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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도-태평양 개념이라는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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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도-태평양 개념이라는 패착

admin | 수, 2021/03/31- 19:57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중국 지도자 시진핑과의 첫 전화 통화에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보존하는 것”이 그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모디 인도총리와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는 한편에, 문재인 한국 대통령에게는 한미동맹을 “안보와 번영의 린치핀”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인도-태평양이라는 주제에 대한 백악관의 대화 내용에 따르면 대통령은 일본의 스가 총리와 전화를 통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의 초석”으로서 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확인했습니다.

10년 전만해도 “인도-태평양”이라는 표현은 대부분의 외교정책 전문가들의 머리를 긁적거리게 만들었을 것입니다만, 오늘 현재 미국의 외교정책을 재편하고 있는 것은 워싱턴의 관습적 용어뿐만 아니라, 이미 널리 받아들여진 아시아 전략에 대한 재개념화입니다.

집권초기에 Biden은 Kurt Campbell을 아시아의 짜르로 임명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pivot to Asia””를 설계한 그는 이제 백악관의 국가안보위원회에서 새로 창설된 “인도-태평양 전략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았습니다.

얼마 전만해도 태평양 사령관이었던 현재의 인도-태평양 사령관 필 데이비슨 제독은 중국군의 급속한 현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펜타곤이 동북 아시아와 괌에 집중했던 역사적 관점에서 인도-태평양이라는 개념으로 신속히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 주 Biden대통령이 호주, 인도, 일본과의 느슨한 연합인 Quad의 지도자 정상회담을 결정하였다고 백악관의 대변인 Jen Psaki가 확인하였습니다.

인도-태평양이라는 낯선 용어는 외교정책의 진부한 표현이 진화된 것으로 엄격한 정책토론이나 신중한 고려의 산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워싱턴의 국가안보회의는 비현실적인 기대와 검증되지 않은 가정으로 가득 찬 트럼프 시대의 유물을 무심코 수용했습니다.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이라는 목표는 고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미국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인도-태평양의 개념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도양 지역이 아시아에 포함되는 것으로 지역의 의미를 확장하면서, 이 지역이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과 대항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지역의 개념을 개방하면, 미국이 방어하기 어려운 공약을 위해 미국이 개입하고 군사적인 과잉의 확장을 조장하면서, 수십 년 동안 힘들게 얻은 지역의 평화가 미국의 약속과 행동에 훨씬 직접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아시아의 주요 지역에서 미국정책 입안자의 관심을 분산시킵니다.

동아시아와 태평양은 보다 확장된 인도-태평양의 일부가 아니라, 미국의 아시아 영향력에 대한 핵심 지역입니다. 내용이 없는 지정학적 유행어를 만들기 위해, 이들 지역이 지닌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엄청난 실수입니다.

 

인도-태평양 개념의 시초 ORIGINS OF THE INDO-PACIFIC

인도-태평양이라는 현재적인 개념의 출발은 일본의 전직총리 아베 신조 (安倍晋三)가 2007년 인도에서 행한 연설에서 관찰되는데 그는 당시에 “태평양과 인도양은 이제 자유와 번영의 바다로서 역동적인 결합을 일으키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더 넓은 아시아’라는 표현이 지리적 경계를 허물면서 뚜렷한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연설이 끝난 후 인도-태평양이라는 말은 일본, 인도, 그리고 결국 호주 외교정책의 집단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물론 인도양은 항시적으로 이들 세 나라에게 중요했습니다. 호주와 인도가 인도양을 끼고 있고, 21세기 초부터 일본 전략가들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인도와 협력하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추진해 왔습니다. 아시아를 인도-태평양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이들 세 나라 모두의 이익에 기여하여 왔습니다.

경쟁에만 집착하는 미국 국방부의 지역전략국은 이미 2002 년부터 아시아에 대한 재정립 전략의 일환으로 인도양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인도- 태평양에 대한 언급이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시절에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국방전략가들은 인도양 일대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떠오르는 중국에 대하여 균형을 잡아줄 지역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에 대한 광범위한 아이디어는 Robert Kaplan의 지정학적 여행기인 “Monsoon-몬순”이 2010 년에 출간된 이후, 미국 정책 입안자들의 구상 속에 자리잡게 되었고, 인도양이 21세기의 전략적 게임에 중심 무대가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Kaplan의 예언은 자기성취적이었으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에야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워싱턴의 집착이 시작되었으나, 이는 결코 가공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Kaplan은 태평양과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실제의 모습들을 확인했습니다 – 에너지의 수송로, 구찌 핸드백과 핸드폰을 실은 화물 콘테이너들, 이주이민자들의 행렬, 지역내의 테러리즘, 중국과 미국의 경쟁 속에 눈치를 보는 약소국가들에 대한 중국과 인도 간의 영향력 경쟁 등이 현실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인도-태평양과 인도양이 트럼프 시대에는 이들 지역에 속해 있는 약소국가들이 미중 간의 제로섬 경쟁에서 누구의 편을 서는지 식별하는 표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개념은 참신함에서 진부함으로 빠르게 퇴색하여, 궁극적으로 아시아에 대한 정책을 개선하기보다는 엉망으로 만드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워싱턴에서는 아시아를 대신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이 중국과의 균형을 맞추는 게임으로만 중요하게 받아들입니다.

