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아파트 값 폭등은 민주당의 지지율을 곤두박치게 만들었다. 다급해진 정부는 신도시 건설 등을 대책으로 세웠으나 이 과정에서 LH공사의 일부 직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하여 신도시 건설 예정 지구에 땅을 사전 구입하여 투기를 하였다는게 드러나고 이 사건은 모든 공무원들과 선출직, 임명직 공직자들의 땅 투기와 농지보유 실태 조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방치되거나 외면되어 왔던 농지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헌법 제 121조 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되어 있다.
농지는 농사짓는 사람이 소유하고 농지를 빌려서 농사를 짓는 소작제도는 금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헌법은 이렇게 농지의 소유와 이용을 농업 생산에 사용하도록 제한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각종 다양한 방법으로 비농민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위법에 틈새를 만들어 놓았으며 또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으나 농사를 짓는 것처럼 위장하여 농지를 소유하는 불법 소유도 늘어났다. 그리하여 전체 농지의 절반이 비농민 소유로 되어 있다. 남의 이름을 빌려서 소유하는 명의 신탁 농지까지 포함하면 전체 농지의 70% 이상이 농민이 아닌 사람에게 넘어가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이렇게 까지 훼손되면서 비농민이 농지를 취득하는 이유가 뭘까?
이 답은 이번 LH공사의 직원들이 불·탈법적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의 투자 불문율은 ‘돈을 땅에다 묻어 놓으면 손해보는 법은 없다’이다. 생산의 삼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농업이외의 산업도 땅이 있어야 하고 주거나 사무실 기타 인간의 산업 활동에는 땅이 필요하다. 도시가 확대되어 새로운 주거단지나 산업단지를 조성하려면 땅이 있어야 하는데 이 때 필요한 땅은 산이나 농지를 전용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동안 농지를 전용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보상비가 지급되거나 지가의 상승으로 엄청난 차액을 실현하면서 ‘부동산공화국’이라는 오명도 생기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아파트나 땅을 사 놨다가 졸부가 되는 사람을 보면서 박탈감과 열패감을 가지고 사회를 원망하게 된다.
이렇게 농지(토지)는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투자금액의 몇 배가 되는 보상으로 응답할 것이라는 비정상적인 상식이 농민이 아닌 사람을 농지 구매자로 만들고 있다.
땅을 통한 손쉬운 불로소득이 있으니 농지는 농사를 짓는 땅이 아니라 투자 대상, 언젠가 개발이 되면 큰 돈을 벌어줄 ‘황금알을 낳을 거위’가 되는 것이다.
이런 불로소득, 왕창 떼돈의 사례가 이번 LH공사 직원들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농지를 매입한 일이다. 이 일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심각한 불신을 만들기는 했지만 기실 농지를 갖고 싶고 부동산을 통한 일확천금은 할 수가 없어서 못하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 부족 문제, 농지의 비농민 소유와 훼손의 문제는 지금 사회적 이슈로 올라와 있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게 잠잠해지지 않을까 싶다. 언론과 연구자, 부동산 운동가들은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농지의 불·탈법 투기와 서울의 부동산 문제는 한 칼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서울의 부동산 문제는 수도권 집중화 특히 서울 시민으로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경제의 서울 집중을 해결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풀기 어려운 일이다.
농지 문제 해결은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지금은 농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만들까를 준비해야 한다.
헌법의 경자유전의 원칙은 이미 사문화 되어 있으니 앞으로 개헌을 할 때 이 조항을 없애자는 주장들이 꽤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데 사문화되었다는 이 조항을 아예 헌법에서 제외하면 어떻게 될까? 이건 가까운 대만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대만이 헌법에서 경자유전의 원칙을 없애자 바로 농지값이 일곱배 정도 뛰었고 이제 농지는 거의 다 비농민 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농사를 짓는 농민은 언제 농토에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농사를 지어야 한다. 시설투자를 할 수도 없다.
대만 사례를 보면 헌법 조항은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비농민들이 더 이상 농지 소유를 유지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고 제도를 고쳐서 농지를 농민들이 소유하거나 공적 소유로 바꿔야 한다.
상속이나 이농으로 영농을 하지 않는 농지 소유자에게는 처분의무를 부과하고 주말체험 목적의 농지도 사적 소유를 금지하고 지방정부가 이를 사들여 텃밭 농사를 원하는 시민들에게 임대하여야 한다. 또 차명 소유 농지는 기한을 정해서 그 기간 안에 처분하지 않으면 등기권자의 권리를 인정하게 한다. 이미 농지 가격은 농사를 지어서 매입자금을 갚을 수 없을 정도로 올라서 법과 제도를 고친다 하더라도 농민들 특히 신규 창업농들이 농지를 구입하기는 쉽지 않다. 비농민 소유 농지를 농민들이 매입하기 어렵다면 지방 정부와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지은행이 이를 매입하고 농민들에게 장기임대를 하여 안정적인 영농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농민들 중 자식에게 농업을 승계하는 농가는 5%도 채 안된다. 그 5%의 승계농들도 대부분 한우나 젖소, 돼지, 닭 등 대규모 축산농가이거나 수 만평 이상 쌀농사를 짓는 농가들이다. 그 외의 품목이나 농지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신규농에게 맡겨야 하는데 농촌에 들어와 농사를 짓기에는 이들이 감당해야할 부담과 몫이 적지 않다. 주거 시설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농사를 지어서 바로 수익이 나지 않으니 1~2년은 먹고 살 생활비가 있어야 한다. 농사지을 땅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40% 대 초반인 식량자급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비어가는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농지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힘이 떨어져 가는 지금 정부에서 강력한 제도 개선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다음 정부 초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경쟁상대로서 중국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자는 아래의 칼럼 내용이 대부분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행간에는 여전히 중국에 대한 공포와 일방적 혐오가 짙게 깔려 있다. 수천년 전래의 역사라는 바탕과 반식민상태에서 벗어나고자 인민의 절대적 지지에서 탄생한 현대중국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레닌주의 또는 스탈린 방식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서구인들의 중국에 대한 인식의 한계이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다양하게 회자되면서 불안한 미국을 추월하기 직전이라는 의견이 여기저기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중국은 세계 경제성장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자 제1의 무역대국이며 외국인 투자자가 선호하는 대상국가입니다.
아시아와 유럽의 주요 국가들과 무역 및 투자거래를 체결했으며 21세기 최대규모의 개발 프로젝트인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를 활용하여 세계 곳곳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각국에 감시장치를 수출하고, 5G 통신네트워크의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이버 기능을 사용하여 민감한 정보를 확보하면서 국제정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관민융합을 통해 최첨단의 역량을 개발하고 미국의 동맹이웃들을 괴롭히는 등, 경제와 정치적 저울추를 이제 군사력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호주, 인도 및 대만과 같은 동맹국과 파트너 그리고 국내에서는 홍콩에서 신장에 이르기까지 강압적으로 단속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미국과 민주정부국가들의 비판에 거의 무관심합니다.
중국성공의 스토리 라인을 가장 열렬하게 공급하는 기구와 조직에는 중국정부 산하 언론매체가 있습니다. 신념적 확신을 내세우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업적과 미국의 기능부전 장애의 많은 사례들을 대조하며 홍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연방의사당을 습격하는 반란군의 이미지를 “서구 민주주의”의 붕괴의 증거로 제시하며, 텍사스의 정전기간 동안 식수를 위해 줄을 서있는 미국 시민들의 이미지를 과장합니다. COVID-19를 “퇴치”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한 중국의 성공을 자랑스레 평가하는 반면, 미국과 다른 서방국가들은 여전히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악전고투하고 있음을 부각합니다.
시진핑 중국주석은 지난 가을 공산당 제5차 총회에서 연설에서 “시간과 역사의 흐름은 우리 편이다라고 선언하였으며, 올 1월에는 중앙정법위 비서장인 Chen Yixin은 중국공산당의 연구모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동양의 굴기와 서양의 몰락은 시대적 대세이다.”
권위주의 시스템은 자신들의 강점을 드러내고 약점을 숨기는 데 탁월합니다. 그러나 워싱턴의 정책입안자들은 중국이 제시(과장)하는 이미지와 실제의 현실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강력한 국가이며, 제2차 대전 이후 직면한 가장 강력한 미국의 경쟁자입니다.
반면에 미국은 눈에 띄는 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미-중 관계에서 더욱 강력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러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이 직면한 여러 장애물보다 중국이 해결해야 할 장애물들이 훨씬 많습니다.
냉전기간 동안 제임스 슐레진저 전직 국방장관은 “10피트의 거인 증후군”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당시 미국 정책입안자들은 소련이라는 경쟁자들을 엄청난 힘과 압도적인 지성을 지닌 우뚝 솟은 거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유사한 증후군이 오늘날 중국을 보는 미국인들의 시각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만, 그러한 시각은 분석적인 실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의 취약성을 고려하지 않고 강점에만 집중하면 불안이 생깁니다. 불안은 공포감을 낳습니다. 공포감은 과잉 반응으로 이어지고 과잉 반응은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나쁜 결정을 유도합니다. 중국을 명확하게 보는 것이 중국에 대한 대응정책을 올바르게 만드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중국체재에 대한 성급한 판단
중국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외교정책을 직접적으로 도전하여 왔습니다만, 냉전 이후 상대국가로서 세계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미국의 지도력에 대해 심각하게 경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군사력과 경제적 비중, 국제사회에 대한 야망의 조합 등으로 중국은 냉전기간 동안 상대하였던 소련과는 매우 다르며 복잡하고 어려운 도전의 상대가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중국은 수정주의적 야망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요건데 국제시스템의 권력분배, 아시아의 안보질서, 국제기구의 역할과 분담, 국경을 넘는 무수한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 기존 국제질서의 자유주의적 특성에 대한 수정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레닌주의적 정치모델과 국가주도형 경제모델이 받아들여지고 존중되기를 원합니다. 국가주권의 존중을 기반으로 영토경계의 개념이나 내정관리에 간섭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에서 전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많은 첨단기술에서 세계적 리더가 되겠다는 국가목표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직선 방향의 길로 전진할 것이라고 결론을 짓는 것은 성급한 일입니다. 중국이 미국의 이익에 제기하는 도전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중국의 강점과 취약점을 함께 평가해야 합니다. 시진핑 주석과 동료들은 전 세계의 대부분 국가들로부터 냉담한 거부감이라는 반응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은 미중 관계에서 여전히 우위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의 앞날을 생각해 보십시오. 중국은 부자가 되기 전에 늙어가고 성장을 저해하는 경제의 펀더멘털이 악화되는 회색사회(인구노령화)가 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노동가능인구는 이미 줄어들고 있습니다. 2050년의 중국은 현재 퇴직자 1인당 근로자 8명에서 퇴직자 1인당 2명으로 축소될 것입니다. 또한 고등교육을 받고 도시화되고 기술을 채택하여 제조업의 효율성을 재고할 수 있는 장점에 기반한 생산성향상을 이미 대부분 성취했습니다.
중국은 인프라에 투자할 추가(효과)적인 자원이 부족하고 부채수준이 높아지면서 성장경로가 더욱 복잡해질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부채는 2008년 GDP의 141 %에서 2019년 300 %로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한편, 권력이 시주석 주변으로만 집중됨에 따라 정치체제는 점점 경화되고 있습니다. 한때 관료주의적 능력으로 유명했던 중국공산당은 레닌주의적 경직성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많은 결정이 베이징에 집중됨에 따라 지역정책의 실험을 위한 재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스템의 하향식 특성으로 인해 공무원이 과거의 결정을 재검토하거나 정상의 책임자에게 나쁜 소식을 보고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이러한 역동성의 저하가 우한에서 코로나-19 발생에 대한 조기대응을 지연시키는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앙지도부는 극심한 빈곤을 완화하는데 확연한 성과를 얻었지만, 권위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을 단속하는데 점점 불안을 느끼면서 타협을 거부할 것입니다. 지방의 자치성 에 중앙의 의지를 강요하는 베이징의 엄격한 요구가, 신장을 포함하여, 예상치 못한 미래의 문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중국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에 엄청난 장애에 직면해 있습니다. 중국의 국내적 탄압, 일부 국가들에 대한 강압, 코로나 전염병을 둘러싼 초기의 세부사항을 숨기려던 노력 등으로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견해를 불러왔습니다.
2020년 10월 Pew(미국의회의 초당적 기구)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많은 국가에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중국은 또한 경제불황과 고령화 사회의 수요 증가로 인하여 향후 몇 년 동안 대규모 해외공사 이니셔티브(일대일로)에 대한 예산에 제약이 가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략적인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군사력은 상당기간 중국 주변지역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제약을 받을 것으로 예측되는데, 지구적 규모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과 더불어 군사력은 초강대국가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항목입니다.
중국은 독특하고 도전적인 지역조건에 직면해 있습니다. 14개 국가와 국경을 접해 있으며 그 중 4개 국가는 핵무장을 하고 있으며, 5개 국가는 중국과 영토분쟁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또한 역시 고령화되었지만 부강한 일본, 발전도상의 민족주의적 인도, 혁명적인 러시아, 첨단기술이 강력한 한국, 역동적이고 단호한 베트남이 포함됩니다. 이런 주변 국가들은 중국의 이익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강한 국가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식량과 에너지 안보에 있어서도 취약합니다. 인구전체에 충분한 식량을 공급하기에는 경작지가 부족하고, 에너지도 중동에서 석유수요의 절반 정도 수입합니다. 분쟁이 발생할 경우, 중국의 해군능력이 아직은 필수보급품의 단절을 막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베이징 당국은 취약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 쉬운 해결책은 없습니다.
미국의 자신감을 위한 사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에 대한 미국의 초당적 강경대응은 무엇보다도 베이징 당국에 의해 촉발되었습니다. 중국지도자들은 야망을 추구하는데 참을성 없는 공격성을 보였으며, 특히 민족주의에 의지하면서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성과가 사회적 결속을 약화시키는 원인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 측은 오히려 중국의 강점에 대한 공포감이 커지면서 미국 내에 불안정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선회하였습니다.
그런 공포감은 미국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중국이 강해진다는 위기감 때문에 미국은 자기자신을 강하게 키워야 하다는 가장 본질적인 일을 소홀히 다루었습니다. 중국이라는 위협을 이용하여 국내개혁을 촉진하거나 국내의 분열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이익보다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내에서 중국이라는 위협을 부풀리는 것은 문제를 정치적으로 무기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도록 유도할 것이며, 야심찬 정치인들이 상대방 반대자들의 지지를 약화시키는 도구로 중국이라는 현안을 악용하려 할 것입니다.
해외에서도 이러한 접근방식은 동맹국 및 파트너와의 분열을 확대할 것이며, 이들 대부분 중국이 실존적 위협이라는 미국의 견해를 공유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에 해를 끼치려는 정책의 노력은, 미중 간에 협력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사안들(예로서 기후위기)을 방해하면서, 오히려 미국자신에게 더욱 불리하게 될 공산이 있습니다.
중국이 직선적으로 손쉽게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는 예측은 성급한 것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은 이러한 역학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중국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불공정 거래관행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반영하여 중국에게 항복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국에게 원하는 경제변화를 강요하는데 거의 성공하지 못했고, 무역적자의 증가, 미국농민에 대한 손실로 인한 280억 달러의 구제금융 및 약 245,000개의 일자리 퇴출 등 오히려 미국에게 많은 손해를 끼친 중국의 보복을 촉발했습니다.
미국은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미국경제의 규모는 여전히 중국보다 7조 달러(팬데믹 이후 5조 달러 이하로 축소된 것으로 추정) 앞서 있습니다. 미국은 에너지와 식량안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인구통계학적 구조, 세계최고의 고등 교육 시스템, 세계기축통화라는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인접국가와 평화로운 국경과 매우 유리한 지리적 이점을 누립니다. 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경제를 자랑하며 전통적으로 세계최고의 학문적 풍토 그리고 최상의 아이디어에 대한 후견역할을 지니고 있습니다. 투명하고 예측이 가능한 법률시스템과 잘못된 경우 이의 수정을 촉구하는 사회정치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에는 이러한 기능들이 없습니다.
