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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일보]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죽산의 생애와 꿈 돌아보기’ 행사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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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일보]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죽산의 생애와 꿈 돌아보기’ 행사 개최

admin | 화, 2020/11/24- 11:48

‘왜 다시 죽산인가’…강화서 되새기다

민족연 ‘역사 현장 시민답사’
이원규 작가 강연·안내 성황
“국가유공 수훈이 진정한 복권”

▲조봉암 연구의 권위자인 이원규 소설가가 ‘조봉암의 생애와 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는 22일 ‘강화 죽산 조봉암 생가터와 청년기 활동 및 추모비’를 살펴보는 ‘역사 현장 시민답사’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답사는 강화에서 나고 자라 청년기를 보냈던 죽산의 생애를 돌아보고 그의 업적과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기획됐다.

죽산 연구에 독보적인 지위를 굳혀 온 소설가 이원규 작가의 강연과 안내로 진행된 행사에는 강화와 인천지역 주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등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답사단 일행은 죽산의 모교인 강화초등학교를 출발, 생가터 표지석이 남아 있는 강화읍사무소를 거쳐, 갑곶돈대 앞 진해공원추모비와 선원면 생가터를 차례로 살펴봤다.

이원규 작가는 답사에 앞서 진행된 강연에서 ▲죽산의 출생과 소년시절 ▲3.1 만세운동과 청년시절 ▲독립운동과 고난기 ▲광복 후의 영광과 굴레 ▲53년 만의 무죄선고 ‘햇빛 속으로’ 등 시기별로 조봉암의 생애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강화지역 조봉암 생거지 및 활동지역 현장답사 참가자들이 이원규 작가로부터 죽산의 독립운동사와 정치역정에 대한 강연을 듣고 있다.

-죽산의 생애

죽산은 1899년 강화 선원면에서 출생했다. 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한 뒤 강화군청 사환 임시고원으로 취직했지만 3.1 만세운동에 참가해 구속과 고문을 되풀이하며 ‘민족적 각성’을 다져 나갔다. 일본과 러시아 모스크바 유학을 거치면서 사회주의자의 길로 접어든 죽산은 국내와 중국 상하이를 오가며 눈부신 독립운동을 펼쳐나갔다.

중국에서 체포돼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형극의 수감 기간을 겪은 뒤 출옥해 인천에 정착했지만, 광복 직전인 1945년 1월 예비구금령으로 헌병대에 구속돼 감옥 안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직후 여운형, 박헌영 등과 손잡고 건국준비위원회와 민전(민주주의 민족전선)을 조직했으나, 미군의 공작으로 전향 성명을 내고 공산당을 떠나 ‘비(非) 공산정부 건립’을 기치로 내걸었다.

1947년 하반기에 우파와 결합해 단독정부안을 받아들인 뒤, 48년 5월 제헌의원으로 당선돼 헌법 기초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그해 7월에는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취임해 “혁명 없이 신속한 토지 균등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은 ‘농지개혁법’을 주도했다.

국회부의장으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죽산은 1952년 8월 5일 2대 대통령에 출마해 79만 표를 얻었으며, 56년 5월 15일 치러진 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216만 표를 획득, 이승만 정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1956년 11월 진보당을 창당했으나 그의 득표력에 위기를 느낀 이승만 정권은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워 1심 형량인 5년을 2심에서 뒤집고 사형을 선고한 뒤, 1959년 7월 31일 재심이 기각된 지 17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하는 ‘사법살인’을 저질렀다.

20세 청년기에 3.1 운동에 뛰어들어 모진 고초를 감내하며 20여 년간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광복 뒤에는 ‘농지개혁’ 등 화려한 업적을 남긴 죽산은 “내가 비록 사형을 당해도 애국심에는 변함이 없다”는 유언을 남긴 채 60세의 나이로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강화지역 조봉암 생거지 및 활동지역 현장답사 참가자들이 이원규 작가로부터 죽산의 독립운동사와 정치역정에 대한 강연을 듣고 있다.

– 죽산의 꿈과 남겨진 과제

지난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심 권유에 따라 2011년 2월 11일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해 50여 년 만에 ‘간첩죄’의 누명을 벗었으나, 지금까지도 ‘독립유공 서훈’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죽산이 가졌던 꿈’과 그가 뿌린 ‘씨앗’에 대해 이원규 작가는 “죽산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관철시켜 신속한 시간 안에 세계 최고 수준의 토지균등성 확보에 성공했고, 이는 농민들이 공산혁명을 거부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면서 “자경농이 된 농민들은 자녀교육에 집중해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한 ‘평등과 정의의 사회’는 여전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진보당 강령인 ▲민주주의 체제 확립과 책임 있는 혁신정치 실현 ▲생산분배의 합리적 통제를 통한 민족자본 육성 ▲평화적인 조국 통일 실현 ▲교육의 완전 국가보장제 및 노동자 권리 보장 등은 “오늘 왜 다시 죽산인가?”를 대변하고 있다.

