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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회과학 “지식청년시대知識青年時代”의 종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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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회과학 “지식청년시대知識青年時代”의 종언 (3)

admin | 목, 2021/05/20- 19:31

장계를 올릴 것인가 廟堂折子” 아니면 “저잣거리 객담 江湖段子을 나눌 것인가”: “경험의 돌파력”

경험연구는 지청학자가 1990년대 전력을 기울였던 과제이다. 하지만 다음의 몇가지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선, 만일 경험연구를 고무한 것이 교조화된 마르크스주의가 현실을 설명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라면 왜 1980년대에 먼저 이런 요구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일본에서는 매번 좌익지식인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야나기타 쿠니오柳田國男를 대표로 하는 민속학, 인류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되살아났다. 그들은 민속학과 인류학을 통해서 기층의 경험에 대해서 직접적인 이해를 형성했다. 하지만, 1980년대의 중국은 “실천은 진리를 경험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말이 있어도, 실천에 대한 구체적인 고찰을 가져오지 못하고 매번 이론에 대한 열기, 문화에 대한 열기만 불러일으켰다. 의도는 일종의 추상적 사상으로 새로운 거대체계를 대체하려는 것이었다.

두번째, 지청학자들은 왜 자신의 독특한 경험을 이론 자원으로 전환하지 않았는가? 1968년 구미의 학생운동은 직접적으로 20세기 서방사회과학의 발전을 낳았다. 상당수 학자들이 직접 운동에 참여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었고, 그들은 개인의 의식, 생활방식, 대중문화의 중요성 등을 친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와 국가 등의 범주에 대한 새로운 함의를 사고했다. 독일에서 나치의 발흥은 제2차세계대전을 불러왔지만, 한편으로 이것이 서방인문사회과학에 끼친 영향이 2차대전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킨 것보다 더 크다. 왜냐하면 일군의 학자들 특히 유럽의 유태인 학자들이 자신이 나치점령시기에 겪은 독특한 경험에 대해서 일련의 문제의식을 품고 깊이 사고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나 아렌트의 이론철학 사고와 같이 대단히 개인적 경험에 의존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비서구사회에서도, 남아시아학자들이 민족-국가의 이론에 대해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 그들은 민족독립운동과, 인도-파키스탄의 분할통치를 근거리에서 관찰했을 뿐아니라, 그들의 독립후 사회운동 참여 경력이 특히 그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독자들도 익숙한 타케우치 요시미竹内好는 루쉰과 마오쩌뚱에 대해서 대단히 독창적인 분석을 할 수 있었는데, 이는 특히 중일전쟁에 침략군으로 참여한 한명의 병사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경험과 연구대상의 경험간에 관계를 만들려고 하고, 이 과정에서 독특한 사상이 태어났다. 반대로, 만일 우리가 개별적인 경험을 모두 포기해 버린다면, 그래서 이런 운동과 전쟁의 처리가 거시적인 역사의 사건으로만 다룬어진다면, 이와같이 경험이 동기가 되는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왜 문화대혁명같이 특수한 경험이 새로운 일련의 사상으로 체화되지 못하는가 ? 주류 담론안에서, 문화혁명이 이미 하나의 오류라고 정리됐고, 토론의 주제는 대개 이러한 오류가 발생한 원인이다. 특히, 자유주의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문화대혁명은 비판의 대상이다. 10억명 중국인의 10년간 생활경험이 충분히 분석되지 못하고 있다. 위루오커遇羅克의 <<혈통론>>은 당시 중국판 인권선언으로 여겨져서 회람됐지만, 거의 아무도 홍위병내부의 서로 다른 그룹들이 당 고급관리의 인정을 받으려고 경쟁한 결과의 일부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았다. 이런 사고와 경험이 결합될 때만, 우리는 그 본문을 이해할 수 있고, 충분히 그 가치를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혁명에 의해서 ‘단절’된 1949년 이전의 학술전통을 계승하려고 노력하면서, 상대적으로 혁명후에 형성된 전통을 무시해왔다. 하지만 이 ‘단절’이야말로 가장 분석할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저 부정의 대상으로만 알고 있을뿐이다. 그리고 혁명전 학술연구가 생명력 넘치는 자신의 전통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 당시 학자들의 인생경험과 그들이 사용한 언어의 유기적인 연결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문서형식의 지식만을 과도하게 중시하다보니 배후의 경험과 그 경험이 된 지식을 고찰하지 못했다. 지식 자체의 누적만을 중시하고, 지식이 쌓이는 방식의 전환에 대해서는 살펴보지 않았다.

<사진5> 우리는 혁명에 의해 ‘단절’된 1949년 이전의 학술전통을 회복하고 계승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 ‘단절’ 자체가 대면하고 분석해야할 가장 가치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단절은 반동적 폐기 대상이 아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최소한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중국 주류의 전통사회사상과 아마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다른 학자들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하지만 가장 경험을 중시하는 중국문화는 서구로부터 수입된 ‘경험’이라는 분석범주를 일본어를 빌려서 서술된 것이다. 유교사상은 경험을 강조하는데 왜냐하면 ‘실천이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실천을 초월하는 신성한 준칙을 부정한다. 하지만 유교에서는 경험은 예약질서의 실시방식이고, 경험은 간섭의 대상이지 분석의 기초가 아니다. 자위자주自為自主의 범주도 아니다. 우리의 오늘날 사유를 반영하면, 이것은 경험 자체는 의의가 없다는 뜻이다. 이론의 빛 아래서만 진정한 의의를 획득하게 된다. 두번째는 지청의 사회지위와 관련이 있다. 지청은 사회주의체제내부의 불평등관계의 산물이다. 지청은 지식청년, 도시지식청년이라는 문자적 의미이외에도 농촌으로 하방되어 내려간 도시지식청년을 의미한다. 당시 그들의 우월적 지위는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박탈당했으며, 그들에게 일종의 무의식적인 지식귀족기질을 부여했다. 한편으로 그들은 마음으로 천하를 품었으나, 단순히 독서와 사고를 즐거움으로 삼고, 자신의 물질생활을 근심거리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선 자신의 위치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사고가 진정으로 천하공리를 대표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지청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그들이 정말로 농민들을 인정하고, 농민들을 이해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지청학자는 비록 수많은 관찰을 남겼지만, 자신의 위치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부족했기 때문에 관찰은 소재로 삼았을뿐 자신의 경험은 새로운 관점속에서 활성화되지 못했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낼 경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1990년대 경험연구의 첫번째 임무는 교조주의와 탁상공론에 반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 경험이라는 것은, 경제학 혹은 심지어 자연과학이 말하는 팩트와 데이터에 가까왔다. 객관성과 재현성을 강조한다. 동시에, 지청시대는 거시적 통일화 서술을 추구한다. 중국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전면적인 틀을 제공해야할 뿐아니라, 특정한 입장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서술이 폭넓게 받아들여지길 희망했다. 이렇게 경험의 개체성, 주관성, 분열과 충돌이라는 특징때문에 왕왕 소란스러움으로 간주되어 차단당하기도 했다.

<사진6> 지청시대가 추구하는 거시적 통일화 서술. 중국을 해석하기 위한 큰 틀을 제공할뿐더러, 이 서술이 특정입장만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받아들여지길 원했다.

지청학술시대의 경험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사회과학에 대해서, 특히 내가 속한 인류학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경험은 인류학의 목숨같은 것이다. 하지만 왜 경험이 이론에 우선해야 하는지, 왜 민족지에 경험을 상세히 기술하는 것을 강조하는지, 그 배후의 철학과 정치의식의 함의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비인류학자가 보기에, 인류학은 일종의 방법론에 불과하다. 필드조사와 동의어이고, 다른 학과를 위해 중국특색의 소재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족하다. 인류학자는 그래서 강조한다. 인류학의 진짜 포부는 자신의 이론 체계를 수립해서, 다른 학과와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지금의 체제화 압력하에서 원래 체재화를 가장 반대하는 성격을 갖는 인류학은 반대로 체재화를 당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자원의 획득을 꾀한다. 중국 명문대학의 인류학과 학과장들이 함께 모여 앉으면, 제일 중요한 화제는 첫째, 어떻게 국가가 정한 학과체계안에서 인류학을 2급에서 1급으로 승격할 것인가, 둘째, 어떻게 주류 담론과 긴밀하게 결합할 것인가이다 (이런 주류 담론에는 ‘조화’, ‘거버넌스’, 그리고 ‘일대일로’, 당연히 ‘중국학파’가 있다) 인류학을 선전하고 주류의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 명문대학의 시니어 박사과정 지도교수는 학부과정 신입생들에게 인류학이 어떻게 부자, 권력자를 만들고 역사를 바꾸는 사람을 키워낼 수 있는지 선전한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외국의 인류학이 역사적으로 국가정보기관과 협력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 이것은 (그런 부끄러운 학문적 역사를 갖는) 서구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중국인류학이 이렇게 발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류학의 원래 임무가, 주류가 보지 못하거나 대면하고 싶어하지 않는 다중적인 사회모순을 충분히 정확히 묘사하는 것이고, 주류의 관점으로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약자들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고, 주변화된 경험을 통해 중심부의 이론에 질문을 던져서, 모두를 주류담론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들을 거의 완전히 망각한 것같다.

