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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해수면 상승의 연구조사는 適時를 요하는 긴급 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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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해수면 상승의 연구조사는 適時를 요하는 긴급 현안이다

admin | 금, 2021/03/12- 20:15

호주와 중국 연구자들의 새로운 연구는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인간활동으로 인해 향후 수십 년 안에 해수면이 위험한 수준으로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최근 유엔보고서의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기후위기의 경고가 매우 시급한 현안이라는데 무게를 더합니다.

영국의 홀더네스 해안에 있는 도로가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바다로 무너지고 있다.

특히 고수준의 온실가스배출 시나리오에 따르면, 2100년경에는 해수면이 심각한 수준으로 상승할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UNSW(뉴사우스 웽리즈대학)의 John Church.”

자연 커뮤니케이션Nature-communication연구저널 최신호에 실린 뉴사우스-웨일즈 대학 (UNSW)의 성명은 ‘인공위성 및 177군대의 조류측정 게이지의 관측에 의거하여 해수면의 상승을 예측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기후변화에 관한 UN의 IPCC( 정부간패널)  제5차 평가보고서 (AR5 )와 변화하는 기후해양 및 극저온권 ( SROCC )에 관한 해당기관의 특별 보고서 ( RCP기반 – 다양한 대표농도 경로)의 예측을 검토했습니다. RCP는 인류의 온실가스배출이 끼치는 영향에 대한 시나리오를 단계별로 예측히는 경로의 기준입니다.

(참조용 정보: RCP 2.6 – 지구온난화가 산업화 시대이전의 상태를 유지하는 파리협약의 이상적 시나리오. / RCP 4.5 –온실가스 저감정책이 상당히 실현되어 파리협약에 접근하는 시나리오. / RCP 6.0 – 온실가스 저감정책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중간단계의 시나리오. / RCP 8.5  – 회복이 불가능한 수준(>3.7도)으로 지구가 병든 상태를 예측하는 시나리오).

연구진은 177 개의 위치측정에서 얻은 지구 및 해안해수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 가지 RCP 시나리오에 따른 보고서의 가설예측이 2007 년부터 2018 년까지의 같은 기간 동안 인공위성 및 조수관측의 자료와 상당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즉, “우리의 분석방식인 가설모델이 실제의 관측값에 가깝다는 것으로, 향후 수십 년 동안 일어날 일에 대한 현재의 예측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UNSW의 기후변화 연구센터의 일원인 John Church가 말했습니다. Church교수는 가설모델의 예측이 전세계적으로 정확할 뿐만 아니라 할당된 단위 지역수준에서도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11 년의 한정된 짧은 비교기간 때문에, Church교수는 “특히 고배출 시나리오의 경우, 2100 년을 넘어서면 예측보다 심각한 해수면의 상승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협약의 약속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라고 주장합니다.

파리 기후협정은 금세기에 지구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수준과 비교하여 2 ° C (바람직하게는 1.5 ° C) 이하로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현재 배출량의 공약도 이상적인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에 이미 적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UN 보고서의 세 가지 연구경로는 RCP2.6, RCP4.5 및 RCP8.5 각각의 설정기준에 따른 것으로, 첫 번째 및 두 번째 경로는 파리협약의 목표에 근접하지만, 마지막 기준의 경로는 매우 심각합니다.

“최근 해수면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현재의 세계적 추이가 RCP4.5와 RCP8.5의 최악 시나리오 사이에서 변동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음을 알려줍니다.”라고 Church는 경고했습니다. “우리가 현재처럼 계속해서 대량의 배출을 계속한다면, 앞으로 수세기에 안에 해수면이 전세계에서 걸쳐 수 미터가 상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2019년 9월에 공개된 SROCC(기후해양과 극저온권)보고서의 경고는 지구온난화가 인류, 해양 생태계, 글로벌 생태에 미치는 심각한 충격을 방지하기 위하여 대담하게 대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Food & Water Action 전무 이사 Wenonah Hauter는 보고서 제출 당시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보고서의 내용은 수백 년 동안 화석연료에 대한 어리석은 의존과 그로 인한 기후온난화로 인해 바다전체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고 따라서 우리 모두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충격적인 과학조사의 결과를 심각하게 마지막의 경고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극심한 지구기후의 혼란과 오염된 바다에서 대량 죽음의 운명을 피하기 위해, 신속하고 적극적인 행동의 조치를 통하여 이러한 흐름과 추이를 반전시켜야만 합니다.”라고 Hauter는 덧붙였습니다. “최종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더 이상 변명할 수 없습니다.”

IPCC의 SROCC(기후해양과 극저온층) 보고서는 지구해수면이 2100년까지 30 ~ 60 센티미터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예측합니다. 경우에 따라 110 센티미터의 상승도 예측할 수 있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펜하겐 대학의 닐스 보어 연구소 (Niels Bohr Institute)의 연구원들은 최근 최악의 시나리오로 21세기 말까지 전세계의 해수면이 135 센티미터(약 4.4 피트)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해수면 상승과 관련하여 현재 일반적인 시나리오는 너무 보수적입니다. 우리의 기법을 사용하면 바다가 현재의 방법을 채택하여 측정한 모델보다 훨씬 많이 상승할 것으로 보입니다.”
—Aslak Grinsted, 코펜하겐 대학교

연구소의 부교수인 Aslak Grinsted 는 “해수면 상승에 대한 현재의 예측 모델은 충분히 민감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미래의 시나리오를 과거의 관측 수치와 비교하여 해수면 상승률을 예측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합니다.”

이달 초 Ocean Science 저널에 실린 상기 연구소의 기법은 과거 데이터 분석을 포함하여 바다가 온난화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정량화하는 새로운 방법을 소개합니다.

Grinsed교수는 다음과 같이 첨언합니다 “ 이 보고서는 두 가지의 주요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첫 째, 현재 채택하고 있는 모델은 해수면 상승에 대하여 매우 보수적입니다. 우리의 모델을 사용하면 해수면이 훨씬 높이 상승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이 분야의 연구에 우리의 방법을 사용하면 미래 시나리오에서 해수면의 상승을 강력하게 제한할 수 있는 강점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요일에 트위터를 통하여 Grinsted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Nature Communications에 소개된 새로운 연구를 통해 “2007-2018 년의 조사내용을 정밀하게 확대하여 분석하는 과정에서 중대한 불일치를 발견한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으며, 기존에 사용하던 해수면 모델의 민감도와 실제측정의 민감도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IPCC(정부간패널)가 과거의 조사행적과 내용(hindcast)을 발표했었다면 두 가지 연구 모두에 대하여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Grinsted 는 트위터의 끝자락에 주장하였다. “다가오는 IPCC가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가능한 1850년 이래 현재에 이르는 조사행적과 내용(hindcast)을 발표해 주시길 바랍니다.”

 

출처 : CommonDreams.org on 2021-02-16.

