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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남은 '공직자 재산공개', 이것만 바꿔도 감시가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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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남은 '공직자 재산공개', 이것만 바꿔도 감시가 쉬워진다

admin | 화, 2021/03/16- 04:01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전체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부동산 투기 스캔들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에 이르기까지 신도시 예정지 인근에 토지를 구입한 사례들이 언론을 통해 속속 알려지고 있습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이런 투기 의혹을 검증할 때 우선적으로 살펴보는 1차 자료가 공직자들의 재산공개 내역입니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부장판사 등 고위공직자들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자신들의 재산 내역을 신고하고, 매년 3월 말 경에 이를 공개하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 3월 마지막 주에 공개하고 있으니, 올 해의 재산등록 내역도 열흘 후면 모두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때 예금, 부동산, 증권에서부터 채권, 지식재산권, 보석류, 회원권, 자동차 등 다양한 재산들을 공개하는데, 차명 투자나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공직자 본인 뿐 아니라 배우자, 직계존비속의 재산도 함께 공개됩니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쏟아지는 3월

이번 사태로 공직자윤리법 상 재산신고와 공개 대상인 공직자의 범위를 더욱 넓혀야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습니다. 3월 들어서 벌써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7건이나 발의가 되었는데요, 내용은 대동소이합니다. LH공사처럼 부동산과 관련해서 미공개정보를 이용하거나 이해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공직자들에게 재산을 등록하고 공개하도록 하여,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감독하자는 것입니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기를 막기 위해 LH공사와 같은 공기업까지 재산공개 의무를 확대하자는 법안에 당연히 찬성합니다. 그런데, 딱 2%가 부족한 법안들입니다. 공직자들의 재산 내역을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 꼭 바뀌어야 할 내용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공개는 하지만, 활용하긴 불편한

 

현재 공직자의 재산공개 방식을 규정하고 있는 공직자윤리법 제10조제1항에서는 재산 내역을 '관보 또는 공보'에 게재하여 공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신고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전자관보 사이트에 접속해야 합니다. 1차적인 문제는, 이 재산신고 내역이 한 군데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대법원공직자윤리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각각 따로 관보 파일을 업로드하는데,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관할하는 기관만 해도 대통령, 중앙부처, 17개 광역시도에 이르기까지 모두 80여 곳에 가깝습니다.

 

이 많은 내용을 하나하나 클릭해서 다운로드 받다보면 혈압이 오를 수 있습니다.

 

기초지자체까지 감시의 범위를 넓히자면 더 골치 아파집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 강남구의 구의원이나, 서울환경공단 이사장의 재산공개 내역은 서울시 홈페이지에 들어가, 서울시보를 찾아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재산공개 대상인 공직자들이 특정한 신도시 지역에 땅을 가지고 있는지 전수조사를 해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전자관보 사이트에서 80여 곳에 이르는 파일을 전부 다운로드 받고, 17개 광역시도 홈페이지에도 모두 접속해서 하나하나 파일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만 해도 이런 형식의 표 300개가 줄줄이 이어집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관보나 공보는 보통 PDF 파일로 업로드되며, 게다가 재산공개 양식도 검색과 필터링, 정렬 등이 불가능한 이상한 표 형태로 올라온다는 점입니다. 검색/정렬/필터링 등을 용이하게 하여 내역을 살펴보기 위해선 다운로드 받은 PDF 파일을 csv 파일로 변환한 다음, 구조화된 형태로 정제를 해야 비로소 재산 내역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위 이미지의 표를 정제하면 이런 형태가 됩니다.

 

재산공개 내역을 데이터 형태로 변환해야 누가 가장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지, 신도시 지역에 땅을 가진 사람이 누군지 편리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프로그래밍 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은 관보나 공보에 실린 표를 쉽게 변환하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정제하도록 코드를 짜서 시간을 확 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시민들이 코딩에 익숙한건 아니죠. 그런 기술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은 살펴보기 어려운, 접근성이 떨어지는 정보입니다.

