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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지나가는 바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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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지나가는 바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

admin | 화, 2021/03/23- 19:29

서울의 아파트 값 폭등은 민주당의 지지율을 곤두박치게 만들었다. 다급해진 정부는 신도시 건설 등을 대책으로 세웠으나 이 과정에서 LH공사의 일부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하여 신도시 건설 예정 지구에 땅을 사전 구입하여 투기를 하였다는게 드러나고 이 사건은 모든 공무원들과 선출직, 임명직 공직자들의 땅 투기와 농지보유 실태 조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방치되거나 외면되어 왔던 농지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헌법 제 121조 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되어 있다.

농지는 농사짓는 사람이 소유하고 농지를 빌려서 농사를 짓는 소작제도는 금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헌법은 이렇게 농지의 소유와 이용을 농업 생산에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각종 다양한 방법으로 비농민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위법에 틈새를 만들어 놓았으며 또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으나 농사를 짓는 것처럼 위장하여 농지를 소유하는 불법 소유도 늘어났다. 그리하여 전체 농지의 절반이 비농민 소유로 되어 있다. 남의 이름을 빌려서 소유하는 명의 신탁 농지까지 포함하면 전체 농지의 70% 이상이 농민이 아닌 사람에게 넘어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이렇게 까지 훼손되면서 비농민이 농지를 취득하는 이유가 뭘까?

이 답은 이번 LH공사의 직원들이 불·탈법적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투자 불문율은 ‘돈을 땅에다 묻어 놓으면 손해보는 법은 없다’이다. 생산의 삼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농업이외의 산업도 땅이 있어야 하고 주거나 사무실 기타 인간의 산업 활동에는 땅이 필요하다. 도시가 확대되어 새로운 주거단지나 산업단지를 조성하려면 땅이 있어야 하는데 이 때 필요한 땅은 산이나 농지를 전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동안 농지를 전용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보상비가 지급되거나 지가의 상승으로 엄청난 차액을 실현하면서 ‘부동산공화국’이라는 오명도 생기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아파트나 땅을 사 놨다가 졸부가 되는 사람을 보면서 박탈감과 열패감을 가지고 사회를 원망하게 된다.

이렇게 농지(토지)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투자금액의 몇 배가 되는 보상으로 응답할 것이라는 비정상적인 상식이 농민이 아닌 사람을 농지 구매자로 만들고 있다.

땅을 통한 손쉬운 불로소득이 있으니 농지는 농사를 짓는 땅이 아니라 투자 대상, 언젠가 개발이 되면 큰 돈을 벌어줄 ‘황금알을 낳을 거위’가 되는 것이다.

이런 불로소득, 왕창 떼돈의 사례가 이번 LH공사 직원들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농지를 매입한 일이다. 이 일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심각한 불신을 만들기는 했지만 기실 농지를 갖고 싶고 부동산을 통한 일확천금은 할 수가 없어서 못하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 부족 문제, 농지의 비농민 소유와 훼손의 문제는 지금 사회적 이슈로 올라와 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잠잠해지지 않을까 싶다. 언론과 연구자, 부동산 운동가들은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농지의 불·탈법 투기와 서울의 부동산 문제는 한 칼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서울의 부동산 문제는 수도권 집중화 특히 서울 시민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경제의 서울 집중을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풀기 어려운 일이다.

농지 문제 해결은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지금은 농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만들까를 준비해야 한다.

헌법의 경자유전의 원칙은 이미 사문화 되어 있으니 앞으로 개헌을 할 때 이 조항을 없애자는 주장들이 꽤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사문화되었다는 이 조항을 아예 헌법에서 제외하면 어떻게 될까? 이건 가까운 대만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대만이 헌법에서 경자유전의 원칙을 없애자 바로 농지값이 일곱배 정도 뛰었고 이제 농지는 거의 다 비농민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 농민은 언제 농토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농사를 지어야 한다. 시설투자를 할 수도 없다.

대만 사례를 보면 헌법 조항은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비농민들이 더 이상 농지 소유를 유지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고 제도를 고쳐서 농지를 농민들이 소유하거나 공적 소유로 바꿔야 한다.

상속이나 이농으로 영농을 하지 않는 농지 소유자에게는 처분의무를 부과하고 주말체험 목적의 농지도 사적 소유를 금지하고 지방정부가 이를 사들여 텃밭 농사를 원하는 시민들에게 임대하여야 한다. 또 차명 소유 농지는 기한을 정해서 그 기간 안에 처분하지 않으면 등기권자의 권리를 인정하게 한다. 이미 농지 가격은 농사를 지어서 매입자금을 갚을 수 없을 정도로 올라서 법과 제도를 고친다 하더라도 농민들 특히 신규 창업농들이 농지를 구입하기는 쉽지 않다. 비농민 소유 농지를 농민들이 매입하기 어렵다면 지방 정부와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이 이를 매입하고 농민들에게 장기임대를 하여 안정적인 영농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농민들 중 자식에게 농업을 승계하는 농가는 5%도 채 안된다. 그 5%의 승계농들도 대부분 한우나 젖소, 돼지, 닭 등 대규모 축산농가이거나 수 만평 이상 쌀농사를 짓는 농가들이다. 그 외의 품목이나 농지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신규농에게 맡겨야 하는데 농촌에 들어와 농사를 짓기에는 이들이 감당해야할 부담과 몫이 적지 않다. 주거 시설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농사를 지어서 바로 수익이 나지 않으니 1~2년은 먹고 살 생활비가 있어야 한다. 농사지을 땅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40% 대 초반인 식량자급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비어가는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농지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힘이 떨어져 가는 지금 정부에서 강력한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다음 정부 초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이재욱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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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조직, 국회사무처

국회 지원부서는 폐쇄적이다. 언터처블이다. 행정부의 감사감찰, 수사기능이 여기에 미치지 않는다. 국회입법고시 출신들이 강한 결속력으로 승진이나 혜택을 독점하고 비리는 서로 감춰준다. 국회의 주인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사무처 직원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 11월 국회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남양주시갑)이 한 발언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극심한 불신은 국회가 그 만큼 힘 있는 기관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국회가 반대하면 그 어떤 것도 움직일 수 없다는 일종의 ‘패배감’도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우리가 찬찬히 그 실상과 근원을 들여다보면, 국회 시스템의 기본을 장악한 세력은 “4년 계약직인 국회의원”이라기보다 오히려 붙박이 공무원인 국회 입법관료 집단일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국회의원은 빙산의 ‘일각(一角)’이고, 그 빙산의 ‘근저(根底)’는 입법 관료들이다. 이들 입법관료들의 힘은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강하다. 사실상 입법권을 좌지우지하는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비롯하여 국회 예산과 운영에서도 실질적 지배자는 바로 입법관료라 해도 결코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국회사무처란 마땅히 명실상부하게, 문자 그대로 국회의 사무 및 관리(administer)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의회 시스템에서 행정 사무관리 업무를 보조, 지원하는 기관이 비대해짐으로써 결과적으로 행정부를 연상하도록 하는 제2의 관료체제로 전환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 사무처의 경우, 바로 이러한 행정관리 업무를 중심으로 관료적 질서를 구축하면서 사실상 제3의 세력 집단으로 성장해 있다. 이는 입법관료가 대표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국회사무처가 단지 국회의원을 보조하는 입법지원 기구일 뿐이라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비선실세, 법원행정처와 국회사무처

법원의 행정을 지원하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설치된 법원행정처가 실제로는 법원의 최고 권력을 장악한 사례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국회사무처와 같이 본래 행정과 사무의 보조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권한이 점점 확대되어 전도본말의 행태가 나타나기 쉽다. 법원행정처와 국회사무처를 연속 취재해 보도했던 모 방송국 PD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취재과정에서 드러난 국회사무처의 여러 행태는 법원행정처와 완전히 동일했다.”고 밝혔다. 정보공개운동을 실천하고 있는 전진한 씨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적폐가 어디냐는 온라인매체 ‘오마이뉴스’의 기자에게 질문에 서슴없이 국회사무처라고 단언한 바 있다.

국회 예산 운영도 사실 문제다. 상식적으로 말해서, 어느 기업이든 국가 기관이든 ‘돈줄’을 쥔 자가 가장 힘이 센 사람이고 사실상 주인인 셈이다. 정부에서 기재부가 힘이 센 것은 바로 돈의 힘이 아닌가?

그런데 국회의원도 국회 사무처로부터 월급을 비롯하여 각종 운영 경비를 받는다. 커다란 문제로 부상되었던 ‘특활비’도 사무처로부터 받고 각종 활동에 대한 각종 명목의 비용 역시 사무처로부터 수령한다. 또 ‘우수’라는 평가와 지출 모두 사실상 사무처의 ‘권한’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거꾸로 국회의원들이 사무처에 잘 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너무 깊고 큰 것이어서 국회의원에게 돈까지 맡기는 것은 절대로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국회사무처가 검토보고 권한과 함께 이렇게 예산과 관련 운영을 ‘독점’하기 때문에 그 권한 역시 크게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주객전도의 적나라한 현장이다.

이들 국회 사무처를 비롯한 이들 국회 기관들이 사실상 유일하게 감사를 받는 곳은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대개 “자기 식구”라는 차원에서 매우 온정적인 분위기로 처리된다. 그러니 사실상 그 어디에도 국회기관들을 감독, 감사하는 곳이 없다. 이른바 무풍지대이자, ‘온실 속 화초’다. 하지만 감시와 견제가 없는 곳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은 만고의 철칙이다.

그러는 가운데 그간 국회에서는 2천 억 원 예산 규모를 넘는 의원회관을 비롯하여 의정관, 국회 한옥, 어린이집 등등…… 그 아름답던 숲과 아름드리나무들을 베어내고 파괴하면서 건물들은 계속하여 새로이 지어졌다. 지금도 국회 한 켠에서는 신축 건물들이 또 지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다지 투명하지 못한 이 과정에 상당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특히 2천 억대 규모로 진행되었던 의원회관 공사에서는 국회 고위층 비리설이 파다하게 퍼지기도 하는 등 국회에서 새 건물이 올라갈 때마다 어느 누구를 위한 사업이라는 풍문이 돌곤 한다. 그 명칭부터 이미 국적 불명인 ‘국회 스마트워크센터’는 총 646억 원이라는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시작부터 낙찰가가 입찰 예정가격을 초과해 말썽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전근대적이고’ ‘비정상적인’ 행태는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

 

국회사무처, 문자 그대로 사무와 보조에 그쳐야 할 조직

그러나 선진국 의회에서는 이와 전혀 반대다.

예를 들어, 독일 의회 사무처의 역할은 회의 준비 혹은 회의장 정리 등 그야말로 보조적인 차원의 업무를 수행하고 직원 역시 대부분 실무자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무처가 그 명칭과 실질이 부합하는, 명실상부한 ‘사무처’이다.

독일 연방의회조직도 처국과

덧붙이자면,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영국 등 국가의 의회에서는 의장과 양당 대표들로 구성되는 “이사회”(영국의 경우에는 하원위원회가 이에 해당하고, 독일의 경우는 최고평의회가 이와 유사하다)가 국회 내 조직의 인사와 예산을 총 관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산의 경우에는 ‘이사회’의 ‘재무회의’가 매주 1회 개최되어 재무회의의 승인 없이는 의회의 모든 지출이 될 수 없다. 사실 이러한 시스템이 정상이다. 이렇게 ‘돈줄’을 장악함으로써 의원들은 의회의 진정한 ‘주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국회사무처란 마땅히 명실상부하게, 국회의 사무 및 관리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함으로써 그 명(名; 이름)과 실(實; 내용)이 부합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타이완 입법원에는 별도의 사무처가 없고 대신 입법원 산하에 비서처, 의사처, 공보처, 총무처, 자문처를 비롯하여 법제국, 예산중심(中心), 국회도서관 그리고 의정박물관을 두고 있다.

미국 의회의 사무처 역시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의회의 행정조직은 예외 없이 이러한 형태의 조직으로 구성된다. 의원을 행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설치된 의회 사무처가 오히려 의원 본연의 업무를 침해하는 월권의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차단되어야 한다. 미국 의회의 경우, 1946년과 1970년 두 차례에 걸쳐 ‘입법부 재조직법’을 제정하고 입법지원 조직을 획기적으로 강화시켰다. 우리도 이를 모델로 하여 국회의원들로 구성되는 가칭 ‘입법부강화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입법부 재조직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서 현 국회 행정조직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여 진정한 입법지원 조직으로서의 국회 공무원 조직을 정립시켜야 한다.

특히 국회 전문위원은 이제 본래의 취지대로 ‘전문가’로 구성되어야 한다. 우리 국회도 처음에는 ‘국회 전문위원’은 의원들을 지원, 보좌하기 위하여 각 분야의 유능한 전문가를 상임위원회에서 의원들이 직접 선발했었다. 하지만 이는 유신 정권에 의하여 결국 전문가가 아니라 관료들이 독점하도록 ‘변형’되었다.

이러한 왜곡은 이제 바로잡혀야 한다. 그리하여 국회의원이 진정으로 국회의 주인이 되고 명실상부한 ‘전문가’들의 입법지원 활동에 토대하여 진실로 국회다운 국회, 일하는 국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화, 2020/05/0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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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서를 앞서 최원식 교수의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이라는 구절에서부터 풀어가 보기로 하자. 남북연합이란 분단체제론에서 제기해온, 분단체제 극복과 변혁을 위한 핵심적인 방법론이다. 그런데 그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 부정론, 극복론, 변혁론이지만, 그 부정, 극복, 변혁을 위해서는 분단체제의 존재와 존속이 상정되어야 한다. 이러다 ‘분단체제’가 ‘분단체제 극복’의 과업 안에 포함돼 어느덧 그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분단체제론과 분단체제를 혼동하는 현상도 생겨난다. 결국 부정했던 대상을 인정하고 공존하게 되는 딜레마가 분단체제론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를 ‘분단체제론의 곤경(딜레마)’이라 부르자.

그런데 최원식 교수가 보여주었듯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분단체제는 ‘분단된 남북을 연계시키는 불일불이의 상태’, 즉 그 자체가 “통일의 최종형태”가 될 수도 있는 상태로 격상되는 단계로 나갈 수도 있다. 부정의 대상이었던 분단체제가 소극적인 인정을 넘어 이제 적극적인 긍정의 대상으로 완전히 탈바꿈해버린다. 이것을 분단체제론의 역설(패러독스)이라 부르기로 하자. 이 분단체제론의 역설은 최 교수의 언급을 통해 그 순수한 형태를 드러냈지만, 그 역시 분단체제론의 이론 구조 안에 잠재해 있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애초부터 백 선생의 분단체제 개념 자체에 부정과 긍정의 2중 계기가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분단체제의 부정적 현상을 강조해왔지만 이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었고, 이론적으로 핵심적인 지점은 분단체제란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라는 발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하나의 체제’라는 발상 속에는 ‘분단의식’ 또는 ‘반쪽국가의식’의 강렬한 ‘분단부정의 정언명령’이 ‘무의식적 금압’으로 깊이 깔려 있었던 것이고,(이 책, 37~46쪽) 그렇기 때문에 ‘한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 ‘두 개의 코리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양국체제론에 대해 그토록 강한 거부감을 보이게 된 것이다.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란 ‘하나’의 체제이기 때문에 ‘하나(분단체제)에서 하나(통일)로’ 갈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양국체제에 대한 반발의 근원이 있다. 양국체제론은 한반도 상태를 ‘하나’의 체제가 아니라 두 국가 상태라 하니, 이것은 애초부터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것 아니냐고 단정해버린다. 너무나 단순한 이해가 아닐 수 없다. 하나가 되자면 우선 둘이 서로 인정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것이 양국체제다. 그런데 그렇게 둘임을 서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하나가 되자고 하면 ‘먹느냐 먹히느냐’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남북이 경쟁적으로 적대와 불신을 고조시켜왔던 체제가 분단체제였고, 그 분단체제가 통일을 가로막아왔던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 장애물을 치우고 양국체제가 정착되어야만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했다.

분단체제론은 비원(悲願)의 언어인 ‘분단’을 동시에 희원(希願)의 언어로도 사용하고 있다.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는 고통이자 동시에 희망이다. 그렇다 보니 분단체제론의 서술 속에서는 이렇게 한쪽으로는 비원과 고통 그리고 다른 쪽으로는 희원과 희망이라는 정반대의 가치와 정서가 ‘분단체제’라는 하나의 개념을 통해, 이때와 이 장소에서는 이 얼굴로, 저때와 저 장소에서는 저 얼굴로, 번갈아가며 널뛰기 하듯 나타난다. 분단체제론 측에서야 그것이야말로 ‘분단체제’의 양면성과 복합성의 전체상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자부할지 모르겠지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분단체제가 도대체 이것인지 저것인지 자꾸만 헷갈리게 만드는 식자들의 악취미이거나 고질적인 병통이 아니냐고 항의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순전히 이론적으로만 보자면 무슨 악의나 악취미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고, 분단체제론에 내재한 곤경과 역설이 필연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일 뿐이다.

시간적으로 보면, 분단체제론을 처음 제기했던 90년대 초반에는 분단체제의 부정성에 대한 비판과 민중주도 분단극복의 운동성에 대한 강조가 논의의 표면을 압도하여 ‘하나의 체제로서의 분단체제’라는 이론적 핵심이 갖는 함의를 덮고 있었다. 그러다 1997년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라는 글에서부터 분단체제의 부정적 파생 현상보다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로서 갖는 분단체제의 적극적 의미에 대한 인정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이는 1999년에 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새 발상」에서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국가연합’에 대한 적극적 강조로 이어진다. 분단체제 상태에서 연합을 하다 어느 순간 문득 통일이 된다는 발상이다. 2005년에 쓴 「6·15 시대의 한반도와 동북아평화」에서도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로서의 남북 상태가 연방·연합제의 조건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기조는 이후 출간된 저서들에서 일관되게 유지되어 2012년의 「‘포용정책 2.0을 향하여」에서 종합된다. 그러다 2018년에 이르면 백 선생은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말에 “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말까지 더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최 교수의 표현대로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를 상정’하는 것이라면, ‘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 건설’이라는 말을 새로 도입하여 ‘불일불이의 분단체제 상태의 장기화’에 대한 적극적 인식을 한 단계 더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분단체제론 30년 궤적 속에서 분단체제는 그 30년간 흔들리고, 허물어지고, 해체되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 분단체제에 대한 백 선생 자신의 기왕의 표현을 통해서 그러하다. 먼저 2006년 출간된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의 머리말이다.

벌써 8년 전의 일이 되었지만,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책 제목을 달면서 당시로서는 약간의 모험심을 발휘했다. 분단체제가 안 흔들리면 어쩔 거냐는 주위의 은근한 귀띔도 없지 않았다 …… 지금 돌이켜 보면 — 이것이 이번 책의 주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한데 —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남북에서 그것을 받쳐주던 군사독재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1987년 6월부터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었다. 따라서 1997~1998년께 가서야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제목을 생각해낸 나는 현실에 뒷북이나 치며 따라가는 지식인의 한 표본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그런 지식인들의 세계에서는 2000년 6월의 남북공동선언으로 ‘6·15 시대’가 열리기 이전에 분단체제의 흔들림을 공언했다는 점에서 얼마간 앞서간 형국이 되었다 …… 6·15 공동선언 이후의 세월 동안, 애초의 부푼 기대가 갖가지 난관으로 좌절을 겪는 가운데서도 남북관계가 꾸준히 진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진작에 흔들리던 분단체제가 드디어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며 ‘6·15 시대’가 곧 분단체제의 해체기에 해당한다는 믿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이렇듯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고, 허물어져도 허물어지지 않고, 해체되어도 해체되지 않았다. 이렇게 글을 쓴 지 12년이 흘러 이제 촛불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2018년에도 백 선생에게 분단체제는 여전히 마찬가지다.

세월호 때나 탄핵행동 때 무작정 ‘가만있으라’던 권력자들은 몰락했고 그들의 노골적인 ‘좌파·종북’ 몰이는 자유한국당 내에서조차 신용을 잃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반공수구세력보다 훨씬 뿌리가 깊고 신축자재한 것이어서 일반민중더러 ‘가만있으라’는 기득권층의 논리는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재생될 수 있다.

과연 그토록 신축자재한 분단체제에 대응해야 하는 분단체제론 역시 최소한 그만큼은 신축자재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래야 분단체제를 극복·변혁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신축자재한 분단체제론이 본 2018년의 분단체제는 단순히 “일반민중더러 ‘가만있으라’는 기득권층의 논리”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다.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닌” 무엇이 되었다.

통일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러나 전쟁을 또 한번 하는 것보다는 지금 상황이 차라리 낫다 하는 게 거의 국민적인 합의사항이 돼버렸어요. 그게 분단체제의 한 기반이죠. 그러니까 분단체제라는 게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쨌든 1953년부터 지금까지 전쟁이 다시 안 일어나고 살아왔으니까 세계의 다른 분쟁지역과 비교해보면 굉장히 행복한 편입니다. 아주 행복한 것은 아니고 그래도 상대적으로 다행스러운, 중동의 여러 지역이나 발칸반도 어디하고 비교하더라도요.

아무리 불만족한 현실이더라도 그래도 거기서 만족할 구석을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 인간이고 인간의 삶일 것이다. 현상 인정의 심리적 장치가 없다면 삶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렇듯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에 ‘분단체제’라는 이름을 내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분단체제’가 마치 ‘삶의 조건’, ‘인간 조건’ 수준으로 범박화되기도 하고, 동시에 초월화되기도 한다. ‘분단체제’란 민족 간의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고야 말았던 체제다. 전쟁 후의 평화도, ‘경제성장’도 항상 조마조마한 전쟁 위기의 칼끝에서 이뤄져야만 했던 체제였다. 분단체제란 바로 그러한 남과 북의 항상적 위기와 비정상 상태, 즉 영구적 비상 상태(permanent state of emergency)의 구조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체제가 “굉장히 행복한 편”이고, “상대적으로 다행스러운” 것이었다니. 도대체 분단체제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개념이 초점을 잃으면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 되는 순간 무의미해진다.

결국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에는 분단체제의 지속을 수동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고, 더 나아가 분단체제의 성격 자체에 긍정이 포함되기에 이르는 곤경과 역설의 싹이 내재되어 있었다. 이 곤경과 역설은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라는 개념이 2중의 모습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으로 부정의 대상이며, 다른 한편으로 긍정의 대상이 된다. 후자, 즉 긍정의 대상으로서의 분단체제는 ‘남북연합을 허용하게 해주는 조건으로서의 둘이 아닌 하나의 체제’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백 선생의 글 속에서는 그것이 직접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보다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의 이론사적 위상을 먼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이론에도 장강의 앞 물결 뒷 물결이 있고, 생애 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보아야 이론의 전체 풍경을 볼 수 있다. 백 선생이 분단체제에 대한 단편적인 발상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라 하지만, 이론적인 구성을 갖춘 체계적 입론으로서 ‘분단체제론’을 처음 내놓은 것은 1992년 《창작과비평》 78호(겨울호)에 발표한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였다. 이 시점은 묘하다. 소련·동구권의 붕괴로 동서 냉전이 종식된 이후이며, 그 여파로 한반도에서 분단 이래 최초로 열렸던 양국체제의 가능성이 내외의 ‘북한붕괴론 – 흡수통일론’ 유포 세력의 반격을 받아 급격하게 닫혀가는 시점이었다. 다시 말해, 당시는 분단체제가 그 절정을 지나 크게 흔들리던 위기의 시기였고, 그 위기는 분단체제가 붕괴하고 양국체제가 열리는 첫 계기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전환을 완수해낼 내적 역량의 부족(주로 민주진영의 분열로 야기된 것)과 외적 조건의 한계(주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강경일변도였던 점)로 인해, 그 가능성이 급격히 닫히고 있던 시점이었다. 아울러 이 시기는 동구권 붕괴와 87년 대선 패배 이후 야권과 운동권이 분열하고 약화되면서 80년대의 ‘사회구성체’ 논쟁을 비롯한 여러 혁명 이론들이 급속히 쇠퇴해가던 때이기도 했다.

위기와 혼란은 새로운 이론을 요청한다. 그러나 분단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분단체제론이 등장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더구나 이렇게 등장한 분단체제론은 뜻밖에도 분단체제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하위체제로서,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그러한 것처럼, 장기지속의 존재임을 설파했다. 80년대 ‘사구체 논쟁’이 러시아 혁명 이후 자본주의 – 사회주의 양대 진영의 대결논리와 그 연장인 반제국주의 – 민족해방투쟁의 혁명이론인 NLPDR(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의 양 측면(NL과 PD) 사이의 논쟁이었던 만큼, 자본주의 – 사회주의의 진영 대립이 붕괴된 새로운 상황에서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새로운 시각이 요청되던 때였다. 그런데 왜 다시 ‘장기 자본주의’이고 더구나 ‘장기 분단체제’인가?

자본주의 – 사회주의 양 진영의 대립, 즉 냉전의 붕괴는 단순히 사회주의(현실에 존재했던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알리는 신호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깊은 수준에서 세계사적 격변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소위 ‘아메리카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서구 자본주의적 근대의 긴 여정과 그 격발점이 된 ‘긴 유럽내전’, 그리고 그 유럽내전을 배경으로 한 유럽 – 서구의 세계지배의 역사가 비로소 종식되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러한 사실이 이제 서서히 학계를 중심으로 인정되고 확산되고 있지만, 분단체제론이 처음 모습을 보인 1990년대 초반에 이러한 인식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이 크게 의지한 세계체제론자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도 2001년의 가히 묵시론적인 9·11 이후에야 (그가 500년 되었다고 본)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막장에 이르렀다는 것, 세계사는 미지의 새로운 단계(가지치기, bifurcation)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굳힐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새로운 단계가 자신의 입론인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론 자체에 대한 상당한 수정을 요구한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인식이 미치지 못했다.

나는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에 대한 비판에 앞서,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분단체제론이 처음 제기되었을 당시인 80년대 말~90년대 초반에 그토록 크게 변화했던 현실에 대한 완전한 조망을 가질 수 없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된다고 본다. ‘사구체 논쟁’의 주도자들 대부분이 이론적인 혼란과 좌절 속에서 물러나 앉는 상황에서 백 선생이 새로운 종합의 무거운 짐을 지려 했던 용기는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아울러 그 이후 거의 30년 동안 담론의 확산을 넘어 ‘6·15 민족공동위’ 등 현실의 통일촉진운동의 주요 행위자의 하나로 적극적 역할을 해온 것 역시 그렇다. 이 글은 이러한 인식을 전제한다.

다만 공적과 함께 그러한 시대상황에서 나왔던 이론의 한계 역시 짚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2018년)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대적 전환기다. 그런 작업 없이 미래는 정확히 포착되지 않는다. 분단체제론이 처음 제기된 1990년대 초반은 오늘날보다 더 큰 변화가 진행 중이었고, 당시의 현실과 미래는 오늘날보다 훨씬 더 불투명하고 불확실했다. 당시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이 처음 겪는, 어느 역사책에도 전례가 없는 새로운 상황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단체제론은 ‘길’을 제시해야 했는데, 이때 현실과 미래에 대한 탐색은 ‘인간의 조건’ 속에서 필연적으로 과거의 의상과 언어를 빌려 행해질 수밖에는 없었다. 이 또한 백 선생이 제기했던 분단체제론의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의상과 언어를 빌린다’는 말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의 유명한 풍자적 언어이지만, 나는 결코 단순히 풍자적인 뜻으로 이 말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 말을 했던 때의 마르크스는 아직 젊었다. ‘빌린다’보다는 강물처럼 ‘잇는다’가 더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자연적 질서와 같다. 반드시 빌리고 이어갈 수밖에 없되, 또한 그것을 넘어서 가야 하는 것이 무거운 사명이다.