미국인의 자신감으로 중국의 부상에 대하여 꾸준하고 인내하며 현명한 대응을 촉발해야 합니다. 이런 방식은 국내외에서 광범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접근방식의 여러 항목들은 중국과 더불어 글로벌 질병감시의 네트워크 구축 및 글로벌 경제의 탈탄소화와 같은 초국가적 과제 해결에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추진하면서도, 미국의 이익과 가치에 도전하는 중국의 행동에 단호히 맞서야 합니다.
미국 정책입안자들은, 커트 캠벨(아시아 정책의 짜르)과 제이크 설리반(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했듯이, 공존이란 경쟁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관리해야 하는 조건을 의미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미국은 냉전초기에 George Kennan이 말했듯이 “자신의 최고 전통(강점)을 측정하고 위대한 국가로서 유지할 가치가 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미국이 21세기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준비가 잘된 국가라는 자신감을 회복할수록, 중국의 발전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기자신의 중요한 부분에 관심을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국력의 강화. 중국과 효과적으로 경쟁하기 위해 워싱턴은 미국의 역동성, 국제적 명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글로벌 동맹 및 파트너십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이 미국이라는 파워의 진정한 열쇠이며 중국이 결코 이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출처 : Foreign Affairs(포린어페어) on 2021-03-03.
Ryan Hass
Brookings Institution의 외교정책 연구책임자이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한 이후, 2013 년부터 2017 년까지 국가안보위원회의 중국담당 이사를 역임했음. Stronger: Adapting America ‘s China Strategy in a Age of Competitive Interdependence (Yale University Press, 2021)의 저자.
계속되는 화석연료 중심의 성장과 소비 경제모델의 위협에 대한 인식의 증가에 대한 반응은 미디어의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한 보도 차단과 교육과 정책토론에서의 심각성 경시풍조로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들이 앞장서 기후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지만, 우리는 사회는 물론 경제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시작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헌신적인 기후 운동가들, 심지어 구속되거나 신체 부상을 입을 각오가 되어 있는 기후환경운동가들조차도 여전히 석탄이나 천연가스로 가열된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디젤 동력 화물선과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트럭으로 배달되어 석유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야채를 먹습니다.
시위를 조직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기사를 쓸 때 사용되는 컴퓨터와 전화기같은 부품들도 석탄 및 다른 유독물질을 사용하는 인도, 중국, 태국의 공장에서 제작됩니다. 함께 연대하는 활동가들을 연결시켜주는 인터넷을 작동시키는 전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의 퇴직기금은 화석연료 수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회사의 주식에 묶여 있습니다. (관련성이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음)
화석연료산업을 비난하는 시위표지를 작성하기 위해 석탄으로 가동되는 말레이시아 공장의 펜 부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과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트럭과 비행기로 운송된 일회용 펠트펜을 사용한다는 모순에 직면합니다.
환경시위는 숨겨진 진실에 대해 주목하지만 행진이 끝나면 우리는 화석연료를 피할 수 없는 악몽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육식을 선택 또는 거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와 성장의 파산 개념과 일치하는 산업경제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그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화석연료의 사용을 선택할 수 있는 요건이 주어진다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시위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화석연료와 전혀 연관되지 않은, 또는 관련한 산업으로 발생한 돈과 관련 없는 경제 체제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는것부터 밤에 불을 끄고 잠에 드는것까지의 모든 행동들이 도덕적 시민들의 시위 형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체는 추출적이고 약탈적인 경제 질서의 중간에 있는 약간의 환경보호적 활동이 아닌 새로운 대안 경제의 문을 열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시위가 나아가야할 다음 단계는 세계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화석연료를 100% 사용하지 않는(FFF) 지역사회 형성이어야만 합니다. 초기단계에서 100명 또는 500명만 지원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 차원에서 이러한 경제, 사회 및 정치 구성단위를 만든다면 대중에게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는 화석연료 사용금지에 기여하고자 하는 투철한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언행을 일치 시킬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단지 슈퍼마켓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닌 플라스틱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써 말입니다.
더 나아가 화석연료해방(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첫 단계는 즉시 실행 가능합니다. 냉소적인 정치가들이 20년 30년 걸려 실행할 탄소중립 경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FFF 커뮤니티 창조
FFF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초반에 상당한 용기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며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제한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임계질량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FFF 커뮤니티가 음식, 에너지, 협동조합의 재정, 또는 화석연료와 연관된 은행들에 대해 100% 독립적일수는 없기에, FFF 커뮤니티는 오늘날의 단체들이 할 수 없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마음껏내며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은 설립 초기 단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는 전 세계의 다른 지역사회에 모델이 될 것이며, 화석연료와 관련된 자금 의존으로 인하여 실행단계에 옮길 수 없었던 저널리즘과 교육시스템을 생산할 것입니다.
소규모 FFF 커뮤니티가 다국적 투자은행 및 석유회사를 인수 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 및 정치 플레이어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수익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화석연료 문제에 맞서는 데 있어 모호하고 결과가 정확하지 않은 대안이 아닌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화석연료 사용 종말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기업의 보고서에 제시된 2050년 탄소 중립 경제 창출은 터무니없이 늦은 시기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홍수와 폭풍, 해수면 상승, 사막 확산, 기아, 견딜 수 없는 폭염, 지구에 남아있는 부족한 자원을 장악하고자 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인해 수십억의 인간(및 다른 종)이 죽는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는 몇 년 또는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주류 미디어는 기후 비상사태에 대한 시위와 정부의 선언문을 다루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가끔씩 지붕 위에 태양 전지판이 설치되는 것을 볼 수는 있지만 모든 식품을 현지에서 유기농으로 생산하고 태양열 및 풍력을 이용하여 모든 건물을 완벽하게 단열시키며, 100 %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대중교통의 동력을 공급하게 하는 법률은 (시행은 고사하고)거의 고려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역사회와 서로를 장기적으로 지원하며 지역사회에서 생산되는 FFF 제품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것을 약속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아야 합니다(100% FFF 수송체계가 설립될 때까지). 만약 체포될 위험까지 감수하는 열렬한 환경운동가들이 있다면, 그 중 FFF 공동체에 기꺼이 헌신하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멤버와 공동체간의 협약은 진중하게 다뤄져야 할 것입니다. 구성원들과 커뮤니티 간에는 반드시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FFF 공동체는 애초에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 피상적인 소비문화, 분열, 단편적 사고와 같은 문화에 일치하여 운영될 수 없습니다.
신규회원은 평생동안 그들을 책임지겠다는 공동체의 약속에 대한 대가로 FFF 커뮤니티에 자산을 위탁할 것입니다. 또는 다른 형태의 깊은 사회적, 윤리적 약속 또한 가능합니다.
자본주의와 글로벌 농업: 포드(Ford)부터 몬산토(Monsanto)까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화석연료해방 공동체(FFF)는 초반에는 작은 범위로 시작할 것이며, 우리가 계속해서 지속 가능한 접근법을 채택했을때 어떠한 사회가 될지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는 해당 모델이 거의 없고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FFF 커뮤니티 경제의 핵심은 100% 유기농 식품을 생산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수송하는 유기농 농장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역사회의 시민들의 식생활에 대한 다양성이 현저하게 감소할 것이지만,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 진정한 화석연료 자유경제의 토대를 마련할 것입니다. 음식들은 집, 옥상, 인근 빈 공간에서 재배되거나 지역 농장에서 들여올 것입니다.
혁신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에서부터 해방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웃과 함께 협력하는 행위가 신문에 글을 기고하고, 권력가나 재력가들을 로비하거나 환경 NGO 단체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합니다. 완전한 의미에서 화석연료로부터 자유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플라스틱,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생산된 제품,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운송 된 제품이 없는 상태)은 FFF관련자들에게 결정적인 노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가 아닌) 농부와 시민 간의 협력을 장려하는 공동 시장에서 식품을 판매(또는 물물 교환을 통해 교환)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장은 화석연료에서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형태의 경제 교환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유기 농업 공동체는 전혀 급진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이 기후를 파괴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살아남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아미쉬와 메노나이트 공동체에서 모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계나 인공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공동체를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라왔지만, 그들을 제외한 미국의 지역들이 세계무역과 연관된 산업화된 비정상적인 농업 생산 시스템을 수용하는동안 이 공동체들은 지속적인 경제를 추구해오고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유기농업 방식은 농업과 유통에서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일자리를 제공 할 것입니다. 지구의 파괴에 기여 하지 않는 음식을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받아 그 노력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도덕적 행동입니다.
공동체의 또 다른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음식 및 기타 물품에 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FFF) 운송수단의 창출입니다. 초기에 제공된 FFF 운송만 사용하겠다는 약속이 심하게 제한적이더라도 시민들은 그것을 불쾌한 불편으로 간주하지 않고 도덕적인 용기의 서약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깨끗한” 에너지를 제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정치인들은 천연가스, 전기 및 심지어 원자력이 당연히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FFF커뮤니티의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제조업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제조업에 관하여 완전히 다시 재고해보아야 합니다: 삶에 필요한 물품의 생산 및 사용에 대해서 말입니다. 우리는 화석연료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고 어떻게 물품들을 생산할 것인지에 대하여 반드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경박스럽고 사치품과 같은 제품들의 마케팅과 소비를 완전하게 종료해야 합니다.
FFF공동체의 제조업은 100% 현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지역 및 세계적으로 공동체를 연결 할 수 있는 화석연료를 100% 쓰지 않는 운송체계를 갖추기 전까지).
화석연료를 제거한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물품을 사용을 줄여야 하며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품목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20-50년 이상 지속될 책상과 의자, 책장과 도마, 셔츠와 스웨터, 컵과 냄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경제의 이러한 변화는 상업적인 소비 중심 문화의 종식과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제작된 제품에 중점을 두며,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FFF 커뮤니티에서 이케아(IKEA)나 갭(GAP)과 같은 관련 상품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100% 화석연료 비사용 제품의 생산과 유통은 우리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에게 장기적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제조는 현지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내구성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은 우리 환경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경쟁, 자유 무역 및 산업화의 위험한 개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성장에 관한 잘못된 개념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 개념, 태도의 변화
FFF 지역사회는 화석연료에 관한 선전과 눈에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충실한 삶을 살 수 없음을 주장하는 기업의 사상에서 반드시 벗어나 있어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기술과 거버넌스의 진보적 혁신이 아니라 태도의 혁명에서 시작됩니다. FFF 공동체는 자동차를 홍보하고 분별없는 음식 소비를 장려하는 광고가 없는 문화적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은 기후변화가 지역사회에 있어 즉각적이고 압도적인 위협임을 인식해야할 뿐만 아니라 짚 깔기, 유리 재활용, 금속 해체, 비료사용을 위한 인분 수집, 카트를 통한 식품 수송, 또는 (운동에도 도움이 되는) 자전거를 통한 전기 생산 활동이 엄연히 도덕적인 것이며 가치 있는 사회적 기여라는 인식이 잡혀있는 문화를 반드시 만들어야 합니다. 상업 경제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만족감과 즉각적 만족에 대한 숭배는 도덕적 철학, 절제, 겸손 및 정직한 선행으로써의 사회적 참여에 기초한 문화로 대체되어야 합니다.
이 변화는 완전하게 “진보적인”것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겸허, 절제, 지적 및 영적 참여의 중요성과 같은 전통적인 가치와 결부됩니다. 이러한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전 세계를 지배하는 상업 문화에 대한 대안이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전기, 소비, 재산의 막대한 증가, 도시화 및 개인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에 의해 인간의 환경이 개선되었다는 현대의 관념에서 비롯된 잘못된 추측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더 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시스템 생성에 도전하지 않으면 생존에 필요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친환경화는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에 입각하고 있는 화석연료의 생산과 유통에 뿌리를 둔 경제의 겉치레적인 변화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영화와(그리고 영화 전후에 나오는 광고들) 뉴스 보도에서 강조하는 현대화의 신화 뒤에 감추어진 체계를 반드시 가시화해야 합니다. 사회의 전반에 깔려있는 생각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비싼 자동차나 전용 비행기로 전 세계의 수도에서 수도를 누비는 사람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제품을 나르고, 공공장소를 청소하고, 우리의 식량을 재배하며 요리하는 사람들보다는 아무래도 더욱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되는 자원낭비, 화석연료로 인한 환경오염, 그리고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된 부는 상업적 미디어에서 마치 선량한 도덕적 행동처럼 보여집니다.
FFF 공동체는 부동산, 개인 재산, 소유권에 관한 오해 소지가 많은 개념에 대해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회는 언론에 의해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계약법과 기업 법에 의해 통제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돕거나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커뮤니티 회원 간 구속력 있는 계약이 없습니다. FFF 커뮤니티는 이러한 계약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FFF 공동체에 가입하여 화석연료의 사용을 끊고자 하는 충성 서약이 회원자격의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부동산과 소수의 사람에 자본이 집중되기 전에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농업 공동체의 중심이었던 마을 계약과 동등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마을 계약은 상징적이라기보다는 구속력 있는 방식으로 각 개인이 식품, 도구, 가구, 운송 및 거버넌스의 생산에 기여해야하는 책임과 구성원들에게 평생동안 커뮤니티를 갖추어준다는 공동체의 책무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거버넌스 중심 환경과 인간 정착의 관계를 형상하는 이로쿼이 부족 (Iroquois Nation)의 헌법 부활은 금융, 재산권 및 부동산에 중점을 둔 법적 왜곡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됨.
현재 혁신주의자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항의에 참여하는 동시에 화석 연료와 관련된 수익을 올리는 회사에 자산을 투자하는 것이 허용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행을 없애고 모든 투자가 지역사회 활동과 관련이 있고 FFF 경제 창출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해야합니다.
FFF공동체 회원가입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어야 하며 자산, 교육 수준, 문화 감수성 정도에 따라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Teslas를 구입하거나 태양 전지판 패널을 구입할 수 있는 상류・중산층 사람들에게 포커스된 녹색 경제가 인류를 구할 것이라는 망상을 버려야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교육과 주변 매체를 통하여 기후위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빈곤층과 노동 계급에게 기후위기를 설명하고 응답에 참여한 대가로 양질의 교육과 경제적 기회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라 디너, 억만장자의 기부 및 기타 활동으로 기후 변화에 대해 연설하는 것은 사회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만의 FFF 화폐를 만드는 것은 이 과정에서 대단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화폐는 개인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나타내며 지역 사회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및 기타 제조 제품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사용에 극히 제한적일 지라도 이 통화가치는 화석연료와 연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즉, FFF 화폐는 지역경제 전반에 걸쳐 사용이 확대되고 결국 세계경제로 확장됨에 따라 화석연료와 연결되지 않고 유사한 독립적 인 금융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비극은 세계무역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침묵입니다. 투자은행의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지구를 가로질러 상품을 운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탄소배출과 공장지대 설립을 위한 산림 및 정글파괴, 자연을 희생하여 끊임없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공장의 설립으로 인해 엄청난 환경의 파괴를 가져다줍니다. 세계 무역에서 추진되는 식량(특히 육류)의 비생산적인 대량 생산은 토양, 산림 및 강과 바다에 장기적인 피해를 줍니다. 또한 식품 및 제품의 생산 및 유통에 대한 산업적 접근 방식은 지역 경제를 파괴하고 전례 없는 부의 집중을 조장하였습니다. FFF공동체는 시민들에게 이 파괴적인 악몽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을 최초로 제공합니다.
결론
우리는 미디어와 토론회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들의 관행을 바꾸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부분의 배출량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해결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삶에 탄소 발자국이 적기 때문에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할 수 없다는 사람들의 논쟁을 목격하곤 합니다.
개인의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데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게 된다면 우리 경제의 깊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매일 행동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특정 원칙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우리는 세계 문화를 변화시키기 시작하고 그 문화는 즉, 최선의 길은 두 가지 전략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개인적 선택을 지역 사회의 선택으로 만들고 그 지역사회를 대체 경제의 기초가 될 경제 단위로 만드는 것입니다.
