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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할머니가 손에 쥔 치아 유골… “교회 문 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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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할머니가 손에 쥔 치아 유골… “교회 문 열지 마세요”

admin | 수, 2020/11/25- 08:10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대전 골령골 유해발굴현장 ‘긴급’ 공동조사단에 참여한 이유

제 고향은 대전입니다. 가끔 내려가서 야구를 보거나 쇼핑을 하고 빵집을 갑니다. 11년간 했던 일이죠. 그러나 이번에 내려간 고향은 달랐습니다. 이곳은 1950년 한국전쟁 단일지역 최대 민간인 학살 현장, ‘대전 산내 골령골’입니다.

생각해본 적도 없는 대전 학살의 현장에 간 이유는 심규상 <오마이뉴스> 기자의 기사 때문입니다. 15일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상임대표 박규용)는 긴급 공지를 통해 “공동조사단에서 긴급히 일손을 찾고 있다”고 참여를 호소했습니다. ‘긴급’과 ‘호소’라는 단어가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관련 기사] “16일 대전 유해 발굴 현장보존 자원봉사자 찾아요” http://omn.kr/1qir2)

아버지의 금니

▲ 유족 박귀덕 할머니 ⓒ 홍승주

16일 낮 12시, 대전역에서 택시를 타고 30분을 가서 ‘동구 낭월동 13번지’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단풍이 물든 평범하고 낮은 산입니다. 내리자마자 새 소리가 들립니다. 심지어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서울에서 왔다고 말하자 할머니 한 분이 사탕을 주며 꼭 안아줬습니다.

“아따, 고맙소잉. 돈 있으면 맛난 거 사주고 싶소잉. 젊은이들이 참 순해서 좋소. 내년에도 보소. 오메~ 참말로 이런 가슴 찢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소.”

대전에서 들은 광주 사투리였습니다. 박귀덕 할머니의 아버지는 민간인 학살 당시 광주에서 대전까지 끌려와 희생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광주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자주 대전에 방문해 위령패 옆 꽃을 바꿔놓습니다.

청년 자원봉사자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박귀덕 할머니의 손에는 ‘치아 유골’이 있었습니다. 치아의 금니를 만지며 ‘자신의 아버지도 금니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할머니의 말에 제가 어디 있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금니가 달린 치아는 살아있는 사람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유골을 말리고 있습니다. ⓒ 홍승주

“교회 문 열지 마세요”

“자원봉사에 오신 분들에게는 현장 설명을 먼저 합니다. 하지만 현장 설명보다 눈 앞에 펼쳐진 수많은 뼈더미를 보면 설명으로는 다 할 수 없는 충격에 직면하죠.” (공동조사단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팀장)

도착하자마자 오후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발굴지에서 나온 유골들은 세척 작업 후 아세톤이 가득 든 통에 담가둡니다.

저는 유골들을 아세톤 통에서 꺼내 건조 쟁반에 놓아두는 일을 했습니다. 길고 속이 빈 다리뼈를 통에서 들어 올리니 찬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아세톤 냄새도 훅 덮쳐왔습니다. 쟁반이 부족할 정도로 유골이 많았습니다. 거리를 약간만 떼어 두고 번호가 붙여진 쟁반에 최대한 많은 유골을 배치했습니다.

쟁반이 다 차면 햇볕 좋은 곳으로 옮깁니다. 70년 만에 햇빛을 보는 희생자의 유골은 정말 많았습니다. 모닥불을 피우려 모아 놓은 장작 나무 같던 다리뼈, 두개골 뼈, 잘 부서지는 잔뼈, 그리고 단추, 신발 밑창, 옥색의 탄피, 탄피들.

▲ 건조 중인 뼈들 ⓒ 홍승주

함께 작업하던 박정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국장이 말합니다.

“제가 간호학과를 나왔는데, 그곳에서 보던 것보다 이곳에서 훨씬 많은 뼈를 봤어요.”

