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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21년 봄 통권80호

지역

[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21년 봄 통권80호

admin | 수, 2021/04/14- 22:17

저자: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ㅣ출판사: 민연ㅣ값 15,000원ㅣ288pageㅣ발행일: 2021.04.15.ㅣISSN 1228-8802ㅣ97712288802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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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여는 글
○ 역사하는 ‘우리’를 이야기하며 다시 내일을 꿈꾸다 / 조형열

특집 : 역사하는 사람들의 생태보고서, 핏빛 혹은 장밋빛 이야기
○ (좌담) 지역연구자의 삶과 꼬뮨 만들기 / 권명아 정계향 김대성 강화정
○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날들 / 작자미생
○ 굿바이 루카치 – 어느 연구자의 일상 / 허민
○ 2020년, 역사학과 여성사, 이 기울어진 세계의 이야기 / 한봉석
○ (대담) 해외에서 역사하며 살기 : 유럽의 한국사 연구와 교육 / 안종철 이동원
○ (대담) 해외에서 역사하며 살기 : 일본의 한국사 연구와 교육 / 니시무라 나오토 김영진
○ 역사교육, 역사를 매개로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를 통해 민주주의를 몸으로 익히기 / 우현주
○ (인터뷰) 푸른역사의 산증인 박혜숙 대표를 만나다 / 박혜숙 김헌주
○ (좌담) 피해자의 삶이 역사가 되었듯이 활동가의 삶이 역사가 되다-역사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대일과거사 활동가들의 이야기 / 강경란 김명준 김진영 김해슬 이하나 야지마 츠카사 정은주 최상구 김영환

기획 : 구술로 본 전쟁과 일상(2)
○ 난을 피하는 여러 가지 방법 : 한국전쟁기 피난 이야기 / 김수향
○ 오음리에서 사이공까지 : 구술을 통해 본 ‘파월전사’의 참전 과정과 현지 경험 / 류기현

연재 : 온라인으로 만나는 역사(2)
○ 한국전쟁 전후 북한 영화 관련 온라인 자료 소개 / 한상언
○ 8월 14일 기림의 날 개관한 아카이브814 – 일본군‘위안부’ 관련 자료 보기 / 강윤희

인물로 보는 역사
○ 이탈리아어판 코민테른인명사전에 실린 한국인들 ④ 김단야 박헌영 김재봉 / 임경석

리뷰
○ 긴축 정책과 빈부 격차 그리고 차별 : 단지 영국 중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
– 브래디 미카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다다서재, 2020 / 백은진

<책소개>

역사하는 ‘우리’를 이야기하며 다시 내일을 꿈꾸다

언젠가는 역사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역사를 이렇게 봐야 한다’, ‘역사적 진실은 이런 것이다’ 등등 역사 이해의 결과물에 대해서 주목할 뿐, 그 말을 만들고 옮기고 말이 현실이 되게끔 노력해온 사람들의 삶과 의식세계를 소홀히 여겨온 것은 아닌가. 역사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들이 발 딛고 있는 환경에 눈을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사람들이 하는 그 일에 대한 의미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나만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기획은 시작되었다.

