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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만났던 새로운 레터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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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만났던 새로운 레터나잇!

admin | 금, 2020/12/25- 02:18

*이 글은 온라인 레터나잇 담당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성미 간사의 후기글입니다.

코로나19가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레터나잇이 열릴 때에는 무려 수도권 2.5단계로 격상되어 사무처 직원분들도 현장에서는 참여하지 못했는데요.

온라인으로 처음 시도된 2020 레터나잇은 회원들께서 오프라인 만큼이나 더 열정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운영진들이 감동의 눈물을 훔쳤다는 후문이 있었습니다.

뜨거웠던 온라인 레터나잇의 현장, 함께 보실까요?

 


Write for Rights 2020

 

리허설, 어디까지 해봤나요?

처음으로 하는 온라인 레터나잇인 만큼 기술적으로나 준비면에서나 오프라인 못지 않게 신경써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행사 전날 사전 리허설을 통해서 현장에 계신 디렉터 분과 화면구도, 조명, 음향조절 등은 물론이고 행사 큐시트에 따라 하나하나 보면서 점검에 점검을 해야 했습니다.

앰네스티 온라인 레터나잇을 기획한 모금팀 이성미 간사와 대관장소 스탭들

앰네스티 온라인 레터나잇을 기획한 모금팀 이성미 간사와 대관장소 스탭들

 

행사 당일에도 두 번의 리허설을 통해 큐시트와 사회자 분들의 큐카드의 내용대로 진행하면서 놓친 점이 있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체크하였습니다.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준비하려고 노력했고 참여하신 분들이 어색하지 않도록 모든 신경을 쏟았고,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대관장소에는 철저한 방역수칙을 준수했습니다. 수어통역을 통해 소리접근이 어려운 분들도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사회자와 스텝, 그리고 수어통역사까지 각자 거리두기를 지키며 진행된 온라인 레터나잇 리허설 모습

 

특별한 인연

레터나잇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탄원과 연대의 편지를 쓰는 것이지만, 앰네스티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또 참여한 회원님들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했는지도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특별히 MBC 임현주 아나운서와 함께 레터나잇을 진행했는데요. 너무나 즐겁게 함께 하시면서 “뜻깊은 행사에 사회자로 제안해 주셔서 감사하고, 여기서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라고 전하였습니다.

 

뜻깊은 행사에 사회자로 제안해 주셔서 감사하고,
여기서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MBC 임현주 아나운서

 

참여한 많은 앰네스티 회원들을 증인으로 내년에도 함께 할 것을 약속(구두 계약)하기도 했습니다. 내년에도 꼭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온라인 레터나잇  사회자 캠페인팀 양은선 팀장과 MBC 임현주 아나운서의 모습

온라인 레터나잇 사회자 캠페인팀 양은선 팀장과 MBC 임현주 아나운서의 모습

 

레디, 큐!

특히나 이번 레터나잇은 두 개의 플랫폼이 동시에 송출이 되었는데요. 앰네스티의 회원님들은 Zoom(줌)으로, 지지자 분들께서는 Youtube(유튜브) 로 함께 하셔서 실시간 댓글로 소통하며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오프라인 레터나잇 때와는 다르게 오로지 화면으로 소통하며 진행해야 했기에 최대한 오디오가 빌 틈이 없도록, 열심히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요.

Write for Rights 캠페인 소개와 시간관계 상 올해 W4R 캠페인의 10가지 사례 중에 두 케이스만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사례자의 소개영상과 인터뷰한 영상을 보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편지쓰기 시간도 가졌습니다.

편지를 쓰고 난 후 각자의 편지의 내용을 댓글로 알리며 읽기도 하고, 사회자 분들의 편지 내용도 공유하면서 뜨거운 연대의 물결속으로 점점 분위기가 차올랐습니다.

올해 10가지 사례 중 여성인권을 옹호하다가 수감 중인 나시마 알 사다의 아들과 인터뷰한 영상에서는 왜 편지쓰기 행사가 중요한지, 왜 우리들의 연대가 필요한지 절실히 말씀해 주시고 한국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영상을 남겨주셨는데요.

이(아래) 영상을 통해 레터나잇의 행사와 탄원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편지쓰기 키트 중 하이라이트인 페이퍼토이도 직접 만들어 보면서 다시금 Write for Rights 캠페인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하나하나 정성껏 참여하시는 회원님들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이 왠지 뭉클하면서도 감사한 순간들이었습니다.

 

Write for Rights 캠페인 키트

Write for Rights 캠페인 키트

 

편지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레터나잇은 비록 하루의 행사로 끝났지만 앞으로 2월 말까지 지속될 Write for Rights 캠페인의 사례자들은 여러분들의 탄원과 연대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 나라의 대통령, 법무부 장관, 검찰, 총리 등 각 사례에 맞춰 강력하게 촉구를 요청하는 대상자에게 우리는 끊임없이 탄원하고 연대할 것입니다.

 

인권을 위해 기꺼이 연대하는 멋진 분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나눌 수 있어서 뜻깊고 감동적인 밤이었습니다!

온라인 레터나잇 참여한 앰네스티 회원(온라인 레터나잇 설문조사에 남긴 말)

 

우리의 감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자유를 위하여 건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된 포르투갈의 청년을 구하고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연대의 편지를 요청한 故 피터 베넨슨 변호사의 시작으로 창립된 앰네스티.

우리의 시작은 작은 편지 한통이었지만 이제는 그 편지 한통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고 억울하게 갇힌 인권옹호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강력한 힘과 감동이 되었고 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우리 모두에게 힘들고 어려운 연말이 되었지만, 집에서 혹은 손 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의 강력한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요?

 

2020 Write for Rights
세상의 정의를 위해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당신의 관심과 편지가 없다면,
그들은 곧 세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편지쓰기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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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 속에서 어떤 표현과 상황을 접할 때 왠지 모르지만 불편한 감정을 분명히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왜 불편하지?’를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혐오표현’이란 무엇인가요?

