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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보당국 ‘2040-예측’보고서의 발표내용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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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보당국 ‘2040-예측’보고서의 발표내용과 분석

admin | 목, 2021/05/06- 19:43

편집자 주:

매년 2,000억 달러이상의 예산을 집행하고 산하에 18개의 방대한 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미국 정보집단은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는 4년마다 향후 20년의 흐름을 예측하여 보고하고 있다. 아래의 2개 글은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추어 발표한 미국정보당국의 미래예측에 대한 뉴욕타임즈 편집진 논설내용과 싱크탱크 The Atlantic의 전문가가 분석내용으로 미국정보당국의 활동과 흐름을 포착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1. 4월15일자 뉴욕타임즈 논설내용

미국정보집단은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서는 4년마다 향후 20년 동안 세계가 어던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가중평가기법을 활용하여 예측하는 보고서인 “글로벌 트렌드”를 내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2008년 보고서 는 동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빠르게 확산되는 전염병 대유행의 잠재적 출현에 대해 사전에 경고한 바 있습니다.

지난주 정보국이 발표한 최신 보고서인 “Global Trends 2040”은 전염병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하고 특이한 세계적 혼란”으로 판명되었으며 의료, 정치 및 안보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schadenfreude(남의 불행에 쾌재를 부른다는 독일어 속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미래에 놓여있는 심각하고 어두운 전망에 대한 프롤로그입니다.

불길한 제목의 ‘A More Contested World – 경쟁이 격화되는 세계’라는 제목의 144 쪽짜리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예측되는 세계는 기후변화, 고령인구, 질병, 금융위기 및 분열을 야기하는 첨단기술 등 모든 것이 인류사회를 압박하고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도전과제와 이를 다루기 위한 제도 사이의 틈새가 벌어지면서 주정부의 정치는 더 불안정하고 논쟁이 심해질 것이며, 지역단위 이데올로기 또는 거버넌스 시스템이 이를 대응하거나 해결할 해답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국제적 차원에서는 갈등위험이 미국과 서방 주도의 국제 시스템에 대한 중국의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는 세계가 될 것입니다.”

다음은 전세계를 관망하는 정보기관의 판단에 대한 주요 내용입니다.

“전세계 인구의 상당부분은 현재의 제도와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해결하기를 주저하거나 처리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회와 안전에 관한 사항뿐만 아니라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뿐만 아니라 환경이슈와 같은 관심사항 및 원인에 대하여 친숙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그룹에 이끌리고 있습니다.”

“군사력과 인구문제 경제발전 기후적 조건과 기술에 대한 변화뿐만 아니라 정치체제와 같은 이슈에 대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서구연합과 중국 간의 경쟁이 가열될 것입니다”

“주정부 수준에서 해당지역의 사회와 정부간의 관계는, 시민들이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과 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것 또는 제공하는 것 사이의 불일치가 증가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긴장과 갈등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고서를 읽은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이보다 우울한 보고서를 읽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미래전망은 긍정적인 상황으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만, 올해의 “2040년에 대한 전망”이라는 제목은 “경쟁적 공존”, “분리된 사일로(지역분열)”, “재난과 난민이주” 또는 “세계적 표류”, “국제시스템은 방향이 없고 혼란스럽고 불안정”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이러한 배경에는 중국과 같은 주요 경쟁국, 역내의 개별단위 국가들 그리고 비정부 조직들이 국제적 규칙과 제도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서에는 미국과 동맹국들에게 민주주의의 부활을 선도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민주주의의 르네상스”라는 경쾌한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의 명백한 목표는 사람들이 원칙적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고서에서 실현가능성을 암시하는 내용은 빠져 있습니다.

기술된 내용의 황량함이 새롭고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Global Trends가 제공하는 대부분은 우리가 알고있는 위험과 우리 귀에 익숙한 경고를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팬데믹이 매우 잘못 처리되어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극의 빙하가 위험한 속도로 녹아 해수면을 높이고 전세계에 무서운 결과를 위협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의 모든 엄청난 혜택에 반하여 디지털 기술이 거짓말, 음모 및 불신을 불러 일으켰고 사회를 분열시키고 정치적 담론을 오염시켰음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양극화를 불러온 이기적인 규칙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국이 부상하고 있으며 봉쇄와 협력 사이에서 관리가능한 균형을 찾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글로벌-트렌드는 솔루션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며, 국가안보국과 CIA를 포함한 정보집단을 구성하는 18개 조직의 정책권고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한 예산자원을 투자해서 준비된 특별한 정보를 통하여 이를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정보전문가들이 세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파악하면서 깜박이는 빨간 불을 주의하고 밝은 곳을 찾아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은 정보커뮤니티 전체에 존재하는 광범위하고 깊은 전문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큰 이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정보기관은 국내의 18개뿐만 아니라 다른 동맹파트너들도 있습니다.”라고 “글로벌-트렌드 2040” 출판을 이끌었던 정보위원회의 전략적 미래그룹의 이사 인 Maria Langan-Riekhof는 언급합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의 현안 또는 지역의 문제로 영역을 좁히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상황을 살펴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발전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습니다.”

전염병에 대해 경고한 것을 포함하여 CIA 및 국가정보위원회의 과거초기 “글로벌-트렌드”의 수석 편집자인 Mathew Burrows는 미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니셔티브가 행정부에서 나왔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정보기관이 장기적인 계획에 참여하도록 요구하는 동력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10년 전, 클린턴 행정부의 국가안보고문인 Leon Fuerth는 조지 워싱턴 대학에서 미래참여에 관한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데, 그는 “행정부는 해야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라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위기의 빈도와 복잡성에 대응하는 “반동적이기보다는 예측적”인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미 Biden 행정부는 환경정책과 인프라의 분야에서 역할을 시작되었습니다. 정치, 사회 및 세계가 지난 십 수년에 걸쳐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가진 리더로서, Biden대통령은 어두운 지평선 너머에 점점 복잡하고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판단하고 준비하기 위한 진지하고 일관된 메커니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식할 능력이 있습니다. 정보기관들은 이를 지적하면서 행동을 요구합니다.

 

출처 : 뉴욕타임즈(NYT) on 2021-04-15.

 

2. The Atlantic 연구소의 분석내용

최근 미국정보국(DNI)은 연례위협평가 (ATA)와 국가정보위원회의 장기동향 및 시나리오에 대한 4년에 걸친 분석인 “Global-Trends 2040 (GT2040”)의 두 가지 주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2005년과 2012년 사이에 필자는 정보커뮤니티 (IC)의 센터와 사무실에서 제공하는 많은 정보에서 공개 또는 비공개 버전인 연례위협평가ATA를 모아 왔습니다. 필자는 또한 같은 기간 동안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가 발간한 세가지 글로벌-트렌드 보고서의 주요 저자이었습니다.

필자가 과거에 참여했던 두 종류의 보고서 최신 버전을 읽으면서 엇갈린 감정을 갖게 됩니다. 올해 연례위협평가서ATA는 중국을 ‘현존의 경쟁자- near-peer cometitor’로 지정하고 글로벌-트랜드GT2040은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충돌 가능성을 예견합니다.

2005년 당시, 필자가 참여한 글로벌-트렌드 2020 첫번째 판은 중국이 일본과 같지 않으며 서방주도의 자유질서에 통합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다른 ​​강대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은 기존질서에 순응하기보다는 새로운 질서의 창출자(rules-setter)가 될 것으로 주장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많은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덩 샤오핑의 발언한 도광양회(국가의 빛을 통에 숨기라는 말)을 포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는, 중국이 세계에서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보다, 이라크에서의 테러와 전쟁에 대해 훨씬 더 걱정했습니다. 중국과 인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면서 당시의 보고서 뒷면에 언급한 우리의 미묘한 노력(중국에 대한 경고)은 테러에 대한 집중으로 우리가 바라던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다극체제”라는 용어는 2008년의 ‘글로벌-트렌드 2025’가 발간되지 전까지 미국의 “상대적 약화”라는 단어와 함께 금기시되는 주제였습니다. 고맙게도 올해 ATA는 베이징, 모스크바, 테헤란, 평양이 미국과 동맹국들을 희생시키면서 그들의 이익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을 강조합니다. ATA의 오프닝 라인에서 미국에 반대하는 여러 국가를 그룹화한 결정은 그들이 조율된 노력에 참여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정보전문가가 아닌 미국인으로서 필자의 또 다른 감정은 걱정입니다. 단단한 진실에 기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부체제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합니까?  올해의 ATA와 GT2040이 미국이 직면한 도전에 대해 냉정하게 기술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굴기하는 중국에 대한 경고, 특히 글로벌-트렌드에서 우려를 표시한 주제들은 10년 전에 이미 주의를 기울었어야 하는 사안이었습니다.

