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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민족문제연구소 출범 30년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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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민족문제연구소 출범 30년을 돌아본다

admin | 화, 2021/02/2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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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출범30년을 돌아본다

상임이사 조세열

친일문제 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선생의 유지와 반민특위의 정신을 이어받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월 27일(일제침략이 시작된 강화도조약 체결일)로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그간 연구소는 숱한 고난과 역경을 뚫고 역동하는 조직으로 성장했다. 짧지 않은 세월인 만큼 괄목할만한 성과도 거두었지만 역량이 따라주지 않아 미처 주목하지 못한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았다.
  
자화자찬이 될까 조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지난 30년간 연구소가 이루어낸 주요성과들을 정리해본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업적은 물론 2009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발간이다. 연구소 창립부터 치면 18년, 편찬위원회가 발족한 뒤로도 8년의 시간과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전3권 2,882쪽 4,389명의 친일파를 수록한 대사전이 빛을 보게 되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성원과 헌신이 있었다. 대학교수 1만2천여 명의 편찬 지지선언, 단 11일만에 5억의 성금을 모아주고 후원회원으로 가입한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시민들, 진보언론의 대대적인 보도, 아무런 대가 없이 작업에 참여한 편찬위원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정을 바친 상근자들. 그야말로 전 국민적 여망과 시대정신이 만들어 낸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적의 산물이었다. 오랜 기간 소송과 협박에 시달렸으나 『친일인명사전』은 이제 정부기관과 사법부까지 잣대로 삼는 역사의 이정표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많은 어려움을 딛고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 그해 11월8일 국민보고대회를 열었다. 강윤중 기자 @ 경향신문 2020.11.24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실용주의를 택할 것이라는 일반적 예상과 달리 철저하게 퇴행의 길을 걸으며 극우세력과 손을 잡았다. 정권인수위원회의 일성이 과거사청산 중단이었던 데서 드러나듯,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을 고스란히 수용해 정책에 반영하였다. 뉴라이트가 활개치고 공영방송까지 나팔수가 되어 역사왜곡을 본격화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학계와 교육계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를 조직하고 사무국을 맡아 이에 대응하였다. ‘근현대사 진실 찾기’ 역사다큐 시리즈 제작도 관제언론의 이승만 박정희 미화 등 역사변조에 대한 대응이었다. 700만 여명이 관람한 〈백년전쟁〉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를 둘러싸고 최근까지도 소송이 진행되었으나 모두 연구소의 승소로 끝이 났다. 뒤이은 박근혜 정권 아래서는 아예 역사말살이 벌어졌다. 수준이하의 교학사 판 한국사 교과서 검정 통과와 국정제 기도가 그것이다. 연구소는 역사정의실천연대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로 확대 개편하고 다시 사무국을 맡아 ‘역사쿠데타’를 저지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으며 완승을 거두었다. 이 과정에서 연구소의 지부들은 지역의 저지운동에서 선봉 역할을 기꺼이 떠맡았다. 박근혜의 아버지에 대한 빗나간 ‘효도’는 결국 촛불혁명을 일으키고 정권의 종말을 앞당기는 단서의 하나가 되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이어 연구소가 역점사업으로 추진한 과제는 시민역사관 건립이었다. 사전만으로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널리 확산시킬 수 없다는 문제의식의 발로였다. 연구소는 오랜 기간 축적된 10만 여점의 문헌과 실물 등 희귀자료를 소장하고 있었다. 구입한 것도 많지만 다수는 강제동원피해자들과 연구소 회원들이 흔쾌히 기증해 준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2011년 건립위원회가 발족하였고 8년의 노력 끝에 2018년 8월 29일 국치기념일에 식민지역사박물관이라는 명칭으로 개관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도 시민과 회원들이 17억 원의 성금으로 역사정의 실현의 길에 힘을 보탰다. 일본의 시민사회와 진보 학계는 ‘일본과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잇는 모임’을 결성하고 1억여 원의 성금과 방대한 자료를 기증하였으며, 개관 이후에도 연대와 후원을 지속하고 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차별성 있는 상설전시와 참신한 기획전시, 알찬 시민강좌로 단기간에 일제강점기 전문박물관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2015년부터는 서울시 강북구의 위탁으로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성지 수유리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근현대사기념관도 개관 운영 중이다. 동학농민혁명에서 3·1혁명, 사월혁명으로 이어지는 100년간에 걸친 연면한 투쟁의 역사를 담은 기념관은 이제 강북구를 넘어 전국적인 명소로 성가를 드높이고 있다.

