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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아시아에 균형과 포용의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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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아시아에 균형과 포용의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admin | 월, 2021/02/15- 20:57

(어릿광대는 사라지고) 합리적인 인사들이 백악관에 들어섰다. 미합중국 신임 대통령인 바이든은 취임연설에서 분열된 미합중국을 치유하는 것이 우선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취임 즉시 그는 시급한 여러 문건의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트럼프의 4년 재임기간 동안 ‘미국우선주의’로 인하여 형성된 장애물을 해체하고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다시 복원하려는 어려운 여정을 시작되었다. 미국은 지난 4 년 동안 글로벌 리더십을 상실한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불확실성과 불안정의 근원이었다. ‘미국우선주의’를 외치는 동안, 국내적으로는 COVID-19 대유행을 관리하지 못해 불평등과 분열이 더욱 확대되고 있었다.

과연 심각한 내부분열의 문제에 집중하면서도, 바이든의 새로운 행정부가 국제적인 지도력을 되찾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사항이며, 특히 국제적 무대에서 다루어야 할 가장 큰 도전은 중국관계이다. 미국 건국이래 중국과 같은 강력한 적수와 맞서본 적이 없는데, 중국은 평가 방식에 따라 미국보다 강한 경제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이미 지구촌 경제전반에 깊이 결합되어 있다.

트럼프 시절의 중국전략은 매우 일방적인 것으로, 중국을 전략적 적국으로 규정하고 양당의 지원을 받아 강력한 조치로 경제관계의 단절을 시도하였다.

신임 국무장관 지명자인 안토니 블링컨은 상원의 청문회에서 중국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하였지만, 바이든 행정부의 트럼프와 차별성은 전략적인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과 관계설정에 달려 있다.

자연스레 중국과 아시아 정책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판단을 조금씩 공개하고 있다. 바이든이 아시아의 차르- Asia Tsar로 지명한 Kurt Campbell은 오바마 시절 ‘아시아로 회귀-Asia Pivot(추후에 아시아로의 균형으로 수정)’를 설계한 인물이며, 주요 내용은 중국의 강압적 행위를 억지하고 아시아 질서에 균형과 합법성을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우선적으로 동맹국들을 괴롭혔던 트럼프 방식과 결별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럼에도 Campbell의 전략에는 두 가지의 틈새(간극)에 대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갖고 있다.

1) 어떤 수준에서 미국이 중국을 직접 상대하고 개입할 것인가?  2) 미국의 동맹들과 파트너 국가들과 연합관계가 과연 미합중국과 중국 사이에서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미합중국의 중국 포용(개입) 수준이 전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는 현란한 그러나 분열적이며 일방적인 외교정책으로 중국과 제1단계( Phase-one) 무역합의를 유도하였는데 이는 다자간 무역의 규칙과 관례를 무시한 것이었다. 상기의 합의는 세계무역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예건데 미국기업들에게 중국접근의 특혜를 부여하면서 타국의 경쟁업체들을 일방적 제제로 따돌리고, 중국에게 호주 등에서 수입하던 상품을 미국에게서 구매하도록 전환시키는 것 등이었다.

이제 미합중국은 중국과 더불어 국제적인 현안인 기후위기와 세계경제질서의 규칙 등에 함께 참여하여 지구촌에 타격을 가하지 않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는 중국과 미합중국이 다자적 방식으로 현안들을 해결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Campbell은 중국의 강압에 맞서고 중국의 (나쁜) 행위를 억지하려는 민주주의 동맹과 이에 대한주변국가들의 능동적 동참을 제안하고자 한다. 물론 그의 제안에 능동적으로 동참하는 파트너들도 있을 것이지만, 이러한 참여가 중국과 관계를 어렵게 하거나 무역과 투자 등 분야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한다면 이에 흔쾌히 참여하는 국가들은 극소수에 그칠 것이다.

극소수의 동참국가들은 트럼프 시절 국무장관인 폼페이오가 공개적으로 추구한 미국과 중국 간의 강압적 선택에 따른 것이다. 중국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대부분 국가들에게 경제이해와 정치적 안보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되었으며, 팬데믹 회복과정에서 중국역할의 중요성이 더욱 확대될 것이고, 특별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지역포괄경제파트너협정인 RCEP체결 이후 매우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바이든의 측근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균형정책이 이미 도전을 받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는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에 유럽연합이 중국과 투자협정을 타결한 것에 대하여 불쾌하게 생각한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은 트워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바이든-해리스 행정부는 그 동안 함께 우려를 표했던 중국의 일상적 (나쁜) 관행에 대하여 동맹인 유럽연합과 조속한 협의를 희망한다.”

아시아의 짜르인 Campbell은 ‘포린폴리시’의 기고를 통해 좀더 솔직하게 언급하면서 동맹인 유럽은 멀리 떨어진 중국의 강압적 고자세에 대하여 중국의 주변국가들만큼 예민하지 않는 까닭에 인도-태평양 접근전략에서 이탈하였으며, 이에 따라 중국은 지난 연말 마지막 순간에 유럽과 상호적인 투자 협정을 성공적으로 타결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중국-유럽의 투자협정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서양 연안의 통일된 접근전략에 복잡한 장애를 가져다 줄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에 대하여 Shiro Armstrong 와 Evgeniia Shannon 등 전문가 집단은 유럽연합과 중국 간의 포괄적투자협정 CAI는 매우 긍정적인 성과인 동시에, 유럽 자신이 단지 중국과 미국 사이에 있는 들러리가 아니라 독자적인 전략을 추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에 상기 협정의 타결이 순진하면서도 절망적인 유럽인들에 대한 중국의 전략적인 승리라는 견해에 더하여 유럽의 지도자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중국이 약속을 실행할 것이라는 기대치가 없는 중에도 너무나 많은 것을 중국에게 양보했다고 미국측 전문가들은 혹평을 가했다.

중국은 RCEP과 CAI를 통하여 과거의 관행에 반하여 보다 많은 규제와 시장의 요구를 받을 것이며, 협약을 불이행하는 중국의 일방적 행위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점은 미국 역시 환영할 만 일이다.