ATA형식에는 몇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ATA형식은 위협목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위협이 서로 어떻게 복합되는지를 탐색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대신 ATA는 정보기구집단의 마음속에 있는 위협의 우선순위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보고서 초안을 작성했을 때는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이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제는 중국이 1위이고 테러리즘은 기후 변화, 사이버, 이주민과 같은 초국가적 위협의 다음에 맨끝 뒷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ATA에는 미래의 준비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으며 이러한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미국의 역량에 대해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의회를 포함한 정책입안자들의 업무입니다.

ATA와 GT2040의 보고서는 상기의 현안에 대하여 전문적이며 이들 문제들이 지닌 광범한 협력없이 해결해야 하는 복잡성을 지적합니다.

필자가 함께 일했던 국가정보국은 ATA가 세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미국이 그 안에서 어떻게 최선을 다할 것인지에 대한 광범위한 공개 토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탄했습니다. 의회질문들은 개별의원들이 선호하는 문제를 강조하는 이기적인 것으로 보이면서 때로는 국가정보국DNI를 당황하게 하거나 방해하려는 의도로 “포착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2015년 당시 국가정보국장 제임스 클래퍼는 그 해 발간된 ATA에서 이란의 테러활동에 대한 언급을 배제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만 했습니다.

ATA가 글로벌 안보환경의 현재온도를 알려주는 온도계와 같다면, 글로벌-트렌드는 기압계에 가까워야 합니다. 따라서 예측에 대해 걱정하면서 깨어있어 경계해야 시간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정보기구에서 근무하는 동안 장기적인 예측은 점점 불확실해졌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글로벌-트랜 발간이 고안되었을 때, 우리는 미국리더십이 보장되는 트렌드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0년 후, 우리는 ‘지속성이 아닌 변화’가 세상이 진화하는 방식에 있어 지배적인 동력이며 ‘미래예측의 시나리오’가 보고서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트렌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매개변수들을 설정할 수 있지만, “할수-있다”와 “할-것” 사이에는 너무 많은 변동성이 있었고 미국지도부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올해의 글로벌-트렌드에는 미국과 민주주의의 승리, 경쟁과 공존, 글로벌 불안정, 지역분열, 기후위기 이후 다자질서의 탄생 가능성 등 서양과 중국 간의 관계에서 가능한 모든 순열을 거의 기계적 방식으로 탐색하는 다섯 가지 시나리오가 들어 있습니다. 보고서를 편집한 사람들이 기후 변화, 식량 불안정 또는 다른 전염병과 같은 전세계적인 과제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참극과 난민이주”과 같은 시나리오에서 원인보다 잠재적인 파급효과를 훨씬 깊이 파헤친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기후변화와 지구적 기근을 주제로 글로벌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이 어떻게 인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구상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입니다. 현재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기술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지배할지 예상한 사람이 있습니까? 미국이나 중국이 1위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확산에 의해 인간에게 권한이 부여될 것인지 또는 해제될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를 포함시키는 것이 어떨까요?

결국 중요한 질문은 Biden 행정부와 의회가 이러한 보고서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들의 잘못이 무엇이든, 2가지 연구 모두 정책입안자들의 시선을 현재적 위기에서 보다 멀리 나은 미래를 계획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은 과거 한때 그랬던 것처럼 오류에 대한 여유가 없습니다. 9/11 공격을 시작으로 지난 20년 동안 미국은 세계가 예상치 못한 급진적인 방식으로 변화함에 따라 일련의 충격과 반갑지 않은 놀라움을 겪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세계는 더 이상 안마당이 아닙니다. 미국은 이제 어려운 지형을 탐색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재창조해야 합니다.  새로운 세계가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은 이에 대한 첫 걸음을 내딛는 입증된 사명입니다.

 

Mathew J. Burrows

Scowcroft 전략 및 보안 센터에서 Atlantic Council의 예측, 전략 및 위험 이니셔티브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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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하여 서방과 국내 언론들 전하는 내용과 다른 이야기가 소개되어 이를 의견과 번역없이 원문 그대로 전달합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의문 : 자연발생이냐? 조작된 사건이냐?>

상기 기사의 작성자는 상해에 거주하는 미국인으로 서방과 중국을 비교분석하는 상담전문가로 푸단대학에서 객원 교수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출처는 캐나다의 Global Research Center 이다.


Mystery on 2019_NCoV in China : different Story

Initial symptoms were mild, which permitted many people to travel before stronger symptoms were detected. The first occurrences in December thus appeared to be of minor concern. The incubation period has not been definitively stated but, once infections began, the spread was surprisingly rapid after the first case was confirmed on December 31: on January 3, 44 cases; January 21, 225 cases, January 24, 830 cases. Local medical authorities have said the true extent of the Wuhan coronavirus is unclear, and the early official figures may have been an underestimation since the mild symptoms and delayed onset meant infections may have been undetected.

All the evidence suggests the Chinese authorities acted effectively as soon as they realised the danger they might be facing. Medical authorities immediately declared the outbreak, and within a week they had identified the pathogen and also determined and shared the genome sequence with the WHO and other parties, a sufficiently speedy response that earned praise from the WHO and scientists around the world.

Remembering the SARS troubles, they did much more. In most large centers in the country, all sports venues, theaters, museums, tourist attractions, all locations that attract crowds, have been closed, as have all schools. All group tours have been cancelled. Not only the city of Wuhan but virtually the entire province of Hubei has been locked down, with all trains, aircraft, buses, subways, ferries, grounded and all major highways and toll booths closed. Thousands of flights and train trips have been cancelled until further notice. Some cities like Shanghai and Beijing are conducting temperature tests on all roadways leading into the cities. In addition, Wuhan is building (in five days) a portable hospital of 25,000 square meters to deal with the infected patients. As well, Wuhan has asked citizens to neither leave nor enter the city without a compelling reason, and all are wearing face masks.

The scale of the challenge of implementing such a blockade is immense, comparable to closing down all transport links for a city 5 times the size of Toronto or Chicago, two days before Christmas. These decisions are unprecedented, but testify to the determination of the authorities to limit the spread and damage of this new pathogen. They not only address the gravity of the situation but also the seriousness of consideration for the public health, unfortunate and difficult decisions since the holiday is being destroyed for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Most public entertainment has been cancelled, as have tours, and many weddings as well. The damage to the economy during this most festive of all periods, will also be enormous. Hong Kong will suffer severely in addition to all its other troubles, since visits from Mainland Chinese typically support much of its retail economy during this period.

The Chinese New Year is the most important festival for Chinese. Saturday, January 25, is the first day of the Lunar New Year, a festive period that typically sees the largest mass-movement of people on the planet as Chinese flock back to their hometowns to be with relatives. No health authority has ever tackled the challenge currently faced by China, as the country grapples with a new coronavirus just as hundreds of millions prepare to travel.

And of course the Western media had a field day of schadenfreude. CNN published a report – a bit too gleefully, I thought – on the potential damage to China’s economy: (1)

“China’s economy is slumping and the country is still suffering the effects of the trade war with America. An outbreak of a new and deadly virus is the last thing it needs. The Wuhan coronavirus has already roiled Chinese markets and thrown plans for the upcoming Lunar New Year holiday into chaos for millions of people. The world’s second biggest economy grew at its slowest pace in nearly three decades last year as it contended with rising debt, cooling domestic demand and US tariffs, many of which remain in place despite a recent truce. Beijing is worried about unemployment, too, and has announced a wave of stimulus measures in recent weeks aimed at preventing mass layoffs .

The Wuhan coronavirus outbreak could spark widespread fear and spur people to hunker down and avoid going outside. That kind of behavior would deal a huge blow to the service sector, which now accounts for about 52% of the Chinese economy.” [And so on . . .]

The Western media have already staked out their claim to the fundamentals, all media sources claiming the virus was transferred to humans from animals or seafood. The media have added fuel to the fire by claiming the virus emerged from “illegally traded wildlife” in a market “where offerings reportedly include wild animals that can carry viruses dangerous to humans”, and that this virus “jumped into the human population from an infected animal”. Chinese officials stated that the virus appears to have originated at a seafood market in Wuhan, though the actual origin has not been determined nor stated by the authorities, and is still an open question perhaps primarily since viruses seldom jump species barriers without human assistance.

While there is no evidence of biowarfare, a virus outbreak in the city of Wuhan immediately prior to the Chinese New Year migration could potentially have dramatic social and economic repercussions. Wuhan, with a population of about 12 million, is a major transport hub in Central China, particularly for the high-speed train network, and with more than 60 air routes with direct flights to most of the world’s major cities, as well as more than 100 internal flights to major Chinese cities. When we add this to the Spring Festival travel rush during which many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travel across the country to be with their families, the potential consequences for the entire country are far-reaching.

 

Comparison with SARS

This is a novel Coronavirus (2019-nCoV), an entirely new strain related to the MERS (MERS-CoV) and the SARS (SARS-CoV) viruses, though early evidence suggests it is not as dangerous.

SARS was proven to be caused by a strain of the coronavirus, a large family of mostly harmless viruses also responsible for the common cold, but SARS exhibited characteristics never before observed in any animal or human virus, did not by any means fully match the animal viruses mentioned above, and contained genetic material that still remains unidentified – similar to this new corona virus in 2019.

