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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투쟁과 연대하다 ―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로부터 듣는 미얀마 민주화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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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투쟁과 연대하다 ―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로부터 듣는 미얀마 민주화투쟁

admin | 목, 2021/06/03- 00:05

[인터뷰]

미얀마 민주화투쟁과 연대하다

―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로부터 듣는 미얀마 민주화투쟁

인터뷰 : 노기환 MC
정리 : 임무성 상임교육위원

이번 호의 인터뷰는 최근 팟빵과 유튜브에 업로드된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내역사)’의 <미얀마투쟁과 연대하다>를 발췌 정리하였다. 내역사 시즌6의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시민의 투쟁’ 2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로 민족문제연구소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가 공동 제작하였다. 인터뷰는 4월 23일 연구소 5층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출연자는 내역사 전문 MC 노기환과 연구소 연구위원이자 경희대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민철,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 공동대표 흘라민툰(HlaMIn Tun), 헤이만(Hay Man)이다. 2월 1일 시작된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서 미얀마 시민들의 목숨을 건 민주화투쟁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 공동대표 두 분으로부터 미얀마의 상황,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를 들어보았다. 군부의 무자비한 학살과 탄압에 맞서는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에 적극적인 연대와 지지를 보낸다. <미얀마투쟁과 연대하다> 동영상은 팟빵과 유튜브에서 ‘내역사 미얀마청년연대’로 검색하면 시청할 수 있다.

 

MC노 │김민철 교수께서 오늘의 방송 주제를 제안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김민철 │두 가지 이유인데요. 하나는 1980년 광주에서 참사가 일어났을 때, 군부에 의한 학살이 일어났을 때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광주에서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이런 소식들만 들었거든요. 언론이 통제된 시기였으니까요.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광주 참사의 실체를 알고, 특히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거꾸로 국민을 향해 총을 쏘고 학살했다는 것에 몹시 분노했습니다. 제 20대는 광주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 기억이 되살아났고요. 직접적으로는 19세 젊은이 마째신이, 티셔츠에 ‘everything will be OK’라는 문구를 쓴 청년이 아침에 아빠한테 시위에 참가하겠다고 인사하고 나가서 저녁에 시신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제 사고가 멈췄습니다. 며칠 동안 마째신의 얼굴이 제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랐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자고 제안했습니다.

MC노 │이 자리에는 김교수와 함께 두 분을 모셨는데,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 대표 흘라민툰씨와 헤이만씨입니다. 민툰씨는 대한민국에 언제 오셨습니까?

민툰 │ 저는 2006년도에 대학교에 와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부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
고 취업했습니다.

왼쪽부터 노기환 MC, 김민철 교수, 흘라민툰 대표, 헤이만 대표

MC노 │ 전공은요?

민툰 │ 경영학 박사인데요. 미얀마에 투자하는 한국기업의 성공요인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나중에 미얀
마 가서 관련된 일이나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쿠데타가 터져서 앞날이 너무나 막막합니다.

MC노 │ 헤이만씨는 학생이신가요?

헤이만 │ 저는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아동학 석사과정에 있는 수료생입니다.

MC노 │ 헤이만씨는 언제 오셨습니까?

헤이만 │ 저는 2018년 하반기에 왔습니다. 3년 되어갑니다.

MC노 │ 김민철 교수님, 두 분과는 어떤 인연인가요?

김민철 │ 특별한 인연은 없습니다. 경희대에서 교직자들부터 성명을 내야겠다 생각하다, 학교에 미얀마 유학생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알아보니 헤이만 학생이 수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수업시간에 학생에게 특강을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MC노 │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는 어떤 조직입니까?

헤이만 │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는 2월 3일 결성되었고 2월 7일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의 시민단체인
KOCO(해외주민운동연대)와 연대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로서 기자회견, 기도회, 시위, 학교특강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MC노 │ 최근엔 어떤 활동을 하고 있죠?

헤이만 │ 기자회견, 한국의 종교단체들과 협력해서 기도회 참여, 지난 3월에는 오체투지도 함께 했고,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하는 조계종 스님들의 미얀마 특별입국 신청, 3월 27일 미얀마 국군의 날에도 미얀마민주주의 네트워크에서 주최하는 ‘미얀마 봄의 행진’을 함께 했습니다.

MC노 │ 지금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는 몇 분이 함께 하고 있습니까?

헤이만 │ 아직 규모가 작아요. 인원이 20명 정도입니다.

MC노 │ 미얀마 현지 상황은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민툰 │ 지난 주까지만 해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뉴스를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많은 지역이 와이파이나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인터넷이 될 때 와이파이가 잡히는 장소에서 사진이나 동영상 뉴스를 올리면 저희가 한국 쪽에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에 전하고 싶거나 미얀마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싱겔, 텔레그램 같은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해서 뉴스나 정보를 듣고 있습니다.

MC노 │ 두 분은 고향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들으면 많이 괴로우시죠?

헤이만 │ 저도 집에 연락할 때는 주로 국제통화를 사용하고 있어요. 제 고향은 큰 도시가 아니어서 인터넷이 거의 안 되는 지역이어요. 그제는 동생이 이모가 계시는 지역으로 잠깐 왔었다고 해요. 동생이 시민불복종운동에 참여하고 있어요. 여기는 CDM이라 많이 부르고 있어요.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체포한다는 소식을 듣고 잠깐 피하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다른 지역보다는 좀 안전한 편이어요.

