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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1~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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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1~5편

admin | 화, 2020/12/08- 23:34

민족문제연구소 자문으로 YTN 라디오와 경기도가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를 방송 중입니다. 올해 10편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꾸준히 제작, 방송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립군가 복원 프로젝트 : 100년의 소리>

☞ 1편 : 국치추념가 : 이준식(독립기념관장)

☞ 2편 : 안중근 옥중가 : 함세웅(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 3편 : 신흥무관학교 교가 : 이항증(석주 이상룡 선생 증손자)

☞ 4편 : 압록강 행진곡 : 김영관(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

☞ 5편 : 격검가 : 차영조(동암 차리석 선생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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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기자회견문]

대법원 판결 1년,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한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8년 10월 30일 역사적인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 1년이 지났다. 1997년부터 일본과 한국의 법정에서 자신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싸워 온 피해자들이 20여년의 기나긴 투쟁 끝에 마침내 승리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국제인권법의 성과를 반영하여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에 대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고, 식민지배와 직결된 강제동원·강제노동이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의 극복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디딘 세계사적인 판결이라 할 것이다. 아울러 냉전과 분단체제 아래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강요한 ‘65년 체제’를 피해자들과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연대하여 극복한 역사적인 성과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년, 해방 70여년이 지나도록 실현되지 못한 자신들의 인권회복과 정의의 실현을 고대해 온 피해자들의 기대는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

아베 정권은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고 사죄, 반성하기는커녕 ‘국제법 위반’을 운운하며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피고 기업들에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여 판결의 이행을 방해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한 경제규제와 노골적인 배외주의를 선동하여 일본 사회 전체를 ‘혐한의 광풍’으로 몰아넣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혐한의 광풍’ 속에서 재일조선인들은 일상적으로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으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문제에서 드러나듯 역사왜곡과 혐한발언으로 채워지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일본사회 전체가 ‘재특회’처럼 되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강제동원의 근본적 책임이 있는 가해자 일본정부가 피해자 행세를 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피고 일본 기업 일본제철, 미쓰비시, 후지코시는 판결에 따라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배상을 위해 먼저 나서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대화마저 거부한 채 일본 정부 뒤에 숨어서 1년이 지나도록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기업들의 비겁한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피고 가해기업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임을 밝힌다.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하여 강제동원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천명하였으나, 지난 1년 동안 한국 정부가 보인 노력은 부족하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진상규명, 사죄, 법적 배상, 재발방지 등 과거사 해결의 기본원칙에 입각하여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나아가 한국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규명을 위해 한국 내에서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취하고, 소송 당사자뿐만 아니라 군인·군속 피해자 등 소송을 제기하지 못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포함하여 강제동원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 고민하여야 한다.

한국 정부는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 박근혜 정부 당시였던 2015년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같이, 피해자들의 인권을 짓밟은 과오를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아니 된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구상권 방안, 1+1 방안 등 이른바 ‘해결안’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안보문제와 한일관계를 빌미로 피해자의 양보를 강요하고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맞바꾸려는 일련의 시도에 대해서 우리는 강력히 경고한다.

지난 1년,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에도 적지 않은 피해자들이 정의의 실현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말았다. 피해자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얼마 없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보여준 지지와 연대가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음을 기억한다. 우리는 피해자들의 인권 회복이 실현되는 그 날까지 국제사회와 함께 연대하여 행동해 나갈 것이다.

2019년 10월 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겨레하나,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대한불교조계종민족공동체추진본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한국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선학교와함께하는사람들 몽당연필, 청년시대여행,
평택원폭피해자2세회, 평화디딤돌, 포럼 진실과정의,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한국YMCA전국연맹, 합천 평화의집, 흥사단, 1923한일재일시민연대, KIN(지구촌동포연대)]

목, 2019/10/31-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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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사진 철거 요청

전북도청 대회의실에 걸렸던 역대 전북도지사 사진. 친일행각 벌인 11대 임춘성·12대 이용택 전 도지사.2019.12.10© 뉴스1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는 10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친일잔재 청산 취지로 전북의 역대 도지사에 대해 조사했다”며 “이들 중 2명이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강점기 당시 민족 반역, 부일 협력 등 친일·반민족행위를 자행한 한국인(친일파) 목록을 정리한 것으로 2009년 발간됐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날 밝힌 전북지역 친일도지사는 11대 임춘성, 12대 이용택이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임춘성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장수군수 재임 시절, 중·일전쟁에 참전한 일본군을 위해 국방헌금 모집, 출정군인 환송영, 귀환군인 위안회 개최 등 전시 업무를 도맡았다.