친일문제, 일제하강제동원,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등 과거사진상규명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데는 연구소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진상규명이 학문적 전문적 영역이었다면 이에 기초한 입법과 청산 운동은 실천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박정희기념관반대운동, 친일문인기념문학상 등 친일파 기념사업 철폐운동, 강제동원 소송지원, 야스쿠니신사 조선인 합사 철폐운동, 전범기업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반대운동, 민간인학살희생자 유해발굴 등 지속적인 시민운동의 전개는 전 국민적 관심과 여론의 지지를 받았으며 이는 일부 분야의 특별법 제정이라는 최종의 성과로 이어졌다.

민간과 별개로 국가의 과거청산은 당연한 책무의 이행이라는 점에서 ‘나라다운 나라’의 선결 과제임에 틀림없다. 너무도 늦은 감이 있고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여러 과거사 관련 특별법의 제정과 정부 위원회의 발족은 거대한 역사의 진전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최근에는 과거사 청산이 전문분야와 지방자치단체, 교육현장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어 미래세대를 생각하면 더더욱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독립운동의 위상 복원에도 앞장섰다. 신흥무관학교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독립군 양성 기지로 그 교관과 생도들이 봉오동·청산리 전투 등 초기 독립전쟁의 주력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의열단 등 여러 독립운동단체의 지도자를 배출한 무장항일투쟁의 금자탑이었다. 그럼에도 사실상 잊혀진 독립운동이었던 신흥무관학교의 활약을 되살리기 위해 설립 100주년을 맞은 2011년 기념사업회 발족을 주도하였으며 사무국을 맡아 신흥무관학교가 남긴 불멸의 공적을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3·1운동은 전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역사적 함의는 훨씬 크다. 우리 민족사에 비로소 민주공화정을 대세로 확립시켰으며, 여성과 천민들이 대거 변혁운동의 주역으로 현실참여에 나섰다. 나아가 전면적인 항일무장투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지역과 종교, 신분과 계급, 좌우의 이념을 뛰어넘어 민족협동전선의 시원을 이루었다. 연구소는 3·1운동 95주년이던 2014년 3·1혁명기념사업회를 조직하고 사무국을 맡았으며 〈제국에서 민국으로〉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정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을 병행하는 특유의 도전을 계속해 왔다. 민주화운동 시기 많은 연구단체들이 같은 지향을 가지고 활동했지만 오늘날 성공적으로 이를 체화시킨 단체는 드문 형편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사회참여에 못지않게 학술부문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전시 교육 등 무수한 일상적인 사업부문은 논외로 하더라도, 『일제하전시체제기정책자료총서』 전 98권과 『일제협력단체사전』 『식민통치기구사전』 『재일조선인단체사전(근간)』 등 사전류, 『친일파 99인』 『청산하지 못한 역사』 『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 『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 등 대중서 발간 등 의미 있는 결실들을 거둬왔다. 논문집 등 연구서 발간이 저조하지만 이는 남들이 회피하는 ‘공장’을 돌리고 있는 연구소의 불가피한 현실에서 기인하는 바, 실정을 헤아려 주길 바랄 뿐이다.

지난 30년간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일을 해왔다. 그래서 어떤 분은 ‘모든 문제 연구소’라고 애정 어린 지적까지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연구소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다른 단체에서 주목하지 않은 일들을 주로 감당하는 편이었다. 앞으로도 역사와 현실이 우리를 불러내면 기꺼이 궂은일도 떠맡을 작정이다.

1991년 2월 27일, 소장 사무국장 연구원 둘 총원 네명으로 11평 좁은 방에서 첫발을 내디뎠던 민족문제연구소가 이제 상근자만 40명(근현대사기념관 파견 6명 포함)인 거대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갖가지 탄압과 협박, 각종의 음해와 비방에 시달려 온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고 오늘에 이른 데에는 무엇보다 회원들(현재 1만2천여 명)의 한결같은 지지가 큰 힘이 되었다. 학계와 시민사회에도 갚을 수 없는 많은 빚을 졌다. 성심을 담아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역사와 사회 정의 실현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이에 보답하고자 한다.

