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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 제22회 민변 노동위원회·오사카노동자변호단 정기교류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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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위] 제22회 민변 노동위원회·오사카노동자변호단 정기교류회 후기

admin | 화, 2021/03/30- 20:00

[민변 노동위원회 소식] –제22회 민변 노동위원회·오사카노동자변호단 정기교류회(온라인) – 작성자: 김은진, 박찬준, 이충언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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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청산위원회 소식

-여순민중항쟁 71주기 워크숍- 

0.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입니다. 저희 과거사위원회는 2019. 10. 19. 여순민중항쟁 71주기를 맞아 여수로 1박 2일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과거사위 활동 소식은 워크숍 여정을 중심으로 전달해드릴까 합니다.

 

1. 제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

 

    과거사위는 2019. 10. 19. 오전 11시 이순신 광장에서 열린 제71주기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이 날 유족과 시민 500여 명이 참석한 추념식은 문화공연에 이어 추념사와 헌화 순으로 진행되었고, 오전 11시 정각에는 여수시 16개 민방위 경보시설에서 묵념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그간 추념식은 여수지역사회연구소를 비롯한 다양한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주도되어 왔습니다. 이후 여수시가 추념식을 주관하게 되면서 올해 처음으로 위 묵념 사이렌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울리게 된 것입니다.

    또한 올해는 지난해 경찰서에서 순직 경찰위령제를 지냈던 순직 경찰 유족을 비롯해 많은 안보보훈단체 회원들이 추념식을 함께 지켜봐 상생과 화합의 도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 등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무엇보다도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희생자들과 그 유족들의 아픔에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대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2. 여수지역사회연구소에서의 강연


    추념식이 끝난 후에는 여수지역사회연구소로 이동하여 이영일 소장님으로부터 여순항쟁의 원인과 경과, 현 시점에서의 과제 등에 대한 강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장님께서는 여순항쟁의 성격을 일부 좌익계 사병들이 일으킨 단순한 반란이 아니고, ‘부당한 명령에 맞선 항쟁’이며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운동’이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제주 4·3사건이 없었다면 여순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여순항쟁은 제주 4·3사건의 연장선상에서 평가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48년 4월 3일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주장하던 제주도민들을 국가는 무참히 학살하였고, 이 과정에서 진압명령을 하달 받은 여수 주둔 14연대 병사들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군대가 오히려 국민을 진압하고 학살하라는 명령을 따르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명하며 무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여순항쟁을 기화로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발생시킨 폐해를 언급하시면서 여순항쟁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다행히 제주 4·3사건의 경우 1999년 12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 11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추가 조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반면 여순항쟁을 비롯한 많은 과거사 사건들은 여전히 진상 규명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앞으로도 현대사의 질곡을 온전히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가 더욱 노력을 경주해야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3. 사적지 답사

  . 14연대 주둔지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서완종 국장님과 함께한 과거사위원회의 여수 첫 답사지는 1948년 여순항쟁의 시발점이 된 육군 제14연대 주둔지였습니다. 1976년 7월 23일부터 현재까지 한화여수공장이 입주하여 가동 중인데, 옛 부터 평화로운 원주민 마을을 강제로 이주시킨 후 일본과 미군에 이어 한국군의 병영지로 쓰이다가 급기야는 화약공장이 들어선 민족현대사의 아픔과 질곡을 간직하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군사보안시설로 지정되어 현재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으며, 최근 인근 지역에 아파트를 비롯한 많은 주거시설이 확충되면서 화약공장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 공장 가동률이 4분의 1로 하락함에 따라, 여수시가 한화와 부지 매각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하나, 지나치게 높은 매입금액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이 더욱 컸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나. 중앙동 인민대회장과 종산초등학교


    다음으로는 중앙동 인민대회장과 종산초등학교(현 중앙초등학교)에 방문하였습니다. 중앙동 인민대회장은 1948년 10월 20일 오후 3시경 중앙동 로터리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들과 14연대 봉기군이 함께 참여하여 인민대회를 열었던 장소입니다. 인민대회에서는 ’38선이 무너졌다. 제주 출병을 거부한다. 동포가 동포를 죽일 수 없다’고 선언한 뒤 인민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결의하고,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 실시 등을 내용으로 하는 6개 항의 결정서를 채택하였습니다.

