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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수도자 1천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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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수도자 1천인 선언

admin | 월, 2020/12/07- 19:48

1. 우리는 역대 모든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정부의 성공이 곧 나라의 평안과 주권자들의 행복으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시대의 소명과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2. 잠잠히 묻혀서 고요히 지낼수록 좋은 우리가 이렇게 나서게 된 것은 국민의 엄중한 명령인 ‘검찰개혁’이 좌초될 위기에 빠진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주목하는 것은 검찰이 그동안 힘없는 사람들의 생존과 운명을 쥐락펴락하면서 특권층의 비리와 범죄는 눈감아 줌으로써 공정한 법집행의 최대 걸림돌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검찰개혁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비웃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나서는 일들이 너무나 빈번해졌고 그러다보니 검찰개혁을 공언하였으면서도 번번이 실패하고만 지난 민주정부들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운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3. 거기에는 검찰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검찰이 검찰권의 독립 수호를 외치고 있습니다만 자신들이 저지른 검찰권 남용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건을 조작해서 무고한 이를 간첩으로 내몰고, 멀쩡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인생을 망치게 만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욕망을 위해 약자들을 괴롭혔던 강자들의 죄를 가려주고 치워주는 범죄의 세탁부 또는 청소부가 되었던 한국 검찰의 역사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검찰개혁은 검찰로 하여금 이와 같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더 이상 타락한 거래에 휘말리지 않도록 진정한 독립을 도우려는 일입니다.

수사와 기소에 관한 과도한 독점적 권한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도 우리 눈에는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통제되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검찰 자신을 위해서도 불행한 것입니다. 검찰 일부의 문제일 것입니다만 겉으로는 부패와 거악을 척결하겠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현직과 전관들이 서로의 이익을 챙겨주는 뒷거래는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타락상입니다. 그동안 공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일생을 헌신한 대다수 검사들의 명예와 긍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검찰은 공직자비리수사처, 검경 수사권 분리 등의 개혁 조치를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4. 검찰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윤석열 총장의 참회를 촉구합니다. 임명 초기 그를 향한 국민의 기대와 신망은 참으로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의 개인적 처신과 검찰을 지휘하는 모습은 너무나 뜻밖이었습니다. 처와 장모를 둘러싼 가족의 대들보 같은 허물도 심각하지만, 아무리 티끌처럼 작은 일이라도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무섭게 달려들다가도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관대한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는 경악스러울 정도입니다. 법무부 장관이 제기한 직무 배제와 징계 청구 사유에서 드러났듯이 검찰총장 본인이 하루빨리 물러나야 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겸덕을 발휘하여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신이 말했던 “퇴임 이후 사회를 위한 봉사”일 것입니다.

5.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만 열면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 과장해서 기사를 쏟아내고 있으나 지금 우리는 건너야 할 다리를 힘겹게 건너고 있을 뿐 방향이 그릇되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불안을 부추기고 정부의 선의를 비트는 행실을 중단하기 바랍니다. 진실을 격려하고 거짓을 꾸짖는 언론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른바 ‘검언유착’, ‘검언일체’의 지경에 이른 부끄러운 현실을 직면하기 바랍니다. 진실의 장수가 되어야 할 언론이 거짓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는 현실을 우리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6. 사법부의 책임 또한 조금도 가볍지 않습니다. 검찰에 의한 ‘재판관 사찰’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는 뚜렷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검찰이 조직적으로 재판관을 압박하여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죄를 태연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아가 검찰총장이 재판관에 대한 사찰과 정보정치를 업무상의 관행이라 우기는데도 묵묵부답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 특히 법조의 나아갈 길은 언제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인지 한 번 묻고 싶습니다.

7. 제1야당 ‘국민의 힘’에게 묻습니다. 국민의 힘의 전신인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은 검찰개혁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탈의 방조자 또는 협력자 구실을 하다가 결국 자신이 배출한 대통령 2인을 감옥에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과오를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아울러 다시 집권해서 나라를 이끌게 될 때를 위해서라도 여당과 합심하여 국회가 검찰개혁에 일조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8. 신앙인들과 시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정작 다른 데 있습니다. 생태계 말기적 파국의 리허설이나 다름없는 코로나 사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살길을 찾아야 하는 마당에 검찰개혁이라는 숙원을 놓고 분열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힘을 내서 어려운 사람들의 겨울을 돌보고 저마다 역량을 다하여 정의와 인권을 회복하는 데 힘을 보탭시다.

 

2020년 12월 일
인권주일을 앞두고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수도자 1천인 일동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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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1820년대 이후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지역은 유럽의 지배로부터 독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국의 ‘뒷마당’으로 전락할 처지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을 뿐이다. 이미 미국은 1823년 먼로 독트린 선언으로 북미 이남의 아메리카에 대한 독점적인 ‘지배권’을 확보했으며, 20세기 이후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라틴아메리카는 없었다. 쿠바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의 신식민지가 되는 과정이 독립과 함께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며,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카메라를 보며 ‘한국식(?)’ 인사를 하는 쿠바의 발랄한 청소년들의 모습(2018. 07).

