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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기후문제 : 에너지 문제에서 X-솔루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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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기후문제 : 에너지 문제에서 X-솔루션으로

admin | 금, 2021/06/04- 19:43

기후와 생물다양성의 위기에 직면하여 인류는 탄소중립적인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경제의 순환과정에서 자연자원의 가치를 재할용하고 재평가하여만 한다. 이러한 목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매우 소중하다.

헬싱키 –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의 실종은 우리 시대의 가장 긴급한 도전으로 책임있는 모든 정치지도자들은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해야만 합니다. 실현가능한 목표를 향한 분명한 전략이 필요하며, 과감하게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야만 합니다. 특별히 신뢰할만한 기후 전략을 채택함에 있어서 기술적 혁신이 가지는 중요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2035년까지 기후중립을 시현하고 이후 곧 탄소음성(배출되는 것보다 더 많은 대기 탄소를 제거)을 목표로 하는 핀란드의 기후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야심찬 목표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는 배출량 감축뿐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폐기물제거에 초점을 맞춘 순환경제를 도입함으로써 선진경제권의 리더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우리의 계획은 2035년까지 자원효율성과 순환비율(경제로 돌아가는 모든 재료의 비율)을 두 배로 늘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석연료로부터 해방되는 최초국가가 되기 위한 핀란드의 길에 대한 주요 벤치마크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귀중한 천연자원을 보존하는 나은 방법 없이는 기후목표를 달성 할 수 없습니다. 과학적 발견, 신기술 및 혁신은 모든 장기적인 대책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모든 국가지도자들은 화석연료의 사용을 멈추는 방법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초점은 생물다양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연료와 에너지원의 사용을 늘리는데 있어야 합니다. 엄격한 지속가능성의 기준을 준수하고 수명주기 동안 배출량을 줄이는 연료의 사용을 장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오-매스 연료의 부산물은 섬유 및 건축자재와 같은 고품질의 지속가능하고 생분해 가능한 제품에 사용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산림자원에 대한 수요를 줄여 생물다양성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Power-to-X” 변환기술은 전기를 열과 수소 또는 합성연료로 바꾸는 다양한 프로세스에 대한 문을 열어줍니다.

과감한 투자와 혁신을 통해 이러한 기술은 포획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에서 합성연료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석탄와 ​​석유 및 천연가스를 분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여기에서 바이오 기반산업, 시멘트 고로 및 고형 폐기물 소각로 등 기존 산업에서 발생하는 가스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실 건물에서 배출공기를 수집하거나 심지어 직접 공기 포집(DAC)과 같이 중간수준의 탄소원을 활용하는 새로운 기술도 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험이 이미 진행 중입니다. 전기분해에 의해 생성된 수소를 이용하여, CO 2 산업설비 및 DAC로부터의 배출탄소 중립도, 해상, 및 항공 용도의 합성액체와 기체연료의 공급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이러한 방법은 합성메탄올을 중간 생성물로 생성하고 이를 가솔린과 등유 및 디젤로 전환 할 수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리는 희박한 공기로 연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기술과 프로세스는 비용적 부담을 갖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태양전지판과 연료전지에서 보았듯이 기술비용은 사용량이 늘어나기 시작하자마자 급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정부지원 수준에 따라 (연료혼합 규제 및 탄소가격 책정과 같은 조치를 통해) 깊이와 범위가 다양하지만 다른 새로운 기후친화적 기술에 대한 시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망한 새로운 수소기반 기술은 규모를 달성하기 위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전기 생산량을 대폭 증가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풍력과 태양열의 사용을 확대함으로써 충족될 수 있으며, 이미 세계 여러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전력생산의 옵션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은 많은 선진국 및 개발도상국에서 지속가능한 연료원의 주요 전환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글로벌 배출가스를 줄이는 것에 멈추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배기가스의 배출량뿐만 아니라, 미래에 탄소음성이 되기 위해 많은 산업을 배치해야 합니다.

또한 기술만으로는 인류를 위한 기후위기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올바른 정책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녹색전환의 핵심요소는 높은 탄소가격의 책정이며, 이는 국제적 수준의 조정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탄소시장 메커니즘에 대한 지속가능한 기준에 동의하는 것은 중요한 진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규제프레임 워크와 재정적 인센티브를 통해 구조적 변화를 지원하기 위해 더욱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화석연료에서 전세계를 해방시키려면 에너지생산 및 산업공정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순환 및 녹색경제를 개발하려면 보다 많은 작업이 필요합니다. 국가마다 필요와 장점이 다릅니다. 그러나 최고의 솔루션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서 적용하고 확산할 수 있는 솔루션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은 우리가 배출량 감소목표를 달성하고 미래의 기후재난을 피하려면 지구의 배기가스 배출량이 조만간 정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기후중립적인 순환적 세계경제를 만들려면 유망한 신기술들을 종합적인 시각에서 개발, 최적화 및 전 세계적으로 배포해야 합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5-17.

SANNA MARIN

핀란드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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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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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에 설립된 영국은행에서 빌린 1.2백만 파운드를 갚지 않았다. 그 대신 대부자(영국은행)에게 대출금의 반대급부로 독점적인 화폐발행권을 부여하였고, 이것이 현재까지 세계의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기본구조가 되었다. 현재 코로나 사태라는 위기를 맞이하여 정책당국자들은 경제를 부양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조처를 약속했고, 중앙은행들은 정부의 재정지출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화폐를 발행하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위급 상황, 특히 전쟁 기간에는 왕왕 중앙은행들은 해당정부에게 신규의 은행권화폐를 제공하곤 하였다. 결과로 나타나는 인플레에 대한 대처는 위급상황의 종결 이후로 미루어져 왔다. 팬데믹 상황임에도, 현재 세계는 아직 전쟁에 준하는 상황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따라서 독립적으로 인플레를 책임져야 하는 중앙은행의 원칙을 완화시킬 필요까지는 없다. 그럼에도 급하게 필요하다면, 화폐재정에 대한 융통성이 정책책임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무제한으로 통화량을 풀어 정부의 재정필요를 지원하면 초인플레(hyper-inflation)를 야기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들도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지난 십 수년간 인플레의 예측 경고에도 불구하고, 양적완화의 정책은 중앙은행의 목표인 2.0% 이내에서 이루어졌다. 활성화된 경제로 흘러 들어간 돈은 그만큼 확대된 수요(아마도 위험관리형 예치)에 의해 흡수되었다.

양적완화와 통화재정 정책 간에 분명한 경계선은 없다.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로 구입한 금융자산은 일시적이며, 새로이 발행된 화폐량는 경제활동 과정에서 한 순간에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라나 이후 후임자들이 이를 지속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단속할 수단은 없다. 한편에서는 정부가 돈을 빌리는 비용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 반면에, 국가채권은 민간투자자들이 사들일 때만이 신규발행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은 점차 영구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중앙은행들은 재정위기와 현재의 현금수요 간에 통화정책을 충분히 토론해서 정상화시킬 처지가 아니다. 이들이 언제라도 충분히 토론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 집행된 정책수단의 규모가 너무 커서, 예컨데 일본중앙은행의 경우에는 보유하고 있는 국채가 일본국가 수입의 100%를 넘어 서고 있어서, 기존에 소유하고 있는 국채를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양적완화와 통화재정 간의 차이점은 대개 단 한가지의 예이다: ‘금융자산의 구매행위가 잠정적인가 아니면 지속적인가?’ 이 점이 중앙은행의 신용도와 메시지의 전달에 중요한 측면이다. 영국은행장인 Andrew Bailey는 언론에 기고하였듯이, 국제적인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파운드로 보관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제공했던 통화정책을 거부했다.

파이낸설 타임즈의 입장은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려면 화폐금융정책에 자유재량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알리는 것이다. 그것은 아래의 내용과 같다.

