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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구를 함께 지켜야 합니다

지역

우리 지구를 함께 지켜야 합니다

admin | 수, 2020/12/23- 03:32
식물을 만지고 있는 하니 실바

식물을 만지고 있는 하니 실바

 

저는 콜롬비아에서 ‘캄페시나(캄페시노)’라고 불리는 소규모 농부, 하니 실바(Jani Silva)입니다. 올해 57세로, 푸투마요 남부 지역의 페를라 아마조니카 농업 보호 구역(Perla Amazónica Farming Reserve Area)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제가 확신하는 것을 따랐고, 저의 신념을 지켜왔습니다. 아마존과 이곳의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최근 저는 우리의 영역과 환경을, 우리의 생활 방식을 지킨다는 이유로 살해 협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있는 무장단체들은 우리의 작물과 토지, 지역사회를 통제하려 합니다.

또한 석유 채굴 역시 우리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마존 생태계를 보호하는, 조심히 다뤄져야 할 생물학적 통로가 파괴되었고, 저희 캄페시노, 캄페시나의 생활 방식도 급격히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온갖 장애물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이 투쟁이 올바르며 꼭 필요한 일이라고요. 우리 모두는 생명이고, 물 같은 존재들입니다. 아마존을 보호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 세대의 삶을 보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류는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콜롬비아의 아마존 풍경

콜롬비아의 아마존 풍경

 
저희 캄페시노는 곧 아마존입니다. 아마존은 우리가 가진 전부입니다. 이곳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곳이자 아이들을 기르는 곳이며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다시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곳입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생명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보호하고, 캄페시노의 문화와 역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이 지역의 숲과 습지에서 생산되는 산소로 숨을 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막대한 책임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이 위협을 받는다면, 지역사회만 위험해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물과 나무, 생물종들도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 대해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과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져 지구의 생명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구에 사는 우리 모두는 같은 땅과 자원, 환경을 공유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모두가 토지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들이 모든 생명에게 매우 중요한 것들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대로 파괴되거나 오염되게 둘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를 위해 세계적인 연대가 필요합니다. 모든 생명을 함께 보호해야 합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탐욕과 무관심입니다. 모든 것을 없애버리거나 우리 지역을 팜유, 쌀 농장으로만 가득 채울 생각만 해서는 안 됩니다. 이곳의 토양은 각양각색이라, 단일 재배로만 뒤덮여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다양한 작물을 기르고 자연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싶습니다.

우리 지역사회의 상황을 개선할 방법에 대해 단 하루라도 고민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밤 늦게까지 모든 사람들을 위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 무엇일지, 우리를 공격하는 기업에 맞설 방법이 무엇일지를 고민합니다. 정부는 우리를 잊어버린 채 우리의 영역을 착취하는 기업들을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받은 피해는 돈이나 일자리로 고칠 수 없으며, 오직 자연을 존중하는 방법으로만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아마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하니 실바

아마존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하니 실바

 

저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 변화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콜롬비아에서는 돈을 가진 사람, 힘을 가진 사람이 항상 이긴다고들 하지만 우리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적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석유 기업이 이곳에서 활동하는 것을 3년 동안 연기시키기도 했죠. 그러나 우리 지역사회는 더 이상 깨끗한 식수를 얻지 못합니다. 이제는 비가 내려서 빗물이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강과 하천은 석유 기업에서 버린 폐기물로 오염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이 물로 목욕을 하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만지기만 해도 피부에 물집이 생깁니다. 더 이상 식수를 얻을 곳이 없어졌고, 목마름에 시달리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저를 향한 살해 위협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저를 암살해서 침묵시키려는 새로운 계획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 의지를 짓밟고, 저를 불안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가장 힘든 것은 이런 위협이 아닙니다. 정말 힘든 것은 제가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저는 캄페시나로서 제 땅을 사랑하고, 제가 기르는 닭과 저희 집을 사랑합니다. 맨발로 다니는 것도 좋아합니다. 시골 풍경과 강의 모습도 좋아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가족들과 함께 일출을 보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를 향한 위협 때문에 이런 것들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위협 때문에 제 농장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고, 머물고 있는 집에서 최대한 나오지 않으려 합니다.

끊임없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사는 것은 삶이 아닙니다. 억압 속에서 사는 것은 삶이 아닙니다.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 줄 사람이 필요하며, 옹호자들을 지켜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저는 계속해서 우리 지역과 내 가족, 예쁜 손주 일곱 명의 미래와 그들의 삶을 지킬 것입니다.

 

2020 Write for Rights
하니 실바와 연대해함께 아마존을 지켜주세요.
하니 실바가 보호 받을 수 있도록
콜롬비아 정부에 편지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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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를 위로하는 그림]의 저자 우지현님은 화가 조세핀 니비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Amnesty International X 자선

여기, 한 여성이 있다.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 대부분에 등장하는 인물이자 그의 아내인 조세핀 니비슨Josephine Nivison이다. 뉴욕미술학교의 동급생으로 화가의 꿈을 키우던 이들은 졸업 후 우연히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결혼을 계기로 탄탄대로를 걸은 호퍼와 달리 조세핀은 화가로서의 삶이 중단된다. 그녀가 화가로 활동하는 것에 관해 그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전통적인 주부의 역할을 하기를 바랐으나 그녀가 계속 그림을 그리자 “별 재주도 없는 그림” 혹은 “한심해 보일 정도로 볼품없는 그림”이라며 대놓고 조롱하거나 깎아내렸다.

이것이 발단이 되었을까. 이들의 대립은 끝이 없었다. 당당한 현대 여성인 조세핀은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삶을 살고자 했고,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호퍼는 그녀가 집안일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며 늘 불만을 토로했다. 이들은 성격도 판이하게 달랐는데 그녀는 활달하고 사교적이며 수다스러운 성격이었고, 그는 내성적이고 과묵하며 수줍은 성격이었다. 지나치게 말이 없는 그에 대해 그녀는 “때때로 그와 대화하는 건 벽에 돌멩이를 던지는 것 같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성격부터 기질이나 성향, 가치관, 인생관 등 모든 것이 달랐던 이들의 불화는 종종 심각한 수준의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한번은 남편인 자신보다 고양이를 더 챙긴다는 이유로 말다툼을 하다가 육탄전을 벌였고, 운전하지 말라는 자기의 말을 거부하자 호퍼는 조세핀의 양다리를 잡아당기며 강제로 차에서 끌어내리기도 했다. 그녀 역시 그의 얼굴을 할퀴며 저항했지만 그녀가 150cm의 작고 왜소한 체구였고, 그는 2m의 거구였던 것을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이처럼 전쟁 같은 결혼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평생을 함께 했다.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으면서도 떨어질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의 삶을 생각해본다. 오랫동안 품었던 화가의 꿈을 접고 평생 다른 화가의 모델이 되어야 했던 억울함, 동시에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던 그를 보며 느꼈을 비참함, 그를 화가로서 존경하면서도 자신의 내조를 받아 나날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남편을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서로 너무 달랐기에 매번 충돌하면서 겪는 좌절감, 자신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남편에 대한 증오, 그런 미움을 바탕으로 평생 투쟁하고 복수하고 반목하고 원망하면서도 끝까지 헤어지지 않았던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령 결혼생활 전체가 고통, 분노, 질투, 후회, 상실, 환란, 저주, 체념, 슬픔 따위로 채워진다고 해도 그 끝은 사랑으로 마무리되기를 원했던 것일까. 호퍼의 그림 속 그녀의 모습은 고독하고 치열했던 조세핀의 삶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글. 우지현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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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피스모모의 문아영님은 조선 최초의 경제학사 최영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최영숙은 스웨덴의 스톡홀름 대학 학사가 된 최초의 조선인입니다. 그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EBS의 역사채널 “콩나물 팔던 여인의 죽음”이라는 제목 때문에 우연히 방송을 보게 된 것이 1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알게 된 이후, “최영숙”이라는 세 글자는 제 가슴에 얹혔습니다.

최영숙은 1906년에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고 이화학당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에 1923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난징 명덕(明德) 여학교와 회문여학교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언어에 재능이 있어 짧은 시간안에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고 전해집니다. 중국유학을 마친 그녀는 1926년 스웨덴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스웨덴 유학을 결정했던 것은 스웨덴 출신 여성운동가이자 교육운동가인 엘렌 케이(Ellen Key·1849~1926)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애석하게도 엘렌 케이는 최영숙이 스웨덴에 도착하기 전 사망했다고 합니다. 최영숙이 너무 애석해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경기도 여주군 태생으로 방년 21세 된 최영숙 양은 지난 7월13일 밤 하얼빈에서 구아연락열차를 타고 멀리 스웨덴을 향하여 떠났다. 최영숙 양은 사회과학을 연구하려고 단신으로 만리타국으로 간다고 한다. 지난 9일 기선(汽船)을 타고 상하이를 떠나 다롄에 상륙했을 때, 최영숙 양은 일본경찰에게 잡혀 큰 고초를 겪었다 한다. 그는 후일 고국에 돌아와 몸과 마음을 오로지 고국에 바치기 위해 이 같은 고생을 무릅쓰고 공부하러 멀리 떠난다 한다. 그는 나이 어린 여자의 몸으로 일어와 중국어, 영어에 정통하고, 매사에 재주가 뛰어나다. 최근에는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한다 하며, 이번에도 사회주의에 관한 서적을 많이 가지고 가다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한다.”(‘동아일보’, 1926년 7월23일자)[1]

당시 그녀의 집안은 포목상으로 꽤 부유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였던 당시 조선에서 스웨덴 유학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최영숙은 스웨덴에서의 체류비용과 유학비용을 자기 힘으로 충당하며 학업을 이어가게 됩니다. 처음엔 자수를 놓는 부업을 하다가 스웨덴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면서 스웨덴 왕가의 아돌프 황태자와 함께 그의 도서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되었지요. 아돌프 황태자가 조선, 중국과 일본 등에서 수집해 온 자료들을 번역하는 작업을 최영숙이 담당했던 것인데요. 조선어, 중국어, 일본어, 한문에 능통하고 스웨덴어까지 구사하는 그녀는 아돌프 황태자가 가장 신뢰하는 연구원이었다고 합니다.