트럼프 시대에는 인도양 지역과 인도양 지역의 국가들이 미중 간에 누구에게 협조하는지 식별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였습니다. 실제로 2019년까지는 ‘인도-태평양’이 아닌 ‘아시아’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들 국가군들이 중국에 의존(굴복)하고 있다는 것을 일부러 인식할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대한 추가적인 압력을 가하고 이를 강화하려 했기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에 대하여 강제적으로 광범위한 방식으로 접근하였습니다. 인도양 지역에서 중국에게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일에 몰두한 트럼프 시절의 책임자들은 중국의 관심과 역할을 다른 국가들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현재까지도 Biden 행정부는 상기의 전략개념을 깊은 생각도 없이 도매금으로 수용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안타깝게도 트럼프와 바이든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행정부는 중국과의 “거대한 게임”에서 활동의 지역을 확장하면서 따라오는 의미와 위험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시아 평화의 위협 ERASING THE ASIAN PEACE

분석적으로 보자면, 인도-태평양을 하나의 지역으로 묶는 가장 큰 문제는 1979년 이후 전쟁이 발발하지 않은 동아시아를 이에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아시아 평화”는 여러 요인들이 결합된 성과물로 미군의 지역주둔과 동맹관계, 중국과의 데탕뜨, 경제적 상호의존성과 지역 규범 및 다자주의적 구도, 일부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확산 등을 열거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지역과 태평양의 평화와 배경은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 집중에서 이루어져 왔으나,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이러한 역사적 안정의 모습 대부분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번창하고, 군사력이 집결되어 있으며,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에서 전쟁을 예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그러나 남아시아를 동아시아와 함께 묶어 그룹화함으로써 인도-태평양은 아시아의 평화를 어렵게 합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지난 반세기 동안 반복적으로 갈등을 겪어 왔으며, 이는 남아시아의 정치가 동아시아의 정치지형과 궁합이 맞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서로 다른 게임입니다.

워싱턴은 단일한 메가 버전의 렌즈를 통해 모든 것을 애매하게 바라보며 오로지 메가적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구체적인 현실에 상응하는 통찰력과 그에 따라 정책을 교정하는 능력을 잃을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국가체계는 자신들이 제대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을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에, 인도-태평양이라는 지역개념의 공식화는 아시아라는 평화지역을 위험한 사각지대로 빠져들게 합니다.

그러나 묵살된 아시아의 평화만이 미국이 아시아에 대한 개념화를 확장하면서 마주치는 유일한 위험은 아닙니다. 미국은 인도양 지역에서 군사력을 과도하게 확장할 위험이 있습니다.

워싱턴은 동아시아와 태평양에서 많은 이익을 누리고 있으며 수많은 이해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인도-태평양 사령부가 본부를 두고 있는 하와이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조약을 맺은 5개의 동맹국들과 괌이라는 미국 영토가 있습니다. 자유연합이라는 협약을 통해 미국은 미크로네시아 연방, 마샬 군도 및 팔라우의 안보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을 유지하고 모든 선박의 입항 및 항구 접근을 통제합니다.

동아시아에서만 80,000 명 이상의 미군 주둔과 수십 개의 군사 시설이 있고 이들의 유지를 뒷받침하는 동맹과 약속이 있기에, 미국은 동아시아와 태평양에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인도양 지역에서 전쟁을 치르거나 강압적인 외교를 원할 경우, 지역국가들로부터 신뢰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인도양 지역에는 동맹국이나 미군의 주군지가 없고 아시아의 다른 지역보다 기지와 항구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기 때문에 미군은 대만해협이 아닌 다른 곳보다 인도양에서 군사력을 행사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인도양 지역에서 미국의 위협과 약속을 이행하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 실시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미국방부는 일반적으로 전략개념보다는 많은 무기와 많은 자금으로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인도양 지역에서 미국의 미약한 군사적 존재는 그저 채워질 수 있는 격차가 아닙니다. 아시아의 주요 지역에 비해 인도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이익은 상대적으로 왜소합니다.

미국이 갑작스런 전쟁 발발에 대비해야 한다면 인도양에서 해군의 존재를 확대하는 것이 합리적 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와 중국 간의 주요 분쟁은 히말라야 부근에서 벌어집니다. 또한 미국의 이익과는 무관한 분쟁입니다. 그리고 미군에게 포위되고 있다고 심각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중국의 대응이 결코 수동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인도양에서 전쟁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존재하지도 않는 전선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력의 투입이 아니라, 정치적 억지력입니다. 이 지역에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국민들의 세금만 축내는 짓입니다.

인도양에서 중국을 교묘하게 분산시키고 불이익을 주려고 의도할수록, 미국 역시 분산되고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커집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아시아에서 굳건한 동맹과 논란의 여지가 없는 지역의 안정질서를 물려 받았다면, 안보를 위한 새로운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해외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지난 4년 동안 여러 미국 동맹국들이 미국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으며, 중국의 대만압력 강화에서 북한의 핵능력 증강에 이르기까지 긴급한 지역 문제의 목록은 점점 더 길어져 왔습니다. 최근 여론조사도 보듯이,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기후 변화, 경제적 불평등, COVID-19 전염병으로부터의 사회 회복에 대해 노력을 집중하면서, 지역내의 파워게임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않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Biden행정부는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실익이 없는 지역의 개념적인 확장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저비용으로 균형잡기 BALANCING ON THE CHEAP

상기 내용은 인도양 지역을 무시한 주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지역이 미국에게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고 다른 곳들이 비교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저비용과 저위험 이라는 방식의 접근대응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Quad는 기대치가 현실과 일치하는 범위 내에서만 이니셔티브를 취할 자격이 있습니다. 최근 히말라야에서 중국과의 전투에서 인도에 정보를 제공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미국관리들이 정확한 정보가 분쟁을 억제할 것이라고 믿을 이유가 있다고 가정할 때 취하는 합리적인 움직임입니다.

