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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를 빛낸 사람들 – 이상호 화백이 들려주는 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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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를 빛낸 사람들 – 이상호 화백이 들려주는 작품 해설

admin | 목, 2021/03/25- 20:23

일제를 빛낸 사람들

– 이상호 화백이 들려주는 작품 해설

인터뷰 : 이지훈
광주지부 사무국장

전남 영암 출신인 이상호 화백은 조선대학교 서양학과 4학년이던 1987년, 조선대학교 미술패 후배들과의 공동 작품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를 제작해 미술인 최초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수감됐다. 악명 높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모진 고문을 받아 출감 후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후 이상호 화백은 불교를 주제로 한 그림에 몰입하면서도 동학혁명, 4·19, 5·18, 통일 등 역사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당초 작년에 개최 예정이던 제13회 광주비엔날레는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4월 1일부터 5월 9일까지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에서 열린다. 광주비엔날레에 초청받은 이상호 화백은 친일파를 주제로 한 ‘일제를 빛낸 사람들’이라는 대작을 출품해 주목받고 있다. 이 작품은 연구소와 광주지부 회원들과 광주시민들의 후원으로 완성되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이상호 화백과의 인터뷰를 광주지부에 부탁하였다. 인터뷰를 기꺼이 맡아준 이지훈 사무국장과 인터뷰에 응한 이상호 화백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 편집자주

 

이상호 화백

이지훈 광주지부 사무국장

 

●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 잘못된 역사가 시작된 곳이 궁금했어요. 부정한 권력 앞에 왜 다수의 민중들이 희생되는 시대가 계속되는지. 저는 그 잘못된 역사의 뿌리에는 ‘친일’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친일의 역사를 바로잡지 못하니까 계속해서 굴절된 역사가 이어온 것입니다. 저는 이 잘못된 역사가 후세까지는 연결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제를 빛낸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 그림 그리는 데에는 얼마나 걸렸나요?
● 작품에 대한 구상은 2019년도에 처음 했구요. 본격적으로 붓을 든 것은 2020년 1월부터였습니다.

● 혼자서 작업하셨나요?
● 아닙니다. 자료를 모을 때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많이 도와줬습니다. 민족미술인협회 가족들도 많이 도와주고 주변 예술인들도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광주지부 김홍길 회원님이 만든 영상을 보니 미리 소식을 들은 많은 시민들이 응원해 주셨더라구요. 시민들의 응원 소리를 들으면 힘이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죠.

● 인물 선정 작업이 꽤 어려웠을 텐데요.
● 맞습니다. 개인, 가문, 단체의 명예가 걸린 일이라 참 민감했어요. 더군다나 친일전력을 가진 인물들의 후손들이 대부분 현재까지도 권력의 일선에 계신 분들이거든요. 그래서 공정성, 객관성을 더하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에 수록된 인물들, 그리고 각종 역사 서적에 올라있는 친일인물들 중 친일 전력이 뚜렷한 인물들만 골라 그렸습니다. 이 그림에 빠진 인물들도 언젠가 제가 그림으로 소환할 예정입니다.

● 그리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 친일파들 얼굴을 1년 내내 들여다보며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엔 정이 들더군요.(웃음) 얼굴을 그리고 옷을 입히고 포승줄로 묶고 수갑을 채우는 동안 제 마음 한켠에선 묘한 연민 같은 게 들었습니다.
당신들도 처음에 태어났을 땐 부모님께 사랑받는 총명한 아이였을 테고 배울 만큼 배운 수재였을텐데 어떻게 잘못된 선택을 해서 후세에게 영원히 지탄받는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동정심이 일었어요. 실제로 그림을 보면 느끼시겠지만 하나하나 다 말끔한 용모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이런 모습으로 후세에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어 남겨진단 말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측은지심이 들지만 그들이 지은 죄는 역사적 단죄를 받아야 합니다.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1995)

 

이상호 제1회 개인전-역사의 길목에 서서 2015.9.10~16

 