2016~2017년의 촛불 이후 70여 년 전 코리아 남북의 분단 이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이에 따라 통일을 향한 새로운 길도 함께 열리고 있다. 이 새로움의 의미가 무엇인지 통일에 관한 자유와 책임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숙고해보고자 한다. 무엇에 대하여 ‘새로운 시대’인가를 먼저 밝혀두어야 하겠다. 신시대와 차별되는 구시대란 무엇인가? 지난 70여 년의 코리아 남북의 분단과 적대의 시대다. 새로운 시대란 그 70년 적대와 대립을 종식시키고 공존과 평화를 일구어가는 시대를 말한다.
그러나 새로운 남북 공존과 평화의 시대에서 자유와 책임을 생각하자면, 의당 그 전제와 배경이 되는 분단과 적대의 시대에서 자유와 책임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하겠다. 새로운 시대란 전혀 새로운 무엇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시대의 굳은 껍질 안에서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숙성된 후 움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은 이 같은 작업을 두 개의 의미심장한 텍스트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시도해보려 한다. 그 텍스트란 작가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과 통일운동가 김낙중의 전기(傳記) 『탐루』(2005)다. 두 텍스트 모두 남북 분단과 전쟁, 그리고 냉전체제 – 분단체제의 가혹한 체험을 증언한다. 그 속에서 개인이 겪는 자유와 책임, 그에 수반하는 고뇌와 수난의 경험만이 아니라, 이를 강요했던 남북의 사회와 국가의 성격과 특징까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두 텍스트에 대한 분석 이후, 비로소 우리는 최근 새롭게 열리고 있는 평화와 공존의 시대의 자유와 책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에서 고찰하려는 자유와 책임이란 일차적으로는 한국(ROK), 그리고 더 넓게는 북(DPRK)까지를 고찰 범위에 넣은 한반도(Korean peninsula)에서의 그것이고, 아울러 1945년 해방에서부터 최근까지의 시간대 안에서 한반도, 한반도의 두 국가, 두 사회, 두 체제 안에서의 자유와 책임이 되겠다.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구체적이고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고찰해보겠다는 뜻이다.
우선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두 텍스트의 큰 맥락과 함의를 개괄해본다.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과 전기 『탐루』의 주인공 김낙중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의 체험이 그들의 삶을 규정한다. 모두 남한 출신(이명준 – 서울, 김낙중 – 파주)이지만 고뇌 끝에 월북하여 북의 체제 역시 체험한다는 점, 그리고 분단과 전쟁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들의 평화적 소망(所望)은 현실의 벽에 부딪쳐 고난과 좌절을 맛본다. 그들이 모두 20대 때 문리대 학생이었다는 점도 같다(이명준은 철학과, 김낙중은 사회학과). 물론 차이점도 있다. 전쟁 포로 신분이 된 이명준은 남과 북 모두의 현실에 절망하여 남과 북 모두를 버리고 중립국행을 선택하지만, 김낙중은 남과 북 모두를 끝까지 껴안고 ‘평화통일’을 위해 평생 이 땅에서 분투한다.
그러나 이 차이는 일견 커 보이지만 표면적일 수 있다. 이명준의 ‘중립국행’이 상징하는 것은 ‘통일된 나라의 중립국화’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명준과 김낙중의 캐릭터의 차이도 빼놓을 수 없다. 이명준이 불행한 현실 앞에 늘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반면, 김낙중은 고통 속에서도 시종 희망적이고 진지하다. 그러나 이 차이 역시 부차적이다. 이명준은 남북의 현실을 보며 점차 회의적이고 냉소적으로 변해갔던 것이지 애초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명준은 인도로 향하는 중립국행 선박에서 바다에 투신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꿈과 현실의 너무나도 큰 괴리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김낙중은 이명준이 생을 마감할 즈음 자신만의 사명을 분명히 자각한 활동에 들어간다. 김낙중은 실재 인물, 이명준은 가공의 캐릭터지만, 묘하게도 두 인물은 하나의 인물인 것처럼 시간적으로 중첩되고, 릴레이처럼 이어진다.
물론 『광장』은 실화가 아닌 소설이고, 『탐루』는 실화인 전기다. 그러나 이 두 텍스트의 역사적 사실성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광장』은 소설이지만, 해방 이후 남북의 정국, 전쟁, 그리고 포로수용소에서 중립국을 택한 전쟁포로 등 모든 소재와 배경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 이 소설이 4·19 혁명 발발 6개월 후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역시 이 소설의 사실성을 또 다른 각도에서 입증해준다.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말할 수 없었던 사실’의 소설적 진술이었던 셈이다.
오직 4·19라는 혁명적 공간 안에서만 출현하고 발화(發話)될 수 있었던 사실이었고, 그리하였기에 출간 즉시 그토록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명준은 최인훈이라는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character)이고, 김낙중은 실존하였고 여전히 생존해 있는 현실의 인물(person)이라는 차이는 물론 분명한 것이다. 1936년 출생인 최인훈이 이명준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1960년은 그의 나이 불과 스물다섯 때다. 1960년의 자신(최인훈)을 해방 직후 전쟁까지의 시간대, 즉 10여 년 이전의 시간대에 투사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1950년의 이명준은 1960년 최인훈의 지식수준, 역사감각을 갖춘 캐릭터로 창조되었던 것이고, 따라서 이명준의 인식 세계에는 어느 정도 사후적인 것(즉 60년대의 인식)이 불가피하게 섞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소설적 사후성을 실시간적으로 완벽하게 보완하는 것이 김낙중의 『탐루』다. 김낙중은 1931년 생으로 1950년 20세의 나이로 전쟁을 맞는다. 소설 속 이명준의 1950년의 나이는 25~26세 정도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명준 – 김낙중의 순으로 이 장을 풀어가는 것은 여러모로 맞아 떨어진다. 나이순으로도 그러하고, 이명준이 생을 마치는 1953~1954년 즈음 김낙중은 색깔이 뚜렷한 자신만의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명준과 김낙중은 모두 ‘자유혼’의 보유자다. 억압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현실의 벽에 몸을 내던진다. 이 부딪침이 이들 ‘자유혼’의 자유 행사 방식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거듭 좌절한다. 진정한 자유를 꿈꾸었던 이명준에게 좌절을 넘어서는 궁극적 방식은 자살을 통한 현실 부정이다. 반면 김낙중은 좌절하고 또 좌절해도 또다시 일어나 부딪친다. 그에게 자유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 자유의 주체를 개인만으로 국한하지 않았다. 남북의 민족 전체로 확장해서 생각했다. 김낙중의 처절한 고난사를 읽어갈 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상은 단순한 경이로움이 아니다. 공포와 두려움을 수반하는 경이로움이다. 칸트가 말했던 ‘숭고(sublime)’에서 그와 비슷한 느낌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무거울 뿐 아니라 두려운 그 사명을 스스로 짊어지는 모습, 이것이 자유인 김낙중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책임이었다. 자신과 남북의 동포 모두에게 향하는 책임.
그러나 그 책임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김낙중은 북에서 한 번, 남에서 네 번 간첩으로 몰렸다. 그때마다 참혹한 고문을 당하고 도합 18년의 투옥을 대가로 치렀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결코 당사자의 그것보다는 덜한 것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가족들은 스스로 선택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감옥 안 당사자보다 감옥 밖 가족들의 시간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 특히 ‘간첩’으로 낙인찍힌 사람의 가족들, 즉 졸지에 ‘간첩의 가족’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했다.
자유와 책임이란 개인만의 문제일 수 없다. 따라서 『광장』과 『탐루』는 이명준과 김낙중 두 개인, 두 자유혼의 이야기에 그칠 수 없다. ‘광장’이 절망했던 ‘죽은 광장의 사회 – 국가 – 체제’, 그리고 ‘탐루’가 고발했던 ‘눈물 없는 사회 – 국가 – 체제’가 두 텍스트의 이면에 숨어 있는, 그러면서도 두 개인보다 주동적이며 절대적으로 강한 ‘자유와 책임’의 행위자(agent)요 주역(protagonist)일 수 있다. 과연 이들은 어떠한 사회, 국가, 체제였는가. 또한 이들 사회, 국가, 체제가 표방했던 자유와 책임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이제 이러한 의문을 아울러 추적해보자.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서울시(시장 박원순)는 2019년 12월 26일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민간투자사업(이하 동부간선민자사업) 제3자 제안을 공고했다. 추정 건설사업비만 9,428억원인 이번 사업은 대형공사 기준인 300억원의 약 30배에 해당하는 초대형사업이다. 경실련은 그간 왜곡된 민간제안방식으로 인한 재정낭비, 시민 부담 증가 등의 문제점을 수차례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사업 역시 사업자가 선정되기도 전에 ‘특정업체 밀어주기’, ‘전관로비’ 의혹 등 민간제안사업의 고질적인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경실련은 1월 17일 동부간선민자사업의 문제점 8가지와 이에 대한 정상화 방안을 제시했다. 1월 21일에는 서울시 행정의 책임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공개질의하고 공개토론을 제의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특혜 의혹 해소 없이 제3자 공고일정을 강행했고, 예상대로 어느 업체도 참여하지 않았다.(1월 28일) 서울시의 공고일정대로라면, 최초제안자(대우건설 컨소시엄)의 단독 수의방식으로 협상하여 민자사업자가 선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경실련은 동부간선 민자사업의 직접영향권 7개구 선출직(구청장, 국회의원) 공직자에게 아래와 같이 공개 질의한다. ①서울시가 추진하는 민간제안 민자사업방식에 찬성하는지 ②초대형 민자사업에 경쟁입찰자가 없는 상황에서 수의방식 협상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③서울시가 결정한 추정 건설사업비 9,428억원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지 ④향후 동부간선도로 지하화사업 추진방식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⑤서울시민을 위한 감사청구·형사고발 등에 동참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다. 서울시민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들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다린다.
– 바가지 분양 근절하고 집값 잡았던 분양가상한제
– 2014년 12월 여야야합으로 무력화, 이후 한건도 시행 안돼
– 아예 원청봉쇄하겠다며 폐지법안 발의한 미래통합당 의원들
경실련 총선기획 가라 뉴스③ 바가지 분양근절 위한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자는 의원들입니다.
수억원의 아파트를 짓지도 않고 팔는 선분양제에서 분양가상한제는 최소한 분양가에서는 폭리를 취하지 않도록 정부가 관리감독, 적정한 분양가 책정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1977년부터 도입됐고 도입당시에는 토지비와 건축비 포함하여 분양가를 평당 55만원으로 엄격히 규제했습니다. 이후 1988년에 택지비 심의는 폐지하고 건축비만 심의하는 원가연동제로 변경됐지만 여전히 건축비를 평당 104만원으로 규제했고, 1999년 폐지되기 전까지도 건축비는 평당 194만원이었습니다. 정부의 철저한 분양가규제로 당시 분당, 일산 등 신도시 뿐 아니라 개포, 가락 등 강남에서도 저렴한 주택이 공급, 서민들의 내집마련에 기여했고 집값도 안정됐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규제완화로 2000년부터 분양가자율화가 시행됐고 이후 집값도 크게 상승했습니다. 특히 참여정부의 집값폭등으로 강남 은마아파트는 2002년 3억대에서 2007년 10억대까지 치솟았습니다. 그나마 참여정부 말 2007년 4월 여야합의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도입과 7개 원가공개’하는 주택법이 개정됐고, 2008년부터 분양가상한제가 시행됐습니다. 분양가상한제 시행 이후 강남에는 묻지마 고분양아파트가 사라지고, 강북은 왕십리 뉴타운, 가재울 뉴타운 등에서 미분양이 속출하며 집값도 하향안정화됐습니다.
하지만 집값하락에 따른 건설경기 침체를 우려하며 미래통합당(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속적으로 분양가상한제 폐지를 시도했고, 결국 민주당 의원들조차 폐지에 동참하여 2014년 12월 28일 분양가상한제 의무화는 폐지됐습니다. 폐지 당시 정부는 완전폐지가 아니고 주택가격 및 분양가격 상승 등에 따른 탄력적용 규정으로 변경된 것인 만큼 언제라도 분양가상한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6년째인 지금까지 분양가상한제는 하나도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2019년에도 김현미 장관이 상한제 시행을 밝혔지만 재건축 아파트에 대해 6개월 유예기간을 부여하여 아직까지도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우려한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2019년 9월 아예 분양가상한제 탄력적용 조항도 없애 분양가상한제를 원천봉쇄하겠다며 폐지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대표발의는 미래통합당 박성중 의원이며, 김성태 의원, 이혜훈 의원, 이종구 의원, 홍문표 의원, 박덕흠 의원, 김승희 의원, 이명수 의원, 정태옥 의원이 폐지법안에 공동발의했습니다. 지난 1월에는 미래통합당 총선 희망공약이라며 분양가상한제 폐지와 공시가격 인상 중단을 발표하며 역대 보수정부에서 유일하게 추진해왔던 서민정책을 스스로 뒤집었습니다.
최근 고분양 논란을 빚었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인 개포동 디에이치자이와 신반포동 센트럴자이는 분양가가 모두 4천만원대입니다. 하지만 건축비는 디에이차이가 평당700만원이고 센트럴자이는 평당 1,600만원으로 2배 이상 차이납니다. 같은 시공사가 참여해서 2배의 건축비 차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해당 분양승인권자인 강남구청장, 서초구청장은 분양가자율화 체제를 핑계로 분양가거품과 민간업자의 폭리를 방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분양가거품은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집값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하자는 것은 건설업자의 폭리를 보호하고 바가지분양과 집값폭등에 의한 서민들의 피눈물을 외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현재까지 법안 발의 의원 중 김성태 의원은 불출마 선언, 김승희 의원은 공천탈락으로 결정됐지만 나머지 의원들은 21대 총선출마를 엿보고 있습니다. 서민 고통 외면하고 부동산부자와 건설업계 대변하는 의원들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면 안 됩니다.
– 실거래 102개에서 매년 1,000억 지난 15년간 1조 5천억 세금 특혜
– 문재인 대통령과 검찰은 즉시 공시지가 조작 몸통을 밝혀내라
경실련과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에서 거래된 1,000억원 이상 빌딩의 과표 및 세액을 조사했다. 조사한 거래 건수는 102건, 거래가격은 29.3조원(건당 2,900억)이었다. 분석결과 공시가격(땅값+건물값)은 13.7조원으로 실거래가 대비 46%에 불과했다. 공시지가는 시세의 37%로 나타났다. 정부는 공시지가 시세반영률이 평균 64.8%이고, 상업·업무용 토지의 시세반영률이 2018년에는 62.8%, 2019년에는 66.5%라고 발표했다. 2020년에는 공시지가를 시세대비 67%까지 현실화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발표한 공시지가 현실화율이 경실련 조사결과와 크게 차이나는 상황에서 지금의 공시지가 조작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현실화율을 70%까지 올리겠다는 정부 계획도 실현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30% 넘게 상승했다. 당연히 땅값도 폭등했다. 정부는 부동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 환수와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공시가를 현실화시키겠다고 했으나, 매년 발표되는 공시지가는 폭등하는 땅값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턱없이 낮은 공시지가로 인해 재벌 대기업 등 건물주는 세금 특혜를 누려왔다. 보유세 부과 기준은 땅값(공시지가)과 건물값(시가표준액)을 합친 공시가격이다. 재벌 대기업이 소유한 빌딩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경실련 조사결과 46%이다. 공시지가의 시세반영률은 37%로 정부 발표치의 절반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2019년 거래빌딩 중 시세반영률이 가장 낮은 빌딩은 여의도파이낸스타워이다. 거래금액은 2,322억원으로 건물시가표준액(284억)을 제외한 토지시세는 2,038억원이다. 하지만 공시지가는 445억원으로 시세반영률이 21.8%에 그쳤다.