국제앰네스티는 민족, 인종, 언어, 국적 또는 사회적 출신, 성/젠더, 종교 또는 신념, 이민 지위, 장애, 성적 지향 혹은 젠더 정체성 등 개개인이 가진 고유한 특징이나 속성을 바탕으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혐오를 부추겨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모든 형태의 표현을 ‘혐오표현’이라 간주합니다.

혐오표현은 단순한 기피, 분노, 분개와 같은 감정의 표현, 비도덕적이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표현과는 다릅니다. 혐오표현은 단순히 싫어하는 감정의 표출을 넘어 특정 개인, 집단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을 부추기고 정당화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표현들은 혐오의 타깃이 되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 사회에서 설 자리는 없구나’, ‘사람들은 우리의 안전과 자유를 전혀 신경 쓰지 않네’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동시에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타깃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정당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할 수 있습니다.

혐오표현의 영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산, 심화하고 종종 오랜 시간에 걸쳐 은밀한 방식으로 전개되기도 합니다. 마치 독처럼 말이죠.
 
 

혐오표현, 그 아래에는?

혐오표현 현상을 이해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우리가 살면서 형성해나가는 인식과 태도, 행동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고정관념’은 특정 집단의 모든 구성원이 갖는 특징, 속성과 행동에 대한 믿음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긍정적으로 보이는 고정관념이라도 그러한 관념이 특정 집단에 속하는 모든 개개인을 하나의 차원으로 축소, 일반화하거나 일부 구성원의 태도와 행동을 집단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인식한다면 결국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편견’은 일반적으로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집시는 도둑이다”라는 부정적 고정관념은 불신, 분노, 혐오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러한 감정들이 모여 편견을 이루고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게 되는 거죠. 이러한 편견은 어떤 사람과 상황을 대할 때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고정관념’‘편견’‘차별’로 이어집니다. 특정 사람, 집단을 겨냥해 부정적인 태도와 행동을 취하는 차별과 혐오표현은 이들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과 편견에 기인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하면 우리의 태도와 행동이
고정관념과 편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혐오표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하나하나의 발언이 혐오표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구별하는 것보다, 어떤 표현이 편견과 혐오, 차별을 확산시키고 조장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건 혐오표현이고, 저건 혐오표현이 아니라는 식의 감별보다는, 같은 말이라도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똑같은 표현에 대해서도 판단이 다를 수 있어요. 무엇보다 혐오표현과 차별에 대한 우리 공통의 감각을 키워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출처 : 경향신문, 혐오표현 ‘감별공식’ 있나요?

 

같은 표현이라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특정 집단은 다른 집단에 비해 혐오와 차별에 더 취약한 ‘사회적 소수자’가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기독교인이 대부분인 국가에서 누군가가 기독교인을 모욕한다면, 모욕을 당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바로 대항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기독교인이 ‘소수자’인 환경에서 그들을 모욕하는 표현은 당사자에게 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이전에 경험하거나 목격한 차별, 폭력을 떠올리며 두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죠.

 

“비장애인에게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집에 있어’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비장애인에게 위협이 되거나 차별을 조장하진 않잖아요. 하지만 장애인에게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면 그 사회적 효과와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죠.”

출처 : 경향신문, 혐오표현 ‘감별공식’ 있나요?

 

따라서 특정 사회를 지배하는 질서가 무엇인지, 이와 다른 가치관과 입장을 가진 개인 혹은 집단, 즉, 소수자 집단이 과거에 차별받아온 역사가 있는지, 현재 차별받거나 미래에 차별받을 수 있는 사회적 조건과 맥락이 존재하는지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월, 2020/07/2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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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2021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Women Against ViolencE》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여성 작가 8명과의 협업을 통해 파도가 되어 여성 폭력에 대항하는 다양한 일상의 목소리를 담아봅니다. 아래는 작가 김지승님의 기고문입니다.

 

언제고 돌아오는 여성들

김지승

여자들이 돌아온다.
멀리, 영원으로부터. 그리고 ‘바깥’으로부터.
마녀들이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황무지로부터 여성은 돌아온다.

–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에서

 

“새처럼 훠이훠이 날고 싶었어요.”

고된 시집살이에 혼자 훌쩍훌쩍 울면서 밭길을 걷다가 멀리 날갯짓 우렁찬 새들을 보며 순애씨(가명, 81세)는 그런 생각을 했다. 75세에 남편과 사별 후 한글을 다시 배우기 시작한 순애씨는 그동안 글 대신 의사소통에 썼던 그림과 새로 배운 한글을 섞어서 ‘문드러진 속’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문드러진 속. 순애 씨 표현이 그랬다. 결혼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는 “공부 많이 하다가 찌인한 연애나 한 번 해보고 죽어야지요.” 했다. 순애씨도 자유의 갈망과 자유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살아온 여성 중 하나였다. 지역의 한 문화원에서 혼자된 여성노인을 대상으로 ‘홀로서기’에 필요한 정서 지원 워크숍을 기획했고, 연계 프로그램의 강사로 참여한 나는 순애 씨를 포함해 여성노인 스무 명을 5주간 만났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기차를 타고 나는 에리카 종의 『비행 공포』를 읽었다. 글쓰는 여성 화자, 이사도라 화이트 윙과 작가 에리카 종이 자전적 서사의 맥락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는데 그들과 순애 씨가 또 이상하리만치 스르르 물처럼 섞였다.