Virologist Dr. Alan Cantwell wrote at the time that “the mysterious SARS virus is a new virus never before seen by virologists. This is an entirely new illness with devastating effects on the immune system, and there is no known treatment.” Dr. Cantwell also noted that the genetic engineering of coronaviruses has been occurring in both medical and military labs for decades. He wrote that when he searched in PubMed for the phrase “coronavirus genetic engineering”, he was referred to 107 scientific experiments dating back to 1987. To quote Dr. Cantwell:

“I quickly confirmed scientists have been genetically engineering animal and human coronaviruses to make disease-producing mutant and recombinant viruses for over a decade. No wonder WHO scientists identified the SARS/coronavirus so quickly. Never emphasised by medical news writers is the fact that for over forty years scientists have been “jumping species” with all sorts of animal and human viruses and creating chimera viruses (viruses composed from viruses of two different species). This unsupervised research produces dangerous man-made viruses, many of which have potential as bioweapons. Certainly SARS has the hallmarks of a bioweapon. After all, aren’t new biological warfare agents designed to produce a new disease with a new infectious agent? As in prior military experiments, all it might take … to spread SARS is an aerosol can . . .” (2) (3) (4)

Almost immediately upon receiving the genome sequence, several Russian scientists suggested a link between SARS and biowarfare. Sergei Kolesnikov, a member of the Russian Academy of Medical Sciences, said the propagation of the SARS virus might well have been caused by leaking a combat virus grown in bacteriological weapons labs. According to a number of news reports, Kolesnikov claimed that the virus of atypical pneumonia (SARS) was a synthesis of two viruses (of measles and infectious parotiditis or mumps), the natural compound of which was impossible, that this mix could never appear in nature, stating, “This can be done only in a laboratory.” And Nikolai Filatov, the head of Moscow’s epidemiological services, was quoted in the Gazeta daily as stating he believed SARS was man-made because “there is no vaccine for this virus, its make-up is unclear, it has not been very widespread and the population is not immune to it.”

It wasn’t widely reported, but it seems the final conclusion of the Chinese biochemists was the same, that the SARS virus was man-made. This conclusion wasn’t a secret, but neither was it promoted to the international media since they would simply have used the claim to heap scorn on China, dismissing this as a paranoid conspiracy theory. The Western media totally ignored this aspect, except for ABC news who reported that the SARS “Mystery Virus” was possibly “a Chinese bio-weapon that accidentally escaped the laboratory”. Nice of ABC to notice, but their story, if true, would be the first example of a nation creating and releasing a race-specific biological weapon designed to attack exclusively itself.

Notable is that while SARS spread to about 40 countries, the infections in most countries were few and deaths almost zero, and it was exclusively (or almost exclusively) Chinese who were infected, those in Hong Kong most seriously, with Mainland China suffering little by comparison.

As with SARS, this new virus appears to be tightly-focused to Chinese. At this stage it is too early to draw specific conclusions.

We might in other circumstances pass this off as an unfortunate coincidence but for some major circumstantial events that serve to alter our focus. One of these is the history of American universities and NGOs having come into China in recent years to conduct biological experiments that were so illegal as to leave the Chinese authorities enraged. This was particularly true when it became known that Harvard University had surreptitiously proceeded with experiments in China that had been forbidden by the authorities years earlier, where they collected many hundreds of thousands of Chinese DNA samples and then left the country.

The Chinese were furious to learn that Americans were collecting Chinese DNA. The government intervened and prohibited the further export of any of the data. The conclusion at the time was that the ‘research’ had been commissioned by the US military with the DNA samples destined for race-specific bio-weapons research.

In a thesis on Biological Weapons, Leonard Horowitz and Zygmunt Dembek stated that one clear sign of a genetically-engineered bio-warfare agent was a disease caused by an uncommon (unusual, rare, or unique) agent, with lack of an epidemiological explanation. I.e. no clear idea of source. They also mentioned an “unusual manifestation and/or geographic distribution”, of which race-specificity would be one.

Recent disease outbreaks that would seem to possibly qualify as potential bio-warfare agents are AIDS, SARS, MERS, Bird Flu, Swine Flu, Hantavirus, Lyme Disease, West Nile Virus, Ebola, Polio (Syria), Foot and Mouth Disease, the Gulf War Syndrome and ZIKA. And in fact thousands of prominent scientists, physicians, virologists and epidemiologists on many continents have concurred that all these viruses were lab-created and their release deliberate. The recent swine flu epidemic in China has the hallmarks as well, with circumstantial evidence of the outbreak raising only questions.

There was another curiosity in this case, in that additional to the usual criticisms of China being inactive or secretive, several US media replicated accusations from “a senior US State Department official” claiming Washington was “still concerned” about transparency in the Chinese government on the Wuhan coronavirus. Other articles claimed the US CDC was “concerned that Chinese health officials have still not released basic epidemiological data about the Wuhan coronavirus outbreak, making it more difficult to contain the outbreak.” There is no substantial reason that officials at any level of the US State Department should concern themselves with a virus outbreak in a foreign country.

Their criticisms were surprisingly detailed, demanding specifics on the number of infections directly from contact with the Wuhan market, the number of person-to-person infections, the precise incubation period from exposure to the onset of symptoms, the point at which persons become contagious. The questions were presented in benevolent terms of helping the Chinese medical authorities deal with the virus, though it was already self-evident China had no need to be lectured on such basics.

As of the date of writing, details are still too scarce to form definitive conclusions but, in every such case, once the smoke clears there are many unanswered questions that challenge the official Western narrative, but it’s old news and the media have already staked out their ground so the matter dies in the Western public mind, but not in China.

 

Larry Romanoff

He is a retired management consultant and businessman. He has held senior executive positions in international consulting firms, and owned an international import-export business. He has been a visiting professor at Shanghai’s Fudan University, presenting case studies in international affairs to senior EMBA classes. Mr. Romanoff lives in Shanghai and is currently writing a series of ten books generally related to China and the West

일, 2020/02/02-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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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을 대표하는 행정부 수반 격인 집행위원장에 여성으로는 최초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이 취임했다. 폰 데어 라이엔은 40대에 늦깎이로 정치에 발을 들였지만 한때 앙겔라 메르켈을 이을 가장 강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돼 온 중량급 정치인이다. 추진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스스로가 7남매의 어머니인 폰 데어 라이엔은 독일 노동부 장관으로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 남성에게 유급 육아휴직 2개월을 주는 제도와 육아휴직 여성에게 임금의 67%를 보조하는 법안을 이끌어냈다. 군 경험이 전무하면서도 “독일 연방군을 독일에서 가장 매력적인 직장으로 만들겠다”며 여성으로는 최초로 독일 국방장관직을 수행했다.

폰 데어 라이엔의 취임은 EU를 이끄는 두 축인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수장이 모두 여성이 됐다는 상징적인 변화로 주목받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맡고 있었던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지난 11월 여성 최초로 유럽중앙은행 총재에 취임했다. 두 사람 모두 기후변화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나선 것도 공통점이다. 라가르트 총재는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통화정책까지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EU는 많은 도전과 위험에 직면해 있다. 영국의 EU 탈퇴 이슈인 ‘브렉시트’나 난민 대책,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 등 하나 같이 만만치 않다. EU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해 왔던 독일의 경제 침체가 EU의 경제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미·중 무역분쟁의 격화와 러시아의 위협 등도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EU와 미국과의 관계도 무역과 이란 핵 합의 등에서 충돌하며 악화됐다.

지난 11월1일부터 5년의 임기를 시작한 폰 데어 라이엔은 트럼프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도 통화하며 새해에 만나겠다고 밝혔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더라도 “제3국이 되겠지만 유례없는 협력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며 안정적인 관계를 이끌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폰 데어 라이엔이 EU가 맞닥뜨린 대내외적인 도전에 맞서면서 기후변화와 EU의 미래라는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메르켈 내각 최장수 장관… 프랑스어·영어도 능통

폰 데어 라이엔은 1958년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에른스트 알브레히트가 그 직전 해에 출범한 유럽경제공동체(ECC)의 집행위원회(EU 집행위원회의 전신)에서 일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브뤼셀에 살게 됐기 때문이다. 알브레히트는 초대이자 폰 데어 라이엔이 취임하기 전까지 유일한 독일인 집행위원장이었던 발터 할슈타인 아래에서 일하며 경쟁 담당 사무국장까지 지내기도 했다. 훗날 집행위원장이 되는 폰 데어 라이엔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일했던 자리에 다시 돌아온 셈이다.

폰 데어 라이엔은 13살이 됐던 1971년 가족과 함께 독일 니더작센 주의 하노버로 이주했다. 이후 식품회사 사장을 거쳐 정계에 입문한 아버지는 1976년 니더작센 주의 주지사가 됐으며 1990년까지 계속 재선돼 연임했다. 아버지는 중도 보수 성향인 기독민주당(CDU) 소속으로 한때 헬무트 콜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 선거에 나갔지만 낙선하기도 했다. 총리까지 꿈꿔볼 수 있었던 정치가였던 것이다. 1990년에는 주지사직을 내주게 되는데 그의 후임자가 바로 나중에 독일 총리가 되는 게르하르트 슈뢰더다.

