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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의 꿈을 접고 평화통일과 인권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임재근 후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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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도의 꿈을 접고 평화통일과 인권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임재근 후원회원

admin | 목, 2020/12/03- 00:25

[인터뷰]

과학도의 꿈을 접고 평화통일과 인권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임재근 후원회원

인터뷰 방학진 기획실장

 

이번 달에 인터뷰하는 대전지부의 임재근 후원회원은 통일뉴스와 오마이뉴스 기자로서 대전지역의 여러 현안에 대해 적극 발언해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에서 교육연구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06년 김창룡 묘 이장 추진 시민연대를 구성할 때 민족문제연구소를 알게 되었고 2016년 연구소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지부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으며 2019년 ‘대전현충원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서’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교육연구팀장으로 활동하면서 대전형무소 터, 산내 골령골 등 우리 주변에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곳들을 다니면서 평화기행을 안내하고 있다. 2019년 여름 산내 골령골에서 해설을 하는 장면.

 

임재근 회원은 2016~17년 촛불항쟁 시 61차례 131일간의 대전촛불시위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참여하며 기록사진을 찍어 <대전대전(大田大戰) 봄으로 간 촛불>(대장간, 2017)을 펴냈다. 2019년 8월에는 한국전쟁이 대전지역에 남긴 상처들을 증거하는 사진 27점을 전시한 임재근 사진특별전 〈콘크리트 기억〉을 개최했고, 같은해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는 제18회 민주언론상을 수상했다. 올해에는 <한국전쟁기 대전전투에 대한 전쟁기억 재현 연구>(북한대학원대학교, 2020)라는 논문으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난 8월에 한국전쟁·대전전투 70년 기록전 〈전쟁기억,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을 열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문제를 사회 이슈로 부각시켰다. 서면으로 진행된 임재근 후원회원과의 인터뷰를 정리해 보았다.

 

문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답 : 안녕하세요. 저는 대전에 있는 비영리민간단체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에서 교육연구팀장으로 활동하면서, 대전지역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양한 방식의 평화통일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소중함과 통일의 필요성을 실내 강연으로 진행하기도 하구요. 대전형무소 터, 산내 골령골 등 우리 주변에 전쟁의 상처가 남아 있는 곳들을 다니면서 평화기행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영상과 사진을 통해서도 평화통일과 인권, 역사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의 꿈은 과학도였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카이스트에 진학했는데, 지금은 그 꿈을 잠시 뒤로 미루고 통일교육을 통해 통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시대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대학 시절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면 항일운동에 나서는 것이 시대적 요구였다면, 분단시대에는 통일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며 과학도의 꿈은 통일된 나라에서 이루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문 : 민간인 학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나 이유는 어떤 것일까요?

답 : 민간인 학살 사건이 사회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활동과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예요. 2015년 2월 말에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민간 차원의 유해발굴이 일주일 동안 진행된 적이 있었습니다. 2014년 민족문제연구소, 4.9통일평화재단, 한국전쟁유족회 등이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공동조사단’을 결성해 진주에서 유해발굴을 진행한 후 두 번째로 선정된 지역이 제가 활동하고 있던 대전의 산내 골령골이었습니다.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를 비롯한 대전의 여러 단체들도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유해발굴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유해발굴 지원팀에 결합해 유해발굴에 동참했습니다. 때마침 그때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써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유해발굴에 동참하면서 논문의 주제를 ‘한국전쟁 시기 대전지역 민간인 학살 연구’로 잡고, 논문을 쓰게 되면서 더 본격적으로 민간인 학살 사건과 관련한 활동과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평화기행 해설을 다니면서 틈틈이 찍은 사진을 모아 <콘크리트 기억>이란 제목으로 노근리평화기념관과 옛 충남도지사관사촌 ‘테미오래’에서 사진전을 진행했다. 2019년 테미오래 6호 관사에서 진행한 사진전 전시장의 한 장면.