● ‘일제를 빛낸 사람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네, 총 92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이 그림 속에 들어있습니다. 가운데에 위치한 크게 그려진 인물들은 지금까지도 그들의 반민족 행적이 이어지는 적극 친일파 19명입니다. 그리고 이들 주위를 73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에 경중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저는 친일의 뿌리이자 주축 역할을 한 인물들을 중앙에 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분야별, 시대별로 인물들을 모아놨습니다.
참고로 분야별 인물은 관료 22명, 경제·언론 14명, 군인·경찰 16명, 교육·예술 27명, 친일단체·종교·밀정 13명입니다. 시대별은 1905년 을사늑약 당시 을사오적을 시작으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흘러갑니다. 을사오적을 중심으로는 대부분 왕족, 관료 출신 매국노들입니다. 을사오적 밑으로는 이용구 송병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진회를 이끌었던 송병준은 경술국치 당시 이완용보다 더한 조건을 일왕에게 내걸었던 일급 매국노입니다. 한때 동학농민혁명에도 참가했던 이용구 또한 나라 팔아먹는 데 앞장섰습니다. 정미칠적, 경술국적 밑으로는 일제로부터 귀족작위를 받았던 매국노들과 경제·금융계에서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던 인물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당시 친일파들은 혈연적으로 많이 엮여 있었는데요. 박영효는 철종의 부마(사위)지만 친일로 돌아서 부를 축적한 친일파의 표본인 자입니다. 우리 지역 화순의 농선이라는 기생과의 일화도 있죠. 박기순 박영철 부자는 곡창지대인 전북지역의 대지주 출신으로 일제에 적극 부역해 부를 축적합니다. 깡말라가는 농민들과는 대조적으로 비만한 체격으로 유명합니다. 한상룡은 이완용의 외조카로 속칭 우봉 이씨은행으로 불렸던 한성은행 전무로 엄청난 부를 축적합니다. 북촌에 가면 백인제 가옥이라는 고택이 있는데 그 집의 원래 주인이 한상룡입니다. 그 옆 민영휘는 친일전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입니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친일전력이 많이 드러나 있는 인물입니다. 나라를 팔아 재산을 늘렸던 친일파들은 나중에 반민특위 1호 검거자인 박흥식이 있습니다. 그 외에 실업계 김성수, 김연수, 금융계 현준호, 김용주, 대지주로는 박기순, 박영철 등 친일 경제인들입니다. 김성수 김연수는 형제지간이고, 현준호와 김용주는 사돈지간이며, 박기순 박영철은 부자지간입니다. 태창직물로 당대 재벌인 백낙승은 일제강점기 때 아들(백남준)을 차에 태워 등교를 시킬 정도로 재산이 많았는데요 당시 차를 총 7대나 가진 거부였습니다. 막대한 재산은 사실 방직공장에서 착취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고혈을 뽑아 만든 재산입니다.

