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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버님’, ‘어머님’, ‘언니’, ‘이모’ – 이상한 호칭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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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버님’, ‘어머님’, ‘언니’, ‘이모’ – 이상한 호칭의 기원

admin | 월, 2020/11/23- 22:12

[월간경실련 2020년 11,12월호 – 우리들이야기(2)]

[전문가칼럼]
‘아버님’, ‘어머님’, ‘언니’, ‘이모’ – 이상한 호칭의 기원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이모, 여기 젓가락 좀 갖다 줄래요?”
“여기 있어요, 언니.”

식당에서 들은 옆 테이블의 손님과 종업원 사이의 대화인데, 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길래 ‘이모’라고 부른 사람한테 ‘언니’라고 하는가? 물론 막장 드라마처럼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요즘 이런 이상한(?) 호칭들이 난무한다. 예컨대, 중년의 남성이나 여성이 상점이나 병원 같은 곳에 가면 기본적으로 듣는 호칭이 ‘아버님’, ‘어머님’이다. 이런 식의 호칭에 이제는 만성이 되어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어색해 하거나 심지어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왜 이런 호칭이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이런 현상은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말에는 오래전부터, 본래 친족을 가리키는 단어를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인을 가리키는 말로 확장하는 기제가 있어 왔기 때문이다.
우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러하다. 이들은 본래 조부(祖父)와 조모(祖母)를 가리키는 친족어이지만, 어린아이를 기준으로 볼 때 조부모와 비슷한 연령대에 있는 사람, 즉 노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분명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닌데도 말이다. 영어에서는 친족어로서의 의미, 즉 조부, 조모의 의미로는 grandfather, grandmother라고 하지만 단지 노인을 가리킬 때는 old men, old lady라는 다른 단어를 쓴다. 우리말에 ‘할아버지’가 이렇게 두 가지 뜻이 있다 보니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는데, 예전에 어떤 젊은 학생 통역이 ‘저 할아버지가 물건을 가져갔다’고 하는 말을 ‘the old man’이라고 하지 않고 ‘the grandfather’로 통역하는 것을 보았다.
다음으로 ‘아주머니’, ‘아저씨’가 있다. 이 말들도 본래는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항렬의 친척, 예컨대 오촌 당숙을 지칭하는 친족어이지만, 요즘은 오히려 일반인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사실 요즘은 사촌들도 잘 안 보는데, 오촌을 볼 일이 있겠는가!
그 다음으로 또 ‘형’, ‘언니’, ‘누나’, ‘오빠’ 같은 단어들도 그러하다. 이들도 본래는 친족어이지만,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학교 선후배나, 그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친근감 있게 부를 때 많이 쓴다. 특히 ‘오빠’는 남자친구를 부를 때 쓰는 말로 워낙 많이 쓰여서 친오빠와 함께 있을 때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헷갈릴 수 있다. 심지어 결혼 후에 남편이 되어도 계속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용법까지 사전에 수록한다면, ‘오빠’의 뜻풀이를,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손위 남자’라는 본래의 의미뿐 아니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친한 남자’에서부터 ‘남자친구 또는 애인’과 ‘남편’까지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의미의 전이가 심해도 너무 심한 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이런 단어들을 친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쓰는 것은 이제 전 국민적인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여 년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일단의 단어들이 보여주는 이상한 의미의 확장은 사람들 사이에 아직 완전한 동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우선 식당의 종업원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이모’와 ‘삼촌’으로 부르는 것을 들 수 있다. 아니 도대체 처음 보는 사람을 왜 이렇게 부를까?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이모와 삼촌의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친근하게 부르는 것이다. 여성 종업원의 경우에는 ‘언니’라고도 불리는데, 심지어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조부’가 아니라 ‘노신사’)도 이들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이다. 처음엔 이런 분들이 여종업원에게 ‘언니’라고 부를 때면 한 번 돌아다 보기도 하였다. 성전환을 한 것도 아니고, 화자가 나이 지긋한 남성임에도 ‘언니’라고 부를 정도이니 이 정도면 친족어적인 기원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급기야는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단어들까지 여기에 가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아버지’, ‘어머니’라고까지는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과연 이렇게까지 진척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처럼 친족에게만 쓰는 호칭을 피 한 방울 안 섞인 일반인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상대방에게 그만큼 친하다는 느낌을 주고자 하는, 즉 친근감을 기반으로 관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심리적 의도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 친근감!
그런데 바로 이 친근감이 문제이다. 말하는 이에게는 ‘친근감’이지만 상대에게는 ‘부담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제 봤다고 친한 척하느냐고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또 다른 하나의 동인은, 모르는 사람을 아이에게 설명할 때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저 사람 누구야?”라고 할 때 설명하기도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질 때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이미 알고 있는 ‘삼촌’에 빗대어 그냥 삼촌 같은 사람이라고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삼촌’이라고 부르면 편할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우리말에는 친족을 가리키는 말이 그 의미를 일반인으로 확장하는 시스템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언니’, ‘오빠’를 넘어 ‘이모’, ‘삼촌’의 영역까지 침범(?)해 왔다. 그리고 급기야 ‘아버님’, ‘어머님’의 영역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아버님’, ‘어머님’ 호칭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이 두 단어를 친족용어 확장의 마지노선으로 느끼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른 친족과 비교할 때 가까워도 너무나 가까운, 그래서 결코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리라. 부모는 결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그보다 이 같은 친근감을 담보로 하는 상업적인 마케팅이 우리의 원초적 혈연관계까지 위협한다는 불쾌감과 불안감 때문은 아닐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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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1년 1,2월호 – 특집. 코로나19와의 불편한 공존(2)]

코로나 위기 속 노동자

노상헌 경실련 노동개혁위원장(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겨울철 코로나 재확산으로 이동과 모임이 제한되고, 주요 국가들도 국경과 다중이용시설을 봉쇄하고 있다. 2020년 1년간의 코로나 불황이 올해도 계속되면서, 경제 및 노동시장이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 경제의 취약계층인 영세자영업자, 특수고용직노동자, 관광·여행 및 서비스업 종사자 등이 치명타를 받은 상황이다. 또 내수 및 글로벌 수요 부진으로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의 경기침체가 예상되며, 이러한 상황은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노동자의 무급휴직, 임금삭감을 넘어 정리해고로 이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일을 그만둔 지 1년 미만인 비자발적 실직자는 전년(137만 5천 명)보다 48.9% 급증한 219만 6천 명이다. 이는 실업 통계 기준이 바뀐 2000년 이후 최대치다. 비자발적 실직자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직장의 휴업·폐업’, ‘명예퇴직·조기퇴직·정리해고’, ‘임시적·계절적 일의 완료’, ‘일거리가 없어서 또는 사업 부진’ 등의 사유로 직장을 그만둔 사람을 말한다.

