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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반 구상에 대한 기대 – 미국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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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반 구상에 대한 기대 – 미국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

admin | 토, 2021/04/24- 20:48

현직 백악관 안보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반은 언제나 수준있는 논쟁을 즐겼습니다. 예일대학교의 학부를 미국전역에 걸쳐서 3등으로 졸업하고 장학생으로 옥스포드 대학교를 다니는 중에 참여한 국제토론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경력이 있습니다. Amy Klobucher(미네소타)이 상원의원으로 출마할 당시 공약을 준비하는 캠프에 참여하여 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했으며, 오바마와 힐러리가 대선에 출마를 했을 당시에도 역시 공약준비의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현재 백악관에서도 설리반은 여전히 ​​자신의 구상을 포함하여 열띤 논쟁에 몰입하는 중입니다. 전통적 대외정책의 합리성을 옹호했던 그는 국내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안보를 어떻게 우선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컬트와 같은 이야기가 설리반을 따라 다닙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현재 44세로 최연소의 최고위직 공무원이자 거의 60년만의 가장 젊은 국가안보보좌관입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조숙한 재능, 성숙함 및 국가에 대한 헌신이라는 경이로운 결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게다가 매서운 비판이 날을 갈고 있는 공간(백악관)에서도 멋진 분위기를 살리는 사람입니다. 포드와 부시(아버지) 대통령 당시의 안보보좌관으로 외교정책의 전략적 사고에 대한 황금률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은 전설의 Brent Scowcroft와 비교할만큼, 설리반에 대한 평가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바이든이 설리반을 NSC (National Security Council)를 이끄는 책임자로 소개했을 당시, 대통령은 그를 “세대를 대표하는 지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 설리반은 심하게 분열된 국가와 전세계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전례가 없는 전략적 도전(중국의 부상 등)과 씨름해야 하기 때문에 통칭하여 “세대에 한번 있는 도전”이라고 여기는 일들을 다루어야 합니다.

취임한 몇 주 만에 설리반은 이미 엄청난 대외정책 현안들의 눈사태에 직면했습니다. 그는 전투적인 중국 관리들과 정면으로 맞서야 했고, 미얀마에서 쿠데타, 미국기업과 연방기관들에 대한 러시아의 대규모 해킹,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아프카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이란과의 핵회담을 재개하는 방법과 조건을 두고 씨름해야 합니다. 현재 진행중인 팬데믹과 경제적 역풍 및 기후위기, 그리고 취임 2주 전에 발생한 폭력적 반란에서 보듯이, 격렬한 정치적 분열에 둘러 쌓여 있습니다.

설리반의 강점에 대하여 상사였던 힐러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매우 깊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자입니다. 상황에 대한 폭넓은 관점이 그를 최적격의 안보보좌관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힐러리는 그녀가 국무장관으로 지명되었을 때, 최초로 채용한 인물 중의 한사람이 설리반이라고 확인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4 년간의 분열이 무엇을 가져왔는지 지켜 보았습니다. 불행히도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리더십은 약화되었습니다.”라고 힐러리는 언급합니다. “제이크는 지적인 열정뿐만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기술도 가지고 있습니다. 단어가 가지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진정한 외교관입니다. 그는 듣는 방법,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방법, 목표를 향해 전략화하는 방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설리반은 최근 몇 년간의 참담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갱신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알래스카에서 미국과 중국의 고위 관리들간 회의 중에 서로 간 심각한 대립의 분위기에 빠져들었을 때, 설리반은 다음과 같이 반격했습니다. “자신이 잘못하여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계기로 새로운 전진을 자신할 수 있는 나라 – 그것이 미국이 갖은 비밀소스입니다.”

“저는 미국 제조업의 붕괴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시기에 중서부 지역인 미네소타에서 자랐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조국인 미국이 지닌 리더십과 세계에서 공공선을 이룰 능력에 대한 깊고 변함없는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놀랍게도 미국 외교정책의 중심에 있는 설리반의 강조점은 실상 국내의 혁신에 있습니다. 그가 NSC에서 하려고 하는 것은 국가안보, 경제 및 국내정책을 “원활한 전체-seamless broader whole “로 조정하는 것이며, 국가경제위원회의 Brian Deese 위원장 그리고 오바마 시절의 전임자이자 현재 국내정책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Susan Rice와 협력하는 것이라고 Yohannes Abraham 참모팀장은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설리반은 작년 포린폴리시에 기고를 통하여 “미국의 국내투자 부족이 국가부채보다는 국가안보에 큰 위협이다”라고 주장하였고, NSC구성원들에게 코로나-19 구제지원 법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하도록 전력을 다할 것을 지시했으며, 대통령이 해당 법안에 서명했을 때 “자신의 일처럼 느꼈고 흥분했습니다”라고 Abraham은 말했습니다.

행정부가 제안한 2조 달러 규모의 경제회복 패키지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인프라와 재생 에너지 및 반도체와 같은 분야에 투자함으로써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국내 근거지를 확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많은 이슈들과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영역에 형성되어 있는 갖가지 단절의 틈새를 무시해야 합니다.”라고 Abraham은 말했습니다. “설리반은 영역 간의 틈새가 어디에 있는지, 틈새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설리반에게 가장 큰 도전은 그가 대통령과 함께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 Foreign policy for Middle class”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설리반과 대통령은 중동에서 테러리스트와 싸우든 새로운 무역 거래를 추구하든, 미국의 외교정책을 국내정책과 분리시키는 대신 이들 양자를 결합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에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습니다 “외교정책과 국가안보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측정될 것 입니다 –‘일하는 가정의 삶을 개선하고 안전하고 편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전략은 목표와 자원을 일체화시키는 것이며, F.D.루즈벨트 이후 모든 미국대통령은 아래의 질문에 판단과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 즉 국내적 요구 또는 글로벌 리더십에 대한 우선순위입니다. 바이든은 중산층을 끌어올리고 세계경제 및 국제정치에서 중국을 앞지르며 지도국가로서 미국의 역할을 유지하는 선한Goldilocks 정책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평화와 안보는 의심할 여지없이 모든 미국인들에게 절실한 것이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철수하는 시기와 방법을 결정하는 것처럼, 무역문제를 넘어 그간의 행정부가 내려야 하는 수많은 국가 안보결정의 과정에는 이른바 중산층을 위한 정책의 고려는 없었습니다.

미국의 외교정책이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억제하고 중동전역의 악의적인 행동을 억제하거나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한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결정하는 일입니다. 행정부는 또한 중국과의 경쟁과 더불어 북한문제, 기후변화 및 기타 국제적 위협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중국과 협력할 필요성을 대체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난제들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진보적 싱크탱크인 Center for American Progress의 선임 연구원 Brian Katulis는 말합니다. “설리반은 여러 문제들을 정의하고 많은 중요한 질문에 대하여 매우 신중하게 응답을 합니다. 그러나 진짜 임무는 국내에서 실현하려는 것을 세계인들이 지지하고 이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바이든과 설리반은 공히, 미국의 이익이 분명하지 않은 곳에서 미국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험주의적, 외교정책에 대하여 미국시민들의 관심이 거의 없음을 인정합니다.

설리반의 전임자 중 한 명이자 전임대통령 트럼프의 여러 안보보좌관 중 한 명이었던 존 볼턴은 외교정책보다 국내요구를 선호하는 것은 “단순히 틀렸다”고 믿습니다. 그는 중국이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이 된다는 데 동의하지만, 위협에 대응하려면 바이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력한 국제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볼턴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면의 주도권을 빼앗길 것입니다. 중국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대한 많은 동맹국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광범위한 국제적 참여가 필요합니다.”

바이든이 설리반과 블링컨 국무장관을 국가안보팀의 책임자로 소개했을 때 Marco Rubio 상원 의원은 다음과 같이 트윗을 날렸습니다 “바이든의 안보관련 인사들은 최고의 대학 우등생들로 모든 관련의 회의에 참석하면서 ‘미국의 쇠락’를 정중하고 질서있게 관리해 나갈 것입니다.”

가시돋친 말입니다. 물론 엘리트 교육을 받았지만, 설리반은 자신의 세계관이 미니애폴리스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며 그곳에서 공립학교에 다녔고 애정이 깊은 아일랜드출신의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부모(두분 모두 교육자)는 주방 테이블 한가운데에 지구본을 두고 설리반과 그의 네 형제자매에게 국제정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미네소타는 항상 그의 삶에 중심이었습니다. 미국대법관인 스티븐 브라이어 밑에서 조수시절을 거친 설리반은 워싱턴 최고의 로펌에서 백만 달러가 넘는 연봉의 제안을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미네소타의 작은 사무소의 업무에 합류했습니다. 30세에 그는 Klobuchar 상원의원의 자문역을 맡아 그녀에게 국내 및 외교 정책에 대해 조언하고 연방의회의 업무로 이라크를 시작으로 그녀와 함께 해외로 여행을 자주 다녔습니다.

그의 총명함과 미네소타라는 지역의 이상적 조합이 단시일에 설리반을 민주당 정치인들에게 사랑받는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최근 미국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정치 캠페인에 휘말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부의 다른 동료들처럼 격렬한 당파에 빠져들지 않았습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겸손하게 자란 바이든처럼, 설리반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이 미국국민의 실제생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수년간 생각했습니다.