임마누엘 교회에 딸린 화장실을 쓰면 된다는 안내를 받고 교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준비 없이 보게 된 광경입니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 임마누엘 교회 안 뼈 사진 ⓒ 홍승주

모래주머니를 나르는 개미들

“성미산학교, 지역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단체 등 많은 분이 자원봉사로 다녀갔어요. 발굴장에 사오십 명이 바글바글할 때도 있죠. 공동 발굴단은 멤버가 딱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하루를 와서 조사해도 공동 조사단의 일원입니다.” (공동조사단 총괄 담당 안경호 4.9 평화재단 사무국장)

저는 올해 발굴작업이 다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골령골로 갔습니다. 유해 발굴은 겨울 동안 잠시 멈췄다가 2021년에 다시 시작합니다. 봉사자들은 내년에 있을 추가 유해발굴을 위해 파헤친 구덩이를 보존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뼈가 있는 부분은 천으로 단단히 감쌌습니다. 큰 비닐 포장을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붙잡고 구덩이 바닥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비닐 포장이 바람에 날리지 않게 모래주머니를 포장 이것 저곳에 올려놓았습니다.

▲ 구덩이 보존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 홍승주

서울에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던 제가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모래주머니를 날랐습니다. 집에 와서야 중노동의 현장이었다는 걸 쑤신 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휴우’ 소리 한마디가 사치스러운 곳이었지요.

공동 발굴단은 호흡이 척척 맞았습니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짐을 지고 나르는 개미처럼 힘을 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여기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발굴단을 이끄는 안경호 사무국장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파스를 붙이는 사람이 많아요.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해야 하니깐요. 흙벽을 깎고 나르는 일이 상당히 고됩니다.”

저는 사람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발굴 현장에 참여하는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임재근 팀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희생된 분들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하겠다는 부채감과 책임감이 큽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이 또다시 벌어진다면, 나와 내 가족들도 그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 공동조사단 모두는 자신의 가족 유골을 추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산속이라 오후 4시가 넘으니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할 일이 많기에 누구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걱정도 미뤘나 봅니다. 유골을 꺼낼 때 마다 묻혀있던 아픔이 고스란히 제 마음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죽은 이로부터 배우는 인권

▲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 ⓒ 홍승주

해가 완전히 졌음에도, 조사단은 작은 불빛에 의지해 세척, 분류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발굴 현장 한구석에 마련된 오두막에서 감식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도 있었습니다. 교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유가족을 찾아주는 게 문제 해결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까요?
“유골이 집단으로 섞였기 때문에 디엔에이 검사할 필요도 없고 나오지도 않아요. 유족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검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공동조사단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각기 다른 정치 이념을 갖고 있던 남북한이 한국전쟁을 하며 발생했죠. (…) 유해발굴을 통해 죽은 자들의 인권을 우리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70년 전 골령골에서 벌어진 일

1950년 골령골에서 특별경비대원으로 학살 현장에 있었던 김아무개씨는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나와 당시 지휘관이었던 심용현 중위가 ‘사격 개시’ 명령을 내렸다고 증언했습니다. 심 중위의 명령에 따라 경찰과 헌병이 각각 10명씩 조를 짜서 재소자들의 등을 발로 밟고 뒷머리에 총을 쏘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재소자들을 앉혀서 구덩이 쪽을 바라보게 하고, 재소자 뒤통수에 대고 쏘는 거야. 한 10m 뒤에서 쏘면, 피와 골 허연 것이 튀어서 바지가 엉망진창이 돼. 나중에는 군복을 새로 갈아입히고, 바짝 들이대라고 해.

총구를 머리에 바짝 들이대면 안 튀어. 그렇게 한 번 쏘고 나서, 꾸무럭거리고 있으면 권총으로 또 쐈어. 얼마 안 돼서 구덩이에 시신들이 거꾸로 쑤셔 박혀서 다리가 위로 서고, 별거 다 있었어. 헌병지휘관이 청년방위대에 산 위에서 돌을 굴려와 시신들을 눌러 버리게 했어.”