미국은 또한 이 지역에서 캐나다, 프랑스, ​​영국의 참여를 환영할 근거가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방식의 공통점은 저비용으로 균형을 이룰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게 지역안보에 대해 큰 책임을 분담시키는 방식입니다.

미국은 지역연합군을 지휘하는 방식도 아니며, “자유 세계”를 이끈다며 인도양의 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변의 전선국가들에 대한 부담을 대신에 짊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실행에 대한 부담없이 상호보완적으로 인도양의 안정에 기여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Biden의 백악관 안보보좌관인 Jake Sullivan은 “우리가 외교정책과 국가안보에서 수행하는 모든 사항은 궁극적으로 미국시민들의 가정에 미치는 기여도에 따라 측정되어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양에 군사력을 증강하고 동아시아에 집중된 관심을 분산시키는 것은 그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Indo-Pacific라는 개념은 때때로 유효한 분석틀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함께 횡단해야 하기 때문에, 인도양은 일본과 호주와 같은 미국 동맹국들에게 지리적으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동맹의 지리적 이점은 미국의 지리적 이익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워싱턴은 위협과 이익 및 역량에 대한 인식을 왜곡시키는 자신의 오만과 과잉대응 그리고 잘못된 집단사고를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상황인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때로는 사소한 것일 수 있지만 상황에 대한 구상의 방식은 매우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인도-태평양의 경우, 인도양을 동아시아와 이해관계가 동등하게 판단하는 구상 때문에 미국 자신에게 재앙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출처 : Foreign Affairs on 2021-03-18.

Van Jackson

캐나다의 아시아태평양 재단의 저명한 연구원이자 뉴질랜드의 웰링턴 빅토리아 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 미국 신안보센터New Amrerican Security Center의 겸임 선임연구원으로 전략센터의 국방관련 전략연구를 진행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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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이 왜 국회에 존재하는지를 아는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당신은 국회도서관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국회도서관이 왜 존재하고 있으며, 원래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사실 국회도서관이 무슨 목적으로 국회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기관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국회도서관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국회의원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국회 직원, 심지어 국회도서관 직원 자신들조차도 거의 생각해본 적도 없고 또 아무런 인식도 관심조차 없다.

 

국회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고 읽는 그런 곳이 아니다

 국회도서관이 과연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무슨 업무를 수행하는 곳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 ‘국회도서관’이라는 명칭에는 왜 ‘도서관’ 앞에 ‘국회’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며, 이렇게 ‘국회’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고 한다면 (2) 과연 ‘국회’와 관련하여 어떠한 임무를 그 특성으로 하는 도서관인가가 분명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회도서관은 도서의 수집, 정리, 보존 업무를 위주로 하는 일반 도서관이 아니다. 지금과 같이 일반 사람들이 들어가 책을 보고 자료를 찾는 그런 도서관이어서는 안 된다. 국회도서관이란 어디까지나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국회 내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국회’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영국 하원도서관의 『의회도서관을 위한 가이드』에는 “의회도서관은 입법부의 의원 및 증가하고 있는 의원의 보좌관이라는 특정하게 한정된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국회도서관은 과연 이러한 존재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세상에 이런 의회도서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의회조사처의 역사를 살펴보면, 1900년대 초에 의회도서관 직원의 능력만으로는 대규모 연구기관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에 봉착했기 때문에 도서관 내에 입법정보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의회조사처는 처음에 의회도서관의 6개 부서 중 하나의 기구로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오히려 의회도서관 전체보다도 질적인 측면에서 훨씬 중요한 부서로 발전하였고, 오히려 의회도서관이 의회조사처의 업무를 지원하는 거대한 정보 저장소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세계 의회기구에서 해외정보 조사 업무는 모두 ‘의회조사처’ 기구에 소속되어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독일, 영국 의회에서는 외교안보와 국제관계를 담당하는 ‘조사처’의 부서에서 수행하고 있다. 일본 역시 입법고사국의 해외정보조사실에서 수행하고 있다.

사실 우리 국회 입법조사처의 직무 범위에도 ‘외국의 입법동향 분석 및 정보의 제공’(입법조사처법 제3조 5항)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도 해외정보 조사 업무는 여전히 국회도서관에 두고 있어 전체 입법지원 업무가 효율적으로 수행되지 못한 채 중첩되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아니 사실을 그대로 밝히자면, 국회도서관 내에 의회정보실과 법률정보실에 관련 석박사급 인력을 유지하면서 오직 그들을 활용해 국회도서관의 조직 유지 및 확대만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회도서관 내 전문 인력에게 승진의 기회나 계장 및 과장 등 간부의 길은 철저히 봉쇄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의회 기구에서 ‘조사처’ 조직이 도서관과 별도로 분리된 프랑스 의회도서관은 직원수가 29명, 독일은 91명에 지나지 않는다. ‘조사처’가 통합되어 있는 영국의 경우에는 도서관 직원이 총 226명인데, 그 중 조사실에 82명이 배치되어 있다. 즉, ‘조사처’ 조직이 분리된 의회도서관은 기본적으로 100명 규모를 넘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일본과 미국의 경우에는 의회도서관이 국립중앙도서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는 우리의 경우와 전혀 단순 비교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현재 우리나라 국회도서관의 정원은 300명이 훨씬 넘는다. 이미 입법조사처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순수 도서관 기능’만을 수행하는 데 현재의 인력이 적정규모인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뒤바뀐 국회도서관의회도서관이란 사서가 지휘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회도서관의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은 거의 사서(司書)로 구성되어 있다. 국회도서관의 ‘의회정보실장’이나 ‘법률정보실장’이라 하면, 일반 사람들은 대단한 의회전문가 혹은 법률전문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직책들은 사서직 혹은 행정직이 담당하고 있다. 조직 구성에 있어서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조직 운용의 원칙을 지키고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그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배치한다는 뜻이다.

