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대통령보다 더 주목받은 부통령 당선인, 카멀라 해리스

지역

대통령보다 더 주목받은 부통령 당선인, 카멀라 해리스

admin | 화, 2021/01/26- 19:29

정장을 입은 한 성인 여성이 힘차게 성큼성큼 걷고 있는 옆모습이 보인다. 옆의 흰 벽에는 그림자가 비치는데 이 여성의 그림자는 아닌 것 같다. 키가 훨씬 작다. 그림자는 짧은 고수머리를 뒤로 묶은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 대선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해 11월 8일 소셜미디어에서는 이 이미지가 이슈가 됐다. 성인 여성은 미국 역사상 첫 ‘흑인·여성’ 부통령으로 당선된 카멀라 해리스다. 그림자 소녀는 미국 흑인 민권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루비 브리지스다. 1960년 여섯 살 소녀이던 루비는 백인들만 다니던 학교에 맨 처음 등교한 흑인 학생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브리아 골러가 만든 이 이미지는 해리스 당선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First. First. First.”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워싱턴포스트의 정치평론가 로빈 깁핸은 “역사는 항상 바로 거기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며 이렇게 감격을 표현했다. ‘최초(First)’라는 표현을 세 번 쓴 것은 여성이자 흑인, 그리고 아시아계(인도)로서 각각 최초로 부통령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3중의 장벽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셈이다.

트럼프인가 아닌가, 지난 미 대선이 온통 거기에 쏠려 있는 동안 해리스는 조용히 부상했다. “그것(해리스의 당선)이 도래했을 때 체제에는 비명 섞인 충격이 나오지 않았다. 체제는 솔직히 말해 무감각했다.”(깁핸) 바이든의 승리가 확정되자 미국은 바이든보다는 오히려 부통령 당선인에 기대를 하는 모습이다. 대통령보다 부통령 당신이 더 의미 있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미국 언론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당선자의 승리가 알려진 날, 소셜미디어엔 (대통령 당선자보다) 그의 러닝메이트에 대해 더 흥분한 사람들의 열기가 분출됐다”고 전했다.

해리스는 당선이 확정되자 대선 승리를 알리는 연설에 하얀색 바지 정장에 ‘푸시 보’(pussy bow) 차림으로 등장했다. 흰색은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권 운동을 벌인 여성 운동가 ‘서프러제트’를 상징하는 색이다. 푸시 보는 상의 목둘레에 커다란 리본을 묶는 패션을 통칭하는 말로, ‘여성의 타이’로 불린다. 여성들이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연출할 때 썼던 액세서리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했다. 해리스는 승리 연설에서 “흑인, 아시아계, 백인, 라틴계,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세대들이 이 순간을 위한 길을 닦아왔다”며 “그들은 우리 민주주의의 중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의 어깨 위에 서 있다”고 했다.

 

혼란 끝에 흑인으로서의 정체성 확립

해리스는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샤말란 고팔란은 인도 출신으로 19세에 UC 버클리대로 유학을 오게 되면서 미국에 정착했다. 아버지 도널드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으로 역시 UC 버클리대 유학생이었다. 두 사람은 대학원생 시절 만나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이민자 출신이었지만 인정받는 학자였다. 해리스의 아버지는 흑인으로는 최초로 스탠퍼드대 경제학부에서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였다. 어머니는 유방암 전문가로 암 연구자였다.

어린 시절 해리스는 인종차별을 몸으로 겪으며 자랐다. 버클리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버싱(busing)’ 정책이 시행됐다. 버싱 정책이란 1954년 미연방대법원이 ‘공립학교의 인종 분리는 위헌’이라는 판결(브라운 대 교육위원회)을 내놨음에도 여전히 주거지에 따라 같은 인종끼리 학교를 다니는 일이 굳어지자 나온 방안이다. 흑인 거주지 학군과 백인 거주지 학군 사이에 버스를 이용해 학생들을 서로 상대 학군의 학교로 보내서 섞이도록 한 것이다.