▲ 1950년대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현장입니다. 미국 장교 애버트 소령이 찍고, NARA가 발굴했습니다. ⓒ 미국립문서보관소

오후 7시. 공동조사단 숙소로 돌아가는 조사 단원 한 명과 함께 대전역으로 가는 택시를 탔습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너무 힘들어서 집에 갈 기회다 싶었죠. 대전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주용성 사진기자에게 조사단 전원의 넘치는 열정에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한 번 오면 계속 오게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몸 힘든 것만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2021년에 발굴이 다시 시작되면 한 번 더 오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달리는 택시 창문으로 보이는 산속 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로등 천국 서울에 사는 저는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0년 전, 오늘 제가 만진 유골의 주인들도 이런 어둠 속에 있었겠지요. 구덩이 밖에서 무릎을 꿇고 죽음을 기다리던, 그리고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던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남겨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 공포와 억울함, 그리고 한. 지난 70년이 흐르는 동안 골령골의 어둠 속에는 영혼의 울음이 잠겨 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

보도연맹은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를 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입니다. 남한 정부는 보도연맹을 적으로 판단합니다. 한국전쟁 직후 1950년 6월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이승만 정부의 군인과 경찰은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대전형무소 재소자를 비롯한 보도연맹원 등을 학살했습니다.

희생자는 최소 1800명에서 최대 7000명 가량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한국전쟁 당시 단일지역 민간인 피해 최대 규모입니다. 그들은 무참히 학살되어 암매장되었습니다.

학살 후에도 남겨진 가족들은 억울한 죽음에 대해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연좌제 때문입니다. 유가족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고 아픔은 계속되었습니다. ‘죽인 자’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들은 권력을 틀어쥐고 있었습니다.

국가는 50여 년 간 이 사실을 덮었고, 진실은 2007년이 되어서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희생자들은 어두운 땅속에 묻혀 있다가, 70년 만에 유해발굴을 통해 볕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11월 8일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학살이 이뤄진 대전 골령골에서 여성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처음으로 발굴됐습니다.

올해 40여 일간 진행된 유해발굴은 마무리되었고 2021년에 추가 유해발굴이 진행됩니다. 2022년부터 이곳 산내 골령골에 평화역사공원(진실과 화해의 숲)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평화역사공원이 들어서기 전까지 공동발굴단이 될 기회는 1년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발굴이 다시 시작되면 그때 <오마이뉴스>를 통해 한 번 더 알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사단원 선배들이 남긴 편지를 소개합니다.

“이 순간에 함께 한 증인으로서 앞으로도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 성미산 학교 학생들

▲ 성미산 학교 학생들의 편지 ⓒ 홍승주

홍승주(hongsam3503)

<2020-11-23>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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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8/02/0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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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시민단체, 일본 정부에 4번째 요청서 제출
일본 정부 “한국 정부 구체적 제안 있으면” 일관
한국 관련 예산 없어…상황 진척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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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태평양전쟁 때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대한 회의가 열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구체적인 제안을 하면 한국인 유골 반환을 검토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상황을 진척시켰으니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일본 시민단체도 열심히 지원하겠습니다.”