폰 데어 라이엔은 1977년 괴팅겐대에 입학해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독일에는 68혁명의 영향으로 생겼던 극좌 무장단체였던 적군파(RAF)가 독일 경영자총협회 회장이자 나치 친위대 출신이었던 한스 마틴 슐러를 납치해 사살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1978년에는 RAF가 저명한 보수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알브레히트의 딸인 폰 데어 라이엔을 납치 대상에 올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때 폰 데어 라이엔에게는 24시간 경호를 받거나 영국으로 건너가 가명으로 사는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졌는데, 영국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로즈 래드슨’ 이라는 가명으로 생활하면서, 런던 정경대(LSE)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이 이름은 미국인이었던 증조할머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폰 데어 라이엔에게 런던은 ‘현대성의 전형’이자 ‘자유’와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 준 곳이었다. 그는 런던 생활에서 “내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내면의 자유를 얻었다”며 “다른 문화가 공존하면서 잘 지낼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말한다.

1979년 독일로 돌아온 그는 전공을 바꿔 하노버 의대에 입학했다. 1987년에는 졸업하면서 의사 면허를 취득했고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 1992년에는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그러는 동안 1986년에는 같은 의사인 남편 하이코 폰 데어 라이엔과 결혼했다. 괴팅겐대의 합창단에서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1992년에는 남편이 스탠포드 대학에서 일하게 되자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가 4년 동안 아이를 키우며 뒷바라지를 했다. 1987년부터 1999년 사이에 그는 7남매를 낳아 길렀다.

벨기에와 영국, 미국을 다양하게 거친 이력 탓에 폰 데어 라이엔은 독일어는 물론 영어와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다. 이 점이 뒷날 EU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는데 반감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그는 미국에서 다시 독일로 돌아온 뒤 2002년까지 하노버대에서 강의와 연구를 계속했다. 한편으로 1990년부터 기민당에 입당했던 그는 지역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6년에는 기민당의 니더작센 주 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기민당 소속 의사들의 모임에서도 활동했다. 2003년에는 니더작센 주 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2003부터 2005년까지는 주 정부 내각에서 사회복지 및 여성·가족·보건 장관을 맡아 일했다.

2003년 기민당 당 대표였던 앙겔라 메르켈은 당시 슈뢰더 총리에 맞선 사회복지 개혁안을 마련하고 있었고, 이 안을 마련하는 그룹에 폰 데어 라이엔도 참여하게 된다. 2005년 총선에서 메르켈은 저출산과 사회 보장 문제를 공략하면서 표심을 잡기 위해 폰 데어 라이엔을 예비 내각 명단에 넣게 된다.

폰 데어 라이엔은 보수 정권에서 일했지만 북유럽식 복지체계를 도입해 기민당 내 진보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출산 증가가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지론으로 출산 장려책에도 힘썼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부친을 5년이나 집에서 간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되기도 했다.

그는 메르켈 내각이 출범할 당시인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가족여성청소년부 장관을 맡았다. 보수적인 당내의 반대 분위기 속에서도 보육 시설 확충에 43억 유로의 예산을 확보했다. 남성들에게도 2개월의 유급 육아휴직을 도입했다. 이런 정책에 대해 기민당과 연합하고 있는 기독사회당(CSU)에서는 “남성들은 기저귀 교환 인턴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비꼬기도 했다.

폰 데어 라이엔의 과감한 추진력은 때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아동 포르노 단속을 위해 독일 연방경찰청이 가지고 있는 차단 목록을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제공해 강제 차단하는 방법을 옹호하면서 ‘검열 줄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6년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독교적 가치관 교육을 제시했다가 이슬람 이민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노동사회부 장관으로 일했다. 주요 대기업의 감독이사회에 2023년까지 40%의 여성 이사를 임명하도록 하는 할당제 도입을 두고 사회민주당(SPD)과 기민당의 갈등이 벌어지자 메르켈 총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민당의 손을 들어줬다. 숙련된 노동 인력 확보를 위해 이주노동자의 이민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동성결혼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2013년 폰 데어 라이엔은 여성 최초의 독일 국방장관에 임명됐다. 그는 군대를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자’며 군인들의 복지에 1억 유로를 투입했다. 군내 괴롭힘 등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군 사령관을 해임시키기도 했다. 유럽과 러시아와의 긴장이 확대되면서 국방비 지출을 늘렸고, 18만5000명이던 병력 상한선을 해제하고 지속해오던 감군 정책을 벗어나 군인의 수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대외적으로는 강경한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이슬람국가(IS)와 싸우고 있는 쿠르드자치정부에 대전차 미사일과 공격용 소총과 기관총 등 7000만 유로 상당의 무기를 지원했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 70년 만에 최초로 독일이 외국에 무기를 제공한 사례가 됐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별도로 유럽의 독자적 군 지휘체계를 창설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에 대한 무기 수출을 추진하기도 했다.

폰 데어 라이엔은 메르켈 내각에서 지금까지 14년 동안 계속 장관을 지낸 유일한 인물일 정도로 메르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나토 사무총장이나 메르켈의 뒤를 이를 총리 재목으로 꼽혔다. 그러나 2017년 총선 이후부터는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 그룹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분위기였다. 국방부 장관 재임 중에 연방군 내 장비 부족과 부실, 연방군 내 극우주의자 활동과 신병 모집 시 무리한 홍보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입지가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해군 훈련함 정비와 관련해 국방부 차관이 고임금의 고문들을 고용한 문제가 불거졌다. 독일 의회는 국방부가 민간 컨설팅회사와 자문 계약을 체결하면서 폰 데어 라이엔 장관의 사익을 위해 예산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문제가 된 외부 자문 컨설팅회사 중에는 폰 데어 라이엔의 아들이 일하고 있는 매킨지도 있다. 이 문제로 폰 데어 라이엔은 연방하원의 조사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

장관직 수행에 대한 독일 여론의 평가는 박하다. 메르켈 정부의 장관 지지도를 묻는 주간지 슈피겔의 여론조사에서는 꼴찌에서 두 번째를 기록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폰 데어 라이엔의 EU 집행위원장 선출에 대해 응답자의 56%가 ‘적합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 직전에는 메르켈 총리가 선거 뒤 개각을 단행할 경우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분석이 언론에서 나오기도 했다. 예상과 달리 폰 데어 라이엔은 EU 집행위원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우여곡절 끝에 집행위원장에… 앞길은 순탄치 않아

폰 데어 라이엔이 EU 집행위원장에 오르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 전부터 본인이 속한 유럽의회 내의 최대 정치그룹인 유럽국민당(EPP)에서 집행위원장 후보로 선출된 만프레드 베버 의원을 추천해 왔다.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유럽국민당이 1위를 차지하자 메르켈 총리는 계속해서 베버 의원을 추천했다.

그동안 EU 집행위원장은 ‘선도후보’ 방식으로 선출돼 왔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최다 득표를 한 정치그룹의 대표 후보를 EU 회원국 정상들이 추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럽국민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반대가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원회 경쟁담당위원을 지지하고 나섰다.

EU 지도부와 28개 회원국 정상들은 지난 6~7월 밤샘 회의 끝에 두 사람이 아닌 중도좌파 성향의 유럽사회당(S&D) 그룹의 집행위원장 후보인 프란스 티메르만스 협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전 네덜란드 외무장관)을 추천하기로 의견을 모아갔다. 그러나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 4개국 정상들은 티메르만스가 헝가리와 폴란드에 대한 EU 차원의 제재를 주도했다며 ‘절대 반대’ 입장을 내놨다. 이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폰 데어 라이엔을 새롭게 추천했고, 메르켈 총리가 수용하면서 전격 타결됐다. 대신 메르켈 총리는 폰 데어 라이엔을 지명하면 연정을 깰 수도 있다고 압박하는 사민당을 의식해 EU 회원국 정상 중 유일하게 집행위원장 지명 투표를 기권했다.

EU 집행위원회에 여성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온 마크롱 대통령은 집행위원장을 독일에 양보하는 대신 유럽중앙은행 총재를 프랑스 출신 여성으로 앉히는 수확을 얻었다. 메르켈 총리는 60년 만에 독일 출신 EU 집행위원장을 앉히는 성과를 얻었다.