쿠바의 독립은 1898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으니 스페인의 마지막 식민지였던 셈이다. 1860년대 이미 세계 설탕 공급량의 3분의 1을 생산하며 미국과의 교역이 확대되고 있었고, 주요 교역국이 이제는 스페인이 아닌 미국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은행가들은 쿠바의 독립전쟁이 한참이던 19세기 말 전쟁의 혼란을 틈타 설탕 밭을 모조리 사들이며, 철, 니켈, 망간 등과 같은 광업 산업까지 매점, 쿠바 경제를 장악해갔다.

이로써 섬의 경제를 독점한 미국에게 이제 스페인을 아메리카에서 몰아내는 일은 시급한 문제가 되었다. 기실 쿠바의 독립은 미국이 스페인을 상대로 치른 미서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완성되었으니, 카리브해 섬의 독립은 이제 미국의 ‘승인’을 필요로 했다. 독립 직후 제정된 쿠바 헌법에는 이른바 “플랫 수정안”을 추가하며, 이제 미국은 쿠바 공화국을 내정간섭 할 수 있는 ‘합법적’인 권리를 보장받았고, 신식민지의 시대를 열었다.

쿠바 경제를 장악한 미국 자본가들은 섬의 토착 지배세력과의 결탁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착취경제를 이식해 나갔다. 수출 단일 작물인 설탕 산업은 미국의 독점자본과 국내의 소수 매판 자본가들과 대토지 소유자들, 그리고 군부독재 정권과 동맹 관계를 공고히 하며 쿠바 민중에 대한 수탈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미르의 지적처럼 신식민지 쿠바에서 미국 자본의 이익을 보장함과 동시에 쿠바의 소수 기득권 체제를 유지하는 소위 ‘계급적 동맹’을 이룬 경우였다.

미국의 반식민지 상태에서 쿠바 민족주의는 고조되었으며, 단일 작물 수출경제에 기반을 두는 대형 플랜테이션 경제는 다수의 빈곤한 노동계급을 양산하며 농촌사회를 붕괴시키고, 도시는 급격하게 슬럼화되었다. 반면에 아바나는 수천의 미국인들과 부유한 쿠바 소수 기득권층을 위한 요트 클럽과 같은 폐쇄적인 사교 시설들로 넘쳐났다. 당시 쿠바 전체 인구의 3% 미만이 수도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아이들의 2/3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하였고 그마저도 중도에 학교를 그만두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이 같은 다수의 빈곤과 극단적인 불평등이 1959년 쿠바 혁명이 반제국주의적인 민족해방운동으로 발전하게 되는 직접적인 배경이다. 계급적 요구를 담은 쿠바 혁명의 급진적인 사회개혁운동은 쿠바 민중들을 수탈하는 토착 지배세력과 계급적 동맹을 맺은 미국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며, 반제국주의적이고 반자본주의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1959년 혁명은 당시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던 미국의 지배와 토착 지배계급의 수탈에 응답한 쿠바인들의 저항이었고 그들의 자주적 선택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쿠바 사회주의에 대한 갑론을박은 뜨겁다.

역사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났던 사회주의 운동은 소위 노동계급 중심의 이론에 익숙한 서구 중심의 마르크스적 혁명 공식에 빗대어 비판을 받아왔다. 19세기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서유럽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등장한 사회주의 운동 이론이 20세기 쿠바와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에서 그대로 유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이론은 현실을 지배하려는 습성이 있다. 이론과 현실을 가능하게 했던 구체적 현실들이 이제는 거꾸로 이론의 ‘노예’가 되고 있다고 일갈한 베네수엘라 인류학자 사노하(Sanoja)의 지적은 새겨 볼 만하다. 특정한 사상이나 철학이 현실을 이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거나 심지어 그 현실을 왜곡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이다.

이는 19세기 이후 유럽 자본주의 발전으로 나타난 노동자계급의 비참한 현실이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과 이론의 현실적 토대가 되었다면, 약 100년 후 쿠바에서 일어난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정치적 조건은 유럽의 그것과 분명 다를 수밖에 없다. 쿠바 사회주의 혁명이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제국주의적인 세계 자본주의 질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쿠바 혁명은 반자본주의적이고 동시에 민족주의적이었다. 민족과 계급의 이해관계는 일치하였고, 피델의 주장처럼 “1959년 혁명은 역사적으로 고착된 쿠바인들에 대한 착취와 횡포의 역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쿠바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소위 21세기 현존하는 ‘유일한’ 사회주의 국가라는 사실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20세기 말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끝으로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사회주의가 더는 설 자리가 없는 듯했다. 동구권 국가들과 동맹을 이루고 있던 쿠바의 미래도 이와 함께 불투명해 보였음은 물론이다. 쿠바의 사회주의 체제도 역사와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시대였다.