인류학은 스스로를 항상 주변부에 위치시키기때문에, 전세계 어디서나 주류에 속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류학적 경험관의 발흥이 서방 현대사회과학 발전의 핵심 실마리로 간주될 수도 있다. 코넬이 지적하는 것처럼, 현재 교과서속의 소위 사회학은 서방공업사회와 근대성에 대한 대답이지만, 여전히 최근의 역사를 새롭게 서술하기 위한 것이다. 구미사회학 최초의 목표는 사실 세계성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1881년에 출판된 사회학 교과서의 제목은 “사회학: 민족지를 기초로 함”이었다. 확실히 만일 타문화에 대해서 의식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왜 자기의 생활과 실천을 고찰대상으로 삼았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처음에 이러한 세계성의 차이는 문화확산론을 통해서 특히 진화론을 가지고 해석됐다. 그래서 말리노프스키의 장기적인, 현지, 참여방식의 조사는 혁명적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문화에서의 생활경험이 진화단계의 차이로 간주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곤혹스럽게 여겨지거나 혐오스러운 생활방식조차도 나름의 합리적 이유를 갖는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지인에게 배워야 한다. 당사자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동시에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철학사변안에서는 원래, 먹고 마시고 싸고 자는 삶의 필수 행위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지만, 이런 차이가 충만한, 파편식의 개체경험이야말로 풍부한 함의를 얻을 수 있고, 부단히 새로운 사회과학문제를 발견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다른 문화를 연구하는 것이 인류학의 본질적 특징은 아니다. 반대로, 인류학은 역사의 우연한 현상에서 탄생했다. 이것은 우연히도 유럽사상가의 사람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예를 들어 칸트의 ‘내재성’ 사상은, 사회를 주재하는 역량이 외부의 신령이 아니라 사회내부에서 온다고 아는 것, 그리고 영국의 실증주의철학은 귀납적 인지론을 강조한다는 것 등) 유럽 식민운동이 겹치면서 나타난 결과이다. 만일 그런 사상이 없었다면 식민주의만으로는 우리가 지금 이해하는 인류학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식민자들이 미대륙에서 벌인 살륙, 아프리카에서 행한 노예사냥, 그리고 프랑스가 고도과학기술을 이용해 만든 이집트학 모두 인류학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 이들이 인류학을 낳은 것도 아니다.

동시에, 어떠한 학과도 사실상 다른 문화를 연구할 수 있다. 만일 학문이 주류 정치, 비즈니스를 위해서 복무해야 한다면, 다른 문화에 대한 국제무역, 비교정치, 군사관계연구가 인류학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일 것이다. 인류학이 다른 문화를 중시하는 것은, 그 ‘다름’ 자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인류학 방식의 경험이 ‘다름’에 독특한 의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은 모든 인류를 연구해야 하므로, 당연히 다양한 문화를 포괄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학 관점에서 각종 차이는 동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인류학적 관점으로는 차이는 본질적으로 마음대로 단순화될 수 없다. 다른 문화는 우리가 다른 경험에 대해서 더 민감한 체험을 하도록 하고, 더 유효하게 자기의 상황을 문제삼도록 만든다. 그래서, 만일 자기자신조차 대상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하찮아 보이는 경험까지 질문을 던져가며,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욕망이 없다면, 인류학이라고 부를 수 없다. 중국의 민족학자들은 1950년대 수많은 서남부 소수민족에 대한 훌륭한 조사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 풍부한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사회사상을 창조해 내지 못했다. 왜 그런지 우리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지청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아마도 사회학적 상상의 과잉일지 모른다. 반대로 인류학적 상상력은 부족하다. 미국 사회학자 밀스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제창했다. 즉 자기의 인생경험과 사회구조를 연구하고, 역사의 변화와 연관시켜서 이해를 하는 것이다. 중국의 지식인, 특히 지청학자들에게는 거의 타고난 능력이다. 개인 생활의 궤적이 국가의 중대한 실천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개인 인생의 의의는 국가의 거대서술안에서만 체현될 수 있었다. 이런 서술바깥에서 어떤 다른 담론체계도 의의를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서술바깥으로 벗어나는 대량의 경험은 모두 일상생활의 자잘한 요소밖에 없다. 굳이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논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 받은 것들만 계속 이야기 하는 것은 같은 틀안에서의 반복일뿐 사상적인 돌파구를 찾기 힘들다. 인류학적 상상력은 구체적인 인생경험과 곤혹스러움에서 출발한다. 자기의 경험을 살려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살려, 자신의 대안적 생활의 가능성을 상상해야 한다. 보통사람의 경험과 목소리 그 자체가 무기가 된다. 반드시 이론화가 되는 것을 기다린 후에야 사람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줄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생활속에서 역사를 만들어 나간다. 역사를 추진하다가 생활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새가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답이 있어서가 아니다” 뜻을 품은 젊은이가 기량을 발휘하는데 방향이 꼭 분명할 필요는 없다. 왜 작은 새에게 반드시 악보가 필요하고 독수리에게 ‘내비’가 꼭 필요하겠나?

중국사회과학 지청시대의 종결은 한 세대 현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분기점으로써 연대가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헤겔식 역사철학 의의상의 ‘시대’의 종언일 뿐이다. 시대는 여기서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명확한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는 운동을 의미한다. 역사의 방향에 대한 자신감을 체현한다. 역사적 사명감과 이에 기반한 집체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80년대의 신세대 80年代的新一輩”라는 한때 전 중국에서 유행하던 노래가 있었는데 (역자주 – 年轻的朋友来相会라는 곡명을 가지고 있으며, 가사중에 80년대의 신세대라는 표현이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아름다운 조국을 건설하자는 내용), 이런 시대정신의 최후의 상징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사진7> 오늘날과 1980년대의 가장 큰 차이는, 사회과학과 관료시스템의 지식청년시대가 끝나는 동시에, 이들 중 일부가 고위 정치가가 됐다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의 청년시절 사진.

후지청시대에 생물학적 나이로 규정되는 세대로는, 소위 70치링허우, 80빠링허우 등등이 우리의 시간의식을 주도하게 됐다. 평범한 일상생활이 우리의 중요한 경험이 된다. 체제화된 학술연구가 도시중산층계급과 그 자녀들이 갖게 된 중산층 신분의 채널이 된다. 공무원그룹이 전문화된 이익집단으로서 사회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도시중산층 출신의 젊은 연구자들은 일상경험에 대해서 아마 더 민감할 수도 있다. 예전처럼, 지나치게 크게 판단하고 과장된 방안의 연구방식을 제안하는 것에 더 많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고등교육을 받은 공무원도 거대한 독자讀者그룹이 된다. 그들은 이론 해설이 아니라 영감을 주는 경험을 묘사한 연구결과를 선호한다. 레거시 매체의 권위와 공신력이 하락하고 소셜미디어의 중요성이 커진다. 이들이 풍부하고 생동감있는 경험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 사회과학과 인문연구 및 기타문예형식이 서로 결합된 탐색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인터넷 쇼핑몰의 소비자들은 모두 잠재적 혁명가가 될 수도 있다. 온갖 속물적인 광고 카피의 배후가 새로운 이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모든 이가 소비자로 변하고, 모든 곳이 광고 장소로 바뀔수록, 이런 상상력이 필요해진다. 단지, 혁명의 잠재력과 새로운 생각이 외부에서 강요된 신념이 아닌, 일상생활경험내부의 모순, 소외와 다양성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지청시대에 비해서, 아마 오늘날 우리가 보다 편안하게 (자기) 경험으로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 다가서서, 다시 (자기) 경험속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후지청학자들이, 스스로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시대’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하고, 자기가 누군지 정확히 알고, 자기 문제도 정확히 파악하고, 누구를 위해서 연구하고, 누구를 위해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지금 하나의 거대한 목소리가 당신을 근심케 한다면, 당신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일필일획으로 대안적인 목소리를 그려내는 것일 것이다. 이 목소리는 아주 작고 미약하지만, 구체적 생활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벼락소리처럼, 모호하지만 바탕이 있고, 대지의 다른 구석으로부터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그렇게 함께 모여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잠재적 흐름이 된다.

(3/3)

 

샹뺘오 项飙

옥스포드대학교 인류학과

 

이글은 <<문화종횡文化縱橫>> 2015년12월호에 실렸으며, 저작권은 문화종횡에 속한다. 