해리스가 들어간 반은 이 정책에 따라 생긴 두 번째 학급이었다. 시행 초기 도끼눈을 치켜뜬 사람들 사이에서 매일 아침 버스를 타고 백인들이 주로 사는 부유한 동네의 초등학교로 등교를 해야 했던 해리스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해리스는 훗날 “리버럴한 버클리에서도 대법원의 명령을 이행하는데 20년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해리스가 5살 무렵 부모는 별거에 들어갔고, 7살 때 이혼했다. 주말에 아버지가 있는 팔로알토로 놀러갔을 때 흑인이기 때문에 이웃 아이들과 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했고 맥길 대학병원에서 유방암 연구원으로 일하게 됐다. 어머니와 살게 된 해리스는 고교 시절을 여기서 보냈다. 백인이 대부분이고, 프랑스어가 주류인 지역에서 느꼈을 소외감과 차별감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과학자였지만 쇼핑을 하러 가면 가정부로 오인받기도 했다.

백인 위주의 환경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해리스는 ‘흑인들의 하버드대’라고 불리는 명문 하워드대에 진학하면서 안정을 찾았다. 역사적으로 흑인을 위한 대학으로 설립됐으며 흑인 엘리트들이 선호하고 대다수의 학생이 흑인인 학교에서 그는 새롭게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했다. 해리스는 “하워드는 나의 존재에 대해, 또 그 의미와 이유에 대해 아주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하워드대는 변호사 시절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의 승소를 이끌어냈고 훗날 최초의 흑인 연방 대법관이 된 서굿 마셜의 모교이기도 하다. 그런 점이 대학 선택에 영향을 끼쳤을 지도 모른다.

해리스는 하워드대에서 정치·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은 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UC 헤이스팅스대 로스쿨을 마쳤다. 1994년에는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 카운티의 지방검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1998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장인 테런스 할리난의 제안을 받아 그곳에서 지방검사로 근무하게 된다. 해리스는 형사부에서 일하면서 살인, 성범죄, 폭행, 음주운전 등의 사건을 주로 맡았다.

선출직에의 첫 도전은 2003년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장 선거였다. 해리스는 자신을 영입했던 테런스 할리난을 상대로 검사장에 도전했다. 선거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지낸 윌리 브라운과 해리스의 관계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1994년 윌리 브라운이 캘리포니아주 의회 의장이었던 시절 해리스와 연인 사이였고, 브라운이 주 실업보험항소위원 자리 등을 해리스에게 제공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게 해 줬다는 것이었다.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공격이었지만, 해리스는 굴하지 않았다. 그는 “반대자들은 내 자신의 노력은 전혀 없는 것처럼, 내가 누군가의 창조물이라는 외설적인 이야기를 선택했다”고 맞받았다.

해리스는 검사장 선거운동 때부터 절대 사형을 구형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검사장 취임 후 2004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경찰관이 총에 맞아 살해당한 뒤에도 사형을 구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민주당 출신 상원의원들조차 해리스가 사형에 반대하는 걸 알았더라면 검사장 선거에서 지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공격했다. 그럼에도 해리스는 꿋꿋이 신념을 지켰다.

그러나 훗날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이 된 이후 이 신념을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오렌지카운티 소재 연방지방법원은 2014년 캘리포니아주의 사형 제도가 실제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면서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지연된다며(1978년 이후 사형 선고 800명 중 13명만 집행) 잔혹하고 통상적이지 않은 처벌을 금지한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이에 해리스가 항소하겠다고 밝혀 얼핏 사형제를 옹호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항소법원은 해리스의 손을 들어줬다.

해리스는 범죄자를 교도소에 보내는 것보다 직업 훈련, 정신건강 치료, 약물 재활 등의 범죄예방 프로그램이 더 중요하다고 오랫동안 강조해 왔다. 해리스는 자신의 책에서 “범죄 근절을 위한 강력한 처벌”과 “초범에게 필요한 관용과 지원”이 서로 모순되는 목표가 아니라고 밝혔다. 동시에 추구해야 하고 또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이다. 해리스는 실제 검사장 시절 경범죄 초범들에게 무사히 교육을 마치면 범죄 기록을 없애주는 ‘궤도 재진입(back on track)’ 제도를 실시했다. 이 제도로 50%에 달하던 경범죄자의 재범률을 10%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해리스는 ‘경찰의 안전’과 ‘피의자의 안전’ 같은 상호 모순된 가치에 대해서도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둘 다를 정책과 교육으로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해리스는 2010년에는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에 출마해 선출됐다.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으로서는 최초의 여성·흑인이었다. 2016년에는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에 선출됐다. 역시 캘리포니아 최초의 여성·흑인 상원의원이었다. 미국 전체를 통틀어서도 두 번째 여성·흑인 연방 상원의원이기도 했다.