사회주의 사상은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그 정점을 찍기 시작하는 19세기 이후부터 줄곧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많은 이들에게 실천과 행동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반면, ‘자유’와 ‘시장’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자본주의 질서는 마치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유일한 체제라는 공식을 만드는 일에 성공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일체의 활동들은 ‘자유’를 부정하는 불경한 일로 매도되었으며, 동시에 사회주의는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체제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각인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쿠바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 인식의 기저에 흐르는 공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한 예로, 쿠바 보건의료시스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쿠바 사회가 억압적인 사회주의 체제라서 가능했다거나, 국제의료활동은 쿠바 정부의 내정실패와 인권유린 문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정치적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비판 등이 새삼스럽지 않은 이유다. 과연 쿠바 사회주의는 전체주의적 독재정치를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는 체제일까. 우선 체제의 정치적 성격을 논하기에 앞서, 쿠바의 독특한 보건의료시스템을 통해 그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동체적 가치와 합의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은 유의미할 것 같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쿠바의 보건정책의 핵심은 무상의료라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 제공되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은 보편적 권리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쿠바의 의료서비스는 지급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혜택받는 상품이 아니며, 모든 쿠바 국민은 이를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권리”로서 받아들인다. 즉 개인만의 권리가 아니라 동등한 “모두의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

일견 당연해 보이는 이 같은 명제가 함의하는 바는 현재 쿠바 사회의 공동체적 성격을 이해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건강에 대한 권리와 의료 불평등의 최소화를 추구한 전략으로써 쿠바의 보건의료는 지역사회의학 모델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이 모델의 주요 목적은 지역사회 공동체의 건강 문제에 대해 지역주민들의 책임의식과 참여, 수동적인 수혜자가 아닌 적극적인 행위자이자 기획자로 주민들의 역량을 높이는 데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보건모델은 개인과 지역사회의 유기적인 협력 관계가 형성될 때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과 같은 보건 의료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정착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었으니, 이 모델이 쿠바 지역사회를 개인이 아닌 “이웃 사회”가 만들어지는 기제로 작용했을지, 혹은 그 역으로 쿠바 사회의 공동체적 성격이 이 같은 의료시스템을 안착시킬 수 있었던 사회적 자본이었을지에 대한 인과관계는 조금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쿠바의 지역사회는 여전히 이웃 간의 정이 훈훈했던 과거 우리 시대의 많은 일상과 닮았다는 점이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보건의료정책이 높은 의료적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묘책의 ‘비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대목이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쿠바의 지역사회에서 보건의료의 일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보면 어떨까 한다.

화, 2019/10/29-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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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서울 시민과 함께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과 국민신뢰를 회복하는 검찰개혁을 만들어갑니다. ■일시 : 7월 6일(일) 오후 2시■장소 : 관악구청 8층 대강당■발제/토론 : 장경태 김용민 민형배 국회의원■참여 : 검찰개혁에 관심 있는 시민과 당원 누구나 <신청방법>-접수시한 : 7/3일(목)까지(*선착순 마감)-접수링크 : https://forms.gle/91G8yPZBYboZ1oJc7 ※ 주차공간이 협소하오니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더불어민주당 서울특별시당 -

월, 2025/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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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코리아 양국체제

코리아 양국체제1란 대한민국(ROK)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두 나라가 주권국가로서 서로 인정하여 공식 수교하고 평화롭게 공존, 교류, 협력하는 일 민족 이 국가2의 평화체제, 공존체제이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지난 70여 년 남북 간에 쌓이고 쌓인 적대와 불신을 완화하고 해소함으로써 평화적 통일로 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지난 70여 년 남북은 수없이 많은 ‘통일방안’을 경쟁적으로 제안해 왔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통일은 멀어졌다는 역설 속에서 살아왔다. 지금까지 한국과 조선은 서로를 국가 대 국가로서 인정한 바 없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무리 통일을 말해봐야 통일이 이뤄질 리 없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반드시 통일하자고 하니까 전쟁까지 했던 것 아닌가. 그래서 통일을 하자고 할수록 통일이 멀어지는 역설이 여태껏 발생해왔다고 하는 것이다.

평화로운 통일로 가는 ‘제1보’가 양측이 상대를 진심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인정하는 데 있음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은 자명한 사실이다. 국가로서 성립되어 있는 양자 간의 관계에서 그렇듯 진정에서 우러난 실제적인 인정이란 서로를 정당한 주권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남북 서로가 국가로서의 정당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각자의 내부에서 상대를 부정하고 적대했던 심리와 제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래야 편지 한 통 오가는 데서 시작해서, 전화가 오가고, 사람이 오가고, 그리고 마음이 오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음 간의 긴장이 먼저 풀려야, 정치적 긴장도 풀리고, 군사적 긴장도 따라 풀릴 것이다. 이 길이 평화로운 통일로 가는 ‘제1보’이고 그러한 상태가 이루어지는 것이 코리아 양국체제다.