▲이원규 작가가 죽산의 생가터로 추정되는 금월리 가지마을을 가리키고 있다.

– 죽산의 생가터, 선원면 금월리 가지마을 26-3

갑곶돈대 앞 ‘진해공원 추모비’에 이어 선원면 생가터를 찾은 답사단 일행은 이 작가의 안내에 따라 죽산의 정확한 출생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갔다. 죽산이 태어난 곳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맞서고 있다. 한쪽은 강화군 선원면 선원사를 등지고 바라보이는 마을 왼편 구릉지대인 ‘지산리 남산대’ 를 다른 쪽은 바로 옆 100m 지점의 ‘금월리 가지 마을’이라고 주장한다.

‘남산대’를 주장하는 쪽은 먼 친척형으로부터 “‘너희들은 기억하고 있다가 후손에게 알려 줘라. 독립운동가인 봉암이라는 우리 집안 사람이 남산대에서 태어나 강화 성내 소학교를 다녔는데 대문고개를 넘으며 책을 읽었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한다. 반면 이 마을 출신 친척인 전직 교장 조규성 씨는 “1957년 강화초등학교 교사로 부임 직후 출생지가 ‘선원면 가지마을’로 표시된 죽산의 생활기록부를 봤다”고 기억한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현장 확인과 증언 등을 종합하면, 금월리 가지마을이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가지마을의 지적도에 나오는 대지 7필지에 대해 현지에서 전수 조사한 결과, 26-3 한 곳의 내력이 확인되지 않는 점에 비추어 이 곳이 가장 유력한 출생지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답사를 마치는 자리에서 “죽산은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이 양 날개처럼 선의의 경쟁을 하는 ‘잘 사는 나라’를 추구했고, 남북이 대화를 통해 평화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면서 “죽산의 국가유공 수훈이 관철되는 것이 진정한 복권이자, 국가 양심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찬흥 인천일보 평화연구원 준비위원 [email protected]


이원규 작가
1947년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고와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4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겨울 무지개‘가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활발한 저술 활동을 벌이는 가운데도 동국대와 인하대에서 소설 강의를 맡는 등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분단에 대한 진보적 시각을 온건한 필체로 표현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세 차례의 조봉암 평전과 김원봉, 김산 평전 등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조명하는데도 열정을 기울였다. 대한민국 문학상, 현대문학상, 박영준 문학상, 동국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인천지역 역사현장 시민답사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죽산 조봉암 생가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0-11-22> 인천일보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죽산의 생애와 꿈 돌아보기’ 행사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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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재판부 “검사가 주장하는 지주 이용 광고물로 볼 수 없어”

[광주=뉴시스] 구용희 기자 = 지난 2017년 5월20일 광주 무등산 공원 구역 내 한 종교시설 인근 A씨의 비석 앞에 김모(81)씨가 설치했던 광고물. A씨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2020.04.02. (사진 제공 =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구용희 기자 = 친일파로 알려진 인물의 비석 앞에 그의 행적을 알리는 내용의 불법 광고물을 설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80대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제3형사부(항소부·재판장 장용기 부장판사)는 옥외 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 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모(81)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2일 밝혔다.

김씨는 2017년 5월20일 광주 북구 무등산 공원구역 내 한 종교시설 인근에 설치된 A씨의 비석 앞에 관할관청의 허가 없이 A씨의 친일 행적을 알리는 내용의 지주 이용 광고물(가로 100㎝·세로 90㎝)을 설치한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김씨와 변호인은 ‘친일파인 A씨의 비석과 부도 형태의 탑이 설치된 것을 규탄하기 위해 광고물을 설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심은 “김씨가 자연공원법상 자연공원인 부지에 광고물을 세운 사실은 인정된다. 하지만 이는 입간판으로 보일 뿐 검사가 주장하는 지주 이용 간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사는 ‘해당 광고물은 지면에 따로 설치한 파이프 형태의 지주에 끈을 이용해 알루미늄 및 아크릴 재질의 광고 현판을 고정한 것이다. 이는 관련 법이 정한 지주 이용 간판에 해당한다’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입간판과 지주 이용 간판을 구분하는 핵심 표지는 해당 광고물이 따로 설치된 기둥에 의해 건물 또는 지면에 고정돼 있는지 여부”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주 이용 간판에 해당하기 위해 필요한 (기둥의) 설치의 고정성은 단순히 꽂아두거나 꽂아둔 정도의 것으로 족하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적어도 기초공사나 체결 작업 등을 통해 지표면이나 건물에 단단히 고정돼 풍수해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을 고정성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해당 광고물은 알루미늄 재질의 H형 뼈대의 다리 부분을 별다른 고정 장치 없이 땅에 20∼30㎝ 깊이로 꽂아 고정한 것이다. 지주 이용 간판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고정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 사건은 A씨 후손의 고소로 시작됐다.