워싱턴 정가에서 해리스는 ‘전사’로 자리매김했다. 2018년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청문회 때 보수 대법관 후보를 몰아붙이는 송곳 질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 대선에서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다. 지난해 6월 경선 1차 TV토론에서는 조 바이든을 향해 ‘버싱’ 정책 반대에 협력했다며 공격해 바이든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해리스는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매일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던 작은 소녀가 인종차별로 상처를 입었고, 그 소녀가 바로 나”라고 몰아붙였다. 순간 지지율도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존재만으로도 가능성을 보여준 해리스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중도 사퇴했지만 바이든은 경선 승리 이후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유색인종으로서 해리스의 강점이 부각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한 지명도를 가진 여성이자 유색인종 후보군은 찾기 어렵기도 했다.

해리스는 부통령 후보 지명 이후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토론회에서 시시때때로 말 중간에 끼어드는 펜스를 향해 “부통령님, 내가 말하고 있잖아요”라고 단호하게 대처했다. 지지자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유세 기간에는 검은색 스키니진과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나와 춤을 추는 등 틀을 깨는 행보로 화제를 모았다. 해리스는 49세에 결혼했는데, 남편인 더그 엠호프 변호사는 선거 기간 부통령 후보의 남편으로서 ‘이해충돌’이 발생하지 않게 변호사 업무를 휴직하고 아내를 지원했다.

해리스는 유세 시간 동안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 때는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하면서 ‘치티스(여성 가족구성원을 소개하는 인디언 언어)’라는 단어를 사용해 인디언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았다. 선거에는 불리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공격이 나왔다. 반대편에서는 해리스를 ‘성난 흑인 여성’이라는 전형적인 이미지에 가두려고 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성난’ ‘고약한’ ‘끔찍한’ 등의 수식어로 해리스를 표현했다. “흑인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괜찮겠냐?”며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카멀라의 이름을 갖고도 말이 나왔다. 카멀라는 인도식 이름으로 ‘연꽃’을 뜻하지만 미국식으로는 흔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데이비드 퍼듀 상원의원은 트럼프 지지 연설에서 “카-말라, 카-마-라, 카멀라 멀라 멀라”라며 여러 차례 해리스의 이름을 발음하며 조롱했다.

흑인·여성·아시아계의 고위직 진출이 구조적 문제 해결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지만, 해리스는 존재만으로도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입법정보 공유사이트인 고브트랙(GovTrack)은 해리스를 두고 “100명의 상원의원 중 가장 진보적인 의원”이라고 평가했다. 해리스는 임신중단, 마리화나 합법화, 더 엄격한 총기규제에 찬성한다. 이민자들에게는 더 관대한 정책을 약속했다. 플로이드 사건 이후에는 흑인 차별 문제와 경찰개혁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환경 규제 강화도 주장했다.

반면 의료보험에 대한 태도는 불분명하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내놓은 ‘메디케어 포 올(전 국민 단일 의료보험)’에 서명한 민주당 의원 중 한 명이었지만, 대선경선 초기 이를 철회했다. 주 법무장관 시절, 경찰의 민간인 총격 사건 처리에서도 소극적인 대응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친밀해 기술 산업 규제에도 소극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조, 우리가 해냈어요.” 해리스는 당선 확정 직후 조 바이든 당선자와 감격의 통화를 나누는 장면을 트위터로 전했다. “저는 첫 여성 부통령이 되겠지만, 제가 마지막은 아닐 겁니다. 오늘 밤 모든 소녀들이, 이 나라가 가능성의 나라임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리스 당선자는 당선을 알리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어머니가 “네가 가는 길이 최초가 되더라도, 마지막이 되게 하지 말라”며 생전에 딸에게 강조한 말이기도 했다.

