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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일본 지원 받은 인물, 왜 소녀상과 노동자상을 공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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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일본 지원 받은 인물, 왜 소녀상과 노동자상을 공격할까”

admin | 수, 2021/03/24- 22:48

<김운성 작가의 탄원서 바로가기>

[인터뷰] 반일종족주의 저자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한 김운성 작가

▲ 서울 용산역 광장에 자리한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습 ⓒ 김종훈
▲ 서울 용산역 광장에 자리한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습 ⓒ 김종훈

“정말로 우리 사회가 역사정의를 온전히 실천하고 제대로 된 친일청산을 바란다면 일본제국주의를 미화하는 사람들에 대한 확실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사법부가 이번 소송에서 역사정의에 입각한 판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만든 김운성씨가 <오마이뉴스>를 만나 한 말이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2017년 8월 서울 용산역 광장에 세워졌다. 일본에 끌려가 노역을 살다 쓰러진 조선인 노동자를 기리기 위해 민주노동과 한국노총이 기금을 모아 건립했다. 제작은 ‘평화의 소녀상’ 작가로 알려진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맡았다.

문제는 <반일종족주의>의 공동저자로 알려진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인터넷 언론 ‘제3의길’과 자신의 SNS를 활용해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은 일본인과 동일한 대우를 받았다. 강제징용노동자상은 역사왜곡”이라면서 “강제징용노동자상의 모델은 1926년 일본인”이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벌어졌다. 최덕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김소연 전 광역시의원 등 역시 SNS와 인터넷뉴스, 보도자료 등을 통해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이 때문에 김 작가는 부인 김서경 작가와 함께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주동식 제3의 길 대표, 최덕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김소연 전 광역시의원 등 4인에 대해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민사소송 결과가 결코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이미 김 작가 부부는 2019년 말 이 연구위원 등 4인을 상대로 허위사실 등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0월 이들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지난 11일 오후 <오마이뉴스>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설치된 용산역 과장에서 김운성 작사를 만나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들었다. 아래는 김운성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옛날 사진 속 일본인이 모델? 노동자상과 완전히 다르다”

▲ 서울 용산역 광장에 자리한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습 ⓒ 김종훈
▲ 김운성 작가가 직접 비교해서 정리한 강제징용 노동자상과 1920년대 일본 노동자 모습 ⓒ 김종훈

– 명예훼손 형사 소송에 이어 손해배상 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할 때도 그랬지만 강제징용 노동자상도 특정한 인물을 모델로 삼지 않았다.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노동자가 100만 명 이상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특정한 인물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우연 연구위원을 비롯해 일부 인사들은 ‘노동자상의 모델이 1926년에 사진에 나온 일본인’이라고 왜곡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이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노동자상과 관련된 작품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 이우연 위원의 주장이 왜 잘못됐나.
“사실이 아니다. 당장 해당 사진과 비교해도 차이를 알 수 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표현해 낸 작품이다. 얼굴과 시선부터 하늘을 향하고 있다. 탄광을 막 빠져나와 뜨거운 햇살에 눈이 부셔 왼손으로 하늘을 가리는 모습이다. 오른손엔 곡괭이를 들었고, 바지는 허름한 반바지 차림이다. 동상 하단부엔 석탄더미와 이름 없이 사라진 조선인 노동자들의 묘비를 세워 둥글게 모아 놓았다.