보유세 특혜액이 가장 큰 빌딩은 2019년 가장 비싸게 거래된 중구 서울스퀘어 빌딩이다. 거래금액은 9,883억원이지만 공시가격은 4,203억원(공시지가는 3,965억원, 건물시가표준액은 658억원)으로 공시가격 시세반영률은 42.5%이다. 거래금액에서 건물시가표준액을 제외한 토지시세와 공시지가를 비교한 공시지가 시세반영률은 38.4%에 불과하다. 보유세를 추정한 결과 토지시세 기준 보유세액은 64억원이다. 하지만 공시지가 기준 보유세액은 24억원으로 40억원의 세금특혜가 예상되며, 102개 빌딩 중 세금특혜가 가장 많다.
102개 빌딩 전체로는 공시지가 기준 보유세 총액은 584억원 (실효세율 0.21%)이다. 실제 미국과 같이 시세(실거래가)대로 세금을 부과한다면 보유세는 1,682억원(실효세율 0.65%)으로 3배 가까이 증가한다. 보유세 특혜도 1,098억원이나 되며, 2005년 공시가격 도입 이후 15년간 누적된 세금특혜만 1조 5천억원으로 추정된다.
낮은 공시지가 뿐 아니라 낮은 세율도 빌딩 보유세 특혜의 원인이다. 아파트 등 개인에게 부과되는 보유세율의 최고 세율은 2.7%이다. 그러나 재벌 등 법인에 부과되는 보유세율은 0.7%로 개인이 4배나 높다. 여기에 더해 아파트 공시가격은 시세의 68%인데, 빌딩의 공시가격은 46%에 불과하다. 정부는 부족한 공공임대주택 확충 요구가 나올 때마다 예산 부족을 이유로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공시지가 현실화를 통해 재벌·대기업 등이 소유한 고가부동산에 대한 세금을 제대로 징수한다면 서민주거안정 등 공익을 위한 예산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공시지가 정상화가 매우 중요하며 지금의 40%대에 불과한 공시지가 시세반영률을 당장 80% 수준으로 2배 인상해야 한다. 국토부는 이번에 발표한 개선방안에서도 상업업무용지 시세반영률이 66.5%라고 밝히는 등 공시지가 조작을 중단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공시지가, 공시가격 조사평가를 위해 투입되는 예산만 연간 1,500억원이다. 하지만 결과는 조작된 공시지가 탄생과 재벌법인, 부동산부자들에 대한 막대한 세금특혜이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지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 개혁조치 없는 선언적 발언으로는 부동산투기를 근절할 수 없다. 검찰은 경실련과 민주평화당이 고발한 공시지가 조작의혹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국민을 속이고 공시지가를 조작해온 개발관료, 감정원, 감정평가업자 등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10년(decade)의 시작에 들어 왔다. ‘20년대’가 시작되면서 대다수 사람들은 20년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현대사에서 매 10년은 더 포괄적인 역사적 서술로 엮인 저명한 상징, 사건 및 주제로 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주어진 사건 또는 발견의 이면에 있는 요소들이 더 오래 지속되거나 깊이 뿌리 박혀 있을지라도 말이다. 예건데, 세계는 1940년대를 전쟁 및 파멸의 시기로, 1960년대를 반체제 문화 및 반항의 시기로, 1990년대를 새로운 ‘현대성’의 시기 등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2010년대를 어떻게 돌아볼 것인가? 필연적으로 역사는 항상 나중에서야 깨달음을 주기 때문에 현재의 대답은 불가피하게도 미완성이다. 우리는 세계가 아직 이루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미래 역사가들이 회고할 수수께끼에 오늘날의 사건들이 어떻게 ‘들어맞을지’ 확실히 예상하거나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2010년대의 10년사가 1991년에 구축된 ‘자유주의적 합의’가 무너지기 시작한 시대로 개념화되어 역사의 예비 전환점(preliminary turning point in history)으로 회고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 동안 통합 및 조화로운 세계에 대한 꿈이 흐지부지 사라졌다.
온라인 대중 매체가 부상하면서 사회가 극적으로 변화하도록 촉진되었고, 성난 반체제 정치 및 정체성 갈등이 뒤끓던 서구에 새로운 형태의 불만을 매개했다. 세계화는 역행했고, 10년이란 시간은 한 때 역사에 국한된 것으로만 여겨졌던 거대한 패권 경쟁이 재현됨에 따라 결국 퇴색되었다.
2010년대는 ‘소셜 미디어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정식으로 출시된 시기는 그보다 10년 전이지만,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및 기타 미디어는 스마트폰이 등장함에 따라 세계 문화로 확고히 통합되었는데 이런 현상은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바로 이 장치 곧 스마트폰은 수십억의 인생을 영구적으로 바꾸었고 기존에 시간 할당제로 편리함을 주었던 인터넷을 일상 활동 자체의 본질적 요소로 이에 맞게 편리해질 수 있도록 탈바꿈시켰다. 소셜 미디어는 그 자체가 없는 상황을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 사회에 융합되었다.
결과적으로 대중 소셜 미디어의 부상에는 심오한 정치적 영향이 있었다. 기존 언론매체를 벗어나,이제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견해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과 방식이 생겼다. 그 동안 자주 소식을 접할 수 없던 사람들도 오늘날에는 수백만 명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신문, 텔레비전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를 넘어 사람들의 정보원 및 연락망이 다양해졌다.
자연스레 이러한 매체가 없었다면 사회에서 고립되고 소외되었을 이들이 새로이 불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2008년 서양 국가들에서 벌어진 금융위기라는 사건과 뒤따른 긴축 재정에 대해 사람들이 소식과 견해를 공유하면서 분노하고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정치가 양극화되기 시작했다.
정치가 양극화되고, 좌파 및 우파의 새로운 움직임이 대중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면서 1991년 이후의 소위 ‘자유주의적 합의’가 산산조각이 났다. 새로이 부상한 포플리즘 운동은 현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엘리트 계층과 권력 계층을 공격했고, 결과적으로 전세계 곳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선거 결과를 야기했다. 이제 ‘중도 정치’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2010년대는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 등으로 기억되는 시대가 되었다. 확실하게 인지된 세계화의 불확실성 속에서 급속히 형성되는 대중의 불평을 무기 삼아 나타난 현상들이다.
미국 내 변화는 지정학적 파급력을 지닌다. 이른바 1991년 자유주의적 성향을 지닌 서구의 승리가 더 이상의 영향력을 상실하자, 변화하는 세계를 중심으로 엄청난 불안과 불확실성이 자리잡았다. 정치인들은 정치적 문제, 불평등 및 자신들의 실패에 대해 새로운 희생양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에 부상하는 포플리즘을 이용하여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조직적으로 자리잡도록 악용하였다.
미국 엘리트 계층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상이 러시아의 잘못이며 모스크바가 소셜 미디어의 거대 기업을 활용하여 편집증을 유발시켰다고 비난했다. 이런 대외 의혹 풍토 속에서 정작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중국에 대한 공포와 미국의 ‘강대국 패권 경쟁’의 부활을 조성하도록 길을 열어 주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문구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2010년대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그것은 2010년대가 불확실성과 불안정의시대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고 시사한다.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으로 소셜 미디어 문화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성난 포플리즘적 민족주의로 변모한 서양사회에 새로운 불안정을 초래했다.
미국은 세계에 대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점점 더 편집증적이 되었다. 이후 미국은 공격적으로 두려움을 유발하고 지정학적 투쟁을 추구하며 오랫동안 유지된 팍스-아메리카나를 여전히 갈망함으로써 실패로부터 벗어나 다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던 시기였다.
아래 기사는 전 CIA 테러 대응 전문가이자 터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에서 19년간 근무한 군사 정보 장교인 필립 지랄디 (Philip Giraldi)가 작성했다. 지랄디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CIA 지국장이었고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최초의 미국인 중 하나였다. 그는 워싱턴을 기반으로 하여 미국의 가치와 이해 관계와 상응하는 중동 관련 외교 정책을 장려하고 홍보하는 옹호 그룹인 국가 이익 위원회(the Council for the National Interest)의 기조 실장이다.
미국은 명백히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란과 실제적 전쟁에 돌입했고, 양국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란 중 어느 국가도 전쟁을 선포를 하지는 않겠지만, 미국이 리퍼 드론으로 바그다드를 공습하여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과 알 무한디스 친이란 민병대의 창설자를 암살함으로써 양국간 갈등이 오래도록 고조될 전망이다.
이란은 미국과 군사적으로 직접 맞설 수는 없지만 고위 군 간부의 죽음에 대응하지 않고 묵인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이란의 보복은 일어날 것이며 그동안 테헤란 지시에 따라 이루어진 제한적 공격과 대리전으로 의심되어 왔던 행위는 이제부터 이란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더 심화된 행동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란이 상당한 현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페르시아만 전역이 위태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테러리즘 카드도 꺼낼 수 있다. 이란은 중동에 걸친 대규모 디아스포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수 년간 미국의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암흑기 속에서 전쟁 준비를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란지역 내 미국 외교관, 군인, 심지어 관광객 그 누구도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미국인들에게 ‘공백기간’이 될 것이다. 미국은 이미 바그다드 대사관에 부분적인 철수를 지시했고, 체류 중인 모든 미국인들이 즉시 대피하도록 권고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중동 내 무익한 전쟁을 종결하겠다는 공약으로 2006년 대선에 승리했으나 이번사태로 자신은 거짓말쟁이임을 아주 분명하게 입증했다. 트럼프는 데탕트를 추구하는 대신에, 우선적으로 JCPOA(이란핵 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에 대한 제재를 다시 도입했다. 어떤 의미에서 이란은 처음부터 트럼프의 새로운 전쟁 금지 서약에서 예외가 되어 왔다. 이는 직접적으로 트럼프가 미국 유대인 공동체와 근친간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이거나, 이스라엘의 공격적인 벤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가 제안한 요청을 수용한 탓일 수도 있다.
트럼프는 앞으로 벌어질 사안에 대해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네오콘(neoconservatives, 신보수주의자)과 이스라엘인은 예상대로 결과에 환호하고 있으며, 친이스라엘 민주제도 수호재단 소속의 마코 더보위치(Mark Dubowitz)는 “빈 라덴 사건보다 더 중요하며 (이란) 정권에 엄청난 타격”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란 전문가’로서 더보위치의 자격이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경우에는 어느 정도 옳은 주장을 펼친다. 솔레이마니는 이란 내에서 확실히 카리스마가 있고 저명한 인물이다. 그는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내 대리전과 동맹국 사이의 주요 연락망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전 지역에서 이란의 가장 강력한 군사 지도자가 되었다. 하지만 두보위츠는 군대 계급 내 어떤 누구도 대체가 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솔레이마니의 보좌진들과 정보부의 고위 관료들은 확실히 그의 역할을 이어받아 수행할 수 있으며 정책을 이어갈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상 지난주 미국이 야기한 일련의 어리석은 공격은 해당 지역에서 미군의 철수를 앞당기는 것뿐이다. 미국 국방부와 백악관은 이라크 민병대 헤즈볼라의 소행으로 알려진 미국의 시설 공격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주장해 왔으며, 이로 인해 시리아와 이라크 내 민병대 표적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촉발되었다고 밝혔다. 미군은 이라크 정부의 손님으로 주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델압둘-마흐디 이라크 총리가 “아니다” 라고 부인한 이후에도 공격을 지속해서 강행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미국의 작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란은 전 세계와 교전 중입니다”라고 전했는데, 이를 통해 백악관 관료들이 실제로 얼마나 무지한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사건에 이란이나 이라크 민병대가 관여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격을 통해 이라크 병사 26명이 사망했기 때문에, 바그다드 주재 대사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불가피해졌다. 해당 시위에 참여한 거리의 시위자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이라크인 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에서는 이란이 배후에서 일으킨 시위로 뒤집어 씌었다.
미국도 이라크 정부의 승인 없이 바그다드 공항에서 드론 공격으로 솔레이마니와 무한디스를 살해했으므로 이제 이라크 총리가 미군에게 철수하도록 요구하는 일이 불가피해졌다. 이로 인해 결국 주변 국가인 시리아에 남아 있는 미군의 상황을 더 이상 옹호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시작한 어리석은 전쟁은 누구의 이해관계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이 명백해졌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과의 법칙에 의해 이 지역의 다른 아랍 국가들이 미국 군인, 선원, 해병대, 공군의 주둔을 재고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쟁은 불가피하지 않았고 미국의 국익을 위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향후 몇 주간 발생할 미국인, 이란인, 이라크인들의 사망과 희생은 명백하게 도널드 트럼프의 책임이며, 그것은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에게 대재앙이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뿐 아니라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망의 몰락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부디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얼마전 미중간의 1단계 무역협상 결과가 발표되었다. 겉으로는 무승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국유기업에 대한 보조금 문제, ‘중국제조 2025’ 과 같이 사실상 근본 문제에서 양보 없이 원칙을 견지한 중국의 승리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미중 무역전이 수습 단계에 들어서던 2019년 7월 경 중국 인터넷 선상에서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전파되면서 화제가 되었던 글이다. 본문 내용 중 중국 특색의 핵심 요소는 다름 아닌 ‘거국체제’ 즉 사회주의라는 점, 그 요체는 ‘국유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 눈에 뜨인다.
트럼프는 최근 중국의 경제무역 체제가 미중 무역이 불공정하고 미국에 손해를 끼친 근본 원인이라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또 미국이 당초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에 동의한 것을 마땅히 후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중 양자 간 경제무역에서 중국이 항상 이득을 보고 미국이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근본 원인은 국가체제다. 좀 더 철저하게 말하자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미국과 서방이 중국과 게임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애초 중국을 세계무역의 대문 밖에 가둬놓아야 했다. 이것은 오바마와 같은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이런 입장은 미국 권력의 당파를 떠나서 일치된 의견인 것 같다.
WTO가입 전에 중국의 GDP는 미국의 단지 7분의 1에 불과했는데, 2017년에는 미국의 65% 수준이 되었다. 이것은 환율에 입각하여 계산한 것이다. 만약 구매력 평가로 하면 세계은행(미국인이 은행장이다)과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인이 총재이다)은 이미 일찍이 2014년 10월에 중국은 미국을 훌쩍 넘어 섰다고 여긴다.
중국의 현재 제조업 실력은 이미 미국, 유럽, 일본 제조업을 모두 합한 총합에 접근한다.
2017년 중국 국유기업(금융기업 제외)의 자산총액은 183조 5000억 위안(한국돈 약 3경 1195조 원-주)에 이르고 ,순자산은 70조 위안에 달해 세계 다른 나라의 국유자산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중국 국유 금융기업의 자산 총액은 241조 위안, 순자산은 20조 위안이 넘는다. 중국 행정과 사업단위 국유자산은 30조 위안, 순자산은 20조 위안을 넘는다.
중국 정부는 또한 전국의 토지 소유권과 광산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보유한 재산은 토지와 광산 소유권을 따지지 않아도 미국 정부의 10배 이상이다.
중국이라는 이렇듯 큰 나라에서 혁신은 최근에서야 시작되었을 뿐인데, 무엇에 의거해서 ‘커브길 추월'(弯道超车)을 실현하고 있는가? 사실, 중국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미 지도자, 그리고 서방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중국은 왜 대단한가? 그 대단함은 바로 중국에서의 사회주의 제도에 있으며, ‘거국체제’에 있다.