순애 씨와 이사도라 화이트 윙은 현실 인물과 작품 속 캐릭터라는 차이 외에도 완전히 다른 세계, 다른 조건에 놓여 있었다. 그 차이를 그대로 두고 둘을 연결하는 건, 이 폭력의 세계에서 여성으로 존재하기의 곤란함이라는 공통점이었다. 에리카 종이 욕조 안에서 자신을 끌어안고 29년 동안 가슴속에 넣고 다녔던 차가운 돌이라는 두려움에 대해 쓸 때, 순애 씨는 빈 쌀독 옆에 쭈그리고 앉은 자기를 그려놓고 “이게 아닌데… 빈 쌀독 같네, 마음이.”라고 썼다. 여성에게 주어진 차가운 돌 같던 두려움이 정확히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간단명료하게 쓸 수 없다고 쓴 게 『비행 공포』라면, 자신은 무학이지만 많이 배웠더라도 이 마음은 쓰지 못할 것 같다고 쓰는 게 순애 씨의 글들이었다. 쓸 수 없다고 쓰는 글. 아직은 쓰지 못하는 것이 있다고 쓰는 글.

“그러니까, 그게 뭘까요?” 내가 묻자, 순애 씨는 우는 여자 형상을 그리면서 대꾸했다.

“오죽하면 여자 귀신은 울기부터 했을까. 그걸 다 어떻게 말로 하겄어요?”

나와 순애 씨도 다른 세계, 다른 언어 속에 있었다. 그러나 “그걸 다 어떻게 말로 해요?”라고 반문하는 순간 나는 곧장 순애 씨와 연결되었다. 말하고 쓸수록 더 소외되는 기분에 좌절하고만 경험이 나 역시 적지 않았다. 그런 경험은 나에게 여성으로 말할 수 없고 쓸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려줬다. 한글을 잘 몰랐을 때는 그래서 쓸 수 없다고 여겼던 순애 씨가 글을 배우고 문장을 짓고 있음에도 새가 되고 싶었던 그 마음 , 빈 쌀독 같던 마음을 표현할 말을 모르겠다 했으므로 우리는 동그란 불가능성을 사이에 두고 가끔 만나서 울거나 웃었다. 쓸 수 없는 것들에 사로잡히면 지금까지 내 안에 있(다고 믿었)던 모든 언어는 내 오랜 착각이었다는 듯 사라지곤 했다. 교육, 글쓰기로부터 또 공공 발화로부터 격리되어온 역사 속 여성들이 동시에 내 안에서 손을 들고 “나도, 나도!” 했다. 결코 환영받지 못할 진실의 증언을 안고 세계를 통과해 온 여성들이 내 안에 또, 옆과 앞에 있었다. 그들은 폭력의 역사를 계승한 몸이기도 했다. 그래서 썼다.

그들은 구멍 난 언어로라도 썼고, 쓰고 있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여성작가 에리카 종도, 70년 넘게 한글을 거의 쓰지 않던 순애 씨도, 자기 꿈 하나 해석할 언어가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쓰지 않다가도 쓰고, 잠시 멈췄다가도 쓰고, 도래할 좋은 세상 같은 건 믿지 않으면서도 쓰고, 곰팡이 속에서도 쓰고, 악몽 속에서도 쓴다. 대항하는 언어는 쓰는 과정에서 발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를 억압할 많은 언어와 함께 이전 여성들이 발명한 저항의 언어를 물려받았다. 억압의 언어와는 싸우고, 저항의 언어는 돌보면서 여성의 새 언어를 발명해왔다. 삶은 자주 덫이고, 쓰는 여성에게는 더욱 그러했지만 연결하는 쓰기, 손을 잡는 쓰기는 지금도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순애 씨가 말했다.

“그때는 날아서 갈 데가 없었어요. 그게 참 슬프대. 이제는 선생님도 보러 가고, 더 높이 엄마도 보러가고…”

폭력은 단순하지만 피해의 양상은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언어는 복잡하고 모순 가득히 팽창하다가 불현듯 터져버린다. 언제나 여기 우리에게 주어진 언어로는 여성의 경험을 다 말할 수 없다. 그 불가능성 때문에 잠시 침묵이 찾아오기도 한다. 침묵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식수의 말처럼, 언제고 여성들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저 멀리 살아 있는 마녀들의 황무지’로부터, 더 많은 언어를 가지고 여성들이 돌아온다. 잠시 침묵했던 자리에서, 돌아온 여성들이 몇 겹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부서진 언어로라도 쓰려는 여자들, 그 수많은 이름들이 깜빡인다. 거기에는 순애 씨도 있다.

돌아와 쓰는, 밑에서부터 쓰는, 연결하며 쓰는, 중첩된 존재로서 쓰는 그 저항의 언어가 오랜 바람을 타고 파도가 된다. 혹시 쓸 수 없다면, 쓸 수 없다고 쓰자. 왜 쓸 수 없는지 쓰고, 쓸 수 없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 쓰자. 불가능성이 만들어내는 파도는 필연적으로 가능함으로 향할 것이다.

작가명

작가 김지승

참여 소감

파도는 낮아지고 천천하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파도다. 그렇다고 오늘, 38여성의 날에 쓸 수 있어서 기쁘다.

 

작가 김지승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심볼

월, 2021/03/0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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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혐오표현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혐오표현에 대한 질문들을 살펴보았어요.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어요.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는 과연 어떤 관계에 있는 걸까요?

 
 

지금까지 혐오표현이란 무엇인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혐오표현에 대한 질문들을 살펴보았어요. 마지막으로 아주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어요.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는 과연 어떤 관계에 있는 걸까요?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지 않나요?
우리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뿐만 아니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한 모든 인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혐오표현으로 억눌리는 소수자의 권리를 생각해보세요.

혐오표현은 특정 집단의 구성원들이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며, 소수자 집단이 주로 타깃이 됩니다. 이러한 표현은 소수자들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고, 이들이 당연한 권리를 자유롭게 추구하지 못하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일자리 빼앗는 한국인은 쫓아내야 해!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 직장에서 이러한 대화를 엿듣게 된다면 어떨까요? 다른 외국인 직원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겠지만, 당사자는 혐한 시위와 폭력 범죄 등을 떠올리며 위협이나 모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 소수자인 환경에서 당사자는 이러한 표현에 직접 대항하기 어렵습니다. 휴게실, 회의실 등 일상적인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주저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혐오표현은 소수자의 동등한 사회 참여를 막아,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적 토론에 참여하지 못하게 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말이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 침묵을 강요하는 것, 그리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나의 권리를 보장받으려 하는 것이라면, 그건 우리가 옹호하고자 하는 인권의 가치와 원칙이 아닐 거에요.