백 선생이 이었던 흐름의 하나는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었다. 이 이론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체제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붕괴 이전부터) 이 체제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고 예견하고 있었다. 소련·동구권 붕괴 직후 이러한 세계체제론에 근거한 분단체제론이 나름의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련 해체 이후 미국 중심의 일극주의적 세계질서는 세계체제론이 설파해온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전일성(專一性)을 입증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9·11 이후 이라크 전쟁의 실패, 그리고 연이은 금융 위기로 미국 일극주의는 급격히 막을 내렸다. 이후 세계는 명백하게 다극화로 가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전일성 대신 국가, 시장, 호혜 공동체가 다양하게 조합되는 ‘혼합체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어받을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앞 물결은 백 선생 자신이 그 가운데 있기도 했던 70년대 재야 민주화운동의 ‘분단시대론’과 ‘분단체제론’이었다. 엄혹한 냉전, 유신시대의 절정기에 제기된 이 견해들은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이 안으로부터 이에 ‘상응하는’ 세력이 생기면서 ‘분단체제’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70년대 분단시대/체제론의 주요한 특징의 하나는 남과 북 모두의 정부·체제·국가에 대한 강한 불신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주도자들은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투쟁을 이끌면서 투쟁의 궁극적 목표를 통일에 두고 있었는데, 그 통일이란 남과 북의 현존 체제, 국가를 부정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남과 북의 기왕의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시키기 위한 공모(共謀)에 불과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냉전의 절정기에 남과 북 모두를 정당성 없는 ‘반쪽국가’(1971년 함석헌 선생의 표현으로는 “둘 다 가짜”)로 보는 것은 그 시대에는 그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두 개의 가짜’를 걷어내고 ‘민중의 힘’으로 하나의 진짜를 찾아내자는 것이 당시 재야운동권 분단체제 극복론의 논리요 정서였다. 70년대 재야 민주화론, 통일론이 한국 민주화운동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하다. 그 논리와 정서는 모든 코리안에게 ‘무의식적 금압’으로 깊이 깔려 있던 ‘분단부정의 정언명령’의 강렬한 표현이었고, 백낙청 선생의 분단체제론은 그 흐름을 이었다. 그러나 ‘둘 다 가짜’라는 논리와 정서는 동서 냉전이 종식되고 남북 유엔 동시가입이 이뤄졌으며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어 분단체제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이후에는 더 이상 자명한 명제일 수가 없었다.

필자가 양국체제론을 제기하게 된 것은 87년 이후 30년에 대한 뼈아픈 반성, 복기(復碁)의 결과였다. 그때는 촛불혁명 전이었고 상황은 암담했다. 우선 어찌하여 87년의 희망이 이렇게까지 어두운 지경으로 곤두박질쳤는지 그 이유를, 그 뿌리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도달한 것이 한국 현대사에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가 30년 주기로 작동해왔다는 생각이었고, 그 ‘마의 순환고리’를 깨기 위해서는 반드시 ‘분단체제를 끝장내고 양국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던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이제 그 촛불혁명의 힘으로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전환’은 막연한 희망을 넘어 현실의 발판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체제전환’이 이루어져야 촛불은 진정 혁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제기된 양국체제론에 대해 뜻밖에 창비 분단체제론 그룹이 그렇듯 강하게 반발해온 이유가 무엇일까? 문제제기의 전후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다만 양국체제론을 제기한 목적이 단지 창비 분단체제론을 비판하는 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필자가 ‘잃어버린 30년’을 복기하면서 분단체제 – 분단체제극복의 논리가 ‘분단체제의 반복강박’의 일부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비판은 창비 분단체제론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 87세대 운동권 일반, 아니 60~80년대에 형성된 민주화 운동권 일반의 분단극복 논리에 내재된 모순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런 논리로는 ‘마의 순환고리’를 깰 수 없었고, 그 결과 87년은 결국 다시 독재로 회수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 없이, 다만 창비 분단체제론을 비판했다는 사실 자체에 반발하고 있었다. 그 반발의 내용도 들여다보면 ‘분단체제’ 비판을 ‘분단체제론’ 비판과 등치하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애초부터 양국체제론 구상의 동기가 무슨 ‘창비 비판’에 있지도 않았고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처음에는 그렇게 특이할 정도로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분명히 내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본지(本旨)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순한 오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반발의 배경에 필자와 창비 그룹 사이에 ‘분단체제’ 개념에 대해 매우 큰 이해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서서히 그리고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양국체제론은 분단체제론과 마찬가지로 분단체제를 비판하며 이를 극복하자고 한다. 그런데도 양국체제론에 그렇듯 반발하는 이유는 실제로 ‘내가 생각하는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이 생각하는 분단체제’가 실제로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다시 읽어 보니 분단체제와 분단체제론은 분명 서로 구분이 안 되는 바 있다.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극복하자고 시작한 분단체제론이 어느덧 분단체제와 동반(同伴)하자는 이론이 되어버린 것 아닌가. 양국체제론의 핵심은 마의 순환고리를 끊자는 것이고, 마의 순환고리의 핵심에 분단체제가 있다. 따라서 양국체제론의 입장에서는 분단체제를 확실히 끝장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분단체제론은 어느덧 분단체제와 적당히 공생하자는 주장이 되어버린 것인가. 분단체제론은 어느덧 ‘분단체제 현상유지론’이 되어버린 것인가. 그렇다면 정말 문제는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게 된다.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를 차근차근 밝혀보기로 한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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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5/0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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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이 글은 우리나라에 만연한 정치공학, 정치컨설팅 방법론을 추종하는 음모적 정치학을 반대하여 다수의, 다중의 힘을 근거로 시민을 위한 정치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찾는 요량으로 쓴다. 그 일련의 내용 중 첫 번째 글이다.


) 포퓰리즘(Populism)의 의미

위키백과에 따르면, 포퓰리즘(Populism)은 이데올로기 혹은 정치철학으로서, “대중”과 “엘리트”를 동등하게 놓고 정치 및 사회 체제의 변화를 주장하는 수사법, 또는 그런 변화로 정의된다. 캠브리지 사전은 포퓰리즘을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 정치활동”이라고 정의한다.

포퓰리즘은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된 말로, 이는 ‘인민’, ‘대중’, ‘민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대중주의’, ‘민중주의’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 말이다. 이는 ‘대중의 뜻을 따르는 정치행태’라는 점에서 쉽게 부정적인 의미로만 보기 어려우며 민주주의도 실은 포퓰리즘과 맥을 같이한다. 실제로 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의 유래가 되는 ‘데모스(demos)’ 역시 그리스어에서 ‘인민’을 뜻하는 말로, 포퓰리즘과 데모크라시의 차이는 기원이 되는 언어의 차이에 불과하다고도 설명된다.

‘영국의 롱맨 사전은 ‘포퓰리스트'(Populist)를 부자나 기업가보다는 보통사람들을 대변하는 자’로 가치중립적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

위에서 포퓰리즘, 포퓰리스트에 대한 정의를 살펴 보았다. 이러한 정의에 따른다면 포퓰리즘이라는 것은 민주주의가 가치선으로 대접받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좋은 의미가 되는 것 아닌가? 아무리 살펴보아도 이를 비난할 이유가 없는데, 우리 사회는 포퓰리즘이라면 막연히 대중추수, 나쁜 것이라고 치부해 왔다. 특히 보수 정치인들은 포퓰리즘을 격렬하게 비난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정치적 수사로 사용하고 있다. 언론과 학계도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폐해라거나 심지어 민주주의와 배치된다는 식의 이미지를 심으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의 하나라면, 이들 정치인과 언론, 학계는 실로 민주주의의 본질을 부정하고 싶었던 나쁜 의도를 가지고, 포퓰리즘을 매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우리 집 토끼, 남의 집 토끼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 특히 리버럴 인사들은 자신에게 표를 주고 지지한 지지층의 이익을 위해 제반 권리와 이익을 돌려주는 일에 몹시도 인색하다. 항상 포퓰리즘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서, 세금받은 돈으로 기업주나 상공인에게 집중적으로 이익을 만들어 주고 정작 표를 준 다중에게는 낙숫물만 바라 보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당연시된다. 이들은 왜 ‘남의 집 토끼’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일까?

대단한 이유는 없다. 한마디로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를 관통하는 상식들은 포퓰리즘을 악으로 치부하고 개발경제, 토목과 건설업체를 먹여 살리는 정책으로 경제를 살린다고 주장하고, 기업과 학계에 막대한 보조금을 줌으로써 결국은 대중에게도 낙수가 우수수 떨어질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허무맹랑한 주장들일 뿐이다. 다수를 속이는 주장들이 득세하려 하니 이때 필요한 것이 정치공학이고 정치컨설팅이다. 정치공학은 소수가 다수를 속일 때 힘을 발휘한다. 이미지메이킹에 의존하는 정치가는 본질에 기반한 정치를 하지 않고 포퓰리즘을 거스러는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여러 해 전, 국제 체육대회를 개최한 리버럴 지자체장이 있었다. 이 사람은 ‘자기 집 토끼’는 제쳐놓고 남의 집 토끼들에게 대회를 위한 조직의 운영과 진행과 관련한 기회들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 남의 집 토끼들은 과연 그를 고마워하고 지지해 주었을까?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이 지자체장은 재선에 실패하고 자기 집 토끼들을 원망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보수 기반의 정치인, 즉 소수의 토끼를 대표하는 정치인들은 항상, 노골적으로 이 소수의 토끼들만을 위한 정책을 내놓고, 실로 노골적으로 서슴치 않고 실행한다. 그래 놓고는 그 정책과 실행 결과가 전체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사기를 친다. 세금을 깎아주고-나랏돈을 퍼서 기업에 나눠 주고, 필요치도 않은 토목공사를 벌인다. 나랏돈 100을 강에 파묻고 고작 30~40의 모래로 기업이 돈 벌 기회를 만들어 준다. 대기업이 부자가 되어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부자가 되는가? 강남 집값이 오른다고 서울 시민 생활이 좋아지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런데 이런 짓거리를 저질러 놓고는 자기에게 왜 표를 주지 않느냐고 원망을 하다니…

이번 선거에서 극보수세력인 미래통합당이 전국적으로 40%대를 얻은 것, 특히 대구나 부산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결과를 보면서 과연 우리는 어떤 결론들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보수세력이 항상 그 정도는 있다고 생각하고 말아야 하나? 아니면 그 40% 안에 실은 우리 집 토끼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볼 수는 없나?

토끼 수부터 세어 보자. 우리 집 토끼가 모두 몇이나 되는 지를 계산해 보자.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민주주의에 기반한 대중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집 토끼를 원망하기보다는 기초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나에게 표를 주었으면 하는 계층은 누구이고 얼마나 될까?

우리 집 토끼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나는 우리 집 토끼를 위해 뭔가를 해 주고 있는가? 의식주, 일용할 양식, 직업과 복지, 교육, 문화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이익을 주고 있는가?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제시하고 있는가? 포퓰리즘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주장할 만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제시하고 있는가?

길 닦고, 광장 만들고, 건물 짓고, 개발하는 것, 그런 것 말고 직접 입에 넣어 주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가? 왜 못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극보수세력들은 권력을 쥐는 족족 자기 집 토끼를 위한 세금감면과 규제 완화, 보조금과 억수같은 지원정책으로 입법과 행정을 도배해 놓았다. 그런 것들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위한 뒷거래도 하고, 자신들이 만든 법을 어기기도 하지만 대부분 운이 좋아서 그냥 해 먹고 세세연년 잘 살기까지 한다.

그런 반면, (자칭) 리버럴 정치인들은 중앙정권, 지자체를 막론하고 개별 시민들을 위한 직접적인 이익을 고려한 정책을 말하면 포퓰리즘이라고 공격을 받기 일쑤고, 자기 집 토끼는 배제하고 전체 토끼를 위한 정책을 써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스피커들에 굴복하여 남의 집 토끼만을 위한 정책들을 펴고 있다. 이제까지의 중앙정권에 의한 모든 경제 정책들은 100이면 100, 남의 토끼를 위한 정책들이다. 우리나라처럼 자본가에게 좋은 정책을 촘촘하게 만들어 놓은 나라는 드물다. 더욱이 정말로 잘 훈련된 셰퍼드, 관료집단을 갖추고 자본주의를 위해, 자본주의에 의해, 자본주의의 정치를 하는 나라도 없다.

토끼나라의 토끼들은 좋은 풀을 먹는 것에 명운을 건다. 우리 집 토끼를 위해 일하는 대표를 뽑자. 정치를 한다면 그냥 포퓰리즘을 해 보라. 그것이 민주주의이다. 포퓰리즘, 그것 참 좋은 것이다.

 

) 정치공학과 포퓰리즘

앞서 언급했지만 정치공학은 사실 부끄러운 단어이다. 한마디로 사기치는 것이다. 속살을 드러내지 못하고 가면을 쓰고 등장하는 것, 진짜를 내세우지 못할 때 들고 나오는 것이 정치공학이고, 어둡고 음흉하고, 그리하여 마타도어도 도배하는 것이 정치공학이다. 물론 프로는 이미지메이킹, 광고와 선전, 선동, 컨텐츠의 개발 등에 대해 거부하지 않고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렇다 프로페셔널한 광고와 선전은 당연히 오늘날의 정치에서 필수 요소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만에 근거한 것인가? 아니면 메시지 전달과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한 캠페인인가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오바마식 흑색선전 대처법 참조)

우리나라 인구의 1%는 50만 명이다. 가구 수로는 대략 20만 정도. 사실 보통사람은 상위 1%인 50만 명 속에 포함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강남에 아파트 한 채가 있다고 이 50만 명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소득이어야 1%에 포함되는 것일까? 상위 1%는 월급이 2,031만원, 순자산 23억원, 이중에 월급/보수가 1/3에 불과하다(2018년 국세청 자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50만 명,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이같이 부자들이다. 나머지 99%는 5000만 명이 넘는다. 하위계층의 수입은 거의 100% 월급/보수에 의존하며, 자산은 비교대상이 아예 되지 않으니 월급/보수로 인한 소득만 비교할 때, 상위 1%는 하위 30%가 받는 월급의 합과 거의 같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은 왜 이들 50만 명의 눈치를 보는 것일까? 나머지 5000만 명은 눈 가리고 귀 막고 살아온 것에 익숙하여 무시하고 괄시받아도 된다고 생각할까?

강가에 오페라하우스를 만들면 비디오 좋고 화면 멋있기는 한데, 딱 거기까지! 결국 그것으로는 배를 불려주지는 못한다. 더욱이 나에게는 가서 볼 기회를 만들어 주지도 않으면서 시민의 공간이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우기는 것이지 않은가? 처음부터 상업공간으로 만들어 사적 이익을 취하겠다고 하면 차라리 신경써지 않겠다. 99% 대중으로부터 세금 걷은 돈을 사용해서 1%를 위한 정책을 펴면 이것은 사기이며 공작이고 배임이다. 흔히 사용하는 도둑질이며 일방적인 1%를 위한 퍼주기이다.

모든 정치적 방책은 계층과 계급성을 포함한다. 우리 집 토끼인지 남의 집 토끼인지, 어떤 토끼를 위한 일이어야 하는지는 생각보다 명확하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는 ‘국민의 대표’라는 자들은 종종 ‘가치중립, 전체 시민을 위한, 우리나라를 위한’ 등등의 헛소리를 잘 한다. 이 말은 앞서서 남의 집 토끼 대표가 우리 집 토끼를 후릴 때 사용하는 말이다. 알고서 사용하면 정치공작이자 허위광고이고 모르고 사용하면 멍청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중, 99%는 사실 포퓰리즘에 굶주렸다. 제대로 복지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1%를 지향하는 관료들이 정권을 잡고, 또 1%로 달려가고 싶은 언론과 학계, 전문가 집단이 끊임없이 역포퓰리즘, 반민주주의, 대기업지향적인 경제논리로 99%를 속여 왔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민에 근거한, 절대 다중에 근거한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겁먹지 말고 포퓰리즘을 하라. 괜히 건물 짓고, 길 만들고, 광장 만드는 것 이외에는 표나는 일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자(사실 이런 것 100날 해도 별 의미 없고, 이미지로 배가 부른 것은 아니다). 남의 집 토끼들은 좋아하겠지만, 그리고 잠시 잠깐 우리 집 토끼에게도 이게 뭔가, 나도 좋아할 만한 것인가 하고 속아 줄 수도 있지만(청계천 흐르는 물이 내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 아니고 밥도 국도 되지 않는다는 것), 결국은 세금에서 출발하여 개발이익 형태로 소수에게 이익을 준 것 아니겠나? 우리나라 시민대중은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현명하다. 자세히 내막까지는 몰라도 제반 정책들이 자신과 다른 세상일이라는 것 정도는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차린다.

 

) 정신 차린 정치는 포퓰리즘에 기반해야 한다

그냥 대 놓고 99%를 위한 정책을 생각해 보라.

불황기의 정책이라도 1%를 위한 정책과 99%를 위한 정책은 다르다. 즉 법인세금을 깎아주고, 소비세를 낮춰주고, 이자를 낮추고 유동성을 높여 주고, 정부자금 상환을 미뤄주고, 산업은행에서 융자를 해주고, 대규모 토목사업을 앞당기고, 3기 신도시 사업을 앞당기고 등등 이제까지 너무나 당연하게도 진행되어 온 것들은, 알고 보면 1%를 위한 좀비경제 정책들이다. 이에 반해, 아동병원을 짓고, 기업탁아소를 의무화하고 기존 탁아소를 공립화하고, 노인요양시설을 공공화하고, 기술학교와 공과대학를 짓고 학비를 무상화하고, 중소기업 자립화/자동화를 지원하고, 시장현대화와 집합화를 지원하고, 노동자와 청년을 위한 협동조합 주택을 지원하고, 유기농을 조직하고 농작물 수급조절 시스템을 만들고 하는 등등…. 얼마나 많은 정책들이 있는가! 전에는 한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수없이 많은 99%를 위한 정책들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포퓰리즘이라고 매도되고 사장되었던 것 아닌가?

도시와 관련된 정책들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용적률이라는 괴물을 직시해야 한다. 누가 이런 괴물을 만들고 숭상하게 만들었는가? 용적률 상향을 통한 개발이익은 왜 항상 부자와 기업 몫이 되어야 하는가? SH/LH, HUG/HF는 민낯을 공개해야 한다. 이들은 적폐 덩어리이자 99%의 적이다. 1%를 위한 룰을 만들어 놓고 100%를 위한다고 우긴다. 이들의 역할은 1%가 합법적으로 개발이익을 편취하도록 파이프라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토지를 둘러싼 불공정한 거래, 불공평한 분배, 사장역행의 투기의 폐해에는 전부 그들이 관여되어 있다. 조성원가, 기금사용, 토지분양, 개발계획, 이 전부가 우리나라 부동산 관련 부의 형성과 발전의 출발점이 되었다. (1%가 자산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일에는 정말이지 혁혁한 공을 세웠다!)

도시는 필요하다면 공공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으로 과감하게 용적률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용적률을 엄청나게 제공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던 도시행정이 공공/준공공적 이익을 위한 사업에는 왜 규제를 하는지는 묵묵부답이다. 청년을 위한 협동조합 주택을 짓기 위한 노력은 현재는 완전히 봉쇄되어 있다. 도시재생은 몇몇 활동가를 위한 호구지책으로 전락하였다. 왜 자동차 구입 시 주차장 의무화를 하지 않는 것이지? 기존주택 밀집지역에 주차장, 마을센터, 회의공간, 북카페, 공동식당, 청년주택 등이 함께 있는 집합적인 시설을 만들도록 허가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도인가? 빈집을 사들여 고밀도 입체주차장을 만들고 그 주변에 공공시설과 청년주거공간과 근린상가를 조성하기만 해도 도시는 보다 활기찰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대구와 부산에서 재난 관련 지원금을 보다 신속하게 집행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적어도 서울과 경기도나 전남북처럼 집행 예정이라고 했어도 어떤 차이가 생겨 날 수 있지 않았을까? 99% 중에 1/2은 자기 집 토끼 아닌 남의 집 대표를 뽑았다. 우리 집 토끼를 대표로 뽑아도 내 입에 뭔가 좋은 풀이 들어 올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서 아니겠나. 진짜 포퓰리즘은 적은 양이라도 직접적이고 손에 닿는 이익을 우리 집 토끼에게 제공하는 것이다(이 점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을 보고 배워야 한다. 중앙정부로부터 교부 받은 돈조차 절대 집행하지 않고 버티지 않던가). 이를 경시하는 것은 결국 ‘남의 토끼를 위한 포퓰리즘’을 실천하는 것이다.

불황기에 기업의 파산은 예견되는 것이고 이는 인위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충격은 완화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구조조정, 합리화의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기업 간의 문제에 개입하기보다는 사회안전망의 확보에 관심이 집중되어야 한다. 의료서비스 확충, 공공서비스 확대, 기술교육/재교육, 공공일자리의 보급, 소상공인 지원 등에 세금이 사용되어야 한다. 포퓰리즘은 다른 무엇보다 이해와 관련된 정책에 초점이 맞춰진다. 즉 99%의 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 다시 그 주머니로 돌고 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월, 2020/05/11-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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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은 시간적으로 크게 두 개의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입론 단계로서 1992년 발표한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와 1994년 손호철 교수의 비판에 답하여 쓴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의 한반도 정세와 분단체제론: 손호철 교수의 비판에 답하여」라는 두 글이 첫 단계의 출발점과 중심을 이룬다. 이어 1997년 발표한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는 1단계에서 변화된 초점을 정리한 글로 이론이 다음 단계로 확장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이 기조는 이후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정상선언> 등 참여정부의 남북관계를 경험하면서 더욱 자신을 갖게 되어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유지되어왔다. 다만 올해(2018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발표된 「어떤 남북연합을 만들 것인가: 촛불혁명 시대의 한반도」는 양국체제론과의 논쟁이 어느 정도 반영된 글로서,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의 관계 설정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것인가에 따라 분단체제론이 새로운 (세 번째) 단계로 변화해갈 수 있을지를 묻게 한다.

첫 번째 입론 단계에서 백 선생의 관심은 주로 기존의 ‘중산층적 시각의 자유주의혁명론(BDR, bourgeois democratic revolution), 민족모순 위주의 민족해방혁명론(NLR), 계급모순 위주의 민중민주주의혁명론(PDR)’을 “새로운 종합”을 통해 하나의 이론 체계로 세우는 데 있었다. 앞서 말했듯 그 종합의 사회과학적 이론 틀은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world system theory)을 원용했고, 한국의 운동사적 맥락의 논리와 정서는 70년대 재야운동권에서 기원한 분단시대/체제론에서 이어받았다. 이 시기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 30년을 관통하는 ‘분단체제는 (한반도 남과 북을 아우르는) 하나의 체제다’라는 명제에서 강조점은 ‘하나의’가 아니라 ‘체제’에 주어져 있었다. 이 점은 손호철 교수와의 논쟁에서 집중적으로 드러났지만, 이미 1992년 첫 번째 글에서부터 강정구, 김세균, 이종오, 정대화 교수 등에 대해 분단체제를 하나의 사회과학적 ‘체제(system) 개념’으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지구적으로 하나의 세계체제(modern capitalist world system)가 있고 그 아래 하위체제로서 남북을 아우르는 분단체제가 있으며, 분단체제 아래 남한체제와 북한체제가 있는데, 세계체제 속에서 남북의 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은 분단체제를 매개로 한다고 했다. 이렇듯 “‘세계체제/분단체제/남북한 각각의 체제’라는 세 가지 다른 차원의 ‘체제’를 구별하는” 개념적 엄밀화 작업에 치중하던 시기였다.

이 분단 ‘체제’ 개념이 기존의 여러 혁명론과 모순론을 통합하려 하였기 때문에 애초부터 개념적 부담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근대세계의 사회체제(social-system)는 오직 하나, 바로 세계체제(world-system)일 수밖에 없다는 명제에 기초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위계적인 세 개의 체제를 설정하고 그 세 체제 간의 관계에 집중하는 분단체제론은 세계체제론의 논리와도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세계체제를 최상위로 하고 분단체제를 그 하위체제, 남북한 체제를 분단체제의 하위체제로 구분하여 그 세 체제 간의 서열적 영향과 매개 관계에 집중하는 분단체제론은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보다는 오히려 (백 선생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버틀란피(Ludwig von Bertalanffy)의 일반체계이론, 위너(Norbert Wiener)의 사이버네틱스 시스템론, 파슨스(Talcott Parsons)·루만(Niklas Luhmann)의 사회체제론과 근친성이 있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글로벌한 차원에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성되어왔는지를 밝히는 역사적 이론이지, 그 하나의 시스템의 여러 하위체제들로의 분화와 그들 시스템 간의 서열 및 매개 관계는 주 관심사가 아니다. 이렇듯 서로 계통이 다른 이론들이 무반성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뒤섞여 있기 때문에 혼란을 준다. 입론 초기부터 주로 여러 사회과학자들이 분단체제론이 체제 이론적 측면에서 과잉이론화의 문제(분단결정론, 분단환원론, 과잉분단론, 분단체제 – 실체론, 분단체제 – 환원론)를 지적해왔던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백 선생에게는 체제 이론 구성의 논리적 완성도보다 기존의 여러 혁명 이론들을 종합하는 큰 틀을 제시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욱 중요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상황에서 이러한 태도는 높이 살 만하다고 본다. 이론적 문제를 제기했던 측에서도 종합적 시각에서 분단체제론이 기여한 바를 잘 정리해놓기도 하였다. 이러한 체제 이론 측면에서의 논의는 이미 어느 정도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어서 여기서 다시 재론할 필요는 없겠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은 분단체제론의 성격 자체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분단체제론이 ‘분단체제 비판론’에서 ‘분단체제 동반론’으로 점차 성격 변화, 중심 이동을 해왔지 않느냐고 묻는다. 원래 분단체제론의 분단체제 개념 안에 부정과 긍정의 2중성이 내재되어 있었고, 그 2중성의 틈이 점차 크게 벌어져온 것 아닌가. 나는 이 점에 집중할 것이다. ‘분단체제론의 체제 이론적 과잉’보다 ‘분단체제 개념의 과잉이론화’에 주목하겠다는 것이다.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의 차이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분단체제론은 역사적으로 장구한 시간을 탐구하는 세계체제론을 원용함으로써, 한반도 상황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흐름 안에 엮여 있음을 강조할 수 있게 되었다(물론 이는 꼭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논리 속에 분단체제를 끼워넣음으로써 분단체제 자체가 세계체제에 버금가는 장기지속(long-duration)적 존재가 될 가능성이 생겨났다. 이는 백 선생의 글에서 일찍이 손호철 교수가 날카롭게 포착했던 “분단 없는 분단체제의 성립”이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났던 것인데, 분단체제란 단순히 남북의 분단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작동하는 한, 형태상의 분단이 사라지더라도 계속 존속하는 체제라는 뜻이다. 이 논쟁에서 백 선생은 자신의 취지가 “분단극복과 통일이 분단체제극복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점에 있었다고 변호했는데, 이 변호는 분단체제가 세계체제와 명운을 같이하는 것임을 다시금 확인했을 뿐이다. 분단극복(통일)과 분단체제극복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 선생에게는 분단체제극복이 단순히 적대적 남북관계 해결, 그리고 통일이라는 구체성을 넘어서 환경문제, 성차별, 지역주의, 인권, 권위주의, 부패구조, 갑질문화 등 모든 문제의 근원적 해결과 연계되는 보편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사회과학적, 인문학적 개념과 이론도 이러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야 마땅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한 문제들에 무관심한 사회과학과 인문학이라면, 심지어 자연과학까지도, 그것은 죽은 학문, 무의미한 이론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개념과 이론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과 그것(여기서는 ‘분단체제극복’과 분단체제론)이 그 모든 문제들의 해결의 종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백 선생은 분단체제극복의 과제가 이렇듯 크고 깊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희망함이 커야 한다’는 것을 늘 강조해왔는데, 희망함이 커야 한다는 것과 어떤 개념이 그 희망함만큼의 모든 부담과 책임을 다 져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후 백 선생은 분단체제극복은 세계체제 종식 이전의 어느 단계에 이뤄질 것이라고도 하였지만, 그런 방식으로 애매하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백 선생이 말하는 ‘희망함’의 도저(到底)함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종식조차 확실히 보증하지 못할 만큼 깊고 넓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체제론이 종교적 교의가 아니라 사회과학적 이론인 것처럼, 분단체제론 역시 그러해야 할 것이다. 세계체제론은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약속이 아니다. 여러 문제가 발생되고 있는 시스템에 대한 역사적·과학적 분석이고, 그 시스템의 작동 방식 속에서 그 자체의 한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이론이다. 이론이 실천과 연계될 때, ‘희망함’의 정서와 희원은 그 연계고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함 자체가 사회과학적 개념 구성의 단위와 몸체가 될 수는 없다.

