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21년 봄 통권80호

지역

[책소개] 『내일을 여는 역사』 2021년 봄 통권80호

admin | 수, 2021/04/14- 22:17

저자: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ㅣ출판사: 민연ㅣ값 15,000원ㅣ288pageㅣ발행일: 2021.04.15.ㅣISSN 1228-8802ㅣ9771228880200-11

바로가기 >>> [도서구매]  ㅣㅣ

차례

여는 글
○ 역사하는 ‘우리’를 이야기하며 다시 내일을 꿈꾸다 / 조형열

특집 : 역사하는 사람들의 생태보고서, 핏빛 혹은 장밋빛 이야기
○ (좌담) 지역연구자의 삶과 꼬뮨 만들기 / 권명아 정계향 김대성 강화정
○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날들 / 작자미생
○ 굿바이 루카치 – 어느 연구자의 일상 / 허민
○ 2020년, 역사학과 여성사, 이 기울어진 세계의 이야기 / 한봉석
○ (대담) 해외에서 역사하며 살기 : 유럽의 한국사 연구와 교육 / 안종철 이동원
○ (대담) 해외에서 역사하며 살기 : 일본의 한국사 연구와 교육 / 니시무라 나오토 김영진
○ 역사교육, 역사를 매개로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를 통해 민주주의를 몸으로 익히기 / 우현주
○ (인터뷰) 푸른역사의 산증인 박혜숙 대표를 만나다 / 박혜숙 김헌주
○ (좌담) 피해자의 삶이 역사가 되었듯이 활동가의 삶이 역사가 되다-역사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대일과거사 활동가들의 이야기 / 강경란 김명준 김진영 김해슬 이하나 야지마 츠카사 정은주 최상구 김영환

기획 : 구술로 본 전쟁과 일상(2)
○ 난을 피하는 여러 가지 방법 : 한국전쟁기 피난 이야기 / 김수향
○ 오음리에서 사이공까지 : 구술을 통해 본 ‘파월전사’의 참전 과정과 현지 경험 / 류기현

연재 : 온라인으로 만나는 역사(2)
○ 한국전쟁 전후 북한 영화 관련 온라인 자료 소개 / 한상언
○ 8월 14일 기림의 날 개관한 아카이브814 – 일본군‘위안부’ 관련 자료 보기 / 강윤희

인물로 보는 역사
○ 이탈리아어판 코민테른인명사전에 실린 한국인들 ④ 김단야 박헌영 김재봉 / 임경석

리뷰
○ 긴축 정책과 빈부 격차 그리고 차별 : 단지 영국 중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
– 브래디 미카코,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다다서재, 2020 / 백은진

<책소개>

역사하는 ‘우리’를 이야기하며 다시 내일을 꿈꾸다

언젠가는 역사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역사를 이렇게 봐야 한다’, ‘역사적 진실은 이런 것이다’ 등등 역사 이해의 결과물에 대해서 주목할 뿐, 그 말을 만들고 옮기고 말이 현실이 되게끔 노력해온 사람들의 삶과 의식세계를 소홀히 여겨온 것은 아닌가. 역사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들이 발 딛고 있는 환경에 눈을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사람들이 하는 그 일에 대한 의미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나만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기획은 시작되었다.

역사가 하나의 서사 형태를 갖추게 되고,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파되며,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게 되는 데 얼마나 많은 과정이 존재할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 개입할까. 사람마다 각각 자신의 경험이 다르고 역사와 대면하게 되는 계기도 다양하기 때문에, 역사의 생산과 전파 및 실천적 개입 등을 하나의 ‘타임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수많은 시간대들이 중첩되어 있는 실제 상황을 잠시 접어두고 이러한 국면에 참여하는 집단들을 생각나는 대로 짚어보면, 역사 연구자, 역사교사, 종이·음성·시각 매체를 통한 역사프로젝트 기획자, 피해자의 구제와 역사적 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역사단체 활동가 등을 꼽을 수 있겠다.