 

“표현의 자유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지만 그 범위가 무한정일 수는 없어요. 혐오표현이 난무하면 소수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거든요. [중략] 강자들이 내뱉는 혐오표현 일부를 제한해야 소수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거든요.”
출처: 경향신문 (2018/01/12, 박송이 기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나을까요?
아닙니다. 차별과 혐오는 직접적인 행위로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 없는 존재로 생각하는 것으로 발현되기도 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인 무시, 배제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 관한 대화를 억지로 피하지 않는 것처럼, 소수자에 관한 대화는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피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피해야 하는 건 소수자가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만들어내는 인식과 표현이니까요.

소수자의 관점에서 표현이나 행동을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누군가가 “몰라서” 혹은 “무섭다”는 이유로 우리의 시선을 피하고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는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소수자들이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조건과 맥락에 따라 같은 표현도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혐오표현을 발견하기가 더 쉬워질 거예요.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는?

 

 
국제앰네스티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포함한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모든 인권을 위해 활동합니다. 그 어떤 권리도 다른 권리보다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혐오를 부추겨 차별, 적의, 폭력을 선동하는 ‘혐오표현’에는 명백히 반대하지만, 이를 제외한 모든 표현은 처벌 또는 제재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모든 제한은 매우 세심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민주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는 극단적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나 이때에도 국제인권규범에 규정된 합법성, 정당성, 필요성, 비례성의 원칙을 지켜야 해요.

국제앰네스티는 차별에 맞서는 방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차별과 혐오에 맞서 소외되고 배제된 소수자 집단을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사회적으로 포용하기 위해서는 인식 개선이나 교육 등 더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접근법이 필요하죠.

 
차별과 혐오에 대한 대중의 문제의식을 높이고, 이에 맞서고자 하는 사람들의 연대를 강화하여 대항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함께 연대한다면,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어요

 
여러 명이 함께 혐오표현에 대응할 때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혐오와 차별에 대항하는 집단, 캠페인, 활동에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하고 연대해보세요.

 

금, 2020/07/3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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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가 일상인 삶

망원경으로 김일성광장을 내려다보는 김정은 위원장

망원경으로 김일성광장을 내려다보는 김정은 위원장

조지 오웰의 저서 『1984』는 감시가 일상이 된 독재 국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가상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는 당과 최고지도자의 권력을 위해 개인의 삶이 철저히 통제된다. 감시는 사회통제의 핵심수단으로 작용한다. 개인을 대상으로 물 샐 틈 없이 이뤄지는 감시는 완벽한 수준의 ‘통제된 사회’를 구현해 냈다. 이 점에서 『1984』가 묘사하는 일상생활 속 감시의 모습은 북한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북한의 감시는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한다. 감시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감시가 일상에 밀접하게 침투하면서 이들의 사생활은 더이상 사적인 영역이 아닌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는 해도 24시간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이 주민들에게 엄청난 공포심이나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감시에 대해 의문을 품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자연스럽게 그것에 순응하여 따를 뿐이다.

북한의 주민 감시 체계는 체제의 안보를 위협할 만한 잠재적 근원을 사전에 포착하고 위험 발생을 차단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당국에게는 핵심적인 사회통제 기제로 인식된다. 문제는 주민들을 향한 무분별한 사찰과 검열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 억압[1] 뿐만 아니라 사생활 침해[2] 등 다양한 인권 침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집단의 안녕을 위한다는 미명 아래 개인의 권리가 억압되는 그곳. 감시를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북한이야말로 바로 ‘통제된 사회’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의 대민(對民) 감시 기구 – 국가보위성

2012년 보위기관창립절을 맞아 국가보위성(당시 국가안전보위부)을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2012년 보위기관창립절을 맞아 국가보위성(당시 국가안전보위부)을 방문한 김정은 위원장

북한의 감시제도는 현존하는 그 어떤 나라보다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북한의 정보기관인 국가보위성은 대표적인 대민 감시 기구이기도 하다. 국가보위성은 사회 질서와 치안 유지 목적을 가진 기관인 사회안전성에서 감시 조직이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이후 반국가, 반당, 반사회주의 세력에 대한 정치사찰 기능 및 방첩에 특화된 초법적 정보기관으로 발전했다.

각 도(道), 시(市), 군(郡)에는 해당 지역을 담당하는 국가보위성이 있다. 하부 행정 구역인 읍(邑), 동(洞), 리(里) 단위까지도 국가보위성 보위지도원이 상주하며 일상생활에서 주민과의 접촉점을 유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직장, 학교 등과 같이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든 보위지도원의 감시망에 포함된다.

보위지도원은 직접 사찰(査察)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담당구역 내 일반 주민 중 신뢰할 만한 자를 매수, 포섭해 그들에게 주민 동향을 파악하고 불순분자를 발견해 보고하도록 지시한다. 국가보위성에 포섭된 주민은 자신의 주변인을 공개적으로, 또는 비공개적으로 감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주변인의 사생활을 몰래 살피는 자 – ‘정보원’

미행과 감시

미행과 감시

2021년 3월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이하 ‘앰네스티’는 북한에서 국가보위성에 포섭된 후 지시를 받고 비밀리에 정보원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 한 탈북인을 만났다. 그는 약 10년간의 비밀 정보원 활동 기간 자신이 거주하던 지역의 주민 동향을 몰래 살피고 이를 정기적으로 국가보위성에 보고했다. 그가 10년 가까이 비밀 정보원으로 활동했던 것에 대해 자신의 가족도 탈북 후에야 알게 되었을 정도로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감시 활동이 이뤄졌다. 그는 앰네스티에 자신의 비밀 정보원 활동을 낱낱이 밝혔다. 그는 면담에서 감시 활동을 하면서 접한 정보를 통해 북한의 모순된 모습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주요한 탈북의 이유가 되었다고 증언했다.

