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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이들에겐 ‘역사 할아버지’ 후학에겐 ‘인자한 벗’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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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이들에겐 ‘역사 할아버지’ 후학에겐 ‘인자한 벗’이셨죠”

admin | 수, 2021/03/17- 21:39

[가신이의 발자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1주기를 맞아

고 이이화 선생. <한겨레> 자료사진

오는 18일 이이화 선생 1주기를 맞아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상임이사가 추모글을 보내왔다.

경황 중에 선생을 떠나보낸 지 어느덧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 19 감염증이 번지고 있던 어수선한 형편에 제대로 추모의 뜻을 모을 겨를도 없이 놓아드려야만 했다. 고인을 따르던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의 많은 후진이 안타깝게 여겼지만, 격식을 싫어했던 생전의 선생을 떠올리면 간소하면서도 진정이 담긴 장례가 오히려 어울리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선생은 시대의 반항아이자 학계의 이단아였다. 한국사 전 분야에 두루 해박했으나 그가 집중했던 관심사는 동학농민혁명, 일제의 전쟁범죄와 친일문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등 민중의 역사, 약자의 역사였다. 남들이 쉬이 발 담그지 않는 분야를 기꺼이 전문으로 삼았다. 그의 풍모는 그냥 학자라기보다는 세상을 바꾸고자 한 투사에 가까웠다. ‘역사학계의 녹두장군’이란 헌사에 결코 모자람이 없는 삶이었다.

다방면에 걸쳐 방대한 성과를 남긴 만큼 선생의 업적을 일일이 열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1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는 그의 깊고도 넓은 학문세계를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전 22권에 달하는 한국통사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는 학술서적으로서는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를 기록함으로써, ‘강단의 역사’에서 ‘대중의 역사’로 역사학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신기원을 열었다.

전 22권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대중의 역사로 역사학 지평 넓혀
동학혁명 농민군 위상 자리매김도
‘만화 한국사’ 내고 아이들 스타로
선생의 길 따라가야 할 책무 남아

동학농민혁명과 농민군의 위상을 제대로 자리매김한 일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30권을 간행하여 관련 자료를 집대성하는 한편, ‘전국 순회강연’으로 그 역사적 의의를 재정립하는 데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또한 특별법 제정에 진력하여 ‘동학농민혁명참여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를 통한 진실규명과 유족의 명예회복에 커다란 진전을 이뤄냈으며 이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종로의 전봉준 장군 동상 건립과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은 수십 년간에 걸친 선생의 노고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응답이기도 했다.

역사문제연구소 설립, <친일인명사전> 편찬,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 한일 과거사 청산,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와 촛불혁명 등 당대 역사문화운동의 맨 앞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엄동설한의 거리에서 사자후를 터뜨리며 역사를 변조하려는 무리를 꾸짖던 선생의 기개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학술연구와 현실참여를 온몸으로 일치시킨 시대의 참스승이었다.

살아생전 선생께서 가장 좋아했던 별호는 ‘역사 할아버지’였다. <만화 한국사 이야기>가 나온 뒤 선생은 어린이들 사이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어디에서든 만나면 “역사 할아버지다!”라고 환호했다. 청소년들이 우리 역사에 이렇게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의 쉬운 글쓰기와 신선한 시각이 크게 작용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이화의 최대 업적은 역사학의 대중화와 사회화”라고 입을 모은다.

선생은 역사학계의 거목이었다. 그러나 많은 후학에게는 인자한 어른이자 다정한 벗이었다. 그는 문벌 학벌 직위 연배 등 이른바 족벌과 서열문화를 배격했다. ‘꼰대’스러움을 철저히 혐오했다. 그래서 항상 젊은이들과 소통하면서 술잔을 나누며 격의 없는 토론을 즐겼다. 그 분과 함께 했던 나날들, 유쾌했던 그 자리가 무척이나 그립다.

선생의 후광이 빛나는 만큼 남긴 자취 또한 선연하다. 그의 부재가 던져주는 상실감도 실감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선생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뚜렷한 ‘역사의 이정표’를 남겨 놓았다. 우리에게는 그 길을 벗어나지 않고 따라가야 할 책무만 남아있을 뿐이다.

<2021-03-16> 한겨레

☞기사원문: “아이들에겐 ‘역사 할아버지’ 후학에겐 ‘인자한 벗’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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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8/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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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사 작곡 교가·일본신사 잔재 등…교육청 “후속 조치는 자율”

친일 인사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학교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 지역 학교에 대한 일제 잔재 조사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15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지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52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 81건의 일제 잔재 사례가 파악됐다.

이 중 22건은 친일 작사가나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 사례였다.

특히 ‘섬집 아기’와 ‘봄이 오면’의 작곡가로 유명한 이흥렬이 만든 교가도 7개 학교에서 사용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일본음악의 수립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화악단 지휘자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또 다른 친일 인사인 김동진이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도 6곳에 달했다. 김씨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 활동을 했다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친일 인사의 동상이나 일본 신사 잔재 등 일제 관련 기념물이 교정에 남아 있는 학교는 3곳으로 파악됐다.

나머지는 서운, 송월, 백마, 작약도 등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변형된 지명이 교명과 교가 가사에 남은 사례였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각 학교에 알렸으나 개선은 권고 사항에 그쳐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동문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등 내부 협의가 필수적인 만큼 교내 일제 잔재를 없애기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천황을 섬기던 신사의 돌기둥과 석등이 교정에 남아 있는 인천 중구 모 고교의 경우 별도의 시설물 철거 계획을 논의하지는 않은 상태다.

인천 연수구 모 중학교에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나쁜 역사도 역사로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철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동창회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 학교 설립자 동상을 세운 것이라 학교 마음대로 없앨 수 없다”며 “내부 검토를 여러 차례 했지만 역사를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동상을 남겨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들도 대부분 즉각적인 개선 조치에는 나서지 못했다.

친일파가 교가를 작곡한 인천 연수구 모 고교는 추후 학생, 학부모, 동문회와의 협의를 거쳐 교가 일부를 개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천 동구 모 고교도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에 대해 별다른 개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일제 잔재 조사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알리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며 “이후 각 학교의 개선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지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5> 연합뉴스

☞기사원문: 인천 학교들, 일제 잔재 남아 있어도 개선은 ‘거북이걸음’

※관련기사

☞서울신문: 친일파가 만든 교가…인천 각급 학교 일제 잔재 파악하고도 ‘개선‘ 소극적

화, 2021/08/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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