* 향후의 과제와 전망에 대해서는 하반기 학술회의를 거쳐 별도의 글을 싣도록 하겠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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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작가 사진 52점 전시 해외 독립운동가 후손, 독립운동 사적지 담겨…온라인 또는 전화로 사전 예약 후 관람 가능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강북구(구청장 박겸수)가 8월18일까지 근현대사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사진전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를 개최한다.

근현대사기념관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사진전은 쿠바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으며 김동우 작가가 촬영한 52점의 사진이 준비됐다.

김 작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인터뷰해 왔다.

독립운동가들은 먼 타국의 땅에서 굶주림, 차별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대한인국민회 지방회, 한인교회, 한글학교 등을 세워 정체성을 유지하고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서도 자금 모집 등 활동을 해 왔다.

전시회에서는 쿠바 마나티 항구와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 등 한인 이주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와 3·1운동 2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던 미국의 타운홀,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의 인도 레드포트 훈련지, 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 열사의 묘적지 등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 볼 수 있다. 쿠바와 멕시코,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작품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전시는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관람 희망자는 근현대사기념관 홈페이지를 통해 온라인으로 예약하거나 전화신청 후 이용할 수 있다. 비용은 무료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이번 전시회가 세계 곳곳에서 광복을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했던 숨은 독립운동가들을 찾아내고 기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관심 있는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2021-05-21> 아시아경제

☞기사원문: 강북구 ‘쿠바 이민 100주년 기념 특별사진전’ 개최

화, 2021/05/25-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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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거래’ 의혹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이 박근혜 정권 당시 ‘재판거래’로 지연돼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씨와 피해자 고(故) 김규수씨의 배우자가 최근 국가를 상대로 1인당 1억원씩 총 2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고 27일 밝혔다.

앞서 이씨와 김씨를 비롯한 4명의 강제동원 피해자는 2005년 2월 신일본제철(현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당시 1·2심에서는 패소했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하고 피해자들의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파기환송심에서도 2013년 대법원 판단대로 일본제철이 1인당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사실상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이 없는 재상고심에는 5년이란 시간이 소요됐고, 원고 4명 중 이씨를 제외한 3명은 세상을 떠났다. 대법원은 2018년 10월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검찰 수사에서 재판 지연이 박근혜 정권과 사법부의 재판거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간부들이 정부 인사들과 강제동원 소송 재상고심 결과를 ‘피해자 패소’로 바꾸거나 진행을 미루는 방안을 논의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이에 이씨 등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받았다”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소장에서 “재판거래 피해자들은 아직도 사건의 진상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며 “손해를 배상받지도 책임 있는 주체로부터 어떤 공식적 사과나 의사 표시를 받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권력 행사 중 가장 높은 독립성을 가져야 할 재판이 부정됐고 불법이었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피해자들의 고통은 어떤 절차로도 회복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보도자료를 내 “재판거래 혐의로 기소된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소수이며, 1심 판결도 선고되지 않았다”며 “불법행위자 각각을 피고로 삼기보다 재판 과정에서 이들의 불법행위를 입증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2021-05-26> 연합뉴스 

☞기사원문: “재판거래로 피해”…日강제동원 피해자들 국가 상대 소송

※관련기사 

KBS: 강제징용 피해자, ‘불법 재판거래’ 국가배상 소송 제기

목, 2021/05/2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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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직후 친일파 처벌 특별법 제정 착수, 경기도 등 일제 잔재 청산 작업 이어져
군사·산업시설 관련도 상당 부분 존재해…‘철거 방법’ 가장 언급되지만 역사 잊혀져, 문화콘텐츠 등
활용 주민참여형 개발 필요

걷어내지 못한 친일파·기업… 기념·조형물도 곳곳 산재

1944년께 동원된 어린 소녀들이 미쓰비시 중공업기숙사 사감으로부터 지시사항을듣고 있다. 경기일보DB

걷어내지 못한 친일파·기업… 기념·조형물도 곳곳 산재

■친일 인물 청산을 위한 노력

친일 잔재는 ‘일제강점기 남겨진 유산 중 부정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개념적으로 볼 때 상당한 의미와 기준 등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유형들이 부정적으로 남아있다. 가장 많이 언급하고 청산하고자 하는 것이 이른바 친일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친일파’로 많이 알려졌다. 그동안 친일 인물에 대해서는 상당한 노력을 하였다.