“그는 영리하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복잡한 문제에 대해 쉽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였습니다.”라고 Klobuchar가 말했습니다. “그는 항상 사람들이 신뢰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세상을 위해 정치하고 변화를 일으키고 싶었던 사람이지만, 그는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캠페인(정책) 작업을 성실하게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한 과정이 그를 훌륭한 정책책임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Klobuchar는 설리반을 참모로 계속 붙잡아두려 했지만, 그는 2008년 빌 클린턴의 대통령 선거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오바마가 최종적으로 승리한 선거 후, 설리반은 미네소타로 돌아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힐러리가 국무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 그녀는 설리반을 참모팀의 부국장으로 임명했고, 이후 34세의 최연소자가 정책계획 책임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어진 역할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에게 경제지원의 대가로 이란의 핵무기 계획을 중단시키는 협상전략을 선택했을 때, 힐러리는 설리반과 차관인 빌 번스에게 비공식 채널을 개설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2012년 7월 힐러리가 파리를 국무장관으로 공식방문하는 동안, 설리반은 오만에서 이란관리들을 만나기 위해 번스와 함께 극비리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당시의 회의는 2015년의 서명에 성공한 협상의 길을 닦은 6회의 비밀회의 중 첫 번째였습니다 (트럼프는 2018년 핵합의에서 탈퇴하였고, 이란은 이후 우라늄 생산을 가속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인터뷰에서 현재 CIA이사를 맡고 있는 Burns는 설리반을 “이상적인 협상 파트너”라고 치켜 세웠습니다. “그는 지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세부 사항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는 인물입니다.”

국무부에서 근무하던 당시 설리반은 나중에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몇 가지 경험을 합니다. 힐러리가 여행을 자주했기 때문에 그녀의 보좌진은 그녀와 함께 동행하는 설리반에게 의지하여 주어진 정책에 대해 설명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설리반이 문지기의 역할을 과시한 적은 없다고 힐러리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Philippe Reines는 회상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정직한 중개인이었으며, 이런 점이 광범위한 아이디어를 구하고 대통령에게 다양한 옵션을 제시하는 것이 전통적인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요구되는 매우 귀중한 자질입니다.

Reines는 “안보보좌관이 제3자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제3자들은 쉽게 그런 직책의 인물에 대해 분개할 수 있습니다. 제이크의 놀라운 점은 그가 제3자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항상 제3자가 직접하는 것보다 더 잘한다는 것입니다.”

힐러리도 동의했습니다. “그에 대한 나의 선택을 실망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최고 수준의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테이블에 올려 놓습니다.”

설리반은 항상 빠르게 배우는 인물입니다.  힐러리의 국무장관 임기가 끝나자, 오바마의 보좌관들은 설리반을 백악관으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는 미네소타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힐러리와 함께 아시아를 마지막으로 여행하는 동안, 미얀마에서 국무장관과 수행원들을 위한 점심식사를 주최했으며, 미얀마와 외교관계는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거둔 커다란 성공의 하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대통령은 미얀마의 간략한 역사를 설리반에게 부탁했습니다. 설리반은 전체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입을 열면서도 요청받은 주제에 대한 여러 관점들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석한 동료들은 그가 관련 주제에 대한 보고서를 수십 번은 보았다고 증언합니다. 몇 주 후 오바마는 설리반에게 당시 바이든 부통령의 국가안보 참모였던 블링컨의 후임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습니다. 설리반은 힐러리가 임기를 마칠 때가지만 미네소타로 돌아가는 것을 연기했지만, 그녀가 국무부를 떠났을 때 의회에 출마하거나 미국 변호사가 되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오바마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설리반이 백악관으로 옮겨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하여 바이든의 보좌진 활동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또한 대통령의 일일정보 브리핑에 참석하면서 오바마의 국가안보팀과 상황실에서 핵심목소리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무부 시절 힐러리와 설리반은 상업적 외교, 일자리 창출, 해외투자와 같은 “경제적 국가현안”을 외교정책의 중요한 사항으로 강조했습니다. 2011년 뉴욕경제클럽에서 열린 연설 에서 힐러리는 미국의 경제적 강점과 글로벌 리더십을 “하나의 패키지”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행정부를 떠난 후, 설리반은 자신들이 지녔던 경제비전이 국내의 미국인들과 연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세계무역기구(WTO)와 같은 국제기구에서부터 글로벌 공급망에 이르기까지 국제시스템의 모든 톱니바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악관에서 그는 이제 해결의 실타래를 당기기 시작합니다.

태평양연안국가들의 무역파트너십인 TPP를 예로 들어보자면, 오바마 시절 12개 국가를 묶어내는 기획으로 힐러리와 설리반이 주도한 작품입니다.. 민주당과 공화당 그리고 외교정책기관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설리반은 무역협정이 중국에 대응하고 “아시아로의 피벗”의 전략에 경제기반을 제공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상기 협정이 미국 기업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만, 미국 노동자들에게는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무시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트럼프는 취임 첫 주에 TPP의 가입을 폐기시켰다).

백안관 참모직에서 퇴임하고 트럼프가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하여 돌인 그간의 노력을 흔들고 있던 2017년까지, 설리반은 미국이 주도하는 전통적인 국제질서를 지지하는 일련의 싱크탱크 보고서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는 자신과 외교정책의 신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규칙기반의 질서가 필요하지만 기존의 기구들은 낡았으며,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라고 그는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질서라는 지난 70 년이 고대의 그리스 건축물(파르테논의 직선과 깔끔한 ​​기둥)과 같았다면 미래는 프랭크 게리(캐나다출신의 실험적 건축가)의 건축물 같아야 할 것입니다. – “새로운 각도의 구성, 다양한 재료의 혼합, 그리고 실험적 시도.”

2016년 대선캠페인은 설리반의 정치적 진화에 매우 중요한 계기이었습니다. 고위정책의 고문으로 힐러리의 캠페인에 참여했으며 이민, 의료 및 총기규제와 같은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예비선거를 통해 그는 클린턴의 주된 경합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지지하는 다수 미국인들과 정부 간에는 단절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나는 그의 궁극적인 정책의 해결책에 항상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샌더스는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이 체계적 불평등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제대로 인지하고 있으며, 그의 대중적 인기는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든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현실과 관련이 있음을 인정합니다.”라고 설리반은 샌더스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샌더스가 경선에서 탈락하자 힐러리는 트럼프라는 새로운 라이벌과 마주쳤습니다. 트럼프는 샌더스가 언급한 절망과 분노를 승리의 포퓰리스트 메시지로 방향을 돌리는 재간이 있었습니다. 설리반은 트럼프가 “평가할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당수 미국인들의 외교정책과 경제적 번영에 대한 인식을 포착하는데 능란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2016년 선거에서 힐러리의 충격적인 패배 이후, 설리반은 정치계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는 1년 전인 2015년 변호사이자 전 상원의원 Joe Lieberman과 John McCain의 고문인 Maggie Goodlander와 결혼했습니다. 상처뿐인 2016년 대선 이후 그는 워싱턴을 떠나 외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싶었습니다만, 그의 아내는 미네소타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국가의 정치 및 경제 중심지(워싱턴)을 떠나 우리부부가 가정과 지역사회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어딘가에 우리 집을 만들자고 설득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들은 아내Goodlander가족이 사는 뉴햄프셔로 이사했습니다. 한편, 그는 국제평화를 위한 카네기 재단의 파트타임 펠로우로서 활동하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이 중산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글을 쓰고 있던 오바마 시절 백악관의 동료인 Salman Ahmed와 다시 합류했습니다.

2017년 카네기 재단은 상기의 주제에 대해 초당적 연구팀을 구성했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설리반과 Ahmed는 오하이오, 콜로라도, 네브래스카의 다양한 정치성향을 보이는 수백 명의 미국인들과 미국 외교정책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연구팀의 보고서는 “중산층을 위해 미국의 외교정책이 제대로 작동하기”라는 제목으로 세계화가 일하는 미국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소득의 평등에 대한 관심을 포함하여 중산층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일련의 새로운 외교정책에 우선순위를 권고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내용에는 무역에 대한 광범위한 논쟁, 그리고 끝없이 예산을 소모하는 전쟁을 끝내는 “덜 개입적” 외교정책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커다란 변화가 담겨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수십 년 동안 공히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를 이끌어온 구태의연한 외교정책을 시행하면서 “미국사회가 경제적 혼란에 너무나 취약하게 되었고 다른 국가들에게 광범위한 사회의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지나치게 개입하여 왔습니다. 이제 미국의 중산층은 새로운 경로를 원합니다.”

상기의 보고서는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정책 신조를 재검토하기 위한 포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바이든이 이미 같은 내용을 먼저 지적했습니다. 부통령으로서 바이든은 백악관의 상황실에서 미행정부가 결정한 외교정책 결정이 미국시민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는데 의문을 제기하곤 했습니다.

“나는 바이든이 실제로 우리 모두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리반과 함께 연구한 Ahmed가 말했습니다. “바이든이 오바마 행정부의 일부 정책과 상충되거나 소외되는 순간을 살펴보면, 그는 이미 해당 현안들에 대하여 민감하게 고민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국가안보보좌관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일상적인 혼란을 총사령관의 실용적인 선택으로 바꾸도록 돕는 일입니다. 트럼프 시절에는 전체의 과정이 탈선되었습니다.  트럼프는 해당 조직의 대부분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트윗으로 국가정책을 반복적으로 변경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설리반이 변신했다면, 그는 자신의 직업 방식을 과거의 구식(절차적 과정)으로 복귀시켰다는 점입니다.

