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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 생태조사와 한반도 평화 (1)

지역

한강하구 생태조사와 한반도 평화 (1)

admin | 목, 2020/11/19- 19:18

. 문제 제기접경지역의 생태계적 상호협력의 역동성

경계라는 말의 사전적 뜻풀이에 따르면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다. 접경지역이란 말 그대로 그 경계와 경계가 접하는 지역이다. 서로 다른 성격(체제와 국가)의 공간이 만나는 지역이다. 이 이질적인 경계 사이에는 통제가 존재하며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넘나드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경계가 단절적인가 서로 협력적인가는 이 경계를 넘어 어떤 교류가 존재하는가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단절의 공간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질적인 것이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작용할 경우 접경지역은 경계를 넘어선 역동성으로 상호침투와 융합이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분단으로 민족과 조국이 양분돼 있는 남북의 경계는 분단의 결과이자 분단을 재생산하는 핵심 공간이지만, 그러기에 경계가 만나는 접경지역에서의 상호협력과 소통은 분단을 넘어서는 바로미터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미 접경지역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남북연결 도로와 철도 개설 등으로 평화 정착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었다. 잠시 멈춰섰던 걸음을 이제 다시 내디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성공단 금강산 등과 같은 접경지역에서의 협력은 남북당국간 정치적 협상과 회담의 결과이지만 그 과정은 남북 주민이 공동체적 질서를 구축해 삶의 과정에서 마음으로 좀 더 가까워지는 신뢰구축 작업으로 지속적으로 진행되야 할 것이다.

특히 임동근은 “접경지역을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정치적 역동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각 부문을 연결하는 다기능(multi-function)을 수행하는 행위 주체의 등장과, 이들 간의 재화와 서비스의 흐름을 만드는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개성공단의 경우 남한의 기계와 북한의 노동력이라는 단순한 구도였지, 평양-개성-서울을 오고가는 네트워크의 진화는 고려하지 않았었다”고 비판했다. “에너지, 물자, 사람, 정보 등 생태계를 구성하는 흐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무엇’이 접경지역을 오고가며 기존에 불가능했던 역동성을 만들어 낼 것인가라는 ‘대상’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1】

 

. 남북 협력과 평화의 시발점으로서의 한강 하구

▣ ‘한강 하구’의 특수성- 경계의 소멸로서의 중립수역

○ 지리적 역사적 그리고 정치 군사적 의미의 한강하구

‘한강하구’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지리적 풍경적인 개념으로 임진강 한강 예성강이 만나는 조강(祖江, 염하를 포함)과 서해가 만나는 수역을 말한다. 그러나 흔히 이 지역을 한강하구로 부르는 것은 꼭 들어맞지가 않는다. 정왕룡 김포시 의원 같은 이들은 “예로부터 이 지역에 맞는 조강이라는 이름이 있으니, 한강하구라는 보통명사적 용어 대신에 조강이라는 원명칭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곳은 임진강 예성강 등이 합쳐졌기에 더 이상 한강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며, 그 범위도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는 지점부터 서해로 흘러나가는 유도까지, 혹은 넓게 보자면 예성강 부근까지 한강하구 일대를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였다는 것이다.【2】 게다가 남북분단으로 더 이상 사람이 갈 수 없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잊혀진 이름이 되었으니 그 명칭의 복원은 분단을 넘어서려는 것이기도 하다. 조강은 글자 그대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강(祖江)이란 뜻으로, 흔히 총길이 514km에 달하는 한강이 조강에 이르러 그 수명을 다했다는 뜻에서 온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한강 하구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정치 군사적인 개념으로 정전협정상에 명시된 지역으로서의 의미다. 여기서 한강하구는 군사적으로 남쪽과 북쪽이 대치하는 적대적인 군사지역 가운데 정전협정 5항에 의해 규정된 수역이 된다. 정전협정은 이 수역을 한강 예성강 임진강이 흘러들어 만나는 수역으로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부터 서해 강화군 서도면 말도까지 67㎞로 구체적으로 명시해두고 있다.

정전 협정상에 규정된 이 ‘한강하구’(Han River Estuary)는 특별하다. 비무장지대(DMZ)의 다른 접경지역과 근본적으로 다른 한반도 유일의 중립수역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 제1조 5항은 다음과 같이 한강하구를 ‘군사분계선이 없는 자유항행 지대’로 규정하고 있다.