    이후 여수가 진압되고 부역혐의자를 색출하면서 인민대회장에 나갔다는 이유만으로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현장에서 즉결처형 되거나 종산초등학교 등으로 압송되어 수용되었습니다. 종산초등학교는 여수경찰서와 가깝다는 이유로 수도경찰과 전남경찰 및 여수경찰서 특수대, 국방경비대 군인들의 공동 주둔지가 되었습니다. 10월 28일부터는 소위 가담자 색출이라는 이름으로 여수와 인근 읍면 지역에서 끌려온 혐의자를 속옷만 입힌 채 10명씩 포승줄로 묶어 12월 중순까지 수용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부산의 5연대장이었던 김종원은 혐의자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재판 없이 즉결처분을 자행하였는데, 권총이나 일본도로 목을 치는 광란적인 학살 만행을 자행하여 백두산 호랑이라는 악명을 떨치기도 하였습니다. 일본군 하사관 출신인 김종원은 여순사건 이후에도 거창양민학살을 주도하였고,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등의 만행을 일삼다 1960년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아무런 재판과정도 없이 학살되어 암매장되거나 만성리, 민드래미 골짜기, 호명과 봉계동 등지에서 학살된 사람 모두가 이 학교에 수용되었던 혐의자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아직까지 그 규모와 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채 7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다. 만성리 학살지와 형제묘


    만성리 학살지는 부역혐의자로 잡혀있던 종산초등학교 수용자 중 수백여 명의 민간인들을 끌고 와 집단학살을 자행한 장소입니다. 깊은 골짜기 형태를 한 이곳에서, 군경은 1948년 11월 초순경부터 종산초등학교에 수용되었던 여순사건 부역혐의자들 일부를 학살하고, 협곡과 같은 골짜기 속으로 던져 넣은 후 흙, 모래와 돌로 암매장하였습니다. 사건 당시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록을 보면 1948년 11월 13~14일 양일간 제3차 고등군법회의가 열려 재판 회부자 458명 중 사형언도자가 102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사건이 지난 후 이 골짜기를 지나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돌을 계곡에 던져 넣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풍속이 한동안 지속되어 돌탑무덤이 솟아오르기도 하였고, 현재는 2009년에 건립된 여순사건 희생자위령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여순사건 희생자위령비에는 오직 6개의 점(……)만이 덩그러니 새겨져 있습니다. 위령비 건립 당시 전・현직 경찰관 모임인 경우회가 희생자 유족들이 새긴 추모 문구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유족들은 사실을 왜곡할 바에는 아무런 문구도 새기지 않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무력으로 자국민을 학살하고, 그 죄적을 은폐하기 위해 희생자들을 암매장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유족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위령비에서도 사회는 침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희생자와 그 유족들이 여전히 고통을 호소하거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차가운 현실이 위령비에 새겨진 6개의 점과 함께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만성리 학살지와 함께 널리 알려진 이 곳 형제묘는 학살 후 시신을 찾을 길이 없던 유족들이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함께 있으라고 ‘형제묘’라 이름 붙인 곳입니다.

    여순사건의 부역혐의자가 되어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었던 사람들 중 제4차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125명이 1949년 1월 13일 이 자리에서 총살되고 불태워 졌습니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여수경찰서 사찰계 형사는 “‘5명씩 총살 한 후에 다시 5명씩 장작더미에 눕혀 5층으로 쌓은 큰 더미 5개, 모두 125명이 매장되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처형은 헌병들이 주도하였으며, 장작더미에 기름을 부어 불을 태웠고 처형된 가족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보초를 세우고 태워진 시신 위로 큰 바위를 굴려서 덮었다고 전해집니다.