해리스는 역대 그 누구보다 강한 ‘실세 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인은 77세의 고령임을 감안하면 재선에 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해리스가 부통령이 된 후 능력을 인정받으면 현직 프리미엄으로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강력한 대선후보로 나설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가능성’이라는 말을 언급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4년 뒤 해리스는 어떤 모습으로 유권자 앞에 서게 될까.

 

참고자료

[워싱턴포스트 2020.11.7.] Kamala Harris made history with quiet, exquisite power

[LA타임스 2015.9.30.] How race helped shape the politics of Senate candidate Kamala Harris

[경향신문 2020.11.9.] 카멀라 해리스의 그림자 속 그 소녀, 루비 브리지스

[경향신문 2020.11.9.] 해리스 부통령 당선자가 하얀색 정장을 입은 이유

[경향신문 2020.11.11.] 4년 후, 카멀라 해리스와 미셸 오바마가 겨룬다면

[경향신문 2020.11.13.] 정은진의 샌프란시스코 책갈피 – ‘잘못된 선택지’를 거부해온 해리스, 그 경험과 지혜로 좋은 부통령 기대

[경향신문 2020.11.8.] 미국 부통령 당선 카멀라 해리스는 누구

[경향신문 2020.11.8.] 미국 정치의 얼굴을 바꿀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한국일보 2020.11.8.] 유리천장 깨부순 ‘최초’ 신화… 2인자 해리스는 누구

[연합뉴스 2020.8.12.] 백인들 틈바구니서 설움 겪던 소녀…’여자 오바마’로 뜨다

[피렌체의 식탁 2020.8.21.] 유정훈 칼럼 – 바이든의 ‘승부수’ 카멀라 해리스…그가 상징하는 미국의 ‘possibilities’

[연합뉴스 2020.8.22.]딸이 부통령 후보됐는데…멀리서 지켜만 본 해리스 아버지

[뉴시스 2020.8.12.] 해리스, ‘인종 정의’ 앞장…의료보험·기업정책 오락가락 행보도

 

황경상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그는 전 국민을 걱정했지만, 전 국민은 그를 걱정했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을 맞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시민들은 코로나19 대응에서 가장 신뢰하는 기관으로 질병관리본부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정 청장의 머리카락은 점점 더 희끗희끗해져 갔고 얼굴은 까칠해졌다. 첫 브리핑 때 그는 깔끔한 재킷을 입었지만 이내 노란색 민방위복으로 바뀌었다.

정 청장은 코로나19 환자가 처음으로 국내에 발생한 1월19일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대개 오전 7시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했다. 숙소는 질병관리청 옆 관사였다. 186일을 연달아 일한 뒤 7월24일 오후부터 25일까지 처음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그러나 다소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싶었던 코로나19는 8월 들어 또 다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세가 이어졌다. “5월 연휴로부터 촉발된 2차 유행이 진행되고 있다”며 경고한 정 청장의 말대로였다.

시민들은 다시 정 청장만 바라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 독립하면서 정 청장의 어깨도 더 무거워졌다. 정 청장은 취임사에서 “아직 우리는 태풍이 부는 바다 한가운데 있지만 질병관리청이라는 새로운 배의 선장이자 또 한명의 선원으로서 저는 여러분 모두와 끝까지 함께 이 항해를 마치는 동료가 되겠다”고 밝혔다.

 

메르스 때문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못 볼 뻔

정 청장은 1965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전남여고, 서울대 의대를 거쳐 서울대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의사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갈 수도 있었지만 정 청장은 공공의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작은 1994년 경기 양주시의 보건소였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그는 전염병 신고 기준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1998년에는 질병관리본부의 전신인 국립보건원에 연구관으로 특채되면서 공직에 들어섰다.