“한강하구의 수역으로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 하에 있고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 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간 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 쌍방 민간선박이 항행함에 있어 자기 측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육지에 배를 대는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

이 규정에 따르면 남북한의 민간선박은 한강하구를 자유 항행할 수 있고, 남이든 북이든 출항한 쪽이면 어디든 자유로이 입항할 수 있으며, 이는 정전협정에 규정된 육상의 비무장지대(DMZ)와 달리 한강하구가 중립지대(수역)라는 특수한 지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한강하구는 ‘한반도 남북 접경지대에서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지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위 지도에서 보듯이 많은 지도들과 그래픽이 이곳에도 군사분계선을 그어놓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강하구 지역은 군사분계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유항행을 보장하는 중립수역이다. 그런 점에서 보통 DMZ 바깥쪽에 설정되는 민통선도 한강하구에서는 법적 존재근거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 유엔사 관할권의 차등적 구조와 한강하구에 대한 법적 통제

정태욱 인하대 교수(법학)는 정전협정을 보면 유엔사의 이른바 군사통제에 근거한 관할권이 적용되는 비무장지대 및 접경지역의 범위는 이처럼 각 지역에서의 ‘군사적 필요’의 정도에 따라 차등적 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접경지역, 즉 육상의 비무장지대, 한강하구, 서해5도 수역들에 대한 정전협정의 규정과 유엔사의 관할권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우선 비무장지대의 경우에는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정전협정 제1조 제1항)하기 위하여 민간인 출입과 왕래 자체를 금하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강 수역(한강하구)의 경우에는 ‘쌍방의 민용 선박의 항행에 개방’하고, 다만, 그 ‘항행규칙을 규정하는’ 차원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다(정전협정 제1조 제5항), 또 서해 5도 수역에서는 바다 자체에 대하여는 직접적인 관할권을 정하지 않고, 다만, 섬들에 대한 군사통제만을 획정하고(정전협정 제2조 제13항 ㄴ목), 인접 해면을 존중하고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하게(정전협정 제2조 제15항) 하는 소극적인 차원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다르다. 한강하구도 여전히 군사통제구역으로 존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정태욱 교수는 “군사적 통제구역이 되었다고 하여 그것을 유엔사 관할권 행사의 결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적인 통제 상태와 법적인 통제구역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강하구가 법적으로 통제구역으로 돼 있는 것은, 정전 협정상의 통제가 아니라 남한의 국내법적 통제인데, ‘군사기지 및 시설 보호법’(군사시설 보호법은 폐지) 상의 민통선, 그리고 해양수산부가 제정한 선박조업 안전규칙 등에 의한 어로한계선이 그것이다. 이는 남한 당국이 육상의 비무장지대와 동일한 원칙을 한강하구에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러한 국내법적 통제는 정전협정이나 유엔사의 관할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해제되거나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3】

물론 한강하구가 정전에 관한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한강하구가 정전협정의 적용 대상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남북관계에서 한강하구는 무력 충돌의 위험 뿐만 아니라 70년대까지만 해도 적대행위가 빈발했다는 점에서 정전협정에서 한강 하구를 민간에 개방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 구역에서 유엔사의 관할권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강하구가 유엔사의 관할 구역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허가권(관할권 행사)을 비무장지대에서의 그것과 같이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태욱 교수는 이를 “민간의 평화적 이용권을 확인하는 협력적 확인행위”로 표현했다. 유엔사가 부속협의서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도 한 한강하구의 항행에 관한 정전협정 상의 민간선박 등록절차 등을 보건데 ‘금지를 해제하는’ 허가가 아니라, 단지 “자유의 행사를 인정하고 그것이 휴전체제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 주는 절차라고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4】

 

▣ ‘한강 하구’의 미래- 남북협력을 통한 ‘한강의 기적’