    형제묘의 커다란 봉분 한 켠에는 작은 봉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묘에는 정기만, 정기순, 정기덕, 정기옥 남매가 합장되어 있습니다. 정기순 위원장은 여순항쟁 당시 민주여성동맹(여맹) 위원장으로 인민대회 5인의 연설자 중 유일한 여성 지도자였습니다. 항쟁 당시 진압군에 의해 오빠인 정기만과 동생인 정기덕이 사망하였고, 두 형제는 유골조차 찾을 수 없이 형제묘에 함께 매장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정기순 위원장과 여동생 정기옥씨도 ‘빨갱이’, ‘부역자’ 등으로 평생을 지탄받으며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동생인 정기옥씨는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진 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주기적인 경찰의 신원조회 및 감시로 인해 직장을 잃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세상을 비관하던 정기옥씨는 이른 나이에 요절하였고, 정기순 위원장의 어머니는 막내딸을 오빠들과 함께 매장해 주고자 형제묘 옆에 작은 봉분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형제묘에 또 하나의 작은 봉분이 만들어졌고, 정기순 위원장 역시 사망 후 화장하여 그 유골을 형제묘에 뿌려 가족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묘는 여순항쟁의 희생자들과 그 유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장소입니다. 희생자가 가해자와 주변인들로부터 ‘빨갱이’로 매도되어 한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야만 했습니다. 2019년이 된 지금에도 그 자손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우리 과거사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더욱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4. 나가며


    답사를 마친 뒤에는 숙소에 짐을 풀고 워크숍 일정에서 느낀 소회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석해주신 많은 선배 변호사님들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앞으로 더욱 노력하자는 마음가짐을 다잡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상희 변호사님과 위원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변화는 더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우리 민변 과거사청산위원회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상으로 10월 민변 과거사 청산위원회의 활동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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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9/11/02-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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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광주전남지부 20주년 기념행사 준비기

과연? 과연!

 

–  이소아 

 

 

지난 2019. 9. 9. 저녁 광주지부 20주년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렸지요. 저녁 6시부터 지하 1층 로비에서 정말 맛있고 예쁜 식사가 제공되었습니다.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행사장에 들어서니 민변 회원분들을 포함하여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시는 귀한 손님들이 이미 자리를 많이 채우고 계셨습니다.

김정호 지부장님의 “인사는 생략한다”로 요약되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20년간 광주지부 회원분들이 시민으로서, 변호사로서, 민변회원으로서 얼마나 훌륭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지를 그 자리에서 모두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나 빨리 끝났다고 느끼는 그 시간 동안 참석한 모두는 감격하고, 감동했고, 울고 또 웃었습니다. 특히 지부 회원분들께서 직접 준비하신 변론기 낭독과 연극 퍼포먼스는 지금 돌이켜 떠올려 보아도 그 감동이 다시 살아납니다.

행사의 내용을 그려드리는 것 대신, 광주지부 회원분들께서 어떠한 마음으로 얼마나 열심히 행사를 준비했는지 그 과정을 이소아 회원님의 글로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 – 2019. 1. 말경 준비단 첫회의

7명이 모였다.

각자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 하면 멋진 것을 생각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음을 느낀다. 입 밖으로 꺼내면 해야 하니까.

이러저러한 논의 끝에 행사 자체와 20주년을 갈무리할 백서?변론사? 크게 두가지가 필요하다는 가닥이 쳐졌다.

회의 초반 행사를 가볍게 할 것인가, 멋지게 할 것인가로 나뉘었지만, 멋지고 의미있게 하자는 방향으로 논의가 흘러갔다. 2년 전 대전충청지부 20주년을 보고 왔던 김상훈 전지부장님의 요구도 한몫 했다(나도 그 행사를 함께 보았는데, 여러 시민단체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너무나 좋아보였었다). “우리는 무조건! 이보다 멋지게 해야할 것이여!”

멋지게 하려면….

일단 20주년 행사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정할 그 무언가(문구? 슬로건? 목표?)가 있어야 한다. 장은백 변호사가 “이번 행사는 뭔가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묻고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답하는 그런 컨셉이었으면 좋겠어”라고 한다.

오! 그래! 미래가 과거에 묻다. 과거가 미래에 답하다. 뭐 이런 제목이면 되것네!