그러나 지난 70여 년 동안 그 ‘제1보’는 한 번도 제대로 떼어지지 못했다. 첫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하면서 내달리고 도약하기를 꿈꾸는 온갖 화려한 통일안들이 난무했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여태껏 미뤄져온 그 첫걸음을 제대로 분명하게 내딛자는 제안이다. 통일에 이르는 첫걸음이 될 양국체제가 정착되고 안정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첫 과정을 제대로 이수(履修)하는 데만 많은 노력과 인내와 창의력이 요구된다. 이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분명한 목표로 인식하고 그 과제의 실현을 위해 실제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 과정을 애매모호하게 남겨둔 채 2단계, 3단계로 건너뛰자는 통일안들은 말만 화려할 뿐 실효가 없다. 오히려 갈등과 불신만 키워왔다.

양국체제란 단순히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두 국가 간에 ‘국가로서의 상호 인정’이 공식적으로 이뤄지고 그러한 상호 인정 관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야 비로소 양국체제라 할 수 있다. 2018년 현재 세계 157개국이 남북 두 국가를 동시에 인정하고 수교하고 있으니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세계인이 인정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한반도에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은 전혀 아니다. 막상 남북 두 국가는 서로를 국가로서 정식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을 치르고 극단적으로 적대했던 두 국가가 엄혹했던 냉전 기간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상황 탓으로 넘겨본다 하더라도, 소련·동구권이 붕괴하여 미소 냉전이 해소되고 1991년부터는 남북 두 나라가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되었음에도 그 후로도 거의 30년을 서로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지내왔다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다.

그러나 현실이 크게 변하여 이러한 비정상이 더는 지속되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열리면서 한국전쟁(Korean war)의 종전과 북미 수교가 남, 북, 미 3국의 공식 어젠다에 올랐다.3 정전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할 당사자가 될 남북 두 국가가 이제 서로를 정상적인 국가로서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후 북미·북일 수교가 이뤄지는 날이 올 것인데, 그때에도 남북만은 끝내 상대를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은 채 준 전쟁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이제 양국체제가 눈앞의 현실로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도 놀라운 것이지만 그러한 변화를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대중적 힘이 대한민국 내부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힘은 물론 2016년 겨울 이후 형성된 촛불혁명의 민의다. 촛불혁명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시작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정권의 모든 실정(失政), 무능, 독단에 대한 항의와 비판을 ‘종북’으로 싸잡아 억누르고 ‘블랙리스트’로 묶어 배제했던 박근혜 ‘신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환멸과 거부가 있었다. 결국 북을 이용해 독재를 강화하는 낡은 공식을 재탕·삼탕하려다 국민적 대저항에 부딪쳤던 것이다. ‘보수가 안보는 잘할 거’라는 근거 없는 공식도 완전히 깨졌다. 이명박, 박근혜 소위 ‘보수정부’ 시절 내내 안보 위기·전쟁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높아만 갔다.

높아가는 안보 위기, 전쟁 위기에 대한 국민적 불안과 불만이 매우 심각한 상태였음은 2018년의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에 대한 여론의 압도적 지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4 2019년 2월 하노이에서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면서 상황은 교착되는 듯했으나, 같은 해 7월 1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 70년 적대를 종식시킬 대장정의 새 장을 열었고, 여론은 여기에 대해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냈다. 이 지지는 촛불민의의 연장이자, 촛불민의를 믿고 과감한 대북 화해, 북미 화해를 성공적으로 주도했던 새 정부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기도 했다. 이제 남북미 간의 평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의지와 역량이 새 정부가 ‘촛불정부’임을 입증하는 핵심 증표가 되었다. 이로써 양국체제로의 현실 변화는 남북미 간의 해빙 기류와 이를 지지하는 광범한 대중적 지지를 통해 안팎의 든든한 근거를 갖추었다. 코리아 양국체제는 어느덧 이미 시작된 사건이었다. 이제 코리아 양국체제는 학술적 발상이나 탐구의 수준을 넘어서 눈앞에 다가온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양국체제에 대해 보다 체계적인 인식을 정립하여 임박한 변화에 준비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기 때문에 양국체제에 대한 이해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상식은 현실이 되지 못했다. 간단해 보이나 실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인 것이다. 양국체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흥미로운 현실의 블랙박스를 먼저 풀어야 한다. 오랜 세월, 상식이 현실로 되지 못하게 가로막아온 모종의 강고하고 거대한 장애가 우리 자신의 안팎에 존재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양국체제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 정립을 위해서는 먼저 이 거대한 장애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작업은 현실에서의 시도와 실패에 대한 분석을 포함한다. 양국체제로의 첫 전환 시도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첫 시도는 너무나 짧은 시간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시도가 어떻게 가능했고 왜 실패했는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양국체제에 대한 체계적 인식은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양국체제 발상이 억압되어온 까닭