거국체제는 간단히 말해 큰 일이 있을 때 국가 전체의 자원과 역량을 동원해 처리하는 것이다. 중국은 대국이며 국유기업이 주도한다. 중국정부가 장악하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서방 정부보다 훨씬 많다. 중국의 경쟁상대가 서방의 민간 기업이나 개인이라면, 이들 기업과 개인은 반드시 패할 수밖에 없다. 설령 서방정부가 중국과 무역과 경제에서 다툰다 해도, 그 승산의 기회는 대단히 적다. 왜냐하면 서방의 기업은 꼭 정부 말을 듣는 것이 아니며, 서방 정부가 장악하고 있는 자원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올림픽 경기의 예로 이 문제를 설명해 보겠다.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기 전까지 올림픽 금메달 1위는 언제나 소련이었고, 총점은 종종 미국보다 두 배나 높았다. 2위는 영원히 동독이었고, 미국은 3위로 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무슨 이유때문인가? 서양의 올림픽 선수들이 당시 모두 아마추어였고, 스스로 돈을 주고 훈련하고 경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운동선수들은 모두 프로다. 국가와 개인을 비교하는데 공평할 수 있나? 그래서 과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있어 서구는 손해를 보았는데, 그것은 국가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양도 나중에 얌전하게 배워서 놀이 방식을 바꿨는데, 아마추어를 쓰지 않고 프로를 기용했다. 동시에 지금은 사회주의 진영이 무너지고 단지 소수 국가만 ‘거국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올림픽 성적은 참가국의 진정한 스포츠 경기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최강의 미국이 다시 금메달 1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역자 주> 이는 원문 저자가 올림픽 경기에서 프로를 참가시키는 것을 찬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게임을 할 경우 국가가 거국적 체제로 지원하는 것과 개인적 역량에만 의존하는 것은 비교가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뜻인 것 같다. 결국 사회주의 국유기업의 시장경제 체제하에서의 강력함과 우수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세계 경제무역 기구는 바로 다른 분야에서의 올림픽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이 안에서 ‘거국적 체제’를 갖고 국가 역량으로 서방의 기업이나 개인(자본가)을 상대하기 때문에 불공평하다고 느끼는데, 서방 정부는 그럴 능력이 없다.
올림픽과 다른 점은, 서방은 경제무역에서 중국을 당해낼 수가 없지만, 그러나 중국학(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주)을 따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자유자본주의 이데올로기와 법 때문에 서방국가 정부는 사적자본의 경영활동에 간섭하지 않으며, 또 서방국가의 국영기업은 많지가 않다. 그래서 서방은 중국이 그들을 앞지르거나 압도하는 것을 멀뚱히 눈만 치켜뜬 채 지켜보아야만 한다. 이에 대해 몇 가지 전형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 하겠다.
1990년대 아시아 금융위기 때, 다수의 나라들이 이 위기에서 큰 손실을 보았다. 그러나 이런 틈을 타서 큰 이득을 보는 집단도 있다. 미국의 금융자본이 그 일원인데, 대표적인 것이 소로스의 양자(量子)헤지펀드이다.
소로스는 아시아에서 연전연승하며 상당한 이득을 보았다. 막대한 돈을 끌어 모았으며 한두 개 아시아 국가만을 망친 게 아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않게 결국 홍콩에서 패했다. 소로스펀드는 미국 유대계 금융 자본이었는데,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가 상대했던 것은 홍콩정부만이 아니라, 그 배후의 막대한 재력을 가진 중국정부였기 때문이다.
외환시장에서 중국정부와 목숨을 건 소로스는 결국 실력이 안 되기 때문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을 화나게 했는데, 중국과 싸우는 것은 매우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소로스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손이 그를 무찔러 많은 손해를 봤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소로스가 여러 나라의 외환시장을 연속적으로 쓸어버리면서 벌어들인 돈은 주머니에 가득 찼다. 홍콩에서 꺾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몰랐는데, 그때만 해도 그는 ‘중국적 특색’이 대단하다는 걸 몰랐다. 이제 서방은 중국 체제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자연히 이런 ‘중국적 특색’에 대해 한이 맺히게 되었다.
두 번째 사례는 중국의 민간 비행기 구매이다. 경제 발전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중국은 얼마간 사이를 두고 비행기를 한 무더기씩 구매해야 한다. 매번 수백억 내지 심지어는 더 많은 달러를 써야만 한다. 그래서 항공기 제조사들에게는 초특급 매매에 해당된다. 비행기를 파는 나라로서는 커다란 선물이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의 보잉을 살 것인지, 유럽의 에어버스를 살 것인지에 대해 상황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서방국가의 관점에서는 어떤 비행기를 살 것인지는 항공사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정부가 결정한다. 중국의 큰 주문은 종종 국제 정치와 국제 경제무역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서방의 일부 국가들은 돈을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중국의 비위를 맞출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서양을 매우 불쾌하게 만드는데, 웬지 중국에 꼬가 꿰여 끌려가는 느낌이 들게 한다.
더구나 중국은 단순히 비행기를 사는 것만이 절대로 거국적 체제의 우세가 아니며, 대외 경제무역에 있어서도 비슷한 카드가 많다. 중국은 거인일 뿐 아니라 모든 대형 무역이 모두 국가의 통제 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외무역의 전체 구조에서 중국은 항상 이익만 챙길 뿐 좀처럼 손해는 보지 않는다.
서방은 중국의 이런 강점이 대형 무역사업이 모두 국유기업에 의해 이뤄진다는 데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공기업은 당연히 정부의 말을 들어야만 한다. 공기업의 경우 구체적인 사업의 득실도 중요하지만, 그러나 필히 국가의 큰 이익에 따라야 한다.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으며, 기업의 절대 다수가 사적 자본이므로 의사결정은 자연히 정부가 아니라 이사회의 말을 듣는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중국 국유기업의 수가 너무 많고 실력이 너무 강하다고 비난하였다. 중국의 국유기업이 주도하는 경제도 서방이 중국을 ‘완전한 시장경제지위’ 국가로 인정하기를 거부한 주요 이유이다.
중국 국영기업들이 많아서 중국과는 함께 놀 수 없다는 이유로는, 서양 자신도 약점을 잡지 못하고 말솜씨가 약하고 이치도 서지 않는다. 까놓고 얘기하자면 마음 속 고충은 있으나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중국 욕을 해도 톤을 높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서방은 무역의 자유를 고취하는데, 기왕 자유라고 한다면 국유기업, 사기업 나눌게 뭐 있나? 중국정부가 조종했다고 하는데 증거를 보여줄 수 있나? 증거도 없는데 중국을 제재할 수 있나? 이 때문에 서방은 답답하지만 입으로는 말할 수 없기에 ‘중국 특색 사회주의’에 대한 원한이 극에 달하였다.
최근 한 가지 일은 마침내 서방이 욕을 할 수 있게 만든 셈이다. 트럼프가 중국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내가 보기엔 80% 이상이 이 일로 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왕젠린(王建林)의 해외 투자 프로젝트 6건이 은행감독원의 ‘금융통제’에 걸렸다고 최근 인터넷 선상에 폭로되었다. 왕젠린은 중국의 부동산 재벌로, 일찍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국 최고의 부자이었다. 이번에 그는 중앙 국무원소속 국유기업인 중국고속철도(中国中铁)와 해외에서 경쟁하였는데, 본래 중국고속철도가 말레이시아와 철도사업 협상을 하고 계약체결을 준비하는 중에 왕젠린에 의해 두 배의 가격으로 빼앗겼다. 이번에 왕젠린은 국가와 이익을 다투며 큰 금기를 범하였으므로, 국가는 그를 손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원래 왕씨는 기업가이고 어떤 산업에 진출하느냐는 그 자신의 몫이지만, 중국에서는 국익을 해치는 장사에 대해선 국가가 관여해야 하는 것이 ‘중국적 특색’이다.
이번에 국가가 간섭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왕젠린의 해외 프로젝트는 자기 돈이 아니라 전부 국내 은행 돈을 빌린 것이다. 거래가 잘 되면 개인이 벌고, 장사가 손해를 보면 중국 은행이 뒤집어쓰게 된다. 그래서 국가는 “대출 위험을 조사 한다”며 왕에게 은행 대출을 상환토록 압박했다. 왕은 손에 쥔 유동자금이 부족해서 할 수 없이 완다광장(万达广场, 중국 각지 대도시에 있는 대표적인 쇼핑몰-주)과 부동산을 여러 군데 팔았으니, 빚을 갚은 셈이지만 아마 손해를 많이 본 것 같다. 요즘 왕젠린은 많이 얌전해져서 소리를 죽이고 (공식석상에선)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비즈니스계에서 예전처럼 순조로울 수 있을지는 말하기는 어려운데, 필경 그는 국가로부터 미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역자 주> 우리는 여기서 등소평이 말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자본가계급이 도전하면 손보면 된다”고 한 말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왕젠린에게 조치를 취해 미국에게 상처를 입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급해 하면서 불을 뿜듯 무례한 말을 했다. 왕젠린이 사고가 나자 트럼프가 상례에서 어긋난 언행을 한 것은 양자가 연결돼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화를 내는 것은, 국유기업은 너희 중국정부가 통제하지만 이런 사기업도 네가 상관하느냐는 것이다.
중국은 현재 모든 국무원 산하 중앙 국유기업을 혼합소유제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앞으로 중국에 순수 공기업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서방이 중국의 ‘완전한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진다. 중국에 대한 반덤핑 제재도 쉽지가 않다.
미국과 서방은 이날을 고대하고 있다. 국유기업이 없어지면 중국의 대외무역에서의 거국체제의 우위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서방이 예상치 못한 것은, 사기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통제한다는 것은 중국이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하는 이 점은 언제든 변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낸 점이다. 거국체제는 언제라도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엔 트럼프가 정말 다급해졌다, 왜냐하면 희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 중미 간 두 개의 협력 합의를 중단하고 보복코자 하는 마음이 뚜렷해졌다.
공개된 정보로는 왕젠린이 대외무역에서 국유기업과 이익을 다투었기에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지만, 내가 보기엔 좀 더 깊은 요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은 외환 보유고가 많아졌고 증가 추세를 보였다. 그래서 해외투자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허술해 졌다. 최근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돈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많다는 뜻이어서 국가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외환보유고는 국가의 대외 경제무역의 밑천이다. 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 무슨 일에 쓰는지를 자본가가 말하면 그만이 아니라 역시 국가가 간여해야 한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국익이 걸려 있고, 여기에는 큰돈이 든다. 때문에 외화를 아껴 쓰고 좋은 철은 칼날에 사용해야 한다(好钢要用在刀刃上).
중국정부는 해외투자에 있어서 광산, 유전 같은 자원을 사고 싶어 하고, 선진 기술을 대표하는 기업도 사고 싶어 한다. 부동산과 서비스, 유흥업에 대해선 관심이 크지 않다.
중국 투자에 대한 서구 국가의 바람은 중국과는 정반대다. 그들은 중국이 서방의 우량자산을 구매하는 것을 막으려고 애를 썼다. 특히 미국은 중국의 다른 서방국가의 기업 인수합병까지 막고 나섰다. 신기술이 높은 기업일수록 중국 투자가 어렵다. 여기에는 서방의 경제적 고려도 있고, 중국을 잠재적인 패권경쟁 상대로 경계하는 것도 있다.
서방은 중국이 돈을 서방의 부동산업, 서비스업, 유흥업, 상업 체육(예컨대 외국 구단을 사는 것)에 쏟아 붓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지 경제를 진작시킬 수도 있고, 중국에게 큰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면, 예를 들어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손실은 중국이 입지만 자산은 그대로 남을 수가 있다.
일본은 1980년대에 해외 부동산투자 과열로 손해를 본적이 있다. 일본인은 할리웃과 록펠러 빌딩을 샀는데, 만약 마음만 먹으면 일본은 미국 전체를 살 돈이 있다는 말도 당시엔 떠돌았다. 그 결과는, 거품이 한번 터지자 일본은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별은 여전히 그 별이고, 달도 여전히 그 달이며, 할리웃도 미국인들의 할리웃이었지만, 그러나 일본인 호주머니의 돈은 없어졌다. 이 타격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일본은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 교훈을 중국이 모를 수 있을까? 그래서 중국은 줄곧 이에 대비해왔다.
왕젠린이 돈을 번 것은 남의 돈으로 한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은 이제 세계의 제조 대국으로 발전했지만, 왕은 중국 최고의 부자로서 제조업에 관한 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투자한 것은 모두 부동산, 서비스, 오락업이다. 국내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 왕젠린이 돈을 벌든 손해를 보든 어차피 마치 고기가 솥 안에 있듯 재산이 중국 밖으로 나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에 투자하는 것은 다르다. 만약 변칙으로 돈을 벌려다 망친다면, 손실을 보는 것은 중국의 은행 자산과 중국인의 예금이다. 이 때문에 왕젠린의 해외투자는 첫째 리스크가 있고, 둘째 중국 국가나 대중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으며, 셋째는 국가의 돈을 낭비하는 것이다. 국가가 이것을 그냥 둘 수는 없다. 왕이 국유기업과 이익을 다툰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그의 해외투자 프로젝트는 중지시켜야 한다.
왕젠린을 조사하여 처리하는 것은 결코 그 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현상에 대해서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중국의 해외투자는 국유기업이든 사기업을 막론하고 국가의 총체적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서 역시 ‘거국체제’이고, 역시 ‘중국적 특색’이다. 그것이야 말로 아마도 트럼프를 노발대발하게 만든 진짜 원인일 것이다. 트럼프가 중미 두 기업 간의 협력 중단을 지시한 것은, 중국정부가 희망하는 합작 사업을 미국도 중국이 왕젠린 프로젝트를 중단한 것처럼 총살했다는 점을 중국에 보여주려는 것이다. 중국은 해외 투자에서 고기만 먹고 뼈는 갉아먹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2017년 2000여억 달러(미국은 3000여억 달러라고 말하지만)에 달해 기록적이다. 이 또한 트럼프를 매우 불쾌하게 만드는데, 치적으로 말하면 그는 불명예스럽다고 여긴다.
사실, 이 안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며 양쪽 모두 책임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제국주의적 사고는 고려하는 문제마다 일방적이다. 미국이 중국에 물건을 많이 사는 이유는 중국산 상품이 싸고 품질도 좋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에 물건을 많이 팔지 못하는 이유는, 좀 괜찮은 상품은 중국에 팔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이테크 제품의 경우, 미국은 중국이 기술을 몰래 배울까봐 중국을 봉쇄한다. 미국은 그 외에 중국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별로 없다. 물론 곡물작물은 예외로, 중국은 줄곧 미국 농작물의 최대 수입국이었다.
미중은 이 외에도 지적재산권 보호, 중국의 수출상품 관세 환급, 일부 품목의 수입관세가 높은 점, 중국 금융시장의 개방, 관세를 제외한 수출입 통제 조치 등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실 이런 분야는 중국이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는 것일 뿐이며, 서방에 불리한 새로운 조치를 내놓치는 않고 있다. 이런 오랜 방법들은 모두 당시 서양에서 허용한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중국의 발전이 너무 빠르며 심지어는 서방의 발전 내지는 생존조차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이 두 발을 내딛고 걸으면, 다른 사람들은 압박을 받아 걸어 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이든 중국이 생산만 하면 배추 값이 되어 서방 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만다.
서방은 중국의 발전이 이처럼 빠른 것은 ‘중국특색 사회주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런 거국체제에 직면하면 서방체제는 게임에서 손해를 보기 쉽다. 비유하면 대포알을 미는 것과 같은데, 서양은 팔에만 힘을 준다. 하지만 중국은 팔에 힘을 줄뿐만 아니라 허리를 꼬고 발을 뻗는다. 권투경기에 비유하면, 중국은 비록 규칙을 지키면서도 주먹을 불끈 쥐고 치는데, 서방은 주먹을 펴고 불끈 쥐지 못해서 번번이 손해를 보는 것과 같다. 결국 남들은 모두 지고 중국만 이기게 되는 것이다.
오바마는 “중국은 공짜로 차를 탔다(搭了便车)”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중국을 경기장에서 쫓아내려고 TPP를 추진하였다. 트럼프는 방법을 바꿨지만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응징하겠다는 생각이다.