인플레를 잡으려는 흐름이 거꾸로 간다면, 중앙은행들은 물가의 인상과 싸우기 위해 이자율을 높이던가 양적완화를 줄여야 한다. 현재의 위기상황은 디플레를 야기할 수 있으며, 각국 중앙은행들은, 유럽중앙은행를 예외로 하고, 함께 균형을 맞추며 정해진 목표를, 이상 또는 이하 양방향에서 벗어난 인플레와 싸울 것을 약정해야 한다.

현재 침체 국면의 심각한 규모를 감안하면, ‘헬리콥터 머니’가 되었든, ‘일반 시민에게 현금으로 지불하는 방식’이든, 가장 직접적인 화폐재정의 방식으로 재량껏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정책의 집행과정은 공공재정을 책임지도록 민주적으로 선출된 공직자들의 협조를 요구한다.

논쟁의 핵심은 화폐재정 정책을 추진해야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양적완화는 이루어지고 있듯이, 독립적인 중앙은행의 책임있는 통제 하에서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낸스 타임즈 편집부 (FT editorial board)

월, 2020/04/1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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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민주주의의 영향과 실행에 대해 경험을 기반으로 한 총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사회-경제적 맥락과 역사-문화적 배경, 레퍼렌덤 권리의 발전 단계, 법적인 틀과 국가적으로 각 현실의 정치적 상황 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이를 시행한 모든 체제에 적합한 어떤 단일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란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모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다양한 연구 기관에서 실시한 경험적 조사에서 나타나며, 꾸준히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 효과들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을 요약한다.

 

민주주의라는 근본적인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직접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체제의 토대를 허물어 내는 수단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시민들은 정치적 권리들을 확장시키고 손질하기 위해 정치체제의 몇 가지 근본 요소들을 개선할 자유가 있다. 민주 사회에서 정치 참여는 기본권에 속하며, 정치법을 바꾸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레퍼렌덤 권리들은 사실상 민주주의의 정착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레퍼렌덤으로 엄청난 정치적 분열이 일어난 적은 없다.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체제에 새로운 국민의 권리를 통합시키는 것이다.

스위스에서 1900년대 후반 국가 권력 구조의 근본적인 개혁과 더 힘없는 계급들의 해방을 바란 좌파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보수층은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하면 개인 소유주들의 권리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을 두려워했고, 유산有産계급은 새로운 국민 권력을 일종의 위협으로 느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수당에 불이익은 없다

직접 민주주의는 덩치에 따른 선거 제도를 만들려는 지배당의 시도에 대항하기 위한 피난처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는 자유선거와 복수 정당제이다. 때로는 강한 정당들이 레퍼렌덤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거법을 바꾸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런 논란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그런 정당들은 의회에서 다수당인 덕분에 어찌되었건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레퍼렌덤 권리는 이런 효과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다수당들을 통제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것이 드러났다. 스위스에서 시민들은 레퍼렌덤 투표로 소수 정치 세력들에게 더 유리한 비례 제도를 적용했다. 반면 1990년대에 이탈리아에서는, 군소 정당들의 발안으로 완전 비례 제도가 폐지되고 정당 연합을 결성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주로 다수 편향적인 제도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때로는 야당들이 특정 정치 현안에 대해 집권 다수당을 좌절시키려는 과정에서 “레퍼렌덤이라는 방법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집권당 연합 또한 거의 플레시비트와 유사한 술책의 형태로서 유권자들에게 결정권을 맡김으로써 별로 반갑지 않은 결정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대개 모든 레퍼렌덤에서 각 정당은 공개적으로 찬반으로 편을 나누거나 투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호소했다. 요컨대 선거 제도의 입법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소수 정당들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군소 정치 세력들이 종종 레퍼렌덤 도구를 활용하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며, 이탈리아의 급진당Partito Radicale은 1974년부터 2006년까지 20개 이상의 레퍼렌덤 사안을 추진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발안과 연합주의Associationism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

직접 민주주의는 이익단체들이나 시민발안의 역할과 가능성을 강화시키는 한편 때때로 각 현안에 대한 정당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아무런 정치적 책임이 없고, 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으며 로비 활동처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조직적으로 일하지도 않는 단체나 어떤 운동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관심 있는 특정 현안에 영향을 미칠 기회가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보통 레퍼렌덤 투표에서 선거 때 투표한 정당과 완전히 같을 필요가 많지 않아, 시민사회 및 연합주의 단체나 운동의 역할을 강화시키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도록 정당들을 압박한다. 레퍼렌덤 도구 덕분에 국민 대다수는 필요할 경우 비상 브레이크나 안전 잠금 장치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방제도: 직접 민주주의 가동에 유리한 조건

연방제도와 지방자치는 레퍼렌덤 권리의 발전에 유리한 기반을 제공한다. 지방(주, 현, 기초자치단체)에 더 큰 법적 권한이 더 부여될수록, 레퍼렌덤 권리를 가동할 수 있는 정치 부문이 더 확대된다. 이 권리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훈련장”이다. 지방 정치에서 시민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레퍼렌덤 투표에 참여하려 하는데, 다루는 사안이 그들 자신과 밀접히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시민들이 담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더 클수록, 시민들은 레퍼렌덤 도구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레퍼렌덤 권리를 법적으로 잘 정비하여 미래의 지방법 개정을 위해 투표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함시키면, 중앙에 비해 지방 정부들의 입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실상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방의 책임을 기꺼이 중앙 정부에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연방제도 또한 강화시킨다. 곧 시민들은 가능한 한 자신들의 참정 기회가 훨씬 큰 지방 정부급에 힘을 실어주려 할 것이다.

 

소수의 위험과 기회

직접 민주주의는 사회적, 정치적 소수자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그들의 관심을 명확히 밝히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론상 레퍼렌덤 도구는 소수자들에게 불리하게 쓰일 수도 있다. 우선 두 부류의 소수자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쪽은 “영속적인”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다(예를 들어, 장애인, 집시, 동성애자, 소수 민족, 소수 종교인 단체, 이민자 등). 다른 쪽은 정치적 소수자나 가변적인, 다른 부류의 소수자들이다. 발안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정치적으로 결정하고,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제공한다. 그러나 그들 혼자서 해낼 수는 없다. 정치적 다수가 그들의 관심사에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더 광범위한 사회적 집단들과 협력해야 한다. 레퍼렌덤을 통해 소수자들도 새로운 연합에 들어가고 심지어 국회의 다수를 꺾을 가능성도 갖게 된다. 이런 권리의 존재만으로도 정당과 정부를 압박하여 더욱 진지하게 소수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패배한 체계적이지 않은 소수자들 또한, 때로는 그들이 바라는 개혁을 위해서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을 깨닫고, 정치적이건 사회적이건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경우이건 소수자들과의 공개적이고 바람직한 대면은 그들의 사회적 통합을 촉진시킨다. 물론 그것을 목표로 소수자들에게 레퍼렌덤 권리를 완전히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조달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어쨌건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의회에 도달하지 못하는 단체로서는 조직하기 어려운 사회적 빈민층이나 정치적 소수자들의 이익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점에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수의 입장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때로 사회적 소수자들은 직접 민주주의 절차의 틀 안에서 적대감과 뿌리 깊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집단들에게서 소외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공적인 토론은 그 자체로 역동성이 있으며, 매우 다각화된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누구도 단 한 가지만 소수에 속하거나, 또 늘 소수자로 남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의회에서도 소수의 이익은 종종 다수당의 논리에 희생된다. 어쨌건 헌법과 국제 협약 및 인권 조약에서 마련된 기본권들로 구성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방법 및 유럽연합 조약으로도 비준된 레퍼렌덤 권리들에는 한계가 있다.