원문링크

https://mp.weixin.qq.com/s/KYkgtq_1fIMIbKVCwZRY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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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팬데믹의 경제위기를 대응하고 부실한 안전망을 구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한국정부의 취약한 재정수입에 대하여, 다른백년은 MMT라고 불리는 현대금융이론이 하나의 해답을 제공한다고 판단하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MMT효과가 혁신을 통한 산업의 구조조정과 자산중심의 증세정책을 통하여 보완되어야 한다.

토마 피케티가 지적하였듯이, 제도와 이론보다는 이를 작동시키는 시대의 이념적 틀과 정치권력의 성격이 현실 속에 우선한다. 아래의 칼럼은 미국을 중심으로, MMT라는 동일한 정책의 수단에 관하여, 이를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 실물경제에 투입하는 것과 소수의 자산가를 위해 금융산업과 부동산에 투입하는 것과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전체의 요약

통화론자들을 중심으로 수십 년 간의 비판을 받아온,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용하는 것은 불안정한 것이 아니라 안정을 가져온다는, 현대금융이론의 개념이 갑자기 이를 비판하던 다양한 정치집단으로부터 찬사를 받기 시작한다: 은행 등 금융분야뿐만 아니라 특히 공화당 집단까지 칭찬일색이다. 그러나 이들이 칭찬하는 내용인즉 MMT를 지지해온 사람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현대금융이론은 경제소비활동 영역에서 수요와 실물분야에서 투자를 늘려서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적자재정을 운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에서 발전해 왔다. 그러나 오바마 시절인 2008년 은행구제와 이후 트럼프의 세율인하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 재정지원에서 발생하는 적자재정의 운용은 실물경제에 투자를 늘려 고용을 증가시키고 임금을 인상하여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부의 자금투입과 양적완화는 금융과 보험 그리고 부동산 (FIRE, finance insurance & rental)분야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MMT가 추구하는 목표와는 정반대로 이를 악용한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금융분야를 지원하고 이들이 짊어진 부채를 탕감하는 것은, 실물경제를 지원하기는커녕, 디플레를 가져오는 정책이 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비생산적이며 수탈적인 형태를 띠면서 신용과 부채만을 만들어내는 은행산업을 강화시켜 주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민간분야의 활동을 다음의 두개 분야로 분리해서 확인하여야 한다: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실물경제 분야가 임대지대, 독점지대 그리고 금융부채의 양산 속에 이루어지는 부채와 지대의 수탈이라는 금융의 망에 포위되어 있다. 이러한 활동영역의 분리를 통해 1) 고용과 생활수준의 향상을 유지하는 것에 기여하는데 정부자금을 투입하여 발생하는 긍정적 적자재정과 2)부패한 정부가 비생산적인 FIRE(finance, insurance & rent)처럼 수탈과 부채의 디플레를 초래하는 영역에 투입하는 악질적이고 만성적인 적자재정을 구분해내야 한다.

 

MMT의 본질과 정책적 목표

MMT는 다양한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서 재정을 적자로 운용해도 무방하다는 화폐이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개발되었다. 이러한 논리는 이미 1930년대에 케인즈에 의해서 공인을 받았는데 그의 개념은 사용자와 임금노동자 간의 선순환이론에 기반한 것이었다 재정적자를 통해서 공공분야의 일자리를 늘리고 수요를 촉진하여 경제활동에서 적정이윤으로 생산활동이 이루어지도록 생산품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목표는 합리적으로 완전고용 수준을 유지 또는 회복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만이 경제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MMT는 시카고 학파의 우파적인 정책을 비판하면서 1990년대에 금융분야를 경제활동 전반에 보다 실제적이고 기능적으로 결합시키려는 Abba Lerner의 기능적 금융이론과 Hyman Minsky 등 노력에서 공식적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시카고 학파를 비판하는 핵심은 Warren Mosler의 통찰에 찰 요약되어 있는데 ‘화폐발행권이 있는 나라에서는 시민들이 돈을 사용하기 전에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세금을 내기 전에 돈을 먼저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MMT는 완전고용을 성취하기 위해 경제영역에 구매력을 공급하는 수단으로 정부의 재정적자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포스트-케인즈에 속했다. 이러한 연구의 노력으로 정부의 재정적자는 민간분야의 부채가 야기하는 불안정을 안정으로 대치시킨다 것을 입증해 보였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접근으로 불경기는 정부의 적자재정으로 단순하게 치유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반면에 2008년 금융위기 과정에 미국과 유럽지역에서 거대한 재정적자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경제는 부진을 면치 못하는 반면에 오로지 금융과 부동산 분야만 활성화되었다.

경제활동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공공기업과 인프라 투자 그리고 재정적자와 시장개입을 반대한 주요 집단은 금융론자들이었다. 소위 오스트리아 그리고 시카고 학파의 금융론자들은 MMT에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정부가 재정적자로 운영되면 인플레를 유발할 것이라며, 1920년대의 독일 바이마르 시대와 짐바브웨 등에서 있었던 재정적자 사례를 들먹이면서, 정부의 재정적자를 자유시장에 대한 개입이라고 묘사한다 (MMT는 실제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과 개입을 추구한다).

MMT 학자들은 정부가 흑자재정 또는 균형재정을 이루면 경제활동에서 발생한 수입을 흡수하게 되고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를 축소시키면서 실업을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적자재정을 시행하지 않으면, 경제는 민간분야의 은행에서 대출에 의존해야만 비로소 성장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고 판단한다.

이런 사례로 실제 미국에서 클린턴 행정부시절의 말기에 흑자재정을 시현했다. 그러나 정부가 흑자를 보인 반면에 민간분야에서는 부채가 누적되었다. 정책적 측면에서 보면,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서는, 무역에서 흑자를 시현하던가 아니면, 민간분야에서 부채를 누적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구조화되면 이자와 상환의 부담으로 불경기가 찾아오고, 궁극적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나타난 것처럼 만성적인 불황과 부채에 의한 디플레라는 정치적 부담을 맞이하게 된다.

 

적자재정과 MMT를 반대하는 공화당과 금융분야

정부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적자재정을 통해 충분한 구매력을 제공하지 못하면, 화폐와 신용을 제공하는 역할이 은행으로 넘어가면서 이자와 수익을 위하여 은행들은 주로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채권 구매에 신용대출을 발생시킨다. 이런 측면에서 은행들은 정부와 경쟁관계를 형성하면서 사용목적에 상관없이 경제활동에 자금과 신용을 대여한다.

은행들은 정부가 단순히 화폐를 공급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금융과 가격정책, 조세와 기업을 규제하는 법규제정 활동에서 퇴출되기를 원한다. 금융분야는 정부가 필요보다는 정책적으로 자금이 부족하거나 외환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자금을 제공하면서, 이의 대가로 자연자원 또는 기초공공 인프라를 사들이면서 공공재를 독점하려고 의도한다 (과거에는 전쟁과정에서 그러했고, 현재에는 외채상황을 이용한다)

이러한 지위를 획득하려면 은행은 정부가 필요한 자금을 스스로 만드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민간은행들의 신용제도와 공공영역의 자금창출력 간에 충돌이 발생한다. 공공자금은 기본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성장을 유지하려는 사회적 목적으로 집행된다. 그러나 민간은행의 신용은 토지와 금융자산의 거래, 즉 부동산과 주식 그리고 채권에 집중된다.

 

적자재정의 운용을 반대하는 논리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시절에는 적자재정을 운용하였는데, 이는 사회적 지출을 위해서 지불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세금인하와 특히 부동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안전망을 위시하여 의료와 교육 등에 지출할 예산을 삭감하는 것을 재정절감이라며 시행하였다. 이러한 목표는 클린턴과 오바마 시절에 더욱 노골화되어 ‘책임있는 재정의 개혁을 위한 국가위원회 National Commission on Budget Responsibility & Reform’ 이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이름이 반영하듯이 책임은 균형재정을 뜻하며, 결국 사회지출 프로그램의 축소를 가져왔다.

정부지출 프로그램을 반대하는 그룹은 재정지출을 축소하고자 하는 정치적 집단을 이용하여 재정적자에서 오는 정부부채의 증가를 비난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공화당파와 중도적인 민주당파들은 오랫동안 사회안전망을 축소시켜야 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이런 배경으로 오스트리아와 시카고의 금융학파들이 정부로 하여금 활동을 축소시키고 가능한 역할을 민영화하여 시장이 자원을 배분하도록 촉구하고 나섰다.

이후 대규모의 부채를 발생시킨 금융업계는 자원과 자금의 할당을, 정부에서 금융분야로, 워싱턴에서 월가로, 다시 외국으로 진출하여 런던과 파리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중권가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이들은 군사비 지출에 대해서는 일체의 바판을 행하지 않았고, 급기야 정부는 2000년 닷컴버블과 2008년 불량부채의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결국 경제의 신용과 자산분야의 구제를 위해 거대한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였다.