실직 당시 고용형태는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가 각각 40.3%(88만 5천 명), 23.2%(51만 명)로 60% 이상을 차지했고, 상용근로자는 18.2%(40만 명)였다. 성별로는 여자(55.2%, 121만 2천 명)가 남자(44.8%, 98만 4천 명)보다 많았다. 산업별로는 숙박·음식점업이 27만 4천 명(12.5%)으로 가장 많았고, 농업·임업·어업(11.7%, 25만 7천 명), 건설업(10.5%, 23만 명) 등이 뒤를 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실직은 인별 속성상 여성, 청년에게 가혹하게 나타난다. 여성의 경우 코로나로 경제 활동을 멈춘 대면 서비스업종(보건복지, 교육, 숙박, 음식점 등)에서 여성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가사와 돌봄 노동이 여성에게 전가된 점이다. 코로나로 인한 보육시설 및 학교 휴교는 가정책임을 전담하는 여성에게 경제 활동 포기를 강요한 것이다.

청년층(15~29세)은 취업활동 중이거나 근무 경력이 짧아 경제가 어려워질 경우 취업문이 닫히거나 해고의 위험이 높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층 ‘확장실업률’은 25.6%로 집계됐다. 전년 동월 대비 1.8%포인트 증가했다. 2015년 1월 관련 통계 작성 이래 7월 기준 최고치다. 결국 자영업자, 일용직 노동자, 청년과 여성들은 실직으로 내몰리거나 소득이 급감하여 코로나의 피해를 오롯이 받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위기 상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제적 고통이 노동시장 취약계층에게 집중되어 나타나는 현실과 비대면 업무방식 및 서비스의 활성화는 코로나 위기 극복 이후 노동의 양극화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취약계층에 집중된 고용충격과 사회안전망 사각지대가 위기 속 노동자를 더욱 궁박하게 한다. 코로나 위기 속 노동자에게는 고용관계, 사회보장, 개인능력의 입체적 대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우선 고용안전망의 정비이다. 코로나 위기와 코로나 이후 양극화에 대응하기 위한 시급한 과제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것이다. 현재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이 일부 적용되고 있다. 5명 미만 사업장의 임금근로자는 28.5%로 우리나라 전체 임금근로자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러나 법정근로시간,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지급, 연차유급휴가, 휴업수당, 부당해고 제한 등 근로기준법상 주요조항의 적용을 배제함으로써, 주휴수당 및 퇴직금 등 법이 적용되는 부분조차 실제로는 준수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5명 미만 사업장이 가장 취약한 일자리라는 것이 코로나 위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근로자를 1명 이상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는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여 노동법 준수를 통한 고용안전망 확보가 필요하다.

다음은 사회안전망의 보완이다. 실직자의 생계보장을 목적으로 고용보험제도, 생계유지 곤란자에게는 공공부조제도가 사회안전망으로 준비되어 있으나 임시방편적이다. 충분한 전직준비가 되어있지 못한 실직자가 비정규직 또는 영세자영업자로 전락하는 경우 연금보험, 건강보험 등에서 지역가입자로 전환하게 된다. 지역가입자는 사용자와 함께 사회보험료를 분담하는 사업장가입자와 달리 소득과 재산 정도에 따라 전액 부담하게 된다. 소득감소로 인한 사회보험료의 미납은 사회보험의 혜택으로부터 배제되는 2차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사회보험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비정규직,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사회보험 가입 회피 등으로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집단일수록 사회보험 가입률이 낮다. 코로나 위기에서 사회안전망의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드러났다. 고용보험의 전국민 확대적용과 실업부조 실시, 연금제도에서 최저연금의 도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확대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실직의 장기화를 막기 위한 고용가능성 제고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노동시장의 변화를 파악하고 디지털화 및 자동화 등 미래 직업 수요의 변화에 따른 재직자 및 구직자의 교육훈련을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 스마트교육 플랫폼 등 원격훈련 플랫폼 운영을 통해 300여 개의 직업훈련과정을 제공 지원하고 있다. 이를 보다 수요자 니즈에 부합하는 미래지향적인 직업교육훈련 시스템 유지와 지원을 위한 재정지원 및 교육·학습기간 연장조치, 수습임금 지원, 대체 훈련기회 제공 등을 마련하여 실질화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코로나로 인한 고용위기 극복 방안은 ① 기본적인 노동기준의 존중과 준수, ② 양질의 고용확보, ③ 사회안전망의 확충이다.

화, 2021/02/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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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1,2월호 시사포커스(1)]

기득권 정당에 놀아난 선거제도 개혁 운동

서휘원 정책실 간사

2019년 12월 27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둘러싼 지난했던 협상과정이 끝났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통과된 선거법 개정안은 의석을 지역구 253석에 비례대표 47석으로 하고, 이 중 30석에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선거법 개정안은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총 의석수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제의 원칙을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지만, 비례대표 의석을 단 한 석도 늘리지 않는 수준에서 그 수준을 50%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국한하고, 그 마저도 30석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경실련은 27일, “‘반쪽짜리’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의미 있지만 아쉽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낸 바 있다.

그렇다면 왜 연동형 비례제의 원칙이 훼손된 것일까? 나는 그 원인이 선거법 협성과정에서 기득권 정당인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각종 셈법 굴리기에 급급한 것에 더해 경실련을 포함한 57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이 더불어민주당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휘둘렸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연동형 비례제 원칙의 도입을 위해 그간 엄청나게 많은 기자회견, 집회, 성명 발표 등을 했지만 결국 그 결과는 반쪽짜리에 불과했고, 더불어민주당에 좀 더 유리한 선거법 개정안 통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취지와 훼손

경실련을 포함한 시민단체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운동에 뜻을 모았던 것은 비례성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선거제도는 지역구에서 최다득표자만을 당선시키는 단순다수대표제와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04년에 도입된 전국구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골간으로 하고 있었다. 이러한 선거제도 하에서는 정당지지율과 실제 의석 수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해 비례성이 매우 낮다는 문제가 지적되어져 왔다. 2016년 제20대 총선의 경우 새누리당이 33.5%, 더불어민주당이 25.5%, 국민의당이 26.7%, 정의당이 7.2%의 정당득표율을 받았지만 실제 의석 배분의 경우 새누리당 122석(40.7%), 더불어민주당 123석(41.0%), 국민의당 38석(12.7%), 정의당 6석(2%)으로 되어 정당지지율과 의석 점유율 사이에 많은 괴리가 있었다.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확보한 기득권 정당의 경우 정당지지율은 적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 대결 구도에 편승해 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기본적으로 정당득표율과 의석수를 연동하여, 정당의 실력만큼, 정당이 지지받는 만큼 의석을 갖게 하자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총 의석수가 100석인 상황에서 A정당이 정당득표율로 30%를 얻었다면 A 정당의 지역구 당선자 수와 상관없이 무조건 30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지역구 당선자가 10명이면 나머지 20명을 비례대표제로 채워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동안 지역주의에 편승해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확보했던 기득권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에서 손해를 감수하게 하고, 지역구에서 많은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던 소수 정당들은 더 많은 비례대표 의석을 가지게 해 정당지지지율만큼 총 의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를 가진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현행 지역구의원 선출제도의 장점인 지역구 대표성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비례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행 선거제도의 대안으로 주목 받았다.