 

나는 공익소송기획단장으로서도 필요한 일이기에 변론사 작업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김정희 변호사님이 “10주년 때도 백서를 만들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 만들지 못했다. 너무 힘든 작업이다. 그냥 부담을 갖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걱정을 하셨다. 안다. 얼마나 손이 가는 작업이고 피곤한지. 그러나 단체의 지속가능성과 성장을 위해 기록을 남기고 엮어가는 것은 중요하니까, 또 내가 잘 할 수 있으니까, 또 일은 그냥 하면 되니까 하기로 한다.

우리에겐 10년전에는 없었던 훌륭한 후배 동료들이 포진해 있으니까(김수지, 정다은, 송창운, 장은백, 권소연, 류리, 박인동 등등등등등등)!

 

앞으로 정해야 할 것 채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구체적인 내용은 차기 회의 때 기획안을 세워와서 논의하기로 해산했다.

 

#2 – 변론사 밑작업

늘 그렇듯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수소문해서 모으는 것이 힘들다.

수소문해서 사건리스트들을 정리해보았는데 리스트만 40개 사건 정도 된다. 이걸 다 책에 넣을 순 없다. 시의성과 중요성을 기준으로, ‘광주’ 민변에 더 의미 있는 사건을 중심으로 20개 정도를 추렸다. 개중에는 의미는 있으나 기록이 없어서 빠지게 된 것도 있었다.

연초부터 역대 지부장님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돌리고 문자를 드리고, 직접 찾아 뵙고 하여 자료를 모았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만나뵙기 쉽지 않은 경우, 사건에 대한 기억은 있는데 기록이 폐기된 경우, 공동대리로 하다보니 그때 그걸 누가 했는지 정확하지 않은 경우 등등등. 자료를 모으는 것이 오래 걸렸다. 그냥 기록만을 수집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간략한 사건메모표(소회를 포함하여)를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요청을 드렸으나, 이것을 독촉하는 것도 일이라는 것을 해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이 지루하고 빛이 안나는 밑과정을 끈기 있고 꼼꼼한 정다은, 송창운 변호사가 해주었다. 독촉독촉독촉하다가 결국에 안되면 각자 직접 기록을 보고 사건메모표를 작성하였다.

추려놓고 보니 ‘광주’ 민변의 변론사의 흐름이 보인다. 다양성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익변론들이 어떻게 다변화되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3 인터뷰와 동영상

행사 당일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활동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기에 동영상만한 것이 없다. 사진을 모아 편집하는 정도 말고 뭔가 더 나은 뭔가가 필요하다. 선배 지부장님들 인터뷰를 해보기로 한다. 선배들만 하면 재미 없으니 후배들도 집담회 형식으로 인터뷰 해보기로 한다.

학보사 기자 출신인 김수지 변호사가 있으니 주 인터뷰이를 하고, 내가 카메라가 있으니 동영상과 사진을 같이 찍고, 누가 속기를 하면, 인터뷰 할 때 동영상, 사진, 속기를 같이 할 수 있어서 나중에 일을 줄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을 가끔 후회하기도 했다.

첫째로 동영상, 사진, 속기를 같이 하기 위해서는 인터뷰이가 3명은 따라 붙어야 안정적인데 그 일정들을 조율하는 것이 어려웠다. 인터뷰 일정을 여러번 펑크내는 경우도 있었고 솔직히 포기해버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지칠만도 한데 한번도 싫은 내색하지 않고 함께 챙겨주고, 막판에 1천쪽이 넘는 원고를 직접 편집한 김수지 변호사에게 박수를 보낸다. 또한 갑작스런 요청에도 흔쾌화게 속기를 맡아준 권소연, 김민아, 류리, 김성익 변호사에게도 고마움을 보낸다.

둘째로 내 동영상 기술이 무척 후회됐다. 결국 쓰지 못한 컷도 있고…. 결국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에게! 라는 깊은 교훈을 다시 새김.

 

#4 행사 장소, 식사 !!!

장소를 어디로 할 것인가.

식사가 가능하고, 행사를 함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200명 정도는 올 수 있는 곳. 섭외하기도 어렵다. 장은백 변호사, 박상희 간사 등이 여러 장소를 답사한 결과 5. 18 기념문화관이 좋겠다고 결정된다.