A씨의 후손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사자(死者)명예훼손도 주장했지만, 수사기관은 게시글의 내용이 진실에 부합하다며 김씨에게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행정기관에서는 입간판을 유동광고물로, 지주 이용 간판을 고정광고물로 분류하고 있다. 불법 유동광고물의 경우 과태료 처분을, 불법 고정광고물은 형사처벌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2020-04-02> 뉴시스 

☞기사원문: ‘친일 인물 행적 소개’ 불법 광고물 설치 80대 2심도 무죄 

※관련기사 

☞광주타임즈: ‘친일 인물 행적 소개’ 불법 광고물 설치 80대 2심도 무죄

월, 2020/04/06-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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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다운로드]

독립전쟁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주최 : 근현대사기념관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후원 : 서울특별시 강북구,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때 : 2020년 10월 23일(금) 13:00∼18:00
곳 :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전쟁 선포 100주년을 기념하여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학술회의가 10월 23일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이 주최하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번 학술회의는 신흥무관학교를 중심으로 3·1운동 이후 본격화한 만주 일대의 항일무장투쟁을 재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올해는 봉오동·청산리전투 100주년이자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이 되는 해여서 독립전쟁사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열리는 학술행사여서 더욱 의미가 크다.

신흥무관학교는 독립전쟁사에서 3대승첩으로 평가되는 봉오동·청산리전투와 대전자령전투 등 초기 독립전쟁의 주력을 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의열단 한국광복군 등 독립운동 각 부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독립군 양성 기지였다.

기조발제를 맡은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독립전쟁에서 신흥무관학교가 차지하는 위상과 역할을 개관한다.

이어 서동일 국가보훈처 학예연구사가 제1주제 「1910년대 유교계의 독립운동과 신흥무관학교」에서 일제 강점 초기 만주에 정착한 유림들과 신흥무관학교의 관계를 중심으로 유교계의 독립운동기지 건설 참여를 다룬다.

제2주제 「신흥무관학교 ‘출신(자)’현황 분석과 독립운동」 발표에서 이용창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구축한 신흥무관학교 인명 DB를 토대로 신흥무관학교 출신자들의 활동과 분화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제3주제 「일본의 ‘간도(間島)출병’ 배경 검토」를 발표하는 한성민 대전대 교수는 일제가 1920년 10월 초 ‘훈춘사건’을 빌미로 간도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행동을 감행한 ‘간도출병’의 배경을 당시 원사료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제4주제 「청산리 전역과 절반의 작전」 발표를 맡은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청산리 전투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에 훈춘, 동녕현 등 만주 일대에서 벌어진 독립전쟁과 일본군의 활동을 추적한다.

이어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의 주재로 발표자 전원과 박성순 단국대 교수, 황민호 숭실대 교수, 이명종 강릉원주대 교수, 이승희 동덕여대 교수가 참여하는 종합토론이 진행된다.

목, 2020/10/22-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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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다운로드] 3·1운동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도쿄에서 함흥으로 : 일제 문서로 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

주최 : 민족문제연구소
주관 : 근현대사기념관
후원 : 서울특별시 / 강북구 / 식민지역사박물관

때 : 2019년 10월 4일(금) 13:00∼18:00
곳 : 한국언론회관 19층 기자회견장

3·1운동 100주년인 올 한 해, 자유 평등 민주 평화라는 3·1정신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이를 제대로 평가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아베를 비롯한 일본의 극우세력과 뉴라이트 등 한국 내 동조자들의 역사부정과 과거로의 퇴행은 ‘기억을 둘러싼 투쟁’이 결코 용이하지 않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만큼 이들의 궤변을 원천 봉쇄할 연구 성과의 축적과 활용도 절실해지고 있다.