중국의 현재 GDP는 세계 2위지만,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실제로는 이미 몇 년 전에 세계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경제 총량은 겉으로 보기에는 적지 않지만, 사실 허황된 것이 많아 공동화가 심하다. 중국의 경제와 공업 실력은 이미 미국을 넘어서고 있으며, 중국의 1차 산업 생산액은 미국의 두 배, 2차 산업 능력은 미일독을 합친 것보다 많다. 다만 3차 산업만이 미국이 생산액에서 중국을 훨씬 초월한다. 그런데 제3차 산업은 서비스업으로 매우 공허한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같은 거리의 지하철을 탈 경우 그쪽은 2달러(약 14위안)를 요구하는데, 이쪽은 단지 3위안만 받는다고 하자. 그러면 생산액은 4배 차이가 나지만, 서비스는 똑 같다. 다른 예로, 당신이 변호사를 찾아가서 자문을 받는데 그쪽은 한 시간에 100달러(약 700위안)를 줘야 하고, 나는 한 시간에 50위안만 받는다고 하면, 당신의 서비스 생산액이 나의 14배가 되는데 이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중국은 이미 세계 100여 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세계 경제는 중국을 떠날 수 없으며, 결코 미국과 서방이 중국을 데리고 놀지 않으려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마치 마작을 할 때 세 명 중 한 명이 부족한 것과 같이, 중국을 떠나서는 모두들 놀 생각을 말아야 한다(마작 게임은 최소 3인 이상이 필요하다-주). 이 이치는 미국과 서양이 모르는 것이 아니며, 만약 손을 쓸 수 있었다면 이미 진작 손을 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 한이 서렸지만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리하여 중국도 주먹을 불끈 쥘 수 없도록 압력을 가함으로써 최종적으로 판도를 바꾸길 시도할 수밖에 없다.
기왕에 중국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로 입국(立国)하였으며 그에 힘입어 급성장을 했다. 그렇기에 미국과 서방은 이 부분에서 중국을 압박해 제도 개편을 강요하려 한다. 중국 국유기업의 개조를 압박하는 것은 이 같은 목적을 달성코자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중국의 ‘완전한 시장경제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반덤핑 조항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래 서양이 억지를 부리는 것이지만, 중국도 이를 수락해 중앙 국유기업에 대해 ‘혼합소유제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이는 태극권 방식으로 서양 권투에 대응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무서울 게 없으며,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설령 장차 순수 공기업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거국체제’일 것이며, 국유경제는 마찬가지로 국민경제의 주도적 역량이다. 또 사기업들도 마찬가지로 국익 앞에서 ‘자유주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를 손볼테니, 왕젠린이 바로 그런 예이다. 중국 제일의 부자면 어떻단 말인가, 손봐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손볼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아무리 제도를 바꿔도 거국체제가 바뀌지만 않는 한 대세에는 지장이 없다. 더구나 국유기업 개혁은 원래 계획에 있던 것이다. 사적 지분을 좀 섞는 것은 효율성을 높이는 데 유리할 뿐만 아니라, 표면상으로도 서방의 요구에 부응하니 어찌 즐겁게 실행하지 않겠는가?
트럼프가 화를 내든 않든 간에, 그는 중국이 어떻게 고치든 중국적 특색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진핑이 일찍이 ‘4개의 자신감’으로 서방에 알려왔기 때문이다. 중화 진흥의 길을 이미 찾았는데, 무슨 근거로 궤도를 바꾸려는가? “100년 견지하며 동요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뒤로 갈수록 더욱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의 형세는 매우 엄중한 것처럼 보인다. 아편전쟁 직전과 같이 은이 중국으로 흐를지, 서방으로 흐를지가 결정되는 상황이다 (역자 주–당시 차 무역으로 처음 은이 서양에서 중국으로 흘러들어 왔지만, 이후 아편무역으로 이 흐름이 뒤바뀌었다). 물론 지금의 중국에 대처하는데 있어 군함정책으로는 잘 안되며 오직 경제무역전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은 너무 덩치가 커서, 무역 전쟁이 일단 시작되면 미국 스스로도 잘 버티기가 어렵다.
종합하면, 국가의 근본 이익이 연루되기 때문에 쌍방은 서로 크게 양보할 길이 없다. 그러면서도 쌍방은 누구도 상대를 떠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필경 한 테이블에서 마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협력과 공영’을 거론한 것도 카드 친구들을 위로하여 그들이 책상을 엎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중국도 상대가 돌아오지 않아 모두가 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작은 양보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공영(共赢)’을 실현할 수 있겠나.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 가장 근본적인 것은 결코 양보하거나 고치지는 않을 것이다. 까놓고 말하면, ‘중국 특색 사회주의’는 고치지 않을 것이며, 고칠 수도 없다. 결국 그것은 중국 발전의 예리한 보배이기 때문이다.
중미는 모두 세계의 거인이기 때문에 서로 치고받고 하더라도 상대를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번 경제전은 우여곡절과 복잡함을 지닌 지구전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중국이 최종적으로 승리할 것인데, 왜냐하면 중국의 실물경제의 실력과 재정적 실력이 미국보다 크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거국체제’는 최대한의 재원을 집중해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방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이길 수 없다. 전쟁도 그렇고 경제 역시도 그러하다.
한 미국 교수가 나에게 “미국이 위대해진 것은 위대한 적수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이 건국 이래 만난 가장 위대한 상대일 것이다. 이번에는 아마도 트럼프의 숭고한 이상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진짜 실현될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여야겠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와 거국체제는 반드시 중국 공산당의 영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중국 특색, 중국식 경험과 중국 모델은 전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복제하기가 어려운데, 아마도 베트남만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것 같다.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면 몇 십 년에 걸쳐서라도 배울 수 있겠지만, 이 두 나라의 종합 국력은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들에 대해 미국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이라는 거인만이 미국을 진정으로 두려워하게 만든다.
소모적인 논쟁으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다가오는 총선의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다!
“정작 빼고 찍어야 할 대상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좀비를 급조해낸 거시기집단이다.”
<출처: 국민일보>
활자판 경향신문의 오랜 구독자로서 1월말 당시 놓쳐버린 임미리 교수의 칼럼을 다시 읽어 보았다. 촛불연대의 정신을 잃어버린 문재인 정권을 출범부터 격하게 비판해온 필자의 평소 생각과 임교수의 비판 내용이 너무나 유사하여 오히려 감사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를 어찌하랴! 그의 마지막 멘트 ‘민주당만 빼고 찍자”는 앞서 기술한 비판적 지성의 내용을 쓰레기로 만드는 자해행위이자, 역사적 흐름에 대한 배신이며, 기득권 체계에 시달려온 일반시민들을 우롱하는 기만적 행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을.
앞에도 언급했지만, 지난 2-3년 간 보여준 민주당의 잘못과 패착에 대한 임교수의 지적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는 눈앞에 보인 장면을 스냅사진으로 찍으면서, 현재의 시점을 이루는 역사적 맥락을 놓치고 있으며,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촛불혁명의 원인이 되었던 수구의 기득권 체계를 묵인하고 옹호하는 오류를 범한 셈이다.
이 지점에서 현대중국의 분기점을 이룬 ‘서안사건’과 주역인 ‘장학량’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도올 선생은 지난 해 공중파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 낸 일등공신은 신해혁명의 주역인 손문 선생도 아니고, 중국공산당을 이끌어 온 모택동 주석도 아닌 서안사건의 주인공 ‘장학량’이라고 분명하게 언명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지만 요약해서 적어 본다. 군국주의자들이 이끄는 일본제국의 군대가 만주와 중국의 중북부 연안지역 대부분을 점령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은 중국민족의 해방을 위한 항일투쟁보다는 팔만대장정 끝에 연안으로 피신해 간 공산당의 괴멸을 위하여 민족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민족내부의 투쟁에 군사적 역량을 집중한다.
마침 그의 휘하에서 서부지역 부사령관직을 맡고 있던 ‘장학량’은 1936년 말 장개석이 서안을 방문하자, 그를 구금시키고 연안의 주은래를 초빙하여 국공합작을 성사시킴으로써 소모적인 민족내부의 싸움을 항일해방전쟁으로 전화시키는데 성공한다. 덕분에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주요한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승전국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장개석이 남경으로 복귀한 이후 1990년 초까지 오랜동안 가택연금 상태에 놓이게 된다.
역사적 계기를 마련한 ‘서안사건’을 거울삼아 우리 시대의 정말 중요하고 핵심적인 현안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현재의 민주당 모습이 1936년 당시 정신나간 장개석의 국민당 정권과 흡사 닳았다고 인정하자. 그런데 국민당 정권이 패착을 두고 있다고 주장하며 장개석의 처형을 요구했던 일부의 주장을 그대로 실행했더라면 겉잡을 수 없는 대혼란으로 중국대륙 전체가 일제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식민지화 되었을 것이 명약관화했던 상황이다. 당시에는 항일투쟁을 위한 ‘국공합작’만이 정답이었다.
이제 다가온 총선을 앞두고 ‘서안사건’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비견되는 현재 한국사회의 매판적이며 반역사적 세력이 누구인지를 꼼꼼히 헤아려 볼 일이다.
일제강점기 기간에 친일부역한 세력들의 뿌리와 잔재,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워싱턴에 팔아먹고 해방 이후에도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짓밟으며 독재를 자행하였던 이승만과 추종세력, 일본군국주의와 괴뢰 만주정부의 행태를 완벽하게 재현시킨 박정희 유신독재와 하수인들,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등장한 신군부 세력과 이에 협조를 다한 속물 언론과 지식인 그룹들, 현재로 사법적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부패하고 무능한 이명박근혜 정권과 이를 태동시킨 수구정당 등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가는 우리의 발길을 가로막았던 정치적 장애물들이었으며, 다행스럽게 한국 민중들의 역량에 의해 4.19 혁명, 10.26 사건과 80년의 봄, 6월 민주화 그리고 촛불시민혁명 등으로 이미 역사적 평가를 받은 셈이다.
다가온 총선과 관련하여 지난 70여 년 민족의 역사를 더럽힌 정당이름을 역사적 순서로 나열해 보면,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이다. 더구나 촛불시민의 요구에 따라 도입되어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되는 연동형 비례제 도입의 취지를 무참하게 짓밟고 이를 악용하여 좀비 정당인 미래한국당을 태동시킨 거시기 집단들이야말로 상종을 못할 무뢰배들로 총선을 통하여 이제는 용도가 폐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던가?
촛불정부를 자임하고 출범한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지난 2-3년 동안에 보여준 기대 이하의 행보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해방 이후 대부분의 선거역사에서 그랬듯이, 자연스레 그간의 업보에 대한 심판은 총선을 통하여 주권자인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잘못했다 해서 지난 역사를 그르친 적폐의 집단을 묵인하고 오히려 옹호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서안사건’이라는 극적인 계기를 통하여 참략자 일본군대를 격퇴하기 위한 ‘국공합작’이 이루어지며 중국이 회생하였듯이, 역으로 2020년 한국사회가 민주당의 패착을 빌미로 이명박근혜의 잔당들이 다시 정치를 좌우하는 암흑의 시대로 되돌아 갈수는 없는 일이다.
임미리 교수의 민주당에 대한 비판의 진정성과 본심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의 마지막 멘트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고 찍어야 할 대상은 미래한국당이라는 좀비를 급조해낸 거시기 집단이다”.
– 이중 200만호는 상위10%가 독식, 상위1% 주택보유량은 7채로 2배 증가
– 집값은 상위 1% 205조원(인당 11억), 상위 10% 966조원(인당 5억)증가
– 불로소득 근절, 소유편중 해소 위한 조세강화 및 임대차시장 투명성 확보해야
경실련과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 공동으로 주택 보유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 10년간 다주택자들이 250만호를 사재기했고, 상위 1%의 주택보유량은 1인당 7채로 10년 전에 비해 2배가 증가했다. 국세청과 행정안전부에서 제출받은 상위 100분위 주택보유현황을 분석할 결과이다.
2008년 주택보유 가구는 1,060만 가구에서, 2018년은 1,300만 가구로 240만 가구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주택은 1,510만호에서 2,000만호로 490만호 공급량이 증가했다. 주택공급량은 490만호 증가했지만, 주택 소유자는 240만명 증가에 그쳤다. 250만호(판교신도시 3만호, 80개 규모)는 다주택자(투기세력 등)들이 사들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3기 신도시(주택 30만호 규모)를 통해 주택공급량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다주택자가 주택을 사재기 할 수 있는 잘못된 주택공급 시스템, 보유세 등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주택소유 편중과 자산격차만 더 심화될 뿐이다.
2. 지난 10년간 상위 1%는 54만3천호를 사재기, 1인당 평균 3.5채씩 더 늘었다
10년간 주택보유 상위1%, 상위10% 보유량 변화
다주택자가 사들인 250만호 중 54만3천호는 상위 1%가 독식했다. 상위 1%가 보유한 주택 수는 2018년 기준 91만호로 10년 동안 54만3천호가 증가했다. 1인당 보유주택 수는 평균 7채로 10년전 3.5채에 비해 2배로 증가했다.
상위10%의 주택보유량도 증가했다. 상위10%가 보유한 주택은 450만8천호로 10년 대비 207만9천호가 증가했다. 10년간 다주택자들이 사들인 250만 호 중 80% 이상을 상위10%가 독식한 것이다. 1인당 보유주택 수는 평균 3.5채로 10년 전보다 1.2채 증가했다.
3. 다주택자의 주택보유량은 700만호, 등록 민간임대주택은 136만호로 19.6%에 불과
민간보유주택 수와 등록임대주택 수 비교(2018년 기준)
이처럼 다주택자(투기세력)가 보유한 주택 수는 급증했으나 임대사업자로 신고한 사업자는 아직도 전체의 20%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주택자(투기세력)가 보유한 주택은 사재기를 통해 2018년 현재 700만호이다. 하지만 2018년 기준 등록된 민간임대주택은 136만호로 다주택자 보유량의 19.4%에 불과하다.
2016년 6월에 취임한 문재인 정부의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취임사에서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다. 그리고 주택가격의 폭등 원인은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닌 투기세력의 주택 사재기 현상 때문이다. 특히 청년들 명의로 집 사재기(투기)가 심각하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취임 이후 주택정책은 오히려 투기세력인 다주택자에게 각종 세제와 금융 대출 특혜를 제공하여 ‘투기의 꽃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2017년 8월 ‘8.2 부동산 대책’과 같은 해 12월 발표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을 통해 다주택(투기세력)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할 경우 취득세와 재산세, 양도소득세와 종부세 등 세제 감면 혜택을 그리고 대출을 2배로 늘리는 등 특혜대책을 제공하며 다주택자의 임대사업자 등록을 권장했다. 그 결과 투기는 극성을 부리고 집값은 폭등했다. 그러나 임대사업자 등록은 아직도 미흡한 실정이다.
그동안 수많은 실태조사를 토대로 경실련이 산출한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 주택 평균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 55%를 적용하여 시세를 추정했다. 산출결과, 전체 주택가격은 2008년 2,900조원에서 6,000조원으로 3,100조원 증가했다. 이중 상위 1%의 주택가격은 2008년 260조원에서 2018년 464조원으로 204조원 늘었으며, 인당 평균가격도 25억원에서 36억원으로 11억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는 10억원에서 15억원으로 증가했다.
5. 불로소득 근절, 소유편중 해소 위한 조세 및 임대차시장 투명성 강화해야
지난 10년 동안 집값은 3,100조원이 상승하여 집을 소유한 경우 1인당 평균 2억원 자산이 증가했고, 상위 1%는 평균 11억원 증가했다. 그러나 집값 상승으로 인해 무주택자들은 내 집 마련 기회를 박탈당했다. 집값상승에 이어 전월세가격 부담으로 빚에 시달리며 자산격차만 더 심화됐다.
주거안정을 위해 농민소유 땅을 강제수용하고, 도심 주택을 재개발·재건축해서 490만채를 공급했지만 이중 절반이 넘는 250만호는 다시 다주택자에게 돌아갔다. 따라서 청년세대와 무주택서민들이 더 이상 주거불안에 시달리며 좌절하지 않도록 다주택자, 부동산부자 등 투기세력들을 위한 공급정책, 세제정책, 임대차시장 등에 대해 전면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임대사업자 등록과 임대신고제 의무화, 보유세 및 임대소득세 강화 등의 근본대책을 제시하길 바란다. 끝.