2006년부터는 보건복지부로 옮겨 혈액장기팀장을 맡았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당시 노연홍 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장(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삼고초려’ 끝에 데려왔다고 한다. 정 청장은 처음에 연구원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연구원에서 복지부로 넘어와 행정을 하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정 청장은 반대였다. 막상 자리를 맡은 뒤 업무 처리 능력은 탁월했다. 노 전 수석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정 청장이 업무를 맡은 이후 “대형 혈액사고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2009년에는 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을 맡아 신종플루 대응에 참여했다. 본격적으로 감염병 업무를 맡기 시작한 셈이다. 2014년부터는 다시 질병관리본부로 돌아왔다. 2015년에는 질병예방센터장을 맡았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는 정부 대책본부 현장점검반장으로서 역학조사 과정을 지휘했다.

메르스는 정 청장에게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16년 감사원은 메르스 방역 실패의 책임을 물어 보건의료 분야 공무원 9명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정 청장은 이때 정직 처분을 받았다가 나중에 감봉으로 한 단계 낮은 징계를 받았다. 과도한 징계 처분에 공직사회를 떠난 보건·역학 전문가들도 있었다. 정 청장 역시 자리를 떠났다면 지금의 그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정 청장을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에 임명했다. 당시 국장급이었던 정 청장을 차관급인 본부장에 임명한 것은 2단계를 뛰어넘는 파격 인사였다. 정 청장은 본부장으로 임명된 이후 역학조사관 충원, 진단 검사 및 동선 추적, 위기단계별 전략 등 신종 감염병 대응 전략을 착착 진행했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정 청장의 준비는 빛을 발했다.

전문가들도 정 청장의 능력에 신뢰감을 표한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을 제안 받은 정 청장이 자신에게 “너무 책임이 큰 자리라 두렵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그때 놀랐습니다. 남자 공무원은 야망이 앞서서, 일단 수락하고 카리스마로 휘어잡는데… 이분은 책임질 생각부터 하시는구나. 정 본부장 리더십의 핵심은 ‘책임감’이에요. 그 자리에서 하루하루 책임의 기적을 이뤄가는 분이죠.”

박도준 전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정 청장에 대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우리나라 최고 방역 전문가”라며 “차관급은 보통 2년 이상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는 올해로 본부장을 맡은 지 3년이 됐다. 대체할 만한 전문가가 없다는 방증 아니겠나”라고 평가했다.

 

위기에 빛난 정은경의 브리핑

최근 한 현역 의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은경이 한 게 브리핑밖에 더 있냐”라고 비판해 논란이 됐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설사 ‘브리핑’밖에 없다고 해도 그 브리핑의 무게감은 컸다. 시민들은 정 청장의 말 하나하나를 무거운 신호로 받아들였다. 작가 김훈은 <한겨레>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늘 현실의 구체성에 입각해 있었고, 당파성에 물들지 않았고, 들뜬 희망을 과장하지 않았으며, 낮은 목소리로 간절한 것들을 말했다. (…) 모두의 힘을 합쳐야 희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거듭된 호소는 가야 할 방향을 설득했다. 그는 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했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말하기는 매우 희귀한 미덕이다. (…) 나는 날마다 정은경 청장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같은 미증유의 상황은 종종 사람들이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렵도록 만든다. 방역의 최고 책임자가 우왕좌왕하거나, 팩트를 자꾸 바꾸거나, 상황에 따라 감정적인 기복을 보였다면 시민들은 더 불안에 빠졌을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 총 책임자가 정 청장이었다는 사실은 행운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평가했다. “사람들은 정 본부장이 그 사실을 믿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정 본부장의 말을 사실로 믿었다.”

무엇보다 정 청장 스스로의 자세가 신뢰감을 줬다.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됐던 지난 2월, 정 청장은 머리 감을 시간도 아껴야 한다며 짧은 단발머리를 숏컷으로 다시 한 번 잘랐다. 브리핑 때 “1시간도 못 주무신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묻자 “한 시간보다는 더 잔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 세계가 정 청장과 한국의 방역에 찬사를 보낼 때도 자신의 치적에 대해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인터뷰는 가급적 피하고 ‘국민에게 보고한다’는 원칙으로 브리핑에 집중했다.

지난 5월 <시사저널>이 정 청장의 100일간 브리핑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정 본부장에 사용한 단어는 대개 감정이 배제된 ‘중립적 표현’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 이를테면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코로나19 검사 건수를 축소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단호한 어조를 취했다.

