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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음, 인생의 아름다운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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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음, 인생의 아름다운 마침표

admin | 금, 2020/12/11- 00:56

“1004클럽은 아니지만, 강의를 꼭 듣고 싶은데 참관할 수 없나요?”

“좋은 죽음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모임을 열기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후원회원을 위한 1004클럽/HMC 정기모임 <명사특강-좋은 죽음을 위해서>을 준비하던 중 이음센터는 많은 문의를 받았습니다. 후원회원은 아니지만, 강연에 관심을 표하며 참여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는데요. 이러한 요청에 따라 비대면으로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강연으로 진행했습니다.

지난 11월 24일 갑자기 추워진 날씨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격상되던 날, 비대면 시대에 익숙해진 유튜브에서 진행된 온라인 강연에 많은 분이 참석하셨습니다. 강연 신청한 후원회원은 100여 명, 강연에 관심을 갖고 온라인으로 참석한 분들은 260명을 웃돌았습니다.

이번 강연은 희망제작소의 호프메이커스클럽(HMC) 회원인 이승훈 을지대학교 의과대학 학장이 나섰는데요. 이 학장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할 만한 ‘죽음’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 온라인 실시간 강연으로 진행되는 모습

먼저 죽음학(Thanatology)에 관한 정의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죽음’과 ‘의학적 죽음’의 기준, 그리고 시대가 변화하면서 죽음의 정의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쉬운 언어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외국의 평균 수명은 증가했지만, 사망원인도 다양해지면서 삶의 마지막 모습이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 ‘좋은 죽음’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당연한 결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의미 있는 과정의 마침표를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실제 해가 거듭될수록 사람의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지난 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완전생명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도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9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83.3년으로 전년 대비 기대수명이 0.6년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의학이 발달할수록 기대수명이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죽음’에 익숙해지기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논문 조사(2017년 연세대 간호대학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죽음을 잘 준비하고 싶어 했습니다. 특히 무의미한 삶을 연장하지 않고, 존엄성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고, 죽음 이후 남겨진 가족에 관한 걱정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흐름으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존엄사를 주목하고 있는데요. 존엄사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환자와 가족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거부를 요구하는 소를 제기해 승소하는 등 일부 변화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 학장은 “자칫 죽음을 옹호하거나 죽음을 선택하는 게 옳은 것처럼 비춰서는 안 된다”라며 “오히려 삶의 의미와 좋은 삶(well-being)을 지낸 후 좋은 죽음(well-dying)을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죽음 이후와 관련된 장례 문화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장문화뿐 아니라 대부분 화장을 치르면서 환경문제가 대두하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그린 장례’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퇴비화하거나, 버섯균사체 수의처럼 체내에 축적된 독성물질을 제거하는 수의를 개발해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날 강연에 참여한 분들은 실시간 채팅을 통해 “죽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좋은 죽음이란 무엇이고,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라는 등 소감을 남겨주셨는데요. 코로나19로 인한 피로감과 온라인 강연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너그러운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 글: 한상규 이음센터장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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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프로그램은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유투브로 실시간 방송으로 진행됐습니다. 다만, 행사장에는 참여인원을 제한하고 ‘좌석 거리두기’로 자리를 배치했으며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비치했습니다.

올해는 세월호 6주기입니다. 6년이 지났지만 세월호는 제 마음 깊은 곳에 떠있습니다. 지난 4월 25일, 저처럼 세월호를 잊지 않은 사람들이 희망제작소에 모였는데요. 세월호와 관련해 희망제작소에서 진행한 연구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시민 프로그램인 ‘세월호 이후, 안산은 어떻게 지냈나요? –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직접 읽어주는 재난 후 공동체 회복에 관한 연구 보고서’ 읽기 모임 현장을 전합니다.