그렇지만 이번에 통과된 선거법 개정안은 의원정수 확대 논의에 선을 그어 비례의석을 최저 수준에 머무르게 하고, 준(準) 연동형을 주장하며 연동률을 50% 줄이고, 여기에 연동형 방식으로 배분되는 의석에 상한선을 씌웠다. 사실상 비례성 확대라는 원칙이 대부분 소실된 것이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 협상 과정

그렇다면 왜 연동형 비례제의 원칙이 훼손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기득권 정당인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각종 셈법 굴리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온전히 도입되기 위해서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출과정에서 기득권 정당이 지역구에서 정당지지율보다 과대 대표되는 의석만큼을 비례대표 의석에서 손해를 본다는 합의, 소수 정당이 과소 대표되는 의석만큼을 비례대표 의석으로 보완해줘야 한다는 합의가 이뤄졌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선거제도에서 수혜를 보고 있는 기득권 정당은 더욱 공정한 선거제도로의 합의를 포기하고,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다.

자유한국당은 대안 제시 없이 선거제도 개혁 논의 일체에 반대하다가 국회의원 정수 축소 및 비례대표제 폐지라는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안을 가지고 나왔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을 뺀 4개 정당을 위주로 선거법 협상이 본격화된 2019년 3월 10일에 와서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270석으로 축소하고, 비례대표를 완전 폐지하는 방안을 협상안이라고 고려 중이라는 발언을 내놓았다. 이후에는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안은 모든 정당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지연시켜왔다.

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이후 갑자기 선거법 개정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선거법 협상 과정에서는 선거제도 개혁법안을 후퇴시켜 나갔다.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된 것은 2018년 11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국회의장과 여야5당 대표회담에서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정당지지율을 고려할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시 더불어민주당에 아무런 이득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부터였다. 2019년 1월 21일에는 정책의원 총회에서 선거제 개혁안으로 ‘한국형’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 하나가 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이는 정당지지율 전체가 아니라 정당지지율의 절반만을 의석수 배분에 적용하겠다는 것이었다. 2019년 3월 7일에는 의원총회에서 국회의원 정수 유지(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 ‘한국형’ 연동형 비레대표제, 석패율제 도입 등을 내놓았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온전히 비례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비례대표 의석이 필요함에도, 의석정수 확대에 선을 긋고,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협상 과정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줄여가면서 부터였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지역구 225석 대 비례대표 75석’의 개혁안은 ‘240대 60’으로, ‘250대 50’으로, 결국 ‘253석 대 47석’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기 어려워지자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나아가 ‘최저이익’을 주장하며 ‘연동형 캡’ 30석을 씌우는 안을 제안했다. 이것은 기존의 병립형 비례대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즉,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한국당과 같이 기존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연동형 비례제의 원칙을 점점 훼손시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개정안이 후퇴한 두 번째 이유는 정치개혁공동행동이 협상 과정에서 적절한 개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정치개혁공동행동은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정서를 고려해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를 큰 소리로 주장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석수를 축소하고, 이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이 손해를 볼 수 없는 상태에 봉착해 연동형 비례제의 원칙을 훼손해 나갈 때에도 협상의 판이 깨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했다. 정치개혁공동행동은 더불어민주당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협상안으로 제시했을 때, 아무런 압박을 하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는 소극적이었던 반면,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공수처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던 터라, 여야 4당이 선거제도 개정안과 공수처법을 이해타산에 따라 묶어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패스트트랙안으로 지정되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의미가 있다는 워크숍을 개최해 운동을 이어나갔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시뮬레이션

이렇듯 선거법 개정안이 협상과정에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음에도 그 운동이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라는 믿음이랄까, 자기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본회의를 통과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20대 총선 결과에 도입해보면, 비례성이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매우 역부족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라는 믿음이, ‘이러려고’라는 한숨을 동반하게 됐다.

정의당의 경우 정당득표율에 100% 비례했을 때 얻어야 하는 의석은 22석이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선거법에 따라 지역구 당선자 2석을 빼고 남은 수에 준연동형 비율인 50%를 적용하면 10석을 배당받게 된다. 하지만 연동형 캡을 적용하므로 다시 2석을 빼야 한다. 여기에 병립형 방식으로 1석을 추가하면, 최종적으로 얻게되는 의석은 총 11석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성과와 한계

따라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놓고 보았을 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안의 한계는 분명하다.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여전히 정당득표율과 개정안 적용 의석배분율 사이에는 괴리가 크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36.01%와 27.46%의 정당득표율을 가지고, 37.0%, 8.33%에 해당하는 의석을 가져가는 반면,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28.75%, 7.78%의 정당득표율을 가지고도, 17.33%, 3.66%의 의석밖에 차지할 수 없다.

차라리 이럴거였으면, 병립형 방식을 고수하더라도, 비례대표 의석수라도 확실히 증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옳았다. 지난 2018년 2월 12일 경실련은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정개특위 간사와 면담을 가졌다. 이 날 김종민 의원은 우리에게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월 21일 제안한 선거제도 개혁안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그 내용은 국회의원 정수를 고정하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이제와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히자면, 당시 김종민 의원은 “이번에 선거법 개정 됩니다!”라고 확실하게 말했고, 가만히 들어보니 그 복안은 비례대표 정수를 찔끔 늘리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추측컨대 더불어민주당은 이때부터 캡 상한을 두어 조정의석을 통해 병립형 방식으로 비례대표 의석을 받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럴 바에야 기존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도 방식을 고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비례대표 의원 정수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좋겠다고까지 말한 바 있다.