 

공직자 재산공개는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상시적 감시를 통해 공직자들의 재산형성 과정에서 불투명한 부분은 없는지 검증하기 위한 목적의 제도입니다. 그러나 재산공개 자료가 여기저기 퍼져 있고, 이렇게 살펴보기 힘든 서식과 형태로 공개하다보니 상시적인 감시가 어렵습니다. 이번처럼 투기 의혹 사건이 터져서, 공직자들의 재산내역을 살펴보려고 해도 접근성이라는 문턱이 시민들을 가로막는 셈입니다.

 

 

LH 투기 사건 이후 스프레드시트로 정제한 국회의원 재산공개 내역이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 인기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재밌는건, 모든 공공정보가 이런 식으로 공개되진 않는다는 점입니다. 매년 국세청이 공개하는 고액 상습체납자 명단의 경우, 아주 친절하게 구조화된 데이터 형태로 공개됩니다. 심지어, 지도를 통해서 고액 상습체납자의 주소까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탈세를 막고, 상습 체납자들의 은닉재산 신고를 활성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국세청이 제공하는 고액체납자 명단공개 지도

 

 

공직자 재산공개 자료는 이렇게 불편하게 공개될까요? 공공데이터법 제24조는 "공공기관의 장은 공공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기계 판독이 가능한 형태로 정비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공직자 재산공개 자료는 수정, 변환, 추출이 자유로운 '기계 판독이 가능한 형태'의 자료로 보기 어렵습니다. 법으로 정해놓았으니 어쩔 수 없이 공개는 하지만, 시민들이 감시하기 편하도록 데이터 형태로 제공할 마음은 없다는 것일까요? 도무지 데이터 강국'을 꿈꾸는 나라답지 않은 태도입니다.

 

공직자윤리법, 이참에 이것만은 바꾸자

 

시민들 누구나 공직자들의 재산감시를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선, 먼저 공직자윤리법 제10조제1항부터 손봐야 합니다. 지금처럼 '관보 또는 공보'에만 공개하게 해서는, 재산신고 내역을 살펴보기에 매우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적어도, '인터넷 등을 통해' 라는 한 구절만 추가되더라도 좀 더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개 방식이 가능해집니다.

현재 공직자의 재산등록 및 공개, 재취업 심사 등은 인사혁신처에서 운영하는 공직윤리시스템 홈페이지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만약 이미 존재하는 공직윤리시스템 홈페이지를 활용하여 일반 시민들도 공직자재산 신고 내역을 한번에 살펴 볼 수 있다면 공직자들의 부정한 재산형성을 감시하기가 훨씬 편리해지겠죠.

 

공직자 재산공개제도의 투명성 확대를 위해서 또 한가지 바뀌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재산공개 자료를 살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문을 품을만한 '이상하고 불편한 표'의 정체, 바로 '공직자윤리법 시행규칙 별지 제10호 서식'입니다.

 

 

누가 봐도 데이터로 정제하기 귀찮아보이는 바로 그 양식입니다.

 

한눈에 봐도 활용하기 매우 불편한 표 서식은 2005년 도입된 이래로 무려 16년 동안 큰 변화 없이 계속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 서식이 재산등록을 신고하는 공직자들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불편함이 없을지 몰라도, 재산공개 내역을 살펴보는 입장에서는 매우 막막해지기 마련입니다. 이 서식을 행과 열로 구조화하여, 데이터로 활용하기 쉽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한다면 공직자 재산 감시 작업은 두 배는 편리해지리라 단언합니다.