Jessica Corbett

commondreams의 환경담당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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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회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의 하나가 바로 국정감사다. 그야말로 국회의 큰 ‘행사’다. 그런데 이 국정감사 제도가 세계적으로 우리 국회에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출처: 파이낸셜신문>

국정조사(국정감사가 아니라) 제도는 영국 의회에서 1689년 아일랜드 전쟁의 실패 원인을 조사하고 그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조사활동을 전개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하지만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정조사권은 인정되고 있지만 국정감사제도는 다른 나라 의회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1948년에 제정된 우리 제헌헌법의 제43조는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제출케 하여 증인의 출석과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제정된 국회법에서도 국정감사와 관련된 내용을 규정하였다.

“국회는 의안 기타 국정에 관한 사항을 심사 또는 조사하기 위하여 의원을 파견할 수 있다(제72조).”

“국회로부터 심사 또는 조사하기 위하여 정부 기타의 기관에 대하여 필요한 보고 또는 기록의 제출을 요구할 때에는 이에 응하여야 한다(제73조).”

“국회는 의안 기타 국정에 관한 사항을 심사 또는 조사하기 위하여 증인의 출석을 요구할 때에는 따로 정하는 규정에 의하여 여비와 일당을 지급한다(제74조).”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국회법에서는 헌법과 달리 ‘감사’ 대신 ‘심사’ 혹은 ‘조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정례적으로 실시한다는 내용이나 감사의 대상과 주체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국정감사와 국정조사의 구분을 하지 않았다.【1】

국정감사는 유신헌법에 의해 폐지되었다가 1987년 이후 부활하였고 헌법 제61조에도 다시 명문화되었다. 국회의 힘을 강화하고 그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엄격히 말해, ‘감사’와 ‘감시’ 그리고 ‘조사’는 상이한 의미를 지닌 용어로서 정확하게 구별되어 사용해야 한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통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지 직접 감사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행정부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된다. 더구나 현행 헌법상으로도 행정부 감사는 원칙적으로 감사원이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국정감사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나온다.【2】 그에 따르면, 국회의 정부 감시 기능은 상임위원회 활동을 활성화시켜 상시적으로 이뤄지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 의회처럼 의회 내에 회계감사원을 설치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연방정부의 예산 지출과 운영에 대한 감사를 임무로 하며, 연방 정부의 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사업과 활동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회계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수시로 모든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에 제출된다. 그러므로 미국 의원들은 우리처럼 매년 국정감사를 하지 않아도 이 감사보고를 통해 각 부처의 운영상황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연예인이 아니다

국정감사가 진행될 때면 장관이 수시로 불려 다니고 국회 복도까지 공무원들로 북새통, 아수라장이 되어 국정 마비 현상을 초래할 정도다. 미국에서는 엄격한 권력분립에 의해 원칙적으로 의회의 장관출석 요구권이 없다.

그 동안 사람들은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들이 피감기관에 호통을 치고 엄청난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목격해왔다. 감사보다는 정쟁의 연속이고 건수 위주며 ‘특권 과시의 현장’이다. 몇 해 전 국감에서도 태권도복을 입고 나오거나 한복 경연을 시연하고 고양이를 특별증인으로 신청하는 등 어떻게든 튀어보려는 연기정치의 희화화된 공연장이었다. 그러니 졸속감사에 수박겉핥기식 감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으며, 이는 결국 국회의원들의 이미지를 더욱 추락시키고 정치 불신을 더욱 가중시킨다. 국회의원은 연예인이 아니다.

또한 국감이라는 이 과정을 통하여 전문위원을 비롯해 행정부에 대한 ‘갑’으로서의 국회 관료들의 권한 역시 필연적으로 더욱 강화된다.

‘개념의 오해, 혹은 착각’으로 탄생된, 세계 어느 의회에도 없는 국정감사 제도, 이제 폐지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1】 이러한 ‘감사’와 ‘감시’ 그리고 ‘조사’ 용어 혼동과 관련하여, 제헌헌법 기초자인 유진오 박사는 국정감사와 조사를 혼용하여 설명하며 국정감사를 영국에서 기원한 것이라 하여 국정조사의 의미로 파악하고 있었다. 즉, 제헌헌법 제43조 규정에 대하여 유진오 박사는 “국회가 국정을 감시하기 위하여 제반의 조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기능이라 할 것이며, 본조는 국회의 이 당연한 기능을 선명(宣明)하는 동시에 국회가 국정을 감사할 때의 증인을 소환하여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음을 명백하게 한 것이다. 국회의 국정감사기능은 처음 영국에서 시작되어 점차 각국에 보급된 것인데, 종래 각국에 있어서의 국정감사의 실제를 보면……”라고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유 박사는 국정감사를 영국에서 기원하여 각국에서 인정하고 있는 국정조사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김효전, “입법부의 정책통제 기능; 국정감사권과 조사권을 중심으로”, 「대한변호사협회지」제150호, 1989.

【2】 이관희, “우리나라 국정감사ㆍ조사 제도의 개혁방안”, 「헌법학연구」제11권 제3호, 2005. 9.

 

소준섭

목, 2020/09/1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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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4년에 설립된 영국은행에서 빌린 1.2백만 파운드를 갚지 않았다. 그 대신 대부자(영국은행)에게 대출금의 반대급부로 독점적인 화폐발행권을 부여하였고, 이것이 현재까지 세계의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기본구조가 되었다. 현재 코로나 사태라는 위기를 맞이하여 정책당국자들은 경제를 부양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조처를 약속했고, 중앙은행들은 정부의 재정지출을 직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화폐를 발행하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다.

위급 상황, 특히 전쟁 기간에는 왕왕 중앙은행들은 해당정부에게 신규의 은행권화폐를 제공하곤 하였다. 결과로 나타나는 인플레에 대한 대처는 위급상황의 종결 이후로 미루어져 왔다. 팬데믹 상황임에도, 현재 세계는 아직 전쟁에 준하는 상황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따라서 독립적으로 인플레를 책임져야 하는 중앙은행의 원칙을 완화시킬 필요까지는 없다. 그럼에도 급하게 필요하다면, 화폐재정에 대한 융통성이 정책책임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무제한으로 통화량을 풀어 정부의 재정필요를 지원하면 초인플레(hyper-inflation)를 야기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들도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지난 십 수년간 인플레의 예측 경고에도 불구하고, 양적완화의 정책은 중앙은행의 목표인 2.0% 이내에서 이루어졌다. 활성화된 경제로 흘러 들어간 돈은 그만큼 확대된 수요(아마도 위험관리형 예치)에 의해 흡수되었다.

양적완화와 통화재정 정책 간에 분명한 경계선은 없다.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로 구입한 금융자산은 일시적이며, 새로이 발행된 화폐량는 경제활동 과정에서 한 순간에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그라나 이후 후임자들이 이를 지속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단속할 수단은 없다. 한편에서는 정부가 돈을 빌리는 비용을 낮추는 효과가 있는 반면에, 국가채권은 민간투자자들이 사들일 때만이 신규발행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은 점차 영구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중앙은행들은 재정위기와 현재의 현금수요 간에 통화정책을 충분히 토론해서 정상화시킬 처지가 아니다. 이들이 언제라도 충분히 토론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 집행된 정책수단의 규모가 너무 커서, 예컨데 일본중앙은행의 경우에는 보유하고 있는 국채가 일본국가 수입의 100%를 넘어 서고 있어서, 기존에 소유하고 있는 국채를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양적완화와 통화재정 간의 차이점은 대개 단 한가지의 예이다: ‘금융자산의 구매행위가 잠정적인가 아니면 지속적인가?’ 이 점이 중앙은행의 신용도와 메시지의 전달에 중요한 측면이다. 영국은행장인 Andrew Bailey는 언론에 기고하였듯이, 국제적인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파운드로 보관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제공했던 통화정책을 거부했다.