의회도서관이란 사서가 독점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 독일 의회도서관은 일반 사서와 레퍼런스(입법지원 담당) 사서로 구성되는데 레퍼런스 담당 사서는 연구직으로서 일반 사서의 상위에 있다. 또 일본 국회도서관 입법고사국의 전문조사원의 대우는 행정부 1급에 준해왔다.

한편 사서에 관한 공무원 직제도 미국에서 일반 사서는 GS-7등급(GS; General Schedule, 미국 공무원은 GS-1등급부터 GS-15등급까지 분류되어 있다. GS의 숫자가 클수록 고위직이다)이고 전문성과 경력에 의하여 GS-9등급부터 GS-12등급으로 분류된다(그 이상의 등급도 가능은 하다). 이에 비하여 미국 의회도서관의 의회조사처 수석 연구원의 경우는 GS-18등급까지 승진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100에서 1016까지 순차적으로 구분된 공직 분류지수 중(숫자가 높을수록 직위가 높다) 일반직 사서(주제전문 사서 포함)의 지수는 204에서 779에 속해 있다. 여기에서 780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3급에 해당하고, 결국 일반직 사서는 3급 이상의 간부직에 임용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국회도서관은 본래의 존재 이유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본말은 전도되고, 그 위상은 뒤바뀐 채 왜곡되었다. 감시가 결여되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이제 좀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본래의 설치 목적에 부합하는, 국회도서관다운 국회도서관으로서의 위상이 복원되어야 한다.

화, 2020/06/0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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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 국민을 걱정했지만, 전 국민은 그를 걱정했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을 맞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시민들은 코로나19 대응에서 가장 신뢰하는 기관으로 질병관리본부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정 청장의 머리카락은 점점 더 희끗희끗해져 갔고 얼굴은 까칠해졌다. 첫 브리핑 때 그는 깔끔한 재킷을 입었지만 이내 노란색 민방위복으로 바뀌었다.

정 청장은 코로나19 환자가 처음으로 국내에 발생한 1월19일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대개 오전 7시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했다. 숙소는 질병관리청 옆 관사였다. 186일을 연달아 일한 뒤 7월24일 오후부터 25일까지 처음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그러나 다소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싶었던 코로나19는 8월 들어 또 다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세가 이어졌다. “5월 연휴로부터 촉발된 2차 유행이 진행되고 있다”며 경고한 정 청장의 말대로였다.

시민들은 다시 정 청장만 바라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 독립하면서 정 청장의 어깨도 더 무거워졌다. 정 청장은 취임사에서 “아직 우리는 태풍이 부는 바다 한가운데 있지만 질병관리청이라는 새로운 배의 선장이자 또 한명의 선원으로서 저는 여러분 모두와 끝까지 함께 이 항해를 마치는 동료가 되겠다”고 밝혔다.

 

메르스 때문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못 볼 뻔

정 청장은 1965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전남여고, 서울대 의대를 거쳐 서울대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의사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갈 수도 있었지만 정 청장은 공공의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작은 1994년 경기 양주시의 보건소였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그는 전염병 신고 기준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1998년에는 질병관리본부의 전신인 국립보건원에 연구관으로 특채되면서 공직에 들어섰다.

2006년부터는 보건복지부로 옮겨 혈액장기팀장을 맡았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당시 노연홍 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장(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삼고초려’ 끝에 데려왔다고 한다. 정 청장은 처음에 연구원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연구원에서 복지부로 넘어와 행정을 하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정 청장은 반대였다. 막상 자리를 맡은 뒤 업무 처리 능력은 탁월했다. 노 전 수석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정 청장이 업무를 맡은 이후 “대형 혈액사고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2009년에는 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을 맡아 신종플루 대응에 참여했다. 본격적으로 감염병 업무를 맡기 시작한 셈이다. 2014년부터는 다시 질병관리본부로 돌아왔다. 2015년에는 질병예방센터장을 맡았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는 정부 대책본부 현장점검반장으로서 역학조사 과정을 지휘했다.

메르스는 정 청장에게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16년 감사원은 메르스 방역 실패의 책임을 물어 보건의료 분야 공무원 9명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정 청장은 이때 정직 처분을 받았다가 나중에 감봉으로 한 단계 낮은 징계를 받았다. 과도한 징계 처분에 공직사회를 떠난 보건·역학 전문가들도 있었다. 정 청장 역시 자리를 떠났다면 지금의 그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정 청장을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에 임명했다. 당시 국장급이었던 정 청장을 차관급인 본부장에 임명한 것은 2단계를 뛰어넘는 파격 인사였다. 정 청장은 본부장으로 임명된 이후 역학조사관 충원, 진단 검사 및 동선 추적, 위기단계별 전략 등 신종 감염병 대응 전략을 착착 진행했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정 청장의 준비는 빛을 발했다.