이렇듯 ‘분단체제’가 단순히 현상적으로 한반도 남북이 분단된 체제를 넘어서서 성, 계급, 민족, 인종, 지역, 국가, 인간/자연 간의 분단과 차별이 존속하는 체제로 확장됨으로써, ‘분단체제극복’이란 말은 남북 분단의 극복을 훨씬 넘어서서 인류사가 만들어온 일체의 분단과 차별의 장벽을 극복하는 과제와 구분하기 어렵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이란 말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단순히 한반도 남북의 분단만이 아니라, 계급 분단, 성 분단, 지역 분단, 민족과 인종 분단, 국가 분단, 인간/자연 분단 등 인류의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든 일체의 문제적 분단’을 지칭하는 전칭(全稱) 명제, 보편 주제가 되었다.

이렇듯 백 선생의 ‘분단체제’ 개념은 입론의 첫 단계에서부터 너무 크고 심오한 과잉 개념이 되어버릴 싹이 존재했다. 70년대 장준하의 ‘분단체제’나 강만길의 ‘분단시대’ 개념은 한반도의 남북 분단이라는 구체적 현상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들 70년대 분단시대/체제론자들 역시 남북 분단의 극복이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지만, ‘분단 없는 분단체제’가 존재할 수 있으며, ‘분단체제극복’은 단순히 남북 분단만이 아니라 인류 사회의 모든 근원적 차별과 갈등을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정도로까지 과잉이론화하지는 않았다. 세계체제 개념을 분단체제에 덮어씌움으로써 이론의 발전이라기보다 ‘과잉이론화’의 부하가 발생한 것이다. ‘분단’이라는 말을 그렇듯 모든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결과 연결하면 ‘분단체제’ 개념 자체가 현실의 시간과 공간의 구체적 좌표를 벗어나 극히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모든 문제가 ‘분단체제’ 때문이고 모든 문제는 ‘분단체제’를 극복함으로써 해결된다. 이것은 역사적, 과학적 명제라기보다 신학적, 종교적 명제와 가까운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분단체제’라는 개념에 애초부터 내재된 (분단체제론이 자임한) 신학적, 윤리적 권위의 아우라는 후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늘 ‘분단체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책망하고, ‘후천적 분단인식결핍 증후군(에이즈의 병명을 가지고 패러디 한 말)’이라 딱지 붙일 수 있게 했던 태도의 근거가 되었다.

이렇듯 과도하게 심오한 분단체제론의 ‘분단체제’ 이해는 일반의 상식적 이해와 어법으로부터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분단체제에 대한 사회과학적 개념 규정은 일반인의 상식적 이해에서 벗어나지 않되, 그 현상의 핵심을 짚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내가 분단체제를 “한반도의 두 국가가 ‘극단적 적대관계’로 맞물려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하고, 그 결과 남북 양측 모두에서 “전시적(戰時的) 비상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지속”되어 “강력한 독재체제(=비상국가체제)의 심리적 온상이 되고 …… 권력, 부, 기회의 독점이 전시적 비상 상황을 빌미로 지극히 폭력적으로 정당화(되어왔던)” 체제라고 정의했던 것 역시 그러한 취지에 충실하려던 시도의 하나였다. 누구나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한반도 분단체제는 2차 대전의 승자인 미소(美蘇)가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했던 데서 비롯했고, 그 인위적 분단이 결국 내전과 국제전이 복합된 참혹한 전쟁을 불렀던 것이고, 전쟁 이후에도 미소 냉전의 고조 속에서 날카로운 전시적 긴장이 계속되면서 존속해왔던 체제다. 이것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물로서 ‘코리아 분단체제’의 실체에 대한 인식이며, 일반의 상식에 부합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듯 분단체제를 성립시켰던 바로 그 역사적 조건이 사라지면 분단체제 역시 사라진다. 역사적 지형과 조건이란 구체적인 역사적 실체들에 대응하는 사실적 범주이고, 모든 역사적 실체는 생멸의 주기가 있다. 역사적 지형과 조건이 바뀌면 그 기반 위에 성립되었던 ‘분단체제’ 역시 근거를 잃고 사라진다. 따라서 미소 간의 냉전 대결이 종식되고, 남북 양 국가가 내적 외적 정당성과 안정성을 갖추게 되면 “한반도의 두 국가가 ‘극단적 적대관계’로 맞물려 있어야”만 했던 판 자체가 바뀌고 분단체제는 소멸해간다. 그런 ‘판 갈이’를 나는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전환’이라 하였다. 그러한 전환의 기회가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처음 열렸다. 그러나 당시에는 내외 여건의 부족으로 그 첫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제 거의 30년 후 제2의 87년이라 할 촛불혁명이 일어나 남북미 간 해빙과 상호 인정의 흐름이 형성됐다. ‘판 갈이’의 가능성이 다시 열린 것이다. 그래서 촛불혁명이 진정한 혁명으로 완성될지의 여부가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성공적 전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 개념은 그러한 구체적인 역사적 지형과 조건, 역사적 실체로서의 생멸의 조건을 넘어서서 어느덧 초역사적 개념이 되어버린 듯하다. 불멸의 존재가 된 것이다. ‘분단 없는 분단체제’란 말은 비어(非語)이자, 분단체제가 역사적 개념을 벗어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분단체제는 모든 문제를 담고 있으며, 분단체제극복은 그 모든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말한다. 따라서 항상 구체적 형태를 취하는 역사적 문제와 역사적 해결 방식을 넘어선 초월적 고지에 서 있다. 그 결과 분단체제와 분단체제극복의 관계는 지평선에 도달하는 일과 비슷해졌다. 지평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가서야 한다. 그러나 지평선이란 늘 저기 눈앞에 보이지만 다가서면 다시 그만큼 멀어지는 영원한 희원의 대상이다. 분단체제극복이 그러한 지평선에 도달하기와 같을 것이고, 그렇듯 지평선으로 이어져 영원히 지속되는 길은 바로 분단체제의 장구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것이 본의였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로써 분단체제극복과 분단체제는 역사적 현실을 초월한 영원한 윤리적 목표와 존재가 된다. 지평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영원히 그 길을 걸어야 하는 것처럼, 희원을 향한 각성과 분투 역시 영원한 것이다. 이를 윤리적 태도라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개념과 이론을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것이라 칭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평선 이론에도 항상 자신이 경험한 현실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지평선에 다가간 만큼의 진행 거리가 분명히 확인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라, 분명히 우리는 100미터, 200미터, 분명히 진보해왔지 않은가. 이렇듯 우리가 주파해온 거리가 분명한 만큼 지평선에 이르는 거리는 분명히 단축되었다, 라고. 자신감을 갖자.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 이러한 인식과 정조가 분단체제론 2기의 바탕에 깔려 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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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5/1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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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십 년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정치에 대한 직접 참여권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수많은 국가들과 지방에서 정기적으로 레퍼렌덤 권리가 활용되었다. 최근에는 주요 레퍼렌덤 투표들이 있었는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콜롬비아의 평화협정, 스위스 핵발전의 미래, 터키의 대통령제 관련 레퍼렌덤 투표 등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나라에서 시민들에게 직접 민주주의는 아직 실현되지 못한 제도일 뿐만 아니라, 그 나라들 중 1/3은 아직 민주적이지도 않다. 따라서 완전히 민주적인 조건에서 시민들에 의해 요청되는지, 아니면 플레비사이트처럼 독재 정권에서건 민주적 정부에서건 상부에서 공고되는 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레퍼렌덤 권리

정치 시스템으로서 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차츰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하기에도 유리하다. 1975년 인구의 30%가 민주적 정권에서 살아갔으며, 2016년 이 숫자는 68%에 도달했다. 프리덤 하우스에 따르면, 2018년 195개 독립 국가들 중 39%가 자유롭고, 24%가 부분적으로 자유로우며, 37%는 자유롭지 않다. 117개 민주 국가 중 113개국이 헌법에 기반한 권리나 법률을 갖추어, 국민발안이나 레퍼렌덤 혹은 그 두 가지 모두 규정되어 있다. 스웨덴의 권위 있는 기관인 IDEA에 따르면, 1980년부터 세계 10개국 중 8개국 이상이 적어도 국민발안이나 국가적 차원의 레퍼렌덤을 공고했다. 모든 국가들 중 절반 이상이 국가적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2018년 5월까지 세계에서 국가적 차원의 총 1,471건의 레퍼렌덤 투표가 기록 되었는데, 그중 유럽이 1,059건, 아프리카 191건, 아시아 189건, 미국 181건 및 오세아니아 115건이다. 이 1,471건의 레퍼렌덤 중 절반 이상이 최근 30년 동안 시행되었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레퍼렌덤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지역별 기초자치단체 차원, 다시 말해 국가 하부차원에서 국민투표를 허락하고 있는 나라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종종 레퍼렌덤 권리가 헌법에 규정된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정도로 끝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의회에서 만든 헌법 개정안들은 어쩔 수 없이 시민들의 투표 또한 거쳐야 한다는 것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다. 여러 나라에서 그런 국민투표는 오로지 상부에서, 곧 대의기관이나 행정 관청에서 공고할 수 있다(플레비사이트). 발안이나 레퍼렌덤을 제도화하여 이용할 기회를 제공하는 좁은 의미의 직접 민주주의는 오늘날 단 38개국에서만 존재하며 이 숫자는 직접 민주주의가 발전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전에는 전혀 시행되지 않던 레퍼렌덤 투표 대부분이 최근 25년간 있었다. 1991년부터 2017년까지 1793년(프랑스 헌법 채택)에서 오늘날까지 시행된 모든 레퍼렌덤 투표의 약 1/3 가량이 실시되었다.

가장 많이 확산되어 있는 현대 직접 민주주의 방식은 헌법적 확정 레퍼렌덤이다. 이러한 레퍼렌덤으로 유권자들은 입법자들이 바라는 헌법 개정안을 승인하거나 기각한다. 192개 독립 국가들 중 111개국이 이런 종류의 레퍼렌덤을 두고 있으며, 특히 헌법의 수정이나 전체 개정의 경우 이를 실시한다. 미국에서는 1639년 코넥티컷 주에서 이런
종류의 첫 레퍼렌덤이 시행되었다. 첫 번째 국민투표는 벨기에와 스위스 등 1790년대에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에서 실시되었다. 다양한 연방 국가에서 공공 지출이나 세금관련 결정을 위해서도 의무적으로 확정 레퍼렌덤을 규정하고 있다.

다른 한편, 여러 나라에서 레퍼렌덤 도구들은 장애물이나 난공불락의 절차적 한계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예를 들자면, 서명 모음 기간이 지나치게 짧고 그 기준점이 높은 점, 참여 정족수의 제한, 공공 기관들의 정보 전달 의무화 부재, 배제된 사안들이 지나치게 많은 점 등이 있다. 때로 제한적 법률은 직접 민주주의의 정기적인 시행을 가로막는다.

 

세계 직접 민주주의의 비교 명세서

직접 민주주의 도구들은 모든 대륙에 있는 나라들에서 주로 각국의 헌법으로 도입되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우르과이, 에콰도르, 칠레,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페루,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등 몇몇 나라의 경우 직접 민주주의를 자주, 그리고 거의 정기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에콰도르,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및 볼리비아에서 시민들은 선출된 대리인들, 특히 대통령에 대한 소환투표 권리 또한 행사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우르과이만큼 권리를 극적으로 활용한 나라는 없다.

미국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서부 대부분의 연방 주에서 한 세기 이상 시행되고 있지만 연방 차원의 레퍼렌덤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주들이 헌법적 실행 레퍼렌덤의 권리를 지니며, 18개 주들은 선출된 정치인들의 소환투표제 또한 허용한다.

아시아에서 정기적으로 레퍼렌덤 투표를 활용하는 나라들은 매우 적다. 1987년 헌법에 모든 레퍼렌덤 도구들을 규정한 필리핀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대만은 국내 및 국외 정치 현안에 대해 정부에서 공고한 레퍼렌덤이 있다. 여기서도 50%라는 높은 정족수가 투표의 유효성을 위협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직접 민주주의의 레퍼렌덤 도구를 도입한 나라 중에는 키르기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도 있다.

유럽은 계속해서 세계에서 직접 민주주의에 가장 많이 기대는 대륙이다. 프랑스는 이미 혁명 기간 동안과 이후 나폴레옹 시대 때부터 레퍼렌덤을 시행했다. 스위스는 1848년 헌법에 레퍼렌덤 권리를 도입했으며, 세 단계의 모든 정부 차원에서 자주 그리고 정기적 관행으로 이 권리를 행사한다.

유럽연합의 발전으로 국가적 차원의 레퍼렌덤이 많이 보급되어, 유럽연합 가입에 관해서나 유럽연합 조약 인준에 관해서도 레퍼렌덤이 실시되었다. 스위스는 직접 민주주의에 관하여 “세계 모범” 국가로 정평이 나 있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1992년 마에스트리트 조약과 2000년 대통령 임기에 대해, 2005년 유럽연합의 헌법을 이루는 조약 문서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로, 아일랜드 시민들은 마에스트리트(1992년), 니차(2001년과 2002년), 리스본(2008년) 유럽 조약 문서에 관해 투표했다. 아일랜드 공화국은 레퍼렌덤 캠페인 기간 동안 정부의 활동과 중립적인 공공 정보 전달 의무와 관련하여 엄격한 법규를 도입했다. 이탈리아는 별도로 하고, 유럽연합에서 레퍼렌덤 숫자가 가장 높은 곳은 덴마크인데, 모든 헌법 개정에 대해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을 규정하고 있다.

중동의 국가들에는 플레비사이트, 곧 대의 기관에서 선포하는 레퍼렌덤 투표만이 존재한다. 종종 이런 투표는 임기 중인 대통령이나 그들의 특정 선택을 인준하기 위한 순수한 플레비사이트인 것을 넘어 온갖 부정과 조작으로 얼룩진 단순한 겉치레에 불과하기도 하다.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는 시민들에게 레퍼렌덤 권리를 보장하는 반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 권리는 그저 연방에 속하는 각각의 주에만 존재하며, 헌법적 실행 레퍼렌덤의 경우 예외이다. 팔라우와 마이크로네시아 연방국의 시민들 또한 레퍼렌덤 권리를 활용한다. 어떤 경우이건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확산은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높였으며, 민주적 자유와 시민 참여의 점진적 확립으로 레퍼렌덤 권리 또한 더 큰 호응을 얻을 것이 확실하다.

 

진정한 참여와 플레비사이트 사이의 직접 민주주의

2016년에는 이탈리아와 헝가리, 영국에서 여러 레퍼렌덤이 실시되어, 많은 논평가들로 하여금 이 레퍼렌덤이 무엇보다 자신들의 목적에 국민을 이용하려는 의도를 지닌 정치인들에게나 소용이 닿는 것이 아닐지 자문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라는 대안을 선호하여 유럽연합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기각시켰다. 덴마크에서는 집단적 입법행위에 대한 ‘옵트인opt-in(어떤 활동이나 계획 등에 강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기로 선택하는 것─역자 주)’을 거부했다. 네덜란드는 유럽연합과 우크라이나 간의 조약 승인을 거부했다. 그리스에서는 국민들 대다수가 유로화를 쓰는 공동체에서 부과한 금융 구제 조건들을 거부했고, 헝가리에서는 정부 수장의 바람으로 레퍼렌덤을 통해 정치적, 인도주의적 망명 요청자들의 수용에 대한 유럽연합의 방침을 거부하기 위한 정당성을 얻고자 했다.

이러한 사례는 레퍼렌덤이 정부나 여당을 꺾기 위해 포퓰리스트들이 선호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을 은근히 심어준다. 종종 “레퍼렌덤”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에게서 나온 국민발안, 의무적 실행 레퍼렌덤, 그리고 결국 정부나 국회에서 바란 플레비사이트 등이 한통속으로 묶이기 때문에 여러 다양한 레퍼렌덤 행동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런 투표는 때로는 법적 구속력이 있고, 때로는 그저 자문적인 것이다. 몇몇 레퍼렌덤은 매우 문턱이 높아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요청한 것이기도 하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 전에 다양한 나라에서 레퍼렌덤 투표를 위한 법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실히 밝혀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국민투표가 자유롭고, 공정하고, 타당한 투표가 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규범을 준수하는지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또 많은 레퍼렌덤이 원치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누가 원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영국의 주권자는 브리튼 시민들인데, 이들은 한 해에 걸친 긴 토론 끝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투표에서 유럽연합에 반대를 표명했다. 이들은 영국에 더 나은 것이 무엇일지에 대한 다른 나라의 논평가들과 전문가들의 확신에 공공연히 반대표를 던졌다. 콜롬비아에서는 정부와 FARC 반군들 사이의 평화 협정이 겨우 37%의 레퍼렌덤 참여로 기각되었다. 그 협정은 분명 콜롬비아 사람들 대다수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면 참여율이 좀 더 높고, 시민들은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 결과 콜롬비아 정부는 평화 조약에서 몇 가지 사항을 수정한 후 발효시켰다.

세 번째 이유는 사실 여러 정부와 독재자들이 레퍼렌덤을 플레비사이트처럼 전략적, 도구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정당 정치인들은 때로 매우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어떤 이슈를 다시 꺼내 들어 그것을 선거 캠페인에서 누락시키려 하고, 자신들의 입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보여주려 한다.

2017년 대통령제 도입 관련 터키의 헌법상 레퍼렌덤은 그런 전형적인 직접 민주주의의 플레비사이트식 도구화로서, 미래의 대통령과 그의 당에 힘을 실어주어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제한한 케이스였다. 그러한 정부와 정당 편에서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레퍼렌덤의 전락적 이용은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이러한 종류의 도구화는 직접 민주주의의 위신을 실추시킬 뿐이다. 레퍼렌덤 도구는 주로 시민들의 정치권력이지 정부의 권리가 아니며, 시민들의 발안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플레비사이트는 배제되어야 한다. 스위스에는 플레비사이트가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우 확정적 레퍼렌덤이건 국민발안이건 정당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곧 시민 사회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직접 민주주의는 한 세기 전 보통 투표가 그런 과정을 거쳤듯이 세상에서 한걸음씩 확장되어 가고 있다. 사람들은 “만약”이라는 의혹 보다는 “어떻게”를 논한다. 그러므로 의회 차원에서도 직접 민주주의의 어떤 권한과 어떤 형태를 적용해야 할 것인지 많은 연구와 교육과 토론이 진행 중이며, 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 결정에 대한 직접 참여와 간접 참여 사이의 균형은 오로지 레퍼렌덤 권한이 정기적으로 실행될 때에만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 경우 시민들과 정치적 대의원들 사이의 참된 대화가 생겨난다. 그렇지 않다면 레퍼렌덤은 단순히 불만이 있는 국민들의 화풀이 잠금 장치로 변할 위험이 있어서(예를 들어,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유럽 헌법에 대한 플레비사이트),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찬반 논의를 반 정부적이고 반 제도적 이슈들과 뒤섞는다. 최근 국제적으로 대의적 시스템에 레퍼렌덤 권한을 도입함으로써, 직접 참여와 그밖의 법원칙, 기본권, 소수자의 권리 등 현대 민주주의의 근본적 측면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자 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오늘날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더욱 견고해진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는 무엇보다 정부 차원의 모든 단계에서 직접 참여 및 시민들의 심의기능을 개선시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늘 더 많은 기초자치단체와 지방 정부들이 시민들에게 추정 예산이나 어떤 구체적인 프로젝트의 예산 편성, 토지 계획 및 다른 법령 마련 등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심의” 도구들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지만, 좁은 의미의 레퍼렌덤 권리를 대체할 수 없다.

그리고 아직 국가적 차원에서 적용 가능한 그 어떤 레퍼렌덤 권리도 활용할 수 없는 유럽 국가들이 여럿 있다. 여러 활동가들과 국제 비정부 기구들이 직접 민주주의 절차를 대의적 시스템에 통합 및 보완적인 요소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참된 권리의 실행이 더 많아지고 바람직한 관행이 확산될수록, 정당들은 그들 자체의 민주주의 시스템에 그와 유사한 권리들을 보완하도록 더욱 자극을 받고,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20/05/1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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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란 결코 지위의 높낮이에 있지 않다

물론 ‘저항’을 생각하는 공무원이 지나치게 많게 된다면, 그 또한 작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상명하복과 동종교배식의 조직 분위기만으로 과도하게 충만된 관료사회에서 그 권위와 관행에 ‘저항’하는, “미움 받을 용기”가 있는 공무원들이 존재해야만 조직이 그나마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왕따’되지 않고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만 우리 공직사회도 비로소 희망이란 게 존재하고 미래가 있다고 확신한다.

필자는 이제까지 공무원 신분으로 국회에 근무하면서 몇 번이나 징계와 면직 위기를 겪어야 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한 기자는 필자에게 “걸어 다니는 징계혐의자”라고 농담 삼아 말할 정도였다.

필자가 직면했던 대표적인 징계위기는 바로 지금 이 기고문에서 계속 지적하고 있는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에 대한 비판 때문이었다.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국회 공무원들이 헌법이 부여하지 않은 막강한 입법권한을 행사하는 ‘검토보고’ 제도에 위헌 소지가 있으며 따라서 폐지되어야 한다는 기고문을 신문에 발표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국회사무처가 필자에게 뒤집어씌운 혐의는 ‘품위 유지 위반’ 혐의였다. 그러나 정작 ‘품위 유지’를 어긴 것은 오직 그들이라는 확신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그 뒤 필자는 양승태 전(前)대법원장이 추진했던 상고법원 추진법안에 국민들이 알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미 과반수 이상의 의원들이 서명한 사실을 비판하고 상고법원은 절대 도입해서는 안 된다는 기고문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다시 징계위기에 몰렸다. 당시 국회 법사위 의원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필자를 징계하기로 했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훗날 풍문으로 들었다(그런데 이 기고문을 계기로 필자는 대한변협의 ‘상고법원반대 TF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마침내 상고법원을 저지시키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었다).

보수정당 출신의 어느 국회의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 이름을 거론하면서 (기고를 포함한 필자의 활동을) 비난하기도 했다. ‘아랫것’의 ‘하극상’에 못마땅해 한 것이리라. 봉건성과 비민주성의 뿌리가 깊다. 한편 국회사무처의 한 고위간부는 언론사에 메일을 보내 필자를 비방하면서 필자의 기고문을 실어주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했고, 공공기관이 주최하는 학술대회는 발표를 불과 며칠 앞두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필자의 발표만 돌연 취소되기도 했다.

 

국가가 요구하지 않지만,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자

필자는 조직 내에서 이른바 ‘왕따’가 되어 시대를 앞선 ‘혼밥족’으로 산지 몇 년이 계속되었고, 또 필자가 조직 내 ‘왕따’로 지내는 사이에 나이가 상당히 어린 한 직원에게 “당신”이라는 말을 듣는 수모까지 당했다. 하지만 결코 이를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심성을 단련시키는 기회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사실상 면직의 위기였던 두 차례의 징계위기는 가까스로 넘겼지만, ‘서면경고’를 피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 발단은 무슨 비판을 하고 기고문을 발표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공포(公布)’라는 법률 개념을 둘러싼 학술 차원의 논의로 인한 것이었다.

사실 필자의 이 문제 제기는 최소한 입법을 주 업무로 하는 국회로서는 법률적 개념을 혁신적으로 바로잡은 것으로서 상을 받아야 마땅한 문제였다. 하지만 필자는 관련 개념의 정확한 규정을 요구했다고 하여 결국 기관으로부터 징계까지 받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기관장으로부터 공식석상에서 “×××”라는 욕지거리를 들어야 했다. “정신병자”로 지칭되기도 했다(이 문제를 국가인권위에 진정했지만, 국회는 자신들 소관 밖이라며 접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실 국회의 다른 문제를 국민국익위에 제기한 적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국회는 소관업무 외라는 회신만 받아야 했다. 이렇게 하여 국회 조직은 ‘그들만의 리그’, ‘성역’으로 영역화한다).

또 그 ‘서면경고장’을 준 총무과 계장은 필자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훈계’까지 하였다. 나아가 이 징계의 부당성을 바로잡고자 요청해 열린 고충처리 소청조차도 “근무한지 몇 년이나 됐느냐?” 등 조롱 섞인 언사만 들어야 하는 채 기각되었다. 이 소청에서 필자는 중요한 증인이기도 한, 진보진영 출신으로서 훗날 국회의원까지 된 한 당료의 증언을 요청했지만, 그는 귀찮은 탓인지 아니면 문제의식이 결여된 때문인지 출석을 거부했다. 무릇 정치란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배려하고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가장 큰 덕목일 터다. 불행하게도 타인의 아픔에 대해 이렇듯 무관심하고 경시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 정치인들의 근본적인 폐단이리라.

내게 서면경고를 ‘부여’한 기관 측은 서면경고가 징계도 아니고 아무런 효력도 없는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징계도 아닌 것”을 그토록 한사코 ‘부여’하고자 했을까? 필자가 서면경고를 받은 바로 그 날부터 알고 지내던 동료 직원들이 복도에서 지나치면서도 아는 체 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그 날로부터 완전히 ‘왕따’가 되었고, ‘혼밥족’이 되어야 했다. 확실한 사실은 그것은 ‘주홍글씨’로서 곧 조직 내 ‘왕따’의 분명한 신호라는 점이었다.

언젠가 이 ‘법률 문제’에 대해 내가 발표를 하고 기관에서 관련 전문가를 초청하여 학술토론회를 연 적이 있었다. 당시 토론회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할 때 한 법대 교수가 내 직함인 ‘해외자료조사관’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동석했던 과장은 “번역하는 사람이다”라고 답하는 것이었다. 이건 예를 들어 방호과 직원을 앞에 두고 “문지기”라고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소한 ‘조사관’이란 명칭그대로 조사를 담당한다고 하면 될 일을 굳이 번역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예의 차원만이 아니라 인격 모독, 인권 유린이기도 했다. 나아가 “번역하는 사람”이 발표하는 자리에 토론하러 참석한 교수들도 모독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 과장은 이후 사과하라는 내 요구도 들은 척 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 과장은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공무원으로 된 후 기관에서 개혁적 발언이나 행동을 했던 것을 보거나 들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징계를 받던 당시 나는 갈릴레오처럼 탄식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모두가 막무가내 1+1=3이라 강변하면서 1+1=2라는 나의 정답을 처벌하는 상황이었다.