MC노 │ 오늘이 4월 23일인데, 지금 미얀마는 어떤 상황입니까?

민툰 │ 가면 갈수록 사상자도 많이 생기고, 전에는 인터넷이 잘 돼서 어느 지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로바로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정보를 알 수 있으면 피해가거나 미리 대비할 수 있는데 지금은 정보가 잘 파악되지 않으니 활동이 많이 끊긴 상태입니다. 그래도 시민불복종운동도 열심히 하고, 각지역마다 시위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처럼 많이 하지 못하지만요. 양곤에서는 밤에 냄비를 두드리는데 8시에 두드리기로 약속되어 있으면 7시 30분에 군인이 와서 지켜보고 있어 냄비를 두드리지 못하다가 군인이 가면 두드립니다. 군인이 없는 지역에서만 시위를 계속 하니까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시위대를 체포하는 것이 아니라 총을 바로 쏘기 때문에 나중에 인터넷에 사진이나 동영상이 나올 때만 확인할 수 있어 더 불안한 상태입니다. 전처럼 바로바로 정보를 알 수 없어서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MC노 │ 미얀마 현대사에서 최초의 쿠데타가 일어난 게 언제였습니까?

민툰 │ 최초의 쿠데타는 1962년 3월 1일 네윈 장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MC노 │ 쿠데타 이전의 정부는 어떤 정부였습니까?

민툰 │ 미얀마는 1948년 1월 4일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영국은 미얀마에 소수민족이 많으니까 부족 간의 이간질을 통해 지배했습니다. 2차 대전 때인 1942년에 미얀마는 일본을 끌어들여 영국하고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처음에 도와준다고 들어왔다가 오히려 3년간 미얀마를 지배했습니다. 1945년 8월 전쟁에서 지자 일본이 미얀마 땅에서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영국이 다시 미얀마에 들어와서 식민지를 다시 만든 거죠. 그러나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 독립을 주장했습니다. 영국이 버마인 따로 소수민족 따로 독립시켜주겠다 하자 아웅산 장군은 같이 독립해야 한다고 맞섰고 이에 1947년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함께 독립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독립 6개월 전인 1947년 7월 아웅산 장군이 암살당했습니다. 미얀마 독립 당시의 정치상황이 좀 복잡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미얀마에선 ‘우누시대’라 부르는 시기입니다. 우누는 아웅산 장군과 절친한 사이로 함께 독립운동을 했었습니다. 우누가 10년 정도 총리를 하면서 정치를 잘 했습니다. 그러나 서로 간의 분열이 생겨서 네윈 장군이 1962년 3월에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네윈의 주장은 미얀마의 군인은 독립군이다. 혼란스런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군인이 나라의 정권을 잡았다고 했습니다. 1962년 3월에 첫 번째 쿠데타 이후 1988년에도 한 번, 올해 한 번 더 똑같은 방식의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MC노 │ 두 분은 한국에 있을 때 고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헤이만 │ 제 카톡으로 많은 메시지가 왔어요. 확인해보니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며 한국의 지인이 미얀마 현지직원과 저의 안부를 묻는 걸 통해 알았어요. 오전 쿠데타 발생 때 모든 통신이 마비되었는데, 해외 거주인들은 가족과 연락이 안됐다가 오후 1시가 되어서야 국영방송에서 쿠데타 발생소식을 보도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걱정했고 한국의 지인은 난민신청을 해야 하지 않냐고 묻기까지 하였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 쿠데타를 겪어보고 외국에 있는 상태에서 난민신청 이야기까지 나오니까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 되고 멍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민툰 │ 사실 1월 말부터 쿠데타 이야기가 나오긴 했었는데, 이 시대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었죠. 그런데 2월에 쿠데타가 일어나니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저는 군사정권시대에서 살아왔습니다. 그 시대에 많은 아픈 기억이 있어요. 미얀마에 민주주의 시대가 다시 열린 것은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딱 10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2010년 이전에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의 신세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지만, 저희는 정치 이야기만 해도 잡혀가는 시대였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시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화도 많이 나고 분노가 일었습니다.

MC노 │ 미얀마 투쟁 보도에서 보이는 Z세대는 어떤 세대를 의미합니까?

헤이만 │ 1995년 이후 출생자들입니다. 이십대 젊은이들입니다. 그 이후는 알파세대, 그 이전은 Y세대, 1988년 이후는 X세대 이렇게 부릅니다.

MC노 │ 투쟁과정에서 Z세대가 많은 역할을 하는데, 그 세대는 미얀마 사회에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까?

헤이만 │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민주주의를 맛본 세대라 할 수 있죠. IT기술이 개발된 시대에서 자라왔고, X, Y세대보다 더 기술적으로 인터넷을 활발하게 사용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툰 │ 2010년 전까지는 군사정권 시대여서 자기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시대의 Z세대는 자기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보기엔 Z세대가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에는 목표도 없고 늘 게임만 하는 친구들로 보였어요. 우리처럼 군사정권시대를 안 겪어본 신세대가 너무 가볍게 보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Z세대는 민주주의를 다 누릴 수 있습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국제사회에 있는 젊은이들하고 같이 어울릴 수 있어요. 교육도 많이 받고, 인터넷에도 익
숙하기 때문에 정보에 접근하는 데에도 두려움이 없는 세대죠. 이번에도 쿠데타가 일어나니까 우리 X, Y세대는 겁이 나서 밖에 나와 데모도 못하는데 Z세대는 데모했어요. 부모님이 반대하면 나가서 몰래 데모하다 잡히거나 죽은 사람들이 많이 발생한 거죠. Z세대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용감하게 싸울수 있는 미얀마의 새로운 젊은 세대입니다.