이상호 전정호 공동전시회-응답하라 1987, 2017.4.25~7.30

아래쪽으로 내려오면서부터는 3·1만세의거 이후 다른 형태의 친일파들이 등장하는데 주로 교육 언론 문화계 출신,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친일파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특히 신교육을 받았던 여성 교육계가 대표적이었는데요. 그 인물들을 이곳에 모아 그렸습니다. 김활란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여성계의 대표적 지도인사로 자리 잡지만 나중엔 제자들을 전장으로 내보내는 등 자진해서 일제에 적극 협력합니다. 나중엔 이승만 독재에 부역하고 박정희 독재에도 부역하면서 권력의 해바라기를 자처했습니다. 아직도 이화여대엔 김활란 동상이 서있어요. 다른 여성 친일파들(황신덕, 박인덕, 노천명, 모윤숙 등)도 사학재단의 설립자로, 대표적인 여류 문인으로 아직까지 존경받고 있습니다. 
언론계의 대표적 친일파는 조선일보 방응모와 동아일보 김성수가 대표적입니다. 친일 사설로 일제에 아첨했고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어린 학생들을 전쟁터로 내몰았습니다. 
프랑스는 해방 후 나치에 부역하지 않았던 신문이라도 나치 치하에서 15일 이상 간행했던 신문사라면 모조리 폐간시켰습니다. 국민의 여론과 사상을 바르게 이끌고 나가야 할 언론이 나치 치하 식민지 상황인데도 정상적으로 발행됐다는 것 자체가 반민족행위라는 뜻이었습니다.
프랑스가 언론·문화계 인사들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에 비해 대한민국 두 신문사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언론사들입니다. 너무도 상반된 현실입니다. 우리 문학계를 대표했던 이광수, 최남선, 서정주 등등은 정말 글 잘 쓰는 천재들입니다만 그 좋은 머리를 일왕의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 썼습니다. 2·8 독립선언문을 쓴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이라는 글을 써 한민족을 비하했고 3·1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최남선은 대표적 어용 문인이 됩니다. 더욱 슬픈 일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이들이 독립운동가인 줄 알고 배워왔으며 이들의 작품을 줄줄 외워야만 진학할 수 있었던 시대를 살았습니다. 이들 이후로 문학계에는 수많은 친일파가 양산되는데 김억, 김동환, 주요한, 이무영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예술계 또한 대단한 친일파들이 많습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는 일본 국적을 원했으니 그의 바람대로 ‘에키타이 안’으로 불러야 맞습니다. 유럽 체류 당시에는 친나치 부역 혐의까지 있는 그가 1942년 만주국의 건국 10주년을 축하하여 만든 연주곡이 바로 <만주환상곡>입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만주환상곡>은 <한국환상곡>으로 이름을 바꿔 우리 애국가의 모태가 됩니다.
일본군 찬양 노래인 <선구자>를 독립군 찬양 노래로 둔갑시킨 조두남. <혈서지원> 등 수많은 징병 권유 노래로 수많은 청년들을 사지로 내몬 박시춘, 남인수. 희망의 나라의 실체가 의문인 <희망의 나라>를 만든 현제명. 친일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며 부를 축적한 조선 마지막 어용화사 김은호. 매년 전시체제 영화를 보급하며 나운규의 <아리랑>에 먹칠한 영화인 최인규.

 

이상호 제2회 개인전 – 연필로 그린 부처님(2018.5.2~31)에 출품한 녹원전법

 

일제강점 말기가 되어갈수록 신성해야 될 종교계 또한 친일파들이 장악합니다. 조선신궁에 참배하고 일본신도 침례의식과 궁성요배를 강요했던 불교계 이종욱, 권상로. 개신교의 정춘수, 백낙준, 전필순 그리고 대동아성전을 부르짖은 천주교의 장면.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우리나라가 일제의 병참기지화 정책에 휘말리면서 많은 청년들이 출세를 위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됩니다. 혈서지원을 쓰고 일왕에 충성을 맹세하는 일제 황군이 되는 것이었죠. 바로 친일군인들의 등장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멸사봉공’ ‘견마지로’의 혈서를 쓰고 만주군 장교가 되었던 박정희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만주군벌들이 박정희의
지원 전후로 군국주의 전사가 되기 위해 일제 황군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선택을 하기까진 일본 육사 출신 이응준과 김석원의 역할이 컸습니다. 
이응준(일본육사 26기. 장인 이갑 독립지사 / 사위 이형근 대한민국 국군 군번 1번)은 일본육사 시절 독립군이 되기 위해 탈출한 지청천과 동기였으나 빼앗긴 조선을 되찾는 독립군보다 일본군이 되기로 작정하고 일본군 대좌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김석원은 일본 육사 27기로 일본군보다 더 일본군 같은 맹렬함으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인물입니다. 역시 대좌까지 진급했어요. 이응준과 김석원은 해방 이후에도 친일전력을 가진 군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일제를 빛낸 사람들’

 