5.18 재단 및 광주광역시 담당 공무원과 장소 협의는 20주년 기념사업준비단 단장인 오래한 정인기 변호사님이 책임지기로 하였다.

행사에서 중요한 것은…. 밥이다. 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부분도 각자 그리는 상이 다르다. 일단 몇가지 업체에서 견적을 받아보기로 하고 회의 해산.

 

#5 연극 퍼포먼스 라고라고라! – 과연?

민변 본부 총회에서 보았던 변론 낭독회를 하기로 한다. 우린 변호사집단이니까.

그런데 같은 것을 다시 하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무얼할까… 하던 중 전두환 회고록 명예훼손 형사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 재판에서 피해자로 나오는 증인 분들의 이야기를 그냥… 간단히 모의법정 같은 증인신문을 요약해서 무대위에서 해보자 라고 의견이 나왔고 장은백 변호사가 주관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 장은백 변호사는 모의재판 증인신문에 대한 아이디어와 개요를 마련하기 위해 전두환 재판을 재판방청하고 속기 메모를 해왔다. 재판은 어떤 날은 밤 9시에도 끝나고 그랬다. 메모를 하다 지친 장은백 변호사가 몰래 녹음을 하기도 하였고, 그 녹음한 것을 녹취록으로 푼 값만 30-40만원이 들었다.

그런 원자료들을 가지고 장은백 변호사와 나는 7월 초순엔가, 극단 토박이에서 활동하며 광주의 여성활동가들과 ‘시나페’라는 연극모임을 하는 나창진 감독님을 만났다. 자료들을 감독님에게 넘겨드리고 7월 말로 다음 회의를 잡았다.

충격은 나창진 감독님과 두 번째 회의에서 있었다.

5.18 기억 왜곡과 관련한 것이기는 하나 완전히 다른 내용의 퍼포먼스 대본을 만들어서 오신 것이다. 내용이 좋기는 했지만, 기존에 장은백 변호사가 애쓴 원자료들은 모두 쓰이지 않는 것들이 된 허탈감도 컸고, 춤을 추고, 외치고, 하는 그런 퍼포먼스를 우리가 연습할 수 있을지 과연 해낼 수 있을지 의심도 들었다.

장은백 변호사와 내가 생각한 ‘증인신문’이라는 방식은, 전문배우들이 구현한다 하더라도 어설프게 보일 수 있는 데다가(왜냐하면 그날 그 상황 그 감정을 알 수 없으니까), 숙련되지 않는 변호사들이 피해자의 증언을 이야기 한다면, 자칫 무대 위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우습게 보이는 불상사가 생긴다는 취지셨다. 또한 피해자들의 증언에 대한 것은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찾아보면 여러 다큐멘터리나 극을 통해서 드러났기에 효과적으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지 않다는 취지이기도 하셨다. 그래서 역사 쿠데다, 기억 쿠데다를 시도하려는 세력들을 신나게 몰아내고 정화하는 방향의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장은백 변호사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증인신문이 적절하지 않으냐, 또한 우리는 변호사로서의 정체성이 있는 단체이고 행사가 지향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나창진 감독님의 연극인으로서의 고집.

광주 민변의 구성원으로서 행사를 총괄하는 변호사로서의 고집.

둘 사이 팽팽한 긴장감 사이 어딘가에서 안절부절하는 나.

 

 

#6. 연습 시작

준비단 논의 끝에 감독님의 안대로 진행하기로 결정은 되었다. 그러나 아직 감독님과 장은백 변호사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완전히 풀어지지 않은 채 연습이 시작되었다(긴장감은 나만 느꼈을수도).

장은백 변호사의 카리스마로 많은 후배 변호사들이 첫 대본 리딩에 함께 하였다.

대본을 받아든 이들의 눈빛도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아무리 간단한 안무라고 해도 춤도 추고 노래도 해야 한다. 과연 가능한가? 감독님이 말하는 대로 나오는 것인가? 흔들리는 눈빛들을 보니 확신을 주고 싶은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서.

에라이 모르겠다. 쪽 팔리지만 일단 신나게 해보는 거지 뭐.