그는 외교정책 결정과정의 “정규성과 엄격함”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그의 참모팀장인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설리반은 또한 이전의 행정부에서 간과했던 국제적인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NSC를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사이버-보안부서를 국가안보회의의 자문기구로 승격하고, 최단기술에 대한 새로운 지침서를 만들고, 트럼프 시대에 해체된 세계보건 및 기후에 대한 오바마 시대의 지침서를 다시 구축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부패, 금권정치kleptocracy 등 역시 국내에 점증하는 극단주의의 위협에 맞서 싸울 필요성과 함께 새로운 중요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존 볼턴은 바이든의 정책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그는 바이든의 승리가 “정상으로의 복귀를 반영한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이제 바이든이 집권하면서, 볼턴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직했을 당시에 갖지 못했던 “중요한 이점”을 설리반에게 제공합니다.

“올바른 접근방식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대통령보다 자신이 목표해야 하는 것을 이해하는 대통령이 있을 때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라고 볼턴이 자신이 겪은 불만을 토로합니다.

중국이 좋은 예입니다. 설리반은 트럼프가 베이징을 억압하려는 본능이나 WTO와 같은 기구가 국유기업, 통화조작, 무역장벽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실패했다는 억지 같은 신념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필요하다면 미국 동맹국들에게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 묶는 것을 거부한 트럼프의 제로섬 접근법에 대해서는 입장을 같이 합니다.

중국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구축하기 위해, 설리반은 클린턴 시절 동아시아 최고위직 외교관이자, 여전히 구상중인 ‘아시아로 회귀전략- pivot to Asia’를 설계한, 커트 캠벨에게 의지했습니다. 캠벨은 설리반이 개인적인 호소를 할 때까지 다시 행정부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우리가 실행하고 싶었던 모든 일에 대하여 지금이 실천할 기회입니다. 그리고 이를 지속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라고 캠벨은 설리반에게 환기시켰습니다. “그것은 나에게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제안을 수락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백악관의 첫 인도-태평양의 짜르에 임명된 캠벨은 아시아 및 중국 관련 문제를 다루는 많은 NSC 멤버들을 감독합니다.

행정부에 합류한 직후 캠벨은 설리반과 함께 외교관련 책임자의 회의를 가진 자리를 회상했습니다.  캠벨은 설리반에게 복잡한 문제에 대해 약 30초 동안 브리핑했습니다. “저는 그가 이것을 관리하지 못할 것 같은 좌절감과 불안감을 갖고 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설리반이 미얀마에서 오바마를 위해 브리핑했던 것과 같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난 후 캠벨은 “당신이 이곳에서 뛰어난 재능으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캠벨만이 설리반이 호출한 유일한 저명인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전 국무장관 존 케리의 참모장격인 존 파이너를 포함하여 여러 전직 오바마 관리들을 그의 참모진으로 영입했습니다. 반 이슬람 국가연합의 전직 특사였던 브렛 맥거크는 중동정책을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클린턴의 경제 국정의제에 대해 국무부에서 함께 일했으며 현재 NSC와 국가경제위원회에서 국제경제 및 노동부문의 선임이사로 이중모자를 쓰고 있는 제니퍼 해리스 등을 집결시키면서, 마치 브레인-스토밍을 위한 처방전을 펼친 것 같습니다.

클린턴이 이를 설리반의 “알레르기”반응이라고 호칭합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설리반은 습관적으로 외교정책의 규범과 테이블에 올려놓은 모든 제안, 심지어 자신의 계획까지도 다시 질문을 던지는 인물입니다.

“기발합니다.”라고 캠밸은 말했습니다. “그는 약간 아일랜드 시인의 기질이 있습니다.”

이란문제를 봅시다. 핵협상을 되살리겠다는 바이든의 선거공약과 초기의 협상과정에서 설리반 자신의 역할을 감안할 때,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가 합의에서 탈퇴했을 때 행정부가 3년 전의 합의내용의 현상유지로 즉시 복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설리반과 블링컨은 둘 다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이란의 다른 적대적 행동과는 별개로 핵거래를 다루는 대신, 그들은 이제 테헤란과의 새로운 거래로 이란의 미사일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중동지역 전역의 테러활동을 해결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것에 의문을 제기하면 어리석게 보일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Ahmed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잠깐만요. 우리는 왜 그것에 대해 확신할까요? 우리가 어떻게 알죠?”라고 되묻는다고 증언합니다.

바이든 외교진영에 오바마 시절의 기존 팀들이 다시 모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연주되는 음악은 전혀 다릅니다. 지난 4년 동안 세계와 미국의 역할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설리반에게는 돌아갈 미래가 없습니다. 외교관들과의 첫 회의에서 그는 “우리는 트럼프는 아니지만 오바마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바이든의 “Build Back Better”철학은 비록 인간적이고 공감적이지만, 그의 전임자인 포퓰리스트(트럼프)의 의제에도 몇 가지 장점이 있다고 평가하면 이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와 바이든 둘 다 적극적인 국제적 개입과 어느 정도의 경제적 민족주의를 선호합니다. 그러나 유사성은 거기서 끝납니다.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외교정책은 동맹을 의심하고 권위주의적 강자들을 받아들였으며 미국의 리더십을 부담의 전가 또는 협상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바이든에게 동맹은 힘의 원천이며, 미국의 리더십은 미국의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위협을 매우 경제적으로 막아내는 방법입니다.

상관인 바이든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도전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문제로 정의하는 것을 좋아하는 설리반은 업무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끔찍한 상황들과 마주합니다. 신임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전직 대통령은 선거사기에 대한 거짓말을 퍼뜨리는데 몇 주를 보냈습니다. 그런 다음 선거결과를 뒤집으려는 연방의회 의사당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이 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조지아와 텍사스와 같은 주에서는 투표권을 억압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핵심이 될 것입니다.”라고 설리반은 말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국제사회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미국의 신행정부가 진행하는 펜데믹 백신접종과 구조지원의 계획을 지켜보고 있으며 지금까지 미국의 회복력에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하여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것을 시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적임자입니다.”

 

출처 : Foreign Policy(포린폴리시) 2021-04-09.

ELISE LABOTT

American University’의 국제관계학 분야 겸임교수이며 포린폴리시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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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명예스럽게 떠났지만 모든 징후는 그가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지난 선거결과에 대한 그의 경멸은 이제 공화당의 신조가 되었습니다. 연방의회의 점거사태로 마침내 그에게 충성을 유지했던 공화당원들의 마법을 깨뜨릴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상황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걱정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한 가지 큰 불안의 근원 때문에 우리가 밤에 잠을 설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만, 미국 안팎에서 그토록 지독한 편집광적인 에너지가 한때 한 사람에게 바쳤고 그가 어떻게 우리의 꿈까지 방해하게 되었는지를 되돌아 보면, 오늘 시점에 우리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위안이 됩니다. 사실인가요? 우리가 그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사실, 그가 커다란 주황색 글씨로 떠벌리는 일은 소설-미디어SNS의 타임라인에서 사라졌고 Facebook과 Twitter의 경영진에 의해 추방되었으며, 이러한 금지조치 때문에 겨우 자신의 블로그를 운용하는 것으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과거 많은 Trump 기업들이 파산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정치행위는 조용히 포기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은 명백히 실패이며, 현재까지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일 아침 트럼프가 무슨 새로운 황당함을 저질렀는지 보기 위해 핸드폰의 화면을 손가락 사이로 엿보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상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비극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좋든 나쁘든, 달의 인력에 의해 조수처럼 끌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트럼프는 여전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기 때문에 그를 과거에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가 차기 대선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당의 차기 백악관 후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시기상조이지만 다음 선거를 위해 공화당 후보로 추정되는 후보들의 여론조사를 살펴봅시다.

그는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공화당원의 76%가 그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주 오하이오주에서 트럼프가 지지하는 후보가 보다 나은 자격을 갖춘 경쟁자를 물리치고 공화당 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부시 대통령 시절 연설문 작가였던 데이비드 프럼(David Frum)가 트럼프 에 대해 “그가 죽거나 능력이 제거되지 않는 한 그가 2024년 가장 유력한 후보” 라고 말한 것은 사실 그대로 입니다.

미국인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여부 역시 그가 바이든 또는 트럼프에게 투표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장래에도 당신의 수면을 계속해서 괴롭힐 위험이 있다는 것은 끔찍한 전망입니다. 2024년 선거일은 조 바이든의 82번째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둔 날입니다. 대통령이 출마하면 그는 86세가 될 때까지 집무실에 남아 있게 됩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그가 대선출마의 요청을 수락하는 일에 회의적일 것입니다 (한편, 78세의 나이에 해당하는 트럼프는 상대적으로 젊은 후보로 출마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솔직히 대선후보가 바이든이든 카말라 해리스이든 또는 어떤 민주당 인사가 되든, 트럼프는 선거문화에 익숙한 선동의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2016년의 대선은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고 2020년에는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상기의 시나리오는 시간상 아직 멀었고 너무 우울하다고 인정하고,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가정해 봅시다(트럼프가 대선출마를 않는다는).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가 절대로 출마하지 않더라도 트럼피즘은 이미 미국인들의 핏속에 강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1월 6일의 연방의회 점거의 반란시도로 마침내 트럼프의 주문을 깨뜨릴 수 있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역으로 그가 거칠고 조잡하고 편협하고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이기적일지라도 궁극적으로 무해하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트럼프에게 충성을 유지했던 공화당원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습니다.