8일 일본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일본 시민단체 ‘전몰자 유골을 가족 곁으로’의 활동가인 우에다 게이시는 한국 정부가 태평양전쟁에 군인·군속으로 동원됐다가 희생된 한국인 유골 반환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한국의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소속 유족들과 민족문제연구소, 일본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에 한국인 유골 반환 요청서를 제출했다. 2014년 이후 네번째다. 유골로도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조선인은 최소 2만10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2016년 4월 ‘전몰자 유골 수집 추진법’을 만들어 태평양전쟁 일본인 전몰자 유골 수집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대상을 ‘우리 나라(일본) 전몰자 유골’로 한정해 한반도 출신을 배제했다.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인 유골도 찾으라는 요구를 계속하지만, 일본 후생노동성은 “한국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한·일 시민단체는 유골에 대해 디엔에이(DNA) 감정과 함께 안정동위체 감정을 실시하라고 일본 정부에 요청했다. 안정동위체 감정은 방사기원동위원소를 활용해 유골 주인이 어느 지방 출신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한국 정부가 한국전쟁 전사자 유골 신원 확인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나라뿐 아니라 출신 지역까지 가려낼 수 있다. 일본 정부도 필리핀에서 수집한 유골 중 일본군 유골을 구별하기 위해서 안정동위체 검사 도입 연구비를 내년 예산에 500만엔을 책정한다. 하지만 후생노동성 원호국 사무과장 요시다 가즈로는 “안정동위체 감정은 아직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며 안정동위체 검사를 한국인 유골 구별에 사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일본 국회의원들도 “‘일본인 유골은 일본인 품에, 한국인 유골은 한국인 가족 품에’가 맞다”고 말했지만, 요시다 과장은 “한국 정부의 구체적 제안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며 “한국 정부에서 구체적 제안은 아직 없다”고도 했다.

한국 정부는 관련 예산도 책정하지 않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일본 정부에 오키나와에서 숨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의 유족 유전자 자료를 줄 테니 일본이 한국인 유골을 가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일본은 검토하겠다고만 한다”며 “한국 정부가 처음부터 유골 발굴에 참여하는 것은 외교적 문제 등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인 유골 반환을 위해 지난해 예산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해도 관련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오키나와 관련 유족 유전자 검사는 (한국에서) 50명을 했는데 사업비 2천만원은 사할린 유골 반환 사업에서 절약한 예산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mail protected]

<2018-02-08> 한겨레

☞기사원문: “한국인 유골 반환 한국 정부가 나서달라”

금, 2018/02/0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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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포트 ▶

오는 4월 일본 초등학교에 보급되는 도덕 교과서입니다.

생명과 재산도 필요없다는 사람이 아니면 나라를 만드는 일을 할 수 없다.

19세기 조선침략 이른바 ‘정한론’을 주장한 ‘사이고 다카모리’를 일본의 발전을 이끈 영웅으로만 표현됩니다.

[오우카/ 일본 시민단체] “침략전쟁을 추진하고 협력한 사람들입니다. 그럼 사람들을 도덕 교과서로 롤모델로 하는 것은 안 됩니다.”

다른 교과서들도 ‘요시다 쇼인’이나 ‘사카모토 료마’ 같은 정신적 지도자들을 다뤘는데 조선침략에 앞장섰던 ‘이토 히로부미’ 등이 이들의 영향을 받은 후계자들입니다.

특히 2차 대전에 대해서는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일본을 언급하며 자신들을 피해자로 묘사했습니다.

반면 위안부나 난징학살 등 일본이 주변나라에 끼친 범죄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규수/히토츠바시대학 교수] “침략자의 모습은 다 상실 돼버리고 피해자 의식만이 남아 있는 그것도 역사적 왜곡의 일종이라고 우리의 입장에서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 측은 조선 침략을 미화한 내용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일본 도덕 교과서 출판사 관계자]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을 주장한 것은 역사적으로 맞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에서는 그런 내용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내년 검정을 앞둔 중학교 교과서 파일럿판에는 침략전쟁에 참가한 군인들을 전쟁영웅으로 묘사하는 등 군국주의적 색채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일본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원우/동북아 역사재단 교수] “침략론자가 평화론자로 학생들에게 잘못 인식 되어질 수 있는, 아베 정권이 의도하는 헌법의 개정 그리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자는….”

교과서를 검정한 일본 문무 과학성은 학습 지도요령에 따라 각 출판사가 작성했을 뿐 정부차원에서 요구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우리 정부는 일본 도덕 교과서의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최종 보급된 교과서를 검토한 뒤 대응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MBC뉴스 손령입니다.

손령기자 ([email protected])

<2018-02-02> MBC

☞기사원문: 70년 만에 부활한 日 도덕 교과서..일본이 피해자?