반면 이 위원이 제시한 인물은 근심이 가득한 사내의 모습이다. 시선도 눈을 거의 감은 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손은 부상을 당했는지 천을 두른 채 오른손으로 왼손을 받치고 있다. 양발 역시 온전하게 나와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인물을 조각하려면 정면과 좌측면, 우측면, 후면 등 사진이 모두 필요한데 이 단편적인 사진으론 구체적인 표현이 어렵다. 어떻게 작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에 대해 모든 과정을 무시하고 허위사실을 주장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처음 세워진 곳이 일본 교토라고 들었다.
“그렇다. 일본 교토에 단바망간기념관이 있다. 그곳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처음 설치됐다. 조선인 노동자 고 이정호 선생이 평생을 모은 재산을 쏟아 부어 광산을 사들였고 그곳에 기념관이 만들어진 것인데, 지금은 아들 이용식 관장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2016년 여름 제막식 날, 이용식 관장이 작품을 보자마자 ‘아버지와 노동자상이 너무 똑같이 닮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무슨 뜻이겠나? 진폐증을 앓다 47kg 몸무게로 돌아가신 이정호 선생이나 당시 탄광에 끌려간 광부들의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는 거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바닷물과 메탄가스를 뒤집어쓴 채 섭씨 40도가 넘는 지하 1000미터 탄광 속에서 석탄과 광물을 캐다 진폐증을 앓고 떠났다. 젊은 나이에 키도 크고 덩치도 컸던 분들은 다들 갈비뼈와 광대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 됐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처음 만들 때 이들의 보편적인 모습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런데 일본인이 모델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 왜 이 위원을 비롯해 반일동상 공대위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고 보나.
“갈등을 부추겨 노동자상이 문제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 최종적으로는 동상을 없애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의심된다. 특별한 논리나 근거도 없다. 그저 사진 한 장 들고 나타나 노동자상이 일본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놓치지 말아할 것은 이 위원은 2019년 UN인권이사회 정기회의에 참석해 ‘한국인 노무자들의 임금은 높았고, 전쟁 기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살았다’는 망언을 한 인물이다. 그의 주장은 일관되게 일본의 입장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친일 옹호 인사들에게 금전적인 책임 물어야”

▲ 강제징용 노동자상 및 평화의 소녀상을 부인 김서경 작가와 함께 제작한 김운성 작가 ⓒ 김종훈

– 그럼에도 형사소송에서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이 위원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익 때문이다. 돈이 되니까 자꾸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펼치며 공격하고 논란을 조장하고 있다. 실제로 하버드 램지어 교수는 일본에서 유년을 보내고 일본 최고 훈장을 받았다. 전범 기업 미쓰비시의 지원을 받아 일본 우익의 주장을 그대로 강조하는 연구활동을 이어왔다. 이우연 위원 역시 일본 극우단체의 지원을 받아 UN에서 ‘강제동원이 없었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의 왜곡된 주장이 통용되면서 심지어 일본의 전쟁범죄가 없었다는 발언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이들의 발언은 더욱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주장이 한국 내부에서부터 먼저 강조되고 퍼지는 것이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나.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친일청산법(친일찬양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무책임한 발언과 행동에 대해 우리 사회가 온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친일찬양금지법은 ‘국민 통합을 저해한다’라는 이유로 제정이 요원한 상태다.
“솔직히 국내에서 소녀상이나 노동자상을 건립한다고 하면 지역 정치인과 언론이 나서서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 때문에 경제가 막히면 어떡하냐’라는 말부터 꺼낸다. 차라리 해외에선 일본 정부에 대항해 싸우면 되는데 국내는 더 많은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쉽지 않다. 그래서 더 친일청산법안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잘못된 주장을 하는 이들의 이익을 차단할 수 있다. 이번에 광복회에서 독립운동가와 후손을 비하한 웹툰작가 윤서인씨에 대해 민사 소송을 취한 것은 정말로 잘한 일이다. 금전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민사소송을 통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까?
“허위사실에 대한 증거를 모았고 작가로서의 의견서도 제출했다. 재판부가 사실에 근거해 정의로운 측면에서 판단하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본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결과가 기대와 달리 나오게 되면, 반일동상 공대위는 더욱 큰 목소리로 ‘평화의 소녀상과 강제징용 노동자상이 반일을 조장한다면서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할 거라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이 확산되면 종국에는 전 세계에 있는 소녀상과 노동자상 역시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일본인을 모티브로 한 노동자상을 어떻게 용인하겠나? 소녀상과 노동자상이 철거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지극히 바라왔던 목표이기도 하다.”

김 작가가 이우연 위원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선고는 오는 4월 7일로 예정됐다.

김종훈(moviekjh)

<2021-03-2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일본 지원 받은 인물, 왜 소녀상과 노동자상을 공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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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민노래] [다운로드]

안양시민의 노래/ⓒ안양시

[경기=뉴스프리존] 김현무 기자=경기 안양시가 신곡 ‘안양시민의 노래’ 음원을 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고 10일 밝혔다.

개정된‘안양시민의 노래’는 안양출신 고 김대규 시인의 노랫말은 그대로 사용하고,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안예림 작곡가의 멜로디와 안양시립합창단의 합창이 곁들여지면서 새 음원으로 재탄생했다.