투자협정이 발효되면, 유럽연합은 중국의 개혁과 협상의 과정에서 성공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 것이며, 효과는 단순히 유럽투자자들의 이해를 넘어선 영역으로 확산될 것이다. 유럽은 중국인들의 유럽투자에 대하여 안보문제를 검토하겠지만, 중국인들은 투자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받을 것이다.

또한 중국 시진핑 주석은 환태평양-파트너 협정인 CPTPP의 가입에 관심을 표하고 있는데, 중국이 이에 가입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유기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동반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으로 중국개혁과 개방이 이루어지면 중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모두에게 매우 유익한 것이다.

바이든 시대의 미국은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면서, 중국에 개입하는 일이 주변 동맹들의 이해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을 찾아야 하며 또한 주변동맹과 파트너 국가들이 중국과 합리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허용하는 전략을 추구해 가야 한다.

만약 (트럼프 시대처럼)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운다면, 이는 ‘외톨이 미국‘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출처 : EastAsiaForum on 2021-01-25.

EAF 편집위원회

호주국립대학교(SNU)의 아시아 태평양 전문연구소 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에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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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컨퍼런스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고, 도움을 주신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과 환경재단, 한국생태문명프로젝트 등에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기후 변화와 관련한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된 건 한국에서 오신 분의 리더십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반 총장은 2014년에 유엔 기후회의를 개최하여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여를 도모하고자 했는데, 당시 저는 뉴욕에 있는 유니언 신학교를 갓 졸업했습니다. 그 후 공공 계획 관련 일을 하고 있던 중에 반 총장의 도전을 듣게 되었고, 저는 “지구를 위한 종교”라는 컨퍼런스를 여는 것을 제 새로운 미션으로 삼았습니다.

이 컨퍼런스에는 전 세계에서200개 이상의 종교 단체들과 그 지도자들이 모여 현재의 기후위기를 도덕과 윤리의 문제로 재구성하고, 신앙심에 기반한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촉진하고자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영감을 얻은 저는 지구윤리센터(Center for Earth Ethics)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이 단체를 이끌고 있습니다. 저와 저희 팀의 목표는 지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의 장기적인 건강과 안녕을 목표로 하는 가치들을 측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문화와 정책들을 찾아낸 뒤 그것들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물론 국내총생산이나 주식시장에서의 시가총액 등 사회가 가치 측정을 위해 사용하는 주요 기준들은 우리가 급박한 기후 위기를 맞이하게 된 데 책임이 있습니다. 그 기준들은 매우 단기지향적이며, 오염이나 자원 고갈, 불평등을 비롯해 문화나 공동체, 건강과 같은 웰빙의 비금전적 요소들에 대한 투자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합니다.

오늘 저는 제가 참여하고자 하는 변화에 대해, 그리고 왜 제가 그것을 윤리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지 말하고자 합니다. 윤리는 옮음과 그름의 판단을 수반합니다. 또 한 개인으로서, 집단의 일원으로서 우리 각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도 함축하고 있습니다. 즉, 가치들과 우리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의 첫 번째 과제는 “윤리적 관심”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또 정책 결정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는 일입니다. 지구 윤리에서의 윤리적 관심사의 범위는 매우 넓은데, 이는 우리가 전 지구적인 건강과 안녕을 다루기 때문입니다. 스웨덴의 한 교회에서 만난 제 친구의 이야기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국제 정책이 만들어지는 어느 공간이든 세 개의 빈 의자가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세 개는 각각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미래 세대들, 그리고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 이외의 생명체들 – 즉, 현재 만들어지는 정책들에 가장 큰 영향을 받으면서도 가장 적은 영향력을 가진 존재들 – 을 위한 지정석들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잘 생각해보시면, 이 세 집단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정책의 수립 과정과 결과를 더 공정하게 만들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더 강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 시스템을 만드는 수단으로서의 역할도 합니다.

