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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충남교육청-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업무협약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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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충남교육청-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업무협약 체결

admin | 수, 2021/02/24- 11:15

일제잔재 청산 및 역사교육 강화 위한 협력 강화

김지철 교육감(왼쪽)과 민족문제연구소 권희용 지부장이 역사교육 강화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성=쿠키뉴스] 한상욱 기자 = 충남교육청(교육감 김지철)과 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지부장 권희용)은 지난 22일 교육청에서 바른 역사교육과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23일 교육청에 따르면 양 기관은 협약을 계기로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 사업과 바른 역사교육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고, 충청 지역의 독립운동과 근현대사 관련 사업 연계를 활성화하기로 약속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에 설립돼 올해 30년을 맞는 단체로, 그간 친일파를 찾아내 역사 앞에 세우는 데 앞장서 왔다. 특히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해 친일파 단죄에 큰 역할을 했으며, 국민에게 일제 잔재 청산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협약식에서 김지철 교육감은 “민족문제연구소 창립 30주년을 축하하며 양 기관이 서로 힘을 합쳐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 사업을 힘있게 추진하자”고 다짐하며, “민족문제연구소도 학교 밖에서 일제 잔재 청산 홍보 등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권희용 지부장은 “일제 강점기와 현대사 관련하여 올바른 역사교육에 충남교육청이 앞장서달라”며, “협약이 양 기관의 통로가 돼 역사교육이 활성화되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데 함께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한편 2021년 충남교육청은 우리 지역 독립운동사 교육을 활성화하고 학교 내 일제 잔재 청산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email protected]

<2021-02-23> 쿠기뉴스 

☞기사원문: 충남교육청-민족문제연구소 충남지부, 업무협약 체결 

※관련기사 

☞뉴스스토리: 충남교육청-민족문제연구소 ‘일제잔재 청산’ 업무 협약 

☞충청신문: 충남교육청, 민족문제연구소와 맞손… 일제잔재 청산 박차 

☞내외뉴스통신: 충남교육청, 민족문제연구소충남지부와 업무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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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현충원서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개최

▲ 11월 15일 대전현충원에서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가 진행되었다. ⓒ 임재근
▲ 11월 15일 대전현충원에서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가 진행되었다. 독립유공자 제2묘역에서 걷기 행사를 마무리하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 임재근

백선엽, 김창룡 vs. 조문기, 곽낙원’

15일 오후 2시, 대전현충원에서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가 진행됐다. 올해로 3회를 맞고 있는 이 행사는 장군 묘역에 안장된 김창룡, 백선엽과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조문기, 곽낙원의 삶을 비교하는 이야기로 진행됐다.

▲ 장군 제1묘역(69번)에 안장된 김창룡의 묘역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해설사 ⓒ 임재근
▲ 장군 제2묘역(555번)에 안장된 백선엽의 묘역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해설사 ⓒ 임재근

김창룡은 대전현충원에 묻힌 일본군 헌병 오장(하사급) 출신의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책임자로 장군 제1묘역(69번)에 안장돼 있다. 김창룡의 묘는 현충일마다 파묘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등 이장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7월 10일 사망한 만주국군 중위·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은 친일 경력으로 인해 대전현충원 안장 당시부터 반대가 거셌다. 백선엽은 지난 7월 15일 장군 제2묘역(555번)에 안장됐다.

▲ 독립유공자 제3묘역(705번)에 안장된 조문기 지사의 묘 앞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해설사 ⓒ 임재근
▲ 독립유공자 제2묘역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해설사. 오른쪽 묘가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지사의 묘(772번)이고, 왼쪽의 묘는 뱀범 김구 선생의 장남 김인 지사의 묘(771번)이다. ⓒ 임재근

김창룡, 백선엽과 대비되는 인물로 선정된 이들은 독립유공자 제3묘역(705번)에 안장된 조문기 지사와 독립유공자 제2묘역(771번)에 안장된 곽낙원 지사다. 조문기 지사는 1945년 7월 24일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부민관 폭파 의거’를 거행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을 지냈다.

곽낙원 지사는 독립운동가들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뒷바라지하면서 국내 및 중국에서 조국광복을 위한 항일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곽낙원 지사는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이고, 곽낙원 지사의 묘 바로 옆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장남, 김인 지사의 묘(772번)가 자리했다.