 

LH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그야말로 쏟아지고 있는 이 시점이지만, 공개 대상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어떻게 해야 시민들이 좀 더 편리하게 재산공개 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지에 주목한 법안은 아직 찾아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공직 사회의 투명성을 위해서 규제 강화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시민들의 참여와 감시의 활성화입니다. 공직자윤리법, 이번에는 제발 PDF와 표 서식 말고 '데이터'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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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16일 국회 의장실에서 정례 회동. 사진: 연합뉴스


어제(11월 16일) 박병석 국회의장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여야는 인사청문회 제도 개선을 위한 여야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번에 합의된 TF에서는 지난 6월 19일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의원 등 45명이 발의한 인사청문회법의 조속한 통과를 위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지금의 인사청문회를 ‘공직윤리청문회’와 ‘공직역량청문회’로 나누어 실시하고 공직윤리청문회의 경우에는 비공개로 실시하자는 것이다. 국회가 이를 추진하는 근거는 인사청문회가 공직후보자의 ‘검증’보다는 신상털기를 통한 인신공격과 망신주기의 장으로 변질되어 공직자 임명이 원활하지 않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는 국민의 입장에서 염치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국회의원들 스스로가 정작 인사청문회제도를 변질시킨 주범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인사청문회는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처음 시행된 제도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공직자들이 공무수행에 적합한 윤리와 전문성 등 상식적인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를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검증하는 절차이다. 지금까지 인사청문회를 통해 부동산투기, 탈세, 논문 표절, 병역 기피, 위장전입 등 고위공직 후보자들의 부적절한 자질과 부패 정황들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국민들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부정적 측면보다 투명성과 책임성이라는 긍정적인 가치가 더 큰 제도이다.

도덕성 검증 청문회를 비공개로 전환하려는 시도는 사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기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6번이나 반복해서 발의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들어서는 이미 4차례나 발의된 상태다. 따라서 도덕성 검증 청문회 비공개화는 거대 양당이 여당이 되면 으레 발의되는 법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청문회가 비공개화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해당 법안들이 발의만 되면 전면적으로 반발했으며 국회가 국민들의 눈을 무서워하는 최소한의 염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사청문회에 문제가 있다면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인사청문회를 변질시키고 있는 국회의원 자신들이 반성하고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 단지 청문회를 비공개로 전환하는 것은 본질적인 해결이 아니며 제도적인 퇴행이다. 오히려 청문회가 비공개로 진행되면 공직후보자들의 윤리·도덕성의 문제들에 대해 국민 모르게 여야간 정치적 타협거리가 될 우려만 커진다.

결국 정부는 고위공직자 후보의 사전 검증을 허술하게 거쳐 국회에게 정쟁의 덜미를 제공해 놓고 국회를 탓을 하고,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청문회를 변질시켜 놓고 도덕성 검증 청문회가 국민에게 공개된 탓이라 하니, 아무도 반성이 없고 애먼 국민의 알권리만 침해될 위기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이대로 도덕성 검증 청문회가 비공개화는 결국 국민들의 정치 불신과 정부 불신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여야의 ‘도덕성 검증 비공개 추진’을 반대하며 즉각적인 폐기를 촉구한다.


수, 2020/11/18-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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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내 동의 없이 내 정보를 가져다 쓴다?

데이터 3법, 위험하다

 

이상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책임 연구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8일 "데이터 3법이 연내에 통과되도록 국회와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하자 더불어민주당이 10월 30일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정보통신망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 민주당이 말하는 법 개정의 이유는 '데이터 산업 발전'이다.

 

하지만 데이터는 데이터 저장장치에 존재하는 단순한 정보 묶음이 아니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에 대한 정보이고 이들이 살면서 만들어 낸 삶의 이력 그 자체이다. 개인정보는 경제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에 의해 동원될 수 있는 자원도 아니고 연료도 아니다. 이는 개인의 삶의 궤적이며, 역사이고, 존엄성 그 자체이다.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는 정보 주체에게 있고, 개인정보를 활용하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그게 누구이든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데이터 3법' 개정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에 담긴 '가명정보'의 경우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개정안은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으로 그 목적을 한정하긴 하였으나, 통계, 과학적 연구를 매우 폭넓게 정의함으로써 사실상 기업, 개인의 사익 추구를 위한 통계, 연구도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누구든 약간의 기술적 조치만 취하면 정보 주체의 허락 없이 타인의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여당은 '가명화'라는 형태로 개인을 알아볼 수 없게 한 정보에 한정된 것이고, '가명 정보'를 활용하여 개인을 식별하는 행위를 한 경우 무거운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였기에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빅데이터 시대의 데이터 특성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