 

MMT를 악용한 오바마와 트럼프의 금융구제 정책 사례들

MMT 지지자들과 포스트-케인즈 경제학자들에게 적자재정의 긍정적 역할은 자금을 ‘경제’의 수입을 위하여 투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경제’라는 것은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실물분야를 의미하는 것이지 금융과 부동산 시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실물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 중 하나는 부채규모를 현실적인 시장가격과 임대수준에 맞추어 축소시키는 것이다. 다른 방식은 돈을 대주고 지원금을 제공하여 채무자인 시민들이 자신의 주택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금융문제의 현안을 해결하고 고용과 주택보유를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지지자들을 두 번씩이나 배신하면서, 금융권의 불량대출과 기타부채를 연장시키면서, 현실적인 시장가격으로 조정하는 대신에, 불량대출(사기적인 행위)을 야기시킨 은행들을 지원하고 구제하였다.

은행이 새로운 신용을 창출할 수 있도록 재무표를 경감시켜주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자신이 신용을 창출하는 역할에 발을 담았다. 이를 통해 은행과 그림자 은행 그리고 비은행 금융기관들에게 황금을 만들 기회를 제공하면서 이들에게 저당잡힌 주택들을 다시 사들여 임대부동산을 활성화시켰다.

이러한 정책은 Blackstone사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금융의 위기는 오히려 지분 참여자들에게 엄청난 배당을 가져다 주는 기회로 바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경제적 양극화가 이루어지면서 이런 기회에 참여하려는 투자자의 지분참여 최저액이 5백만 불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연방준비제도가 시행한 양적완화 액수인 4.6조 달러는 실물경제에 자금을 창출하지 못했고, 마치 알라딘의 램프가 오랜 된 것에서 새 것으로 바뀌는 것처럼, 불량자산이 양질로 교체되는 기술적 스왑을 이루었을 뿐이다. 이러한 스왑은 저축이 유입되는 것과 같다. 은행으로 하여금 주식과 채권시장에서 능력이 없는 자들을 갈아 치우고, 새로운 채무자에게 대부를 제공하는 재무적 투기를 시행한 것이다. 월가는 MMT를 핑계로 악용하여 실물경제를 살린 것이 아니라 금융자산을 부풀린 것이다.

경제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소수의 1% 또는 10%에게 경제라는 것은 시장이며, 특히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부동산, 주식과 채권)의 시장가치를 의미한다. 이런 자산이 실물의 생산과 소비경제를 포위하면서 임금과 이익에 비례하여 점차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올려간다.

또한 이들의 가치는 정부의 지원과 신용창출(부동산과 금융자산에 대한 세금축소), 경제적 지대, 재무적 수수료와 이자 그리고 서비스 비용 등으로 부풀려 지는데, 이러한 증가가 마치 실물경제에 기여한 것처럼 GDP의 일부로 계상된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개의 경제영역을 다루어야 하는데, 하나는 생산수단과 유동자산 그리고 노동의 영역(이는 일반적으로 GDP로 측정된다)과 금융 및 부동산으로 노동과 실물자본에 의해서 발생한 수입에서 지대비용을 수탈해 가는 영역으로 구분해야 한다.

금융조작이 산업성과를 대체해 가는데 이는 정치적 로비과정을 통해 세금을 인하시키고 지대에 대한 특혜를 제공받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면서 이루어 진다. 부동산과 금융자산 그리고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증대시키기 위해, 이들은 신용과 정부의 지원을 유도해 내는데 이는 생산과 고용을 증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식의 바이백과 배당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주가를 올리는 것이다. 바이백은 소위 ‘자본되사기’로 불리며 투자확대가 아니라 투자축소에 해당한다. 이는 세법에 의해 선호되는데 배당금에 대한 과세에 비교하여 자본이익에는 세금인하 내지 면세가 적용된다.

 

오용된 MMT의 사각지대: 실물경제가 아닌 투기적 FIRE 영역

FIRE 영역과 생산-소비의 실물경제 간의 표면적 착시현상은 전통적 금융공식인 MV=PT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형태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에 의하면 경제는 단순히 민간과 정부의 영역으로만 구분된다. 무역분야인 국제수지균형을 별도로 하고, 정부가 지출하는 것은 국내경제에 자금을 대는 것이고 반대로 재정흑자는 자금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의 문제점은, MMT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정부가 FIRE 및 금융자산의 영역에 지출하는 것과 간접자본투자를 포함한 실물경제의 고용과 생산에 투하하는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이 없으면 고용과 생산활동을 지원하는 생산적인 재정지출과 단순히 금융자산을 지원하는 것을 구별하여 확인할 수가 없으며, 후자의 경우 신용제공자의 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보장하는 과정에서 상환이 불가능한 채권에 대해 정부의 자금을 밑빠진 독에 쏟아붓는 꼴이 된다.

금융분야를 지원하고 이에서 발생하는 악성 부채를 변제하는 것은 실물경제에 긴축을 가하는 것을 의미하며, IMF식으로 말하자면 ‘월가에 MMT를’이라는 모순어법으로, 완전고용을 지향하는 실물경제의 반대편에 서있는 꼴이다.

 

MMT, 공공 그리고 민간의 부채

자금이 생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채이다. 정부의 자금은 공공의 목적, 즉 고용과 생산량을 높이고 번영을 촉진하기 위해 사용한다. 그러나 현재의 양상을 보면, 민간분야의 부채는 다분히 수탈적이며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 즉 부채디플레를 발생시킨다.

정부는 국내통화만 사용한다는 조건에서 디폴트가 발생하지 않는 공공의 부채를 창출할 수 있으며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화폐를 만들어서 갚을 수 있다.  생산량과 고용을 늘려 성장을 지원하는 것에 지출하기만 한다면, 공공의 부채는 인플레를 일으키지 않는다. 정부는 공공부채를 세금으로 되갚으면서 통화에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통화시스템은 본래적으로 재정정책과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정책의 고전적 전제는 생산과 소비라는 실물분야의 임금과 이익에 과세하기 보다는, 주로 불로소득 즉 경제지대에 과세를 하면서 경제의 비용구조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민간분야의 부채이다. 대부분의 부채는 은행에 의해서 형성된다. 은행의 신용은, 은행 고객이 가지는 채권으로, 채무자가 이를 갚을 수 있는 수입의 능력을 넘어서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배경에는 민간의 부채 대부분이 생산적이고 활동에서 수익을 올리는 것에 사용되기 보다는 자산소유권의 이전(신용의 증가율에 따라 자산가치가 영향을 받는)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실물경제 활동에 연동되지 않은 신용의 투입은 부채디플레를 유도한다. 정부는 적자재정을 운용하여 경제활동에 구매력을 증가시키는 대신, 민간부채는 약정기간 동안 경제분야에서 이자와 원금상환 그리고 수수료를 빼어 나간다.

대부분 담보대출의 경우, 채무자가 부동산을 처분하여 발생하는 금액을 초과하는 이자비용을 발생시키며 종결된다. 약정기간이 만료될 때마다 복식이자로 계산되면서, 담보물의 부채는 여러 번에 걸쳐 은행에 원리금을 상환된다. 결과적으로 은행이야말로 담보대출서비스를 통해 지대수입을 회수하면서, 궁극적으로 자본증식(자산가치의 추가획득)의 주요 수혜자가 된다.

은행의 신용제도에 통화의 특성을 부여하는 것은 – 부채를 통화로 지급하도록 허용하면서 – 정부가 은행을 공적으로 유용한 기구로 인정하고 은행의 제예금을 보증하고, 궁극적으로 은행을 파산에서 보호하는 것이다.

금융분야를 지원하면서 적자재정가 발생한다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부채의 감당비용을 경제활동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식이자의 계산결과로 감당비용이 늘어나면서, 구제의 규모도 덩달아 커지고, 은행과 금융분야에서 발생한 결손을 보충하는 대안으로 부채의 감당비용을 지원하는 적자재정(스왑의 합의를 포함하여)의 규모도 커지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내용이다. 금융분야에 휘둘리면서 결국 경제의 주요흐름이 적자재정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만 적자재정이 금융과 FIRE 분야 등에 주로 지원되지만, 일반시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이는 케인즈 경제와 MMT가 의도했던 진짜 경제 – 실물경제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정부적자재정을 MMT의 적용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정책적 목표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레이건 시절의 적자재정은 사회적 지출(사회안전망, 의료보호제도, 교육 등)을 축소시키며 여러 번 펀치를 날렸다면, 최근의 오바마와 트럼프 시기의 적자재정은 금융분야를 구제하기 위하여 사회프로그램을 축소시켜야 균형재정을 이룰 수 있다는 경고로서 작용하였다.