파이낸설 타임즈의 입장은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려면 화폐금융정책에 자유재량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알리는 것이다. 그것은 아래의 내용과 같다.

인플레를 잡으려는 흐름이 거꾸로 간다면, 중앙은행들은 물가의 인상과 싸우기 위해 이자율을 높이던가 양적완화를 줄여야 한다. 현재의 위기상황은 디플레를 야기할 수 있으며, 각국 중앙은행들은, 유럽중앙은행를 예외로 하고, 함께 균형을 맞추며 정해진 목표를, 이상 또는 이하 양방향에서 벗어난 인플레와 싸울 것을 약정해야 한다.

현재 침체 국면의 심각한 규모를 감안하면, ‘헬리콥터 머니’가 되었든, ‘일반 시민에게 현금으로 지불하는 방식’이든, 가장 직접적인 화폐재정의 방식으로 재량껏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정책의 집행과정은 공공재정을 책임지도록 민주적으로 선출된 공직자들의 협조를 요구한다.

논쟁의 핵심은 화폐재정 정책을 추진해야 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양적완화는 이루어지고 있듯이, 독립적인 중앙은행의 책임있는 통제 하에서 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낸스 타임즈 편집부 (FT editorial board)

월, 2020/04/1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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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규범화는 체제화를 불러오는가?

”대단히 말솜씨가 뛰어나고, 엄청나게 날카롭다” 많은 학자들, 특히 타이완과 해외에서 온 학자들이 지청시대의 학자들을 평가하는 전형적인 말이다. 말솜씨를 갈고 닦는 것은 당시 지청학자들의 중요한 일의 방식이었다. 1990년대초, 대학과 연구소의 중년, 청년학자들은 업무가 끝나면 거실이 딸린 기숙사로 돌아가곤 했다. 냉동만두와 쏘세지등의 인스턴트 식품이 보급되기 시작해서, 이를 안주삼아 즉흥적인 심야 혹은 철야토론이 가능했다. 말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말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핵심, 즉 ‘점’을 짚을 수 있어야 한다: 한가운데 ‘점’을 겨눠, 그 ‘점’에 도달한다. 그리고 나서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도약한다. 이렇게 핵심을 짚기 위해서는 충격과 폭발력이 필요하다. 어떤 주제든 2~3분내에 듣는 사람이 이해가능하도록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들을 이어서 선을 긋는다면, 즉, 점을 글에 담아 생각하기 시작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하지만 글로 쓰기 위해서는 선을 그어야만 한다. 쓰기 전에 머릿속에 종이에 선을 긋기 위한 틀을 짜야 한다. 쓰는 과정에서, 다른 내용간의 관계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명료한 분류歸類, 선긋기劃分, 한계정하기界定가 필요하다. 정밀한 논리, 촘촘한 디테일, 물흐르는듯한 연속성이 필요하다. 글쓰기에서 돌파력과 임팩이 목적이 될 수 없다. 전문적인 학술 작법은 독자들을 흥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독자는 에디터, 심사평가원을 포함해서 다섯명을 넘지 않는다). 구두발언조차 교과서를 또박또박 읽는 것처럼 답답하게 들린다. 학자나 관료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혁명가라고 해서 글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에겐 밀실에서의 토론과 광장에서의 연설이 더 중요하다. 밤을 세우며 급하게 준비하는 신문평론이나 소책자도 이러한 토론과 연설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은, 즉흥적일뿐더러, 예측이 불가능하다.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보수파를 불안하게 만든다. 영국 수상 앤서니 에덴은 당시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나세르의 연설방식이 무쏠리니나 레닌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1956년 수에즈운하 전쟁의 숨은 원인이기도 하다.

잡담같은 대화로 생각을 나누면 생각이 두루 퍼지고, 도약하게 된다. 이런 대화는 고도의 상상력에 의존해서 지속된다. 모두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상상을 해야 한다. 저런 관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떤 감춰진 의미가 있는 것일까? 썰렁해지지 않도록 평범해 보이는 현상에서 어떻게 재미있는 화제를 끌어낼 수 있을지 미리 생각을 해야 한다. 지식청년시대 학자들은 그래서 상상력이 뛰어나다 대신에 당시에 학술적인 능력은 좀 빈곤하기도 했다. 한번은 쑨리핑孫立平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잘모르겠다고 고백했다. 대답이 걸작이었다. “누구는 제대로 알아?”   고개를 들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씀하셨다 “우리들도 어떨 때는 해외문헌을 보면서 큰 영감을 얻고 흥분하는데, 어쩌면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그럴지도 몰라”. “외국 이론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경우도 많아. 잘못 읽은게 오히려 ‘큰 깨달음’으로 다가 오는거지. “ 사상의 자주성이 자원의 빈곤을 오히려 혁신의 원천으로 전환시킨 셈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사회현상에 대한 통합적 판단을 하고 싶다는 욕망과도 연관이 있다. 무엇을 토론하든, “사회주의의 본질은 이것이다”라든가 “중국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등의 지청학자들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점’에서 (‘선’을 거치지 않고) ‘면’으로 도약한다. 학제를 뛰어넘거나 아예 특정 학과에 소속되지 않으려는 그들의 경향도 상상력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중국사회에 대해서 통합적인 평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자연히 철학, 역사, 정치, 경제의 각 영역을 넘나들게 된다.

대화와 토론은 단체 행동이다. 대화를 통해 사상이 전파되며 친구들간에 공명을 일으키고, 이때 저작권은 고려하지 않는다. 누가 먼저 제안한 생각인지도 따지지 않는다. 1990년대 중국은 가정전화 의 시대로 접어드는데, 작은 범위안에서 연락하고 동태를 전파하는데 매우 도움이 됐다. 당시의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문헌검색기능이 없었다. 개인 PC를 사용하면서, 프린터와 복사기가 보급됐다. 소그룹안에서 끼리끼리 책을 복사하고, 돌려 읽고, 이렇게 출력된 원고에 대해서 평했다. 타이완 사회학자 까오청슈高承恕교수가 왕선생님 소그룹의 허베이河北성 바이꺼우白溝시장 필드조사에 참여했다. 그를 매우 흥분시켰던 것이, 다함께 자전거를 타고 시골로 내려갈 때였다. 대오를 만들어 페달을 밟으며 서로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언제든지 멈춰서 군고구마를 사먹기도 하고, 그러면서 군고구마 장수의 살림살이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나중에 자전거가 자가용으로 대체됐다. 각자 자기 차를 몰아서 간다. 물리적 공간이 닫히고 개별화된다. 아마 이런 변화도 지청시대의 끝을 알리는 지표일 수 있다.