전문가들도 정 청장의 능력에 신뢰감을 표한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을 제안 받은 정 청장이 자신에게 “너무 책임이 큰 자리라 두렵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그때 놀랐습니다. 남자 공무원은 야망이 앞서서, 일단 수락하고 카리스마로 휘어잡는데… 이분은 책임질 생각부터 하시는구나. 정 본부장 리더십의 핵심은 ‘책임감’이에요. 그 자리에서 하루하루 책임의 기적을 이뤄가는 분이죠.”

박도준 전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정 청장에 대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우리나라 최고 방역 전문가”라며 “차관급은 보통 2년 이상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는 올해로 본부장을 맡은 지 3년이 됐다. 대체할 만한 전문가가 없다는 방증 아니겠나”라고 평가했다.

 

위기에 빛난 정은경의 브리핑

최근 한 현역 의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은경이 한 게 브리핑밖에 더 있냐”라고 비판해 논란이 됐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설사 ‘브리핑’밖에 없다고 해도 그 브리핑의 무게감은 컸다. 시민들은 정 청장의 말 하나하나를 무거운 신호로 받아들였다. 작가 김훈은 <한겨레>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늘 현실의 구체성에 입각해 있었고, 당파성에 물들지 않았고, 들뜬 희망을 과장하지 않았으며, 낮은 목소리로 간절한 것들을 말했다. (…) 모두의 힘을 합쳐야 희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거듭된 호소는 가야 할 방향을 설득했다. 그는 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했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말하기는 매우 희귀한 미덕이다. (…) 나는 날마다 정은경 청장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같은 미증유의 상황은 종종 사람들이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렵도록 만든다. 방역의 최고 책임자가 우왕좌왕하거나, 팩트를 자꾸 바꾸거나, 상황에 따라 감정적인 기복을 보였다면 시민들은 더 불안에 빠졌을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 총 책임자가 정 청장이었다는 사실은 행운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평가했다. “사람들은 정 본부장이 그 사실을 믿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정 본부장의 말을 사실로 믿었다.”

무엇보다 정 청장 스스로의 자세가 신뢰감을 줬다.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됐던 지난 2월, 정 청장은 머리 감을 시간도 아껴야 한다며 짧은 단발머리를 숏컷으로 다시 한 번 잘랐다. 브리핑 때 “1시간도 못 주무신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묻자 “한 시간보다는 더 잔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 세계가 정 청장과 한국의 방역에 찬사를 보낼 때도 자신의 치적에 대해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인터뷰는 가급적 피하고 ‘국민에게 보고한다’는 원칙으로 브리핑에 집중했다.

지난 5월 <시사저널>이 정 청장의 100일간 브리핑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정 본부장에 사용한 단어는 대개 감정이 배제된 ‘중립적 표현’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 이를테면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코로나19 검사 건수를 축소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단호한 어조를 취했다.

대신 그의 말 속에는 정확한 수치들이 가득하다. 확진자가 급증했을 때도, 한 자리로 줄었을 때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보냈다. 착오나 실수는 즉각 수정하고 모르는 부분은 ‘확인하고 알려드리겠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 발병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정 청장의 브리핑이 단순한 사실 전달만은 아니었다. 그는 “마스크 자국이 선명한 의료진의 얼굴을 떠올려달라”고 호소했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의 방역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특집 브리핑도 열었다.

이인숙 ‘플랫폼9 3/4’ 이사는 정 청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을 5가지로 정리했다. 없는 것 5가지는 이렇다. “① 정은경이 없다 ② 희망고문과 과장이 없다 ③ 전문용어가 없다 ④ 뜨거움과 차가움이 없다 ⑤ 정치색이 없다” 있는 것 5가지는 이렇다. “① 데이터와 팩트가 있다 ② 잘못과 한계가 있다 ③ 부탁과 당부가 있다 ④ 공감과 감사가 있다 ⑤ 원팀이 있다” 어쩌면 쉬워 보이는, 기본적인 원칙처럼 보이지만 아홉 달 가까이 일관성 있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 청장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 오랜만에 확진자 수도 두 자리 수를 유지하는 추세가 계속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 청장은 감염 위험을 경고하는데 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등장하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는 문구를 인용해 타임지에 직접 정 청장에 대한 소개를 썼다. “정 청장의 성실성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질 가치가 있는 이야기,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와 맞서는 수많은 ‘정은경’들에게,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인류 모두에 영감을 주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청장은 지난 7월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고 나면 무엇이 제일 하고 싶으냐는 당시 진행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단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웃음) 국민들께서도 그러시는 것처럼 저희도 예전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 것 같습니다.” 하루 빨리 그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 위해, 아마 시민들은 오늘도 정 청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참고자료

[시사저널 2020. 5. 1] 정은경 100일 브리핑 분석 – 상황은 흔들려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중앙일보 2020. 9. 16] 돈 안되는 시골의사로 26년…’코로나 헌터’된 문학소녀 정은경

[동아일보 2020. 7. 30] 186일 연속근무후 첫 휴가… 정은경 “집근처서 안전하게”

[WSJ 2020. 4. 4] Thank God for Calm, Competent Deputies

[한겨레, 2020. 9. 14] 김훈 거리의 칼럼 – 정은경

[조선일보, 2020. 2. 25] “머리 감을 시간도 아껴야” 숏컷한 질본본부장

[조선일보, 2020. 9. 13]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 “희망 버려야 살 길 생겨, 코로나 2~3년 더…생활 태도 바꿔라”

[김현정의 뉴스쇼 2020. 7. 3] 정은경 “국민이 백신입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인숙의 새로운 발견19>‘닥터 코로나’ 정은경에게 없는 5가지, 있는 5가지