이를 위해 해방 직후 친일파를 처벌할 특별법 제정에 착수하여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 설치한 바 있으며, 2004년에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으로 국가가 직접 친일 인물을 선정하였다. 민간단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여 친일 인물 청산을 주도하였다.

특히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계기로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다. 이를 계기로 경기도 등 광역 지자체에서 구체적인 일제 잔재 청산이 진행됐을 뿐 아니라 크고 작은 지자체에서도 일제 잔재 청산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친일 잔재의 유형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동안 친일 잔재 청산은 ‘친일 인물’이 주요 대상이었다. 이는 친일 인물이 사회적으로 영향을 많이 미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친일 잔재의 유형은 친일 인물 외에 상당한 잔재들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다.

친일 잔재는 우선 인적 잔재와 물적 잔재로 구분할 수 있다. 인적 잔재는 구한말 일제의 침략과 강점기 식민 지배통치에 부역한 반민족 행위를 한 자라 할 수 있으며, 물적 잔재는 반민족 행위로 인해 얻은 재산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를 흔히 ‘친일 인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세력을 ‘친일파’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친일파는 가장 먼저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인적, 물적 친일 잔재 외에도 유형 잔재와 무형의 친일 잔재로도 구분할 수 있다. 유형 친일 잔재는 일제가 침략전쟁과 식민 지배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조성한 시설물 등 선전 조형물이다. 여기에는 식민 지배와 관련된 건물, 상업과 산업시설, 군사시설, 기념탑 및 기념비, 종교시설, 전쟁 기념물, 찬양조형물, 일본식 가옥 등이 포함된다.

무형 친일 잔재는 일제의 침략과 식민 지배 시기에 역사와 문화 등 주로 정신적으로 왜곡된 잔재들이다. 여기에는 언어 등 생활문화를 비롯하여 법과 행정제도, 관습과 의식, 교육, 문화예술, 역사 등이 포함된다. 그렇다면 친일 인물과 건축물을 제외한 유형의 친일 잔재가 어느 정도 남아 있고, 청산되었는가 살펴보자. 그리고 이를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군사 관련 친일 잔재의 현황

친일 잔재 시설물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은 조선총독부 건물이다. 조선 왕궁의 맥을 끊고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조선총독부 건물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한편에서는 해방 후 이른바 ‘중앙청’이라 불리며 정부 건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보존하자는 여론도 있었지만 결국 해체돼 지금은 독립기념관에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이처럼 식민 지배와 관련된 건축물은 대부분 철거되거나 일부에서는 리모델링하여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에 비해 일제의 침략전쟁을 위한 군사시설은 아직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것이 상당 부분에 이르고 있다. 군사시설은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시체제기에 주로 형성됐다. 일제는 침략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강제 동원하여 군사시설을 설치했다. 이를 전쟁유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비행장, 격납고, 연병장, 대피호, 동굴 진지, 방공호, 지하호 등이 있다. 국내에서 조사된 바로는 군사 관련 잔재는 전국적으로 1천300여곳이 산재한다. 경기도의 경우 비행장 건설이 적지 않았는데 수원, 오산, 시흥, 평택, 고양 등이 해당된다. 군사시설물 구축과 관련된 곳으로는 시흥, 양주, 평택, 포천 등이 있다. 이외에도 평택 함정리의 방공호, 평택 안정리의 해군시설대 보급기지, 의정부와 수원, 김포 등지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산업 관련 친일 잔재 현황

일제강점기 산업시설과 관련한 친일 잔재도 상당 부분 존재한다. 산업 관련 친일 잔재는 공장을 비롯하여 탄광이나 광산, 철도, 도로, 토건, 하역 수송 등이 해당된다. 이 가운데 철도와 항만은 산업 관련 잔재이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 식민통치 잔재이기도 하다. 산업 관련 잔재는 탄광과 광산이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한다.

일제는 전시체제기에 들어서면서 전쟁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석탄 외에 금, 은, 구리 등 일반 광물과 텅스텐, 석면, 몰디브덴 등 특수 광물까지 채광하였다. 광산과 탄광은 지하자원이 풍부한 북한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경기도는 320여개가 있었다. 철도와 도로는 교통의 편리함이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한반도에서 물적 자원을 수탈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산업 관련 잔재는 대부분 일제 지배를 지원하거나 적극 후원하는 일본 기업들이었다. 현재도 널리 알려진 미쓰비시(三菱), 미쓰이(三井), 아소(麻生), 스미모토(住友), 일본제철(日本製鐵) 등 대기업 등이 있다. 이들 대기업 외에도 가네보(鐘紡), 다이니치보(大日紡), 도요보(東洋紡) 등 방적공장도 있었다.

