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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포커스] 국민의 생명 보호보다 우선한 의사 기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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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포커스] 국민의 생명 보호보다 우선한 의사 기득권

admin | 화, 2021/02/09- 23:36

[월간경실련 2021년 1,2월호 – 시사포커스(4)]

국민의 생명 보호보다 우선한 의사 기득권

– 정부의 편법·특혜 의대생 국가고시 재응시 허용 유감 –

 

남은경 정책국장

정부는 지난해 말(12월 31일) 매년 하반기에 한 차례 시행하는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2021년에는 상·하반기 2회 실시하기로 하고, 상반기 시험은 1월 말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정부의 의사 증원 계획에 반대해 국가고시를 거부했던 의대생에게 사실상 재시험 기회를 준 조치다. 정부는 공공의료 강화 대책의 차질 없는 시행과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 인력 확충, 취약지 의료공백 방지를 위해 기존 의사 인력 배출 일정에 차질이 없는 게 중요하다며 시행 이유를 밝혔지만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없어, 다른 국가고시와 형평성 등으로 반대한 여론을 잠재우기에는 미흡했다. 재시험 기회 부여는 없다던 정부의 입장을 뒤집는 결정으로 많은 국민들은 실망하였다.

의대생들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추진에 반대하며 정부가 두 차례나 부여한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응시 기회를 거부하였다. 다른 국가고시와 달리 두 차례나 시험 응시 기회를 부여한 것도 의사라는 직종에 대한 특혜인데, 이를 거부한 학생들에게 또 다시 응시 기회를 부여하자 이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이어지는 등 여론은 싸늘하였다.

정부가 공정의 원칙 훼손

의사 시험 재응시를 허용하는 것은 다른 국가고시 응시생들과의 공정성 시비를 부를 수 있는 문제이므로 매우 신중해야 한다. 더욱이 국시 응시 거부 이유가 직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지지 않는 무소불위의 특권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정부가 번번이 의료계의 실력행사에 밀려 원칙과 소신 없이 입장과 정책을 번복한다면 공정의 원칙은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다.

의료계는 의사 고시 미응시로 당장 2,700명에 달하는 의사 배출에 지장이 생기면 의료공백으로 인해 현 의료체계가 마비될 것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에 지속적으로 시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공백으로 인한 국민 불편을 볼모삼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킨 후, 이제와 국민을 되레 걱정하는 척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이에 대해 당시 복지부 장관 등은 국민 공감대 없는 재응시 기회 부여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해 12월 20일 한 언론과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국민 여론 때문에 신중한 입장이었는데 지금 코로나19 상황까지 고려해 조만간 정부의 결정이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시험 재응시 허용 결정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새롭게 복지부 장관 후보로 내정된 현 권덕철 장관도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재응시 허용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부는 당장의 의료공백 문제를 이유로 제대로 된 사과도 없는 이들에게 시험 재응시 특혜를 부여했다.

의사 부족,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해 공공의료 부족 및 격차를 해소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의약분업 이후 의사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의대 입학정원을 300여 명 가량 감축하였고,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의료량으로 의사 부족 문제에 시달려 왔다. 의대 증원 방안이 정부 내에서 여러 차례 논의되었지만, 의사단체의 반대로 공론회되지 못했다. 경실련은 의료계의 이익에 반하는 정부 정책이 나오면 집단 진료 거부를 일삼는 의료계의 불법행태를 막고, 부족한 공공의료를 확충하기 위해서는 국공립 의과대학과 병원 설립이 필요함을 10년 전부터 주장했다.

2015년 메르스 확산으로 감염병의 위험성과 국가 대응체계 마련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공공의료를 확충할 기회를 맞았지만 또 실기했다. 정부는 감염병 전담병원 설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코로나19로 전체 의료의 10%에 불과한 공공의료가 80%의 감염환자의 치료를 담당하며 공공병상과 인력 부족 문제가 또 다시 불거졌다. 그러나 의사단체들에 의해 또 다시 중단되었다.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 상황에서 위·중증 환자의 진료도 거부하는 집단행동은 정부와 정치권을 무력화시켰다. 의대생의 국가고시 응시 거부는 이러한 의료계의 행동에 동조하는 행위로, 이번 정책 중단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책 추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책도 없이 이들에게 특혜를 주는 무책임한 행태에 국민들은 더욱 분노하였다.

정부가 공공의료 확충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의료계의 요구에 부응해 불가피하게 시험 재응시 기회를 부여하더라도 먼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의료 인력과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는 등 보다 치밀한 전략을 마련했어야 한다. 관련 정책의 중대성을 고려하여 당장의 의료불편을 감소하더라도 법과 원칙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고, 의료계의 반대 등 논란 요소를 제거하고 국민에게 양해를 구했다면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정책 추진의 방향과 원칙을 보다 분명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향후 정부의 의사 증원과 공공의료 확충 정책의 추진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의료인력 확충 논의 재개해야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사회소비자 단체는 지난 1월 15일 권덕철 복지부장관과의 면담에서 정부의 의사 국시 재응시 허용에 유감을 표하며 의정합의로 중단된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논의를 조속히 재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우리나라 의료인력 부족은 단순히 이번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의 재응시 허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제 수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사의 절대 부족과 코로나19의 확산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빈약한 공공의료 부족 문제는 오래된 일이다. 지속적인 대책 요구에도 정부는 민간 의료의 공적 활용을 이유로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중증환자 증가에 따른 당장의 의료인력과 병상 부족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민간을 통한 중환자 병상확보에 즉각 나서고, 중장기대책으로 권역별 공공의대와 공공병원 설치 등 의료 인력 확대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공공의료 확충, 더 이상 물러서거나 실기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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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는 목민관클럽과 함께 9월 10일과 11일 양일간 ‘지역혁신 10년, 대한민국 미래를 그리다’라는 주제로 목민관클럽 창립10주년 기념 국제포럼을 개최했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된 지방자치혁신 성과들을 되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 보는 자리였는데요.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디지털 국제포럼으로 전환해 진행했습니다. 현장에서 나눈 다양한 의제와 토론 내용을 두 번에 걸쳐 소개합니다.

첫 번째 글에서는 직접 민주주의와 디지털 민주주의에 관한 사례 위주(코로나19 대유행 속 민주주의는 죽었다?)로 살펴봤습니다. 이번 두 번째 글에서는 독일의 인구절벽, 지역소멸의 극복방안 사례와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 자치정부의 역할을 중심으로 전합니다.(유튜브 라이브 영상 보기 ▶링크)


▲ 목민관클럽 창립 10주년 디지털 국제포럼 현장 모습.

독일의 인구절벽, 지역소멸 극복방안은

‘인구절벽’은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인구절벽 현상이 나타나면 생산과 소비가 급감하기 때문에 심각한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 2019년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저인 0.92명을 기록할 정도로 인구 감소세를 겪고 있습니다. 인구절벽과 함께 ‘지역소멸’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4월 228개 시군구 중 105개(46.1%)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됐습니다. 지역소멸위험지수는 한 지역의 20~39세 여성인구수를 해당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로 나눈 값인데,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여겨집니다.

이처럼 비수도권 지역은 인구절벽과 함께 지역 간 인구이동으로 인한 지역소멸위험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인구절벽과 지역소멸위험 현상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 지역산업의 쇠퇴와 일자리 감소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찍이 산업쇠퇴와 함께 1990년 통일이후 동독과 서독간 지역격차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독일은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요.

독일연방 교육연구개발부에서 주한독일대사관에 파견되어 근무하는 알렉산서 레너 참사에 따르면 독일은 통일 이후 구조적으로 취약했던 동독지역에 연대협약을 통해 2005년부터 2019년까지 50억 유로의 예산을 지역혁신과 인프라 구축에 지원했습니다.

중소기업의 경쟁력확보 등 지역경제구조 개선을 위한 지원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이 2020년부터는 동동한 생활주권위원회로 전환되어 추진되었습니다. 동독지역뿐 아니라 서독에서도 시골 지역이나 과거 광산지역 같은 곳, 산업의 구조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 지역을 포함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해당지역이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모색하는 단계와 대략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1차적인 지원, 더 세부적인 계획을 지원하는 2차 지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육과 문화를 포함하여 지역의 혁신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통합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지원을 통해 지역재생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라이프치히시입니다.

지역재생에 성공한 독일 라이프치히

슈테판 하이니히 라이프치히 도시개발국장에 따르면 라이프치히시는 통일 직후 동독 전체 산업이 붕괴하면서 일자리의 90%가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방정부는 철도와 도로 확충, 박람회장 건설 등 기본 인프라 구축을 지원했고, 산업 활성화에 힘을 실었습니다.

