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기고] 제10회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 후기
제10회 민변 노동법 실무교육 후기 조준우 회원 사실 저는 ‘변호사가 되면 노동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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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고에 등장하는 행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 전 진행된 행사이며, 방역지침을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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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을 돌아보며
국회 탄핵소추위원 대리인단
이용구 변호사
2014년 4월 16일 침몰 후 1075일 만에 세월호가 인양되었다.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다”는 퇴진행동 권영국 변호사의 말씀은 본질을 꿰뚫고 있다. 비록 헌재의 법정의견은 세월호를 탄핵사유에서 제외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와 함께 무너지기 시작해서 결국 세월호 때문에 파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말 다른 대리인들보다 늦게 국회 대리인단에 합류한 탓에 우리(나와 전종민, 탁경국 변호사)가 전담할 탄핵소추사유는 세월호와 언론의 자유 침해 부분밖에 없었다. 검찰 1기 특수본이 수사한 나머지 탄핵소추사유는 이미 검사 출신 대리인들이 나누어 맡고 있었다. 황정근 총괄팀장과 첫 인사를 하면서 무엇을 맡겠냐는 질문을 받고, 주저 없이 세월호를 선택했지만(전변호사에게 더 어려운 부분을 맡길 수는 없다는 선배의 마음?), 그 직후 나의 마음은 가라앉은 세월호 만큼이나 무거워졌다. 세월호 선원과 해경에 대한 형사기록, 감사원 감사결과 모두 말단의 잘못만을 들추고 있을 뿐 해경청장정도까지도 세월호 사고와 무관한 듯 처리되어 있었다.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는 축소, 왜곡되어 있었고, 국회 청문회의 조사결과는 변죽만 올리고 말았다. 세월호 사건 당시의 국가안보실장이 주중대사로 영전되고, 위기관리센터장이 외교안보수석으로 재임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이 탄핵심판의 법정 안에 있는 듯 했다.
세월호와 언론의 자유 침해 부분이 탄핵사유로 인정될지도 중요했지만, 탄핵심판 내내 가장 중요한 우리의 임무는 ‘신속한 탄핵결정’이었다. 전변호사는 탄핵기각이 되면 혀를 깨물겠다고 확언을 했다고 하지만, 당시 압도적인 찬성표로 탄핵안이 가결되고, 식을 줄 모르는 촛불집회의 열기, 그리고 연이어 쏟아내는 언론 보도로 인해 탄핵결정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고, 남은 문제는 그 시기를 얼마나 앞당길 것인지 여부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대리인단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하나는 탄핵안 가결을 3당 합의로 한 상황에서 탄핵심판의 속도는 곧 대통령선거일과 관련되어 있었는데, 3당의 대선 준비에는 차이가 났다. 또 다른 문제는 2월 29일 종료되는 특검보다 일찍 탄핵선고가 있게 되면, 특검이 전직 대통령을 구속 수사할 수 있는데, 헌재가 이를 감수할 것인지가 문제되었다. 마지막 문제는 헌재 소장의 퇴임과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 인선이었다. 특히, 재판관의 후임 인선은 탄핵 논의의 초점을 흔들 수도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려는 대법원장의 뜻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초기에는 1월 31일 이전 종료설도 있었지만, 탄핵심판이 2월로 넘어가면서 2월 말 변론종결, 3월 초 선고설이 유력해졌다. 어떤 경우에도 3월 11일을 넘기면 안 된다는 것이 대리인단의 지상과제가 되었고, 여기에는 어떤 이견도 없는 듯했다. 다만, 예상은 예상일뿐이었고, 실제 심판절차 속에 있었던 대리인단의 마음은 2월 27일 변론종결이나 3월 10일 선고기일이 발표되기까지 새까맣게 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큰 문제는 탄핵심판에 적용될 증거법칙이었고, 이것이 이번 탄핵심판에서 가장 뜨거운 논점이었다. 탄핵의 회색지대(심정적으로는 탄핵을 반대하지만, 드러내놓고 반대를 이야기하지 않는 영역)에 있었던 법조인들의 논거가 절차적 정당성이었고, 그 구체화가 형사소송법의 전문법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주장에 따르면 탄핵심판은 적어도 6월까지는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논점에 대해 탄핵심판의 특수성 논리(우리)과 형사소송법 준용 논리(대통령 측)가 부딪혔는데, 헌재는 절묘하게 이 문제를 절충하여 탄핵심판의 증거법을 제시했고, 결과적으로 선택과 집중에 의한 증거 선택과 절차적 정당성을 구비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문제는 대통령 측 대리인들의 종잡을 수 없는 변론에 대응하는 다소 세세한 문제였다. 대통령 측 대리인들의 변론은 크게 세 시기로 변화하였는데, 1기는 정호성, 안종범, 최순실 등 주요 인물을 신문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대통령 측 대리인은 비교적 정상적인 변론을 통해 방어를 하려고 하였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정호성의 진술과 녹취록, 안종범의 진술과 수첩은 사후에 어찌할 수 없는 많은 진실을 확인해 주었고, 돌이켜보면, 사실 이들을 신문한 시점에 이미 헌재가 인정한 탄핵소추사유의 대부분은 밝혀진 셈이었다. 1월 31일 이전에 탄핵심판을 종결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 무렵 나는 국가가 아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2013년 2월 대통령 취임사를 수정하면서 박근혜, 최순실, 정호성은 ‘문화융성’, ‘체육진흥’이라는 단어를 찾으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누군가 그냥‘문화체육’이라고 하자고 하니, 서로 낄낄대고 웃으면서 ‘그러면 역풍 맞아’, ‘그것이 진짠데’라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들이 당선되기 훨씬 이전부터 문화와 체육을 이용해서 축재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확신했다. 선거공약에는 이미‘문화 예산, 재정의 2%’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나라는 사익을 추구할 작정을 한 대통령 후보를 검증하지 못했고, 담당 공무원들은 이들이 부리기 쉬운 사람으로 채워졌다. 이들은 김종 전 차관을 ‘bell(종)’이라고 불렀다. 이들을 감시할 사법기관의 핵심도 이들을 추종했다. 탄핵소추사유에는 없었지만, 이들에 대한 부역의 흔적은 아직도 여러 곳에 남아 있었다.
2기는 헌재가 정호성, 안종범 등의 수사기록을 증거로 채택한 1월 17일 이후 대통령 측의 증인신청이 무더기로 기각된 2월 14일까지였다. 그 사이 장외에서는 탄핵각하론이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고영태 음모설이 주장되었고, 탄핵반대집회가 몸집을 키웠으며, 원로 법조인들이 탄핵각하론에 힘을 보태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하였지만, 이 시기 대통령 측의 기본적인 입장은 증인신청을 통한 지연술이었다. 헌재는 답답할 정도로 대통령 측의 증인신청을 받아주면서 절차적 공정성에 공을 들였지만, 대통령 측이 신청한 증인은 그 자체로 유리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새로운 사실도 제시하지 못했다. 우리는 반대신문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할 정도로 김을 빼려고 했다.
지루한 공방을 끝낸 것은 각하론이 전면에 등장한 3기였다. 장외에서 각하론을 주장하던 김평우 변호사가 2월 16일 선임계를 내더니 그 논리를 그대로 심판정에서 주장하기 시작했고,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대부분이 각하론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최후변론 때 대통령 측 대리인단 중 3명만이 기각론에 방점을 찍었고, 나머지 대부분이 각하론을 주장했다. 우리는 이들의 변론 변화가 일응 탄핵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음모론을 배제할 수 없었다.
당시까지 심판정에서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던 세 명의 재판관이 기각이론을 구성할 수 없으니 각하론을 취할 수 있고, 이것에 기초한 변론이라는 것이 음모론의 정체였다. 이 음모론은 여러 정보보고와 짜리시 등에서 등장했고, 선고기일을 앞두고는 ‘5:2:1설’즉, 2명의 재판관이 각하이고, 1명이 아직 입장 정리를 못했다는 것으로 구체화 되었다. 그러나 각하론은 지극히 정치적인 이야기일 뿐 헌재가 받아들일 정도의 내용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마지막 고비는 이른바 고영태 음모설이었다. 탄핵에 반대하는 몇몇 언론에서 고영태 음모설을 띄우기 시작했고, 내용을 잘 모르는 기자들이 이것을 받아쓰기 시작했다. 녹취파일을 다 들어본 결과 오히려 탄핵에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을 했지만, 문제는 이것이 변론종결일을 늦출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도 헌재의 현명한 판단으로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다.
나는 선고기일에 앞서 국회 대리인들에게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심판정에서 절대 기뻐하면 안 된다고 문자를 남겼다. 탁변호사는 반대로 탄핵이 기각되면 크게 웃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선고기일에 이정미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탄핵을 한다고 하면서, 이어서 세월호 관련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의 보충의견을 읽을 때 그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세월호를 탄핵 심판정에서도 구하지 못한 미안함과 두 분 재판관에 대한 고마움 등 복잡한 심정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탄핵심판은 끝을 맺었다.
CJB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그가 남긴 숙제 이용우 변호사 / 민변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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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 이렇게라도
(2) 무엇이 정의인가(What‘s Justice?) – “사마에게(For Sama)” 리뷰
조덕상 회원

영화 한국어판 공식 포스터
여러분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 지난 “Bury me my love” 리뷰는 잘 보셨는지요. 읽어주시는 분이 한 분이라도 있다면 참으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하하 ㅠ 조금씩 이제 밖으로 나오시기도 하고 운동도 다시 시작하시고 할 텐데. 이 리뷰가 여러분께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경험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번 게임 리뷰를 읽어보신 분들은 마지막 장면에 한 소녀와 묘한 눈빛의 인형 사진을 기억하실 겁니다. 기왕 나간 김에 조금 더 내용 누설을 하자면, “Bury me my love”에서 Nour(노어)는 원래 의사였습니다(Majd(매지드)는 정확하지는 않은데 학생들을 가르치며 어머니의 가게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어떤 루트를 따라가보면 노어가 시리아의 알레포(Aleppo)에 머무를 때가 있는데 이 때 정부군의 무차별 공습 학살이 일어납니다. 노어는 그 때 다리를 심하게 다친 여성을 만나게 되고, 이 여성을 인근 병원에 데려갈 것이냐 무시하고 떠날 것이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그 소녀가 누굴지 짐작이 가시겠죠? 그 다리를 다친 여성의 딸입니다(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죄송). 노어는 제대로 된 수술실과 도구가 없는 병원에서 매지드에게 의학서적을 메시지로 읽어달라고 하고, 그걸 바탕으로 혼자 수술을 해서 여성의 다리를 절단하고 기적처럼 그의 목숨을 구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자 소녀는 자신이 갖고 있던 소중한 인형을 노어에게 선물로 주고 목발을 짚은 엄마와 함께 병원을 떠납니다. 이 게임에서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뜬금없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노어의 한 이야기가 바로 이번에 소개해드릴 영화 “사마에게(For Sama)”의 내용과 매우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마에게’는 포스터가 영화 내용의 대부분을 설명해주는, 시리아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한복판에 있었던 와드 알 카팁(와드) 감독 본인이 직접 찍은 5시간이 넘는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그의 남편인 함자 알 카팁(함자)은 알레포에 있는 의사로 시리아 정부군의 공습 학살이 있을 때마다 몰려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며, 와드는 피와 살이 튀고 생사가 갈리는 그 순간들을 때로는 흔들리는 카메라로, 때로는 바짝 굳어버린 카메라로 담아냅니다. 노어의 메시지로 상상만 할 수 있었던 수술 장면을 영화에서 계속 보게 되니 말문은 막히고 입은 쩍 벌어졌습니다.
영화는 와드가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을 잠깐 소개하고, 2011년 알레포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바샤드 알 아사르 독재정권의 횡포에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 모로 한국의 1980년대와 닮아있는 ‘아랍의 봄’ 시대의 풍경이 나옵니다. 우리는 군부독재를 몰아냈지만, 시리아는 잘 아시는 것처럼 독재정권이 말 그대로 ‘전쟁’을 선포하며 시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알레포는 시리아 북부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우리의 광주처럼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이들의 거점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독재정권은 알레포의 주변을 포위한 후 반군보다 우월한 공군력을 내세워 알레포 시내를 무차별 공습하기에 이릅니다.

시리아 지도. 알레포는 북부의 중심 도시였고,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Bury me My love’의 무대가 된 Homs(홈즈), 레바논의 Damascus, Beirut가 보입니다.