금, 2018/02/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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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17개 학교 친일 확인…광덕 중·고 ‘새 교가’ 만들기로
충북 19곳 확인, 충남·울산 조사 나서…친일 잔재 청산 운동

광주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친일 음악인 등이 만든 ‘친일 교가’를 바꾸는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학교들은 입학식 때 교가 제창을 식순에서 빼고, 교가를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친일 교가 교체는 교육계가 펼치는 친일청산 작업 가운데 하나다.

교가 바꾸기의 물꼬를 튼 것은 광주지역 학교들이다. 광주시는 광주교대 산학협력단에 맡겨 지난달 9일 나온 ‘지역 친일 잔재 조사용역’에서 17개 학교 교가가 친일 음악인이 작곡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18일 밝혔다. 작곡가 김동진이 서강중·고, 동신중·고, 동신여중·고 등 11개교, 현제명이 숭일중·고 등 3개교, 김성태가 광덕중·고 등 2개교, 이흥렬이 광주일고 교가를 각각 작곡했다. 이 가운데는 전남대·호남대·서영대 등 대학 3곳도 있다. 이들 학교 교가 작곡가 4명은 모두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다. 광덕중·고 신흥수 이사장은 졸업식에서 교가 제창을 하지 않도록 하고, 3월 입학식 때 신입생이 새로운 교가를 부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학교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후손이 설립한 학교다. ‘학생독립운동의 발원지’인 광주일고는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에 학교 측이 학부모·교사를 상대로 설문조사에 나섰고, 동문회가 지난 11일 열린 총동창회에서 교가 바꾸기 여부에 대한 토론을 벌여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동문이자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인 김종률씨에게 교가 작곡을 맡기기로 했다. 올해로 건학 111주년을 맞은 광주 첫 사립학교인 숭일중·고도 3월 교가 교체 대책반을 꾸리기로 했다. 나머지 중·고교도 올해 1학기 안으로 교가를 바꾸기로 했다.

울산시교육청은 다음달부터 친일 교가·교명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인다. 경남도교육청도 지역 교육계에 남은 친일 잔재에 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도교육청은 친일 교가 교체 작업을 위해 다음달부터 친일 행적 의혹이 있는 4명의 작곡가들에게 대한 검증을 시작할 계획이다. 검증을 마친 뒤 친일 관련 교가를 바꾸는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충청지역에서도 도내 교가 가사·작곡가 명단을 <친일인명사전>과 대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충북도교육청은 현재 19개교 교가를 친일 음악가가 작곡한 것으로 확인했다. 충남도교육청은 전체 학교 713곳 교가의 친일성 여부를 조사해 20일 조사 결과와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충남도교육청 관계자는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 학교 구성원들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할 수 있도록 협의할 것을 권고하고 필요에 따라 교육청이 강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명재·백승목·권순재 기자 [email protected]

<2019-02-18> 경향신문 

☞기사원문: “친일 작곡가가 만든 ‘교가’ 바꾸자” 광주 학교들 선두로 확산

※관련기사 

☞연합뉴스: 친일인사 교가 없애고 일본 나무 뽑고…일제 잔재 지우는 교육계 

☞연합뉴스: “친일 음악가가 만든 교가 교체”…충북교육청 전수조사 

☞굿모닝충청: 친일 음악인이 만든 교가 충남에 ‘수두룩’ 

☞한겨레: 광주일고, 친일 음악인이 작곡한 교가 바꾼다

화, 2019/02/1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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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을 독립공원으로]