월가가 마술을 부려 ‘경제’를 대표하는 것으로 변신하는 동안에, 오히려 노동과 산업 분야는 중앙은행과 재무부와 공생관계를 형성한 금융분야에 부담을 주는 비용적 요소로 간주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금융분야, 민간자본, 긴축재정과 중앙계획

이제 또다시,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실물경제를 희생시키면서 월가를 구제한다면, 미국은 결정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금권이 지배하는 과두제 국가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적극적인 정부가 민간분야보다 본래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주효하면서, 정부의 역할은 축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로비스트의 표현에 의하면 욕조의 하수구에 들어갈 만큼 축소되어야 한다).

그러나 금융분야에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허용한다는 것은 경제의 질서를 회복한다는 것은 저축은행과 금융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상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결국 경제에 대규모로 손실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현시기의 금융분야에 종사하는 은행가들과 금융투자자들은 19세기 당시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당시 지대의 가격은 비용가치를 능가하면서 영국과 중부유럽을 고비용의 경제로 만들었다. 고전경제학이 가르치는 내용이 바로 이것으로, 생산의 비용은 실제적이고 사회적이며 경제적인 원칙에 따라 시장가격으로 형성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경제지대는 불필요한 비용의 상승요인으로 작용하는데 특혜, 세습적 토지소유, 공공의 영역에서 신용제공자가 제멋대로 행사하는 독점, 전쟁부채를 갚아준다는 구실로 받는 반대급부의 제도적 보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대계급은 경제의 주요 부가가치를 즐기는 주요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의회를 통하여 정부를 조정한다. 현재의 미국정치는 돈많은 후원자들이 해괴한 선거자금법을 이용하여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을 움직인다. 정치인들의 사무소는 민간 경매품이 되어 가장 고가의 응찰자에게 팔려 나간다. 이들 후원자들은 주로 월가와 금융기업에서 활동하는 자들이다.

2008년 이후 주식과 채권은 DJIA 평가기준으로 8,500에서 30,000 포인트로 급상승하였다. 이러한 상승은 소위 자유시장에 지나치게 제공된 중앙은행의 지원에 의해서 조작된 것이다. 양적완화를 시작하기 전의 주식가격은 지난 세기의 평균가격선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양적완화는 주식가격을 2019년 공황과 2000년의 버플을 뛰어넘어 상종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코로나 사태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주식가격은 그린스펀 의장시절 이전의 가격보다 높이 형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를 버블이 아니라 기포의 수준으로 받아들이면서, 코로나 이후 실물경제가 극적으로 수축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대폭락없이 버티어 내기만을 기대하면서 정부는 금융분야에 지원을 계속하려는 낌새이다.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구를 살려야 하나? 하루의 고된 생활이 생계수단인 일반 시민들인가? 아니면 생계가 위축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호화생활을 즐기는 과두제의 수탈자들인가?

이런 모든 것이, 경제지대를 배제하고 불로소득을 고립시키려고, 가치이론을 중심으로 설계한 고전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미 설명된 것이다.

 

Hudson의 모순 : 재정, 가격 그리고 지대경제

FIRE영역과 실물경제를 구별하지 않고는, 자산-인플레와 상품가격-인플레를 일으키는 정부의 적자재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여기에 일종의 모순이 존재한다. 은행의 신용은 담보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주로 부동산, 주식과 채권 등에 이루어지게 되고, 이런 자산에 투입되는 자금이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오면서, 우선 주택가격이 오르게 되고 뒤를 이어 금융증권이 뒤따른다. 주택가격이 오르면 주택을 사려는 매입자는 더욱 많은 대출액수를 일으켜야 한다. 이런 분야로 대출이 집중되면서 상품과 서비스에 지출할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은행의 대출에서 오는 자산가격 인플레효과(자산효과)는 따라서 상품가격을 낮추는 충격을 주게 되는데 이는 대출비용 부담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살수 있는 소비자들의 실질 구매력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은행대출의 디플레 효과는 불량채무를 발생시키고 이에 따라 중앙은행과 민간은행 간의 대출채권에 대한 스왑방식(실제 돈이 거래되는 않는다)을 통하여 정부는 은행을 구제하게 된다.

이는 위의 MV=PT라는 등식의 역방향에 해당하며,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과 무관하게 통화량만 늘리면 된다는 식이다. 이는 정부의 적자재정의 운용과 비교하여, 은행의 신용창출은 자산을 사들여 자신인플레를 일으킨다는 차이점을 분간하지 못하면서, 공공과 민간 분야 간에 이루어지는 과거의 통화이론과 새로운 MMT간의 구분을 인식하지 못하고, 생산과 소비라는 실물경제에 사용되는 임금과 수익을 FIRE 영역의 자산과 부채간에 이루어지는 거래로부터 분리시킬 필요성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민간은행 시스템에 내재하는 신용창출은 대출에 대한 이자라는 형태를 취한다. 이자를 지불하는 부채가 증가하면 할수록, 산업과 노동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줄어 든다. 그 결과 경제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부채디플레로 나타난다.

이를 다음과 같이 우화적으로 요약할 수 있다.

– 배고픈 사람에게 생선을 주면 하루를 먹일 수 있다.

– 생선을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고객을 잃게 된다.

– 그러나 그에게 생선을 잡을 배와 어망에 사도록 이자증식의 자금을 빌려주면, 그는 자신이 잡은 모든 생선으로 당신에게 갚을 것이다. 당신은 부채라는 노예를 소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미국에서 정부와 금융산업이 MMT를 빙자하여 일반시민들을 수탈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 Global Research Center, 2020.-04-28.

Michael Hudson

캔서스시에 있는 미주리 대학 연구교수이자 Bard 대학의 조세경제 연구소 연구원이다 부채탕감에 대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Dirk Bezemer, 네덜란드 Groningen 대학교수이다.

월, 2020/05/18-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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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흥망성쇠와 국민통합

새해 벽두에 민주당의 이낙연 대표는 뜬금없이 사면론을 주장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면론이 자신의 신념이라면서 국민통합을 위해 사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국민통합이란 정략적 이익,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얄팍한 책략이거나 기득권 세력끼리의 야합일 뿐 진정한 국민통합과는 인연이 없다.

심리연구소 ‘함께’ 김태형 소장

정치권이나 언론 등에 의해서 국민통합이라는 말이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오남용되고 있지만, 국민통합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주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국민통합이다. 국민이 통합되어 있는 나라는 발전하고 흥하지만 국민이 분열되어 있는 나라는 쇠퇴하고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장구한 인류역사를 통해 확증된 진리이다.

국민이 통합되어 있지 않으면 국가적 목표를 세울 수도 없고 그런 목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협조를 구할 수 없다. 작년부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국민통합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키고 있다. 전쟁과 같은 사회적 위기 극복, 국가적 방역전쟁의 성공 등은 국민들이 얼마나 일치단결해 국가적 목표를 위해 헌신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한 마디로 국민통합의 정도가 국가의 위기 극복능력이나 발전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남북전쟁 이전 시기로 돌아간 미국

오늘날의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민통합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자본주의 진영의 대장 노릇을 해온 미국은 오늘날 국민들이 단순히 분열되는 것을 넘어서서 국민들 사이에 적대감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2020년의 대통령 선거는 미국이 심리적인 차원에서는 이미 남북전쟁 이전의 시기로 회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은 전형적인 1대 99의 사회, 즉 불평등 수준이 대단히 높은 나라이다. 심각한 불평등, 양극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와 저항은 2010년대에 계급투쟁의 성격을 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운동으로 폭발했다. 만일 이 운동이 성공했다면 미국이 지금처럼 분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적 저항운동은 실패했고 미국 사회는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바로 트럼프 현상이다.

삶의 벼랑 끝에 몰리고 사분오열된 미국인들, 특히 하층 백인들은 힘을 합쳐 1%의 부자들에게 저항하는 대신 이주민, 유색인종 등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미워하고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사회 모순과 패전으로 절망감에 사로잡혔던 독일인들이 자신들의 분노를 유대인에게 퍼부었던 것처럼 미국인들은 패거리를 나누어 자신들의 분노를 상대 패거리에게 퍼붓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국은 단순히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분열되는 수준을 넘어서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하며 나아가 타도하려고 하는, 국민통합과는 아득히 거리가 먼 나라로 전락했다. 제아무리 GDP가 높고 군사무기가 우수하더라도 국민통합에 성공하지 못한 국가는 내부모순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설사 외부적 위협이 없더라도 국민들 사이의 분열과 적대로 인해 급격히 쇠퇴몰락하게 될 것이다.