경기도의 산업 관련 친일 잔재는 앞서 언급했듯이, 광산과 탄광이 가장 많았다. 해당 지역을 살펴보면 가평 12곳, 고양 3곳, 광주 6곳, 김포 1곳, 부천 26곳, 수원 9곳, 시흥 9곳, 평택 1곳, 안성 35곳 등 각지에 산재하고 있었다.

인천시 부평구 부평2동에 위치한 일제 강점기 한국인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미쓰비시 줄사택’. 경기일보DB

■친일 인물 관련 기념물과 조형물

유형의 친일 잔재 중 가장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한 것은 친일 인물 관련 기념물과 조형물이다. 기념물과 송덕비, 찬양비 등 비석류가 해당된다. 어느 지역에 답사를 간 적이 있는데, 일제 말기 지역에서 면장을 한 분의 기념비가 있었다. 면장은 친일 인명에는 빠져 있지만, 전시체제기 최말단에서 식민 지배에 협력한 직책으로 지역에서는 부일협력과 관련하여 가장 영향력을 미쳤다. 그런 점에서 지역과 관련된 부일협력을 한 면장을 비롯하여 반민족 행위를 한 인물과 관련된 기념시설은 친일 잔재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경기도에 산재한 친일 인물 관련기념 시설은 160여개다. 이중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120여개, 확인 불가능한 것이 26개, 망실되거나 매몰된 것이 2개 정도였다. 지역별로 보면 안성 57개, 화성 18개, 평택 13개, 용인 10개, 이천 9개, 광주와 양주 8개, 여주 7개, 포천 4개, 의정부 3개, 파주 3개, 연천 2개, 남양주 2개 등으로 대부분의 지역에 분포돼 있다. 이들 기념시설은 대부분 강점기 군수나 읍장, 면장 등 공직을 맡았던 인물과 부일협력을 한 인물의 송덕비 또는 기념비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안성의 경우 읍내면장, 공도면장, 금광면장, 소초면장, 미양면장, 보개면장, 원곡면장 등 면장으로 활동한 인물들의 송덕비이다. 평택은 서면장(진위), 현덕면장 등의 송덕비가 있다.

이외에 친일 인물과 관련된 기념시설로 기념탑과 동상 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수원 서둔동의 옛 농촌진흥청 구내에는 ‘혼다 코스케(本田幸介) 권업모범장장 흉상 좌대’, 안성농업학교 교정에 세워졌다가 금속물 회수에 헌납 제공된 ‘박필병(松井英治) 중추원 참의 동상’, 현재 현재 용인문화원에서 보관 중인 ‘팔굉일우비(八紘一宇碑)’ 등이 있다.

■식민 잔재 청산 방안과 앞으로의 과제

친일 잔재의 청산 중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철거이다. 그렇다고 철거가 청산의 진정한 방법은 아니다. 철거를 하면 이후 잊힌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킨다. 역사를 언급할 때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자랑스럽고 기억할만한 것은 기록하지만, 역사에 부정적인 것은 대부분 없애거나 지우려고 한다. 그러면 잊힌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것도 남겨야 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유형의 친일 잔재를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들 잔재의 아카이브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이후 망실된다 하여도 역사적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자료집을 편찬하여 연구와 교육 자료로 활용돼야 한다.

또한 기존의 친일 잔재를 알리기 위해서는 현재 남아 있는 친일 잔재가 어떠한 연유로 만들어졌으며, 관련된 인물의 친일 행적에 대해 최소한의 기록을 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친일 잔재 기념시설물은 송독이나 찬양으로 일관하고 있다. 기존의 기념시설물과 함께 부일협력을 기록함으로써 인물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록은 관련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안내판을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문화콘텐츠는 ▲교육프로그램 운영 ▲웹 또는 모바일 콘텐츠 개발 및 활용 ▲교육형 테마파크 활용 ▲기억의 공간 활용 ▲다크 투어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이러한 방식은 관이 주도할 것이 아니라 주민참여형으로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주현 1923 제노사이드연구소 부소장

<2021-06-06> 경기일보

☞기사원문: [광복 76주년, 우리가 몰랐던 친일 잔재 알리기] 유형 친일 잔재와 청산… 현황·과제

화, 2021/06/08-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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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시민노래] [다운로드]

안양시민의 노래/ⓒ안양시

[경기=뉴스프리존] 김현무 기자=경기 안양시가 신곡 ‘안양시민의 노래’ 음원을 시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고 10일 밝혔다.