당시 학생들은 자기보다 20~30세가 더 많은 학계의 중진, 원로나 그들의 동료들과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사상적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격의없는 논쟁과 대화가 가능했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일 것이다. 지금 스승과 제자 사이가 꼭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짜 중요한 변화는 동료들간에조차 제대로된 토론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로 재미없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런 행운을 누린 것은, 왕선생님이 학생들을 대단히 중시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반대로 그때는 사제관계라는 개념자체가 없었다. 세대의식조차 없었다. 만일 학생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흥미가 있다면, 왜 와서 한번 들어 보라고 할 수 없나? 만일 친구 사이에 절실히 어떤 문제를 궁리하고 있다면, 왜 학생이 뭐라 하는지 들어볼 필요가 없나 ? 한번은 농민공에 대한 이론의 함의에 대해서 토론을 하는데, 쑨리핑선생님이 말했다. “눈앞 탕속에 들어 있는 고기 한점이 보이는데, 왜 건져 먹지 않나?” “꼭 모든 생각을 다 받아들일만큼 마음이 넓은 것은 아니다 등등. 그냥 눈앞의 고깃덩어리는 건지면 되는 것이고, 그 사상의 탐색이 그들의 반권위적 생활태도의 일부분이기도 했다. 그냥 원래 분위기가 개방적이고 평등했다.

이 학자들의 실천방식은 그들의 생활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동료들간에 질투와 시기하는 법이 없이, 철저하게 함께 생각을 나누는 것은, 아마도 하방시기 단체 생활의 연속선상에 있을지도 모른다. 1990년대 학술계에는 서로 다툴 이익도 없었고, 관리도 엄격하지 않았다 (밤새 토론을 했다면, 아침에 새벽같이 출근해서 정시에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고도로 농축된, 혹은 희극적이기까지 했던 역사적 경험이, 그들에게 매우 특별한 넓은 시야와, 작은 일에서 큰 의미를 포착하는 능력을 선사했다. 어디에 고기덩어리가 있는지  냄새를 맡을 줄 알았다. 이런 밑바닥 생활의 체험이, 각종 생활의 지혜를 근거리에서 관찰할 기회를 주었고, 평범함속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민감함을 선사했다. “점”을 직관적으로 찾아냈다. 계획없이 책을 무차별적으로 읽었고, 다양한 전공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왕선생님 자신이 원래 수학전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철학과 기계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들의 사고는 틀에 갇히지 않고 튈 수 있었다. 그들이 사회과학을 공부한 것은 완전히 흥미와 사명감 때문이었다.

<사진3> 지청학자들의 경계없는 학술실천방식은 그들의 생활경험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동료들간에 질투와 시기도 없었고, 밤새워 함께 토론을 하던 것은 하방때 단체생활의 연속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학술실천은 1990년대 지청학자들의 자기비판적 태도를 키웠다. 당시의 공통인식은 전문적인 학과건설을 시급한 임무로 삼았으니, 학술활동은 반드시 지식공동체의 일정한 표준에 의한 대화에 기반한 것이어야 했고, 규범형식이 대화의 기초가 됐다. 그래서, 문헌리뷰와 분석의 틀을 명확히 하는 등, 모두 중요했다. 당시 우리가 시급히 보완해야 할 것들이었다. 왕선생님은 비록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해본 경험이 없었지만, 베이징 사회학계의 국제협력을 열심히 추진했다. 많은 지식청년들이 1980년대 특히 1990년대초에 서방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1990년대 이후 서구학계의 연구방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왕선생님의 또다른 업적은 전문과제형식의 사회학 연구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경험소재에 대해서 계획을 가지고 접근한다, 체계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그저 관점을 내세우는 식의 주관적 글쓰기와 구분한다. 하지만 1990년대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은 관리자들의 학술규범화 열정이 생각보다 빠르게 학자들을 앞지른 것이라는 점이었다. 중국어 사회과학 검색 및 인용 시스템 (CSSCI), 학술지 평가 및 등급, 임팩트, 인프라 건설, 펀드신청, 과제평가, 국제협력, 국제순위 등과 같은 키워드가 아주 빠르게 학술업무의 황금률이 됐다. 1990년대 추진된 중국사회과학의 규범화속에서 기수역할을 한 덩정라이鄧正來는 그의 말년에는 규범화에 대해서 언급을 삼가하는 대신, 자주성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했고, 특히, ‘지식계획시대’에 대해서 반대했다. 그는 지식계획시대에 연구가 정치적 권력과 그로부터 확정되는 학술제도상 자원분배를 기초로 삼으면, 그 기초가 우리의 지식생산방식을 대부분 결정할뿐 아니라 우리 지식생산물의 구체적 내용까지 간섭할 것이라고 염려했다. 량용자梁永佳는 이에 대해, 덩과 그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이 초기에 규범화에 기울인 노력이 오히려 학문을 속박하게 될 것을 염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규범화의 노력은 본뜻과 달리 ‘체제화’를 촉진한다. 이것은 국가 거버넌스 방식의 전환과 따로 떼어 말할 수 없다. 1990년대 이래, 원래 장기혁명과정에 형성된 것으로써, 사회주의 개혁의 공식인증을 통해서 정당하게 획득한 정부의 합법성은 더 이상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게 됐다. 이제 정부는 새로운 합법성을 만들 필요가 생겼으며, 관리자에게 ‘동의’를 얻어야 했다. 학술연구형식상의 규범화와 운영사이의 상대적 독립은 학술에 대한 행정관리 합법성의 기초가 된다. 행정지도하의 규범화는 확실히 연구의 독립성을 강화한다. 장기간의 훈련이 없으면, 학술과 행정용어를 이해할 수 없다. 각종 명시적 규칙과 암묵적 규칙도 알 수 없다. 그렇게 학술 영역의 문턱을 높이게 된다. 학과내부에서 학자들은 고도의 학술화된 언어를 사용하여 다른 경우에는 사용할 수 없는 화법으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사진4> 덩졍라이(1956-2013)선생이 창간한 <<중국사회과학계간>>과 <<중국서평>>은 1990년대 중국사회과학의 규범화, 본토화의 출발점이었다.