<신동아 2020. 3. 28> 정은경 본부장이 날마다 직접 브리핑하는 이유

 

황경상

토, 2020/10/1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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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라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미합중국이 지속적인 퇴보의 행각을 보이면서, 정치분석가들과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세계질서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벌써 고민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결국 중국이 제1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과 유럽이 걱정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는 반면에, 일부는 여전히 미래의 세계도 과거와 유사하며 코로나 위기는 예전의 질서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서방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코로나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반중혐오감은 서구사회가 경제적 측면에서 점차적인 약세를 지속하고, 정치적으로는 포플리즘과 극우주의의 발호를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함에 더하여, 수세기 동안 유지하였던 국제현안에 대한 자신들의 일방적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의 반작용으로 생겨난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위기는 서구사회의 구조적 약점과 자기분열을 현실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번 위기는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충격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동양국가인 일본의 승리는 피식민지 인민들로 하여금 서구의 취약점에 눈을 뜨게 만들면서 혁명적 독립운동을 고무시켰다. 사안의 결과가 다르고 인종차별이 덜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서구사회에 대한 국제적 회의를 증폭시키고 있다.

세계질서에 서방의 일방적 지배는 스페인의 아메리카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소위 재정복再征服(Reconquista)사건이라고 불리는 유태인과 무슬림을 서구사회에서 추방했던 15세기 말의 역사에서 출발하였는데, 이후 서구사회는 유럽의 문명에서 오리엔탈적인 요소와 비기독교적인 내용을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은 인류사 전체에 대한 책임을 자임하고 나섰고, 이러한 자기확신을 백인우월주의라는 문명으로 전환시켜 발전하여 왔다. 이러한 백인우월주의 문화는 유럽의 이민자들이 세운 미국에게도 전파되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유색국가의 강력한 세력이 형성되면서, 이러한 확신에 대한 회의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서구에 대한 회의가 점차 확산되면서 때로는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합중국은 자신의 역할로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면서, 소위 ‘자유세계 – free world’ 수호자로 임무를 수행하여 왔다. 대전 과정에서 명백한 두 개의 세력이 타협할 수 없는 이념을 기반으로 양축을 형성하여 왔는데, 전쟁의 결과로 유럽이 황폐하여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미합중국이 소비에트라는 가공된 또는 실존한 팽창주의에 맞서는 유일한 수호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1991년, 후자의 붕괴로 인하여 미국이 경쟁상대가 없는 단극체제의 패자로 군림하는 계기가 형성되었고, 국제사회의 모든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모델로서 행위의 규칙을 결정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으며, 이를 두고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실제의 세계는 그의 선언보다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수십 년이 흘러 중국의 굴기가 이루어졌고, 이제 미국은 중국을 현존하는 위협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일대일 대결국면이 지구중력처럼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결국에는 미합중국이 모든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일방적 세계지배력을 유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에 이른다.

트럼프에 대한 문제와는 별도로, 반중전략에 대해서는 미국 내 양당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현실적 상황은 이와는 전혀 별개이며, 문제는 누가 패권을 차지하는가 또는 절대적 힘을 보유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세력의 재균형을 어떻게 형성하느냐는 점에 달려있다. 더구나 떠오르는 신형세력 특히 중국은 패권다툼이라는 주제에는 관심이 없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미합중국과 유럽국가들이 세계질서의 변화과정을 인정하고 국제적 현안들의 분담과 결정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타협하기는커녕, 지난 40여 년간 개혁을 통하여 성장해온 중국의 힘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이미 낙후한 것이지만 지난 세기를 지배해온 소프트-파워조차 미합중국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대결과 제재 그리고 자신이 주도하는 동맹이라는 구조를 동원하여 중국을 억압하고자 한다.

어느 프랑스의 중국전문학자 역시 이와 비슷한 발상으로 최근 프랑스 일간지에 기고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가 반중 동맹을 주도할 것인가?”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유럽국가들 공히 비슷한 감정으로 미합중국과의 역사적 연대감을 유지해야 하며, 중국이 강력하여지는 원천을 봉쇄하여야 한다는 판단을 광범하게 공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자신들에게 화근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미래의 세계는 이전과는 매우 판이할 것이며, 부분적으로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결과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보건의 위기는 미합중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 간의 신뢰에 지속적이며 상당한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대선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양당간에 형성된 합의점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세력을 봉쇄하고자 하는 필요에 따라 모든 분야에서 격렬한 반중 캠페인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결국 미합중국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을 포함하여 국제사회의 신뢰를 재형성하는 일에 어려움을 격을 것이다. 유럽연합은 미국 행정부의 접근에 대하여 사안별 선택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서구의 쇠퇴는, 설령 트럼프가 재선되어 정치적인 혼란이 지속되더라도, 나쁜 방향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지난 수세기 동안 세계를 일방적으로 지배하여온 유럽과 미합중국은 여전히 상당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떠오르는 중국과 세력 재균형에 대하여 새롭게 대화하고 협상을 주도할 위치에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워싱턴의 과거식 협박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솔직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운데 대화를 진행하면서 복합적 대결과 투키디데스 함정과 같은 술수를 피해가야 한다. 혹시나 폭군스러운 트럼프가 재선되더라도, 중국과 유럽연합은 연대하여 미합중국에게 상기와 같은 대화의 필요성을 설득해 가야 한다.

 

출처: Syndicate via CGTN on 2020-06-18.