 

정치적 엘리트의 확대

누가 정치적 엘리트에 속하는가? 정부, 국회, 행정부, 정당의 정치적 인물들과 정치적 성격을 지닌 거대 조직의 인물들이다. 엘리트, 혹은 적어도 이런 형태의 리더들의 집단은 대개 대의민주주의를 선호하며, 의사 소통 채널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직접 민주주의는 주로 그들에게 일반 국민들과 관계를 맺도록 독려함으로써 상황을 변화시킨다. 한편으로 각각의 레퍼렌덤 발안 또한 오로지 기꺼이 헌신하고, 어떤 대의를 위해 투쟁할 태세가 된 능동적인 시민들 덕분에 태어난다. 이들은 사회적 엘리트 층을 형성하지 않으며, 하나의 정치적 주제나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갈 역량을 지닌 소수자들이다. 제기한 사안과 관련하여 항상 이 시민들의 비중은 무시 못할 정도인데 특히 레퍼렌덤 권리가 얼마나 발전되었느냐에 따라 더욱 그렇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저 엘리트 층 사이에서 어떤 주제를 대면하도록 자극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계급과 국회 차원에 존재하지 않는 그룹들 간의 토론도 자극한다. 정치적 절차가 그렇게 더욱 확대되고 풍요로워진다.

 

직접 민주주의는 적법성legitimacy을 더 부여한다

“적법성”이라 함은 어떤 결정이나 어떤 조직에 대한 정치적 평가 수준을 의미한다.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록 그 결과는 더 적법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의미에서 더 강력한 적법화의 형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온 국민이 참여하는 레퍼렌덤 투표, 혹은 선거의 경우 국가 원수나 지방 행정부 수장의 직접 선거이다.

만일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대의 기관의 심의에 반대하거나 행정부에서 바라는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집단들이 레퍼렌덤 투표에서 패배한다면, 그들이 제안한 주제의 유효성이 아니라 그들 반대의 적법성이 사라지게 된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한편 각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레퍼렌덤 투표에서 패배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신임이나 총선을 통해 그들이 부여받은 위임의 적법상이 아니라, 단순히 국민과 의견을 달리하는 어떤 명확한 선택과 관련한 적법성을 잃는다.

 

진보주의의 온상도 보수주의의 온상도 아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에서 정치인들이 제기하는 첫 번째 질문의 하나는, “이 도구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정치에 도움이 될까?’ 이다. 보수 세력이건 자유주의 세력이건, 좌파건 진보 진영이건 국민은 직접 질문을 받고 그들 견해를 밝힐 것을 요청받는다. 과거에는 과연 직접 민주주의가 사회의 진보를 옹호하거나 방해할 수 있을지 자문하는 것은 주로 좌파였다. 좌파들이 봉착한 딜레마는 직접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더 큰 결정권을 넘겨 주지만, 과거에도 현재도 이것이 꼭 진보적 해결책을 옹호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대개 국민발안은 단지 여러 사람들이 느끼는 긴급 현안들을 제기하여 정치인들을 포함한 모두가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 도구들은 시민 단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공적으로 표현하여 국회와 정부의 의도에는 어긋나는 것이더라도 그것을 다수의 결정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게 해 준다. 만일 레퍼렌덤 절차가 대규모 토론과 함께 이루어진다면, 레퍼렌덤의 결과는 항상 열려 있다. 국민발안들 사이에서도 주요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곧 보수적인 국민발안이 있고, 혁신적인 국민발안이 있다. 직접 민주주의가 사회의 진보적 입장과 세력을 희생하여 보수적 입장과 세력을 옹호하려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히 전통적인 통로만으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국민들에게 좀 더 목소리를 실어 주는 것이다.

 

정치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 증진

어떻게 정치에서 “효율성”을 측정할까? 만일 어떤 정치적 승인에 도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 기준으로 잡는다면, 직접 민주주의는 확실히 결정 과정을 간소화시키지도 않고, 그 기간을 줄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평균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이나 좀 더 보편적인 시각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실시는 정치체제의 안정을 증진시키며, 그러므로 그 효율성 또한 증진시킨다. 대개 효율성은 한 정치체제의 유익성과 비용 사이의 관계로 정의된다.

종종 정치인들은 레퍼렌덤 도구들이 정부의 통치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레퍼렌덤 투표가 선출된 정치적 책임자들과 거대 조직 책임자들의 결정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게 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정보 전달과 공개 토론 비용 및 투표 자체의 실시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비용 증가와 정치적 절차가 어느 정도 지연되는 것이 다른 이점들, 곧 지속성과 안정, 적법성 및 레퍼렌덤 승인으로 채택된 해결책의 수용 등의 이점을 없애지는 않는다. 시민들은 종종 선거 중간에 개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치적 도구도 없이 법적으로 호소하거나 좀 더 급진적인 항의 형식에 의존하여 어쨌든 프로젝트들을 막아내곤 한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로 정치권은 미리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만 한다.

 

최고 수준의 정보 전달 덕분에 이루어지는 일반 교육

정치적 이익과 “정치적 성숙”을 위해서는 적절한 학습과 교육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시민들은 참여 여부에 상관없이 레퍼렌덤에 즈음하여 생겨나는 공적 토론에 노출되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사회화 효과는 시민들과 정치인들 간에 직접 접촉으로 정치적 대면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더 크다. 이 효과는 시민들이 대개 그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지역적 차원에서 더 생생하다.

그들은 다양한 입장이 있다는 것과 모든 이들의 논점과 목소리가 모두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이 내린 결정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불특정의 시민은 한 번은 승리한 다수에 속하고, 또 다른 때는 패배한 소수에 속하게 된다. 레퍼렌덤 과정에서 다수를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그 어떤 세력도 더 이상 “국민”을 운운할 수 없다. 미국과 스위스에서 투표 참여는 늘5 0%를 넘지 않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성취로 여겨지는 레퍼렌덤 권리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면 국민 저항이 매우 높다.

 

승인된 해결책의 수용율은 높고, 잠재적 갈등은 줄어든다

레퍼렌덤 투표에서는 특정 현안에 집중하며 그것을 전반적인 정치적, 사회적 갈등과 섞지 않는다. 레퍼렌덤 절차가 규정을 완전히 존중하여 시행된다면, 곧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모두가 받아들인다면 투표는 국민들과 의회 다수당, 정부 사이, 그리고 정치 세력들 간의 긴장을 명확히 설명하고 완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어떤 이는 직접 민주주의가 복잡한 현안들을 다룰 때 반듯이 필요한 타협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지만 대신 의회에서는 그런 타협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레퍼렌덤의 예측 불가능함을 염두에 둔 세련된 기제가 존재한다. 자신들이 레퍼렌덤에 착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그룹들을 참여시켜 “예방 공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타협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직접 민주주의가 제도적 차원에서 진전이 없는 어떤 상황을 돌파할 수 있게 해 준다. 만일 의회가 타협점을 찾을수 없어 법을 정하지 않는다면 국민발안은 시민들에게 최후의 발언권을 준다. 스위스에서는 대개 국민 50% 이하가 레퍼렌덤에 참여하지만, 결과의 수용율은 높다. 각자 자신들이 원한다면 참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제가 잘 알려져 있고, 단순하고, 토의를 거친 것일수록 레퍼렌덤에 더 적합하다

모든 정치 현안이 레퍼렌덤 절차로 쉽게 다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고, 잘 알려져 있고, 논의를 거쳐서 정보 제공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에 대해 어떤 가부가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의제가 바람직하다. 원칙에 따른 정치적 차원에서 내린 모든 결정은 평균적인 시민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현대적 개념은 자유롭고 정보를 갖춘, 의식 있는 시민을 전제로 한다. 그 밖에도 상당한 서명을 모으는 일이 민주주의의 여과기 역할을 한다. 헌법 개정, 정부 형태 변경, 초국가적 기구에 주권의 양도 등 더욱 강력한 합법성을 요하는 의제들이 존재한다. 많은 유럽 국가에서 실시한 유럽연합 가입 관련 레퍼렌덤들이 이런 막중한 정치적 결정을 합법화하는 법적 구속력을 지녔다.