 

문 : 옛 대전형무소 사진전을 개최하셨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답 :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주요 사업 중 하나가 ‘평화기행’이에요. DMZ 평화기행이나 제주 평화기행도 다니지만, 저희가 활동하고 있는 지역이나 인근 지역으로 더 자주 평화기행을 다녔습니다. 대전에서는 주로 대전형무소 터와 산내 골령골을 찾았구요. 대전 인근의 충북 영동 노근리로도 평화기행을 자주 다녀왔습니다. 평화기행을 다녀오고, 준비하면서 그 현장에서 많은 사진들을 찍곤 했었는데요. 2019년에 노근리국제평화재단에서 사진전을 열자고 제의해 사진전을 진행했습니다. ‘콘크리트 기억’이란 제목을 단 사진전의 주요 키워드는 ‘전쟁’, ‘학살’, ‘감옥’이었구요. 구체적인 장소는 ‘노근리 쌍굴다리’,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현장’ 그리고 ‘옛 대전형무소 터’였습니다. 27점의 사진을 모아 7월 2일부터 2달 간 노근리평화기념관 전시실에서 전시를 진행했고, 9월부터는 한 달여 간 대전으로 가져와 옛 충남도지사관사촌 ‘테미오래’에서 전시를 이어갔습니다. 충북 영동 노근리에서 시작한 사진전을 대전을 찍고, 올해 한국전쟁 70년을 맞아 서울의 민족문제연구소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도 하고 싶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아쉽게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문 : 산내 학살에 대해 독자 분들에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답 :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에 의해 대전형무소 재소자를 비롯해 보도연맹원 등 1,800명에서 최대 7,000명가량이 무참히 학살당해 암매장된 사건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서 전 국토가 무덤이라 할 만하지만, 그 중에서 대전 산내 골령골 사건은 피해 규모와 성격에 있어서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사건입니다.
희생자들은 대전 지역에만 국한된 것에 아니라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등 관련자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분들이 많았습니다. 암매장된 구덩이는 길이가 작게는 20~30m에서, 50m, 100m, 최장 200여 m에 이르기까지 무척 깁니다. 이 구덩이들을 모두 이으면 1km에 달할 것으로 보여 대전 산내 골령골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도 부르고 있습니다. 최근 산내 골령골에서는 사건 발생 70년 만에 대규모 유해발굴이 진행되었습니다. 9월 21일부터 대략 40여 일간 진행된 유해발굴 작업을 통해 약 80평 공간에서 유해 200여구가 발굴되었습니다. 대전 산내 골령골은 향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단위 위령시설인 평화역사공원(진실과 화해의 숲)이 조성될 예정입니다.

 

지난 2019년 봄에 찍은 산내 골령골의 모습. “흩날리는 벚꽃 잎이 산내 골령골 마당 위로 떨어진다. 떨어지는 분홍 꽃잎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수천여 명의 넋이라도 되는 듯 참으로 슬픈 봄날이다.

 

문 : 민족문제연구소와의 인연과 향후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답 : 제 기억으로 민족문제연구소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6년 대전지역에서 대전지부가 주축이 되어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행위자 김창룡 묘 이장 추진 시민연대’를 구성할 때였습니다. 이때부터 김창룡 등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민족반역자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매년 현충일에 김창룡 묘 이장 촉구대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19년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와 함께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찾아내 정리하는 ‘대전현충원 친일반민족행위자 백서’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해방 이후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후과(後果)들이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제대로 된 친일청산이 시급합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해방된 조국은 분단된 조국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통일을 이루었을 때에야만 온전한 해방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대전지부에서 항상 건배사로 ‘친일청산, 민족통일’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요, 이 구호를 완수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올해 한국전쟁·대전전투 70년을 맞아 옛 충남도지사관사촌 ‘테미오래’에서 기록전 ‘전쟁기억,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을 전시했다. 지난 10월 8일에 전시회 오프닝 강연을 옛 충남도지사공관 야외정원에서 진행했다.

 

문 : 그 밖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세요.

답 :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올해를 뜻깊게 보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미루고 있던 박사학위 논문을 ‘한국전쟁기 대전전투에 대한 전쟁기억 재현 연구’라는 제목으로 마무리지었습니다. 논문을 통해 대전전투를 중심으로 살펴본 한국전쟁 기억재현의 시선들이 군인들에게 맞추어 있었고, 호전적이고, 적대적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고찰해 보았습니다. 전쟁은 우리의 삶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전쟁은 승패를 떠나 양측 모두에게 심대한 인명피해를 주었습니다. 전투에 나선 군인들보다 자신을 보호할 방어수단이 존재하지 않았던 민간인들은 피아(彼我)의 학살 속에, 폭
격 속에, 그리고 피란과 굶주림 속에 죽어가면서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전쟁의 승리를 다짐하는 호전적 전쟁기억을 통해서는 전쟁을 미리 방지할 수 없고, 오랫동안 호전적, 적대적 입장에서 전쟁기억에 노출된 사회에서는 전쟁에 친화적으로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전쟁기억 재현은 오랫동안 배제됐던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기반으로 재조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대전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벌어진 ‘국가를 위한 죽음’과 ‘국가에 의한 죽음’이 양극단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대전의 서북쪽 유성구 갑동에는 국립대전현충원이 위치해 있고, 그 반대 남동쪽인 동구 낭월동엔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불리는 골령골이 있습니다. 현충원은 ‘국가를 위한 죽음’의 상징이고, 골령골은 ‘국가에 의한 죽음’의 상징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전쟁기억은 ‘국가를 위한 죽음’에 너무 치우쳐 있고, ‘국가에 의한 죽음’은 외면당하고, 배제되어 왔습니다. ‘국가에 의한 죽음’에 대해 철저히 성찰하고, 교훈을 찾을 때에만 비극을 재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국가에 의한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전쟁기억을 평화를 위한 기억으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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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근현대사기념관, 독립전쟁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개최