내가 운동했던 이슈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운동이 기득권 정당에 처음부터 끝까지 놀아났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과한 혹평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협상 과정에서 민주당의 기득권 지키기에 아무런 압박을 하지 못했고, 결론적으로 그동안의 정치개혁공동행동의 운동 과정이 무색하게, 민주당의 정개특위 간사가 당당하게 밝힌 그 안이 통과된 것을 나는 목격했다.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운동이 전개된다면, 다시는 이러한 과오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득권 정당이 기득권 챙기기에 급급한 것은 예측가능한 당연한 시나리오이므로, 국민들을 설득해 비례대표 의석으로 지역구 국회의원 의석수를 보완한 이후에도 거대 정당들이 비례대표 의석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비례대표 의석 대폭 확대를 주장해야 한다. 또, 협상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타협이 생긴다면, ‘이것이라도’ 라는 자세가 아니라, ‘반드시 이것이어야만 한다’라는 자세로 협상안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해야 한다.

참고자료
• 서휘원, 연동형 비례대표제 관련 7가지 쟁점. 월간경실련, 2019. 01. 28.
• 서휘원,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퇴색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의미, 월간경실련, 2019. 03. 27.
• 서휘원, 패스트트랙 정국이 던진 화두, 월간경실련, 2019. 05. 24.
• 강지헌, 비례대표제 선거개혁, 이제 다시 시작이다. 프레시안 2019. 12. 31.
• 박효영 선거제도 개편 80 ‘헌신한 사람들’ 선거제도 개혁 관철되기까지, 중앙뉴스 2019. 12. 28.

화, 2020/02/0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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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9,10월호 – 시사포커스(4)]

공매도 금지 기간 동안 반드시 제도 개선 이뤄야

 

권오인 재벌개혁본부 국장

금융위원회는 8월 27일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주식시장 리스크가 증대하자 9월 15일자로 종료되는 한시적 공매도 금지조치를 추가로 6개월 연장했다. 금지 기간 동안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와 개인 투자자 공매도 접근성 제고 등 시장에서 요구하는 제도 개선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주식시장 불안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발표한 제도 개선 방향을 봤을 때 여전히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우려감이 크다.

불법이 허용되는 공매도 거래시스템
현행 공매도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진다는 점이다. 차입계좌에 실제 입고되지도 않은 무차입 상황에서 공매도를 한 후, 결제일 전에만 갚으면 매매시스템에서 적발되지 않는다. 불법 세력들이 실수로 결제일 전에 갚지 못할 경우 간혹 적발되곤 한다. 2018년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의 무차입 공매도 사건이 대표적이다.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은 이틀 동안 156개 종목에 대해서 무차입 공매도를 쏟아 냈고, 거래량 중 합법보다 불법 수량이 많은 종목도 다수였다. 이러한 거래 환경을 봤을 때,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적발된 81건의 무차입 공매도 건수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공매도를 위한 차입시스템은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의 사례에서 나타나 있듯이 전화 또는 메신저로 협상이 완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차입결과 수동 입력 칸에 차입하지도 않은 주식을 수기로 입력할 수 있게 되어있다. 사실상 무차입 공매도를 허용해주는 거래시스템인 것이다.

도입 시부터 불공정
공매도를 위한 대차기간, 종목, 절차 등에 있어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는 거의 제한을 받지 않는 반면, 개인투자자는 자본력과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일부 종목만 허용되고 있어 형평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 특히 대차기간도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의 경우 1년 정도인 반면, 개인 투자자는 60일로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공매도는 자본력과 정보력이 있는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의 전유물인 것이다. 때문에 공매도 거래의 1% 남짓 되는 개인투자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시장조성자(LP)에 대해서 직전 가격 이하로 공매도 호가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업틱룰을 예외로 허용해주고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이를 악용할 경우 특정 종목을 공매도하여 하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김병욱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업틱룰 예외 거래대금이 2014년 2조 6,138억 원에서 2018년 19조 4,625억 원으로 약 17조 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업틱룰 예외 거래대금이 전체 공매도 거래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14년 4.6%에서 2019년 8월 말 기준 20.3%까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불법 등으로 번 돈 외국으로 유출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통해 수익이 창출되는 포지션인 만큼, 주체 세력들은 하락을 조장하기 위해 한국경제와 기업들에 대해 온갖 악성루머를 퍼뜨린다. 때문에 건전한 기업의 가치마저 하락한다. 한국의 주식시장은 거래의 70% 가까이 개인투자자가 차지하는 만큼, 공매도에 대한 방어가 쉽지가 않다. 2018년 8월 박용진 의원실 보도자료를 보면, 11개 외국계 증권사가 2017년까지 5년 동안 불법 공매도 등으로 번 1조 7,300억 원을 본사로 송금했고, 같은 기간 외국계 은행 40곳도 본사에 배당한 돈이 3조 4,500억 원에 달했다. 공매도 거래의 60%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가 공매도에 취약한 한국 주식시장에서 번 돈을 외국으로 유출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10명 중 6명 이상, 공매도 폐지하거나 금지 기간 연장해야
경실련과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8월 1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리얼미터)을 통해 실시한 공매도 관련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론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지난 8월 7~8일(2일)간 진행됐다.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p이었다.

여론조사결과 첫째, 국민 10명 중 6명(63.6%)이 공매도를 폐지하거나 금지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둘째, 국민 10명 중 7명(71.5%)은 공매도 제도가 개인 투자자에 피해를 집중시킨다고 응답했다. 특히 우리 주식시장 전체 공매도 거래의 대부분을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가 차지하고 있어, 진입 형평성 논란과 피해 또한 개인 투자자에 집중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공감한다’는 응답이 71.5%(매우 공감 43.1%, 다소 공감 28.4%)로 압도적이었다. 셋째, 국민 10명 중 7명(70.5%)은 공매도 제도가 미래 주력산업 발전을 저해한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9월 15일 만료되는 한시적 공매도 금지조치를 6개월 연장한 기간 동안 개인 투자자와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 제도 개선을 제대로 이뤄내야만 한다.

공매도 폐지안도 반드시 검토해야
금융위원회, 증권업계, 외국인 투자자 등 공매도를 옹호하는 세력들은 유동성 공급과 가격발견이라는 순기능을 내세운다. 공정한 거래 환경이 조성된 상황에서 순기능을 이야기한다면 모르지만, 불법이 가능한 거래시스템과 주가지수가 3000포인트도 되지 않는 우리 주식시장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금지 기간 동안 해야 할 일은 우선 최근 5년간 공매도 거래에 대해 전수조사하여 불법이 있을 경우 엄벌부터 해야 한다. 다음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조속히 도입하고, 불법에 대한 형사처벌과 징벌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정보력과 자본력이 없는 개인에게 공매도를 확대한다는 계획은 철회해야 한다. 오히려 시장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이러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지 못할 경우, 공매도 폐지안도 검토해야 한다.