주주 및 경영진과 더불어 헤이그 법원이 석유거대기업체들(Chevron, ExxonMobil, Shell)에게 오염배출량을 격감시키도록 주문하면서, 환경운동가들은 이제 기후운동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판단한다.
화석연료 산업체에 대한 세계의 인내심은 점점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은 기후위기에 대한 거대석유기업들에게 전례가 없는 날로, 그들의 역할에 대하여 매우 뚜렷한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24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 사이 석유산업에 놀라운 패배를 가하면서, 법원과 주주들은 Shell, ExxonMobil 및 Chevron의 경영진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Shell은 헤이그의 한 법원에서 기후배출을 과감하게 줄이도록 명령을 받았으며, 미국에서는 주주들이 반란을 일으키며 Chevron사에게 배출가스의 목표량을 부과하였고, Exxon에서는 실행이사진의 교체를 요구하였습니다.
BNP Paribas 자산운영팀의 지속가능 최고전략가인 Mark Lewis는“ 이번 주의 뉴스가 거대석유산업이라는 선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제 구멍을 덧대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시민사회와 주주대표들은 선박을 통째로 수리하기를 원합니다.”
네덜란드 환경운동인 ‘Milieudefensie-환경보호’의 책임자인 Donald Pols이 헤이그 법정을 나서면서 환호성을 보내고 있다.
기후운동가들에게 “검은 수요일 / 5월25일”은 학수고대하던 날로, 기후재앙을 예방하는 역할에 대해 책임을 차일피일 미루어왔던 석유기업체들에게 재정 및 법적 통고가 내려지면서 주요한 전환의 계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야말로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국제그린피스조직의 전직 법률고문인 Jasper Teulings는 말합니다. Shell에게 향후 10년 이내에 배출량을 45% 줄이도록 명령한 네덜란드 법원의 판결은 “논쟁의 흐름을 바꾸고” 전세계 법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해당업계는 행동의 의무가 있으며 매우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판결의 요구(결정)사항이 매우 분명하기 때문에 법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핵심은 돈에 관한 것이 아니라 행동에 관한 것이며 이는 매우 합리적 결정이었습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Milieudefensie/환경보호”의 네덜란드 기후운동가들에 의해 제기된 상기 소송사건의 근거는 인권법과 UN헌장의 원칙에 기초한 규범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매우 보편적인 적용”의 성격을 지니며 다른 주요 환경오염원에 대한 소송사건에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후문제는 인권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가지 주제의 수렴(결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합이 다른 곳으로 크게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오염원을 발생시키는 당사자들은 (인권법을 위반한 죄목으로) 법정에 세워야 합니다.”라고 Teulings는 말합니다.
Shell은 파리기후협정에 명시된 배출목표에 부합하도록 회사가 행동하도록 명령한 “실망스러운”판결에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항소결정은 수년간의 법적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Shell의 명성에 심각한 손상을 가할 수 있습니다.
Teulings는“ Shell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실행전략이 파리협약과 일치한다고 믿는다면 법원의 요구를 준수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항소를 결정한 Shell의 입장은 법원결정과 화해할 수 없으며, 거짓말이 담겨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은 Shell의 화석연료 생산량에서 최소 매일 백만 배럴의 석유 및 가스를 삭감하도록 강제할 것이라고 석유산업 분석가들은 말합니다.
RBC Capital의 분석가인 Biraj Borkhataria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법원의 공격적인 명령은 Shell의 현금흐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는 화석연료 생산의 급격한 감소로 인해 Shell이 연간 60억 달러의 추가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으로 추정합니다.
점점 많은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해당산업체들이 기후의제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발생할 수 있는 비용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후행동이 환경적 위험뿐만 아니라 재정적 위험으로 주요하게 취급되고 있다는 매우 분명한 신호입니다.
대규모 투자사인 BlackRock 및 Vanguard를 포함한 Exxon주주들은, 석유에서 저탄소에너지로 전환하는데 실패한 이유를 들어, 설립한지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활동적인 헤지펀드(Engine No.1)가 석유거인(Exxon)의 이사회 구성원으로 추천한 이사명단 중에 최소 2명을 배제하도록 결의했습니다.
Chevron의 경우, 투자자의 60%이상이 배출을 줄이기 위해 환경캠페인 그룹의 요청을 수용하도록 결의함으로써, 자신들의 회사가 배출가스를 격감하도록 강제하였습니다.
주주그룹인 Majority Action의 전무이사인 Eli Kasargod-Staub는 상기의 두 번에 걸친 반란이 일어난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책임있는 주주들이 이에 반항하는 실행이사진의 방어벽을 허물었다”고 평가했습니다.
Kasargod-Staub는 다음과 같이 첨언합니다 “ ExxonMobil의 반란은 탈탄소화를 향해 실행가능한 목표를 실현하지 못하고 장기적인 주주가치를 보호하는 데 실패한 이사진들을 재고하는(해임) 상례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화석연료산업의 큰손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환경파괴보다는 장기적인 주주가치의 잠재적 파괴에 대한 우려가 훨씬 크겠지만, 그들도 경영진이 앞으로 다가올 녹색세상의 위험에 대해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미래의 녹색기술에 대하여 투자하기를 기대합니다.
석유산업에 대한 ‘블랙데이’로 평가되는 이번의 법원판결이 이루어지면서, 곧바로 신용평가회사인 Moody’s가 석유산업에 대한 신용위험도를 높였습니다. 기후환경 운동가의 주장과 재무적 위험이 결합되면서, 기후행동을 비웃던 기업들의 입장이 이제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맞이할 것입니다.
석유산업 전문가들은, Shell에게 화석연료의 생산을 줄이도록 강요하더라도, 석유생산할당량이 소규모의 민간석유회사 또는 국영의 대규모 석유거인으로 전환되면서 전세계 배출량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금융싱크탱크인 CarbonTracker의 연구원 Mike Coffin은 상기의 견해는 기후위기로 인하여 화석연료 부문의 자금조달에 발생하는 고유한 문제를 간과한다고 말합니다 “기후활동가의 압력에 대하여, 석유생산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는 은행과 산재보험사들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일부 기업들이 석유시추를 희망하더라도 그것은 위험한 전망으로 간주될 것이며 자본의 공급은 제약을 받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한때 화석연료로 향한 자본이 지속가능한 에너지 분야로 투자를 전환하면, 석유수요 감소와 시장 가격하락이라는 불가피한 흐름의 궤적이 형성될 것이며, 따라서 산유국의 국가적 투자를 재고하게 만들 것이라고 Coffin은 말합니다.
Teulings를 포함하여 오랫동안 기후캠페인을 진행해온 활동가들에게, 지난 주 헤이그의 법정에서 쟁취한 ‘기후승리’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면서 향후 낙관적인 기회를 제공합니다.
“기후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황, 절망, 무력감을 줄곧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희망의 등대입니다.”라고 그는 말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중요한 영향입니다. 법적 효과와 탄소배출에 대한 구체적인 영향을 넘어서, 이번의 판결은 희망을 제공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온 것입니다.”
지난 몇 주 간의 호주의 모습은 악몽과도 같았다. 화염이 벽으로 형성되고, 하늘이 핏빛처럼 물들었으며 거주민들은 화재를 피하기 위해 해변에 급히 모여들었다. 호주 산불은 매우 강력해서 대형 트럭을 전복시킬 정도로 엄청난 ‘화재 토네이도’를 만들어냈다
여름에 발생한 호주 화재는 지난 1년간 발생한 일련의 재앙적인 기상 이변 중에 가장 최근에 발생한 사건일 뿐이라는 사실이 문제이다. 전례 없는 중서부 홍수, 123도(F)까지 육박한 인도 폭염, 유럽 전반에 걸친 전무후무한 기온을 보인 폭염 등이 잇달았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재앙은 기후 변화와 관련되었다.
필자가 위 사건들이 기후 변화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기보다 ‘관련된 것’이라고 말한 점에 주목해야 하는데, 이것은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이들이 혼란스러워 한 구분이다. 각 기상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기에 뉴스 보도에서는 자연 재해 발생에 기후 변화가 미쳤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기후학자들은 확률에 초점을 맞춘 ‘극단적인 원인 규명(extreme event attribution)’에 몰두하여 이러한 혼란을 타파하고자 노력해 왔다. 기후 변화가 특정 폭염을 일으켰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폭염이 발생할 확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확률이 많이 달라졌다고 답할 것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우리가 보아온 많은 유형의 극단적인 기후 현상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그리고 기상 결과에는 임의성이 많지만, 사실 임의성은 사람들 대부분이 인지하는 것보다 초기 단계에서 기후 변화를 훨씬 더 위험하게 만든다. 현재까지 연구의 경험에서 추정해 보면 플로리다 전체는 결국 바다에 의해 잠식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훨씬 전에 해수면을 끌어 올리는 치명적인 태풍이 흔하게 밀려들 것이다. 마침내 인도 대부분의 지역에는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더구나 그러한 시점이 도달하기 전에 이미 폭염과 가뭄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다.
이렇게 설명해보자. 기후 변화가 야기할 전면적인 결과가 나오려면 수 세대가 지나야겠지만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재난이 많이 발생할 것이다. 대재앙이 일상적으로 평범한 사건이 될 것이며 우리 눈 바로 앞에서 항시적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기후 관련 재난의 확산이 이를 억제하는 대응조치를 무력화시킬지 여부가 중요한 문제이다.
희망적인 신호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뉴스 매체가 재해 현상에 있어서 기후 변화의 역할에 대해 보도하는 빈도수가 많아진 것 같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염, 홍수, 가뭄 등 재해에 대해 장문의 기사를 내보내면서도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 필자는 기자들과 편집자들이 마침내 불통의 침묵을 깼다고 느낀다. 지난 몇 년간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가 상당히 커지면서 대중들도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쁜 소식은 주로 민주당원들 사이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 진영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라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와 원인 규명에 대해 과학계의 논쟁이 심각해지면서, 보수파 정치인들의 반환경적 극단주의가 오히려 격렬해졌다. 공화당과 특히 트럼프 정부는 전반적으로 과학의 보고서에 대해 적대적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사실상 공화당의 딥스테이트(막후 기득권,)의 일원이 아니던가?
더욱이 이것은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 호주 정부는 대륙 전체가 불에 타고 있는데도 석탄 산업에 대한 지원을 재차 확인하고, 이런 류의 환경파괴 사업을 보이콧하려는 행위를 범죄로 다스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결단력 있는 조치가 시행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는 시점에 반환경주의가 점점 더 극단적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현재 상황의 병적인 아이러니이다.
이제 기후변화의 위험성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예측이 아니다. 비록 눈 앞에 전개된 재해가 앞으로 닥칠 거대한 참상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는 분명히 피해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적어도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오늘날 온실 가스 배출의 급격한 감소를 상당히 쉽게 성취할 것처럼 보인다. 특히 대체 에너지 관련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는 탓에 트럼프 행정부는 태양에너지 및 풍력 에너지와의 경쟁에 대항하는 석탄에너지 산업을 필사적으로 지원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2020년 대선 캠페인에 환경정책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인가? 민주당원 대부분은 환경정책이 주요 사안으로 확대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보이며, 필자는 그 이유를 이해한다. 환경 정책에 대한 우파들의 협박은 추상적이고, 먼 미래같이 느끼며, 공화당이 오바마 케어를 해체하려는 시도의 예처럼 현실적으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와 관련된 재앙의 파장이 정치적 산술을 바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선거 전문가가 아니지만, 최근에 발생한 화재와 홍수를 선거홍보의 내용으로 활용하면서, 도널드 트펌프(Donald Trump)와 측근들이 그러한 재앙을 일으키는 어리석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광고를 통해 선거 캠페인이 어느 정도 시민들의 관심을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트럼프의 환경정책은 미국과 세계에게 매우 유해하며, 유권자들은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앞서 한반도 비상국가체제는 남북의 극단적 적대에 기인하고, 그러한 적대의 극단성은 동서진영 대립과 분단국가 대립의 중첩 속에서 탄생했다 하였다. 그런데 진영 대립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동구권 붕괴와 소련 해체로 이미 종식되었다. 극단적 적대가 생겨나는 원인의 한 축이 이미 무너졌던 것이다. 그 시기는 공교롭게도 한국의 87년 민주화 이후 과정과 맞물렸다. 이 시점은 한국 사회가 후기근대 상황으로 접어드는 때로 볼 수 있다. 대항쟁으로 표출되었던 민주화 동력이 온전히 발휘되었다면 한반도 비상국가체제 종식의 계기를 분명히 마련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다. ‘마의 순환고리’는 그 과정에서 작동기제가 해체되어가고 민주화는 순탄하게 정상 상태에 이르기까지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했던 시기에 상실한 기회에 대해서 엄정한 복기(復碁)가 필요하다.
실패의 싹은 87년 민주화 동력의 분열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분열한 절반(김영삼 지지세력)은 이후 구체제 세력과 합류했다(3당 합당). 이 상황은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었고, 이는 ‘마의 순환고리’가 재작동하는 텃밭이자 온상이 되었다. 구체제에 합류한 김영삼 정부는 노태우 정부보다 오히려 더욱 강경한 대북정책을 고수했는데 그 배경에는 경쟁 정치집단(김대중 지지세력)에 대한 견제논리가 강하게 작동했다. 대북 온건정책이 경쟁 세력의 집권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리하여 냉전 해체에 적극적 행보를 보였던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사라지고 공격적인 흡수통일 노선이 들어섰는데, 이러한 대북 강경책은 북한을 선군주의와 핵무장에 올인하도록 밀어부쳤다. 이런 상태에서 국가부도와 IMF 사태라는 돌발적 상황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와 그를 이은 노무현 정부는 과감한 대북화해정책(햇빛정책)을 폈지만 결국 장기적 실효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 북은 민주정부 10년의 기간에도 핵무장 노선을 결코 놓지 않았고(2006년 1차 핵실험), 한국의 냉전대결 세력은 이를 ‘마의 순환고리’를 재작동시키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했다. 냉전 세력은 남(南)의 화해정책과 대북 지원이 북의 핵 개발을 조장했다고 공격했고 이는 민주정부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추세 억제 실패와 맞물려 민주진영 집권 10년은 급격한 지지 하락으로 마감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이런 배경에서 출현하여 이윽고 87년의 민주화 동력을 철저히 소진시키고 ‘마의 순환고리’를 다시금 완벽하게 부활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마의 순환고리’는 완성되어 극점에 이르는 순간, 자체의 과잉으로 붕괴를 자초하는 역사적 패턴을 보여주었다. 결국 ‘국정농단’이 박근혜 탄핵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독선·독단에 따른 여러 실정(失政)에 대한 불만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그중에는 무대책이 된 대북 강경책의 완벽한 실패(2~5차 핵실험과 SLBM, ICBM 등 발사체 개발에 무대책으로 일관) 역시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박근혜 체제가 오작동을 거듭하면서 비상국가체제의 절대무기인 ‘종북’, ‘이적’ 공세가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촛불혁명은 제2의 87년과 같은 상황을 조성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사라진 것이다. 그 결과 촛불을 끄자며 한때 가두를 요란하게 메웠던 태극기 – 성조기 집회와 일베식 폭력성은 오히려 구 보수의 자폐적 기이성을 노출했을 뿐, 어떠한 확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대외 상황에 대한 인식은 87년보다 진전되었다. 87년 당시 급변하는 대외 상황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은 매우 미약한 것이었다. 반면 이제는 냉전 종식에 이어 미국 일극주의도 종식되었다는 것, 이제 한국의 활로는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넓게 보는 데서 찾아진다는 사실이 상당히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인식이 되었다. 전방위로 활발해진 SNS 소통, 정보 생산과 유통에서의 민주화가 낳은 한 귀결이기도 하다. 새로운 번영의 기회가 유라시아 길로 열리고 있고 세계는 일극체제가 아닌 다극체제로 변모하고 있음을 이제는 일반인들까지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87년 당시 놓치고 말았던 ‘마의 순환고리’를 이윽고 끊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다시금 보다 좋은 여건에서 확보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구질서의 해체과정에는 불확실성과 새로운 위기가 수반되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상황일수록 내적으로 결집된 힘의 주동적 역할이 중요하게 된다. 이 점에서 세계가 경탄한 촛불혁명의 주역인 각성한 시민사회, 그리고 그 힘 위에서 특별히 강한 정통성을 갖게 된 새 정부가 들어선 현재의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중대한 변화를 이뤄낼 수 있을 만큼의 내적 역량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그렇듯 중요한 변화의 핵심고리가 ‘코리아 양국체제’의 정립으로 모아진다고 주장해왔다. 한반도에 양국체제가 정립될 때, 그동안 운명처럼 보였던 ‘마의 순환고리’도 ‘비상국가체제’도 이윽고 종식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리아 양국체제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1991년 9월 유엔에 동시 가입한 두 개의 국가다. 2018년 7월 현재 한국의 수교국은 190개국, 조선의 수교국은 161개국이며, 동시 수교국은 157개국에 이른다. 국제법상, 현실의 국제관계상, 여러모로 한국과 조선은 두 개의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고 있다. 이 객관적이고 엄연한 사실을 두 나라가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하고 정상적인 수교관계를 맺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코리아 양국체제다.