개정된‘안양시민의 노래’는 안양출신 고 김대규 시인의 노랫말은 그대로 사용하고,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안예림 작곡가의 멜로디와 안양시립합창단의 합창이 곁들여지면서 새 음원으로 재탄생했다.

안양시청 홈페이지‘안양소개’메뉴에서 개정된 안양시민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다. 시민의 노래 – 안양시청 (anyang.go.kr)(클릭)

재탄생한‘안양시민의 노래’는 잔잔하면서도 우렁차고 희망에 찬 선율로 와 닿는 느낌이다. 다소 진군가적 분위기가 느껴졌던 기존 곡과 차이를 보인다.

예전‘안양시민의 노래’를 작곡한‘김동진’은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음악 부문에 수록돼 친일작가임이 드러났다.

시는 이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되는 해였던 2019년부터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사용을 중지하고, 지난해 작곡을 공모해 안예림 작곡가의 멜로디를 선정한 바 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새롭게 만들어진 안양시민의 노래를 각종 행사 시 선보여 안양시민의 자긍심과 위상을 드높이겠다고 전했다.

<2021-06-10> 뉴스 프리존

☞기사원문: 안양시, 신곡 ‘안양시민의 노래’ 시 홈페이지 음원 공개

※관련기사 

☞여성종합뉴스: 안양시, 새롭게 작곡한 ‘안양시민의 노래’ 음원 공개

☞아투시티뉴스: 안양시, 새롭게 만들어진 ‘안양시민의 노래’홈페이지에 공개

금, 2021/06/1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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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는 2017년 『항일음악 330곡집』을 발간한 이후 <항일음악회> 개최 등 항일음악 보급을 통한 독립정신 선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YTN 라디오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문을 받아 2020년 11월 ‘국치추념가’를 시작으로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21편 : 독립군행진곡 _ 김완태(전 육군사관학교장)

☞ 20편 : 영웅추도가 _ 김성태(오석 김혁 장군 증손자)

☞ 19편 : 선봉대가 _ 권현(권기옥 선생 후손)

☞ 18편 : 대한혼가 _ 김재홍 함경북도지사(규암 김약연 선생 증손자)

☞ 17편 : 희망가 _ 김수옥(우사 김규식 선생 손녀)

☞ 16편 : 목동가 _ 김정륙(독립운동가 김상덕 반민특위 위원장 아들)

☞ 15편 : 고려인 홀로아리랑 _ 안톤 강(독립운동가 유상돈 선생 증손자)

☞ 14편 : 여옥사_8호감방의노래 _ 김정애(유관순 열사 조카 며느리)

☞ 3·1절특집: 끝나지않은 노래’독립운동歌’

☞ 13편 : 기전사가 _ 정철승(독립운동가 규운 윤기섭 장손)

☞ 12편 : 최후의결전 _ 우원식 국회의원(임시정부 법무국 비서국장 김한 외손자)

☞ 11편 : 올드랭사인애국가 _ 김주(심산 김창숙 손녀)

☞ 10편 : 광복군아리랑 _ 장병화(광복군 장이호 지사 장남)

☞ 9편 : 앞으로행진곡 _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김의한, 정정화 외아들)

☞ 8편 : 독립군가(임청각이 복원되던 날)

☞ 7편 : 신흥학우단가 _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의장(우당 이회영 손자)

☞ 6편 : 새야새야파랑새야 _ 정남기(동학농민군 비서 정백현 손자)

☞ 5편 : 격검가 _ 차영조(동암 차리석 아들)

☞ 4편 : 압록강행진곡 _ 광복군 김영관 지사

☞ 3편 : 신흥무관학교교가 _ 이항증(석주 이상룡 증손자)

☞ 2편 : 안중근옥중가 _ 함세웅 신부

☞ 1편 : 국치추념가 _ 이준식 독립기념관장(한국독립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외손)

☞[출처] YTN Radio: 독립운동歌 복원 프로젝트, 100년의 소리

금, 2021/06/11-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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