본격적인 걷기에 앞서 장군 제1묘역 아래 주차장에서 개회식이 진행됐다. 개회식은 순국선혈 등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이들을 위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이날 개회식에서 인사말에 나선 광복회대전지부 윤석경 지부장은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고 이역만리에서 많은 고초를 겪으며 희생하신 애국지사들의 뜻은 자주독립이었다”며 “아직도 친일청산을 이루지 못하고, 남북이 분단된 현실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로서 죄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일청산과 민족 통일을 이루는 데 여러분들의 참여가 큰 기여가 될 것”이라며,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에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에 앞서 주최 단체 대표자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광복회대전지부 윤석경 지부장,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대전본부 박규용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유성우리겨레한마음봉사단 황인식 단장, 진보당유성구위원회 강민영 위원장. ⓒ 임재근
▲ 정용래 유성구청장이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임재근

축사에 나선 정용래 유성구청장은 “의사가 진단과 진찰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처방을 제대로 하지 못해 건강을 해치거나 심지어는 죽게 할 수 있듯이, 역사를 바로 안다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때 병들어 나아갈 것인지, 건강하게 나아갈 것인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라며 행사를 준비한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평화둘레길 행사는 장군 제1묘역을 출발해, 장군 제2묘역과 독립유공자 제3묘역을 거쳐, 독립유공자 제4묘역까지 약 2km 정도를 걸으며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의 마지막에는 독립유공자 제2묘역에서 묘비닦기를 하며 마무리했다.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는 광복회대전지부, 독립유공자유족회대전지회,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대전본부,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유성겨레하나, 진보당유성구위원회, 유성우리겨레한마음봉사단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 개회식에서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이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놀’은 ‘격문’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를 불렀다. ⓒ 임재근
▲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 참가자들이 본격적인 걷기에 앞서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다. ⓒ 임재근
▲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의 마지막에는 묘비 닦기를 진행했다. ⓒ 임재근

<2020-16-1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백선엽부터 곽낙원까지, 걸으면서 배우는 현충원 속 역사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함께 걸어요”

수, 2020/11/18-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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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기자회견문]

대법원 판결 1년,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한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8년 10월 30일 역사적인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 1년이 지났다. 1997년부터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자신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싸워 온 피해자들이 20여년의 기나긴 투쟁 끝에 마침내 승리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국제인권법의 성과를 반영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고, 식민지배와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의 극복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딘 세계사적인 판결이라 할 것이다. 아울러 냉전과 분단체제 아래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강요한 ‘65년 체제’를 피해자들과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연대하여 극복한 역사적인 성과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년, 해방 70여년이 지나도록 실현되지 못한 자신들의 인권회복과 정의의 실현을 고대해 온 피해자들의 기대는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

아베 정권은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고 사죄, 반성하기는커녕 ‘국제법 위반’을 운운하며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피고 기업들에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여 판결의 이행을 방해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와 노골적인 배외주의를 선동하여 일본 사회 전체를 ‘혐한의 광풍’으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혐한의 광풍’ 속에서 재일조선인들은 일상적으로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문제에서 드러나듯 역사왜곡과 혐한발언으로 채워지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일본사회 전체가 ‘재특회’처럼 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강제동원의 근본적 책임이 있는 가해자 일본정부가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피고 일본 기업 일본제철, 미쓰비시, 후지코시는 판결에 따라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배상을 위해 먼저 나서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대화마저 거부한 채 일본 정부 뒤에 숨어서 1년이 지나도록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기업들의 비겁한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피고 가해기업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임을 밝힌다.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하여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천명하였으나, 지난 1년 동안 한국 정부가 보인 노력은 부족하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진상규명, 사죄, 법적 배상, 재발방지 등 과거사 해결의 기본원칙에 입각하여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나아가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을 위해 한국 내에서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취하고, 소송 당사자뿐만 아니라 군인·군속 피해자 등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포함하여 강제동원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 고민하여야 한다.

한국 정부는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 박근혜 정부 당시였던 2015년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같이, 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은 과오를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아니 된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구상권 방안, 1+1 방안 등 이른바 ‘해결안’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안보문제와 한일관계를 빌미로 피해자의 양보를 강요하고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맞바꾸려는 일련의 시도에 대해서 우리는 강력히 경고한다.

지난 1년,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에도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정의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피해자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없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보여준 지지와 연대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음을 기억한다. 우리는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이 실현되는 그 날까지 국제사회와 함께 연대하여 행동해 나갈 것이다.

2019년 10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겨레하나,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대한불교조계종민족공동체추진본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선학교와함께하는사람들 몽당연필, 청년시대여행,
평택원폭피해자2세회, 평화디딤돌, 포럼 진실과정의,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한국YMCA전국연맹, 합천 평화의집, 흥사단,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KIN(지구촌동포연대)]

목, 2019/10/3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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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30일(목) 오후 7시 30분, 구미 동락공원 장진홍 선생 동상 앞에서 추모문화제 개최

경북 구미 옥계동 출신 독립투사 장진홍(1895∼1930) 선생 순국 90주기를 맞아 장진홍선생 기념사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지회장 이수연)가 구미 동락공원 장진홍 선생 동상 앞에서 2020년 7월 30일(목) 오후 7시 30분 추모문화제를 거행한다.