○ 한강하구의 특수한 지위와 남북 협력의 가능성

한강하구는 특별한 지위에 있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군사적 통제 아래 있는 육상에서의 비무장지대와 서해(동해) 수역에서의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남북간의 군사적 갈등과 비교해 본다면 접경지역에서의 남북 협력을 추진하는데 가장 적합한 독특한 지위에 있는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이러한 한강하구의 특수한 지위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선행적 실험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군사적 대결의 정전협정 체체를 넘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뤄가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미국(유엔사) 중국 등의 관할에서 남북의 관할과 합의로 바뀌어야 하며, 그런 합의 절차(평화협정 체결)가 요구된다. 예컨대 기존 정전협정상의 군사분계선(MDL)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 불가침 경계선’으로, 군사정전위원회는 기본합의서의 ‘남북군사공동위원회’로 바뀌고, 중립국감시위원회는 ‘한반도 평화관리 국제위원회’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그에 비한다면 정전협정 상의 한강하구는 이미 경계가 없는 중립수역이라는 지위에 있기에 그런 합의 이전에도 현재의 정전협정에 의거해 남북이 공동관리하는 데 합의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전협정 상의 이러한 특수한 지위는 한강하구 사업이 남북관계의 부침이나 안보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중립수역일 뿐만 아니라 북방한계선(NLL) 등 서해 동해에서의 경계 논란과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되고 있는 항행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따라 강의 본래 기능을 되찾는 남북 공유하천으로 만들어간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반해 서해 동해 등의 해역에서는 중립수역임에도 이른바 유엔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정한 북방한계선이 본래 취지와는 정반대로 남쪽이 북의 남하를 막는 군사적 남방한계선으로 고착화했으며, 이 북방한계선이 정전협정의 어디에도 근거가 없고 국제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이 ‘불법적인 선’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심각한 군사적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게다가 남쪽이 이 북방한계선을 실효 지배의 경계선으로 고수한다면 노무현 정부에서의 서해평화협력지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이 합의한 서해 해상에서의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의 범위를 설정하는 데 북이 동의할 수 있는 수역을 정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방한계선은 이처럼 서해에서의 평화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딜레마가 되고 있다.

한강하구에서의 협력에 관한한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접경지역 협력에서 남쪽이 중요시한 철도 도로 연결에 대해 북은 상대적으로 매우 소극적이었다. 대륙으로 가는 육로나 철도 연결은 남이 단절돼 있던 것이지 북은 늘 연결돼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임진강 예성강 등을 통한 서해로의 자유로운 진출, 해주 등 서해에서의 항행 자유 등은 북 또한 매우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한강하구의 이러한 정전협정 상의 특수한 지위 등 법적 지리적인 여건에 입각해 볼 때 한강하구야 말로 남북간에 가장 유망한 접경지역 협력 지대로 만들어가기 위한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한 것이다.

한강하구는 예로부터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전략적인 요충이자 물류의 중심이었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에는 치열한 세력다툼의 전장이었고 고려, 조선시대에는 삼남지방의 물자를 실어나르는 주요교통로였다. 병인, 신미양요 때는 프랑스, 미국 군함이 오르내렸고 분단이전 까지만 해도 임진강 예성강 한강은 살아 쉼쉬며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주요한 물길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전협정에서 한강하구 중립수역의 자유항행을 보장하고 있고, 한강(임진 예성강)이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주요 뱃길의 하나였다는 관점에서 이곳의 포구를 복원해 뱃길을 여는 사업은 본래의 강을 되찾아가는 일이자 분단을 넘어서는 본래 하나였던 삶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으로서 최우선적 과제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5】

 

○ 생물 다양성의 기수역(汽水域)이자 남쪽의 마지막 자연하구

생태 환경적으로 본다면 한강하구는 남쪽에서는 이제 마지막 남은 자연하구다. 특히 바닷물과 강물이 하루에 두번씩 교차하며 뒤섞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이 지역은 기수역(汽水域)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공존하는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습지와 뻘 등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 경로의 주요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북의 황해 연안 지대와 함께 이곳은 연중 일부를 한반도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여타 대양주 아시아 지역에서 보내고 여름 번식기를 위해 시베리아 알래스카로 날아가는 세계적인 철새 이동경로의 하나다.

한강하구에는 예로부터 황복, 웅어, 농어, 새우, 뱀장어, 숭어 등이 풍부했으며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노랑부리 백로 등이 서식한다. 특히 황복과 웅어는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올려 보내는 귀한 물고기였다. 갈대밭에 서식하는 웅어는 환경파괴 등으로 많이 사라져버렸으나, 바다에서 잡히는 일반 복들과 달리, 강에서 잡히는 유일한 민물복어인 황복은 고가의 ‘황금물고기’로 지금도 임진강의 명물이 되고 있다. 특히 장어는 현재 한강하구 어민들의 주된 수입원이 되고 있다. 흔히 풍천(風川) 장어라고 하면 풍천이라는 지명의 장어로 혼동하는데 본래 풍천이라고 하는 지역 또는 마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닷물(짠물)이 하루에 두번씩 밀물로 들어올 때 바람이 함께 들어와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을 풍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곳(짠물과 바닷물이 뒤섞이는 곳)에서 생산되는 장어를 바람이 함께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풍천 장어’라고 하는 것이다.