1931년 말, 최영숙은 5년간의 스웨덴 유학을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옵니다. 스웨덴에서 정착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귀국을 선택합니다.

어젯밤 침상 위에 누어 생각했다. 명년에 집에 가면 무엇을 먼저 할까. 부모님 노쇠(老衰)하고 형제들 약소하니 내 할 일 무엇보다 가정을 정돈할 것. 유일한 나의 오빠 완치될 그날까지 마음을 다 바쳐서 오빠 위해 희생할 것. 그 다음 민족 위해 일할 때에 공민학교 설립하고 노동계급 청년남녀 몸과 정신 수양하여 삶의 길을 찾게 하자.(‘청춘에 요절한 최영숙 애사’, ‘제일선’, 1932년 5월)[2]

그녀가 조선을 떠나있었던 동안 집안의 가세는 기울어 가족들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녀가 귀국하자 모두 이제 집안살림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었습니다. 최영숙 역시도 무언가 사회와 가족에게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귀국 당시, 조선 최초의 여성 경제학사였던 최영숙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대로서는 보기 힘든 여성 엘리트였으니까요.

“조선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을 때, 경제운동과 노동운동에 몸을 던져 살아 있는 과학인 경제학을 현실에서 실천해 보려했습니다. 공장 직공이 되어 그들과 같이 노동운동을 할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와 보니 형편이 어려워 당장에 취직이 걱정입니다. 스웨덴에 있을 때, 그 나라 신문에 투고하여 조선을 다소 소개도 해보았고, 동무 중에도 신문기자가 많았습니다. 신문기자 생활에 관심이 많습니다. 조선의 실정을 아는 데도 제일일까 합니다.”(조선일보, 1931년 12월22일자)[3]

하지만 1931년의 조선은 일제 식민지배와 세계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지요. 거기에 조선인이면서 ‘여성’인 최영숙은 훨씬 더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기자, 교사, 교수등 여러 일자리에 지원했지만 그녀는 일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요즘 시쳇말로 ‘스펙’이라고 불리는 기준으로만 본다면 그녀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믿겨지지 않습니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 스웨덴어에 독일어까지 5개국어를 구사했고 당시 드물었던 중국과 스웨덴 유학경험, 경제학 학사 학위가 있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스웨덴 체류 당시 스웨덴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선사회에 소개하는 글을 꾸준히 기고했었기에 언론계 인사들과의 인맥도 돈독했으며 스웨덴 아돌프 황태자(이후, 구스타프 6세로 즉위)와 스웨덴 유력인사들과의 네트워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영숙은 서대문 근처에 작은 상점에서 콩나물과 배추 등 부식을 팔기 시작합니다. 당장 생계를 유지해야만 했고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들을 위해 무어라도 해야만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장사는 잘 되지 않았고 귀국 5개월이 되던 1932년 4월, 최영숙은 실신하여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당시 최영숙은 인도인 남성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는데 귀국 직후 직면하게 된 여러 상황이주는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영양실조에 걸렸던 겁니다.

결국 그녀는 낙태 수술을 받았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회복 불능 진단을 받고 자택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1932년 4월 23일,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녀의 죽음은 다시 한 번 세간에 회자되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생활고와 기가 막힌 상황에 대한 보도보다는 그녀의 태중에 있었던 아이에 대한 구설이 더 화제가 되었다고 하지요.

최영숙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이 지면을 통해 다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저는 그녀의 삶이 너무 아프고 슬프면서도 1926년 여성 활동가 엘렌케이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스웨덴을 향하던 그 순간의 최영숙을 생각하면 그 반짝이는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두근두근합니다. 그녀에게 듣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안타깝고 그녀가 원했던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최영숙은 노동만으로도 풍족하게 살 수 있었고 여성들도 차별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던 스웨덴에서의 경험을 바탕삼아 여성과 노동자의 권리가 인정될 수 있는 조선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궁핍한 생활 가운데서도 낙원동 여자소비조합이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빚을 내 조합을 인수하기도 했지요.

그녀가 세상을 떠난지 올해로 86년이 지나가는데요.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을까요? OECD 조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남녀임금격차 분야에서 대한민국은 14년째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한 연구는 우리나라에서 남녀 임금격차를 발생시키는 요인들을 여러모로 분석해보았는데, 교육연수의 기회, 업종 차이, 근속연수 등의 요인의 영향보다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남성이 임금 4% 정도를 더 받고, 여성은 58%를 덜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알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알 수 없는 이유”라는 베일로 가려진 진짜 이유는 사실 모두가 아는 그 이유입니다. 그냥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성’이라서, ‘여성’이기 때문에 임금을 덜 받게 되는 것이지요. 아니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고, 여성은 결혼하면 직장을 떠난다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업무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이런 저런 이유를 말하고 싶은 분들 계시겠지만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니오. 그냥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이 선명하게 존재한다”고요.

“Girls can do anything!” 이런 당연한 말에 해명을 요구하는 이상한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지만 그 이상하고 끔찍한 세상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여성들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있으니까요. 알 수 없는 이유라는 이름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해왔던 그 세계에 종언을 고하며 2018년 여성의 날, 최영숙을 기억합니다. Girls can do anything and be anything!

 

[1][2][3] 조선 최초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哀史)

글. 문아영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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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국 대중문화 속 여성혐오에 대한 책 [괜찮지 않습니다]의 저자 최지은님은 송은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여성이 대중을 웃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던, 팟캐스트 [송은이 & 김숙의 비밀보장]이 시작되었던 2015년은 말 그대로 암흑기였다. 데뷔 20년을 훌쩍 넘긴 두 베테랑 방송인조차 고정 프로그램을 모두 잃고 “애하고 시어머니가 없어서 방송 못 한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던지는 환경 속에, 수많은 여성 예능인들이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자리는 모두 남성들의 것, 새로 생긴 자리도 거의 남성들의 몫이었다. 여성이 웃길 기회조차 씨가 말라 버린 원인에 대해, 인기 예능 작가 A는 말했다. “여성 시청자들은 남자를 좋아한다. 남성 시청자들은 예쁜 여자가 아니면 무관심하고, 나이 든 여자나 똑똑한 여자는 싫어한다.” 그를 비롯한 여러 제작진들은 시장의 관성, 시청자의 이중잣대, 여성 예능인 간의 네트워킹 부재 등을 언급했다. A는 덧붙였다. “이 모든 압력을 버틸 수 있는 여성 스타가 나타나면 달라질 수도 있다” 물론 그가 도저히 수행 불가능해 보이는 복잡한 조건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의 얘기였다.

그때는 떠올리지 못했다. 송은이가 그 ‘초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로운 여성 스타가 나타나길 기대했지만, 개편 시즌마다 남자들이 숨만 쉬어도 방송 아이템이 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체념하기도 했다. 그러나 송은이는 계속 만들어냈다. 유료 광고 대신 ‘지인 광고’로 팟캐스트를 시작해 제작사 ‘콘텐츠랩 비보’를 설립했고, 2017년 가장 핫한 예능 [김생민의 영수증]을 성공시킨 뒤, 방송 경력 합산 100년에 달하는 여성 예능인들을 모아 ‘셀럽 파이브’를 결성하며 웹 예능 [판벌려]의 막을 올렸다. 뛰어난 기획자이자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송은이, 독보적 캐릭터와 비범한 감각의 소유자 김숙이 비춘 조명과 함께 이영자, 최화정, 박소현, 황보, 안영미, 김신영, 박지선, 신봉선, 이지혜 등 수많은 여성 예능인들의 존재감도 다시금 선명해졌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하게 웃길 줄 아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 게다가 그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여자들이라는 것은 그들을 배제해 온 시스템의 편향성과 게으름을 확인시킨다. 오랫동안 여성들을 끼워주지 않았던 ‘남성 예능’들은 요즘 앞다투어 ‘송은이 사단’을 초대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아주 적은 기회만이 주어지고, 남성보다 몇 배의 능력을 증명해내지 못하면 문은 금세 닫힐 것이다. 하지만, 이미 흐름은 바뀌고 있다. 여성의 존재를 외면한 채 만들어지는 웃음이 얼마나 지루한지 깨닫지 못하는 세계는 계속 도태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이제 더 재미있는 세계가 있다. ‘나이 들고 똑똑한 여자’ 송은이가 그 문을 열었다. 아니, 만들어냈다.

글. 최지은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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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여덟 명의 여성에게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이야기하고 싶은 여성 인물에 대해 글을 써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공연칼럼니스트 장경진님은 공연예술가 이자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몇 해 전, 공연이 끝난 후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물었다. “왜 여자 이야기죠?” “제가 여자니까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이자람이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대중 앞에 서 온 그를 설명하는 타이틀은 많다. “예솔아”로 시작되는 동요의 주인공, 판소리 <동초제 춘향가> 최연소·최장시간 완창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소리꾼,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서는 배우, 아마도이자람밴드로 활동하는 가수, 현대적 판소리를 만들어내는 창작자. 하지만 내게 이자람은 언제나 ‘다채로운 여성을 말해온 여성’으로 정의된다.

시작은 <사천가>였다. 100여 년 전 자본주의를 꼬집은 브레히트의 희곡은 이자람의 손을 거쳐 뚱뚱하다 멸시 받던 순덕이 풍채 좋은 남성으로 변신해 복수하는 판소리가 되었다. 착하게 살면 괄시받는 세상에서 각종 차별과 무례함, 가난과 싸우며 살아가는 순덕은 당시 스물여덟이었던 여자 이자람의 고민이 그대로 녹아든 인물이었다. 이후 그의 관심은 부조리한 사회구조 안에서 분투하는 여성의 삶으로 꾸준히 이어졌다. <억척가>에서는 아비가 다른 세 자녀를 먹여 살리기 위해 타국의 전쟁 속으로 저벅저벅 들어간 억척 어멈이었다. 외모가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온갖 조롱과 폭력에 노출된 언년이는 <추물>에서, 지식인으로 보이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창부 우뽀의 이야기는 <살인>에 담겼다. 여성 전용 고시원에서 숨죽인 채 살아가는 20대의 ‘나’(<여보세요>)도, 지난한 타국에서의 삶을 퉁명스럽게 견뎌온 라사라(<이방인의 노래>)도 소설을 벗어나 무대로 걸어 나왔다. 가장 최근에 공연된 <소녀가>는 프랑스 동화 <빨간 망토>를 모티브 삼아 소녀의 성을 얘기하는 작품이었다.