▲ 김현수 대안연구센터 연구원

먼저 희망제작소가 진행한 재난 후 공동체 회복에 관한 연구를 짤막하게 소개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시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안산 지역의 공동체 회복을 위해 국내 최초의 공동체 회복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31조 ‘국가 등은 피해자 및 안산시 주민의 심리적 안정과 공동체 회복을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 시행해야 한다’는 항목에 근거한 것인데요. 희망제작소는 안산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의 성과를 정리하고 과제를 도출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세월호 세대와 상처를 치유하다

연구 보고서를 나누는 시간에 앞서 참여한 분들과 함께 세월호 관련 영상을 함께 봤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친구를 잃은 청년의 상담 과정을 기록한 영상인데요. 저는 처음 보는 영상이 아닌데도 눈물을 꾹 참느라 힘이 들었습니다.

“잘 지내면서도 항상 생각나는 것 같아요. 배고프면은, 다 같은 동네에 살았으니까 나오라고 해서, 그냥 치킨 먹거나 누구 집에 놀러가서 그냥 빈둥대거나 그랬는데, 그게 다 사라지니까 어쩔 줄을 모르는 거 같아요.”

“기댈 곳은 없는데 정작 저희한테 하는 기대는 너무 많아요. 그리고 진짜 힘들고 아파도 괜찮은 척 해야 되는 거 같아요.”

세월호 진상규명, 보상, 공동체 등 현재진행형

“올해가 6주기입니다. ‘어느 정도 해결된 거 아니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신 것 같은데 작년(2019년)에 연구해보니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상 규명, 보상, 공동체 등에 대한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거든요. 그래서 이 내용을 어떤 식으로든 전달하고자 용기를 냈습니다.” – 김현수 연구원

영상을 시청한 뒤 연구를 맡은 희망제작소의 김현수 연구원과 함께 본격적으로 연구 보고서를 훑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김 연구원은 인구, 산업 등 안산시 일반 현황을 설명했는데요. 단원고 피해 학생의 82%가 안산시 3개동(와동, 고잔1동, 선부3동)에 거주했습니다.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인해 2015년 고잔동 인구는 전년 대비 7.45%나 급감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안산시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은 유형별로 참여 주체와 목적, 내용이 모두 달라서 희망제작소의 연구 또한 방대한 작업이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최대한 압축적으로 프로그램의 면면을 소개했습니다.

‘고잔동 마을정원 꽃 피우기’, ‘세월호 엄마 아빠 공방 활동 지원’(4·16공방), ‘안산시민 마음치유 프로그램’ 등이 진행됐는데 이를 통해 정원관리의 준 전문가로 성장한 주민도 계시고요. 4·16공방 제품은 곧 공식 브랜드가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강의에 앞서 보았던 다큐멘터리 영상도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의 결과입니다.

유형별 사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사업 효과에 대해 주민과 활동가의 인식 차이가 다소 있었지만, 후속 사업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긍정적인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연구에 포함된 인터뷰도 함께 읽었습니다. 유가족, 주민, 활동가 행정인력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가 보고서에 있었는데요. 소통과 치유, 희망을 담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14년엔 ‘투쟁’이란 말을 가슴에 품고 다녔어요. 특히 주변에서 ‘누구 엄마는 보상금 얼마를 받았다더라’, ‘그 돈으로 집수리를 했다더라’ 하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주민들에 대한 울분과 분노가 커졌어요.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르게 보여요. 당시 이웃들은 ‘이러이러한 말들이 돌더라’하면서 제게 전한 거였는데, 전 그걸 그 사람들의 주장으로 받아들였던 거예요. 지금 오해는 다 풀렸어요. 그래서 이웃 주민이 저를 ‘누구야~’하고 부르면 ‘언니!’ 하며 답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어요.” – 유가족 인터뷰 중

“‘유가족이 보상금을 얼마 받았네’ 하는 말들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어요.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시작한 초기에만 해도 유가족과 주민이 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서로 한 마디를 나누기 어려울 정도로 냉랭 했거든요. 하지만 자꾸 만나고 대화하면서 이해가 높아졌어요. 지금은 속 시원하게 터놓고 이야기 할 정도가 돼 다행이에요.” – 안산 주민 인터뷰 중