그는 이 같은 공로로 지나사변(중·일전쟁)공로자공적조서에 이름을 올렸다. 해방 후에는 진안군수, 남원군수, 전주시장 등을 거쳐 1960년 6월부터 10월까지 전북도지사를 지냈다.

전북도청 홈페이지에서 11대 임춘성·12대 이용택 전 도지사는 삭제됐다.(전북도 홈페이지 캡처)© 뉴스1

이용택은 1940년 11월 친일조직인 동남지구특별공작후원회에 후원금을 내는 등 만주에서 활동하는 항일유격부대 투항을 유도했다.

그는 해방 뒤 대화무역공사 사장으로 재직하다 1960년 10월 전북도지사로 임명됐다.

전북도는 그동안 이들을 포함한 역대 도지사 사진을 도청 홈페이지와 청사 대회의실에 전시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전날 이들 도지사의 친일행적을 지적하며, 전시된 사진을 조치해달라고 전북도에 공식 요청했다.

전북도는 친일잔재 청산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임춘성·이용택 전 도지사 사진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대회의실에 걸린 액자를 떼어냈다.

김재호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은 “친일도지사의 사진을 없앴다고 해서 친일잔재를 청산했다고 볼 수 없다”며 “이들 도지사가 친일 반민족행위자였음을 도민에게 알리기 위해 전북도와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19-12-10> 뉴스1 

☞기사원문: 전북도, 친일 행각 도지사 2명 전시 사진 철거 

※관련기사 

☞연합뉴스: 전북도, ‘친일행적’ 임춘성·이용택 전 도지사 사진 철거 

☞전북일보: 친일 행보 역대 전북도지사 2명 사진 철거16시간전

☞월드투데이: “친일 행적 확인…임춘성·이용택 전 전북도지사 사진 내려“ 

화, 2019/12/10-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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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자료집]

제13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령자로 조수룡 박사 선정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조수룡 박사

내일을여는역사재단(이사장 함세웅)은 제13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령자로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조수룡 박사를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강만길연구지원금〉은 신진 연구자들이 진보적 학술성과를 심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2008년 제정되었으며,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개척자 강만길 선생이 사재를 출연해 마련한 ‘강만길연구기금’을 재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수여 대상은 최근 1년간의 국내외 한국근현대사 박사학위 취득자이며 지원액은 2천만 원이다.

강만길 선생은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고쳐 쓴 한국근대사』 『고쳐 쓴 한국현대사』 『한국민족운동사론』 『분단고통과 통일전망의 역사』 등 수많은 연구업적을 냈으며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을 화두로 현실참여에 앞장서왔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재임 때인 1980년 군부세력에 의해 4년간 해직당하는 수난을 겪기도 하였으며, 상지대 총장을 역임한 뒤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과거사 청산에도 크게 기여했다.

올해 수령자인 조수룡 씨는 2018년 8월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전후 북한의 사회주의 이행과 ‘자력갱생’ 경제의 형성」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심사위원회(위원장 지수걸 공주대 교수)는 조수룡 박사의 논문을 선정한 이유를 정치사, 경제사, 국제관계사를 넘나들며 1950년대 북한의 전후복구 및 사회주의 이행 전략이 ‘자력갱생’ 경제로 귀결되는 과정을 밝혀내어 북한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러시아의 방대한 북소관계 자료를 전면적으로 분석하여 북한 사회의 내적 발전과정을 객관화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체제의 변화과정을 설명한 대목은 이 논문의 장점을 가장 잘 보여준 지점이라고 평가했다.