강제병합 10년도 지나지 않아 일어난 전 민족적인 3·1운동은 일제와 그 계승자들의 식민지미화론이 완전히 허구임을 입증해 준다. 3·1운동 100주년을 정리하면서, 1919년 그 때 우리 민족이 치열하게 추구했던 독립정신과 민주공화주의를 다시 한 번 조명하는 학술회의가 개최된다. 민족문제연구소 주최,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 주관으로 10월 4일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리는 〈도쿄에서 함흥으로 : 일제 문서로 보는 2·8독립선언과 3·1운동〉 학술회의는 3·1운동 100주년의 대미를 장식할 행사로 평가할 만하다.

그간의 3·1운동 연구가 주로 일제의 보고서와 증언·회고 등 2차 사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던 데 비해,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일본에서 새로 발굴된 「2·8독립선언 서명자 ‘취조기록’」과 민족문제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함흥지방법원 검사국 검사 이시카와의 함경도 지역 3·1운동 관련자 기소 준비 자료 대정8년 보안법사건을 처음으로 집중 분석한다. 이 문서들은 1차 관변자료로 3·1운동의 발상에서 지방으로의 확산에 이르기까지 그 전개과정과 구체적 실상은 물론 일제의 탄압상과 대응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 조선총독부 함흥지방법원 검사국 검사 이시카와의 31운동 관련자 기소 준비 자료 『대정8년 보안법사건』 문서철 ⓒ 민족문제연구소

특히 대정8년 보안법사건 문서는 일제 검사 이시카와가 1919년 3월부터 5월 사이에 일어난 함경도 지역 3·1운동 참여자를 기소하기 위해 작성한 115개 사건, 총 950여 명의 관련자에 대한 기록으로 재판자료가 거의 멸실된 북한지역 3·1운동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는 희귀 자료다. 발표자들은『대정8년 보안법사건』문서를 면밀하게 분석해 3·1운동 당시 함경도 지역에서 전개된 지하조직 결성, 지하신문 발간, 관공서 방화, 관공리 퇴직권고 등 다양한 형태의 항쟁과 새롭게 밝혀진 독립운동가들의 구체적 행적 등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지난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독립기념관은, 『대정8년 보안법사건』 문서철을 탈초·번역하고 내용 분석을 거친 뒤 해제를 붙여 『함흥지방법원 이시카와 검사의 3·1운동 관련자 조사자료』Ⅰ,Ⅱ 두 권의 책자로 펴냈다. 원사료의 난해함이 해소되어 연구자들의 어려움이 한결 덜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번 학술회의를 계기로 『대정8년 보안법사건』기소 준비자료에 등장하는 3·1운동 관련자에 대한 심층 검증과정을 거친 뒤, 독립기념관과 함께 공동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 북한 학계와도 관련 자료의 제공 등 협력 방안을 모색할 계획으로 있다.

화, 2019/10/01-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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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민사회단체, 6일 대전현충원 정문에서 국립묘지법 개정 촉구 시위

▲ 6일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 정문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주관(주최 국가공무원노조, 대전 민중의 힘)으로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가 열리고 있다. ⓒ 심규상

현충일인 6일 오전 11시 국립 대전현충원 정문에서는 어김없이 ‘국립묘지법 개정과 반민족행위자 묘 이장 촉구 시민대회’가 개최됐다. 지역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국립 대전현충원에만 친일행위자 37명, 군사 반란 가담자 22명,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관련자 8명, 반헌법 행위자 7명 등 모두 74명이 안장돼 있다.

첫 파묘 시위는 김창룡 전 기무사령관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1998년 열렸다. 당시 시위는 사회단체인 민주주의민족통일대전충남연합이 주도했다. 김창룡은 일본 관동군 헌병 출신으로 해방 후 이승만 정부 아래에서 각종 백색 테러와 민간인 학살을 주도했다. 또 안두희에게 김구 선생의 암살을 지시한 배후로 꼽히고 있다.

이후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매년 김창룡을 비롯한 친일행위자와 군사 반란 가담자, 반헌법 행위자들을 찾아내 묘 이장을 촉구했다. 올해 들어 23년째다. 이날 한 참가자는 “30대에 첫 파묘 요구 시위를 벌였는데 이제 50대 중반이 됐다”고 밝혔다.

“30대 때 김창룡 첫 파묘 시위.. 이제 50대 중반이 됐다”

▲ 74명의 반민족, 반민주행위자의 이름과 죄상을 적은 천을 국립현충원 참배객들이 밟고 지나고 있다. ⓒ 심규상

이날 시민대회에서는 애국지사와 순국선열 틈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빼내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줬다.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김창근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은 “20여 년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묘를 국립묘지 밖으로 옮기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본회의에 상정도 못 한 채 폐기됐고, 이번에도 국회의원들의 무관심과 냉대로 낮잠을 자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경 광복회 대전광역시지부장은 연설을 통해 “민주당은 매번 국립묘지법이 개정되지 않은 이유로 다른 당의 반대를 꼽았다”라며 “그래서 180여 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 줬지만 어찌 된 일인지 1년이 넘도록 적폐 세력의 눈치만 보고 있다”라고 성토했다. 이어 그는 “민주당에 강력히 촉구한다”라며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이장하도록 조속히 법 개정에 나서라”라고 강조했다.