이러한 라이프치히 도시개발의 핵심은 통합도시개발전략을 추구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07년 유럽 여러 도시들이 모여서 라이프치히헌장을 채택했는데, 시민참여를 통한 통합적 도시개발, 낙후한 지역에 대한 집중 지원을 포함했습니다.

라이프치히시는 2010년 INSEK2020 계획을 수립해 도시재생을 추진했고, 해당 계획에는 기본적인 도시 인프라 구축뿐만 아니라 문화, 교육, 보건, 스포츠 시설, 공원 등 다양한 개념을 구성했습니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대응, 스마트시티, 스마트교통수단 등도 추가되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박성일 완주군수는 전라북도 내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완주군 사례를 소개했습니다. 전주 대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완주군의 고민은 완주에서 일하는 인력의 30%만 지역에 거주하고 나머지는 인근 대도시에 거주한다는 점입니다. 이에 따라 일자리뿐 아니라 교육, 문화, 주거환경 등 종합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수도권지역 중 처음으로 인구소멸지역 진단을 받던 이항진 여주시장은 현실적인 고민을 나눴습니다. 수도권 지역이나, 각종 규제에 묶여서 개발할 수 없는 여주는 경기도 산하기관을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이전하는 등 균형발전 전략과 함께 인구 감소 수준을 감안해 넓은 면적에 흩어져 있는 주민들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역 산업클러스터 지원 역할을 맡고 있는 경북테크노파크의 김상곤 원장대행은 인구의 50%, 산업의 75%가 밀집한 수도권 집중화를 개선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참여정부부터 추진되어온 공공기관 이전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일갈했습니다.

산업과 공간개발정책이 융합된 개발전략이 필요한데, 공간개발정책은 주거나 복지측면의 삶터, 경제적인 측면의 일터, 휴식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쉽터 개념으로 접근이 필요합니다.아울러 지역별 차별화를 통해 소모적인 내부경쟁은 지양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 목민관클럽 창립 10주년 디지털 국제포럼 현장 모습.

코로나19를 넘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까지 국내외 자치혁신 사례를 살펴봤다면, 향후 자치정부가 준비해야 할 과제를 점검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는 우리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며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 적응 뿐 아니라 변화를 예측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트렌드를 연구하는 이향은 교수(성신여대)는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일상을 주목했습니다. 밤 늦게까지 컴퓨터에 매달리는 코로나이트족, 모바일로 영상시청과 뉴스를 접하는 모센셜, 자가격리 생활을 자세하게 소개하는 브이로그, 불편함을 토로하는 사이트 닛픽, 무관중 영상 콘서트, 자자격리의 고독을 즐기는 조모족 등 코로나19로 인한 불편함을 다양한 방법으로 극복해나가는 사례를 전했습니다. 각 지자체에서 불편함을 긍정적으로 해석할 때 새로운 혁신과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어 코로나19 극복 방안으로 ‘한국판 뉴딜’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유종일 교수(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는 당초 ‘전환적 뉴딜’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세계 경제는 하향세에 접어들었고, 우리나라도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저성장, 양극화를 겪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위기와 기후위기까지 겹치며 전략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인데요. 유 교수는 중앙정부, 지방정부, 전문가들이 함께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전략적 전환을 꾀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토론자로 나선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은 코로나19 시대에서 돌봄, 택배, 요양보호사, 의료진, 청소유지인력, 버스기사 등 필수노동자의 존재와 소중함을 재확인하게 되었다면서 관련 조례 제정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이어 이성문 부산 연제구청장은 행정, 시민, 전문가들과 함께 코로나19 극복방안 아이디어를 모아 정책을 마련한 사례를 전했습니다.

자치혁신 10년, 목민관클럽이 가야할 길

이처럼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고자 온라인으로 전환돼 열린 목민관클럽 창립 10주년 디지털포럼이 막을 내렸습니다. 목민관클럽이 지난 10년간 주민참여, 마을민주주의, 사회적 경제, 평생학습, 청년, 인권, 지역 재생, 에너지전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지역혁신을 추구해 왔다면, 앞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트렌드를 주시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역할을 요구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민과 가까이서 움직이고, 정책을 만드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희망제작소는 목민관클럽과 함께 직접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 지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 자원 발굴 및 혁신적 실험을 벌이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외연을 확장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 글: 송정복 자치분권센터 센터장 [email protected]
– 사진: 자치분권센터

화, 2020/09/2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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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發 양극화, 서민에게‘만’ 전가되는 정책 전환 촉구 기자회견

일시 장소 : 2020년 9월 28일 (월) 오후 1시, 청와대 분수 앞

1. 경제민주화·양극화해소를 위한 99%상생연대는 28일 (월) 오후 1시, 청와대 분수 앞에서 코로나發 양극화, 서민에게‘만’ 전가되는 정책 전환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2. 코로나19의 계속된 확산으로 전례 없을 정도의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삶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저소득층, 서민, 영세중소상공인 등 대부분의 시민들이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현재 재난 수준에 걸맞도록 서민들과 피해자들에게 생계유지비용 직접지원, 맞춤형 지원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위기야말로 우리 사회의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기회의 불평등, 고착화된 부의 대물림 구조를 혁파하는 더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제민주화 기틀 마련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3.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이러한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이겨내고,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며, 혁신과 변화를 이끌어 내기보다, 여전히 수구 기득권층과 재벌 대기업을 위한 정책들이 많은 실정입니다.

4. 이에 함께한 노동조합·중소상인·시민사회단체들(99상생연대)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대통령과 정부에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5. 귀 언론사의 관심과 취재 및 보도 부탁드립니다. 끝.

※ 붙임자료
1. 기자회견 기획안 (개요 및 진행순서)

▣ 붙임자료1. 기자회견 기획안 (개요 및 진행순서)

◯ 제목 : 코로나發 양극화, 서민에게‘만’전가되는 정책 전환 촉구 기자회견
◯ 일시 및 장소 : 2020. 9. 28. (월) 오후 1시 청와대 분수 앞
◯ 주최 : 경제민주화·양극화 해소를 위한 99%상생연대
◯ 진행순서
– 사회 및 취지발언 : 참여연대
– 대표발언1 : 박기영 한국노총 사무처장
코로나 노동자 위기, 정부정책의 전환과 대기업의 상생협력 촉구
– 대표발언2 : 한상총련
코로나 방역을 위한 중소상인 어려움, 임차인만의 책임인가
– 대표발언3 :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
코로나로 인한 민생위기, 제대로된 민생지원 정책 펼쳐야
– 대표발언4 : 권오인 경실련 재벌개혁운동본부 국장
코로나 극복을 위한 혁신기반 마련 재벌개혁에 나서야
– 기자회견문 낭독 : 민변

토, 2020/09/26-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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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충북NGO페스티벌> 함께 즐겨요

제 6회 충북 NGO페스티벌 코로나 일상& 존버가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충북NGO센터 유튜브채널에서 진행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충북NGO센터 유튜브 채널 구독 좋아요는 아래 주소로
https://youtu.be/7tVx_dRC73U
페스티벌 참여 신청접수는 아래 주소를 눌러주세요
http://pf.kakao.com/_Sfgxbxb/chat

 

 

 

수, 2020/10/07-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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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는, 포스트 코로나 19를 대비한

경제민주화 실천과 양극화 해소 입법에 적극 나서라!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요구 높아져-

-경제위기 극복과 근본적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 △ 상법 △ 공정거래법 △ 유통산업발전법 △ 하도급법 △ 집단소송법 등 99%의 상생을 위한 경제민주화·민생살리기 입법에 나서야-

일시장소 : 2020년 10월 21일 (수) 오전 11시 30분 국회 정문 앞

1. 경실련, 민변, 참여연대, 한국노총, 한상총련, YMCA연맹 등 노동자, 중소상인, 시민사회가 함께 모인 ‘경제민주화와 양극화해소를 위한 99% 상생연대(이하 99% 상생연대)’는 21대 국회 첫 번째 국감기간이 지나고, 입법시즌을 앞둔 시점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10월 21일 (수) 오전 11시 30분 국회 앞에서 개최했습니다.

2. 기자회견에는 허권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김남근 민변 개혁입법추진특위위원장, 이성원 한상총련 사무총장 등이 참석하여 경제민주화 실천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개혁입법과제들을 여야가 합심하여 이번 입법시즌에 조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또한 99% 상생연대도 꼭 필요한 핵심입법과제 국회 통과를 위해 적극 연대해나갈 것임을 밝혔습니다.