 

10월 23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며, 강북구와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가 후원하는 독립전쟁 선
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이 개최되었다. 이번 학술회의는 대한민국임시
정부의 독립전쟁선포 100주년이자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이 되는 올해 독립전쟁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에 부응하고자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3·1운동 이후 본격화한 만주 일대의 항일무장투쟁을 재조명하였다.
학술회의는 개회식을 시작으로 Ⅰ부에서 기조발제와 주제 발표 및 토론, Ⅱ부는 종합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임헌영 소장의 개회사와 박겸수 강북구청장의 환영사로 학술회의가 시작되었다.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학술회의 Ⅰ부는 심철기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실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기조발제를 맡은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는 ‘독립전쟁과 신흥무관학교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독립전쟁에서 신흥무관학교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 발표하였다. 제1주제 ‘1910년대 유교계의 독립운동과 신흥무관학교’는 서동일 국가보훈처 학예연구사가 발표하였다. 일제 강점 초기 만주에 정착한 유림들과 신흥무관학교의 관계를 중심으로 유교계의 독립운동기지 건설 참여에 대해 다루었다. 토론자로 나선 박성순 단국대학교 교수는 신흥무관학교와 유교계가 어느 정도로 관계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였다. 이어서 제2주제 ‘신흥무관학교 출신(자) 현황 분석과 독립운동’은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발표하였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구축한 신흥무관학교 인명 DB를 토대로 신흥무관학교 출신자들의 활동과 분화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토론자로 나선 숭실대학교 황민호교수는 신흥
무관학교와 관련이 있는 436명의 인물들을 직접관련 단체 9개와 간접관련 단체 5개로 구분하고 중요 인물들의 특징을 파악한 것은 엄청난 공력이 들어가고 동시에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의 졸업 후 독립운동과 관련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이나 단체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하였다. 
다음으로 한성민 대전대학교 교수가 제3주제인 ‘일본의 간도출병 배경 검토’를 발표하였다. 일제가 1920년 ‘훈춘사건’을 빌미로 간도지역에서 대규모 군사행동을 감행한 ‘간도 출병’의 배경을 당시 사료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토론자 강릉원주대학교 이명종교수는 일제의 ‘간도출병’을 전체적인 배경을 통해서 종합적으로 이해하려 했다는 데 연구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마지막으로 제4주제는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청산리 전역과 절반의 작전’으로 발표하였다. 청산리 전투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독립전쟁과 일본군의 활동을 추적하는데 지도를 활용하여 보여줌으로써 청중들의 관심을 이끌어 내었다. 토론자 동덕여자대학교 이승희 교수는 <吉長日報>라고 하는 중국신문을 검토대상으로 삼고 청산리 전투에만 국한하지 않고 중국 동북지역 독립군활동의 양상과 일본군의 움직임을 규명한 점과 중국 동북지역 한인 무장투쟁과 일제 침략정책의 상관관계를 도출해내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연구사적 의의가 크다고 하였다.
Ⅱ부 종합토론에서는 윤경로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의 주재로 발표자 및 토론자 전원이 참여하여 열띤 논의를 벌였다. 이번 학술회의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상황에 맞춰 관계자와 예약 참석자 50명만 제한적으로 참석하여 진행되었지만 학술회의의 모든 진행 과정을 촬영하여 편집영상을 근현대사기념관 홈페이지에 게시함으로써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 홍정희 근현대사기념관 학예연구원

수, 2020/12/02-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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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원 마당]

잊으면 잃고, 잃으면 잊혀질 역사와 진실

 

김지형

 