이러한 독재정권의 포위와 학살로 인해 고통받던 수많은 알레포 시민들은 알레포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사실 알레포를 떠나는 일 자체도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정부군은 알레포를 탈출하는 시민들에게도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와드와 함자와 그의 동료들은 알레포에 끝까지 남아 있기로 합니다. ‘떠나는건 최악의 본보기다. 그러나 남은 이들은 지옥을 견뎌야 했다’는 와드의 독백은 그 자체로 진퇴양난인 시민들의 상황을 적시해줍니다. 이 영화는 2011년부터 2016년 알레포를 정부군이 완전히 함락시켜 어쩔 수 없이 주인공 일행이 시리아를 떠날 때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와드와 함자는 원래 교제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병원에서 생사를 함께 하며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웠고 병원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신혼 살림도 병원에 마련합니다. 사마는 그 병원에서 태어났고 그때도 폭격은 계속됩니다. 사마는 수시로 폭음과 진동을 경험하는데 그때마다 놀라거나 울기는커녕 커다란 눈을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는 게 일상이고 아주 가끔은 웃기도 합니다. 그걸 보는 와드가 미칠 지경이지요.
그들이 얼마든지 알레포를 떠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5년을 알레포와 함께 했던 이유는 와드가 사마에게 남겨준 유언과도 같은 편지에서 드러납니다. ‘(전략)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카메라를 놓을 수 없었어. 사마, 왜 엄마와 아빠가 여기에 남았는지, 우리가 뭘 위해 싸웠는지,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 해. 사마야, 이 영화를 너에게 바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함자, 사마, 와드 알 카팁 식구들
이 영화를 보면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 사는 아동의 비참한 삶을 그렸던 영화 ‘가버나움’이 떠올랐던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된 허구의 참상이 주는 충격이 하도 극심하여 보면서 무너지는 한숨만 나올 뿐 눈물이 나오지 않았던 영화였는데, 이 영화도 비슷합니다. ‘가버나움’에서 동생과 살아남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하다가 법정에 찾아가 부모를 고소한 주인공 자인과, 이 영화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마다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와드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결국 그 두 사람이 묻는 것은 레바논과 시리아에서의 삶의 존엄이란 과연 무엇인가겠죠. 웃픈 일은 그 레바논의 헤즈볼라 세력이 시리아의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들의 공적인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2차대전 후 강대국들의 세력 재편이 어디까지 보통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나중에 러시아의 푸틴 정부가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 공습을 하는 사실까지 나옵니다. 시리아 전쟁의 사망자는 약 40-5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2015년에 UN이 사망자 공식 집계를 포기하고 나온 숫자이므로 실제 사망자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시리아 국경 외부로 떠난 난민의 숫자는 590만 명, 시리아 안으로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610만 명인데 시리아 전체 인구가 약 1,800만 명이니 비극의 정도는 숫자만으로도 이미 질려버릴 지경입니다. 여기에 정부군은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는 비인도적 전쟁 범죄를 버젓이 저질렀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습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성이나 어린이들입니다. 의료진이 필사적으로 치료를 하지만 대부분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정신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을 계속 마주하면서도 함자와 와드는 메스와 카메라를 놓지 않습니다. 그 병원에서 잊지 못할 장면이 있는데, 바로 한 임산부가 폭탄 파편에 맞아 병원에 실려온 일이 있었습니다. 급히 제왕절개를 해서 아이를 꺼냈는데 숨을 쉬지 않아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번에도 죽었구나 생각할만 했는데, CPR과 타격을 반복하자 아이의 숨길이 열리면서 아이가 울기 시작합니다. 그 때 제가 있었던 영화관에서는 곳곳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가하면 일가족이 모두 사망했을 때 와드가 ‘인정하기 싫지만 저 아이의 부모가 부럽다. 자기 아이를 묻기 전에 죽었으니까’ 라고 독백하는 장면도,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와드에게 ‘제발 계속 찍어주세요. 이 짓을 벌인 놈들이 누구인지 다 알 수 있게!’ 라며 절규하는 장면도 눈에 선합니다.
이 영화 말고도 시리아 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작품은 많이 나왔었습니다. 저는 다 보지 못해서 함부로 비교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이 작품의 매력이라면 전쟁의 참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것과 더불어, 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존엄함을 비추는 데 상당한 비중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와드의 나레이션은 시리아 전쟁의 굵직굵직한 이벤트를 설명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겪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자신이 다녔던 대학교에서 시작된 반정부 민주화 시위의 물결을 시작으로, 폭격을 맞은 잔해 속에서 사람들을 위한 병원을 새로 꾸미며 즐거워하는 함자와 동료들, 한 아이가 결국 사망하자 옆에서 오열하는 와드에게 함자가 화를 내며 ‘여기서 울지 말고 당장 나가’ 하더니, 나가버린 와드를 쫓아가 ‘네가 무너지는 걸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내가 널 사랑하는 걸 모르겠어? 나랑 결혼해줄래?’ 라고 프로포즈하는 장면(어우~♡), 정부군이 미국의 개입으로 일시적으로 수세에 몰렸을 때 사람들이 짧은 해방의 기분을 맛보는 순간 등등… 지옥 속에서도 사람다운 일상이 끊임없이 펼쳐지는 걸 놓치지 않는 게 영화의 매력이라면 매력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풍경이죠.
1초라도 있고 싶지 않은 그 알레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폭격에도 놀라지 않고 잘 웃으며 노는 사마와 아이들에게서 작은 희망을 얻습니다. 또는 와드의 이웃에 살고 있는 10세 남자아이는 이곳을 떠나고 싶냐는 질문에 부모가 떠나더라도 자기는 남고 싶다며 결국 오열하기도 합니다. 영화 중반에는 폭격을 맞아 불타버린 버스에 아이들이 모여 페인트로 예쁘게 색을 칠하기도 하고 턱없이 열악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지요. 이런 희망도 잠시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병원이 폭격당하자 좌절했던 일행들은 다시 아이들과 함께 거처를 옮기며 새 병원을 임시로 건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2016년 겨울 정부군이 알레포를 사실상 점령하자 와드와 이웃들은 결국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해 성공합니다. 영화는 와드가 아기띠로 사마를 안은 채 페허가 된 도시를 걸어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립니다. 크레딧에서 사람들과 남겼던 자잘한 일상적인 사진들이 알레포에서 사람들이 평화롭게, 자유롭게 살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아마 40년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군부독재에 저항해 끝까지 싸웠던 광주 시민군 여러분의 모습이 떠오른 것도 우연은 아니겠지요. 가끔은 희망이라는 단어는 저런 분들에게야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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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크레딧에서 나오는, 사마가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장면
영화의 크레딧 화면에서 잠깐 나오는 사진 중 가장 명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사마가 폐허 속에서 ‘여기는 알레포입니다. 무엇이 정의인가요.’(This is Aleppo. What’s Justice?)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강의실과 책에 등장했던 그 한가한 질문을 여기서 보게 되다니. 영어가 짧은 제 눈에 저 팻말은 ‘정의가 여기 어디에 있나요.’(Where is Justice here?)로, 아니 더 심하게는 ‘정의란 게 여기 대체 있긴 있나요.’(Is there on earth Justice here?)로 보였습니다. 이 영화를 본 우리는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저 굳이 찾는다면 당신들이 알레포에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 자체가 정의라는 한가로운 대답밖에 내놓을 수 없었습니다. 미안해요. 그냥 없다는 게 정답일까요.
자료를 조금 찾아보니 와드의 가족들은 현재 영국에서 정착해 새로운 삶을 살면서 여전히 시리아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와는 무척이나 거리가 있는 문제로 보이지만, 과연 와드와 같은 시리아 난민들은 각지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우리는 조선학교와 조선유치원에 대한 무상교육 지원금을 끊고 마스크 지원도 끊는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 극도로 분노했으며, 최근에는 재난기본소득을 외국인에게 지급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를 들으며 허탈했고, 코로나-19를 이유로 재외국민들을 위한 투표 업무를 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에 또 한 번 분노해야 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고 시리아 전쟁 그 자체를 종결시키는 일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와 함께 사는 이방인들과 우리는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고민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통계를 보면 한국에도 약 1,200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평화를 찾아 여기까지 온 이들에게 차별은 곧 또다른 선전포고와 다름없지 않을까요. 우리 안의 시리아, 예맨 등의 평화를 지켜줄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바샤르 알 아사드와 그 부역자, 조력자들에게 천벌을.
시리아의 민주화를 꿈꾸는 시리아 인민들에게 평화를.

정우성 배우도 강력추천한 그 영화^^(출처: KBS 저널리즘 토크쇼 J 2019. 6. 30. 방영)
** 덧붙이는 알림
천지선 변호사님을 중심으로 저와 몇몇 회원 여러분이 페미니즘을 다룬 만화, 책,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를 함께 감상하고 편안하게 이야기 나눠보는 민변 내 소모임 ‘만감’을 만들었습니다. 좋은 미디어와 함께 공부하고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회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미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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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사람들을 기억해주세요. 이렇게라도.
< (1) 시리아 난민이 말하는 게임 – ‘Bury me, my love’ 리뷰>
-조덕상 회원
코로나-19가 유행하는 힘든 시절이지만 다들 안녕하세요. 주제넘지만 글을 시작하기 전에 민변 독자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코로나-19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는, 2011년부터 계속된 전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시리아 주민들과 난민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기억해주세요. 그들에게 뭔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 2차례에 걸쳐 연재할 리뷰는 시리아 전쟁1) 을 다룬 미디어 작품을 접하고 쓰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The Pixel Hunt, Figs, ARTE France가 공동제작한 ‘Bury me, my love’ 라는 인디게임에 대해, 그 다음 편은 와드 알카팁 감독이 제작한 ‘사마에게(For Sama)’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각각의 스타일은 사뭇 다르지만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비극과 거기서 탈출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입니다. 코로나-19로 우울해진 여러분께 더 심한 무력감을 드릴까봐 안타깝기도 합니다.
몇 달 전 소위 ‘게임불감증’에 걸려 있던 시절 정말 우연히 검색 중에 ‘bury me, my love’ 라는 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날 묻어줘요. 내 사랑.’ 어찌 보면 조금 섬뜩한 느낌의 표현인데 무슨 뜻인가 검색해보니 시리아의 일상적인 인사말을 영어로 번역한 말이랍니다.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조심해요, 나보다 먼저 죽는 건 생각하지도 말아요.’ (Be careful. Don’t even think of dying before I do.)라는 뜻이랍니다. 당신이 죽는 걸 보느니 내가 먼저 죽겠다는 것이겠죠. 이런 절절한 인사말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게임일까 더 궁금해졌습니다. 찾아보니 2011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전쟁에서 탈출한 난민들의 이야기였습니다.
‘Bury me, my love’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게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Majd(매지드)라는 이름의 시리아인 남성이 되고, 그 신부인 Nour(노어)와 스마트폰 메신저 어플을 사용해 계속 대화하는 것이 게임 플레이의 전부입니다. 외국에서 많이 쓰는 Whatsapp Messenger 어플 이름을 따서 이런 종류의 게임을 왓츠앱 게임이라고도 합니다. 여러분이 메시지를 직접 쳐서 입력하는 것도 아니고 알아서 메시지가 입력되다가 그때그때 주어진 선택지가 나왔을 때 고르면 그 선택지에 따라서 다시 인물들의 대화가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 마켓에서 유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게임(3,900원~4,600원)인데, 아쉽게도 한국어는 지원되지 않고 영어로 플레이 가능합니다. 2017년 10월 26일에 발매된 이 게임은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한국어 리뷰가 거의 검색되지 않습니다), 인디게임 쪽에서는 이미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2)
(여기서부터는 내용 누설이 조금 있습니다.)매지드와 노어는 시리아의 홈즈(Homs)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부부입니다. 시리아 전쟁이 갈수록 격화되자 노어는 터키로 건너갔다가 거기서 유럽(구체적으로는 독일)으로 망명하기 위해 홀몸으로 떠나고, 매지드는 노모가 있어 일단 노어가 유럽에서 정착에 성공하면 그때 따라가기로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먼저 목숨을 건 여행을 떠난 노어와 계속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그녀가 중요한 선택을 해야 될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 선택을 돕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노어는 여행을 더 안전하게 이어갈 수도 있고, 잘못 되면 노어가 사망하거나 외국에서 체포되는 비극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축적되면서 노어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찾아왔을 때 ‘아니 무슨 난민들이 스마트폰을 쓴대?’ 했던 이들에게는 참으로 비현실적인 게임이겠습니다. 하하… 노어는 계속 여러 나라를 이동하면서 현지 유심을 사거나 와이파이를 잡아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므로 남편인 매지드와는 오로지 데이터를 사용하는 문자메시지와 사진으로만 소통한다는 게 게임의 기본 설정입니다.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사치품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필수품입니다. 스마트폰에서 노어의 목소리는 여행이 끝날 때 보내는 음성메시지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영어로 매우 생생하게 말합니다. 사랑해, 고마워, 살려줘. 망했어. 체포됐어. 저는 대충 이 정도만 알아들었습니다 ㅠ).