다른 발언자들로 정부와 정치권에 국립묘지법 개정을 통한 반민족행위자 묘 이장을 거듭 요구했다. 안정섭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과 김율현 대전민중의힘 상임대표는 각각 “역사 정의를 더럽히는 행위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 “친일반민족행위자에게 국가유공자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는 짓을 더는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윤석경 광복회 대전지부장 “거대 여당을 만들어줬지만 적폐 세력 눈치만…”

▲ 윤석경 광복회 대전광역시지부장은 “거대 여당을 만들어줬지만 적폐 세력의 눈치만 보고 있다”며 민주당에 조속한 법 개정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 심규상
▲ 6일 국립대전현충원 김창룡의 묘 앞에는 ” 계룡충호안보연합”(계룡시 관내 기무사 출신 모임) 이름의 조화가 놓여 있다. ⓒ 서준석

참석자들도 이날 채택한 대회 성명서에서 “적폐 청산을 제1과제로 내걸고 촛불혁명을 통해 정권을 교체했지만, 여전히 호국영령들의 넋은 편히 쉬지 못하고 있다”며 “하루빨리 국립묘지법을 개정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이들은 반민족, 반민주행위자로 지목된 유족에게도 “진정 고인을 위한다면 현충원에서 묘를 이장하라”고 권고했다.

이날 시민대회에는 오전 10시부터 반민족행위자의 행적을 적은 자료를 전시하고 관련 홍보물을 배부했다. 특히 74명의 반민족, 반민주행위자의 이름과 죄상을 적은 천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밟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시민대회가 끝난 후 조문기 지사, 곽낙원 지사(김구 선생 어머니) 묘역을 참배했다.

<2021-06-06>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친일·반민족행위자 파묘 시위 23년째… 그래도 안 바뀌는 이유

※관련기사 

민중의소리현충일에 울려 퍼진 “백선엽 등 반민족 행위자 묘 이장하라” 목소리

연합뉴스“백선엽 등 반민족 행위자 66명 묘, 현충원서 이장해야”

일, 2021/06/0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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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김해시지회 해당 작품 친일파라 부적절 판단
빠르면 이달 중 철거 작업 예정

이형탁 기자

경남 김해시에서 잇따라 발견된 친일파 모윤숙 시인과 박시춘 작곡가의 작품 비석이 모두 철거된다.

김해시는 관리주체인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김해시지회가 해당 비석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시는 현충시설에 친일파 작품이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전달,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김해시지회는 이를 수용하고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김해시지회는 해당 비석이 현충시설에 있는 만큼 국가보훈처 경남동부보훈지청의 예산 지원을 받아 빠르면 이달 중으로 철거·교체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대로 철거되면 18년 만에 친일 잔재가 이곳에서 사라지게 된다.

김해시민체육공원에는 모윤숙 시인의 시비와 박시춘 작곡가의 노래비가 서 있다. 이들 작품 비석은 지난 2003년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김해시지회에서 김해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를 해당 공원에 건립하면서 함께 세워졌다.

경남 김해시민체육공원에 설치된 호국무공수훈자전공비 뒤편에 해당 친일 작품 비석이 있다. 이형탁 기자

모윤숙 시인과 박시춘 작곡가는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낸 4천여 명의 친일파가 담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이들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돼있다.

경남 밀양 출신 박시춘 노래비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작곡한 ‘전우야 잘 자라’가 새겨져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박시춘 작곡가는 일제강점기 일본의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군국가요를 13곡 정도 작곡한 것으로 확인된 명실상부한 친일파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 모윤석 시비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쓴 것으로 알려진 반공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가 새겨져 있다. 그녀는 1940년대 일제 침략 전쟁을 찬양하는 시 ‘지원병에게’, ‘어린 날개-히로오카(廣岡) 소년항공병에게’ 등의 여러 작품을 써낸 친일파다.

김해시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김해시지회가 친일 작품이 현충시설에 있는 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철거하기로 결정했다”며 “국가보훈처는 예산 지원을 하고 시는 철거를 위한 행정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형탁 기자([email protected])

<2021-07-16> 노컷뉴스

☞기사원문: 김해에 잔존 친일파 모윤숙·박시춘 작품비 18년만 철거 결정

일, 2021/07/1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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