<기자회견문>

21대 국회는 정쟁을 멈추고

포스트코로나를 대비한 경제민주화와 양극화해소

입법에 적극 나서라

코로나19 상황에서 출범했던 21대 국회가 벌써 5개월이나 지났음에도 경제민주화와 양극화해소를 위한 입법활동은 오리무중이다. 정책과 민생국감을 기대했던 21대 첫 국정감사도 여야간 정쟁으로만 치닫고 있다. 시민사회, 노동자, 중소상인들이 뭉친 99% 상생연대는 이미 21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부터 재벌대기업 중심의 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99%가 상생하는 경제구조를 만들 법안을 제시했었다. 나아가 이 법안들을 조속히 통과시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충격을 줄이고, 회복의 발판을 마련해야 함을 강력히 촉구한바 있다. 하지만 국회는 이러한 요구는 뒷전으로 하고, 재벌규제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 같은 양극화를 심화시킬 법안 논의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경제구조가 막강한 경제력을 가진 재벌들에게 더 이상 쏠리지 않고, 중소벤처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 상생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 국회의 책무이다. 하지만 지금 여야 국회는 본연의 책무를 소홀히 하고, 정치적 이슈에만 매몰되어 있어 국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안타까운 점은 경제민주화와 대·중소기업상생을 내세웠던 더불어민주당은 20대 국회안 보다 미약하고 실효성도 부족한 법안들을 ‘공정경제 3법’이라고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의미는 있지만 이마저도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 재벌들의 반발로 후퇴할 우려는 물론,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 우리경제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들이 많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방지하기 위해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노동자들이 같이 상생할 수 있는 입법과제를 다시 한 번 국회에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가 제안하는 주요입법과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황제경영과 기술탈취와 같은 불공정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재벌개혁과제들이다. 둘째, 재벌과 대기업의 횡포를 방지하고, 중소상공인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대·중소기업 상생 과제들이다. 셋째,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하도급거래 공정화를 가져올 수 있는 노동시장구조개혁 과제들이다.

지금 우리경제는 지속되는 코로나19와 내수부진 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99%에 속해있는 대다수 국민들과 노동자, 중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에서는 한국판뉴딜, 지역균형뉴딜과 같은 포스트코로나 정책들을 발표하고, 수차례에 걸친 추경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있지만, 정책내용을 뜯어보면 상생을 위한 경제구조개혁은 빠져있고 재벌대기업에 쏠려있는 과거정책들을 답습하고 있다. 때문에 경제민주화가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오늘 99% 상생연대가 제안하는 입법과제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대 국회에서 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해오던 내용이다. 이러한 요구들이 21대 국회에 와서도 아직 관철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철저한 반성을 해야 한다. 아울러 이제 부터는 본연의 책무에 따라 잘못된 정부정책을 견제하고 경제민주화 실현과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입법과제들을 적극 수용해 법안발의와 함께, 반드시 통과시켜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 또 다시 국민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미룬다면 코로나19로 심화 될 수 있는 경제양극화에 대한 책임은 물론, 국민들의 거센 비판과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2020. 10. 21.

경제민주화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99% 상생연대

<입법촉구과제>

1. 코로나19 상가임차인 긴급구제법 「상가임대차보호법」
2.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제한 업종 구제법 「감염병예방관리법」
3. 총수일가의 황제경영 견제법 「상법」
4. 재벌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확장과 일감몰아주기 방지법 「공정거래법」
5. 유통재벌과 중소상인, 서비스노동자 상생법 「유통산업발전법」
6. 가맹대리점주단체 구성 및 상생협의 강화법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7. 대기업과 중소·하청기업 상생협력법 「하도급거래공정화법」
8. 온라인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규제법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9. 기업의 불법행위 재발방지와 소비자 피해구제법 「집단소송법」
10. 기업의 고의중과실 불법행위 처벌과 재발방지법 「징벌적손해배상법」또는 「상법」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 참조-

보도자료

 

목, 2020/10/22-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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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19 시대

다시 일회용품이 난무하며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에 대한 전문가, 업사이클링업계, 제로웨이스트숍, 시민 등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플라스틱과 폐기물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본 토크쇼는 무청중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서울환경연합 온라인채널(줌&유튜브)로 생중계 될 예정입니다.


참여 패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박미현 터치포굿

배민지 무포장가게쓸

김윤정 에코삼발이/서울환경연합 회원


목, 2020/12/0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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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3차 유행을 예감하면서, 한국 역시 서구와 유사한 상황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에 서구 사회는 점점 더 명료하게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에 봉착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1차 유행 시에 서구의 ‘기본권’ 개념은 명료했고, 아시아의 ‘파시즘’적이거나 ‘독재’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제 구미에서 극우세력과 코로나 부정 세력 간에 연대가 커지면서, ‘기본권’ 개념은 점점 더 극우적으로 옹호되는 ‘묻지 마 자유’의 방향으로 오용되고 있다.

이에 <피로사회>로 유명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최근 유럽 언론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단지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에 그러한 화해가 급조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기에는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대립이 매우 완강했고,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구별되지 않는 경향 역시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한병철이 새롭게 주장하듯이 공동체 정신이 자유주의의 전제라면, 공동체주의자들은 굳이 공동체주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를 옹호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정의로운 분배의 절차를 제도화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자 존 롤스였다.

따라서 코로나19로 구미에서 ‘기본권’이나 ‘자유’와 같은 근대 민주주의의 초석과도 같은 개념들이 ‘이기주의’나 ‘경제적 생존’과 동일시된다고 해서, 공동체주의자가 갑자기 자유주의를 옹호하기는 어렵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수렴이 아니라, 오히려 그도 저도 아닌 제3의 다른 원칙이 필요해진 것은 아닌가? 공동체주의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의 사회적 통일성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추상적 절차에 기초하여 개인들의 권리와 연대를 조절하려는 ‘가치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아무리 가는 길이 급해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최근 한 학술지에 투고했다가 수정 재심 요청을 받아 투고를 철회한 논문에서, 필자는 ‘공동체’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의존성’의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를 공유함을 전제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분화해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 갈등’ 및 ‘가치 지배’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반면에 ‘상호의존성’은 가치와 무관하게 인간의 존재 조건, 즉 서로 돌봄이 필요한 개인들의 취약성이라는 조건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즉 어떤 가치로 어떤 형태의 공동체를 정당화하는가의 경험적 사실과 무관하게, 사회는 모종의 ‘연대’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 원칙이다. ‘공동체’는 ‘상호의존성’의 조건에서 출현하지만, 그러한 조건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상호의존성’ 관계에 대한 특정 해석방식, 즉 ‘가치’에 의해 정당화된다. 따라서 특정 가치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서로 돌보는 연대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아닌 ‘상호의존성’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주의가 공동체주의와 수렴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상호의존성’ 개념과 관련된다. 즉 자유주의에서는 사회적 연대를 ‘상호의존성’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들의 자발적 협동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공동체적 상호 돌봄’을 전제로 삼을 수 없으며, ‘합리적인 협동의 형태에 대한 자율적 합의’를 추구한다. 즉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가장 먼저 자유주의의 인간관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상호의존성 속에서 사는 개인’으로 개인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가치의 공유’까지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런 행보는 ‘가치 지배’라는 새로운 위계와 불평등을 초래한다. 따라서 ‘공동체’로 한 발 더 내딛는 행보를 생략하고, ‘상호의존성’에서 출발해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코로나19의 n차 유행을 통해 점점 더 명료해지는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개인을 집합체나 타인과 분리해서 보는 ‘개인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분리를 ‘완전한 자율과 독립’으로 고정해서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오히려 ‘분리’는 순간순간의 ‘사건’들에 불과할 터인데, 그것을 영구적인 개인의 실체적 속성으로 정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에서 ‘책임’은 정언명령을 따르는 실천 이성 또는 개인의 합리적 성찰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들이 더 이상 정언명령을 따르거나 합리적일 수 없을 때, 자유주의 사회에서 책임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구미에서 ‘자유’의 개념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극우적으로 오용된다. ‘경제적 생존’ 문제가 실천 이성의 정언명령이나 합리성보다 훨씬 더 시급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가 ‘기본권’의 개념으로 주장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실천 이성을 장착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앞서 먹고 살아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시장 논리는 ‘상호의존성’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논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개념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서구 자유주의에 거울이 되어주고 또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개념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인 서구 사회를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한다는 절충론적인 접근은 무의미하다. 한국 사회는 ‘가치 동일적 사회=공동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서, 서구 사회는 ‘자유주의적 개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상호의존성’이라는 인간 조건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기획하는 것이 두 사회 모두에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목, 2020/12/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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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3일 출장과 4주 격리 Macho CHO [email protected] 올봄 말레이시아에 열흘 일정으로 출장 갔다가 코로나에 발이 묶여 50일 만에 귀국한 적이 있다.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의 세계적 유행(Pandemic) 선언 및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 지속, 상당수 국가의 전 세계 대상 입국 금지ㆍ제한 및 항공편 운항 중단 등 상황이 이어지며 정부는 특별여행주의보를 연장했다. 따라서, 방역당국은 연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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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0/12/04-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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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생태문명을 위한 연재칼럼을 기획하면서>

올해로 파리기후협약을 맺은 지 5주년 되는 해입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팬데믹 덕분에 탄소배출량이 소량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잔류기간이 길게는 수십 년에 달하면서 누적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고, 온실가스 원인의 1/3을 차지하는 메탄과 질소산화물은 오히려 증가추세에 있다 합니다. 