 

준비물 : 확성기, 빗자루, 모자, 태극기, 일장기, 성조기, 뺑뺑이 안경, 의상, 그리고 5.18 상징물

준비물 중 5. 18 상징물이 중요하다.

나비와 노란리본과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것을 50개 만들어야 한다.

전민규, 김성익 변호사가 주말에 가위질과 본드질을 해서 완성하기로 한다.

재료 구입은 장은백, 박상희, 전민규….

 

#7. 빗자루춤과 5.18 선무 방송

빗자루를 들고 왜곡 세력들을 싸그리 몰아낸 다음 춤을 추는 장면이다. 대본엔 지문만 있고, 7가지 동작이 있다. 말을 안해도 되는 건 좋은데 몸이 힘들다. 춤 연습을 한지 내게는 한 시간 연습한 것 같은데 10분밖에 안지났단다. 동작 외우느라 정신이 없는데 신나게 추라는 주문이다. 모든 댄서들에게 존경을….

연습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당시 선무방송을 외치는 부분이었다. 그 간절함을 사실은 모르겠는 것이다. 안다 해도 그것을 목소리로 외쳐서 표현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 내 안의 어떤 감정이 ‘이 이상은 안되겠어’라고 차단하고 나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무엇인지 넘어서 보기도 전에 연습과 공연이 끝나 버려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넘어보고 싶으면 왠지 직업을 바꾸어야 할 것 같아서.

 

#8. 돌발 상황

큰일났다!

좀비 역할이 2명 밖에 없는데 그 중에 한명이 못하게 될 상황이 되었다.

더 큰일 났다!

코러스 4명이어야 하는데 그 중에 한명이 못하게 될 상황이 되었다!

남은 5명으로 어떻게 하나?!!!

결국 만능 재주꾼 박인동 변호사가 좀비와 코러스까지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좀비 역할을 하던 사람이 코러스로 또 나오면 이상하니까 의상을 바꾸어 입고 태극기 안경도 바꾸어 쓰기로 한다.

처음 7명에서 5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연습을 해가면서 뭔가 조금씩 합이 맞추어 진다.

 

#9. 리허설과 무대감독

극에서 중요한 것은 배경 영상, 음향, 조명이 적절한 타이밍에 바뀌는 것이다.

기술감독, 무대감독이 따로 있는 이유!

나창진 감독님 지도 하에 장은백 변호사가 조명실에서 조명과 음향을, 박상희 간사님이 무대 뒤에서 영상을 맡았다.

행사 일주일 전에 한번, 행사 당일 3시간 전에 모여서 다시 한번 연습을 했다.

무대에 직접 와서 연습을 해보니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

 

#10. 행사 당일 – 과연!

재판보다 안 떨린다.

재판은 내가 변호사로서 실력을 보여야 하는데, 어차피 나는 전문 연극인이 아니니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큰 실수 없이! 공연을 마쳤다.

모두 집중해 주셔서 감사했고

무엇보다도 믿지 못하는 우리를 이끌고 이 기획을 이루어주신 나창진 감독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법률가인 변호사가 가지는 한계를 넘어서

내년 5. 18 40주년을 앞두고

앞으로 5.18이 어떠한 방향성과 확장성을 가져야 하는지 어렴풋하게 알게 되어서 기뻤다.

 

 

다음 날 장은백 변호사 페이스북에 올려진 글로 마무리 한다.

 

“일당백을 해주었던 퍼포먼스팀

5주간의 연습

연출 장인 나창진감독님

수차례 고민과 이견

나를 믿으라는 말씀을 믿지는 못했지만

시키는대로 따라가니 믿을신 한 글자가 오롯이 남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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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9/09/25-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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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인권위원회 소식 다가오는 재보궐선거와 혐오표현, 그리고 차별의 문제들 -작성: 장길완 안녕하세요. 회원님들~!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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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1/03/3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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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교육청소년위원회 소식

이철승교수초청 ‘불평등의 세대’ 세미나 후기

 

2019년 11월 6일 민변 교육청소년위원회에서 ‘불평등의 세대’ 저자인 이철승교수를 초청하여 저자강의를 듣고 세미나를 하였습니다.