저희 지구윤리연구소에서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전통과 지혜들을 끌어 모음으로써 세계의 어느 종교든 생명의 유기체성과 근본적 상호 연결성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어느 곳이든 불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모든 곳에서의 정의에 대한 위협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틱낫한 스님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른 것들과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환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존재한다”는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이러한 통합적 전체성은 과학에 의해서도 뒷받침되는데, 윤리와 과학이 만나는 간학문적 연구는 지구 윤리의 아주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다시 세 개의 의자 이야기로 돌아가면, 첫 번째 의자의 경우 현재 국제 인권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엔 세계 인권 선언에서는 인권의 핵심적 가치들을 제시하며 천부적 존엄성과 함께 모든 인간이 가진 평등하고 양도될 수 없는 권리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가치들은 자유와 평화, 정의의 기초가 되는 것들이죠. 따라서 지구 윤리도 이 프레임 안에서 작동하며, 단지 깨끗한 물과 공기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기후변화의 피해가 이러한 재난 상황을 유발하는 데 가장 적은 영향력을 끼친 (즉, 지금까지 가장 적은 양의 탄소를 배출한) 지구상의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돌아간다는 것도 알리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의자의 경우는 우리로 하여금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윤리적 사고를 하도록 합니다. 이산화탄소와 메탄이 배출될 경우 이 가스들이 대기중에 머무르다가 실질적 영향을 끼칠 때까지의 시차가 있으며, 이는 우리가 자원을 자연적으로 보충되는 속도보다 빠르게 고갈시키고 있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자원들과 토지는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시켜주는 “자연 탄소 포집기”의 역할을 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윤리학자 스티븐 가드너는 “우리는 단순한 공유지의 비극이 아닌, ‘현재의 미래에 대한 독재’의 상황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더욱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지난 수년간 강력한 청소년 기후위기 대응 운동의 부상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운동은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현재로 가져옴과 동시에,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칠 현재 세대의 행동들을 중단하라는 도덕적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 여겼던 초대형 태풍, 가뭄, 폭염, 산불, 해수면 상승 등은 이미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생명 시스템의 균형을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생태적 전환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세 번째 의자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1948년, 그러니까 유엔 세계 인권 선언이 발표되던 해의 지구의 인구는 24억 명이었지만, 2020년 현재는 78억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 70여 년의 시간동안 인간은 다른 종들의 서식지를 대규모로 파괴했고, 그 결과 유엔은 현재 백만여 종 가량이 멸종 위기 상태에 놓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태적 손실은 인간에게 새로운 바이러스와 질병의 등장, 식량 시스템의 위협 등 수많은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인간이 받을 영향들은 반드시 생명 체계의 상호 연관성 속에서 설명되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한편,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가 천부적 가치와 권리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은 지구 윤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윤리학은 옳음과 그름의 판단이 사회적 규범과 법 질서 하의 판단과 맞지 않을 때 가장 강해졌습니다. 미국에서의 노예제 폐지와 여성 참정권 운동 등 과거의 중요한 운동들과 사회 변화의 시기도 모두 이런 때였습니다. 저는 오늘날이 바로 그런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생태계를 파괴해온 수많은 논리들과 유인들은 모두 완전히 합법적이었으며 사회적 규범과도 합치되었습니다. 이 때 데이터와 과학 기술은 이러한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발생한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의 절반 정도가 지난 20년간 발생했는데, 이 시기는 바로 우리가 기후변화의 인과관계를 가장 잘 이해하고 친환경 재생 에너지라는, 가장 확실하고 실행 가능한 대체제를 가지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따라서 현재 상태의 변화를 위해서는 우리들의 도덕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구조적 악마”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윤리학자 신디아 몰라베이다는 “구조적 악마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 자체가 쉽사리 ‘선’ (善) 혹은 좋은 것으로 둔갑한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선은 경제 성장으로, 많은 사람들을 가난에서 구제해준다는 명목 아래 생산과 소비의 무한 성장을 위한 생태계 착취 및 화석연료의 지속적 사용을 꾸준히 지지하고 정당화시켜온 가치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자가당착에 부딪히게 됩니다. 유엔의 한 빈곤 및 인권 문제 전문가는 작년에 발표된 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는 지난 50여 년 간의 공중 보건 개선과 빈곤 감소를 위한 진보적 노력을 모두 수포로 만들 수 있으며, 오히려 수백만 명 이상을 추가로 빈곤의 늪에 빠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러한 지속가능하지 않은 성장이 어떠한 견제도 없이 이어진다면, 기후위기는 궁극적으로 지구라는 행성 안의 생명체 서식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컨퍼런스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것들입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 우리는 세 개의 의자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현 상태를 정당화하는 논리들에 대한 비판적, 도덕적 사고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 부유하고 깊으며 창의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한국인들의 생태적 경험들은 한국을 생태 전환 시대의 리더로 만들어줄 것이며,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배우고 일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같은 인류로서, 지구에 사는 생명체로서 희망 넘치는 공존의 미래를 향해 나아갑시다.

 

카렌나 고어

지구윤리센터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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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1/01/15-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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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양국체제적 발상을 가로막아왔던 심리적 억압 기제는 크게 외부에서 비롯된 것과 내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두 개의 억압기제는 일단 겉보기에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외적 억압은 상대를(즉 남은 북을, 북은 남을) 부정하는 쪽으로 작용한 반면, 내적 억압은 반대로 상대를 부정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분석해보면 이 두 개의 계기가 역설적인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렬한 ‘분단(부정)의식=내적 억압’이 결과적으로 남북 두 국가 간의 적대를 심화시켜 국가기구의 외적 억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칸트의 정언명령이 곧잘 그러하다고 하듯, 당위는 그 당위가 강할수록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분단의식에 내포된 당위, 즉 분단부정의 당위 역시 그러했다. 남북은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는 당위는 과연 어느 정도나 실제로 남북이 하나로 되는 데 기여했을까. 분단사에서 결정적 사건인 6·25 전쟁부터 생각해보자. 통일의 당위는 당시 남북 모두 하늘을 찌를 듯 강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단의 고착이었다. 분단부정, 즉 통일에 대한 열정의 강도(强度)는 전쟁의 참혹도와,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긴 분단의 고착도와 정확히 비례했다. 그때 심어진 적대와 원한을 아직까지도 다 지우지 못하고 있다. 통일을 외칠수록 통일에서 멀어지고, 분단극복을 외칠수록 분단현실이 강화되는 역설이 바로 2016년 겨울의 촛불 직전까지도 강력하게 작동했다.

당위의 정언성이 강하고 이념적일수록 그 당위의 실현을 저해하는 반대물, 장애물에 대한 부정과 억압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한반도에서 분단부정의 당위는 고도로 이데올로기적인 미소 냉전의 대립구조 안에서 작동했다. 따라서 그 당위의 정언성이 강해질수록 이데올로기적 순수와 오염의 이항 대립구도 역시 극도로 첨예해진다. 남과 북은 서로 전쟁을 한 군사적 적이자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적이다. 적은 휴전선 저 밖에도 있지만, 더욱 위험한 적은 내부의 적이다. 따라서 남의 체제는 내부의 적인 ‘빨갱이’를 탐색하고 제거하는 고도의 정화 기계이고, 북의 체제는 또한 내부의 적인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의 끄나풀, 간첩’을 색출하여 말살하는 고도의 검열 장치이기도 했다. 이 정화와 검열의 장치는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마음과 뇌까지를 점유하여(‘내 귀의 도청장치’) 그 지배를 완성한다. 이로써 분단의 골은 인간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까지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전면화된 분단체제는 커다란 고통과 함께 분단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비판의식 역시 또 하나의 분단부정의 정언성에 기초한 당위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비판운동이 두드러지게 전개된 곳은 재야, 야당,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한국이었다.