아래는 앰네스티가 그와 면담한 내용을 대화체로 재구성한 것이다. 면담자의 요청으로 개인 신상을 추측할 수 있는 민감한 정보와 일부 상세한 설명은 제외하고 편집한 내용임을 미리 밝혀 둔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북한의 주민 감시 체계를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앰네스티, 면담자: A

앰네스티: 북한에서 특이한 활동을 했다고 했는데?
A: 주민 동향을 수집, 제공하는 일을 했다.

앰네스티: 주민 동향 정보는 무슨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수집했는가?
A: 나는 보위부국가보위성 지시를 받아 비밀 정보원으로 활동했다. 아무도 모르게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했다. 나쁜 말로 하자면 스파이다.

“아무도 모르게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했다.”

앰네스티: 비밀 정보원으로 선택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A: 먼저, 우리 집안이 괜찮았다. 내 직계 가족 중 한국이나 중국으로 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타지방에서 건너온 사람이었다. 이사 후 탈북 전까지 10년 넘게 살던 곳에서 주변 관계도 깨끗했다. 또, 나는 식품 도매업을 했다. 도매 집이다 보니 만나는 사람이 많을 것이지 않나? 사람 관계가 많다는 말은 들을 수 있는 정보가 많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 남편은 집에서 잡화를 수리하기도 했다. 집으로 사람들이 매일 찾아왔다. 그렇다 보니 우리 집은 매일 북적북적했다. 나는 인민반에서 인민반장도 하면서 여러 일을 겸직했다. 여러모로 사람들을 접하기 수월한 위치였다.

앰네스티: 어떻게 정보원이 되었는가?
A: 보위지도원과 따로 만나서 상담 후 정보원이 되었다. 북한에는 구역마다 담당 보위지도원이 있다. 어느 날 담당 보위지도원이 나에게 만나자고 하더라. 단 둘이, 남편 없이. 나는 뭔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담당 보위지도원, 보안원과 같은 사람들과 관계가 좋아야 한다. 특히 나 같이 장사하는 사람들은 더 그렇다. 어디 다른 지역을 가자고 하면 여행 증명서가 필요한데 인맥이 좋아야 수월하게 발급받을 수 있다. 그래서 담당 보위지도원이 만나자고 했을 때 무슨 이야기인지나 들어보자고 생각해서 만났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보위지도원이 같이 좀 일하자고 말하더라. 사람이 살면서 본의 아니게 죄를 지을 수 있지 않나? 그런데 같이 일하면 내가 죄를 지어도 면제받을 수 있고, 내가 장사꾼이다 보니 많이 다니곤 했는데 여행 증명서도 임의로 떼어 줄 수 있다고 하더라. 한국은 돈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않나? 북한은 여행 증명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무튼, 그런 것이 조건이었다. 나는 장사꾼 입장에서 조건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동의를 했다. 이후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관한 방법을 배웠다. 1년 지나니까 대호(隊號)정식 이름 대신 사용하는 암호를 따로 주더라. 다른 사람들 모르게 활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앰네스티: 정보원으로 오래 활동했는가?
A: 2010년쯤 비밀 정보원 활동을 시작했다. 탈북하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계속 활동했다. 우리 딸도 내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을 한국에 오기 전까지 몰랐다. 북한에서는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지 모른다. 주변 사람 그 누구도 내가 다른 사람을 감시하는지 몰랐다. 내 존재가 밝혀지는 날에는 내 삶은 끝이라고 보면 된다. 가족도 감시하고, 친구도 감시하고, 주변 사람 다 감시했으니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인간관계가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아무도 모르게 행동해야 했다. 보위부는 비밀 정보원 외에도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감시하는 사람인 ‘통보원’도 거느리고 있다. 물론 이 사람도 일반 주민이다.

“북한에서는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지 모른다. 주변 사람 그 누구도 내가 다른 사람을 감시하는지 몰랐다.”

앰네스티: 혹시 다른 비밀 정보원이 누가 있었는지도 알고 있었나?
A: 이런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직감이란 게 있다. ‘아, 쟤도 비밀 정보원이구나’하는 감이 온다. 그렇게 의심되는 사람도 나처럼 집에 다른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보통 어디 갈 때 일반 사람들은 다른 지역 이동을 잘 안 하다 보니 지역을 이동할 때 거쳐야 하는 절차도 잘 모르기도 하고 여행 증명서 발급받는 것도 힘들다. 사무소를 거쳐야 하고 지역 반장, 담당 보안원 등등 다 거쳐야 한다. 물론 돈 주고 여행 증명서를 바로 뗄 수 있기도 하지만 돈 안 주고 떼려면 정말 복잡하다. 그런데 비밀 정보원으로 의심되던 사람은 나처럼 쉽게 여행 증명서를 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따금 보위지도원이 우리 집을 방문할 때처럼 그 사람 집에 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 것을 하나씩 보다 보니까 ‘나하고 같은 일을 하는구나’라는 느낌이 왔다.

앰네스티: 국가보위성으로부터 감시 방법에 대해서도 배웠나?
A: 먼저, 활동 전에 선서를 써야 했다. 그러고 나서 자료를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방법을 배웠다. 장소, 시간, 인원, 사건 내용 등과 관련한 정보를 어떻게 기록하고 제출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보위부에서는 나에게 A4 용지와 비슷한 것을 주기적으로 줬다. 내가 장사를 하다 보니 자주는 아니었지만 다른 먼 곳으로 가는 것처럼 꾸미고 보위부 건물 안에 몇 번 들어가서 교육도 받고 그랬다.