이철승 저, <불평등의 세대> (문학과 지성사 출판) / 사진출처: 문학과 지성사

이철승교수의 위 저서는 ‘386세대의 기득권화’ 담론의 촉매가 된 책으로, ‘조국사태’를 전후하여 ‘386세대의 기득권화와 위선’을 공격한 다른 책이나 기사가 단순히 ‘정치권에서의 386과잉대표’ 만을 언급하면서 ‘세대담론’에 머무르거나 진보를 도매금으로 비판하기 위한 ‘진영논리’의 산물이었던 것과는 달리, 386세대라는 ‘앵글’로 (실제 이 책에서는 1930년대생, 1960년대생, 1990년대생을 기준으로 노동, 소득, 자산 등 경제요소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위계구조‘와 ‘계급’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철승교수는 강의처음에 ① 80프로는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지만 반대급부로 청년층의 실업율이 20프로까지 이르는 남부유럽 유형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등) ② 20프로는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지만 나머지 80프로는 비정규직과 청년층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화되어있고 청년실업이 높은 유형 (한국) ③ 노동시장이 모두 유연화되어 있는 대신에 경제가 잘 돌아가서 일자리가 많은 유형 (미국) 의 세 유형을 제시하고 어느 사회에 살고 싶으냐는 질문으로 강의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한국상장기업중 상위 100개 기업의 출생 세대별 이사진 점유율에 따른 기업의 최근 5년 자본수익율분포입니다.

“국내 100대 기업을 살펴보니 이사진 중 50~60대 고연령자 비율이 80~100%에 이르는 기업들이 실적이 좋지 않았다. 우리은행, 대우조선해양처럼 정부가 최대 지분을 가진 기업들이다. 오너가 없는 기업들에서 한 세대가 연대해서 나눠 먹는 거다. 이런 노동자의 이익집단화와 비효율의 증대는 남미 또는 남유럽 방식인데, 나는 우리 사회 전체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1970년대생이 20~40%까지 이사진에 포함된 회사들, 네이버·코웨이·아모레퍼시픽·엔씨소프트 등은 자본수익률이 10~30%로 선두그룹을 형성했다. “

이외에도 이철승교수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에서의 세대권력의 형성’ (시민단체동원네트웍과 정책네트웍지표의 1991년부터 2016년까지의 시계열변화지표와 1996년부터 2016년까지 연령별 국회의원 당선자수를 통하여 386세대가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에서 세대권력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과 ‘시장에서의 세대권력의 형성’{1998년부터 2017년까지 100대 기업 이사진 세대별 ­ 시기별 분포, 결합노동시장지위 지위별 월평균 임금분포(2004년부터 2015년까지 대기업, 중소기업 / 정규직, 비정규직 / 노조, 무노조의 3요소로 각유형의 월평균 임금을 분석)를 통하여 386세대가 시장에서 세대권력을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을 설명·논증하고 (자산분석도 있는데 자산에 있어서만은 아직 1930년대생인 산업화세대가 압도적인 우위를 보입니다.) 네트웍 위계의 희생자들로 청년과 여성을 지목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로 충전된 젊은이와 여성들을 조직 최상층으로 끌어올려 ‘무지개 리더십’을 구성하면 (386세대의 자기희생을 요청하십니다.) 경직된 조직 문화와 장기집권으로 인한 생산력 저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장 강사법시행으로 인해 강사채용의 문이 좁아졌는데요 이의 타개를 위해서 국가의 지원확대이외에도 정규직교수의 자기희생모델이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철승교수님도 강사법시행으로 인한 자신의 경험을 말하시면서 정교직교수의 자기희생을 언급하시더군요.

이철승교수님의 강의는 조용환변호사님이 다른 모임에서 이철승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주선을 해주셔서 성사되었는데요, 조국 전법무부장관사태로 촉발된 ‘공정성강화’ 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세미나가 종종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상으로 이철승교수님 ‘불평등의 세대’ 세미나 상황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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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9/11/20-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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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전북지부 20주년 기념회 소회

송경한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북지부 20주년 기념행사가 2019. 11. 9. 16:00 전북 전주시 터존부페 하이든룸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습니다.