MC노 │ 2월 1일 쿠데타 이후에 시민들의 투쟁은 어떻게 전개되었나요?

헤이만 │ 가두시위가 처음 발생한 것은 2월 4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72시간 동안의 침묵이 있었습니다. 왜냐면 신고 없이 불법적으로 길거리 시위에 나가면 군부에 진압명분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냄비를 두들기는 행위는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밤 8시가 되면요. 첫 번째 가두시위는 2월 4일에 만달레이라는 제2의 도시에서 만달레이 의대생들과 외국어대학생들이 나와서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의 거리 시위를 주도한 사람은 떼자산이라고 만달레이 의대 출신 의사입니다. 그분의 주도로 계속해서 길거리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번 시위에서는 Z세대의 활약이 매우 큽니다. Z세대는 IT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할 줄 알기에 쿠데타에 대해서 전 세계에 소식을 알리는 데 역할이 매우 컸습니다. 미얀마의 인터넷은 페이스북으로 대표됩니다. Z세대가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를 해외에 알리려 했을 때 인터넷을 잘 활용했던 거죠.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활용해서 영어라든지 여러 가지 외국어를 잘 구사할 줄 아니까 다국어로 다 알리는 거죠. 트위터에서 실시간으로 소식을 전하고 또 바이컷앱을 개발하여 친군부 기업에 불매운동, 사회적 처벌을 할 수 있게 리스트를 만들어주고, 여러 가지 정보를 한군데에서 볼 수 있게 데이터를 만들어 주었어요.

MC노 │ 말씀 중에 사회적 처벌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민툰 │ 사회적 처벌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군사독재 정권을 만들어 국민을 통치하잖아요. 군부에 불복종하고 반대하는 방법의 하나로 군부와 관련되는 장군이나 그 가족을 페이스북에 알리고, 군부가 운영하는 사업체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군부가 관련된 기업에서 파는 식품이나 제품을 사지 말자는 것이 사회적 처벌입니다. 리스트를 보면 먹고 마시는 것의 거의 절반이 군부와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제품을 사지 말자 하면 국민들이 다 안 삽니다. 얼마 전에 A라는 음료수를 사지 말자 해서 사회적 처벌 바이컷 대상이 되는 음료수가 안 팔리니까 B라는 제품으로 포장해서 50% 할인해서 팔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B제품을 사서 포장을 풀어보니 A제품을 B제품으로 속여서 판 것이 탄로 난 것입니다.
미얀마에는 사회적 처벌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쿠데타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죠.
저희들은 되도록이면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저희는 중국제품을 불매운동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얀마쿠데타를 중국이 많이 도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되도록 중국제품을 안 사고, 미얀마에서 생산하는 물건을 쓰자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같이 시위도 하고, 불매운동도 하면서 다방면으로 군부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MC노 │ 유엔 등 국제사회가 제대로 나서지 못하는 것이 중국을 비롯한 나라들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민툰 │ 예,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에서 미얀마 군부 제재를 통과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의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간섭하지 말자는 거죠. 중국은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미얀마의 자원을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군부를 도와주고 있다고 봅니다.

김민철 │ 국제관계적으로는 미중 대립으로 볼 수 있죠. 중국은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습니다. 동지나해 쪽으로는 타이완과 베트남인데 사이가 좋지 않죠.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기 위한 전략으로 진주목걸이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데, 중국이 인도양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미얀마를 통해서죠. 미얀마 군부하고 관계도 좋고, 경제적으로는 송유관이 바로 연결되어 중국의 대외전략으로는 미얀마를 자기편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MC노 │ 시위대에 처음으로 발포한 것이 언제죠?

헤이만 │ 2월 9일입니다. 네피도에서 뮇떼떼 칸시라는 19세 여성이 머리에 총을 맞았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강경진압이 심해졌어요. 처음에는 인터넷을 사용해서 국제사회에 관심을 일으키기 위한 퍼포먼스 위주로 시위했는데, 유혈사태가 발생한 후부터는 가두시위가 더 강화되고 군부의 강경진압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면서 시위 유형도 바뀌었습니다. 무인시위로 사람이 나서지 않고 피켓을 세운다든지 갤러리 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만달레이에서는 연좌농성이 있었고, 4월 4일은 부활절이어서 이스터 스트라이크라고 계란에 그림을 그려 활용한 시위, 플라워 스트라이크라고 ‘봄의 혁명에서 집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해서’라는 제목으로 신발 안에 꽃을 꽂아 길가에 놔두는 시위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는 점점 상황이 악화되자 국민들이 반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총, 화살, 화염병, 공기총, 뚜미(옛 화승총) 등 사카이주와 친주에서 이런 도구들을 많이 사용하자 군부는 이 지역을 집중적으로 탄압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싸움이 더욱 심각해지고 사망자와 피난민이 많이 생겼습니다.