Lionel Vairon

현재 북경에 있는 국제관계 및 공공외교정책의 자문기구인 CEC Consultant 대표이며,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기자출신으로 캄보디아, 태국 그리고 이라크 주재 외교관을 역임했다

금, 2020/10/1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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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3차 유행을 예감하면서, 한국 역시 서구와 유사한 상황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에 서구 사회는 점점 더 명료하게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에 봉착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1차 유행 시에 서구의 ‘기본권’ 개념은 명료했고, 아시아의 ‘파시즘’적이거나 ‘독재’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제 구미에서 극우세력과 코로나 부정 세력 간에 연대가 커지면서, ‘기본권’ 개념은 점점 더 극우적으로 옹호되는 ‘묻지 마 자유’의 방향으로 오용되고 있다.

이에 <피로사회>로 유명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최근 유럽 언론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단지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에 그러한 화해가 급조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기에는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대립이 매우 완강했고,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구별되지 않는 경향 역시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한병철이 새롭게 주장하듯이 공동체 정신이 자유주의의 전제라면, 공동체주의자들은 굳이 공동체주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를 옹호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정의로운 분배의 절차를 제도화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자 존 롤스였다.

따라서 코로나19로 구미에서 ‘기본권’이나 ‘자유’와 같은 근대 민주주의의 초석과도 같은 개념들이 ‘이기주의’나 ‘경제적 생존’과 동일시된다고 해서, 공동체주의자가 갑자기 자유주의를 옹호하기는 어렵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수렴이 아니라, 오히려 그도 저도 아닌 제3의 다른 원칙이 필요해진 것은 아닌가? 공동체주의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의 사회적 통일성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추상적 절차에 기초하여 개인들의 권리와 연대를 조절하려는 ‘가치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아무리 가는 길이 급해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최근 한 학술지에 투고했다가 수정 재심 요청을 받아 투고를 철회한 논문에서, 필자는 ‘공동체’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의존성’의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를 공유함을 전제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분화해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 갈등’ 및 ‘가치 지배’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반면에 ‘상호의존성’은 가치와 무관하게 인간의 존재 조건, 즉 서로 돌봄이 필요한 개인들의 취약성이라는 조건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즉 어떤 가치로 어떤 형태의 공동체를 정당화하는가의 경험적 사실과 무관하게, 사회는 모종의 ‘연대’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 원칙이다. ‘공동체’는 ‘상호의존성’의 조건에서 출현하지만, 그러한 조건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상호의존성’ 관계에 대한 특정 해석방식, 즉 ‘가치’에 의해 정당화된다. 따라서 특정 가치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서로 돌보는 연대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아닌 ‘상호의존성’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주의가 공동체주의와 수렴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상호의존성’ 개념과 관련된다. 즉 자유주의에서는 사회적 연대를 ‘상호의존성’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들의 자발적 협동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공동체적 상호 돌봄’을 전제로 삼을 수 없으며, ‘합리적인 협동의 형태에 대한 자율적 합의’를 추구한다. 즉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가장 먼저 자유주의의 인간관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상호의존성 속에서 사는 개인’으로 개인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가치의 공유’까지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런 행보는 ‘가치 지배’라는 새로운 위계와 불평등을 초래한다. 따라서 ‘공동체’로 한 발 더 내딛는 행보를 생략하고, ‘상호의존성’에서 출발해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코로나19의 n차 유행을 통해 점점 더 명료해지는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개인을 집합체나 타인과 분리해서 보는 ‘개인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분리를 ‘완전한 자율과 독립’으로 고정해서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오히려 ‘분리’는 순간순간의 ‘사건’들에 불과할 터인데, 그것을 영구적인 개인의 실체적 속성으로 정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에서 ‘책임’은 정언명령을 따르는 실천 이성 또는 개인의 합리적 성찰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들이 더 이상 정언명령을 따르거나 합리적일 수 없을 때, 자유주의 사회에서 책임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구미에서 ‘자유’의 개념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극우적으로 오용된다. ‘경제적 생존’ 문제가 실천 이성의 정언명령이나 합리성보다 훨씬 더 시급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가 ‘기본권’의 개념으로 주장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실천 이성을 장착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앞서 먹고 살아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시장 논리는 ‘상호의존성’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논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개념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서구 자유주의에 거울이 되어주고 또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개념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인 서구 사회를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한다는 절충론적인 접근은 무의미하다. 한국 사회는 ‘가치 동일적 사회=공동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서, 서구 사회는 ‘자유주의적 개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상호의존성’이라는 인간 조건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기획하는 것이 두 사회 모두에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목, 2020/12/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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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우리는 현재 지식경제가 경제의 각 분야에서 섬과 프린지의 형태로 제약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흔히 지식경제와 그 가장 친숙한 형태(소수의 세계적인 거대기업들과 주변부의 신생기업들이 추진하는 첨단기술산업)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규모와 상관없이 어떤 기업이 그 운영방식을 달리 변경하지 않으면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 특히 컴퓨터와 기타 정보기술을 사용하여 복잡한 정보를 조직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경우에도 우리는 지식경제와 그 제품 혹은 서비스를 혼동한다. 이러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이 새로운 생산방식의 잠재력 중 극히 일부를 포착할 뿐이라는 명백한 신호는 그러한 사용이 반짝했다가 곧 사라질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제공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그것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서의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해명하는 데에 유용한 변화였다. 즉 정보관리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디지털 기술을 채택하는 흐름이 일회적인 상승을 낳았다.