금, 2020/09/2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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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1,2월호 시사포커스(5)]

국책사업감시단의 직접시공제 탐방기, GS건설

장성현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간사

2019년 12월 5일.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은 몇 년 전부터 직접시공을 시행 중이라는 GS건설을 방문했다. 초겨울 날씨인지라 도시 건물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웠다. 하지만 건설대기업에서의 직접시공 사례를 들으러 가는 발걸음은 상쾌했다.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은 우리나라 건설산업 경쟁력 향상 방안으로 직접시공 활성화를 지속해서 주장해왔다. 원도급 건설사의 직접시공은 선진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인터뷰는 GS건설 본사가 있는 종로구 청진동 그랑서울 4층에서 진행됐다. GS건설 측에서는 인프라국내CM팀 김종찬 부장, 이승규 차장 그리고 홍보팀 김창태 부장이 인터뷰를 위해 나왔다. 인터뷰는 경실련이 질문을 하면, GS건설의 직접시공 시스템을 설계한 김종찬 부장이 주로 답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경실련(이하 ‘경’) ● 하도급 없이 직접시공해서 적기준공 등 매우 의미 있는 사례를 알게 됐다. GS건설 실무팀을 직접 만나서 얘기 듣고 싶었다.

GS건설 ● 반갑다. 궁금한 내용은 솔직담백하게 답해 드리겠다.

경 ● 현장에서는 직접시공을 직영이라고 하던데, 직영 개념이 뭔가?

GS건설 ● 현장에서는 직접시공보다는 직영이라는 말로 편하게 쓴다. 직영은 말 그대로 하도급하지 않고, 원도급업체가 인부고용, 장비수배, 자재구입 등 공사관련 업무를 모두 직접 수행하는 것이다.

경 ● 경실련은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주요 문제가 하도급고착화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해결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을 직접시공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세울만한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건설대기업인 GS건설의 직접시공 사례를 접하게 됐다. 직접시공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GS건설 ● 계속 설명하겠지만, 우리에게 ‘직접시공은 생존의 문제’였다. 직접시공에 대한 고민은 2011년경 시작됐다. 2011~12년 사이에 같이 일했던 하도급업체가 계속해서 부도났다. 2011년에 원도급사도 기업회생(구 법정관리) 신청을 많이 했고, 협력업체도 엄청나게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2012년부터는 기업회생 신청 후 파산되는 사례로 번져갔다. 대형 전문건설업체가 다 넘어졌다. 그 과정에서 GS건설의 직접시공시스템이 태동됐다.

어떤 업체는 한 현장의 미불(미지급) 어음이 40억 이상이었고, 두 개 현장 합쳐서 96억까지 미불이 있었다. 우리는 협력업체에 공사대금을 지급했지만, 그 돈들이 아래로 보내지지 않았던 것이다. 미불을 해결해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으므로, 우리 입장에서는 이중변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스란히 적자가 됐다. 발주처와의 계약은 진행돼야 하고, 어떻게든 계약을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 ● 하도급업체 부도가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가?

GS건설 ● 협력업체가 부도가 나면 공사가 3~4개월 중단된다. 당시엔 외주 하도급시스템이기 때문에 잔여 예산을 가지고 하도급업체를 다시 선정해야 하므로, 공기(공사기간)는 한없이 늦어졌다. 어렵게 재계약한 하도급업체가 다시 부도나버리면 그땐 방법이 없다. 비용도 2~3배 정도 늘어나기도 했다. 예를 들면 공사비는 30억 남아있는데 공사를 끝내려면 90억 가량 투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당시 토목현장의 90%가 그렇게 됐다.

경 ● 당시 GS건설의 원가율은 어느 정도였나?

GS건설 ● 발주방식별 낙찰률에 따라 다르다. 당시 원가율이 안 좋은 현장은 수서-평택(SRT) 9공구가 134%, 서울지하철 917공구 124%, 인천 지하철 2공구 108% 정도였다. 평균 114% 정도 초과였다. 모두 협력업체가 부도난 현장이었다.

경 ● 손실의 주원인을 공기지연으로만 볼 수는 없지 않나?

GS건설 ● 업체 부도에 따른 공기지연이 컸다. 여기에다 공공발주 사업은 예산이 제때 나오지 않는 어려움도 있었다. 아울러 우리 잘못 없이 발생한 설계변경에 대해 제값을 못 받는 것도 주요한 요인이었다.

경 ● 최근의 직접시공 현황은 어느 정도인가?

GS건설 ● 2018년의 경우 20개 토목현장 중 16개 현장을 순수 직영으로 수행했다. 건축 분야나 기계설비 공사 빼고는 다 직영으로 한다고 보면 된다. 조경공사도 직영으로 했다.

경 ● 최근 직접시공 사례 하나를 설명해 달라.

GS건설 ● 경기도가 발주한 하남선 3공구 지하철공사가 기사에 난 경우다. 100% 직영이다. 그라우팅(지반보강공사) 같은 특허공사를 제외하고는 토공사 및 가시설, 콘크리트 타설, 터널공사를 모두 직접시공했다.

2014년도에 이 공사를 수주하고 여러 생각을 했다. 모든 지하철 현장에서 이윤을 못 챙기는데 뭐가 문제인지 미래가 안 보였다. 우리가 실력이 없는 건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정말 한번 잘 해보고 싶었다. 현장을 설득해서 직영으로 끌고 갔다. 공사 초기에는 현장소장이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소장도 이전 현장에 있을 때 하도급업체가 다 부도나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직영에 동참했다.

지금은 직접시공 전도사가 됐다. 인프라국내CM팀 역시 매주 현장에 가서 공사 진행 상황을 살펴보고 문제점을 파악하는 등 정말로 최선을 다해 진행했던 프로젝트였다. 직접시공은 하도급업체에 의지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입증시켜 주었다. 발주처에게도 계약 공사기간을 지켜주니, 계약상대자로서 우리 요구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경 ● 건설업체는 영리법인이다. 직접시공이 좋다고 하더라도 이윤을 얻지 못하면 지속하기 어려울 것인데, 실행원가율은 어느 정도 되는가?

GS건설 초기인 2015년~2016년은 협력업체 부도 및 타절에 따른 직영수행으로 원가율이 좋지 않았으나, 2017년 이후로는 상대적으로 양호하여 직영 현장이 원가율 향상에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표> 참조).

경 ● 직접시공은 의지만으로 어려울 것인데, GS건설만의 노하우가 있는지?

GS건설 ● 우리 회사가 직접시공을 할 때는 유능한 직영팀장들과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2011~2012년 수습 단계를 지나서 2014년도에 본격적으로 직접시공제 시스템 설계에 들어갔다. 일 잘하는 직영팀장을 공종별로 공모를 받아 직영팀장 풀(Pool)을 만들었다. 팀장 대부분은 협력업체 소장, 임원 또는 직접시공 경험이 있는 분들이다.