민족문제연구소(이하 ‘민문연’)를 만나러 가는 길, 휴대전화를 분실했습니다. 다행히 습득하신 분과 연락이 닿아 휴대전화를 되찾았고, 효창공원앞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12시 55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뙤약볕이 내리치는 언덕길을 얼마나 지났을까요. 집결지인 백범기념관이 눈앞에 보였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인파, 행사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땀에 젖은 옷깃은 축축했고, 늦은 것에 대한 무안함과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감사하게도 민문연 선생님들께서 땀에 젖은 지각생을 친절히 안내해주셨고, 기쁘게도 행사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건네주신 생수로 목을 축여 더위를 씻어낼 수 있었고, 진중함에 위트까지 더해진 해설에 금방 몰입되어 탐방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탐방의 시작은 백범 김구 선생님의 묘역 앞이었습니다. 백범 선생님의 삶과 같이 위엄과 담대함이 느껴질 만큼 커다란 묘역이었습니다. 본래 선생님은 민중 위에 군림하지 않는, 민중과 어깨를 나란히 하길 바라셨던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왕릉처럼 거대한 무덤 속에 잠들어 계신 선생님이지만, 그분은 지금도 자신의 호(號)처럼 평범하게, 민중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함께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나마 들었습니다.
백범 선생님께 묵념을 드리고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 백정기 의사 그리고 안중근 의사께서 잠들어 계신 묘역 앞에 섰습니다. 그분들께서 민족을 위해 손에 쥐었던 총과 폭탄의 중압감은 얼마나 무거웠을까요. 오히려 나라를 위해 몸 바쳐 싸울 수 있음을 영광으로 생각하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숙연함만이 느껴졌습니다. 독립을 위해 온몸으로 희생하신 그분들 앞에 이외에 어떤 감정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끝내 유해가 발견되지 못한 안중근 의사는 허묘 안에서 넋으로만 잠들어 계셨습니다.
그분은 민족에 긍지와 독립 열망의 불씨를 쥐어 주셨지만, 후손인 우리는 그분의 유해 한조각도 찾아드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었습니다. 탐방 중 가장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던 순간이었습니다.
다음은 임정요인 묘역 앞이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초대의장 이동녕,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차리석, 군무차장 조성환……. 부끄럽지만, 저에게는 성함만 얼핏 들어본 것이 전부인 세 분이었습니다. “아, 내가 정말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내가 진정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한 게 맞는 것인가?” 솟구치는 부끄러움에 잠시 더위를 잊을 만큼 온몸에 한기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동안 잊고 살아와 죄송한 마음입니다. 묵념을 올리며 앞으로 세 임정요인의 행보를 기억에 새기고, 감사함을 마음에 새길 것을 다짐했습니다.
탐방의 마무리는 대망의 식민지역사박물관이었습니다. 입구부터 상해임시정부 정문의 모습을 본따 지어올린 계단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와 탐방객 모두는 시간을 거슬러 오르듯 계단을 올랐고, 내부에는 민족의 아픔과 치욕이 기록된 일제강점기 사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조들의 목을 겨눴을 일제의 총과 칼부터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기록물까지……. 모든 것들이 슬프지만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민족수난의 증거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인연, 소중한 공간, 하물며 소중한 물건 하나만 잃어버려도 적지 않은 아픔을 느낍니다. 아픔의 크기만큼 그것이 소중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비할 바는 아니나, 행사장으로 가는 길 휴대전화 하나만 잃었을 뿐인데 큰 당혹감을 느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물며 국가를 잃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 어떤 감정일까요. 형언하려는 것이 주제넘은 일일 것이며, 저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잊어도, 잃어도 안 될 역사와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간담회 자리에서 부친의 강제동원 역사를 말씀하신 어르신을 뵈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어르신의 또렷하고 강인한 시선, 단단하고 꼿꼿한 어깨를 잊을 수 없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아픈 역사를 생생히 목도하고 기억하기 위해 눈빛에 총기를 잃지 않으시고, 일제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견디기 위해 어깨에 더욱 단단히 힘을 주고 살아오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이 실린 시선과 어깨를 통해 그분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시대의 증인으로서 현장에 함께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끝으로 저를 박물관 회원으로 연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저에게 시원한 물을 건네주고 뜻깊은 현장을 의미 있는 영상으로 남겨주고 촬영과 더불어 원활한 현장 진행을 위해 달려주었으며 듣는 이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게 해설을 진행해주었고, 이 모든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해준 민문연 모든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뜻깊은 자리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 2021/07/2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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