역사가 하나의 서사 형태를 갖추게 되고,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파되며,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게 되는 데 얼마나 많은 과정이 존재할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 개입할까. 사람마다 각각 자신의 경험이 다르고 역사와 대면하게 되는 계기도 다양하기 때문에, 역사의 생산과 전파 및 실천적 개입 등을 하나의 ‘타임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수많은 시간대들이 중첩되어 있는 실제 상황을 잠시 접어두고 이러한 국면에 참여하는 집단들을 생각나는 대로 짚어보면, 역사 연구자, 역사교사, 종이·음성·시각 매체를 통한 역사프로젝트 기획자, 피해자의 구제와 역사적 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역사단체 활동가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물론 이들은 항상 동일한 목표와 균등한 영향력을 가진 주체들이 아니다. 근대 이후 정부는 통치권력으로 기능하며, 역사하는 사람들의 행로를 결정하는 ‘슈퍼 갑’이었다. 이와 같은 정부의 힘이 상수로 존재하는 가운데, 때로는 연구하고 쓰는 사람들이 가르쳐야 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규정했다. 또한 역사대중화라고 포장한 채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대중의 역사의식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선동가’가 역사하는 사람들 전체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즉 역사하는 여러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얽혀있는 관계는 반드시 역사관으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자신이 속한 위치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역사하는 행위에 대해서 성찰적으로 되짚어보려면, 이들 모든 영역들이 어우러져 문제의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역사하는 사람들 사이의 협업적 관계 구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는 게 이 기획의 첫 번째 의도라면, 두 번째 목표는 각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2021년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지속가능한 생존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점검해보는 데 있다. 말로는 평화 공영을 내세우며 누군가의 희생 덕에 연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국민적 소속감의 형성에 역사교육을 넘겨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역사의 전파자는 역사를 어떠한 가치가 있는 지식으로 다루고 있는가. 역사 활동가들은 역사의 정치화와 어떻게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그리 가볍지 않으며, 그 무게를 견뎌내기 위한 첫 걸음을 떼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내일을 여는 역사> 통권 80호 <특집> 제목을 ‘역사하는 사람들의 생태보고서, 핏빛 혹은 장밋빛 이야기’로 정했다. 지난 2020년 11월 무렵부터 편집위원회를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시작했는데, 업무보고서·연차보고서 한 편도 제대로 완성하기 힘든 마당에 생태보고서를 쓴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참신한 제안들을 성사시키지 못한 사례도 여럿이다. 본문에서 밝히듯이 여성사 연구자들의 좌담을 통해 한국근현대사학계의 연구환경과 연구경향을 말해보려 했지만 아쉽게도 기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교육연구소에서 펴낸 ‘역사의식조사’처럼 연구자들이 느끼는 현실을 데이터화 하는 설문 작업도 구체화시켜보고자 했으나 편집위원회가 단기간에 감당할 수 있는 계획은 아니었다.

결국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가급적 많은 말을 담기로 했다. 또한 말을 모으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2020년 12월 개편 호 발행 당시 원고 투고 방식에 한정되지 않은 열린 시도를 하자고 다짐했던 터라, 편집위원이 직접 발로 뛰는 노동집약적 기획이 가능했다. 좌담, 대담, 인터뷰, 기고 청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23명이 참여하여 역사하는 동네의 현상, 이면과 측면을 담은 생태보고서를 만들었다.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편집위원회에 제일 많다는 핑계로, 이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담았다. 일단 지역과 해외라는 공간으로 사람들을 찾아갔다. 지역 연구자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묵직했다. 강화정 편집위원이 중심을 잡고 이끌어간 좌담에 권명아, 정계향, 김대성 세 명의 부산경남지역 역사학/인문학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2021년 대입 입시에서 드러난 지방대학 ‘붕괴’에 대한 단상을 시작으로 지역에서 산다는 것이 자신의 연구에 미치는 영향, 지역이 단일한 공동체가 아니라 오히려 오래된 촘촘한 그물망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곳이라는 점, 수도권 집중화로 식어버린 대지일 수도 있겠으나 새로운 희망을 일구기 위해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활동장이라는 점 등을 말한다. 한 참가자의 지적처럼 지역은 언제나 전체 기획의 맨 끝에서 구색 맞추기처럼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생태계의 불균등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맨 먼저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코로나 유행 상황이 발달시킨 비대면 화상회의 방법으로 두 명의 해외 연구자와 대담을 추진했다. 이동원 편집위원은 이탈리아에서 활동중인 안종철 교수와, 김영진 편집위원은 일본의 신진연구자인 니시무라 나오토 조수와 대담을 나눴다. 한국에서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연구환경과 연구주제를 상대화·객관화하기 위한 시도이자, 우리가 대화하고 소통해야 하는 역사하는 사람들의 범위가 한국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고민에 따라 추진되었다.