 

국민통합의 조건 : 공동의 목표

국민통합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국민통합을 목청껏 외친다고 해서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통합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국민통합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국민들이 공동의 이해관계에 기초해 목표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구한말 의병전쟁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는 천민 출신의 두 주인공이 나온다. 노비 출신의 한 주인공은 양반의 폭정과 착취로 인해 미국으로 도피하여 미군 장교가 되고 백정 출신의 한 주인공은 일본으로 도피하여 칼잡이가 된다. 미군 장교가 된 주인공은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있던 양반가 출신의 애인이 자신에게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자 당신들이 되찾으려는 나라에는 나 같은 노비가 있을 곳이 있느냐고 묻는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다. 평민들과 일부 양반들에게 독립은 당연히 이익이었지만 천민에게는 그렇지 않았기에 천민들은 독립운동이라는 목표를 공유하지 못한다. 만일 독립운동의 목표를 단순한 구체제의 복귀가 아니라 신분제도가 폐지된 새로운 사회 건설로 명시했다면 천민들도 기꺼이 독립운동에 참여했을 것이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듯이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으면 공동의 목표를 내세울 수 없고 단결이나 통합이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려면 서로가 평등해야 한다. 불평등한 관계에 있는 양반과 노비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대부분은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데 소수는 큰돈을 벌고 있다면,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어떤 이들은 절망하지만 어떤 이들은 만세를 부른다면,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상충될 수밖에 없고 국민통합은 요원해진다. 따라서 국민통합을 이룩하려면 일단 절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는 공동의 목표가 제시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들의 이해관계가 원천적으로 일치하도록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국민통합의 조건 : 심리적 동질감

국민통합이 가능하려면 또한 국민들이 서로에 대해 심리적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동질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친밀감과 연대감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지만 자기와는 다른 이질적인 사람에 대해서는 경계심과 열등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전통적으로 노동자들이 다른 사회집단보다 단결력이 뛰어난 이유 중의 하나는 동질성이 강해서다. 물론 『풍요중독사회』에서 자세히 다뤘듯이, 요즘에는 노동자들도 다층적 위계에 편입되면서 동질성이 줄어들었고 그 결과 단결력이 떨어졌다. 어쨌든 과거의 산업노동자들은 동일한 사회계급적 처지에 놓여 있었고 집단적인 노동생활 등으로 인해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리나 품성까지도 유사했다. 이렇게 노동자계급은 다른 사회집단에 비해 심리적 동질감이 특별히 강했기에 단결력이나 통합력이 우수했던 것이다.

국민들이 심리적 동질감을 느끼려면 무엇보다 사회경제적 수준이 유사해야 한다. 예를 들면 누구는 월 6~7백만 원을 버는데 누구는 월 2백만 원도 못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소득수준이 엇비슷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다층적 위계화에 기초하는 불평등으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 동질감이 아니라 이질감이 심화되고 있다. 따라서 국민통합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경제적 차이를 비롯한 국민들 사이의 각종 격차와 차이부터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

 

진정한 국민통합이란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궁극적인 해법은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원천적으로 일치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한국 사회를 평등하고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개혁해야 한다. 즉 근본적인 사회대개혁이 필요하다. 국민통합을 이룩하기 위한 선차적인 해법은 절대다수 국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다. 공동의 목표는 적어도 공동의 목표를 실현할 때까지는 국민통합을 가능하게 해준다. 따라서 공동의 목표를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국민통합을 이루고 그것을 계속 강화발전시켜나가면서 그다음 단계의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는 식으로 사회개혁을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다.

절대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동의 목표가 없거나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외면하면서 국민통합을 외치는 것은 단순한 선거용 책략을 넘어서서 파쇼체제로 가는 지름길이다. 양반과 노비 간의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지 않은 채 양반과 노비를 통합하겠다는 것은 양반과 노비 사이의 갈등을 부인하면서 노비의 저항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인류 앞에 연속적으로 위기가 닥쳐올 것으로 예견되고 있는 미래에는 국가의 흥망성쇠에 미치는 국민통합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다. 자본주의가 한계상황에 봉착해 있는 현 시점에서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국민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나라들은 미국의 전철을 밟아 몰락하게 될 것이고 국민통합에 성공한 나라들이 미래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김태형

목, 2021/01/2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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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주요 거리와 광장은 텅 비워가는 중에, 수많은 병원들은 혼잡과 고통 속에 빠져드는 것을 지켜 보노라면 가슴이 무너진다. COVID-19가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창궐하면서, 팬데믹 현상이 이후 세상을 바꿀 것이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대처를 할 것이지 결정하는 오늘의 선택에 미래가 달려있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를 세계 공동(일반)의 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물론 이는 물리적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유사상황에 준하는 물자이동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기상황에는 본능적으로 위축되고 이기적으로 되기 싶다. 이러한 반작용은 이해를 할 수 있지만 바로 패배로 가는 길이다. 혼자 해결하려 들면 싸움은 길어질 수밖에 없고, 경제적 인명적 피해는 훨씬 커지게 된다. 적(敵)은 폐쇄된 자국주의를 자극하지만, 국경을 넘어선 협력을 통해서만 이를 격퇴시킬 수 있다.

선진국가들뿐만 아니라 취약한 국가군들과 이해가 충돌되었던 지역 간에도 팬데믹을 퇴치하기 위한 국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이 점을 지난 G7 외교장관 모임과 주요한 국제회의 때마다 강조하였다. 유럽연합(EU)은 이러한 노력의 일부이자 주도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연대라는 표현이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다행히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마스크 수백만 장을 서로 교환하고 독일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환자를 자국 내 병원으로 수용하면서 이미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자국주의라는 조치를 넘어서서 국가간 연대로.

해당 책임부서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주요한 의료장비들의 공동구매가 용이해지고 경제촉진 구제정책에 함께 협력하고 외국에서 곤경에 빠진 국민들을 자국 내로 귀환시키는 영사활동의 협력이 이루어 지고 있다. 유럽의회에서 의결이 이루지면서, EU지도자들 간에 유럽단위의 위기관리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한 공동전략에 협력적 노력을 한층 강화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COVID-19는 국간 간에 또는 체계경쟁을 향한 전쟁이 아니다. 이미 팬데믹의 진행단계에 맞추어 유럽과 중국 그리고 기타 지역 간에 상호지원과 연대가 상호적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전염병이 발발되자 유럽은 중국을 지원하였고, 이제는 회복된 중국이 전세계에 의료자재와 의료진을 보내주고 있다. 지국적 연대와 협력의 귀중한 사례가 되고 있고 이를 규범화해야 한다.

COVID-19를 접근하는 한가지 선택은 이를 통해 역사를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의 내용이 무엇이 될는지 아직 모르지만, 팬데믹이 주는 메시지와 결과에 대해 EU가 중국과 미국이 함께 공동적인 노력을 하도록 일치단결하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 상기 3개의 힘들이 함께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만 G20와 UN 역시 달라 질 수 있다.

단순히 정부간의 국제적 공조를 넘어서서, 과학자와 경제학자 그리고 정책입안자들 간에도 협력이 확산되어야 한다. 2008년 세계경제가 수직으로 추락하는 위기에서 구출하는데 G20의 협력이 핵심적 역할을 한 경험이 있다. 같은 선상(線上)에서 다시 한번 그리고 긴급하게 주요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이다.

국제적인 협력을 추진하는데 4가지 우선적 사항이 있다.

첫 째, 국제적인 공공선을 실행하기 위하여는 방역조치와 백신개발에 모든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  둘 째, 금융과 재정적 구제조치와 국제통상의 보호에 힘을 합하여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 해야 한다.  셋 째, 건강책임 당국이 긍정 신호를 보내면 닫혀진 국경들을 호혜적 방식으로 다시 개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음해적 정보를 퍼트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 있었던 G20 회상회의에서 상기 사항들이 일반적 형식으로 언급되었으나, 정말로 필요한 것은 당장 그리고 수주 내에 다자적이고 구체적인 실행이 유지되고 충분할 만큼 추가되어야만 한다.

추가하여 아프리카에 특별히 중점을 두어야만 한다. 지난 2014-16 년간에 있었던 에볼라 출현으로 이미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 대륙을 통하여 의료시스템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감염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많은 빈곤 국가군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이 비공식 경제를 통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야만 한다. 이들 국가군에서는 상하수도 시설도 없는 상태에서 집단적인 캠프생활을 하기 때문에 손을 씻거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전염병과 싸우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이 필요한데, 빈곤국가들은 재정에 대해 다음 3가지 자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 외국의 투자, 송금 그리고 관광인데. 그러나 모두 현재 상황에서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투자자본은 안전지대로 신속히 흘러가 버렸고, 돈을 벌러 외국에 간 빈국의 노동자들은 실직을 당하여 본국으로 송금할 여력이 없다.