예를 들어, 연간 예산 관련법 같이 여러 차원에서 타협을 요하는 복잡한 현안들은 레퍼렌덤 절차에 놓이는 것이 그리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특정 세금 관련법의 경우는 다르다. 캘리포니아 또한 몇몇 정치적 사안을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시키지만, 스위스는 그렇지 않다. 스위스에서는 그 어떤 사안도 배제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공공 예산과 관련하여 “참여적 예산”이라는 흥미로운 경험이 존재한다(11장 참조).

대체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긴 전통을 지닌 나라에서 실시한 선험적 조사에 따르면, 좋은 직접 민주주의에 따른 주요 효과는 다음과 같다(Gross 2007과 Kaufmann/Buchi/Braun 2009 참조).

▪ 직접 민주주의는 정치를 더욱 전달력 있게 만든다. 구체적인 정치적
현안에 관한 정치적 결정의 합법성에 대해 시민들 측에서 의문을 제
기할 수 있으며, 정치인들 측에서는 충분한 근거를 들어 이를 설명
해야 한다.
▪ 직접 민주주의는 모든 관계자들이 사실과 주제에 기반한 공개 토론
에 나서게끔 함으로써 정치적 대화를 더욱 진지하고 합리적인 것으
로 만들어 준다.
▪ 직접 민주주의는 수적으로 열세한 그룹이나 소수자들도─국회와
의회에 존재하지 않는─공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 준다.
▪ 직접 민주주의는 보다 공평하고 정확한 정치 권력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의 정치를 정당화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또는 국민 레퍼렌덤 투표에서 다수를 설득할 정도로 큰 특권을 주지
않는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19/12/20-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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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규범화는 체제화를 불러오는가?

”대단히 말솜씨가 뛰어나고, 엄청나게 날카롭다” 많은 학자들, 특히 타이완과 해외에서 온 학자들이 지청시대의 학자들을 평가하는 전형적인 말이다. 말솜씨를 갈고 닦는 것은 당시 지청학자들의 중요한 일의 방식이었다. 1990년대초, 대학과 연구소의 중년, 청년학자들은 업무가 끝나면 거실이 딸린 기숙사로 돌아가곤 했다. 냉동만두와 쏘세지등의 인스턴트 식품이 보급되기 시작해서, 이를 안주삼아 즉흥적인 심야 혹은 철야토론이 가능했다. 말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말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핵심, 즉 ‘점’을 짚을 수 있어야 한다: 한가운데 ‘점’을 겨눠, 그 ‘점’에 도달한다. 그리고 나서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도약한다. 이렇게 핵심을 짚기 위해서는 충격과 폭발력이 필요하다. 어떤 주제든 2~3분내에 듣는 사람이 이해가능하도록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들을 이어서 선을 긋는다면, 즉, 점을 글에 담아 생각하기 시작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글로 쓰기 위해서는 선을 그어야만 한다. 쓰기 전에 머릿속에 종이에 선을 긋기 위한 틀을 짜야 한다. 쓰는 과정에서, 다른 내용간의 관계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명료한 분류歸類, 선긋기劃分, 한계정하기界定가 필요하다. 정밀한 논리, 촘촘한 디테일, 물흐르는듯한 연속성이 필요하다. 글쓰기에서 돌파력과 임팩이 목적이 될 수 없다. 전문적인 학술 작법은 독자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독자는 에디터, 심사평가원을 포함해서 다섯명을 넘지 않는다). 구두발언조차 교과서를 또박또박 읽는 것처럼 답답하게 들린다. 학자나 관료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혁명가라고 해서 글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에겐 밀실에서의 토론과 광장에서의 연설이 더 중요하다. 밤을 세우며 급하게 준비하는 신문평론이나 소책자도 이러한 토론과 연설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은, 즉흥적일뿐더러, 예측이 불가능하다.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보수파를 불안하게 만든다. 영국 수상 앤서니 에덴은 당시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나세르의 연설방식이 무쏠리니나 레닌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1956년 수에즈운하 전쟁의 숨은 원인이기도 하다.

잡담같은 대화로 생각을 나누면 생각이 두루 퍼지고, 도약하게 된다. 이런 대화는 고도의 상상력에 의존해서 지속된다. 모두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상상을 해야 한다. 저런 관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떤 감춰진 의미가 있는 것일까? 썰렁해지지 않도록 평범해 보이는 현상에서 어떻게 재미있는 화제를 끌어낼 수 있을지 미리 생각을 해야 한다. 지식청년시대 학자들은 그래서 상상력이 뛰어나다 대신에 당시에 학술적인 능력은 좀 빈곤하기도 했다. 한번은 쑨리핑孫立平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잘모르겠다고 고백했다. 대답이 걸작이었다. “누구는 제대로 알아?”   고개를 들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씀하셨다 “우리들도 어떨 때는 해외문헌을 보면서 큰 영감을 얻고 흥분하는데, 어쩌면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그럴지도 몰라”. “외국 이론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경우도 많아. 잘못 읽은게 오히려 ‘큰 깨달음’으로 다가 오는거지. “ 사상의 자주성이 자원의 빈곤을 오히려 혁신의 원천으로 전환시킨 셈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사회현상에 대한 통합적 판단을 하고 싶다는 욕망과도 연관이 있다. 무엇을 토론하든, “사회주의의 본질은 이것이다”라든가 “중국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등의 지청학자들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점’에서 (‘선’을 거치지 않고) ‘면’으로 도약한다. 학제를 뛰어넘거나 아예 특정 학과에 소속되지 않으려는 그들의 경향도 상상력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중국사회에 대해서 통합적인 평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자연히 철학, 역사, 정치, 경제의 각 영역을 넘나들게 된다.

대화와 토론은 단체 행동이다. 대화를 통해 사상이 전파되며 친구들간에 공명을 일으키고, 이때 저작권은 고려하지 않는다. 누가 먼저 제안한 생각인지도 따지지 않는다. 1990년대 중국은 가정전화 의 시대로 접어드는데, 작은 범위안에서 연락하고 동태를 전파하는데 매우 도움이 됐다. 당시의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문헌검색기능이 없었다. 개인 PC를 사용하면서, 프린터와 복사기가 보급됐다. 소그룹안에서 끼리끼리 책을 복사하고, 돌려 읽고, 이렇게 출력된 원고에 대해서 평했다. 타이완 사회학자 까오청슈高承恕교수가 왕선생님 소그룹의 허베이河北성 바이꺼우白溝시장 필드조사에 참여했다. 그를 매우 흥분시켰던 것이, 다함께 자전거를 타고 시골로 내려갈 때였다. 대오를 만들어 페달을 밟으며 서로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언제든지 멈춰서 군고구마를 사먹기도 하고, 그러면서 군고구마 장수의 살림살이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나중에 자전거가 자가용으로 대체됐다. 각자 자기 차를 몰아서 간다. 물리적 공간이 닫히고 개별화된다. 아마 이런 변화도 지청시대의 끝을 알리는 지표일 수 있다.

당시 학생들은 자기보다 20~30세가 더 많은 학계의 중진, 원로나 그들의 동료들과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사상적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격의없는 논쟁과 대화가 가능했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일 것이다. 지금 스승과 제자 사이가 꼭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짜 중요한 변화는 동료들간에조차 제대로된 토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로 재미없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행운을 누린 것은, 왕선생님이 학생들을 대단히 중시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반대로 그때는 사제관계라는 개념자체가 없었다. 세대의식조차 없었다. 만일 학생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흥미가 있다면, 왜 와서 한번 들어 보라고 할 수 없나? 만일 친구 사이에 절실히 어떤 문제를 궁리하고 있다면, 왜 학생이 뭐라 하는지 들어볼 필요가 없나 ? 한번은 농민공에 대한 이론의 함의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데, 쑨리핑선생님이 말했다. “눈앞 탕속에 들어 있는 고기 한점이 보이는데, 왜 건져 먹지 않나?” “꼭 모든 생각을 다 받아들일만큼 마음이 넓은 것은 아니다 등등. 그냥 눈앞의 고깃덩어리는 건지면 되는 것이고, 그 사상의 탐색이 그들의 반권위적 생활태도의 일부분이기도 했다. 그냥 원래 분위기가 개방적이고 평등했다.

