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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일본에 있는 ‘경남 기념물 1호’ 유물, 반환운동 다시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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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일본에 있는 ‘경남 기념물 1호’ 유물, 반환운동 다시 해야”

admin | 수, 2021/05/26- 02:13

진주 옥봉고분군 관심 고조… ‘가야고분 유네스코 등재 추진’ ‘경남도의회 결의안” 계기

▲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인 “진주 옥봉고분군”. ⓒ 윤성효
▲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인 “진주 옥봉고분군”. ⓒ 윤성효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를 아시나요. 그곳에서 나온 유물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진주 옥봉고분군’이고, ‘일본 동경대학 박물관에 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과 경남·경북·전북도가 가야시대 고분군(7개)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하고, 경남도의회에서 ‘국외 소재 문화재 환수 촉구’를 결의한 가운데, ‘경남 기념물 제1호 진주옥봉고분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대상은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창녕 교동·송현동, 고성 송학동, 합천 옥전, 전북 남원 유곡·두락리,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다. 진주 옥봉은 들어 있지 않다.

가야 고분군 등재’를 위한 신청서는 올해 1월 유네스코에 최종 제출됐고, 3월 ‘완성도 검사’를 통과했으며, 202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경남도의회는 지난 20일 열린 임시회에서 ‘국외 소재 경남 문화재 환수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일제강점기 등에 반출돼 국외에 소재하는 문화재는 22개국 20만 4693점에 이르고, 일본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경남지역에서 나온 문화재 가운데 국외 소재는 680여 점이다.

결의안은 “유네스코를 비롯한 관련 국제기구와의 논의 등을 통해 국외소재문화재 실태파악과 문화재 환수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국외소재문화재 환수를 위해 지원할 수 있는 특단의 방안을 강구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고 되어 있다.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던 표병호 의원은 “불행했던 과거사를 치유하고 인류문화 복원을 위해서 우리 문화재를 제자리에 되돌려놓는 시대적 소명을 실천할 때이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경남 기념물 제1호’부터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석영철 진보당 경남도당 지방자치위원장은 “역사를 잊고 헛된 꿈을 쫓지 마라고 했다. 가야사 공부를 하면서 섬뜩섬뜩 놀랄 때가 있다”며 “가야 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좋지만, 일제가 약탈해 간 ‘경남 기념물 1호’에서 나온 유물부터 찾아오는 게 더 시급하다”고 했다.

강호광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장은 “몇 해 전 일본에 갔을 때 동경대 박물관을 찾아간 적이 있었고, 진주 옥봉고분군 유물은 전시되어 있지 않았으며, 수장고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인 “진주 옥봉고분군”. ⓒ 윤성효
▲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인 “진주 옥봉고분군”. ⓒ 윤성효

도굴에 가까운 발굴… 1974년 기념물 지정

진주 옥봉고분군은 가야국 지배세력의 무덤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진주 옥봉과 수정봉에 걸쳐 있다. 옥봉·수정봉 정상부와 능선을 따라 모두 7기의 큰 무덤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3기 무덤만 남아 있고 그 중에 옥봉에 있는 1기가 ‘경남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돼 있다. 기념물 지정은 1974년 2월 16일.

도시화로 옥봉·수정봉 정상부까지 집들이 들어서 있다. 나머지 고분 가운데 일부는 주택 마당에 있기도 한다.

7기 가운데, 수정봉 2·3호와 옥봉 7호가 일제강점기 때 발굴 조사됐다. 일본인 학자(세키노타다시)가 1910년에 그야말로 도굴에 가까운 발굴조사를 했던 것이다.

당시 조사 내용은 <조선고적도보>에 실려 있고, 간단한 실측도와 함께 유적, 유물의 사진과 간략한 설명이 담겨 있다.

당시 이곳에서는 ‘철제 말갖춤’과 각종 토기류, 가락바퀴, 구슬, 철칼, 도끼, 재갈 등이 나왔다. 3기 가운데 2호분과 7호분의 출토 유물이 동경대에 있는 것이다.

이 무덤은 전형적인 가야의 돌방(석실) 무덤으로, 6세기 전반에 만들어졌다. 학계에서는 이곳이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가야문화의 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곳으로 평가하고 있다.

