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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남은 '공직자 재산공개', 이것만 바꿔도 감시가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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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남은 '공직자 재산공개', 이것만 바꿔도 감시가 쉬워진다

admin | 화, 2021/03/16- 04:01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전체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부동산 투기 스캔들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에 이르기까지 신도시 예정지 인근에 토지를 구입한 사례들이 언론을 통해 속속 알려지고 있습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이런 투기 의혹을 검증할 때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1차 자료가 공직자들의 재산공개 내역입니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부장판사 등 고위공직자들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자신들의 재산 내역을 신고하고, 매년 3월 말 경에 이를 공개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 3월 마지막 주에 공개하고 있으니, 올 해의 재산등록 내역도 열흘 후면 모두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때 예금, 부동산, 증권에서부터 채권, 지식재산권, 보석류, 회원권, 자동차 등 다양한 재산들을 공개하는데, 차명 투자나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공직자 본인 뿐 아니라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재산도 함께 공개됩니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쏟아지는 3월

이번 사태로 공직자윤리법 상 재산신고와 공개 대상인 공직자의 범위를 더욱 넓혀야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3월 들어서 벌써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7건이나 발의가 되었는데요,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LH공사처럼 부동산과 관련해서 미공개정보를 이용하거나 이해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공직자들에게 재산을 등록하고 공개하도록 하여,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하자는 것입니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기를 막기 위해 LH공사와 같은 공기업까지 재산공개 의무를 확대하자는 법안에 당연히 찬성합니다. 그런데, 딱 2%가 부족한 법안들입니다. 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 꼭 바뀌어야 할 내용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공개는 하지만, 활용하긴 불편한

 

현재 공직자의 재산공개 방식을 규정하고 있는 공직자윤리법 제10조제1항에서는 재산 내역을 '관보 또는 공보'에 게재하여 공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신고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전자관보 사이트에 접속해야 합니다. 1차적인 문제는, 이 재산신고 내역이 한 군데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각각 따로 관보 파일을 업로드하는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관할하는 기관만 해도 대통령, 중앙부처, 17개 광역시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80여 곳에 가깝습니다.

 

이 많은 내용을 하나하나 클릭해서 다운로드 받다보면 혈압이 오를 수 있습니다.

 

기초지자체까지 감시의 범위를 넓히자면 더 골치 아파집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 강남구의 구의원이나, 서울환경공단 이사장의 재산공개 내역은 서울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서울시보를 찾아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재산공개 대상인 공직자들이 특정한 신도시 지역에 땅을 가지고 있는지 전수조사를 해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전자관보 사이트에서 80여 곳에 이르는 파일을 전부 다운로드 받고, 17개 광역시도 홈페이지에도 모두 접속해서 하나하나 파일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만 해도 이런 형식의 표 300개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관보나 공보는 보통 PDF 파일로 업로드되며, 게다가 재산공개 양식도 검색과 필터링, 정렬 등이 불가능한 이상한 표 형태로 올라온다는 점입니다. 검색/정렬/필터링 등을 용이하게 하여 내역을 살펴보기 위해선 다운로드 받은 PDF 파일을 csv 파일로 변환한 다음, 구조화된 형태로 정제를 해야 비로소 재산 내역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위 이미지의 표를 정제하면 이런 형태가 됩니다.

 

재산공개 내역을 데이터 형태로 변환해야 누가 가장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지, 신도시 지역에 땅을 가진 사람이 누군지 편리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프로그래밍 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관보나 공보에 실린 표를 쉽게 변환하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정제하도록 코드를 짜서 시간을 확 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시민들이 코딩에 익숙한건 아니죠. 그런 기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은 살펴보기 어려운, 접근성이 떨어지는 정보입니다.

 

공직자 재산공개는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상시적 감시를 통해 공직자들의 재산형성 과정에서 불투명한 부분은 없는지 검증하기 위한 목적의 제도입니다. 그러나 재산공개 자료가 여기저기 퍼져 있고, 이렇게 살펴보기 힘든 서식과 형태로 공개하다보니 상시적인 감시가 어렵습니다. 이번처럼 투기 의혹 사건이 터져서, 공직자들의 재산내역을 살펴보려고 해도 접근성이라는 문턱이 시민들을 가로막는 셈입니다.

 

 

LH 투기 사건 이후 스프레드시트로 정제한 국회의원 재산공개 내역이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 인기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재밌는건, 모든 공공정보가 이런 식으로 공개되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매년 국세청이 공개하는 고액 상습체납자 명단의 경우, 아주 친절하게 구조화된 데이터 형태로 공개됩니다. 심지어, 지도를 통해서 고액 상습체납자의 주소까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탈세를 막고, 상습 체납자들의 은닉재산 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국세청이 제공하는 고액체납자 명단공개 지도

 

 

공직자 재산공개 자료는 이렇게 불편하게 공개될까요? 공공데이터법 제24조는 "공공기관의 장은 공공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기계 판독이 가능한 형태로 정비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공직자 재산공개 자료는 수정, 변환, 추출이 자유로운 '기계 판독이 가능한 형태'의 자료로 보기 어렵습니다. 법으로 정해놓았으니 어쩔 수 없이 공개는 하지만, 시민들이 감시하기 편하도록 데이터 형태로 제공할 마음은 없다는 것일까요? 도무지 데이터 강국'을 꿈꾸는 나라답지 않은 태도입니다.

 

공직자윤리법, 이참에 이것만은 바꾸자

 

시민들 누구나 공직자들의 재산감시를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선, 먼저 공직자윤리법 제10조제1항부터 손봐야 합니다. 지금처럼 '관보 또는 공보'에만 공개하게 해서는, 재산신고 내역을 살펴보기에 매우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인터넷 등을 통해' 라는 한 구절만 추가되더라도 좀 더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개 방식이 가능해집니다.