물론 이들은 항상 동일한 목표와 균등한 영향력을 가진 주체들이 아니다. 근대 이후 정부는 통치권력으로 기능하며, 역사하는 사람들의 행로를 결정하는 ‘슈퍼 갑’이었다. 이와 같은 정부의 힘이 상수로 존재하는 가운데, 때로는 연구하고 쓰는 사람들이 가르쳐야 하는 사람들의 역할을 규정했다. 또한 역사대중화라고 포장한 채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대중의 역사의식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선동가’가 역사하는 사람들 전체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즉 역사하는 여러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얽혀있는 관계는 반드시 역사관으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자신이 속한 위치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역사하는 행위에 대해서 성찰적으로 되짚어보려면, 이들 모든 영역들이 어우러져 문제의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역사하는 사람들 사이의 협업적 관계 구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는 게 이 기획의 첫 번째 의도라면, 두 번째 목표는 각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2021년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지속가능한 생존의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점검해보는 데 있다. 말로는 평화 공영을 내세우며 누군가의 희생 덕에 연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국민적 소속감의 형성에 역사교육을 넘겨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역사의 전파자는 역사를 어떠한 가치가 있는 지식으로 다루고 있는가. 역사 활동가들은 역사의 정치화와 어떻게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그리 가볍지 않으며, 그 무게를 견뎌내기 위한 첫 걸음을 떼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에서 <내일을 여는 역사> 통권 80호 <특집> 제목을 ‘역사하는 사람들의 생태보고서, 핏빛 혹은 장밋빛 이야기’로 정했다. 지난 2020년 11월 무렵부터 편집위원회를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시작했는데, 업무보고서·연차보고서 한 편도 제대로 완성하기 힘든 마당에 생태보고서를 쓴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참신한 제안들을 성사시키지 못한 사례도 여럿이다. 본문에서 밝히듯이 여성사 연구자들의 좌담을 통해 한국근현대사학계의 연구환경과 연구경향을 말해보려 했지만 아쉽게도 기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교육연구소에서 펴낸 ‘역사의식조사’처럼 연구자들이 느끼는 현실을 데이터화 하는 설문 작업도 구체화시켜보고자 했으나 편집위원회가 단기간에 감당할 수 있는 계획은 아니었다.

결국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가급적 많은 말을 담기로 했다. 또한 말을 모으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2020년 12월 개편 호 발행 당시 원고 투고 방식에 한정되지 않은 열린 시도를 하자고 다짐했던 터라, 편집위원이 직접 발로 뛰는 노동집약적 기획이 가능했다. 좌담, 대담, 인터뷰, 기고 청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23명이 참여하여 역사하는 동네의 현상, 이면과 측면을 담은 생태보고서를 만들었다.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편집위원회에 제일 많다는 핑계로, 이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담았다. 일단 지역과 해외라는 공간으로 사람들을 찾아갔다. 지역 연구자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묵직했다. 강화정 편집위원이 중심을 잡고 이끌어간 좌담에 권명아, 정계향, 김대성 세 명의 부산경남지역 역사학/인문학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2021년 대입 입시에서 드러난 지방대학 ‘붕괴’에 대한 단상을 시작으로 지역에서 산다는 것이 자신의 연구에 미치는 영향, 지역이 단일한 공동체가 아니라 오히려 오래된 촘촘한 그물망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곳이라는 점, 수도권 집중화로 식어버린 대지일 수도 있겠으나 새로운 희망을 일구기 위해서 분투하는 사람들의 활동장이라는 점 등을 말한다. 한 참가자의 지적처럼 지역은 언제나 전체 기획의 맨 끝에서 구색 맞추기처럼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생태계의 불균등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맨 먼저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코로나 유행 상황이 발달시킨 비대면 화상회의 방법으로 두 명의 해외 연구자와 대담을 추진했다. 이동원 편집위원은 이탈리아에서 활동중인 안종철 교수와, 김영진 편집위원은 일본의 신진연구자인 니시무라 나오토 조수와 대담을 나눴다. 한국에서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연구환경과 연구주제를 상대화·객관화하기 위한 시도이자, 우리가 대화하고 소통해야 하는 역사하는 사람들의 범위가 한국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고민에 따라 추진되었다.