한국에 있는 미얀마 유학생과 근로자 등으로 구성된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

MC노 │ 미얀마 내의 무장단체들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민툰 │ 무장단체들은 1962년 쿠데타 이후 생겼어요. 미얀마 안에는 8개의 소수민족이 있는데, 각 소수
민족마다 각각 1~10개 정도의 무장단체가 있습니다. 지금은 20~100개 정도가 있습니다. 20개 정도의 무장단체들은 전부터 군부에 대항하여 싸웠는데, 군사정부 시대인 2000년 이후에는 평화협정을 맺어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지금은 다시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지역주민이 사망하게 되자 까친주와 까 인주의 무장단체들이 투쟁에 참여해서 정부군과의 내전이 발생했습니다.

헤이만 │ 군부는 전투기까지 투입하고 수류탄까지 사용해가면서 시민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MC노 │ 오늘까지 희생자가 어느 정도 되죠?

헤이만 │ 4월 22일 기준으로 사망자 수가 779명, 그 중 총상 사망 건이 741건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겁니다. 실제로는 800명이 넘을 것 같습니다.

MC노 │ 남녀차별과 관련한 미얀마의 독특한 풍습을 이번 싸움에 활용한다고 들었어요.

헤이만 │ 미얀마는 남녀차별이 좀 심한 편입니다. 파고다(절)에 가면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여자가 갈 수 있는 곳과 남자가 갈 수 있는 곳이 구분됩니다. 여자가 갈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어요. 예를들어 절에 가서 불상에 금박을 입히거나 할 때는 여자가 못합니다. 그러면 남자한테 부탁해서 금박을 입혀야 해요. 이런 것을 이번 시위에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남녀의 하의를 같이 빨래하지 않아요. 그러면 남자의 품위, 자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여자 속옷을 빨래하면 널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보이는 곳에 공개적으로 널 수가 없어요. 그러나 이번 시위에서는 군경들이 시위대를 잡으러 오니까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해 치마 거는 빨랫줄을 만들었어요. 높은 빨랫줄 위에 여성 치마를 널면 군인들이 그 아래를 지나가야 하는데 여자의 하의를 스치거나 만지고 지나가면 부정 탄다고 생각해서 그 아래로 지나가지 못하고 빨랫줄을 치운 다음에야 지나갔어요. 빨랫줄이 바리케이트 역할을 해준 겁니다.
그런데 Z세대와 시위참여 시민들은 이제부터는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며,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인
데 미얀마의 남자들이 머리에 여성 치마를 두르거나 몸에 걸치고, 또 입은 사진들을 SNS에 많이 올렸습니다.

MC노 │ Z세대가 시위뿐만 아니라 미얀마에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 있군요. 군부가 저지르는 만행이 국제사회에 큰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말씀해 주세요.

헤이만 │ 군부가 1988년에 했던 짓을 똑같이 벌이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사람들을 분열시키려 하고, 미얀마는 다민족국가인데 인종적으로도 차별하며 버마족과 소수민족을 이간시키고 있어요. 시위대를 잡아다 고문하며 여성들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있어요. 오늘 아침에는 삐퇀시베다운이라는 지역에서 경찰서를 불질렀는데 범인을 잡아내기 위해 두 살짜리 아이가 보고 있는 가운데 부부에게 고문을 가했어요. 아이를 인질로 해서 자백하도록 강요한 거죠. 결국 실토하고 잡혀갔는데, 그 아이는 엄마, 아빠 이름을 계속 부르며 울고 있답니다. 시위 사상자 중 10~20대가 40%에 이를 정도로 젊은 사람들이 많아요. 지지난주 양곤에서 시각, 청각장애인이 사는 곳을 군부가 점령해서 반격을 못하게 인질로 삼고 인간 방패로 썼어요. 꺼떤에서는 대학생들이 시위를 많이 했고, 잡혀가서는 고문을 당하고, 여성들은 고문 트라우마가 심각해서 말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고 해요. 모래주머니로 바리케이트를 만들었는데, 총을 겨누며 동네 사람들에게 그걸 치우게 합니다. 발로 차고, 때리고, 여성을 폭행하고, 너무 심각한 고문을 가하고 있습니다.
국영방송에 나오는걸 보면 체포당했던 사람들의 얼굴이 엉망이고, 밤에 잡혀갔는데 아침에 시신 가지러 와라 이런 통보를 받아요. 어떤 사람들은 잡혀갔는데 생사가 불분명해요. 민간의 재물을 가져가고, 식당에서 먹고는 음식값을 내지 않고 다 파손시키고, 아무 이유도 없이 길가에 주차된 차량이나 자전거를 부수고 하는 영상들이 많이 올라옵니다. 군인들이 긴 시간 동안 군대에서 고통을 받아와서, 세상에 나와 보니 민간인들이 자기들보다 더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무 이유없이 분노를 폭발시킨다고 보고 있죠.

MC노 │ 지금 미얀마 국민들이 원하는 건 무엇인가요?

헤이만 │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구금된 지도자들이 석방되며, 민주주의를 달성하고 민주주의에 기반해 국민통합정부가 성립하는 것이 국민들의 목표입니다. 저희가 1988년과는 다른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기 때문에 쿠데타에 대한 저항이 성공할거라고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시민불복종 운동도 더 강화되고 있고, 시민방위군이 생기면 시민들도 합류해서 저항하겠다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민툰 │ 민족연합이 우선입니다. 풀리지 않는 민족 간의 화합이 필요한데, 이번 쿠데타에 대한 저항에 소수민족이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민족통합국가를 만들자는 생각입니다. 소수민족의 입장을 서로가 이해하고 평화협정을 맺어 1947년에 아웅산 장군이 추구한 그런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헤이만 │ 미얀마는 불교국가여서, 이번 쿠데타에 대한 종교 지도자의 명확한 입장을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유혈진압이 심해지고 사망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애매모호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것에 대해 젊은이들의 신뢰가 깨지고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한국 불교계는 많이 지지하고 연대해주셨는데요.