현재 공직자의 재산등록 및 공개, 재취업 심사 등은 인사혁신처에서 운영하는 공직윤리시스템 홈페이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만약 이미 존재하는 공직윤리시스템 홈페이지를 활용하여 일반 시민들도 공직자재산 신고 내역을 한번에 살펴 볼 수 있다면 공직자들의 부정한 재산형성을 감시하기가 훨씬 편리해지겠죠.

 

공직자 재산공개제도의 투명성 확대를 위해서 또 한가지 바뀌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재산공개 자료를 살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품을만한 '이상하고 불편한 표'의 정체, 바로 '공직자윤리법 시행규칙 별지 제10호 서식'입니다.

 

 

누가 봐도 데이터로 정제하기 귀찮아보이는 바로 그 양식입니다.

 

한눈에 봐도 활용하기 매우 불편한 표 서식은 2005년 도입된 이래로 무려 16년 동안 큰 변화 없이 계속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 서식이 재산등록을 신고하는 공직자들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불편함이 없을지 몰라도, 재산공개 내역을 살펴보는 입장에서는 매우 막막해지기 마련입니다. 이 서식을 행과 열로 구조화하여, 데이터로 활용하기 쉽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한다면 공직자 재산 감시 작업은 두 배는 편리해지리라 단언합니다.

 

LH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그야말로 쏟아지고 있는 이 시점이지만, 공개 대상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어떻게 해야 시민들이 좀 더 편리하게 재산공개 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지에 주목한 법안은 아직 찾아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공직 사회의 투명성을 위해서 규제 강화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시민들의 참여와 감시의 활성화입니다. 공직자윤리법, 이번에는 제발 PDF와 표 서식 말고 '데이터'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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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센터 회원 배여운님의 브런치에서 허가 후 전재한 글입니다.
전재 허락해 주신 배여운 회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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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니 책상 위에 웬 편지 봉투가 덩그러니 올려져 있다.

"뭐지....?"

편지 봉투를 대충 훑어보니 워싱턴에 있는 미국 정부기관에서 보낸 거였다. '나 뭐 잘못했나...'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뜯어봤더니 이게 웬걸? 빵 터졌다. 그건 바로 미국발 정보공개청구 결과 통지서였다. 문득 10월 말에 정보공개청구했던 게 생각났다. (쉿!! 아이템은 비밀!!)

무엇보다 답변이 궁금했다. 공개냐 비공개냐? 굉장히 공손하게 쓰인 문장을 읽다 내려가니 결국 '네가 청구한 건 못 줘!'라는 비공개 통지서였다. 쳇... 이럴 거면 그냥 메일로 못 주겠다고 하면 될 것을 왜 사람 설레게 우편으로 보내준 건가 원망스럽다.

미국 법무부에서 보낸 정보공개청구 통지서



퉁명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글을 쓴 건 미국 정부를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냐는 질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은 지는 시간이 꽤 됐는데 이번에 또 이렇게 비공개 통지문을 받으니깐 오기가 생기기도 하고 청구 방법을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실패의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벌써 두 번째 청구 실패인데 다음번에는 꼭 성공하길 바라면서 왜 실패했는지 다시 한번 복기하고 싶었다. 일종의 오답노트다.

우선 미국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할 수 있는 근거를 살펴보자. 한국 헌법에서도 '국민의 알 권리'는 헌법 제18조, 제21조의 '표현이 자유'와 관련해 인정하고 있다. 이른바 개별적 정보공개청구권이 인정하듯이 미국도 투명한 정보 공개를 위해 FOIA(Freedom of Information Act) 법을 제정해 정보공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참고로 미국 정보공개법은 연방 법률로 1966년에 만들어졌으며(법적 효력은 1967년) "행정절차법"의 일부인 미국 법전 제5편 제552조에 해당한다. 미국인만 할 수 있지 않냐고 하지만 아니다. 미국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인(any person)도 가능하다.

슬기롭게 청구해보자

FOIA를 통해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는데 그 시작은 아래 사이트이다. 우리나라 정보공개청구 사이트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사이트가 전부 영어라 복잡해 보이는데 하나씩 살펴보면 그렇게 어려운 건 없다. 참고로 10월에 미국 국무부로 청구했던 단계 그대로 설명한다.

https://www.foia.gov/


https://www.foia.gov/

크게 3가지로 구분해 봤는데 너무 쉽다!

● 청구 전에 찾는 자료 검색해보기

청구 대상 기관 선택
청구서 작성하기

먼저 청구 전에 자료 검색하기다. 청구인은 정부 기관에 어떤 자료와 정보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괜히 청구서를 작성하고 기다리기보다는 이미 나와있는 자료를 찾아보기를 권장한다. 사이트 메인 화면 중간쯤 돋보기가 그려진 아이콘 메뉴 'Do research before you request'이다. 클릭하면 검색어를 입력할 수 있고 가령 Immigration data를 키워드로 넣어보면 정부 기관에서 생산한 관련 통계와 리포트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나온다. 필요한 게 있으면 굳이 청구서를 작성할 필요는 없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분들도 알 거다. 저기엔 내가 필요한 자료가 없을 것이란 걸. 그렇다. 우리가 정보공개청구하는 이유는 기존에 나와있지 않는 자료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청구서는 무조건 작성하게 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청구서를 작성해 보자. 메인에서 Start your request를 선택하면 아래 화면이 뜬다. 한국 정보공개청구 단계랑 비슷한데 먼저 청구 기관을 선택해야 한다. 옵션은 두 가지다. 첫째, 기관 이름을 내가 입력하는 방법과 둘째, 기관명을 잘 모를 때는 기관 index로 검색하는 방법이다. 참고로 FOIA에서 모든 정부 기관 목록이 뜨진 않는다고 한다. 그런 경우는 기관 자체 사이트에서 정보공개청구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고 한다. 난 미국 국무부를 대상으로 청구했기 때문에 Department of State (U.S. Department of State)를 선택했다.