동시에, 처음부터 금단의 영역을 설정함으로써 연구내용의 방법을 통제하는 것이 갈수록 원하는 효과를 얻기 어렵게 됐다. 그래서, 점점 학술연구의 일상적 운용기술 규정으로 전환되는 것을 관리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학자 – 행정요원은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다. 자원을 농단하는 것은  소수파이고, 주로 여러가지 규칙이나 양식을 채우게 하기, 신청, 평가 등의 수단으로 이를 실현한다. 중년, 청년 학자들은 자기 커리어를 위해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체제화한다: 우선 직위를 추구하고, 점수를 따기 위해 노력하고, 나중에 행정직 수장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기몫으로 할당된 머릿수 쿼터를 받아서, 독립적인 파벌을 만들고 싶어한다. 전속사무원을 배정 받고, 가장 이상적인 것은 독립건물을 가진 자기 연구센터를 하나 꿰차는 것이다. 학술연구로부터 행정직으로 들어가면 물만난 고기와 같다. 일단 이런 위치에 오르면, 다시 학술연구직으로 돌아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이 두려운 일이다. 한명의 학자가 조직에 들어가서, 직함을 얻고, 자원을 확보하는 것은 그의 경력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주요한 표준이 된다. 그 연구내용과 업적은 부차적인 것일뿐이다. 후지청학자들이 중년이 되면서, 체제화된 학술연구는 이미 관행이 됐다. 동료간에는 덕담만을 주고 받고, 조화와 평형을 추구하며, 각자 자기 몫을 챙긴다. (공무원 조직이 원래 그렇다. 중하급관원이 정확하게 당신의 연구에 대해서 가치를 평가한다. 하지만 모든 문제는 이미 정부의 손아귀안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나서 매우 친근하게 당신의 가정생활과 건강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물어본다. 유교, 선불교, 차도에 대해서 한담을 나누는 관계가 된다). 거버넌스 기술의 정교화가 학자들의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역으로 이런 구조는 등급화가 되고 심지어는 가부장제 형태로 틀이 짜여, 타파가 아주 어려워진다.

형식상 독립적인 사회과학 연구는 학력, 직책, 지명도 등 관련된 상징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는 이런 상징자본을 직접 장악한 것은 아니지만, 자본형성과 전환과정을 통제할 수 있다. 상징자본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조속에서 만들어진다. 이 구조는 복잡한 사회과정이고, 자금을 투입하고 이익을 허락하는 것이, 이 과정속에서 아마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상징자본도 결국 다른 자본과의 상호작용속에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연구 프로젝트가 학계의 인정을 받을 때 (예를 들어 발표를 하거나 상을 받는다) 직접 상금을 받을 수도 있고, 이 자체가 일정 정도 학술상징자본의 독립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로도 작동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인정은 공정가격이 되고, 상품은 가격표가 달려야 계속 장사가 되는 법이다. 상징자본의 형성과 자본사이의 전환과정에서 층층이 쌓인 이익위탁대리관계가 다시 형성된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학술체제화과정의 거의 정신분열적으로 보이는 면도 쉽게 이해가 된다. 이를테면, 정부는 대학이 서방사상에 침식당하지 않도록 저항할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동시에 연구 성과가 서방의 인정을 받도록 격려한다. 어떤 대학의 규정은 외국의 저널에 발표하고 정부 지도자의 인정을 받은 연구는 모두 추가 보너스 점수를 얻게 한다. 구체적인 점수값과 이 점수를 인민폐로 환산하는 비율은 저널의 등급과 지도자의 지위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의 연구가 정부의 관료를 기쁘게 하고 동시에 서양사람들의 칭찬도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체제화된 학술관리는 두가지 모두를 필요로 한다. 관료는 자원의 공급을 결정하고, 서양 사람들은 체제에 합법성을 부여한다. 관료와 서양사람들 모두가 연구 바깥에 있는 인정 표준의 중요성으로 드러난다. 관료와 서양사람들의 공통점은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는 서민들이 아니며, 그들의 인정이 인민폐로 환전가능하다는 점이다.

지청학자들이 추구하던 규범화와 후지청학자들이 직면하게 된 체제화는 당연히 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돌아봐야 하는 것은, 규범화의 요구가 체제화에 제공하는 합법성이고, 최소한 이 것들이 우리들의 체제화에 대한 경계를 늦추게 하고, 저항감을 줄인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의 규범화 자체는 원래 제한을 의미하지 않지만, 대신 일종의 독립성에 대한 환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사회과학은 만일 사회의 기타부문과 유기적 연관성을 맺지 못하고, 누구를 위해 발언을 하는지, 누가 듣게 하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으면, 형식상의 독립은 사실상의 고립이 되고, 쉽게 체제에 편입되어 버린다. 체제화가 바로 학술연구를 자족적인 시스템으로 만든다. 발전하면 할수록 인볼루션involution內卷 (역자 주 – 생산요소 투입이 늘고, 기술이 점차 발전하면서, 생산량이 늘다가, 그 성장 속도가 줄고 더 이상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으면서도, 돌파구가 생기지 않는 상황. 중국과 인도네시아 자바의 쌀농사 발전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의 결과로 만들어진 표현)이 일어난다. 그렇게 닫힌 시스템은 스스로의 논리는 강화되지만, 그 생존은 더욱 외부자원에 의존하게 된다.

독립성은 확실히 프랑크푸르트사회연구소가 20세기초에 결성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그 독립이라는 것은 정치와 사회에서 독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독립된 학계에서 독립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비판해야 하는 대상은 바로 독립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전통이론’이었다. 연구소는 독일이 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아마도 소련식 무산계급혁명을 맞이할 것이라는 신기원에 대한 기대와 충동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노동자운동은 금방 실패로 돌아갔고, 나치가 등장했다. 이러한 반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 이론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혁신성은 이러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는 강박이 바탕에 깔려있었다. 우리가 오늘날 직면한 문제는 학계와 국가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누구를 대표해서 국가와 상호작용할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반드시 인위적인 ‘탈규범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관건은 왜 규범화가 필요한지 분명히 하고, 규범화가 사상적 좀비가 입는 비단옷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체제화가 된 학술연구가 다시 유기적이고 자연적으로 하나의 장기적 투쟁과 탁마의 과정을 겪게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경험’이라는 이 범주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아마도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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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뺘오 项飙

옥스포드대학교 인류학과

 

이글은 <<문화종횡文化縱橫>> 2015년12월호에 실렸으며, 저작권은 문화종횡에 속한다. 

원문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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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5/1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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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민주주의의 영향과 실행에 대해 경험을 기반으로 한 총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사회-경제적 맥락과 역사-문화적 배경, 레퍼렌덤 권리의 발전 단계, 법적인 틀과 국가적으로 각 현실의 정치적 상황 등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이를 시행한 모든 체제에 적합한 어떤 단일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란 어렵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모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국제적인 차원에서도 다양한 연구 기관에서 실시한 경험적 조사에서 나타나며, 꾸준히 찾아볼 수 있는 몇 가지 효과들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들을 요약한다.

 

민주주의라는 근본적인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직접 민주주의는 어떤 정치체제의 토대를 허물어 내는 수단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시민들은 정치적 권리들을 확장시키고 손질하기 위해 정치체제의 몇 가지 근본 요소들을 개선할 자유가 있다. 민주 사회에서 정치 참여는 기본권에 속하며, 정치법을 바꾸는 데 활용될 수도 있다. 국민 대다수가 바라는 레퍼렌덤 권리들은 사실상 민주주의의 정착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레퍼렌덤으로 엄청난 정치적 분열이 일어난 적은 없다.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체제에 새로운 국민의 권리를 통합시키는 것이다.