그렇지만 그렇듯 당연한 현실이 현실로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남북의 현 상태다. 이 두 국가는 서로 상대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를 다만 자기 주도의 통일에 의해 소멸시켜 흡수할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다. 양국 헌법 모두 현재의 남북은 하나의 나라가 분단된 상태임을 전제하고 있고, 그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명시하고 있다. 그로 인한 남북 간의 극심한 적대와 긴장, 사회 전 부면의 비정상 상태를 1970년대 초반 이후 한국 지식계에서는 ‘(남북) 분단체제’라 불러왔다. 따라서 ‘분단체제’란 그 자체가 부정과 극복의 대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 개념으로 한반도의 부정적 상태를 정의(定義)했던 편에서 분단체제론이란 분단체제 비판론이지 않을 수 없고, 분단체제의 부정과 극복의 목표는 통일에 맞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서 기존의 분단체제 비판론은 여기서 주장하는 양국체제론과 크게 다르다. 양국체제론은 1991년 유엔 동시가입 이후 한반도 남북이 두 개의 별개의 국가가 되었다 보고, 이 두 국가의 상호 인정과 평화공존을 우선적 목표로 삼는다. 양국체제론은 80년대 말~90년대 초반의 미소 냉전 해체와 동서 해빙, 그리고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같은 해 12월의 <남북기본합의서>의 교환을 남북 분단사에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그 이전까지의 ‘분단극복론’은 현실적 가능성이 희박한 저항적 당위 차원의 논의였다. 엄혹한 냉전대결 상황에서는 남의 북진(또는 멸공)통일론과 북의 조국통일론의 지배력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소 냉전 해체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계기로 부정적 의미의 ‘분단체제’를 긍정적 의미의 ‘양국체제’로 전환시킬 현실적 가능성이 열렸다. 양국체제론은 두 국가의 통일을 당면한 우선적 목표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었을 때야만 오히려 남북의 극단적 적대관계를 실제적으로 해소하는 단초가 열릴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분단체제 비판론은 반독재 투쟁에서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결국 분단체제의 강박적 적대가 오히려 강화되는 순환기제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그 순환기제의 작동구조를 살펴보기로 하자.
분단체제에서는 남북 상호간과 남북 각각의 내부에 여러 겹의 적대적 대립이 서로 맞물려 순환적으로 상승한다. 코리아전쟁 종전 이후 공식적으로 정전(停戰) 상태에 있는 남북은 전쟁이 미완·미결의 상태로 남아 있다고 본다. 잠시 쉬고 있는 상태일 뿐, 전쟁은 심리적으로 내연(內燃) 중인 것이다. 따라서 전시적(戰時的) 비상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지속된다. 상대의 동향에 대한 강박적·전시적 피해의식이 자꾸만 증폭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상황은 남과 북이 거울처럼 방향이 바뀌어 있을 뿐 꼭 같은 형태다(거울 동형).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전시적 강박상황에서 통일 세력과 반통일 세력의 구분이 그다지 선명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코리아전쟁 자체가 남북 쌍방 모두 통일을 하겠다고 벌였던 일이다. 이러한 전시적 비상 상태 의식은 권력의 비상한 독점 즉 강력한 독재체제의 심리적 온상이 되고, 이러한 상태는 사회 전 부문으로 관철된다. 권력. 부, 기회의 독점이 전시적 비상 상황을 빌미로 지극히 폭력적으로 정당화되기 때문에 그 독점과 독재는 기형적으로 심화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비상국가체제’다. 따라서 비상국가체제는 분단체제의 핵심축이기도 하다. 실제 전쟁 상태가 아님에도 이러한 ‘전시적 비상 상태’가 지속될 때 이에 대한 반발과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러한 문제적 현실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정당한 것인데, 이 비판 세력이 제기해왔던 논리의 주요 흐름이 분단체제(비판)론이었다 할 수 있다.
한국의 역대 독재정권은 이러한 비판을 (대부분 사실이 아니었음에도) ‘이적’ ‘용공’ ‘친북’으로 몰아(=조작하여) 탄압해왔다. 이들이 통치체제를 비판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통일이란 결국 대치하고 있는 적의 편에 동조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체제의 차이만 있을 뿐 남과 북에서 동형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분단체제란 이러한 분단체제 비판 세력을 식량으로 먹어치우면서, 즉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탄압하면서 자신의 몸체를 괴물처럼 더욱 키워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독재정권이 비판 세력을 ‘적’으로 상정하고 탄압하는 한, 극악한 탄압을 당하는 비판 세력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독재정권을 ‘적’으로 상정하고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독재정권은 비판 세력이 자신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이적단체’에 불과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이로써 상호를 적으로 간주하여 투쟁하는 상승적 순환 구조가 남과 북의 정권 사이에서, 그리고 남 내부와 북 내부 각각에서 형성되고 교차하면서 가속도를 얻어 작동한다.
이러한 악순환의 상승압이 ‘마의 순환고리’와 ‘비상국가체제’의 에너지원이 되었고, 87년 이후에도 30년 가까이 이 상승적 악순환은 끊기지 않았다. 이제 촛불혁명이 그 악순환을 비로소 끊어낼 기회를 주고 있다. 그 핵심은 양국체제의 정립에 있다. 민주정부 시기 10년의 대북 화해정책 역시 그러한 상승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오히려 반발 세력의 강한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반대 세력은 민주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을 친북적 분단체제 종식 운동으로 간주하면서 이에 맞서는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일으켰다. 분단체제론의 담론 구조 안에서는 남북의 어느 정치 세력이든 당면 목표로 분단 종식 즉 통일을 앞세울 때 (또는 그렇다고 간주될 때) 분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어떤 통일인가 누구를 위한 통일인가 매우 복잡하고 갈등적인 논란이 시작되고 이러한 상황 자체가 적대의 상승적 악순환을 부채질하게 된다.
이렇듯 작동하는 분단체제의 순환적 상승압은 비상국가체제를 강화해 사회 전반의 정상화를 결정적으로 가로막아왔다. 그런 비정상의 장기지속의 결과가 이번 촛불집회에서 적시된 ‘적폐’일 것이고, 그 적폐를 청산해갈 핵심고리가 양국체제 정착이 될 것이다. 비상국가체제의 역사가 길었던 만큼 적폐청산의 목록이 길다. 그러나 목록이 길어질수록 무엇이 핵심 목표인지 모호해질 수 있다. 병증(病症)의 핵심 원인을 정확히 찾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양국체제 정착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소멸 또는 부재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결국 우파 흡수통일론이 우세한 여론 장(場)을 말하고, 그 핵심에는 코리아전쟁 시의 ‘미완의 북진통일’을 완수하자는 생각이 있다. 이 역시 분단체제론의 일종, 즉 우파 주도의 분단체제 종식론, 즉 통일론이라 할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해소는 이번 촛불혁명의 가장 중요한 성과인데, ‘정상 상태’란 기울어진 비정상이 기울어짐 없는 정상으로 회복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기울어짐 없는 정상 상태란 분단체제적 사고관습으로부터의 탈피를 전제한다. 분단체제론의 인식장(認識場)에는 반드시 좌와 우의 기울기가 있기 때문에 그 운동장은 좌로든 우로든 기울게 되고, 그러한 기울어짐은 반드시 상호 적대의 순환적 상승압을 고조시킨다. 두 번의 ‘마의 순환고리’가, 그리고 지난 60년의 한국 정치사가 그렇게 작동해왔다. 이러한 악순환은 양국체제가 안정적으로 정립될 때야만이 근본에서 끊긴다. 분단체제의 인식장이 해소되는 것이다.
촛불혁명 이후의 현재 상황에서 양국체제 정립을 주도할 일차적 힘은 대한민국에 있고 그 최대의 수혜자도 대한민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체제의 정립으로 비상국가체제의 비정상을 종식시켜 정상 상태에 이를 때 세계의 찬사를 받았던 대한민국의 민주적 동력은 만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측 역시 생존의 강박에서 벗어나 정상적 내부 개혁의 경로를 차분히 개발해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렇듯 상호 적대와 긴박한 생존의 강박에서 벗어날 때 남북이 협력하여 공영을 모색할 수 있는 영역은 오히려 넓게 열릴 수 있다. 한반도의 잠재력이 억압에서 해방되어 다극 구도 상황의 유라시아와 태평양으로, 세계로 힘차게 뻗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양국체제론에 대해 예상되는 반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반통일론, 분단고착화론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분단체제 비판론 중에서도 강경한 입장에서 제기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반대편에서의 비판인데 ‘북한’을 절대로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또 다른 강경론이다. 이 입장은 북한 정권 타도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을 주장한다. 이 두 입장은 극과 극의 반대로 보이지만 한반도 두 국가 상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뒤집어져 있을 뿐 구조적 동형이다. 양국체제가 평화통일의 전망을 실제적으로 열어준다는 점이 잘 설득된다면 이러한 반대들이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겠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두 번째 입장은 지난 촛불 정국에서 등장한 ‘태극기 – 성조기 집회’와 중첩되는 것으로 이후 양국체제론에 대한 적극적 반대 집단으로 나설 수 있다. 그러나 촛불 정국에서 보았듯 이 집단의 여론 확장력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아울러 이러한 두 입장을 강경하게 견지하는 층은 양적으로 그다지 크지 않고 세대적으로 점차 축소되어가는 추세다. 젊은 층일수록 이러한 입장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양국체제의 편에 있다.
양국체제론은 우선 대한민국에서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합리적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을 크게 완화함으로써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활로 개척에 큰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사라지고 일베식 보수가 크게 위축된 여건은 양국체제 정립을 위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흔치 않은 역사적 기회를 주고 있다. 관련 헌법 조항(3, 4조) 개정 등을 포함한 적절한 절차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룬 후, 이 합의를 북측(조선)과 주변국으로 확장해감으로써 한국은 동아시아 – 태평양 평화 정착의 주요 행위자로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이러한 이니셔티브에 대해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설 명분이 어떤 주변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북측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둔 행보에 굳이 반대하고 나설 이유가 없을 것이다.
분단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 적대할 수밖에 없다. 반면 양국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한다. 이 상태로 진입해야 주변국과 얽힌 긴장과 마찰의 매듭도 풀 수 있다.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영향력 있는 여론 주도자들은 통일에 대한 미사여구를 풀어내기 좋아한다. 그러나 통일을 정말 진지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면, 순서는 반대임을 알아야 한다. 통일보다는 상호 인정과 평화공존이 우선이다. 통일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한, 현실의 긴장과 대립은 오히려 격화된다. 단추를 거꾸로 채울 수는 없다. 상호 인정과 평화공존을 우선 과제로 명확히 설정하고 흔들림 없이 이 목표에 충실할 때, 통일은 비로소 어느 날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그저 ‘대북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체제전환’은 ‘촛불혁명’이 진정 혁명이었음을 입증하는 최종 증거가 될 것이다. 그동안 분단체제의 현실이야말로 총체적 비정상의 근원이었다. 촛불이 제기한 ‘적폐청산’ 역시 양국체제 정립을 분명한 목표로 할 때 제대로 순서와 방향을 잡아 차근차근 성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촛불혁명과 체제전환: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
2016~2017년에 걸쳐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민주정부를 출범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촛불혁명’이라 불려온 거대하고 평화로웠던 대중행동이 진정 ‘혁명’의 이름에 부합하는 결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체제(앙시앙 레짐)에서 새로운 체제로의 ‘체제변화’를 수반해야 할 것이다. 이 장은 한국 사회가 이루어야 할 그러한 ‘체제변화’를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이행’으로 집약해보았다.
이러한 체제변화는 한국 현대사에서 적대적 분단 상황이 강요해왔던 ‘비상국가체제’를 종식시키고, 4·19, 87년 민주항쟁과 같은 거대한 민주적 열망의 분출을 독재체제로 반복적으로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를 구조적으로 끊어내, 한국 사회를 새로운 질적 단계로 접어들게 할 것이다. ‘분단체제’가 남북이 서로 상대의 주권과 존재를 부정하고 적대적 긴장을 고조시킴으로써 항시적 비상 상태의 ‘비정상’을 영구화해온 반면, 양국체제에서는 남북이 서로의 주권과 존재를 인정하여 이러한 항구적 비상 상태의 근거를 해소함으로써 양국 모두가 ‘정상 상태(normal state)’로 진입해갈 조건을 조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지난 주(25일)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본인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과 관련해 의원직 사퇴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지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 대한 농지투기 의혹 조사 발표에 이어,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조사도 발표도 이루어진 바, 윤희숙 의원의 농지투기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세종시에 있는 윤 의원 부친 명의의 농지는 주변 지역이 개발되어 가격이 매입 당시보다 최대 2배가량 오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한 직접 농사를 짓기 위해 농지를 구입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농업경영 계획서를 제출하고 농지 3,300평(1만871㎡)을 산 아버지가 농사를 지은 적이 없고, 주소지만 대리 경작한 주민의 집으로 몇 달간 옮겨놓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형적인 농지투기 방식이다.
더욱이 윤희숙 의원 아버지가 매입한 세종시의 농지는 산업단지들 가까이에 있다. 일각에서는 윤 의원이 일했던 한국개발원(KDI)이 국가산업단지 예비타당성조사 기관인 점을 들어 내부 정보를 이용한 농지투기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하고 있다.
LH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 만연한 땅 투기는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가져오고 땅 투기의 90% 이상이 농지임이 드러난 바 있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사문화되고 농지법에서 농민이 아닌 누구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해 놓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바꾸기 위해 정부는 농지법 개정안을 지난 8월 국회에서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8월에 개정된 농지법은 이전 농지투기 등 불법 농지 소유에 대해서는 묵인하고 새롭게 이후 상황에 대한 관리만 강화하자는 것으로 농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해줄 수 있는 공공재이다. 그리고 OECD 평균이 102%에 달하고 있는데 한국의 식량자급율은 20%에 불과하다. 앞으로 농지가 농민의 것이 아니어서, 농지가 영농의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에게 공급할 식량을 생산할 토대인 농지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기후위기로 생산량이 급감하고 수입농산물 가격이 폭등하여, 밥상 물가도 폭등하는 현실을 현재도 경험하고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농지는 국민 모두에게 식량 공급이라는 이익을 제공하는 공공재이다. 더 이상 농지가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 위해 농지투기부터 근절해야 한다.
농지투기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농지 전체 필지에 대한 전수조사가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 기존 투기 농지를 그냥 두고 관리만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농지관리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과연 투기를 목적으로 농지를 구입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수익을 포기하고 정부의 농지관리에 협조하겠는가? 더 이상 농지투기를 방치해서는 안된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확립하고, 농지투기를 근절하기 위한 근간으로서, 농지에 대한 전수조사를 즉각 시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윤희숙 의원 부친의 농지투기 의혹의 진상을 밝히고 특히 한국개발원 등의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가 아닌가에 대한 수사도 진행할 것을 요구한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