낙관론자들은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군중들이 연방의회 건물을 습격하도록 폭도를 선동하는 미국대통령을 목격하는 것으로 마침내 대부분의 공화당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트럼프는 결국적으로 공화국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하원의 공화당의원들은 트럼프의 범죄에 대한 탄핵에 반대표를 던졌고 상원의 공화당의원들은 그의 무죄선고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이를 반대하던 의원들은 배척당했습니다. 보수강경파의 딸이라는 가계의 후광도 위대한(?) 지도자에 반대한 배경으로 하원지도부에서 제명된 리즈 체니를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음모이론가인 Marjorie Taylor Greene과 그녀의 동지인 Matt Gaetz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후자는 성매매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만, 중요하고 유일한 리트머스 테스트인 트럼프에 대한 충성도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선거가 도난당했고 도널드 트럼프는 진정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으며 바이든은 찬탈자라는 근거없는 주장은 한때 트럼프의 열광적인 망상에 불과했고, 패배의 진실로부터 상처받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메커니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Stop Steal”은 이제 공화당의 신념이 되었습니다. 9개월 후, 공화당원 대다수는 모든 증거와 유권자 사기에 대한 모든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일련의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승리하고 바이든은 패배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민주주의 의지를 강탈하기로 결정한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였다는 최근의 확인조차도 충실한 사람들의 신념을 바꾸지 못할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월 법무장관 대행에게 “선거는 조작되었다고 선언하고 나머지 일은 나에게 맡기라”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애리조나 주 상원의원들은 선거관리인들을 독방에 감금할 것을 촉구했었습니다.

공화당 지지집단이 2020년의 트럼피즘에 충성스럽게 고집하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현실을 부정하고 바이러스를 저지하는 데 필요한 일(백신접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인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한 가장 큰 예측지수는 지난 11월 그들이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여부입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민주당원의 86%가 한번 이상 접종을 맞았습니다만, 공화당원은 45%에 불과합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이 백신접종을 나치의 유대인박해 또는 KGB의 방문노크에 비유하고, 개별 주차원에서 공화당의원들이 ‘백신을 너무 과도하게 밀어붙였다는 이유’로 공중보건공무원을 해고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트럼피즘에는 두 가지의 신조는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전문과학지식에 대한 경멸과 팩트에 대한 무시입니다. 전문가가 과학자든 선거관리자든, 혹은 사실이 바이러스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지난 11월에 투표한 총계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가 하나입니다. 트럼피즘은 사실을 무시하고 강력한 조타수에게 무릎꿇을 것을 요구합니다.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은 진리이지 이들에게 과학과 팩트는 진리가 아닙니다.

때때로, 자신이 속한 정당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공화당 인사들을 만납니다. 자신의 주 소속 의료관계자가 제공한 백신접종의 필요성에 대한 브리핑을 외치는 아칸소 주지사의 얼굴을 조명한 비디오 장면은 지켜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 순간 주지사는 자신이 속한 공화당이 더 이상 과학이나 민주주의를 믿지 않으며 트럼피즘이라는 바이러스가 모든 장기를 감염시켰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자신의 복귀여부는 실제로 부차적인 주제이나 트럼피즘이라는 질병은 이미 미국정치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정당을 집어삼켰고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출처 : The Guardians(영국 가디언) on 2021-08-06.

Jonathan Freedland

가디언 지의 정치분야 정기 기고자

수, 2021/08/2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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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고, 도움을 주신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과 환경재단,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 등에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기후 변화와 관련한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 건 한국에서 오신 분의 리더십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반 총장은 2014년에 유엔 기후회의를 개최하여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를 도모하고자 했는데, 당시 저는 뉴욕에 있는 유니언 신학교를 갓 졸업했습니다. 그 후 공공 계획 관련 일을 하고 있던 중에 반 총장의 도전을 듣게 되었고, 저는 “지구를 위한 종교”라는 컨퍼런스를 여는 것을 제 새로운 미션으로 삼았습니다.

이 컨퍼런스에는 전 세계에서200개 이상의 종교 단체들과 그 지도자들이 모여 현재의 기후위기를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재구성하고, 신앙심에 기반한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촉진하고자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영감을 얻은 저는 지구윤리센터(Center for Earth Ethics)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이 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저와 저희 팀의 목표는 지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의 장기적인 건강과 안녕을 목표로 하는 가치들을 측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문화와 정책들을 찾아낸 뒤 그것들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국내총생산이나 주식시장에서의 시가총액 등 사회가 가치 측정을 위해 사용하는 주요 기준들은 우리가 급박한 기후 위기를 맞이하게 된 데 책임이 있습니다. 그 기준들은 매우 단기지향적이며, 오염이나 자원 고갈, 불평등을 비롯해 문화나 공동체, 건강과 같은 웰빙의 비금전적 요소들에 대한 투자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합니다.

오늘 저는 제가 참여하고자 하는 변화에 대해, 그리고 왜 제가 그것을 윤리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지 말하고자 합니다. 윤리는 옮음과 그름의 판단을 수반합니다. 또 한 개인으로서, 집단의 일원으로서 우리 각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가치들과 우리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윤리적 관심”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정책 결정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일입니다. 지구 윤리에서의 윤리적 관심사의 범위는 매우 넓은데, 이는 우리가 전 지구적인 건강과 안녕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의 한 교회에서 만난 제 친구의 이야기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국제 정책이 만들어지는 어느 공간이든 세 개의 빈 의자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세 개는 각각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미래 세대들, 그리고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 – 즉, 현재 만들어지는 정책들에 가장 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가장 적은 영향력을 가진 존재들 – 을 위한 지정석들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잘 생각해보시면, 이 세 집단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정책의 수립 과정과 결과를 더 공정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더 강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 시스템을 만드는 수단으로서의 역할도 합니다.

저희 지구윤리연구소에서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전통과 지혜들을 끌어 모음으로써 세계의 어느 종교든 생명의 유기체성과 근본적 상호 연결성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어느 곳이든 불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곳에서의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틱낫한 스님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른 것들과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환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러한 통합적 전체성은 과학에 의해서도 뒷받침되는데, 윤리와 과학이 만나는 간학문적 연구는 지구 윤리의 아주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다시 세 개의 의자 이야기로 돌아가면, 첫 번째 의자의 경우 현재 국제 인권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엔 세계 인권 선언에서는 인권의 핵심적 가치들을 제시하며 천부적 존엄성과 함께 모든 인간이 가진 평등하고 양도될 수 없는 권리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가치들은 자유와 평화, 정의의 기초가 되는 것들이죠. 따라서 지구 윤리도 이 프레임 안에서 작동하며, 단지 깨끗한 물과 공기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기후변화의 피해가 이러한 재난 상황을 유발하는 데 가장 적은 영향력을 끼친 (즉, 지금까지 가장 적은 양의 탄소를 배출한) 지구상의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돌아간다는 것도 알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의자의 경우는 우리로 하여금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윤리적 사고를 하도록 합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배출될 경우 이 가스들이 대기중에 머무르다가 실질적 영향을 끼칠 때까지의 시차가 있으며, 이는 우리가 자원을 자연적으로 보충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고갈시키고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자원들과 토지는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자연 탄소 포집기”의 역할을 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윤리학자 스티븐 가드너는 “우리는 단순한 공유지의 비극이 아닌, ‘현재의 미래에 대한 독재’의 상황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더욱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지난 수년간 강력한 청소년 기후위기 대응 운동의 부상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운동은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현재로 가져옴과 동시에,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칠 현재 세대의 행동들을 중단하라는 도덕적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 여겼던 초대형 태풍, 가뭄, 폭염, 산불, 해수면 상승 등은 이미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생명 시스템의 균형을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생태적 전환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세 번째 의자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1948년, 그러니까 유엔 세계 인권 선언이 발표되던 해의 지구의 인구는 24억 명이었지만, 2020년 현재는 78억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70여 년의 시간동안 인간은 다른 종들의 서식지를 대규모로 파괴했고, 그 결과 유엔은 현재 백만여 종 가량이 멸종 위기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태적 손실은 인간에게 새로운 바이러스와 질병의 등장, 식량 시스템의 위협 등 수많은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인간이 받을 영향들은 반드시 생명 체계의 상호 연관성 속에서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한편,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가 천부적 가치와 권리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은 지구 윤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윤리학은 옳음과 그름의 판단이 사회적 규범과 법 질서 하의 판단과 맞지 않을 때 가장 강해졌습니다. 미국에서의 노예제 폐지와 여성 참정권 운동 등 과거의 중요한 운동들과 사회 변화의 시기도 모두 이런 때였습니다. 저는 오늘날이 바로 그런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생태계를 파괴해온 수많은 논리들과 유인들은 모두 완전히 합법적이었으며 사회적 규범과도 합치되었습니다. 이 때 데이터와 과학 기술은 이러한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발생한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의 절반 정도가 지난 20년간 발생했는데, 이 시기는 바로 우리가 기후변화의 인과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친환경 재생 에너지라는, 가장 확실하고 실행 가능한 대체제를 가지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따라서 현재 상태의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들의 도덕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구조적 악마”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윤리학자 신디아 몰라베이다는 “구조적 악마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 자체가 쉽사리 ‘선’ (善) 혹은 좋은 것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선은 경제 성장으로, 많은 사람들을 가난에서 구제해준다는 명목 아래 생산과 소비의 무한 성장을 위한 생태계 착취 및 화석연료의 지속적 사용을 꾸준히 지지하고 정당화시켜온 가치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자가당착에 부딪히게 됩니다. 유엔의 한 빈곤 및 인권 문제 전문가는 작년에 발표된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는 지난 50여 년 간의 공중 보건 개선과 빈곤 감소를 위한 진보적 노력을 모두 수포로 만들 수 있으며, 오히려 수백만 명 이상을 추가로 빈곤의 늪에 빠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지속가능하지 않은 성장이 어떠한 견제도 없이 이어진다면, 기후위기는 궁극적으로 지구라는 행성 안의 생명체 서식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컨퍼런스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우리는 세 개의 의자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현 상태를 정당화하는 논리들에 대한 비판적, 도덕적 사고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부유하고 깊으며 창의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한국인들의 생태적 경험들은 한국을 생태 전환 시대의 리더로 만들어줄 것이며,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배우고 일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인류로서, 지구에 사는 생명체로서 희망 넘치는 공존의 미래를 향해 나아갑시다.