대신 그의 말 속에는 정확한 수치들이 가득하다. 확진자가 급증했을 때도, 한 자리로 줄었을 때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보냈다. 착오나 실수는 즉각 수정하고 모르는 부분은 ‘확인하고 알려드리겠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 발병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정 청장의 브리핑이 단순한 사실 전달만은 아니었다. 그는 “마스크 자국이 선명한 의료진의 얼굴을 떠올려달라”고 호소했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의 방역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특집 브리핑도 열었다.

이인숙 ‘플랫폼9 3/4’ 이사는 정 청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을 5가지로 정리했다. 없는 것 5가지는 이렇다. “① 정은경이 없다 ② 희망고문과 과장이 없다 ③ 전문용어가 없다 ④ 뜨거움과 차가움이 없다 ⑤ 정치색이 없다” 있는 것 5가지는 이렇다. “① 데이터와 팩트가 있다 ② 잘못과 한계가 있다 ③ 부탁과 당부가 있다 ④ 공감과 감사가 있다 ⑤ 원팀이 있다” 어쩌면 쉬워 보이는, 기본적인 원칙처럼 보이지만 아홉 달 가까이 일관성 있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 청장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 오랜만에 확진자 수도 두 자리 수를 유지하는 추세가 계속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 청장은 감염 위험을 경고하는데 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등장하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는 문구를 인용해 타임지에 직접 정 청장에 대한 소개를 썼다. “정 청장의 성실성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질 가치가 있는 이야기,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와 맞서는 수많은 ‘정은경’들에게,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인류 모두에 영감을 주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청장은 지난 7월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고 나면 무엇이 제일 하고 싶으냐는 당시 진행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단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웃음) 국민들께서도 그러시는 것처럼 저희도 예전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 것 같습니다.” 하루 빨리 그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 위해, 아마 시민들은 오늘도 정 청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참고자료

[시사저널 2020. 5. 1] 정은경 100일 브리핑 분석 – 상황은 흔들려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중앙일보 2020. 9. 16] 돈 안되는 시골의사로 26년…’코로나 헌터’된 문학소녀 정은경

[동아일보 2020. 7. 30] 186일 연속근무후 첫 휴가… 정은경 “집근처서 안전하게”

[WSJ 2020. 4. 4] Thank God for Calm, Competent Deputies

[한겨레, 2020. 9. 14] 김훈 거리의 칼럼 – 정은경

[조선일보, 2020. 2. 25] “머리 감을 시간도 아껴야” 숏컷한 질본본부장

[조선일보, 2020. 9. 13]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 “희망 버려야 살 길 생겨, 코로나 2~3년 더…생활 태도 바꿔라”

[김현정의 뉴스쇼 2020. 7. 3] 정은경 “국민이 백신입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인숙의 새로운 발견19>‘닥터 코로나’ 정은경에게 없는 5가지, 있는 5가지

<신동아 2020. 3. 28> 정은경 본부장이 날마다 직접 브리핑하는 이유

 

황경상

토, 2020/10/10- 00:12
1
0

15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후임은 누가 될 것인가. 오는 9월 독일은 연방하원 선거를 치르고 새로운 총리를 선출한다.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집권 기독민주당(CDU·기민당)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지난 1월 당 대표로 선출된 아르민 라셰트(60)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상황이 간단치만은 않다. 당 대표로 선출되고 총선에서 승리한다고 반드시 총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셰트 대표의 인기가 그다지 높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일 슈피겔이 지난해 12월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을 꼽는 질문에서 라셰트는 31%로 11위에 그쳤다. 독일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에 이어 가장 높은 지지율인 60%를 얻은 정치인은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CSU·기사당) 마르쿠스 죄더 대표(바이에른주 총리)와 옌스 슈판 독일 보건장관이었다. 라셰트는 야당인 사회민주당(SPD·사민당) 총리 후보인 올라프 슐츠 재무장관(52%)과 같은 당 소속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51%)에도 지지율이 한참 미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함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온 기민-기사 연합에서는 대체로 다수파인 기민당 내에서 총리 후보가 선출돼 왔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죄더 기사당 대표가 사실상 총리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당 부대표로 선출된 슈판 보건장관 역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지지세를 등에 업고 차기 총리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라셰트 대표는 대표 선출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총리 후보 결정과 관련해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하지만, 결정을 할 때 유일한 근거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며 선을 긋고 있다.