이 대담을 통해 안종철은 유럽의 고등교육제도와 한국학의 궤적을 설명하면서 한국이 유럽과의 교류 범위를 넓혀갈 것을 제안한다. 특히 유럽에서 한국사/한국학은 여전히 인정투쟁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이 해외 연구자의 실존과 관련해서 짙게 여운을 남긴다. 한편 니시무라 나오토는 대학원 시절 한국에서의 생활, 한류로 인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 일본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제반 여건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풀어놓은 경험담은 ‘생각보다’ 특수하지 않았다. 일본이니까, 일본인이니까, 뭔가 자극적이고 특별한 얘기가 나올 거라고 기대한 내 편견이 컸던 탓이다. 그는 한국의 누구나 그렇듯이 역사에 관심 없는 대학생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일이 힘든, 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연구자이다. 두 곳의 문화와 시스템의 차이를 인지하면서도 생태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편집위원회는 연구자의 신분과 지위에 주목했다. 역사학의 영역에서 아무리 짧게 잡아도 석박사 과정을 졸업하는 데 10년은 훌쩍 넘게 걸린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취득한다고 해도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대학원생노동조합, 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이 만들어지면서, 연구자로 완성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으로만 오랫동안 간주되던 비인권적 처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아졌으나 아직도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역사 연구하는 사람들의 생태계가 안정되려면, 약육강식·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적 세계관이 아닌 공생과 상호부조의 관점이 폭넓게 수용될 필요가 있다.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단체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소속 연구자들이 작자미생이라는 이름으로 2017년 역사학대회 때 발표했던 원고를 일부 수정하여 게재했다. 타교 출신 대학원생에 대한 차별, 학회와 연구소 업무의 전가, 지도교수의 일방적 관계 설정 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허민은 어느 비정규직 연구자의 일상을, 학술대회 발표문 마감일 1주일 전부터 학술대회 당일에 이르는 긴장을 바탕으로 촘촘하게 르포 형태로 풀어냈다. 이들의 글이 피해자성을 전시하고 사적 개인을 고발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실을 이해하는 이야기로서, 학문 연구의 영역에 있는 모든 이들이 숙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금까지 지역, 해외, 대학원생, 비정규직 연구자처럼 공간과 지위에 따라서 연구 생태계를 살펴보았다면, 한봉석은 여성사에 대한 학계의 연구 지형, 출판 경향을 분석하면서 여성사 연구가 시대가 요청하는 바인 다양한 관계와 개인의 정동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희망을 담았다. 그는 페미니즘 전성시대에 역사학계가 함께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여성사 연구자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주지 못한 환경과 칭찬의 부재로부터 찾는다. 그가 내심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재기 넘치고 열성적인 여성 연구자들을 불안과 위기로 내몬 우리 생태계에 대한 비판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 연구자에 대한 지지를 에둘러 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연구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역사학 전공자는 5,600명 정도이다. 그런데 교사모임 관계자의 전언을 통해 추정해볼 때, 역사교사도 대략 8,000명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역사교사 역시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역사하는 사람들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인원만이 아니라 실제 수행하는 역할에 있어서도 그렇다. 살아가는 동안 얻게 되는 많은 역사지식이 역사교사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최근에는 미디어의 역사 상품화로 학교 역사교육의 위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23년차 역사교사 우현주는 역사 공부의 기본 목적이 역사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있다고 말한다. 독서 수업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게끔 하고, 느리더라도 오래가는 공부를 강조한다. 또한 역사가 ‘지금 이 순간’의 과거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결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현재진행형의 관점에서 역사수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한다. 현장의 고민을 담은 역사교사의 생존기를, 다른 분야에서 역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읽어주셨으면 한다.

역사대중화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지만, 여러 매체를 통한 역사프로젝트 역시 역사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대목이다. 연구자와 교육자, 활동가 등이 모두 개입하는 분야이자 상업적 이윤 창출과 맞물려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역사 출판과 방송 출연 등은 연구자들의 사회적 기여의 한 방편으로 생각되었지만, ‘설민석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미디어는 전문연구자를 소외시키며 흥미 위주로 구미에 맞는 ‘국뽕’ 류의 단선적인 역사담론을 재창출하기도 한다.

역사 전문 출판사 푸른역사 박혜숙 대표는 20년 넘게 이 생태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체이자 목격자이다. 김헌주 편집위원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박혜숙은 푸른역사의 역사대중화 시도, 전문 역사 연구와 역사 출판의 긴장, 역사 출판계를 둘러싼 최근 동향, 출판과 영상매체와의 관계 등 자신의 경험을 솔직담백하게 선보였다. 향후 역사가 어떻게 대중에게 다가설지, 특히 출판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사프로젝트의 발굴을 위해서도 참고해야 할 자료가 될 것이다.