수여식은 10월 16일(금) 오후 7시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식민지역사박물관 1층 돌모루홀에서 열리며, 코로나19-감염증 사태를 고려해 약식으로 진행한다. 당일 행사는 온라인으로 실시간 생중계된다.

☞생중계 : https://youtu.be/Hich1p0rU64 
☏연락처 : 내일을여는역사재단 02)969-0226 / 담당 김혜영 02)2139-0424

수, 2020/10/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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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 [연보]

역사학계의 ‘녹두장군’ 이이화 선생 별세

민족사 정립과 우리 역사의 대중화에 헌신해온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3월 18일 오전 11시경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이화 선생은 최근까지도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이사장,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목표를 달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으나, 담낭암 진단에 따른 두 차례의 수술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영면에 들었다.

이이화 선생은 1970년대부터 민족문화추진회, 서울대 규장각,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등 학술단체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범국민위원회 등 역사관련 시민단체에서 학술연구와 실천운동에 매진해 100여권의 역저를 출간하는 등 수많은 연구 성과를 내놓는 한편으로 역사정의의 실현에도 크게 기여해왔다.

선생은 1973년 유신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출한 「허균과 개혁사상」을 발표하며 역사학자로서의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뿌리깊은나무》 《월간중앙》등에 한국사 관련 글을 연재하고 꾸준히 논문과 저서를 집필하며 연구의 지평을 넓혀 나갔다.

‘이이화’ 특유의 역동성과 활달함이 돋보이는 대외 학술 활동이 전개된 것은 198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선생은 1986년 설립된 역사문제연구소의 운영위원 소장을 역임하였으며, 1988년에는 발기인으로 〈한겨레신문〉 창간에도 참여했다. 나아가 1993년부터는 우리 역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와 관련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는데 이는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단체협의회(1993), 동학농민혁명유족회(1994),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2004) 설립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당시 선생이 이끌어낸 연구업적으로 1996년 발간된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30권은 동학농민혁명 연구에 관한 굴지의 바이블로서 자리 매김, 현재도 중요한 연구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2000년대는 오랜 연찬이 활짝 꽃피운 시기로, 평생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한국사 이야기』(총 22권)가 2004년 발간된다. 『한국사 이야기』는 기존의 왕조사와 정치사 중심 서술이 아닌 신기원을 연 민중사적 관점의 역사서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파벌』 『인물로 읽는 한국사』 『만화 한국사 이야기』 등 수십여 권의 저서를 펴냈는데 여기에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서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역사의 대중화를 이루고자 했던 선생의 의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선생은 연구와 저술에만 열정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현실문제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사회 각계의 대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특히 친일 청산, 한일과거사 문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문제 등 한국근현대사에 있어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있는 분야의 활동에 강한 의지를 보였는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한국전쟁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등에 참여한 것을 보기로 들 수 있다.

심산상, 단재학술상, 청명학술상, 허균허난설헌학술대상,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출판특별상, 녹두대상 등 숱한 수상 경력은 그의 막대한 노고에 대해 사회가 경의를 표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장례는 시민사회장이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를 감안하여 추모식 영결식 등 집회는 생략하고 약식으로 치러진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직접 조문하기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19일 오후부터 연구소 홈페이지(www.minjok,or.kr)에 추모 사이트를 개설 운영한다. 민족문제연구소 역사문제연구소 등 학술단체와 동학농민혁명 한국전쟁기민간인희생자 제주4.3 한일과거사 관련 시민단체 등 고인이 생전에 깊이 관여하였던 50여 단체로 구성된 장의위원회(공동위원장 : 박재승 임헌영 정남기 서중석 안병욱 신영우, 집행위원장 윤경로)는 적절한 시기에 별도의 추모식을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오후 김거성 시민사회수석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로 보내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정부는 역사 대중화와 역사정의 실현에 기여한 고인의 공적을 인정해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추서하기로 결정하였으며, 20일 오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훈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희 님과 아들 응일 님, 딸 응소 님이 있다.