미국 국무부는 Department of State! (아는 것이 힘이다)


미국 법무부를 선택하면 미국 법무부에서 정보공개청구를 어떻게 운영하는지 안내를 해준다. 기관별로 설명이 조금씩 달랐지만 대체적으로 자세하게 여러 정보를 알려준다. 우리나라 정보공개청구 사이트와 달리 이 부분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자세히 보면 미국 법무부 FOIA의 목표와 담당자 그리고 평균적으로 정보공개청구 건을 처리하는 시간, 청구 안내 등 처음 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만한 수준이다.

덕분에 미국 법무부는 자체적으로 청구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걸 알게 됐고 링크를 소개하고 있어서 청구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간단한 청구 건도 평균 120일 걸린다는 설명을 보는 순간 다시 한번 대한민국은 살기 좋은 나라라는 걸 깨달았다...


미국 법무부 FOIA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좋았다


위 단계까지가 미국 정부 기관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할 때 공통적으로 밟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관마다 처리기관, 수수료, 감면 정책 등 다르며 운영 사이트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청구서를 작성하면 되는데 몇몇 기관 청구서 작성을 해보니 큰 틀에서 다른 건 거의 없었다. 다시 미국 법무부 사이트로 돌아오면 첫 화면이 아래와 같다. 작성해야 하는 단계는 총 7개 정도 됐다. 시작하기 전에 기본적인 물음, 청구인 연락 정보, 청구서 세부내용 작성, 수수료 및 감면, 부가 정보 그리고 청구서 최종 확인을 거치게 된다. 국내에서 정보공개청구를 해본 적이 있다면 특별히 어려운 건 없다.


단계별로 입력해야 하는 내용이 많다

다만 수수료와 감면 부분이 조금 달랐는데 미국 FOIA는 내가 낼 수 있는 수수료 한도를 입력해야 했다. 가령 25달러까지 낼 수 있다고 했는데 수수료가 50달러가 나오면 사전에 공지를 해주는 제도로 보인다. 청구 유형을 선택하고 마지막에 Fee Waiver를 만나게 되는데 한마디로 청구 수수료 감면 제도다. 법무부 사이트에서 정보공개청구 가이드(171.16. Waiver or reduction of fees)를 꼼꼼히 읽어보면 재밌는 감면 사유가 많다. 청구 자료가 공익적이거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때와 같이 다소 주관적인 사유도 있었고 기사나 출판에 활용될 때도 고려 대상으로 보인다.



미국은 수수료 감면 사항이 많으니 확인하자

하지만 실패했다

뭐 결론은 비공개 처리로 실패다. 작년에 탐사팀 있을 때 청구했던 건 분량이 너무 많다며 '공개는 해줄게! 그런데 검토해야 할 박스당 4시간에서 8시간이 걸리고 이걸 시간으로 환산하면 대략 7,408시간에서 14,816시간 예상되며 결국 36개월가량 걸릴 거야'라고 무시무시한 답변이 와서 포기했다. 당시 청구 기관은 미국증권거래위원회였는데 청구서에 대한 답변은 이메일로 왔다. (이번에는 우편으로 온 걸 보면 기관마다 답변 방식이 다소 다른 듯 싶다)


작년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청구한 답변이 올해 왔음...

하지만 이번 국무부를 대상으로 청구한 건은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청구서가 부실하다는 건 다소 주관적이라고 생각이 드는 건 작년 청구서 내용과 크게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래 내용이 기각 사유다.

.... because it does not reasonably describe the records sought. A request must reasonably describe the Department records that are sought to enable Department personnel to begin a search for responsive records. Such detail may include the subject, timeframe, names of any individuals involved, a contract number.....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하면 부서 직원이 기록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거기에는 기간, 이름, 계약 번호 등등이 해당된다는 건데 국내 정보공개청구서 작성 경험이 많아서 최대한 상세히 썼고 작년 증권거래위원회 청구서와 크게 다른 점이 없는 걸 보면 기관마다 청구서 요구 사항 역시 다르다고 봐야 될 거 같다. 혹은 두 번의 작성 내용이 부실했을 수도 있다. 참고로 미국 국무부는 2015년 민간연구단체인 '효과적인 정부를 위한 센터(Center for Effective Government)'가 발표한 정보공개 기관 평가에서 가장 낮은 F등급을 받았다고 한다.

다시, 정보공개청구


곧 다른 건으로 다시 청구를 할 예정인데 몇몇 미국 정부 기관에서 설명하는 정보공개청구 팁을 바탕으로 핵심을 정리해보자. 대략 7가지 항목은 기본적으로 작성하라고 권유한다. 요청하는 게 사진, 영상, PDF, 엑셀인지, 기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세부적으로 무엇을 청구하고 담당 부서는 어딘지, 기록물 생산 근거는 무엇인지 등 청구인이 자세히 청구 내용을 작성할수록 공개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 Type of record; 기록물 유형

Timeframe of record (when was the record created); 기간
Specific subject matter, country, person and/or organization; 세부 주제, 국가, 사람, 조직 등
Offices or consulates originating or receiving the record; 기록물을 접수하는 조직 혹은 담당 부서
Particular event, policy or circumstance that led to the creation of the record; 기록물을 생산 근거가 되는 특정 사건, 정책, 환경 등
Reason why you believe the record exists; 기록물의 존재 근거(이유)
If requesting information involving a contract with the Department of State, the contract number, approximate date, type of contract, and name of contractor. (기타 세부 사항들)

다시 살펴보니 기록물 생산 근거나 왜 그게 있을 수밖에 없는지는 청구서를 작성할 때 쓰지 않았는데 향후 청구 건에 대해서는 꼼꼼히 살펴야겠다. 데이터저널리즘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보다 데이터(자료) 수집이라고 생각하는데 매번 국내 정보공개청구만 이용할 게 아니라 국내 이슈와 관련해서 미국 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나 정보를 기사에 활용해보는 것도 계속 고민 중이라 그간 실패를 기록으로 남겨봤다.