 

카렌나 고어

지구윤리센터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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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1/01/15-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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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방경제포럼

1) 극동개발

지금까지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과 협력해왔고, 국내적으로는 중부 지역에 관심을 뒀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개발이 완료되고 인구도 충분한 데 반해 극동 지역은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극동지역의 인구는 660만 명, 러시아 전체 인구의 5% 정도로 가장 낮은 인구밀도를 보이고 있다. 면적은 617만 ㎢로 국토의 36%인데 프랑스 영토의 10배이며 남북 거리 4500 ㎢, 동서 거리 3000 ㎢이다. 그런데 다이아몬드의 98% (야쿠츠크), 백랍 80%, 황금 50%, 어류.수산물 40%, 러시아 삼림 30%가 이 지역에 있어 원자재의 보고이다.

푸틴이 집권한 2000년부터 러시아는 극동지역을 개발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했다. 극동지역은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보는 물론 아태지역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극동.시베리아 지역 개발과 아태 경제권으로의 편입이라는 과제에 직면하면서 러시아 중앙과 지방이 윈윈할 수 있는 개발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러시아 중앙정부는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블라디보스토크시를 아태지역 국제협력센터의 중심지로 육성하려 했다. 국제정치와 경제의 중심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낙후된 러시아 극동지역을 개발해 이러한 국제질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극동지역을 선도적으로 개발하되 단기간이 아니라 21세기 내내 관심을 갖는 프로젝트가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빅토르 고르차코프 연해주 입법의회 의장은 2016년 7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방 차원에서 100년간 보장되는 개발사업으로 보면 된다. 연방 정부에 극동개발부가 신설된 것도 그 일환이다. 또 푸틴 대통령이 극동에서 추진 중인 사업 가운데 변경된 건 전무하다. 불황으로 지원 예산이 삭감된 지역이 많지만 극동러시아만은 한 푼도 줄지 않았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로 대외환경이 어려워졌지만 러시아는 2015년에 이어 올해도 9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을 열기로 결정했다. 푸틴 대통령의 뜻이 강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지역을 개발하면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지역개발에 필요한 자원 조달 문제는 동북아 주요 국가의 참여 유도로 해결하려 하고, 노동력 부족 문제는 중국, 북한 등 옛 사회주의 형제국들의 노동력을 유입하면서 해결하려 한다. 특히 극동은 지역개발에 필요한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극동지방의 인구는 지난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동안 100만 명 정도가 줄었다. 인구 감소의 주 원인은 출산율 저하와 외부로의 인구 유출이 꼽힌다. 육체노동을 꺼리는 현지 주민들의 노동의식도 한몫 작용하고 있어 지역 개발을 위해서는 외국 노동력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실제 상당수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인 노동자의 진출이 절대적으로 많다. 2005년을 전후한 시기에 극동에 체류중인 중국인 노동자가 80만 명 정도인 것으로 추산됐다. 그런데 상당수 러시아인들은 중국인 이주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중국인들에게 러시아 영토의 일부가 상실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한다.(신황화론)

여기에 극동으로 파견되는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의 고민을 다소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근면한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 노동자들의 노동 현장 및 지역 시장 잠식을 어느 정도 제어하면서, 러시아가 우려하는 ‘극동지역의 중국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입장에서 본다면,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인 노동력 진출에 따르는 잠재적인 안보 위협의 해소와 극동지역 개발에 필요한 노동력 부족분을 충족해주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래서 러시아의 고민은 자연스럽게 한반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북한과의 관계를 통해 문제 해결에 접근하려 한다. 북한과의 관계는 지역안보와 북한 노동력 유입, 그리고 북한을 통한 한국의 투자유치 문제로 구체화되고 있다.

 

2) 첫 동방경제포럼

푸틴 대통령은 2012년 연방정부 내에 ‘극동개발부’라는 부처를 신설하고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5년 9월에 처음 열린 동방경제포럼(Eastern Economic Forum)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9월 3일부터 5일까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을 취재했다.

극동연방대학; 동방경제포럼 개최 장소

국내에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대단히 큰 규모의 행사였다. 푸틴 대통령이 참석해서가 아니라, 이 포럼을 기획. 추진한 당사자가 푸틴이기 때문에 그렇다. 최고 지도자가 의지를 갖고 밀어 붙이니 밑에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가 총감독이 되고, 극동개발부가 발로 뛰어 만든 작품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이렇게 초대형 경제포럼이 열린 것은 2015년 당시가 처음이다. 동방경제포럼은 한마디로 외국투자 유치 설명회라고 할 수 있겠다. 러시아는 투자하기 힘든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인 조치들이 대거 발표됐다. 그 중 핵심은 ‘선도 개발구역 조성’과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선포’이다.

▷ 선도 개발구 : 극동에 분야별로 특화되고 경제자유구역(EEZ)과 비슷한 여러 개의 산업기지를 조성해, 정부가 인프라를 구축해 주고 각종 행정.세제상의 특혜를 부여 함으로써 국내외 입주 업체들을 끌어들이려는 사업이다.

9개 선도 개발구는 다음과 같다.

1)하바로프스크 선도개발구역(공업 위주): 하바로프스크 지방

2)콤소몰스크 선도개발구역(공업 위주): 하바로프스크 지방

3)나데즈딘스키 선도개발구역(경공업.식품공업.운송-물류): 연해주 지방

4)미하일로프스키 선도개발구역(축산업.농식품 공업): 연해주 지방

5)프리아무르스키 선도개발구역(공업.운송-물류): 아무르 지방

6)벨로고르스크 선도개발구역(농업 위주): 아무르 지방

7)캄차트카 선도개발구역(관광-휴양.항만-공업.농업): 캄차트카 지방

8)베링고프스키 선도개발구역(광업): 추코츠키 자치구

9)칸갈라스 선도개발구역(공업 단지): 사하(야쿠티아) 공화국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개념도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 블라디보스토크 뿐만 아니라 남쪽 포시에트항, 자루비노항, 동쪽으로 나홋트카항, 북쪽으로 우수리스크, 한카이스키 군 등 15개 지자체가 포함돼 면적은 2만 8,400 평방미터에 이른다. 이 지역을 홍콩.싱가포르 등과 유사한 세계적 자유항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이다. 앞으로 70년 동안 자유항의 지위를 누리게 되는데, 자유항 방문객들에게는 입국시 8일 동안 비자가 발급된다. 거주자들을 위해 관세 및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자유관세지역이 설치된다.

이같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외국기업들에게는 최초 5년간 법인세.재산세.토지세 등을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달콤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비자 절차 간소화, *행정 규제 완화, *각종 세제상의 혜택.

이는 푸틴 대통령이 연설에서 직접 언급한 내용이다. 그는 무엇이든 요구하라고 했다. 트루트네프 부총리에게 전권을 위임했으니 그에게 무엇이든 요청하라고 했다.

아무튼 이 달콤한 제안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마디로 기대 반 관망 반이었다. 우선 파격적인 제안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리측 관계자는, “러시아의 입장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당신들이 투자를 안할꺼요?” 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를 오래동안 지켜본 김승동 LS 네트워트 대표이사는 무엇보다 극동개발부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 기대가 된다고 했다. 김 대표이사는 “극동개발부 사람들은 장관.차관부터 젋고 일하는 것도 아주 적극적이다. 어떤 때는 한국 사람들보다 더 빨리 빨리 일한다. 이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 가능성이 보인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우리 기업들이 극동지역에 진출해야 하는 절호의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한다” 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신중론도 있다. 연해주에서 오래동안 사업을 하고 있는 장민석 유니베라 러시아 법인장은,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지정 법안만 해도 세부적인 규정은 현재 계속 검토중이고, 10월 초에나 발효된다. 그때 가봐야 우리 기업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혜택이 돌아오는지 알 수 있다. 그때가서 각자의 입장을 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러시아가 워낙 복잡한 행정 절차 등으로 악명이 높아서, 그런 타성이 쉽게 고쳐질지 회의하는 목소리도 있다. 9월 5일 포럼 마지막 날, 한-러 비즈니스 대화가 열린 자리에서 한국측 위원장인 송용덕 호텔롯데 대표이사는 그동안의 애로사항을 털어놓았다. 송 대표이사는 “2010년 모스크바에 호텔을 지을 당시 각종 인.허가 과정이 100여 개나 되는데, 그걸 승인받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러시아 극동개발부의 오시포프 제1차관은, “극동지역에선 행정 절차를 대폭 줄이겠다. 다시는 롯데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동방경제포럼