지난 10년간 시대와 나라, 나이와 역할을 초월한 여성의 목소리가 이자람의 판소리에서 터져 나왔다. 자신이 자라온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한 이들 모두는 고통과 차별로 점철된 세상에서도 자신 안에서 생겨난 감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육체적 욕망이 생겨나면 모른 척 하지 않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쟁을 이용하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망친 이를 살해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상대가 전직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살았다. “추물이 추물을 낳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고, 죽음의 공포에서도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스스로의 기지로 상황을 빠져나왔다. 무대 위의 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수많은 규범을 부수며 전진하는 이가 바로 내 눈앞에 있다. 객석에 앉은 여성 관객이 이들에게 반하지 않을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이자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몇 년 전부터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다른 여성 소리꾼에게 돌려 왔다. 상대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그에게 맞는 옷을 지어내는 것. 이자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만큼 공을 들이는 작업이다. 스스로 낸 목소리의 힘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또 다른 여성을 만나고, 그만의 매력을 발견하고 내일을 기대한다. 이자람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대단한 아티스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타인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행복을 기준으로 유연하게 삶을 꾸린다. 자신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을 소중히 다루고, 그것을 자신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여러 사람과 나눈다. 그는 자신의 고민과 답을 작품으로 말한다. 나와 당신의 삶이 무대 위 여성과 다르지 않고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할 수 있다고. 이자람과 함께 우리도 자란다.

 

글. 장경진
그림. 구자선

목, 2018/03/0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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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자긍심 행진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거대한 무지개깃발을 함께 들거 행진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성과 임신, 출산에 관한 권리를 범죄화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인권을 가로막는 장벽이자 수백만 명 시민의 인간적 존엄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국제앰네스티가 ‘몸의 정치: 성과 임신출산의 범죄화’Body Politics: Criminalization of Sexuality and Reproduction를 시작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캠페인은 전세계에서 이러한 범죄화에 맞서며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가들에게 힘을 실어줄 새로운 도구다.

성, 임신 및 출산의 범죄화란 무엇인가?

성과 임신 및 출산의 범죄화란 상호 동의된 성적, 임신과 출산 행위 및 결정, 또는 성과 젠더 정체성의 표현을 제한하거나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때때로 낙태를 형법으로 금지하는 것과 같이 직접적인 규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공공질서 또는 “도덕성”과 관련된 다양한 법과 정책을 이용해 성과 재생산에 대한 선택이나 젠더 표현을 간접적으로 통제하고 처벌하기도 한다.

이러한 법은 매우 쉽게 남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간통”을 범죄로 처벌하면 강간 피해 여성이 혼외 성행위로 처벌받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범죄화는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일부 라틴아메리카 국가와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낙태에 대한 접근을 한층 더 제한하고, 임신 중에 한 행동을 이유로 여성을 처벌하는 법이 늘어나고 있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는 HIV 감염인들의 행동이 부쩍 입법자와 검찰의 주의를 끌고 있다.

아시아와 중동,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혼외 성관계를 형법상 범죄로 금지하고, 기본적인 의료정보 또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모든 사람의 성과 임신출산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영향을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처럼 처벌적인 법과 정책은 경제적 상황, 성별, 인종, 젠더 표현, 성 지향성 또는 이민, 건강 상태, 장애 여부에 관련된 정체성 또는 결정 때문에 일반적인 사회 규범에 따를 수 없거나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성과 임신출산에 관련된 “범죄”로 제재를 당하거나 구금을 당할 위험에 놓인 사람들은 빈곤, 사회적 배제, 정체성 또는 사회적 지위와 관련해 취한 행동 및 결정으로 처벌을 받게 된 사람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임산부의 행동을 통제하는 법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낳으며, 특히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더욱 영향을 미친다. 성노동을 처벌하는 법은 달리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고, 이들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더욱 강화한다.

 

이러한 문제에 국제앰네스티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몸의 정치’ 시리즈를 통해, 국제앰네스티는 사람의 신체와 성, 재생산, 젠더 표현을 부당하게 범죄화하는 현실에 맞서 일어서야 할 때임을 보여주고 있다.

‘몸의 정치 입문서’ 는 부당한 범죄화에 맞설 만한 지식과 역량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몸의 정치 : 캠페인 도구 모음’ 은 이러한 문제에 관한 캠페인 활동을 전략적으로 전개할 것을 권고한다. 활동가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문제에 관한 의식수준을 높이고,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며 나설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몸의 정치’ 시리즈 세 번째, ‘몸의 정치 교육 지침서’를 2018년 하반기에 공개할 예정이다.

목, 2018/03/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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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터키대사관 앞에서 타네르의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레네 크리스텐센(Lene Christensen), 국제앰네스티

지난 2018년 4월 5일은 슬픈 기념일이었다. 국제앰네스티 터키지부 명예 이사장 타네르 클리츠가 차가운 철창 안에 갇힌 채 300일을 보냈다. 그의 자유를 위한 우리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주 목요일, 전 세계의 앰네스티 활동가들이 거리로 나와서 모두 같은 내용의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어느 누구도 인권 옹호 활동을 이유로 감옥에 갇혀서는 안 된다. 우리의 동료이자 인권옹호자인 타네르 틀리츠는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감옥 안에서 300일을 지냈다. 300일은 너무 길다.”

 

온라인액션
터키: 다시 체포된 앰네스티 이사장 타네르를 석방하라
288 명 참여중
탄원편지 보내기

 

벨기에, 게릴라 액션

벨기에 브뤼셀에서는 활동가들이 터키 대사관 앞에 큰 벽을 설치해 숫자세기 기호를 그리며 게릴라 액션을 펼쳤고, 같은 시간 앰네스티 포르투갈지부는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분필을 나누어 주었다. 이 활동들은 모든 앰네스티 활동가와 회원, 그리고 지지자들이 타네르가 석방될 때까지의 날들을 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포티스 필리포(Fotis Filippou) 국제앰네스티 유럽사무소 캠페인국장은 “300일 동안 전 세계의 활동가들은 타네르의 석방을 위해 끈질기게 캠페인을 벌여왔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계속해서 타네르가 감옥 안에 갇혀있는 날들을 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 고 밝혔다.

 

베냉에서 한국까지

서울 주한 터키대사관 앞에서 타네르클리츠 이사장의 석방을 촉구하는 철창시위가 열렸다.

서울 주한 터키대사관 앞에서 타네르클리츠 이사장의 석방을 촉구하는 철창시위가 열렸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서울에 위치한 주한 터키대사관 앞에서 침묵 철창시위를 진행했다. 가까이서 경찰이 주시하는 가운데, 활동가들은 돌아가며 타네르의 석방을 요구하는 플랜카드를 들었다. 앰네스티 베냉지부도 같은 내용의 요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시위를 벌였다.

베냉의 앰네스티 활동가들이 ‘타네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다.

베냉의 앰네스티 활동가들이 ‘타네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다.

 

“연대의 중요성”

앰네스티 네팔지부가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사진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타네르를 석방하라’라는 요구가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네팔지부가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사진. 수십 명의 사람들이 ‘타네르를 석방하라’라는 요구가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타네르와 그 가족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답하며 타네르는 감옥에서 편지를 통해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전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빗속에서, 그리고 추위 속에서 펼쳐진 연대 행동이 저의 정신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인권을 위한 투쟁에 있어 국제적인 연대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전 세계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타네르의 석방을 요구하며 국제앰네스티의 탄원에 참여했다. 지난 해 6월, 타네르가 부당하게 수감된 이후, #FreeTaner 해쉬태그는 소셜미디어 상에서 수만 번 이상 쓰였다.

 

카운트다운은 계속된다

인도의 활동가들이 타네르의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타네르의 석방을 촉구하는 인도의 앰네스티 활동가들

지난주의 국제적인 연대 행동을 비롯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위들이 전 세계에서 벌어졌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우리의 동료이자 친구인 타네르가 석방될 때까지 우리는 매일매일 연장되고 있는 불의를 계속해서 새겨나갈 것이며, 터키에서 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그 싸움에 임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

앰네스티 노르웨이지부의 직원들과 자원활동가들이 터키 정부를 향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타네르를 석방하라!

앰네스티 노르웨이지부의 직원들과 자원활동가들이 터키 정부를 향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타네르를 석방하라!

금, 2018/04/1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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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온라인 레터나잇 담당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성미 간사의 후기글입니다.

코로나19가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레터나잇이 열릴 때에는 무려 수도권 2.5단계로 격상되어 사무처 직원분들도 현장에서는 참여하지 못했는데요.

온라인으로 처음 시도된 2020 레터나잇은 회원들께서 오프라인 만큼이나 더 열정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운영진들이 감동의 눈물을 훔쳤다는 후문이 있었습니다.

뜨거웠던 온라인 레터나잇의 현장, 함께 보실까요?

 


Write for Rights 2020

 

리허설, 어디까지 해봤나요?

처음으로 하는 온라인 레터나잇인 만큼 기술적으로나 준비면에서나 오프라인 못지 않게 신경써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행사 전날 사전 리허설을 통해서 현장에 계신 디렉터 분과 화면구도, 조명, 음향조절 등은 물론이고 행사 큐시트에 따라 하나하나 보면서 점검에 점검을 해야 했습니다.