유용한 정보

글을 쓰다가 찾아 보니 정보공개센터에서도 미국 CIA에 정보공개청구한 경험을 공유했다.

한국에서도 CIA에 정보공개청구할 수 있다! (2020.1.29 업데이트)



FOIA가 이슈가 됐던 사건 중 하나는 힐러리 클린턴(당시 국무부 장관)의 개인 이메일을 워싱턴 DC 연방지법 판사가 국무부 웹사이트에 공개할 것을 주문

https://www.npr.org/sections/itsallpolitics/2015/04/02/396823014/fact-check-hillary-clinton-those-emails-and-the-law

화, 2020/11/1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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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포구의회 및 마포구청 업무추진비 정보공개청구 관련 jtbc 보도 tbc는 지난 10월 6일 유동균 마포구청장이 업무추진비를 청구한 시민단체에 소주나 한잔하자며 회유를 시도한 사실을 보도했다.▲ 마포구의회 및 마포구청 업무추진비 정보공개청구 관련 jtbc 보도

지난 10월 6일 JTBC에서는 '풀뿌리' 썩는 지방의회' 기획으로 기초의원의 비리와 업무추진비 오남용 실태를 보도했다. 놀랍지도 않았다.

    

사실 정보공개센터에서는 지난 2015년부터 매 때마다 지방의회 의원들 업무추진비를 청구하고 살펴봐 왔기 때문에, 이제 웬만한 사례에는 감정이 동요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 서울 마포구 사례는 달랐다. 단순히 몇몇 의원들의 '법카' 오남용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 카르텔이 시민들 감시를 피해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고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지가 보도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세금미식' 구의원에 '문제발언' 구청장... 마포주민 속 터진다

"여야 막론 얼룩진 마포구"... 보다 못한 주민들이 나섰다

보도에선 마포구의회 의장단 업무추진비 청구와 더불어, 마포구가 시민의 정보공개청구를 묵살한 사실을 다루었다. 마포구청 위생과장이 정보공개 청구를 한 시민단체에 '후원금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도, 구청장이 나서서 '소주나 한잔하자'며 회유를 시도한 듯한 정황도 충격적이었지만, 자치단체가 당연히 공개해야 하는 정보마저도 이렇게 손쉽게 비공개한 뒤 계속 공개하지 않는 '배짱'을 부릴 수 있다는 현실이 더욱 뼈아프다. 

'업무추진비'는 시민 감시 상징과도 같은데... 이렇게 손쉽게 '비공개'하는 마포구

정보공개청구는 시민들이 공공기관에서 생산·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로, 1998년부터 시행돼왔다. 정보공개제도가 도입되면서 시민사회에서 가장 먼저 청구했던 정보는 바로 현재 업무추진비에 해당하는 '판공비'였는데, 당시 판공비는 그야말로 기관장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는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정부를 상징하는' 비용이었다(참여연대 빛나는 활동 중 '판공비 공개운동'). 

20여년 전 당시만 해도 판공비 사용내역과 영수증을 공개하라는 시민들 요구는 마치 국가행정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여겨졌고, 이에 따라 2000년대 초반까지 수많은 소송·싸움을 거친 뒤에야 점차 공개될 수 있었다. 2004년 정보공개법 전면개정으로 사전공표제도가 강화되면서 중앙정부와 일부 지자체부터 업무추진비가 정기적으로 공개됐고, 2011년부턴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전 공공기관이 업무추진비를 주요 행정정보로서 미리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이 시기를 지나 2020년에 이른 지금, 업무추진비는 엄연한 공공의 세금이며 그 사용처를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고 할 수 있겠다. 업무추진비에 대한 정보공개는 이렇듯 정보공개제도의 발전과 투명성 강화의 흐름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시민감시의 상징과도 같은 항목이라고 할 수 있다.



▲ 정보공개제도 도입과 함께 시작된 각 지역의 판공비 공개 운동


하지만 '판공비 공개 운동'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기본 중의 기본인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라는 정보공개청구마저도 무시되고 있는 곳은 적지 않다. 의회가 행정기관을 감시하지 않고 오히려 결탁돼 있는 곳, 지원사업 등으로 행정이 개인에게 쉽게 이익이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곳, 이른바 카르텔이 형성된 많은 지역에서 정보공개청구로 행정 권력을 감시하는 것은 상당히 고되고 어렵다.

서울 마포구에서 업무추진비 청구에 대해 '양이 많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비공개'를 했다고 당당하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것은, 현행 법마저도 무시하는 행정 권력의 자의적인 비공개 행태가 통제되지 않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니꼬우면 행정심판이나 소송을 해라'(행정심판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기본 3개월 정도가 소요되며, 소송에는 통상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라는 막가파식 태도를 마주한 곳곳의 지역 활동가, 시민들이 얼마나 많겠나. 