12월초 유엔 사무총장은 특별기자 회견을 통하여 기후위기가 인류의 재앙으로 다가오는 상황에 대하여 경고를 보내면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인류는 자연과 자살전쟁을 벌리고 있습니다 – Humanity is carrying on suicide-war on nature (CNN).”

1950년대 인류세로 진입한 이래, 포유류 양서파충류 조류 등을 중심으로 약 60%가 멸종상태에 있고 식물종의 40%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으며, 북극 부근이 얼음이 녹아 내리고 온난화가 지속되면서 해저면에 얼음상태로 있던 메탄층이 분출의 섭동을 시작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되었다 합니다. 메탄의 온실가스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30-80배 정도로 강력하여 상기의 대규모 분출이 본격화되면 급속한 기후위기에 따른 재앙이 불가피해 집니다. 

바다로 버려진 플라스틱/비닐 류의 쓰레기 량이 급증하면서 태평양 한가운데에 한반도 면적의 열 배가 넘는 쓰레기 섬이 형성되고 있고, 이들의 무게가 조만 간에 바다 속 물고기 총량을 넘어설 전망입니다. 이들 쓰레기는 결국 먹이사슬과 대기순환을 통하여 우리의 신체에 독소로 쌓이면서 암을 위시한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된다 합니다. 

현재의 대기 온실가스량은 3-4백만 년 전의 플라이오세와 같은 수준으로 당시의 평균기온은 현재보다 3도C 정도, 해수면 역시 10-20 미터 높았다 합니다. 현재의 온실가스 수준이 지속되면 2070년 이후에는 지구의 1/3 이상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황폐화되고 연안도시들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는 전망입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에서 기후경제학을 전공하는 교수는, 현재처럼 일상의 관행이 지속되면(BAU : business as usual), 조만간 닥칠 기후재앙에 따른 경제봉쇄는 현재의 팬데믹 상황보다 훨씬 극심하고 충격적일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장에 산업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조정과 변혁 그리고 이를 위한 금융재정적 조치에 대하여 제안합니다.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문명사를 연구하고 있는 아담 투제(Tooze)교수는 G20를 G40로 확대하고 파리기후협약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강한 구속력의 실행조치를 요구합니다. 특히 강력한 탄소세의 도입과 이를 통상영역의 탄소국경세로 확장하여 에너지 기반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것을 제안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삶/문명에 대한 관점과 정책을 포함한 회개적repentent 일상의 실천입니다. 생태문명전환의 운동에 동참하는 다른백년은 “산업문명을 넘어 생태문명으로”라는 구호를 전개하면서 기후위기에 따르는 재앙의 경고와 지속가능한 미래전망에 대하여 매주 목요일 해외의 다양한 정보와 칼럼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시스템 이론에 기반하여 코로나 팬데믹 사태에 대해 분석 해보고자 합니다. 코로나 사태는 인류가 초래한 생태적, 사회적 긴급 위기상황에 대한 가이아 (우리가 사는 지구)의 생물학적 반응으로, 그 요소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 위기는 생태학적 불균형으로부터 초래되었으며, 우리가 마주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현실은 그 결과를 더욱 극대화시켰습니다.

지난 세기 동안 – 특히 지난 수십 년 간 – 인류의 활동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용량을 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전 세계의 인구는 78억 명에 육박하며, 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의 무한경제성장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다방면의 존재론적 위기를 초래하여 결국에는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여러 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은 지난 몇 십 년 동안 우리의 사회, 경제, 정치 시스템의 지속 불가능성에 대해 경고해왔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권력이라는 독성 가치들에 중독된 기업인들과 정치가들은 그 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그 절박한 경고들을 외면해왔습니다.

이렇게 단기적인 정치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해온 나머지, 그들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장기적 관점에서의 재앙적 결과를 무시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팬데믹 사태가 그 재앙에 대한 초기 경고를 현실로 불러오고 있는 지금, 정치와 기업의 엘리트들도 더는 그 신호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업들의 탐욕으로 인해 인간은 자연생태계를 광범위하게 침범했고, 자연의 생명 시스템을 파괴하고 파편화했습니다. 이렇게 자연에 큰 해를 끼친 인간의 경제활동의 결과 중 하나는 원래 특정 종들과 공생하며 인간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던 바이러스들이 타 종들로부터 인간에게로 넘어와서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의 경우 중국에서 박쥐로부터 인간에게 전파되었으며, 지금 이 시간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이러스의 전파에 있어 인구 밀도는 중요한 변수 중 하나입니다. 높은 인구 밀도는 경제적 이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활동들 및 정책들과 관련이 있는데, 대규모 관광산업이나 큰 슈퍼마켓 체인, 정육 공장, 그리고 밀집된 주거 환경 등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면이 큽니다. 생태학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전체 시스템 내에서 특정 변수만을 극대화하려고 하면 전반적인 시스템에 엄청난 스트레스가 가해지며, 결국에는 시스템 전체를 취약하게 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는 사람들이 마주한 이런 취약한 사회문화적 조건들이 대중매체들에 의해 종종 감춰져 왔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사회문화적 경계를 모르는 코로나가 그 진실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시대에서 특히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부분은 사회정의의 역할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적, 물리적으로 비교적 떨어져서 생활을 영위해왔습니다. 부유층 거주 지역과 그곳에 있는 학교나 병원, 식당 등이 그 예가 되겠지요. 이런 상황에서는 부유한 이들이 가난한 이들의 운명까지 걱정할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팬데믹 시대에는 그렇지 못하게 됩니다. 인간사회의 사회문화적 경계를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가 두 사회적 계층의 운명을 떨어지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밀집한 주거 환경과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성 부족, 그리고 미국의 경우 불충분한 보편적 의료 복지 시스템 등으로 인해 가난한 사람들은 코로나 감염에 더욱 취약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사회계급적으로는 떨어져 있으나 생물학적으로는 떨어져 있지 않은 부유한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 여파를 피해가지 못 할 것입니다.