이 학자들의 실천방식은 그들의 생활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동료들간에 질투와 시기하는 법이 없이, 철저하게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은, 아마도 하방시기 단체 생활의 연속선상에 있을지도 모른다. 1990년대 학술계에는 서로 다툴 이익도 없었고, 관리도 엄격하지 않았다 (밤새 토론을 했다면, 아침에 새벽같이 출근해서 정시에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도로 농축된, 혹은 희극적이기까지 했던 역사적 경험이, 그들에게 매우 특별한 넓은 시야와, 작은 일에서 큰 의미를 포착하는 능력을 선사했다. 어디에 고기덩어리가 있는지  냄새를 맡을 줄 알았다. 이런 밑바닥 생활의 체험이, 각종 생활의 지혜를 근거리에서 관찰할 기회를 주었고, 평범함속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민감함을 선사했다. “점”을 직관적으로 찾아냈다. 계획없이 책을 무차별적으로 읽었고, 다양한 전공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왕선생님 자신이 원래 수학전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철학과 기계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들의 사고는 틀에 갇히지 않고 튈 수 있었다. 그들이 사회과학을 공부한 것은 완전히 흥미와 사명감 때문이었다.

<사진3> 지청학자들의 경계없는 학술실천방식은 그들의 생활경험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동료들간에 질투와 시기도 없었고, 밤새워 함께 토론을 하던 것은 하방때 단체생활의 연속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학술실천은 1990년대 지청학자들의 자기비판적 태도를 키웠다. 당시의 공통인식은 전문적인 학과건설을 시급한 임무로 삼았으니, 학술활동은 반드시 지식공동체의 일정한 표준에 의한 대화에 기반한 것이어야 했고, 규범형식이 대화의 기초가 됐다. 그래서, 문헌리뷰와 분석의 틀을 명확히 하는 등, 모두 중요했다. 당시 우리가 시급히 보완해야 할 것들이었다. 왕선생님은 비록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해본 경험이 없었지만, 베이징 사회학계의 국제협력을 열심히 추진했다. 많은 지식청년들이 1980년대 특히 1990년대초에 서방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90년대 이후 서구학계의 연구방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왕선생님의 또다른 업적은 전문과제형식의 사회학 연구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경험소재에 대해서 계획을 가지고 접근한다, 체계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그저 관점을 내세우는 식의 주관적 글쓰기와 구분한다. 하지만 1990년대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은 관리자들의 학술규범화 열정이 생각보다 빠르게 학자들을 앞지른 것이라는 점이었다. 중국어 사회과학 검색 및 인용 시스템 (CSSCI), 학술지 평가 및 등급, 임팩트, 인프라 건설, 펀드신청, 과제평가, 국제협력, 국제순위 등과 같은 키워드가 아주 빠르게 학술업무의 황금률이 됐다. 1990년대 추진된 중국사회과학의 규범화속에서 기수역할을 한 덩정라이鄧正來는 그의 말년에는 규범화에 대해서 언급을 삼가하는 대신, 자주성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했고, 특히, ‘지식계획시대’에 대해서 반대했다. 그는 지식계획시대에 연구가 정치적 권력과 그로부터 확정되는 학술제도상 자원분배를 기초로 삼으면, 그 기초가 우리의 지식생산방식을 대부분 결정할뿐 아니라 우리 지식생산물의 구체적 내용까지 간섭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량용자梁永佳는 이에 대해, 덩과 그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이 초기에 규범화에 기울인 노력이 오히려 학문을 속박하게 될 것을 염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규범화의 노력은 본뜻과 달리 ‘체제화’를 촉진한다. 이것은 국가 거버넌스 방식의 전환과 따로 떼어 말할 수 없다. 1990년대 이래, 원래 장기혁명과정에 형성된 것으로써, 사회주의 개혁의 공식인증을 통해서 정당하게 획득한 정부의 합법성은 더 이상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게 됐다. 이제 정부는 새로운 합법성을 만들 필요가 생겼으며, 관리자에게 ‘동의’를 얻어야 했다. 학술연구형식상의 규범화와 운영사이의 상대적 독립은 학술에 대한 행정관리 합법성의 기초가 된다. 행정지도하의 규범화는 확실히 연구의 독립성을 강화한다. 장기간의 훈련이 없으면, 학술과 행정용어를 이해할 수 없다. 각종 명시적 규칙과 암묵적 규칙도 알 수 없다. 그렇게 학술 영역의 문턱을 높이게 된다. 학과내부에서 학자들은 고도의 학술화된 언어를 사용하여 다른 경우에는 사용할 수 없는 화법으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사진4> 덩졍라이(1956-2013)선생이 창간한 <<중국사회과학계간>>과 <<중국서평>>은 1990년대 중국사회과학의 규범화, 본토화의 출발점이었다.

동시에, 처음부터 금단의 영역을 설정함으로써 연구내용의 방법을 통제하는 것이 갈수록 원하는 효과를 얻기 어렵게 됐다. 그래서, 점점 학술연구의 일상적 운용기술 규정으로 전환되는 것을 관리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학자 – 행정요원은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다. 자원을 농단하는 것은  소수파이고, 주로 여러가지 규칙이나 양식을 채우게 하기, 신청, 평가 등의 수단으로 이를 실현한다. 중년, 청년 학자들은 자기 커리어를 위해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체제화한다: 우선 직위를 추구하고, 점수를 따기 위해 노력하고, 나중에 행정직 수장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기몫으로 할당된 머릿수 쿼터를 받아서, 독립적인 파벌을 만들고 싶어한다. 전속사무원을 배정 받고, 가장 이상적인 것은 독립건물을 가진 자기 연구센터를 하나 꿰차는 것이다. 학술연구로부터 행정직으로 들어가면 물만난 고기와 같다. 일단 이런 위치에 오르면, 다시 학술연구직으로 돌아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이 두려운 일이다. 한명의 학자가 조직에 들어가서, 직함을 얻고, 자원을 확보하는 것은 그의 경력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주요한 표준이 된다. 그 연구내용과 업적은 부차적인 것일뿐이다. 후지청학자들이 중년이 되면서, 체제화된 학술연구는 이미 관행이 됐다. 동료간에는 덕담만을 주고 받고, 조화와 평형을 추구하며, 각자 자기 몫을 챙긴다. (공무원 조직이 원래 그렇다. 중하급관원이 정확하게 당신의 연구에 대해서 가치를 평가한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이미 정부의 손아귀안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나서 매우 친근하게 당신의 가정생활과 건강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물어본다. 유교, 선불교, 차도에 대해서 한담을 나누는 관계가 된다). 거버넌스 기술의 정교화가 학자들의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역으로 이런 구조는 등급화가 되고 심지어는 가부장제 형태로 틀이 짜여, 타파가 아주 어려워진다.