두 일본 육사 군벌 외에 1940년을 전후해 만주군벌들의 전성시대가 열립니다. 김백일, 백선엽등 대표적인 친일군인 외에도 화폭이 모자랄 정도로 많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독립군에게 총칼을 들이대던 자들이었습니다. 친일군인들은 박정희 독재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권력을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이들이 독립지사들과 함께 대한민국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는 것이 참 슬픈 현실입니다.
군인 못지않게 경찰 중에도 무수한 친일 악질 경찰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친일경찰로는 노덕술과 하판락이 있습니다. 너무도 잘 알려진 친일행적으로 굳이 따로 해설이 필요 없는 인물들입니다. 다음 작품이 그려진다면 친일경찰을 더 많이 그려넣을 작정입니다. 
마지막으로 해설하고픈 인물은 바로 우봉 이씨로서 제2공화국 때 문교부 장관까지 했던 이병도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뛰어난 역사학자였던 그는 일제 사학자들 밑에서 식민사관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시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조선사편수회 촉탁으로 근무했으며 청구학회, 진단학회 등 학술단체에 관여하면서 수많은 식민사학자들을 길러냈습니다. 이자가 해방 이후에도 심판받지 않고 오히려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서 한국 역사학계를 대표하였고 사학계의 식민유제를 잔존시켰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병도를 그릴 때 너무도 분했고 한편으론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자가 사학계 거두로서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에…

● 이 그림을 통해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 불의는 언젠간 벌을 받게 되어있으며 정의는 언젠가 다시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청산되지 않은 불의의 역사라 할지라도 끝내는 바르게 고쳐지는 것이 인간의 이치이고 자연의 섭리입니다. 불의는 정의에 의해 반드시 청산된다는 것을 그림으로나마 보여주고 싶었어요.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 많은 시민들이 응원해주셨습니다. 힘들 때마다 제겐 큰 힘이 되었구요. 제 그림을 위해 열심히 응원해주신 시민들에게 모든 공을 돌리고 싶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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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nesty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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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정부는 아체 분쟁 당시의 수만여 명에 이르는 피해자들과 가족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생사도 알 수 없는 상태로 정당한 대우와 진실규명, 충분한 보상 없이 방치하고 있다고 국제앰네스티가 아체 분쟁 종식 10주년을 맞아 밝혔다.

2015년 8월 15일은 아체 분쟁의 종식을 알린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10년째를 맞이하는 날이다. 그러나 역대 정부가 약속한 것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문제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동안, 당시의 피해자들은 여전히 스스로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방치되고 있다.

조세프 베네딕트(Josef Benedict) 국제앰네스티 동남아시아 캠페인국장은 “아체 분쟁의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지난 세월은 잃어버린 10년과 같았다. 무력 분쟁은 끝이 났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수만여 명에 이르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진실과 정의,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거의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분쟁 종식 10년을 맞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진심 어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언제까지나 못 본 체하며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아체 분쟁으로 인한 고통을 더욱 연장시키기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군과 아체 주의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자유아체운동(GAM) 간에 수십 년 동안 계속된 무력분쟁으로 민간인을 포함해 10,000명에서 30,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다 2005년 유럽연합(EU)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의 감독하에 평화협정이 체결되었고, 분쟁 중 자행된 범죄에 대해서도 해결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는 13일 7개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발표한 공개서한을 통해, 아체 주민들은 지금도 정부가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실을 인정하는 것

정부와 인도네시아 국가인권위원회(Komnas HAM)의 주도로 당시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주요 조사가 일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단편적인 수준에 불과했을 뿐 실종자들의 생사와 행방을 비롯해 사건 경위에 대한 포괄적인 기록을 작성하지는 못했다. 국가적 수준에서 진상규명위원회를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는 정치적 의지 부족으로 교착 상태에 빠졌다.

2013년 12월, 아체 주 의회는 지역 수준의 진상규명 및 조정위원회를 설립한다는 내용의 조례를 채택하며 긍정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런 진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와 가족들에 대한 정당한 대우

인도네시아 정부군과 지원부대가 민간인을 노려 공격한 경우 중 많은 수가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과, 분쟁 양측이 저지른 인권침해행위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해 이미 강력한 증거가 존재하지만 극히 일부 범죄만이 조사되었을 뿐 독립적인 민간 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국제법상 범죄를 인정하지 않는 인도네시아 형법과 같이 결함 있는 사법제도로 인해 재판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는 거의 없었다. 지난 2000년 설립된 인권재판소는 제한적인 권한만을 지녀, 이곳에서 아체 분쟁 당시의 범죄로 기소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뿐더러 이곳에서 기소된 피고인들은 모두 무죄로 풀려나거나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결국 항소심에서 판결이 번복되었다.