앰네스티: 국가보위성으로부터 지시는 어떻게 받았나?
A: 보위지도원을 직접 만나서 구두로 지시를 받는다. 우리 집에는 집 전화와 휴대전화가 있었다. 보통 보위지도원은 집 전화로 연락했다. 언제, 어디서 만나자고 연락이 온다. 담당 보위지도원 방은 우리 집에서 3~5분 거리에 있었다. 인민병원 안에 보위지도원 방이 있다. 병원 건물 내부에 보위지도원 방이 자리 잡고 있어서 나는 환자처럼 위장하고 보위지도원을 만나러 가고는 했다. 장소 자체를 그렇게 묘하게 만들어 놨다. 보위지도원들은 보위부 건물이 아닌 일반 공공장소나 기관에 별도로 방을 가지고 있다. 내 담당 보위지도원은 병원 안에 방이 있었고 나와 같은 비밀 정보원들만 그런 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 나는 매달 그곳으로 가서 담당 보위지도원으로부터 지시 사항을 전달받았다. 급하게 정보를 제출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보위지도원 방 근처 용지를 넣는 함에 정보를 담은 종이를 몰래 탁 던져 놓고 오곤 했다.

“나는 매달 그곳으로 가서 담당 보위지도원으로부터 지시 사항을 전달받았다.”

앰네스티: 지시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A: 연도마다, 때마다 다르다. 만약에 4·15김일성 생일가 다가온다고 하면, 이와 관련한 주민 동향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2·16김정일 생일이라면 또 그 시기 주민들의 동향 자료를 요구한다. 장성택이 처형되었을 때도 이와 관련한 주민 동향을 보고하라고 해서 주변 사람들을 감시하고 관련 동향을 정리해 제출했다. 당시 수집된 정보를 총체적으로 봤더니 ‘잘 죽었다’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당이나 지도자에 대해 나쁜 말이 나오는 것을 포착하고 이를 살피는 것이 내 임무였는데 그건 안 나왔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군(郡)급 조직인 농근맹조선농업근로자동맹, 여맹조선사회주의녀성동맹, 청년동맹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건물이 있었다. 그 앞에는 식당이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이 식당에 드나들면서 들리는 소문 중에 비리 사건과 관련 있을 만한 정보를 별도로 수집하라고 해서 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체로 명절을 전후로 주민 동향 자료 수집 지시가 내려온다. 그런데 요구 내용은 매번 다르다. 예를 들어 1·8김정은 생일에 명절을 쇠는데 사람들이 이와 관련해 불평, 불만이 없는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영도자(김정은)가 젊은데 생일을 쇠나?’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것을 전부 기록하고 보고하는 것이다. 그런 자료를 보위부에서 요구했다.

2015년도인가? 보위부에서 별도의 자료집이 새로 내려왔다. 우리가 활동하는데 필요한 내용이 지침으로 나와 있는 자료집이다. 우리는 항시적으로 그런 내용을 알고 있어야 했다. ‘해외 파견자의 주민 동향 보고’ 라든지 무슨 자료, 무슨 자료 등등 엄청 많은 내용이 있었다. 자료집에 나온 내용을 계속 읽다 보니까 결국엔 내 주변에 모든 사람을 다 감시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 자료를 본 이후 어느 때부터 인가 마음속에서 살며시 비밀 정보원 일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 자료집에 따르면 내 남편도 감시 대상자였다. 지인, 친지를 감시하는 것은 응당했다. 이게 할 짓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감시 대상은 전부 다 잡아넣어야 하는 체포 대상이었다.

“자료집에 나온 내용을 계속 읽다 보니까 결국엔 내 주변에 모든 사람을 다 감시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앰네스티: 가족이 감시 대상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충격받았을 것 같은데?
A: 자료집에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따로 있었다. 자료집에는 ‘일반 주민들 중 공화국에 대해 쇄국 정치, 독재 정치라고 불평,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지 잘 감시하라’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읽고 나니까 ‘아니, 그렇다면 자기네들이 스스로 쇄국 정치, 독재 정치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2015년 그 자료집을 받고 나서부터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혼란스러웠다.

앰네스티: 최근 북한 지도부에 대한 일반 주민들의 인식은 어떤가?
A: 김정은에 대한 불만은 없다. 응당 그러려니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김씨 가문에서 대를 이어야 한다’, ‘그 사람들은 위인들이다’라고 세뇌가 되어 있다. 김정은이 권력을 이어받은 것에 대한 불만 표시는 없었다. 대신, 사람들은 ‘아, 우리도 개혁해야 하는데’, ‘우리도 달라져야 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식으로 많이 표현하기는 했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힘든 상황이 모두 미국과 한국 때문에 그렇다고 말해왔다. 나라에서 계속 그렇게 말하다 보니 일반 사람들도 지금의 어려움을 모두 미국과 한국 탓으로 생각하게 되어 당국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감시 활동을 하면서 여러 정보를 접하다 보니 자꾸 다른 식으로 생각이 되더라. 나중에는 ‘자기네들이 독재 정치를 해서 그런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밀 정보원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까 많은 생각과 의문이 생기면서 나라에 대한 내 생각도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게 계기가 되어 결국 탈북했다.

“비밀 정보원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까 많은 생각과 의문이 생기면서 나라에 대한 내 생각도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1. 세계인권선언 제19조: 모든 사람은 의사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이 권리에는 간섭받지 않고 자기 의견을 지닐 수 있는 자유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과 상관없이 정보와 사상을 구하고 받아들이고 전파할 수 있는 자유가 포함된다.

2. 세계인권선언 제12조: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사생활, 가족관계, 가정, 또는 타인과의 연락에 대해 외부의 자의적인 간섭을 받지 않으며, 자신의 명예와 평판에 대해 침해를 받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그러한 간섭과 침해에 대해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월, 2021/03/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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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가 하는 유스 인터뷰

유스가 하는 유스 인터뷰

앰네스티 유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앰네스티 유스입니다. 이번 에서는 유스 모임에 참여하신 유스분들을 코어멤버가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세 분께서 인터뷰에 응해주셨는데요. 필로님, 은재님, 윤서님의 인터뷰 시작합니다!
 