이 대담을 통해 안종철은 유럽의 고등교육제도와 한국학의 궤적을 설명하면서 한국이 유럽과의 교류 범위를 넓혀갈 것을 제안한다. 특히 유럽에서 한국사/한국학은 여전히 인정투쟁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말이 해외 연구자의 실존과 관련해서 짙게 여운을 남긴다. 한편 니시무라 나오토는 대학원 시절 한국에서의 생활, 한류로 인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 일본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제반 여건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풀어놓은 경험담은 ‘생각보다’ 특수하지 않았다. 일본이니까, 일본인이니까, 뭔가 자극적이고 특별한 얘기가 나올 거라고 기대한 내 편견이 컸던 탓이다. 그는 한국의 누구나 그렇듯이 역사에 관심 없는 대학생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일이 힘든, 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연구자이다. 두 곳의 문화와 시스템의 차이를 인지하면서도 생태계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음으로 편집위원회는 연구자의 신분과 지위에 주목했다. 역사학의 영역에서 아무리 짧게 잡아도 석박사 과정을 졸업하는 데 10년은 훌쩍 넘게 걸린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취득한다고 해도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대학원생노동조합, 비정규교수노동조합 등이 만들어지면서, 연구자로 완성되기 위한 수련의 과정으로만 오랫동안 간주되던 비인권적 처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아졌으나 아직도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역사 연구하는 사람들의 생태계가 안정되려면, 약육강식·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적 세계관이 아닌 공생과 상호부조의 관점이 폭넓게 수용될 필요가 있다.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단체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소속 연구자들이 작자미생이라는 이름으로 2017년 역사학대회 때 발표했던 원고를 일부 수정하여 게재했다. 타교 출신 대학원생에 대한 차별, 학회와 연구소 업무의 전가, 지도교수의 일방적 관계 설정 등의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허민은 어느 비정규직 연구자의 일상을, 학술대회 발표문 마감일 1주일 전부터 학술대회 당일에 이르는 긴장을 바탕으로 촘촘하게 르포 형태로 풀어냈다. 이들의 글이 피해자성을 전시하고 사적 개인을 고발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실을 이해하는 이야기로서, 학문 연구의 영역에 있는 모든 이들이 숙고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지금까지 지역, 해외, 대학원생, 비정규직 연구자처럼 공간과 지위에 따라서 연구 생태계를 살펴보았다면, 한봉석은 여성사에 대한 학계의 연구 지형, 출판 경향을 분석하면서 여성사 연구가 시대가 요청하는 바인 다양한 관계와 개인의 정동에 주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희망을 담았다. 그는 페미니즘 전성시대에 역사학계가 함께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여성사 연구자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주지 못한 환경과 칭찬의 부재로부터 찾는다. 그가 내심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재기 넘치고 열성적인 여성 연구자들을 불안과 위기로 내몬 우리 생태계에 대한 비판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 연구자에 대한 지지를 에둘러 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연구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역사학 전공자는 5,600명 정도이다. 그런데 교사모임 관계자의 전언을 통해 추정해볼 때, 역사교사도 대략 8,000명이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역사교사 역시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역사하는 사람들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인원만이 아니라 실제 수행하는 역할에 있어서도 그렇다. 살아가는 동안 얻게 되는 많은 역사지식이 역사교사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최근에는 미디어의 역사 상품화로 학교 역사교육의 위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 판단된다.

23년차 역사교사 우현주는 역사 공부의 기본 목적이 역사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있다고 말한다. 독서 수업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게끔 하고, 느리더라도 오래가는 공부를 강조한다. 또한 역사가 ‘지금 이 순간’의 과거에 대한 사회적 기억이 결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현재진행형의 관점에서 역사수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상세히 설명한다. 현장의 고민을 담은 역사교사의 생존기를, 다른 분야에서 역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읽어주셨으면 한다.

역사대중화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지만, 여러 매체를 통한 역사프로젝트 역시 역사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대목이다. 연구자와 교육자, 활동가 등이 모두 개입하는 분야이자 상업적 이윤 창출과 맞물려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역사 출판과 방송 출연 등은 연구자들의 사회적 기여의 한 방편으로 생각되었지만, ‘설민석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미디어는 전문연구자를 소외시키며 흥미 위주로 구미에 맞는 ‘국뽕’ 류의 단선적인 역사담론을 재창출하기도 한다.