스마트폰으로 플레이하는 게임 장면. 오른쪽 사진 배경에 난민을 적대하는 내용의 낙서가 보입니다.
(https://thepin.ch/knowledge/mQTgT/dilute-game-review-24) 참고
이런 무거운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노어와 매지드의 대화는 시종일관 그렇게 어둡거나 촉박하지만은 않습니다. 노어는 때로는 여행을 하며 느끼는 여러 감정을 썰렁한 아재 개그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런 노어에게 매지드는 이모티콘을 보내 응수하기도 합니다. 여행 중에 힘들어하는 노어에게 매지드는 힘을 내라며 셀카를 찍어 보내주기도 하고요, 노어는 여행 중 인상적인 풍경이나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셀카로 찍어 알리기도 합니다. 언어의 장벽만 넘는다면 오랜 연인이나 부부끼리 느끼는 다정함과 친근함, 때로 노어와 바로 연락이 안 될 때(게임의 흐름에 따라 1-2일씩 연락이 두절되기도 합니다.)매지드의 초조함과 불안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가 등장하기는 하나, 메신저 대화의 특성상 전체적인 내용을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없습니다. 저도 해냈습니다, 여러분. 하하…
그런 대화 안에서 시리아 전쟁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의 모습, 공습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을 사력을 다해 치료하는 시리아 현지 의료인들, 시리아 난민들을 선의로 돕는 유니세프 활동가들과 돈을 받고 시리아 난민들의 망명을 돕는 수많은 브로커들, 시리아 난민을 체포해 그 전에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거나 장벽을 세우는 등 난민의 이동을 통제하는 각국 정부와 난민들을 돕거나 공격하는 각국의 시민들 등 시리아 전쟁을 둘러싼 다양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Bury me, my love” is a fictional story inspired by real people and events.]라는 안내문은 결코 빈말이 아닙니다. 시리아의 알레포(Aleppo)와 홈즈라는 도시에서 발생했던 독재정권의 잔혹한 공격과 시민들의 탈출에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도망가다 배가 뒤집혀 사망하는 보트 피플의 이야기로 흐르기도 하고, 터키에 설치된 난민 캠프에서 벌어지는 여성과 아동들에 대한 각종 성폭력과 착취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겨우 벗어나더라도 노어는 유럽에서 네오나치와 같이 난민을 배척하는 이들을 만나 위협을 받거나, 도와주는 척 하면서 사기나 성폭행을 시도하는 악당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을 메신저에서 계속 지켜봐야 하는 매지드의 심정은 어떨까요.

플레이 중 노어가 찍어 보내주는 다양한 사진들(게임 제작자가 편집, 발췌한 이미지 모음)
(출처 : https://twvideo01.ubm-us.net/o1/vault/gdc2018/presentations/Maurin_Flore...)
이 게임이 매우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개발자들이 실제 시리아 난민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시리아 전쟁 뉴스를 보고 막연히 아이디어를 떠올린 게 아니라, 2015년에 시리아 다마스쿠스(Damascus)에서 실제로 탈출하여 독일까지 망명하는 데 성공한 시리아인 Dana(다나)의 사연을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 다나의 이야기는 프랑스 르몽드의 기자 Lucie Soullier(루시 솔리에)가 작성한 르포 기사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바 있습니다.3) Pixel Hunt사의 CEO인 Florent Maurin(플로랑 모랭)은 기자 출신 프랑스인 게임 개발자로 위 르포 기사에서 큰 감흥을 받고는 루시 솔리에를 직접 만나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누었고, 독일에 살고 있는 다나와 메신저로 대화하거나 시리아 난민 캠프에 있는 시리아 난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게임 속 메시지와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4) 게임에 나오는 다양한 장면들 중에는 실제 다나가 찍은 사진에서 따온 것들이 많습니다.
다나가 찍은 카페에서의 사진과 게임 속 노어의 사진 비교 예시
노어는 여행을 하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다양한 선택이 필요한 상황을 만나고,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느끼는 감정을 매우 진솔하게 표현합니다. 진솔하다는 것이 늘 노어가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나와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이 그러했듯, 노어는 사실을 그대로 말할 때도 있지만, 매지드가 걱정할까봐 메시지를 치다가 지우는 등 망설이거나 소위 ‘하얀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기분이 너무 좋을 때는 매지드를 골려주려고 돈을 잃어버렸다는 황당한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노어가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 플레이어는 2개의 선택지에서 힘든 고민을 해야 합니다. 선택지들은 가끔 따뜻한 위로와 냉정한 조언 사이에 있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서 노어가 바로 도망가야 하는가 머물러야 하는가와 같은 매우 급박하거나 어떤 걸 선택해도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다행(?)이라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실시간은 아니라서 충분히 고민해보실 수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에서 바로 느껴지는 아쉬운 점은 중간에 원하는 지점에서 세이브(저장)/로드(불러오기)를 할 수 있는 기능이 없고, 이미 봤던 대사를 빠르게 넘기는 스킵(Skip)기능도 없다는 특징입니다. ‘아니 무슨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에 저런 기능이 없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고, 플레이한 유저들이 많이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PC 버전에서는 조금 개선되었다고 합니다). 게임을 하다가 플레이어가 원치 않는 결말(Bad Ending)을 불러오는 선택지를 고르고 말았을 때, 일반적인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미리 특정 지점을 저장해두었다가 그 지점을 다시 로드해서 시작하게 해줍니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여러 번 플레이하게 하면서 원하는 엔딩을 쉽게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죠.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우선 엔딩을 보기 전까지 세이브는 가장 최근의 선택지점에서만 강제로 이루어지고, 한 번 엔딩을 보면 게임을 원하는 지점에서 시작할 수 없고 무조건 여행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며, 다시 시작하면 이미 봤던 대화를 스킵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다시 봐야 합니다. 이 게임의 엔딩은 19개가 있다고 하니, 그 엔딩을 다 보려면 엄청난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며 마땅한 공략도 찾기 어렵습니다. 저도 그중에 5개 정도밖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Dana의 실제 이야기에 맞춰진 진(眞)엔딩은 독일에 도착하는 것인데, 저는 아직도 어떤 길로 가야 볼 수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필자가 직접 플레이하면서 마주했던 선택의 순간들. 이것 이외에도 정말 다양합니다.
왜 굳이 이렇게 불편하고 게임의 재미를 반감할 수 있는 방식을 취했을까요. 플로랑 모랭은 게임의 기획 의도를 ‘Exploring Helplessness’라고 요약합니다. 다나를 비롯한 시리아 난민들이 스마트폰으로 가족, 연인,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많이 느꼈던 감정은 기쁨과 행복 이상으로 ‘무기력함’이었다고 합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혹시 걱정할까봐 자신의 처지를 모두 드러낼 수는 없는 데서 오는 미안함, 전쟁 상황에서 겪는 친지들의 고통을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이 도망쳐온 자신의 처지에서 느껴지는 무력함 등등. 개발사는 플레이어가 이 게임을 하면서 그런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Dana는 운좋게 해피 엔딩을 맞았지만,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은 그렇지 못했기에, 플레이어의 편의가 아닌 실제 삶에서 존재하는 불편함과 고통을 중심으로 게임이 구성되었습니다. 이 게임을 하시게 된다면 이유 있는 불편함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어떨까요. 인생은 늘 1번뿐이니까요.
플로랑 모랭은 이 게임 말고도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 아이티 대지진, 파푸아뉴기니 부정선거 등 실제 사건들을 소재로 한 게임을 제작해 언론사에 제공한 바 있습니다. ‘게임은 신뢰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현실을 잘 묘사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에 따른 것이지요. 그는 게임 개발 과정에서 시리아 난민들와 계속 접촉했고 그동안 난민에 대해 내가 알던 것들이 게임을 만들면서 달라졌다고 고백합니다. 미디어에서 어떤 무리, 집단으로만 흔히 묘사되는 난민이 아닌, 우리와 같이 하나하나 모두 다르고 개성적인 주체로서의 난민을 볼 수 있었던 것이죠. 스마트폰을 통해서 기쁨, 슬픔, 유머를 나누는,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들. 예맨 난민을 갑자기 만났던 우리 사회에 정말 필요했던 건 저런 상식이 아니었을까요.

다나가 시리아에서 독일까지 이동했던 루트
플로랑 모랭은 이 게임으로 사람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시리아 난민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전달함으로써 난민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플레이어들이 느끼고 그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게는 이 게임이 여러 가지로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소개해드릴 ‘사마에게’ 라는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들어주었고,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시리아 전쟁에 대한 책들을 찾아 읽게 해주었으니까요. 프랑스의 오랜 식민지배를 받았다가 겨우 독립했지만 잇따른 군부 쿠데타로 혼란을 겪다가 하페즈 알아사드(1930-2000)와 그의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1965-)가 무려 60년이 넘는 철권통치를 일삼은 나라, 2011년부터 시민들이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시작했지만 시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정부, 그 내전에 개입하여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미국과 러시아, 터키, 레바논, 이스라엘과 같은 강대국들의 이야기까지… 알면 알수록 해답이 보이지 않는 참혹한 현실이 아직도 그대로인데, 이제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시리아입니다.
코로나-19에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선거판. 우울하지 않은 게 이상한 이곳에 살아내고 있는 여러분께 감히 이 불편한 게임을 해보시길 적극 권합니다. 이 게임을 통해 여러분은 시리아에서 터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스웨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을 스마트폰으로 여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목숨을 건 여행이지요. 이 게임을 통해 긴장감과 서글픔이 함께 하는 노어의 여행을 함께 하면서 우리가 충분히 지지하고 연대해주지 못했던,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깨울 수 있다면, 그리고 이 게임에서 느껴지는 그 무력감과 분노가 여러분들을 조금은 따뜻하게 해준다면 참 좋겠습니다. 지루한 글에 끝까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게임에서 만났던 가장 따뜻했던 장면들과 가장 행복했던 엔딩(왜 그런지는 직접 해보세요^^)
1)흔히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과의 분쟁으로 시작되었기에 ‘내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나, 몇 년 전부터 단순 내전을 초월한 국제 분쟁의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김재명,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하는 교양 57 – 시리아 전쟁’(2018), pp. 88-89. 참고.
2)①수상 내역 – Developper Choice Award at Indiecade EU 2017 / the Best Meaningful Play Award at the IMGA / the first prize at the Google Play Indie Game Contest 2018
②수상 후보 내역 – nominated at the GDC, Game Awards, BAFTAs and Webby Awards
3)르몽드 2015년 12월 18일자 기사 참고. 이 기사에는 Dana가 가족들과 스마트폰 메신저로 주고 받았던 메시지와 사진이 메신저 형태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안타깝게도 프랑스어로만 서비스되고 있음) (https://www.lemonde.fr/international/visuel/2015/12/18/dans-le-telephone...)
4)게임 개발 스토리는 아래 영상 링크에 간단하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개발자 스토리 : https://www.youtube.com/watch?v=4-uQgqW09CE) 또한 플로랑 모랭은 2018년 GDC(Game Developer Conference)에서 30분 가량 게임의 제작 과정과 구성 원리를 자세하게 발표한 바 있습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yDzsSvFZhJ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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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권력 한국마사회의 개혁을 위한 싸움,
다시 시작입니다.