남북이 이 지역의 생태 서식 실태를 파악하고 지켜나가기 위한 환경 생태적인 차원에서도 공동 관리와 보호를 위한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자연적으로 방치된 상태가 아닌 강의 수자원 기능과 수로 항행 기능이 보장되고 인간으로부터 차단된 자연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면서 생태적 가치를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보호하는 적극적 환경보호와 평화적 이용의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강하구 뱃길 및 주운 활성화, 포구의 복원, 한강과 서해의 연결, 홍수 방지와 같은 핵심적 사업은 생태환경 가치의 보존과 함께 병행될 필요가 있다.

 

○ 다시 시작하는 한반도 평화

한강하구의 평화는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 이후에 가능한 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어려운 상황에서 상호 호혜와 신뢰의 구축을 통해 협력의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업이다. 즉 평화를 유지하고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사업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우선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민간 선박의 자유항행(뱃길 열기)을 그 맨 앞에 두려는 것은 앞서 살펴봤듯이 정전협정에서 이미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강 하구 중립 수역에 대한 뱃길 수로 및 생태 환경 조사는 이 자유 항행을 위한 선결 조건인 셈이다. 아울러 이 생태 환경 수로조사는 자체로 이 지역의 자유항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길을 열어가는 일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인 셈이다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안전 조처 등 항로 개설에 필요한 절차와 관행을 확립해 정전협정이 보장한 민간선박이 오가게 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판문점 정상회담 이래 내건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구호에 걸맞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재의 북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유엔제재 아래서도 남북관계를 변화시키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수도권 장기발전 구상과 서해 해상 평화 벨트와의 연계

이러한 한강하구의 복원 및 남북의 평화적 활용은 남북간 긴장 완화 및 접경지역 남북교류협력 활성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남쪽 내부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강하구 주변 지역 사회들의 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북은 북대로 임진강, 예성강, 사천강을 통해 개성 등 황해도 내륙지역의 서해로의 출구를 확보하면서, 서해 NLL을 둘러싼 영해 논란을 우회해서 한강하구를 통한 자유항행으로 서해에서의 통항의 자유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서해 5도와 인접한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가로막혀 있던 강령 녹색시범구, 해주항 개발 등 황해도의 개발과 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기조에서 볼 때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수도권의 과밀과 서울 집중을 완화하는 균형발전의 광역 수도권(메가 폴리스) 전략을 결합시켜 추진하는 비전이 될 수고 있을 것이다.【6】 지난 30년간 시행된 수도권 종합개발계획 및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정책과 규제의 성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대체적인 평가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인구와 산업의 분산이라는 정책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수도권과 지방이 모두 만족하지 못해서 국토 균형발전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남한 유일의 자연하구인 한강의 옛 뱃길을 복원하여 분단된 한강(조강)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길은 넓고 길게 본다면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자, 반쪽이 아닌 남북을 아우르는 온전한 의미에서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1】 임동근 한국 교원대(국토지리학), 접경지역시군구협의회와 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주최, ‘2018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접경지역 협력’ 1세션(2018 남북정상회담 이후 경계를 넘어선 협력의 모색) 토론문. 2018년 6월 27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2】 정왕룡 김포시 의원, 신년특집 김포 통일시대를 꿈꾸다 <김포저널> 2015년 1월8일.

【3】 정태욱 인하대 교수(법학) ‘한강하구에 관한 유엔사의 관할권’, ‘7.27 한강하구 평화 배 띄우기 조직위원회’ 주최의 “한강하구의 평화정착과 생태‧평화적 발전전략” 토론회 발표문 2007년 6월20일.

【4】 한강 하구의 항행규칙은 제8차 정전협정 후속 합의서인 <한강 하구에서의 민용 선박 항행에 관한 규칙 및 관계사항(1953.10.3.)> 제6항 (민간에서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사용하여 온 한강 하구 수역 내에 성문화되지 않은 항행규칙과 습관은 정전협정에 저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쌍방 선박이 이를 존중한다)에 규정돼 있다. 이 항행규칙은 군사정전위에서 정했으며, 다른 비무장지대의 경우 민간인의 출입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면, 한강하구는 규정에 근거해 등록된 민간선박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불허할 뿐 원칙적으로 항행을 허용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5】 생태 교란, 선박의 항행의 안전등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곡수중보 철거여부 문제도 생태적 관점만이 아니라 닫혀 있는 한강을 열어 온전히 복원하는 자유로운 항행의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이처럼 한강 및 수도권과 관련한 많은 사업계획 및 환경 생태관련 사업은 남북의 한강하구 공동관리의 관점에서 재검토되고 그런 방향에서의 장기 전망 아래 추진돼야 할 것임. 일단 당면 과제는 한강하구의 자유항행을 통한 한강 뱃길의 복원이라는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음.