앰네스티 온라인 레터나잇을 기획한 모금팀 이성미 간사와 대관장소 스탭들

앰네스티 온라인 레터나잇을 기획한 모금팀 이성미 간사와 대관장소 스탭들

 

행사 당일에도 두 번의 리허설을 통해 큐시트와 사회자 분들의 큐카드의 내용대로 진행하면서 놓친 점이 있는지 다시 한번 꼼꼼히 체크하였습니다.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준비하려고 노력했고 참여하신 분들이 어색하지 않도록 모든 신경을 쏟았고,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대관장소에는 철저한 방역수칙을 준수했습니다. 수어통역을 통해 소리접근이 어려운 분들도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사회자와 스텝, 그리고 수어통역사까지 각자 거리두기를 지키며 진행된 온라인 레터나잇 리허설 모습

 

특별한 인연

레터나잇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탄원과 연대의 편지를 쓰는 것이지만, 앰네스티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또 참여한 회원님들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했는지도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특별히 MBC 임현주 아나운서와 함께 레터나잇을 진행했는데요. 너무나 즐겁게 함께 하시면서 “뜻깊은 행사에 사회자로 제안해 주셔서 감사하고, 여기서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라고 전하였습니다.

 

뜻깊은 행사에 사회자로 제안해 주셔서 감사하고,
여기서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MBC 임현주 아나운서

 

참여한 많은 앰네스티 회원들을 증인으로 내년에도 함께 할 것을 약속(구두 계약)하기도 했습니다. 내년에도 꼭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온라인 레터나잇  사회자 캠페인팀 양은선 팀장과 MBC 임현주 아나운서의 모습

온라인 레터나잇 사회자 캠페인팀 양은선 팀장과 MBC 임현주 아나운서의 모습

 

레디, 큐!

특히나 이번 레터나잇은 두 개의 플랫폼이 동시에 송출이 되었는데요. 앰네스티의 회원님들은 Zoom(줌)으로, 지지자 분들께서는 Youtube(유튜브) 로 함께 하셔서 실시간 댓글로 소통하며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오프라인 레터나잇 때와는 다르게 오로지 화면으로 소통하며 진행해야 했기에 최대한 오디오가 빌 틈이 없도록, 열심히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요.

Write for Rights 캠페인 소개와 시간관계 상 올해 W4R 캠페인의 10가지 사례 중에 두 케이스만 소개할 수 있었습니다. 사례자의 소개영상과 인터뷰한 영상을 보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편지쓰기 시간도 가졌습니다.

편지를 쓰고 난 후 각자의 편지의 내용을 댓글로 알리며 읽기도 하고, 사회자 분들의 편지 내용도 공유하면서 뜨거운 연대의 물결속으로 점점 분위기가 차올랐습니다.

올해 10가지 사례 중 여성인권을 옹호하다가 수감 중인 나시마 알 사다의 아들과 인터뷰한 영상에서는 왜 편지쓰기 행사가 중요한지, 왜 우리들의 연대가 필요한지 절실히 말씀해 주시고 한국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영상을 남겨주셨는데요.

이(아래) 영상을 통해 레터나잇의 행사와 탄원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편지쓰기 키트 중 하이라이트인 페이퍼토이도 직접 만들어 보면서 다시금 Write for Rights 캠페인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하나하나 정성껏 참여하시는 회원님들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이 왠지 뭉클하면서도 감사한 순간들이었습니다.

 

Write for Rights 캠페인 키트

Write for Rights 캠페인 키트

 

편지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레터나잇은 비록 하루의 행사로 끝났지만 앞으로 2월 말까지 지속될 Write for Rights 캠페인의 사례자들은 여러분들의 탄원과 연대의 편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 나라의 대통령, 법무부 장관, 검찰, 총리 등 각 사례에 맞춰 강력하게 촉구를 요청하는 대상자에게 우리는 끊임없이 탄원하고 연대할 것입니다.

 

인권을 위해 기꺼이 연대하는 멋진 분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나눌 수 있어서 뜻깊고 감동적인 밤이었습니다!

온라인 레터나잇 참여한 앰네스티 회원(온라인 레터나잇 설문조사에 남긴 말)

 

우리의 감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자유를 위하여 건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된 포르투갈의 청년을 구하고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연대의 편지를 요청한 故 피터 베넨슨 변호사의 시작으로 창립된 앰네스티.

우리의 시작은 작은 편지 한통이었지만 이제는 그 편지 한통이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고 억울하게 갇힌 인권옹호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강력한 힘과 감동이 되었고 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우리 모두에게 힘들고 어려운 연말이 되었지만, 집에서 혹은 손 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의 강력한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요?

 

2020 Write for Rights
세상의 정의를 위해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당신의 관심과 편지가 없다면,
그들은 곧 세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편지쓰기

 

금, 2020/12/25-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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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동안 전 세계 약 700만 명에 이르는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은 시위와 편지쓰기, 탄원서명 등 다양한 활동으로 세계 각지의 인권을 옹호하고 향상시켰다.

우리의 활동은 엄청난 효과를 일으켰다. 부당하게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은 풀려나고, 법이 바뀌었으며 전 세계의 용기 있는 사람들이 연대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연말을 맞아 2018년 한 해 동안 이룩한 놀라운 인권 성과를 정리했다.

2월

2월에는 엘살바도르에서 징역 30년이라는 터무니없는 형을 선고받았던 테오도라 델 바스케스가 법원의 감형으로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녀는 사산한 후 낙태 혐의로 고발되어 유죄까지 선고받았고, 이미 감옥에서 10년을 보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탄원서명부터 항의 시위까지,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부터 테오도라의 석방을 위해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벌였다. 노르웨이 지부에서는 테오도라 사건을 알리기 위해 방송을 통해 조난신호를 보내기까지 했다. 앰네스티는 앞으로도 테오도라와 같은 여성들이 재생산권을 보호받기보다는 오히려 처벌받는 일을 막기 위해 엘살바도르의 낙태 비범죄화 캠페인을 계속할 것이다.

테오도라 바스케스(Teodora Vasquez )

멕시코에서는 세르지오 산체스가 감옥에 갇힌 지 8년 만에 풀려났다. 그는 일관성 없는 증거로 허술한 재판을 받았다. 살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었다. 세르지오의 변호인단은 거리 행진과 시위에 참여하는 등 앰네스티 지지자들이 보여준 활동이 세르지오가 석방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석방된 후의 세르지오 산체스

또한 에티오피아에서 구금되었던 활동가, 기자, 블로거 등이 석방되기도 했다. 그 중에는 국제앰네스티 양심수인 에스킨더 네가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은 에스킨더를 위해 엄청난 양의 편지를 보냈고, 이러한 노력은 결국 결실을 거뒀다.

가족들을 통해 국제앰네스티에서 보낸 지지 편지를 받아보았습니다. 이 편지들 덕분에 저는 용기를 잃지 않았고, 가족들도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에스킨더 네가Eskinder Nega

2018년 2월 14일, 에티오피아의 에스킨더 네가는 아디스아바바의 칼리티 감옥에서 풀려난 뒤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사상 최초로 인권 구성요소가 포함된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승인됐다. 국제앰네스티 우크라이나 지부의 끊임없는 옹호 활동과 교육과정 수립 실무단 참여 덕분에 이처럼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베냉에서는 국제앰네스티의 결연한 노력 덕분에 사형수 14명이 감형되었다. 앰네스티는 교도소와 법무부, 국회의장 등의 관계자들을 방문해 사형을 감형할 것을 촉구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탄원서명을 모았다. 이에 앞서 감비아에서도 사형집행 유예를 선포하는 긍정적인 진전을 보였다.

3월

3월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연대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열린 여성 인권 시위에서 위협과 폭력을 사용하는 반대 단체에 경찰이 영합했고, 일부 시위 참여자들이 “선동적인”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공공집회에 관한 규칙을 위반했다며 시위 주최자 중 한 사람인 올레나 셰브첸코를 부당하게 고발했다. 3월 15일 올레나가 법원에 출석할 무렵, 소셜미디어를 통한 앰네스티 우크라이나 지부의 호소가 수천 명에게 전달되었고 해당 법정은 기자와 지지자, 외국 대사관 관계자들 등으로 가득 들어찼다. 법원은 올레나에게 혐의가 없다고 판결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4월

4월에는 미얀마에서 보기 드문 좋은 소식이 있었다. 새로 취임한 윈 민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8천여명에 이르는 양심수들이 석방된 것이다. 그 중에는 앰네스티가 석방 캠페인을 벌였던 덤다우 나웅 랏, 랑자우 감 셍, 라파이 감 등 미얀마 소수민족 카친의 목사 세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4월 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헌법재판소는 전시 강간피해자 및 민간인 피해자의 보상 요구가 기각됐을 경우 이들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앰네스티는 트라이얼 인터내셔널(TRIAL International)과 함께 이러한 사건의 비용 청구 폐지를 위해 오랫동안 활동을 벌여 왔으며, 이러한 운동은 다른 생존자들 역시 정의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울 수 있었다.

5월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의 낙태 금지 조항을 폐지하게 된 놀라운 결과는 여성인권의 커다란 성과로 기록되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수많은 활동가들이 수 년에 걸쳐 헌신적인 활동을 벌였던 덕분에 이룬 쾌거였다. 앰네스티는 2015년 발표한 보고서 <아일랜드: 그녀는 범죄자가 아니다 – 아일랜드 낙태금지법이 미치는 영향>에서 여성들의 개인적인 증언을 바탕으로 낙태와 관련된 장벽과 낙인을 기록했다. 2018년에는 해외 거주 국민까지 아일랜드로 돌아와 국민투표에 참여하며 의견을 표현하는 등 민중의 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주목하게 되었다.

아일랜드 국민투표 결과 찬성표 우세로 낙태금지법 개정이 통과됐다

이번 캠페인은 희망이자, 여성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활동이었습니다. 이 캠페인 자체가 놀라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카트리나 그래험 아일랜드 여성인권 캠페이너Catriona Graham

말레이시아에서는 총선에서 나지브 라자크 전 총리가 그의 정치적 스승인 마하티르 모하마드에게 패배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 이후 야당 지도자이자 양심수인 안와르 이브라힘이 석방되는 기쁜 소식이 있었다. 안와르 이브라힘의 석방은 말레이시아 인권의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으며 덕분에 앞으로의 개혁에 대한 희망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5월 말, 부르키나파소 국회에서는 형법상 사형을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을 채택했다.