한국의 역대 독재정권은 이러한 비판을 ‘이적’ ‘용공’ ‘친북’으로 몰아 탄압해왔다. 이들이 통치체제를 비판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분단극복, 통일이란 결국 대치하고 있는 적의 편에 동조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체제의 차이만 있을 뿐 남과 북에서 동형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분단체제란 이러한 분단체제 비판 세력을 식량으로 먹어치우면서, 즉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탄압하면서 자신의 몸체를 괴물처럼 더욱 키워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독재정권이 비판 세력을 ‘적’으로 상정하고 탄압하는 한, 극악한 탄압을 당하는 비판 세력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독재정권을 ‘적’으로 상정하고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독재정권은 비판 세력이 자신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이적단체’에 불과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이로써 상호를 적으로 간주하여 투쟁하는 상승적 순환 구조가 남과 북의 정권 사이에서, 그리고 남 내부와 북 내부 각각에서 형성되고 교차하면서 가속도를 얻어 작동한다.(이 책, 153쪽)

결국 분단체제란 분단의 부정, 즉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를 재생산하는 기묘한 체제였다. 이 기묘한 작동논리는 2중의 차원에서 전개된다. 먼저 남북의 분단체제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체제의 목적이 분단의 극복이다. ‘조국통일’, ‘북진통일’, ‘흡수통일’, ‘붕괴통일’, ‘통일대박’, 매한가지다. 모두 분단을 부정하고 자기 중심의 통일, 즉 ‘분단의 극복’을 표방한다. 이렇듯 분단체제가 분단을 부정하면 할수록 남북 양측에서 서로에 대한 의심과 대립과 적대의 힘, 즉 분단의 장력(張力)은 더욱 팽팽하게 당겨지는 물리학이 성립한다. 그러나 분단체제의 자기생산력이란 이것만이 아니다. 이렇듯 자기생산성을 갖는 분단체제의 기득 권력을 비판하고 맞서는 힘 역시 ‘분단극복’을 표방한다. 분단을 극복해야 분단체제가 종식될 것이니 당연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바로 이렇듯 ‘분단체제극복’을 부르짖는 세력을 기다렸다는 듯이 체제비판 세력, 내부의 적, 간첩으로 낙인찍어 잡아들인다. 수많았던 기획된 간첩사건, 체제전복사건, 내란선동사건들이 그러했다.

분단체제의 적대적 장력은 이렇듯 서로를 외부·예외로 간주하는 남북 간에 형성될 뿐 아니라, 바로 남북의 내부에 외부·예외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겹2중’으로 형성된다. 이 ‘겹2중’이 맞물려 돌아가는 동력 구조가 분단체제다. 내부에 외부를 설정하는 이 ‘내부 적대’의 장치 마련을 통해 ‘외부 적대’의 동력을 증폭시키는 매커니즘이다. 분단체제란 이렇듯 강고할 뿐 아니라 교묘한 자기생산 – 재생산체제다. 70여 년이나 생명을 이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애초에 문제는 분단을 부정하는 당위의 주체가 하나일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분단부정의 당위는 무엇보다 우선 분단부정의 또 다른 당위와 생사존망의 대결 상태로 빠질 수밖에 없다. 분단부정의 당위가 또 다른 분단부정의 당위를 부르는 구조였다. 이제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반복적 순환 사이클로 요약할 수 있다.

분단부정의 당위 → 남북 적대의 심화 → 분단독재체제의 강화 → 분단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의 강화 → 분단부정의 당위의 강화

이 순환은 자꾸만 반복된다. 피하고 싶은 불쾌한 증상을 자꾸만 되풀이하는 반복강박과 닮아 있다. 이처럼 철저하게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포괄한 분단구조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위가 강할수록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정언명령의 역설은 분단체제 70년의 현실로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분단을 부정할수록 분단이 고착된다는 ‘분단(부정)의 딜레마’는 애초에 둘임을 부정했던 데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 딜레마를 끊으려면 둘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가 되자고 하면 오히려 하나가 되자는 둘이 우선 분명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애당초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의 발단이 되어왔다. 둘임을 인정하고, 하나가 되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 양국체제다. 이것을 하지 못하고 ‘분단(부정)의 딜레마’에 빠져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미 너무나 컸고 길었다. 북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통일대박’과 ‘종북몰이’를 양 손에 들고 휘둘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경험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촛불혁명은 유신체제로 되돌아가려 했던 총체적 종북몰이, 블랙리스트 소동을 종식시켰다. 촛불혁명 이후 이 나라의 민심은 마치 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 새로운 눈으로 현실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힘에 기초하여 2018년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선언, 평양 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어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에서 평양 시민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하였고, 머지않아 서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시민들을 만나는 날도 올 것이다. 한 민족의 두 나라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통일로 가는 길을 준비하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 다시 말해 ‘한 민족 두 국가의 평화체제, 공존체제’가 이미 현실로 시작된 것이다.

 

양국체제의 첫 번째 역사적 계기: 반쪽국가의식에서 양국의식으로

그렇지만 양국체제적 인식이 오직 촛불혁명과 판문점·싱가포르 선언을 통해서만 처음 생겨났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큰 변화에는 반드시 그에 선행하는 역사적·예비적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반에 연속적으로 벌어진 대형 사건들이 그러했다. 1987년의 민주항쟁과 1989~1991년 사이의 소련·동구권과 미소 냉전체제의 붕괴, 한소·한중 수교, 그리고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교환으로 이어진 초대형 변화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분단체제의 지반을 처음으로 크게 흔들었다. 세계 판도 전체가 크게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변화 속에서 분단의식도 크게 흔들렸다. 분단의식은 ‘반쪽의식’이기도 하다. ‘반쪽만으론 온전하지 못하다’, ‘나뉜 반쪽은 합쳐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생각이다. 반쪽의식에서 양국체제 발상은 나올 수 없다. 양국체제는 두 코리아를 각각 온전한 하나의 국가로 보기 때문이다. 온전한 국가란 ‘내부의 정당성’과 ‘외부의 인정’이라는 양 측면을 모두 갖추어야 성립한다. 남북이 이 두 근거를 어느 정도 갖추기 시작한 최초의 계기는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교환이었다. 이 두 사건은 1987년부터 시작된 세계적 대변동의 연쇄가 낳은 종합적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세계사 차원에서는 미소 냉전구조의 붕괴가 주원인이었고, 국내적으로는 87년 시민항쟁이 열어놓은 민주화 지향의 강력한 여론이 있었다.