부유한 사람이 그의 개인 차량 기사나 비서, 배달원, 청소부 등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바이러스가 계급의 경계를 뚫고 퍼져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팬데믹 시대의 사회정의는 더 이상 좌파와 우파가 대립하는 정치적 이슈가 아닌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될 것이고, 따라서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서라도 가난한 이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즉, 공공선을 위한 우리의 윤리적 행동들이 팬데믹 상황에서는 우리의 생존을 좌우하는 이슈가 되는데, 이는 팬데믹과 같은 위기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집단적이고 협력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극복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가 한창 퍼질 무렵, 세계의 여러 국가들은 앞다투어 자국에 봉쇄령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가게들이 문을 닫았으며, 실업률은 급증했습니다. 전 지구적인 보건 위기가 경제 위기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여러 긍정적인 결과도 존재했습니다. 교통량과 산업활동이 줄면서 세계 주요 도시들의 오염도가 급격하게 낮아지거나 사라졌고, 그 덕에 우리는 다시 맑은 하늘과 공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대형 크루즈 선박들이 베니스나 다른 유명 관광지를 드나들지 않게 되면서 베니스의 운하는 물고기가 다시 살 수 있을 만큼 깨끗해졌다고 합니다. 야생동물들 또한 인간 활동의 방해를 받지 않으며 전 세계 곳곳의 생태계에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이번 팬데믹 사태는 그 동안 전 세계에서 만들어졌던 모든 기후 변화 관련 대책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시켰으며, 인류와 지구가 기후 파국으로 달려가는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물론 이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계속해서 유지하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팬데믹 시대의 환경적 재생은 인간 활동의 급격한 감소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와 비슷한 긍정적인 결과는 인간 활동을 급격히 변화시키는 것으로도 이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팬데믹 사태로 가이아는 우리에게 가치 있고 우리를 궁극적으로 구할 수 있는 교훈들을 제시했습니다. 이제 문제는 우리가 그 교훈들을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갈 지혜와 정치적인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 동안 익숙해져 있던 착취적 경제 개발에서 벗어나 재생적, 질적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전 지구적인 에너지 수요에 맞춰 기존의 에너지원이었던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과도한 대규모 관광 산업을 중단시키는 대신 지역 공동체를 다시 한 번 부활시킬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대규모로 중앙집중화 되고 에너지 소비가 심한 공장식 산업농업에서 벗어나 유기적이고 재생적이며 공동체 지향적인 소규모 농업 중심 구조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수많은 나무를 심어서 자연적인 이산화탄소 포집 활동을 촉진시킴과 동시에 인간에게 위협적인 바이러스들을 원래대로 특정 종들과 함께 살아가도록 함으로써 지구의 생태계 시스템을 복원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이 모든 질문을 현실로 바꿀 지식과 기술이 있습니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입니다. 만일 우리가 기후 위기에 대처하는 글로벌 리더십을 자극하여 이 긴급상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면, 후대의 역사가들은 오늘의 이 팬데믹 사태에 대해 아마도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불러오기는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류를 비롯한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공동체들을 멸종의 위협으로부터 구했다”고 회상하며 결론지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프리초프 카프라 (Fritjof Capra)

물리학자, 시스템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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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12/1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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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美 코로나19 백신에 관한 모든 것 * 코로나19 백신 – 누가, 언제, 왜 맞아야 하는가, 그리고 백신 이후의 삶은? * Q&A로 정리한 코로나19 백신의 모든 것. 뉴욕 타임스가 한국 시간으로 12월 15일, 미국 내 백신 접종 개시와 때를 같이 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의문점을 Q&A 형식으로 정리해 보도했습니다. 미국은 식품의약국(FDA)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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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12/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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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일상을 회복하는 새해 되길

2020년 코로나19가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새해는 우리의 일상이 조금씩 회복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희망제작소는 변화의 흐름 속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지역혁신, 사회혁신의 꿈을 이어가겠습니다.

‘희망’의 무늬와 색깔은 각양각색이지만,
희망을 만드는 사람은 우리 곁 시민입니다.

시민과 함께 하는 희망의 힘을 믿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희망제작소 드림

화, 2021/01/0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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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즉 세계적 유행병인 코로나19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의학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 ‘이동량’이나 ‘사회적 거리두기’, ‘사적 모임 제한’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또한 사회학적 문제임을 알게 된다. ‘사회학적’이라 함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어떤 무엇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발병 및 확산 초기에 그 ‘어떤 무엇’은 사회적 심성 또는 지배적 규범의 문제로 해석되었다. 그리하여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유교 문화권 국가의 ‘순종적’ 국민 덕에 방역이 잘 된다고 해석되었다. 물론 신천지 등 일부 개신교 집단에서 전체 사회보다 자기 집단에 ‘순종적’인 문화가 방역에 가장 큰 장애가 됨이 곧 밝혀졌지만 말이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의 질서에서 ‘집단도덕’이 핵심이라고 보는 견해는 근현대 주류 사회학의 고전적인 주장이다.

다음으로, 그 사회적인 ‘어떤 무엇’은 공공의료제도라는 ‘제도’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특히 한 국제기관에서 독일의 공공의료제도를 높이 평가하여 한국보다 방역에 앞서 있다고 평가하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내 공공의료제도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와 같은 의견이 대두했다. 그러나 스페인 등 여타 유럽 국가의 환자까지 실어와 병상을 제공했던 독일에서 코로나19 방역이 실패하여 사회폐쇄가 연장되면서, 이런 관점은 설득력을 잃었다. 또 공공제도가 잘 갖춰진 대표적 북유럽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 난데없는 ‘집단면역 실험’을 했다가 실패하면서, 단순히 ‘제도’만의 문제가 아님이 명백해졌다. 이렇게 의료제도를 문제의 핵심으로 보는 경우는 의료사회학적인 입장이다.

최근 들어 코로나19의 감염 동선을 추적하기 어려운 경우가 잦아지면서, 사회적인 ‘어떤 무엇’의 핵심은 역학조사 및 그와 관련된 개인정보 수집의 문제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유럽과 마찬가지로 사회폐쇄 여부, 즉 개인들의 이동량 통제 문제로 넘어갔다. 결국 3차 유행에 와서는, 역학조사 중심의 초기 감염병 대응에서 실패하여 익명적, 집단적 자유제한 정책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던 유럽과 유사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서구와의 차이가 나타났다. 서구에서는 사회폐쇄에도 불구하고 이동량이 크게 줄지 않아서, 젊은이들의 파티와 사적 모임에서의 감염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리하여 학교나 직장과 관련된 이동량까지 줄여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이동량 감소로 상당히 잘 연결되는 결과를 보여왔다.

지금까지 경과를 보면, 결국 사회적인 ‘어떤 무엇’에서의 핵심은 ‘사회적 거리’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단순히 정부 방침에 잘 따라주는 ‘순종적’ 심성의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볼 것인지가 핵심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또 다른 ‘사회적 거리’의 표현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 아파트 경비원 폭행 주민, 정인이 사건 등의 아동학대 부모에 대한 분노를 통해 나타났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에 대한 공감은 인간적 공감의 형태로만 표출될 뿐, 과로를 강요하는 산업의 이익분배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독일에서 간호 및 돌봄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집단적 목소리로 표현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아파트 경비원 폭행에 대한 분노 역시 노동권의 문제보다는 개인 인권의 측면에서 공감대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살인과 구별되기 힘든 양상의 아동학대에 대한 분노는 단순히 인격적 분노가 아니라 제도의 작동불능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아동학대 신고 절차를 제대로 따른 행위자가 시민들 개인에 한정되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경찰이나 입양기관과 같은 조직적 행위자는 모두 책임회피와 무시로 일관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학대 부모에 대한 인간적 분노 못지않게 컸다. 그러나 정인이에 대한 젊은 부모들의 진정성 있는 추모의 물결은, 그 이전의 세대들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전경이기도 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정인이에 대한 추모가 ‘남에 대한 추모’라는 거리감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거리감의 변화

택배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학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2차 집단’ 관계 속에서 개인들이 느끼는 ‘사회적 거리감’이 매우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개인들은 ‘남’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다. 과거 ‘정’은 인연 맺기와 유관한 친밀감이다. 일회적이거나 익명적인 성격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공감이 아니라, 인연 지속의 기대감 속에서 호혜적인 감정을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회학에서 말하는 ‘1차 집단’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택배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아동학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은 ‘연고가 배제된’ 공감으로서, 사회학에서 말하는 ‘2차 집단’적인 관계에 가깝다. 주류 사회학에서는 ‘2차 집단’ 관계의 핵심은 이익이라고 보았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결합한 ‘차갑고’ ‘계산적인’ 관계라고 규정했다. 물론 거기에도 호혜성이 성립하나, 그것은 ‘인격적 친밀감’이 아니라 ‘공적 의무’에 기초한다. 즉 만일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한층 추상적인 시민적 공감이다.

서구에서는 그런 시민적 공감이 공적 제도화를 낳았고,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다양한 절차들이 확립되었다. 즉 서구에서 제도화는 곧 규범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실현 역시 의미한다. 그런데 택배 노동자나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를 통해 보이듯이, 한국에서 공적 공감은 제도화로 쉽게 연결되지 못한다. 공감되는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 자체가 기대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제도화가 어려운 이유는 규범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고용자의 산업 논리가 더 우선인지, 아니면 피고용자의 인권이 더 중요한지가 사회적으로 논의된 적조차 없어서 규범이 무엇인지를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규범의 상태이다. 또는 정인이 사건에서처럼, 제도화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그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남’에게 공감하는 개인들은 제도를 따름으로써 그 규범에 동조하지만, 제도를 지켜야 할 권력기관은 제도를 무시할 만큼 규범에 무지한 것이다.