MC노 │ 아웅산 장군은 어떤 분이십니까?

민툰 │ 아웅산 장군은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배운 사람인데도 젊은 나이에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나라를 위해 일하신 분입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영웅 중에도 길이 이름을 남긴 분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MC노 │ 미얀마는 다민족 국가여서 민족별로 평가가 조금 다르지 않나요?

민툰 │ 아웅산 장군은 민족통합을 이뤘기에 모두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그
분의 딸인 수치 여사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또 하나, 미신 문제를 잠깐 말씀드릴게요. 1983년 아웅산 묘역 테러가 일어났을 때에 미신을 믿는 네윈이 제 시간에 국립묘지에 가지 않았어요. 미신을 많이 믿고 있어서 늘 일찍 가거나 늦게 가거나 하지, 제 시간에 가지 않았어요. 네윈 장군이 도착하기 전에 폭탄이 터져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 지금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의 장군들도 미신을 많이 믿고 있습니다. 특히 목요일에 ‘ㅁ’으로 시작하는 도시에서 늘 유혈진압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의 머리에 총을 맞고 죽었습니다. 지금 장군 이름이 미엉라잉으로 ‘ㅁ’으로 시작합니다. 어떤 점쟁이가 시위대의 머리에 총을 쏘면 시대를 바꿀 수 있다고 하니, 저격수를 배치해서 머리만 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망자가 많이 나왔어요.

헤이만 │ 더욱 충격적인 것은 스님이 점을 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거죠. 종교인의 이런 행동에 더욱 강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MC노 │ 행동하는 미얀마청년연대의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요?

헤이만 │ 저희는 유학생과 근로자로 구성되어 있어요. 한국에도 여러 단체가 있고, 민주화운동을 하는
단체도 많이 있습니다. 저희는 시민단체로서 작은 역할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기자회견, 추모회, 기도회 등 종교단체들과의 연대활동을 해왔습니다.

민툰 │ 미얀마에 대한 소식을 한국과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클
럽하우스에서 미국, 영국, 한국 사람들과 미얀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미얀마에 대한 소식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부가 빨리 유혈사태와 진압을 멈추고 협상할 수 있는 날까지 계속하겠습니다. 또한 쿠데타가 수습되고 나면 미얀마의 복원에도 힘쓸 생각입니다.

MC노 │ 한국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연대활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헤이만 │ 후원금 모금인데, 해외주민연대 KOCO를 통해서 참여해주시면 됩니다. 다음에는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릴레이 영상을 만들어서 KOCO에 보내주면 됩니다. 그러면 저희가 영상에 미얀마어 자막을 넣어서 현지 커뮤니티와 공유합니다. 그 외에도 일요일마다 인사동에서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1시 반까지 침묵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한국의 지지자들이 함께 와서 연대해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엽서와 마스크를 제작해 판매하고 있는데,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민툰 │ 한국인들이 많은 후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고등학교에 가서 미얀마 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면 많은 학생들이 지지하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줘요. 이걸 미얀마에 전하면 큰 힘이 됩니다. 시위에 앞장서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한국 사람들의 지지가 많은 힘이 됩니다. 후원금을 보내는 것도 좋고, 세손가락 경례 사진을 찍어 올려주고, 응원 메시지를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김민철 │ 미얀마는 공무원에게 주택이 보장되어 있는데, 정년 후에도 계속 살 수 있어요. 군부에 반대하면 집에서 쫓겨나게 되니, 주택지원도 필요해서 후원금이 여기에도 쓰인다고 합니다. 저항이 길어지면 난민이 많이 발생할 수 있는데, 태국 근처에 난민 수용소가 세워지게 되면 그 비용도 필요하고요. 후원금이 여러 가지로 활용되리라 보입니다.

헤이만 │ 처음에는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활동을 해왔지만, 지금은 피난민 지원금, 시위대 보호장비 구입, 의료비 등에 지원할 것입니다. 현재 미얀마의 의료수준이 한국에 비해서는 덜 발달해 있어서 쿠데타가 수습된 이후에는 쿠데타 때 입은 트라우마 치료에 한국의료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MC노 │ 미얀마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상할 수 없지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민철 │ 제가 헤이만씨를 초청해서 특강을 개최했는데, 특강 제목을 ‘미얀마에 귀 기울이다’로 잡았습니다. 그 이유는 1980년 광주로 돌아가서 봉쇄된 도시에 고립된 사람들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누군가 밖에서 그런 소식들을 계속 알려주고 연대의 마음을 전했더라면 조금은 힘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죠. 지금 미얀마는 길어질 싸움을 하고 있고 너무나 힘들고 지치기에 낙관적 전망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국 시민들이 미얀마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억하며 이들의 민주화투쟁을 적극 지지해주었으면 합니다.