한 가지 부연해야 할 특징적인 사실은 필자에 대한 징계 사안이 묘하게도 모두 교수 출신의 기관장 시기에 발생했다는 점이었다. 여당이 파견한 인물이든 야당이 파견한 인물이든, 또 그들이 입으로 진보를 내세우는가 보수를 내세우는가와 전혀 무관했다.

하지만 필자는 결코 그러한 비정상적인 압박이나 상황에 굴복하여 무릎 꿇고 살 수 없었다. 필자는 매일같이 어둠 속 새벽 출근길에 국회 정문을 들어서면서 다짐했다.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저항’하고 ‘투쟁’하자. 그리고 ‘연구’하자.” 그러면서 감히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

국가가 요구하지 않지만, 오늘도 국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전심전력, 실천하고자 하였다.

 

모든 분야에서 비판자, 실천자가 나와야 하고, 구체적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2019년 11월, 필자는 청천벽력과 같은 아내의 췌장암 4기 확진으로 근무가 불가능해졌고 끝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소속된 과의 과장이라는 사람은 한 마디의 위로의 말이나 문자도 없었다. 알고 지내던 한 국회사무처 고위 간부는 필자의 후임 채용에 자기 아는 사람을 도와준다며 정말 너무 경황이 없는 필자에 전화해 일언반구의 위로도 없이 필자가 수행했던 업무 내용 좀 보내줄 수 있냐는 어이없는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또 내가 가슴이 무너지는 사연으로 직장을 떠났건만 국회도서관 노조 게시판에는 필자 후임 채용을 언급하면서 필자를 “문제아”라고 표현해 ‘조롱’과 ‘적대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아이러니하게도 이 노조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사랑과 화목이 가득한 직장”이다). 물론 필자를 응원해준 국회 직원들도 적지 않게 있지만, 참으로 몰인성화(沒人性化)된 조직의 성격이 그대로 투영된, 어이없게도 슬프고 이기적이며 비인간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1760년대의 이탈리아의 계몽사상가 베카리아는 사람들이 분석적 탐구보다는 진부한 인상에 좌우되기 때문에 “생명과 자유에 가장 필수적인 문제에서도 수많은 오판을 겪고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지쳐 인내의 한도에 이른 이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괴롭혀온 폐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들의 눈은 가장 자명한 진리를 향해 열린다.”고 설파했다.

우리는 이제 진리를 향해 눈을 떠야 할 때이다.

민주주의란 결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가져다 바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비판자 그리고 실천자가 되어야 한다. 바로 나로부터 시작하여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정확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 스스로 정상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러한 힘의 총화로써 우리 사회가 비로소 민주주의가 실현되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진리는 그리고 희망은 멀리 ‘추상’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가까운 곳에 ‘구체’로 존재한다.

모름지기 지행합일(知行合一)이 실천되어야 한다. 입으로 진보를 주창하는 인사일수록 정작 그 일터에서 진보의 가치를 실천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운 오늘의 현실이다. 공적 가치와 사적 이익 추구의 주관적 등치가 빈발한다. 자기의 삶터와 일터라는 가까운 곳에서는 전혀 실천하지 않으면서 침묵하고 방관, 동조하면서 오로지 멀리 ‘열매’와 ‘자리’만 추구했기 때문에 결국 오늘의 모순과 혼돈이 초래된 것이리라.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시작된다.

수, 2020/05/20-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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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의 시작을 알리는 『흔들리는 분단체제』가 출간된 것은 1998년이다. 앞서 말했듯 이 제목은 역설적이다. 분단체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알리면서 분단체제 개념은 장기화되고 분단체제론은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2006년에는 “지금 돌이켜 보면” 분단체제가 1987년 6월부터 이미 “동요하기 시작했었다”고 하였다. 1987년 6월은 양국체제론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분단체제의 양국체제로의 전환’의 가능성이 이때부터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단체제론의 강조점은 다르다. 이렇듯 일찍부터 분단체제가 동요하고 흔들리고, 더 나아가 허물어지고, 해체되고 있다고 하면서, 그럴수록 분단체제는 묘하게 더욱 장기화하고 그에 따라 분단체제론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하는 이론적 메커니즘이 분단체제론 2기의 특징이다.

이 메커니즘의 숨은 비밀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매우 높은 평가에서 출발한다. 물론 이 두 사건은 높게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나 역시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높게 평가하는 대목이 크게 다르다. 아무튼 ‘분단체제론적 고평가’는 1997년 발표한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에서부터 표명되기 시작하는데, 이 글은 1991~1994년 사이에 발표된 글들에서 보인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경계와 유보, 그리고 이를 전제로 한 소극적 인정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입론의 첫 단계(1991~1994년)에서 분단체제론은 아직 분단체제극복운동과 현실과의 접맥점을 잘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접맥점이란 그렇듯 높은 목표를 갖는 분단체제극복의 경로와 주체를 구체화하는 것이 될 터인데, 첫 입론 단계에서는 아직 “통일운동이 민중운동이 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거나, “범한반도적 민중운동 …… 남북한 민중연대의 가능성”을 원론적 수준에서 언급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러한 ‘범한반도적 민중운동’과 ‘남북한 민중연대’ 주장이 “남북한의 현실을 ‘현실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 (현실적 근거가 없는) 당위론적이고 관념론적인 이상론이 아닌가”라는 비판에 대해, “문제의식은 정당한데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서 구체적인 성과가 미미한 것과 문제의식 자체가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당위론 내지 관념론·이상론이라는 것은 마땅히 구별해야 할 터”라고 소극적으로 변명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원론적 시각에서 볼 때 남북 유엔 동시가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이 ‘남북한 민중연대에 기초한 범한반도적 민중운동’의 기준에서 한참 못 미침은 자명했을 것이고, 그래서 백 선생은 1991년 “유엔 가입을 포함한 한국 정부의 ‘북방정책’의 성과”가 “반민주적 분단체제의 부분적 개량에 불과함이 명백하다”고 썼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것은 문자 그대로 개량이요 개선이지 개악은 아니며,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이바지할 가능성과 더불어 분단체제극복운동에도 새로운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라는 흥미로운 표현을 덧붙였다. 소극적인 인정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분단체제 장기화에 이바지”라고 하는, ‘분단체제의 장기화’가 긍정되는 묘한 표현과, 그 분단체제의 장기화가 “분단체제극복운동에도 새로운 공간을 열어”준다고 하는, 분단체제론의 독특한 개념적 함수관계가 처음으로 명료하게 드러난 대목이기도 하다.

우선 유엔 동시가입 등 북방정책의 성과가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이바지했다’는 말은 명백하게 틀렸다. 사태를 정반대로 말하고 있다. 유엔 동시가입 등 북방정책의 성과들은 분단체제를 분명히 균열내고 흔들었다. 그 균열과 동요를 틀어막았던 것, 즉 진정 “분단체제 장기화에 이바지”했던 쪽은, 그 유엔 동시가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의 효과가 북미・북일 수교로, ‘남북 양국(평화공존)체제’의 성립으로 이어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던 내외의 냉전대결 세력들이었다. 어쨌거나 이 말에서 드러난 분단체제론의 독특한 개념적 함수관계를 정리해본다면,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의거하여 분단체제극복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가기 위한 이론’이 될 것이다. 이 독특한 함수관계는 몇 년의 숙고를 거친 후인 1997년,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을 얻게 된다.

통일을 향한 획기적인 한 걸음을 뜻하면서도 분단체제의 급격한 붕괴를 피하는 국가체제라면 비교적 느슨한 형태의 복합국가인 국가연합(confederation)이 아닐 수 없다고 본다 …… 북의 ‘연방공화국’ 제안이 영어로는 ‘confederal republic’(즉 국가연합 공화국)으로 표현되었고 1991년 남한 정부의 ‘한민족공동체’ 통일안에 국가연합 단계가 포함되었다는 사실들을 떠나서라도, 남북 간에는 국가연합을 향한 더욱 실질적인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북한의 UN 동시가입이야말로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라는 면에서 그 어느 공동선언보다 실질적인 조치였으며, 이렇게 상호 인정을 나눈 두 국가 당국은 1991년 12월에 조인되어 92년 2월에 발표한 ‘남북합의서’에서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로 규정함으로써 이미 국가연합 형태의 단초를 열어놓은 형국이다.

“통일을 위한 획기적인 한 걸음”으로서 남북의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을 강조하고, 남북 유엔 동시가입이 이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였음을 언급하는 대목은 마치 분단체제론이 아니라 양국체제론의 논거를 펼치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피상적으로 보면 분명 그렇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중요한 점에서 인식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글을 쓴 1997년은 어떤 시간인가. 유엔 동시가입 이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한국은 중국, 러시아와 수교한 반면, 북(DPRK)은 결국 미국, 일본과 수교하지 못한 채 매우 위축된 상황에서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음에도, 이러한 상태를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매우 후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양국체제론의 시각과 분명히 다르다. 양국체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남북 양국 모두에서 내적 외적으로 안정된 인정구조가 우선 성립되어야 한다. 남북 유엔 동시가입은 외부 세계가 남북 두 국가를 각각 정상적이고 온전한 국가로 인정하는 ‘양국체제의 외적 인정구조 성립’을 위해 중요한 일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불완전하고 불균등했다. 한국은 소련, 중국 및 동구권 모든 국가와 수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북은 그러지 못했다. 미국은 냉전 해체 이후 위기에 처한 북을 압박을 통해 붕괴시키려만 했지 인정할 의도가 애초부터 없었다. 그 결과 일본을 비롯하여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많은 국가가 북과 수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남과 북은 국제적으로 매우 불균등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런 상태는 남북 간의 긴장의 소지를 오히려 높이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듯 여전히 위태로운 상황 속의 남과 북 두 나라의 관계가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이미 ‘실질적으로’ 이루어져 마치 안정된 평화적 동반 관계가 이미 달성된 상태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분명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인식이었다.

양국체제론의 현실 인식과의 차이는 이어지는 다음 대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양국체제론은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이제는 유명해진 구절인 “(남북 쌍방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라는 표현을 매우 문제적인 것으로 본다. 나는 다른 글에서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보았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란 앞서 분석한 ‘반쪽국가의식’에 정확히 상응하는 표현이다. 흔히 <남북기본합의서>는 1972년 체결된 <동서독기본조약>을 준용한 것이라 한다. 그것은 사실이지만, 상호 인정의 수준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동서독기본조약>에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동서독기본조약>은 서문, 10개조, 그리고 2개조의 추가조항 전체에서 조약 쌍방을 정식국호인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라 분명히 칭하고, 두 국가가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은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필자가 독일의 동방정책과 관련해서 이와 그나마 가까워 보이는 표현을 조사해본 바로는, 1969년 10월 28일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의 연방정부 성명 중에 “독일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더라도 그 국가는 상호 외국이 아니며, 그 상호관계는 특수한 종류인 것”이라 했던 것이 처음이었다. 그 성명의 핵심은 독일에 독일연방공화국과 독일민주공화국이라는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다만 그 두 국가는 서로 외국이 아닌 특수관계라는 뜻이었다. 먼저 국가로서 인정하면서, 그다음에 그 두 국가 간의 관계는 특수하다 한 것이다. 하나의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one nation, two states) 간의 관계이니 특수하다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동서독은 기본조약 이후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일반 수교국 대사보다 격이 높은 장관급 대표를 상호 파견했다. 그런데 <남북기본합의서>는 그와 전혀 다르다. 국가로서 인정하지도 않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고 거듭 확인까지 하고 있다.(이 책 1부 1장, 52~53쪽)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문제의 그 구절은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을 표현하고 있다고 결코 볼 수 없는 것이다. 아직 그 상태에 이르지 못한 남북 양 당국의 곤혹스러운 상황을 외교적 언어로 봉합하거나 절충하는 표현에 불과한 것이었다.

당시 상황을 냉정하게 보면 비록 냉전이 종식이 되었다 하더라도 미국이 북을 인정할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 남북 양측만으로 종전(終戰)을 이루기 어려웠다. 아직 전쟁도 공식적으로 끝마치지 못한 상대를 국가로 인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바뀐 일이기도 하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미국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북과 종전처리를 하고 상호 국가 인정까지 밀고 나갈 만큼의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북 역시 ‘남조선’을 곧바로 국가로서 인정할 만한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못했다. 위기에 처한 당시의 상황을 우선 모면하는 데 급급했지 장기적인 비전을 차분히 재정립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듯 남북 모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제약된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낮은 수준의 합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남북기본합의서>가 <동서독기본조약>에 비해 상호 인정의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불완전한 합의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한계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그것을 극복해갈 방향도 정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 그것이 마치 오히려 더욱 높은 수준의 심오한 합의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실제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표현은 그러한 혼란을 유발할 여지가 없지 않다.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라는 높은 민족적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한 결과,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려는 속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표현되었던 것처럼 과잉 해석될 수도 있다.(이 책, 53~54쪽)

앞서 인용했던 1997년도의 백 선생의 글이 바로 그런 과잉 해석의 두드러진 일례다.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바로 그 문제의 구절을 “국가연합 형태의 단초를 열어놓은 형국”이라거나, “연방제 통일로의 길도 열어놓았”고 “이미 형성되기 시작한 일종의 연합관계를 추인”하는 것이라고 극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고평가는 이후 글에서 거듭 되풀이된다.

한쪽(DPRK)은 ‘고난의 행군’에다 ‘핵사찰’의 압박 속에서 생사존망의 위기에 빠져 있고, 휴전선의 삼엄한 대치와 긴장은 여전한데, 그러한 상황에서 ‘연방제 통일의 길’이 이미 열려 있고 남북 간 ‘연합관계’가 이미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실제 1991년은 그러한 ‘양국 평화공존 체제’의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열렸던 순간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한국 민주화운동 세력이 분열되고, 내외 냉전대결 세력의 힘이 압도하면서 금방 닫히고 말았다. 사정이 그러했기 때문에 1991년의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를 1997년에 돌아보면서 쓰는 글이라면, 그 가능성이 어떻게 열릴 수 있었으며, 어찌하여 그렇게도 빨리 닫히고 말았는지,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지적하는 글이 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랬더라면 훨씬 더 시의적절했을 것이다. 아쉬운 대목이다.

1997년 쓴 백 선생의 이 글이 왜 그렇게까지 낙관적인 글이 되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분단체제론을 초기 입론한 1994년의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의 한반도 정세와 분단체제론」에는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1992년의 「분단체제의 인식을 위하여」에는 지나가는 말로 “남북 양쪽에서 제기된 국가연합을 전제한 민족공동체라든가 연방제, 연합성 연방제 등”이라고 딱 한 번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 단계에서는 두 사건이 분단체제론의 입론에서 별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1997년에는 이 두 사건에 대한 매우 높은 사후 평가가 분단체제론의 새로운 입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렇게 변화한 사정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시기상 남북 화해와 통일정책에 적극적이었던 김대중 씨의 집권 가능성이 생겼다는 상황과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당시 미국의 클린턴 정부가 북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사정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어느 것이든 짐작일 뿐이다. 그렇지만 순전히 이론적 차원에서만 본다면, 백 선생의 분단체제론이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를 적극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입론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미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 직후에 이 속에서 “분단체제의 장기화에 이바지할 가능성”, 그와 더불어 “분단체제극복운동에도 새로운 공간을 열어”줄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로써 분단체제론 2기에는 ‘국가연합(또는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론의 키워드로 부상한다. 이 점이 1기와의 큰 차이다. 그런데 어떤 국가연합이든, 구 소련연방 국가들의 ‘국가연합(CIS)’이나 유럽연합(EU) 등 어떤 사례를 보더라도, 국가의 연합이라 하면 먼저 국가 간 국가로서의 완전한 상호 인정과 정식 수교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국가연합을 이룬 나라들은 국가연합 이전에 당연히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대사를 교환한다. 우리와 같이 한 민족이 두 나라를 이루고 있는 경우에 이 두 나라(ROK와 DPRK)의 수교관계란 마땅히 일반 외국 사이의 수교관계보다 더 높은 것이 된다. 그래서 동서독도 기본조약 이후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양국에 대표부를 설치했고, 일반 대사보다 급이 높은 장관급의 대표를 교환했다. 그것이 양국체제고, 그것이 전제되어 있지 못한 국가연합, 즉 ‘국가 간 정식 수교관계 없는 국가연합’이란 도대체 성립될 수 없는 말이다. 국가연합을 하자면 먼저 국가 간 수교가 당연히 선행해야 되지 않겠는가? 먼저 밥을 지어놓아야 그것으로 비빔밥이든 볶음밥이든 만들 것 아닌가. 밥도 해놓지 않고 비빔밥 나와라 볶음밥 나와라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애당초 불충분하고 불완전했던 것이 1991년의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였다. 이것이 양국체제론의 시각이다. 그러나 백 선생은 그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의 취지조차 그 후 북핵문제와 전쟁소동으로 빛이 바래버린 1997년에 이르러, 1991년에 남북은 이미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이뤄졌고, 더 나아가 기본합의서를 통해 “국가연합을 향한 더욱 실질적인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라고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조건이 무르익은 국가연합의 완성을 위해 이제 일로매진만 하면 된다. 이로써 분단체제론은 현실과의 실천의 접면을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국가연합의 완성을 위해 일로매진할 때, 앞서 1991년의 글에서 예고하였듯, ‘분단체제극복운동에 새로운 공간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새로운 공간이란 ‘분단체제 장기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분단체제론은 이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마련되어 있는 이곳, 국가연합(남북연합)의 터가 바로 분단체제론의 로두스다! 여기서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a! 동시에 바로 이곳이 ‘지평선 도달하기 운동’의 출발점이다. 이곳에 출발선을 그은 이상, 이제 여기서부터의 한 발짝은 모두 지평선을 향한 한 발짝이다. 우리가 발걸음을 떼는 만큼 우리는 지평선에 가까워진다. 분명하지 않은가! 지평선 도달하기 운동의 실체성, 실천성은 이로써 명확해진다.

백 선생이 “나라 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기본합의서 서문의 구절을 1997년에 이르러 그토록 높게 평가했던 이유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분단체제는 하나의 체제다’라는 분단체제론의 명제에서의 강조점이, 이론 1기에는 ‘체제’ 쪽에 있었다면, 2기에는 ‘하나의’로 쪽으로 이동했다. 분단체제란 결코 둘일 수 없는, 둘이어서는 안 되는 ‘하나의’ 체제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나라 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고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했던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표현은, 이렇듯 (나라 대 나라 사이의) 둘의 관계가 아닌, ‘하나의’ 체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특수한 관계”라고 하는 ‘분단체제’의 성격을 지극히 절묘하게 표현해준 것으로 읽힌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태를 “국가연합을 향한 더욱 실질적인 합의가 이미 이루어진 상태”와 등치하게 된다.

앞서 최원식 교수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라 했던 표현의 근원이 어디였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다. 남북연합(국가연합)은 ‘하나의’ 체제인 분단체제를 상정하고 전제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하나의’ 체제인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고 ‘두 개의 나라’를 전제하는 양국체제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 이런 사고법에서는 양국체제가 안정되어야 비로소 정책연합이든 국가연합이든 통일로 가는 다음 단계가 가능해진다는 생각은 자리 잡을 데가 없어진다. 분단체제론이 국가연합과 함께 강조해온 남북 민중연대(또는 시민연대)도 양국 수교를 통한 안정된 민간 교류 속에서 훨씬 대대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가로막혀 있다. 다만 양국체제는 ‘국가연합과 연방제를 통해 통일로 직행하는 길’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로 간주될 뿐이다.

분단체제론 1기에서 분단체제 개념의 ‘과잉이론화’는 분단체제의 장기화와 분단체제극복 과제의 초역사적 보편화라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2기에서의 과잉이론화는 분단체제가 국가연합(남북연합)의 전제조건으로 상정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로써 분단체제 자체가 국가연합이라는 적극적인 실천목표와 어느덧 엉켜버린다. 국가연합의 목표 실현을 위해서는 분단체제의 존속이 상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후 국가연합(남북연합)은 분단체체론의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초점이 된다. 이로써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의 존속을 상정해야만 하게 되었다. 앞서 이를 ‘분단체제론의 곤경(딜레마)’이라 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분단체제론의 출발에서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었던 분단체제가 이제 ‘남북연합’이라는 분단체제극복운동의 목표와 뒤엉키면서, 어느덧 분단체제 자체가 적극적인 긍정의 대상으로, 처음과는 정반대의 존재로 환골탈태하고 만다. 앞서 이를 ‘분단체제론의 역설(패러독스)’이라 했다. 이 분단체제의 곤경과 역설은 이론 2기에 이르러 이제 그 전모를 완연히 드러내게 되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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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5/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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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 의원 등 끊이지 않는 국회의원 및 공직자 등의 농지투기 근절을 위해

모든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 즉각 실시하라!

지난 주(25일)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본인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과 관련해 의원직 사퇴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지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농지투기 의혹 조사 발표에 이어,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조사도 발표도 이루어진 바, 윤희숙 의원의 농지투기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세종시에 있는 윤 의원 부친 명의의 농지는 주변 지역이 개발되어 가격이 매입 당시보다 최대 2배가량 오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직접 농사를 짓기 위해 농지를 구입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농업경영 계획서를 제출하고 농지 3,300평(1만871㎡)을 산 아버지가 농사를 지은 적이 없고, 주소지만 대리 경작한 주민의 집으로 몇 달간 옮겨놓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형적인 농지투기 방식이다.

더욱이 윤희숙 의원 아버지가 매입한 세종시의 농지는 산업단지들 가까이에 있다. 일각에서는 윤 의원이 일했던 한국개발원(KDI)이 국가산업단지 예비타당성조사 기관인 점을 들어 내부 정보를 이용한 농지투기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하고 있다.

LH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 만연한 땅 투기는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가져오고 땅 투기의 90% 이상이 농지임이 드러난 바 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사문화되고 농지법에서 농민이 아닌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해 놓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바꾸기 위해 정부는 농지법 개정안을 지난 8월 국회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8월에 개정된 농지법은 이전 농지투기 등 불법 농지 소유에 대해서는 묵인하고 새롭게 이후 상황에 대한 관리만 강화하자는 것으로 농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해줄 수 있는 공공재이다. 그리고 OECD 평균이 102%에 달하고 있는데 한국의 식량자급율은 20%에 불과하다. 앞으로 농지가 농민의 것이 아니어서, 농지가 영농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에게 공급할 식량을 생산할 토대인 농지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기후위기로 생산량이 급감하고 수입농산물 가격이 폭등하여, 밥상 물가도 폭등하는 현실을 현재도 경험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농지는 국민 모두에게 식량 공급이라는 이익을 제공하는 공공재이다. 더 이상 농지가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위해 농지투기부터 근절해야 한다.

농지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농지 전체 필지에 대한 전수조사가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 기존 투기 농지를 그냥 두고 관리만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농지관리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과연 투기를 목적으로 농지를 구입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수익을 포기하고 정부의 농지관리에 협조하겠는가? 더 이상 농지투기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확립하고, 농지투기를 근절하기 위한 근간으로서,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즉각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윤희숙 의원 부친의 농지투기 의혹의 진상을 밝히고 특히 한국개발원 등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가 아닌가에 대한 수사도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

2021년 8월 31일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국민과 함께하는 농민의길

(가톨릭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친환경농업협회,

(사)전국쌀생산자협회, (사)전국양파생산자협회, (사)전국마늘생산자협회)

성명

화, 2021/08/3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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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는 더욱 통제된 사회로 이끌어가는 듯한 여러 특징들을 보인다. 정보통신 기술의 ‘민주적’ 잠재성은 명백하다. 그러나 경제적 통제의 역학(소수의 다국적 대기업이 실상 정보통신산업 전체를 장악하고 있다)이 매우 강하며 신자유주의 시장의 공격성이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세계적인 위기는 새로운 불안의 요인을 하나 더 추가시킨다. 곧 안정이라는 주제가 사생활 및 시민들의 권리를 밀어낼 위험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보통신은 다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네트워크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으며, 분명 민주주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중요한 공공 장소가 될 수도 있다”De Blasio, 2014.

 

시민들의 인터넷 참여: 참여의 미래인가?

인터넷은 시민들 대부분의 직접 참여 방식으로서 이미 오래 전부터 정보와 통신, 정치적 활동을 위한 기반이 되었다. 인터넷은 전통적인 정치적 심의 형태를 대체하지 않지만, 많은 절차를 간편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온라인 참여예산처럼 오로지 인터넷을 통해 가동하는 방법이 있고, 공공 조사 등의 다른 방법들은 직접 접촉하지 않고는 할 수 없다. 이런 방식으로 적어도 인터넷 공간에서 의사소통 채널들이 교차되고, 평범한 시민들과 행정가 및 선출된 정치인들 사이의 거리를 크게 좁힌다.

무엇보다 e-정부(세금 신고, 온라인 기부 요청, 디지털 행정 등)와 e-민주주의 혹은 디지털민주주의, 곧 온라인 도구의 사용을 통한 정치적 선택과 선호의 표현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 공공 행정(e-정부)으로는 시민들이 공공 기관의 서비스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모든 인터넷 신청에 국한된다. 행정적 절차가 정보기술적 방식으로 전개되어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는 것이 불필요해진다. 서비스는 더 빠르고 신속해지고, 행정은 더욱 투명하고 접근하기 쉬워진다. 적어도 인터넷에 익숙한 시민들에게는 그렇다.

디지털민주주의의 경우, 시민들은 이제 단지 공공 서비스의 고객이나 수혜자가 아니라 정치 의지의 형성과 정치적 현안들에 대한 소통 및 결정 과정의 동반 파트너이다. 인터넷 참여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여 정치적 결정과 심의 과정에 시민들의 능동적 참여를 허용하는 방법을 모두 포괄한다. 시민들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조사나 검사를 위해 접촉하고, 행정가나 정치인들과 대화에 들어가고, 청원서와 법제 안에 서명하고, 마지막으로 전자 방식으로 투표할 수도 있다.

물론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직접적인 만남과 집회, 사람들과 직접 만나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도 활발해진다. 현장에서의 만남은 원칙적으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활동과 병행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고려하여 인터넷은 더 큰 참여를 위해 그저 확고한 추진력이 될 뿐만 아니라 각각의 참여 형태를 활발히 전개하기 위한 기술적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민들 사이에서 어떤 형태의 참여민주주의와 컴퓨터민주주의가 시행되고 있는가? 개인들 사이에서나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시민들이 운영하는 컴퓨터 카페와 광장 등에서 활용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별도로, 공식 참여나 제도적 참여 면에서 이탈리아는 다소 움직임이 둔한 편인 듯하다. 전자-디지털 방식의 결정 및 심의 방법의 활용은 참여할 시민 단체 및 참여 방식의 목적과 성격, 프로그램 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기금이나 법적인 틀에 달렸으며, 특히 정치적 의지에 달렸다.