현재 세계적 규모의 불황에 직면하여 있는 가운데, 빈곤 국가들이 파탄 상황에 빠지게 하지 않으려면, 재정적 지원과 신용의 제공이 절실하다 – 그것도 매우 긴급하게. 국제금융기구와 (선진국)중앙은행 간의 협력만이 이를 풀어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반적으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장기적인 대립을 피할 기회가 있다. 벌써 경쟁 국가들 간에 협력의 긍정적인 신호들이 오가고 있다. 심각하게 감염된 이란에 대해 적대적 이웃이었던 UAE와 쿠웨이트 등이 지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동시에 다자(면)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UN 사무총장이 촉구하였듯이, 현재의 위기를 평화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 동안 세계는 비협조적으로 위기의 상황을 맞이했고 경고의 신호를 무시했으며 대부분 국가들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제는 분명해 졌다 – 모두가 힘을 합치는 것만이 앞으로 전진하는 길이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2020

Josep Borrell

유럽연합 국제관계 및 안보정책의 책임자이자, 유럽연합 집행위의 부위원장

 

<보충칼럼>

국제적 문제는 국제적 해결을 요구한다- G20의 역할론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무엇보다 공중 보건 측면에서 비상사태이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정부가 질병을 억제하고자 극적인 조치를 취했음에도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번지면서 국제경제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수요 감소, 공급망 교란, 불확실성 증가가 이어지면서 일자리 감소가 만연하고 회사가 폐업하고 기타 2차적 경제충격의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근대에 발생한 가장 엄청난 보건 및 경제의 위기임이 분명하다.

사회의 접촉망을 철저하게 차단하여 바이러스 전파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에 따라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의 영향력이 좌지우지될 것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치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사망자 및 확진자의 급격한 증가, 보건 시스템의 과부화, 기업의 정상 운영 불가능, 세계 경제의 심각한 결과가 초래할 것이다. 경제 성과와 보건(수명) 사이의 밀접한 상관 관계를 고려할 때 경제가 어려울수록 보건부문 또한 장기적으로 더욱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각국 정부가 대내 정책을 점차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동시에 국제적 차원 또한 경시해서는 안 된다. 만약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한다면 해외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국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호주의 경제적 번영은 코로나-19의 지역적 확산뿐 아니라 무역 상대국 및 세계 경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달려 있다. 초연결 세계에서 이러한 점은 모든 국가에서 통용된다.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에서 시행된 효과적인 보건 및 경제 정책과 가능한 협력에 대해 불가피한 이해 관계를 갖는다.

G20 정상들은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일반종합행동계획’에 속히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G7은 공동 대응을 논의하고자 비상 화상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이에 G20은 코로나-19의 국제적 대응을 위해 주된 역할을 담당하면서, 국제적 권한에 따른 국제적 대응을 통하여 폭넓은 회원국 (주요 선진국 및 주요 개발 도상국 모두 포함)을 포용해야 하며, 세계 금융위기의 성공적 극복에 기여하여야 한다.

G20 창설의 주요 추진국인 호주는 현재 G20 정책에 목소리를 낼 특별한 책임이 있다. 코로나-19 확산방지용 국제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집단간섭 및 안정적으로 세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조정 정책 모두 G20 대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G20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필요한 세계적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와 의무가 있다. 코로나19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고 국제 시장의 신뢰 상실과 변동성 증가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G20 정상들은 전 세계 기업, 시장,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증가하는 불확실성과 잠재적인 경제 혼란에 맞서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국가 간 조정 또는 협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이 이탈리아에 보낸 의료 물품과 같은 쌍방의 계획을 통해 현재 이탈리아 내 코로나19 발생을 약화시키며 인명 구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더 많은 국가들이 함께 하면 더 많은 결과를 이뤄낼 수 있다. 국제적 협력을 통해 다른 국가와 함께 하면 국내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상황을 더욱 쉽게 이겨낼 수 있다. 반대로 인종집단 및 노인계층을 차별하는 반사적인 대응은 다른 국가들이 위기에 대처하기 어렵게 만든다.

G20 정상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필수 의료물품 이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정방안에 합의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해당 방안에는 최소한 핵심요소 세 가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첫째로 G20 정상들은 필요한 모든 의약품, 의약품, 소독제, 비누 및 개인 보호 장비의 자유 유입에 대한 수출 금지 또는 제재를 풀어야 한다. 국제 팬데믹에서는 필수 장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세계 보건위기 동안 ‘근린궁핍화 (beggar-thy-neighbour)’ 정책에 의존하면 다른 국가에 경제적 어려움 이상으로 훨씬 큰 피해를 주어서 궁극적으로 자국에도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둘째로 국가 정상들은 필요한 의약품의 가격을 낮춰야 한다. 이는 관세, 수입 쿼터 및 정부 부과 비용을 철폐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셋째로 정부는 최소한 세계 최빈국에서도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공보건을 위한 기금을 확대하거나 세계 보건 기구의 코로나-19 연대대응기금에 대한 사업, 자선 및 개인 기부를 장려함으로써 공공보건 재정의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

정부는 시민보호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해야 하면서 세계 정상들은 경제침체에서 벗어나 세계경제의 신뢰, 성장, 일자리를 복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할 것임을 함께 다짐해야 한다. 세계 정상들이 타격을 받은 분야 및 중소기업에 공동으로 지원하겠다고 합의하면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신뢰가 구축되며 중요한 시기에 경제가 기능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방안에 대한 G20 정상들의 논의는 팬데믹에 대응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증진하고 코로나-19의 사회적,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할 것이다. 호주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대응을 주도할 기회 및 책임을 지닌다.

위기를 각국이 개별적으로 대처하려 하면 보건 및 경제적 비용이 더욱 커질 뿐이다.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타개하려면 진정한 국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바로 G20라는 조직을 통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합법적인 방안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들의 정상들은 지체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출처 : 동아시아포럼(East Asia Forum), ANU. 2020/03/19.

존 WH 덴톤

파리에 기반을 둔 국제상업회의소 (ICC) 사무총장 그리고 피터 드리즈데일, 호주 국립대(ANU) 공공정책학교 부설 동아시아경제연구소 소장이자 명예교수

 

목, 2020/04/2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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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셰일가스 생산업체들이 수지의 타산을 따져야 할 시점이다. 에너지 수요의 축소와 코로나사태의 봉쇄로 인해 발생한 역사적인 사태에 직격탄(perfect storm)을 맞고 있으면서 주요 산유국들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산유량의 축소에 합의를 해야 하는 상황인 반면에, 사우디와 러시아는 오히려 가격을 낮추려고 추가적인 생산량의 조치를 통해 원유를 시장에 퍼붓고 있다.

지난 3월 초, 러시아가 사우디의 석유감축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자, 사우디는 자신의 동맹들과 연합하여 러시아와 가격전쟁을 촉발하였다. 이후 원유가격은 폭락을 거듭하였고, 4월 20일은 서부텍사스 원유(WTI)값이 배럴당 -37.6달러를 기록하는 재앙의 날이 되었다. 이는 1983년 미국상품교환시장이 원유를 선물로 취급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셰일가스 생산업체들은, 축출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은 까닭에, WTI의 배럴당 원유가격이 40-45불을 유지하여야 사업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에 사우디는 세계에서 생산원가가 가장 저렴하여 배럴당 8.98달러 수준이고, 러시아는 19.21달러이면 생산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같이 세계적인 불황의 경제환경 속에서 미국의 세일가스 업체들이 생산을 지속하면서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지급하고 기본생산비용을 감당하려면 유동자금이 곧 고갈될 것이다.

이러한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으며, WTI가격이 배럴당 40달러 밑으로 형성되면, 내년에 약 100여 개의 업체들이 파산을 신청하게 될 것이다. 3월에서 오는 5월 사이에 미국 원유의 일간생산량은 127백만 배럴에서 119백만 배럴로 8십만 배럴의 축소를 가져올 것이다.

실제로는 이미 수 년 전부터 미국의 셰일가스산업의 전성기는 지나가고 있었다. 미국의 오일 붐의 중심지인 서부 텍사주의 Permian Basin은 가장 저렴한 유전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조차 문제가 터져 나오기 직전이다. 이미 과다한 부채에 시달리고 시장에서 가격이 내려가자, 돈줄인 은행들이 대출을 차단하면서 해당 산업은 역사적인 파산에 직면하고 있다.

4월초 G20에서 논의되었듯이 주요 산유국들은 세계적 공급량을 10% 줄이는 거래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석유산업의 주요 업자들이 가격을 올리자는 것에 합의하고 부과된 의무를 실행할 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해당 업자들의 이해와 생산능력이 천차만별한 가운데 미국의 산유업자들의 차이가 특히 심하다. 감축합의라는 거래는 너무나 하찮은 것이었고 너무나 늦게 진행되었다.

원유가격은 계속 떨어지고 미국의 개별 생산업체들이 파산에 직면하면서 에너지의 자급이라는 미국의 꿈이 갑자기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그간 셰일가스의 붐으로 일간 생산량이 17.9백만 배럴까지 높아져 세계최대의 원유생산량을 보였던 미국은 2020년 말이 되면 생산량이 2-3백만 배럴 수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에너지담당 장관 Dan Brouillette은 예측한다.