MC노 │ 세손가락 경례를 개인 SNS에 올려주어도 큰 힘이 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많은 분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바랍니다. 미얀마 국민들의 투쟁이 승리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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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2020년 교사 직무연수 운영, <박물관에서 만나는 교과서 사료 읽기>

식민지역사박물관은 현직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직무연수, 〈박물관에서 만나는 교과서 사료읽기〉를 주관했다. 이번 연수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현대사 자료들 중에서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사료들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편성됐다. 참여한 교사들은 모두 5차에 걸쳐 ‘니시키
에’, ‘일출신문조선쌍육’, ‘애국반회보’ 등 일제의 선전 자료와 친일, 강제동원으로 대표되는 과거사 청산 과제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10월 27일(화) 진행된 이번 연수의 첫 프로그램, 「니시키에로 본 청일전쟁과 지워진 역사」에서는 강효숙 원광대 교수가 강사로 나섰다. 니시키에(錦絵)는 근세 일본의 풍속화 우키요에를 모태로 탄생한 회화 장르로, 18세기 후반부터 메이지 시기까지 유행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반면,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침략주의를 고취시키고 선전 미술로 활용되는 등 어두운 양면을 가진 예술이기도 하다. 강효숙 교수는 니시키에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에는 조선과 청나라를 ‘야만’으로 격하하고 제국주의적 침략을 본격화한 ‘청일전쟁’이 니시키에를 통해 다시금 조망됐다.
강의를 마친 후 수강생들은 박물관 상설전시실을 방문, 「조선안성도격전지도朝鮮安城渡激戰之圖」 등 청일전쟁 관련 니시키에를 관람했다. 아울러 박물관은 강연장 내에도 10여점의 니시키에를 별도 전시하여 수강생들의 학습과 체험을 도왔다. 이러한 실물 사료 체험에 대해 수강생들은 필요한 부분을 기록하고 때로는 설명을 청하기도 하며 높은 열의를 보였다. 박물관은 앞으로 이어질 연수에서도 사료를 실제로 감상하고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편성할 예정이다.
올해 직무연수는 11월 24일까지 이어진다. 2주차 「일출신문 조선쌍육으로 본 일제의 강제병합과 왜곡된 역사 인식」에서는 놀이, 삽화 속에 담긴 일제의 침략 의도를 분석해본다. 3주차 「친일 관련 사료와 디지털아카이브 활용방법」에서는 방대한 일제강점기 사료군에 어떻게 접근하고 활용해야 하는지를 방법론적 측면에서 다룰 예정이다. 제4강과 5강에서는 애국반 회보와 강제동원의 실상을 사료와 사진을 통해 분석해보며 일제 지배 정책의 기만성과 식민지 폭압의 실체를 파헤친다. 다양한 시각, 이미지 자료와 피해자들의 증언 영상을 활용하여 수강생들의 학습 성취를 돕는다. 한편, 이번 직무연수와 관련된 내용은 연수 종료 이후 유튜브 및 뉴스레터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 최우현 학예실 주임연구원

목, 2020/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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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마당]

줏대있는 중립이 우리의 몫이다

조회환 한국외대 명예교수(4월혁명회 회원)

 

 