충분하고 실질적인 보상

일부 피해자들에게는 보상을 지급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결국 진전되지 못한 채 필요한 만큼 충분한 포괄적 보상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정부가 지원하는 보상 및 재건 프로그램인 아체재건기구(Ache Reintegration Agency)는 인권침해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으며, 분쟁 중 성폭력 피해를 당한 수많은 여성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국제앰네스티는 2013년 발표한 보고서 <과거를 마주할 때>를 통해 현재 아체 주민들이 처해 있는 참담한 상황을 집중 조명했다.

아체 피해자 대표는 국제앰네스티에 “정부가 왜 아직도 우리가 인권침해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지 알고 싶다”며 “우리가 싸우는 것은 정부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겪은 일을 정부가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잊을 권리가 없다”고 전했다.

권고사항

조세프 베네딕트 국장은 “이제는 아체에서 벌어진 일을 직시하는 데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정부는 분쟁 당시 심각한 인권침해가 자행되었음을 인정해야 하며, 정의 구현과 진실 규명, 보상을 위한 첫걸음으로 즉시 국제기준에 따라 진상규명위원회를 설립해야 할 것”이라며 “지금까지도 ‘사라진’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족들이 있는 한편, 정작 책임자들은 활보하고 다니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분노를 낳고, 이것이 미래에 다시 폭력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또한 EU와 ASEAN 국가에 평화협정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배경정보

공개서한에 서명한 시민단체는 국제앰네스티와 아시아 정의와인권(AJAR), 아체 인권단체 연합(Koalisi NGO HAM Aceh), 분쟁실종피해자위원회(KontraS), 아체 분쟁실종피해자위원회(KontraS Aceh), 인도네시아 인권감시단(Imparsial), 정책연구자문협회(Elsam), TAPOL 등이다.

공개서한 보러가기(영문)

영어전문 보기

A ‘lost decade’ for victims of Indonesia’s Aceh conflict

Indonesia is still failing tens of thousands affected by the devastating Aceh conflict, leaving family members and victims in the dark about the fate of loved ones and without justice, truth and full reparation Amnesty International said ahead of the 10-year anniversary of the conflict’s end.

Saturday 15 August 2015 marks a decade since the peace agreement that signalled the end of the Aceh conflict. But despite promises by successive Indonesian governments, victims are still left to fend for themselves while authorities show little interest in addressing past crimes.

“This has been a lost decade for far too many people affected by the Aceh conflict. Even if the violence has ended, Indonesian authorities have almost completely failed in their duty to provide truth, justice and full reparation to tens of thousands of victims and their family members,” said Josef Benedict, Amnesty International’s Campaigns Director for South East Asia.

“The 10-year anniversary of the conflict’s end must become the start of a genuine effort to address these issues. Indonesian authorities cannot continue to bury their heads in the sand and shirk responsibility – it is only prolonging the suffering in Aceh.”

Between 10,000 and 30,000 people, including many civilians, were killed during the decades-long Aceh conflict between Indonesian government forces and the pro-independence Free Aceh Movement (Gerakan Aceh Merdeka, GAM).

The peace agreement in 2005, monitored by the EU and 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 included commitments to address crimes committed during the conflict. But in an open letter with seven other organizations today, Amnesty International outlines how the people of Aceh are still waiting for the government to make good on these promises.

Acknowledging the truth

Although there have been some important initiatives by the authorities and the National Human Rights Commission (Komnas HAM) to investigate human rights abuses committed, these have been piecemeal at best and failed to establish a comprehensive record of what happened, including the fate and whereabouts of those disappeared. Attempts to establish a truth commission on the national level have stalled due a lack of political will.

In December 2013, the Acehnese local parliament took the positive step of passing a bylaw to establish a local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 but a year and a half later, no progress has been made in implementing it.

Justice for victims and their families

There is overwhelming evidence that many of the violations directed against civilians by Indonesian security forces and their auxiliaries may amount to crimes against humanity and that human rights violations and abuses committed by both sides of the conflict amount to war crimes. Despite this, only a handful of the crimes have been investigated and no one has been prosecuted before independent civilian courts.