몰도바 교육부는 국제앰네스티 몰도바지부에서 마련한 인권교육과정을 초등학교 및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으로 채택했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 처음으로 거둔 성과였으며, 그보다 앞서 진행된 시범 계획에는 22개 학교에서 약 70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6월

시리아 문제에 관해 집중적으로 활동을 벌인 끝에, 미국 연합군은 마침내 민간인 사상자 발생 의혹과 관련해 이미 종결된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미국 연합군은 라카 지역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앰네스티의 조사 결과를 부인하고 비난했으나, 조사 결과 새로운 증거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7월 말, 연합군은 6월 발표한 앰네스티 보고서에서 기록한 79개 사례 중 77개를 사실상 인정했으며, 라카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상자 수를 300% 높였다. 앰네스티는 이것이 여전히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보고, 새로운 암호 해독 프로젝트인 “Strike Tracker”를 발족했다. 또한 에어워즈(Airwars) 등의 단체와 협업해 연합군 공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경위를 더욱 포괄적으로 파악할 예정이다. 분석 결과는 2019년 초 공개된다.

국제앰네스티는 미얀마의 로힝야를 상대로 자행되고 있는 반인도적 범죄의 책임에 관해 기념비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특정 군부대와 관계자 13인을 반인도적 범죄의 유력한 가해자로 지목했다. 보고서가 발표되기 2일 전 EU는 미얀마 보안군 관계자 7인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는데, 그 중 6인이 앰네스티가 선정한 유력 가해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7월

7월에는 중국의 아티스트 류샤가 근 8년간의 불법 가택연금 끝에 마침내 독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류사는 지난 2010년 남편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지금까지 자택에 감금되어 있었으며, 그 동안 공안요원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으며 제한적인 상황 외에는 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다. 올해 초, 국제앰네스티와 PEN은 류샤의 석방을 요구하며 유명 작가들이 그녀의 시를 발췌해 읽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류샤가 헬싱키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17세 활동가 아헤드 타미미가 8개월간의 징역형을 21일 일찍 마치고 석방됐다. 아헤드는 중장비로 무장한 군인에게 위협을 가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점령 서안지구 오페르 군사법원에서 부당하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모리타니아에서는 노예제에 반대하는 활동가 2명이 3년간의 형기 중 2년을 채우고 석방되었다. 압달라히 마탈라흐 세크와 모사 비람은 앰네스티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여러분의 지지로 모리타니아의 정의를 위한 이 싸움에서 우리가 외롭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비람의 말이다. “모든 앰네스티 회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모리타니아 반노예제 활동가의 석방을 위해 멋진 활동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의에 맞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활동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의 지지로 모리타니아의 정의를 위한 이 싸움에서 우리가 외롭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모사 비람Moussa Biram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는 스릅스카 공화국 국회가 전시 고문피해자 보호법을 채택했다. 마침내 내전 당시 자행된 강간 등의 성폭력 피해자를 인정하고 보상과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앰네스티는 전시 성폭력 생존자들의 사법제도 접근과 보상을 보장하는 이러한 법이 제정되기까지 지역 파트너 단체들과 협업해 오랫동안 캠페인을 벌여 왔다.

8월

캄보디아의 유명 토지권 및 인권활동가인 텝 바니가 수감 735일만에 마침내 석방되었다. 평화적인 시위만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그녀는 형기 만료를 불과 6개월 앞두고 수많은 인권활동가 및 시위대와 함께 국왕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나게 됐다. 텝 바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캠페인에는 전세계 2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석방된 텝 바니

제가 석방되어 아이들, 부모님과 다시 만날 수 있게 캠페인에 참여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악수를 청합니다. 여러분은 제게 큰 위안이었고, 저를 외롭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다정함과 세계 각지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텝 바니Tep Vanny

9월

국제앰네스티가 온라인 액션 진행 소식을 알린 지 불과 며칠 만에 38만명이 액션에 참여했다. 중국 남서부에서 위구르, 카자흐 등 이슬람계 소수민족이 집단으로 구금된 사건에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난 한 카자흐인은 열세 살 딸이 석방된 것도 앰네스티의 캠페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랍에미리트연합 국적의 위구르 남성 1명이 중국으로의 강제송환을 막기 위한 앰네스티 캠페인 끝에 석방되었다.

인도에서는 마침내 대법원 결정으로 동성 성인 사이의 합의된 성관계가 비범죄화되었다. 대법원은 또한 성적 지향성을 기반으로 한 모든 차별은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카타르의 만연한 노동착취 문제를 폭로하기 위한 앰네스티의 조사와 캠페인 활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9월 카타르 정부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의 출국 허가 제도를 폐지했다고 밝혔다. 이전까지는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의 허락 없이 카타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는 카타르가 국제노동기구(ILO)의 파트너로서 이행한 첫 번째 주요 개혁이었으며, 2022년 월드컵 경기장 현장을 비롯해 카타르 전역에 만연히 이루어지는 노동 착취를 폭로하기 위한 국제앰네스티의 수년 간의 조사와 캠페인 활동에 따른 결과였다.

유럽 의회는 전자동 무기체계, 일명 ‘살인로봇’을 국제적으로 금지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앰네스티의 요청에 응답했다. 이 결의안은 자동무기체계의 개발과 확산 및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자동무기체계는 스스로 공격 대상을 선정하고 인간의 개입 없이 표적을 살해할 수 있다.

르완다의 야당 대표인 빅투아르 잉가비레와 가수 키지토 미히고가 카가메 대통령의 사면을 받고 감옥에서 풀려났다. 두 사람은 여전히 여러 제약을 받고 있지만, 앰네스티는 이들이 석방된 것만으로도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고 인정한다. 빅투아르 잉가비레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과 관련해 유죄가 선고되었는데, 이는 그녀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또한 그녀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역시 침해당했다. 앰네스티는 지난 수년 간 잉가비레 사건을 두고 여러 차례 우려를 제기해 왔다.

빅투아르 잉가비레

10월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맞아, 신임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형을 전면 폐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집권당이 된 전 야당 의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수년에 걸쳐 사형폐지 옹호 활동을 벌여 온 덕분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워싱턴주에서도 사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20번째로 사형을 폐지한 주가 됐다.

베트남에서는 블로거 “버섯엄마”가 2년 반만에 감옥에서 석방됐다. 블로그 필명 ‘메 남(버섯엄마)’로 알려진 응우엔 응고크 누 쿠인은 2016년 10월 10일 체포되어 2017년 7월 20일까지 독방에 구금되었으며, 2017년 7월 29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국제앰네스티의 니콜라스 베클린(Nicholas Bequelin) 동남아시아 지역국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굿뉴스 덕분에 수감 2년만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이 소식은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은 누구나 투옥시키고 있는 베트남의 악화되는 인권상황을 재차 조명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버섯엄마가 더 이상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고는 해도, 그녀의 석방 조건은 망명이었으며 지금도 100명 이상이 공개적으로, 블로그에서, 또는 페이스북에서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11월

수년 간 계속된 캠페인 끝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북 가우텡 고등법원은 남아공 정부가 선주민들의 합의 없이는 졸로베니에서의 티타늄 채광을 허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졸로베니 선주민들에게 크나큰 성과였다. 이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채굴하는 데 합의할 것인지 아닌지를 사전에 결정하고 상의할 권리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 왔다.

“우리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지역에서 식량과 토지, 사랑 등 모든 것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권력자들은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냈고, 우리에게서 빼앗으려 했다.” 아마디바 선주민 인권활동가인 노늘레 음부타마는 이렇게 말했다. “동료들 중 몇 명은 이미 살해당했고, 나 역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

스위스에서 국내법을 국제법보다 우선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은 최근 진행된 국민투표에서 스위스 국민들이 인권 옹호를 선택하며 결국 무산되었다.

스위스 국민은 기만적인 공약에 넘어가지 않고, 대신 투표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적용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분명한 신호를 전달했다.

쿠미 나이두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Kumi Naidoo

12월

앰네스티는 ‘충분하지 않은 영향력(Not Enough Impact Report)’을 발표하고, 지난해 이룩한 앰네스티의 성과와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용감한 사람들의 도움을 기렸다. 무엇보다도 아직 남은 과제와, 지금도 불의에 맞서 끈질기게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였다.

또한 세계 최대 규모의 편지쓰기 캠페인 Write for Rights을 진행했다. 올해 앰네스티는 인권 활동으로 수감되고,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당하기까지 했던 용감한 여성 인권 옹호자들을 주목했다. 이들이 외롭지 않으며,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용기에 힘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과 연대했고, 이들을 지지하는 편지 수천 통을 작성했다. 여러분의 지지와 캠페인 활동, 편지쓰기 활동에 감사하는 마음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덕분에 정말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목, 2018/12/27-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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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는 정치적으로 개방되었다고 알려져 있음에도,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가 쿠바 활동을 시작한 지 50주년을 맞아, 쿠바사람들이 겪고 있는 인권문제를 만화로 엮었습니다.

 

1화 그라시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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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엘라, 2017년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생긴 일

요즘 쿠바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요? 그라시엘라는 역도 챔피언이다. 경기가 끝난 후, 그라시엘라는 국영방송사와 인터뷰를 나눴다. 그라시엘라는 훈련할 때 정부 지원이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그 인터뷰는 방송되지 않았다. 그 후 그라시엘라는 반 혁명세력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라시엘라는 더 이상 역도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국가대표선수에서 영구제명 되었다. 그라시엘라는 20일 만에 새로운 직업을 구해야 했다. 이후에도 무직인 경우, ‘위험인물’로 고발당할 수 있고, 범죄자 또는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용의자로 취급받을 수 있다. 반역자 신분으로는 일을 구하기 어려웠고 기회도 별로 없었다. 유일한 일자리는 들판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일은 따분했다. 그라시엘라는 걱정이 되었다. 이 일로 버는 돈으로는 가족들을 부양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라시엘라는 다른 결정을 해야 했다. 결국 그라시엘라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쿠바를 떠났다.