<특집>의 마지막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할애했다. 김영환 편집위원이 주선해서 강경란·김명준·김진영·김해슬·이하나·야지마 츠카사·정은주·최상구 등 여덟 명의 대일과거사 활동가가 참가한 좌담은, 활동가들을 조직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출발점이 제각기 다른 ‘고민하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활동가가 된 개인적 경험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들이 활동을 하게 된 동기에서 엿보이듯이 대일과거사는 집단의 이야기면서 수많은 개인의 삶이 켜켜이 쌓여있는 영역임을 확인할 수 있다. 좌담은 대일과거사 활동가들이기 때문에 겪는 공감대를 기초로 진행되었다. 식민지 경험에 따른 반일정서가 운동의 진행과정에서 지지기반이 된다는 점, 또한 일본사회의 변화로부터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경화가 날로 심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운동을 준비할지 고민이라는 점 등은 대일과거사 활동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주로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와 연대하면서 과거사청산운동을 전개한 활동가들이기 때문에, ‘네가 유족이냐’는 물음은 다반사로 경험했을 터. 현재 나눔의집 민주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야지마 츠카사의 ‘나눔의집이 할머니의 역사를 팔아왔다’는 비판과, 나눔의집 정상화 이후 일본사회와 연대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싶다는 다짐이 큰 울림을 준다.

이상과 같이 이번 호 <특집>에는 전체 아홉 개의 기획을 담았다. 역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분야를 망라해 이야기를 수집했으나, 돌이켜보면 각 분야 사이의 관계성을 점검하는 데, 그를 통해 역사가 순환되는 전체 생태계를 살펴보는 데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가 부족한 능력으로 제한된 시간에, 지면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다만 여기 흩뿌려놓은 단서들이 핏빛으로 변할지, 장밋빛으로 피어날지 그건 아직 미지수이다. 기왕 사람들에 주목했으니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전망도 역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성찰하고 바꿔나가는지 지켜보는 것으로 여운을 남기고자 한다.

한편 <특집> 외에도 여느 호와 마찬가지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읽을거리를 준비했다. <기획>에서는 ‘구술로 본 전쟁과 일상’을 두 번째로 실었다. 김수향과 류기현이 한국전쟁기 피난과 파월전사에 각각 주목했다. <연재>도 지난 호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만나는 역사’로 찾아왔다. 한상언은 북한 영화/문화 연구를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온라인 자료 접근 방법을 소개했다. 강윤희는 일본군‘위안부’연구소의 아카이브를 상세히 해설했다. <인물로 보는 역사>에는 임경석의 ‘이탈리아판 코민테른 인명사전’에 실린 한국인에 대한 소개 마지막회를 실었다. 끝으로 <리뷰>에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음미해볼 만한, 영국 중학생들의 교육환경을 다룬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에 대한 백은진의 서평을 담았다. 긴 호흡과 짧은 호흡이 함께 어우러진 글들을 <특집>과 함께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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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6/24-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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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작가는 인도 델리를 여행하다 그곳에서 한국광복군이 영국군과 훈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도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독립운동의 흔적이 있었다. 그곳의 사람과 터를 찍었다.

멕시코에서 고국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보냈던 김익주 선생의 후손 다빗 킴 씨. ⓒ김동우 제공

대부분 사람들은 ‘국외 독립운동’이란 말에서 만주 벌판을 연상한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대첩이나 김원봉의 의열단이 떠오를 것이다. 지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한반도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예컨대 인도나 멕시코 같은 곳에 우리 독립운동의 발자취가 남아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김동우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기자 출신인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017년 사진 작업을 위해 장기 여행을 계획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독립운동을 주제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인도 델리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레드포트(Red Fort)에 방문하게 된 그는 “번개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파견한 한국광복군이 이곳에서 영국군과 함께 훈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구한말 한반도와 아무 연관도 없다고 여겼던 장소에서 들은, 뜻밖의 이야기였다.