분단의식, ‘반쪽의식’으로 보면 남북의 국가는 ‘반쪽(만의) 국가’일 뿐이다. 우선 이러한 ‘반쪽국가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면 양국체제 발상은 생겨나기 어렵다. 그러나 반쪽국가의식에도 그만한 현실의 근거가 있었다. 냉전시대 남북 국가의 내적·외적 정당성 구조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고 반쪽짜리로 보이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외적 측면부터 살펴보자. 어떤 국가에 대한 외부의 인정이란 국제사회의 인정, 외국과의 수교관계로 표현되는데, 냉전시대 남북의 국제적 인정, 수교관계는 실제로 ‘반쪽짜리’였다 할 수 있다. 한국(ROK)은 미국 영향권의 국가들과만, 반대로 조선(DPRK)은 소련 영향권의 국가들과만 수교하고 있었다.8 나머지 반쪽의 인정이 없었던 것이다. 남북 모두 외부 세계의 절반으로부터만 인정받고 있다는 ‘반쪽국가의식’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내적으로도 남북은 ‘반쪽국가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1948년 두 정부의 수립 이래 남북은 자신이 통일을 목적으로 세워진 일종의 ‘경과적인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자신만이 적통자(嫡統子)고, 자신이 주도하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두 국가 모두 자신이 이미 완결되었거나 완성되어 있는 국가라고 내세울 수는 없었다. 스스로 ‘반쪽국가’이고 따라서 ‘반쪽만의 정당성을 가진 국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반쪽국가의식’이 강할수록 통일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반쪽국가’의 정당성이 충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측이 모두 통일을 내세우고 자신만이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통일은 말은 늘 좋지만 실제 의도는 상대를 소멸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냉전시대 남북의 통일정책들은 언어로 하는 전투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총탄을 교환하듯 오갔던 통일정책, 통일방안들이 오히려 통일을 멀게 했다는 것은 역설이라기보다 당연한 결과였다.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이러한 관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 채택을 주도했던 것은 한국의 노태우 정부였다.9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의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를 인정해주더라도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북은 곤란한 상황이었다. 동구권 붕괴 이전까지 북은 유엔 동시가입을 반대해왔다. 통일 주도권이 자신의 편에 있다고, 자신만이 ‘조선반도’에서 유일하게 정통성을 가진 국가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정통성 없는 ‘남조선’ 정부를 굳이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해줄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 중심의 ‘진영’이 무너져 국제무대에서 남과 북의 지지 균형은 한국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여기에 더해서 87년 개헌에 따라 대통령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한국 새 정부의 정통성을 (야권분열에 따라 군부 출신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웠다. 이제 북은 예전처럼 한국 정부를 무작정 반대하거나 무시할 수 없었다. 체제 유지를 위한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단국의 유엔 동시가입은 1973년 동서독의 선례가 있다. 그러나 동서독 상황이 1990년 급속한 흡수통일로 마감되었다는 사실이 북으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 한국과 수교하고(1990년) 중국이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지지하자(1991년 5월) 북도 입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동서독의 경우 1973년 유엔 동시가입과 1990년 흡수통일은 별개의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과 흡수통일을 혼동할 이유가 없다. 북은 북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 판단의 중심에 물론 김일성 주석이 있었다. 불가피한 일이라면 오히려 이를 자신의 체제 보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살려보려 했다.

실제 유엔 동시가입이 북에 대한 국제적 공인을 담보하여 일방적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생각할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핵무기 철수 등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양보도 요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남북 대화가 최고조에 올랐던 1991년 하반기에는 다음 해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 취소가 결정되었고, 미국은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를 철수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로 인해 연말에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이뤄질 수 있었다. 북은 결단을 했고, 이로써 유엔 동시가입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남북은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유엔 회원국은 회원국 상호의 주권을 인정하고 서로 침해하지 않는다는 유엔헌장을 준수해야 한다. 따라서 일단 형식 차원에서라도 ‘두 개의 코리아’가 온전한 국가로 공인된 것이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쪽국가’로 인정되었고, ‘반쪽의식’ 자리에 ‘양국의식’이 생겨났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로 다시금 분명히 표현되었다. 3장 25조에 이르는 기본합의서의 핵심은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에 있다. 과거 냉전시대에도 주도권 경쟁 차원에서 그와 유사하거나 또는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구절들을 사용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격과 방어 차원의 언어 공세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분명한 합의였다. 크게 달라진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해(利害)의 공통기반이 생겼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많았지만 당시 양측은 이 합의를 통한 공존 기조의 지속에 상당한 기대와 믿음을 공유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모두 크게 흡족해했다. 애초부터 각자의 적대적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려는 목적을 숨기고 서로가 일시적으로 이용하였을 뿐이던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 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이 합의로 양국의 자체적·내적 정당성 근거 역시 분명 ‘반쪽국가’에서 각자가 충족된 정당성을 갖는 ‘양국체제’ 쪽으로 이동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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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1/2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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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의 2019년도 기부금 모금액과 사용 실적을 공개합니다.

이 내용은 국세청 홈텍스에 공개한 내용과 동일합니다.

[다른백년] 2019 연간보고서 기부금모금액 및 활용실적명세

화, 2020/03/3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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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 이후 근대 세계사는 새로운 단계인 후기근대(late modern age)에 접어들었다. 세계인이 이를 점차 실감하고 있는데, 촛불 이후 남북 코리아는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시간의 실감 속에서 최원식 교수가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 「남북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강조하고 코리아 남북연합이 그 촉진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후기근대의 세계 상황이 두 코리아의 공존체제·평화체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으니 이를 위한 내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평자로서는 동의하고 환영한다.