 

코어멤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필로 안녕하세요! 책을 좋아하고, 고궁이나 공원(특히 창경궁과 낙산 공원을 사랑해요)에서 남은 자유 시간을 보내고, 그림 그리는 것이 취미인 평범한 대학생 1학년 필로입니다.

은재 안녕하세요! 앰네스티 유스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은재라고 합니다. 현재 대학생이고, 모두에게 열려있고 즐거운 공간에서 많은 분들과 다양한 얘기를 나누고자 모임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윤서 안녕하세요. 현재 학교밖 청소년인 이윤서라고 합니다.
 
 

코어멤버 코로나 19 상황이 지속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무력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분들도 많아졌는데요,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요.
 
 
필로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거나 도서관에서 보내는 것 같네요. 여행이나 나들이를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러나 소설책을 펼쳐 드는 것도 이와 같지 않겠어요? 이렇게 코로나 상황에서 저를 위로하곤 하는 것 같네요…

은재 저도 여름까지는 집에만 갇혀서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는데,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가능한 범위 내의 자기계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기타를 연습하고있고, 집에 사두고 안 읽었던 책들도 읽고 있어요!

윤서 저도 여름까지는 집에만 갇혀서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는데,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가능한 범위 내의 자기계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기타를 연습하고 있고, 집에 사두고 안 읽었던 책들도 읽고 있어요!
 
 
코어멤버 그렇군요, 이제 유스 모임에 대한 질문을 드릴게요~ 어떤 계기로 앰네스티 유스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필로 앰네스티에 정기후원을 하면서 이메일로 엠네스티 활동에 대한 소식지를 받아 읽으며 인권 활동에 직접 나서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요. 마침 그때 유스 모임 모집에 대한 메일이 와서 이 계기를 통해서 모임에서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권 활동과 관련된 경험을 해보자는 결심으로 유스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은재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일정이 취소되면서 너무 외로웠었어요. 정말 슬퍼하고 있는 저에게 아는 분이 (^^) 앰네스티 유스 활동을 소개해주시고 권해주셔서 관심을 갖고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윤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후원을 알아보다가 앰네스티를 후원하게 됐고, 정기적으로 발송되는 유스 활동 공지 문자를 통해 함께하게 되었어요.
 

필로

필로

 
코어멤버 유스 모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필로 정기 모임 시작 전에 각자의 에너지 지수와 요즘 관심 갖는 것을 이야기하는 활동이 항상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발제 내용에 대해 개인적 경험과 같이 엮어 말하는 활동들도요. 저는 인권 활동에서 다루는 고통이 추상화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다루는 고통을 생생하게 다룰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나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일터 혹은 생활 환경에서 겪는 경험을 듣는 것이 무척이나 소중하다고 느껴져요. 그래서 저는 가끔 제가 맡은 발제에서 철학적 이야기들을 꺼낸 것을 후회할 때가 있어요. “과연 내가 발표한 철학적 혹은 이론적인 것들이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을까”라고 말이죠.

은재 특별한 활동은 아니지만, 매시간 즐겁게 자기소개하는 게 가장 인상적인 것 같아요. 매번 모임마다 자신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하는지, 오늘의 에너지 지수, 요즘 빠져 있는 것을 차례대로 얘기한 다음에, 모두 함께할 수 있는 동작을 하나 하면 다 같이 따라 하면서 시작해요. 모임마다 참여하시는 분들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낯선 사이여도 긴장을 풀고 친해질 수 있는 좋은 오프닝인 것 같아요. 온라인으로 진행될 때는 그 생동감이 줄어들어 아쉽긴 하지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시작이라 너무 좋습니다.

윤서 저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유스모임에 많이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유스 활동을 도화선으로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흥미롭고 새로운 정보라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코어멤버 그럼 앞으로 유스와 함께 하고 싶은 캠페인이나 활동이 있나요?
 
 
필로 원래 직접 거리에 나가서 캠페인 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하기 힘들겠죠? 슬프네요… 하지만 그 대안으로 해시태그 캠페인을 한번 해보았으면 해요. 그리고 인권을 주제로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스터디 모임도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네요.

은재 시위, 기자회견, 행진 등 인권과 관련된 행사에 참여하거나, 길거리 부스를 통해 앰네스티와 앰네스티 유스 활동을 홍보하면 재밌을 것 같아요. 하지만 한동안 오프라인 활동은 힘들 것 같으니 온라인 캠페인을 함께 기획해보고 싶습니다.

윤서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관련 활동을 함께 하고 싶어요!

 
 
코어멤버 요즈음 관심 갖고 있는 인권 이슈와 그 이유가 궁금해요!
 
 
필로 유스 모임에 참여하고자 한 순간부터 그 관심 인권 이슈로 ‘반지성주의’는 변치 않은 것 같네요. 저는 인권 활동의 성공 여부는 사람들의 공감 가능성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상황에 지금의 나 자신을 대입하여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람들을 진정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죠. 올바르고 검증된 지성적 견해가 제시되어 모든 사람이 이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데 훨씬 많은 사람이 힘을 써주길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은재 최근에는 트랜스젠더에 관한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대학에서 여성학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젠더와 퀴어에 대해 공부도 하고 있는데, 정말 당사자가 쉽게 지워지는 이슈이자 논의더라고요. 사람에게 정체성은 정말 중요한 것인데 편견과 오해 때문에 수위 높은 혐오 발언들이 오가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인 것 같아요.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저도 더 마음을 열고, 배우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하려고 하고 있어요.