우리의 컨셉은 ‘사람’이다. 일을 해보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일을 하고 사람을 대하는지 안다. 그런 사람들과 신뢰를 갖고 일을 하자는 컨셉을 잡았다. 직영팀장들은 전문건설업체 출신들로 그 분야에서만 20~30년 일했고, 누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잘 알고 있다. 신뢰가 없는 사람은 추천하지 않는다. 덕망을 쌓은 사람들이다.

경 ● 사람’이 컨셉이라고 했는데, 당연한 말인데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GS건설은 건설노동자와 어떻게 근로계약을 체결하나?

GS건설 ●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100% 직영하므로, 근로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걸 우리 회사 이름으로 책임진다. 그렇게 해야 직영이라 할 수 있다. 건설근로자와 직접계약하지 않았다면 기사도 못 나갔을 것이다. 일용직이지만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니 퇴직금, 주휴수당, 월차 등도 다 보장된다. 여담이지만 임금은 ‘일당’이 아닌 ‘시급’ 개념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급으로 해야 근로기준법에 맞는 임금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 ● 건설노동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GS건설 ● 모든 임금과 대금을 정해진 날짜에 한 번도 끊기지 않고 현금으로 지급하므로 다들 좋아한다. 기능공 분들은 GS건설의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쓰고 작업하기 때문에도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숙소에 많은 신경을 쓴다. 모든 숙소가 2인 이하로 구성됐고, 방마다 에어컨을 설치했다. 더운 여름에 일을 잘하려면 그 전날 잠을 잘 자야 한다. 그래야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는다.

직영팀장 중에 3년 반 정도 같이 일한 분이 있다. 계속 우리와 일하는 걸 선호하지만 지금은 일이 없어 다른 현장 하도급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역시 정규직 또는 상용직 채용을 하고 싶지만, 공공공사 수주가 연속적으로 이뤄지지 않다보니 그렇다. (웃으며) 가능하지 않겠지만, 정부에서 직접시공 우수업체에게 수의계약으로 공사를 준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경 ● 일용직은 작업시간이 줄어들면 그만큼 임금소득이 줄어들기 때문에, 일당직은 52시간 적용하면 안된다는 의견이 있는데 GS건설은 어떠한가?

GS건설 ● 최근 52시간 도입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들었다. 줄어든 근로시간은 시급을 높여서 총 임금이 줄지 않도록 하고 있다. 협력업체는 300인 미만 기업이 많아서 법이 늦게 적용되지만, 우리는 52시간 적용 회사이고 근로자들도 우리와 계약을 맺기 때문에 52시간을 준수한다.

요즘은 일당이 좀 올라서 기능공들도 주말에 쉬기를 원한다. 일요일에는 거의 안 나온다. 건설현장은 날씨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일주일에 6일 일하는 것도 만만찮다. 그래서 52시간 적용해도 큰 문제는 없다. 건설인들도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원도급업체 직원도 아침 7시에 조회 및 체조를 해야 하고, 매일 같이 야근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나.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건설인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다. 특히 공공공사는 국민 세금으로 하는 일이다.

경 ● 지금까지 직접시공 사례 및 사람중심의 철학에 대해서 감명 깊게 들었다. 건설현장의 4대 관리대상은 안전, 품질, 공기 및 원가라고 하는데, 안전과 품질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GS건설 ●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다. 안전시설물 설치도 직영팀에서 한다. 먼저 안전시설물 설치한 뒤에 구조물 작업을 진행한다. 그렇게 하니 직영팀장은 일이 빨라지고 품질이 좋아진다고 얘기한다. 최근 3년 동안 직영으로 수행한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없다가, 안타깝게도 2019년에 사망사고 1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아직 자료가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직영현장의 산재사고 발생이 하도급한 현장과 비교하여 현저히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단순히 사고건수로만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직영현장에서는 안전사고를 바로 인지해서 모두 산재신고를 하는데, 하도급 현장에서는 하도급업체의 미보고 및 자체 공상처리로 산재신고되지 않는 안전사고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GS건설 직영현장의 실제 안전사고 건수는 대폭 감소하였다고 봐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품질도 상당히 개선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도급한 공사에 대해서는 하자발생시 하도급업체와 하자원인을 두고서 실랑이를 벌여야 하지만, 직영시스템은 하자가 나면 100% 우리 책임이다. 목적물을 제대로 못 만들면 우리가 다시 공사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품질에 신경을 많이 쓴다.

경 ● 공사기간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GS건설 ● 앞에서 말한 하남선 3공구는 계획단계부터 직영방식을 적용한 첫 현장이다. 고난도의 지하철공사임에도 옆 공구보다 1년 먼저 완공했다. 매월 격주 휴무를 했는데도 충분히 공기를 완수한 것이다. 경기도가 처음으로 지하철 공사하면서 3공구 사례에 상당히 만족하는 것을 느끼고 있다. 현재 당사 직원 2명만 남아서 시운전하고 있다. 참고로 하남선 1공구는 서울시 발주구간이고 2,3공구 경기도 발주구간이다. 옆 공구는 협력업체가 2번 부도가 나서 공사가 늦어졌다.

경 ● 경실련은 대형공사장에서의 직접시공 효과가 클 것으로 생각해 왔다. 이에 대한 실증적 사례를 보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관련 당사자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먼저 가장 가까운 GS건설 직원들의 평가는 어떤가?

GS건설 ● 팀장을 포함한 직원들의 업무량이 많아졌다. 자재관리도 직접 해야 하고, 시공상세도(shop drawing)도 직접 그려야 한다. 당연히 현장시공에도 더 많이 관여해야 한다. 예전에는 모두 하도급업체가 했던 부분이다. 업무량이 늘어났지만 그로 인해 직원들의 업무수행능력이 디테일해졌다. 일명 엑셀맨이 아니라 진짜 엔지니어가 된 것이다. 초기에는 어려워했지만 공사가 진행될수록 만족하고 좋아한다. 이런 장점들 때문에 민자사업 현장에서도 직접 시공하겠다는 소장님들이 나오고 있다.

52시간 제도가 도입되면서 응집력 있게 일할 수밖에 없다. 야근한다고 현장에 남을 수 없다. 시간 내에 계획성 있게 해야 한다. 근무시간에 집중도가 높아진다. 쉬는 날이 정해져 있으니까 건설노동자 역시 효율이 높아지고 여가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경 ● 혹시 직접시공으로 협력업체 일감이 줄어들었다는 불만은 없는가?