이 땅 한반도에서 오천년 역사를 일궈온 우리민족은 당연히 한반도의 토박이고 주인이다. 우리의 무사안일과 외세의 침탈로 인하여 식민지나 분단이라는 쓰디쓴 역사도 있지만, 오늘의 북한 땅이나 남한 땅 모두 한 덩어리의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갖은 곡절 끝에 지금은 미국과 중국 두 초강대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내 땅에 살면서 남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태도는 타파해야 하며 그 책임은 우리자신에게 있다. 우리는 이제 당당하게 주권을 찾아야 한다.
첫째, 우리 국민, 우리 민족의 주체성 확립이 선결조건이다. ‘근본이 서야 길이 생긴다’(本立道生)는 옛 성인의 말씀을 빌릴 필요가 없이, 우리가 피동적으로 남에게 끌려가거나 의탁하지 않고, 줏대 있게 사는 것은 우리의 당당한 고유권한이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세계 10위 이내 강국 내지 중견국의 지위에 있다. 자생 자립 자위에 필요할 정도의 물질적 실력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정신적으로 다시금 ‘3.1 독립혁명정신’이나 ‘사월혁명정신’을 발휘하면 확실히 ‘자기확립’이 되는 것이다. 주인다운 주인이 되려면 타자의 간섭이나 강요는 배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초강대국 사이에 끼어서 상대적으로 약소함을 비관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국들이 우리를 서로 ‘자기 편’ 또는 ‘자기와 유대관계 유지’를 바라고 있는 것은 우리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인식의 반영임으로, 우리의 지혜 있는 대처가 ‘중요도’의 수준을 결정할 것이다.
둘째,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강대국들이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싸우고 말고는 우리와 상관없다.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설에 의하면 기존 강대국과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은 전쟁으로 승부를 겨루는 경우가 ‘많다’는 설인데, ‘꼭 싸운다’는 말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런데 요즈음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긴장이 된다. 그 이유는 ① 우리가 미국의 ‘동맹국’이기 때문에, 미중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동맹관계를 파기하지 않는 한, 자동적으로 미국과 함께 총을 들어야 하고, ② 내 땅에 주둔한 미군과 미군기지는 유사시 중국 측의 일차적인 타격 표적이 되어 미군도 다수 희생되겠지만, 우리의 인명과 땅 그리고 재산의 손실은 가공할 수준일 것이므로 우리도 마땅히 반격하게 되어 중국과는 중첩적으로 적이 되는 것이다. 이웃사촌과의 불화는 없어야 하는 것이다. 두 강대국이 자기들의 생존을 위하여, 서로 상대방의 본토 공격은 두려워서 전면전은 피하겠지만 주변지역, 특히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국지전의 위험은 있다. 왜 남들이 자기 땅은 놓
아두고 내 땅에서 싸우는가? 우리는 당연히 ‘반대’ 또는 ‘동조거부’ 자세를 취해야 하며 그러면 외세는 다른 편법을 찾거나 평화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셋째, 국제평화를 위해 우리가 중심을 잡자. 더러는 한미동맹만 굳건하면 미국의 위세 때문에 ‘무사태평’할 것으로 착각하고 말끝마다 ‘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라는 말만 앞세운다. 외세의존이 생리화된 심상의 노출이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가 영원히 의탁하기엔 ‘남이라는 한계’가 있고, 또 미국도 이미 중국 러시아와 더불어 3대 군사강대국중 하나일 뿐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력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비교의 기준은 여러 가지 측면이 있다. 대칭적으로 비교하면, 핵무기의 경우 미국이 6천개 중국이 4백 개 정도라니 15대 1이다. 그러나 차이에도 불구하고 파괴력의 무섭기는 똑같아서 비교가 무의미하다. 또 비대칭적으로 보면 여섯 배나 많은 미국의 항공모함 수는 중국의 뚱펑-21, 26 등 ‘항공모함 킬러’ 앞에서는 이미 한물 간 무기라고 중국은 주장한다. 어떻든 전쟁은 서로 무서울 수밖에 없다. 설령 미국이 다소 비교우위에 있다 하더라도 전세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중국 격언에 “아무리 강한 용이라도
현지 토박이 왕뱀을 제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미국은 원거리 원정이라는 공간적 불리함 때문이다. 월남전 등에서 미국이 패한 것은 약해서가 아니지 않는가? 이제는 우리가 중심국이 되어 전쟁은 말리자는 것이다. 사실 과거 열강들은 식민지화를 당연시해왔고 현지 민간인 대량학살이나 노예화는 다반사가 아니었던가 ! 이제 우리나라는 중견국이 되었고 또 국민의 결기도 대단하지 않은가! 우리가 일어서는 한 어느 나라도 단독으로는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는 위치이다. 우리의 자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강대국들의 ‘경계적 관심’도 그렇게 만든다. 그래서 중심만 잘 잡고 중지를 모으면 더욱 확실하게 ‘세계의 중심국’까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부턴 세계의 스포트라이트(the Spotlight)를 받아가며 강대국들의 헤게모니 쟁탈행위를 막고 평화공존의 길로 가도록 견인할 책무와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넷째, 이제 강대국들에게 ‘잘못된 과거사’의 해결을 촉구하자 한반도의 분단은 미국의 제안과 러시아(당시 소련)의 동의에 의하여 결정된 것이다. 원래 분할한다면 패전국이자 전범국인 일본을 분할 점령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상하게도 우리 땅 남과 북을 분할 점령하였으니 미소 양국이 애당초 잘못했던 것이다. 북한의 남침을 개탄하지만, 분단되지 않았다면 남침은 없었을 것이다. 러시아군은 일찍 철군했지만 그 대신 인접한 중국이 한국전에 개입했고, 미군은 한국의 ‘동맹국’이라는 새로운 지위로 인해 한국주둔을 계속하고 있다. ‘안보’라는 이유로 ‘어떤 조건’ 동안 ‘장기 주둔’을 이해할 수 있으나 ‘너무 장기주둔’을
‘허용’하거나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분단의 폐단은 ‘통째 점령’ 보다 결코 더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일제 때는 맨 북쪽의 함경도와 평안도민부터 맨 남쪽의 전라 경상 제주도민까지 알게 모르게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하여 서로 사랑하면서 국내외에서의 의병전투나 독립투쟁 등 대일항전을 하던 국민일체감이 살아있었다. 지금은 남북 동포간의 적대관계라는 ‘민족 내부의 불행’과 ‘외세에 대한 부담’이라는 2중의 장애에 직면해있다. ‘분할통치’(divide and rule), 그것은 제법 식자연할 용어이지만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인 ‘간악한 이간질’이며, 이간시킨 자는 손쉽게 ‘이간당한 자들’을 조종하니 우리의 비극은, ‘외세의존’에 타성(惰性)화된 자기망실 상태에 있으며 이대로 가면 거의 ‘영구적’으로 지배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묶은 자라야 (묶인 자를) 풀 수 있다’(結者解之)는 말은 지당한 얘기이다. 묶은 자가 풀어 주지 않는다면, 풀어줄 만한 제3자라도 있어야 하는데, 있기도 쉽지 않고, 있다 해도 ‘묶인 자’의 요청과 ‘묶은 자들’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묶은 자들을 향해서 풀어달라는 요구를 끝까지 관철하는 것이 관건(關鍵)이다. 국제정치에서는 ‘힘이 곧 정의’라는 악담이 난무하지만 ‘정의’가 꼭 없는 것도 아니고, 만약 없다면 있게 해야 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미국주도의 평화체제(Pax Americana)가 오래이다 보니 결함도 많았다. 그러나 이 체제의 핵심도 원래는 ‘평화’가 먼저이고 ‘주도권’ (hegemony)은 그 다음이다. 그 점도 미국에게 일깨워주어야 한다. 상생하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중심국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무이다. 동시에 “단계적인 평화통일”이건 “연방제 평화통일”이건
남북은 자주적으로 허심탄회 얘기하여 통일된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통일의욕을 상실하고 분단생활에 안주하여 나몰라하면 점점 더 잘게 분열하고 콩가루가 되어 결국은 남의 손쉬운 먹이가 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는 통일을 이루어 더욱 확실하게 줏대있는 중심국이 됨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국제평화도 주도해야 될 것이다.