'양이 많아 비공개'라니... 투명성에 대한 기관 책무, 더 강하게 규제돼야

몇몇 공공기관들의 두둑한 배짱을 확인할 때마다, 무엇이 이런 '막장 행태'를 가능하게 만드는가를 고민한다. 일단 정보공개법에는 기관의 악의적 비공개에 대해 책임을 묻는 처벌 조항이 없다. 정보공개센터에서는 지난 2017년부터 현재까지 서울 마포구처럼 기관이 악의적으로 비공개로 일관하는 경우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정보공개법 개정을 제안해왔고(링크), 처벌에 관한 규정을 포함한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부정부패와 비리는 밀실이 보장될 수록 자라날 수 밖에 없고, 악의적 비공개는 사회적 불신을 키우기에, 투명성에 대한 권력기관의 책무는 지금보다 훨씬 강하게 규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보공개 및 예산사용을 관장하는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의 업무추진비 내역 공표에 대한 표준지침 역시 아직은 허술하다. 행안부에서는 지난해부터 전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정보공개 종합평가'를 진행해 사전정보공표를 평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각 기관이 업무추진비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주기와 공개의 수준이 모두 천차만별이다. 대부분 기관은 '간담회', '직원 격려' 등 최소한의 용도 정보와 일자, 금액 등 최소한의 정보를 공개하고 있고, 카드내역서 등 세부적인 내용은 청구를 통해서만 받아볼 수 있다.

기관마다 사전 공표를 꼭 하게 하고, 시민들 관심도가 높은 정보들은 별도로 청구를 하지 않아도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지침을 강화하는 것이 마포구 같은 사례를 방지하고 공무원들도 정보공개청구 업무를 오히려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따라 정보공개센터에서는 열린 정부를 위한 국제협약인 '오픈가버먼트 파트너쉽(OGP)'의 국내 계획으로 1)업무추진비를 지출일시, 행사(사업)명, 지출목적, 지출대상, 지출대상 인원 수, 지출장소(상호), 구매내역, 지출금액 등으로 세분화해 공개하고, 2)카드 지출내역을 함께 첨부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업무추진비 투명성 강화> 제안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주무관청인 행정안전부에서는 공개 표준을 강화할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카드 지출내역 공개에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서울시 마포구청장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2020.09) 마포구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구청장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을 살펴보면 집행장소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 마포구청장 업무추진비 집행내역 (2020.09) 마포구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구청장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을 살펴보면 집행장소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몇몇 자치구에서는 조례 입법을 통해 구나 의회의 업무추진비 사용 및 공개 규정을 자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지난 14일 제정된 '서울 서초구의회 업무추진비 공개에 관한 조례'는, 이전까지는 미리 공개되지 않았던 구의회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다음 월별로 구의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한편, 서식과 지침에 그 용도와 대상을 더 명확히 기술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업무추진비 사용에 대한 투명성을 높이고 시민 감시를 더 많이 보장 할 수 있게 됐다.
이 또한 주민들 요구와 지방의회의 각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문제가 불거진 서울 마포구에서도, 분노한 주민들이 대책위를 꾸려 대응에 나섰으니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도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다. 

▲ 마포구 공직자 부정부패 주민대책위원회 기자회견 10월 19일, 마포구 공직자 부정부패 주민대책위원회가 정보공개청구와 보도를 통해 드러난 마포구 공직자 비리를 규탄하고 대응을 선포하고 있다.▲ 마포구 공직자 부정부패 주민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지역구의 기관장, 지방의회 의원들이 업무추진비를 남용하는 행태는 이미 너무나 오랫동안 지적돼 온 문제였다. 지난 2018년 정보공개센터에서도 이미 마포구의 사례도 공익감사를 청구한 바 있었지만, 감사원에서는 '법률 위반 사항이 없다'는 이유로 특별한 처분을 내릴 수 없다고 결정했다. 

업무추진비 사용에 대한 규정 자체도 문제이지만, 시민들의 감시를 피해 뿌리내리려는 지역의 카르텔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정보공개를 위한 싸움과 제도 변화가 꼭 필요하다. 권력 남용·비리에 대한 감시는 권력이 존재하는 한 늘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 내용이 '20년 전 논의에서 왜 변한 게 없는가'에 대해 우리는 치열하게 반성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업무추진비의 오남용 사례에서 한단계 나아간 논의와 비판이 이뤄질 수 있길 바란다.

토, 2020/10/31-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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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센터가 앞으로 [민중의 소리]에 한 달에 한 번씩 '공개사유'라는 이름의 칼럼을 연재합니다. [이화동 칼럼] 카테고리로 홈페이지에도 함께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김조은 활동가가 'n번방 가입자 신상공개'를 주제로 첫번째 칼럼을 썼습니다.

많은 관심과 응원, 공유와 후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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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사유] N번방 가입자 신상공개, 왜 필요한가?


김조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


최근 'N번방 사건'으로 대표되는 성 착취 동영상 제작 및 유포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주범들뿐만 아니라 혐오범죄가 자행될 수 있도록 돈을 지불하고 영상을 시청한 가입자 모두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강력하게 이어지고 있다. 신상공개는 사실 인권과 범죄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이 직결된 상당히 민감한 문제이며 많은 인권운동가들은 신상공개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최소한 유보적 태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번 ‘N번방 사건’만큼은 지금까지의 신상공개 요구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흉악범의 신상공개는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한 조치로서 어김없이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범죄자에게 낙인을 찍어 재사회화를 어렵게 한다는 측면에서 범죄예방의 효과도 크지 않으며 이미 법적 처벌을 받은 범죄자에 대한 이중처벌의 소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텔레그램에서 불법 성 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20.03.25ⓒ민중의소리텔레그램에서 불법 성 착취 영상을 제작, 판매한 n번방 사건의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에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2020.03.25ⓒ민중의소리





나는 그동안 정보공개 운동에 몸을 담아온 활동가로서, 시민의 알 권리가 흉악범의 신상공개 문제에서 유독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종종 신상이 까발려지는 것 자체가 공익인 것처럼 호도함으로써 '알 권리'가 본디 사회적으로 생산되는 정보에 대한 접근과 정치적 의사형성을 다룬다는 데에서 담지하고 있는 공공성을 삭제시켜왔기 때문이다. 흉악범의 모습, 가정환경과 교우관계, 그동안의 언행 등 범죄자의 서사에 몰두한 수많은 보도들은 범죄가 드러내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공론장을 형성하기보다는 '특별한' 개인에게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더욱이 신상정보의 공개가 '공익'의 종착지로서 제시되는 구도는 피해방지와 안전을 위한 해결책을 '알아서 피하라'는 식의 개인적 차원에서 머무르게 만들어 오히려 공권력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제공하기도 했다.