2015년도에 장진홍 의사 탄신 120주년 추모식 및 동상 제막식이 있었고 3.1절과 현충일에 장진홍 선생 추념식이 있었지만 장진홍 의사의 서거일에 추모행사가 열린 적은 거의 없었으며 장 의사의 기념사업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장 의사 순국 90주기를 맞아 일제강점기 구미가 낳은 장진홍 의사의 불굴의 독립정신을 기리고 구미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마련하는 이번 행사는 더욱 뜻깊다.

장 의사는 구미 출신 독립운동가로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청년들을 규합해 군사훈련을 지도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폭탄 제조법을 배우고 국내로 돌아와 영천에서 폭탄을 제조하여 포장된 폭탄 상자를 배달하도록 하여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폭파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투척 사건은 일제강점기 의열단 3대 의거 중 하나로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해 활동했던 이육사는 같은 의열단원인 장진홍이 일으킨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의거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 투옥됐으며 이때 받은 수감번호인 ‘264’가 그의 아호가 됐다.

장 의사는 이후 3년 가까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결국 한 친일파의 밀고로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사형을 선고받으면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등 기개를 꺾지 않았고, 일제의 손에 치욕적 죽음을 맞이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대구형무소에서 향년 35세로 옥중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김창섭 기자 [email protected]

<2020-07-20> 구미일보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독립투사 장진홍 의사 90주기 추모 문화제” 거행 

※관련기사 

☞경북도민일보: 구미 독립투사 장진홍 의사 90주기 추모문화제 개최

화, 2020/07/2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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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자료집]

제14회 ‘임종국상’ 시상식

학술부문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
문화부문 박시백 화백

1965년 국민적 반대 속에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임종국 선생(1929∼1989)은 우리 근현대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과거사 청산의 부재에 있음을 직시하고, 반민특위 와해 이후 금기시되고 있던 친일문제 연구에 착수했다. 그는 1966년 『친일문학론』을 발표하여 지식인 사회에 충격을 던졌으며, 그 외에도 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방대한 역작들을 남겨 한국지성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회장 장병화)가 제정한 〈임종국상〉은 ‘친일청산’,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선생의 높은 뜻과 실천적 삶을 오늘의 현실 속에 올바르게 계승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학술·문화와 사회·언론 두 부문에서 선정해 수여한다. 다만 올해는 사회·언론 부문 적격자가 나오지 않아 학술·문화 부문에서 두 사람을 선정했다. 200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나, 2008년과 2009년도는 사무국을 맡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주력해야 했던 사정으로 시상이 잠시 중지되었으며, 올해가 14회째이다.

올해 수상자 후보 공모에는 학술·문화 부문 아홉, 사회·언론 부문 셋 등 12건이 올라왔으며, 지난 10월 12일 예심을 거쳐 19일 열린 심사위원회 본심에서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 학술부문에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를, 문화부문에 박시백 화백을 제14회 임종국상 수상자로 최종 선정하였다. 심사에는 심사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을 비롯 박찬승 한양대 교수, 장완익 변호사, 정해구 전 성공회대 교수,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 등이 참여했다.

▲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

학술부문 수상자인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역사사회학자로서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통제와 공안, 국가폭력과 제노사이드, 냉전과 과거청산 등을 주제로 주목해야 할 성과들을 꾸준히 내놓은 연구자이자 맹목적 반공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 여성과 소수자 혐오에 맞서 맹렬히 활동해온 실천적 지식인이다. 최근에는 미국과 영국 등 해외의 기관에서 일본군‘위안부’와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 관련 중요자료를 발굴 수집하여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기여했다.

수상저서인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반일 종족주의』를 비롯한 한일 극우연합세력의 역사부정론을 정면으로 논파함으로써 그 허구성을 명백하게 드러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추악한 역사변조에 대응하여 단기간에 결정적인 반론서를 내놓을 수 있었던 근저에는 저자가 최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천착하고 있었던 사정이 있었다. 진실공방의 주전선이 여기에 있었던 만큼 방대한 사료를 섭렵하고 분석해온 저자로서는 실증의 탈을 쓴 역사부정론자들의 도발을 실증으로 격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심사위원회는 강성현 교수가 역사부정론과 혐오론의 수법과 논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 이의 확산을 저지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판단했다. 한일 극우세력이 공공연하게 연대하여 과거사를 분식 왜곡하고 있는 시점에 열정적인 연구자가 근현대사 진실 찾기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도 높이 샀다. 강 교수의 진취적 학술연구와 실천적 자세는 임종국 선생이 추구했던 학문세계에 적확하게 부합한다고 보아 그를 학술부문 수상자로 결정했다.