김 작가는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독립운동의 흔적이 흩어져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게 사실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는” 독립운동사가 미국·멕시코·쿠바 등지에 있었다. 아프리카와 남미 외에는 전 세계에 퍼져 있다고 할 정도였다.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현지에 정착하게 된 이주자들은 후손을 남겼다. 김동우 작가는 2017년부터 2년간 세계를 돌며 사람과 터를 찍었다. 5월18일부터 8월18일까지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열리는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에 전시된 사진들이 그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의 직접적 계기는 ‘쿠바 한인 이주 100주년’이다. 1921년 3월 한인 300여 명이 쿠바로 향했다. 이들이 출발한 곳은 한반도가 아니라 멕시코다. 김동우 작가는 그래서 “쿠바 이민을 이야기하려면 멕시코 이민을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1905년 4월 제물포에서 영국 상선을 타고 멕시코로 간 1033명이 북중미 이민의 시초 격이다. 이역만리로 향한 이들 전부가 독립운동가는 아니었다. 갑자기 찾아온 기근을 피하고 돈을 벌려는 목적이 강했다. 1905년 〈황성신문〉에는 이런 이민 광고가 실렸다. “묵서가(墨西哥·멕시코)는 미합중국과 이웃한 문명 부강국이니 수토가 아주 좋고 기후도 따뜻하며 (…) 부자가 많고 가난한 사람이 적어 노동자를 구하기가 극히 어려우므로 한국인도 그곳에 가면 반드시 큰 이득을 볼 것이다.” 이민자 대부분은 에네켄(Henequen·용설란의 일종, 일명 애니깽) 농장으로 분산배치돼 노예와 같은 노동조건으로 혹사당했다. 멕시코 이민자 일부가 사탕수수밭에서 일하기 위해 향한 곳이 쿠바이다.

‘경제적 이유로 건너간 이민자’와 ‘국외 독립운동가’가 늘 명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둘 다에 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혹독한 농장 생활을 견딘 이들이 차츰 돈을 모아 독립운동에 쓴 것이다. 독립군 훈련을 위해 군사학교를 설립하기도 했고, 번 돈 대부분을 독립자금으로 부치는 이도 있었다.

2017년부터 2년간 세계를 돌며 해외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아 촬영한 김동우 작가. ⓒ시사IN 조남진

아흔 넘은 안창호 선생의 아들 랄프 안

이민자들의 후손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김동우 작가는 과거에 나온 언론 인터뷰나 학술자료를 바탕으로 현지 한인회 선교사 등과 접촉했다. 오래된 자료가 대부분이라 허탕 치기 일쑤였다. 국가보훈처에도 문의했으나 ‘개인정보’를 건네는 데에 난색을 표했다. 소재지를 찾아도 문제였다. 한국을 기억하는 이들은 고령이거나 세상을 떠났고, 살아 있는 후손들은 한국과 유대감이 옅었다. “이민 3세대 이후로는 외양이 변한다. 한식을 먹고 한인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보니 점점 현지인과 동화된다. ‘우리 조상이 코리아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먼 곳에서 왔다고 하니 취재에 반갑게 응하기는 하는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약하다.” 후손들을 촬영한 뒤 김 작가는 인물만 반투명 처리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존재가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김 작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 랄프 안(안필영) 씨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안창호의 ‘아들’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부터 놀라웠다. 아흔을 넘긴 랄프 안 씨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다. 김 작가를 만난 랄프 안 씨는 코리아타운에서 갈비탕을 사주었다고 한다. ‘아버지(안창호)가 독립운동에 앞장서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고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는 게 김동우 작가가 전한 랄프 안 씨의 말이다. 의병장 민긍호의 직계자손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났다. 이들의 존재가 알려진 건 한국과 옛 소련이 수교를 맺은 이후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먼 친척들이 자손으로 인정받아 훈장을 받고, 연금을 수령했다. 직계자손들은 훈장만이라도 받기 위해 한국 정부에 훈장 재교부를 신청했지만, 어렵게 재교부된 훈장은 전달식도 없이 비닐봉지에 담긴 채 전달됐다. 김동우 작가는 “해외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집집마다 울먹이며 이런 사정을 호소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람 사진은 눈길을 끄는 반면, 이번 전시의 풍경 사진은 상대적으로 맥이 빠진다. 거리나 건물을 찍은 사진은 주의 깊게 들여다보더라도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앙상하게 골격만 남은 구조물, 나무와 풀뿐인 벌판도 마찬가지다. 관람객이 느끼는 헛헛함은 김동우 작가 스스로 느낀 것이며, 작업 과정에서 의도한 것이기도 하다. “조상들이 토론하고 서성였던 자리, 건물이 있었던 곳에 막상 가보면 멸실된 게 많았다. 나무로 된 집이 다 헐려서 옥수수밭만 남았다면 옥수수밭을 찍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군사학교가 있던 곳에는 시장이 생겼고, 독립운동가들이 사형당한 곳은 소문에 의지해 추정만 할 따름이다. 그래서 김 작가는 “수많은 현장을 찾아다니며 가장 많이 마주한 풍경은 공(空)이었다”라고 했다. 시간의 흐름 때문이지만 적극적으로 보존하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의 새벽. 100년 전 한인 이민자들이 하루를 시작하며 보았을 광경이다. ⓒ김동우 제공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100년 전과 다르지 않은 것도 있었다. 썩고 헐리는 인공물과 달리 자연 풍광은 그대로였다. 김 작가는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새벽 5시에 맞춰 셔터를 눌렀다. 한인 이민자들이 하루를 시작하며 보았을 광경이다. 쿠바 이민자들이 도착한 마나티 항구의 저녁노을, 연해주 한인들이 강제로 이주된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의 초원도 찍었다. 조상들이 본 광경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김동우 작가는 당분간 국외 독립운동과 관련된 사진 작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쿠바 이주 100주년’이라는 전시 주제에 맞지 않아 내놓지 못한 사진도 많다고 했다. 특히 중국 지역 독립운동이 그렇다. 김 작가는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동우 작가는 이 일이 “우연처럼 시작된 운명” 같다고 했다. 그는 씁쓸한 독립운동의 후일담을, 거의 냉정할 정도로 정직하게 기록하는 작업을 당분간 이어갈 예정이다.