역사 전문 출판사 푸른역사 박혜숙 대표는 20년 넘게 이 생태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주체이자 목격자이다. 김헌주 편집위원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박혜숙은 푸른역사의 역사대중화 시도, 전문 역사 연구와 역사 출판의 긴장, 역사 출판계를 둘러싼 최근 동향, 출판과 영상매체와의 관계 등 자신의 경험을 솔직담백하게 선보였다. 향후 역사가 어떻게 대중에게 다가설지, 특히 출판뿐만 아니라 다양한 역사프로젝트의 발굴을 위해서도 참고해야 할 자료가 될 것이다.

<특집>의 마지막은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할애했다. 김영환 편집위원이 주선해서 강경란·김명준·김진영·김해슬·이하나·야지마 츠카사·정은주·최상구 등 여덟 명의 대일과거사 활동가가 참가한 좌담은, 활동가들을 조직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출발점이 제각기 다른 ‘고민하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활동가가 된 개인적 경험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들이 활동을 하게 된 동기에서 엿보이듯이 대일과거사는 집단의 이야기면서 수많은 개인의 삶이 켜켜이 쌓여있는 영역임을 확인할 수 있다. 좌담은 대일과거사 활동가들이기 때문에 겪는 공감대를 기초로 진행되었다. 식민지 경험에 따른 반일정서가 운동의 진행과정에서 지지기반이 된다는 점, 또한 일본사회의 변화로부터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경화가 날로 심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새로운 운동을 준비할지 고민이라는 점 등은 대일과거사 활동의 현 상황을 보여준다. 주로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와 연대하면서 과거사청산운동을 전개한 활동가들이기 때문에, ‘네가 유족이냐’는 물음은 다반사로 경험했을 터. 현재 나눔의집 민주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야지마 츠카사의 ‘나눔의집이 할머니의 역사를 팔아왔다’는 비판과, 나눔의집 정상화 이후 일본사회와 연대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싶다는 다짐이 큰 울림을 준다.

이상과 같이 이번 호 <특집>에는 전체 아홉 개의 기획을 담았다. 역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분야를 망라해 이야기를 수집했으나, 돌이켜보면 각 분야 사이의 관계성을 점검하는 데, 그를 통해 역사가 순환되는 전체 생태계를 살펴보는 데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가 부족한 능력으로 제한된 시간에, 지면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다만 여기 흩뿌려놓은 단서들이 핏빛으로 변할지, 장밋빛으로 피어날지 그건 아직 미지수이다. 기왕 사람들에 주목했으니까,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전망도 역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성찰하고 바꿔나가는지 지켜보는 것으로 여운을 남기고자 한다.

한편 <특집> 외에도 여느 호와 마찬가지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읽을거리를 준비했다. <기획>에서는 ‘구술로 본 전쟁과 일상’을 두 번째로 실었다. 김수향과 류기현이 한국전쟁기 피난과 파월전사에 각각 주목했다. <연재>도 지난 호와 마찬가지로 ‘온라인으로 만나는 역사’로 찾아왔다. 한상언은 북한 영화/문화 연구를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온라인 자료 접근 방법을 소개했다. 강윤희는 일본군‘위안부’연구소의 아카이브를 상세히 해설했다. <인물로 보는 역사>에는 임경석의 ‘이탈리아판 코민테른 인명사전’에 실린 한국인에 대한 소개 마지막회를 실었다. 끝으로 <리뷰>에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음미해볼 만한, 영국 중학생들의 교육환경을 다룬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에 대한 백은진의 서평을 담았다. 긴 호흡과 짧은 호흡이 함께 어우러진 글들을 <특집>과 함께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손호철의 발자국]31. 충북 박달재 : ‘친일 문인의 두 얼굴’ – 반야월과 ‘종천(從天) 친일파’ 서정주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굽이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 가슴이 터지도록.