시민 개인의 시민적 공감과 제도 규범 간의 이러한 괴리는, 아마도 민주주의 절차를 권위적으로 제도화한 한국 정치사와 관련이 깊을 것이다. 즉 제도화를 위해서는 대표된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대표자에게 이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사에서는 이런 중간 과정이 아예 생략되거나 아니면 단순 절차적으로만 적용되어왔다. 권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유대상이 되어 그 자체가 이익으로서 분배된다. 권력을 대표자에게 이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권력 대표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으므로, 개인들은 추상적인 시민적 공감의 수준을 넘어 사무치게 인격적인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제도화가 개인들의 마음과 괴리되어 있는 만큼, 그리하여 제도화가 규범의 표현이 아니라 권력의 표현이 되고, 그리하여 사회적 규범이 무엇인지 확인이 안 되는데 개인들의 감정만 확인되는 상태에서, ‘남’에 대한 격한 인격적 공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내 집단’과 ‘남의 집단’을 엄격하게 나누어 이질적으로 집단 관계를 규정하던 고전적인 사회적 관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오히려 ‘나’, ‘공감되는 다른 개인’, ‘권력기관’으로 상호작용의 대상을 삼분하여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고, ‘나’를 포함한 ‘개인’과 ‘권력기관’ 간의 권력 비대칭성을 뼈저리게 인식하는 마음의 상태가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시민 개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권력에서 소외된’ 남들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한국에서의 방역 성공은 권력기관에 대한 이러한 불신과 쌍을 이루는 듯이 보인다.

주권자로서 미약한 개인의 처지에서 신뢰할 수 없는 권력기관을 마주하여, 스스로 솔선수범해서 방역의 최전선에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한국에서 지금까지 방역이 성공했던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한 방역 역시 서구의 방역 못지않게 위태로울 수 있다. 서구의 경우 개인 주권자 의식이 강한 개인들이 정부의 방역 정책을 불신하여 방역이 어렵다면, 한국에서는 제도적 권리가 약한 개인들이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방역 정책을 따르기 때문이다. 시민 개인들의 이런 자발적 동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헌신적인 솔선수범이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제도화한 권리’의 형태로 보상받아야 한다. 현재의 방역 성공은 한국의 의료제도, 경제 제도, 이익분배 방식 덕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스스로 솔선수범하고 타인에게 마음 깊이 공감하여 ‘시민적 동원’의 최고치를 만들어낸, ‘좋은 시민’들 덕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화, 2021/02/0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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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1년 1,2월호 – 우리들이야기(2)]

당신의 마음건강, 안녕들 하십니까?

– 코로나가 우리의 정신을 흔들지 않도록

 

문규경 회원미디어국 간사

사상 초유의 팬데믹 위기, 우리의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새 학기를 맞이하여 웃고 떠들며, 학창시절을 만끽해야 할 학생들에게는 그 이름도 생소한 온라인 개학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재택근무에 들어가고, 바삐 움직이던 우리의 일상도 멈추었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코로나 블루’ 잘 알아야 대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코로나 블루’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코로나와 우울을 뜻하는 블루(blue)를 합성한 이 말은, 코로나19의 확산이 우리 삶에 가져온 무기력증, 우울감을 의미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우리말로 ‘코로나 우울’이라고도 칭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실외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무기력함을 경험하고, 코로나19에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공포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 앞에서 우리의 마음건강은 한없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을까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우리 안에!

비지시적 상담으로 심리상담학계에 큰 획을 그은 미국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잠재력을 발현시키려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기실현 경향성’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문제해결 능력을 타고 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극도의 공포상황에서도 돌파구를 찾으려고 합니다. 이 팬데믹 위기 상황에서도 우리는 정신건강을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 자기실현 경향성을 발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잘 알고 발휘하면 효과가 더 크기에 마음건강을 챙기는 법을 아래 마음 건강수칙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치유능력을 가진 인간’

연세대학교 권수영 교수는 우리는 ‘치유하는 인간(Homo Sanans)’으로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치유와 회복하는 힘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힘을 알게 되면, 우리는 온전한 회복과 타인을 위로할 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모두가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팬데믹 위기로부터 우리의 마음건강을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화, 2021/02/0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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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 한국의 여론조사 등에서 사회갈등의 축으로 확인된 것은 주로 이념, 세대, 성, 연령, 계층 등이었다. 분단 상황 속에서 이념 갈등은 오랫동안 정치적 갈등의 핵심이었고, 소위 ‘광화문 집회’ 등으로 코로나19 상황에서 한층 더 두드러졌다. 세대 간 문화적 및 사회경제적 격차는 정치 민주화와 신자유주의 심화 속에서 ‘세대론’의 프레임을 통해 계속 지적되었다. 특히 노인 빈곤의 확대와 청년층의 전망 부재가 새로운 불평등의 의제로 주목받았다. 또 청년층 내부의 기회 격차가 ‘부모 찬스’나 ‘흙수저-금수저’ 등 이념 차이보다도 우선 작용하는 광범위한 계층 대물림의 현상으로 인식되면서, ‘공정성’이라는 말이 청년층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그와 함께 남성성 변화를 압박하는 사회경제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특히 젊은 남성을 중심으로 ‘루저’ 자의식 또는 ‘성공한 사람’과 단순 동일시하려는 주관적 현실 인식이 크게 확산했다.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중심으로 청년 여성들이 정치적 주체로 떠오르면서, 이처럼 복잡한 사회불평등은 ‘젠더 정치’의 프레임으로 단순화하는 중이었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발전하면서, 한편으로는 위에서 거론한 이념, 세대, 소득, 재산 불평등과 빈곤 위험이 한층 악화하며 소위 ‘K형 양극화’가 우려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다른 불평등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특히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그 의미가 주변화되었던 ‘돌봄’ 관련 불평등, 그리고 되풀이되어 발생해도 해결되지 않는 ‘폭력’의 문제가 새로운 불평등으로 떠올랐다. 이처럼 사회불평등이 한층 더 악화할 뿐만 아니라 더 복잡한 양상으로 드러나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는 그 이전의 ‘정상성’으로 단순히 회귀할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특히 팬데믹으로 인해 또는 그 와중에서, 지금까지 비교적 서서히 진행되던 사회변화, 예컨대 디지털 경제의 확대 등 산업구조 변화와 기후변화나 쓰레기 문제와 같은 생태변화의 속도가 획기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따라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새로운 사회를 향한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돌봄 관련 불평등