먼저 양국체제에 대한 기본적인 상(像)을 그리기 위해, 한중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현재 한국과 중국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발히 교류하고 있다. 중국은 2003년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교역국이 되었고, 2017년에는 중국에 체류하는 한국인과 한국에서 체류하는 중국인이 각각 100만 명을 넘어섰다.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 후 벌어진 놀라운 변화다. 편지 한 통 자유로이 오가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이러한 큰 변화가 이뤄진 것은 한중 두 나라가 국가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정식으로 수교했기 때문이다. 먼저 정식 외교관계가 이뤄지면 여러 변화가 물꼬를 터서 연이어 진행되게 마련이다. 한중 수교와 교류는 한중 양국에 큰 혜택을 주었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수교 이전의 냉전시대 한중 관계는 사실상 전무했다. 당시엔 중국을 중국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중공’이라 불러야 했다. ‘적성공산국가’를 마치 정상적인 나라인 것처럼 부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교류는커녕 교류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적대와 금기의식이 지배했다. 러시아(구소련)와의 관계, 베트남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실로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주지하듯 이러한 변화는 미소 냉전체제의 붕괴로 인해 가능했다. 더는 이념과 체제의 차이가 교류와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일반인들이 서로 만나 협력하고 사업하는 데 이념의 차이를 물고 늘어질 이유가 없었다. 한중, 한러, 한베 수교국 정부 사이의 공무(公務)를 수행하는 데서도 서로의 이념이나 체제를 문제 삼아 마찰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 간단히 말하면, 코리아 양국체제란 한국과 조선 두 나라 사이에도 한중, 한러, 한베 사이와 같은 정상적인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는 상태를 말한다.

물론 한국과 조선은 같은 민족의 두 국가이지 서로 민족이 다른 외국이 아니다. 같은 민족의 두 국가 간의 관계는 일반 외국과의 관계보다 긴밀하고 특수할 수밖에 없다. 양국체제란 일종의 ‘한 민족 두 국가 간의 특수한 관계’를 말한다. 그러나 그 특수성이 지금까지는 불행하게도 삼엄한 휴전선을 경계로 대치하면서 어떤 정상적 교류도 불가능한 상태에 머무르도록 지극히 부정적으로 작용해왔다. 일반적인 대외 관계와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철저히 가로막힌 상태였다. 그러나 과거 냉전시대 ‘적성국’이었던 중국, 러시아, 베트남과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일반인 사이에서도 ‘왜 북과는 같은 민족인데도 그럴 수 없느냐’는 자연스러운 질문들이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일반인 대상으로 양국체제를 설명하면 쉽게 이해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기본적인 소개만 하고 나면 오히려 필자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기도 한다. 그럼에도 왜 남북 간의 양국체제는 여태껏 현실화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러한 발상조차 분명한 형태로 제기되지 못했던 것일까?5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양국체제를 설명하다 보면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반응을 자주 접하게 된다. 뒤집어 보면, 비록 막연하게나마 그런 방향과 방식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생각을 분명하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인가 그러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또는 그런 식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뜻이다. 정신분석의 용어로 말하면, 그러한 생각과 발상은 무엇인가에 의해 ‘억압’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렇듯 양국체제적 생각과 발상을 억압해왔던 것일까?

