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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독립운동가 부부 함께 안장됐는데, 공훈록·묘비에서 사라진 ‘여성의 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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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독립운동가 부부 함께 안장됐는데, 공훈록·묘비에서 사라진 ‘여성의 공로’

admin | 목, 2021/03/11- 05:29

2019년 2월28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내 여옥사 거울방에서 일제에 저항하다 수감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초상이 서로를 비추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일제에 맞서는 독립운동에는 남녀가 없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시대 분위기 속에서도 직접 군인이 되거나, 남편과 자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이 있었다. 국가는 이들의 헌신을 평가해 남편 뿐만 아니라 아내도 독립유공자로 인정했다.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 몇몇 부부가 함께 안장돼 있다. 그러나 서울현충원의 홈페이지와 묘비에는 오직 남편의 공훈만 적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과 재조명이 주목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들의 공훈을 기리고 되새기는 작업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달과 이달 두 차례에 걸쳐 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독립유공자 묘역을 살펴보고, 서울현충원 홈페이지의 공훈록 등재 현황과 비교했다. 그 결과, 부부가 함께 안장된 경우 아내의 공훈 기록은 서울현충원 홈페이지와 묘비에서 누락돼 있었다.

서울현충원은 묘역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홈페이지에서 추모할 수 있는 사이버참배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독립유공자의 이름을 검색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공훈록 보기’ 코너가 있다. 그런데 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있는 ‘김학규-오광심’, ‘오광선-정정산(정현숙)’, ‘신건식-오건해’, ‘신송식-오희영’, ‘이회영-이은숙’ 부부의 경우 남편은 공훈록에 공훈이 등재돼있지만, 아내는 등재돼 있지 않았다. 같은 시기 독립운동을 함께 했는데도 아내는 어떤 활동을 했는지 확인할 수가 없다.

묘비도 마찬가지다. 통상 묘비의 뒷면과 측면에 안장된 사람의 이력을 기재한다. 현충원을 방문하는 시민들은 묘비를 보고 독립운동가의 이력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남편의 묘비 중에는 이력 기재가 빠진 경우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내의 묘비는 상당수가 빠져있었다. 묘역 앞쪽엔 공훈의 내용을 발췌해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팻말이 세워져있는데, 공훈이 등재돼있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이곳에도 소개될 수 없다.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엔 김학규-오광심 부부의 묘소가 있다(오른쪽). 하지만 남편인 김학규 지사와 달리 아내인 오광심 지사의 공훈은 서울현충원 홈페이지 공훈록에 등재돼 있지 않다. 이혜리 기자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의 독립유공자 묘역 앞엔 공훈의 내용을 발췌해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팻말이 있지만, 공훈이 등재돼있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이곳에도 소개될 수 없다. 묘역 앞에 비치된 안내서에도 일부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이혜리 기자

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엄연히 공훈과 관련해 국가로부터 훈장을 받은 인물들이다.

오광심 지사는 1934년 조선혁명군 대표인 남편과 함께 만주에서 난징으로 넘어가 독립운동을 했다. 1940년 여군복을 입고 한국광복군 창립식에 참가했다. 광복군 간부로서 오 지사는 선전활동과 함께 사병이 될 여성 청년을 모집했다.

“광복군은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우리 여성의 광복군도 되는 것이니 우리 여성들이 참가하지 아니하면, 마치 사람으로 말하자면 절름발이가 되고, 수레로 말하면 외바퀴 수레가 되어 필경은 전진하지 못하고 쓰러지게 됨으로 우리의 혁명을 위하여, 광복군의 전도를 위하여, 우리 여성 자신의 권리와 임무를 위하여 광복군 대열에 용감히 참가하라.” 오 지사가 쓴 ‘한국 여성 동지들에게 일언을 드림’이라는 글의 한 대목이다.

정정산 지사는 ‘독립군의 어머니’, ‘만주의 어머니’로 불린다. 1918년쯤 무장독립단체인 서로군정서 별동대장 및 경비대장으로 활동한 남편과 함께 만주로 망명한 뒤 독립군의 뒷바라지와 비밀 연락임무 등을 수행하며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1935년 이후 난징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을 지원했고 한국혁명여성동맹과 한국독립당 일원으로 투쟁했다.

정 지사의 딸인 오희영 지사도 1940년 한국광복군에 여군으로 입대해 제3지대 간부로 활동했다. 오건해 지사는 한국혁명여성동맹과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자녀들을 보살피며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이은숙 지사는 1910년 일제강점기 초기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남편 이회영을 직간접적으로 도우며 투신한 공적으로 훈장을 받았다.