일본에 있는 옥봉고분군의 유물의 반환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오래 전 진주에서 나오기도 했다. 1994년 진주시의회에서는 의원들이 몇 차례 질의하면서 제안했던 것이다.

당시 진주시의원들은 옥봉·수정봉 고분군의 ‘석실 복원’ 등을 제기하기도 했고, 일본에 문화재 반환을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인 “진주 옥봉고분군”. ⓒ 윤성효
▲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인 “진주 옥봉고분군”. ⓒ 윤성효

세계문화유산 등재 포함은?

현재 진주 옥봉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대상 포함과 일본에 있는 유물 반환 추진이 가능할까.

경남도 관계자는 “출토 문화재는 현재 동경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안다”며 “문화재 반환은 외교적 문제가 지자체 차원에서 나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민간 영역에서 환수운동을 하면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련 조례가 있어, 민간 영역에서 구체적인 운동이 일어나면 내년에 지원 계획을 세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대상 포함에 대해, 경남도 관계자는 “현재 진주 옥봉고분군은 포함돼 있지 않다. 등재 대상은 2012년~2013년부터 진행해서 여러 학술 연구조사가 이루어져 진행되고 있으며, 옥봉고분군을 끼워 넣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했다.

경남도 김수한 학예사는 “2019년 경남도에서 지원해 ‘비지정 가야 문화재 연구사업’ 했을 때 옥봉고분군은 정밀 지표 조사를 했고, 당시 7기 무덤의 위치를 확인했다”며 “고분 보존 정비를 위해서는 향후 더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인근 민가로 인해 전체 고분군이 훼손됐다. 민가가 없는 구역은 문화재 지정을 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분 성격 규명과 가치를 알리기 위한 연구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고분 명칭과 관련해 그는 “도 기념물 제1호는 ‘진주 옥봉고분군’으로만 되어 있다. 수정봉과 함께 명칭을 사용해 ‘진주 옥봉·수정봉고분군’으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인 “진주 옥봉고분군”. ⓒ 윤성효
▲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인 “진주 옥봉고분군”. ⓒ 윤성효

<2021-05-2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일본에 있는 ‘경남 기념물 1호’ 유물, 반환운동 다시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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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8/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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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사 작곡 교가·일본신사 잔재 등…교육청 “후속 조치는 자율”

친일 인사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학교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 지역 학교에 대한 일제 잔재 조사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15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지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52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 81건의 일제 잔재 사례가 파악됐다.

이 중 22건은 친일 작사가나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 사례였다.

특히 ‘섬집 아기’와 ‘봄이 오면’의 작곡가로 유명한 이흥렬이 만든 교가도 7개 학교에서 사용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일본음악의 수립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화악단 지휘자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또 다른 친일 인사인 김동진이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도 6곳에 달했다. 김씨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 활동을 했다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친일 인사의 동상이나 일본 신사 잔재 등 일제 관련 기념물이 교정에 남아 있는 학교는 3곳으로 파악됐다.

나머지는 서운, 송월, 백마, 작약도 등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변형된 지명이 교명과 교가 가사에 남은 사례였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각 학교에 알렸으나 개선은 권고 사항에 그쳐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동문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등 내부 협의가 필수적인 만큼 교내 일제 잔재를 없애기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천황을 섬기던 신사의 돌기둥과 석등이 교정에 남아 있는 인천 중구 모 고교의 경우 별도의 시설물 철거 계획을 논의하지는 않은 상태다.

인천 연수구 모 중학교에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나쁜 역사도 역사로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철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동창회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 학교 설립자 동상을 세운 것이라 학교 마음대로 없앨 수 없다”며 “내부 검토를 여러 차례 했지만 역사를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동상을 남겨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들도 대부분 즉각적인 개선 조치에는 나서지 못했다.

친일파가 교가를 작곡한 인천 연수구 모 고교는 추후 학생, 학부모, 동문회와의 협의를 거쳐 교가 일부를 개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천 동구 모 고교도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에 대해 별다른 개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일제 잔재 조사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알리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며 “이후 각 학교의 개선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지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5> 연합뉴스

☞기사원문: 인천 학교들, 일제 잔재 남아 있어도 개선은 ‘거북이걸음’

※관련기사

☞서울신문: 친일파가 만든 교가…인천 각급 학교 일제 잔재 파악하고도 ‘개선‘ 소극적

화, 2021/08/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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