이상원 기자

<2021-06-18> 시사인 호수 717

☞기사원문: 미국·멕시코·쿠바에서 독립운동의 흔적을 찍다

수, 2021/07/07-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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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민단체가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본군과 미군이 격전을 벌인 오키나와(沖繩)현 본섬 남부 지역에서 새 미군 기지 매립지에 쓸 토사를 채취하는 것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평화를 기원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전몰자 유족 모임’은 오늘(7일) 일본 방위성과 후생노동성을 찾아 “헤노코(邊野古) 연안 매립 공사에 쓸 토사를 희생자 유해가 묻힌 곳에서 채취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의 서명 용지를 전달했습니다.

서명에는 일본 전역에서 1만 1천여 명이 동참했습니다.

이들은 “희생자의 피가 스며든 토사를 미군 기지를 만드는 매립에 사용하는 것은 유골이라도 돌아와 달라는 유족의 염원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오키나와 전투는 태평양전쟁 막바지이던 1945년 일본군이 본토를 지키기 위해 오키나와 본섬 남부 등에서 미군을 상대로 벌인 싸움입니다.

당시 일본군이 방패막이로 내세운 오키나와 주민과 미군 병사 등을 포함해 약 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오키나와대 지역연구소 특별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오키나와 전투에는 조선인도 3천461명이 군인이나 군속으로 동원돼 701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노무 동원된 이들이나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이들을 제외한 숫자입니다.

기록으로 파악되지 않은 사람을 포함하면 실제 동원되거나 사망한 조선인은 더 많을 수 있고, 이들 대부분은 희생된 주변 지역에 묻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희생자 유해 수습이 미흡해 이토만(絲滿)을 비롯한 격전지에서 발굴이 계속 진행 중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본섬 남부의 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이전할 곳인 중부 헤노코 연안의 매립에 쓸 토사 일부를 당시 격전지였던 이토만 등에서 채취하려 하고 있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유골이 섞인 토사가 매립용으로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입니다.

지난 3월부터 오키나와 현청 앞에 단식 투쟁 등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 ‘가마후야’(ガマフヤ-)의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67) 대표는 최근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그간 수습된 희생자 7백여 명의 유골을 가족에게 돌려주기 위한 후생노동성 주도의 DNA 감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한국의 유족들도 DNA 감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가마후야’는 한국 단체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02-2139-0462)와 민족문제연구소(☎ 02-969-0226)를 통해 오키나와 유골 발굴 및 DNA 감정에 참여할 한국인 유족의 신청을 받고 있습니다.