GS건설 ● 예전에 같이 일했던 협력업체 대부분이 부도났기 때문에 그런 불만이 생길 수 없다. 그 이전에 우리가 상생해야 할 대상이 누군가 생각해봤다. 현장근로자, 장비업자, 자재업자들이다. 물론 새롭게 협력업체로 들어오고 싶은 전문건설업체가 있겠지만, 하도급업체 부도사태를 겪은 우리로서는 직영시스템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음을 이해해줬으면 한다.

경 ● 좋은 말씀 잘 들었다. 향후 계획을 듣고 싶은데, 공공 토목현장 말고 건축현장 등으로 직접시공을 확대 시행할 계획은 있는가?

GS건설 ● 토목현장은 전부 직영시스템으로 시행하고 있고 효과도 좋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건축공사는 우리팀 소관이 아니라 잘 알지 못한다. 토목현장과는 다른 특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토목현장의 직영시스템 운영현장도 많은 이윤을 남기는 건 아니다. 공사기간을 지키는 정도다. 악화되는 걸 방지하는 정도이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 앞으로도 많다.

경 ● 잘 알겠다.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겠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궁금하다.

GS건설 ● 직접시공 기사가 나간 후 여러 업체들의 방문을 받았다. 하지만 직접시공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우리 회사는 강한 추진체가 있어서 그나마 가능했다. 사장님, 본부장님, 상무님 그리고 우리 인프라국내CM팀이 한 몸이 되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 건설회사의 기술력이 무엇이겠나? 우리는 생존의 문제로서 고민과 철학이 확고했었기에 그나마 이 정도라도 가능했다. 결과만 아니라 그간의 과정까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경 ● GS건설의 직접시공 사례는 대기업으로서 매우 이례적이다. 아시겠지만 경실련은 직접시공제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데, 정부에 건의할 내용이 있는지?

GS건설 ● 현실적인 사안으로 근로자를 대상으로 말한다면, 동절기 등 현장작업 단절기간에 국민연금 보험료 추납 제도 신설 및 지원이 되었으면 한다.

화, 2020/02/0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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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9,10월호 – 우리들이야기(1)]

‘전태일 3법’은 통과될까?

 

이광택 한국ILO협회장(국민대 명예교수)

<전태일 평전> 개정판과 판소리 <전태일>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청계천 6가에 위치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작업장 부근에서 온몸에 석유를 뿌리고 산화한 지 50년이 지났다.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고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이 새롭게 선보인다. 1983년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초판이 나온 뒤 1991, 2001, 2009년 세 차례 개정을 거쳐 이번이 네 번째 개정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글 표기법 등이 변했기에 문장을 다듬었다. 전태일의 일기와 수기를 별색으로 처리했고, 요즘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용어(특히 일본식 외래어)나 젊은 세대에게 생소한 사건에는 주를 달았다. 연표에는 역사적 배경이 되는 사건과 사후 이소선 어머니와 동료들의 활동과 관련한 사항을 보강했다.
한편,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판소리로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지난 9월 14일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지부장, 최종태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지부장, 이수호 전태일 50주기 범국민행사추진위원회 상임대표, 임진택 창작판소리연구원 원장은 창작 판소리 <전태일>을 제작하기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식을 가졌다. 이들은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전태일 정신이 오래도록 기억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창작 판소리 <전태일> 제작 사업에 착수하며 “전태일 정신을 공평, 정의 등 현재의 시대정신으로 계승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판소리 <전태일> 창작과 공연의 총감독은 임진택 명창이 맡았다. 창작 판소리 <전태일>은 열사 50주기인 11월 13일에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공개된다.

근로시간의 연장?
근로기준법은 1953년에 제정되었는데 17년이 지난 1970년 전태일은 이 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몸을 불살랐다. 그러면 법 제정 후 67년, 전태일 산화 후 50년이 지난 지금은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 먼저 근로시간부터 살펴보자.
근로시간에 관해서는 법 제정 당시 주 48시간제를 기준으로 하고 당사자 합의에 의하여 주 60시간을 한도로 근로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미 2001년 8월 24일 노동부는 “주 5일 근무, 새 시대가 열립니다”라고 홍보하였고, 2003년 9월 15일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기업 규모별로 주 40시간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하여 ‘주 5일 근무 시대’가 열렸다고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11월 주 40시간 근로 원칙을 승인하는 ILO 제47호 협약을 비준까지 하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2018년 3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주 68시간’에서 ‘주 52시간’으로 단축하여 ‘주 52시간제’를 실시한다고 온통 난리를 쳤다. 그동안 노동부는 행정해석(근기 682855, 2000-09-19)을 통하여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당시) 제49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에서 연장 근로시간에는 휴일 근로시간이 포함되지 아니 한다”고 하여 사실상 1주일=5 working days로 근로시간을 운영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바로 잡는 방법으로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1주일은 “휴일을 포함한 7일”(제2조 제1항 7호 신설)로 정의하는 촌극을 빚은 것이다. 그동안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멕시코(2,137시간), 코스타리카(2,060시간)에 이어 3위(1,967시간)(2018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회원국 평균은 1,726시간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고용노동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개선’을 내용으로 하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이 1월 31일부터 시행된다고 발표했다. 주 52시간제 시행, 노동시간 특례업종(연장 근로 한도 미적용) 축소 등으로 불가피하게 연장 근로 한도를 초과할 수밖에 없는 예외적 상황이 증가한다고 보아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사용자가 ‘근로자 동의’와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주 52시간을 초과해 추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법 제53조 제4항)를 극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다시 주 40+12+12=64시간까지 허용하는 것이다.
종전에는 ❶“재해·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 수습”의 경우에만 허용하던 것을 그 사고의 ❶-1“예방을 위한 긴급한 조치 필요”뿐만 아니라 ❷“인명 보호 또는 안전 확보를 위한 긴급한 조치 필요” ❸“시설·설비 고장 등 돌발상황 발생 수습을 위한 긴급한 조치 필요” ❹“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 폭증 + 단기간 내 미처리 시 사업에 중대한 지장·손해” ❺“고용노동부 장관이 국가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연구개발” 등으로 거의 모든 경우에 허용하도록 하였다.
정부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 이후 6월 30일까지 총 1,665건을 인가하여 전년 동기(181건) 대비 인가 건 무려 9배가 증가하였다. 사유별로 보면 제1호 834건(50.1%)와 제4호 638건(38.3%) 로 코로나 등 “재난 예방 긴급 조치”에 못지 않게 단순한 “업무량 폭증” 관련한 업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2001년 ‘5일 근무’를 선언한 정부는 19년 후 코로나19라는 비상사태를 틈타 ‘주 64시간’으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있어도 시행규칙으로 이를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태일 3법’
‘전태일 3법’은 △근로기준법 제11조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노조법) 제2조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기처벌법) 제정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의 600만 노동자들에까지 확대 적용하고,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230만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노동 3권 보장, 중대 재해 발생 시 원청 사업주에게도 책임을 묻는 법의 제정을 말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추진된 ‘전태일 3법’ 법안은 9월 하순 각각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에서 성립 조건인 10만 명의 동의를 채웠다. 이제 국회가 법안을 논의하게 된다. 국회는 올해 1월부터 국민동의청원에 올라온 청원 중 30일간 10만 명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소관 상임위에 넘겨 심사토록 하였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는 헌법 26조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주 40시간’ 규정은 커녕 근로기준법을 아예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적용을 받는 노동자보다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청원은 근로기준법의 경우 그 적용 범위를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으로 제한하는 제11조를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바꾸자는 내용이다. “전체 60%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들은 대부분 영세한 규모”라며 “이곳의 노동자들은 법정 최저기준도 보장받지 못한 채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한다”고 했다.
5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일을 한다는 이유로,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단시간 노동자라는 이유로 1일 8시간 노동원칙을 비롯한 초과근로에 대한 연장근로수당 및 연차유급휴가, 부당해고로부터의 보호, 휴업수당, 주휴수당,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의 주요 조항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노조법 제2조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로 정의한다. 택배기사·대리운전 기사·학습지 교사 등을 말하는 특수고용·플랫폼 고용 노동자까지 근로자에 포함하도록 명확히 하기 위해 이 조항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으로 확대하자는 게 청원 내용이다.
사용자의 정의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로 규정되어 있는데, 이 부분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를 포함하도록 바꿔 간접고용노동자 등 원청사용자의 사용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기처벌법은 노동자의 중대 재해에 대해 기업의 경영책임자, 원청, 발주처 등 실질적인 책임자를 처벌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이다. 중기처벌법 제정을 위한 청원에는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대표 청원인으로 나섰다.