돌봄과 관련하여, 한편으로 코로나19는 정신병원 등 특수 돌봄 수용시설, 노인 요양원, 병원 등 돌봄 취약자 수용기관들에서 집단발병하였다. 그리하여 ‘돌봄 취약자’ 및 ‘돌봄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했다. 집단 수준에서 다소 다른 양상으로 돌봄과 관련되며 감염에 취약함이 드러난 집단은 교회이다. 1, 2차 유행을 가져온 신천지 교회와 사랑제일교회뿐만 아니라 여러 교회가 주요 감염발생지로 주목받았는데, 이 종교기관들 역시 영혼을 돌보는 기관들이다. 즉 사람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기관들이 코로나19 집단발병의 최전선에 있다고 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것은 돌봄이라는 의존관계에 있는 사람들, 특히 타인의 돌봄에 의존하거나 돌봄노동을 직접 수행하는 피고용자들이 감염에 가장 취약한 집단임을 의미한다. 이들의 이러한 불평등은 그동안 사회불평등에 대한 논의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한편 개인 수준의 돌봄과 관련해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아동학대 사례들이 기사화하면서, 아동이라는 돌봄 의존적 존재가 ‘개별화한 사회적 취약자’ 집단으로 등장했다. 여기서는 돌봄을 직접 수행하는 지위의 어머니들이 가해자로 지목되어, 순리를 위반한 ‘악독한 모성’의 문제로 보도되고 있다. 물론 한때 ‘잔혹 동시’ 형태로 모성의 지배에 대한 자녀의 문제 제기가 보도된 바 있고 또 현재 청소년들 사이에서 ‘어머니’ 관련된 욕들이 난무한다고 하니, 모성 관계나 모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듯하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코로나19로 가정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한 데 비해 한국에서는 아동학대가 두드러짐을 고려할 때, 한국 가정의 돌봄 부담이 갖는 특수성이나 부부관계 및 부모-자녀 관계의 특수성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코로나19 감염병은 집단돌봄이나 가정 돌봄 모두가 사회에서 얼마나 취약한 관계를 만들어왔는지를 훤히 드러내는 사회학적 임무를 수행했다. 산업사회의 근대적 주체는 ‘노동하는 사람’이고 노동은 곧 직업 활동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그간 돌봄 영역은 사회에서 의미론적으로나 실제로 주변화되어왔다. 그런데 그런 실상이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인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이런 새로운 사회학적 관찰은 코로나19 감염병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라고 할 것이다. 즉 인간은 산업사회의 프레임으로 사회를 보는 인식론의 지배를 벗어나기 어려우므로 돌봄 관계의 취약성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으나, 인간의 의미론에 구애받지 않는 감염병은 오히려 자유롭게 사회적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코로나19 감염병이 주도한 이러한 인식론적 변화가 앞으로 사회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포괄되어, 다시 돌봄 관계의 취약성이 무시되거나 주변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인식론적 정상성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폭력의 문제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집중적으로 폭로된 또 다른 사회불평등의 양상은 ‘폭력’의 문제이다. 한편으로 이것은 아동학대와 같은 개인 간 폭력의 문제로, 다른 한편으로는 기관과 조직 등 제도적 폭력의 문제로서 드러났다. 아동학대와 같은 개별적 폭력에 대해서는 시민들의 ‘공감’이 놀라운 수준으로 표현되었다. 많은 부모가 스스로 학대당한 아동의 부모로서 동일시하며, 생면부지 아동의 인권을 호소하며 앞장섰다. 과거 세월호 재난과 여러 청년 노동자의 사고사 등에 부모들이 나서서 자신의 죽은 자녀뿐만 아니라 누군지도 모르는 미래의 잠재적 피해자를 위해 싸웠던 것처럼, 그렇게 부모로서의 동일시가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다양한 재난과 사고를 통해 국가기관과 기업이라는 거대 권력체의 폭력 앞에서 개인들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통감해온 우리 사회의 역사와 유관하다. 아동학대는 개인에 의한 폭력이지만, 성인 부모와 어린 아동의 지극히 비대칭적인 권력관계는 기관과 개인 간의 권력 비대칭과 유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비대칭적 취약자 지위에 있는 개인에 대한 인권 감수성은 그야말로 ‘개인에 대한 공감’의 형태로만 나타나고 있다. 세월호 재난과 무수한 재난들을 겪으면서 한국 시민은 익명적 관계 속에서의 시민적 동일시를 통해서 ‘촛불혁명’과 같은 변화를 이끌어온 바 있다. 그러나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정부와 달리, 사유재산에 기초한 기업이나 사용자의 고용관계에서 나오는 폭력과 권력에 대해서는 ‘시민’ 지위만으로는 대항할 수 없다. 코로나19는 기존의 무수한 ‘갑질’ 고용 관행으로 피고용자가 죽음에 이르는 경우들 역시 증가시켰다. 배달 노동자들이 죽어갔고, 경비 노동자가 폭행을 당해도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으며, 과거에 문제가 되었던 사고사가 똑같은 형태로 되풀이되었다. 여성들이 일하는 콜센터와 외국인 노동자들의 작업장이 감염 취약지로 되풀이되며 등장했다.

이처럼 ‘기관 대 개인’의, 특히 고용관계에서 나타나는 폭력에 대해서도, 시민들은 개인적인 안타까움과 공감으로 대응하고 있다. 배달 노동자에게 위로를 건네거나 택배가 늦어도 참고 기다리며 이해하는 식이다. ‘피고용자’로서, 직장에서 갑질을 당하는 ‘비정규직’으로서, 취약성이 배가되는 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다윗과 골리앗’의 다윗으로서 공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을 많은 학자는 ‘신자유주의 시대 연대가 사라진 개인화한 사회’의 현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연대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개인화’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개인화한 공감’으로서 연대를 표현한다. 따라서 연대가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연대가 왜 개인화하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직전에 가장 두드러졌던 사회정치적 연대의 형태는 청년층의 페미니즘이었다. 다양한 사회불평등이 서로 작용하여 갈등에 대해서 복잡한 인식이 나타나는 와중에도, 공론장을 형성하며 정치적 주체화한 세력은 청년 여성이 대표적이었다. 그들은 디지털 성폭력 이슈를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새롭게 조직화하는 성폭력에 저항했다. 성매매 사이트 소라넷, 웹하드 카르텔, 텔레그램 n번방 등을 직접 나서서 조사하고 폭로하며, 정치적 의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즉 새로운 사업체로 떠오르던 온-오프라인 네트워크에 정면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같은 네트워크 기반의 신생 사업체라고 해도 배달이나 택배 플랫폼 기업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연대가 작용하지 않았다. 그들을 연대로 이끌 ‘공통성’이 부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들어서면서, 고용관계와 관련된 집합행동은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일어났다. 사회적 연대가 아닌, 자기 집단 연대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정부의 정규직화 방침에 반대하는 인천국제공항 사태와 의사 파업이 대표적이다. 기득권자에 속하는 정규직 피고용자들 또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공공성’ 확대에 대한 정부 방침에 집단적으로 반발한 것이다. 여기서도 ‘연대’가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즉 연대는 청년층 페미니즘처럼 ‘네트워크화’하거나, 인천국제공항 정규직이나 의사들처럼 성공한 상위 고학력자 층에서 ‘폐쇄화’하고 있다. 뒤의 연대 형태를 과거 막스 베버는 ‘사회적 폐쇄’라고 불렀다. 베버는 ‘계급’ 개념을 ‘사회계급’ 개념으로 바꾼 것으로 유명한데, 거기서 핵심은 계급이 더 이상 단순히 소유관계에서의 차이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급 위계가 다시 신분화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계급별로 상이한 문화와 의례를 보이고, 상이한 소비와 생활양식을 보인다. 즉 계급은 이익으로만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결속한다.

‘사회적 폐쇄’는 그러한 ‘계급의 신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편에서는 태도와 정서, 문화로 은밀하게, 다른 한편에서는 집단적 위력을 통해 공공연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대물림하는 것이다. 베버가 살았던 독일 사회는 계급 갈등이 치열하던 사회였다. 그 속에서 사무직이나 전문직을 중심으로 ‘신분화’나 ‘사회적 폐쇄’가 진행됨을 그는 관찰했다. 현재 한국 사회는 계급 갈등이 치열하다고 할 수 없다. 몇몇 소수정당과 가입률이 미미한 노조들을 제외하면,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베버 시절 독일에는 사회민주당이 노동자 계급 정당이었고, 노조는 공산주의부터 가톨릭 계열까지 다양하게 포진해 있었다. 그런 독일도 현재는 디지털화로 인해서 노동자 조직이 약화하고 있다.

한국에서 ‘공공성’ 옹호와 관련되는 사회적 연대는 인권 감수성 강화 방식으로 ‘개인화’하거나, 청년 페미니즘 방식으로 ‘네트워크화’하고 있다. 과거 서구의 계급정당이나 계급조직 또는 과거 한국의 민주화 운동 단체처럼 조직화한 형태의 연대는 점점 약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특히 고용관계에서 조직화한 힘의 대치가 나타나지 않고 ‘다윗과 골리앗’의 형태가 지속되기 때문에, ‘갑질’이라는 형태의 폭력 수반이 가능하다고도 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치 아동학대와 비교될 수 있듯이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가 경제적 ‘계약관계’가 아닌, 비대칭적 권력 속의 돌봄 관계인 양 인지된다. 그리하여 권력이 쉽게 폭력으로 표현되고, 신분적 위세를 과시하는 것이 ‘정상’으로 인지된다. 성공한 고학력자 층의 신분적 위세 과시 역시 그런 맥락에서 공공연하게 가능해진 것이다.

 

계약관계와 돌봄 관계의 구분 및 그에 따른 이중적 정의 개념의 필요성

이처럼 코로나19 아래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들이 더욱 명백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사회불평등의 의제는 1) 돌봄 취약성과, 2) 고용관계에서의 유사 신분적 권력관계를 포괄해야 한다. 또 3) 이 두 문제가 한국의 사회불평등 연구 및 인식에서 명확히 가시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구와 구별되는 양상이 나타남에도 유의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런 문제들을 가시화했으나, 감염병의 사회학적 기여분은 거기까지이다. 그 이후의 작업은 인간과 사회가 이어가야 한다.