 

점차 더욱 다양화되는 인터넷 참여 형태

보통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방법들은 광범위한 절차에서 쌍방향식으로 구체적 목적에 활용될 수 있다. 단순한 공식 정보전달에서 시작하여, 심사를 위한 시민 자문과 쌍방향식 토론을 거쳐, 서명과 전자투표를 통해 시민들의 직접 참여에 도달한다. 인터넷을 통한 참여 부문에서 완전히 네트워크상에서 시행하는 방법과 다른 온라인과 오프라인 참여를 병행하는 방법을 구분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대개 온라인 구성 요소들(가령 모든 서류, 교육 활동, 일정 등을 모아 해당 기초자치단체 사이트에 싣는 예비 단계의 공공 서비스)을 통해 고전적인 방식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유럽 차원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첫 번째 도구인 유럽 시민들의 발안은 전자 서명 모음부터 시작하여 주로 네트워크상에서 시행된다. 다음 네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a) 인터넷 청문회

이미 널리 파급된 방법으로 현재 공공 기관과 대의 기구들도 특정 주제를 토론하고 모든 참여자들이 자신의 제안과 입장을 낼 수 있도록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대개 공공 기관에서 임명된 에디터들의 도움을 받는 공개 포럼은 개방형open end 온라인 토론 또한 허용한다.

b) 정치인들과의 온라인 약속

인터넷상에서 제한된 시간 동안 서면 교환과 문답식의 화상 채팅을 바탕으로 하는 공개 모임을 말한다. 온라인 공개 약속은 인터넷상에서 직접 중계될 수도 있다.

c) 온라인 청원

기초자치단체에서부터 유럽연합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공공 기관들은 해당 웹포털을 통해 청원서나 요구사항들을 제출할 기회를 제공한다. 보통 이탈리아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 국회들은 자신들의 사이트를 만들어 청원서를 제출하게 한다. 집단 청원은 공개 토론 플랫폼이나 국제 비정부 단체들에서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AVAAZ와 change.org가 있다. 전자 청원권은 전자 서명 모음과 연결시킬 수 있는데, 정한 기간 안에 요청사항을 지지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 해당 기초자치단체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청원서를 열어 서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d) 전자 서명 모음과 e-투표

온라인 참여는 투표권을 지닌 시민이면 누구든 온라인으로 국민발안 법제안이나 실행적 레퍼렌덤 요청서에 서명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 근거하며, 광장이나 기초자치단체 관청을 직접 찾아가 서명할 수도 있다. 미래에는 국민발안 법제안을 추진하려는 요청 자체를 온라인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참정권은 미래에는 전자 투표로 보완될 것이며, 이는 스위스나 에스토니아 같은 여러 나라에서 이미 도입되었다.

 

세계의 전자 투표

무엇보다 먼저 e-투표를 투표자를 식별할 수 있는 직접 전자 등록시스템과 구분해야 할 것이다. 투표자는 POS(Point of Sale의 약자. ‘판매 시점 정보 관리’를 뜻한다─역자 주)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스마트카드를 받는다. 투표소의 집계 작업을 간소화 하기 위한 이 전자 투표 기기는 인도, 브라질, 미국에 널리 보급되어 있으나 대다수의 민주국가들에서는 아직 서류 신원 확인과 손으로 하는 집계가 주류를 이룬다.

더 중요한 것은 인터넷 투표, 곧 좁은 의미의 전자 투표이다. 인터넷을 통해 유권자들은 그 시스템의 웹 인터페이스에서 돌아다니며 자기 기초자치단체 선거 사무소 사이트를 연다. 투표자 신원 확인은 홈뱅킹과 비슷하게 웹사이트에서 확인 조회를 통해 하거나 전자 신분증(에스토니아의 경우 참조)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면 시스템은 모니터에 선거 용지를 보여준다. 유권자는 자신의 선택을 표시하고 화면상에서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투표자가 확인을 누르면, 작성한 투표 용지는 선거 서버에 전달된다. 투표 집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투표소나 거주 구역 차원에서 결과를 집계하여 2차적으로 중앙 차원에서 그 결과를 모으거나, 혹은 모두가 중앙으로 집중되는 디지털 집계도 있을 수 있다.

오늘날 유권자들은 표를 직접 투표함에 넣거나 우편으로 투표한다. 전자 투표는 시민들이 컴퓨터, 스마트폰, 타블렛 등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한 목적으로 직접하는 선거나 우편으로 보내는 투표와 더불어, 유권자들은 비밀번호를 받아서 그것으로 자기 기초자치단체의 포털에 접속한다. 그 다음에 단 한차례 자신의 표를 표시하면, 그 표는 암호 처리되어 무기명으로 전자 투표함에 저장된다. 해당 기초자치단체의 선거 위원회만이 전자 투표함을 열고 표를 해독하여 집계를 실시할 수 있다.

전자 투표는 종래의 종이로 된 선거표의 대안이 아니라 추가적이고 보완적인 형태로서 몇몇 나라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투표함에 하는 투표 및 우편 투표와 더불어 쓰이고 있다. 프랑스, 에스토니아 등의 몇몇 국가에서는 e-투표가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독일과 노르웨이는 실험 후 전자 투표 시스템에 큰 당혹감을 갖게 된 나라들이다. 노르웨이의 지방 기관들 및 지역 발전부는 2003년 온라인 투표를 위한 플랫폼 도입과 더불어 시작된 시험 기간이 끝난 2014년 6월 모든 e-투표 방식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투표의 정확성 인증을 보장하지 않는 시스템의 안정성에 대한, 의회에서의 지속적인 토론 끝에 그런 선택이 나온 것이다. 결국 시민들 편에서 전통적인 시스템을 선호하여 비밀 및 자유 투표의 원칙을 지킬 생각이었다.

독일에서는 2009년 헌법 재판소에서 디지털 투표는 선거 시행시 적절한 방법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하여 모든 형식의 디지털 투표를 폐지하였다. 독일 중앙 정부는 2000~2006년 사이에 직접 전자 등록기(DRE: 직접 기록 전자 시스템Direct Recording Electronic Systems)로 실험단계를 시작하여, 시민들 사이에서 운용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그 신뢰도에 대한 큰 우려가 일었다.

프랑스와 에스토니아는 e-투표가 유효하고 신뢰할 수 있는 투표 시스템으로 수용되어 편견과 불안을 극복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들은 이미 2003년부터 새로운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대의원을 선출할 수 있었다. 유권자들의6 0% 이상이 이 시스템을 전통 시스템보다 선호했다. 뒤이어 2007년 대통령 예비 선거를 위해 750개 투표소에서 같은 방법이 시행되어, 기록적인 투표율을 기록했다. 프랑스에서는 현재 해외 거주 유권자들이 전자 투표를 이용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모든 시민들에게 인터넷을 통한 투표 기회를 보장하는 최초의 나라들 중의 하나다. 2005년 에스토니아 유권자들은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와 디지털 신분증, 컴퓨터에 연결된 스마트카드 인식기를 활용하여 지역의 정치적 책임자 선출에 각자의 선택을 표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후 이 방법은 전국적 선거로도 확장되었다. 현재 인터넷 플랫폼은 시민들의 신뢰를 얻어 성장했는데, 2014년에는 유권자의 30% 이상이 전통 방식 대신에 e-투표를 이용할 것을 선택했다. 이 네트워크 시스템의 편의는 의무적으로 투표소를 찾아갈 필요가 없이 집에서 편리하게 투표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자 투표는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에스토니아의 유권자들은 그 외에도 각자의 핸드폰으로 에스토니아 경찰에서 주는 PIN 암호가 있는 SIM 카드를 활용하여 전자 투표를 위한 신원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투표 자체는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한다. 에스토니아 유권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컴퓨터, PIN 암호, 전자 신분증 확인 기기뿐이다. 이렇게 어떤 인터넷 접속 스테이션에서도 투표할 수 있지만, 사전 투표날에만 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는 세계 최초로 정치 분야에서 완전 온라인 투표를 선포한 나라이다.

핀란드는 2008년 헬싱키의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 처음으로 전자투표를 시험했는데, 232표의 집계가 누락되어 선거를 다시 치러야 했다. 2010년 1월 20일, 핀란드 정부는 전자 투표의 최신 발전 상황을 관찰해 보겠다는 뜻과, 다른 한편으로는 비전자적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6년 기초자치단체 선거에서는 새로운 전자 투표를 시험했다.

스위스의 기초자치단체 및 칸톤 차원 레퍼렌덤 투표는 근 150년 동안 굳어진 관행이었다. 1980년대부터 도입된 우편 투표를 널리 활용함으로써, 유권자들과 선거 관리자들이 원거리에서 진행하는 긴 투표 절차의 운용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금세기 초, 법적 구속력이 있는 첫 e-투표를 시험해 보는 것이 논리적인 수순이었다. 스위스는 에스토니아와 함께 전자 투표 형식DFAE(Democrazia diretta moderna 현대 직접 민주주의, 2018년)을 도입한 첫 나라들 가운데 하나다. 2004년부터 14개 칸톤에서 200여 차례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실시되어, 많은 유권자들이 전자 방식으로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몇몇 기초자치단체에서 한 첫 시험 이후, 2010년경 여러 칸톤들이 무엇보다 해외 거주 유권자들을 위해 전자 투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연방 정부는 보안상의 이유로 2015년 여름 여러 칸톤에서 e-투표 시스템의 허가를 취소했다. 2017년 2월, 이 투표 채널의 활용기회는 26개 칸톤 중 6개 칸톤에서 약 15만 명의 시민들만 이용했다. 2017년 4월 5일, 연방의회는 시험 단계를 종료하고 전자 투표의 보편적 활용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입법 작업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연방과 칸톤의 의원들 및 학자들로 구성된 관련 전문가 위원회는 2018년 3월 작업을 마무리했다. 곧 스위스에서 전자 투표가 우편 투표와 투표함 투표 외에도 보통 투표의 세 번째 투표 채널이 될 것이다. 2019년 중으로 칸톤 시민 2/3가 인터넷을 통해 투표할 수 있게 될 것이다DFAE(Democrazia diretta moderna 현대 직접 민주주의, 2018년).

그러므로 연방의회는 소위 ‘투표의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 곧 종이 없는 투표라는 길을 열기로 결정했다. 투표 절차는 디지털화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부분적으로나 전반적으로 유권자들에게 종이 문서(투표 용지, 확인 용지 및 관련 봉투, 투표 설명 발) 송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스위스에서는 2019년 연방 국회 선거를 위해서도 e-투표 채널들을 이용할 터인데, 무엇보다 75만 명의 해외 거주 스위스인들이 이를 활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들 중 단 1/5만이 전자 투표 의사가 있는 이들의 명부에 등록했다. 스위스에서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표를 확인하는 시스템 또한 가동된다. 곧 모든 시민들은 자신이 이미 투표를 했는지, 또 자신의 표가 전자 집계로 등록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럽연합의 차원에서는 유럽 시민들의 발안ECI: European Citizens’ Initiative을 위해 물리적 종이 서명뿐만 아니라 온라인 전자 서명 또한 허용한다. 유럽연합은 이 점에서 디지털 시대가 제공하는 새로운 가능성에 개방적이다. 유럽연합의 모든 시민들은 어느 곳에서든 서명할 수 있으며, 그저 자국의 선거 투표권을 지닌 유럽연합 시민으로서 각자의 신분을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사실 유럽연합 내의 엄청난 거리 상의 문제가 캠페인을 위한 서명을 모으는 것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전자 서명권은 서명하는 사람도 발안 위원회도 시간과 에너지와 비용을 절약하게 해 주는 거부할 수 없는 기회이다. 서명은 단순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해당 사이트에 자신의 신분 확인증의 정보를 넣어 등록하면 된다. 나머지 국민 청원 및 집단 청원에 그런 전자 서명 방법이 이미 스위스, 에스토니아, 미국 및 베네주엘라 등 여러 다른 나라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쓰이고 있다. 서명 모음 기한은 ECI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고 나서 1년 동안이다. 온라인 디지털 서명은 해당 국가의 당국에서 증명되며, 그러므로 이탈리아에 규정되어 있듯이 “서명 인증” 요청은 전혀 없다.

이탈리아에서 유권자들이 표한 선택의 투표와 집계를 위한 전자 시스템이 자리를 잡는 데 고전하고 있는데, 정확도, 투명성 및 사생활 보호 측면의 위험을 걱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1년부터 다양한 실험이 실시되어, 특히 투표소에서의 전자 투표와 전자 집계(사르데냐, 리구리아, 풀리아, 라치오)를 실험했다. 그런 첫 시도들은 내무부 덕분에 시작되었다. 약 1만 3천 개 지구에서 처음에는 시각적 인식 도구를 활용하고, 그 다음에는 좀더 오랜 컴퓨터화 시스템을 활용하여 실시했다. 최근에는 풀리아 주 멜피냐노와 살렌토라고 알려진 마르티냐노의 레체 지방 기초자치단체들에서 실시된 프로젝트 e-투표는 화면의 터치스크린을 기반으로 하는 첨단 시스템을 활용했다. 이는 2013년 멕시코에서 이미 레퍼렌덤 자문 기간 동안 활용된 기술이다. 실험은 모두 긍정적인 결과를 나타냈으며, 사람들은 혁신과 디지털화, 사회2.0를 얘기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런 실제적인 결과가 없다.

2015년 롬바르디아는 자문형 레퍼렌덤의 경우 전자 투표를 도입하는 주 법률을 승인했고, 2017년 10월 22일 자문형 레퍼렌덤에서 이 실험이 성공을 거두었다. 전자 투표 시스템에 대해 찬반 토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탈리아에서는 아직 지켜야 할 실제적 지침이나e- 투표 방향으로 유도해 갈 정치적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자 투표의 효과

여러 조사에서 나타나듯, e-투표는 두드러질 만큼은 아니더라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참여를 증가시킨다. 스위스나 에스토니아, 미국에서처럼(지방 선거), 전자 투표는 지금까지 정치적 참여에서 기권하려 했던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모두를 위한 전자 투표의 전반적 도입이 가져오는 결과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레퍼렌덤 권리 활용을 위한 문턱을 낮추어, 구조적, 제도적 장애물들을 더욱 쉽게 극복할 수 있다. 국민발안, 확정적 레퍼렌덤, 청원 등은 적은 비용으로 짧은 기간 안에 시행할 수 있다. 이런 시민들의 요구에 응하려면 공공 행정 관청과 특히 기초자치단체의 선거 사무소들이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여러 목록에 오른 후보들에 대한 분리 투표가 이미 우편 투표로 가능해졌듯이 더 쉬워질 것이며, 후보의 예비 선거와 정당이나 커다란 조직의 내부 투표도 더욱 용이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정당의 판도가 그 영향을 크게 받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제네바 칸톤에서 관찰한 모든 선거에서, “전자 선거”를 한 사람들의 선택은 투표함이나 우편 선거를 한 사람들의 선택과 일치했다. 그러므로 e-투표에 호의적인 이들은 모든 정당에 고루 분포되어 있는 듯하다.

전자 투표는 시민, 정치인 및 직접 활약하는 다른 주역들 사이의 구조적 불균형을 줄여주고 더욱 평등한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자 투표는 이미 대부분 정치에 관심이 없는 그 사회 계층을 참여시켜 내지는 못하는 듯하다. 실제로 전형적인 e-투표 유권자의 사회-인구통계학적 전망은 전통적 유권자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결국 인터넷은 레퍼렌덤 권리와 연결된 절차들을 간소화하고 용이하게 해 준다. 서명 모음, 발안 및 레퍼렌덤의 홍보, 온라인 투표는 기술-조직적 차원에서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시킨다. 전자 서명 모음의 이득은 명백하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접근은 더 쉽고 즉각적인 것이 된다. 군소 단체들과 자금력이 없는 발안자들 또한 국민발안에 착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디어 겨루기에는 수수한 이력을 지닌 이들 또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위험도 있지만 기회도 많다.

몇몇은 해커들의 선거 사무소 공격, 수백만 유권자들의 정보 조작 및 위키누출Wikileaks 식으로 그 정보가 인터넷에 유출되는 사태 등 악몽 같은 시나리오를 염려한다. 수백만 시민들의 사생활 보호권이 침해 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사건은 시민들의 전자 투표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의 상실을 가져올 수 있고, 민주주의 절차의 전문가들과 혁신가들에게 하나의 파국이 될 것이다. 어쨌든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과 프로그램이 이미 갖추어져, 경제와 행정 등의 다른 부문에서 벌써 여러 해 동안 작동하고 있다(예를 들어 홈 뱅킹과 전자 청구서). 어떤 경우든, 전자 투표 시스템을 한 개인 기업에 맡기는 것은 삼가해야 한다. 투표 용지의 집계 또한 개인 업체들에게 맡길 수 없다.

이 시점에서 또 다른 반대 의견이 제기된다. 만일 레퍼렌덤이나 발안 요청을 위한 서명이 인터넷상의 다른 모든 호소를 위한 서명처럼 그렇게 쉬워진다면 엄청나게 요청이 폭등하여 직접 민주주의는 평가 절하되고 말지 않을까? 국민발안의 물결이 레퍼렌덤 도구 사용을 폭등시키게 될 것을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어쨌든 국민발안을 마련하고, 법적 허용성이라는 여과 장치를 거치고 온갖 지지 자료를 준비하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지적 수고를 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여과 장치와 제한을 생각할 수 있다. 한편으로 서명 모음의 용이성을 고려하여 요청하는 서명의 최소 인원수를 높일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자 서명의 최대 인원수를 제한 할 수 있다. 여러 유럽 국가에서 이미 선구적으로 시작한 이 모든 절차가 성숙되려면 아직 10~20년은 걸릴 것이다. 디지털화는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어서, 이미 다음 세대에 투표함과 투표 용지, 수작업 집계 등이 시대 착오적인 현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예측할 수 있다.

 

정보 격차digital divide와 민주적 격차democratic divide 사이의 디지털민주주의

디지털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정보통신을 다루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민주적 절차의 적용과 지원이다. 인터넷과 정보통신 기술은 정치적 의사소통을 혁신시켰을 뿐만 아니라 투명성과 참여와 민주주의 자체를 강화시키기도 했다. 전자민주주의는 e-정부, 곧 전자 행정과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전자민주주의는 e-투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그 너머로 나간다.

인터넷은 공적인 공간을 재정의하고 확대시킨다. 19세기의 신문이 호기심과 교육을 자극하고, 그렇게 민주주의를 지원했듯이, 인터넷은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을 변경하고 확장시킨다.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는 정치적 대리인들의 선거로 끝날 수 없으며, 그 어떤 정당에도 속하지 않고 선거를 초월하여 정치 생활에 헌신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치적 주인공들의 역할에서 온라인 미디어와 비정부 기구들의 역할이 늘어나고 있으며, 정치적 활동가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대항 권력을 만드는 주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새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그들의 재선 가능성은 그저 인터넷 캠페인뿐만이 아니라 입법 회기 동안 수행한 그들의 성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많은 정치인들은 시민들과 유권자들과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웹사이트를 갖고 있다. 한편 change.org, AVAAZ, Campact, wemove.org 등이 이끄는 인터넷 캠페인은 선거 캠페인을 바꿀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과 그들 유권자들 사이의 관계 자체를 바꾼다. 선거는 이전 입법 기간 동안 그들이 했던 일에 대한 일종의 레퍼렌덤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230년이 흐른 후, “대표 없이는 세금도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라는 원칙의 가르침에서 이제 우리는 명백히 “관계 없이는 대표도 없다No representation without connection ”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치에서 인터넷의 영향은 자기 생각을 쉽게 전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매체인 라디오와 TV에서 정보와 오락을 섞어 전달하는 것과는 달리 무엇보다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고 참여의 질을 높여 준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특징들을 지닌 인터넷은 막강한 시민 정치 참여 도구가 될 수 있다.

전자 투표 시스템을 갖춘 직접 민주주의나 결정권이 없는 심의민주주의에서 인터넷은 시민들과 행정부 및 의회 사이에서 쌍방향의 정치적 의사소통을 확대시켜 시민들에게 더 큰 참여의 길을 터 주었다. 보통 전문 언론인들이 만드는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주로 수동적인 공적 공간과는 달리, 인터넷은 이론상 양방향으로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은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들의 현안과 요청을 정치적 의제에 올려 제기할 역량을 얻고, 의사소통에서 이미 부분적으로 자율성을 다시 획득했다. 뉴스와 논평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경계선은 매우 유동적인 것이 되었다. 게다가 “매스미디어”의 원리(소수에서 다수로)에 인터넷은 “다수에서 다수로”와 “소수에서 소수로”라는 온라인 소통 공간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만들어진 공적 공간은 계속해서 서로 뚜렷이 구분되는, 여러 작은 “부분 공간subspace”, 소통이 단절된 매체들로 작게 조각나고 있다.

전자민주주의는 참여를 위해 온갖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겠지만, 이는 또한 하나의 도전을 제기하기도 한다. 인터넷 접속 가능성에서 시민들 간에 존재하는 사회적 구조적 불평등을 극복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런 불평등을 “정보 격차digital divide”라는 용어로 표현했는데, 인터넷 활용 면에서 사회 계급에 따라 격차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탈리아에서 인터넷 연결은 2016년 인구의 63%에 달하여, 3천 7백 67만 명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나이대에 따라 확실한 차이가 드러나기도 한다. ‘디지털 원주민들digital natives’은 인터넷과 함께 성장했고, ‘디지털 이주민들digital immigrants’은 새로운 미디어를 성인이 되어서 알게 되었으며, 일부 노령층에서는 그 매체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디지털 금욕주의자digital abstinent). 그러므로 몇몇 학자들은 민주적 격차democratic divide(국민들 중 인터넷을 사용하는 이와 사용하지 않는 이들 사이의 격차)의 발생, 혹은 새로운 정보통신 기술 활용의 새로운 문화와 우월한 역량을 지닌 새로운 민주주의 엘리트의 출현을 염려한다. 이러한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그런 매체에 대한 시민 교육이나 전반적인 구성, 나중에 특히 그런 매체를 이용하여 민주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경보 격차는 점차 사라져야 할 것이 분명하지만, 전반적인 디지털 정보 역량을 보급하고, 모두가 디지털민주주의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교육 및 정보 입수 수준과 관련된 사회적 계급 간의 민주적 격차에 대해서도 선행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럴 경우에 민주주의의 전반적인 질은 인터넷을 통해 악화되기보다는 향상될 것이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목, 2020/07/02-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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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좌담은 줄곧 한반도 평화정책을 표방해온 문재인 정부가 지난 2년간 ‘왜 대북전단 문제에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마련됐다. 좌담에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탈북민 김민경(가명) 씨, 탈북민 정착 사업을 하고 있는 양영창 선교사, 탈북아동공동체 우리집의 마석훈 대표 세 명을 초청했다. 좌담회 사회는 김화순(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위원)이다.


사회: 지난 6월 일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되었고, 남북한의 긴장이 고조되다 잠시 쉬고 있습니다. 북측은 지난 6월 4일 김여정 당중앙위 제1부부장 명의로 남측을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였으며, 이튿날 통일전선부 대변인 명의로 대남 관계를 대적(對敵) 관계로 규정한다고 언급하고 잇달아 담화 발표 및 대남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지금 잠시 진정국면에서 접어들었습니다만, 이처럼 남북한의 긴장관계가 격화된 계기에는 박상학 등 일부 탈북민들이 북한으로 보내는 대북전단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대한민국 정부는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 주권 가지고 할 수 있는게 그렇게 없습니까?”

사회: 반갑습니다. 세 분을 좌담회에 모시고, 대북전단 살포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 주시겠습니까?

김민경: 시작하기 전에 제가 남한에 온 지 6년이 되어가지만 북한출신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묻는데요. 대한민국 주권 가지고 할 수 있는게 그렇게도 없습니까? 이명박시대에 삐라를 하라고 탈북인단체를 부추긴 것은 그럴만했다고 치고요. 그때는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대하는 정권이었으니까. 그런데 평화로 가자는 방향으로 시대가 바뀌었는데 문재인 정부는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요? “결국 평화라는건 미국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남북관계는 쇼였나요? 그건 아니지 않습니까? 대결시대에는 삐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는데 약속을 내챙개치고 삐라라니, 언론의 자유라니. 지난 2년간을 통해 우리가 깨달은 건 평화라는 건 미국이 승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결국 한반도 평화는 안된다는 겁니까?

사회: 뼈아픈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남북한관계 파국의 원인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대북전단사건부터 복기하여 원인과 책임을 찾아 이런 일이 다시 없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선 대북전단의 발생 원인부터 이야기해볼까요?

마석훈: 대북전단 풍선을 날리는 원인을 ‘특별함이 주는 중독현상’ 때문이라고 봅니다. 탈북자분들이 남한에 와서 세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탈북자분들이 북쪽이 아니라 오히려 남쪽 사회에서 세뇌가 된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왜 남한에 왔나? 그러면 흔히 자유 찾아 왔다고 하지만 정말 자유를 찾아왔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한에 와서 출세하려면 튀어야 한다는 게 일부 탈북자들의 생각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이 3만 3천입니다. 박상학 씨는 대북전단을 어제 날렸고, 앞으로도 계속 날릴 것입니다. 학생운동 할 때처럼 구속되어도 나와서 또 하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박상학 씨는 이미 하나의 확신범 같이 본인은 대북전단을 날려야지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북한과의 문제를 야기하는’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대북전단살포 문제는 정치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에 대한 처벌도 엄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들도 민주화를 위해 산다는 게 얼마나 가난하고 어려운지 겪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집단만 민주투사가 될까?”

양영창: 마선생님이 원인을 잘 짚어주셨습니다. 돈 대는 단체들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돈대는 단체로 ‘미국의 소리’가 이번에 뉴스에서 지목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제가 아는 단체는 미국에 있는 교포단체인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돈을 댄다고 하면서 정작 민주주의가 없습니다. 한인교포들은 미국 국민들보다 트럼프를 더 지지합니다. 최고존엄을 저격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무엇이기에 탈북민들을 분란시키는가? 아는 탈북민 친구들과 전화를 해보면 선생님 그렇게라도 하면 우리 식구들이 얻어먹을 거 아니예요? 그런다. 태극기 들고 있는 친구. 태극기는 5만원이다. 대북전단은 그것보다 더 돈을 많이 줍니다. 당일 치기도 하고 1박 2일도 하고. 이들을 조정하는 팀들이 누군지 밝혀내야 합니다. 나는 탈북민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고 그냥 한국사람으로 그냥 우리 사회 일원으로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석훈: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집단만 왜 정의투사, 민주투사가 되어가는지 그 현상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한국 말고 그런 사례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미국에도 소수지만 가고, 캐나다 영국에도 몇 백 명이 있는데 정치행위에 나서는 탈북자집단은 한국 말고는 없습니다. 즉, 캐나다에 간 탈북자들 영국 등에 있는 탈북자들은 왜 생계에만 천착해서 살아갈까라는 측면을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양영창: 요즘 단체들의 창업지원을 하러 많이 돌아다니다보니 풍선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언론에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이나 큰 샘과 같은 몇 개 단체 이름만 나왔습니다. 기실 방송 듣고 넘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전단살포가 자기네들의 이득과 단체들의 이득과 돈 때문에 한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과거 초기에 이민복 씨가 했을 때부터 (대북전단을 보내는 것을) 직접 보았는데, 대북전단살포가 그렇게까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북전단살포를 생각 외로 많이 합니다. 문제는 (대북전단) 돈을 대주는 팀들인데 그들이 뒤로 다 빠져 있습니다. 재정(돈)을 대주는 팀들이 누구인지 언론은 잘 모릅니다. 이러다가 대북전단살포법을 만든다고 해도 일이 잘못되다 보면 (탈북민) 몇 명만 때려잡고 말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민경: 마선생님 말씀처럼 캐나다에 간 사람들은 그곳을 너무 좋아합니다. 거기 가니 스트레스가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남북한이 싸우는 짬에 끼워지는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거기 가서 오히려 북조선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찾게 됩니다. 저도 캐나다에 가서 미국에서 자금을 받아 아시아방송을 운영하는 탈북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북한 인권을 하는 사람이 몇 있고, 방송을 하는 정도이지 여기처럼 심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남한에 ‘수요’가 있기 때문에 대북전단을 보내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반공주의 프레임이 가동되면서 반공주의가 생존의 열쇠인 그런 세력들. 그런 사람들이 탈북자를 돌격대를 만들어 내세웁니다. 그들은 남남갈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해방 후 북에서 넘어온 월남자들 일부가 서북청년단을 뭇고 앞장에 서서 상대진영을 말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듯이 말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정원에서 이용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은 안보강사로 다 내보냈습니다. 그들은 안보강연을 통해 북한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키우고 반공주의를 강화시키는데 일조했죠.