그라시엘라의 이야기는 국가대표이자 챔피언였던 호르헤 루이스Jorge Luis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호르헤 루이스는 국영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부족했으나 가족들의 응원과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방송되지 않았고, 선수 생활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호르헤 루이스는 국가대표에서 제명된 후, 20일 만에 새로운 일을 구해야 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험인물’로 고발당할 수 있습니다. 일을 구하러 가는 곳마다 호르헤를 ‘반역자’로 취급했고,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호르헤는 쿠바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수, 2017/11/2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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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함께한지 10년이 훌쩍 넘어 “이젠 몇 년째 후원하고 있는지 세지도 않는다”는 김모 회원의 페이스북에서 발췌해 편집했습니다. 이 글은 본래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김 회원이 기고한 글에서 일부를 자기복제한 글이며, 이 글 형식은 로빈 윌리엄스가 쓴 <내가 성공회 신자가 된 10가지 이유>의 패러디이기도 함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내가 앰네스티 회원이 된 10가지 이유


 10  이념을 취급하지 않는다. 

미국의 공익제보자 에드워드 스노든. 누군가는 그를 '반역자', 누군가는 '영웅'이라고 부른다. 국제앰네스티는 공익제보를 이유로 위험에 처한 스노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공익제보자 에드워드 스노든. 누군가는 그를 ‘반역자’, 누군가는 ‘영웅’이라고 부른다. 국제앰네스티는 공익제보를 이유로 위험에 처한 스노든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1960년대, 국제앰네스티의 초창기는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양 진영간 갈등이 극에 달한 냉전의 시대였기에 오로지 세계인권선언문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동시에 불편부당성에 대한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 신경을 썼다. 미국과 소련 양쪽 모두에서 앰네스티를 비난했다. 미국은 “앰네스티는 KGB 말만 듣는 빨갱이 단체다” 라고, 소련은 “앰네스티는 가면을 쓴 CIA다“와 같은 수사를 쏟아냈다. 양쪽에서 고르게 욕을 먹었다는 것은 그만큼 국제앰네스티가 특정한 정치체제와 진영에 상관없이 오로지 인권을 기준으로 활동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블로그] 「”앰네스티는 불공정” 인권침해를 인정하지 않는 5가지 방법」 중에서)


 09  이 넓은 세상에 인간의 권리를 위해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08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활동가가 될 수 있다. 

 

인권옹호 활동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온라인액션에 참여하는 것부터 성소수자 권리를 위해서 몸에 타투를 붙이는 것, 피켓을 들고 행진에 참여하는 것,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인권단체에 후원하는 것 등 다양하고 넓은 범위의 많은 활동으로 실천할 수 있다.


 07  활동을 위해 무엇을 할까 머리를 굴려야 할 필요가 없다. 

Rohingya fleeing ethnic cleansing in Myanmar's northern Rakhine State arrive on a beach on Cox's Bazar, Bangladesh

미얀마의 인종청소로 방글라데시의 Cox’s Bazar해변으로 대피하고 있는 로힝야족

그냥 하게 된다.


 06  탄원편지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전 세계 각국에 이메일과 편지를 보낼 수 있다. 


 05  시기에 맞물려 활동하는 인권 사례가 있다. 

강남역 10번출구 추모 메시지 ⓒ비더슈탄트

강남역 10번출구 추모 메시지 ⓒ비더슈탄트

차갑던 바람에 온기가 스며들 때쯤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고,  4.16 세월호를 기억하다보면, 5.15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5.16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5.17 IDAHOT, 5.18 민주화운동을 지나 이렇게 더울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때쯤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고, 사형제도를 반대하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 되어 12.10 세계 인권선언일이 된다.


 04  전 세계의 인권소식을 접할 수 있다. 

도나텔라 국제앰네스티
위기대응 선임 조사관.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 곳곳의 인권침해 상황을 직접 조사한다.


 03  다양한 활동 방식이 있다. 뭘 할지 정하면 된다. 

2016년 2월 24일, 억압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유령집회를 개최했다.

2016년 2월 24일, 억압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유령집회를 개최했다.


 02  활동을 하기 위해 투사가 될 필요가 없다.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사형제도폐지 팻말을 들고있다.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사형제도폐지 팻말을 들고있다.

물론 투사도 중요하지만, 인권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누구나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첫 번째 이유
 01  이 단체의 목적은 단체 해산에 있다. 더는 인권 옹호를 위한 활동이 없는 세상을 바란다. 

피터 베넨슨, 영국의 변호사로 1961년 포르투칼의 두 청년이 자유를 위해 건배를 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기사를 보고 “Amnesty” 운동을 제안했다.

 


마지막 양심수가 풀려나고, 마지막 고문실이 폐쇄되고, 세계인권선언이 모두에게 실현되었을 때, 우리의 일도 끝나는 것입니다.

피터 베넨슨, 국제앰네스티 창립자


 

"FIGHTING BAD GUYS SINCE 1961" 트럼프 혐오 발언에 맞선 세계여성대행진을 마친 한 참가자가 백악관 앞에 서있다.

“FIGHTING BAD GUYS SINCE 1961” 트럼프 혐오 발언에 맞선 세계여성대행진을 마친 한 참가자가 백악관 앞에 서있다.

목, 2017/11/1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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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스 탈Hadas Tal*, 이스라엘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하다스 탈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에서 저지르고 있는 인권침해행위에 반대하며 2017년 8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8월 7일 처음 체포된 이후, 지난 10월 16일부터 세 번째 징역형이 시작되었다. 아래는 지난 8월 3일 하다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병역을 거부하는 성명을 번역한 것이다.


저는 열여덟 살, 하다스 탈Hadas Tal이라고 합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입대 예정일인 8월 7일, 입대를 거부할 생각입니다. 그로 인해 아마도 감옥에 갇혀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겠죠.

저는 10학년이 될 때까지 점령지역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9학년 때 직접 그렸던 지도를 최근 발견했는데, 점령지역은 텅 빈 공간으로만 남겨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10학년이 되면서 정치의식을 키우기 시작했고, ‘로컬 토크Local Talk‘의 게시물과 ‘브레이킹 더 사일런스*Breaking the Silence‘의 증언들, 소셜 네트워크상의 관련 게시물을 접하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점령지역의 현실을 알게 됐습니다. 군의 통제를 받는 무력한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언어를 쓰는 군인들이 한밤중에 집에 들이닥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11학년이 되면서 저는 이미 병역을 거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스라엘 퇴역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근무 당시를 증언하고 인식을 높이고자 활동하는 이스라엘 비정부단체

이스라엘 국민이 아닌, 소수 집단의 이익만 옹호하는 체제는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체제하에서 군은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조직으로 군림하며, 점령체제 유지를 최우선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가 병역을 거부한 것은 군입대가 50년 넘게 이스라엘 군이 점령 정책을 시행하는 동안 그 모든 일을 모른 체하며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반복하는 것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령 정책으로 수백만 명은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 이스라엘 국민들은 이들의 존재조차 모릅니다. 이 수백만 명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정부를 직접 선출할 수도 없습니다. 이 체제 아래서는 모든 해결책은 폭력이 됩니다. 그저 무력을 이용해 공격하고, 우월을 과시하며 지배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란 대체 어떤 사회입니까?

제가 군에 입대하기를 거부한 것은 이 문제가 아주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점령지역이나 이스라엘에 국한된 일이 아니며, 오직 부유한 자와 정부를 위해서만 운영되는 자본주의라는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실제로 이는 제3 세계와 소외집단을 착취하고, 천연자원을 파괴하고, 전쟁과 갈등을 부추기며 우리를 파괴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 예로, 이스라엘은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수단 등 지금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독재자와 압제자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해 왔습니다. 이는 이념과 당파를 초월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병역을 거부한다고 해서 점령이 중단되거나 자본주의가 붕괴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거부하는 이유는, 이러한 점령과 체제가 아무런 저항 없이 유지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의 병역 거부자들은 그들이 맞서 싸웠던 점령 제도를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행동으로 큰 의의를 남겼습니다. 관련 인식을 높였고, 논의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들은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알았고, 그저 원래 그랬기 때문에, 또는 그게 더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것은 거부했습니다.

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이는 국민과 거주민이 아닌 국가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과 무비판적인 현실 수용이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부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군에 입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며, 당연한 일이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이스라엘 사회와 인류사회, 자연에까지 피해를 주는 조직에 합류하고 복무해야 합니까?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의사결정자들은 국민의 복지와 미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속이고, 빼앗고, 착취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방법은 뿌리까지 썩어버린 제도에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폭력과 혐오의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 원본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 2017/11/0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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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망자로 인해 생긴 무덤들

코로나19 사망자로 인해 생긴 무덤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이 브라질을 강타했다. 6월 1일KST 기준으로 확진자는 50만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역시 2만 9천여 명에 이른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확진자를 보유하게 되었으며 상승폭도 가파른 상황이다. 이 가운데, 브라질 내에서 소외되어온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상파울루 시당국 자료에 따르면 흑인은 백인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 위험이 62% 높다. 보건부 자료에서도 이미 유색인종의 치사율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망자 3명 중 1명은 유색인이었다. 또한, 빈민가에서의 사망자도 늘고 있다. 교도소 내 감염 증가의 위험도 존재하고, 선주민 사이의 감염이나 아프리카계의 감염 및 사망 역시 증가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집단들의 요구 사항을 충족할 만한 정부 정책은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노숙자를 위한 포괄적 정책은 마련되지 않았고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긴급 지원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이런 현실 때문에 감염 위험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주레마 워넥Jurema Werneck 국제앰네스티 브라질 사무처장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금까지 정부가 취한 조치로는 부족하다. 소외된 사람들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해야 한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코로나19, 그에 대한 현재의 대처로 부정적인 상황에 놓일 위험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그를 통해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조치, 모든 사람의 생명권과 건강권이 보장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는 빈민가 거주민, 여성과 소녀, 선주민, LGBTI, 아프리카계 사람들, 노숙자, 부적절한 주거지에 사는 사람,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 쉼터와 같은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 비공식 부문 노동자 및 자영업자 등이 포함된다.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과 부통령, 각 부처 장관과 주 정부, 시장에게 촉구한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시급히 조치를 취하라. 브라질은 현재 팬데믹의 가장 중요한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정부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온라인액션
브라질 정부는 모두를 위한 코로나19 대책을 수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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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코로나19 고위험군이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고 자신의 인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브라질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들을 제시하였다. 여기에는