A flawed legal framework means few victims have access to the courts, while Indonesia’s Criminal Code does not recognize crimes under international law. The Human Rights Courts that have existed since 2000 have a limited mandate, and all prosecutions before them – none of them for crimes committed in Aceh – have resulted in either acquittals or convictions that were overturned on appeal.

Full and effective reparation

There have been efforts to compensate some victims, but these have not gone far enough and fall short of the comprehensive reparations programme that is needed. The Aceh Reintegration Agency, a government-sponsored compensation and reintegration programme, was not designed to address the harm suffered by victims of human rights abuses, and did nothing to help the many women targeted by sexual violence during the conflict.

In a 2013 report, Time to face the past, Amnesty International highlighted the devastating consequences the current situation has for communities in Aceh.

“[We] want to know why until now the government has not acknowledged that we suffered human rights abuses,” an Aceh victims’ representative told Amnesty International. “We are still fighting, not against the government, but for the government to remember what happened to us. They do not have the right to forget.”

Recommendations

“There is no time to lose in facing up to what happened in Aceh. Authorities must acknowledge that serious human rights violations and abuses were committed during the conflict, and as a first step towards justice, truth and reparation establish immediately a truth commission in line with international standards,” said Josef Benedict.

“Today, family members still do not know what has happened to ‘disappeared’ loved ones and are struggling to get by, while those responsible walk free. The situation is breeding resentment that could sow the seeds of a future return to violence.”

Amnesty International also calls on EU and ASEAN states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ir failures to ensure full implementation of the peace agreement.

Background

The open letter is signed by Amnesty International, Asia Justice and Rights (AJAR), the Aceh NGO Coalition for Human Rights (Koalisi NGO HAM Aceh), the Commission for the Disappeared and Victims of Violence (KontraS), KontraS Aceh, the Indonesian Human Rights Monitor (Imparsial), the Institute for Policy Research and Advocacy (Elsam) and TAPOL.
A full copy of the open letter can be found here: https://www.amnesty.org/en/documents/asa21/2267/2015/en/


월, 2015/08/1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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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욱남구청장은 돌고래의 죽음에 책임지고 사퇴하라! 

고래생태체험관의 국제적 멸종위기종 사육시설등록 취소하라!

또 죽을지 모른다! 자연방류계획 수립하라!