또한 남한의 정부와 국민들이 용인해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면 주류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정착하고 살아가야 할 소수집단인 탈북자들이 과연 그들이 그렇게 했을까요? 이런 행위들을 너무 당연시했던 같습니다. 북한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 남한 사람들 속에 뿌리 깊게 있기 때문에 북한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생각이 오늘에 이르게 된거죠. 또한 한미동맹으로 얽혀 있는 남한내에서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과 아시아 패권전략에 따른 문화적 침투의 일환으로 미국의 자금이 국내에 상당히 유입되면서 기생하는 세력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죠.

 

“막말을 해도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북한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

사회: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수요가 있기에 풍선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서북청년단을 이용했던 그 세력이 수요처다. 보수를 지칭하는 분단세력들이 지금 대북풍선의 원인이다라는 지적을 남북한 분들 공통적으로 지적해주셨습니다.

김민경: 대북전단살포를 요구하는 세력은 돈도 많습니다. 언론들은 이런 것을 지적해야 하는데 이 같은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남한에 오니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억이 막히는데 여기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뭔가? 오히려 분단 70년동안 자유를 말살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던 세력이 바로 그들입니다. 제가 가장 본질적으로 말하고 싶은 핵심적인 이야기는 개인의 자유가 아무리 중하다 한들 생명권보다 더 중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개인의 자유가 생존권을 우선할 수 있냐? 그들의 표현의 자유 운운 하면서 삐라 날리면 접경지역 주민들은 생명위협에 노출됩니다. 연평도 포격사건을 비롯해서 삐라 때문에 남북간 총성이 오고간 사례들이 많죠. 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언론에서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말살한다고 말하죠. 요즘 어떤 판사도 표현의 자유를 말살한다고 했죠. 자유가 아니라 방임입니다. 삐라 내용도 정제된 언어가 아니라 일베 수준의 저열한 내용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냉전시대에나 날리던 삐라를 평화이행기에 들어선 오늘날까지 날리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위입니다.

사회: 저도 엊그제 제가 패러글라이더 한 분을 만나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6년 전에 불법적인 전단살포 행위를 통일부가 나서서 변호했다는 군요. 특히 대북풍선을 날리는 북한접경 지역은 항공관리법이 적용되는 특수지역이어서 법으로 금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탈북단체들이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오히려 10년 가량 정부의 묵인과 비호를 받으며 대북 전단 살포용 풍선을 버젓이 날려왔습니다. 전단 살포용 풍선이나 드론이나 똑같이 항공안전법 제2조 제3호에 같이 규정되어 있는 “초경량비행장치”에 해당하며 각각은 “기구류”와 “무인비행장치”에 속하기에 불법입니다.​ 접경지역에서는 패러글라이드도 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북전단을 풍선으로 띄우는 것에 항공법에 저촉된다는 지적을 국회의원이 당시 청문회에서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통일부 관료들이 말이 안되는 해석을 했다고 합니다. 왈, 지상통제장치가 없기 때문에 대북전단 풍선은 항공법 대상이 아니라는 해석을 내렸다고 합니다. 【1】대북전단을 날려도 된다는 거지요.

정부가 전단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교통부, 국방부 등까지 관련되었는데 왜 그랬을까? 대강 짐작이 가지요. 통일부에서 법의 해석을 무리하게 하면서까지 대북 전단살포를 허용했다. 한마디로 전단풍선살포는 정부의 허용 내지는 대북상대의 일종의 심리전으로 인정받은 행위였던 겁니다. 마선생님이 ‘왜 한국에서만 그러냐.. 다른 지역에서는 그러지 않는데’라고 말하는데, 탈북민들이 전면에 나서는 이유는 국가 정부가 탈북민들을 앞에 세웠기 때문입니다. 국정원 댓글부대와 비슷한 맥락이라고 하겠지요. 탈북단체들은 그 앞장에 서서 생존해왔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국가가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경: 한마디로 분단세력이죠. 북한이 나쁘다는 것을 극대화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박상학이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계속 요구합니다. 대한민국의 토착세력이 문제입니다. 새터민이 아니라 헌터민들이 문제입니다. 저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에 대한 인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중국이 독재하는 것을 다 알지만, 중국에다 대고 너네 왜 독재하냐고 삐라를 날리지는 않습니다. 왜냐? 우리가 중국을 함부로 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북한에는 막 해도 됩니까? 북한에 대고 온갖 표현을 해도 용납이 되는 남한사회 전체의 인식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삐라의 변질, 돈 주는 사람들은 왜 북의 최고 존엄을 겨냥하는가?”

양영창: 과거에 정부가 독려하고 돈을 주었는데 북에서 이야기가 나오니까 (탈북민을) 잡아넣겠다고 합니다. 차라리 왜 이렇게 대북전단을 하느냐에 대해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지방에 가서 대북전단을 하는 탈북민을 만났더니 그들이 한번 정도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봤냐? 고 합니다. 내가 너희 국회의원 하려고 그러냐? 고 물어보았더니, 그렇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처음에 삐라를 시작했을 때 강화에서 이민복 씨가 주로 했는데 지금같이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돈을 주는 사람들의 요구가 많이 변화한 것 같습니다. 최고존엄을 건드리면 안되는데. 이 사실은 탈북자들이 더 잘 압니다. 나는 최고존엄을 건드리라고 돈을 주는 사람들이 그렇게 요구한게 아닌가 의심합니다.

어떻게 삐라가 이렇게까지 변질이 되었는지 돈이 어떻게 들어갔고 왜 이렇게 이들이 하는지가 밝혀져야 합니다. 그런데, 언론과 이야기해보니 기자들은 문제를 ‘탈북민’전체로 돌립니다. 나는 법을 어기면 제재는 따라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탈북민사회가“대북전단 살포는 안된다.” “가족들이 피해를 본다”고 강하게 소리치고 있습니다. 때려잡는게 아니라 탈북민들과 이야기할 것은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다. 이미 다음 세대가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이어받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돈을 주는 세력이 있는 한,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사회: 양선교사님 말씀은 돈을 주는 쪽에서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쪽으로 푸시를 했다. 이제는 공론의 장에서 이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탈북민사회에 이 문제에 가지고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정리하겠습니다.

김민경: 대북전단 풍선날리기 문제는 남한의 정치풍토와 관련이 있습니다. 남한의 진보진영이 70년 동안 위축되었습니다. 진보진영을 공격할 때 쓰는 키워드가 있죠. 빨갱이, 종북, 북한 이 세 가지입니다. 지금도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데 있어서 진보 진영을 공격하는데 있어 반드시 북한이 동원됩니다. 아주 강력한 무기죠. 정치꾼들이 북한 인권을 빌미로 색깔론을 부추기고 앞장에 내세우던 인물들이 있죠. 그런 사람이 국회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가장 절실한 사람들”

사회: 대북전단을 북한에 날리는 행위의 원인이 탈북민을 사주하는 분단세력에게 있다는데 여기 모인 분들 간에 이견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논의를 통해 탈북인들의 대북전단 행위에 대해 대화적인 접근을 해서 설득할지 아니면 강력한 법적 제재를 할 것인가로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더 이야기해볼까요? 이 문제에 대해 여러분의 의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석훈: 저는 지금 공론의 장에서 논의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가 가시화되어 법이 만들어지게 되었으니까요. 한 가지 더 문화적인 측면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북한 분들이 나오는 이만갑, 모란봉을 보면 탈북여성들은 미녀만 나오는가? 여성은 모두 미녀고 남자들은 김일성대학출신이고. 제가 보는 탈북민들은 보통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뭔가 특별한 사람들을 발굴해내려는 문화가 존재합니다. 미국에 가보니 난민의 경우 경비를 3개월에 뱉어내도록 하는데, 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각종 공짜들이 늘어나기만 합니다. 특례입학 등 다른 방법으로 정착한다. 여명학교, 원불교 한겨레학교에 들어가는 돈, 돈을 기부하는 분들은 바로 이 삐라 만드는 사람들의 좋은 자양분입니다.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탈북민에 대한 공정하지 못한 기부행위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대북전단을 하는 사람들이 구속되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감옥에 가면서까지 그 일을 계속할 사람은 해야지 어쩌겠어요?

김민경: 우리 북한이탈주민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라도 대북전단행위를 이번에 근절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상학을 비롯하여 탈북민전체가 혐오의 대상으로 되면서 10년간의 정착노력이 부정당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대북전단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빨리 정리해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70년간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오늘까지 오게 된 과정을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았습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남북화해노력을 80%까지 지지했습니다. 그만큼 평화에 대한 갈망이 높다는 거죠. 오늘날에 와서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범죄이고. 더 이상 분단과 반공에 기생하던 풍토를 청산해야 합니다. 탈북민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 축소되어 살아가는 사람인데 남한 사회에서 제대로 관계를 가지고 살려면 이 문제가 근절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우리 탈북자들이 남북관계해결의 이해당사자입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야 할 가장 절실한 사람들이고, 우리가 남북화해의 매개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인데 일부 탈북자들의 행동으로 남북갈등을 부추기는 촉매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대북전단 픙선을 날리는 사람들 때문에 탈북자 집단이 사회 혐오집단으로 낙인되고 정착과정에서 우리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할 우려가 커지는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양영창: 그렇지 않습니다. 탈북민이 소수자로 된 것은 삐라 사건만은 아닙니다. 탈북민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생각이 표출되었다고 봅니다. 이 사건만이 아니라 보수정권에서도 그렇다. 법적 제재 전에 논의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마석훈: 이런 시점에 탈북민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단체나 어른이 없다는 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탈북민에게 신뢰를 받는 단체나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도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중재를 하는 존재 하나 만들어내지 못 했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양영창: 제가 가장 힘든 게 그것입니다. 국내에서 정착지원활동을 하고 해외에서 일을 20년 넘게 했는데 내가 무엇을 했는지 자괴감이 듭니다. 너무 힘듭니다. 내가 왜 이 사역을 했나 싶습니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이해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북한도 지금 군사행동을 멈추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쉼표를 가지고 직접 탈북민 자신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봅시다. 뒤에서 이야기할게 아니라 보수는 서로 목소리를 내서 잘잘못에 대해 이야기 하자. 우리가 남남갈등 하지 말고, 원수가 안 되었으면 좋겠다.

 

통일부가 대북사업과 탈북민 사업 양자를 함께 하는게 가능한가?”

사회: 이 좌담회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입니다. 참석자 모두가 한마디씩 해주셨으면 합니다.

양영창: 대북전단 풍선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진 단체들은 논의의 자리가 있으면 오겠다고 해요. 한 번씩은 다 와서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방송에 나서 시끄러워집니다. 대북풍선을 날린 사람들이 나와서 함께 깊게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대북전단살포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그 내막을 알지 못합니다. 탈북민이 한 사람의 구성원이라고 인정한다면 법내용에 대해 알고 논의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은 시기가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법이 만들어지면 포괄적으로 법내용이 만들어지면 발표하고 서로 문제제시도 하고 방향을 잡아가는게 촛불정부인 더불어민주당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왜 자꾸 왜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하냐고 주장하냐면, 탈북민들은 지금 불안하고 애가 타기 때문입니다. 왜 이 방법을 쓰지 않는가? 빈대 한 마리 잡는데 초가삼간을 왜 태우냐. 정부가 그동안 잘못했다. 풍선을 하도록 했고 전단내용을 바꾼 세력이 있는 한 피해자는 탈북민이 됩니다. 나는 그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사회: 이 사태를 수습하려면 양선생님 이야기처럼 공론의 장에서 대화하는 자리가 많이 있어야 하는데. 통일부나 하나재단 모두 작년 탈북모자사망 사건 때 무력했습니다. 남북하나재단이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누가 이 단체들을 연결해서 그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석훈: 탈북민을 관리한 기관에서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게 맞긴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중요한 사건이 생기면 남북하나재단은 늘 자기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일을 하라고 월급을 주는 건데. 대북전단은 인권운동이 아니라 상업적 운동입니다. 이미 하느니 마느니 합의할 수준은 넘어섰습니다. 관련법도 제출이 되었고 이재명지사가 경기도에서 행정권으로서 접경지역 출입금지라든가 고발할 수 있는 근거가 있으니, 이제 법을 시행하는 단계가 되었다. 합의는 이미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여당이 압승을 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도 그렇습니다. 대북전단에 대해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60%를 넘어 70%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대북전단을 하니 마니 합의하거나 논의할 시점은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김민경: 과연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국회가 한 일이 뭐냐? 남북 간의 비방을 안 하기로 합의했던 4.27성명 발표 후 국회는 이를 뒷받침 하는 법안 하나 내지 않고 팔짱을 끼고 강건너 불구경 하듯 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남북관계가 파탄나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르죠. 문재인정부를 공격할 구실이 생기니까요. 직무유기죠. 대북전단에는 정치세력과 기독교, 미국의 대북관련 단체들을 비롯한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자제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방지할 수 없습니다. 평화를 파괴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저도 사회자의 입장을 떠나 탈북민문제 연구자로서 제 생각을 한 마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과연 통일부가 대북사업과 탈북민 사업 양자를 함께 하는게 가능한가라는 가장 본원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촉망받던 김연철장관이 아무 일을 하지 못한 채 사표만 내고 떠났는가? 이와 유사한 형태로 작년 탈북모자사망 사건때도 결국 하나재단 고경빈 이사장이 사표를 내고 나가는 것으로 마무 리짓고 말았는데 조직체계의 근본적인 혁신없이 어공 윗사람 한 사람의 사표로 마무리지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늘공 조직의 과감한 쇄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북전단이 왜 방치되었는지 국회가 대한민국 정부가 왜 지난 2년간 대북전단문제에 대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았을까?”라는 시민들의 상식적인 의문에 답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개성공단 등 통일 각분야에서 부딪히고 있는 답답함과 장벽을 제거할 수 있는 길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경향신문. 2014. 10.23. <북한 비판 풍선은 되고 정부 비판 풍선은 안된다?.. 정부, 항공법 적용 제각각>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대북 전단 살포가 비행금지구역인 휴전선 인근에서 이뤄지게 될 경우 항공법으로 규제가 가능한지에 대해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한 결과 대북 전단 살포용 대형풍선은 지상에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항공법 적용대상인 초경량 비행 장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토, 2020/07/04-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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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년 6월 26일 개최된 한국사회복지정책학회 춘계학술대회의 기획주제 세션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한국 지식사회에서 ‘개인화’는 흔히 신자유주의적 고립이나 공동체적 연대윤리의 상실 및 이기주의의 확대,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위험이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현상 등을 단편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여기서는 서구 근대부터 2차대전 이후까지 다소 선형적으로 발전해온 산업사회가 그 역사적 성공 이후 깊은 변동을 겪는 과정을 묘사하는 개념으로서, 울리히 벡이 사용한 ‘개인화’ 개념에 기초하여 복지체계의 변화 필요성을 촉구하고자 한다. 현대의 복지체계가 산업사회의 규범에 기초하여 제도화한 ‘유기적 연대’의 형태라면, 위험사회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진행되는 개인화 상황 속에서는 사회적 연대의 형태 역시 한층 개인화한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 현대 복지체계의 규범적 출발점

현대 복지체계는 유럽에서 발전한 자본주의 및 그것이 초래한 계급 대립 속에서 형성되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봉건적 신분제로부터 개인을 해방/고립시키는 이중의 과정을 불렀다. 따라서 봉건적 신분과 달리 계급은 1차적 집단관계가 아니다. 계급은 개인들 간의 사회경제적 성취의 격차로부터 2차적으로 형성된 집단적 격차의 문제로 정의되는데, 개인적 성취 격차를 집단적 격차로 구조화하는 것은 자본의 소유관계이다. 이 소유관계로부터 집단적 분배 격차가 생겨나는데, 복지국가는 소유관계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인 분배 격차를 완화함으로써 사회갈등을 약화하려는 시도에서 비롯한다.

그런데 소유관계는 핵가족이라는 새로운 신분적 관계―‘사생활’로 축소된―를 통해서 상속되기 때문에, 계급은 사실상 1차 집단으로서의 성격과 2차 집단으로서의 성격이 교차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계급 갈등 속에서 과거의 신분적, 가부장적 문화를 매개로 계급결속이 형성되면서, ‘계급’(마르크스) 개념은 ‘사회계급’(베버) 개념으로 발전했다. 그리하여 계급 격차는 계급집단 간 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격차, 즉 가족생활 향유에서의 격차와 집단문화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복지의 문제 역시 그와 같은 ‘사회적 삶’을 보장하는 문제로 확대되었다.

복지체계가 소유관계 자체가 아니라 분배 격차를 문제 삼는 것은, 자본주의의 생산력 향상이 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자본의 사적 소유가 생산력 발달 또는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보고, 그 결과물을 보다 평등하게 분배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따라서 현대 복지체계에서 당연시하는 사회이론적 전제는 1)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통한 경제 성장, 2) 사회경제적 불평등인 계급 격차의 완화, 3) 사회적 삶의 보편적 단위인 핵가족의 보호, 4) 핵가족 부양에서의 계급 간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이론적 전제들에 제대로 포괄되지 못하고 외부화한 문제들이 들어 있다. 각각의 문제를 이 사회이론적 전제들과 관련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문제

경제발전의 틀에서는 생산력 향상을 위한 투입 요소로 노동력과 자본만을 고려한다. 그러나 생산을 위해서는 원료나 토지, 기계 등의 형태로 자연 물질의 투입 역시 필요하다. 또 노동력의 투입을 위해서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자연 물질적 특성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본의 상속 역시 자녀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인간의 몸이라는 물질적 특성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동력 재생산과 자녀 출산, 양육 등에 동원되는 여성의 몸 역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그러한 ‘자연 물질’의 문제를 모두 외부화하여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복지체계 역시 생산관계가 초래하는 분배 정의의 문제만을 ‘사회문제’로 보고, 자연 물질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외부화했다. 이것은 자연과 사회를 엄격히 구분하여, 사회문제의 영역에서 자연 물질의 문제를 개념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평등이란 지속가능성 문제를 배제한 절반의 ‘정의’ 개념에 기초한 것이다. 그리하여 장기적으로 볼 때, 생태 파괴 및 인구 돌봄 문제로 인해서 성장모델 자체가 불가능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2) 사회경제적 불평등 = 자본주의 계급 격차

사회경제적 격차를 계급 격차로 보는 관점에는 위에서 보았듯이, 핵가족 생활공동체를 인간 삶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단위로 보는 관점이 녹아들어 있다. 이것의 배경은 19세기 이래 유럽에서 확산한 ‘기혼여성 지위(덮어씌위기, coverture)’의 제도화이다.【1】 기혼여성은 재산을 소유할 수 있어도 더는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고 또한 더 이상 법정에서 발언할 수 없도록 혼인 제도가 변화했다. 기혼여성의 법적 권리가 남편의 법적 권리 속에 묻혀서, 남편이 가족을 대리하는 법적 대표자가 된 것을 말한다. 여성은 시민권의 출발점인 계약할 권리에서 배제되었다.

그와 함께 아동기가 발명되고, 아내와 자녀가 모두 아버지의 성을 취하는 ‘가족성(family name)’ 제도가 일반화하면서, 남성은 재산 소유에서는 내부적으로 격차를 보여도 ‘가장’으로서는 동질화하는 ‘보편화’ 과정이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이러한 남성 가장들 사이의 계급 격차로 정의되었다. 반면 여성은 앞서 보았듯, ‘자연 물질’과 유사하게 취급되어 남성의 사생활 영역에 묻힌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정치경제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3) ‘정상가족’의 규범

기혼여성 지위가 법적으로 차별적으로 규정됨으로써, 남성이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은 살림을 도맡는 ‘정상가족’의 규범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정상성은 특히 생물학과 정신의학 등에 의해 과학적으로 뒷받침되면서, 근대적 성역할 규범을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으로 규정―‘자연화’(푸코)―했다. 그리하여 이제 보편적 정상가족을 향유하는 권리의 문제가 ‘사회권’의 내용으로 등장했다. 남성에게는 가족 부양의 기준에 따라 임금이 지불되고, 남녀 간 임금격차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여성의 경제활동은 비정상적―임시적, 예외적, 보조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4) 계급 평등 = 가족 부양자 남성 간의 격차 완화

결국 복지는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한 분배 평등 또는 남녀를 불문한 가장들 간의 분배 평등이 아니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남성의 능력을 보장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성역할 규범과 연관된 엄격한 공/사 구분으로 인해서 ‘노동’의 원형은 ‘가장 남성’의 노동으로 정의되었다. 특히 공장제 산업사회의 형태로 조직화한 제조업 육체노동이 노동의 원형이 되었고, 여성의 직업으로 분류되는 저숙련 서비스직이나 가족 내 삶을 위한 노동은 ‘노동’ 개념으로부터 주변화 또는 배제되었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발전하고 또 탈제조업중심의 산업변화가 진행되면서, 이와 같은 평등 개념은 현실적 토대를 잃게 되었다. 우선 복지국가 발전의 역설적 결과로서, 평등이 계급집단 간의 갈등보다 개인이 국가에 청구하는 ‘사회권’ 개념으로 변화했다(‘제도화한 개인주의’ 또는 ‘고객주의’). 탈산업화로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증가하고 기혼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남성 노동 중심의 복지체계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그리고 여성의 교육수준 향상과 경제활동 증가, 직업 세계에서의 경쟁 격화, 이동성 증가 등으로 인해서 1인 가족이 증가하며, 노동의 목적이 ‘가족 부양’에서 ‘본인 부양’ 또는 ‘가족 공동부양’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나타났다(‘노동과 가족의 개인화’).

 

2. 개인화 및 그것이 복지체계에 던지는 과제들

울리히 벡은 앞서 본 바의, 산업사회가 외부화―즉 단순한 리스크로 처리―한 ‘자연 물질’ 관련 문제 중에서 생태적 위험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정치적 공론화의 의제가 되는 과정을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표현했다.【2】 그리고 위험사회의 노동과 삶의 측면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양상들, 즉 산업사회에서 형성된 노동 및 가족 규범의 ‘탈정상화’를 ‘개인화’라고 표현했다. 노동 규범의 탈정상화는 정상노동모델의 약화를 의미하고, 가족 규범의 탈정상화는 탈핵가족화 또는 근대적 성역할 규범의 변화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새로운 불확실성’(생태위험)의 증가와 탈산업화로 인한 생애위험의 탈계급화뿐만 아니라, 서구 복지국가의 발전 역시 크게 작용했다. 특히 서구 복지국가의 발전으로 인해서 개인주의가 단순한 문화나 이념이 아니라 ‘법적 권리’로 제도화―‘제도화한 개인주의’―했기 때문에, 노동과 가족의 탈규범화는 단순한 아노미가 아니라 근대 이후 진행된 개인화가 한층 급진적 형태로 심화하는 것(‘2차 개인화’)이라고 보았다.【3】

그뿐만 아니라, 정치적 공론화의 의제 및 사회적 저항의 조직방식이나 주체들에서 변화가 진행되면서, ‘정치적인 것’ 자체가 기존의 공/사 구분이나 사회/자연의 구분을 넘어서 혼종화하는 경향―‘새로운 사회운동’―이 나타났고, 이 역시 개인화와 함께 진행되는 정치변화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의제나 저항의 조직방식, 주체화 등이 개인별 위험 인식에 따라 유동적 네트워킹 방식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개인화의 이러한 양상들이 복지체계에 던지는 의미는 앞서 말한 복지의 사회이론적 전제들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1) 우선 평등 분배의 단위가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에서 모든 개인과 아동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2) 제조업 육체노동자의 노동을 원형으로 삼아 발전한 계급모델과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제도에서 탈피해서 상품화한 모든 노동―불완전고용과 여성노동 포함―에 평등한 분배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및 1인 가족 증가로 야기되는 일·가족 양립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4】 4) 소득 분배에 의한 생존권 외에 ‘자연 물질’과 관련된 안전권―인간 돌봄, 생명 안전, 생태적 안전권 등―의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돌봄과 관련된 문제

이러한 도전 중에서 여기서는 돌봄과 관련된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노동과 가족의 개인화 그리고 정치적 의제 및 주체의 개인화와 관련된 문제인 만큼, 돌봄 문제를 다룰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1) 우선 생존권 개념이 정상가족 단위의 생존이 아니라, 성인과 아동 개인 단위의 인권문제로 이해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경우에는 돌봄이 가족이라는 사적 공동체에서 근대적 성역할 규범에 기초하여 수행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필요에 따라 수행되는 동시에 사회적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낸시 프레이저가 말하는 보편적 생계부양자-보편적 돌봄제공자 모델에 기초하되,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개인이 두 가지 보편적 역할을 병행할 수 있도록 사회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5】 사회서비스로 제공될 경우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평가나 돌봄노동자의 조직력 역시 향상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2) 노동위험이 불안정 노동으로 인한 개인별 생애위험으로 변화하므로, 이에 대한 안전보장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기본소득 대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형태로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고용보험의 보편적 확대는 적용대상자에 대한 조사와 분류가 필요하여 시간 및 행정의 비용이 예상될 뿐만 아니라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또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사용으로 각종 서비스 단말기 사용이 일상화하면서 일상의 삶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활동이 증가하며, 노동과 삶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 경제적 가치 생산이 이처럼 단말기와 일반인의 상호작용에 기초하여 사이보그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민의 삶 속에서 수행되는 경제적 기여에 대한 보상이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6】 또한 (사회서비스 제공에도 불구하고 개인들에게 일정 정도 남겨질 수밖에 없는) 돌봄노동이 보편화한다고 해도, 그 역시 부불노동으로 남는다. 재정마련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과 함께, 역진성을 약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세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3) 복지제도에 의해 개인별 생존권이 어느 정도 보장된 상태에서, 노동과 돌봄이 통합된 형태로 연계될 수 있도록 노동조직의 변화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로 사업장에서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의제가 되었다. ‘아프면 쉬는’ 문화와 함께 ‘아픈 가족원을 돌볼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사업장 문화가 바뀐다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부담 역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예방책으로 가장 실현되기 어려운 조건이 ‘아프면 쉬는’ 문화라는 것이 여론조사의 결과였다. 또 인구 고령화와 함께 돌봄에 대한 수요가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므로, 돌봄을 사적 비용으로 또는 대면적 공동체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서 바뀌어야 할 것이다.

4) 생태적 지속가능성은 세대 간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간에 대한 돌봄은 생태에 대한 돌봄과 유리될 수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공장가동 중지로 미세먼지가 줄어든 것, 그리고 개인별 위생수칙의 철저한 수행으로 호흡기 질병이 줄어든 것 등을 볼 때, 생태적 지속가능성이 사회의 돌봄 비용을 전반적으로 낮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적 지속가능성 분야에서의 일자리 창출 및 생존권 보장을 통해서 일과 삶, 돌봄을 한층 유기적으로 통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새로운 틀은 돌봄을 사회서비스로 제공함으로써 보편적 생계부양자 모델을 제도화한 북유럽 모델을 기초로 하되, 돌봄의 보편성을 한층 강조하고 또 거기에 일상 속 노동을 소득으로 보상하는 기본소득을 더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스웨덴 모델에 대한 실망과 한국식 모델의 모색

한국에서 그간 복지국가 모델로 크게 주목받은 스웨덴이 코로나19로 집단면역 실험을 하면서 상당한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그간 스웨덴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컸다는 비판이 올라왔다. 또 코로나19를 계기로, 서구 복지국가에서 살거나 노동하는 외국인의 열악한 생활상이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노동유연화에 대한 대처에서 북유럽 모델이 스웨덴 모델과 덴마크 모델로 갈렸던 것처럼, 코로나19에 대한 대처에서도 스웨덴과 덴마크는 상이한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런 점들에 유념할 때, 북유럽 모델을 하나의 동질적인 모델로 이해하는 대신, 각 사회에서 고유하게 발전한 복지모델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한국 사회에 적절한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데에 참고하는 것이 한층 발전적일 것이다.