산업재해 – 중대 재해
정부의 공식 통계에 의하면 2019년 한해 사고 재해자 수는 94,047명이고, 질병 재해자 수는 15,195명이다. 산업재해 사망자는 2,020명이며, 이 중 사고 사망자는 855명(42%), 질병 사망자는 1,165명(58%)이다. 사고는 주로 제조업에서의 끼임 사고, 건설업의 추락사고 등이 의한 것이 많고, 질병 사망자가 더 많은 것은 탄광에서 일하다가 오랜 요양 기간 끝에 사망하는 진폐 사망자가 많기(2019년 402명) 때문이다. 사망사고만인율이 0.46으로 유럽, 미국, 일본, 독일 등에 비해 4배 정도 높은 수치이다. 산재보험 미가입자, 일용직, 단시간 근로자 등을 포함하면 재해자 수는 훨씬 많다. 이들을 포함하면 국내 산재 사망자는 한 해 2,400명, 하루 평균 7명으로 추산된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언택트 거래가 급증하면서 택배 노동자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올해 상반기에만 7명의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까지 업무 관련으로 사망한 우편집배원이 무려 46명이라는 5월 1일 KBS 방송 보도는 충격적이다. 집배부하량시스템에서 집배원 휴식시간이 시간당 1.8분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12월 산업안전보건법 제9조의2에 따라 중대 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사업장 등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확인된 사업장 1,420개소의 명단을 공표했다.
연간 사망 재해자가 2명 이상 발생한 사업장(제2호에 해당)은 대우조선해양(주) 김해장유복합문화센터현장, 현대엔지니어링㈜ 남양주공동주택현장 등 20개소이며, 사망만인율이 규모별 같은 업종의 평균 사망만인율 보다 높은 사업장(제2의2호)은 롯데건설㈜ 산성터널공사현장, 코오롱글로벌(주) 인천공장 신축공사현장 등 총 643개소이다. 2019년 처음으로 ㈜케이엠에스, 포트엘(주), ㈜한일 등 산재은폐 사업장(제2의3호) 7개소가 공표 대상에 포함됐으며, 최근 3년 내 2회 이상 산업재해 발생 미보고 사업장(제2의3호)은 한국철도공사, 삼성전기(주) 부산공장 등 73개소이다.
도급인의 경우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산안법 제29조제3항)으로 처벌 받은 경우 수급인 사업장과 함께 공표되는데, 이에 해당하는 도급인 사업장은 현대엘리베이터(주) 동아일보 대전사옥 공사현장, 신세계건설(주) 천마산터널 공사현장 등 총 448개소이다.
‘산재 미보고(은폐) 적발현황’을 보면 연평균 930여 건의 산재 은폐가 적발됐다. 이 가운데 노동부가 근로감독 등으로 적발해낸 건수는 평균 10%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건강보험 부당이득금 환수‘, ’119 구급대 신고‘ 등 건강보험공단이나 소방서 등에서 산재 은폐 의심사업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산재 은폐 사업주의 ’자진신고‘ 또는 노동자의 ’요양신청서 반려‘ 등 외부요인 힘을 빌려 적발했다.
김용균 씨 죽음을 계기로 2020년 1월부터 새로운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산재 사망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입법 과정에서 사용자 단체들의 요구가 반영되면서 ‘김용균법’이 유명무실해진 탓이 크다. 노동계가 요구해온 ‘위험작업 2인1조’가 법제화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기처벌법은 안전관리 소홀로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 경영책임자와 기업의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법안에서 ‘종사자’에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뿐만 아니라 “임대, 용역, 도급 등 계약의 형식에 관계 없이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자”와 “사업이 여러 차례의 도급에 따라 행하여지는 경우에는 각 단계의 수급인 및 수급인과 나목(그 사업의 수행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의 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하였다. ‘사업주’에는 “자신의 사업을 영위하는 자, 타인의 노무를 제공받아 사업을 하는 자”가 포함된다.
정의당이 법안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고 노회찬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을 21대 국회에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당 1호 법안으로 이어받았다. 기업 책임은 구체화됐고 처벌 강도는 높아졌다. 법원 판결의 보수성을 넘으려 별도 양형위원회를 두게 했고 민사상 입증책임을 사업주가 지게 했다.

갈 길은 아직 먼가?
전태일 사후 50년이 지나도록 근로기준법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1935년에 채택된 주 40시간 근로 원칙을 승인하는 제47호 ILO 협약을 2011년에 비준하고서도 아직도 ‘주 64시간’을 인가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직 비준하지 않고 있는 ILO 핵심협약 중 강제노동금지협약(제29호)은 1930년에,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은 1948년에,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제98호)은 1949년에 채택된 것이다. 전태일 사후 50년에 이들의 비준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인가?

금, 2020/09/2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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