【6】 김동성 외(2017). 『한강하구 평화적 활용을 위한 경기도 주요과제 연구』, 경기연구원, p. 174.

 

2020-06-05.

강태호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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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소비에트 연방이 진행했던 ‘냉전-1.0’은 45년 간의 거대한 이념적 경제적 기술적 전쟁이 이었고, 세계를 핵전쟁의 위험(Armageddon)으로 몰아가며 지구상의 모든 국가뿐만 아니라 달나라까지 영향을 미쳤다.

현재 진행중인 미국과 중간의 ‘냉전-2.0’은 기존의 냉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의 경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위험성과 영향력에 있어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미국에게 있어서 중국은 인구의 규모 면에 있어서도 기술적 야심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의 상대보다 훨씬 힘든 적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싸움은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소련은 지구를 양분하여 분리된 형태로 각자의 영역에서 존재하였지만,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서로 엉켜 의존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중국은 미국이 최대 무역대상국이었으며, 중국의 바이트댄스(ByteDance)사가 비디오 네트워크의 지분을 공유하고 있는 TikTok은 비게임 분야에서 세계 최대의 앱(app) 프로그램이고, 2019년 현재 미국의 대학에 369,548 명의 중국학생이 등록한 가운데 시진핑 주석의 따님이 2014년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바 있다.

이와 별도로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경쟁은 기존과는 달리 전혀 새롭고 결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냉전-1.0’이 재래식 군사력과 핵위협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면, 현재의 ‘냉전-2.0’은 민간사회를 통한 소프트웨어와 기술의 혁신경쟁이라는 측면이 훨씬 강하다. 인터넷은 단순히 통신수단이 아니라 통제의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에서 사물인터넷(IOT)를 운용하면 수십 억의 장치를 연결하면서 지정학적 전략의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바로 이 분야에서 중국이 자신의 위상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서방의 주요 국가들이 5G 네트워크에 화웨이 장비를 적용하는 여부가 일종의 시금석이 된다. 흔히 미국과 중국의 대결적 상황은 성격이 전혀 다르며 어울리지 않는 두 국가의 지도자들 즉 트럼프와 시주석의 개인적 정치성향 때문이며 두 사람이 서로를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해석하기 쉽다.

그러나 미국 내 중국분야 최고의 권위자중 한 사람인 Orville Schell은 보다 분석적이고 위협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에 의하면, 공화와 민주 양당이 8번을 교대로 집권해온 지난 50년 간 지속되었던, 중국에 대한 미국의 포용정책은 이제 끝장이 났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냉전이라는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른 것(종결)이 아니라 겨우 중턱 어디쯤에 머물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미국의 포용정책은 아래의 두 가지 전제에 기반하고 있었으나 모두 실패하였다고 결론짓는다. 한가지는 중국이 번영을 지속하고 개방화를 진행하면 점차로 민주적 사회로 전화할 것이라고 워싱턴은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터넷의 도입이 자유를 확산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8년 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중국이 인터넷을 차단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마치 ‘벽에다 껌을 부치는 격’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판연히 다르다. 중국은 공산당이 내부의 통제력을 전혀 늦추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경제강국으로 부상하였으며, 국제적 인터넷에 대한 중국내의 방어벽(firewall)을 강화시키는 한편, 다른 국가들의 사이버 공간에 혼란을 야기시킬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지난 주에만 중국과 연계된 선전 캠페인으로 추정되는 23,750개의 내용물을 트워터에서 추려냈다.

“우리는 총격전을 벌릴 필요는 없지만 이에 필적하는 위험한 경쟁의 전쟁에 빠져 있다”고 미국의 전역장성은 경고를 보낸다. 위싱턴의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 책임자인 Robert Atkinson은 중국이 이미 일부의 선도산업 분야에서 미국을 추월하였고 동시에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중국은 기술분야에서 강력하게 그리고 손쉽게 미국을 압도할 것이다”. 그는 미국이 긴급하고 강력하게 자국의 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자유시장과 사적재산권 그리고 기업가의 정신이면 성공을 보장한다’는 기존의 흔해빠진 신념은 비역사(비현실)적이며 무책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Actkinson은, 냉전이 절정이었던 1963년 당시, 미국 연방정부는 나머지 전세계의 정부 및 민간 분야의 모든 투자액보다 많은 예산을 R&D 분야에 투입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현재는 1955년에 이루어진 GDP 비중보다도 적은 예산이 미국의 R&D에 할당되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중국의 지도부들이 미국의 정치지도자들보다 과거 냉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미국의 역사를 더 잘 숙지하고 있으며, 기술적 혁신이 국가안보의 핵심이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출처 : 파이낸스 타임즈 on 2020-06-16.