형식상 독립적인 사회과학 연구는 학력, 직책, 지명도 등 관련된 상징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는 이런 상징자본을 직접 장악한 것은 아니지만, 자본형성과 전환과정을 통제할 수 있다. 상징자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조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구조는 복잡한 사회과정이고, 자금을 투입하고 이익을 허락하는 것이, 이 과정속에서 아마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상징자본도 결국 다른 자본과의 상호작용속에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연구 프로젝트가 학계의 인정을 받을 때 (예를 들어 발표를 하거나 상을 받는다) 직접 상금을 받을 수도 있고, 이 자체가 일정 정도 학술상징자본의 독립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로도 작동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인정은 공정가격이 되고, 상품은 가격표가 달려야 계속 장사가 되는 법이다. 상징자본의 형성과 자본사이의 전환과정에서 층층이 쌓인 이익위탁대리관계가 다시 형성된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학술체제화과정의 거의 정신분열적으로 보이는 면도 쉽게 이해가 된다. 이를테면, 정부는 대학이 서방사상에 침식당하지 않도록 저항할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동시에 연구 성과가 서방의 인정을 받도록 격려한다. 어떤 대학의 규정은 외국의 저널에 발표하고 정부 지도자의 인정을 받은 연구는 모두 추가 보너스 점수를 얻게 한다. 구체적인 점수값과 이 점수를 인민폐로 환산하는 비율은 저널의 등급과 지도자의 지위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의 연구가 정부의 관료를 기쁘게 하고 동시에 서양사람들의 칭찬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체제화된 학술관리는 두가지 모두를 필요로 한다. 관료는 자원의 공급을 결정하고, 서양 사람들은 체제에 합법성을 부여한다. 관료와 서양사람들 모두가 연구 바깥에 있는 인정 표준의 중요성으로 드러난다. 관료와 서양사람들의 공통점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는 서민들이 아니며, 그들의 인정이 인민폐로 환전가능하다는 점이다.

지청학자들이 추구하던 규범화와 후지청학자들이 직면하게 된 체제화는 당연히 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돌아봐야 하는 것은, 규범화의 요구가 체제화에 제공하는 합법성이고, 최소한 이 것들이 우리들의 체제화에 대한 경계를 늦추게 하고, 저항감을 줄인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의 규범화 자체는 원래 제한을 의미하지 않지만, 대신 일종의 독립성에 대한 환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회과학은 만일 사회의 기타부문과 유기적 연관성을 맺지 못하고, 누구를 위해 발언을 하는지, 누가 듣게 하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형식상의 독립은 사실상의 고립이 되고, 쉽게 체제에 편입되어 버린다. 체제화가 바로 학술연구를 자족적인 시스템으로 만든다. 발전하면 할수록 인볼루션involution內卷 (역자 주 – 생산요소 투입이 늘고,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생산량이 늘다가, 그 성장 속도가 줄고 더 이상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으면서도, 돌파구가 생기지 않는 상황. 중국과 인도네시아 자바의 쌀농사 발전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의 결과로 만들어진 표현)이 일어난다. 그렇게 닫힌 시스템은 스스로의 논리는 강화되지만, 그 생존은 더욱 외부자원에 의존하게 된다.

독립성은 확실히 프랑크푸르트사회연구소가 20세기초에 결성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그 독립이라는 것은 정치와 사회에서 독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독립된 학계에서 독립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비판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독립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전통이론’이었다. 연구소는 독일이 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아마도 소련식 무산계급혁명을 맞이할 것이라는 신기원에 대한 기대와 충동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은 금방 실패로 돌아갔고, 나치가 등장했다. 이러한 반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 이론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혁신성은 이러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강박이 바탕에 깔려있었다. 우리가 오늘날 직면한 문제는 학계와 국가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누구를 대표해서 국가와 상호작용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반드시 인위적인 ‘탈규범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관건은 왜 규범화가 필요한지 분명히 하고, 규범화가 사상적 좀비가 입는 비단옷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체제화가 된 학술연구가 다시 유기적이고 자연적으로 하나의 장기적 투쟁과 탁마의 과정을 겪게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험’이라는 이 범주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아마도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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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뺘오 项飙

옥스포드대학교 인류학과

 

이글은 <<문화종횡文化縱橫>> 2015년12월호에 실렸으며, 저작권은 문화종횡에 속한다. 

원문링크

https://mp.weixin.qq.com/s/KYkgtq_1fIMIbKVCwZRYZg

목, 2021/05/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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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신장의 인권문제를 미국이 주요동맹을 연결하는 고리로 전면화하자, 영국BBC와 몇개 서방의 간판기업들도 이에 가세하면서 중국과 전면적 하이브리드 전쟁의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아래 칼럼은 파키스탄의 작가 겸 방송인이 제3자의 입장에서 신장을 직접 방문하고 보고 겪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최근 서양언론에서 비난을 목적으로 두드러지게 등장했지만 근본적으로 잘못된 점이 있습니다. “개에게 나쁜 이름을 붙이고 이름표를 목을 매어라”라는 오래된 속담처럼 서방은 중국이 위구르족의 소수민족 무슬림 집단에 대한 박해를 가하고 있다는 거짓말과 허위정보를 조작하고 퍼뜨리고 이를 조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기의 비난이 근거가 없다는 것은 중국의 설명뿐만 아니라 2018 년부터 100개 이상 국가에서 온 1,200명 이상의 중립적인 방문객들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UN관리, 중국에 파견된 국제외교관, 일부 국가의 제네바 상임대표, 피자를 포함한 학계 언론인과 종교적 인사들이 증언합니다.

중국당국은 세계가 진실을 볼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지난 2월 22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IDCPC)의 국제부서와 신장위구르 자치지역위원회는 우루무치의 발전에 관한 “중국공산당CPC 이야기”라는 주제로 브리핑을 공동주최했습니다.

이 행사에는 80개 이상의 국가에서 190개 이상의 정당과 조직을 대표하는 310명 이상의 지도자와 저명한 인사가 참여했으며, 100분 이상이 이슬람 국가출신이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삶”이라는 주제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을 벌렸으며 인류의 다양한 도전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이 행사는 진실을 가린 귀머거리의 신세를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COVID-19 대유행의 성공적인 처리,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 (처음에는 의료 지원, 나중에는 강력한 백신으로)으로 신장의 문제로 중국을 애초 비방하던 이들의 판단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CPC 중앙위원회의 정치국 위원이자 CPC 중앙위원회의 상무위원인 양제츠( YangJiechi)에 따르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인 중국의1인당 GDP는 미국의 5 분의 1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14억 전체인구를 절대빈곤의 상태에서 구제하였다고 합니다. 매우 놀라운 업적이지만, 이러한 성취에 박수를 보내거나 이를 배우려는 노력 대신, 미국 등 중국을 비방하려는 진영은 신장의 문제를 제기하여 중국의 명성을 끌어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역사를 훑어보아도, 인류가 피할 수 있었던 전쟁에 뛰어드는 것을 기획하고 즐겼던 패권국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라오스 레바논 베트남 도미니카내전 그레나다 파나마 걸프전 소말리아 보스니아 아이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등 모든 전쟁에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있습니다.

초강대국의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국방비 지출을 정당화하려면 명백한 적이 필요합니다. 이 견해는 저명한 작가이자 CNN의 GPS 진행자 인 Fareed Zakaria가 금요일에 발행한 워싱턴-포스트의 최근 논평에서 “펜타곤은 엄청난 새로운 예산에 대한 핑계로 중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라는 제목에서 최근 자신의 의견을 밝히어 커다란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제목이 자명하기 때문에 그의 칼럼에서 일부러 별도의 내용을 인용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신장에 대한 저의 이야기는 1974년 파키스탄 공군의 승무원으로 중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 목격자로서 전달합니다. 첫 방문 당시의 중국은 여전히 후진국가이었지만, 1949년 건국 당시에도 대부분의 중국의 사정은 여전하였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재난과 도전에 직면했지만, 중국은 엄청난 노력과 기민한 계획으로 인해 서구의 고립전략 등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경제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급속한 발전으로 동부지역은 발전과 풍요로움을 얻었지만, 신장을 포함한 서부 지역은 초기부터 매우 뒤쳐졌습니다. ‘신장의 저개발 상태는 지역의 주요 거주자 위구르족에 대한 억압’ 때문이라고 중국을 비방하는 서방세계는 선전하여 왔으며, 이에 그치고 않고 위구르인들의 박탈감을 테러 극단주의 분리주의 행위에 빠져들도록 선동적이며 불법적인 수단으로 부추겼습니다. 중국정부는 테러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격리조치를 취했지만, 동시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발전과 번영을 보장하여 신장지역의 인민들의 삶의 질을 신속히 높였습니다.