이제 촛불혁명과 판문점, 싱가포르 선언으로 그 가능성은 바로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촛불 직전인 2016년 5월 《프레시안》과 ‘다른백년’이 주관했던 4회 강연에서부터 평자는 공존체제, 평화체제보다 ‘양국체제’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공존체제나 평화체제는 ‘그냥 맞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좋아.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공존과 평화를 이뤄낼 실제적 방법, 핵심고리가 중요한데, 이것이 ‘코리아 남북 양국의 주권국가(sovereign state)로서의 상호 인정’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국체제가 돼야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다. 양국체제란 양국 공존체제, 양국 평화체제의 줄임말이다. 공존과 평화를 실현할 양국체제가 남북연합의 바탕이 될 것도 자명하다.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발제문은 ‘國際(inter-national)’보다 ‘民際(inter-civic)’를 중시하기에 통상 쓰는 ‘(남북)국가연합’이 아니라 국가를 빼고 ‘남북연합’이라 하는 듯하다. 국제(International)에 민간관계가 빠지는 게 아니니 민제라는 말이 굳이 따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국제와 민제가 따로는 아니겠다. 발제문이 언급한 한중일 관계만 하더라도 국제가 안 풀리면 민제도 어려워진다. 극적 사례는 1992년 한중 수교였다. 국제를 트니 민제가 크게 열렸다. 남북관계는 국제(이 경우는 inter-national이 아니고 inter-state가 된다)가 막혀 민제는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할 형국이니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남북연합 논의에서도 국가(state) 대 국가(state)로서 남북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발제문은 그와 전혀 다르게 본다. 아래 문단은 관련 주장이 집약된 것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양국론’에 대한 ‘경계 긋기’로 시작한다.

최근 세를 얻고 있는 양국론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을 필요가 없지 않다. 양국체제론자들의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탓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남북은 일국도 아니지만 양국도 아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은 양국론과는 애초에 무관하다. 그렇다고 그냥 일국론도 물론 아니다. 정말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不一不二]. 요컨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을 설령 통일의 최종형태로 삼는다고 해도 그 연합이 두 나라의 단순 병치가 되기는 애시당초 그른 것이매 남북연합론은 주변 4강의 의심을 풀고 내부의 대국주의를 절약할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남북연합론은 일국적 통일론과 양국적 반통일론을 가로지르는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다.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시종 비켜가고 있다. 일국도 아니고 양국도 아니라 한다. 과연 그런가?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one nation two states)이다. 둘이되 하나요, 하나이되 둘[一而二, 二而一]이다. 엄연한 사실이 그러함에도, 즉 이 두 개의 국가가 국제적으로는 모두가 널리 공인된 국가이면서, 막상 양국은 아직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문제요, 비정상 아닌가? 그러나 「발제문」은 거꾸로 본다. 이런 상태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여기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불일불이(不一不二)’라 한다. 불일불이란 불가(佛家)의 진리관[中論]을 표현하는 높고 찬란한 언어다. 진리적 불일불이가 ‘분단체제’라는 개념에도 적용되고 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 ”라고 하였다. 분단체제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발제자의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라 하였다. 그동안 ‘분단체제’란 말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이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용법이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설다. 분단체제는 남북이 적대하는 체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국가로서 인정하지 못해왔던 체제 아닌가?

거듭 말하여,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 상태다. 체제 보장은 북미 간에만 아니라 남북 간에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양국체제다. 과연 무엇이 분단과 분단체제를 영구화시켜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임을 부정했기 때문에, 둘을 부정한 채로 결코 하나이자고 했기 때문 아닌가? 둘이 서로 인정하는 것이 이 함정을 벗어나는 제1보다.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것만이 바른 길이다. 『노자(老子)』 22장에서 “곡즉전 왕즉직(曲則全 枉則直)”이라 했던 게 양국체제의 취지와 닿아 있다.

양국체제 없이 남북연합이 제대로 될까? 국(state) 간의 際가 안 열렸는데 民 간의 際가 활짝 열릴까? 그렇듯 국제가 닫힌 채로 가능한 남북연합이란 어떤 것일까?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안정돼야 비로소 그 두 국가(state) 간의 남북연합이든 국가연합이든,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비로소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촛불혁명, 그리고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으로 이제 양국체제는 목전의 현실문제가 되었다.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 한참 이전부터 줄곧 강조해온 것처럼 종전과 북미 수교는 양국체제의 입구요 일부다.

양국체제란 1973년 <동서독기본조약> 이후의 동서독 관계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양독(兩獨)은 서로를 국가로서 분명히 인정했고, 기본조약 이후 미국은 동독과 수교했다. 그 두 고리가 풀리면서 양독 관계는 안정됐다. 반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이 둘 다 이루지 못했다. 유엔 동시가입으로 코리아 양국체제의 외적 모양새는 일단 시작되었지만 완성되지 못했다. 불완전하고 불균형했다. 그랬기에 그 경로는 금방 닫혔다. 반면 동서독의 양국체제는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존속했다.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시 남북이 처해 있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그것이 마치 아주 높은 수준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발제문」의 ‘불일불이’ 구절을 읽으면서 연상을 금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유명한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이다. 이 표현은 매우 외교적인 것인데, 이를 액면가보다 낮추어 읽는 것이 아니라(외교문서를 읽는 기본이다), 오히려 액면가보다 훨씬 높게 읽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외적 조건과 내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불일불이)’라는 높은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결코 두 국가가 될 수 없으니 이러한 불일불이의 상태에서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자’라는 뜨거운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실제로 그런 오독들이 꽤 있었다.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연합이든 연방이든,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여태껏 듣지 못했다.