유명한 옛 유행가 ‘울고 넘는 박달재’ 가사다. 박달재는 충북의 충주에서 제천을 잇는 38번 국도를 따라 제천에 거의 다 이르면 있는 고개다. 특히 이 고개는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경상도 청년 박달과 이 고개 아랫마을의 금봉이가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에 대한 전설을 가진 곳으로, 인기 작사가 반야월이 이 전설을 노래가사로 만들었다.

이 노래 덕에 이 고개가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고개 이름 박달재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고개는 한 때는 많은 트럭들의 정체가 일어났던 곳이지만, 이제 박달재터널이 생긴 뒤 통행량이 한적해졌다.

이제는 거의 버려진 이곳이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인 이유는 반야월 때문이다. 그는 작곡가 박시춘, 가수 이난영과 함께 ‘한국 가요계의 3대 보물’이라고 불린 탁월한 작사가로, ‘단장의 미아리고개’, ‘소양강 처녀’, ‘산장의 여인’ 등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히트곡을 작사했고 그런 만큼 가장 많은 노래비를 가진 작사가로 알려졌다. 이 곳 박달재에도 박달과 금봉이의 사랑을 형상화한 커다란 조각 동상이외에 ‘박달재 노래비’라는 그의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주목할 것은 이 노래비 옆에 세워져 있는 작은 팻말이다. 2016년 제천의병유족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제천단양지회가 설치한 하얀 이 팻말은 ‘반야월의 일제 하 협력 행위’라는 제목 아래 그의 친일 행각을 고발하고 있다. 나는 이 고개를 넘어가다 우연히 이를 발견했을 때 받았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땅에 이 같은 친일 고발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친일군인 김백일의 ‘친일행위처단비’는 거제 포로수용소에 있는 김백일 동상 옆에 세워져 있다).

나아가자 결전이다. 일어나거라 / (…) / 민족의 진군이다 총력전이 / 피 뛰는 일억일심 함성을 쳐라 / 싸움터 먼저 나간 황군 장병아 / 총후는 튼튼하다 걱정 마시오 / 올려라 히노마루 빛나는 국기 (…) / 승리다 대일본은 만세 만만세.

그는 이 같은 가사로 ‘일억일심’을 작사하고 직접 노래 부르는 등 친일 행각을 벌였고,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으며, 사망 2년 전인 2010년 국회 간담회에서 일제 지배 하의 친일 행각에 대해 사과했다는 사실을 자세히 기술해 놓았다.

▲ 박달재에 있는 작사가 반야월의 ‘박달재노래비’ 옆에는 그의 친일 행각을 고발하는 표시판이 설치되어 있다. ⓒ손호철
▲ 가수 반야월의 일제 하 협력 행위 고발판 ⓒ손호철

해방에도 불구하고 친일파가 계속 권력을 잡으면서 친일 문제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의 금기로 남아왔다. 임종국 교수가 1966년 발표한 역사적인 <친일문학론>을 발표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지만, 그 이후에도 이 문제는 최근까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등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1991년 임종국의 뜻을 살려 민족문제연구소를 만들어 친일파에 대한 조사연구 작업을 벌여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정부 차원에서도 2005년 뒤늦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이에 대한 조사를 벌여 제1차 106명, 제2차 195명, 제3차 705명의 친일파 명단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일왕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장교를 지원했던 박정희는 제외됐다. 이들 중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한 사람으로 유명한 친일 고문 경찰 노덕술 등 225명은 정부로부터 훈장 등 서훈을 받았는데, 2019년 현재 25명에 대한 서훈이 취소됐고 노덕술 등 200명에 대한 서훈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 천안에 설치되어 있는 친일문학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의 흉상 ⓒ손호철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겨울 설경으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한 곳이 전북 고창의 선운사다. 선운사에서 바다 쪽으로 올라가 기막힌 전망의 언덕 위에 폐교를 잘 정비한 건물 옥상에 서서 바다가 내려다보면, 누구나 다 아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떠오른다. 이곳이 서정주 문학관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 시인’, ‘우리말 시인 중 가장 큰 시인’, ‘시의 정부(政府)’라는 칭송을 받지만, 친일인명사전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가 발표한 친일파 명단에도 오른 대표적인 친일 문인이다. 그는 그 이후에도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을 칭송했으며, 그래도 솔직하게 사과를 한 반야월과 달리 기이한 변명을 늘어놓는 등 ‘우리말 시인 중 가장 큰 곡학아세의 큰 어른’이었다. 아니, ‘학문을 왜곡해 아부를 한 것’이 아니라 ‘글을 왜곡해 아부를 한 것’이니 곡문아세(曲文阿世)의 큰 어른’이다.