발인은 21일 오전 10시에 있으며 장지는 파주 동화경모공원이다.


이이화 선생 연보(1936∼2020)

∙ 1936년 대구 비산동에서 아버지 야산 이달 선생과 어머니 박순금 님 사이에서 출생
∙ 7세 무렵(1942년)부터 주역의 대가인 부친 아래에서 한문 수학
∙ 10세 무렵(1945년) 부친을 따라 충남 논산 수락리와 대둔산 석정암으로 이주
∙ 14세 때(1949년) 안면도 개락금 지역으로 이주
∙ 18세 때(1953년) 한영중학교 입학
∙ 20세 때(1955년) 광주고등학교 입학. 은단 장사와 여관 종업원 일을 하며 고학
∙ 23세 때(1958년)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장학생으로 입학. 그해 부친의 별세로 중퇴. 이후 전국을 돌며 대학입시 문제집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감
∙ 25세 때(1960년) 광주 집에 기거하면서 419 시위에 참여. 이후 서울에 올라와 친구 하숙집을 전전하며 취업 준비
∙ 29세 때(1964년) 새로 창간된 《불교시보》 기자로 입사, 3년간 근무
∙ 32세 때(1967년) 모친 별세
∙ 33세 때(1968년) 《신동아》 별책부록 『한국 고전 백선』 작업에 참여, 천관우・박종홍・임창순・이숭녕 등 당대의 석학들과 교류. 이후 1974년까지 서울대 규장각에서 고문서 해제 작업
∙ 34세 때(1969년)부터 5년간 동아일보사 촉탁직으로 《동아일보》 창간호부터 기사 색인 작업에 참여
∙ 38세 때(1973년) 《창작과비평》에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을 표출한 「허균과 개혁사상」 발표
∙ 39세 때(1974년)부터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근무하며 본격적으로 한국사 연구에 돌입. 이듬해 《창작과비평》에 유신정권에 대한 비판을 내포한 「북벌론의 사상사적 검토」 발표
∙ 41세(1976년) 김영희 여사와 백년가약
∙ 42세 때(1977년) 학술지 《한국사연구》에 논문 「척사위정론의 비판적 검토」 발표, 학계의 주목을 받음. 다시 서울대 규장각으로 옮겨 1981년까지 해제 작업. 아들 응일 출생
∙ 44세 때(1979년) 화곡동 자택에 ‘한문서당’ 개설
∙ 45세 때(1980년) 5월 ‘서울의 봄’ 당시 학생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 첫 저서 『허균의 생각』(뿌리깊은나무) 출간
∙ 46세 때(1981년) 전두환 정권하에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으로 임용되었으나 1년 남짓 근무 후 사직
∙ 47세 때(1982년) 성심여대 국사학과에서 한국사상사 강의, 이후 10여 년 동안 대학 강단에 섬
∙ 50세 때(1985년) ‘한길역사기행’, ‘한길역사강좌’에서 강의
∙ 51세 때(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설립 후 초대 운영위원. 부소장, 소장 역임. 딸 응소 출생
∙ 52세 때(1987년) 6월 민주항쟁 참여. 《역사비평》 창간준비호에 논문 「역사소설의 반역사성」기고
∙ 53세 때(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 학술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역임
∙ 54세 때(1989년) 동학농민전쟁백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발족, 위원장으로 추대
∙ 56세 때(1991년) 저서 『중국역사기행- 조선족의 삶을 찾아서』 출간
∙ 58세 때(1993년) 《한겨레》에 ‘발굴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 연재. 12월 동학농민전쟁100주년기념사업단체협의회 공동대표로 추대
∙ 61세 때(1996년) 총 30권의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 출간
∙ 64세 때(1999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국제회의’(1999)에 참가
∙ 66세 때(2001년) 단재학술상 수상
∙ 67세 때(2002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 위한범국민위원회 상임공동대표 역임
∙ 67세 때(2003년)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
∙ 69세 때(2004년) 고구려역사문화재단 공동대표, 고구려역사문화보존회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역임. 『한국사 이야기』 마지막 원고 탈고, 총 22권 완간(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위한 한국의 대표적인 책 100선’, 2007년 《한국일보》의 ‘우리 시대 명저 50선’에 선정)
∙ 70세 때(2005년) 서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석좌교수로 초빙됨. 『만화 한국사 이야기』 7권 출간(2011년 9권으로 개정 증보). ‘임종국상’과 ‘단재상’ 심사위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 역임. 개성에서 열린 남북 역사학자 학술 토론회에 참가
∙ 71세 때(2006년) 임창순청명학술상 수상
∙ 73세 때(2008년) 대통합민주신당(현 민주당) 18대 국회의원 후보 지역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 허균허난설헌학술대상,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출판특별상, 녹두대상 수상
∙ 74세 때(2009년) 진실과미래,국치100년사업공동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추대. 『인물로 읽는 한국사』(전10권) 출간
∙ 75세 때(2010년) 강제병합100년공동행동한국실행위원회 상임공동대표로 추대. 《한겨레》에 회고록 「길을 찾아서-민중사 헤쳐 온 야인」 연재(6개월 동안 121회)
∙ 76세 때(2011년)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 동학혁명정신선양대회 대회장,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상임대표 역임. 자서전 『역사를 쓰다』 출간
∙ 78세 때(2013년) 역사교육에 대한 권력과 정치의 개입을 규탄하는 16인의 원로학자 중 한 사람으로 ‘한국사 교과서와 역사교육 문제에 대한 원로 교수 기자회견’ 참석
∙ 79세 때(2014년) 원광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 『전봉준, 혁명의 기록-동학농민전쟁 120년, 녹두꽃 피다』 출간
∙ 80세 때(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행정 예고 철회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사퇴를 촉구하는 원로학자 22인에 참여. 『한국사 이야기』 개정판 출간
∙81세 때(2016년) 『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 공동 집필. 《경향신문》의 ‘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에서 명사 70인에 선정
∙ 82세 때(2017년)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창립, 이사장으로 추대. 저항운동의 태동기인 19세기 민중봉기를 다룬 『민란의 시대-조선의 마지막 100년』 출간
∙ 83세 때(2018년) 전봉준 장군 동상 제막식 주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취임. 역사에세이 『위대한 봄을 만났다』 출간. 8월29일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 개관
∙ 84세 때(2019년) 동학농민혁명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데 헌신한 공로로 전주시 명예시민에 선정
∙ 2020년 3월 18일 오전 11시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
∙ 정부, 역사 대중화와 역사정의 실현에 끼친 고인의 공적을 인정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추도사]