우리는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참된 성격을 파악하려면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널리 보급되고 이러한 보급을 통해 심화되고 급진화되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은 넓고 다양한 경제활동 영역을 가로질러 펼쳐짐으로써 그 성격과 잠재력을 보여준다.

우선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지식경제는 생산활동의 수행에서 자본, 기술, 기술관련 역량 및 과학의 축적이다. 지식경제의 특징적인 이상은 제품과 기술뿐만 아니라 절차와 방법의 영구혁신(permanent innovation)에 있다. 지식경제는 특징적인 기술적 장비를 통해서 상품과 서비스의 또 다른 생산방법으로 그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식경제는 자체적인 재발명을 지속하는 생산패러다임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러한 지식경제의 이상이 의미하는 바를 우선적으로 경영, 조정, 생산의 좁은 수준에서, 이윽고 세 가지 더 심층적인 속성들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들은 지식경제를 지금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보급되고 급진화된 다음 존재할 수 있는 모습으로 기술한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제약적이고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식경제는 대규모 생산과 ‘탈규격화’나 맞춤제작을 조화시키고, 생산계획의 일관성 및 추진력의 유지와 기업활동의 분산화를 조화시키는 관행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얼마나 많이 성취되는지에 따라 사소한 의미를 갖거나 혹은 중대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기업 안에서 재산과 권력을 재편하지 않은 채 개인적 주도성과 팀워크를 위한 더 큰 여지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효율성의 부수적인 향상과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전략을 재현할 수 있다. 혹은 이러한 성과들은 업무조직과 궁극적으로는 재산체제에서 누적적이고 중요한 변화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산방식의 이러한 더 피상적인 특성들의 재현과 발전은 모두 내가 나중에 논의할 더 깊은 특성들의 진보에 따라 달라진다.

적층제조(3차원 프린터), 로봇 공학 및 더 일반적으로 유연하고 수리적으로 제어되는 기계도구는 가능한 변형을 탐구하면서 제품의 다각화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엄청난 다각화와 생산규모를 조합할 수 있게 한다. 생산활동과 실험과학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다양한 능력을 동원하고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기술적인 역량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3차원 프린터는 사용자가 제품의 개념과 실현 사이에서 신속하고 부단히 움직이는 것과 구체화 과정에서의 발견에 비추어 개념을 수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우리 대신에 수행할 수 있는 일(아직 반복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영역으로 우리가 전진할 수 있도록 이미 반복 방법을 터득한 것이라면 기계의 도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명료화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생산규모와 탐험적인 제품 차별화 및 변형과 조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는 방식(기술적인 노동분업)을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요체는 일관성과 추진력을 잃지 않고서 주도권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업무를 조직하든지 간에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분권적이고 재량적인 주도권의 장점들과 그러한 추진력과 일관성의 유지 사이에는 완전한 모순은 아닐지라도 녹록치 않은 긴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지식경제의 방식은 현재의 고립된 형태에서도 이러한 긴장을 해소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를 완화시킨다.

지식경제의 한 가지 방식은 업무의 조직방법에 대한 포괄적인 재량을 누리는 작업반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방식이다(예컨대, “도요타 생산방법”). 또 다른 방식은 이러한 팀들의 활동을 조정함으로써 작업반들과 반장들에 의한 생산계획의 협력적인 개발과 수정으로 중앙의 경영권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더 훌륭하게 개선의 기회를 확인하고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더 고차원적이고 더 유연한 형식을 낳는다.

기술만으로는 규모와 차별화의 결합 나아가 조정된 전진운동과 분산적인 주도권의 결합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 기술의 사용은 작업방식에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경제의 제도적 안배와 생산작업 참여자들의 교육과 문화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 방향을 가리키는 관행과 태도로 밑받침되어야만 한다.

거의 무제한적인 제품 차별화 또는 맞춤제작과 규모의 결합은 자사제품의 수요를 외생적이고 불변적인 여건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신규수요, 신규소비자층, 신규시장의 창출을 추구하는 기업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을 전제한다. 상품과 서비스 등의 차별화에 대한 욕구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선택지들에 대해 놀라워하고 대규모 시장 위한 제조업생산이 엘리트를 위한 장인생산의 특성을 일부 갖게 되며, 제조업과 서비스간의 구분이 붕괴됨으로써 탄력적일 수 있다. 선진적인 제조업은 서비스와 결부된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넓은 범위에서 결정(結晶)된 지적 서비스들로 구성된다.

분산적 주도권과 조정된 생산계획의 일관성 간의 화해는 업무조직에 대한 지휘통제 접근법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한 화해는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생산과정 참여자들의 협력방식)에서 변화를 요구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사라져야만 한다. 생산계획은 집행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수정되어야만 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의 차이를 완화시키는 것은 모든 전문화된 집행역할들을 상대화하는 것을 동시에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경직된 전문화는 개념의 수립과 집행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전제한다. 유동적인 내부 조직을 가진 작업반은 전문가를 대체한다.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에서 이러한 변화는 생산과 과학의 관계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를 미리 보여준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수준에서 다루어지는 국한된 지식경제의 외견상 피상적인 특징들은 결국 그렇게 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한 특성들을 완전히 성취하려면 더 중요한 변화들이 요구된다. 그러한 변화들은 억압된 변혁적 잠재력의 존재를 암시한다.

지식경제가 경제 전반에 걸쳐서 입지를 구축하려면 지식경제는 고립된 전위 부문들에 제약되어 있는 대신에 지금으로서는 먼 장래의 약속에 불과한 권능들을 지속적으로 이행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야만 할 것이다.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보급과 그 급진화는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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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5/2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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