우리의 몸뚱이를 어디에다가 던져야 할 것인가?

(…)

인제 겨우 스무 살인 벗아, 나도 너처럼 하고 싶구나.

나도 총을 메고 머언 남방과 북방을

포연과 탄우를 뚫고 가보고 싶구나.

그는 ‘우리말의 달인’답게 뛰어난 문장력으로 젊은이들에게 징병을 권유했다. 가미가제까지 찬양한 서정주는 민주화 이후인 1990년대에도 “국민총동원령의 강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친일 문학을 썼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고 “이것이 하늘이 이 겨레에게 주는 팔자다”라고 생각해, 이 같은 하늘의 뜻을 따른 ‘종천(從天) 친일파’라는 기이한 변명을 펼쳤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친일 행각을 솔직히 사과한 반야월은 최소한의 양심은 가진 것이다.

서정주의 ‘곡문아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광주 학살의 주범 전두환에게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라는 생일 축시를 바치기도 했다. 이렇게 찬양한 것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해 서정주는 “하도 깡패같이 굴어서 좋은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을 안 죽일 것 같아서 그랬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그의 ‘후학’들도 마찬가지다. 그의 전집을 발간하면서 “생전에 시집으로 발표한 작품만 수록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웃기는 변명 아래 그의 친일시들을 뺀 것이다.

▲ 전북 고창에 있는 미당 서정주 문학관 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서정주의 흉상 ⓒ손호철
▲ 서정주문학관에 쓰여 있는 서정주의 업적에 대한 설명 ⓒ손호철

나는 친일과 죽고 죽이는 이념 대립을 강요당했던 일제와 해방정국에 청년으로 살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일개 필부가 아니라 지도자나 지식인은 달라야 한다.

뤼시엥 골드만이란 프랑스의 철학자는, 한 인간은 연구할 때 그 시대가 불가피하게 한계지우는 ‘한계 의식’이 있고 그 시대에도 가능했던 ‘가능 의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에 이광수가 친일 한 것을 평가할 때, 순수 가정으로 모두가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면 친일은 ‘한계 의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이나 장준하 등 반일 운동을 한 사람들이 많다면, 그것은 그 시대에도 가능한 ‘가능 의식’이지 한계 의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인훈의 소설 중 <서유기>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한국사 주요 인물을 만나는데, 이광수를 만나 친일 행각을 다그치자 이광수는 흐느끼며 “나에게 단파 라듸오만 있었다면” 하며 흐느낀다. ‘단파 라듸오’가 있어 미국이 내보내는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면 미국이 이기고 있는 것을 알고 친일하지 않고 버티다가 민족적 영웅이 됐을 텐데, ‘단파 라듸오’가 없어 일본의 선전처럼 일본이 이기는 줄 알고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단파 라디오를 생각하며 고창을 떠났다.

<2021-05-17> 프레시안

☞ 기사원문: ‘친일’ 반야월‧서정주, 같지만 달랐다

월, 2021/05/17- 19:52
0
0

[정철승 광복회 고문 변호사]

가정의 달 5월에 가장 흔하게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누구나 귀에 익을 정겹고 뭉클한 선율의 이 노래의 제목은 “어머니의 마음”인데, 현제명 서울대 음대 초대학장과 더불어 일제강점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친일반역행위를 일삼았던 이흥렬 숙명여대 음대학장이 작곡한 노래다.

