는 투쟁현장으로 거듭났다.

인천지역의 탁월한 노동운동가들을 배출한 ‘동일방직’ 사건은 부마항쟁의 촉매제로 작용해 박정희 정권을 몰락을 가져왔다.

1986년 인천 5.3항쟁,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 ‘한국 민주주의의 산실’로 불리고 있다.

장 소장의 해설에 빠져 동일방직 담 길을 걷던 일행들은 어느덧 동일방직 정문에 도착한다.

지금은 베트남으로 이전해 빈 공장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현재 동일방직 건물 터를 두고, 동구청은 영상촬영 스튜디오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아파트촌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시민사회 일부에서는 민주화공원으로 조성하자는 운동이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답사를 마친 일행들은 동일방직 정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마친 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다음 역사탐방을 기약했다.

/글·사진 = 정찬흥 기자 [email protected]

<2020-05-25> 인천일보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인천노동역사탐방 개최

목, 2020/05/28-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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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는 오는 18일 오후 인천 중구청 일원에서 ‘인천지역 4.19 혁명 운동’ 탐방행사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인천시의 지원을 받아 ‘2021년 인천지역 역사현장 시민답사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이날 오후 2시 수인선 숭의역앞(옛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출발해 옛 세계극장(수인시장 건너편)-배다리 철교-싸리재-경동파출소-답동광장을 거쳐 중구청에서 2시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참가비는 없으며, 20명 선착순 마감한다.

인천지부는 “61년 전 인천의 학생들이 불타는 정의감으로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시위를 벌였던 역사적인 현장을 답사한다”며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는 이 행사에 앞서 오는 16일 오후 7시 주안 영화 공간에서 ‘2021년도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이날 총회에서는 1부 순서로 황평우 한국문화정책연구소장의 강연에 이어 2부 정관 개정과 임원 선출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정찬흥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2021-04-14> 인천일보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인천지역 4.19 혁명운동 현장 답사

수, 2021/04/1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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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독립운동 재현 행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광주학생독립운동과 항일투쟁에 참여했으나 좌익 가담 이력 논란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이 무산된 고(故) 김한동 선생에게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가 시민 서훈을 추진한다.

10일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에 따르면 김 선생에 대한 자랑스러운 독립유공자 서훈패 증정 행사가 광복절 76주년을 하루 앞둔 오는 14일 열린다.

행사에서는 ‘서훈받지 못하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아픈 역사’를 주제로 강연이 이어진다.

김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11월 18일 전남 함평군 나산면에서 태어났다.

1929년 광주고보(현 광주서중·일고)에 입학해 같은 해 11월 친형인 김재동 선생과 함께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성년이 된 뒤에는 사회주의 이념에 바탕을 둔 항일투쟁에 나섰고 일제에 의해 2년간 수형생활을 하기도 했다.

해방 후 1948년 12월에는 미군정청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1950년 7월 중하순께 총살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1998년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으나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이념 배경 때문에 무산됐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는 지난해 이기홍·장재성 선생, 2019년에는 윤윤기·김범수 선생 등 지역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게 시민 서훈을 이어왔다.

정회성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0> 연합뉴스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김한동 선생에 독립운동 시민 서훈

수, 2021/08/11-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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