안양시청 홈페이지‘안양소개’메뉴에서 개정된 안양시민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시민의 노래 – 안양시청 (anyang.go.kr)(클릭)

재탄생한‘안양시민의 노래’는 잔잔하면서도 우렁차고 희망에 찬 선율로 와 닿는 느낌이다. 다소 진군가적 분위기가 느껴졌던 기존 곡과 차이를 보인다.

예전‘안양시민의 노래’를 작곡한‘김동진’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음악 부문에 수록돼 친일작가임이 드러났다.

시는 이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되는 해였던 2019년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사용을 중지하고, 지난해 작곡을 공모해 안예림 작곡가의 멜로디를 선정한 바 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새롭게 만들어진 안양시민의 노래를 각종 행사 시 선보여 안양시민의 자긍심과 위상을 드높이겠다고 전했다.

<2021-06-10> 뉴스 프리존

☞기사원문: 안양시, 신곡 ‘안양시민의 노래’ 시 홈페이지 음원 공개

※관련기사 

☞여성종합뉴스: 안양시, 새롭게 작곡한 ‘안양시민의 노래’ 음원 공개

☞아투시티뉴스: 안양시, 새롭게 만들어진 ‘안양시민의 노래’홈페이지에 공개

금, 2021/06/1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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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금, 2021/06/1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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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대종교를 중광해 독립운동가들의 스승으로 불렸던 홍암 나철의 일대기인 <나철평전>을 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조현 기자

청산리전투의 김좌진, 봉오동전투의 홍범도,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역사가 신채호, 임시정부 대통령 박은식과 국무령 이상룡, 작사가 이은상, 최초 비행사 안창남, 마라토너 손기정, 이동휘, 정인보, 안희제, 지청천, 이범석, 지석영, 이동녕, 김규식, 신익희…. 독립운동사의 주역인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대종교인으로, 대종교를 부활시킨 스승 홍암 나철(1863~1916)의 대의를 따랐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종교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인 나철의 삶을 조명한 <나철평전>(꽃자리 펴냄)을 낸 김삼웅(78) 전 독립기념관장을 지난 4일 만났다.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꼽은 친일부역자 5천명 가운데 종교인이 200여명인데, 대종교인은 한 명도 없었다”며 “그런데도 나철과 2대 교주 김교헌, 청산리전투를 이끈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종사 등 대종교 지도자 3인의 묘소가 아직도 간도 들판에 방치돼 있으니 한민족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통탄했다.

대종교 부활시킨 스승 ‘나철평전’ 펴내
김좌진·홍범도·이회영·신채호 등등
수많은 항일지사들 대부분 ‘대종교인’
“친일부역자 종교인 중엔 한명도 없어”

박정희때 고문 후유증으로 집필 힘들어
“알수록 ‘놀라운 인물’ 전율 느끼며 써”

대종교를 중광한 독립운동 지도자 홍암 나철. <한겨레> 자료사진

“2·8독립선언과 3·1혁명을 촉발한 대한(무오)독립선언은 대종교가 주도했다. 또 3·1혁명 이후 중국 상하이에 세운 임시정부의 의정원 35인 중 28인이 대종교인이다. 청산리전투, 봉오동전투 등 항일투쟁의 주력도 대종교인들이었고, 국학·역사·한글운동도 대종교가 주도했다. 그 뿌리가 나철 대종사다. 독립운동사에서 기억해야 할 첫번째 인물로 꼽힐 만한 나철의 이름만이라도 들어본 사람이 몇명이나 될지….”

김 전 관장은 말문을 잇지 못했다. 온몸을 민족의 재단에 바쳐 신자 10여만명이 일제에 의해 목숨을 잃고 종단 자체가 산산이 부서져 버린 대종교와 나철을 언급할 때마다 그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지금까지 최제우, 황현, 전봉준, 김개남, 손병희, 안창호, 김성숙, 한용운, 안중근, 김창숙, 여운형, 함석헌, 장준하, 장일순, 송건호, 김대중, 노무현, 신영복 등 줄잡아 40여명의 평전을 썼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타자를 칠 줄 모른다. 오직 손글씨로만 써왔다. 근래 들어서는 손이 많이 떨려 원고 작업이 더욱 어렵다. 박정희 독재 시절 <민주전선>을 발간하면서 끌려가 고문 당한 후유증 때문이다. 떨린 것은 손만이 아니었다. <나철평전>에는 ‘한 놀라운 인간’에 대한 필자의 전율이 스며있다.