이 같은 진통은 지난 5월 말 유럽의회 선거가 끝난 후부터 예고됐다. 그동안 EU를 지배해온 중도파 유럽국민당과 유럽사회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대신 마크롱 대통령이 속해 있는 자유주의 성향 ‘리뉴 유럽’이 약진했고 발언권이 강해졌다. 그런데다 폰 데어 라이엔 임명 과정을 거치면서 유럽의회 내부의 다수 정당이 추천하는 후보를 집행위원장에 앉히는 ‘선도후보’ 제도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스카 켈러 유럽녹색당 그룹 공동대표는 “정상들의 밀실 인선은 EU의 변화를 요구하는 유럽시민들의 기대에 미달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럽의회 인준표결에서 폰 데어 라이엔은 중도파 정당들의 반대에 부닥쳐 간신히 과반을 넘겨 통과했다. 찬성 383표, 반대 327표, 기권 22표였다. 과반을 불과 9표 넘겼다. 2008년 리스본 협약에 따라 유럽의회에 인준 거부권이 주어진 뒤 가장 적은 표차다. 유럽의회 지도부가 지지하는 인물을 거부해서 중도파가 이탈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극우파들이 폰 데어 라이엔을 지지하고 나서 입지가 어색해진 상황이다.

EU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정책에 대해 거의 독점적 권한을 행사해 왔다. 집행위원회는 EU 차원의 법안을 만들어 유럽의회와 EU 각료이사회에 제출하고, 심의·채택을 받는다. 유로존(19개) 회원국 예산안을 점검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해 점차 권한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폰 데어 라이엔은 의회가 특정 안을 표결을 통해 통과시키면 입법활동에 반영하기로 하는 등 일부 권한을 나눠주기로 했다. 하지만 유럽의회가 역대 최대로 분열됐다는 평가가 나오는데다, 선도후보제를 무시하고 나온 집행위원장과 의회의 관계가 얼마나 원만할지는 미지수다.

새로 취임한 폰 데어 라이엔은 벨기에 브뤼셀의 EU 집행위원회 본부 빌딩 13층의 집무실 옆 사무실을 개조해 숙소로 사용하기로 했다. 브뤼셀에서 일하며 숙박할 경우 전임자들처럼 호텔을 이용하지 않고 집무실 옆에서 잠을 자기로 한 것이다. EU 고위관리들이 낭비가 심하다는 비판에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라이엔은 2005년 정부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줄곧 그렇게 해 왔다고 한다. 국방부 장관 시절에도 국방부 내 소박한 공간에서 숙박을 했다. 주말에는 베를린에서 290km 떨어진 하노버의 집에서 가족들과 지냈다. 독일의 다른 장관들의 사정도 비슷했다고 한다. EU 안에서 숙박할 경우 경호 인력도 필요 없고 교통 혼잡을 겪지 않아도 된다. 전임 집행위원장인 장 클로드 융커는 집무실 근처의 아파트형 호텔을 이용했는데, 매월 3250유로(428만원)의 비용을 썼다.

 

‘하나같은’ EU로 기후위기 돌파할까?

폰 데어 라이엔은 EU가 미국과 같은 연방 국가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EU군’의 창설도 장기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내 자녀 세대는 아닐지라도 내 손자 세대에선 유럽연합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선 소감으로 그는 “강하고 단결된 EU를 만들겠다”며 “외부의 누구도 우리를 분열시킬 수 없게 다시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그의 행보도 그에 발맞춰 가고 있다. 폰 데어 라이엔은 차기 집행위원단 명단을 공개하면서 EU 집행위원회 산하에 방위·우주 분과를 신설하고 실비 굴라르 프랑스 전 국방장관이 분과 집행위원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EU 집행위에 방위와 관련된 분과가 창설된 것은 처음이다. 폰 데어 라이엔은 “EU는 결코 군사동맹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회원국들의 군대에 대한 공통적인 (무기 등) 조달은 매우 중요하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 같은 행보의 배경에는 EU를 압박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맞선다는 심중이 담겨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은 관세 인상 및 방위비 분담금 압박 등으로 연일 EU를 거세게 압박 중이다.

경제적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논리에 호락호락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폰 데어 라이엔은 ‘미국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현 EU 경쟁 분과 집행위원을 유임시켰다. 베스타게르 위원은 애플, 구글 등 미국의 초대형 정보통신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경쟁 질서를 해쳤다며 사상 최고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르그레테 위원을 두고 “택스 레이디(Tax lady)가 미국을 싫어한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역 분과 집행위원직에도 미국에 공격적인 필 호건 현 농업 분과 집행위원을 임명했다.

폰 데어 라이엔은 취임하면서 기후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지난 11일에는 EU를 ‘탄소 중립 대륙’으로 만들기 위한 ‘유런 그린딜’을 마련해 발표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1990년 대비 40% 감축하는 현행 목표를 2020년 중반까지 적어도 50% 감축하는 내용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도 마련 중이다. 그린 딜에는 탄소 제로 과정에서 타격을 받는 국가와 지역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유럽중앙은행 역시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대출 및 투자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신임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 채권을 대거 매입하는 ‘녹색 양적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자칫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EU회원국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EU 집행위의 그린딜에 대해서도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 국가들은 반대하고 있다. 폰 데어 라이엔은 “어떤 이들은 전환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말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데 따른 비용은 매년 커질 것”이라며 “그린 딜은 한편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되 한편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혁신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자료

Wikipedia – Ursula von der Leyen

[경향신문 2016.10.15.] 김종대 “우리도 여성 국방장관을 상상해 보라”

[경향신문 2019.7.3.] 존재감 과시한 마크롱, 위상 낮아진 메르켈

[경향신문 2019.7.7.] 독일 자국서 반대 목소리 커지는 EU 집행위원장 후보

[연합뉴스 2019.7.17.] ‘유리천장’깨고 첫 여성 EU수장 등극 ‘7남매 엄마’ 폰데어라이엔

[연합뉴스 2019.7.14.] EU 행정수반 후보 폰데어라이엔, 대학시절 獨적군파 표적돼 피신

[동아일보 2019.7.3.] EU에 거세게 부는 女風…집행위원장에 폰데어라이엔 장관 깜짝 발탁

[파이낸셜뉴스 2019.7.17.] EU 첫 여성 수장 폰 데어 라이엔 “하나된, 강력한 유럽 목표“

[파이낸셜뉴스 2019.7.20.][박종원의 News 속 인물] EU 이끌 “슈퍼 엄마”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연합뉴스 2019.10.4.] 몸에 밴 절약…EU 집행위 차기 수장, 집무실 옆에 숙소 둔다

[한국경제 2019.11.28.] 녹색금융 강력 주창하는 두 명의 여성 유럽수장

[연합뉴스 2019.12.18.] EU 집행위원장, 트럼프·존슨과 통화…”내년 초 만남 고대”

금, 2019/12/2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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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에서 연말까지 4개월간, 남북 유엔 동시가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숨 가쁘게 이루어졌다. 이렇듯 양국체제를 향해 열리는 듯했던 문은 이듬해인 1992년부터 급속히 닫히고 만다. 그리고 1993~1994년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 빠진다. 특히 1994년 5~6월은 한반도가 6·25 전쟁 이후 전쟁 발발에 가장 가까이 갔다는 순간이었다.14 전쟁 시뮬레이션은 엄청난 인명피해와 전쟁비용을 예고했고 북미는 충돌 직전에 가까스로 돌진을 멈췄다. 그 결과가 1994년의 북미 간 제네바 합의였다. 그러나 이미 남북 간, 북미 간의 적대와 불신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높아져 있었다.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정신은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양국체제로 가는 문은 다시금 굳게 닫히고 말았다. 이후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의 남북 정상회담도 이 상태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대반전의 기류가 본격적으로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였다. 우선 소련·동구권 해체 이후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 대북정책의 본심이 분명히 드러났던 때가 1992년 1월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북의 노동당 국제비서 김용순이 미국을 방문하여 미 국무부 차관 아널드 캔터를 만난 자리에서 밝혀졌다. 당시 북은 1991년 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까지 합의한 후 이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 의중을 밝힌 것이 1992년 1월 미국을 방문한 김용순의 발언이었다.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테니 북미 수교를 하자”는 요구였다.15 김용순은 김정일의 오른팔로 알려진 인물로, 김일성 – 김정일의 의사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동안 주장해왔던 미군 철수를 내리고 대신 북미 수교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북의 대남 전략이 통일에서 공존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신호였고, 이를 미국에 분명히 표명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북미 수교를 하자는 것은 앞으로 한국 역시 정식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의도의 표현으로 읽힌다. 북미 수교의 제안에는 한국과도 정식 수교관계를 맺고 공존하겠다는 뜻이 깔려 있었다. 앞서 동서독 동방정책 사례에서 미국과 동독의 수교(1974년)가 동서독이 양국체제로 가는 데 중요한 징검다리였음을 확인한 바 있는데, 남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북은 1990년의 독일이 아니라, 1972년(<동서독기본조약>), 1974년(미국 – 동독 수교)의 독일을 보면서 정책 전환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김용순의 제안을 미국은 거부했다. 미국은 한국만을 인정할 뿐, 북은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소련·동구권 해체 이후 미국의 한반도, 대북정책의 본심을 처음으로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류는 92년 이전부터 물밑에서 형성되고 있었다. 이미 89년 동구권 붕괴 직후부터 북(DPRK)은 루마니아와 같이 곧 붕괴할 것이며, 한국 정부의 북방정책은 망해가는 북을 연명시키고 있을 뿐이라는 분석과 주장이 미국과 한국의 정보라인으로부터 점차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16 미국과 한국의 대북 강경세력은 애초부터 북을 인정할 의도가 없었고, 오히려 위기를 조성하여 북을 붕괴시키는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있었다. 이후 30년 동안 한반도에 신냉전 기조를 유지하게 했던 ‘북한붕괴론 – 흡수통일론’이 여기서 나왔다.17 그러한 의중을 보여주는 첫 신호는 1991년 2월 미국의 북 핵 개발 의혹 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미국 측의 조사에 의해 확인된 바, 당시 북의 핵 개발 준비 상태는 현실적인 위협이 전혀 되지 못하는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다.18 의혹 제기의 목적은 핵위협의 실제성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북과의 관계 정상화를 거부하고 여러 제재와 압박으로 묶어두기 위함에 있었다. 그 의도가 1년 후 김용순의 방미 때 분명히 드러났던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의중은 먼저 한국의 주류 언론사들의 과장된 보도를 타고 한국 여론에 확산되어갔다. 북핵 의혹이 제기된 1991년에는 남북 정부 당사자 간에 대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는데, 한국 측 대표단에게도 미국 측 ‘전문가’와 ‘정보요원’들이 한국의 대북 협상대표단을 수시로 방문하여 북핵 상황에 대해 “교육하다시피 설명”했다고 한다.19 북핵 정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협상 대표단은 이 ‘교육’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1년까지는 남북 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핵 의혹’이 결국 진행 중인 모든 변화를 정지시킬 거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1992년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이 결정되고, 한국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 철수가 이뤄졌으며, 북이 강제사찰을 제외한 일반 핵사찰을 수용하면서 연말에는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이뤄져 핵의혹 문제도 봉합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제동은 1992년부터 걸리기 시작했다. 당시 남북 협상단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인 임동원의 회고에 의하면 남북 대화의 주 통로였던 남북 고위급회담은 1992년 초 <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 작성 단계에서부터 “우리 측의 지연전술”에 들어가 결국 그해 연말에 파탄에 이른다. 지연전술의 주역은 시종 안기부 비선이었는데, 그 방법은 주로 강경한 핵사찰 요구를 내세워 최종 합의를 불발·지연시키는 것이었다.20 결국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 간 합의·채택되기는 했으나 남쪽에서는 국회 비준을 얻지 못했고, 부속합의서 작성에도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채택 후 1년도 못 되어 실행도 못하고 사문화되어버린 셈이다.