스위스에서 1900년대 후반 국가 권력 구조의 근본적인 개혁과 더 힘없는 계급들의 해방을 바란 좌파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처음에 보수층은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하면 개인 소유주들의 권리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을 두려워했고, 유산有産계급은 새로운 국민 권력을 일종의 위협으로 느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두려움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수당에 불이익은 없다

직접 민주주의는 덩치에 따른 선거 제도를 만들려는 지배당의 시도에 대항하기 위한 피난처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는 자유선거와 복수 정당제이다. 때로는 강한 정당들이 레퍼렌덤을 이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거법을 바꾸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이런 논란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그런 정당들은 의회에서 다수당인 덕분에 어찌되었건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레퍼렌덤 권리는 이런 효과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다수당들을 통제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는 것이 드러났다. 스위스에서 시민들은 레퍼렌덤 투표로 소수 정치 세력들에게 더 유리한 비례 제도를 적용했다. 반면 1990년대에 이탈리아에서는, 군소 정당들의 발안으로 완전 비례 제도가 폐지되고 정당 연합을 결성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주로 다수 편향적인 제도에 자리를 내어주었다.

때로는 야당들이 특정 정치 현안에 대해 집권 다수당을 좌절시키려는 과정에서 “레퍼렌덤이라는 방법을 시도해 보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집권당 연합 또한 거의 플레시비트와 유사한 술책의 형태로서 유권자들에게 결정권을 맡김으로써 별로 반갑지 않은 결정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대개 모든 레퍼렌덤에서 각 정당은 공개적으로 찬반으로 편을 나누거나 투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호소했다. 요컨대 선거 제도의 입법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소수 정당들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을 볼 수 있다. 여러 나라에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군소 정치 세력들이 종종 레퍼렌덤 도구를 활용하는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며, 이탈리아의 급진당Partito Radicale은 1974년부터 2006년까지 20개 이상의 레퍼렌덤 사안을 추진했던 것도 사실이다.

 

국민발안과 연합주의Associationism를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

직접 민주주의는 이익단체들이나 시민발안의 역할과 가능성을 강화시키는 한편 때때로 각 현안에 대한 정당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아무런 정치적 책임이 없고, 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으며 로비 활동처럼 집단의 이익을 위해 조직적으로 일하지도 않는 단체나 어떤 운동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관심 있는 특정 현안에 영향을 미칠 기회가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보통 레퍼렌덤 투표에서 선거 때 투표한 정당과 완전히 같을 필요가 많지 않아, 시민사회 및 연합주의 단체나 운동의 역할을 강화시키고, 대화와 타협에 나서도록 정당들을 압박한다. 레퍼렌덤 도구 덕분에 국민 대다수는 필요할 경우 비상 브레이크나 안전 잠금 장치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연방제도: 직접 민주주의 가동에 유리한 조건

연방제도와 지방자치는 레퍼렌덤 권리의 발전에 유리한 기반을 제공한다. 지방(주, 현, 기초자치단체)에 더 큰 법적 권한이 더 부여될수록, 레퍼렌덤 권리를 가동할 수 있는 정치 부문이 더 확대된다. 이 권리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훈련장”이다. 지방 정치에서 시민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레퍼렌덤 투표에 참여하려 하는데, 다루는 사안이 그들 자신과 밀접히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시민들이 담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더 클수록, 시민들은 레퍼렌덤 도구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또한 레퍼렌덤 권리를 법적으로 잘 정비하여 미래의 지방법 개정을 위해 투표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포함시키면, 중앙에 비해 지방 정부들의 입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사실상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방의 책임을 기꺼이 중앙 정부에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직접 민주주의는 연방제도 또한 강화시킨다. 곧 시민들은 가능한 한 자신들의 참정 기회가 훨씬 큰 지방 정부급에 힘을 실어주려 할 것이다.

 

소수의 위험과 기회

직접 민주주의는 사회적, 정치적 소수자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그들의 관심을 명확히 밝히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론상 레퍼렌덤 도구는 소수자들에게 불리하게 쓰일 수도 있다. 우선 두 부류의 소수자를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쪽은 “영속적인”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다(예를 들어, 장애인, 집시, 동성애자, 소수 민족, 소수 종교인 단체, 이민자 등). 다른 쪽은 정치적 소수자나 가변적인, 다른 부류의 소수자들이다. 발안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정치적으로 결정하고,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제공한다. 그러나 그들 혼자서 해낼 수는 없다. 정치적 다수가 그들의 관심사에 찬성해야 하기 때문에 더 광범위한 사회적 집단들과 협력해야 한다. 레퍼렌덤을 통해 소수자들도 새로운 연합에 들어가고 심지어 국회의 다수를 꺾을 가능성도 갖게 된다. 이런 권리의 존재만으로도 정당과 정부를 압박하여 더욱 진지하게 소수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 패배한 체계적이지 않은 소수자들 또한, 때로는 그들이 바라는 개혁을 위해서는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을 깨닫고, 정치적이건 사회적이건 레퍼렌덤 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경우이건 소수자들과의 공개적이고 바람직한 대면은 그들의 사회적 통합을 촉진시킨다. 물론 그것을 목표로 소수자들에게 레퍼렌덤 권리를 완전히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 조달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어쨌건 직접 민주주의를 통해 의회에 도달하지 못하는 단체로서는 조직하기 어려운 사회적 빈민층이나 정치적 소수자들의 이익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시점에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수의 입장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때로 사회적 소수자들은 직접 민주주의 절차의 틀 안에서 적대감과 뿌리 깊은 편견으로 똘똘 뭉친 집단들에게서 소외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공적인 토론은 그 자체로 역동성이 있으며, 매우 다각화된 우리 사회에서 그 어느 누구도 단 한 가지만 소수에 속하거나, 또 늘 소수자로 남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의회에서도 소수의 이익은 종종 다수당의 논리에 희생된다. 어쨌건 헌법과 국제 협약 및 인권 조약에서 마련된 기본권들로 구성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방법 및 유럽연합 조약으로도 비준된 레퍼렌덤 권리들에는 한계가 있다.

 

정치적 엘리트의 확대

누가 정치적 엘리트에 속하는가? 정부, 국회, 행정부, 정당의 정치적 인물들과 정치적 성격을 지닌 거대 조직의 인물들이다. 엘리트, 혹은 적어도 이런 형태의 리더들의 집단은 대개 대의민주주의를 선호하며, 의사 소통 채널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한다. 직접 민주주의는 주로 그들에게 일반 국민들과 관계를 맺도록 독려함으로써 상황을 변화시킨다. 한편으로 각각의 레퍼렌덤 발안 또한 오로지 기꺼이 헌신하고, 어떤 대의를 위해 투쟁할 태세가 된 능동적인 시민들 덕분에 태어난다. 이들은 사회적 엘리트 층을 형성하지 않으며, 하나의 정치적 주제나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갈 역량을 지닌 소수자들이다. 제기한 사안과 관련하여 항상 이 시민들의 비중은 무시 못할 정도인데 특히 레퍼렌덤 권리가 얼마나 발전되었느냐에 따라 더욱 그렇다. 직접 민주주의는 그저 엘리트 층 사이에서 어떤 주제를 대면하도록 자극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계급과 국회 차원에 존재하지 않는 그룹들 간의 토론도 자극한다. 정치적 절차가 그렇게 더욱 확대되고 풍요로워진다.