 

【1】 캐롤 페이트먼, 2001,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이충훈·유영근 옮김, 이후.

【2】 울리히 벡, 1997, 『위험사회』, 홍성태 옮김, 새물결.

【3】 울리히 벡, 2013, 『자기만의 신』, 홍찬숙 옮김, 길.

【4】 독일의 노동 4.0에서는 개인화가 복지체계에 주는 의미를 ‘시간 주권’의 문제, 즉 일·가족 양립의 문제로만 이해했다. 홍찬숙, 2018, “노동 4.0인가 제2의 노동세계인가? 노동 4.0의 산업사회 관점 및 그 한계,” 『경제와 사회』 119: 165-192 참조.

【5】 낸시 프레이저, 2017, 『전진하는 페미니즘』, 임옥희 옮김, 돌베개.

【6】 기본소득의 노동 근거로서 필자는 울리히 벡의 ‘시민노동’이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부불노동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이보그적 가치 생산에서 소비자 노동이 사실상 비가시화되며, 돌봄노동 역시 사회적 생산에 필수적인 노동으로 여겨져야 한다. 반면 벡은 위험사회에서 시민의 기여가 ‘노동’에서 ‘정치참여’로 바뀐다고 보며, 그것을 기본소득의 근거로 제시한다. 이에 대해서는 울리히 벡, 1999,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 홍윤기 옮김, 생각의나무 참조.

월, 2020/07/0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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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터지나 싶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터졌다.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의 사망 사건. 이번엔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의 조지 플로이드(George Flyod) 사건이다. 체포 과정에서 백인경찰이 무릎으로 흑인 플로이드의 목을 눌려 죽인 끔찍한 사건으로 미국 전역에서 항의 시위가 격화되고 있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통행금지 명령이 내려졌고, 트럼프는 군 헬기 블랙호크를 띄웠으며 과격 시위와 약탈이 계속될 경우 군을 동원해 진압하겠다고 위협을 가하고 있다.(“8 Minutes and 46 Seconds: How George Floyd Was Killed in Police Custody,” New York Times, May 31, 2020; “What Happened in the Chaotic Moments Before George Floyd Died,” New York Times, May 29, 2020).

조지 플로이드 사망 관련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 앞에 정렬한 주방위군. 워싱턴포스트는 이 정경이 미국의 이상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며 군대가 국민을 방어할 것인가 아니면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눌 것인가를 묻고 있다.

잊힐 만하면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과잉·강압에 의한 사망사건으로 시위가 벌어졌지만 이번만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시위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격화되고 있고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인다. 이번엔 백악관 앞까지 시위대가 밀고 들어갔다. 트럼프는 백악관 지하벙커로 대피하기까지 했다. 심상치 않다.

그런데 이번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를 단순하게 흑백간의 인종차별적 인권 유린 문제로만 보는 것은 사태를 잘못 짚은 것이다. 왜 그럴까? 미국의 모든 문제의 정점에는 반드시 인종문제가 있다. 마치 끓어오르는 화산의 마그마가 가장 약한 지반을 뚫고 폭발하듯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비등할 때 터져버리는 취약점이 바로 인종이다. 그래서 인종문제는 점잖은 표현으로 종합선물세트, 나쁘게 표현하면 오물통 같은 것이다. 오물이 쌓고 쌓이면 결국 흘러넘치는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나는 격화된 시위를 단순히 흑백간의 차별에 분노한 시위, 즉 인종 간 문제 해결 요구로 축소시키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경계하고자 한다. 거기엔 다른 모든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종문제는 단지 그 분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우려와 경계는 이번엔 기우가 될 지도 모르겠다. 시위를 전하는 언론들도, 심지어 시위에 나온 필부필부들조차도 이번 사건을 기화로 뭔가 미국에 변화가 있어야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경찰의 잔인한 폭력을 징벌하라는 데만 있지 않고, 망가진 미국 시스템을 전체를 교정할 때가 왔다라고 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근접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그렇다. 과거엔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미국에서 이전에 이와 유사한 사건들이 일어났을 때, 많은 호응을 얻지 못하고 단발성에 그쳐버리고 근본적인 문제제기나 비판에는 한 발도 못나가고 그저 흐지부지 끝나버리는 것에 실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성급한 나만의 바람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미국과 미국인 자신이 자신들의 상태가 어떤지에 대해 확실히 알고 난 뒤에나 벌어질 일이었기 때문이다. 뭐든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과외나 학원보다 자기주도 학습이 더 중요하듯 말이다. 그런데 이번엔 이야기가 사뭇 다른 것 같다.(“The America We Need,” New York Times, April 9, 2020).

미국 언론은 지금 미국은 부싯깃 통(tinderbox)라고 이야기한다.(“American Is a Tinderbox,”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불똥만 튀면 터져버리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상태라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미국과 미국인들을 이런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 되었을까? 그 계기는 코로나19다.

조지 플로이드 학살사건 항의 시위에 나와 시위 도중 경찰이 쏜 고무탄환에 맞아 눈이 부은 미니애폴리스의 한 시민. 제목은 일촉즉발(부싯깃 통)의 미국이다. <출처: 뉴욕타임스/로이터스>

미국의 역사학자 헨리 코마거(Herny Steele Commager, 1902~1998)는 그의 책 <미국정신>(The American Mind, 1950)에서 “인류 역사상 미국처럼 성공을 거둔 나라는 없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이 그 사실에 대해 안다”라고 썼다. 그러나 코마거가 아직도 살아서 코로나를 겪고 있는 미국을 보고 있다면 아마도 저 문장을 다시 썼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이 거둔 성공은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들이 그것이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라고.

뉴욕타임스 칼럼처럼 코로나 침공은 미국 역사상 미국 본토에서 일어난 최초의 침공으로 기록될 만하다.(“The First Invasion of America,” New York Times, May 21, 2020). 그리고 그 결과는 실로 참혹했다. 6월 3일 현재 확진자는 180만 명, 사망자는 10만6천 명을 넘어섰다. 미비한 의료체계와 환경으로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나간 자들이 그 몇 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걸 감안하면 완전한 참패다. 그러나 참혹함은 미국인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코로나는 미국 본토에서 벌어진 첫 번째 침공으로 기록 될 만큼 위력이 대단했고 참혹한 결과를 남기고 있다. 그 후유증은 미국 사회를 어디로 인도할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출처: 뉴욕타임스>

코로나로 인해 미국은 전 세계적으로 창피를 떨었다. 그런데 속된 말로 그 ‘쪽팔림’은 당하는 당사자들만 모르면(혹은 모른 체하면) 아무런 문제가 안 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이 정확한 사태 파악을 어느 순간 하게 되면 그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마치 안데르센 동화의 벌거숭이 임금님과 간신들처럼. 너나없이 벌거숭이 임금님을 칭송하던 이들이 임금이 벌거벗었다며 “올레리꼴레리” 외치는 아이의 돌직구에 정신을 차렸던 것처럼, 코로나가 지금 미국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일상에 금이 간다. 현상학적 사회학이 알려주듯 당연시되던 것들은 그것의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동안만 그 당연시가 유지될 뿐이다. 일상은 그렇게 깨진다. 당연시 되던 것들이 의문시 되면 모든 것이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제껏,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는 훨씬 더 해결할 능력이 있고, 그렇게 하고 있으며, 그래서 미국이 세계 제1의 국가로 당당하게 군림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니라고 떠벌여 그렇게 알고 있던 코로나라란 괴질조차 통제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허둥대는 국가 체계의 무능함과 부실함을 보면서, 그 때문에 자신들의 생명이 절대적 위협을 받게 되면서, 미국인들은 보건문제를 넘어 그 이상의 다른 모든 것들까지 도매금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아차, 꾸나! 미국이란 나라가 벌거숭이 임금님 꼴은 아니었나 하고 말이다.

우리(미국인)는 실패한 국가에 살고 있다는 제목의 애틀랜틱 기사

그리고 나온 말이 “이게 나라냐!”이다.

우리가 몇 년 전 창피해하며 되뇌던 바로 그 말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은 무한한 자긍심을 갖고 믿었던 국가에 대한 실망, 좌절, 분노에서 오는 단말마적 비명이다. 그것은 “실패한 국가”에 대한 자괴감의 발로이다.(“We Are Living in a Failed State,” The Atlantic, April 20, 2020). 즉, 창피함에서 오는 미국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의 울림이다. 그러나 그 창피함은 어떻게 이런 나라가 세계최강일 수 있느냐는 다른 나라의 손가락질이(“The World Is Taking Pity on Us,” New York Times, May 8, 2020; “Fintan O’Toole: Donald Trump has destroyed the country he promised to make great again,” The Irish Times, April 25, 2020.) 자조감으로 변하면서 자연스레 생긴 자기모멸이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그렇게 스스로 비웃다 스스로 창피해하고, 결국 자기 연민에 빠졌다.(“The United States Is A Country To Be Pitied,” Washington Post, May 14, 2020). 그리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최고의 국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생각하는 이들에게 먼저 불쌍한 처지에 놓인 우리 꼴을, 우리 자신의 몰골을 볼 줄 알아야 그 나마 이 나라를 다시 세울 일말의 희망이라도 엿보일 것이라고 일갈하고 있을 정도다.(“There’s No Hope For American Unless We Can Pity Ourselves,” Washington Post, May 15, 2020). 과거에 이런 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어디 감히 세계 제1의 대국 자랑스런 미국의 시민을 깔보며, 어찌 스스로 자신들의 처지를 불쌍히 여긴단 말인가).

우리(미국인)가 불쌍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일말의 어떤 희망도 없다고 전하는 워싱턴포스트

코로나 창궐에 속수무책인 나라. 의료체계가 엉망진창인 나라. 실직하면 하루아침에 중산층에서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해버리는 나라. 먹을 것을 무상으로 얻기 위해 몇 킬로미터의 줄을 서야만 하는 나라. 대부분의 국민이 팍팍한 삶으로 끔찍한 하루하루를 버텨야하지만 부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배를 불리는 나라. 이런 것을 해결해 줄 생각일랑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나라에 대한 불만.

한 번 터지니 한꺼번에 우르르 봇물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모든 게 의문에 휩싸여버렸다. 그러한 고질적 문제와 병폐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나빠지는 나라. 그 정점에 있는 빈곤과 불평등과 인종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아니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좌절.

빌어먹을 아메리칸 드림은 어디에나 있단 말인가? 그것도 혹시 허구? 그런 회의가 물 밀 듯 밀려오는 지금의 미국이다. 그 민낯이 이번 코로나사태로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나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영원히 해결될 수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 이들의 절망.

천하를 호령하던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쉽게 이야기하면, 미국이 여러 나라들 중 지존이란 표현)는 빈곤과 불행 그리고 사망의 의미로 희화화되었다.(“Under Trump, American Exceptionalism Means Poverty, Misery and Death,” The Guardian, May 10, 2020). 하다못해 과거의 영광스런 “예외주의” 딱지는 발가락의 때보다 생각 안하던 나라, 한국 같은 나라에게 붙이는 해프닝도 벌어졌다.(“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 The Atlantic, May 6, 2020).

이렇게 자신이 거주하는 외부환경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그 다음 수순은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We’re Discovering Our Character,” The Atlantic, May 6, 2020). 세계 최강 국가의 국민에서 이제는 자신들이 무시했던 제 3세게 국가의 국민과 같은 처지에 놓였다고 생각하게 된다.(“Top Economist: US Cornoavirus Response Is Like Third World Country,” The Guardian, April 22, 2020). 그러면 차별, 불평등, 좌절과 분노, 그리고 절망은 단지 흑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전에는 흑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그래서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로 알았던 것들이 모두 내 자신의 이야기라는 처절한 자각!

지금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무너진 미국과 미국인의 실체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전하는 애틀랜틱 기사

그러니 뉴욕타임스가 현재 미국인들 사이에 팽배한 정서를 “공포(Fear), 불안(Anxiety), 분노(Anger), 절망(Desperation)”으로 짧게 규정한 것도 무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것들이 길거리로 사람들을 나가게 한다. 해서 지금 미국 도처에는 흑인 사망사건의 피해자 조지 플로이드가 흘러넘친다. “내가 바로 목 눌려 숨져간 그 피해자, 조지 플로이드”라는 각성이 사람들을 인종, 지역, 연령, 직업에 상관없이 항의 시위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동변상련과 감정이입. 그것이 길거리를 수많은 조지 플로이드들로 강물처럼 흘러넘치게 한다. 플로이드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In Every City, There’s a George Floyd’: Portraits of Protest,” New York Times, June 2, 2020). 하여 백인 경찰은 단순한 대립각에 서있는 인물이 아니다. 그것은 피폐해진 나의 삶을 질식시키고 있는 기성체계와 못된 세력들로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여태껏 존재했던 차이와 그로 인해 벌어졌던 문화전쟁들을 매우 하찮은 것들로 여길 정도로 코로나의 위력은 대단했다. 왜냐하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 앞에서는 플라스틱 빨대냐 종이 빨대냐, 와인이냐 싸구려 맥주냐의 차이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The Coronavirus Makes Our Old Culture Wars Seem Quaint,”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이처럼 여태까지의 인종차별의 갈등 양상은 코로나 이후 큰 변화를 갖는다. 흑인 대 백인의 대립구도는 지금 “네 편 내 편”으로 갈릴 문제가 아닐 정도로 진화했다. 물론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트럼프는 이들의 정서를 집중 공략해 지지자를 결집시킨다)

어쨌든, 코로나 속에서 많은 이가 참여하는 저항이 가능할까란 칼럼(“Will the Coronavirus Crush the Resistanc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이 나온 지 얼마 안 돼 과거엔 볼 수 없던 시위가 터졌고 더 대규모로 더 극력하게 더 오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이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지적도 나온다. 시위와 저항이 미국적인 게 아니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미국식이란 뭔가? 저항정신이야말로 자유를 지키고자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 정신이 아니었는가? 저항정신이야말로 미국적인 것 아닌가?(“The Double Standard of the American Riot,” The Atlantic, May 31, 2020). 사리에 맞지 않는 저항에 대한 이중 잣대는 무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시위에 참여한 미국인들에게 건네고 싶은 몇 마디가 있다.

첫째,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약탈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약탈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약탈을 하는 순간 시위의 정당성과 취지는 훼손되고 더 많은 지지를 얻어 낼 수 없으며 상대 쪽에 되치기 당하는 빌미를 줄뿐이다. 또한 약탈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들의 대다수는 같은 처지에 있는 소상공인들과 대형할인마켓의 필수노동자들이다.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코로나로 수 개월간 벌이가 신통치 않았고 감염의 위험성 속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 사지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당장의 처지가 어려워졌기에 생긴 물욕 때문에 그들에게 약탈의 위협을 가하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폭력을 규탄한다면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형편이 어려우면 오히려 구걸을 하는 게 낫다.

둘째, 하는 말 족족, 하는 짓 족족 밉상인 트럼프가 설혹 불에 기름을 붓는 짓을 한다 해도(“Episcopal bishop on President Trump: ‘Everything he has said and done is to inflame violence’,” Washington Post, June 2, 2020; “Editorial: Trump’s failure of leadership for a nation in crisis,” San Francisco Chronicle, May 31, 2020; “Intelligence Experts Say U.S. Reminds Them of a Collapsing Nation,” Washington Post, June 3, 2020), 미국의 모든 잘못을 트럼프 탓으로 돌리는 것은 그야말로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물론 그의 탓도 매우 크다. 하지만 미국이 안고 있는 중증 문제가 모두 트럼프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아니다. 트럼프는 그 일을 다룸에 있어 그 이전의 대통령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그의 방식은 뻔뻔하고 조잡한 무시 전략. 그래서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것 같이 보일뿐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골수 지지자들을 결집시킨다.

트럼프 이전의 다른 지도자들은 동정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문제 해결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오바마가 그 썩어 문드러진 체계를 고치려 시도했는가? 아니다. 트럼프나 다른 이들이나 모두 자신들이 선택한 정치적 행위를 할(했을) 뿐이다. 누구를 위한? 기득권을 위한 정치적 행위! 대표적인 문제인 계층 계급간의 불평등을 보라. 그것은 트럼프 이후 급증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있었던 미국의 중증 기저질환이다. 심각한 기저질환이 지속되었고 아무도 그것을 치유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을 부채질 해왔던 기득권세력들, 내가 말하는 제국들을 위해 열심 봉사 했을 뿐이다. 미국은 그 둘의 노선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 아니 트럼프가 나와서 둘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것 같이 보이게 했을 뿐, 관통하는 사실은 단 하나 국민이 아닌 제국을 위한 정치였다. 따라서 모든 문제를 트럼프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해결커녕 더 엉클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한다.(이 때문에, 나는 트럼프 정권하에서 미국의 예외주의가 빈곤, 불행, 사망으로 변해버렸다고 말하는 로버트 라이시의 견해엔 동의할 수 없다. 미국의 예외주의는 그가 노동부장관으로 재직했던 클린턴 때도 이미 그렇게 변질 되어 있었다).

따라서 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다. 잔인무도한 폭력을 행사한 백인 경찰이 아니다. 물론 이것들도 큰 문제이지만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더 큰 근본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공부가 필요하다. 내가 보건데 미국의 모든 문제의 핵심엔 원흉인 월가가 있다. 해서 이번 일의 동변상련과 감정이입 다 좋다. 그러나 비판(과 개혁)의 대상을 공략할 때는 대상의 층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흑백문제와 공권력의 만행 문제는 그 수준으로 공략하라.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곤경과 불안한 경제적 삶, 그리고 암울한 미래에 대한 문제는 그것대로 따로 공격 대상을 정해 공략하라. 이 수준에서 생성된 공포와 좌절, 절망과 분노의 유발자로는 원흉 월가가 있으니 월가와 거기에 동참해 당신들의 삶을 척박하게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는 정치권에 그 화살을 겨누라. 그렇게 하지 않고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며 “백인경찰의 엄중처벌”만을 요구한다면 뒤에서 비웃을 이들은 월가와 정치가들이다.

최루액을 시위대에 뿌리는 텍사스 오스틴 경찰 사진 <뉴욕타임스/AP>

그래서 공격의 타깃은 썩어문드러진 미국의 시스템의 교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탑다운(위에서 아래로) 방식이어야 한다. 고작 20달러(약 2만 원)짜리 위조지폐 사용 혐의(위조지폐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가 사망에 이를 정도의 중범죄라면, 나라 전체를 강탈하고 전 국민의 삶을 위험에 빠트리는 월가의 대형은행과 사모펀드의 사기와 강도짓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야 한다. 처벌은커녕 그들에게 두둑한 보상(구제금융)까지 주고 있는 것에 대한 끝까지 저항이 있어야 한다.(그런데 여러 가지 여건 상 과연 거기까지 갈 수 있을 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과연 <애틀랜틱>의 진단처럼 미국 역사상 2020년이 최악의 해가 될 것인가?(“Is This the Worst Year in Modern American History?,” The Atlantic, May 31, 2020).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자료

Henry Steele Commager, The American Mind: An Interpretation of American Thought and Character Since the 1880’s (New He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59).

“We Are Living in a Failed State,” The Atlantic, April 20, 2020.

“There’s No Hope For American Unless We Can Pity Ourselves,” Washington Post, May 15, 2020.

“The United States Is A Country To Be Pitied,” Washington Post, May 14, 2020.

“The America We Need,” New York Times, April 9, 2020.

“‘In Every City, There’s a George Floyd’: Portraits of Protest,” New York Times, June 2, 2020.

“Intelligence Experts Say U.S. Reminds Them of a Collapsing Nation,” Washington Post, June 3, 2020.

“What’s Behind South Korea’s COVID-19 Exceptionalism?” The Atlantic, May 6, 2020.

“The Double Standard of the American Riot,” The Atlantic, May 31, 2020.

“Is This the Worst Year in Modern American History?,” The Atlantic, May 31, 2020.

“Retailers, Battered by Pandemic, Now Confront Protests,” New York Times, June 1, 2020.

“We’re Discovering Our Character,” The Atlantic, May 6, 2020.

“8 Minutes and 46 Seconds: How George Floyd Was Killed in Police Custody,” New York Times, May 31, 2020.

“What Happened in the Chaotic Moments Before George Floyd Died,” New York Times, May 29, 2020.

“Will Protests Set Off a Second Viral Wave?” New York Times, May 31, 2020.

“Will the Coronavirus Crush the Resistance?,” New York Times, April 21, 2020.

“The First Invasion of America,” New York Times, May 21, 2020.

“Under Trump, American Exceptionalism Means Poverty, Misery and Death,” The Guardian, May 10, 2020.

“Top Economist: US Cornoavirus Response Is Like Third World Country,” The Guardian, April 22, 2020.

“The Coronavirus Makes Our Old Culture Wars Seem Quaint,”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American Is a Tinderbox,”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The World Is Taking Pity on Us,” New York Times, May 8, 2020.

“‘They just kind of destroyed the place’: Businesses closed for months now face looting aftermath,” Boston Globe, June 1, 2020.

“Editorial: Trump’s failure of leadership for a nation in crisis,” San Francisco Chronicle, May 31, 2020.

“Episcopal bishop on President Trump: ‘Everything he has said and done is to inflame violence’,” Washington Post, June 2, 2020.

 

김광기 경북대 교수의 연재 ‘인사이드 아메리카’는 <프레시안>에 동시 게재됩니다.

수, 2020/07/08-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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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북미에 이어 남미로, 이제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 중이다. 이미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크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멕시코는 물론이거니와 브라질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에서 거침없이 퍼져가는 이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건 생존의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분명한 현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는 빈곤하지 않다. 살인적인 사회적 불평등이 뿌리 깊은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일 뿐, 결코 ‘가난’ 한 대륙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진 덕분에 일찌감치 주변 강대국의 먹이사슬에 저항할 틈도 없이 예속되어 버린 탓에, 외국자본과 소수 매판 자본가 계급이 주축이 되어 형성한 ‘신식민지’가 지금의 라틴아메리카이다.

형식적인 정치적 독립은 중요하지 않다. 자본의 힘이라면 정치 권력쯤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저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지개혁이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쿠데타가 일어났고, 혹독한 독재자에게 저항하여 민중 정부라도 세우면 어김없이 외세의 지원을 받는 반군이 득세하는가 하면,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 한들 기득권층인 자본가 계급의 맘에 들지 않으면 ‘우매한’ 대중이 선동에 이끌러 선택한 ‘합법적’이지 않은 정권이 된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20세기 내내 반복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는 여전히 진해 중이다. 유럽의 식민지로 시작해 미국의 ‘신’식민지로 전락한 이 대륙의 운명은 소위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여지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이성과 합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라, 소수 독점자본의 이해를 보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사회를 해체하여 개인 각자도생의 길만을 열어놓았으니,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수많은 라틴아메리카 국민의 설 자리는 벼랑 끝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전 세계가 전염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사회로 외면당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코로나19의 위험을 애써 외면하는 일일 것이다. 당장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막막한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지켜야 할 수칙을 이야기한 들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이를 개인의 문제나 책임으로 치부해 버리지 말자. 자신의 하루 일 노동이 나와 가족 생계의 전부가 되는 사람들에게 중산층의 경제적 여유와 안정을 갖춘 이들에게나 가능할 법한 전염병 대처나 위기 인식 등을 요구하는 것은 더욱 혹독하다. 그렇다. 현재 그들에게 하루의 생계보다 중요한 것은 없지 않은가.

멕시코, 페루, 칠레, 콜롬비아, 브라질 등 소위 라틴아메리카 대부분 국가의 비공식 경제부문은 거의 50%에 육박하고, 이는 구조적으로 국가와 사회시스템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에게 삶이란 사회적 공존의 영역이 아니라 원자화된 개인의 치열한 생존의 투쟁이다. 계층의 이동이라는 것은 존재한 적도 없다. 그렇게 차곡차곡 만들어진 라틴아메리카의 이른바 사회질서는 공고하다.

얼마 전 에콰도르 과야낄(Guayaquil)이라는 도시에서 코로나 감염 사망자들의 시신이 길거리에 방치되는 것이 국내에 보도되자, 많은 이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브라질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사망자를 매장하는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다. 외신의 ‘선택’을 받은 극적인 장면들만 국내 포털을 통해 전달될 뿐이다. 미국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제1세계와 제3세계의 기층민중들의 운명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들 국가와 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다수의 국민 혹은 사회의 구성원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이다. 현재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는 코로나19는 분명 ‘계급’에 따른 ‘선별적’ 감염이 두드러질 것이다. 유명인 몇몇이 감염되고 정치인들이 감염되었다고 해서, 이 전염병의 계급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첨단 기술을 갖춘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고 완치될 수 가능성이 있지만, 사회보장은커녕 의료보험도 없는 다수 기층민중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코로나19의 급습은 유럽은 물론 미국과 같은 자칭 제1세계가 구축한 체제가 양산한 사회의 배제시스템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지금, 멕시코에서는 코로나19 감염으로 병원을 찾으면 고통 없이 빨리 죽을 수 있도록 주사를 놓는다는 괴담에 가까운 이야기가 SNS와 Facebook을 통해 번지고 있는 모양이다. 이 같은 문제의 본질은 결국 그 소문의 진위보다는 평소 멕시코 의료체계에 대한 불신과 공중보건 시스템의 부재가 낳은 불안과 공포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당뇨나 심장병과 같은 만성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전체 질병의 70%에 이르지만, 현재 멕시코의 공공의료 시스템으로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적다. 그렇다고 민영의료 시스템이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멕시코 전체 인구의 약 천 육백만 명이 의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와 시장경제가 정착했다고 알려진 칠레도 별반 다르지 않다. 1973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피노쳇 군부 정권은 일찌감치 미국 시카고 대학 출신의 경제관료들을 앞세워 가장 ‘모범적’인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다. 그 결과 현재 역내 가장 불평등한 민영 의료시스템을 구축했고, 가장 비싼 약값을 치러야 하는 국가이다. 참고로 최상위 1%가 전체 국부의 26.5%를 소유하고, 반면 취약계층의 50%가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1%에 불과하다. 2019년 10월부터 시작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구조적 원인인 셈이다.

이번 코로나19로 지금까지 구축되어 온 의료체계의 붕괴, 의료 민영화, 의료의 공공성 등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비판,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나, 병상이 부족해 환자들이 방치되고 산소 호흡기가 부족했다는 사실보다 정작 문제의 본질은 과연 바이러스라는 공동의 적으로부터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가이다. 단순히 의료시스템만의 문제로만 좁혀서 다루어질 수 있을까. 국가 예산을 들여 병상을 확보하고 호흡기를 대량 구매하는 것이 위기를 대처하는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으려면 말이다. 얼마 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볼리비아의 과도기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장비 구매 과정에서 불거진 부패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지만달라진 것은 없다.

상점과 마트에 풍부하게 진열된 손소독제나 마스크는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이들에게나 해당한다. 그리고, 여전히 라틴아메리카의 상당수 국민은 상점에 즐비하게 진열된 손 세정제를 사는 것이 부담스럽다. 반면, 쿠바에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돈만 있다면 흔하게 살 수 있는 잘 포장된 손 소독제 따위는 없다. 이 팬더믹으로 더욱 좁혀오는 경제봉쇄를 차치하더라도, 턱없는 물자 부족은 쿠바인들의 일상이 되었다. 이를 사회주의의 ‘저주’라고 속단하지 않기 바란다. 그 이면에는 반세기가 넘도록 미국의 경제봉쇄를 버텨온 저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니까.