극동지역 최초로 열리는 경제포럼에 러시아가 남북한을 동시에 초청하면서 가슴이 설렜다. 모처럼 남북한 회동이나 남북러 3자 회동을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던 것이다. 남북러 3자가 한자리에 앉는 것은 2002년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8월 말에 남북한 포격전이 발생하면서 정국이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주최측에 몇번이고 물어봐도 북한측에서 누가 올지 답변이 없다고 밝혔다. 다행히 ‘8.25 합의’가 극적으로 체결되자 비로소 북측 대표단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포럼 개막 직전에, 북한이 남북러 3자 회동에는 참석하지 않기로 통보해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대가 낙담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윤상직 산업통상부 장관(왼쪽), 리용남 북한 대외무역상(오른쪽)

물론, 남북한 대표가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진 적은 있었다. 9월 3일 저녁, 투르트네프 부총리가 예고 없이 각국 대표단을 초청해 상견례를 겸한 행사장 견학 일정을 마련한 자리였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용남 북한 대외무역상은 이 자리에서 30분간 회동했다. 두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라는 간단한 인사말을 건넨 뒤 별다른 의견 교환 없이, 주최측이 마련한 행사장 견학을 마쳤다고, 윤 장관측은 전했다. 그나마 이같은 만남 때문인지 그 이튿날 전체회의에서 윤 장관이 이용남 대외무역상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는, 북한 나선지구 홍수 피해를 잘 마무리 하시라고 덕담을 전했다고 한다. 폐쇄적이고 경직된 북한 체제를 감안해 볼때, 이미 남북러 3자 회동에 참가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내려진 이상, 현장에 나와있는 장관급 대표가 남한 대표를 만난다 하더라도 특별히 할 말이 없을 것이란 관측은 할 수 있다. 이번에 남북한 회동이나 남북러 3자 회동이 이뤄졌더라면, 나진~하산 물류.네트워크 사업이나 한반도 가스관 연결 사업 등 이미 벌여 놓은 각종 사업들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해보는 기회가 됐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남북러 3각 경제협력이 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남북간에 순풍이 불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경제포럼이 끝난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러시아 극동개발부에서는 내년에도 경제포럼을 다시 열 계획이라며, 조만간 그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년에는 제발 남북러 3자 회동이나 남북간 회동이 반드시 이뤄져 극동에서 남북경협의 물꼬가 확 터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3) 갈수록 판이 커지다

이듬해인 2016년 제2회 동방경제포럼이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9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열렸다. 2015년에는 3일 동안 열렸는데, 2016년엔기간을 이틀로 단축하고 대신 내실을 기했다. 한국과 일본의 정상들을 초청해 주가를 한층 올렸다. 오히려 한·러, 일·러 정상회담 때문에 본질인 경제포럼이 뒷전으로 밀린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무튼, 이틀간 포럼에서 214건, 1조 8,500억 루블(약 31조 원) 상당의 계약이 체결됐다고, 러시아 극동개발부 공보처가 밝혔다.

앞서 지적했듯이 시베리아. 극동지방의 석유·가스·전력 생산은 세계 톱 상위권을 차지하지만, 인구가 현저히 적고, 자본·기술이 부족한 게 문제이다. 중·러 국경 너머로 중국 동북 3성에는 1억 3천만 명이 바글대는데, 극동 연해주 인구는 고작 600만 명 정도이다. 이번 포럼 전체 회의 사회를 봤던 마이클 케빈 전 호주 총리는, “극동의 영토 크기는 호주 정도인데, 인구는 싱가포르 정도이다.”라고 비유했다.

극동지역의 산업구조 변화도 요구된다. 현재 1차 산업 중심의 구조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변화할 필요가 절실하다. 여기에 한국과 중국·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동방경제포럼은 아태 국가들에 극동지역 진출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는 자리다. 이번엔 각국 정상들까지 초청해 제법 성대한 행사를 치른 이유다. 한국과 일본 역시 각각 안보, 영토 문제가 걸려 있으니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박근혜 대통령

9월 3일 오후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러일 정상들이 기조연설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조연설에서 “극동은 한국과 러시아를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이며, 블라디보스토크는 물류의 대동맥이 시작되는 중요한 도시”라며 지역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극동개발의 구체적 방안으로 “주택, 보건, 의료 분야 등에서 투자 증대와 협력 강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러 기업 간 협력을 통한 교통·항만 등 극동지역 인프라 확충, 북극 항로 개발, 극동지역 고속도로 건설사업 및 폐기물 처리를 위한 친환경 사업 협력, 냉동창고 및 가공공장 건설 참여 등 극동지역 수산클러스터 조성 등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하지만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에 연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시급성을 갖고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북한의 핵 위협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북한 핵 개발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북한이 동해 상으로 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은 극동지역의 선박마저 위협한다”며 북핵 문제가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대해 “평양의 자칭 ‘핵보유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또 러시아는 한반도 긴장 상황을 협상 국면으로 돌리기 위해 북한을 최대한 설득할 것이라고 답했다.러시아가 그동안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우리에게 비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것에 비 하면 푸틴의 이번 답변은 상당히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이번 동방경제포럼 참석이 나름의 성과를 얻은 셈이다. 물론 민감한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을 여전하다.

아베 총리

아베 일본 총리의 연설에서는 러시아의 환심을 얻고자 하는 의도가 그대로 드러났다. 어떻게 들으면 아첨에 가깝게도 들릴 정도다. 아베 총리는 “저는 이번에 블라디보스토크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저는 전용기를 타고 왔지만, 이곳은 항구가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에 배를 타고 와야 할 것입니다. 100년 전 노르웨이 출신 탐험가 프리드쇼프 난센은 블라디보스토크를 보며 이렇게 말했죠. 여기보다 아름다운 곳이 어디에 있을까?”라며 한껏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치를 칭찬했다.

아베 총리는 또 동방경제포럼장이 있는 루스키 섬으로 들어오는 세계 최장의 사장교(길이 3km)를 일본 기업이 건설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아름다운 도시 건설에 일본 기업을 동참시켜 달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이와 함께 러-일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면서 이 같은 비정상적인 상황에 종지부를 찍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 년에 한 번 이곳에서 정례 회담을 하자”라는 새로운 제안도 내놓았다.

아베 총리는 발언에는 그가 남은 2년 임기 동안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경제협력을 당근 삼아 쿠릴열도, 북방영토 문제를 매듭짓기로 작정한 것 같은 의도가 드러난다. 아베는 앞서 지난 5월에도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푸틴을 만나 ‘8개 항목의 협력방안(이른바 포괄적 접근)’을 제시한 바 있다.

물론 푸틴 대통령이 당장 아베 총리의 구애에 화답할 것 같지는 않다. 푸틴 대통령은 전체회의에서 러시아 관점에서 러-일 관계의 전략적 중요도는 어떤지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영토 문제는 러시아의 국익에 관계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러시아와 일본의 시각이 다르다. 현재의 러시아가 이 문제를 만든 것이 아니다. 1956년에 이 문제가 해결되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소련-일본 간 공동선언에서 당시 소련은 시코탄과 하보마이 등 쿠릴열도 4개 섬 중 2개 섬을 일본에 돌려주겠다고 제안한 바 있음)

푸틴 대통령

푸틴은 또 “당시에는 일본이 거절했다. 당시의 제안에 대해서 일본이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한다. 러시아와 일본에게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영토문제는 해결되리라고 생각한다. 나와 아베 총리가 소치에서 합의한 8개의 협력방안, 이것이 중요하다. 영토문제와 평화협정문제는 해결책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양국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능할 것이다.” 고 답했다.

이틀간의 잔치는 끝났다. 정상회담 덕분에 굵직한 계약체결. 각종 MOU 체결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기자 개인의 관심사는, 한국과 일본의 정상들이 언급한 안보, 영토 문제를 러시아는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베가 제안한 ‘매년 정례 정상회담’에 대해 러시아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도 관심사다. 문제는 러시아 사람들은 반응을 보이기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기다려 볼 일이다.

 

4) 극동개발의 노림수

한러일 정상들

푸틴 대통령은 왜 극동개발에 열을 올리는걸까? 푸틴은 2000년 7월 집권 1기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북한을 방문했다. 옛 소련시기를 통틀어 러시아 국가정상이 평양을 방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부터 극동개발에 박차를 가한 뒤 15년 만의 결실이 이번 동방경제포럼이라고 할 수 있다. 극동개발의 목적은 결국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진출로 요약된다. 푸틴 대통령은 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아시아.태평양 연안국가들은 지금 세계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아태국가들과 긴밀히 유대관계를 맺는 것은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관계”라고 설파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자루비노 항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남쪽으로 230km 위치. 중국 국경과 가까움)의 항만 현대화에 합의했다. 우리측 관계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동해안을 따라 부산항에 이르러 아시아.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일 것이라고 귀뜸했다.

 

5) 연해주 한국 공단

개성공단이 가동된지 꼭 10년째 되던 2013년 4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 등 잇달은 북한의 강경 조치로 결국 남북한 종업원들이 모두 철수하면서 개성공단 중단 사태가 벌어졌다. 필자는 당시 북중 접경지역인 지린성 도문의 북한 전용공단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실태를 취재하고 있었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개성지구 노동자들이 북중 접경의 도문 공단으로 옮겨올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또 남한 정부에서는 개성공단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남북한 협력 모델을 북한 땅이 아닌 제3국에서 시행하는 방안을 모색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리고 제3국 중 유력한 후보지가 러시아 극동 연해주라는 첩보도 입수했다.