끝으로 ‘말이 아닌 말’을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는 없겠다. 위 인용문에서 “양국적 반통일론”이 그렇다. 앞서 설명한 대로 양국체제 없이는 공존체제도, 평화체제도, 남북연합도 담보되지 않는다. 양국체제 자체가 통일은 아니지만, 어떠한 경로보다 통일 촉진적이다. 양국체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바람직한 통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반통일’일까? 또 이 말과 짝을 걸어놓은 “일국적 통일론”이란 뭘까? 진보진영에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안다. 북(DPRK) 역시 이 입장을 폐기한 지 오래됐다. 그럼 뭘까? 발제자의 뜻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런 게 있다면 우스꽝스런 무엇일 듯하다. ‘말이 아닌 말’을 만든 것으로 부족하여 실체 없는 허깨비와 짝을 붙여놓은 꼴이다. 왜 이래야 했을까? 양측에 ‘극단’을 세워놓고 중간에 끼어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때로 쓸 만하다. 단, 그 양쪽 입장이 단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그럴수록 자신의 입장이 힘을 받는다. 그렇지 않고 ‘말이 아닌 말’과 ‘대립 아닌 대립’을 세워놓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식이라면 별다른 의미나 성과가 없을 듯하다. 또 그렇듯 가로지르는 게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국가’는 어떤 국가이고(일 국가? 이 국가?), 여기서 ‘분단 해소’는 어떤 해소인지(분단체제의 해소? 분단의 해소?)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지금 필요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 사이의 ‘경계 긋기’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공통점을 모으는 일이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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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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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017년부터 준비되어 2018년 큰 물꼬를 텄고, 최근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일시적 교착국면에 빠진 남북미 간 평화체제 정착은 어떻게 수순을 풀어야 할까? 남북관계든 북미관계든 핵심은 ‘신뢰의 확증’에 있다. 남북과 북미관계가 대화 지속 – 신뢰 축적의 트랙을 이어가면 남북·북미관계 서로를 선(善) 방향으로 추동한다. 그러나 지금 하노이 회담 이후 보듯, 북미관계에서 지체가 생길 수 있다. 그럴 때 남북관계의 주동성, 추동력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 남북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것이, 북미관계의 게임의 차원을 바꾸는 일보다 우리의 주동력이 발휘될 수 있다. ‘양국체제론’은 남북관계가 동북아 주변관계에 최대의 주동성,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구상되었다.

남북관계의 고리를 획기적으로 풀어나가는 방법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신뢰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면 된다. 신뢰에는 ‘피상적 신뢰’가 있고, ‘심층적 신뢰’가 있다. 심층적 신뢰란 가장 기본적인,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남북 간에 그렇듯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신뢰가 무엇이겠는가. 남북이 서로의 존재를, 존립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명환 교수의 글에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다.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정식 국교를 맺고 적대정책을 철회하더라도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고,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고 북한 사회가 개혁·개방에 노출될수록 북의 체제 운영자들은 정치적 위협을 심각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 북한 당국이 자신의 주민이 친족방문을 위해 남을 왕래하는 일을 허용하는 일은 상당 기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부분이다. 김명환 교수는 이런 사정 때문에 양국체제는 어렵고, ‘남북연합만이 올바른 길’이라 하였지만, 김 교수가 언급한 내용이 필자에게는 오히려 김 교수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가능하더라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는 오히려 불가능하다고 보는 듯하다. 글쎄 그럴까. 북미 수교와 북일 수교라는 토픽이 미국과 일본의 정책 캐비넷에 올라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베까지도 이 판에 끼어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 수교, 북일 수교는 오히려 한조 수교가 물꼬를 터줌으로써 빠르게 뒤따라올 가능성이 더욱 크다. 왜냐하면 ‘근본적 신뢰의 확증 순서’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의 안보조건에서 미국과 일본 쪽에 자신의 존립에 대한 근본적 신뢰를 먼저 확보하려고 할 가능성은 낮다. 반면 한국과는 그 가능성이 더 높다. 촛불 이후의 국면에서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앞서 김명환 교수가 말한 “남한의 존재가 위협이라는 현실”은 이제 북에게도 더 이상 그렇게 자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스스로가 북(DPRK)의 존립에 위협이 되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물론 30년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단번에 일소한 촛불혁명의 힘, 그리고 그 힘에 의해 들어선 촛불정부의 역할 때문이다. 아니, 30년이 아니라, 코리아전쟁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의 민의가 이만큼 남북의 공존과 평화를 소망하는 방향으로 모아져본 적이 없다. 남의 한국도, 북의 조선도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조선 간에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무엇일까? 백낙청 선생, 그리고 백 선생을 항상 충실하게 조술(祖述)하는 김명환 교수도, 그 방법이란 ‘남북연합’이라고, ‘남북연합밖에 없다’고, 되풀이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마당에 그 ‘남북연합’의 방책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한 것이 없다. 필자가 본 단 하나의 예외라면 백 선생이 2018년 《창작과비평》 181호에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될 수밖에 없도록 제도화해 놓는 일”이라 한 것인데,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이란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누가 읽어도 당연히 그렇게 읽히는 말이다.(이렇게 읽은 것이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김명환 교수의 반론에는 아쉽게도 무엇이, 왜, 어떻게 ‘오독’이고 ‘비약’이라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다만 ‘기성 사회과학 교과서에 맞춰 재단한 탓’이라 하고 만다.)

현재 이 순간의 남북관계에서 생각해보자. 백 선생과 ‘분단체제론’에서는 현재 이 순간 역시 당연히 ‘남북연합’, ‘국가연합’ 상태다. 남북연합은 분단체제를 상정·전제하는 것이라 하니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재의 남북관계 또는 남북연합 관계에서 백 선생이 말한 바와 같이 “미국이 어느 시점에 변심하여 북을 다시 침공하거나 적대정책으로 되돌아갈 태세가 되었을 경우, 이것이 곧바로 대한민국이 가담한 국가연합에 대한 침공 내지 적대”가 된다고 어느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너무나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렇다면 백 선생이 그리는, 그렇듯 높은 수준의 ‘국가연합’까지 한참을 올라가야 할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높이 올라가기 위한 첫 계단, 첫 단추가 무엇이냐다. 나는 지금껏 여기에 대한 답을 들어본 바 없다.