[caption id="attachment_174045" align="aligncenter" width="650"]IMG_2017-02-20 15:22:42 Ⓒ환경운동연합[/caption] 2월20일 월요일 11시, 울산환경운동연합과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는 최근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돌고래 수입과 폐사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울산남구청의 고래생태체험관 장생포항에서 폐사한 돌고래를 추모하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개최하였습니다. 지난 9일 일본 다이지 마을에서 수입해 온 돌고래가 숨진 지 벌써 일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학살행정을 저지른 남구청은 시민들을 향해 사과 한마디 없습니다. 운영자인 남구도시관리공단에서의 단 한 차례의 설명이 전부였습니다. 울산에서만 6번째 돌고래 폐사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4042" align="aligncenter" width="650"]IMG_2017-02-20 15:22:19 Ⓒ환경운동연합[/caption] 이번 사태에 대한 과오는 명백합니다. 수입 전에 일본 측에서 돌고래에 대한 건강 체크에 통과해 부산항으로 들어왔기에 죽음의 책임은 일본이 아닌 남구청에게 있다. 며칠 뒤면 공식적인 사인이 나오겠지만, 폐에 혈흉이 발견됐다는 것은 결국은 운송 중의 외부충격과 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주 원인임을 추측하게 합니다. 운송 중에 무진동이 아닌 일반 트럭에 싣고 평균 70km 이상의 속도로 여러 차례의 눈에 띄는 덜컹거림을 동반하며 울산에 왔음은 많은 시민단체의 영상에 녹화되어 있습니다. 속도가 높을수록 덜컹거림의 충격과 180kg이라는 육중한 몸이 받는 충격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가족이나 무리와 떨어져 생이별하여 오는 과정에서 받는 정신적 충격이 있는 중에서 가해지는 물리적 충격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4044" align="aligncenter" width="650"]IMG_2017-02-20 15:22:35 Ⓒ환경운동연합[/caption] 운전기사가 자신이 운반하는 화물이 무엇인지 몰랐거나 고래의 생태적 특성에 무지해서 그랬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이는 화주인 남구청의 원초적인 책임입니다. 알았음데도 그랬다면 동승하거나 무선으로 수시로 연락하며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남구청의 책임입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남구청은 죽음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사육동물을 이송, 운반하거나 사육하는 과정에서 탈출, 폐사에 따른 안전사고가 없도록 대책을 강구’(제16조의6, 3호)하도록 하고 있고, 이러한 관리기준을 위반할 경우 ‘사육시설의 등록을 취소하거나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사육시설 전부 또는 일부의 폐쇄를 명할 수’(제16조의8, 2항11호)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구청의 이런 행태는 분명 관련법 위반이기에 고래생태체험관의 사육시설 등록이 취소되거나 최소한 폐쇄되어야 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4043" align="aligncenter" width="650"]IMG_2017-02-20 15:22:29 Ⓒ환경운동연합[/caption] 이제 남은 돌고래의 추가 사망을 염려할 때입니다. 어차피 남구청에서도 가장 나이가 든 18세와 15세의 돌고래 두 마리가 천수를 누리리라고 장담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수족관에서의 돌고래의 수명은 본래 타고난 수명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새로 들여온 한 마리와 장꽃분, 고아롱의 죽음 가능성에 대비하여 즉각적인 원칙과 단기, 중기 대책을 세워야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하늘이 준 수명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고, 6마리나 죽음으로 몰고 간 그동안의 잘못된 남구청의 생태학살행정에 대한 자기반성의 길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는 금번의 불법적 사태에 따른 사육시설 등록 취소나 폐쇄이후를 대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4041" align="aligncenter" width="433"]IMG_2017-02-20 15:22:12 Ⓒ환경운동연합[/caption] 우리는 수년간에 걸쳐 고래생태체험관의 생태적인 운영으로의 전환을 끊임없이 요구하여왔습니다. 또한 생태적인 전환에는 의지도 필요하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생태적인 철학이 전제가 되어야 하기에 상상력이 부족하거나 철학이나 정보가 부족한 행정의 현 수준에서는 다양한 정보를 업데이트하며 생태적 철학을 구현하고 있는 시민단체와 협력할 것을 제안 했었습니다. 이제 그 제안에 대해 남구청은 신속히 답할 때가 되었습니다. 분명히 밝히지만, 고래를 보호하려는 시민단체들은 고래도시 남구가 진정한 고래생태도시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잡아가두고 보여주는 전시행정으로 반짝 효과는 누릴 수 있으나 지속가능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들지는 못할 것입니다. 죽음을 예고하며 어거지로 포장된 쇼를 극복하고 생태적 감수성을 고양시키는 제대로 된 생태관광을 통해서만이 지역경제는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만들며 지속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IMG_2017-02-20 15:22:56

2017. 02. 20

울산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바다위원회

월, 2017/02/2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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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5일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후원행사가 있었습니다.

“초여름밤의 기부파티, 초록에 후원하세요”

그 날의 가든파티, 어떤 분위기였는지 들여다볼까요~^^

화, 2017/06/27-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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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 생활임금 쟁취
저임금 여성노동자 결의대회

* 행사 취지
  – 먹고 살만큼의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 돌봄, 청소, 학교비정규직 등 최저임금 당사자들의 사회적 목소리 높임
  – ‘여성=저임금 노동력’ 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 변화

○ 일시 : 2016년 6월 24일(금) 오후 3∼5시
○ 장소 : 서울파이낸스센터
○ 주최 : 전국여성노동조합 / 한국여성노동자회

○ 프로그램
  – 여는 마당
  – 지역 참여자 및 내빈 소개
  – 대회사
  – 연대사
  – 공연 I : 전국여성노동조합 조합원 및 한국돌봄협동조합협의회 회원
  – 현장 발언
      전국여성노조 인천지부 법원분회 청소노동자
      전국여성노조 경기지부 학교비정규직노동자
      한국돌봄협동조합협의회 돌봄노동자
  – 공연 II : 지민주 (민중가수)
  – 결의마당

 

화, 2016/06/1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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