한국사학계의 녹두장군 이이화 선생님 영전에

한국 민족사학계의 녹두장군 이이화 선생님, 이렇게 기어이 우주의 섭리에 순종하시는 겁니까. 문병을 극구 사양하면서 병원도 알려주지 않으시더니 이렇게 속절없이 떠나시는 겁니까. 가벼운 수술이니 2〜3주 뒤에 만나자고 하시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어찌 침묵하시는 겁니까.

선생님은 상아탑에 갇힌 민족사를 해방시켜 대중의 역사, 거리의 역사, 현실에 발 디딘 살아 숨 쉬는 역사로 바꾼 행동하는 지성이요 실천가셨습니다. 국민 필독서가 된 『한국사 이야기』의 저자답게 선생님의 지식은 비화에서 보학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경계가 없었습니다. 작지만 옹골찬 몸으로 뿜어내던 사자후는 청중을 압도하고 뉴라이트들을 떨게 하였습니다. 역사의 제단 아래 포청천처럼 거침없이 춘추필법을 구사하시던 이이화 선생님.

여러 학술단체나 시민단체의 고달픈 감투를 마다않고 기꺼이 맡아주셨던 선생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파동 때 그 추운 날씨에도 서슴지 않고 거리로 나서던 최고령 연사의 모습이 선연히 떠오릅니다.