이 남북 대화 지연전술 또는 방해공작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뤄졌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유명한 1992년 9월의 ‘대통령 훈령 조작 사건’이었다. 당시 8차 고위급회담차 평양으로 간 한국 측 대표단은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난번 회담에서 성사되지 못한 ‘이산가족방문단 교환방문’을 이번에는 일부 양보를 하더라도 반드시 성사시키라는 당부를 받았다. 협상은 잘되어 장기수 이인모 씨를 송환해주는 조건으로 이산가족 교환방문은 합의되었다. 그러나 이 합의에 대해 청와대에 훈령을 다시 확인해보자는 의견이 제시되어 야밤에 훈령 요청 전문을 보냈는데, 새벽에 온 답신은 이상하게도 이 합의를 취소하라는 것이었다. 대표단의 서울 귀경 후 이 훈령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내부 조사가 이뤄졌는데,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평양에서 보낸 대표부 훈령 요청 전문을 안기부가 서울에서 받아 청와대에 보내지 않고 자체 접수하였고, 안기부 독단으로 합의를 취소하라는 가짜 훈령을 평양의 대표단에 보냈던 것이다.21 이 놀라운 사건은 당시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에 가 훈령 조작을 주도했던 안기부 특보와 서울에서 조작 훈령을 보낸 안기부장 두 사람의 경질로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992년은 노태우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였다. 12월이면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미 차기 권력의 의중이 안기부 비선을 통해 작용하고 있었다. 당시 여당인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는 이 해 5월에 확정된 김영삼 씨였다. 김영삼 후보 진영은 남북 대화의 순조로운 지속이 대선의 야당 후보인 김대중 씨에게 유리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남북회담을 그렇듯 지연시키고 방해하려 했던 것이다. 당시 김영삼 후보의 선거캠프에는 북한붕괴론 – 흡수통일론을 믿고 전파하는 세력이 집결해 있었다. 1987년의 민주화운동을 대표했던 김대중, 김영삼 두 정치인의 이러한 대립은 이미 87년 12월 대선 당시 두 김 씨의 분열에서부터 예견되었던 것이다. 대선에서 양 김씨는 승리를 당시 노태우 후보에게 헌납했고, 1990년 김영삼 씨는 3당 합당을 통해 옛 군사독재 세력과 합치고 말았다. 이로써 87 민주화 세력은 양분되었을 뿐 아니라 그 절반이 신냉전·흡수통일 진영으로 합류해버린 것이다. 이후 2016년 말 촛불혁명 때까지 한국 정치를 지배했던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렇게 성립되었다.

1992년 초 미국은 북의 수교 제안을 거부했고, 가을에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그 한 해 중지했던 팀스프리트 훈련을 1993년에는 재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여기에 더해 1993년 3월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의 핵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청했다. 북의 모든 군사시설을 요구하는 대로 다 보여 달라는 것이다.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고 판단한 북은 며칠 후인 3월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버린다.22 이제는 아예 내놓고 핵무기 개발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초강수 대응이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북에 화해의 신호를 보냈지만 그 신호가 북의 NPT 탈퇴라는 초강수로 돌아오자 곧바로 강경대응으로 돌아선다. 북미, 남북 간 위협이 오가면서 적대적 갈등이 급속도로 높아졌다. 1994년 6월 북폭 일보 직전까지 상황은 흘러갔다. 적대와 불신은 북방정책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아니, 6·25 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북에 대한 압박이 커질수록, 체제 존립에 위기감을 느낄수록, 북은 필사적으로 핵 개발에 몰두했다. 이후 1998~2007년 민주정부 10년도, 2003~2007년 6자회담 4년도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었다.

 

첫 번째 양국체제 시도가 실패했던 원인은 무엇인가

코리아 양국체제는 여러 초대형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모종의 불가사의한 힘의 작용에 의해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첫걸음이 이렇듯 짧은 시간에 좌절되고 말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코리아 양국체제의 성패’에 초점을 맞추고 그 전후 관계를 밝히는 시각에서 발견적 질문(heuristic question)은 다음과 같다. 양국체제의 첫 열림을 주도했던 힘, 행위자의 성격은 어떤 것이었는가? 이 힘, 그리고 그 주도행위자는 87년 민주항쟁, 88년 서울 올림픽, 89~91년 소련·동구권 해체 등의 대형 사건들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는가? 양국체제의 성취와 실패는 그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드러났는가?

먼저 결론적으로 말하면, 양국체제의 첫 시도가 단기간에 실패로 마감됐던 핵심적인 이유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 양국체제로의 전환을 이끌어간 내부 주도 역량의 한계다. 그 한계의 배경에는 87년 민주항쟁 이후 민주화 역량의 분열이라는 뼈아픈 변수가 있다. 이 분열은 양국체제의 출발을 불안정하게 했고, 이후 체제전환을 지속해 나갈 힘을 크게 약화시켰다. 두 번째는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 북이 느끼는 체제 위협이 커짐에 따라 발생한 북핵문제다. 이로 인해 북미, 남북 간 높아진 적대적 긴장은 양국체제의 동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결국 이 두 가지 원인이 결합되어 양국체제의 첫 시도는 너무도 짧은 시간에 종결되고 말았다.

우선 코리아 양국체제의 첫 시도가 냉전대결 세력에서 파생한 노태우 정부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태생적 한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노태우 정부는 운이 좋았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야권이 분열해주어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고, 취임 첫해에 열린 88년 서울 올림픽에 소련과 중국 그리고 거의 모든 동구권 국가들이 참석했다. 임기 초반부터 북에 대해 대담한 화해정책을 제시할 수 있었던 자신감의 배경이었다. 화해정책의 배경에는 돌이키기 어려운 87년 민주화의 대세에 순응할 필요, 30퍼센트대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취약한 정당성을 대북정책의 성과로 만회해보려는 내부 정치적 요인 역시 강하게 작용했다.23 노태우 정부의 대북정책은 의외의 사건들의 연속에서 자기진화한 것이었다. 원래 ‘북방정책’은 전두환 대통령 시기 기안된 것으로 애초에는 동구권 수교를 확대하여 북을 고립시키려는 냉전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서울 올림픽 개최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과 남북 화해를 적극적으로 표방했고 89년 초부터는 남북 간 예비회담이 시작될 수 있었다. 같은 해 9월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국회에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하였는데, 이 ‘방안’은 서독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과 1972년의 <동서독기본조약>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24 애초에 냉전적 사고에서 출발했던 ‘북방정책’이 사건의 흐름 속에서 탈냉전적인 ‘동방정책’을 조금씩 닮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다 같은 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구권 붕괴라는 엄청난 사건이 이어졌다. 한국과 소련, 중국, 동구권과의 수교라는 애초의 목적이 놀라운 속도로 달성되었다. 외교상의 우위를 이뤘다고 생각한 노태우 정부는 이제 북에 대한 화해정책을 통해서도 남이 주도하는 통일로 갈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면서 남북 양측 모두에서 ‘상대의 인정’이라는 필요가 생겼고, 이 필요들이 서로 확인되었기에,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라는 ‘사건’은 비로소 가능했다. 노태우 정부의 자기 동력 때문이라기보다는 큰 사건들의 흐름 속에서 남북화해정책이 자기진화를 한 셈이다.