먼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각 개인의 외부로부터 오는 억압이다. 이는 주로 그동안 북을 인정하지 않고 적대시했던 국가와 국가기관으로부터 오는 억압이다(남북이라는 말을 바꾸어도 상황은 정확히 같다). 일례로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사람’을 우연이라도 만나게 되면 공포를 느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6 국내에서는 물론이려니와 해외에서도 그러했다. 북을 불법화하고 있는 국가 당국이 언제든 그런 ‘접촉’을 ‘간첩사건’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이러한 억압은 독재의 수단으로 오랜 세월 애용되어왔다. 어떤 정당한 비판도 ‘종북’이라 몰고, 어떤 비인도적 탄압도 ‘종북 척결’로 정당화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양국체제적인 발상을 떠올리기도, 꺼내놓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앞 절에서 말했듯 촛불혁명을 전후하여 국내외의 상황이 크게 바뀌고 있다. 이러한 외적 억압은 점차 약화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약화되어갈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런 외부 억압은 억압을 당하는 각자의 의식 속 내면화를 수반하기도 한다. 스스로 ‘종북’ 딱지에 걸리지 않도록 자기검열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위 ‘내 귀의 도청장치’가 생긴다.7 이런 자기검열을 통해 북에 대한 경계와 공포, 적대감이 내면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듯 외적 억압에 의해 내면화된 의식 역시 결국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외적 억압 요인이 약화·소멸됨에 따라서 같이 또는 다소의 시차를 두고 약화·소멸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비롯된 억압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이 억압은 원인이 내적인 것이기 때문에 앞서 살펴본 외적 억압이 사라져도 존속할 수 있다. 그러한 억압은 과연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 우리 내면의 ‘분단의식’임을 알 수 있다. 남북뿐 아니라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코리안들에게 ‘분단’이란 그저 단순한 한마디의 말, 언어가 아니다. 범상치 않은 단어다. 반드시 ‘비원(悲願)’이나 ‘한(恨)’과 같이 강렬한 정서적 에너지가 고도로 응축되어 있는 표현을 수반한다. ‘분단’이란 모든 코리안에게 깊은 고통과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수반하는 상처의 표현이다. 일제에 억눌리면서 맺혔던 한이 풀리나 했던 순간 야밤의 봉변처럼 닥쳐왔던 것이 민족분단, 조국분단이었다. 일본을 몰아낸 미국과 소련의 힘, 그리고 그들 사이의 냉전이 분단을 가져왔다. 민족의 심장에 꽂힌 가시가 반드시 뽑혀야 하듯, 이 ‘분단’은 반드시 거부되고, 부정돼야만 한다. 따라서 ‘분단의식’이란 강렬한 ‘분단부정의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분단’에는 또 항상 ‘극복’이란 말이 따라 붙는다. 그 결과 ‘분단의 비원’과 ‘분단의 극복’은 항상 짝을 이루는 말이 된다. 이러한 분단은 나뉘어 있되 결코 둘이 아님을, 아니 결코 둘일 수 없음을 말한다. 지금은 나뉘어 있지만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함을 정언적(定言的)으로 명령하는 말이다. 정신분석에서 무의식(이드)을 ‘억압’하는 것은 초자아(슈퍼에고)이고, 이 초자아의 명령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과 닮아 있다. 정언명령을 닮은 이 ‘분단(부정)의식’이 ‘한 민족이 이룬 두 개의 국가’, ‘두 개의 코리아’라는 생각, 양국체제의 발상을 억압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무의식적 금압, 터부는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한중, 한러, 한베 수교 이후 현실이 크게 변했음에도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한반도에 두 개의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 되었음에도 그렇듯 상식적인 양국체제적 발상을 제기한다는 것이 왠지 쉽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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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1/15-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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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NYT에 실린 내용으로 기고자는 현재의 위기에 도덕적 기준을 잣대로 구제지원을 선별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른백년은 이런 관점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다만 생산적인 논쟁을 위하여 게재를 결정했다.

우리는 지난 IMF 시기와는 달리하여 은행과 거대 기업에 지원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대신, 수요자인 시민들과 중소기업자들에게 필요한 만큼 무제한적으로 직접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거래은행은 해당산업의 지원과 존폐여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며, 정부는 이번 위기를 미래의 일상적 혁신을 위해 대규모 산업구조조정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요에 따라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큰 기업과 은행의 파산에 대응하면서, 정부가 선택적으로 이들을 공기업으로 전환하되 경제가 정상화된 이후, 시장에 재매각을 검토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는 수직으로 추락하고 있으며, 수천만 명이 실직을 당하고, 셀 수 없이 많은 기업들이 부도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연방의회는 위기의 확산을 차단하려고 이미 3조 달러의 지원을 승인하였고, 추가의 금액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에 신속하고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에 대하여 다른 정치적인 견해들이 분노와 함께 돌출하기 시작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인들과 언론매체 그리고 일반시민 사이에 잠재적인 불황을 방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수혜자들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여부를 밝히는 것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좌파적 정치인들은 거대기업들이 연방정부의 지원혜택을 받거나 연방준비제도가 공급하는 초저금리의 신용공여를 받는다는 것에 분노를 표시하고 있다. 반면에 우파에 속하는 측은 연방행정부가 주정부나 지방정부를 지원하거나, 실업자들을 돕기 위해 고용보험을 확대하는 것에 화를 내고 있다. 여론매체들은 스테이크하우스 체인이나 사설학원같이 자격미달인 조직들에게 지원금이 투입되는 것에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수조 달러에 달하는 연방지원금을 받을 자격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 누구인지 결정하는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여기엔 자금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제로-섬 게임의 위험이 존재한다. 이는 위기가 종결되기 이전에 곤궁에 빠진 개인과 기업 그리고 공조직에 대한 연방정부의 대응수단을 제한하고 지원을 중단시킬 잠재성을 지닌다.

“보수적인 견해를 지닌 친구들은 주정부나 지방도시는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현재 해밀톤 전략연구소의 파트너를 일하고 있는 Tony Fratto는 이야기한다. ”반면 진보적인 인사들은 민간기업들에게 도움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자유주의자들은 누구에게도 지원을 제공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들 각자의 견해는 나름대로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고통의 결과물들이라고 덧붙였다.

2008년 세계적 규모의 금융위기와 후유증을 겪은 지금은 물론 보다 합리적인 주장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이 매우 긴급한 사항이다.

지난 위기 과정에, 보수주의자들은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택구매자금을 담보조건으로 융자해준 사실을 비난한다. 당시의 은행들은 거대한 ‘모랄-해저드’라는 문제를 동반하면서 금융조직들이 부동산 저당의 거품에 자금을 공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한 결과에 대해 전액의 구제지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Covid-19에 대하여 같은 내용으로 비난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시 주택버블과 금융위기를 야기했던 금융회사들이 구제지원을 받은 것은 비도덕적인 것으로 이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정당한 일이지만, 이번의 사태는 경우가 다르다”고 자유 루스벨트 재단의 연구원인 Mike Konczal은 주장한다.