이 날 행사에는 박민수 변호사(2기 지부장 역임, 연27기), 안호영 국회의원(전북 완주군진안군무주군장수군, 3,4,6기 지부장 역임, 연 25기), 황규표 변호사(5기 기부장 역임, 연27기), 장석재 변호사(7기 지부장 역임, 연33기), 김현승 변호사(8기 지부장 역임, 연39기), 김석곤 변호사(현 민변전북지부장, 연 37기) 등 전 · 현직 지부장을 포함하여 민변 전북지부 회원 20여명과,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동아리 ‘퍼블리코’ 회원 10여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었습니다.

이 날 행사에서는 역대 지부장님의 민변 전북지부 20주년을 맞이한 소회 및 축하 인사말을 시작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을 세상에 알린 이탄희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연34기)를 초청하여 「우리는 왜 법원, 검찰을 알아야 하는가? -30년간 미뤄온 사법개혁」 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2시간여에 걸쳐서 진행되었습니다.

강연은 현재까지 사법 검찰 개혁이 미루어진 역사적 배경을 판사 재직 시의 경험과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법원개혁의 과제, 검찰개혁의 과제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민변 전북지부 회원 및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동아리 회원들을 상대로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탄희 변호사의 법원행정처 재직시절 겪었던 생생한 경험에 기초한 강연 내용을 통해 모두가 공감하는 법원·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으며, 질의·응답시간에서는 맥주 등을 가볍게 마시는 분위기 속에서 ‘판사를 그만둘 때 부인의 반응은 어땠는지’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이 오지는 않는지’ 와 같은 다소 짓궂은 질문에도 맥주를 쭉 들이킨 후 편안하게 응답해주었던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탄희 변호사 강연 후에는 박민수 변호사의 ‘국가보안법 사건 무죄 변론기’를 강연 형태로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내용은 햇수로 3년, 19회에 걸친 변론기일, 최초 구속 후 2번의 구속적부심 신청 및 기각, 2번의 보석청구 및 2번째 보석청구 인용으로 인하여 6회 기일부터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며 결국 무죄 판결까지 이르는 과정, 국가보안법 해석의 기준, 그리고 법원의 시각 등을 아울러 살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더불어 박민수 변호사는 민변 전북지부의 초대 사무국장으로서 전 지부장들을 대표하여 민변 전북지부 개설과정, 20년의 역사, 활동 등에 대해서 설명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박민수 변호사 강연 후, 민변 전북지부 8기 사무국장을 역임한 박재홍 변호사의 ‘국정농단 촛불집회 소회’를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6년 뜨거웠던 겨울의 열기는 전북 시민들의 민심을 모았고 전주에서는 풍남문 앞에서 촛불집회가 있었습니다. 그 열기 속에서 허리가 좋지 않음에도 ‘민변 전북지부’의 깃발을 들고 한주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켰던 박재홍 변호사의 소회를 들으며, 민변 전북지부 회원들도 그 날의 추억을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전주 터존부페에서 있었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북지부 20주년 기념식 후에는 근처 가맥집으로 이동하여 진한 뒤풀이를 하며 친목을 다지는 시간을 갖고 행사를 마쳤습니다.

민변 전북지부는 최초 5인으로 시작하여 현재는 활동하는 인원이 30명에 이르도록 성장하였고, 지역현안과 관련하여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현안으로는 ‘장점마을 환경피해사건’과 관련하여 박민수 변호사를 TF팀장으로 하여 수 명의 회원 변호사들이 애쓰고 있고, ‘장수 벧엘장애인의 집 사태’관련하여 김용빈 변호사가 사건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자랑거리로 민변 지부 최초로 지방변호사협회장까지 배출하는 업적을 달성하였으며, 회원들 서로 형·누나·동생으로 호칭하는 애정이 넘치고 끈끈한 지부입니다. 또한 1년에 한 번씩 있는 지부행사 때마다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및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인권동아리 회원들이 자리를 빛내주면서 향후 회원으로 뜻을 같이 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민변 전북지부가 20년을 넘어, 50년, 그 이상 영속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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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9/12/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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