중국 전용 공단

그해 12월 필자는 <북방의 문을 열다> 라는 제목으로 철도 연결 등 남북러 3각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내용의 신년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극동 연해주를 방문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10km 떨어진 작은 도시 우수리스크. 필자는 우수리스크에서 아주 흥미로운 장소를 취재했다. 시 외곽에 중국 전용 공단이 있었다. 2012년에 가동을 시작한 이 공단에 20개 업체 1500여 명이 일하고 있었다. 원자재를 중국에서 들여와 신발.운동복.박스 등을 만드는 봉제가공업체들이었다. 상품은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으로 수출한다고 했다. 북한 노동자들 고용하는 조선족 공장도 있었다. 그동안 수지가 맞지 않아 일부 중국업자들이 철수한 탓인지 최근에는 300여 명 정도로 규모가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공단을 보면서 필자는 연해주에 한국 업체들을 위한 전용 공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러시아측 입장에서는 중국인들 보다는 북한 노동자들을 더 선호한다는 말을 너무나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중국 전용 공단2

2019년 1월 산업연구원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 경제성장을 위해 남북러 3국이 산업단지를 함께 조성하는 등 협력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연구원은 장기적으로 북한 내 산업단지와 더불어 한러 협력산업 집중지역에 점진적으로 ‘남북러 협력 산업단지’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러시아가 극동지역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점에 주목해, 남북러 협력의 최우선 대상 지역으로 극동지역을 제시했다. 연구원은 유엔의 대북제재 해제 추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고려해 러시아의 협력을 최대한 유도하고, 남북러 수송망 구축과 유라시아 시장 확대에 필요한 수출형 제조업 분야 프로젝트를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북러 협력사업이 러시아 정책과 부합하도록 러시아가 극동지역에서 추진하는 루스키섬 과학·기술센터 조성, 가공산업 육성,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수송 인프라 건설 정책 등을 활용한 프로젝트를 검토 대상으로 제시했다. 북한과 러시아가 전력, 광물자원, 철강, 수송망, 무역·투자, 농업 등 분야에서 진행해온 기존 협력사업을 활용할 것도 제안했다.

블라디보스토크

그런데 실제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이런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LH는 2019년 9월 4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5차 동방경제포럼에서, 연해주 나데진스카야 선도개발구역(ASEZ) 내에 ‘한-러 경제협력 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서 15km 거리에 위치해있다. 단지 조성은 총 150만㎡(45만 평) 가운데 50만㎡(50 ha=15만 평)를 시범사업으로 우선 추진할 예정인데, LH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개발권을 획득해 산업단지를 조성한 뒤 한국기업에게 입주권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만약 미분양 시에는 외국기업에게 입주권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LH는 설명했다.

사업비는 100억원 이내로 2020년부터 3년간 추진할 계획이며 현재 사업타당성 조사용역을 진행중이다. LH는 지난 2월에 FEIEA(러시아 극동투자 수출지원청)와 이번 사업의 포괄적 내용을 담은 MOU를 체결하고 7월에는 국내 기업들의 입주 수요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LOI, 즉 입주의향서를 낸 기업은 28개로 17.1만평을 요구했는데, 이는 분양면적인 13.4만평을 128% 초과한 것이다. LH는 우리 기업의 연해주 진출 장점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를 들었다.

①생산 거점: 저렴한 전기.가스 비용, 노동력 등을 활용해 생산 단가 절감과 향후 CIS 진출을 위한 거점으로 활용 가능

②물류 거점: 북.중.러 접경지역에 국제물류 요충지로 성장이 예상되며 국내 시장과도 근거리에 있어 물류비용 절감 가능

③After Market: 극동아시아 지역은 중고차 점유율이 높아 A/S 부품 및 차량관리 용품 등에 대한 적지 않은 시장 규모 형성

LH는 9월에 사업타당성 분석을 마치고 12월 13일 러시아 정부와 ‘예비 사업시행 협약’을 맺었다. 이번 사업은 우리 정부가 2017년 9월 러시아에 제안한 9개 분야의 한‧러 간 경제협력사업(산업단지, 가스, 철도, 항만, 전력, 북극항로, 조선, 농업, 수산업) 즉 ‘9-Bridge 전략’의 하나로, 중소기업의 러시아 진출을 지원하기위한 방안이라고 LH는 소개했다. 또 이번 시범사업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창출해 제2, 제3의 한국형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진심으로 이 사업이 성공해 크게 번창하기를 바란다. 돌이켜보면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이후 러시아 극동 연해주에 진출을 시도한 국내 기업들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살아남은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우수리스크에 있는 롯데 농장 (예전에 현대중공업 소유였다가 매각됨), 롯데 호텔(예전의 현대 호텔), 크라스키노에 있는 유니베라 농장, 대순진리교 농장 등이다. 필자는 앞으로 이 산업단지에 북한 노동력까지 가세해서 진정한 남북러 3각 협력사업으로 꽃피우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목, 2019/12/1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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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양국체제적 발상을 가로막아왔던 심리적 억압 기제는 크게 외부에서 비롯된 것과 내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두 개의 억압기제는 일단 겉보기에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외적 억압은 상대를(즉 남은 북을, 북은 남을) 부정하는 쪽으로 작용한 반면, 내적 억압은 반대로 상대를 부정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분석해보면 이 두 개의 계기가 역설적인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렬한 ‘분단(부정)의식=내적 억압’이 결과적으로 남북 두 국가 간의 적대를 심화시켜 국가기구의 외적 억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칸트의 정언명령이 곧잘 그러하다고 하듯, 당위는 그 당위가 강할수록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분단의식에 내포된 당위, 즉 분단부정의 당위 역시 그러했다. 남북은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는 당위는 과연 어느 정도나 실제로 남북이 하나로 되는 데 기여했을까. 분단사에서 결정적 사건인 6·25 전쟁부터 생각해보자. 통일의 당위는 당시 남북 모두 하늘을 찌를 듯 강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단의 고착이었다. 분단부정, 즉 통일에 대한 열정의 강도(强度)는 전쟁의 참혹도와,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긴 분단의 고착도와 정확히 비례했다. 그때 심어진 적대와 원한을 아직까지도 다 지우지 못하고 있다. 통일을 외칠수록 통일에서 멀어지고, 분단극복을 외칠수록 분단현실이 강화되는 역설이 바로 2016년 겨울의 촛불 직전까지도 강력하게 작동했다.

당위의 정언성이 강하고 이념적일수록 그 당위의 실현을 저해하는 반대물, 장애물에 대한 부정과 억압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한반도에서 분단부정의 당위는 고도로 이데올로기적인 미소 냉전의 대립구조 안에서 작동했다. 따라서 그 당위의 정언성이 강해질수록 이데올로기적 순수와 오염의 이항 대립구도 역시 극도로 첨예해진다. 남과 북은 서로 전쟁을 한 군사적 적이자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적이다. 적은 휴전선 저 밖에도 있지만, 더욱 위험한 적은 내부의 적이다. 따라서 남의 체제는 내부의 적인 ‘빨갱이’를 탐색하고 제거하는 고도의 정화 기계이고, 북의 체제는 또한 내부의 적인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의 끄나풀, 간첩’을 색출하여 말살하는 고도의 검열 장치이기도 했다. 이 정화와 검열의 장치는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마음과 뇌까지를 점유하여(‘내 귀의 도청장치’) 그 지배를 완성한다. 이로써 분단의 골은 인간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까지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전면화된 분단체제는 커다란 고통과 함께 분단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비판의식 역시 또 하나의 분단부정의 정언성에 기초한 당위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비판운동이 두드러지게 전개된 곳은 재야, 야당,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한국이었다.

한국의 역대 독재정권은 이러한 비판을 ‘이적’ ‘용공’ ‘친북’으로 몰아 탄압해왔다. 이들이 통치체제를 비판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분단극복, 통일이란 결국 대치하고 있는 적의 편에 동조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체제의 차이만 있을 뿐 남과 북에서 동형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분단체제란 이러한 분단체제 비판 세력을 식량으로 먹어치우면서, 즉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탄압하면서 자신의 몸체를 괴물처럼 더욱 키워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독재정권이 비판 세력을 ‘적’으로 상정하고 탄압하는 한, 극악한 탄압을 당하는 비판 세력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독재정권을 ‘적’으로 상정하고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독재정권은 비판 세력이 자신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이적단체’에 불과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이로써 상호를 적으로 간주하여 투쟁하는 상승적 순환 구조가 남과 북의 정권 사이에서, 그리고 남 내부와 북 내부 각각에서 형성되고 교차하면서 가속도를 얻어 작동한다.(이 책, 153쪽)

결국 분단체제란 분단의 부정, 즉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를 재생산하는 기묘한 체제였다. 이 기묘한 작동논리는 2중의 차원에서 전개된다. 먼저 남북의 분단체제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체제의 목적이 분단의 극복이다. ‘조국통일’, ‘북진통일’, ‘흡수통일’, ‘붕괴통일’, ‘통일대박’, 매한가지다. 모두 분단을 부정하고 자기 중심의 통일, 즉 ‘분단의 극복’을 표방한다. 이렇듯 분단체제가 분단을 부정하면 할수록 남북 양측에서 서로에 대한 의심과 대립과 적대의 힘, 즉 분단의 장력(張力)은 더욱 팽팽하게 당겨지는 물리학이 성립한다. 그러나 분단체제의 자기생산력이란 이것만이 아니다. 이렇듯 자기생산성을 갖는 분단체제의 기득 권력을 비판하고 맞서는 힘 역시 ‘분단극복’을 표방한다. 분단을 극복해야 분단체제가 종식될 것이니 당연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바로 이렇듯 ‘분단체제극복’을 부르짖는 세력을 기다렸다는 듯이 체제비판 세력, 내부의 적, 간첩으로 낙인찍어 잡아들인다. 수많았던 기획된 간첩사건, 체제전복사건, 내란선동사건들이 그러했다.