수, 2020/12/3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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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효창독립커피 4탄 김창숙 커피, 5탄 지청천 커피 출시

 

연구소는 일상 속에서 독립운동가를 기억하고자 효창독립커피를 기획하여 4월 차리석 커피를 시작으로 이상룡, 권기옥 커피에 이어 12월 24일부터 김창숙 커피와 지청천 커피를 선보인다. 김창숙 커피의 디자인은 국외 독립운동유적지를 찾아 알리고 있는 사진작가 김동우 회원이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안에 있는 김창숙 선생 동상을 촬영했으며 한글 글씨는 이진경 작가가 써주었다. 지청천 커피의 디자인은 이윤엽 판화가가 제작했다. 효창독립커피 구입은 hyochangmall.com(효창몰)에서 가능하다.

수, 2020/12/3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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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우리 지역의 일제잔재를 찾아라> 역사부교재 발간

 

지난 12월 경기도, 지역사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이 함께 친일청산 교육부교재 개발을 위해 공동 작업을 진행하여 <우리 지역의 일제잔재를 찾아라>(전5권)를 발간하였다. 2019년 경기도가 추진하고 우리 연구소가 조사연구를 맡아 진행한 <경기도 친일문화잔재 조사・연구> 사업의 성과를 토대로 학교현장에서 교사들에게 필요한 부교재를 만들어 보급하고자 하는 취지에서였다.
경기도의 일제잔재는 크게 인적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친일인물’과 물적 잔재인 ‘친일 관련기념물’을 대상으로 하였다. 경기도 출신 ‘친일인물’ 선정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를 근거로 하였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4,389명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선정한 1,006명의 반민족행위자 가운데 경기도 출생・출신자는 모두 267명이다. 이들의 주요 경력에 따라 매국・귀족, 일제 통치기구 협력자인 관료・중추원・법조인, 경찰・군인, 문화계, 예술계 친일인물 등 6개 영역으로 분류하였다. ‘친일 관련 기념물’은 일제강점기 건축물, 친일 인물의 기념비·송덕비, 그 외 기념조형물 등 71개를 조사하였다. 역사부교재는 경기도를 4개 권역으로 나누어 일제잔재를 소개하고, 일제잔재 청산의 방법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도움 자료를 함께 실었다. 전체 구성을 살펴보면 먼저 1권은 일재잔재의 개념과 유형별 분류를 제시했고, 친일인물 가운데 경기도 내 지역을 특정할 수 없는 인물들과 친일 관련 기념물 중 경기도의 신사(神社) 해설, 학교생활 속 일제잔재와 그 청산 사례를 소개했다. 그리고 2권~4권은 동부, 남부, 서부・북부 4개 권역별로 친일인물, 친일 관련 기념물, 교수-학습과정안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5권 사료편에는 친일인물 근거 사료, 친일파 관련규정・법령과 분야별 사료 해제, 친일 문제 이해를 돕는 논문과 참고문헌이 실려 있다.
이 역사부교재는 경기도 소재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이 직접 집필하였다. 이 부교재가 학교 현장에서 지역의 일제잔재를 둘러싼 다양한 토론장을 만들어 내고, 친일 청산의 대안과 실천을 마련해 나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역사부교재는 경기도 소재 1100여 곳의 중・고등학교에 배포되었고, 전권 PDF는 식민지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다.

• 김승은 학예실장

월, 2021/01/2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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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지부, <한 시대 다른 삶> 만화와 웹툰으로 제작

 

 

부천지부(지부장 박종선)는 2020년 경기도 문화예술 일제잔재 청산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삶-웹툰 ‘한 시대, 다른 삶’>을 웹툰과 만화로 제작하여 보급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친일과 항일의 각각 다른 길을 걸었던 역사 인물들을 비교하여 독립운동가의 애국정신을 우리 공동체의 가치로 재인식함과 동시에 사회 일각에 여전히 존재하는 식민지배 미화 등 반역사적 행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다는 취지이다. 이 사업에는 전국시사만화협회(회장 최민) 소속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만화에 등장하는 역사 인물과 작가는 다음과 같다. 신석구・정춘수(최승춘), 한용운・강대련(하재욱), 차미리사・김활란(성덕환), 신채호・최남선(정태권), 여운형・김성수(국태이), 지청천・이응준(최인수), 안재홍・방응모(최승춘), 조명희・김동인(전진이), 이육사・서정주(오금택), 한형석・현제명(서상균). 각 작품마다 전문가의 감수를 받아 작품의 수준을 높였는데 강태구(한국음악연구소 연구원) 김승태(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 박광종(연구소 선임연구원) 이순우(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준식(독립
기념관장) 장신(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장원석(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학예실장) 한상권(덕성여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했다. 470쪽 분량의 2권으로 제작된 이 만화는 경기지역 모든 초·중·고등학교 2,400곳에 무상으로 보급되었으며 조만간 부천지부사이트(minjok21.kr)를 통해서도 웹툰 형식으로 공개된다.

• 방학진 기획실장

월, 2021/01/2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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