그 답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가 지난 글들에서 여러 차례 설명해놓았다. 기존의 남북 간의 고통을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느껴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다 알 수 있는 문제다. 남과 북이 서로의 존립을 보장하는 신뢰의 확증이 무엇이겠는가? 그 첫 단추가 무엇이 될까? 상대방을 적으로, 붕괴와 소멸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확증 장치다. 지금 남과 북의 상태에서 무엇이 그런 확증 장치가 될까?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영토와 주권을 가진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서 서로 인정하고 이를 만천하에 공표하고 상호 대표부를 교환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과 조선 두 나라의 수교, 즉 ‘한조(韓朝) 수교’다. 이렇게 될 때 ‘분단체제’라는 과거의 룰은 폐기되고 ‘양국체제’라는 새로운 차원의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이 ‘한조 수교’의 역사적 파급력은 1972년 ‘동서독 수교’에 못지않을 것이다. 동서독 수교 이후 상호 교류와 협력이 크게 증가했던 것은, 상호 간의 ‘근본적 신뢰’의 문제를 일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두 국가가 상호의 존립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지켜질 것임을 서로가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역시 그러한 근본적 신뢰를 확증해가는 과정이었다. 그 결실이 머지않은 미래에 맺어지기를 바란다. 한국이 북미 대화를 잘 중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일이 있다. 남북이 만나는 모든 자리에서, 남북의 모든 논의와 합의가 어떤 쪽을 향해가고 있는지 방향감각이 무엇보다 우선 분명해야 한다. 그것은 ‘남북 간의 근본적 신뢰의 확증’이며 ‘남과 북이 서로를 정당한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는 일이다. 북미 수교가 한조 수교에 선행하기보다, 한조 수교가 북미 수교를 성사시키는 경로가 더 현실적이다. 소위 ‘대북제제’ 문제도 ‘한조 수교’라는 역사적 임팩트에 틀 자체가 변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김명환 교수는 여전히 북은 ‘남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고, 남 역시 마찬가지로 ‘북한의 존재의 위협’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할까? 한 발 물러서 생각해보자. 물론 ‘한조 수교’가 이뤄지자마자 남북이 서로에게 위협이 되는 상태가 당장 100퍼센트 깨끗하게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사에 그런 일은 없다. 그러나 ‘한조 수교’가 이뤄지면 역사적 첫 단추가 채워진다. 게임과 트랙이 달라지는 것이다. 코리아의 지난 70년 적대 상태를 생각해보면, 당장 100퍼센트는 언감생심이고, 우선 절반만 해소된다고 하여도 획기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질적 변화’다. ‘위협’은 강박이어서 붙들려 있을수록 커진다. 기존의 ‘분단체제론’에는 그러한 ‘위협’을 넘어서고 극복할 담대한 전망이 부족했다.

그렇듯 질적 변화를 이루어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그 후의 과정 역시,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욱 중요할 것이다. 상호 신뢰를 확인하고 쌓아가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배려들이 교환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다. 동서독 간 성공적 교류의 선례도 있다. 나는 ‘분단체제론’이 이러한 양국체제의 전망을 아주 적극적으로 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래 분단체제론은 분단체제를 비판하고 극복하자는 이론이었다. 분단체제론이 양국체제의 전망을 수용한다는 것은 그러한 원래의 이론적 취지와 포부에도 부합한다.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을 다시 생각한다

끝으로 앞서 몇 차례 언급한 만큼, 동서독 사례의 의미에 대해 첨언해보려 한다. 1970년대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동서독 수교(=<동서독기본조약>)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때가 되었다. 1990년대 초반 백낙청 선생이 분단체제론을 처음 입론하고 있을 때, 백 선생은 당시 이뤄졌던 독일의 흡수통일 사례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았고, 그래서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 원인과 통일 전망은 크게 다르다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당시 백 선생이 그러한 태도를 취했던 데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구권이 붕괴하고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통일 되었던 당시에는 ‘북한 조기붕괴론’을 펴는 사람들 중에 독일식 통일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다. ‘북한’은 어차피 곧 붕괴될 것이니까 한국은 서독처럼 흡수통일 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한 생각은 물론 허황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독일의 사례를 무조건 백안시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1970년대 동서독 수교와 독일 양국체제이지, 1990년의 흡수통일이 아니다. 1972년 동서독 수교와 1990년 흡수통일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벌어진 전혀 다른 사건이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제는 1990년대 초반에 독일 흡수통일의 스펙터클에 눈이 팔려 197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 경험의 역사적 중요성을 놓치고 있지 않았는지 다시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백낙청 선생과 김명환 교수도 다시 주목해주기 바라는 대목이다. 1989~1991년 당시 남북의 ‘당국자’들은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시각에서 양국체제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북이 유엔에 동시가입할 수 있었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볼 때도 대단한 용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남북 수교까지 이루었다면 코리아 양국체제는 이미 그때 성립할 수 있었다. 왜 이 길이 막혔던가? 누가 막았었나? 남쪽의 노태우 대통령도, 북쪽의 김일성 주석도 아니었다. 이들은 오히려 더 속도를 내서 이 방향으로 나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길을 막았던 것은, 이 책 1부 1장에서 상세히 분석해둔 바와 같이, 북미 수교를 거부하고 북의 조기붕괴를 도모했던 미국과 한국의 냉전대결 세력들이었다.

1970년대의 동서독 수교 – 독일 양국체제와 1990년대 흡수통일이 전혀 성격이 다른 사건이라는 것은, 흡수통일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반추해볼 시각을 1970년대 양국체제의 경험이 제공해주고 있다는 데서도 볼 수 있다. 독일 흡수통일의 최대 문제는 동독을 내부 식민지로, 동독인을 열등국민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통일독일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동구권 – 소련 붕괴라는 충격 속에서 통일과정이 눈사태와 같은 파국적 양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1972년 <동서독기본조약> 체결 이후 1989년 소련·동구권 붕괴 이전까지 독일의 양국체제는 동서독의 차이를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줄여나간다는 분명한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독일 양국체제의 경험이 우리에게 여전히 귀중한 타산지석이 되는 이유다.

더구나 과거 독일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에 비해 오늘날 코리아 양국체제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훨씬 더 안정적이다. 1970~1980년대 미소 간의 적대와 대립은 오늘날 미중, 미러, 또는 중일 간의 갈등에 비해 훨씬 날카롭고 높았다. 냉전 이후 세계는 진영 간 이념 적대가 사라지고 국가 간 지역 간 상호 의존이 깊어졌다.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세계상황을 ‘후기근대’로 정의하면서, 이 새로운 역사 단계의 세계사적 의미에 대해 여러 차례 분석하고 음미해본 바 있다. 후기근대에는 과거 소련·동구권 붕괴와 같은 진영 붕괴가 발생하지 않는다. 과거와 같은 수준의 진영 자체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 혹은 미국이 머지않아 과거 소련과 같이 극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세계의 그 많은 ‘전문가’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성공적으로 정립되기만 한다면, 과거 독일의 양국체제보다 훨씬 성공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예상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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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6/2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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