2020년에는 공동체 회복 모델의 기반 닦을 예정

안산시는 2020년부터 새로운 단계의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김 연구원은 △중복 사업 정리 △사업 주체 역량 강화 및 시민성 확립 △활동가 처우 개선 △주민 피로감 해소 등의 과제를 제시하며, 후속 사업의 실질적인 지역 갈등 해소 효과를 기대했습니다.

강의 후 현장에서, 그리고 유투브 댓글을 통해 질의응답이 오고 갔습니다. 일부 질문에 대해서는 모임에 참석한 안산시 희망마을사업추진단 김도훈 단장님께서 직접 답변해주셨습니다.

사실 재난 또는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고 지역 공동체가 갈라진 곳은 안산 외에도 있습니다. 밀양, 제주 강정, 강원 고성 등이 대표적인데요. 주민 간 입장이 벌어져 갈등이 생겼고, 이로 인한 상처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지역에 희망의 씨앗을 심을 수 있을까요. 안산의 변화를 잘 기록하여 재난 지역의 ‘공동체 회복 모델’을 만드는 것이 김 연구원의 계획입니다.

재난은 어디에나 발생할 수 있고, 누구나 이로 인해 상처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상처를 어루만져 돌보는 것은 우리 모두가 관심 갖고 노력해야 할 일입니다. 갈등 속에서도 치유의 싹을 틔우기 위해 변화를 관찰하고 희망을 만드는 것, 희망제작소가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세월호를 잊지 않은 당신에게 말합니다. 우리도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떠있는 세월호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함께 세월호를 기억합시다.

덧붙여 유투브를 통해 실시간으로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시면서 잊고 사는 세월호 다시 일깨워주셔서 감사,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아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고 행복은 함께하면 두배가 되겠지요. 그날 그곳에서 봉사활동 할 때가 새삼 생각나서 맘 아픕니다. 감사합니다.”
“심도 있는 연구자료 감사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와 같이 쉽게 매체를 통해 좋은 정보를 접하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네요.”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도록 꾸준하게 다뤄주세요.감사합니다.”
“또다시 이런 아픔이 일어나지 않도록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연설은 넘 좋았습니다.”

※ 행사 자료 보기  ▶ 내려받기

※ 행사 영상 보기

– 글: 이규리 이음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사진: 이규홍 대안연구센터 연구원

목, 2020/05/0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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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지원금 0원, 아름다운 지구인의 힘으로 녹색을 지킵니다! 2020년 1월, 후원금을 보내주신 고마운 분들이십니다. Ctrl + F 키를...

화, 2020/02/0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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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의 기부자(후원회원)는 직업과 나이에 상관없이 삶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배움과 성장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입니다. (중략) 이분들은 삶에 대한 의미와 방향성을 깊이 고민하며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에 대한 대안을 찾고 그 변화에 기여하려 노력합니다.”
- 2018년 1월 16일 박다겸 연구원이 쓴 ‘시민사회단체 펀드레이저의 고민과 희망 ①’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당시 저는 홈페이지를 관리하며 뉴스레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후원회원을 만나볼 기회가 많지 않았지요. 내용을 보고 놀라운 감정과 동시에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이음센터로 발령받아 여러 후원회원님을 만나게 되면서 박다겸 연구원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모든 것은 직접 경험해봐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듯합니다.

이번에 만난 이판도 후원회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열혈 시민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실제 만나본 이 후원회원은 그보다 더 에너지가 넘치고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분이었습니다.

엉뚱한 몽상가였던 어린 시절

“창의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에 나오니까 저와 의논도 없이 길이며 지하철이며 빌딩이며 다 만들어 놨더라고요. 좀 화가 났죠. 사회를 잘 몰랐던 유년기의 불만이었습니다.”