그러나 이렇듯 행운이 겹치면서 정책의 자기진화는 이루었으나, 그렇듯 형성된 양국체제의 싹을 지키고 키워낼 힘은 노태우 정부에 없었다. 노태우 정부의 정치기반인 민정당과 정치 군부는 냉전대결 체제의 기득권을 가장 강하게 대변하는 세력이었다. 이 세력은 올림픽 성공과 동구권 붕괴라는 유리한 사건이 이어질 때는 잠시 관망하는 듯했지만, 곧 북한붕괴론과 북핵위협론을 들고 나와 남북화해정책을 흔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맞서 장기적 화해정책을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밀고 나갈 만한 세력은 노태우 정부와 여권 내에 극히 미약했다. 이런 상태에서 북미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고 이끌 역량은 전혀 기대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더하여 3당 합당을 통해 합류하여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김영삼 후보 진영이 북한붕괴론과 북핵위협론 진영에 합류함으로써 화해정책을 밀고 나갈 힘은 여권 내에서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그 결과 노태우 정부의 마지막 1년은 그 이전에 이뤄진 화해정책의 성과가 모두 유실되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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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2/05-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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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슬람공화국은 COVID-19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을까? 미국의 무자비한 압박에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이란의 대표적 지식인 테헤란 대학교의 Mohammad Marandi와 통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혁명이 일어난 이후 이란은 온통 사회정의라는 주제에 집중하였다. 쿠바와 견줄만한 보건의료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는데 재정까지 투입하여 규모를 갖춘 일반병원들이 건립되었다. 코로나가 발발하여 미국이 테스트-키트조차 수입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였지만, 개인병원 수준이 아니라 공적 단위에서 잘 관리하고 대처하여 왔다. 모든 것이 잘 통제되고 있다. 서구와 비교하여도 이란은 방역에 필요한 테스트, 마스크 등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병실은 아직 여유가 있는 상태이다.”

Marandi 의 설명에 추가하여, 테헤란의 언론인 출신인 Alireza Hashemi 역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이란은 공공 클리닉을 포함하여 일차 보건의료시스템을 광범하게 갖추고 있고 수천 개의 도시들과 마을에 보건소와 건강센터들이 소재하고 있어서, 정부가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Hashami는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이어 간다 “보건당국에 COVID-19 전담센터가 구성되었고 자원공급 업체들이 공급해준 방역장비들을 전국에 배포하였다 최고지도자 Ayatollah Khamenei의 지시에 따라 30만 명의 군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자원하여 거리와 공공장소들을 방역하고 있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소독제와 미스크를 배포하고 필요한 테스트를 시행하고 있다.”

Hashemi에 의하면 마스크 등 방역에 필요한 장비를 생산하는 설비를 이란 군대가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테헤란의 상공회의소와 시민단체들이 Nafas(호흡이라는 뜻)라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의료 자재들과 클리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FaraBourse라는 비공식적인 클라우드 금융을 통하여 테헤란를 거점으로 모금이 진행되면서 필요한 의료 장비와 시설을 구매하여 의료진을 지원하고 있다. ‘지하디’라고 불리는 수 백의 자원봉사 그룹들이 형성되어 신학교와 예배성전 그리고 현장 진료소에서 땀흘리며 일하는 의료 진들에게 개인보호장구들과 신선한 과일까지 공급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는 시아파의 문화에서 지극히 당연하며 강력한 전통이다.

Hashaemi에 의하면 이란당국은 이미 한달 전부터 통제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최근 몇 주간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고 한다. “이제 전투는 끝나가지만 서구사회가 염려하듯이 2차 대유행의 재발을 염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경제가 엉망이고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제재로 인하여 경제의 타격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다. 외부에서는 감지했는지 모르겠으나 원유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경제가 돌아가고 있고, 그렇다고 사우디와 이라크, 터어키와 UAE와는 비교할 필요가 없다. 한편에서는, 걸프만 일대에서 일하던 인도와 파키스탄 노동자들이 무리를 지어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두바이는 죽음의 도시가 된 반면에, 구태여 비교하자면, 이란은 바이러스와 싸움에서 이들보다 잘해 내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작년과 올해 작황이 좋아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충분한 상태이다.”

Hashemi는 매우 중요한 사항을 지적했다. 코로나 위기가 광범위한 탓에 이란국민들은 힘을 합하여 상부상조하며 새로운 수준의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별 단체별 조직별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팬데믹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정부와 의료진을 도와주고 있다.

서구의 거짓(조작된) 정보들은 이란인들이 혁명 이후 특히 1980년대 있던 8년간의 이란-이라크 긴 전쟁을 시작으로 얼마나 심각한 여건 속에서 버티어 살아왔는지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련을 이겨낸 중년세대들에게는 현재의 경제적 위기는 견딜만한 것이다.

Maranti는 경제적 데이터와 연동하며 상황을 분석하여 내용을 제공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이란정부의 예산을 담당하는 책임자는 새로운 사태로 인해 이제 원유는 경제에서 보조적인 역할일 뿐이며 나라의 살림은 원유수입 없이 운용되고 있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이란은 십 수년 전 만해도 1190억불의 원유수입이 있었는데 반하여 2019-20년 현재는 겨우 89억불에 지나지 않는다.

이란 경제 전체는 이행기에 접어들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제조업의 붐이 일어나서 생산품이 국내수요를 넘어서 수출을 지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출의 혜택을 부여하기 위하여 이란 리알화에 대한 대대적인 평가절하를 시도하려고 한다.

2019-20년간에 비非석유 수출액은 413억불에 달했다. 이는 혁명 이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원유수출액을 추월한 것이며 이중 약 절반은 제조상품이었다. 트럼프의 소위 ‘최악의 압박 max. pressure’라는 제재로 인하여 비非원유 수출액이 줄기는 했지만 약 7%정도 감소하는 것에 그쳤다. 이 모든 것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

이란 상공회의소가 제공하는 구매자지수에 따르면, 일부 봉쇄의 완화가 이루어진 후 첫 달 만에 민간기업들의 생산활동이 이전을 회복했다.

사실인즉, 과자류에서 스테인레스 제품까지 이란의 소비재와 생산재들이 중소규모의 기업들을 통하여 중동의 광범한 지역과 중앙 아시아, 중국 그리고 러시아까지 수출되고 있다. 이란의 고립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는 기적인 셈이다.

새로운 산업기지 거점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군장비와 우주항공, 해양산업 그리고 다양한 산업에 수없이 적용되는 티타늄을 예로 들면 Urmia 지역의 탄광에 상당히 매장되어 있으며, 이란의 광물자원 벨트지대에는 상당한 매장량의 금광들이 존재한다. 광물자원분야에서 이란은 세계 15대 국가군에 포함되며, 지난 1월 선진적인 채굴기술을 확보한 이후에는 희귀광물을 축출하는 시험프로젝트를 착수하였다.

이에 대해 워싱턴은 마치 모든 것을 끝장내려는 듯이 (as Terminator) 압력을 가하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 1월에 건설업과 채굴, 제조업과 방직분야를 목표로 추가적인 제제조치를 시행하였다. 이는 위에 언급하였듯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민간기업들을 목포로 삼은 것이며, 결국 수많은 육체노동자들과 가족들을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현재의 Rouhani 행정부를 압박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선량한 이란 시민들의 숨통을 끊으려는 것이다 – I can’t breathe.

이란 국가수비대 및 보건당국과 중국간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협력이 지지부진한 것과는 별도로, 이란과 중국 간 일반전략파트너제휴(CSP)는 본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파트너쉽은 오는 11월에 커다란 시련을 앞두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10월이면 기간이 완료되는 이란에 대한 무기수출 금지사항을 연장시키고 안보리결의 2231호에 대하여 스냅백(기존합의에 대한 강제적용)을 작동시키려고 온갖 협박을 가하고 있는데, 이는 안보리 회원국들의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중국의 유엔에서 역할은 분명하다. 트럼프는 이란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자의적으로 제제를 가해 왔다. 따라서 미국은 이란에 대한 무기수출금지를 연장시키고 스냅-백 사항을 강제할 권한이 없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란은 유라시아 연합의 삼각 거점 국가들이다.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나 이들은 중요한 결정에서 화음의 협력을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지난 주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Lavrov(러시아)와 Zanif(이란)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를 강조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이들의 의기투합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러시아 외무장관은 말했다 “우리가 합의한 약속을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워싱턴은 이란을 압박할 아무 권한이 없습니다.”