 

라셰트의 도전, 기회와 위협

라셰트는 1961년 2월 벨기에와 네덜란드 국경에서 가까운, 독일의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아헨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가 벨기에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톨릭 신자이고 불어에 능숙하다. 아버지는 광부였다. 당 대표 출마 연설에서 그는 아버지가 광산 갱내에서 일하면서 동료들과 서로 믿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본과 뮌헨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1차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이후 저널리즘을 공부했으며, 주로 언론인으로 일했다. 바이에른 방송의 본 특파원을 지내기도 했다. 가톨릭 신문의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4년에 독일 연방 하원 의원에, 1999년에는 유럽 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2005년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정부 초대 세대·가족·여성·통합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특히 2017년 독일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전통적인 사민당의 텃밭이자 당시 메르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마르틴 슐츠 사민당 대표의 고향에서 승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라셰트는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로 불렸던 안네그레트 크람프 카렌바우어 전 기민당 대표가 지난해 초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연대 논란으로 사퇴하면서 당 대표에 나설 기회를 얻게 됐다. ‘차기 메르켈’로 불리던 바우어의 사퇴 이후 기민당은 지난해 4월 전당대회에서 대표를 선출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됐다. 당시 차기 총리 후보이자 대표로 유력하게 떠오른 인물은 프리드리히 메르츠였다. 보수 성향이 강하며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독일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킬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만약 그때 대표 선출을 했다면 라셰트가 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1년 사이 메르츠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부정하면서 당 대표 선거 연기가 자신이 대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폈고, 인기가 많이 하락했다. 해를 넘겨 올해 온라인으로 진행된 투표에서도 메르츠는 1위를 차지했다. 라셰트는 결선투표에서 이를 뒤집었다. 최종 단계에서 메르츠 당선 이후 혼란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다시 메르켈을 비롯한 중도파 쪽으로 다시 표심이 기운 셈이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지난 3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와 라인란트팔츠주 의회 선거에서 기민당이 역대 최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패배했다. 이 두 곳의 선거는 올해 연방 하원 의원 선거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여파가 컸다. 현직 주지사들의 인기에 따른 것이라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도 있지만 최근 악재의 영향도 있었다. 기민당의 니콜라스 뢰벨 의원이 중국산 마스크 중개 수수료를 받은 혐의로 사퇴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 영국에 비해 늦어지고 있는 독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상황이 유권자들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라셰트 역시 선출된 뒤 두 달만에 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차기 총리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도 조금씩 나오는 상황이다. 라셰트는 선거 결과에 대해 “기민당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메르켈의 공백을 기민당이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가 더 큰 문제다. 메르켈은 지난 15년 동안 유럽에서 독일의 위상을 높여왔다. 메르켈의 리더십 덕분에 오늘날의 유럽연합이 유지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민당의 현재 지지율 역시 ‘메르켈 보너스’라고 불릴 정도로 메르켈의 인기가 끼친 영향이 크다. 분석가들은 메르켈이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기민당의 인기가 약화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 조금씩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기민당의 지지율 하락은 라셰트의 총리 도전에도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포스트 메르켈, 독일의 행보는 어디로