  1. 모든 사람들의 건강권, 생명권을 보장할 것
  2. 선주민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하여 동일한 의료 서비스, 보호 조치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할 것
  3. 여성, 아동, 노인 등 가정 폭력의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신고를 할 수 있는 창구를 잘 전달하고 이들을 위한 지원 및 복지 서비스를 시급히 제공할 것
  4. 격리 등의 상황에서 수도, 위생, 전기, 식량, 의료 서비스 등 모든 필수 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할 것
  5. 노인, 빈민가 주민, 노숙자 또는 부적절한 거주지에 사는 사람 등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경우 스스로를 격리할 수 있는 적절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
  6.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에 나서고, 교도소의 인구 과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급히 노력할 것
  7. 당국은 투명성을 유지하며 의료 서비스 및 치료와 관련된 정보, 그 외 모든 과학적 정보에 어떠한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
  8. 더 큰 위험에 직면해 있는 소외된 사람들이 코로나19 해결책을 구축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모두의 사회적 참여를 보장할 것
  9. 취약 계층이 보건 의료 서비스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고 사회적 복지 및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

주레마 워넥 이사장은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된 집단도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들도 이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고, 코로나19 위기 기간 동안 자신들의 권리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그 요구를 이해하고, 역사적으로 계속된 불평등을 바로잡아야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이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 2020/06/0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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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2] 조혼, 강제결혼

 

상황 1)

  • 피해자 : 대너리스 타르가르옌 (몰락한 왕가 타르가르옌의 마지막 공주)
  • 가해자 : 비세리스 타르가르옌 (몰락한 왕가 타르가르옌의 마지막 왕자)

쫓겨난 왕위 계승자 비세리스 타르가르옌은 도망자 신세라서 아무것도 가진 게 없습니다. 아, 하지만 그는 발상의 전환을 했습니다. 예쁘고 어린 여동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한거지요. 그는 여동생을 강력한 무장세력(기마민족 도트라키)의 수장(칼 드로고)과 결혼시키는 대신 왕좌를 탈환할 병력을 얻고자 합니다. 여동생 대너리스는 친오빠에 의해 교환가치가 있는 물건 취급을 받은 셈이지요. (대너리스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만 그녀의 오빠는 무시무시한 폭언으로 답합니다. “난 필요하다면 그자의 4만 명의 병사와 말들이 전부 널 강간한다고 해도 그냥 둘 거야”) 결국 그녀는 팔려가다시피 원치 않는 결혼을 합니다. 그녀의 나이는 고작 13살이었습니다. (원작 소설 기준) 그녀의 초야는 강간과 다름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남편의 큰 사랑을 받고 그녀 역시 점점 마음을 열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가 원하지 않았던 정략결혼이란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자식 농사 뿐입니다.


상황 2)

  • 피해자 : 산사 스타크 (에다드 스타크의 딸)
  • 가해자 : 타이윈 라니스터, 피터 베일리쉬, 램지 볼튼

전형적인 ‘공주병’에 빠져있던 철없는 소녀 산사 스타크의 꿈은 왕자와 결혼하여 왕비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친구가 왕이었기 때문에 그리 비현실적인 꿈도 아니었죠. 자연스럽게 두 집안 간에 약혼 분위기가 형성되고 소녀의 꿈은 곧 이뤄질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빠친구 아들(조프리 바라테온)이 정작 왕이 되자마자 한 일은 아빠(에다드 스타크)를 사형시키는 것이었죠. 그녀는 하마터면 아버지를 죽인 남자와 결혼할 뻔 했습니다. 그의 잔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참수되어 걸려있는 아버지의 목을 그녀로 하여금 강제로 쳐다보게 할 정도로 끔찍한 심성의 소유자입니다. 그런 남자를 남편으로 받아들이고 평생을 살아야한다니 끔찍하죠.

가해자 : 타이렐 라니스터 “그 아이의 행복은 중요하지 않아.”

가해자 : 피터 베일리쉬

여차저차하여 결국 아버지의 원수와 결혼하는 것은 피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녀에게 스스로 배우자를 고를 권리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그녀는 볼모로 잡혀있는 신세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당할 뿐입니다. 결국, 그녀의 남편이 된 사람은 원래 약혼했던 조프리의 삼촌인 티리온 라니스터였습니다. 나이, 외모, 가족관계 등 여러모로 보았을 때 산사가 원하던 남편감과는 심각한 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원치 않는 결혼이었을지언정 티리온 라니스터는 여성의 주체적인 의사를 존중할 줄 아는 신사였습니다. 그는 강제결혼을 당한 산사와 동침할 의사가 전혀 없었지요.

 

산사의 세번째 강제결혼 상대는 <왕좌의 게임> 세계의 최악의 악당인 램지 볼튼이었습니다. 그는 오빠와 엄마를 죽인 자의 아들입니다. 게다가 고문과 살인을 일삼는 사람이었죠.

결국 대너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산사의 첫날밤도 강간이었고 그녀의 결혼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아빠를 죽인 남자와 결혼할 뻔 했다가, 그 남자의 삼촌과 결혼했고, 그 다음 오빠와 엄마를 죽인 자의 아들과 결혼하게 되었죠. 산사의 여성성은 철저히 이용당했으며,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 결혼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산사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겠죠.

근거
성과 재생산 권리(Sexual and Reproductive Rights)

  • 자신의 몸에 대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
  •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한 정보와 교육, 서비스를 요청하고 받을 권리
  • 임신 여부와 임신의 시기를 선택할 권리
  • 결혼 여부와 결혼 시기, 파트너를 선택할 권리
  • 성폭행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세계인권선언 제 16조
1. 성년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의한 어떤 제한도 받지 않고 혼인하며 가정을 만들 권리를 가진다. 그들은 혼인기간 중 또는 그것을 해소할 시에 혼인에 관하여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2. 혼인은 그 의사를 가진 양 당사자의 자유롭고 완전한 합의에 의해서만 성립된다.

문제점
나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사람, 나와 잠자리를 가질 사람은 당연히 나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구도 이것을 강요,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신체와 성은 너무나도 쉽게 도구화되고 물질로 취급 받아 왔지요.

현실에서는
부르키나파소의 여성의 절반 이상이 17세 이전에 결혼합니다. 이는 대부분 가족의 협박과 폭력에 의한 강제결혼입니다. 13세의 소녀가 이미 5명의 아내가 있는 70세 노인과 결혼해야했던 사례도 있습니다.
관습적인 조혼이 성행하고 있는 네팔에는 많은 여성들이 ‘자궁탈출증’을 앓고 있습니다. 이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15세에 결혼을 하는데, 신체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상태로 결혼하여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요받은 결과로 자궁탈출증을 앓게 되었습니다. 자궁탈출증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 더욱 악화되는데 네팔의 자궁탈출증 환자들은 남편과 시댁의 강요로 피임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습니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 일부 북아프리카 국가들 중에는 강간 가해자가 피해자와 결혼을 할 경우 처벌을 피하는 어처구니 없는 법이 있습니다. 모로코의 16세 소녀 아미나 피라일리는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강제로 결혼하게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모로코 의회는 개정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여전히 여성의 젠더에 대한 폭력적인 법 조항들이 철폐되지 않고 있습니다. 모로코의 형법은 성경험이 있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을 경험이 없는 여성을 강간하는 것보다 ‘가벼운 죄’로 취급합니다.

또 있습니다. 극단주의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다에시(IS)’는 납치한 여성과 어린이를 전투원에게 전리품처럼 나눠주어 아내로 삼거나 노예로 만드는 전쟁범죄를 저지르며 시간을 중세로 거꾸로 돌려놓았습니다.

특히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고령화는 노동력과 생산력 감소로 이어지며 경제에 치명타를 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가 출산율 높이기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각종 홍보와 선전, 정책들은 살짝 삐끗하는 순간 여성의 성을 ‘국가 노동력을 생산하는 출산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온전히 여성 개인들의 뜻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국가의 필요에 의한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애를 낳으라’고 종용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지요. 아이를 낳지 않든, 몇을 낳든, 그것은 오롯이 여성의 권리입니다. 그러니까 참견하지 마세요! 대신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국제앰네스티는..

나의 몸, 나의 권리! 국제앰네스티는 국가가 개인의 성과 재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형사법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등의 개인의 의사결정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My Body My Rights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금, 2017/10/2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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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개월간 앰네스티 유스들과 함께 유스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최근에 그 활동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처음 두 달은 젠더 이슈교육을, 나머지 석 달은 캠페인 트레이닝을 받고 두 팀으로 나뉘어 직접 캠페인을 기획하고 진행했는데요, 유스의 목소리로 전하는 따끈한 활동 후기, 지금 바로 전합니다.

 

Q. 각 팀의 캠페인 주제를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유스프로젝트 참여자 제인이 카메라를 향해 브이 포즈를 취한다제인 20살 남동생을 둔 누나로서, 동생이 군대에 있든 어디에 있든 성소수자가 성적지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청년으로서 사회의 편견을 깨부수고 싶다는 마음으로 군형법 92조의 6과 군대 내 성소수자의 인권을 알리는 캠페인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권 존중과 사생활 보호가 하나도 되지 않은 채 벌어지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 더더욱 마음이 갔어요.