분단체제의 적대적 장력은 이렇듯 서로를 외부·예외로 간주하는 남북 간에 형성될 뿐 아니라, 바로 남북의 내부에 외부·예외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겹2중’으로 형성된다. 이 ‘겹2중’이 맞물려 돌아가는 동력 구조가 분단체제다. 내부에 외부를 설정하는 이 ‘내부 적대’의 장치 마련을 통해 ‘외부 적대’의 동력을 증폭시키는 매커니즘이다. 분단체제란 이렇듯 강고할 뿐 아니라 교묘한 자기생산 – 재생산체제다. 70여 년이나 생명을 이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애초에 문제는 분단을 부정하는 당위의 주체가 하나일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분단부정의 당위는 무엇보다 우선 분단부정의 또 다른 당위와 생사존망의 대결 상태로 빠질 수밖에 없다. 분단부정의 당위가 또 다른 분단부정의 당위를 부르는 구조였다. 이제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반복적 순환 사이클로 요약할 수 있다.

분단부정의 당위 → 남북 적대의 심화 → 분단독재체제의 강화 → 분단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의 강화 → 분단부정의 당위의 강화

이 순환은 자꾸만 반복된다. 피하고 싶은 불쾌한 증상을 자꾸만 되풀이하는 반복강박과 닮아 있다. 이처럼 철저하게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포괄한 분단구조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위가 강할수록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정언명령의 역설은 분단체제 70년의 현실로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분단을 부정할수록 분단이 고착된다는 ‘분단(부정)의 딜레마’는 애초에 둘임을 부정했던 데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 딜레마를 끊으려면 둘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가 되자고 하면 오히려 하나가 되자는 둘이 우선 분명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애당초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의 발단이 되어왔다. 둘임을 인정하고, 하나가 되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 양국체제다. 이것을 하지 못하고 ‘분단(부정)의 딜레마’에 빠져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미 너무나 컸고 길었다. 북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통일대박’과 ‘종북몰이’를 양 손에 들고 휘둘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경험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촛불혁명은 유신체제로 되돌아가려 했던 총체적 종북몰이, 블랙리스트 소동을 종식시켰다. 촛불혁명 이후 이 나라의 민심은 마치 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 새로운 눈으로 현실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힘에 기초하여 2018년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선언, 평양 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어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에서 평양 시민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하였고, 머지않아 서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시민들을 만나는 날도 올 것이다. 한 민족의 두 나라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통일로 가는 길을 준비하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 다시 말해 ‘한 민족 두 국가의 평화체제, 공존체제’가 이미 현실로 시작된 것이다.

 

양국체제의 첫 번째 역사적 계기: 반쪽국가의식에서 양국의식으로

그렇지만 양국체제적 인식이 오직 촛불혁명과 판문점·싱가포르 선언을 통해서만 처음 생겨났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큰 변화에는 반드시 그에 선행하는 역사적·예비적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반에 연속적으로 벌어진 대형 사건들이 그러했다. 1987년의 민주항쟁과 1989~1991년 사이의 소련·동구권과 미소 냉전체제의 붕괴, 한소·한중 수교, 그리고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교환으로 이어진 초대형 변화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분단체제의 지반을 처음으로 크게 흔들었다. 세계 판도 전체가 크게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변화 속에서 분단의식도 크게 흔들렸다. 분단의식은 ‘반쪽의식’이기도 하다. ‘반쪽만으론 온전하지 못하다’, ‘나뉜 반쪽은 합쳐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생각이다. 반쪽의식에서 양국체제 발상은 나올 수 없다. 양국체제는 두 코리아를 각각 온전한 하나의 국가로 보기 때문이다. 온전한 국가란 ‘내부의 정당성’과 ‘외부의 인정’이라는 양 측면을 모두 갖추어야 성립한다. 남북이 이 두 근거를 어느 정도 갖추기 시작한 최초의 계기는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교환이었다. 이 두 사건은 1987년부터 시작된 세계적 대변동의 연쇄가 낳은 종합적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세계사 차원에서는 미소 냉전구조의 붕괴가 주원인이었고, 국내적으로는 87년 시민항쟁이 열어놓은 민주화 지향의 강력한 여론이 있었다.

분단의식, ‘반쪽의식’으로 보면 남북의 국가는 ‘반쪽(만의) 국가’일 뿐이다. 우선 이러한 ‘반쪽국가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면 양국체제 발상은 생겨나기 어렵다. 그러나 반쪽국가의식에도 그만한 현실의 근거가 있었다. 냉전시대 남북 국가의 내적·외적 정당성 구조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고 반쪽짜리로 보이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외적 측면부터 살펴보자. 어떤 국가에 대한 외부의 인정이란 국제사회의 인정, 외국과의 수교관계로 표현되는데, 냉전시대 남북의 국제적 인정, 수교관계는 실제로 ‘반쪽짜리’였다 할 수 있다. 한국(ROK)은 미국 영향권의 국가들과만, 반대로 조선(DPRK)은 소련 영향권의 국가들과만 수교하고 있었다.8 나머지 반쪽의 인정이 없었던 것이다. 남북 모두 외부 세계의 절반으로부터만 인정받고 있다는 ‘반쪽국가의식’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내적으로도 남북은 ‘반쪽국가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1948년 두 정부의 수립 이래 남북은 자신이 통일을 목적으로 세워진 일종의 ‘경과적인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자신만이 적통자(嫡統子)고, 자신이 주도하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두 국가 모두 자신이 이미 완결되었거나 완성되어 있는 국가라고 내세울 수는 없었다. 스스로 ‘반쪽국가’이고 따라서 ‘반쪽만의 정당성을 가진 국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반쪽국가의식’이 강할수록 통일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반쪽국가’의 정당성이 충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측이 모두 통일을 내세우고 자신만이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통일은 말은 늘 좋지만 실제 의도는 상대를 소멸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냉전시대 남북의 통일정책들은 언어로 하는 전투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총탄을 교환하듯 오갔던 통일정책, 통일방안들이 오히려 통일을 멀게 했다는 것은 역설이라기보다 당연한 결과였다.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이러한 관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 채택을 주도했던 것은 한국의 노태우 정부였다.9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의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를 인정해주더라도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북은 곤란한 상황이었다. 동구권 붕괴 이전까지 북은 유엔 동시가입을 반대해왔다. 통일 주도권이 자신의 편에 있다고, 자신만이 ‘조선반도’에서 유일하게 정통성을 가진 국가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정통성 없는 ‘남조선’ 정부를 굳이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해줄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 중심의 ‘진영’이 무너져 국제무대에서 남과 북의 지지 균형은 한국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여기에 더해서 87년 개헌에 따라 대통령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한국 새 정부의 정통성을 (야권분열에 따라 군부 출신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웠다. 이제 북은 예전처럼 한국 정부를 무작정 반대하거나 무시할 수 없었다. 체제 유지를 위한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단국의 유엔 동시가입은 1973년 동서독의 선례가 있다. 그러나 동서독 상황이 1990년 급속한 흡수통일로 마감되었다는 사실이 북으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 한국과 수교하고(1990년) 중국이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지지하자(1991년 5월) 북도 입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동서독의 경우 1973년 유엔 동시가입과 1990년 흡수통일은 별개의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과 흡수통일을 혼동할 이유가 없다. 북은 북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 판단의 중심에 물론 김일성 주석이 있었다. 불가피한 일이라면 오히려 이를 자신의 체제 보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살려보려 했다.

실제 유엔 동시가입이 북에 대한 국제적 공인을 담보하여 일방적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생각할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핵무기 철수 등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양보도 요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남북 대화가 최고조에 올랐던 1991년 하반기에는 다음 해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 취소가 결정되었고, 미국은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를 철수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로 인해 연말에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이뤄질 수 있었다. 북은 결단을 했고, 이로써 유엔 동시가입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남북은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유엔 회원국은 회원국 상호의 주권을 인정하고 서로 침해하지 않는다는 유엔헌장을 준수해야 한다. 따라서 일단 형식 차원에서라도 ‘두 개의 코리아’가 온전한 국가로 공인된 것이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쪽국가’로 인정되었고, ‘반쪽의식’ 자리에 ‘양국의식’이 생겨났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로 다시금 분명히 표현되었다. 3장 25조에 이르는 기본합의서의 핵심은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에 있다. 과거 냉전시대에도 주도권 경쟁 차원에서 그와 유사하거나 또는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구절들을 사용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격과 방어 차원의 언어 공세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분명한 합의였다. 크게 달라진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해(利害)의 공통기반이 생겼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많았지만 당시 양측은 이 합의를 통한 공존 기조의 지속에 상당한 기대와 믿음을 공유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모두 크게 흡족해했다. 애초부터 각자의 적대적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려는 목적을 숨기고 서로가 일시적으로 이용하였을 뿐이던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 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이 합의로 양국의 자체적·내적 정당성 근거 역시 분명 ‘반쪽국가’에서 각자가 충족된 정당성을 갖는 ‘양국체제’ 쪽으로 이동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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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1/2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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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의 2019년도 기부금 모금액과 사용 실적을 공개합니다.

이 내용은 국세청 홈텍스에 공개한 내용과 동일합니다.

[다른백년] 2019 연간보고서 기부금모금액 및 활용실적명세

화, 2020/03/3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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