N번방과 성 착취 관행의 민낯,

어떤 사례를 남길 것인가


이와 같이 신상공개의 '부작용'에 대한 합리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N번방 가담자에 대한 신상정보공개 요구는 보다 전환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성 착취 동영상 구매자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는 수많은 여성들의 구체적인 현실 진단과 정치적 결단 속에서 등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요구는 성 착취라는 극도로 폭력적인 범죄를 '야동' 제작쯤으로 축소시키고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인식과 '본 것만으로는 절대 처벌되지 않는다'는 남성들의 공공연한 공모, 그리고 성범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처벌의 역사 속에서 점점 더 크게 자라온 성 착취 관행과 범죄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또 이제는 '죽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이 사회와 인식구조를 바꿔내야만 하며, 그 선행 조치로서 처벌 형량 강화, 구매자를 포함한 철저한 처벌, 그리고 전례 없는 대규모 범죄집단에 대한 신상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2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N번방 신상공개 청원에서 청원자는 "가담자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을 거라면 신상이라도 알려 달라"고 말하며 신상공개 이전에 공식적인 처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재까지 성범죄자가 실제로 받는 형량은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에도 2, 3년만 지나면 사회에 복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상공개는 최소한의 방어 및 응징 수단으로서 요구되는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의 구형과 판결에 비추어 보았을 때 현행 법제도는 전혀 신뢰할 수 없고, 이 때문에 여성들은 자구력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해결방법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번 사건에서 '신상공개'는 익명성에 기대어 성범죄를 저지르고, 아마 걸리지 않을 것이며 걸리더라도 벌금이나 집행유예 정도로 마무리될 것이라 예상한 많은 가담자들에게 엄청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신상공개가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는 매우 크고 중요하다.



3월 20일 시작된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00만명을 넘기며 역대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청원이 됐다.ⓒ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3월 20일 시작된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00만명을 넘기며 역대 가장 많은 동의를 얻은 청원이 됐다.ⓒ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범죄 가담자들의 사이에서는 신상공개가 인권침해라는 여론이 높다. 하지만 모든 범죄에는 어느 정도의 기본권 제한이 따라붙는다. 심지어 범죄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기본권들이 충돌할 때에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보장의 여부가 조정된다. 이를테면 신상공개에는 취업의 제한이 병행되는데, 성범죄자에 대해 교사, 청소년 관련 업종 등 특정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것은 아동청소년이 최대한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기본권 제한의 정도와 양상은 그것이 어떠한 종류의 범죄인지,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이와 같은 범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만약 그 범죄가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성범죄,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조직적인 혐오범죄라면 범죄자의 처분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지금보다 단호하고 엄격한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사람들의 분노는 N번방 참가자들에 대한 무차별 신상털기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제도가 사회적인 공분을 적절하게 중화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렇기에 더욱 공권력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가 중요하다.


N번방의 사건에서 가담자 개인은 단순히 특정 개인만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공식적으로 파악된 수만 약 6만여 명, 아마 실제로는 이를 훨씬 넘어서는 수의 사람들이 성 착취에 가담해왔을 것이고, 이는 우리 사회의 상당수가 여성에 대한 혐오문화를 공유한다는 방증일 것이다. 때문에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동일한 종류의 성범죄를 허용할 것인지, 허용하지 않을 것인지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과 일련의 처리 과정들은 주요한 경험으로서 사회구성원들에게 학습될 것이다. 그리고 N번방 사건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성 착취물을 구매하고 영상을 시청하는 행위를 허용하는 메시지로 남게 된다면 이는 또다시 혐오문화의 자양분이 되어 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신상공개가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지금은 성범죄 영상을 구매하는 것 자체, 보는 것 자체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비난이 필요하다. 적어도 가담자들이 그러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현실세계의 엄중함을 보여주는 것이 보다 중요한 때이다.

수, 2020/04/08-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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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센터가 민중의소리에 연재하고 있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정보공개센터 조민지 사무국장


2020년 7월 정부는 ‘한국판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디지털 뉴딜’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향후 데이터 기반 경제진흥을 위해 공공데이터 14만 2천 개를 신속하게 개방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의 공공데이터 생산과 관리, 개방 수준을 생각하면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공공데이터의 개방은 단순히 데이터 건수에 집중되어선 안 된다. 2013년 공공데이터법 시행 이후 현재까지 약 3만 6천여 건이 공개되고 있지만 공공데이터가 다양한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활용된 사례는 매우 미미하다. 그 이유는 개방된 데이터가 분석이나 활용할 만큼의 수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9년 행정안전부에서 진행한 <공공데이터 제공 운영실태평가>에서 전체 공공기관 중 43%가 최하위 단계인 ‘미흡’ 등급을 받았다. 평가 영역 중 데이터 품질과 데이터 활용 항목이 가장 낮은 점수를 차지했다. 정부 스스로의 평가 기준으로도 절반 가까운 공공기관들이 공공데이터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번 디지털 뉴딜 정책에서는 당장 내년까지 14만 개를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평가에서조차 자명하게 드러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공공데이터의 품질과 활용에 대한 고민 없이 실적 채우기를 위한 질 낮은 공공데이터만 개방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7월 23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디지털 뉴질 사업추진 언론브리핑에서 이영로 지능형인프라본부장이 핵심 어젠다를 발표하고 있다. 2020.07.23ⓒ김철수 기자7월 23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디지털 뉴질 사업추진 언론브리핑에서 이영로 지능형인프라본부장이 핵심 어젠다를 발표하고 있다. 2020.07.23ⓒ김철수 기자

특히 이번 디지털 뉴딜의 데이터 개방정책에서는 정부 투명성 강화를 위한 공공데이터 개방 내용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공직 감시에 관한 데이터, 예산 사용에 대한 데이터 개방은 공공데이터 개방정책이 추진되기 훨씬 이전부터 시민사회가 정부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위해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의 개방은 이번 계획에서도 제외되었다.