나철은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 석학 왕석보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29살에 과거 급제해 고종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는 사관을 맡았다. 33살 때 징세국장에 임명됐으나 사양하고 낙향했다고 한다. 이후 10년간 민족의 뿌리인 단군사상을 기초로 입산수도한 나철은 1905년 을사늑약이 맺어지자 비밀결사 ‘자신회’를 조직해 을사오적 처단을 주도했다가 1907년 10년 유배형을 받았다. 외딴섬인 전남 신안 지도로 유배를 갔다가 민심을 두려워한 고종의 특사로 석방됐다.

“나철은 일제 침략에 맞서기 위해서는 국조 단군을 구심점으로 삼아야 한다며 단군교를 ‘중광’했다. 중광이란 우리 민족이 믿었던 옛 종교를 되살린다는 것이다. 그러자 기라성 같은 지식인과 우국지사들이 몰려들었다. 일제는 국권침탈 뒤 제일 먼저 단군 관련 책 20여만권을 압수해 불태우거나 일본으로 밀반출하며 1918년까지 민족말살책을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나철은 이런 일제의 탄압을 피해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고 1914년 망명해 백두산 인근 청파호로 본부를 옮겼다. 대종교 신자가 수십만명으로 늘자 일제총독부는 기독교, 불교, 유교만 공인 종교로 인정하고 대종교는 ‘유사종교단체’로 분리해 악명 높은 경무국에서 감시하게 했다. 더 이상 포교가 어렵게 되자 나철은 1916년 일왕과 총독, 신자들에게 글을 남기고 구월산 단군사당에서 순명을 택했다. 그의 죽음 뒤 대종교인들의 항일투쟁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김 전 관장은 “일제 때 수많은 사이비 교주들과 달리 나철은 종교적 위세를 보이지 않았고 대단히 검소하고 서민적이었다. 주검도 상여가 아닌 지게로 옮겨 화장하고, 부고도 돌리지 말고, 제사에도 밥 한그릇 찬 하나만 놓으라고 유언했다”며 “박은식은 추도사에서 그를 ‘민족사에서 가장 빼어난 인물’이란 뜻으로 ‘만세의 종사’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최근 여당 국회의원들이 교육이념에서 단군사상의 핵심인 ‘홍익인간’을 빼려는 시도를 했던 것에 대해 “역사 공부를 안한 것인지, 역사의식이 없는 것인지”라며 혀를 찼다. 그는 “목사인 규암 김약연의 용정 명동학교는 기독교학교임에도 교가에 ‘한배검 단군의 자손의 긍지’를 담았고, 교실 뒤엔 예수 사진과 함께 단군 영정을 걸었다. 기독교인 도산 안창호는 평생 단군상을 몸에 지니고,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대규모 단군 집회를 개최했다. 이승만도 1921년 <독립신문>에 ‘한배검은 인류의 스승이셨다’고 썼고, 기독교인 백범 김구도 조선인 치고 대종교인 아닌 사람이 없다고 했다”며 “해방 후 미군정의 반대를 무릅쓰고 홍인인간을 ‘인간에 대한 최대한의 봉사’로 번역해 교육기본이념으로 삼게 한 것도 기독교인 백낙준 박사였다”고 설명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email protected]

<2021-06-08> 한겨레

☞기사원문: “독립운동 정신적 지주 ‘대종교의 혼’ 아직도 간도 떠도니 통탄스럽죠”

화, 2021/06/15-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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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전투 격전지에서 미군기지 건설용 매립재 채취 추진
일본 정부 “채취 장소 미정…유골 안 들어가도록 눈으로 확인”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소재 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일본 정부는 이 비행장을 대체할 군사 시설을 건설하겠다며 오키나와 헤노코(邊野古) 연안을 매립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제 강점기 희생된 조선인 유골이 섞인 토사가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미군 기지 공사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유해 수습 운동을 벌여 온 일본 시민단체는 한국·미국 유족과 힘을 모아 공사 중단을 촉구할 계획이다.