2014 년에 이미 셰일가스 산업을 봉쇄하려고 시도를 했다가 실패한 사우디의 경험으로 사우디와 러시아는 미국이 석유산업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유례없이 허용하고 말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트럼프가 사우디에게 생산량을 줄이도록 요청하고 연방상원이 사우디 왕국에게 온갖 위협을 가한다 하더라고, 미국 내 생산량은 당분간 지속적으로 축소될 것이다.

에너지 자급의 목표가 멀어져 가면서, 미국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석유에 의존하며 대량의 원유을 뿜어내는 국가들을 한편에서는 달래가며 한편에서는 협력과 편이를 제공하여야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우디는 새로운 매장량의 발견으로 석유시장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국가이다. 결국 매우 취약해진 미국 석유산업의 미래는 사우디 왕국의 석유정책에 달려 있다. 새롭게 전개되는 환경 속에서, 미국은 에너지의 자급 대신에 상호의존이라는 새로운 현실에 대응하는 외교 및 경제정책으로 선회하도록 강요를 받을 것이다.

 

Nawaf Obaid

2002-2015 년간 사우디 정부의 고문을 역임했으며, 2012-2018년간 하버드대학의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The Failure of the Muslim Brotherhood in the Arab World” 의 저자이기도 하다.

수, 2020/05/06-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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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 두 대통령 스캔들로 2019년을 뜨겁게 달군 베네수엘라 사태가 일어난 지도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국회도 아닌 광장에서 스스로 대통령으로 ‘셀프선언’한 야당 과이도 의원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일이다. 그는 2019년 1월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재선에 성공한 마두로 대통령 취임식 직후 자신이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이는 라틴아메리카 전대미문의 정치권 ‘희극’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어설픈 시나리오와 기획,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발연기’가 그야말로 압권인 ‘작품’이었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위기’라는 설정으로 일정부분 ‘흥행’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을 했다. 미국이 주도하고 이에 보조를 맞춘 외신들의 호들갑스러운 ‘공모’ 덕이다.

과이도 의원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셀프임명’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 열강들은 앞다퉈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발표를 쏟아냈고, 아쉽게도 한국도 그중의 하나였다. 애초부터 적법한 절차나 정당성을 상실한 이 같은 ‘선언을 위한 선언’은 그저 베네수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명분’있는 개입, 더 나아가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위한 시작이었을 뿐이다. 야당조차 국내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민주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베네수엘라 야권이 지난 2년간 보여준 행보는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다.

게다가 민주적 해결이라면 대화 혹은 선거라는 장치를 통하는 것인데, 야당은 여당 지지층의 결집에 대항할 세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가 더는 해법이 되지 못했다. 야권과의 정치적 합의를 끌어내려는 마두로 정권의 끊임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합의된 대화에 불참하거나 불이행하는 방식으로 한 걸음의 진전도 허용하지 않는 전략으로 일관해왔다.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 부르주아 지배계층을 대변하는 G4의 야당 연합은 줄곧 국내적으로는 폭력적인 가두시위를 선동하고, 대외적으로는 특히 미국의 군사개입을 노골적으로 지속해서 요청해왔다. 이는 같은 해 9월 미주연합기구(OEA)의 미주상호방위조약(TIAR)을 발효, 즉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을 공식화하는 수순으로까지 이어진 바 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 사태의 정점에 있던 자칭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홀로 ‘군림’했던 과이도 의원의 퇴장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우선,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277석 중 256석을 얻어 의회 권력을 다시 회복했고, 의회 권력을 통해 현 정권을 사보타지 했던 야당은 이제 국회라는 ‘합법적’인 정치적 기반을 잃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베네수엘라 야당 내에서는 물론 일반 야당 지지층 국민 사이에서도 처음부터 지지가 높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의 가장 큰 기반은 미국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라는 것 뿐이다. 국내 지지기반이 취약한 상태로, 명분은 고사하고 적법한 정치적 절차나 정당성 상실, 게다가 국경을 맞대고 군사적 긴장 관계에 있는 콜롬비아 마약 범죄조직과의 연루설과 불법 자금 유용 등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여전히 산적하다.

아래 사진[사진1]은 얼마 전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미국 의회를 ‘점령’한 일을 풍자하며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과 베네수엘라의 트럼프 지지자들”이라는 태그를 달고 SNS로 공유되는 사진의 일부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의 담을 넘는 모습과 과이도 의원이 2020년 베네수엘라 의회로 들어가기 위해 의회의 ‘담’을 넘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다.

베네수엘라에서 과이도 의원은 이미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고, 그를 빗댄 풍자와 해악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사진1] 베네수엘라에서 공유되는 과이도와 미국을 풍자하는 SNS 캡쳐화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2019년 국회의원 의장 임기가 끝나는 과이도 의원을 이어 새로운 의장을 선출해야 했던 2020년 초 베네수엘라 의회에서 일어난 진풍경이다. 새로운 국회의장 선출을 ‘보이컷’한 과이도 의원이 뒤늦게 의회로 진입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2019년 과이도 의원이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16년 거대 야당 연합으로 차베스 진영에서 국회 권력을 가져온 야당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즉 국회의장 자리를 주요 거대 4개 야당(G4)에서 번갈아 맏기로 하였고, 그 결과 과이도 의원 소속 정당인 민중의지(Voluntad Popular)당 차례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는 2020년 1월 그는 국회의장 자리를 내놓을 생각이 없었고, 의석수 불충분이라는 핑계로 선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소수의 과이도 지지자를 제외한 야당 연합 G4은 정의제일당(Primero Justicia)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하며, 지난 1년간 ‘명실상부’하게 두 명의 국회의장을 두는 초법적 선택을 하며, 야당의 끊임없는 자중지란이 이어졌다.

스스로 국회의장이라는 자격을 내세워 대통령으로 셀프선언하고 1년이 지났음에도 이렇다 할 정치적 ‘성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야당 내 자중지란으로 귀결되었으나, 과이도 의원의 ‘위상’에 이만저만한 생채기가 적지 않았음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과이도 의원은 베네수엘라 야권과 그 지지층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에게 쏟아진 지나친 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기실 베네수엘라 사회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정치적 위상이나 헤게모니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져 왔다. 어쩌면 베네수엘라 야당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줄곧 ‘무대’에 올랐던 그는 국제사회가 유일한 그의 관중이었을 지도 모른다.

미국의 그림자가 강력히 드리워진 베네수엘라의 주요 4대 야당 연합은 속칭 G4라 부른다. 과이도가 속한 소수정당인 민중의지당을 포함, 민주행동당, 새 시대, 정의제일당 등을 포함한 이 연합은 가장 극우적 성향의 집단이다.

한편, 과이도 의원의 소속 정당인 민중의지당의 실세는 레오폴도(Leopoldo)라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과이도 의원의 정치적 ‘멘토’이기도 하다. 차베스 사망 이후 끊이지 않았던 폭력사태(병원건물방화, 길거리 폭력시위 등)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대법원판결에 따라 가택연금을 선고받았다. 얼마 전 일어난 군부 쿠데타에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자 주베네수엘라 스페인 대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 지금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생활하고 있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 레오폴도 길(Leopoldo Gil)은 지난 2015년 스페인 국적을 취득, 현재스페인 보수정당이자 집권당인 인민당(Partido Popular)소속으로 2019년부터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과이도 의원의 대통령 ‘셀프선언’ 이후 스페인이 과이도 ‘체제’를 옹호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레오폴도는 법의 심판을 피해 국외로 탈출하였으나, 외신들은 조국을 구하기 위해 잠시 해외로 몸을 피한 ‘애국자’인 듯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정작 베네수엘라 국민이 궁금한 것은 그의 ‘애국행위’가 아니라, 그가 마드리드 고급 아파트에 매달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약 만유로(한화 1300만원)의 출처다.

최근 치러진 총선의 결과는 베네수엘라의 핑크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막대한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 자본가 계급의 야당 연합 G4의 계속되는 정치권 사보타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병적인 집착은 바이든의 민주당이라고 해도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테니까. 상기해보면, 베네수엘라를 미국 안보의 ‘위험’으로 간주한 것은 2015년 오바마 시절의 일이다.

과이도의 등장으로 국제사회가 떠들썩할 때, 카라마스 도심의 한 공원에서 레크레이션을 즐기는 모습

지금까지 베네수엘라를 다루는 거대 자본의 미디어들은 대부분 진실보다 자극적인 소재와 왜곡된 기사를 쏟아냈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사실관계 파악이 아닌 외신을 번역해서 나르는 일이 전부였다.

2019년 과이도 의원의 등장으로 야단법석을 떤 것은 오히려 국제사회였을 뿐 정작 베네수엘라는 평온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베네수엘라의 변화가 이를 희망하는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한, 그들의 시간은 묵묵히 그들의 편에서 흐를 것이다. 비록 국제사회의 부르주아 계급들이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선택을 끊임없이 막아설지라도.

이제는 그만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 그들의 미래를 맡겨야 하지 않을까.

 

정이나

목, 2021/02/0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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