선생님이 자리하신 민족사의 법정에서는 역사정의에 어긋나는 모든 반동은 ‘김어준식 어법’으로 ‘아작’ 났습니다. 때로는 수사법이 위험수위를 넘나들었지만 그 신랄함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도, 헤겔의 변증법도 아닌 이이화체 횡설수설형 눌언식 불교적 변증법이었습니다. 근엄한 한국사학계에서 드물게 보는 유머리스트인 선생님은 박제화한 역사를 흥미롭고 친근한 학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주변에는 항상 경탄과 박장대소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19세기의 민중운동, 그 중에서도 특히 동학농민전쟁을 민족사의 주축으로 삼아 그 계승과 부흥에 진력하셨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배려로 녹두장군 동상을 서울 종로 한 가운데다 건립하면서 흡족해하시던 그 환한 얼굴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부친인 〈주역〉의 대가 야산 이달 선생으로부터 천부적인 탁월성을 물려받았으나, 성장기 내내 혹독한 가난 때문에 고리키에 뒤지지 않는 험난한 밑바닥 인생을 겪었습니다. 필시 그 참담함 속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눈치에 유머정신까지 터득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에다 선생님을 키운 8할은 술로, 밥이나 반찬보다 술을 먼저 찾았지요. 그런데 이 토착 민족주의자는 맥주 팬이었습니다. 저 호치민 선생도 미제와 전쟁을 하면서도 양담배를 즐기셨지만 아무도 트집 잡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맥주는 이미 토착화되어 우리 술이나 진배없으니까요. 술 없는 이이화 선생님은 하안거에 든 스님에 다름 아니었겠지요.

이런 사학계의 바쿠스를 술 한 모금도 않는 나 같은 소인배가 가까이할 수 있었던 건 시대 탓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신동아〉에 근무했던 1960년대 후반에 처음 뵌 이후 역사문제연구소와 도서출판 한길사의 학술행사와 역사기행, 그리고 만년의 민족문제연구소 활동에 이르기까지 동고동락했던 선배이자 자문역에 동지이셨던 선생님.

특히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신 이후 만년의 선생님께는 술자리가 인생일락이었으며 그 곁을 오랜 지기 박재승 변호사님이 지켜주셨습니다. 간혹 임종국기념사업회 장병화 회장이 그 대역을 맡기도 했으나 안전귀가의 책임은 주로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상임이사의 몫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그 빈 자리는 누구도 채울 수 없다는 막막함이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못다 이룬 선생님의 뜻을 받들 후진들이 쟁쟁하게 뒤를 이어 갈 것입니다. 하니 이제 가시는 곳에서 녹두장군님과 신선주 드시면서 편히 쉬시기를 빕니다.

임헌영 삼가 올림


[사진첩]

1980년대 한길역사기행_지리산 노고단에서 ⓒ 한길사 제공
이이화 선생 ⓒ 가족 제공
이이화 선생 ⓒ 한길사 제공
이이화 선생 ⓒ 한길사 제공
아들 응일이 찍은 아버지 이이화, 울릉도에서 ⓒ 가족 제공
1955년 고학시절 광주 충장로에서 ⓒ 가족 제공
문학청년을 꿈꾸던 이이화 선생 ⓒ 가족 제공
직장 동료들과 함께 ⓒ 가족 제공
김개남장군 고택 역사기행에 함께 한 네 가족 ⓒ 가족 제공
동학농민혁명 연구와 진실규명에 함께 한 후배이자 동지 신순철 신영우 배항섭 ⓒ 가족 제공
임진각에서 오랜 벗 박재승과 함께 ⓒ 가족 제공
1986년 11회 한길사역사기행 신돌석장군 생가 답사 ⓒ 한겨레 제공
강원도 농민전쟁의 현장 구룡령에서 ⓒ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2004년 금강산 금강문바위에서 ⓒ 가족 제공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 운영회의 ⓒ 한겨레 제공
1993년 ‘다시 쓰는 사발통문’
1994년 공주 우금치 합동위령제 ⓒ 한겨레 제공
2013년 9월12일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 교과서 규탄대회 및 검정 무효화 국민네트워크 출범식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2014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전체회의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2015년 국정화 행정예고 철회 기자회견 ⓒ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2014년 원광대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식 ⓒ 가족 제공