오키나와 본섬 남부에 있는 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같은 섬 중부 헤노코(邊野古) 연안으로 옮기는 사업이 진행 중인데 일본 정부가 공사 계획을 일부 변경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오키나와의 미군 해병대 기지인 ‘캠프 슈와브’ 인근 바다에서 매립 공사 등이 진행 중이다. 일본 정부는 후텐마 비행장을 대신할 새로운 기지를 이곳에 건설 중이다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전쟁 희생자 유해가 다량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채취한 토사 등을 매립재로 사용할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일본 방위성은 오키나와의 미군 해병대 기지인 ‘캠프 슈와브’ 앞바다를 매립해 후텐마 기지를 대체할 새 비행장을 만들고 있는데 연약한 지반을 개량하기 위해 매립재 종류 등을 바꾸겠다며 작년 4월 21일 오키나와현에 공사 계획 변경 승인을 신청했다.

7일 연합뉴스가 계획서의 세부 내용을 확인해보니 2차 대전 말기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 현장인 오키나와 본섬 남부 이토만(絲滿)시와 야에세초(八重瀨町)가 매립용 토사 등을 채취할 장소로 기재돼 있었다.

[그래픽]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공사 매립재 채취 장소 (서울=연합뉴스) 장예진 기자 = [email protected]

오키나와에서는 1945년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격렬한 지상전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주민, 일본군, 미군 등 약 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오키나와현 집계)된다. 희생자 중에는 한반도에서 동원된 조선인도 포함된다.

희생자 유해 수습이 미흡해 이토만을 비롯한 격전지에서 발굴이 계속 진행 중인 상황이다. 변경된 공사 계획이 승인되면 유골이 섞인 토사가 매립용으로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유해를 수습해 유족에게 돌려주는 운동을 하는 현지 시민단체 ‘가마후야'(ガマフヤ-) 등은 일본 정부의 공사 계획 변경에 반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토사 등을 어디서 조달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획서가 “적정한 조사를 거쳐 채취 장소 등을 결정한다”며 여지를 남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존 계획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이토만과 야에세가 변경된 계획서에 파쇄된 암석을 채취할 후보지로 명시된 것을 보면 결국 이 지역에서 채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2019년 2월 15일 일본 오키나와(沖繩) 기노자손(宜野座村)의 미군의 옛 민간인 포로수용소 주변 유골 발굴 현장에서 오키나와의 시민단체 ‘가마후야’의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 대표가 유골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계획서는 이토만과 야에세에서 파쇄된 암석 3천160만㎥를 채취하는 방안이 기재돼 있다. 이는 오키나와현 내부에서 조달할 파쇄석(4천476만㎥)의 약 70% 해당한다.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67) 가마후야 대표가 올해 3월 단식 투쟁까지 하며 반대에 나서자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은 “개발 전에 유골이 없는지 육안으로 사전 조사를 하고 유골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호(壕·구덩이)가 있는 장소는 개발하지 않는 등 유골을 배려하며 사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맨눈으로 유골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랜 기간 방치된 뼈는 전문가가 아니면 식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채취할 토사 등의 양에 비춰보면 유해가 포함됐는지 철저히 확인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마후야는 한국 단체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02-2139-0462)와 민족문제연구소(☎ 02-969-0226)를 통해 오키나와 유골 발굴 및 DNA 감정에 참여할 한국인 유족을 모집하고 이들과 힘을 합해 일본 정부에 매립 계획 취소를 요구할 계획이다.

한국인 희생자 이름 (오키나와=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오키나와(沖繩)현 이토만(絲滿)시 소재 ‘평화기념(祈念:이뤄지기를 비는 것)공원’에 한국인 전쟁 희생자 이름을 새긴 비석인 각명비(刻銘碑)가 설치돼 있다.(위) 각명비에는 히코산마루 피격 사건으로 희생된 명장모(왼쪽 하단) 씨와 김만두(오른쪽 하단) 씨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이들은 미국 유족 참가자도 모집한다.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오키나와대 지역연구소 특별연구원이 현대사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 씨가 발간한 명부 자료와 자체 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바에 의하면 오키나와 전투에 조선인 3천461명이 군인이나 군속(군무원에 해당)으로 동원됐고 이 가운데 701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노무 동원된 이들이나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이들을 제외한 숫자다.

기록으로 파악되지 않은 이들을 포함하면 실제로 동원되거나 사망한 조선인은 이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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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7> 연합뉴스

☞기사원문: 조선인 유골 공사장에 묻히나…日NGO “한미 유족과 반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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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1/06/1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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