필자는 신장의 거리와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협박과 대량학살, 강제수용소와 노예노동, 종교적 억압과 강간 그리고 강제불임을 통한 인종 청소 등에 대한 주장이 완전히 거짓임을 직접 체험하였습니다.

서방이 비난하는 소위 “교화센터”를 방문했습니다. 서구진영은 중국정부의 목표를 완전히 곡해하고 있으며, 경범죄자들을 교화하기 위해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중국 헌법과 법률에 대한 교육과정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무슬림으로서 필자는 신장의 모스크에서 기도를 드렸지만 위구르족이 억압를 당하거나 종교의식의 수행을 중단했다는 소문 등에서 진실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거짓말을 봉쇄하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출처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국무부 앞에서 거짓 증언을 행한 독일출신의 가짜 의사인 아드리안 젠즈 (Adrian Zenz)의 허위고발로 손실을 입은 중국기업들이 아드리안 젠즈를 허위사실 유포죄로 고소하였습니다. 중국인민들은 거짓된 공격에 당당하게 맞서야 합니다.

 

출처 : CGTN(중국국제방송) on 21-03-23.

Sultan M Hali

파키스탄 출신의 작가이자 국제문제 평론가로 Sohni-Dharti민영 TV프로그램의 운용책임을 맡고 있음


<참조자료 –CGTN 제공>

신장지역의 사회경제적 데이터가 진실을 알려준다

 독일의 의사라고 자칭한 Adrian Zenz의 Xinjiang 관련 “연구 보고서”에 사용된 수많은 데이터와 사례는 반테러 및 과격세력의 진압, 민족종교, 노동 및 고용, 가족계획, 문화교육 및 인권보호와 관련되어 악의적이며 임의적이고 일관성이 결여된 결함투성이라고 베이징에서 열린 신장관련 기자 회견에서 중국공산당 신장위구르 자치구위원회 홍보부 부국장 쉬-귀샹은 말한다.

다음은 Zenz 보고서의 조작사례와 거짓말을 반박하는 실제의 테이터와 사실들의 나열이다.

Zenz는 중국정부가 신장의 위구르족 및 기타 소수민족에 대해 “대량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신장의 위구르 인구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0 년부터 2018 년까지 신장의 위구르 인구는 250 만 명 이상 (25 %) 증가하여 약 1,300 만 명에 이르렀다. 위구르 인구의 증가율은 신장의 전체 인구 인 13.99 %보다 훨씬 높으며, 또한 전체 소수 집단의 성장률(22.14 %)과 한족(2 %)보다 높았다.

신장은 경제 및 사회발전에 있어 전례없는 발전을 이루었으며 인민들의 생계는 향상되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신장의 GDP는 5,400억 위안에서 1조 3,800억 위안 (2,120 억 달러)으로 증가했고, 신장의 1인당 가처분 소득 역시 16,859 위안에서 23,845 위안 (3,663 달러)으로 급증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신장에 등록된 도시실업률은 COVID-19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3.5 % 미만으로 유지되었으며, 이는 지역주민들이 일할 권리를 누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선택의 폭넓은 영역에서 삶과 발전에 대한 인권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한 견고한 기반을 마련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신장 인민들의 전반적인 교육수준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크게 향상되었다1982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이상의 교육수준을 가진 인구는 76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8 %를 차지한 반면에, 2010년 인구조사에서는 1930만 명으로 전체인구의 89 %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2009년에는 신장 전지역의 도시와 농촌에서 9년간의 무상의무 교육을 이수하여 전지역의 급속한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의 촉진에 기여하였다.

Zenz는 또한 중국당국이 위구르족의 종교적, 문화적 권리를 억압하고 있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의 자유는 중국헌법에 따라 보호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가기관, 공공기관 또는 공직인사가 개별 인민에게 어떤 종교도 믿거나 믿지 않도록 강요할 수 없으며, 종교를 구실로 어떤 인민도 차별을 받고 있지 않다.

“지방정부는 법에 따라 종교활동을 보호하고 무슬림의 관습을 온전히 존중합니다”라고 기자회견에서 말하는 샤쉬 카운티 이슬람협회 회장이자 샤쉬 타운티의 모스크 책임자인 와일리 아부리미티는 다음과 같이 확인했다. “주변지역의 무슬림들이 매일기도, 금요일기도 및 두 가지 주요 종교축제인 Eid al-Adha와 Eid al-Fitr을 위해 모스크를 수시로 방문합니다. 이곳에서 제가 신혼부부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의식을 직접 진행합니다.”

샤쉬 타운의 모스크는 480년 이상의 역사와 2,600평방미터 이상의 면적을 가지고 있고 충분한 공공의 유틸리티, 에어컨, 컴퓨터 및 의료 서비스를 잘 갖추고 있다고 그는 증언한다.

수, 2021/04/0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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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주요 거리와 광장은 텅 비워가는 중에, 수많은 병원들은 혼잡과 고통 속에 빠져드는 것을 지켜 보노라면 가슴이 무너진다. COVID-19가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창궐하면서, 팬데믹 현상이 이후 세상을 바꿀 것이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대처를 할 것이지 결정하는 오늘의 선택에 미래가 달려있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를 세계 공동(일반)의 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물론 이는 물리적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유사상황에 준하는 물자이동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기상황에는 본능적으로 위축되고 이기적으로 되기 싶다. 이러한 반작용은 이해를 할 수 있지만 바로 패배로 가는 길이다. 혼자 해결하려 들면 싸움은 길어질 수밖에 없고, 경제적 인명적 피해는 훨씬 커지게 된다. 적(敵)은 폐쇄된 자국주의를 자극하지만, 국경을 넘어선 협력을 통해서만 이를 격퇴시킬 수 있다.

선진국가들뿐만 아니라 취약한 국가군들과 이해가 충돌되었던 지역 간에도 팬데믹을 퇴치하기 위한 국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이 점을 지난 G7 외교장관 모임과 주요한 국제회의 때마다 강조하였다. 유럽연합(EU)은 이러한 노력의 일부이자 주도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연대라는 표현이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다행히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마스크 수백만 장을 서로 교환하고 독일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환자를 자국 내 병원으로 수용하면서 이미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자국주의라는 조치를 넘어서서 국가간 연대로.

해당 책임부서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주요한 의료장비들의 공동구매가 용이해지고 경제촉진 구제정책에 함께 협력하고 외국에서 곤경에 빠진 국민들을 자국 내로 귀환시키는 영사활동의 협력이 이루어 지고 있다. 유럽의회에서 의결이 이루지면서, EU지도자들 간에 유럽단위의 위기관리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한 공동전략에 협력적 노력을 한층 강화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COVID-19는 국간 간에 또는 체계경쟁을 향한 전쟁이 아니다. 이미 팬데믹의 진행단계에 맞추어 유럽과 중국 그리고 기타 지역 간에 상호지원과 연대가 상호적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전염병이 발발되자 유럽은 중국을 지원하였고, 이제는 회복된 중국이 전세계에 의료자재와 의료진을 보내주고 있다. 지국적 연대와 협력의 귀중한 사례가 되고 있고 이를 규범화해야 한다.

COVID-19를 접근하는 한가지 선택은 이를 통해 역사를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의 내용이 무엇이 될는지 아직 모르지만, 팬데믹이 주는 메시지와 결과에 대해 EU가 중국과 미국이 함께 공동적인 노력을 하도록 일치단결하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 상기 3개의 힘들이 함께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만 G20와 UN 역시 달라 질 수 있다.

단순히 정부간의 국제적 공조를 넘어서서, 과학자와 경제학자 그리고 정책입안자들 간에도 협력이 확산되어야 한다. 2008년 세계경제가 수직으로 추락하는 위기에서 구출하는데 G20의 협력이 핵심적 역할을 한 경험이 있다. 같은 선상(線上)에서 다시 한번 그리고 긴급하게 주요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이다.