 

확률의 문제일 뿐 가명정보를 활용하여 개인을 재식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이른 바 빅데이터 시대인 지금은 한 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정보를 대량으로 포함하고 있는 데이터 집합을 사용하여 개인을 식별하는 것은 더욱 쉬워졌다. 데이터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가명정보를 활용한 개인 식별은 쉬워진다. 미국 국립보건원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연구 데이터들을 가명화한 이후 온라인에서 누구나 다운 받을 수 있게 했다가 곧바로 철회한 이유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과징금 등의 처벌 강화 조치는 사후약방문일 뿐 개인정보 재식별과 유출을 막기 위한 원천적 예방책은 아니다. 해커나 데이터 기업들이 벌금이나 과징금이 무서워 법 위반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하다. 이들은 발각될 가능성이 적기도 하지만, 발각되어 벌금이나 과징금을 내더라도 그게 더 이익이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도둑질하고 유출하고 활용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보 주체의 권리 제약이 정당화되려면, 이것이 합당한 공공 이익 목적을 위한 것이고, 동일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침해나 제한의 성격이 약한 다른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 여당이 설득력 있게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과 정부가 주창하는 '데이터 산업 발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보기 힘들다. 정보 주체의 정보인권을 존중하면서 데이터 산업을 발전시킬 다른 수단이 없는 것도 아니다. 데이터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명백히 정보인권 침해이며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 힘들다.

 

정부, 여당의 개인정보 보호법은 인권 보장 측면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크나큰 오욕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생명, 의학 연구 영역에서 발전해 온 생명/의학 연구 윤리의 원칙과 이 법은 정면으로 배치된다. 생명/의학 연구 윤리의 원칙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자발적 동의(Informed consent)'이다. 한국의 생명윤리법 제3조 제2항에서는 이를 "연구 대상자등의 자율성은 존중되어야 하며, 연구대상자등의 자발적인 동의는 충분한 정보에 근거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개인정보 및 생물학적 물질 사용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과학적 연구 참여에 대한 개인의 동의는 연구 수행 기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누가 동의 없이 내 개인정보를 사용하는가도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민간보험회사가 연구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내 의료 정보, 건강 정보를 동의 없이 사용한다고 하는데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데이터 기업이 연구 목적으로 내 정치적 입장, 종교, 성적 취향 등에 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분석한다고 하면 다수가 이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그런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내 동의 없이도 기업이 내 민감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상업적 연구가 아니라 과학적 발전을 위한 연구로 한정하여 법을 적용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아무리 과학적 발전을 위한 연구라 하더라도 한 개인은 자신의 윤리적 신념에 반하는 연구에 참여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가족과 미래 세대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위한 유전체 연구, 인종차별의 근거가 될 가능성도 존재하는 유전체 연구,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근거로 악용될 수도 있는 건강 연구, 유전적 특질을 이용한 생물학적 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도 있는 연구 등에 자신의 개인 건강정보, 유전정보가 동의 없이 사용되기를 원하지 않는 이들이 다수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는 그 최종 결과가 무엇이 될지 연구자조차 예상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최악의 경우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활용한 그 개인정보로 인해 정보 주체에게 해가 되는 연구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 내 동의 없이 사용한 내 개인정보로 인해 내가 불이익을 받아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정보 주체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연구 대상자의 자율성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정부, 여당의 개인정보 보호법 해당 조항은 절대 원안대로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 데이터 산업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공공적 목적에 부합하는 용도에 국한하여 매우 제한적으로 가능하도록 규제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더디게 가더라도 국민적 합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관련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데이터 산업 발전에도 더 좋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http://www.pressian.com/news/review_list_all.html?rvw_no=1661" rel="nofollow">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수, 2019/11/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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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국정원)의 태도 변화가 심상치 않다. 곽노현 전 교육감과 박재동 화백 등의 사찰 문건 관련 정보공개소송에서 대법원이 공개 판결을 내린 후 국가정보원은 사찰 정보에 대해 당사자들에게 전향적으로 ‘적극적인’ 정보공개를 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11월 26일 이재명 경기도지사, 배우 문성근, <버닝> 등의 영화를 제작한 이준동 영화제작자, 故이소선 여사, 故문익환 목사, 故노회찬 의원의 유가족들도 국정원에 사찰 파일 정보공개청구를 하자 국정원은 아예 기조실장이 팀장을 맡고 변호사 직원을 포함하는 ‘민간인 사찰정보 공개를 위한 전담 TF’를 꾸린다고 한다. 이는 분명히 극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현행 정보공개법에는 별다른 처벌과 제재조항이 없어 아무리 대법원에서 공개 판결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그간 공공기관들은 마음만 먹으면 해당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뺌하거나, 공개를 차일피일 미뤄 늑장 공개하거나, 아예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끝까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미루어보면 국정원이 스스로 사찰정보를 당사자들에게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결코 작은 변화라고 할 수 없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본관에서 박지원 신임 국가정보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07.29.ⓒ뉴시스