▲ 박시백 화백

문화부문 수상자인 박시백 화백은, 시사만화가로 만화계에 발을 디딘 뒤 전업작가로 전환하여 201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전 20권을 완간하였다. 이 대작은 초유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역사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숱한 드라마나 영화의 원작으로 활용되어 문화콘텐츠의 전형을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창작은 정사에 기반을 두면서도 재미있고 쉽게 다가온다는 데 특장이 있으며, 자연스레 박 화백은 청소년들은 물론 ‘역사교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이기도 하다.

수상작인 『35년』은 전 7권으로 일제강점기의 우리 역사를 다루고 있다. 박시백 화백은 『박시백 의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마치자마자 단절된 조선왕조 이후의 역사에 주목하여 국내외의 독립운동 현장을 답사하고 자료수집과 연구에 매진했다. 일반적인 관행과 달리 오롯이 혼자 힘으로 5년간에 걸쳐 준비한 끝에 완성도 높은 또 하나의 대작을 선보인 것이다. 작가는 치열한 항일투쟁의 역사가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또 다양한 친일파 군상의 진면목도 여과 없이 다루고 있다. 그리하여 여성독립운동가에서부터 밀정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0여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대서사를 담아냈다.

심사위원회는 우선 전문 연구자도 아니면서 장기간에 걸친 추적조사와 방대한 사료 검증을 돌파해낸 작가의 의지와 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아가 역사의 사각 지대를 조명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국내외에서 역사왜곡이 자행되고 있는 시점에 창작을 통해 역사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박시백 화백의 노고와 도전정신에 경의를 표하면서 문화부문 수상자로 결정했다.

시상식은 11월 9일(월) 오후 6시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며, 코로나19-감염증 사태로 현장 참석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당일 행사를 민족문제연구소 페이스북으로 실시간 중계하고 유튜브에 녹화영상을 올릴 예정이다.(https://www.facebook.com/minjok)

제14회 임종국상 시상식
때 : 2020년 11월 9일(월) 오후 6시
곳 :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
문의 : 민족문제연구소 02-969-0226 / www.minjok.or.kr

* 별첨 : 시상식 자료집

목, 2020/11/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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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서택효삼랑’에서 명명 … 민족문제연구소 진주지회, 명칭 변경 요구

▲ 경남 사천시 용현면에 있는 서택저수지 표지판. ⓒ 민족문제연구소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의 승리를 위해 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했던 인물의 이름을 딴 저수지가 있어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남 사천시 용현면에 있는 ‘서택저수지’다. 민족문제연구소 경남진주지회(대표 강호광)는 29일 이 저수지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 사천지사에 “서택저수지 명칭 변경”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 단체는 “올해는 해방 75주년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주위에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 시기의 잔재가 치욕스럽게 존재하고 있다”며 “그 가운데 하나가 서택저수지다. 저수지 명칭을 바꾸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서택’저수지는 일본인 서택효삼랑(西澤孝三郞, 니시자와 고자부로)’에서 따온 것이다.

저수지는 일제의 식량 증산과 관련해 만들어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산업자본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농업 생산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특히 1918년 발생한 쌀 파동은 조선에서 산미증식계획을 수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조선에서 산미증식계획은 1920년부터 1935년까지 장기 계획으로 수립되었던 것이다. 1923년 3월, ‘조선공유수면매립령’이 공포되어 조선 곳곳에서 연안을 매립하여 농토도 변경하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계획에 따라 1928년 일본인 서택효삼랑은 사천 용현면 장송에서 신촌리까지 900m의 방조제를 축조하고, 1935년 12월 31만 7568평의 농지 조성을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조선총독부 <관보>(1935년)와 <시정20년역사>(1935년), <조선신보>(1937년), 사천시의 <사천시사>(2003년),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타베이스> 등에 기록되어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서택효삼랑은 농지의 상류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저수지를 축조하였고, 저수지의 이름을 ‘서택저수지’로 명명하였다”며 “이 명칭은 해방 75주년이 되는 현제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 단체는 “일제의 침략전쟁이 한창일 때 ‘서택’은 일본군의 승리를 위해 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했던 자”라며 “이러한 서택의 행적을 볼 때 아직까지 저수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시민과 우리 민족 전체를 욕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택저수지를 우리의 정서에 맞는 이름으로 변경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이들은 “저수지가 위치한 지역은 선 태종까지 세곡을 운반했던 ‘통양창(通陽倉)’이 있었던 곳으로, 이 지역에선 아직까지 ‘통양’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통양저수지’로 명칭 변경도 조심스럽게 권유해 본다”고 했다.

<2020-06-29>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사천 서택저수지는 일제잔재, 침략전쟁 가담 인물 이름 딴 명칭

화, 2020/06/30-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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