하태승 회원(민변 노동위원회, 민주노총 법률원)
2020년 2월 27일. 종로구청은 행정대집행의 명목으로 광화문 서울정부청사 인근에 설치된 문중원 열사 시민분향소를 철거했습니다. 분향소가 철거된 당일, 광화문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습니다. 좁은 도로에 집결한 200명의 용역직원들, 12개 중대의 경찰 병력은 말 그대로 유가족들과 연대 활동가들을 짓밟았습니다. 분향소 철거를 운운하기에 앞서 문중원 열사가 자결하게 된 진상을 규명해달라는 유가족들의 절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부산경남경마공원 기수들을 죽음의 레이스로 몰아넣은 주범, 한국마사회가 각성해야 한다는 활동가들의 호소는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었습니다. 수백명이 넘는 구청직원들, 용역직원들, 경찰병력의 폭력적인 철거로 인해 시민 분향소 철막은 맥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무너지던 시민분향소 천막을 바라보며, 행정대집행이 끝난 이후 오열하던 유가족을 바라보며 참담하기 그지없는 심정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스크럼을 짜고 저항했던 다른 활동가들, 유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참담하다, 분노한다. 이 외에 당시 현장에서 연대했던 사람들의 심경을 표현할 수 있는 다른 적절한 표현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감염법 예방법에 따른 코로나19의 예방, 도로법에 따른 도로관리의 필요성 등 허울 좋은 공익을 논하기에 앞서 문중원 열사의 죽음에 대해 진상을 규명해야 했습니다. 마사회 – 조교사 – 기수 사이에 이뤄지는 복잡한 계약관계에서 발생하는 죽음의 갑질구조를 청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유가족들의 절규에 수백명을 동원해 분향소를 강제철거한 문재인 정부가 주장하는 노동존중이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100일. 문중원 열사가 자결한 뒤, 장례식을 치르게 된 날까지 걸린 시간이었습니다. 문중원 열사는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기수로 근무하던 중 2019년 11월 29일 한국마사회가 만들어놓은 반인간적인 노동환경을 폭로하며 자결하였습니다. 고인께서 근무하셨던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2005년 개설 이후 7명이 자결했고, 문재인 정권에서만 4명이 사망하였습니다. 동일한 사업장에서 지속적으로 자살이 증가하는 것은 결국 사업장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이에 2019년 12월 27일 결성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조사보고서를 발표해 ▲ 기수들 생계(임금)의 불안정성, ▲ 기수들의 높은 재해율(2018년 기준 72.7%), ▲ 기수들에 대한 인권 침해, ▲ 한국마사회에 집중된 권한(기수 면허, 수입, 징계)과 영향력 등을 밝혔고, 열악한 기수들의 노동조건,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마사회 뿐만 아니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진상규명과 제도개선을 외치며 지속적으로 투쟁해왔습니다. 이에 고인께서 자결하신 뒤 99일 만에 한국마사회는 “부산경남경마공원 사망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합의서”에 서명하게 되었습니다. 합의서에 의할 경우 한국마사회는 재발방지를 위해 ▲ 경마관계자들의 계약관계와 업무환경에 관한 연구용역을 시행하고 ▲ 문중원 열사의 사망사고에 대한 책임자를 조사해 징계하고 ▲ 기수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월 평균 소득 보장·재해위로기금 증액·조교사의 부당지시 금지 등의 근로조건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것을 약정했습니다.
한국마사회가 유가족들과의 합의서를 통해 약정한 내용은 어쩌면 당연한 내용입니다. 공공기관은 그 누구보다 모범적인 사용자가 되어야 합니다. 공공기관은 그러라고 설립된 곳입니다. 한 사업장에서 7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을 때, 정상적인 공공기관이라면 오히려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인간다운 근로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당연한 조치를 도출하기 위해 유가족들이 거리에서 100일 간 절규해야 했던 현 상황을, 수많은 기수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면서도 경쟁 중심의 임금체계를 유지한 무려 “선진 경마제도”를 버릴 수 없다고 고집한 한국마사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3월 9일, 마침내 문중원 열사의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그런데 한국마사회는 고인의 영결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합의서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공증하기로 한 약속을 파기하고 추후 있을 마사회 투쟁을 포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국마사회가 작성한 합의안을 믿고 100일을 넘겨서야 고인을 보내려고 했던 유가족은 영결식 직전 또 한 번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방적 파기 하루 만에 공증이 완료되었지만 영결식장에 걸린 그 흔한 표현 – “적폐권력 마사회” 라는 문구가 마음에 안 들어 진상조사도, 제도개선도 할 수 없다고 외치는 한국마사회는 스스로가 진정 적폐권력임을 자인하였습니다. 한국마사회의 완강한 거부로 인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과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공공기관 한국마사회를 만들기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이 글을 읽는 많은 회원님들께서도 관심을 놓지 않고 연대와 지지의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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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읽기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촉법소년을 생각해보는 드라마, ‘히든’
안녕하세요. 민변 아동인권위원회 조덕상 변호사입니다. 제가 몸담은 아동위의 소년사법 TF에서는 현행 소년사법 제도의 문제점을 아동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12월 30일 소년사법 TF에서는 촉법소년 문제를 다뤄 화제가 된 KBS 드라마 스페셜 ‘히든’을 감상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1). 그 날 드라마를 함께 보고 나서 생각해본 이야기를 여기에 찬찬히 풀어볼까 합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이 소년과 소년법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히든’은 1시간짜리 단편 드라마입니다. 약간의 내용누설이 있는 리뷰라는 걸 미리 양해 부탁드려요. 여성청소년과 소속 한주경 형사(류현경)는 존경하던 선배를 미성년자의 우발적인 장난으로 잃은 과거가 있는 인물입니다. 순찰 중 우연히 학교 친구 선주(오연아)의 아들 김건(서동현)이 선주를 폭행하고 가출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선주는 주경에게 건을 찾아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선주는 중학교 2학년인 건의 방황을 사춘기 탓으로 둘러대지만, 주경은 사건을 조사하면서 건의 책상에서 어둡고 섬뜩한 그림 노트를 발견하고, 학교에서도 건이 친구들의 돈과 물건을 빼앗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주경은 사건을 조사하는 중 건이 초등학생 시절 친구였던 이용현(유재상)과 함께 건물 옥상에서 돌을 던져 사람을 죽인(주경의 선배가 사망한 것과는 별개의 사건)소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습니다. 이후 주경이 건을 추적하면서 건에게 있었던 사건의 진실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이 드라마의 흐름입니다.
줄거리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드라마는 2015년 10월 8일에 실제로 발생한 용인의 아파트 벽돌 투척 사건을 중요 모티브로 삼고 있습니다. 그 사건의 당사자인 두 소년 중 1명은 10세 미만이라 기소되지 않았고, 11세였던 1명은 소년부로 송치되었습니다2). 그 외에 드라마 제작진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지만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이 별다른 처벌 없이 사회로 복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범법, 촉법소년이라는 사법 시스템의 허점과 양면성을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드라마는 만 10세 미만의 범법소년과 만 10-13세의 촉법소년의 정의를 까만 화면으로 보여주며 시작되고, 만 13세인 김건이 촉법소년에서 소년으로 넘어가는 시각을 계속 보여줍니다. 다른 범죄 드라마가 범죄의 공소시효 만료일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약간의 긴장감을 주지요.
모종의 사건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는 경찰이 우연히 유사한 사건에 집착하며 범죄의 진실을 찾는다는 구성은 어디선가 많이 본 이야기틀입니다. 주경은 존경하던 선배의 죽음으로 소년에 대한 강한 분노를 담고 있는 인물이지만 사건을 조사하면서 ‘깊게 들여다봐. 한 사람의 인생이니까.’ 와 같은 선배의 유훈을 떠올리며 변화를 겪지요. 범죄 드라마나 추리 어드벤처 게임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익숙하면서 식상할 수도 있는 구성이고, 조금 촉이 좋은 분들은 드라마 초반에 이미 드라마의 대체적인 결말을 예측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잘못된 선택과 편견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동이라는 메시지는 표현이 다소 거친 감이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옵니다. 건의 부모는 우발적인 그 행위로 인해 충격을 받은 건에게 필요한 관심과 위로 대신 자신들의 사회적 체면과 지위를 위해 건의 존재와 행위를 학교와 사회에 감추는 데에 급급합니다. 그 과정에서 건이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반성할 기회는 박탈되었고, 그 상처를 온전히 받아줄 수 없는 건이 일탈 행위를 하자 그는 부모에게 ‘괴물’로 불리는 존재가 됩니다. 선주는 건을 위해서 그랬다고 말하지만 주경은 선주에게 너를 위해서였다고 일갈하지요.

사전 지식 없이 본다면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괜찮은 단막극이라고 평할 수 있겠지만 변호사의 눈으로 드라마를 깊게 들여다보면 제도의 실상에 대한 고증이 여러 가지로 아쉬운 작품입니다. 우선 드라마의 시작 화면에 등장하는 10세 미만의 범법소년이라는 용어는 실무상 정립되지 않은 용어로, 「소년법」 제4조 제1항 제1호에 규정된 ‘범죄를 범한 소년’이라는 표현에서 임의로 따온 것으로 보입니다(일반적으로 ‘범죄소년’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또한 드라마가 처음에 언급하는 것처럼 10세 미만의 소년은 형벌과 보호처분의 대상이 되지 않고, 10-13세의 소년은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맞지만 잘 아시다시피 위 보호처분에는 성인의 징역형과 유사한 단기 또는 장기의 소년원 송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촉법소년은 범죄의 경중 등에 따라 수사를 받고 그 결과로 자유를 박탈당할 수도 있는데도, 드라마는 촉법소년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 집중하여 건이 촉법소년에서 벗어나기 전에 범죄를 저지르고 책임을 면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물론 결말은 조금 다르지만요. 우리의 실상은 촉법소년은 물론이고, 법 위반 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럴 우려가 있다는 우범소년도 국가가 구금까지 시킬 수 있습니다. 드라마제작진은 이러한 사실도 알고 있었을까요.
건이 친구와 저지른 과실치사 행위는 형사처벌이나 보호처분의 대상이 되지 않지만 민사 손해배상의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갖춘 건의 부모(부는 법학과 교수, 모는 화가)가 사건의 진상을 적당히 덮었다는 정황만 언급될 뿐 피해자의 유족에게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지 잘 알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모임에서 이 부분을 이야기할 때, 제작진이 형사처벌의 부분에만 집중한 나머지 민사 책임에 대한 고찰은 부족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했고, 한편으로는 피해자가 사회적 취약 계층이다보니 민사책임을 정당하게 추궁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했습니다. 피해자의 유족은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얼마 후 건의 집에 찾아와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는 소리와, 몇 년 뒤에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는 장면에서만 잠깐 등장합니다. 한편 드라마에서는 건과 용현이 범법소년이었을 때 조사받은 내용이 경찰서의 전과 기록에 남아 있어 주경이 건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되는데, 실무상 범법소년의 수사 및 범죄 기록은 경찰에 남지 않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가볍지 않은 옥의 티로 보입니다.
건이 저지른 잘못은 부모의 무책임, 소년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증오와 결합하여 두 주인공이 형사와 범인으로 재회하는 클라이막스로 발전하게 되고, 그 결말은 의외로 조금 허망하게 정리됩니다. 단막극이라는 작은 틀 안에서 죄를 저지르면 누구든지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메시지에 충실한 까닭이겠지요. 우리 모임은 이 드라마가 소년사법 제도에 질문을 던지는 방향이 과연 타당한지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건과 그 주변인물들이 고통받게 된 것이 과연 건이 합당한 형벌을 받지 않아서였을까요. 건이 과실치사 행위에 대해 어른과 마찬가지로 형벌을 받았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드라마의 기획의도가 다소 놓친 것 같은, 그리고 우리 모임이 이야기를 나누며 질문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국가는 소년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위해 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였습니다. 사실 저 질문에서 ‘소년’이라는 단어를 빼고 물어봐도 크게 다를 건 없을 것 같습니다. 뉴스에 보도되는 것은 소년의 잔혹한 범죄와 소년법에 따른 결정 뿐이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소년과 피해자 본인 및 가족들이 겪는 아픔에 대해 알지 못하며, 국가는 그에 대해 책임 있는 보호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의 원망과 고통에 집중해 가해자에게 필요한 것은 곧 엄중한 처벌이라고 이야기하며, 현 정부는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만 14세에서 13세로 낮추려고 하고, 소년원이 부족하니 민영소년원을 지으려고 하고, 20대 국회에서는 소년법을 아예 없애거나 소년에 대한 중형 선고를 가능하게 하는 온갖 개정안이 난무했습니다.
이러한 국가의 언행이 우리가 아동인권의 준거규범으로 삼고 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정부와 언론이 잘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게 형사미성년자의 연령을 낮추지 말 것, 소년법상 우범 규정을 삭제할 것, 소년의 자유 박탈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이버전 제도를 활용할 것 등을 권고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은 사회의 서슬퍼런 여론과는 정반대에 있습니다.