이런 변화 기류는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국정원 개혁과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첫해인 지난 2017년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를 설치하며 개혁을 시작했으나, 지난 3년간 국내 첩보 업무 이관을 위한 조직개편과 예산삭감 등의 내부 개편이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 진행되었다. 그리고 지난 11월 30일 국내정보수집업무 폐지,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제 법사위와 본회의 통과가 남았지만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은 7부 능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국정원 개혁에 대한 시민사회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이번에 정보위에서 통과된 국정원법 개정안은 국가기관 등에 국정원이 사실조회 및 자료제출 등을 요구할 경우 이에 응하도록 강제하고 있고, 국정원 직원에게 광범위한 조사권을 부여하면서도 정작 수사권 이관은 정작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2017년부터 이어졌던 국정원 개혁의 칼자루와 책임을 다음 정권에 넘긴 것이나 다름 아니다. 즉 다음 정권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국정원 개혁은 언제든지 중단될 수 있는 불안이 내재된 상태다. 이대로라면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 개혁은 용두사미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이명박·박근혜 시절 사찰 파일 공개한 국정원

중앙정보부 시절부터의 폐해 청산은 용두사미 우려

안보 가치 소실된 국내업무 문건 국민에게 공개해야

국정원 마크 ⓒ김철수 기자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국정원 개혁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중앙정보부 설치 이후 현재까지 지난 60년간 국정원이 국가기록원에 이관한 기록은 단 72건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었다. 이마저도 2014년부터 단 네 차례 이관이 이루어졌고 2018년 이후로는 아예 단 한 건도 이관된 바가 없다고 밝혀져 오히려 정보공개의 측면에서 보면 국정원 개혁의 저의마저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다. ‘본질적 차원의 변화’는 결국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서 나온다는 단순한 진리를 간과하지 않았다면, 국정원 개혁의 시작은 대외 안보적 가치가 소실된 국내업무 문건들을 비밀해제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지난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의 활동도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민간인 사찰 및 정치개입,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원 특활비 청와대 상납 등 직전 보수 정권들의 국정원과 관련된 부정과 치부를 밝히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결과적으로 1961년 중앙정보부 시기부터 오늘날 국정원까지 60년에 이르는 현대사에서 정보기관 본질과 한국 사회에 끼친 폐해들을 오롯이 마주하게 하지는 못한 셈이다.

이번 국정원법 개정안에 따라 수사권 이관이 3년간 유예되며 국정원 개혁의 종결도 결국 3년간 유예된 셈이다. 따라서 향후 3년간 국정원 개혁의 최대 숙제 중 하나는 특정 세력의 정치적 유불리와 관계없이 대외 안보적 가치가 다한 국내업무 문건들을 과감하게 비밀해제하고 이들을 국민들 앞에 공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신설될 국내업무를 전담할 수사기관도 이를 반면교사 삼아 국정원의 어두운 길을 다시 밟지 않을 수 있다.

화, 2020/12/0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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