금융위기 상황과 확실하게 다른 것은 기업들이 코로나를 야기시킨 장본인들이 아니라 희생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분야와 금융분야에 종사하는 자유주의적 인사들이 이를 묵살하고 있는데 이들은 과거에 구제를 받았던 기업들이, 지난 수 년간 바이-백을 통하여 주주들에게 배당을 높이는 행동을 보여 왔다며, 이제 다시 정부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는데 분노를 터트린다.

이런 비판에 앞장서온 Oaktree Capital의 Howard Marks는 최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 비도덕인 행위를 한 기업을 정부가 보호해 준다고 사람들이 느낀다면, 이는 분명히 ‘모랄-해저드’에 해당한다. 이들 조직과 관련 투자자들은 고통에서 보호를 받겠지만 이는 아주 나쁜 사례를 남기는 것이다.”

수많은 기업들, 특히 부채가 많아 충격에 취약한 조직들이 우선적으로 파산의 위기에 몰리겠지만, 동시에 현재 전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이런 충격에는 어떤 기업조직도 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연방준비제도가 기업채권에 자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많은 기업조직들이 자신의 실책 때문이 아니라 단지 순간의 자금을 융통하지 못해서 파산에 이를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파산은 부실기업을 주주로부터 분리시켜 신용제공자에게 되돌려주는 효율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팬데믹과 같은 충격에 대해 정부가 온전히 방관으로 일관하면 파산이 밀물처럼 몰려오고, 결과적으로 일하는 미국시민들과 경제전반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경제가 좋은 호시절에도 파산의 정리과정에서 신용제공자(채권은행)와 노동조합 또는 노동계약자들 간에 협상을 통하여 퇴직보상이 없는 정리해고를 자주 허용하기도 한다. 여러 산업분야를 관통하며 수 천개의 기업들이 상법 제11조의 파산신청에 들어간다고 상상해 보자. 이로 인해 파산법정의 업무에 과부하가 걸릴 것이고, 구조조정의 기간 동안 조업을 지속하도록 하는 부채정리의 과정이 지연될 것이다. 따라서 많은 우량기업들이 살아남기 보다는 청산되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연이은 파산사태는 부채에 시달려온 투자자들이 헐값에 가치있는 자산을 사들일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며, 산업이 소수의 거대기업으로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경제관계를 회복하려면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경제상황에서는 파산이 창조적인 파괴의 선순환으로 작동하지만, 지금은 파괴가 거대한 조업중단과 폐업을 야기할 것이다”라고 경제혁신그룹의 책임자로 일하는 John Lettieri는 이야기한다.

비슷한 논리가 연방정부 구제지원의 여러 분야에 걸쳐서 적용되고 있다.

상원의 주류인 공화당 총무인 Mitch McConnell은 지난 4월의 한 인터뷰에서 현금유동성이 부족한 주정부들을 파산시킬 가능성을 제기했다. 나중에 그런 입장에서 후퇴하기는 했지만, 그와 공화당 동료들은 민주당 소속의 주정부들이, 한편에서는 대규모 공공실업연금의 의무를 시행하면서, 연방정부의 구제지원을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많은 주정부들이, 위기 이전에는 건전한 재무상황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이제는 세수가 격감하면서 향후 수년간 재정지출을 심각하게 축소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민간분야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경제가 정상화되는 것이 지연될 수 있다.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대상에 대한 논란의 와중에도, 고용을 유지하는 조건에서 중소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지불보호정책을 서명하는 주정부들의 노력이 진행되어 왔다.

우선적으로 3,500억불의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승인하는 연방의회의 결정여부에 있으며, 문제는 상기 금액으로는 중소기업들의 임금지불을 충당하는데 역부족이라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차적인 자금의 집행으로는 부족하여, 논쟁의 대상이 되는 대규모의 스테이크 체인사업체들뿐만 아니라, 벤처지원 기업들을 포함하여 지원할 가치가 있는 조직들도 희생당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에,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수 만개의 기업들 중에 섞여 일부 불량기업이 구제지원 자금을 받는 것에 분노한다는 사실이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며, 사람들이 누가 자격이 있고 누가 없다는 식으로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를 잘못 접근하는 것이라고 Lettieri는 말한다.

팬데믹에는 도덕적 기준이 없다. 경제를 회복시키는 조치가 공정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의존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대상이라고 분노하는 것은 상황을 개선시키지 않는다.

 

2020-05-04.

Neil Irwin

뉴욕타임즈 경제칼럼 기고가

수, 2020/05/20-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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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과 마카오는 1997년, 1999년에 각각 중국에 반환된 이후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로 정의되는 방침에 따라 통치되었다. 홍콩과 마카오 모두 중국과의 재통합 이후 특별행정구역(SARs)으로서 50년간고도의 자치권을 보장받았다.