윤서 요즘 성차별에 더욱 시선이 쏠리는데 추석 영화 특집으로 을 시청했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가정 폭력 등 여러 인권 침해 상황을 마주하는 순간 사람들이 그냥 안타까워하거나 분개하데에 그치는데, 이를 좀 더 공론화하고 직접적인 목소리를 표출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관련 캠페인이나 활동이 크게 활성화됐음 좋겠어요. 그리고 올바른 가치관 성립을 위한 확실한 정의와 서로의 인권을 존중하는 표현들로 논리적으로 주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은재

은재

 
코어멤버 유스 모임에 더 많은 유스가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은재 지금은 SNS 중 인스타그램만 활용하시는 것 같은데, 기존 앰네스티 한국지부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계정도 활용해서 홍보하면 좋을 것 같아요. 따로 앰네스티 유스 계정을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오프라인 행사에 많이 참여하면 홍보가 잘 될 것 같은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쉽네요.

윤서 더 많은 홍보이겠죠! 카페나 여러 지식인의 모임 등에 정보화 시대를 최대한 이용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여러 이벤트도 좋을 것 같아요.

 
 
코어멤버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오프라인 모임이 어려워졌어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네트워킹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온라인으로 친목을 다지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은재 사실 오프라인은 시간 조정하기도 어려워서 한 달에 최대 두 번 정도 모이고 있지만, 온라인은 상대적으로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적으니 앰네스티 유스 모임 내 독서 모임, 영화 모임(넷플릭스 파티 등) 등 취미와 관심사에 따라 소규모 모임을 만들면 재밌을 것 같아요. 사실 오프라인 모임은 서울 부근에서 진행되고 있어서 오히려 온라인 모임이 활성화된다면 더 많은 분과 함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윤서 저는 유스 모임에서 아쉬웠던 게 토론의 자유가 너무 제한적이었던 것 같아요. 서로 많은 의견을 부딪치는 등의 커뮤니케이션 활성화가 아닐까 싶네요. 다들 당돌하게 발언하는 토론이 되길 기대해요!
 
 
코어멤버 아직 한국 사회에서 유스는 동등한 시민의 주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데요. (예를 들어 “이럴 시간에 공부나 해라”, “아직 네가 몰라서 그렇다”, “어린 나이에 기특하다” 등)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해요!
 
 
필로 “어린 나이에 인권 활동에 나서다니 기특한걸!” 이런 말을 들으면 뭔가 칭찬받은 것 같아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러한 말들은 결국 나머지 중요한 일들은 우리 어른들의 소관이니 이제 그만 집 혹은 학교로 돌아가라는 의미잖아요. 하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고 그 부조리에서 상심을 느낀다는 것은 어른이나 유스 모두 마찬가지이지 않나요? 저는 우리가 어떠한 이유로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은 또한 그 고통을 해결할 권리도 우리에게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실제로 고통을 겪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의식을 갖게 되죠. 그러한 의미에서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말은 유스가 겪는 고통을 아무런 이유 없이 정당화하는 것 같아 불편해요. 누구나 아프면 위로와 치료를 받아야 해요. 그리고 그 치료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해요. 어디가 아픈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저 자신이니까요. 흔히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고 말하잖아요. 그러나 병원에 가서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 설명하지 못하다면 의사는 절대 올바른 진료와 처방을 내릴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세상에서 고통을 받는다면 그 해결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소위 ‘어른’이라고 말해지는 사람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윤서 사회가 아직 유스모임에서 다루는 논제보다 눈앞의 진학이나 취업에 더 중요도를 두니까 사람들의 시선도 마냥 좋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유스 활동을 하고 나서 한 줄 평 같은 걸 남겨서 이 활동의 성과나 영향을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지식인들의 활동 등을 슬로건으로 해서 많은 지식인 사이에서 확실히 자리잡혔으면 해요. 그 후엔 대중이겠죠.

 

윤서

윤서

 
코어멤버 유스 모임을 다섯 글자로 소개한다면요?
 
 
필로 “무지개 용사” (파워레인저가 생각날 수도 있겠네요. ㅎㅎ)

은재 “혼자가아냐” 앰네스티 유스 모임은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함께 하자는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모임이에요.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다 보면 외롭고 지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유스 모임에서는 혼자가 아니에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성장하는 공동체 안에서 지속적인 변화를 만들어봅시다!

윤서 “세상의 이슈” 세상의 이슈를 다루니까요!
 
 
코어멤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혹은 인터뷰 소감 부탁드려요~
 
 
필로 물론 모든 유스 모임 참석자분들에게도 감사드리지만, 정기 행사를 위해 준비 모임에 참석하시는 분들이나 코어 멤버분들에게 특히 감사를 표하고 싶네요. 저는 인권 활동 모임을 위해 준비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인권을 탄압받고 있는 사람들에 진정으로 공감하지 않고 서야 인권 증진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구체적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거든요. 어쩌면 제가 유스 모임에 참석하고자 한 것도 다른 분들에게서 그 공감 능력을 배워 보고자 했던 것 같네요. 그러한 의미에서 다시 한번 유스 모임 여러분들에게 존경을 보내고 싶어요. (이런 제 말에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러분들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분들이에요! 정말로요!)

은재 10번 질문 답변과 거의 비슷하긴 한데, 유스 모임에서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어떠한 정체성으로 인해 위축되거나 망설여지는 일이 없어요. 너무 소중하고 감사한 모임이라고 생각하고 많은 분이 함께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서 앞으로도 활발히 인권을 위해, 더 나아가 세상을 위해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시간내서 인터뷰에 응해주신 필로님, 은재님, 윤서님께 감사드립니다!
 

유스 모임에서 앞으로 어떤 활동이 진행되나요?

해외 유스들에게 차별금지법에 대해 알리는 “Anti-Discrimination Law, Not Discrimination(차별 말고 차별금지법)” 국제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앰네스티 유스 네트워크인 Youth Power Action과 SNS에 캠페인을 공유했고,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어요! 지금도 진행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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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정기 모임 주제는 “인종차별”입니다. 정기 모임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앰네스티 유스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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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0/11/07-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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