이판도 후원회원의 부모님은 프랑스 문화가 유행하던 시기의 일본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해방 전 겨울에 한국으로 나왔는데, 어머니는 밤마다 책을 읽어주셨고 아버지는 한국에서 최초로 오르간을 만들 정도로 뛰어난 음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자녀들의 자유로운 사고나 예술성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특히 절대적인 존재셨어요. 지역 사회에 좋은 일도 많이 하셨거든요. 제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60명의 악대부를 만들어주시고,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는 10대 아이들이 야학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거든요.”

하지만 아버지는 한창의 나이 마흔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이 후원회원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책을 읽으며 삶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 가서 보니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가가 되는 길에 서 있더라고요. 산봉우리 같은 음악가가 많은데 왜 이 길에 서 있나 싶어 분통이 터졌어요. 한편 대학에는 지성인이 많을 거로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무지와 의문의 미궁을 빠져나올 기회도 없이 대학 2년이 다 가고 말았습니다.”

프랑스에서 배운 사회의식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다 결혼했어요. 결혼 후 아이 셋을 낳았는데 피로가 밀려오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즈음에 공부에 근력이 붙었는데, 넷째가 생겼어요.”

몸이 많이 약해지고 피로는 더 몰려왔습니다. 삶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직장 생활, 결혼, 출산, 시집살이까지 다 해보고 나니 삶의 내용이 참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상이 깨지는 시기인데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무작정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사회의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유학생인데도 주택 임대료 반값은 물론, 의료보험, 학비, 양육비 등을 지원해주더라고요. 국가가 국민을 키운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원하는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달까요.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아들은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 악기를 빌려서 사용했어요.”

IMF 때문에 기러기 엄마 신분으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오자마자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음악학원 개원을 위해 입주한 건물에서는 비가 샜습니다. 집주인에게 방수 처리를 해 달라 요청했지만, ‘나도 피해자이니 싫으면 나가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어디에 도움을 요청하면 될지 몰라서 생각나는 대로 참여연대에 연락했어요. 안진걸 씨(현 민생경제연구소 소장)가 집주인에게 전화했는데, 노발대발하는 반응이 돌아왔대요. ‘우리 자식들이 이런 사회에서 살게 할 수는 없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맑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참여연대 후원회원으로 가입했어요. 그리고 등산모임에서 다양한 분들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았어요.”

이웃과 함께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다

20년 전, 화성 봉담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마을에 갈 만한 곳이 우체국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사한 지 9년쯤 지나니 도서관이 생겼고, 이후 4년이 더 지난 후에는 도서관에서 인문학과 미술사 강좌 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인문학 강좌가 신청 미달로 폐강된다고 연락이 왔어요. 지인을 동원해서 우여곡절 끝에 개강이 됐죠. 도서관에서는 저보고 출석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강의 후에 수강생들과 식사를 하면서 친분을 쌓았습니다. 이후 의기투합해서 독서회를 만들었는데, 멤버 구성에 조금씩 변화는 있지만 만 4년째 운영되고 있어요.”

봉담에는 주민자치위원회의 공모사업으로 만들어진 ‘마을계획단’이 있습니다. 주민이 직접 마을계획을 만들어 영역별로 프로젝트를 실행해보는 것인데요. 이판도 후원회원은 마을과 마을을 잇던 옛길 복원에 관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마을과 가장 가까운 곳에 ‘나무꾼의 길’이라는 코스를 만들었습니다. 2019년 여름에는 개통식을 하고, 가을에는 그림지도를 만들어 홍보 중입니다.