이란 외무장관인 Zarif는 전반적 흐름이 매우 위험하다는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이란문제 분석가들과 추가적인 대담을 통해서, 양국 외무장관들은 해당지역의 지정학적 정세와 대치한 두 개의 전선 (테헤란, 바그다드, 다마스커스, 해지볼라의 )에 대한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두 개의 전선이란 미국과 하수인들(사우디, UAE, 이집트의 정치인들)과 수괴인 이스라엘, 그리고 터어키와 카다르 등 이란을 지지하지만(정치적으로 이슬람공화국을 지지하는, 수니파 변종이지만, 무슬림 형제국가군) 하수인이 아닌 형제 국가들과 대치이다.

이들 분석가들 중 필명이 Blake Archer William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주석을 달았다. “러시아가 상호교역이 거의 없는 이란을 돕는 주요 이유는 이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레이건 정권과 달리 이란을 설득하지 않고 이란을 중동에서 축출하려 들면서 이란과 무기를 사용하는 대결의 국면으로 치달으면,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 UAE 포함하여 카다르, 쿠웨이트, 바레인 이라크 그리고 당연히 사우디의 Qatif 유전지역 (100% 시아파지역)이 항미 투쟁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여전히 러시아와 중국은 모든 전선에서 이란을 지지하면서, 미국의 협박에 굴복한 IAEA (국제원자력기구)가 2012년 이래 이란을 비난해온 프랑스, 영국, 독일 삼국의 합동결의를 통과시킨 점을 비난하고 나섰다.

또 다른 외교전선의 핵심은 베네수엘라이다. 테헤란 당국은 소프트-파워 전략으로 지구의 남반부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워싱턴이 뒤로는 몬로-독트린(고립주의, 예외주의)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무자비한 제제를 가하는 것을 조롱해 왔다.

이란의 5척 유조선이 휘발유를 싣고 성공적으로 대서양을 가로질러 베네수엘라의 전투기와 헬리콥터 그리고 해군함정의 보호를 받으면서 입항의 환영을 받았다.

이는 처음 시도한 시험적인 항해이었다. 테헤란의 석유담당 부처는 카라카스에 매달 2-3척의 유조선으로 휘발유를 인도할 계획을 이미 짜놓고 있다. 이는 이란이 국내에서 생산된 석유를 해외로 반출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상기의 역사적 유조선 운항은 양국 간의 과학적이며 산업적인 협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세계에 연대의 행동을 과시한 것이다.

칼럼을 마감하면서 필자는 최고지도자 Ayatollah Khamenei가 직접 언급한 지시를 확인하고자 하며, 그의 표현을 그대로 전달한다 “(미패권의) 봉쇄는 무너져야만 한다. 남는 일은 지구의 남반부가 만들어가는 역사이다.”

 

출처 : Asian Times on 2020-06-28.

Pepe Escobar

브라질 출신의 언론인,  Asia Times와 러시아의 RT & Sputnik 및 이란의 Press TV 등에 기고 및 출연 활동 중

수, 2020/07/1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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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관련 조직에서 지구의 기온이 향후 5년 안에 파리기후협약에서 합의된 핵심기준에 접근하거나 이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보고서를 공개하자, 별도로 이를 준비해온 연구자들이 대기 속에 증가하는 이산화탄소 함유량이 15백만 년 전의 기록에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의 사우드암프톤(Southampton) 대학연구팀이 과학 보고서(Scientific Reports) 저널에 소개한 내용에 의하면, 이들은 3백만 년 전의 플라이오세(Pliocene, 신생대3기 빙하시기에 속하며 대량의 포유류들이 출현) 말기의 이산화탄소 수준을 조사하면서, 이를 현재 그리고 가까운 장래의 기후조건과 비교하는 작업을 진행하여 왔다고 공표하였다.

“우리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플라이오세의 가장 따뜻했던 시기의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380-420 PPM 수준으로 이는 현재의 수치인 425 PPM과 거의 동등하다는 것과 함께, 당시의 대기온도와 해수면의 높이가 현재보다 명백하게 높았다는 것이다” 라고 책임연구자인 Chalk박사가 가디안에 밝혔다.

플라이오세 기간 중에 이산화탄소가 가장 높았던 당시의 대기온도가 현재보다 3-4도 정도 더웠으며 해수면도 65피트 정도 놀았다고 연구진은 보고하면서 현재 이산화탄소 농도가 매년 2.5 PPM 정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2025년에는 대기온도가 지난 과거의 3.3백만 년 동안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온난화를 겪으면서 플라이오세의 기록을 넘어5.3-23 백만 년 전인 마이오세와 같은 수준의 대기온도로 미래를 향해 나가고 있다고 공동저자인 Foster 박사는 경고한다 (Miocene, 마이오세 – 신생대의 플라이오세 이전의 온화한 기후시대로 유인원이 최초로 출현한 시기). 이 시기는 약 15백만 년 전으로 우리의 선조인 원생인류가 오랑우탄으로 분기되었다고 추정되는 시기라고 가디안 지는 설명한다.

이러한 충격적인 보고서가 발표되자 기후문제를 다루는 시민조직과 활동가 그룹들은 크게 자극을 받아 위기의식을 담아낸 문제제기를 던지기 시작했다.

“식량공급에 문제가 없다는 조건에서, 우리는 불필요하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최소 미소량(every kilo)조차도 통제하여야 한다” 면서 핀린드의 멸종저항운동은 국제사회에 즉각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고, 미국의 환경보호유권자 단체들 역시 트위터를 통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거대한 석유가스 기업들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

유엔의 공식 국제기상기구(WMO) 역시 향후 5년 안에 예측되는 기온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였는데 비슷한 경고를 담고 있다. “기후위기의 최악상황을 피할 수 있는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다만 지금 당장 각국 정부들이 행동을 취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하다.”

WMO의 보고서는 향후 5년간의 기온은 산업화 이전의 수준보다 1.0도 정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비록 2020-2024년 간의 기온이 산업화 이전의 수준보다 1.5도 높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일정의 단기간 동안에는 제시된 한계온도를 넘길 수도 있다고 경고를 보낸다.

특별히 영국의 기상청이 주도한 WMO의 국제연례보고서에서 향후 5년 안에 선업화 이전 시기보다 1.5도 이상 더운 날이 한달 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70% 수준이며, 일년의 평균 기온이 1.5도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20% 정도라고 밝혔다.

“지구의 연간 평균기온이 향후 5년간 산업화 이전보다 최소 1.0도 높아질 것이다. 5년 중 연평균 기온이 1.5도 이상 더워질 가능성도 20%정도 존재한다 – WMO 7월 9일자 보고서 중에.”

이와 관련하여 WMO사무총장인 Petteri Taalas는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으로 당분간 기후 온난화를 가져오는 온실가스가 줄어든 계기를 기후위기에 대처하고 생태를 회복하기 위한 대담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전세계적 수준에서 재생 에너지를 향한 전환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WMO는 코로나-19로 인한 산업과 경제활동의 일시중단이 지속가능하고 협력적인 기후대응의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여 왔다.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장시간 잔류하기 때문에 올 한해 온실가스량이 줄어든다고 해서 지구온난화를 야기하는 대기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낮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코로나-19가 국제적인 공공보건과 경제에 위기를 불러오는 동안, 기후위기에 적정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그 영향으로 수세기에 걸쳐 인류 전체의 안녕과 생태환경 그리고 경제활동이 위협받게 될 것이다. 각국 정부들은 팬데믹 회복과정을 기회로 삼아 기후행동을 핵심사항으로 포함하여야 하며, 이를 실천해야만 회복이후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할 수 있다.”

Taalas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추가하여 언급한다 “상기 보고서는, 높은 과학기술 수준을 통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모였던 파리회의에서 이룬 합의 목표치인 금세기 동안 산업화 이전 보다 2도 범위 내에서 지구온도를 유지하는 것과 나가서 이를 1,5도 이하로 낮추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인류역사에 얼마나 거대한 도전인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일부 과학자들과 활동가들은 2015년 파리기후협약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트럼프 미대통령을 제외한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지하는 내용이다.

트럼프가 2019년 11월에 협약에서 탈퇴하였지만 정확히 일년 뒤인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이 승리한다면 그는 협약에 재가입할 것이며 합의 내용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편집자 주: 미국의 석학, 촘스키 박사는 말한다 – 팬데믹은 백신과 치료법을 계발하면서 종식될 수 있으나, 기후위기에는 백신이 있을 수 없다).

 

출처 : CommonDreams on 2020-07-09.

Jessica Corbett

CommonDreams.Org 기후위기 담당 상근기자

화, 2020/07/2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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