황현택 기자 [email protected]

<2021-07-07> KBS NEWS

☞기사원문: “조선인 등 묻힌 토사 채취 반대”…日시민단체, 1만여 명 서명 제출

※관련기사

☞연합뉴스: “피가 스며든 흙으로 軍기지 만드는 건 인도적으로 용납 불가”

☞한겨레: “희생자 유골 섞인 흙으로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 반인도적 행위”

☞연합뉴스: “피가 스며든 흙으로 軍기지 만드는 건 인도적으로 용납 불가”

☞연합뉴스: 조선인 유골 공사장에 묻히나…日NGO “한미 유족과 반대운동”

목, 2021/07/08-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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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세계유산위, ‘일본에 유감 표명’ 결정문 채택해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증언을 담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는 주제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시마 탄광(군함도), 다카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미이케 탄광·제련소 등으로 동원된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공개했다. 하시마 탄광으로 강제동원된 고(故) 서정우씨 등의 영상은 최초로 공개됐다. 2021.7.16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왜 여기에 와서 이런 일을 당하는가’ 혼잣말을 하면서 매일 죽을 생각만 했습니다. 바다를 내려다보면 너무 무서워서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군함도(하시마·端島) 강제동원 피해자 서정우 씨)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 산업시설에서 벌어진 조선인 강제노동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가운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육성 증언을 다루는 자리가 마련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과 공동 주최로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 전시회를 11월 7일까지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연다고 16일 밝혔다.

전시 영상들은 강제동원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담고 있다. 열네 살에 하시마 탄광에 동원됐다가 이후 나가사키에서 원폭 피해를 겪은 고(故) 서정우(1928∼2001) 씨의 영상이 국내에서 공개되는 건 이번 전시가 처음이다. 사복형사에게 연행돼 다카시마 탄광으로 끌려갔던 손용암(78)씨, 후쿠오카 미이케 탄광·제련소로 강제동원된 류기동(79)·손성춘(76)·이영주(77)씨 영상은 올봄 촬영돼 이번에 최초로 공개된다.

징용 경험을 감추고 살아야 했던 피해자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과거를 이야기한다. 군수시설에서 탈출하려던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말을 잇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모습에선 그들이 겪었을 고통의 깊이가 가늠될 정도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은 “보통 강제동원을 떠올리면 ‘배고프다’ ‘아프다’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처럼 단편적으로만 안다”며 “이번 전시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누구였는지, 어떤 과정으로 가게 됐는지, 현장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 느낌은 어땠는지, 언어 소통은 어떻게 했는지 등을 느낄 수 있게 증언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시민단체가 제공한 영상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나가사키 중국인 강제연행 진상을 조사하는 모임’이 제공한 중국인 포로, POW연구회가 제공한 연합군 포로의 증언 영상을 함께 전시해 강제노동이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학예실장(오른쪽 두 번째)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시하라’는 주제의 전시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연구소 관계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해당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하시마 탄광(군함도), 다카시마 탄광, 나가사키 조선소, 야하타 제철소, 미이케 탄광·제련소 등으로 동원된 피해자 19명의 증언을 공개했다. 2021.7.16 [email protected]

한편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은 일본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결과 센터가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지난 12일 공개했다. 지난해 6월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에는 군함도 등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조사단은 일본이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을 일본의 관점뿐 아니라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 등 피해자의 시각까지 균형 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토대로 일본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결정문을 이르면 이달 21일 열리는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식 채택할 예정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강제노동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온 우리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세계유산위원회가 공개한 권고를 지지하며 환영의 뜻을 표한다”면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이 권고를 채택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2021-07-16> 연합뉴스

☞ 기사원문: 피해자 육성 담은 ‘일제 강제동원’ 전시회 서울서 개막

※관련기사

☞뉴스토마토: 민족문제연구소, 군함도 등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19인 증언 공개

☞이투데이: ‘군함도 강제노동의 역사’,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19인의 증언

금, 2021/07/1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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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희생 조선인 추도 비문

1923년 9월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인의 폭동으로 희생된 조선인 6천여 명을 추도하는 도쿄도 위령당 내의 비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등 시민사회 원로들은 26일 성명을 내고 1923년 일본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과 추모사업 진행을 촉구했다.

이들은 “2023년은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가 되는 해로 이제라도 일본 정부는 진상을 공개하고 공식 사과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와 국회도 나서 자료 보존과 공개를 일본 정부에 요구하고, 9월 1일을 국가 추모일로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에는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박만규 흥사단 이사장, 송인동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윤경로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이만열 시민모임 독립 이사장,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장, 지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등 원로 17명이 참여했다.

<2021-07-26> 연합뉴스

☞기사원문: 시민사회 원로들 “日간토학살 진상규명·추모사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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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일본을 벌하라, 나는 죄가 없다” 예순 두군데나 찔린 조선인이 남긴 유언

화, 2021/07/27-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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