John Thornhill

FT 혁신분야 편집책임자

금, 2020/07/3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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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전작에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제재가 2020년에는 한층 기승을 부릴 것이다”라고 예측하였다. 불행하게도 나의 예감은 적중하였다. 현재 목격하듯이, 미중 간의 관계가 악화일로에 빠지면서 세계적인 지정학적 위기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대결국면이 향후 다음세대의 국제지정학적 지형을 결정할 것이다. 더욱이 위험한 것은 인류전체가 상황의 인지여부를 떠나 양대 강국의 전략적 대결을 자연스러운 국면으로 수용하면서 아예 체념하는 것이다.

북경과 워싱턴 당국의 전투는 현재까지 대부분의 영역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 기술과 통상, 투자와 금융, 공급사슬과 생산거점, 미디어와 국내정치의 간섭, 코로나 상황 등. 과연 누가 이 상황을 조정할 수 있을까? 양대 당사국이 아닌 국제무대에 영향력있는 제 3자(global Players)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누가 제 3자적 역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전문가들 대부분이 거대한 두 개의 진영에 부분적으로 편입되어 있는 4개의 중심 국가들을 거론한다. 한쪽 진영에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존재한다.

이러한 사각 마름모꼴을 단순하게 보면, 현재 2:2의 스코어이다. 한 측의 골대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광범한 분야에서 협력을 유지하면서 미국이 가하는 제재와 압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다른 끝의 양상은 보다 복합하다. 유럽연합은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일차적으로 유지하지만,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과는 대립할 의사가 전혀 없다.

러시아는 현재 미국과는 공개적으로 적재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미중의 대결을 중재할 입장이 못된다. 자연스레 미국-유럽연합-중국의 삼각관계를 살펴 보고자 한다.

미국과 중국의 현재적 관계는 모든 면에서 대립적이라는 것이 분명하며, 이를 다루는 연구보고서의 양은 트럭에 담을 만큼 방대하다. 따라서 나는 유럽연합과 미국 그리고 별도로 유럽연합과 중국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우선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미국 내부의 단합을 심각하게 해쳐 왔다. 유럽국가들은 트럼프가 미국의 국가이익을 새롭게 정립해가면서 동맹으로서 대서양 양안의 이해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는 전후 미국이 추구해온 전통적 외교정책과는 매우 동떨어진 내용이다.

유럽국가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은 특별히 안보분야에서 미국과 긴장이 형성되고 있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나토가 뇌사상태에 빠졌으며, 별도의 ‘진정한 유럽군’의 창설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마크롱의 요구를 트럼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메르켈 수상도 지지하면서 ‘현실적이며 진정한 유럽군’의 창설에 한술을 보태면서 지지를 표명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첨언했다 “ 유럽이 (안보를) 다른 나라에 의존했던 시절은 지났다.”

미국과 유럽이 마치 이혼을 앞둔 부부처럼 서로 으르렁대는 명백한 사실들은 수십 가지 존재한다. 한 가지 예로 G7 참여요청을 메르켈이 거부하자, 트럼프는 곧바로 독일에서 9,500명의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최근 12,000명 미군의 독일철수를 공식화하였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연결되는 북부천연가스(Nord-Stream) 공사에도 전례없는 긴장이 조성되어 왔다. 독일연방의회의 경제에너지분야 책임자인 Klaus Ernst의원은 지난 6월 16일 기자회견에서 상기 공사에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 독일은 상응하여 가능한 조처로 대응하겠다고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미국이 제재를 가하면 일대일(tit-for-tat)의 대응으로 미국의 LNG 수입에 징벌적 제재를 고려해야 한다. 유럽북부 두 개 노선의 가스공급 공사에 대해 미국 상원이 제재법안을 결의하면, 우리도 상응하는 제재를 도입해야 한다. 미국의 제재결의는 유럽의 법률체제에 대한 불법적인 개입이며 동시에 독일과 유럽의 주권에 대한 침해이다.”