이이화 선생님 추모 홈페이지

목, 2020/03/1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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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선생 조문 마지막 날…각계 애도 잇따라

지난 18일(수) 별세한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빈소에 각계 인사들과 시민들의 애도 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장례는 민족사 정립과 역사 대중화에 헌신해온 선생의 의지를 기려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지고 있으며 빈소는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조문 첫날에는 문재인 대통령, 정세균 국무총리, 문희상 국회의장 등 정계 인사들의 조화와 박원순 서울시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이재명 경기도 지사 등의 근조기가 빈소에 도착해 유족을 위로했다.

고인을 기리기 위한 본격적인 조문행렬이 이어진 것은 이튿날(19일)부터였다. 이날 오후 1시경, 김거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한 데 이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등의 정·관계 인사들이 조문했다. 오후 7시경에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빈소를 찾아 유족 및 조문객들을 인사를 나누며 고인을 애도했다.

무엇보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애도가 끊이지 않았다. 빈소를 가장 먼저 찾은 이들은 고인이 생전에 헌신하며 몸담아 오신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역사문제연구소와 민족문제연구소의 동료와 후학들이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과 윤경로 전 한성대총장, 정남기 동학농민혁명유족회장은 일찍부터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돕고 조문객을 맞았다. 이어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과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이용기 역사문제연구소장 등도 조문했다. 그 밖에 선생이 관여한 단체와 기관의 동료들과 지인, 전국 각지의 한국전쟁민간인학살 유족들과 동학농민군의 후손, 일반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조문 마지막 날인 20일 오전 11시 30분경에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부로부터 추서된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을 고인 영전에 바쳤다. 앞서 19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대한민국의 역사 연구와 학술·교육 발전에 큰 공적을 세운” 고(故) 이이화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훈장 추서를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문은 마지막 날인 오늘(20일), 늦은 시각까지도 이어질 전망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고인을 기리는 시민들의 관심에 감사하다”면서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와 간소함을 원하는 유족들의 뜻을 감안하여 추모식 등 다수의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례 행사는 생략할 것”임을 밝혔다. 대신 연구소는 조문이 어려운 시민들을 위해 19일 오후부터 연구소 홈페이지(www.minjok.or.kr)에 추모사이트를 개설 운영 중이다. 추모사이트에서 선생의 생애와 저술활동, 사진과 동영상을 살펴보고 직접 추모글을 남길 수 있다.

한편 발인은 21일 오전 10시에 있을 예정이다. 장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유족 및 고인과 각별한 친분을 가졌던 인사들이 간소한 영결식을 거행한다. 빈소를 떠난 운구행렬은 고인의 자택이 있는 헤이리 마을을 거쳐 장지인 파주 동화경모공원으로 이동한다.

*문의: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방학진(010-8638-8879)


[고(故) 이이화 선생 시민사회장 빈소 사진첩]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이화 선생 빈소 ⓒ 민족문제연구소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이화 선생 빈소 ⓒ 민족문제연구소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이화 선생 빈소 ⓒ 민족문제연구소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윤원태 사무국장 ⓒ 민족문제연구소
이낙연 전 국무총리 ⓒ 민족문제연구소
이낙연 전 국무총리 ⓒ 민족문제연구소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및 이준식 독립기념관장 ⓒ 민족문제연구소
이용기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 민족문제연구소
윤경로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전 한성대 총장),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 ⓒ 민족문제연구소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및 이용기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 민족문제연구소
20일 오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영전에 바쳤다. ⓒ 민족문제연구소
20일 오전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국민훈장무궁화장을 영전에 바쳤다 ⓒ 민족문제연구소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희 님과 아들 응일 님, 딸 응소 님이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유족으로는 부인 김영희 님과 아들 응일 님, 딸 응소 님이 있다. ⓒ 민족문제연구소

토, 2020/03/21-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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