“마을계획단을 시작할 때 살짝 어려웠어요. 서로 잘 모르는 사이니까 관계를 만드는 데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맡은 역할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또 각자 사정이라는 게 있잖아요. 강요는 금물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되죠. 다만 저는 제 능력이 아닌 눈높이에 맞추려다 사서 고생을 한 것 같아요. (웃음) 그래도 주민들과 함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경험을 하다 보니 삶의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희망제작소가 시민의식 함양의 구심점 역할을 하길

이판도 후원회원은 ‘희망제작소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또한 오늘 이렇게 만난 것처럼, 더욱더 많은 후원회원과 시민을 만나길 바란다고 합니다. 이를 통해 희망제작소의 활동을 소개하고, 다양한 방면으로 지원하여 ‘시민이 참가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가치 실현에 대한 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참여연대에서 처음 만난 이옥숙 선생님(희망제작소 후원회원)과 인연이 깊네요. 선생님 소개로 강산애와 희망제작소를 알게 되었거든요. 강산애 멤버분들은 참 대단하세요. 나이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서로를 편하게 대하시는 것은 물론, 배움을 나누려고 하시거든요. 배려가 일상화된 분들이죠. 아무도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많이 배울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판도 후원회원은 이야기하는 내내 소탈했고 때론 소녀 같은 모습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들은 절대 가볍지 않았으며, 울림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앞선 멘트를 빌리자면, 이 후원회원은 마치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많은 배움을 주는 사람’ 같았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된 공간은 봉담의 아담한 카페였는데요. 이판도 후원회원은 카페를 지역 거점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실제 이곳에서 많은 지역주민이 만난다고 합니다. 카페 사장님은 손님들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계셨습니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저희에게 필요한 것은 없는지 계속 물으셨고, 간식도 여러 차례 챙겨주셨습니다. 도심의 카페에서 느낄 수 없는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이판도 후원회원은 이런 공간이 지역에 많이 생겨야 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후원회원의 꿈을 물었습니다. ‘나를 찾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경쟁에 매몰돼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세상이 만들어 놓은 환영을 계속해서 좇게 되고, 자신이 누구인지 돌아볼 기회가 적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의 최대 관심은 ‘자신을 아는 것’이에요. 정말 흥미로운 일 아닌가요?”

인터뷰 진행・글 : 최은영 | 이음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사진 : 이규리 | 이음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화, 2020/03/03-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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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먹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우리의 몸과 세상이 만들어지고 달라집니다. 푸드마일리지를 아시나요? 식품이 생산된 곳에서 일반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거리를 나타내는 것인데요. 푸드마일리지가 높을수록 많은 양의 식품을 먼 지역에서 수입해왔음을 의미합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식품의 안전성도 떨어진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먹는 것은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메마른 땅에서 싹을 틔우기 힘들 듯, 아프고 병들어가는 지구에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찾는 것은 요원한 일인지 모릅니다. 지속가능한 먹을거리를 찾는 움직임 역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이번에 만난 후원회원 역시 지속가능한 먹을거리를 위해 고민하고 움직이는 분입니다. 바로 김영준 후원회원(윈원농수산 대표)입니다.

노동운동에서 농업운동으로

“1985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시 농수산공사에서 근무했어요. 94년에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파동을 겪으면서 농업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게 됐죠. 당시 노조 상근자로 있었는데, 농수산물 유통 대란을 보니 노동운동만큼이나 농업운동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농안법 파동은 농수산물 유통문제에 대해 정치권 및 시민사회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농안법 재개정을 위한 농민・시민단체 연대회의’가 결성되기도 했는데요.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파동을 지켜본 김영준 후원회원도 직접 발 벗고 나섰습니다. 농수산공사 노조 상근자로 근무하면서 활동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이때 농업, 유통 등에 대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법 시행이 유예된 6개월 동안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의해서 시민, 농민의 개정안을 만들었어요. 제안이 받아들여지고 시행되었는데, 함께했던 사람들과 헤어지기가 아쉽더라고요. 그렇게 사단법인 농수산물유통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김영준 후원회원은 농수산물유통연구소에서 ‘현실 공부’를 했다고 말합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을 비롯해 전국의 도매시장을 들러 인터뷰하고 자료조사를 하며 농촌, 농업, 농민의 현실과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건강과 환경에 좋은 먹을거리를 만들다

서울시 농수산공사 퇴사 후 김영준 후원회원은 작은 사업체 하나를 꾸렸습니다. 바로 윈윈농수산입니다. ‘윈윈’(win-win)이라는 이름에는 ‘소비자와 생산자, 유통종사자가 모두 윈윈하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김영준 후원회원의 포부가 담겨있습니다.