나의 판단으로는 중국과 유럽연합이 우선적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분야는 환경보호와 녹색발전(green development)의 영역이라고 본다. 특별히 미국이 국제적인 연대(파리기후협약)를 거부하고 탈퇴한 영역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 서로가 협력하기에 적격인 셈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팬데믹이 발생하고 확대되기 이전부터, 유럽연합은 환경보호 및 탄소제로의 촛점을 맞춘 인프라에 1.1조 달러를 투자하는 유럽-그린-딜(European-Green-Deal)을 속도감있게 추진하여 왔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유럽과 협력을 강화면서, 태양광 에너지와 수소생산 플랜트, 전기차량(EVs)와 배터리 생산 등 분야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상호 간에 중요한 승수적 효과를 얻는 것이 어렵지 않다.

유럽연합 집행부 환경과 해양수산 분야의 책임자는 유럽과 중국 양측이 유사하게 환경보호라는 심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국제연대분야의 기후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인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상적 세상을 위하여 유럽과 중국은 탄소시장을 서로 통합하면서 세계기후문제에 대해 주도할 수 있다….. 배경에는 유럽 단독으로 (세계를 주도하기에) 충분히 강력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협력을 해야만 한다.”

본 주제에 대한 결론으로 유럽연합과 중국 간에는 상호 상거래를 통한 거대한 이익이 존재한다. 중국에 있는 유럽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펜데믹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국투자 기업들의 60%에 가까운 조직들이 계속적으로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 중국 내에는 16,000 이상의 유럽기업들이 투자하고 있으며 투자의 누적 총액이 1,100억 달러를 상회하는 만큼 47,000 여의 사업장이 운용되고 있다. 1+17(중국과 17개국의 유럽국가)라는 전략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면서 이미 중국은 완숙한 유럽의 협력자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유럽집행부의 외교안보담당 최고책임자인 Josep Borrell 부집행위원장은 중국에 대항하는 환대서양-동맹(transatlantic-alliance)의 구상을 거부했으며, 북경당국과 체계적인 경쟁도 배제하였다. 그는 6월 14일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언급하였다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이 국제정치의 중심축을 형성하면서, 양 진영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력이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자신의 길’My-Way’을 걸어갈 것이며, 모든 도전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과 대립이 장기화되면서, 유럽의 역할을 점증될 것이다. 향후 수 개월에 진행될 미국-유럽연합-중국 간의 삼각관계가 향후 세계질서의 전반적인 지형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유럽연합과 중국간의 FTA는 타결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오는 가을에 공식관계를 발표하는 대대적인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출처 : 중국국제방송 on 2020-06-21.

Djoomart Otorbaev

소련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러시아 사회과학원 연구원을 거쳐 키르기스 공화국의 수상을 2년간 역임하고 현재는 중국인민대학의 Chongyang 연구소 초청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금, 2020/08/1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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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부가 금융시장을 더욱 개방하고 자본의 흐름에 대한 통제를 완화한다면, 중국이 새롭게 도입하는 가상화폐e-RMB가 국제간 결제수단으로 기능하며 위안화의 저축통화로서 지위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기축통화라는 미국달러의 지위를 약화시키지는 못한다.

ITHACA – 수년 전부터 중국위안화가 국제적인 비중을 높여왔다. 실물경제의 국제결제과정에서 위안화는 5번째로 중요한 통화가 되었으며, 2016년에는 IMF가 특별인출권 가치를 결정하는 주요통화 바스켓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후에 위안화의 비중은 정체를 보여왔으며 실물교역의 국제결제수단으로서 비중이 여전히 2% 미만에 머물고 있으며 국제통화교환기금에서의 비중 역시 2%선에서 정체를 보이고 있다.

금년 상반기에 중국은 중앙은행발행 디지털화폐를 출범시켰는데, 주요 경제권에서는 처음있는 일이다 소위 디지털화폐/전자결제(DCEP)를 4개 도시에서 시험적으로 적용하였고 연이어 북경과 천진 홍콩과 마카오 등에 도입할 것이라고 최근 중국중앙당국은 밝혔다. 그러나 DCEP 방식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위안화의 역할을 증대시킬 만한 변화의 호재(game-changer)가 되지는 못한다.