 

직접 민주주의는 적법성legitimacy을 더 부여한다

“적법성”이라 함은 어떤 결정이나 어떤 조직에 대한 정치적 평가 수준을 의미한다.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할 수록 그 결과는 더 적법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의미에서 더 강력한 적법화의 형태는 두말할 나위 없이 온 국민이 참여하는 레퍼렌덤 투표, 혹은 선거의 경우 국가 원수나 지방 행정부 수장의 직접 선거이다.

만일 레퍼렌덤 도구를 통해 대의 기관의 심의에 반대하거나 행정부에서 바라는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집단들이 레퍼렌덤 투표에서 패배한다면, 그들이 제안한 주제의 유효성이 아니라 그들 반대의 적법성이 사라지게 된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이익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한편 각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레퍼렌덤 투표에서 패배한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전반적인 신임이나 총선을 통해 그들이 부여받은 위임의 적법상이 아니라, 단순히 국민과 의견을 달리하는 어떤 명확한 선택과 관련한 적법성을 잃는다.

 

진보주의의 온상도 보수주의의 온상도 아니다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에서 정치인들이 제기하는 첫 번째 질문의 하나는, “이 도구는 어떤 방식으로 나의 정치에 도움이 될까?’ 이다. 보수 세력이건 자유주의 세력이건, 좌파건 진보 진영이건 국민은 직접 질문을 받고 그들 견해를 밝힐 것을 요청받는다. 과거에는 과연 직접 민주주의가 사회의 진보를 옹호하거나 방해할 수 있을지 자문하는 것은 주로 좌파였다. 좌파들이 봉착한 딜레마는 직접 민주주의는 국민에게 더 큰 결정권을 넘겨 주지만, 과거에도 현재도 이것이 꼭 진보적 해결책을 옹호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대개 국민발안은 단지 여러 사람들이 느끼는 긴급 현안들을 제기하여 정치인들을 포함한 모두가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일 따름이다. 이 도구들은 시민 단체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공적으로 표현하여 국회와 정부의 의도에는 어긋나는 것이더라도 그것을 다수의 결정으로 이끌어 낼 수 있게 해 준다. 만일 레퍼렌덤 절차가 대규모 토론과 함께 이루어진다면, 레퍼렌덤의 결과는 항상 열려 있다. 국민발안들 사이에서도 주요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 곧 보수적인 국민발안이 있고, 혁신적인 국민발안이 있다. 직접 민주주의가 사회의 진보적 입장과 세력을 희생하여 보수적 입장과 세력을 옹호하려 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히 전통적인 통로만으로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국민들에게 좀 더 목소리를 실어 주는 것이다.

 

정치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 증진

어떻게 정치에서 “효율성”을 측정할까? 만일 어떤 정치적 승인에 도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 기준으로 잡는다면, 직접 민주주의는 확실히 결정 과정을 간소화시키지도 않고, 그 기간을 줄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평균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이나 좀 더 보편적인 시각에서 직접 민주주의의 실시는 정치체제의 안정을 증진시키며, 그러므로 그 효율성 또한 증진시킨다. 대개 효율성은 한 정치체제의 유익성과 비용 사이의 관계로 정의된다.

종종 정치인들은 레퍼렌덤 도구들이 정부의 통치 능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레퍼렌덤 투표가 선출된 정치적 책임자들과 거대 조직 책임자들의 결정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게 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정보 전달과 공개 토론 비용 및 투표 자체의 실시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비용 증가와 정치적 절차가 어느 정도 지연되는 것이 다른 이점들, 곧 지속성과 안정, 적법성 및 레퍼렌덤 승인으로 채택된 해결책의 수용 등의 이점을 없애지는 않는다. 시민들은 종종 선거 중간에 개입할 수 있는 그 어떤 정치적 도구도 없이 법적으로 호소하거나 좀 더 급진적인 항의 형식에 의존하여 어쨌든 프로젝트들을 막아내곤 한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로 정치권은 미리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만 한다.

 

최고 수준의 정보 전달 덕분에 이루어지는 일반 교육

정치적 이익과 “정치적 성숙”을 위해서는 적절한 학습과 교육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시민들은 참여 여부에 상관없이 레퍼렌덤에 즈음하여 생겨나는 공적 토론에 노출되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의 사회화 효과는 시민들과 정치인들 간에 직접 접촉으로 정치적 대면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더 크다. 이 효과는 시민들이 대개 그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지역적 차원에서 더 생생하다.

그들은 다양한 입장이 있다는 것과 모든 이들의 논점과 목소리가 모두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이 내린 결정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불특정의 시민은 한 번은 승리한 다수에 속하고, 또 다른 때는 패배한 소수에 속하게 된다. 레퍼렌덤 과정에서 다수를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그 어떤 세력도 더 이상 “국민”을 운운할 수 없다. 미국과 스위스에서 투표 참여는 늘5 0%를 넘지 않지만, 진정한 민주주의의 성취로 여겨지는 레퍼렌덤 권리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면 국민 저항이 매우 높다.

 

승인된 해결책의 수용율은 높고, 잠재적 갈등은 줄어든다

레퍼렌덤 투표에서는 특정 현안에 집중하며 그것을 전반적인 정치적, 사회적 갈등과 섞지 않는다. 레퍼렌덤 절차가 규정을 완전히 존중하여 시행된다면, 곧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모두가 받아들인다면 투표는 국민들과 의회 다수당, 정부 사이, 그리고 정치 세력들 간의 긴장을 명확히 설명하고 완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어떤 이는 직접 민주주의가 복잡한 현안들을 다룰 때 반듯이 필요한 타협에 이르는 것을 방해하지만 대신 의회에서는 그런 타협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스위스에서는 레퍼렌덤의 예측 불가능함을 염두에 둔 세련된 기제가 존재한다. 자신들이 레퍼렌덤에 착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그룹들을 참여시켜 “예방 공간”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타협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직접 민주주의가 제도적 차원에서 진전이 없는 어떤 상황을 돌파할 수 있게 해 준다. 만일 의회가 타협점을 찾을수 없어 법을 정하지 않는다면 국민발안은 시민들에게 최후의 발언권을 준다. 스위스에서는 대개 국민 50% 이하가 레퍼렌덤에 참여하지만, 결과의 수용율은 높다. 각자 자신들이 원한다면 참여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제가 잘 알려져 있고, 단순하고, 토의를 거친 것일수록 레퍼렌덤에 더 적합하다

모든 정치 현안이 레퍼렌덤 절차로 쉽게 다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하고, 잘 알려져 있고, 논의를 거쳐서 정보 제공이 많이 필요하지 않으며, 그에 대해 어떤 가부가 명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의제가 바람직하다. 원칙에 따른 정치적 차원에서 내린 모든 결정은 평균적인 시민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의 현대적 개념은 자유롭고 정보를 갖춘, 의식 있는 시민을 전제로 한다. 그 밖에도 상당한 서명을 모으는 일이 민주주의의 여과기 역할을 한다. 헌법 개정, 정부 형태 변경, 초국가적 기구에 주권의 양도 등 더욱 강력한 합법성을 요하는 의제들이 존재한다. 많은 유럽 국가에서 실시한 유럽연합 가입 관련 레퍼렌덤들이 이런 막중한 정치적 결정을 합법화하는 법적 구속력을 지녔다.