 


유스프로젝트 참여자 자베가 가상인물 상상하기에 대한 발표를 한다.자베 우리는 이란 강제히잡착용법에 평화시위로 저항한 야사만 아리아니의 석방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징역 16년 형을 받고 수감된 야사만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놀람, 분노, 공감 등 많은 감정을 느꼈습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실제로 이란에선 이렇게 쉽게 벌어지고 있구나.’ 하는 놀람에 이어서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이란 정부에 화가 났습니다. 해외의 사례임에도 멀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 한 야사만 사례가 저도 모르게 공감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많은 시민과 연대해서 야사만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Q. 캠페인 트레이닝 워크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제인워크숍에서 캠페인 주제를 선정한 뒤에 문제의 나무를 그리고, 문제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이 있었어요. 팀에서 각자 생각했던 이유를 나누었는데 확실히 저 혼자 생각한 것보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정리하는 것이 정말 효과적이라는 걸 느꼈어요.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아이디어는 그렇게 많이 떠오르지 않았지만요. (웃음)

그리고 연대의 스펙트럼페르소나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는데, 연대의 스펙트럼 시간에는 적극적/소극적 지지층, 중립, 소극적/적극적 반대층으로 반원 모양의 표를 그려봤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이 연대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반면에 고질적으로 타인의 성적지향에 참견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중립 입장에 계신 분들을 지지하는 층으로 이끄는 것이 우리 편을 늘어나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저희 팀은, 그에 걸맞은 페르소나도 만들었습니다. 페르소나는 저처럼 입대를 앞둔 남동생이 있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인 김민지입니다. 알바와 모임, 스터디를 꾸준히 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누나였는데, 주변 인물들을 통해 군대에 관한 소식을 들으며 점차 동생이 가게 될 군대의 상황을 파악하게 되면서 군대 내 무자비하게 이뤄지고 있는 성적검열이 얼마나 이상한지, 그런 비정상적인 검열과 처벌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생각해볼 수 있길 바랐습니다. 평범한 청년들을 중립의 위치에서 소극적 지지층으로 끌어오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 생각했고, 직접 나와 비슷한 사람을 대상으로 세워두니까 더 공감이 된 것 같아요.

자베캠페인 트레이닝 워크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너무 많은데 먼저 스포큰 워드(spoken word)를 할 때였습니다. 함께 만든 캠페인 메시지를 리듬에 맞춰 소리내 외칠 때, 캠페인에 대한 막연한 걱정보다는 함께 하고 있기에 가능한, 그런 이상한 용기가 솟았습니다. 그리고 캠페인하면 퀴즈, 설명하기와 같은 방법 외엔 생각하지 못했는데, 보다 유연하게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도록 이끌어준 많은 활동이 떠오릅니다. 특히 캠페인을 예술로도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자극을 느꼈습니다.

  • 참여자들이 연대의 스펙트럼 발표를 경청한다.
  • 연대의 스펙트럼 중 적극적 우리편에 많은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 참여자들이 다양한 캠페인 아이디어를 포스트잇에 적은 후, 전지에 붙인다.
  • 문제의 나무 전지가 벽에 붙어있다.
  • 참여자들이 예술로 행동하기 활동이 끝난 후, 단체사진 포즈를 취한다.
캠페인 트레이닝 워크숍에 참여 중인 유스들

 

 

Q. 그렇다면 실제 캠페인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제인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청년들이 팟캐스트나 유튜브 같은 채널을 통해 관련 주제에 접근해주길 바랐어요.  이를 고려해 팟캐스트로 캠페인 퀴파람 뉴스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군형법 제92조 6에 대한 실화에 기반한 사연을 주제로 고래님과 혜승님, 하리보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녹음하는 동안 다들 너무 말재주가 좋으셔서 재밌고 편안했어요. 들어주시는 청취자분들도 그때의 우리와 같은 마음이면 좋겠습니다.

  • 팟캐스트 캠페인 퀴파람 뉴스 참여자 두 명이 녹음을 준비하고 있다.
  • 네 명의 참여자가 팟캐스트 캠페인 퀴파람 뉴스를 녹음하고 있다.
  • 네 명의 참여자가 팟캐스트 캠페인 퀴파람 뉴스를 녹음하고 있다.
팟캐스트 캠페인 ‘퀴파람 뉴스’를 녹음중인 유스들

자베야사만을 위해 거리 캠페인을 진행했는데요, 야사만이 여성들에게 꽃을 나눠주며 저항했듯이, 저희도 시민들에게 꽃을 나눠주며 야사만의 이야기를 알리고 편지쓰기 캠페인에 참여하도록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이란에서 스틱 퍼포먼스를 통해 강제히잡착용법에 저항하듯, 저희도 스틱 퍼포먼스 포토존을 설치해서 시민들의 퍼포먼스 참여를 도모했습니다. 거리 캠페인 후에 온라인으로도 우리 활동과 야사만의 이야기를 알리면서 더 많은 시민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이끌고자 했습니다.

 

Q. 장장 5개월간의 유스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드는 생각이나 느낀 점을 이야기해주세요!

제인올 한해 제일 잘한 일 중 하나는 유스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에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들이 한곳에 모여 젠더이슈와 성평등,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자그마한 움직임을 함께 한다는 것이 너무 좋았고, 감사했어요. 여건 상 모든 과정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참석할 때마다 항상 큰 힘을 얻어 가서 정말 좋았어요!! 관심이 있는 친구가 있다면 정말 강력 추천하고 싶은 프로젝트입니다. (하트백만개♥) 유스프로젝트를 통해 제 생각의 지평도 넓혔고, 생활 습관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어요. 비건을 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비건은 선택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됐고, 점점 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준 페스코입니다!!XD) 앰네스티 유스프로젝트 덕분에 인권에 대해 조금은 전보다 선명한 시선을 가지게 됐어요. 유스로서의 공식적인 활동은 끝이 나지만 앰네스티의 소식을 자주 접하고 많은 사람과 소통하면서 국제앰네스티를 소개하고 싶어요! 캠페인에도 참여하면서 지지하고 연대하는 모습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베5개월 간의 유스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걸 느끼고 배워갑니다. 긴장과 설렘 속에서 시작된 유스프로젝트의 모든 활동은 서로의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어졌고, 서로에게 안전한 이 공간 덕분에 더 많은 아이디어와 따뜻한 이야기들이 오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활동 중에 만난 모든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와 많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성 고정관념을 유스프로젝트 덕분에 알아차릴 수 있어서 좋았고, 매 활동이 관념의 틀을 깨는 신선한 프로그램이어서 늘 즐겁게 임했습니다. 인권이라는 가치가 중요한 것은 알고 있지만 꾸준히 관심 갖기 힘들고 이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앰네스티 유스프로젝트를 통해 제 자리에서 인권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함께 하기에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맙습니다!

화, 2019/12/17-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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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은 애플이고, North Face는 노스페이스, STARWARS는 스타워즈인데
왜 Amnesty International(국제앰네스티)는  국제사면위원회인가?


국제앰네스티는 국내에서 ‘국제앰네스티’로 불리지 못한 채 주요 언론사나 교과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국제사면위원회’로 알려져 있다.

언론에 나온 '국제사면위원회' 캡처 화면

TV 뉴스에 나온 국제앰네스티. 주로 국제 발 뉴스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국제사면위원회’라는 명칭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각종 백과사전과 교과서, 뉴스 기사에 “국제사면위원회”로 표기되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1972년 3월 28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창립총회. ‘앰네스티 한국위원회’라고 쓰여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설립 초기에는 영문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 앰네스티 한국위원회, 한국 앰네스티를 혼용하였으나, 회원들의 결의를 통해 ‘국제사면위원회’라는 명칭을 쓰지 않기로 합의하고, 2006년 한국지부가 사단법인 등록을 할 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라는 국문명칭으로 통합했다.

1978년 12월 23일 동아일보.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날)이 당시 양심수 김대중 석방을 환영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1998년 2월 5일 한겨레.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100여 명의 양심수 명단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전달했다는 내용을 싣고 있다.

국제 ‘사면’ ‘위원회’의 문제점

국제앰네스티를 ‘국제사면위원회’로 부르는 것은 의미상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사면’은 정치 권력의 시혜 조치라는 뜻을 담고 있어, 인권운동 단체 이름으로 부르기에 적절하지 않다. 또, 국제앰네스티는 회원으로 구성된 조직이므로 ‘위원회’라는 표현은 조직 성격과도 맞지 않는다.

근래에는 ‘국제사면위원회’보다는 ‘엠(!)네스티’라고 쓰이는 것을 더 자주 보곤 한다. 발음상 [앰-네스티]여서 그런지, 알파벳 M [em]의 국문 표기인 ‘엠’으로 자주 쓰인다. 영국에서는 [암-네스티]로 발음하는데, 이것만큼은 피하고 싶다. 

공식 명칭이 ‘앰’네스티이기 때문에 소셜미디어 공식계정을 홍보하거나, 공문서를 수정할 때 종종 곤란한 경우가 있다.

“카카오톡에서 앰네스티를 검색하시면..”
“아.. 어이 엠 말고요, 아이 앰이요.”
“개미할 때 ㅐ 예요.”
….

엠넷(Mnet)이요?

사실 ‘앰네스티’로 쓰던, ‘엠네스티’로 쓰던 앰네스티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니 반가울 따름이다. “앰네스티요.”라고 하면 “엠넷이요?”라는 반문을 듣는 경우도 많으니까.

나는 얼마나 많이 이름을 알고 있는가! 그러나 그 이름을 내가 잊을 때, 나는 무엇에 의하여 이 많은 것을 기억해야 될까? 모든 것은 그 자신의 이름을 가지지 않으면 아니 된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것의 태반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이름이란 지극히도 신성한 기호다.

– 김진섭 수필, 명명철학 중에서

김치찌개가 생각날 때 찌게인지 찌개인지가 중요한가. 그저 인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엠네스티든 앰네스티든 떠올려 주는 것이 고마운 일인 것을.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패러디해 <나의 이름은> 포스터

국제앰네스티..

화, 2017/09/0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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