디지털 뉴딜의 데이터 개방정책에서

정부의 투명성 강화를 위한 공공데이터 개방은 빠져

고위공직자의 재산을 매년 신고하게끔 하고 이를 공개하는 이유는 고위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하게 재산을 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매년 재산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검열하게 하는 자정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런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야말로 공직 감시를 위한 대표적인 공공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시민들이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그것이 공직과 관련성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여간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재산정보가 ‘데이터’가 아닌 ‘문서’ 형식으로 공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활용이 불가능한 PDF 파일을 편집 가능한 형태로 변환하고 몇 번의 정제작업을 거쳐야 데이터화 되어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시민들이 재산공개 때마다 접하는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신고 누락, 다주택 보유 등의 언론 기사들이 이런 수고스러운 작업의 결과물들이다.

그런데 만약 재산공개 내역이 처음부터 데이터 형식으로 제공된다면 누구나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을 손쉽게 감시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정보공개센터는 2년 전부터 국회의원의 재산공개 정보를 엑셀로 가공하여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모두에게 공개되는 정보라면 누구나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알권리가 충족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위공직자 재산은 법률로 공개의무가 정해져 있어 어렵게나마 시민들이 확인할 수 있다. 공직 감시를 위해 당연히 공개되어야 할 공무원 비위별 징계현황, 정치자금 사용 내역 등의 정보는 데이터 개방은커녕 아예 공개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이 가장 궁금해 하는 공공데이터는 단연 예산사용에 관한 정보다. 물론 정부의 예결산 현황은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PDF 파일로 공개하는 수준이며 극소수 몇몇 기관만이 엑셀파일 형태로 공개하는 수준이다. 공공기관과 체결한 각종 위탁계약, 공사계약, 수의계약 등의 정보는 일부만 확인할 수 있거나 계약 건별로만 확인 가능한 실정이다. 관련 문서는 공개되고 있을지언정 데이터가 공개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얼마 전 박덕흠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으로 있던 5년간, 박 의원과 가족들이 대주주로 있는 건설사들이 국토교통부와 그 산하 기관들로부터 공사수주로 773억원의 계약을 했다는 것이 밝혀져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그는 현재 이해충돌과 피감기관이 뇌물성으로 공사를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고 직권남용과 부패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되었다.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 내역, 정부의 계약이나 예산집행이 데이터 형태로 공개되어 있었다면 국회의원이 권력을 제멋대로 쓰며 사리를 채우는 일을 5년 동안이나 모르는 채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7월 21일 오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디지털뉴딜, ‘국민사생활’ 팔아 경제성장하겠다는 것 한국판뉴딜 중 진단 기자설명회에서 국민의 정보인권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2020.07.21ⓒ김철수 기자7월 21일 오전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디지털뉴딜, ‘국민사생활’ 팔아 경제성장하겠다는 것 한국판뉴딜 중 진단 기자설명회에서 국민의 정보인권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2020.07.21ⓒ김철수 기자

미국 정부는 ‘재정데이터시스템(www.usaspending.gov)’을 통해 매년 어디에 어떻게 재정을 사용하고 있는지 상세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사이트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산업체인 ‘록히드 마틴’만 검색해 봐도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예산금액과 세부내용이 무엇인지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재정데이터가 개방되면서 1억 5천 7백달러의 지출낭비를 방지할 수 있었고, 잠재적으로는 5조 달러 이상을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이 이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재정정보 데이터 개방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예산사용 데이터나 공직감시에 관한 데이터 적극 개방해야

개방되는 정보의 수치보다 제대로 된 개방정책 필요

미국의 사례처럼 한국도 정부에서 예산사용 데이터나 공직감시에 관한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개방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부의 투명성이 담보되는 공공데이터 개방 없이는 어떠한 정책도 시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기 힘들다. 14만여 개의 공공데이터가 개방된다는데도 전혀 기대가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9년 OECD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공공데이터 개방지수는 회원국 중 1위, 같은 해 정부 신뢰도는 36개국 중 22위로 국민 10명 중 6명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정부 정책에 대한 알권리가 충족되지 않는 이상, 공공데이터가 무수히 개방되더라도 여전히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디지털 뉴딜은 코로나19 이후 경제 사회구조 전반이 디지털로 전환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 중심에 막대한 양의 공공데이터 개방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공공데이터의 개방에 우선되어야 할 정책은 몇 만 개의 데이터를 공개하겠다는 양적인 수치가 아니다. 반드시 공개되어야 할 데이터가 제대로 공개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뉴딜에서 이야기하는 공공데이터 개방이나 활용은 단순히 경제성장이나 경제회복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디지털 뉴딜은 몇몇 주요 기업들과 경제산업성장만을 위한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오롯이 기업을 위한, 기업이 필요한 공공데이터 개방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공데이터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활용될 수 있어야 하며 시민 누구나 공공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요구해왔던 예산사용 데이터나 권력감시를 위한 데이터를 포함해 시민을 위한, 시민이 필요로 하는 공공데이터 개방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화, 2020/10/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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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센터가 민중의소리에 연재하고 있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정보공개센터 김조은 활동가


코로나 감염 상황이 악화된 최근 몇 주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회의를 비롯한 주요 의사소통은 '구글 미트'로 진행하고, '생존신고'라고 이름을 지은 그룹채팅방에서 동료들과 각자의 점심 메뉴를 공유한다. 개인적으로 참여하던 세미나와 모임 역시 화상으로 진행하거나 무기한 연기되었다. 식당이나 카페를 가는 것도 부담스러우니 먹거리와 생필품은 온라인 마켓 배송이나 배달 어플로 해결한다.