일제강점기에 음악인들이 어떻게 친일반민족행위를 했을까? 음악인들은 조선음악협회, 경성후생실내악단, 대화악단 등 친일활동을 위한 음악인단체를 조직하여 일본국민가요를 조선에 보급하여 일제의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 정책을 도왔고, 각종 음악회를 개최하여 모금한 수익금을 일제의 전쟁군자금으로 헌납하였으며, 전쟁물자 생산을 위한 공장, 광산 등을 돌며 위문음악공연을 함으로써 생산을 독려하였을 뿐 아니라, 널리 이름이 알려진 자들은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국민과 학생들에게 징용 및 학병 지원을 독려하였고, 구로야 샤이민(현제명), 나오키 오키이찌오(이흥렬), 모리카와 준(홍난파) 등 일제의 창씨개명에 앞장서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정책에 협력하였다.

위와 같은 각종 친일반민족행각을 가장 적극적 주도적으로 자행했던 음악계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현재명과 이흥렬인데, 이들은 해방 후에는 자신들의 미국 유학경력 등을 최대한 이용해서 친미반공으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변신해서 서울대 음대학장, 숙대 음대학장, 예술원 종신회원, 대통령 문화훈장 등 음악계의 행정가, 교육자, 원로, 실력자로서 죽을 때까지 권위와 명예를 누렸고, 현재 음악계는 이들이 배출한 제자나 후진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어떠한 비판도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

현제명과 이흥렬은 2001년부터 8년 동안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전문연구자 150여 명이 선정한 일제 강점기 친일반민족행위자 4389명에 포함되어 2009년 11월 8일에 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고, 특히 현제명은 2009년 정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705명에 포함되었음에도 이들의 후진들이 국내 문화예술계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명성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고 하는데, 그 예로 현재 서울대 음대건물에는 현제명의 흉상이 있다.

이들은 이처럼 해방 후 감쪽같이 변신하여 음악계 명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수많은 학교, 기관으로부터 교가 등을 작곡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모양인데, 그 결과 전국 138개 학교들의 교가가 이흥렬 작곡이고, 14개 학교 교가가 현제명 작곡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학인 서울대학교의 교가부터가 현제명 작곡인데 그가 2009년 정부기관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로부터 7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발표된 지 1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서울대에서는 이를 바꾸자는 목소리조차 없다.

참고로, 위와 같이 친일 음악인이 작곡한 교가를 갖고 있는 대학들은 서울대 외에도 경북대, 성균관대, 국민대, 경희대, 홍익대, 동국대, 한국외대, 단국대, 인하대, 숭실대 등 전국 29개 학교에 이른다는 언론보도(YTN)가 있다.

심지어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수도 없이 불러봤을 군가 “진짜 사나이”도 위 대표적 친일파 이흥렬의 작곡이다. 이흥렬은 “진짜 사나이”를 작곡하면서 부끄럽지 않았을까?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 지키는 영광에 살았다..”라는 가사의 군가를 작곡하면서 말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파시즘 세력으로부터 식민지 또는 점령지에서 해방된 민족ㆍ국가들은 새나라를 재건하는 작업을“민족을 배반하고 국민을 학대한 자들”을 처단하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이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특별법을 제정하고 재판소 등 처벌기관을 설치한 나라는 22개국이고 이와 관련하여 제정한 법률은 총 63개에 이르는데, 아시아에서는 한국ㆍ중국ㆍ일본ㆍ북한ㆍ필리핀 등 5개국이고, 유럽은 독일ㆍ프랑스ㆍ오스트리아ㆍ네덜란드ㆍ벨기에ㆍ덴마크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ㆍ노르웨이ㆍ그리스ㆍ이탈리아ㆍ폴란드ㆍ체코슬로바키아ㆍ헝가리ㆍ유고슬라비아ㆍ에스토니아ㆍ소련 등 17개 국가다.