우리 모임은 소년의 사회 복귀를 돕는 합당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소년과 피해자 및 그 식구들의 피해를 회복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모두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양자에 대한 국가의 노력이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소년에 대한 처벌이라도 강하게 해야 된다는 여론으로 터져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건과 그 주변인들이 건의 행위로 인해 모두 고통스러워할 때 국가는 그저 형사처벌을 담당하는 경찰의 모습으로만 등장할 뿐 다른 곳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는 형벌의 필요성을 웅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제게는 ‘제발 도와주세요’ 라고 곳곳에서 문을 두드리는 등장인물들의 호소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최근에 크게 문제가 된 성남 소재 어린이집에서의 성추행 사건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가해 아동의 부모와 심지어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피해 아동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언행을 했다가 피해 아동의 가족들과 사회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었죠. 이 사건과 이 드라마를 보더라도 소년 범죄 문제의 책임을 오롯이 국가에게만 물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년 범죄를 둘러싼 사회적인 오해를 걷어내고 소년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각각 필요한 조치를 만드는 것은 국가의 역할입니다. 우리는 국가에게 소년에 대한 엄벌이 아닌 소년과 피해자를 모두 보듬어 달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드라마는 촉법소년으로 대표되는 소년사법 문제에 대해 흥미롭지만 다소 아쉬운 답을 내놓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매체가 관심이 없었던 소년의 고통에 대해 주목했다는 점만으로도 한 번쯤 볼만할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는 소년사법 문제 외에도 다양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우리 모임은 드라마 속 건에게 쏟아지는 악플을 보며 개인의 언행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문제는 사라지고 개인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만 남는 세태를 읽을 수 있었고, 노키즈존과 같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사회적 차별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어디선가 비난을 받겠지만 그래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주제를 피하지 않고 응시하는 이런 시도를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현재 소년사법 TF는 우리의 소년법을 소년과 피해자의 인권을 두텁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고가 될 수 있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일반논평 24를 번역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21대 국회와 정부에 부끄럽지 않게 내놓을 수 있는 소년법 개정안을 만들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1) ‘KBS 드라마 스페셜 2019’ 사이트에 가시면 회원가입 없이 무료로 시청 가능. 드라마 리뷰는 한겨레 2019. 12. 13. 자 기사 ‘논쟁적 소년법을 정면으로 응시하다 –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참고.
2) http://m.nocutnews.co.kr/news/4503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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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조합원들의 9년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2018. 9. 14. 잠정 합의에 이어 조합원 총회를 거쳐 9. 21. 쌍용차지부 해고자들에 대한 복직 합의가 드디어 이루어졌다.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100% 축하하기에는 걸리는 것들이 있다. 9년간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계조작을 통한 대규모 구조조정, 이에 옥쇄파업으로 저항한 쌍용차 노동자들, 노동자들의 파업에 가공할 폭력으로 대응한 경찰, 대량 구속과 거액의 손해배상, 30명의 희생자, 심리센터, 대한문, 화단과 분향소 등이다. 우선 이 모든 것의 발단이 된 정리해고 문제이다. 대법원은 아무런 근거없이 근로기준법상의 요건을 완화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정리해고에 대한 사법심사를 지속적으로 포기해왔다. 쌍용차 정리해고 항소심 판결이 2014. 2. 7. 이러한 대법원 판결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정리해고 문제에 대하여 온전히 헌법과 근로기준법의 취지대로 판단하였으나, 2014. 11. 13. 대법원은 사건 접수 불과 8개월만에 이를 파기해버렸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바로 회계조작이다. 즉, 쌍용차 외부 감사인이 과도한 유형자산 손상차손을 계상하여 부채비율이 187%에서 561%로 급증하게 되고 이에 기초하여 회사는 2,646명(비정규직 포함 3,000여명)의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한다. 쌍용차 정리해고 2심 판결은 이와 같은 과도한 유형자산 손상차손이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보았으나 대법원은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점”이라고 하면서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최근 확인된 사실은 상고법원 등 추진을 위하여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와 쌍용차 정리해고 재판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한편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서는 사법심사 외에 단체행동권 행사를 통한 문제 해결도 가능하도록 것이 우리 헌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취지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낙수효과 등과 같은 이미 폐기된 주장을 근거로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 문제는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이러한 대법원 판결을 이용하여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대하여 교섭은커녕 형사처벌과 손해배상 등으로 화답하고 있다. 실제로 쌍용차 사건에서도 회사는 구조조정 여부 및 규모에 대하여 교섭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불법파업에 대한 엄단을 주장하며 구사대를 동원하여 충돌을 유발하였고, 이명박 정부 경찰은 급기야 노조원들을 테러범 취급하면서 경찰특공대를 투입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충돌 등을 이유로 옥쇄파업 해제 직후에만 한날에 64명이 구속되기도 하였고 회사와 대한민국(경찰)은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쌍용차 손해배상 문제를 계기로 노동조합에 대한 거액의 손배청구 등을 해결하기 위한 “손잡고”가 출범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의 심리 상태는 말 그대로 갈갈이 찢겨나갔다. 경제적 측면의 어려움은 두말할 것도 없었고, 정신 건강 측면(ex.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에서도 매우 심각하였다. 쌍용차 조합원들은 이를 치유하고자 2012~2013년 대한문 분향소를 설치하였으나, 박근혜 정부와 경찰은 농성 중인 조합원들을 괴롭히기로 일관하였고 농성 천막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대한문 앞에 화단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집회의 자유 보장을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민변 변호사들(필자 포함)이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기소되기도 하였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2015. 12. 30. 회사와 쌍용차지부, 기업노조 3자간에 복직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당시의 복직 합의는 2017년 상반기까지 채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것으로서 회사는 실제로 이에 따른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많은 조합원들이 희망 고문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김주중 조합원이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에 쌍용차지부는 2018. 7. 3. 대한문 앞에 다시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 및 투쟁을 시작하였다. 이에 대하여 이번에는 경찰이 아니라 극우세력들의 집요한 방해 및 괴롭히기 행위가 지속되었다. 한편,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2009년 파업 및 2012~2013년 대한문 앞 집회에 대한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과도/위법하였으므로 사과할 것을 권고하였고 대한민국(경찰)의 손해배상 청구 취하를 권고하였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아직 이행/해결되지 않고 있다.
아무튼 이번 합의를 통하여 제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또 돌아온 사람들도 너무나도 먼길을 돌아서 와야 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들은 쌍용차 조합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를 사는 모든 노동자들, 모든 시민들에게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정리해고 문제, 파업권 문제, 경찰의 공권력 남용 문제, 부실한 사회보장 시스템 등 불행히도 9년 전과 비교하여 아직 바뀐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쌍용차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서 아직 우리가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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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기고]
세월호 참사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가
– 이정일 회원 (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사무처장)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이었다. 교황은 희생자 가족이 900km 거리를 메고 순례한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셨다.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힘은 마음속에 울리는 연민의 정에서 시작된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세월호 참사 보도를 지켜본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희생자 가족들의 모든 일상은 그 날 이후로 멈추어버렸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아들, 딸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어떠한 대책도 대책이 될 수 없었고, 위로가 될 수 없었다. 참사 당일 이후로 희생자 가족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일손을 잡지 못하고 눈물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원봉사로, 연대로, 진상규명 특별법에 대한 서명으로 고통 속에 빠진 가족들과 함께 하려고 했었다.
변호사의 한 사람으로 제1기 특별조사위원회의 측면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2016년 6월 말에는 박근혜 정부의 제1기 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한 강제해산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릴레이 단식활동도 했다. 제1기 특별조사위원회가 강제로 활동을 종료한 이후에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하여 시민단체 중심으로 국민조사위원회가 발족했다. 2017년 1월부터 국민조사위원회 진상조사단 단장을 맡아 세월호 참사 관련 기록을 수집하고 진상규명조사 쟁점들을 정리하였다. 1년 동안 제정을 기다려야 할 사회적참사특별법 시행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희생자 가족요청 들어주기. 국가대형 재난 사고에서 제기되는 핵심쟁점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희생자 가족요청 들어주기, 재난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과 재난사고에 대한 기억과 추모이다. 이 중에서 빠뜨리기 쉬운 게 희생자 가족요청 들어주기이다. 진상규명활동의 독립성에 치우치다 보면 무시하기 십상이다. 희생자 가족요청을 들어주는 과정자체가 치유의 과정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희생자 가족들의 요청은 단순명료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집으로 못 돌아오는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또다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고로 부모들이 슬퍼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는 기무사를 통해 희생자 가족들을 사찰했다. 진상규명활동도 방해했다. 제1기 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로 해산까지 했다. 희생자 가족들은 세월호 참사이후로 팽목항, 동거차도 및 광화문 광장 등 길거리에서 풍찬노숙하며 3년 이상 ‘세월호를 인양하라’, ‘진실을 인양하라’고 외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언제 끝날 줄 모르고 있었던 그 어느 시기에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하는 결정을 하였다. 바로 직후에 세월호가 어둠을 뚫고 물위로 올라왔다. 1073일이 지난 시점이었고, 목포신항으로 들어오는 세월호를 지켜보던 희생자 가족들은 부두에서 목 놓아 울었다. 거대한 무덤이 부두로 들어오는 느낌을 받으며 나도 함께 울었다. 이러한 고통의 시간들을 보낸 희생자 가족들에게 특별조사기구가 앞서서 시작할 일은 바로 희생자 가족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희생자 가족들의 힘으로 열어준 통로로 만들어진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는 희생자 가족들의 요청을 들어줄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있지 않았다.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의 역할.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의 핵심 역할은 세월호 침몰원인을 밝히고, 세월호 선체보존방안을 내놓은 것이었다. 더불어 해양수산부(현장수습본부)가 수행하는 미수습자 수습업무를 점검하는 역할이었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거치된 때로부터 11월 말까지는 미수습자 수습업무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마지막 한 사람의 미수습자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자 하는 노력은 세월호 참사원인에 대한 진상규명활동과 조화시키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았다. 선체절단은 수습을 효과적으로 하는 측면이 있지만, 침몰원인 조사를 제약하는 문제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의 목소리에 대해서 선체조사위원회는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바로 세운 세월호의 선체의 의미. 많은 우여곡절 끝에 2018년 5월 10일 세월호 선체를 바로 세웠다. 그 목적은 세월호 선체 정밀조사와 미수습자의 온전한 수색작업을 위한 것이었다. 더 큰 의미는 바로 세우는 과정자체가 희생자 가족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으로서 희생자의 요청에 답하는‘국가의 존재’이유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세운 세월호 선체를 통해서 진실규명에 더 다가갈 수 있었고, 선체보존방안과 관련하여 세월호 참사를 더 많이 더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체조사위원회가 내놓은 종합보고서. 2017년 11월 말까지 미수습자 수색을 최우선 과제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개시결정이 있고 5개월 지난 시점에서 선체내부에 들어가 내부조사를 조금씩 진행할 수 있었다. 38건에 달라는 조사용역보고서에 대한 분석도 조사활동 종료(2018. 5. 6.)를 약 1개월 앞두고 거의 마무리 되었다(참고로 2018. 5. 7.부터 8. 6.까지는 종합보고서 작성 기간이었음).
선체조사위원회가 침몰원인 관련 종합보고서를 심의·의결하기 위해서 충분히 숙고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선체조사위원회 내부 조사관들과 조사관 사이의 의견 차이, 위원과 위원 사이의 의견 차이에 대한 충분한 토의가 부족했다는 점에 있었다. 침몰원인을 둘러싸고 왜 의견차이가 발생하는지에 대해서 희생자가족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선체조사위원회가 종합보고서를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변명을 하고 싶다.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한 국회도, 제1기 특별조사위원회도 내놓지 못한 최초의 공식보고서이고, 이것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방향타 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안전사회의 열망을 담아내는 세월호 모습을 기대하며. 우리사회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는 희생자 가족들의 외침이 아직도 생생하다. 돈보다 생명의 가치가 더 소중히 다루어지기를 바라는 안전사회의 열망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대학생은 한국 현대사회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다는 서울대학교 교수의 말도 들었다. 대형 재난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해서 참사현장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방법이라는 재난연구가의 말도 들었다.
9․11 테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그라운드제로가 있다. 그라운드제로는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땅을 상징한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그 자리에 흘리는 눈물을 상징하는 폭포수형태의 분수대를 설치하고 그곳 아래로 잔해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의 추모․기념관을 지었다. 매일 수 천 명의 미국시민이 방문하여 9․11 테러를 기억하고 평화·안전을 희망한다.