국제적인 협력을 추진하는데 4가지 우선적 사항이 있다.

첫 째, 국제적인 공공선을 실행하기 위하여는 방역조치와 백신개발에 모든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  둘 째, 금융과 재정적 구제조치와 국제통상의 보호에 힘을 합하여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 해야 한다.  셋 째, 건강책임 당국이 긍정 신호를 보내면 닫혀진 국경들을 호혜적 방식으로 다시 개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음해적 정보를 퍼트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 있었던 G20 회상회의에서 상기 사항들이 일반적 형식으로 언급되었으나, 정말로 필요한 것은 당장 그리고 수주 내에 다자적이고 구체적인 실행이 유지되고 충분할 만큼 추가되어야만 한다.

추가하여 아프리카에 특별히 중점을 두어야만 한다. 지난 2014-16 년간에 있었던 에볼라 출현으로 이미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 대륙을 통하여 의료시스템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감염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많은 빈곤 국가군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이 비공식 경제를 통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야만 한다. 이들 국가군에서는 상하수도 시설도 없는 상태에서 집단적인 캠프생활을 하기 때문에 손을 씻거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전염병과 싸우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이 필요한데, 빈곤국가들은 재정에 대해 다음 3가지 자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 외국의 투자, 송금 그리고 관광인데. 그러나 모두 현재 상황에서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투자자본은 안전지대로 신속히 흘러가 버렸고, 돈을 벌러 외국에 간 빈국의 노동자들은 실직을 당하여 본국으로 송금할 여력이 없다.

현재 세계적 규모의 불황에 직면하여 있는 가운데, 빈곤 국가들이 파탄 상황에 빠지게 하지 않으려면, 재정적 지원과 신용의 제공이 절실하다 – 그것도 매우 긴급하게. 국제금융기구와 (선진국)중앙은행 간의 협력만이 이를 풀어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반적으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장기적인 대립을 피할 기회가 있다. 벌써 경쟁 국가들 간에 협력의 긍정적인 신호들이 오가고 있다. 심각하게 감염된 이란에 대해 적대적 이웃이었던 UAE와 쿠웨이트 등이 지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동시에 다자(면)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UN 사무총장이 촉구하였듯이, 현재의 위기를 평화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 동안 세계는 비협조적으로 위기의 상황을 맞이했고 경고의 신호를 무시했으며 대부분 국가들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제는 분명해 졌다 – 모두가 힘을 합치는 것만이 앞으로 전진하는 길이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2020

Josep Borrell

유럽연합 국제관계 및 안보정책의 책임자이자, 유럽연합 집행위의 부위원장

 

<보충칼럼>

국제적 문제는 국제적 해결을 요구한다- G20의 역할론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무엇보다 공중 보건 측면에서 비상사태이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정부가 질병을 억제하고자 극적인 조치를 취했음에도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번지면서 국제경제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수요 감소, 공급망 교란, 불확실성 증가가 이어지면서 일자리 감소가 만연하고 회사가 폐업하고 기타 2차적 경제충격의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근대에 발생한 가장 엄청난 보건 및 경제의 위기임이 분명하다.

사회의 접촉망을 철저하게 차단하여 바이러스 전파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에 따라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의 영향력이 좌지우지될 것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치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사망자 및 확진자의 급격한 증가, 보건 시스템의 과부화, 기업의 정상 운영 불가능, 세계 경제의 심각한 결과가 초래할 것이다. 경제 성과와 보건(수명) 사이의 밀접한 상관 관계를 고려할 때 경제가 어려울수록 보건부문 또한 장기적으로 더욱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각국 정부가 대내 정책을 점차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동시에 국제적 차원 또한 경시해서는 안 된다. 만약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한다면 해외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국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호주의 경제적 번영은 코로나-19의 지역적 확산뿐 아니라 무역 상대국 및 세계 경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달려 있다. 초연결 세계에서 이러한 점은 모든 국가에서 통용된다.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에서 시행된 효과적인 보건 및 경제 정책과 가능한 협력에 대해 불가피한 이해 관계를 갖는다.

G20 정상들은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일반종합행동계획’에 속히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G7은 공동 대응을 논의하고자 비상 화상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이에 G20은 코로나-19의 국제적 대응을 위해 주된 역할을 담당하면서, 국제적 권한에 따른 국제적 대응을 통하여 폭넓은 회원국 (주요 선진국 및 주요 개발 도상국 모두 포함)을 포용해야 하며, 세계 금융위기의 성공적 극복에 기여하여야 한다.

G20 창설의 주요 추진국인 호주는 현재 G20 정책에 목소리를 낼 특별한 책임이 있다. 코로나-19 확산방지용 국제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집단간섭 및 안정적으로 세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조정 정책 모두 G20 대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G20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필요한 세계적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와 의무가 있다. 코로나19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고 국제 시장의 신뢰 상실과 변동성 증가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G20 정상들은 전 세계 기업, 시장,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증가하는 불확실성과 잠재적인 경제 혼란에 맞서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국가 간 조정 또는 협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이 이탈리아에 보낸 의료 물품과 같은 쌍방의 계획을 통해 현재 이탈리아 내 코로나19 발생을 약화시키며 인명 구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더 많은 국가들이 함께 하면 더 많은 결과를 이뤄낼 수 있다. 국제적 협력을 통해 다른 국가와 함께 하면 국내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상황을 더욱 쉽게 이겨낼 수 있다. 반대로 인종집단 및 노인계층을 차별하는 반사적인 대응은 다른 국가들이 위기에 대처하기 어렵게 만든다.

G20 정상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필수 의료물품 이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정방안에 합의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해당 방안에는 최소한 핵심요소 세 가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첫째로 G20 정상들은 필요한 모든 의약품, 의약품, 소독제, 비누 및 개인 보호 장비의 자유 유입에 대한 수출 금지 또는 제재를 풀어야 한다. 국제 팬데믹에서는 필수 장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세계 보건위기 동안 ‘근린궁핍화 (beggar-thy-neighbour)’ 정책에 의존하면 다른 국가에 경제적 어려움 이상으로 훨씬 큰 피해를 주어서 궁극적으로 자국에도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둘째로 국가 정상들은 필요한 의약품의 가격을 낮춰야 한다. 이는 관세, 수입 쿼터 및 정부 부과 비용을 철폐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셋째로 정부는 최소한 세계 최빈국에서도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공보건을 위한 기금을 확대하거나 세계 보건 기구의 코로나-19 연대대응기금에 대한 사업, 자선 및 개인 기부를 장려함으로써 공공보건 재정의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

정부는 시민보호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해야 하면서 세계 정상들은 경제침체에서 벗어나 세계경제의 신뢰, 성장, 일자리를 복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할 것임을 함께 다짐해야 한다. 세계 정상들이 타격을 받은 분야 및 중소기업에 공동으로 지원하겠다고 합의하면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신뢰가 구축되며 중요한 시기에 경제가 기능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방안에 대한 G20 정상들의 논의는 팬데믹에 대응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증진하고 코로나-19의 사회적,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할 것이다. 호주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대응을 주도할 기회 및 책임을 지닌다.

위기를 각국이 개별적으로 대처하려 하면 보건 및 경제적 비용이 더욱 커질 뿐이다.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타개하려면 진정한 국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바로 G20라는 조직을 통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합법적인 방안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들의 정상들은 지체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출처 : 동아시아포럼(East Asia Forum), ANU. 2020/03/19.

존 WH 덴톤

파리에 기반을 둔 국제상업회의소 (ICC) 사무총장 그리고 피터 드리즈데일, 호주 국립대(ANU) 공공정책학교 부설 동아시아경제연구소 소장이자 명예교수

 

목, 2020/04/2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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