위와 같은 반역자 처벌의 정신은 벨기에 정부가 1944년 5월 6일 공포한 <전시에 국가의 국외 안보에 반해 저지른 범죄로 인해 국적과 일정한 권리를 박탈하고 정지하는 사안에 관한 명령>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조국을 배신한 자는 그가 절대로 다시 해를 끼치기 불가능하도록 완전히 그리고 신속히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도 1948년 제헌국회에서 친일반역자들을 단죄하기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제정하고, 반민법을 집행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까지 구성하였으나, 1949년 6월 친일파 세력의 반격으로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친일반역자 단죄는 실패하였고 단 한 명의 반역자도 처벌하지 못한 세계에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반민특위가 와해되어 친일반역세력의 단죄에서 실패한 지 72년이 되는 해다. 이미 일제강점기에 일제와 야합하여 조국을 배반하고 동족을 해친 친일반역자들 중 생존한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반역자들에 대한 단죄는 미완의 역사로 묻어두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자들이 어떤 반민족행위를 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함으로써 그런 자들이 죽은 후까지 명예를 누리는 일만은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오늘날 가능한 최소한의 과거사 청산이 아닐까 싶다.

정철승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법학과 ▷법무법인 THE FIRM 대표변호사 ▷광복회 고문변호사 ▷한국입법학회 회장

<2021-05-17> 아주경제

☞기사원문: [정철승 칼럼] 음악계의 친일반역자들

목, 2021/05/20- 22:22
0
0

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5/22- 00:50
0
0

김동우 작가 사진 52점 전시 해외 독립운동가 후손, 독립운동 사적지 담겨…온라인 또는 전화로 사전 예약 후 관람 가능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강북구(구청장 박겸수)가 8월18일까지 근현대사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사진전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를 개최한다.

근현대사기념관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사진전은 쿠바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김동우 작가가 촬영한 52점의 사진이 준비됐다.

김 작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인터뷰해 왔다.

독립운동가들은 먼 타국의 땅에서 굶주림, 차별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한인교회, 한글학교 등을 세워 정체성을 유지하고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서도 자금 모집 등 활동을 해 왔다.

전시회에서는 쿠바 마나티 항구와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 등 한인 이주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와 3·1운동 2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던 미국의 타운홀,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인도 레드포트 훈련지, 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 열사의 묘적지 등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 볼 수 있다. 쿠바와 멕시코,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전시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관람 희망자는 근현대사기념관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예약하거나 전화신청 후 이용할 수 있다. 비용은 무료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이번 전시회가 세계 곳곳에서 광복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했던 숨은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고 기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관심 있는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2021-05-21> 아시아경제

☞기사원문: 강북구 ‘쿠바 이민 100주년 기념 특별사진전’ 개최

화, 2021/05/25- 02:08
0
0

‘재판거래’ 의혹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이 박근혜 정권 당시 ‘재판거래’로 지연돼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씨와 피해자 고(故) 김규수씨의 배우자가 최근 국가를 상대로 1인당 1억원씩 총 2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고 27일 밝혔다.

앞서 이씨와 김씨를 비롯한 4명의 강제동원 피해자는 2005년 2월 신일본제철(현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당시 1·2심에서는 패소했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고 피해자들의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도 2013년 대법원 판단대로 일본제철이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사실상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이 없는 재상고심에는 5년이란 시간이 소요됐고, 원고 4명 중 이씨를 제외한 3명은 세상을 떠났다. 대법원은 2018년 10월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 수사에서 재판 지연이 박근혜 정권과 사법부의 재판거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정부 인사들과 강제동원 소송 재상고심 결과를 ‘피해자 패소’로 바꾸거나 진행을 미루는 방안을 논의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이에 이씨 등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소장에서 “재판거래 피해자들은 아직도 사건의 진상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며 “손해를 배상받지도 책임 있는 주체로부터 어떤 공식적 사과나 의사 표시를 받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권력 행사 중 가장 높은 독립성을 가져야 할 재판이 부정됐고 불법이었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어떤 절차로도 회복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보도자료를 내 “재판거래 혐의로 기소된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소수이며, 1심 판결도 선고되지 않았다”며 “불법행위자 각각을 피고로 삼기보다 재판 과정에서 이들의 불법행위를 입증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2021-05-26> 연합뉴스 

☞기사원문: “재판거래로 피해”…日강제동원 피해자들 국가 상대 소송

※관련기사 

KBS: 강제징용 피해자, ‘불법 재판거래’ 국가배상 소송 제기

목, 2021/05/27- 21:49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