이런 복잡하고 새로운 사회불평등의 인식을 위해서 필자는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하나는 돌봄 관계를 사회불평등의 의제로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계약관계의 정의(justice)와 돌봄 관계의 정의(justice)가 다른 방식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산업사회의 정의론은 계약관계의 정의만을 다루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의 인식론적 기여로 인해서, 이제 우리는 돌봄 관계의 취약성 역시 정의론의 의제로 등장할 수밖에 없음을 목격한다. 그러나 돌봄 관계는 개인 능력의 불가피한 격차에 기초한 비대칭적인 관계이고, 거기서 권력관계의 속성은 자율적 개인들 간의 계약관계에서와 다를 수밖에 없다. 즉 정의론은 이중적 형태로 설명되어야 한다. 계약관계에서의 정의와 돌봄 관계에서의 정의를 동시에, 그러나 각각 구분하여 다루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서구 페미니즘에서는 돌봄 관계가 더 원초적이라는 주장이 크다. 물론 돌봄 관계 없이는 개인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그런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그런 이유에서 계약관계를 돌봄 관계로 대치하는 방식으로 사고 전환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앞서 보았듯이, 고용관계의 ‘갑질’과 ‘폭력’은 한국에서 계약관계가 ‘노동력 상품화’의 계약이 아니라 ‘인신 판매’의 계약으로 인지됨을 폭로한다. 돌봄과 같은 의존관계는 비대칭 권력관계를 정당화하기 쉽다. 따라서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돌봄 관계 자체에서의 장치가 필요함과 동시에, 돌봄 관계에 해당하지 않는 관계와의 구별 또한 필요하다. 돌봄 관계는 의존이 ‘불가피한’ 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근대적 자유노동자의 고용자에 대한 의존성은 사회적 힘의 결과이다. 거기에는 어떤 자연적, 물리적 우연성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홍찬숙

화, 2021/03/0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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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경제가 COVID-19로 타격을 입었고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에서 실탄이 고갈되면서 각국마다 재정 정책이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하며, 불안정한 경제주기에 대응한 정책수단으로 재정운용의 규칙을 다시 써야 하며, 자본의 할당에 있어 정부가 더욱 큰 역할을 하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런던 – 거시경제적 정책입안에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COVID-19의 영향으로 인하여 오래된 정통이론이 새로운 내용으로 변해가고 있으나, 문제는 누구도 이러한 변화의 의미를 공개적으로 확인하거나 이전의 관행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 인터뷰에서 영국은행BOE의 부총재를 역임한 폴 터커는 “이제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의 뒷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각국의 중앙은행들, 재무부 관료들, OECD 및 국제통화기금 관리들도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재정건전성의 옹호자들이 과거에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다행히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2010년을 주도했던 재정긴축이 “예상보다 훨씬 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에 대하여 힘들여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금융체제이라는 견고한 성채에서 최대로 기대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기의 실수를 인정한 것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만연했던 거시경제정책 이론이 야기한 엄청난 손실의 규모를 포착하는 데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2008-09년의 금융위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은 거시경제의 안정화가 전적으로 통화정책 입안자들의 주제이며, 금리정책을 통해 설정된 인플레이션을 관리하는 목표는 독립성을 지닌 중앙은행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인플레이션이 통제된다면 경제가 주기적인 안정성을 유지할 것이라는 정통적인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재정정책은 방어적이어야 하며 시장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면 재정지출은 가능한 축소되어야 한다는 자기모순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통화정책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은 2008-09년의 가혹한 침체에도 살아 남았습니다. 양적완화 (QE) 또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이라고 불리는 수단이 명목기준 금리가 “제로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정통적인 금리정책을 대체하는 것입니다.

중앙은행들은 채권판매자의 손에 쥐어준 현금이 실물 경제로 흘러 들어가는 모든 방식의 환상적인 “투입 메커니즘”을 개발했습니다만, 이들 대부분의 현금이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대신에 고갈된 은행준비금을 보충하거나 금융기구간교환SWAP에 사용될 가능성을 무시해 왔습니다. 한편, 정부는 재정지출을 삭감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아 수행하여 왔습니다.

통화확장과 재정축소의 조합이 결국은 기대하는 회복을 가져 오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COVID-19 대유행이 닥쳤을 때도 통화정책을 통한 회복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강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몇 달의 유급 휴가를 제공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수 천억 달러의 신규 양적완화 자금의 투입으로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것을 생각해 내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전염병에 대한 서구사회 대응책의 두드러진 특징은 표적이 없는 무작위적인 것이었습니다. 서구의 정책입안자들은,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기술적으로 가능한 대량 테스트, 추적 및 추적 시스템을 배포하여 사람들이 계속 일하도록 시도하기보다는, 손쉬운 대량봉쇄 및 휴업을 선호했습니다.

이제 통화정책이라는 실탄이 떨어졌습니다. 부양책이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이후 유럽과 미국 경제는 세계2차 대전 이후 가장 높은 비율로 경제의 규모가 2020 년 한해 동안 축소되었고 동시에 실업률도 증가하였습니다. 이제 일시적 계획이 종료되고 중앙은행은 채권보유자에 대한 상환의 능력을 보증해야 하는 한도 때문에 실탄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정정책은 정부가 선택할 유일한 수단입니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목표, 이를 수행하기 위한 규칙 및 통화정책과의 조정을 포함하는 새로운 거시경제의 프레임 작업 등이 긴급하게 필요합니다.

수요와 공급 모두 충격을 모두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회복정책은 공급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구멍을 파고 다시 이를 채우는 식으로 돈을 지불하는 케인즈주의 수요측면의 구제책은 이제 부적절합니다. 직접적인 수요증가는 국민소득을 증가시켜 간접적으로 공급을 증가시킬 것이지만, 공급영역의 심각한 지연은 인플레를 유발할 위험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공급역량에 대한 새로운 투자가 재정부양책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정언적 명령은 미래경제가 요구하는 공급부문의 성격에 대하여 정책입안자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동화 및 기후변화의 장기적인 과제를 고려할 때, 팬데믹 이후 회복정책은 주기적 안정성뿐만 아니라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재정정책의 경우, 이것이 통화정책보다 더 강력한 거시경제 안정수단일 뿐만 아니라, 정부자신이 금융시스템과는 별도로 자본을 배분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재정의 정책으로 기술 및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지원하는 것을 기꺼이 허용해야 하며, Mariana Mazzucato(유럽그린딜을 주도한 런던 칼리지대학 교수)가 말하듯이, 이제는 조세정책의 개혁을 포함하는 “목표지향적” 공공투자 전략의 필요성이 불가피합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논의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상호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영국에서는 2020년 3 월 이후 양적완화의 확대는 정확히 예산적자의 증가를 보여왔습니다. 영국은행BOE이 중앙은행으로서 재무부의 대리인 역할을 해온 지난 1년 동안, 과연 BOE의 독립성에 대한 인식과 인플레이션 목표에 대한 신뢰성이 유지되었습니까?

정부가 적극적인 거시경제의 주체가 되려면 중앙은행이 재정적자를 견제하는 전통적인 역할로 돌아가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와 그렇다면 되돌아갈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경제주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최근 시행되었던 것보다 자본의 배분에 대하여 정부가 더욱 큰 역할을 허용하도록 ‘재정의 규칙’이 다시 작성되어야 합니다.

팬데믹 상황은 상기에 언급한 문제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논쟁을 통하여 너무나 오랫동안 경제적 행운 또는 불행을 좌우해온 재정과 금융의 내부시스템의 절차와 자의성 그리고 비밀주의가 대체되기를 희망합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121-02-16.

ROBERT SKIDELSKY

Warwick University의 정치경제학 명예 교수. J.M. Keynes에 관한 방대한 전기를 저술하였으며, 영국 상원의원으로 노동당에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고, 이적하여 보수당의 상원 재무관련 대변인이 되었으나 1999년 나토의 코소보 개입을 비판하여 결국 보수당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

수, 2021/03/1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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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장기화로 인해 시민과 주민을 직접 만나서 활동을 벌이던 시민사회 단체와 그룹의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주최자들은 비대면으로 모임 방식을 전환하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막상 비대면 방식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걱정하거나 사람들이 활발하게 온라인에 참여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는데요.

이러한 가운데 기후위기 운동을 펼치는 미국 비영리단체 <350>(링크)는 지난해 3월 <온라인에서 그룹 이끌기-코로나19를 대처하는 온라인 교육, 회의, 트레이닝, 이벤트를 위한 실용 가이드북: LEADING GROUPS ONLINE by Jeanne Rewa and Daniel Hunter>를 펴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해당 가이드북을 한국어로 번역해 공유했으며, <350>의 콘텐츠 재가공 동의를 얻어 카드뉴스로 전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관련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온라인 공론장①] 코로나 시대, 모임 어떻게 기획하지?
[온라인공론장②] 온라인 모임 시 체크리스트법
[온라인공론장③] 무슨 툴과 기술을 활용하지?

<온라인에서 그룹 이끌기-코로나19를 대처하는 온라인 교육, 회의, 트레이닝, 이벤트를 위한 실용 가이드북> 한국어 번역본 내려받기

수, 2021/03/31-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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