라셰트의 총리 선출 여부는 메르켈식 국정철학이 계속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언론에서는 라셰트를 ‘메르켈의 충신’(도이체벨레) ‘메르켈과 연속성을 가진 후보’(가디언)라고 표현하고 있다. 라셰트는 메르켈 총리와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인 적도 없으며, 늘 메르켈의 편에 섰다고 알려져 있다. 2015~2016년에 걸쳐 메르켈 총리가 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기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했지만, 라셰트는 끝까지 메르켈을 지지했다. 메르켈 역시 당 대표 선거에서 라셰트를 지지했다. 라셰트도 메르켈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며 당 대표 선출 이후 “총리의 국정 운영이 안정적으로 마무리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라셰트는 ‘통합의 마이스터’라고 불린다. 중도 실용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기민당 내에서도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 다양성과 통합에서 독일이 얻는 이익이 많다는 메르켈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유럽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과 나토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독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러시아와 관계를 맺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는 독일의 친환경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전환 정책의 보완재로서 중요하기도 하다. 메르켈 총리가 유지해 온 친중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라셰트 역시 독일 수출기업의 이익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중국과의 가까운 관계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껄끄러운 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이 최근 중국과 포괄적 투자협정을 체결한 일을 두고 불만을 품고 있다.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대중국봉쇄정책에 찬물을 끼얹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협상을 주도한 것이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국인 독일이고, 메르켈 총리다. 라셰트 역시 친중, 친러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라셰트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수송관 사업에 대해 “재고의 여지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국은 이 사업이 자국 천연가스를 유럽에 판매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보고 반대하고 있다. 메르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지만, 때맞춰 새로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메르켈의 행보를 답습할 것으로 보이는 라셰트가 달갑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누가 총리가 되든 복잡한 국제 역학관계에서 독일의 운신 폭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메르켈 시대가 끝나면서 그의 리더십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 대표 선거에서도 라셰트를 비롯해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들이 ‘가톨릭에 법학 전공, 서독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 출신 남성’이라는 점에서 과거 서독 시절로 회귀했다는 말도 나왔다. 동독 출신의 여성 과학자라는 배경을 가진 메르켈과는 어떤 식으로든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헤르프리트 뮝클러 독일 훔볼트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메르켈이 보여준 깊이 경청하고, 인내심과 중재력이 뛰어나며, 믿을 수 없는 수용능력을 지닌 리더십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티모시 가튼 애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메르켈의 퇴장은 독일 역사상 매우 좋은 시기의 끝”이라며 “메르켈은 우리가 경험한 가장 좋은 독일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잘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헝가리와 같은 사실상 독재 국가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이지 못했고, 디지털/생태 전환에는 미온적이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기민당이 녹색당과 연합하게 되면 중국과 유럽의 신진 독재자들에게 강한 입장을 표시하면서 디지털/환경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차기 연합의 형태가 차기 총리의 성향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기민당에 이어 지지율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Armin Laschet 인물정보 바로가기

[연합뉴스 2021.3.15.] 독일 포스트메르켈 선거개시…주의회 선거 2곳서 여당 패배 유력

[시사저널 2021.2.2.] 누가 라셰트를 ‘포스트 메르켈’이라 했나

[가디언 2021.3.15.] Questions over new CDU leader as Angela Merkel’s party slumps to defeats

[한겨레 2021.3.15.] 일 기민련, ‘메르켈 이후 선거 전초전’에서 뼈아픈 패배

[서울신문 2021.1.17.] 메르켈 떠나도 ‘메르켈 시대’

[경향신문 2021.1.17.] ‘포스트 메르켈’ 윤곽…라셰트, 여당 대표 선출

[조선일보 2021.1.18.] 獨 집권당 대표에 라셰트…’메르켈 후임’ 경쟁 본격화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1/18/2021011801949.html

[오피니언뉴스 2021.1.25.] 최수정의 유럽외교전 – 메르켈 보다 더 친러시아, 獨총리 후보 ‘라셰트’

[뉴욕타임스 2021.1.16.] A Step Toward a Post-Merkel World: Her Party Picks a New Leader — Again

[뉴욕타임스 2021.1.15.] Merkel’s Party to Choose New Leader, and Possible Successor as Chancellor

[연합뉴스 2021.1.23.] 라셰트 독일 기민당대표 “총리후보 결정, 여론조사에 의존 안해”

[연합뉴스 2021.1.18.] 홍콩매체 “독일 집권 기민당 새 대표 선출, 中에 긍정 신호”

[연합뉴스 2021.1.19.] 포스트 메르켈 체제 이끌 라셰트 기민당 대표…차기 총리 될까

[연합뉴스 2020.1.19.]포스트 메르켈 체제 이끌 라셰트 기민당 대표…차기 총리 될까

[문화일보 2021.1.26.] 라셰트 獨 기민당 대표 “노르트스트림-2 사업 재고 없다”

 

황경상

목, 2021/04/15- 20:10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