독립운동가 묘역 만들었지만
임시정부 기념관 하나 없어

효창공원 안장된 애국지사들
대한민국 정통성 상징적 인물
민족독립공원 성역화에 최적
보훈처 “국가차원 예우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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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16일 오전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모습. 삼의사 묘역과 의열사 앞으로 효창운동장이 거대하게 들어서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있는 효창공원(옛 효창원)을 국가 차원의 민족·독립 공원으로 격상하자는 논의가 쏟아지고 있다. 백범 김구 등 임시정부 지도자들이 묻힌 효창공원을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분명히 하자는 뜻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효창공원 성역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지난해 1월 펴낸 책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우리는 임시정부를 기념하는 기념관 하나 없다. 적어도 효창공원에 독립열사들을 모시는 성역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썼다. 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인 2015년 2월9일에도 효창공원의 김구 선생 묘소를 참배한 뒤 “후손으로서 제대로 도리를 다하자면 효창공원 일대를 우리 민족공원·독립공원으로 성역화하고, 여기저기 흩어진 우리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역도 함께 모아야 한다. 중국에서 모셔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도 다시 봉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독립운동에서 찾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지난 3·1운동 기념사에서 “3·1운동의 정신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대한민국 역사의 주류로 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해에는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광복절’에 효창공원을 참배한 뒤 “독립운동가들을 더 이상 잊혀진 존재로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등 애국자들에 대한 정책을 담당하는 국가보훈처도 효창공원 독립공원화에 긍정적 태도다. 보훈처의 고위 관계자는 2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효창공원을 민족공원으로 탈바꿈시키고 그곳에 안장된 독립운동가들을 국가 차원에서 예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내부적으로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 위해 효창공원 앞에 나쁜 의도로 지어진 효창운동장을 철거하고, 효창공원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켜 국민들이 이곳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보훈처는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효창공원 민족공원화 사업’을 추진했다가 체육단체, 주민 등의 반발에 부딪혀 좌절한 경험이 있다.

여당 쪽에서도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연구소인 민주연구원은 최근 ‘대한민국 정통성 확립을 위한 역사의 재정립’ 보고서를 펴냈다. 박혁 연구위원은 이 보고서에서 “백범 김구를 비롯해 효창원에 안장된 분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불의에 항거한 민주주의 이념, 평화통일 이념 등 ‘대한민국 헌법적 가치’를 세운 인물들”이라며 “대한민국 정통성과 헌법 정신의 회복을 위해 효창원에 계신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에 대한 국가적 예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를 위해 효창원을 성역화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효창공원에 묻힌 독립운동가는 7명이다.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과 이동녕 주석, 차리석 비서장, 조성환 군무부장, 그리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모시기 위한 가묘도 마련돼 있다. 이들은 대한민국 독립과 건국의 아버지들이지만, 아직 제대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효창공원은 국립 시설이 아니다. 서울시 용산구가 근린공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성역화 방안은 다양하게 제시된다. 먼저 효창공원을 국립묘지로 격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시업 성균관대 전 명예교수는 “효창원 묘역은 그곳에 안장된 이들에 걸맞게 국립선열묘지가 돼야 한다”며 “효창독립공원, 국립 효창원 등 이름을 어떻게 짓건 국립묘지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효창공원과 지역적으로 무관한 경기도의회도 지난해 8월 ‘효창원 국립묘지 승격 촉구 건의안’을 채택해 국회에 제출했다. 김민석 민주연구원장은 “백범 김구 선생 등 건국의 주역을 국립묘지에 모셔야 하며, 이장이 어렵다면 효창공원을 국민적 상징성이 있는 공간으로 승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효창공원에 임시정부청사를 복원하자는 제안도 있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사학)는 “국내에서 임시정부와 가장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이 효창원”이라며 “중국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이곳에 이전 복원하고, 효창원을 임시정부를 기념하는 독립공원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게 효창공원을 경건한 추모 공간과 개방적 시민 공간으로 함께 만들자는 의견도 나온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독립운동가들의 묘역이 조성된 쪽은 경건한 추모의 공간으로 성역화하고, 현재의 효창운동장 자리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광장이나 숲을 조성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김경욱 기자 [email protected]

<2018-05-31> 한겨레

☞기사원문: 김구 등 7명 잠든 효창공원, 독립운동 성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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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5/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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