코로나의 창궐과 함께 등장한 이른바 '언택트'시대. 우리의 일상을 이루던 물리적인 만남과 체험이 정보통신으로 대체될 수 있지 않겠냐는 이 공세적인 물음은 어느새 '어쩔 수 없는 변화'라는 위협으로 변모해있다. 시장은 이미 마트와 점원 대신 'e-커머스'와 '키오스크'로 어느때보다 빠르게 재편되고 있고,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위한 펀드까지 조성해 디지털, 비대면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이제야말로 '언택트' 문화를 '뉴 노멀'로 받아들이자는 기획 앞에서, 고민과 우려가 깊어진다. 마치 모두가 이러한 흐름을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저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는 중에도, 어떤 목소리들은 수면 아래 묻혀있기 때문이다.

'이거는 아무나 쓸 수 있는겨? 어떻게 쓰는 거여?'

자가격리에 가까운 생활로 몸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위기감이 들때,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고 강변을 한바퀴 돌고 오는 것이 나의 낙이다. 시내에는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누구나 빌려 탈 수 있는 자전거가 무려 2만여대, 1200여 곳의 대여소에 설치되어 있으며, 그것은 서울에 대한 나의 애정도를 20%는 상승시키는 요인이었다. 하루는 신나게 따릉이를 빌리는 나에게 한 할아버지가 다가와 '이건 어떻게 쓰냐'고 물었고, 그에 나는 '아 이거 아무나 쓸 수 있어요. 핸드폰으로 하시면 돼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말을 뱉은 그 순간, 나는 그것이 거짓말임을 느끼고 있었다. 따릉이 앱을 설치하고 카드를 등록해 실제 빌리기까지 과정이 꽤 까다로운데, 과연 견디고 할 수 있을까? 스미싱이라고 생각하려나? 아니 일단 스마트폰을 안 쓸 수도 있잖아? 심지어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새롭게 설치하고 있는 '뉴따릉이'는 QR코드를 이용해서만 대여할 수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없으면 아예 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서울시의 공공자전거 따릉이ⓒ서울시 제공서울시의 공공자전거 따릉이ⓒ서울시 제공

신기술이 무용지물이 되는 사례는 따릉이뿐만은 아니다.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도입되고 있는 무인 점포의 '키오스크'는 일정한 키를 넘지 않으면 사용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글자의 크기, 터치패드의 감도나 음성서비스 제공에 대한 표준도 없다. 삼성 '갤럭시' 시리즈처럼 일반적으로 쓰이는 스마트폰도, 콘텐츠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와 어플리케이션도 시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장애인이 접근권과 관련해 겪는 '웃픈' 상황에 대해서는 유튜브 채널 '당장만나'를 살펴볼 것을 추천한다.)

생각해보면 인터넷에 연결된 전자기기를 사용해 원하는 정보를 얻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많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컴퓨터등의 물리적 기기를 살 수 있어야 하고, 인터넷에 연결되기 위해서는 매월 통신요금을 지불 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환경에 대한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에 이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기와 인터넷 사용법을 배울 시간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정보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일정한 서비스가 제공 되지 않으면 앞서 말한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도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있다.

'디지털 포용'이 아닌 '정보접근권의 보장'을

'언택트'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자는 기획의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현재 진행형의 현실을 무시한 채 인터넷, 전자기기 사용을 누구나 가져야 하는 '기본적 소양'으로 설정한다는 것이다. 사실 디지털 사용환경에 따른 정보불평등은 전자매체를 통한 정보전달이 주류화 되면서 계속 존재했고 점점 심화되어 왔지만, 그동안 이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정치적 고민과 정책적 의지는 미미했다. 이제까지 정부는 정보취약계층의 디지털 기기 접근 및 활용 수치가 늘었음을 근거로 매년 정보격차가 완화되고 있다고 발표하는 한편, 취약계층을 교육시켜 '디지털 포용'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을 내세워왔다. 하지만 점차 인터넷 사용자가 늘어나는 것과 현존하는 정보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에 외식업체의 필수품이라 할 키오스크 주문기가 전시돼 있다.ⓒ뉴시스프랜차이즈 창업박람회에 외식업체의 필수품이라 할 키오스크 주문기가 전시돼 있다.ⓒ뉴시스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정보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것'은 공론의 영역에 참여하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이고, 사회전반의 ‘정보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알 권리'의 보장 여부는 사회문화적 차별, 개인의 구체적인 불이익, 나아가 생명과도 직결된다. 때문에 우리는 디지털 중심의 정보전달 체계를 '지금 현재, 이 정보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존재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성찰해야 한다. 만약 '언택트' 시대, 혹은 정보산업 육성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정보를 수집하고 필수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막혀버린다면 그것은 '정보격차'가 아닌 '기본권 침해'와 차별로 불려야 할 것이다.

디지털 산업은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발전하겠지만, 정보화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규칙을 정하고 이를 실행시키는 것은 입법과 행정, 공공의 권력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정부가 '디지털'과 관련한 정책을 세운다면 먼저 공공을 중심으로, 기관이 생산하는 정보 및 서비스의 특징이 무엇인지, 각 계층과 상황에 따라 접근을 보장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설계 단계부터 필수적으로 고려토록 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구시대적'인 대면, 우편, 전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이러한 방법을 유지하고 사용해야 한다. 코로나19가 보여주었듯 재난은 언제나 현재 상황이 될 수 있고, 이때에 우리가 설정해야 할 기준은 가장 취약한 사회 구성원이 정확한 정보를 적절한 때에 알고, 대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화, 2020/10/1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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