중요한 시사점은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그 자리에 또 다른 모습의 건물을 짓지 않았고, 건물신축으로 얻을 수 있는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고 9․11 테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가치를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바로 세워진 세월호 선체는 생명을 중시하는 안전사회의 가치를 담아내는 도구로 활용되어야 한다. 세월호 선체에 생명의 가치를 콘텐츠로 담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희생자가족과 국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생명의 가치를 담아내는 내용이 세월호에 채워지고, 세월호가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꿈이 실현되는 도구로 활용될 때에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이 하늘에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약 1년 동안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에서 사무처장으로 있으면서 매우 힘든 여정을 보냈지만, 세월호를 바로세우고 침몰원인 관련 종합보고서를 내놓은데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는 것을 작은 위로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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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처 레터”는 우리모임 회원 여러분께 드리는 사무처 구성원들의 편지입니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질문하는 퀴어들!
장길완 간사
안녕하세요 민변 회원여러분, 사무처에서 상근하고 있는 장길완 간사입니다.
제가 뉴스레터로는 처음 인사드리는데요, 항상 사무처 공간에서 얼굴 맞대며 반갑게 인사드렸었는데, 이렇게 글로 인사드리니까 참 쑥스럽고 그렇습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무슨 이야기로 활동 소식과 인사를 드릴까 하다가,,,! 제 19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참가 소식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퀴어-앨라이, 그리고 혐오세력 모두에게 공평한(?) 무더위가 있었던 지난달 7월 14일 서울광장에서의 서울퀴퍼 참가 소식을 전해 드릴게요! (길어도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드려요)
민변은 올해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소수자인권위원회, 공익인권변론센터가 주관하는 부스를 운영하였고, 회장님 총장님 위원장님을 포함 30명이 넘는 회원들이 함께했습니다. 광장에 도착하고 입구를 통해 들어갈 때부터, 장장 8시간 동안 6 색깔 무지개를 질릴 정도로 봤는데요, 저기도 무지개, 여기도 무지개, 민변 깃발도 무지개, 그래서 오히려 무채색이 눈에 띌 정도의 벅찬 분위기였습니다. 당일 민변 부스에서도 퀴퍼의 전통에 맞춰 형형색색의 무지개 굿즈들을 쌓아놓고 후원금을 모금했고, 만약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이 제정된다면 어떤 조항이 들어가면 좋을지? 퀴어-앨라이들의 의견을 받았습니다.
(비온뒤무지개재단은 한국여성의전화와 함께 행진 트럭을 운영했고, 올해도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한국여성민우회, 장애여성공감 등 페미니스트 단체들의 부스와 난민인권센터,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민주노총 등 사회운동단체들의 부스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저도 각 단체들의 부스에서 파는 굿즈가 너무 이뻐서 정신없이 업어 오다보니 다음 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지갑 눈 닫아…)
올해 서울퀴퍼에서는 더욱 페미니스트-퀴어와의 연대를, 사회적 소수자들 간의 연대를 두드러지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성 인권과 성소수자 인권, 그리고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로 위치 지어 지는 이들의 인권은 분리되어 생각될 수도, 분리되어 보장받아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여성으로 위치 지어지는 불평등,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장애가 ‘장애’로 배치되는 불평등, 난민-이주민을 ‘잠재적 위협’으로 상상하는 불평등, 성소수자가 일상에서 지워지고, 존재를 부정당하게 되는 불평등한 현실 등, 사회적 소수자가 불평등한 조건에 놓이고, 차별을 경험하는 것은 다층적이고 다면적이고, 공적/사적의 영역에 상관없이 경험하는 것이며, 이러한 불평등한 구조는 교차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적으로 여성과 남성, 두 가지의 성별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 그 두 가지의 성별만이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라는 생각, 이러한 두 개의 성별 중 ‘여성’이라는 범주가 만들어지고, 그 범주에 위치된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불평등과 폭력의 문제는, 성별이분법이라는 문법 하에 퀴어가 경험하는 차별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의 차이가 절대 공존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간극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러한 차이를 기반으로 한 소수자들의 연대가 결국 교차적인 구조적 차별을 없애고, 서로 서로의 불평등한 위치를 바꿔나갈 힘이 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특정한 관계(이성애), 특정한 성적 실천(여성성, 남성성에 맞춘 젠더롤), 특정한 몸(지정성별과 ‘동일한’ 몸)만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정상’의 위치를 점유하는 이들만이 1등 시민으로 존재하는 사회에 저항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인식의 지평을 열어가는 모습들은 올해 서울퀴퍼에서 더 두드러지게 볼 수 있었습니다. 참여한 많은 이들이 혐오세력에 기죽지 않고, 광장에 모인 다양한 서로의 존재들을 축하하고 자긍심을 북돋는 시간이었습니다.
아 물론 혐오세력은 날씨가 엄청났는데도 불구하고 몇 년째 계속 시청광장 일대에서 동성애 축제를 반대한다고 외쳤습니다. (퀴퍼에는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등 보다 다양한 성적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오는데 말이죠..?) 서울퀴어문화축제는 2015년부터 시청광장에서 진행되었는데, 그즈음부터 한 차례도 빠짐없이 혐오세력이 방문(?)해주었습니다. 시청광장은 아마 회원 여러분에게 익숙한 공간이실 텐데요, 그 공간 자체가 시민들이 광장을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민주주의를 열어가기 위해 모였던 공간이고, 610 민주항쟁부터 최근의 촛불집회까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던 곳이니까요. 이렇게 역사적인 공간인 시청광장에서, 그간 성소수자를 사회 구성원으로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한국 사회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가로지르는 퀴어들이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차별과 낙인을 넘어 다양한 성이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자고 자신을 드러내는 서울퀴퍼가 개최되는 것 자체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혐오세력은 공적 공간에 저렇게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축제하는 게 너무 싫을 텐데, 어쩌겠어요, 저희는 귀엽고 사랑스러운데요.
아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는 아예 프라이드 플래그를 건물에 걸어놓았습니다. 국가 기관이 축제에 참여하고,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하는 모습들은, 한국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퀴어 시민들에게 용기와 힘으로 다가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시발점으로 많은 국가기관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나중’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퀴어들의 불평등한 위치에 주목하고, 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자세와 행동을 보여주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퀴어 이슈가 사소한 문제이자 사적인 일이라 여기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요, 하지만 이 문제는 그간 우리 사회가 응답했어야 하는 일이고, 국가와 공동체가 성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도록 바꿔 나가야할 책임이 있는 공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공적/사적 영역, 두 가지의 영역이 완벽하게 분리되어서 이야기되기도 어렵지만, 개인적인 일이라 여기고, 그렇기에 사소한 것으로 얘기되는 퀴어 운동은 오히려 사회 시스템에 대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누군가를 사회 구성원에서 탈락시키고, 그렇게 해야만 운영되는 사회이며, 탈락된 이들의 안위와 사람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구성원으로서 탈락된 이들이 이 사회의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고, 삶의 풍경을 어떤 방식으로 바꿔나가고 싶다는 것을 말하고 질문하고 바꿔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공적인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아직 미약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퍼레이드에 참여한 퀴어-앨라이들에게 환영과 지지의 메세지를 던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축제가 끝난 지는 이제 한 달이 넘었네요. (한 달 만에 이 글을 쓰려고 하니 기억이 가물가물 했습니다^^;).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 사회를 두 번째로 맡아 진행하며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다 보니, 문득 3년 전에 공개 커밍아웃하고 퀴어 운동을 했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3년 전에, 당시 제가 활동하던 공간에서 커밍아웃 했고, 이후로 지금까지 오픈 게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커밍아웃이 항상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자주 저를 이성애자일 것이라 ‘당연’하게 생각하고 물어보는 질문을 하며, 제가 인생에서 ‘처음’ 만난 게이라고 말하며 “모든 게이는 다 장길완 같을 것이다,“ 라고 넘겨 짓는 타자화의 경험도 있었으며(이성애자가 어떤 언행을 한다고 해서, 그게 곧 바로 이성애자들은 다 저럴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성차별과 성별이분법을 해체하고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가기 위한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는 등의 말들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제가 맺는 친밀한 관계들은 사회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인정’받을 길이 없어, 앞으로 노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하는 걱정도 앞서네요. 이런 것들은 제가 커밍아웃했어도, 대체로 ‘안전한’ 공동체에 속해 있는 ‘혜택’을 누리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커밍아웃’을 해야 하고, ‘1등 시민’이었으면 증명 받지 않아도 되는 부분들을 ‘질문’받고 하는 당면한 현실입니다. 주변의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경험하는 성별 정정과 정체성에 맞는 젠더 표현을 하는 것의 난관과 트랜지션을 선택해 나가는 과정, 그리고 레즈비언 친구들이 가부장제-성차별 사회에서 이성애-결혼을 하지 않았을 때 계속 마주하는 어떤 식의 압박 등 우리가 삶에서 겪는 수많은 난관들을 함께 마주칠 때, 언제쯤 변화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까? 를 질문하며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결국 시청광장을 점유하며 일 년의 몇 안 되는 하루를 무지개로 물들이듯이, 인내심을 가지고 변화된 세상을 만들어 가면 넘어설 수 있는 난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퇴진으로 촉발된 ‘촛불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데요, 촛불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이제는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관철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노동권을 보장받는 일, 사법 농단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는 지금 사법부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개혁해나가야 하는 일,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언제나 ’무시해도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문화를 바꾸고, 권력과 위계로부터 발생하는 성폭력을 추방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일,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사회 시스템을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꿔내는 일, 이 모든 것들이 촛불 이후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해 바꿔나가야 하는 것들이라 생각합니다. 촛불이 끝난 이후에도, 축제가 끝난 이후에도, 성소수자가 감내하고, 싸워 나가야 하는 ‘일상’에서의 차별은 여전히 유효하게 잔존하는 지금, 저도 그렇고, 많은 퀴어 운동가들도 그렇고, 그리고 민변도 그렇고 해야 할 활동이 참 많습니다. 민변은 계속해서 성소수자 존재를, 성소수자의 존재와 퀴어-인식론을 법에 기입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군형법 92조의 6 폐지 활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 참여, 각 지자체의 인권조례를 지키기 위한 활동, 성별이분법적 인식에 기반한 문화재청 한복가이드라인을 국가인권위에 제소하는 등 많은 활동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민변 회원분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활동에 참여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이제 이만 이렇게 장황하고 긴 글을 끝내며! 축제에 참여해서 고생한 민변의 회원들과 상근자들께도 감사 인사드리고, 아직 축제를 못 오신 분들이 있다면, 앞으로 열릴 다른 지역(ex. 부산, 인천, 제주 등)의 퀴어문화축제와 내년에 있을 서울퀴어문화축제 때 함께 참여하고, 퀴어들의 끼를 흠뻑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은 서울퀴어문화축제 20주년이래요! 대박)
그럼 무더위 잘 이겨내시고, 자주 뵙겠습니다!
덧붙여,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연인원 몇 만 명이 오는 서울퀴어퍼레이드, 그리고 한국퀴어영화제를 주최하고 주관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민사회노동 단체들이 그렇듯… 항상 사람과! 돈이 충분치 않다고 합니다.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서울퀴퍼 조직위 후원도 해주시고, 그리고 성소수자 인권 운동 단체들의 역동적이고 끼발랄한 활동들에도 많은 관심과 후원 부탁드릴게요. 이제 진짜 안녕!
2018.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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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본 잡담은 1%의 진실과 99%의 허구로 이루어진 것으로, 위법행위에 관한 진술이 아님을 명백히 합니다.
<어리버리 신입변의 좌충우돌 사법농단규탄법률가농성단 참가기>
-이경재 변호사
6월 초순인데도 햇볕이 뜨겁다. 6월이 이렇게 더우니 올해 여름은 정말 덥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대법원 동문을 향해 투덜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오늘 11시 대법원 동문 앞에 있을 법률가 기자회견은 여느 회견과 다른, ‘꿍꿍이’가 있는 발표이다. 공표된 사실과 달리 기자회견 말미에 기습적으로 농성 시작을 알리며, 천막을 치기로 예정되어 있는 것.