쿠바에서 팬더믹이 시작되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시작된 공동행동이다. 쿠바의 모든 의료진과 의대생들이 각 지역으로 파견되고, 노인과 감염 취약계층을 파악하는 특별전담의료진들도 구성이 된다. 이 같은 사회적 행동의 목적은 하나다. 코로나19의 급습으로부터 함께 생존할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려는 사회의 빠른 대처였고, 소외 계층이 없도록 하려는 부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그래서 쿠바는 여전히 옳다. 적어도 코로나19의 급습을 받는 지금.

수, 2020/07/0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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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신향촌건설운동 20주년을 맞아, 원톄쥔 교수가 운동의 회고와 함께 그 이론적 배경을 정리해나가고 있다. ‘맛보기’에 해당하는 이 짧은 비디오 강연에서는, 신향촌건설운동의 큰 사고의 틀을 규정하는 중국 전통사상에 대한 간략한 언급과 함께, 자신들의 이론 다섯가지를 정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미국과의 갈등이 초래한 직접적 압력과 이에 대한 중국정부의 각종 지정학적 대응,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전세계적 혐중분위기와 함께, 최근 홍콩보안법 통과는 미국과 서방을 대체하는 대안 거대담론의 제시자로서, 중국에 대한 세계의 기대를 크게 잠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톄쥔 교수와 그의 추종자/찬동자들은 중국의 주류와 비주류, 그리고 관방/시장과 민간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계속 외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이 이론들은, 기후변화, 불평등과 같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초래한 전지구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으로, 큰 틀에서는 생태문명 건설, 구체적으로는 로컬라이제이션과 향촌건설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각급 정부의 ‘향촌진흥’정책에 실제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또, 그 내용들이, 중국 바깥 세계와의 충돌을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초래한 다양한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위협론을 반박할만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원톄쥔 교수의 이론은 주로 중국 (근)현대경제사의 실전적 분석과 정책수립/실천, 민간대안운동 경험을 그 재료로 삼는 2~30년 이상의 실천과 10년간의 연구 성과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그의 세계체제속에서의 비용전가론이나 농촌균형발전론은 중국내에서도 여전히 비주류에 속하긴 하지만, 오랜 기간 숙성돼온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문명파생론’은 그의 전문적 연구 영역에서 다소 벗어난 최근의 고민으로, 학계의 활발한 논의대상으로 격상된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그 다음 이론인  ‘제도파생론’과 함께, 이 주장들은 서구 학계의 중국문명/ 정부 비판에 대한 대응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학문적 주장으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외부세계와의 열린 논쟁의 과정과,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경제학자로서, 그의 사상적 고민, 형이상학적 논의는 그의 연구결과에서 잘 드러나지는 않는다. 중국 ‘생태문명’의 기반사상이나 그가 스승으로 여기는 ‘량슈밍’사상 등에 주목하는 중국 바깥의 연구자나 활동가들은 이를 궁금하게 여기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강연이, 도덕경을 직접 언급하거나, 중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이지만, 역시 정확한 학술적 표현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삼농문제는 개발도상국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 중국의 삼농문제는 1990년대 급진적인 현대화 개혁이래, 중국사회의 큰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21세기에 진입하는 시점에, 공산당과 국가의 중요한 관심사가 됐다. 2001년 이래 신향촌건설운동을 진행하면서, 삼농문제의 완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과거 20년간, “민생을 보호하고, 연대를 촉진하며, 다원화를 제창한다”라는 생태문명 이념을 받들어 오며, 지식인과 청년학생들이 선도해서, 사회 각계층이 스스로 참여하고, 기층민중과 함께, 향토문화가 결합된 실천적 사회개량 실험을 해왔다. 그 결과, 중국 곳곳에 실천 현장이 생겨났다.

 신농촌건설로부터, 향촌진흥에 이르기까지, 식품안전으로부터, 안전한 문화, 안전한 생태환경, 그리고 국가안보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걸쳐, 향촌건설참여자들의 분투는 쉼이 없었다: 향촌건설에서, 도농교류, 국제교류에 이르기까지, 사회공익에서 사회적 기업에 이르기까지, 인재육성에서, 농민과의 협력, 농민공지원, 사회적 생태농업 (커뮤니티 지원 농업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향토문화부흥, 향촌건설연구에서 향촌종합발전에 이르기까지, 지난 이십년간, 다양한 사회적 모색이 지속돼 왔다.  


향촌건설사상이론체계

여러분들에게 우리 향촌건설의 실천과정중에 만들어진 이론 체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60세부터 시작하여 이제 70세에 이를 때까지, 우리 연구진들과 함께, 각종 연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성과이기도 하다.

우리의 이론체계는 5개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동시에 이 5개 관점에 대한 연구는 어떻든, 완전하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연구 그룹의 스타일이다. 우리는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를 잘 간직하고 유지해왔다. 이것이 우리 연구의 태도에 일관되게 반영이 돼 있다.

중국전통문화는 근대 자연과학과 같이 분과가 명확하게 나뉘어 그 구조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선, 큰 틀을 만들어, 전체적인 대략의 얼개를 이해하려고 한다. 이런 태도는 우리가 지금 강조하는 생태문명 전략의 전환과도 관련이 있다. 21세기를 맞아, 갈수록 공업화, 자본화가 진행되면서 초래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중국은 생태문명으로 전환을 시작했다. 큰 방향성의 전환이었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생태자원이란 단어는 대단히 풍부한 내용을 품고 있다. 극단적으로 다양화한 자원체계이고, 그 요소들이 함께 묶여 있어서, 하나 하나 분리해 낼 수도 없다. 현재 중국의 국가지도자가 강조하는 ‘양산사상兩山思想’ (역자주: 시진핑이 녹수청산綠水青山이 금산은산金山銀山이다라고 한 표현을 이르는 말, 환경생태자원이 경제적 가치도 가진다는 의미)은, 산과 물, 전답, 숲, 호수, 풀 등의 자원이 종합적인 하나의 시스템으로 개발돼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원을 쪼개서 시장에 내놓으면 그 가치가 반감되기 때문이다. 생태자원은 구조화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원래 시장 논리로 명확하게 분절될 수 없는 자원이다. 전일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생태 시스템이다. 인류는 공업화 시대에 생태자원을 생산요소로 변화시켰다. 이를테면, 공업화와 도시화는 토지를 사용해야 하는데, 토지는 생산요소로 인식된다. 이렇게 토지를 사용하기 위해, 숲의 나무를 베어내고, 불을 질러 황무지로 만든다. 그 결과로 우리는 생태위기를 목도하고 있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매년 감소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전통적인 개발은 이렇게 토지를 평면자원으로만 인식한다. 그 토지안에 자라는 나무, 풀, 서식하는 동물 등은 토지 자원 관점에서는 전혀 가치가 없기 때문에, 모두 제거돼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물 다양성 자원은 사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인류 사회와 매우 고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런 각도에서 보자면, 우선 생태문명 전환이 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사상의식 측면에서 개명돼야 한다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최근 향촌건설이 강조해온 일련의 기본이념과도 통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상무형大象無形, 대음희성大音希聲 (도덕경 41장)을 강조해 왔다. 만일 당신이 한마리 코끼리를 묘사하고자 한다면, 특히나 체계적으로 코끼리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다름아니다. 다리를 만지면, 기둥이라고 할 것이고, 배를 만지면, 벽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상무형은, elephant 즉 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라, 커다란 객관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중국의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전략이 결합적으로 말하는 물과 숲, 전답 등을 아우르는 생태자원은 또한 구조적으로 쪼개서 분석할 수 없는, 담론상 하나의 객관적인 사물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대상무형을 강조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다원화사회구조속의 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할 때, 무성무식無聲無息 (출전: 시경,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정체를 알 수 없음)이 더 명확히 드러난다. 지난 몇년간 외국에서 수많은 친구들이 찾아왔다. 농촌에 가서 수많은 향촌건설 현장을 돌아보고 나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현장이 생겨났는가?” 물었다. 우리 대답은, 허탈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별거 없다. 원래 이렇게 해왔다. 무슨 본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모두들 자기 일을 하는 거다. 판은 크게 벌리려고 노력하지만, 큰 소리가 나는 것도 아니다. 소식을 챙겨 들으려고 해도 따로 들을 수 없지만, 가보면 만날 수 있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도가의 철학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은 이 사회가 원래 이런 상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자연의 다양성을 갖춘 생태 시스템안에서 느끼는 것과 유사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만일, 지속적으로 생태화를 진행하다보면, 사람은 자연생태와 긴밀하게 결합돼 간다. 인류사회의 다양성은 자연생태의 다양성과 일치한다. 그래서 이런 감각으로 계속 진행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입어중도立於中道”에 처한 자신을 발견한다. 중도는 무엇인가 ? 대도중용大道中庸이다 – 누가 누구이고,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를 판별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의 행위는 어떻든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표현으로 나타날 때는, 비이성적인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존재라면, 각각의 행위에서 나름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존재는 다 합리적이다.

이런 상대적이며, 다양한 이유와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중도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처지에 도달했을 때, 이것을 “중도이립中道而立,비비가장야臂非加長也,이종치자중而從之者眾” (역자주 – 맹자와 순자를 동시에 인용하고 있다.  활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지만, 발사는 하지 않는다. 또,  높은 곳에 올라 팔을 뻗으면 팔이 길지 않아도 보인다. 배우는 사람들이 쉽게 따라 올 수 있도록 여지를 둔다라는 의미 )이라고 할 수있다. 이 표현은 왜 향촌건설운동에 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지 잘 설명해 준다.  그래서, 향촌건설은 서구의 냉전형 이념이 만들어낸, 인문사회과학으로 포장된 시스템을 통해, 오직 하나의 정치형태만이 정답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친구들이 항상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원선생 어째서 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소?” 나는 원래 습관이라고 답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왜냐하면 매사에 흑백논리를 들이 댈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요즘 연구지도 사상으로 중국전통문명중에서도 비교적 변증론적 색채를 가진 것을 취한다. 또 비교적 자연주의에 가까운 노자의 사상을 채택한다. 물론 공자의 사상도 결합돼 있으며, 불가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실은 전통 사상내에서 유불도儒佛道 삼자를 분리해내기도 어렵다. 그래서 향촌건설연구는 서구의 사회과학이 채택하는 분과학문적 분류를 채택하지 않기로 한다. 특정 이념에서 출발한 연구도 지양한다.

 

회고해보는 우리의 관점

첫번째 관점은 역사적으로 중화민족의 문명전승을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만년에 달하는 문명이고, 이 문명의 전승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세계 문명사를 돌아보아도 문명의 연속성은 단순한 인위에 의해서 확보되지 않았다. 그래서 특정 인종이 선진적이라 할 수 없고, 그들이 다른 기타 정신요소를 더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실제는 외부의 환경차이가 있을뿐이다. 그래서 문명의 형성 조건이 다르고, 각각의 인류 문명의 차이를 낳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옳고 그름도 없고, 선진과 후진도 없다고 규정한다. 다양한 인류문명은 각기 스스로 합리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내재적으로 합리적 요소를 갖춘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부락 사회가 낙후된 것이라고 하고, 생존방식이 원시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원시적 생활방식은 그 자체로 생존을 위한 내재적 합리성을 갖고 있다. 왜 이것을 후진적이라고 단정해야 하는가? 이것은 자본주의가 인류문명의 차이를 구별하며 만든, 일종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가치관을 배제한 채 인류의 문명을 관찰하려고 한다. 중요한 관찰의 포인트는, 기후의 주기변화에 따라 파생된 적응성 변화이다. 기후주기변화는 또 기후대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렇게 각각의 기후대는 직접적으로 지표의 자원에 영향을 끼친다. 인류사회는 일찍이 원시시대에 농업과 수렵문명의 시기로 접어들었고, 주로 지표의 자원에 의존해서 생존해왔다. 그래서, 기후의 주기변화와 특정 기후대에서의 지표지리자원의 변화가 인류문명의 차이를 가져왔다.

만일 우리가 세계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면, 우리 향촌건설연구자들의 세계관은 ‘객관적인 역사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인류는 주로 식민화에 의해 결정된 이념에 몰입했고, 실은 서구중심주의가 서방의 이러한 변화 과정을 선진이자 보편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러한 서구중심주의를 포기한다면, 동방의 문명이든 서방의 문명이든, 남방 혹은 북방의 국가이든 각양의 생존 방식이 본래부터 다른 문화로 나타났을 것이고, 당연히 문화다양성의 합리적 내적요인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향촌건설을 통해서 사람과 자연간의 긴밀한 결합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식민화 이래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이 세계의 새로운 생태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예전에 홍콩 링난대학의 라우킨치 LAU Kin Chi 劉健芝선생의 도움으로 국제비교연구를 했을 때, 내 강연에서 beyond cosmology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현재의 세계관을 뛰어 넘어야하고, 가치 판단을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 당시에는 스스로도 매우 명료한  뜻을 가지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나의 중요한 관점중 하나가 됐다.

다음은 근대 인류사회에서 우리가 형성한 연구 관점을 돌아본다.

과거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 중국인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제도의 문제라는 ‘제도결정론’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거시적 비교를 한 후에, 역사가 내포하는 세계관을 통해서, 제도문제를 연구해서 ‘제도파생론’을 만들어 냈다.

만일 우리가 앞서 언급한 첫번째 관점을 ‘인류문명차이 파생론’이라고 명명한다면, 그 내용은 자연환경조건의 변화에 따라서 문명의 형태가 결정되고 파생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 다음단계는 ‘제도파생론’인데, 일정한 자원의 구속조건하에서 상이한 인류문화가 형성되고, 거기에 맞는 각각의 제도가 파생됐다는 뜻이다. 

왜냐면, 각 지역에 부여된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식민화이후 수립된 대부분의 후발국가들은 모두 그들의 자원조건을 다시 변화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이런 자원환경이 제한하는 조건하에서, 제도는 요소구조의 변화에서 파생된다. 혹은 요소구조변화가 이런 제도를 형성한다. 그리고 후속제도변화의 경로의존을 결정하게 된다. 제도 변화의 경로가 앞서의 제도 구조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제도결정론이 아니라, 제도파생론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두번째 관점은 사실 하나의 이론 프레임을 형성하게 된다.

세번째 관점은 개발도상국가가 현재 직면한 큰 도전과제들이 실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제도적 비용이 외부에서 전가된 것이라는 점이다. 

한걸음 더나아가 이 이론과 월러스타인, 사미르 아민 그리고 아리기의 이론과 함께 결합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세계가 사실은 핵심국가-반핵심반주변국가-주변국가의 순서대로 비용이 전가 되는 구조로 운용된다는 것이다.

왜 선진국은 선진국이 됐나? 왜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은 늘 수많은 재난에 직면해야 하는가? 사실은 전자의 비용이 후자에 전가됐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두번째 관점과 관계가 있다. 앞서 말했듯이, 어떤 제도변천도 모두 본래 제도의 프레임안에서 수익을 점유하고 비용은 다른 이에게 떠 넘기는 행위를 주도하는 이익집단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목적은 수익은 극대화하고 비용은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획이 성공한다면,  유도된 변천이라고 부를 수 있다. 실패한다면, 이번엔 타인에게 비용을 부담하라고 강요하고, 이를 강제적 제도변천으로 부를 수도 있다. 이런 관점으로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설명하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은 핵심국가 (지금은 미국이 가장 노른자이다)에서 반주변부 국가로 그리고 순차적으로 주변부 국가로 비용이 전가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부 국가마저 이 끊임없이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 그 비용을 자연 환경에 전가하게 되며, 이는 생태환경의 파괴, 즉 기후변화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엄중한 도전이다. 이러한 글로벌라이제이션 시스템은 그러므로 파멸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양성을 전제로한 생태문명으로 전환하지 못한다면, 이런 결과를 직면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다름아니다.

우리의 네번째 관점은 개발도상국은 이런 정해진 틀과 운명에 빠져나갈 수 없고, 즉, 발전함정에서 탈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주권을 외부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은 스스로 정권을 수립할 때, 대부분의 경우 식민지 종주국과 협상을 통해서 국가의 주권을 쟁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정한 거래를 하게 되는데, 주로 자원주권을 내줄 수 밖에 없다. 심지어는, 핵심 경제주권을 내주는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금융과 재정에 대한 것이다. 이때 얻게 되는 정치주권은 명목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 지도자는 집권을 하면서 사회에 일정한 발전의 약속을 하게 되는데, 경제자원에 기반한 자주개발 수익을 얻을 수 없으므로, 그 약속도 지킬 방도가 없게 된다. 그래서, 개발 도상국은 이러한 주권외부성이 정한 운명의 족쇄안에서, 자기 국가의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전체 20세기는 비록 짧았고, 미완의 혁명도 이미 과거사가 됐으나, 우리는 오늘날 대다수 개발도상국들이 발전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주요한 원인이 주권외부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반식민지 혁명은 완성되지 못했고, 주권외부성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섯번째 관점은 만일 비선진국들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도시화를 추진해서 향촌을 파괴한다면, 많은 사회적 리스크를 부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향촌의 전통 마을 사회는 외부성 문제를 내부화해서 층격을 완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사실 간단하다. 국내의 현재 모든 학문적 이론은 대부분 미국의 담론체계를 수용한 채 따라가면서, 다른 이론을 배타시한다. 만일, 우리가 농가의 경제적 합리성을 언급한다면, 모두 시카고대학의 시어도어 슐츠의 소농경제합리성 이론을 떠올릴 것이다. 당연하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시대적 한계를 지닌다. 소농경제는 자본주의 요구에 맞는 시장주체로서 부합해야 했고, 이 또한, 이념의 반영이다. 슐츠 이전에는 차야노프의 생존소농 이론을 모두 이야기했다. 농가에서는 그 가족 성원을 내칠 수 없기 때문에, 가정내에서 노동을 배분하는 것이 합리적이었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도 가정내에서 배분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래서 소농경제는 가정내의 경제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소농의 가정이 외부에서 기인한 리스크를 내부화해서 처리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마을 공동체가 같은 방식으로 외부 리스크를 내부화하여 다루는 메커니즘을 논하고자 한다. 마을에 모두 모여살기 때문에, 마을의 자산 경계는 지연에 의해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마을은 함부로 마을에 소속된 농가를 추방할 수 없다. 가정이 그 가족 성원을 내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마을공동체는 반드시 공동의 업무를 공동의 노력으로 완성시켜야 한다. 외부성을 내부화해서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국 향진기업의 발전이 그러하다. 중국 향촌마을의 집체경제의 발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을 공동체 조직의 내부화 메커니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같은 이치에 따라, 전세계가 글로벌라이제이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도시화 정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일수록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일부는 국가 도산에 처해서,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중국이나, 인도와 같이, 큰 농촌지역을 가진데다가, 농촌인구 비율이 높은 국가라면,  큰 위기에 직면했을 때, 상당부분, 향토사회가 위부 위기 비용을 내부화해서 떠안는 기능을 하면서 국가 전체가 위기를 넘기곤 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시 중국의 도농2원구조 제도를 평가해보면, 충분히 그 장점을 발견할 수있고, 개발도상국에게 있어서, 과도하고 급진적이며, 빠른 도시화가 강조돼서는 곤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향촌사회의 발전을 일정하게 유지할 때, 안정된 국가체제운영이 가능하다. 특히, 중국대륙과 같이 전면적인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국가는 오히려 향촌에 대한 국가의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진다.

이와 같은 다섯가지 관점이 우리들의 최근 10년간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문헌소스: 2019년 12월23일 Global University 그룹 원톄쥔 교수 방문 비디오 채록

https://mp.weixin.qq.com/s/3jyIticS8LempH2bAU726w

금, 2020/07/10-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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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만원씩 수령한 법사위 수석전문위원

2018년 7월 5일에 참여연대가 공개한 2011~2013년 국회 특수활동비 지출결의서 내역은 오늘날 국회가 가진 ‘전근대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수많은 언론들은 전직 국회의장이 얼마를 받았는지, 국회 내 상임위원장들이 얼마를 받았는지 다뤘다. 또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이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들과 달리 월 50만원 씩 수령했다는 사실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새로운 사실’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경우다. 어떤 언론도 국회사무처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의 특수활동비 수령액이 매달 150만 원씩이었다는 것을 주목하지 않았다.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보다 권한이 세다’고 평가받는 법사위 위원의 수령액보다 3배 더 많다는 팩트가 있는데도 말이다. 이는 법사위 위원과 수석전문위원, 양자 간의 위상 혹은 권력 차이의 반영이거나 최소한 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반영일 것이다.

전에 국회 상임위원장을 역임했던 한 의원은 필자에게 “‘뭐든 희망하시는 일을 말씀하시면, 힘써드리겠다’라는 수석전문위원의 말에 ‘이 사람들이 완전 자기들이 주인이고 우리(국회의원)는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객(客)으로 아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전문직 분야에 있는 한 지인은 자기들 협회에서 국회의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는 전문위원에게 로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국회 전문위원 스스로 강조한 전문위원은 정책 결정의 실질적인 주체다

국회 전문위원이 갖는 이렇게 센 힘의 원천은 그들의 ‘검토보고’ 권한에 있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발의된 법안을 심사하게 되는데, 국회법 상 전문위원의 검토를 반드시 거치게 돼 있다. 국회법 58조에 1항에 따르면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먼저 그 취지의 설명과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 대체토론[안건 전체에 대한 문제점과 당부(當否)에 관한 일반적 토론을 말하며 제안자와의 질의·답변을 포함한다]과 축조심사 및 찬반토론을 거쳐 표결한다”라고 명기돼 있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 검토보고서의 지적 내용을 위원회 회의 과정의 발언과 통과법안의 수정 부분을 비교한 한 논문은 그 두 내용 간에 높은 인용· 일치율로 미루어 상임위 전문위원의 영향력이 지대하다고 논술하고 있다.1

한편 국회에서 일하는 입법관료 스스로 검토보고의 영향이 크다는 점을 알고 있다. 2010년 12월 상임위 입법조사관 12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조사대상의 90.8%가 법안 검토보고서가 중요한 참고자료로서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과정에 영향을 끼친다고 답했다.【2

특히 한 국회 수석전문위원이 재직 당시에 쓴 논문은 아예 국회 전문위원의 역할이 지원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 주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 제출된 총 44개 조항으로 이뤄진 한 법률안에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의 전문위원이 19개의 검토 조항을 보고하였고 결국 법안은 11개 조항을 수정하였다. 그런데 이 11개 수정안 모두 전문위원이 적성한 검토보고에서 주장한 그대로 수정되었다는 사실을 기술하면서 “전문위원은 소속 위원회 입법 활동의 단순한 지원 차원을 넘어 정책 결정의 실질적인 주체로서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3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은폐되고,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은 위험할 수 있다.

2017년 8월 22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는 국회사무처가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국회사무처에서는 수석전문위원 2명이 성추행과 횡령 혐의로 면직 처리되기도 했으며 국회사무처 직원 간 음주폭행 사건도 발생하여 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들끓었다.

 

최저임금법 개정 사례에서 드러난 검토보고의 한계

그렇다면 이토록 영향력이 큰 검토보고는 제 역할을 하고 있을까?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최근 국회에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은 법안이 있다면 단연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이 손꼽힌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법안 처리를 반대해왔다.

그런데 ‘최저임금법 일부법률개정안’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내용을 살펴보면 단지 임금의 개념에 대해 언급한 것이 전부였다. 최저임금법이 개정된 뒤 생긴 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봤을 때, 진정한 의미의 ‘검토보고’라면 마땅히 이 법안이 사회적으로 마칠 파장까지 충분히 검토했어야 할 일이다.

한국 사회에는 단순히 입법관료의 검토보고에 의해 처리되어서는 안 되는 법률과 쟁점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보다 심층적으로 토론하고 논의하기 위하여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회의원이 선출되는 것이다. 또한 이들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정당이 존재하고 그 정당 소속의 정책위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법안 처리의 길목에 국회 입법관료는 일종의 게이트키핑(gatekeeping)의 역할을 한다. 국회사무처는 전문위원 임용자격에 관한 규칙에서 전문위원의 자격기준(국회에서 10년 이상 재직하고 2급 이상의 공무원이 돼 2년이 경과한 자로서 입법심사와 조사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자 등)을 정해놨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선출되지 않은, 그리고 전문가집단에서 선발되지 않은 ‘행정사무’의 역할을 갖고 있는 공무원일 뿐이다.

특히 전문위원의 업무상 전문성에는 의문부호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전문성이란 ‘개인이 조직에 들어오기 전 그가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취득하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의미하는 통상적인 의미로서의 ‘개인적 전문성’ 외에도 ‘조직에 들어와 업무를 수행하게 됨으로써 그 업무를 통하여 획득하게 되는 전문적 지식’을 뜻하는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 전문위원의 경우, ‘개인적 전문성’의 측면만이 아니라 ‘업무상 전문성’의 측면에서도 순환 보직 근무의 관행으로 인해 깊은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실제 지금은 퇴직한 한 수석 전문위원은 불과 몇 년 사이에 각기 다른 세 곳 상임위원회의 수석전문위원을 맡았다.

 

관료들은 전문성 있다’, 왜곡된 신화

흔히 공무원들은 대단한 전문성을 지니는 존재로 이해된다. 적지 않은 언론매체들이 그러한 시각으로 기사를 쓰고 있으며, 심지어 진보 쪽에 있는 정당들의 관계자도 예를 들어, “(정치인들이) 전문성으로 무장한 공무원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 등의 논리를 계승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혹시 부분적으로나 특수한 상황에서 타당할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잘못된 ‘선입견’이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은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발된 것이 아니라 단지 공무원시험을 통해 선발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대부분의 경우 2년을 단위로 여러 부서를 옮겨 다니며 순환 근무하게 된다. 결국 전문성을 축적할 기회가 근본적으로 차단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관료들은 전문성이 있다”는 시각은 우선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최소한 정보 접근성이 압도적으로 용이한) 공무원들의 객관 조건으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 또 절차나 수속 등의 행정업무 분야에서 공무원들이 전문성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시각이 그런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밖의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이나 분석력 등 순수한 의미의 ‘전문성’ 측면에서 관료집단은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거나 혹은 대단히 미흡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이 높은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는 ‘잘못된’ 선입견과 시각은 우리 사회의 강고한 관료주의를 유지시켜주는 주요한 이데올로기로 작동되고 있다.

 

국민을 너무 힘들게 하는 국회

국회는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라는 꿈도 야무진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국회의원들은 입만 열면 스스로의 특권을 줄이겠다고 매일 같이 다짐하지만, 그러나 실천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지칠 줄 모르는 정쟁과 내로남불, 외화내빈의 말잔치만 난무한다.

‘국민을 힘들게 하는 국회’라는 말이 훨씬 정확하고 설득력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본업을 수행하지 않고 방기하는 조직은 왜곡되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의 본업인 입법을 스스로 올곧이 수행하게 될 때, 국회는 시민의 진정한 대표로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발전하는 출발선에 다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국회 전문위원 제도의 개혁이 절실하다.

 

1】 장봉아, “국회상임위원회 공무원의 입법과정상 영향력 분석: 법안 심사 회의록과 검토보고서의 일치 여부에 대한 사례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석사논문, 2004.

【2】 배용근, “국회 상임위원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의 영향요인과 발전방안”, 「의정논총」제6권 제1호, 2011

【3】 김춘엽, “논변 모형을 통해 본 법률 제정 과정에서의 전문위원 검토보고의 영향력에 관한 연구”, 「한국인사행정학보」제5권 제2호, 2006.

화, 2020/07/1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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