두 도시는 중국령이 되었지만 중국 본토로부터 독립된 행정, 입법, 사법 자치권을 통해 독자적인 국정을 관할한다. 홍콩 기본법에는 중국 정부가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갖는다고 규정되어 있다. 자치권 보장이 끝나는 2047년에 과도 시한이 끝나고 나면 홍콩 도시의 미래는 중국에 귀속된다.

선거가 치루어진 이후, 중국 인민일보의 1면 논평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실렸다.

“홍콩은 중국의 홍콩이고 홍콩 사무는 중국 내정에 속한다. 홍콩 문제에 외부 세력의 간섭을 불허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브라질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밝힌 바와 같이 중국 정부는 변함없이 홍콩 문제에 대한 외부 세력의 어떠한 개입도 반대할 결의를 지녔다고 전했다”는 내용도 이어졌다.

지난 11월, 홍콩에서 구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중국의 환구시보(環球時報)는 범민주당이 “전체 452의석 중 347석을 차지하면서 압승을 거뒀다”고 보도하며 18개 구 중 17곳을 장악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홍콩 구의회(DC)는 홍콩 입법회와는 다르다. 홍콩 구의회는 “지역 사회를 위해 존재하며,교통, 환경, 거주 환경과 같이 생계와 관련하여 대중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수개월 간의 ‘반체제 반향’으로 인해 2015년 선거때 47% 투표율과 비교했을 때 71%의 높은 투표율로 이어졌고, 투표 결과 또한 상당히 상이하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범민주당이 선거에 압승하여 득의만만하자 유권자들 전반에 걸쳐 명백하게 불만스러운 모습이 나타났다.  2015년 이후 이번 선거전까지는 건제파가 지방의회를 차지하고 있었다.” 최대 친중 정당인 민주건항 협진연맹(민건령, DAB)은 기존 119석에서 줄어든 21석을 얻는데 그쳤다.

 

홍콩의 시민 불복종 운동 또는 미국의 색깔 혁명 시도?

이제 민주파는 홍콩행정장관을 선출을 담당하는 선거위원회에서 중요한 대표성을 띄게 된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식 폭력, 공공 기물 파손(반달리즘)과 혼돈 대신에 비교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에 중국을 와해하려는 워싱턴의 양당 강경파들의 분노를 감안했는지 여부는 향후 지켜볼 필요가 있다.

도시 거주민 대부분은 과거에 벌어졌던 폭력적인 상황에 명백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평온하고 정상적인 상황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홍콩을 와해 및 약화시키려는 (내부의 또는 외부의)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면서 홍콩 도시는 중국의 특별 행정 구역임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주에 미국을 “세계 불안정의 가장 큰 근원”이라 일컬으며 “미국 정치인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세계적으로 중국을 모함하고 있습니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대대적으로 일방주의와 보호주의에 관여하면서 다자주의와 다자 무역 체계를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미국이 제로섬 게임을 이어간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중국과 미국 간의 협력과 공영만이 올바른 길입니다”이라고 덧붙였다.

패권주의적 목적을 위해 다른 국가에 대한 우세를 추구하고 상호 협력을 거부하는 것은 확실히 미국의 운영 방식이 아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지방 선거 결과를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번 구의원 선거는 현재는 철회되었으나 도시의 불안을 촉발시켰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이후로 홍콩특별행정자치구에서 처음 시행된 여론의 결과입니다.”

“지난 5개월 이상 동안 폭도들은 외부(미국)세력과 협력하여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강화하여 사회 및 정치적 대립, 사회적 정서 내 균열을 일으키고 경제와 민생에 지장을 초래했습니다.”

“수개월간 이어진 사회적인 동요는 선거 과정에 심각한 지장을 주고 있다. 일부 폭도는 선거 당일에도 애국적인 후보를 교란했습니다.”

“오늘날 홍콩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여전히 폭력 및 혼란의 종식과 질서의 회복입니다.”.

신화통신은 선거 결과를 보도하지 않았다. 인민일보 역시 투표율이 높았고, 개표 작업을 완료했으며, 의원 사무실 100곳이 파손되었다는 사실을 약간 더 언급했을 뿐 선거 결과를 보도하지 않았다.

중국 영자신문 차이나데일리는 야당이 승리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동시에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뻔뻔스럽게 무법적 행동을 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는 명백한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도시 주민들은 몇 달 동안 CIA에 의한 폭력, 공공 기물 파손, 혼돈 속에서 인질로 잡혀 있었다.

현재의 상대적 평온함이 회복되고 지속된다면 미국이 새로이 중국 내정에 간섭하기 이전의 휴지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홍콩에서 보여준 무법천지의 배경은 바로 미국 제국주의의 사회악이다. 그들의 어두운 세력은 자만심, 오만함, 그리고 변화를 꺼리는 마음에 의해 홍콩 시민들이 스스로 파멸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Stephen Lendman(스티븐 렌드먼)

시카고에 거주하는 자유 연구자로서 글로벌리서치의 정기기고자이다.

월, 2019/12/30-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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