현재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원청구가 되어 있기는 하나, 아무튼 현행 집시법 제11조 위반행위이다. 제길 변호사가 되어 공식적으로 하는 첫번째 일이 위법행위라니, 내가 잘못하는건지 법이 잘못된것인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얼추 11시 정각에 대법원 동문에 도착했다. 동문 앞은 ‘피해자 집단고발관련 기자회견중으로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모르겠다. 너무 덥다. 어떻게든 더위만 피하고 싶다. 그늘을 찾아, 선글라스를 꼈다. 아 그래도 덥다. 법률가농성단 상황실팀원 L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농성시작선언’신호에 맞추어 게시판앞에 쌍용차지부, 콜텍지부 등 조합원아저씨들이 천막을 세워주시고, 동시에 ‘젊은’변호사들이 경찰에 대한 스크럼을 짜기로 했다고 하였다. 그래 나보고 몸싸움하라는 거지. 음. 판넬을 들고 얼굴을 가리고 기자회견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11시30분 :
드디어 교수님들, 피해당사자들 및 변호사들의 발언이 시작되었다.
노동위원회 위원장만 수 회 연임하셨다는 K변호사님의 피를 토하는듯한 일갈은 정말 소름이 돋는다. 아 그래도 덥다. 선글라스로 간간이 문 뒤쪽 경찰들 동태를 살폈으나, 피해자 기자회견보다는 오히려 긴장을 늦춘 상태다. 두근두근 거리는 박동소리는 나만 느끼는 건지, 혹시 모를 위급사태에 대비한 녹음은 잘되고 있는지, 모든 것이 걱정이다. 혹시라도 체포되면 이 녹취가 증거자료가 되나? 이거 지금이라도 녹음하지 말아야 하나? 체포되면, 집에 연락가나? 그럼 뭐라 말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정말 덥다.
앞에 있는 기자들도 지치기 시작했는지 점점 현장을 떠나고 있다.
12시 20여분경 :
기자회견문은 얼추 끝나간다. 침을 삼켰다. L교수님이 ’농성을 시작합니다!‘ 선언하셨다. 사회를 맡은 R변호사가 “여러분들 뒤를 향해 주십시오” 외쳤다. 대법원 동문은 여전히 닫혀 있고, 경찰들은 당황했는지 미동도 없다.
그 순간 게시판 앞에서는 대형천막이 펼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천막으로 향해주십시오” R변호사가 지시한다.
벌써 게시판 앞은 아수라장이다. 사복을 입은 정보과 형사들은 누군가에게 항의하고 있고, 법률원장인 K변호사님 등은 ’날씨가 덥잖아요. 그냥 그늘 만들려고 친거에요‘라는 말을 넉살좋게 형사들에게 말하고 있다. ‘이렇게 시간을 끄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주말장터에서나 봄직한 대형천막은 벌써 완성이 되었고, 은박 바닥을 한창 깔고 있는 찰나였다. 얼떨결에 천막 안 중앙에 껴서 말려있는 바닥을 피려고 손을 내밀었다.
누군가의 “너 뭐야” 소리가 들린다. (아 경찰들이 투입되어 막기 시작하는구나 혼자 생각했다) 그 다음 “막아 막아” 소리가 들렸다. (아 이제 체포되는건가)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잡기 시작했다.
‘뭐지???’ 하는 순간. 당혹. 그리고 깨달음.
‘아 나는 오해당하고 있구나’
“같은편이에요, 같은편이에요! 잡지마세요” 소리를 질렀다. 이런.
이럴수가. 경찰로 여겨지는 허탈함 속에 다시 바닥을 깔았다. 그러나 이미 맥은 빠졌다.
여하튼 천막은 완성되고, 판넬을 든 법률가들은 신속히 천막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다행히도 경찰들의 물리적 저지 없었다. 신난 건 기자들. 후레쉬 소리가 작렬한다.
그래도 덥다.
L변호사의 사회로 1인 발언 시작되고, 천막농성단은 안정기로 돌입하였다.
뭔가 비장함으로 시작했으나 정보과 형사로 오인당함으로 인해 허탈함으로 끝났다.-사복경찰은 정장 차림새에 시커먼 얼굴에 깍두기머리, 그리고 매서운 눈매를 연상했는데, 근데 그런데 그게 나라니. 나라니.ㅜㅜ
이렇게 시작된 법률가농성단의 천막은 시국미사를 끝으로 14일 만에 철거되었다. 쌍차 수석부지부장님은 농성 2주 내내 집요한 나의 원망을 들으셨다. 농성이 끝난 후 며칠간은 아침마다 왠지 동문에 가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곧 평상시처럼 복귀가 되더라.
그러나 곧 30번째 죽음이 쌍차지부를 찾아왔고, 대한문에 다시 분향소가 차려 졌다.
모두들 지치지않고 끝까지 연대하길, 그들이 우리를 도왔듯이, 우리가 그들을 도울 수 있기를.
농성단에서 친해진 D변호사님이 주신 엽서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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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는 왜 거리로 나섰는가
류하경 회원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권과 재판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우리는 대법원 동문 앞에서 지난 6월 5일 “사법농단규탄 법률가 선언”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전 11시 30분 취재열기는 뜨거웠다. 많은 수의 변호사, 법학교수들이 분노 담긴 규탄 발언을 쏟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 선언문 낭독이 있었다. 선언문은 기자들에게 사전에 배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언문 말미에 농성돌입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5일전인 5월 31일 초동모임을 갖고 긴 토론 끝에 천막농성을 결의했다. 이 내용이 알려질 경우 보안상 문제가 생겨 천막농성 시작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어서 비밀유지에 만전을 기했다.
낭독자가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시대를 밝히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되새기며, 그리고 법원에 대한 분노를 모아 위와 같은 내용으로 법률가 시국농성을 선언합니다.”
문장이 마무리되는 그 때,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투쟁 노동자들이 미리 준비한 천막을 대법원 동문에서 서초역 6번 출구로 가는 인도 위에 펼쳤다. 10여초나 되었을까 천막은 금세 설치되었다.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지금 농성천막이 설치되었습니다. 현 시간부로 법률가 농성 시작을 선언합니다. 자, 참가자 여러분 모두 천막으로 가서 빨리 앉아주십시오.” 법원 경위와 주위에 서있던 경찰들은 우리 쪽으로 다가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너무나 순식간이었고 천막을 지키려 달려간 우리 숫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앉은 자리에서 함성과 박수로 농성이 시작되었다. 오늘까지 10일차 노숙농성이다.
1971년 최초의 사법파동이 있었다. 판사들이 공안사건에 자꾸 무죄를 내리는 것이 박정희는 맘에 들지 않았고 결국 서슬퍼런 군부독재가 양심껏 재판하는 판사들을 손보기 시작하자 이에 법원 전체가 들고 일어난 것이다. 독재자 박정희의 칼은 검찰이었다. 서울지검 공안부는 대표적인 소신 판사인 이범렬 부장판사를 표적 수사하여 관례상 접대를 이유로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 접대자체가 전혀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법원은 시기와 대상의 형평성을 보건대 정황상 소신 판사에 대한 표적수사로 결론지었고, 이를 독재정권이 법원의 독립성에 도전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전국 법관의 1/3인 153명의 판사가 사표를 제출했다. 박정희는 법무부장관에게 수사중지를 지시하고 대법원장은 법관처우개선을 약속하면서 사법파동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장을 찾아가 법관들의 항의를 전달한 7명의 판사 중 스스로 사직한 홍성우, 김공식 판사를 제외한 나머지 최영도, 목요상, 김인중, 금병훈, 장수길 등 5명의 판사는 모두 재임명에서 탈락했다. 이후에도 1988년 2월 소장 판사 335명이 5공화국에서 중용되었던 김용철 대법원장 재임명을 반대하며 성명을 발표하면서 시위하여 결국 김용철 대법원장이 사퇴하였고(2차 사법파동), 1993년 6월에는 판사 40여명이 군부독재에 협조한 사법부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며 항의하여 대법원장이 사퇴하기에 이른 일도 있다(3차 사법파동). 그리고 2003년, 판사 160여명이 기수 서열에 따른 보수적 남성 법원장만이 대법관이 되는 관례에 항의하며 대법관 제청에 반대하는 연명을 제출했다(4차 사법파동).
이처럼 법원은 지난 군부독재 시절 권력의 폭압적 분위기에서 그릇된 재판을 했거나, 정당한 지휘권과 인사권을 침해당한 역사가 있다. 그런데 작금의 사법파동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다. 법원이 사사로운 제 이익을 위해서 스스로 정권에 부역한 것이다. 특히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법원이 박근혜 정권과 거래한 재판들이 모두, 노동자·사회적약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가장 마지막으로 법원에 기댄 사건들이라는 점이다. 1차~4차 사법파동에서 피해자가 법원 또는 판사였다면, 이번 사법파동에서는 법원과 판사가 가해자가 되었다. 그래서 사법파동이 아닌 “사법농단”이라고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문제가 된 대법원 판결들을 살펴보니, 사법농단의 피해자는 투쟁하는 노동자, 가난한 서민, 독재의 폭력에 저항하다가 희생된 과거사 피해자들이었다. 법원은 제도에 희생된 약자를 권력에 아부하기 위한 ‘협상카드’로 사용함으로써 이들을 두 번 죽였다. 대법원이 정권의 하수인이 되었다. 강요에 의한 굴복이 아닌 자발적·적극적 부역이기에 이는 조금도 감경될 수 없고 오히려 가장 엄하게 가중처벌 되어야 할 역사범죄다.
변호사도 중요한 직접 피해자다. 재판이 이 모양이면 우리가 쓰는 서면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재판이 이 모양이면 국민이 권력자를 찾아가지 무엇 하러 변호사를 선임하겠는가. 변호사는 독립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내팽개쳐 버린 법원에서 더 이상 재판을 할 수 없다. 심판이 부패하고 경기장이 무너져 내렸는데 선수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합 준비에만 매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나왔다.
대법원 앞에서 법률가들이 천막 노숙농성에 돌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사태에 일상적으로 대응할 수는 없다. 초유의 사법농단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법률가들이 책상머리와 법정을 벗어나 초유의 노숙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피해 당사자들 외의 국민 대다수는 이 사태가 어떻게 역사를 후퇴시켰는지, 그 피해의 규모와 향후 예방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절감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법농단에 대한 사회적 파장은 지금보다는 더 커져야 한다. 독립적이며 공정하여 시시비비를 가리고 정의를 세우는 주춧돌이어야 할 법원이 썩어버리면 힘의 논리와 권모술수만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모두가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파괴다. 역사의 종말이다. 대통령이 권력을 팔아먹은 국정농단에 버금가거나 이를 능가하는 심각한 사태다.
그렇다면 사안의 엄중함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 있는 우리 법률가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야 한다. 법률가들이 행동함으로써 사회적 공론을 주도하고 토론의 장을 열어,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이 사법농단 사태를 부각시켜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개인기고]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의
안일한 ‘셧다운제’ 인식을 비판한다.
조덕상 변호사
2017. 7. 4. 국회에서 열린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새 정부의 아동청소년 정책 방향을 알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일부 야당 위원들의 뜬금없는 안보관 공세가 이어지면서 청문회의 취지가 변질되는 참상을 우리는 목격했다. 필자는 이제 이렇게 예측 가능한 사태를 새삼스럽게 지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필자가 이 인사청문회에서 진정으로 분노했던 지점은 바로 정현백 후보자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심야 시간에 16세 미만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향유를 금지하는 소위 ‘(강제적) 셧다운제’(이하 ‘셧다운제’)를 당연한 제도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정현백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은 후보자에게 셧다운제 폐지 찬성 여부를 물었고, 이에 정 후보자는 “셧다운제는 초기에 반발이 많았지만, 지금은 정착하는 단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이견이 있지만, 지금은 안정화가 중요하다.”라면서 셧다운제에 대한 찬성 및 유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김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을 들며 셧다운제로 인해 게임산업이 위축됐느냐고 묻자 정 후보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으며, 김 의원은 “여가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은 게임산업이 아닌 여성과 아동”이라고 말하자 정 후보자는 ‘알겠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정현백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셧다운제가 아동을 보호하는 제도라는 왜곡된 인식에 대해 어떠한 망설임도 이견도 없었으며 이는 다른 여성가족위원회 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제도가 만들어질 때부터 지금까지 아동청소년의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셧다운제에 대한 이들의 입장 문제는 다른 이슈들에 가려 별 논란조차 되지 못했다. 소위 ‘블랙리스트’ 범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의 인사청문회 당시 셧다운제에 대한 입장 문제가 의원들 사이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이제 셧다운제는 이들의 말대로 게임산업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제도가 되었는가. 애초부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필자는 분명하게 밝히고자 한다.