“노동운동 할 때 생협운동 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그분들을 보며 소비자생협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됐어요. 친환경 농산물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있기 아주 오래전부터 먹을거리 운동을 해 왔으니까요. 로컬산업의 확장을 위해서도 생협은 더 성장해야 합니다. 2015년 기준으로 생협 조합원 수가 155만 명이래요. 전체 인구의 10% 수준인 500만 명 정도까지 늘어나야 합니다. 생협이 수입을 배당하지 않는 조건으로 정부가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목민관클럽 회원 지자체장님들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테마파크 등의 자본집약형 산업이 아니라 생협과 같은 로컬산업이거든요.”

윈윈농수산은 홍합, 바지락, 새우살, 대구살, 당근, 버섯, 아스파라거스 등 다양한 농수산물 가공식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수산물, 그중에서도 새우살이 주력 상품입니다. 조금 비싸더라도 건강과 환경에 좋은 국산 수산물만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양식하지 않은 것, 불가피하게 양식하더라도 배합사료를 주지 않는 수산물을 취급하는데요. 최근에는 이유식을 위한 다짐농수산물도 개발했습니다. 이렇게 가공된 식품은 생협 등으로 납품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구 1kg에서는 230g의 순살이 나오거든요. 고래회충 등과 가시 등을 발라내는 작업은 기계로 하기 힘들어요. 모두 수작업으로 합니다. 국내산 재료를 쓰는 데다가 가공 작업도 번거로워 완제품 가격이 싸지는 않아요. 하지만 자연과 사람이 상생할 수 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2001년 창업했는데, 시작하고 2년간은 정말 힘들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네요. (웃음) 저까지 총 19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거든요. 저는 여기도 작은 공동체라고 생각해요. 직원들과 함께 경제활동을 하며 먹고 산다는 것 자체가 보람찬 일 같습니다.”

 

시민의 삶에 더 와닿는 대안 만들어주길

김영준 후원회원은 농안법 개정 당시 알게 된 김완배 서울대 교수와의 인연으로 희망제작소와 인연이 닿았고 강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농업과 농촌의 방향성을 찾아본 단행본 ‘농업농촌 희망 설계도’의 종잣돈을 마련해주기도 했는데요. 후속 연구가 진행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합니다.

“‘농업농촌 희망 설계도’의 목차에 따라서 지침서 등을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개론을 넘어 좀 더 실질적인 내용을 담으면 농업 현장에 더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앞으로 희망제작소도 시민의 삶에 더 와닿는 디테일한 대안을 마련하는 활동을 하길 바랍니다.”

 

어떤 삶을 꿈꾸냐는 질문에 ‘믿을 수 있는 친구’ 되고 싶어

“큰 꿈은 없어요. 다만, 주위에 의미있는 일을 하는 분이 많은데요. 이분들이 힘들 때 언제든 찾아와 술 한 잔 기울이고 하소연할 수 있는 믿음직한 친구가 되고 싶어요. 언제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친구 말이죠. 저와 그분들은 다른 환경과 조건을 가졌지만, 각자의 사정에 맞는 연대를 하는 거죠.”

앞으로 어떤 삶을 꿈꾸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분이 희망제작소의 후원회원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 글 :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
– 인터뷰 진행 : 최은영 이음센터 연구원 ・ 한상규 이음센터 센터장
– 사진 : 한상규 이음센터 센터장 ・ [email protected]

월, 2020/03/3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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