예를 들어, 연간 예산 관련법 같이 여러 차원에서 타협을 요하는 복잡한 현안들은 레퍼렌덤 절차에 놓이는 것이 그리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특정 세금 관련법의 경우는 다르다. 캘리포니아 또한 몇몇 정치적 사안을 직접 민주주의에서 배제시키지만, 스위스는 그렇지 않다. 스위스에서는 그 어떤 사안도 배제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공공 예산과 관련하여 “참여적 예산”이라는 흥미로운 경험이 존재한다(11장 참조).

대체적으로 직접 민주주의의 긴 전통을 지닌 나라에서 실시한 선험적 조사에 따르면, 좋은 직접 민주주의에 따른 주요 효과는 다음과 같다(Gross 2007과 Kaufmann/Buchi/Braun 2009 참조).

▪ 직접 민주주의는 정치를 더욱 전달력 있게 만든다. 구체적인 정치적
현안에 관한 정치적 결정의 합법성에 대해 시민들 측에서 의문을 제
기할 수 있으며, 정치인들 측에서는 충분한 근거를 들어 이를 설명
해야 한다.
▪ 직접 민주주의는 모든 관계자들이 사실과 주제에 기반한 공개 토론
에 나서게끔 함으로써 정치적 대화를 더욱 진지하고 합리적인 것으
로 만들어 준다.
▪ 직접 민주주의는 수적으로 열세한 그룹이나 소수자들도─국회와
의회에 존재하지 않는─공개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 준다.
▪ 직접 민주주의는 보다 공평하고 정확한 정치 권력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의 정치를 정당화시킬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또는 국민 레퍼렌덤 투표에서 다수를 설득할 정도로 큰 특권을 주지
않는다.


편집자 주:

다른백년 출범 3주년을 기념하며 자축하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더 많은 권력을 시민에게” 제목으로 21세기 새로운 흐름인 직접민주주의를 소개하는 내용입니다. 현재의 한국정치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1%의 소수를 위한 정치에서 99%의 시민을 위한 정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100% 강화하는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고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비판하고 결정하고 통제하는 민치 –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책의 내용을 격주를 통하여 약 10개월 간 연재하고자 합니다.  직접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시중의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을 통하여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19/12/20-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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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간 무역 시스템의 붕괴에 대해 흔히 맥이 빠지는 기사 헤드라인 너머의 현실에서는 다행히 각국 정부들과 기업들이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 상소 기구의 기능 마비와 같은 부정적인 현안을 지적하기는 쉽지만, 지난 2년간의 발전이 이루어진 실제 분야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기업들이 나서서 주도하는 한, 노력을 적절하게 이해함으로써 더 광범위하게 개혁하기 위한 건설적인 로드맵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는 위기 의식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년 간, WTO 회원국 다수는 21세기에 무역 규범을 도입하는 데 도움이 될 중요한 전자 상거래 협상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은 국가가 전자 상거래 협상에 참여하고 있고, 2019년 12월 10일에는 WTO 회원국들이 전자적 전송물에 대한 무관세원칙(moratorium)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다. 회원국들은 ‘규율화 된’ 수산업과 농업 보조금과 같이 전통적으로 다루기 힘든 쟁점에 대해 아직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합의와 상당히 가까워졌다. 그리고 국내 및 국경을 넘어 투자와 서비스 제공을 촉진하고, 여성의 경제적 권한을 강화하며 중소기업이 시장에 더 잘 진입하여 무역 시스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규칙을 제정하기 위해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다고 해서 상황을 모른 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제력이 변화하고, 기후위기의 난제에 대처해야 하며, 기술 발전이 상업에 지장을 주고, 시민들이 점점 더 포괄적인 형태로 모두를 위할 수 있는 세계화를 요구하고 있는 세계 속에서 다자간 무역 시스템의 핵심 중 일부가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무역은 사람과 지구를 위해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 다자간 무역 시스템의 개혁이 필요하다.

전 세계 각국 정부는 이번 위기를 헛되이 보내면 안 된다. 현재 무역 분쟁이 ‘법의 지배’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는 상소 기구의 위기에서 야기한 시급한 과제를 넘어, 현재 정치의 역동성은 무역 시스템을 극적으로 개선할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

WTO를 향해 집중된 관심은 WTO 조직 구조와 책임 체제를 강화하여 시스템 내 신뢰를 구축하기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시민사회 및 사업 단체의 참여 증진, WTO 과정 및 협상의 투명성 증대, ‘특별하지만 차등을 두는 방안’을 위한 증거 기반의 기준 확립은 시스템 신뢰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각국의 정부는 현 시점에 기존의 WTO 규정들을 철저하고 포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1990년대 초에 제정된 무역 규범은 갈수록 더 서비스 및 데이터의 흐름으로 특징되며 디지털 기술 및 글로벌 가치사슬로 가능해진 21세기 무역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부단위에서 기후위기, 지속가능성, 불평등과 같이 우리 시대에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사안을 다룰 권한을 WTO에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 독창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WTO가 세계화뿐 아니라 불만의 원인을 다루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것만큼 WTO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방안은 없을 것이다.

다행히도, 특히 아시아 태평양의 몇 정부가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고자 나서고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가 WTO의 세 기능(감시, 분쟁 해결, 협상)을 개혁하고 현대화하자고 제의했는데, 이는 정확히 국제상공회의소(International of Chamber of Commerce)가 요구해온 바이다. 호주의 복수국간 WTO 전자상거래 협상 촉진은 21세기 무역의 현실을 다루기 위해 규범 제정을 통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한 예시이다. WTO 상소 기구의 교착 상태를 타파하기 위한 뉴질랜드의 핵심적인 중재 역할은 공로와 공감을 모두 받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2019년 12월 10일, WTO의 60 회원국이 규범에 근거한 다자간 무역 시스템에서 WTO의 중심적이고 필수적인 역할을 재차 시인한 점은 고무적이다.

명백하게 정부 단위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더 많은 리더십이 필요하다. 초소형 기업, 중소기업, 대기업을 포함한 기업체들은 지난 25년 동안 다자간 무역 시스템의 혜택을 누려왔다. 세계 무역 시스템의 주요 사용자이자 수혜자인 기업은 WTO의 지지자가 되어 개혁 과정에 건설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리더십은 무역이 일자리, 환경,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을 정당하게 불평하는 일이 보호무역주의와 후퇴를 요구하며 역효과를 낳는 방향으로 변모되지 않도록 요구한다. 대신에 정부, 기업, 시민 사회는 무역 시스템이 사람들과 이 세상을 위해 작용하도록 보장하기 위해 더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WTO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 시기가 도래했다.

 

John WH Denton AO

파리에서 국제 상공 회의소 (ICC)의 사무처장

Damien Bruckard

ICC의 (무역 및 투자 분야)부회장

금, 2020/01/10-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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