이상은 국가보훈처의 공훈전자사료관에서 볼 수 있는 정보들이지만, 서울현충원 홈페이지의 공훈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서울현충원은 국방부 산하 기관이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2019년 6월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유치원생들이 직접 그린 태극기를 들고 애국지사 묘역을 걸어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밖에 임시정부 요인 묘역 중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령이었던 이상룡 선생의 아내 김우락 지사와, 임시정부의 군무부장이자 광복군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의 부인인 윤용자 지사의 공훈이 공훈록과 묘역 안내서에서 빠져 있었다. 두 사람을 포함해 일부 여성 독립운동가는 정부가 최근에서야 발굴해 훈장을 줬지만, 일부는 유공자로 인정된 지 수십년 된 사례도 있다.

독립유공자는 아니지만 국가유공자인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박사도 공훈록에서 검색이 되지 않았다. 반면 남편인 정일형 박사는 공훈록에서 검색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차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발굴과 재조명을 강조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 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며 “(그럼에도) 여성의 독립운동은 깊숙이 묻혀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여성과 남성, 역할을 떠나 어떤 차별도 없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발굴해낼 것”이라고 했다.

한국 근현대사가 응축돼있는 서울현충원은 추모의 공간이면서도 교육의 공간이다. 여성 독립운동가들 묘소를 중심으로 ‘여성길’을 만들어 시민교육에 활용하고 있는 김학규 동작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애국이라는 것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닌데 현충원이 거의 남성들로 채워져있고, 여성들은 별로 없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남성 중심으로 운영돼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애초에 아내의 경우엔 독립운동의 한 주체로 국가가 인정을 잘 하지 않았고 남편이 인정되면 딸려서 함께 안장되는 형태였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뒤늦게 발굴되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되는 사례가 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훈록이나 묘비에 이력이 정확히 안내되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3월 현재 기준 독립유공자 총 1만6685명 중 여성은 526명(3.15%)이다. 서울현충원 측은 “지적한 부분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email protected]

<2021-03-10> 경향신문 

☞기사원문: 독립운동가 부부 함께 안장됐는데, 공훈록·묘비에서 사라진 ‘여성의 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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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5편 :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라

☞ 24편 : 광복군 제3지대가 _ 김일진(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광복군 오광심 지사 아들)

☞ 23편 : 추도가 _ 원형재(원심창 선생 아들)

☞ 22편 : 한반도가 _ 나중화(나창헌 선생 아들)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토, 2021/08/1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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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사 작곡 교가·일본신사 잔재 등…교육청 “후속 조치는 자율”

친일 인사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 [학교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인천 지역 학교에 대한 일제 잔재 조사가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별다른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15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지역 초·중·고교와 특수학교 52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 81건의 일제 잔재 사례가 파악됐다.

이 중 22건은 친일 작사가나 작곡가가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 사례였다.

특히 ‘섬집 아기’와 ‘봄이 오면’의 작곡가로 유명한 이흥렬이 만든 교가도 7개 학교에서 사용되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일본음악의 수립을 목적으로 창설된 대화악단 지휘자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또 다른 친일 인사인 김동진이 만든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도 6곳에 달했다. 김씨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찬양하는 음악 활동을 했다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친일 인사의 동상이나 일본 신사 잔재 등 일제 관련 기념물이 교정에 남아 있는 학교는 3곳으로 파악됐다.

나머지는 서운, 송월, 백마, 작약도 등 일제강점기에 일본식으로 변형된 지명이 교명과 교가 가사에 남은 사례였다.

시교육청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각 학교에 알렸으나 개선은 권고 사항에 그쳐 눈에 띄는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교 동문회와 학교운영위원회 등 내부 협의가 필수적인 만큼 교내 일제 잔재를 없애기까지는 시일이 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천황을 섬기던 신사의 돌기둥과 석등이 교정에 남아 있는 인천 중구 모 고교의 경우 별도의 시설물 철거 계획을 논의하지는 않은 상태다.

인천 연수구 모 중학교에는 독립운동가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동상이 세워져 있지만 ‘나쁜 역사도 역사로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철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동창회 차원에서 재원을 마련해 학교 설립자 동상을 세운 것이라 학교 마음대로 없앨 수 없다”며 “내부 검토를 여러 차례 했지만 역사를 기억하자는 차원에서 동상을 남겨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일 인사가 작사·작곡한 교가를 쓰고 있는 학교들도 대부분 즉각적인 개선 조치에는 나서지 못했다.

친일파가 교가를 작곡한 인천 연수구 모 고교는 추후 학생, 학부모, 동문회와의 협의를 거쳐 교가 일부를 개사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인천 동구 모 고교도 이흥렬이 작곡한 교가에 대해 별다른 개선 계획을 세우지 못한 상태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일선 학교에 일제 잔재 조사 결과를 보고서 형태로 알리기는 했지만 후속 조치는 자율적으로 하도록 했다”며 “이후 각 학교의 개선 여부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은지 기자 [email protected]

<2021-08-15> 연합뉴스

☞기사원문: 인천 학교들, 일제 잔재 남아 있어도 개선은 ‘거북이걸음’

※관련기사

☞서울신문: 친일파가 만든 교가…인천 각급 학교 일제 잔재 파악하고도 ‘개선‘ 소극적

화, 2021/08/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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