2017. 5. 20.부터 시행된 「청소년보호법」 제26조 제1항의 ‘강제적 셧다운제’는 인터넷게임의 제공자가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된 최초의 틀이 현재까지도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2014. 4. 24. 수면 시간 확보라는 셧다운제의 당초 취지와 무관한 공익을 창출해내는 등 도저히 설득력 있는 논증을 찾아볼 수 없었던 헌법재판소의 셧다운제 합헌결정(헌법재판소 2014. 4. 24. 선고 2011헌마659·683 결정)이 있었던 이후, 박근혜 정부는 친권자 등의 요청이 있으면 셧다운제를 적용하지 않을 수 있는 내용의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소위 ‘부모 선택제’)을 2016. 12. 6. 발의했으나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가족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기 며칠 전인 2017. 4. 28. 고시를 통해 셧다운제의 시행 기간을 2019. 5. 19. 까지 기계적으로 연장하였다.
이러한 ‘셧다운제’는 16세 미만 아동의 헌법상 표현의 자유과 행복추구권, 평등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위헌적인 제도이다. 진정으로 청소년을 보호하고 싶다면 순전히 청소년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셧다운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청소년들은 즐거움의 추구와 자아실현 등 다양한 동기에서 인터넷게임을 포함한 게임들을 자유롭게 향유할 권리가 있다. 청소년들이 게임을 포함한 어떠한 행위에 지나치게 몰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특정 시간대에 그 행위를 금지시켜도 된다는 발상은 지극히 어른의 편의만을 위한 것이다. 이러한 셧다운제를 만들면서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게임업계가 아닌, 기본 인권을 제한당하는 청소년들의 의견을 경청한 적은 있는가. 청소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권리, 그 중에서도 게임을 통해 즐거움을 찾고 더 나아가 자신을 위한 각종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이 또한 표현의 자유로서 두텁게 보호되어야 한다.), 같은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청소년들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셧다운제 옹호론자들은 생각하고 있는가. 게임 중독과 과몰입이라는 복잡다단한 현상을 단지 ‘특정 시간의 게임’을 금지한다는 것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단순무도한 발상은 어디서 나왔는가. 왜 과도한 학습으로 인한 다수 청소년들의 휴식권과 수면권 침해에는 침묵하면서, 그 실체조차 불분명한 청소년의 심야 인터넷게임 과몰입을 문제삼는가.
여성가족부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는 아직도 인터넷게임의 중독적 속성과 심야의 무분별한 게임 제공이 인터넷게임 과몰입의 주요 원인이라 보는 것인가. 청소년 2000명을 2년간 추적 조사한 최근의 연구 결과에서는 게임 시간과 게임 과몰입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가 청소년의 자기 통제력을 약화시켜 게임 과몰립을 유발한다는 유의미한 분석을 내놓았다. 또한 2016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청소년 인터넷게임 건전이용제도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서 셧다운제 시행 이전부터 청소년의 심야 게임이용률은 전체의 0.5%였고, 셧다운제 시행 후 그 감소치가 0.3%에 불과했으며, 이 결과조차 실제 심야시간에 게임하는 청소년 수가 적어 셧다운제 시행으로 인한 게임이용 시간대의 변화로는 보기 힘들다는 의견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을 돌아볼 때 필자는 셧다운제가 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물을 수밖에 없다.
필자는 정현백 후보자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게 정책적인 실효성도 없이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셧다운제를 즉시 철폐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또한 앞서 언급한 대로 국회에 계류 중인 ‘부모 선택제’ 입법안 또한 청소년이 친권자가 허락한 게임만 할 수 있고, 그 할 수 있는 게임에 대한 추가적인 제한 사항 또한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찬성할 수 없다는 점 또한 분명히 밝힌다. 청소년 본인과 친권자가 자율적으로 게임 유형과 시간 등을 결정하여 게임 과몰입을 통제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근본적으로는 청소년들이 게임 이외에 다양한 취미를 향유하고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정책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여성가족부와 여성가족위원회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대체 우리는 언제 ‘아동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하는 셧다운제를 반대합니다.’ 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여성가족부나 여성가족위원회의 구성원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제발 청소년에게 간섭이 아닌 관심을, 금지가 아닌 자유를 달라. 이제 셧다운제를 셧다운해야 할 때다.
1)연합뉴스 2017. 7. 5. 자 기사 참고.(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7/05/0200000000AKR20170705060200001.HTML)
2)디스이즈게임 2016. 9. 1. 자 기사 참고. (http://www.thisisgame.com/webzine/news/nboard/4/?n=64466)
3) 정의준, ‘무엇이 우리 아이를 게임 과몰입으로 이끄는가’, 2016. 5. 2. “건국대 심포지엄: 게임과물입과 게임문화 : 게임이용자 패널연구” 참고.
4)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정부발의안) 참고.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ARC_M1F6T1R2Y0M6Y1X5C5B6W2F3Y0G0O0)
제30차 민변 총회 참가 후기
아끼는 곳에서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
경남지부 유태영 회원
올해로 민변에 가입한지 3년째, 어느새 5월 민변 총회, 6월 국제노동팀 ILO 총회 참가, 가을 노동위원회-오사카 민변단 교류는 내 연간 일정에서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총회는 한해의 주요 사업을 공유하고 살림살이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반가운 얼굴들을 오랜만에 만나고 민변의 정체성을 다지는 자리이다. 게다가 올해 제30차 민변 총회는 경남지부에서 공동으로 준비하는 터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통영은 지금 근무하는 법무법인 희망으로 이직하기 전에, 노동청에 6개월간 근무하면서 경남 생활의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곳이다. 내가 아주 아끼는 곳인 통영에, 아끼는 사람들을 초대한다고 생각하니, 장소 선정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그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2017년 3월 16일, 총회 준비팀과 함께 한 사전답사부터 나의 총회 참가는 시작되었다. 백주선 회원팀장님, 이현아, 김서정 간사님, 신입회원 안지희 변호사님을 만나 후보지인 두 리조트 사이에서 어느 곳이 먼 길 달려온 민변 회원들의 고단함을 녹여줄지 신중하게 논의했다. 푸짐한 해산물이 끊이지 않는 다찌집에서 얼음 채운 바께스에 담겨 나온 소주와 맥주를 마시면서…
총회 당일, 점심 식사와 새 정부 출범 관련 사전 간담회, 중앙시장 투어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한택근 변호사님께서 해저터널, 윤이상기념관, 중앙시장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도보 코스를 안내해주셨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민변 변호사님들의 오랜 동지로서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는 합과 풍성한 여행 노하우에 감탄했다. 필자는 김인숙, 하주희, 김유정, 전민경, 이현지 변호사님과 건어물 쇼핑, 충무 김밥 간식, 강구안 까페까지 촘촘하게 즐기고, 다른 변호사님들은 중앙시장에서 막걸리까지 한잔씩 하고들 오셨다는 알찬 시간이었다.
이후 늘 그럴 듯 5시간 이상 이어진 정기총회가 각 지부, 위원회 보고 등으로 시작되었다. 공익변론센터의 디지털도서관 시연은 기대가 컸으나 기술적으로 여의치 않아서 아쉬웠고, 신입회원들의 공연을 보며 후배들의 민변 활동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경남지부 박미혜 지부장님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회원들의 모범회원상 수상, 오민애 변호사님의 멋진회원상 수상을 보면서는 자랑스러움과 부러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번 총회에서는 특히 회칙 개정안 안건에 대한 토론이 뜨거웠는데, 앞으로 1년간 민변 내 여러 단위에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욱 널리 공론화되고 충실히 공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총회 장소 입구에서는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ADI, 광주전남공익변호사모임 동행의 홍보 부쓰가 세워져 후원과 연대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총회 뒷풀이는 민변의 여러 변호사님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술 한잔 나누면서, 선후배 회원들의 경험과 인간미, 노래 실력까지 느낄 수 있는 자리다. 탄팟 팟캐스트로 익숙해진 김준우 변호사님의 맛깔난 진행을 다시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필자는 경남지부 내에서도 통영, 거제시 여성 변호사 1호로 송무를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총회에서 만나는 선배 여성 변호사님들과의 교류는 특히 더 소중한 시간이다.
둘째 날 프로그램은 세병관과 소매물도로 나누어 투어가 진행되었다. 점심 식사로 통영의 맛집 한산섬식당에서 뽈락매운탕을 먹고, 통영의 특산물 멸치에서 이름을 딴 엔초비호텔에서 커피를 마셨다.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 한명의 회원이라도 더 마주하고 싶었는데, 수많은 후배들에게 커피 타임을 만들어 주신 심재환 변호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린다.
1박 2일 간 민변 회원으로서 가졌던 자부심과 앞으로의 민변 활동에 대한 의지, 거기다 통영의 쪽빛 바다의 아름다움을 가시 한번 기억하길 바라며 통영에서 태어나고 자란 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 도입부로 이 후기를 마친다.
제 1 장
통영(統營)
통영(지금은 忠武市)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중략)
지금도 흔히 여염집에 들르는 뜨내기 소반장수가 싸구려 소반을 통영소반이라 사칭하고
거래하는 풍경 있는데 통영갓, 통영소반은 그 세공이 정묘하여 매우 값진 상품이었다.
이밖에도 소라 껍데기로 만든 나전 기물이 이름 높다.
원료를 바다에서 채집하는 관계상 그랬는지 알 수 없으나
진주빛보다 미려하고 표질이 조밀한 소라 껍데기,
혹은 전복 껍데기를 갖가지 의장(意匠)으로 목재에 박아서 만든
장롱, 교잣상, 경대, 문갑, 자(尺)에 이르기까지
화려 찬란한 가구 제작은 일찍부터 발달되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 배나 찔러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이
발달되었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다.
바닷빛이 고운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노오란 유자가 무르익고 타는 듯 붉은 동백꽃이 피는
청명한 기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민변총회 감성후기
이 종 훈 회원(본부)
#1.
토요일 새벽. 주말의 단잠을 앗아가는 스케줄, 민변 총회. 갓 변호사시험을 마치고 오랫동안 미뤄둔 숙제를 마침내 완수하는 마음으로 너무나도 당연하게 가입한 민변, 정작 스스로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의문. 총회를 가는 날 아침에서야 문득 드는 물음. 이 땅에 민변은 무엇이고, 나에게 민변은 무엇인가. 집결 장소로 가는 길. 적당히 피곤하고, 적당히 설렌다.
#2.
무대에서 장기자랑을 함께 하기로 한 신입회원 친구들과 함께 합창연습을 하며 통영 바다를 거닌다. 그게 뭐라고, 잘하고 싶다. 바다 냄새가 좋다. 민변에 가입한 것이 한없이 긴장되는 순간.
#3.

민변의 지난 1년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 민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에 대한 막연한 인상을 넘어 구체적인 내막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경남지부는 회원수가 증가했고, 일을 많이 했으며, 돈을 정확히 셌다고 한다. 모든 궁금증이 일거에 풀리는 쾌거의 순간. 이 세상에 회원수가 증가하고 일을 많이 하며 돈을 정확히 세는 조직이 몇이나 될까. 민변에 가입한 것이 한없이 자랑스러운 순간.
#4.
상을 주고받는다. 가장 헌신적이고 열렬하게 활동한 수상자들이 도리어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알겠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후배의 시상을 위해 120km/h를 거침없이 달린 선배의 이야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옆에서 함께하는 서로라는 수상 소감이 마음을 울린다. 수많은 회원들의 진심이 박수에 녹아 전해진다. 민변에 가입한 것이 한없이 벅찬 순간.
#5.
열띤 토론이 오고 간다. 당연히도 서로 견해가 다르지만, 민변의 바람직한 모습을 위해 열변을 토한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애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터. 오늘의 민변은 쉬이 이룩되지 않았을 것이다. 민변의 미래인 우리가 물려받고 또 언젠가는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민변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사뭇 진지해진다. 민변에 가입한 것이 한없이 숙연한 순간.
#6.
술을 마신다. 안주가 걸다. 사람들이 좋다. 술에 취해 잠드는 것이 아쉬운 건 참 오랜만이다. 민변에 가입한 것이 한없이 취하는 순간…?
#7.
1박2일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36시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 땅에 민변이 무엇인지를 온전히 알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민변이 무엇인지를 오롯이 느끼기에는 차고남치는 시간이었다. 선배들이 가시는 걸음걸음 따라가다 보면 우리도 언젠가는 민변의 역사가 될 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상당히 피곤하고, 상당히 설렌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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