중국이 소비시장의 결제수단에서 다른 선진국 경제권에 비하여 전자방식이라는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따라 e-RMB가 중국통화의 국제금융시장에서 비중을 상대적으로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냉정하다. DCEP방식이 중국 내에서 보편적인 결제수단이 될 것이지만 이것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넘어 국제간 결제수단이 될 것이라는 것은 과다한 망상이다. 오히려 중국이 2015년에 도입한 국제은행간 결제시스템이 해외거래에서 위안화의 사용을 확대하는데 훨씬 주요한 디딤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상기의 결제시스템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결제시스템SWIFT을 우회할 수 있어 미국의 금융제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국가들에게 매력을 제공한다. 이런 배경에서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의 에너지 생산국가들은 중국과의 거래에서 위안화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용이하다.  또한 위안화의 사용이 점차로 확산되면서 중국과 통상 및 금융적으로 깊이 연계되어 있는 경제적 소국들이 중국과 거래에서 위안화로 결제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서 DCEP방식이 결국에는 국제결제의 전자방식으로 도입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외국투자자들에게는 기존의 위안화와 새로운 DCEP방식 사이에 선택할 기금(기준)화폐로서 별다른 차이를 주지 못한다. 무엇보다 중국정부가, 자본입출의 흐름을 통제하고 인민은행이 위안화의 환율을 관리하는 상황에서는, 결제방식의 차이가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위안화를 지지하는 측은 중국정부가 자본의 흐름에 대한 통제를 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자본계정을 완전히 개방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인민은행도 환율개입을 줄이면서 시장의 힘에 맡길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자본흐름의 변화가 위안화에 부담을 주게 되면, 중국정부는 다시 통제와 규제의 과거 모드로 되돌아가고 환율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해외의 중앙은행 등 외국 투자자들은 중국당국이 자본흐름을 자유화하고 환율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견해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이다.

어떤 경우에도 외국 투자자는 물론이고 국내투자자들조차 국제금융시장의 혼란 시기에 위안화가 안전자산의 기능을 가질 것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안전자산의 기능은 신뢰와 믿음을 요구하는데, 이는 어떤 상황에도 규칙을 고수하고 정치시스템에 있어 균형과 견제가 작동해야만 가능하다.

일부에서는 중국에도 규칙에 의한 법치가 작동하며, 자본시장이 요동칠 때에 정책입안자들의 개입을 저지하는데는 일당 지배의 정부체제와 자체수정기능이 더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의 배치는 미국 등에서 적용되는 균형과 견제, 즉 집행부과 입법권 그리고 사법권력이 실행의 권한을 제한하는 일반화된 제도를 대치할 만큼 신뢰할 수도 없으며 지속가능 하지도 않다.

현재의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확립된 제도들을 약화시키고, 법치를 흔들고 있으며,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을 훼손시키려는 온갖 행위를 벌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 분야는 건재하다.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과 흔들림없이 유연한 흐름을 보이는 자본시장의 작동, 여전히 건실하게 작동하는 제도적 프레임 등은 아직까지도 세계를 주도하는 기축통화로서 미국달러를 대체할 다른 경제수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 위안화가 최근 결제수단과 투자대상으로 보여준 국제적 비중과 지위는 달러의 희생이 아니라 유로화와 파운드화의 퇴조에서 비롯되었다. IMF가 SDR바스켓에 위안화 비중의 가중치로 10.9%를 부여한 것은 유로화, 파운드 그리고 일본엔화의 조정에 따른 것이지 미국달러의 양보가 아니었다.

중국정부가 금융시장을 더욱 개방하고 자본의 흐름에 대한 통제를 완화한다면, 중국이 새롭게 도입하는 가상화폐e-RMB가 국제간 결제수단으로 기능하며 저축통화로서의 지위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기축통화라는 미국달러의 지위를 약화시키지는 못한다.

 

출처: Syndicate Project on 2020-08-25.

Eswar Prasad

코넬 대학교의 실용경제학 및 경영학 교수이며, 브루킹스 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을 겸임하고 있으며 최근 “Gaining Currency: The Rise of the Renmini. 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목, 2020/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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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의 수석전략가 출신인 스티브 배넌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공산당을 분쇄시키자며 ‘전쟁-위원회’를 함께 구성하였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때마침, 지난 6월말부터 미국의 고위공직자들이 중국공산당에 대하여 직설적인 공격발언을 이어왔다. 안보보좌관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FBI 국장인 크리스토퍼 워레이, 법무장관 윌리엄 바 그리고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까지 가세하여 공산당을 전복시키라는 트럼프의 지시에 따라 “최악의 4인방” 발언이 연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미국 행정부는 중국과 양자관계를 단절하고자 구체적인 공세를 개시하면서, 휴스턴에 있는 중국 영사관을 폐쇄시켰고, 보건부 장관인 알렉스 아자르가 대만을 공적으로 방문하였으며, 중국의 온라인 매체인 Tiktok과 Wechat의 미국 내 운용을 중지시켰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미국에 대한 일대일 대응전략(tit for tat)과 보복전략인 이랑전사(wolf-warrior)방식 대신에, 중국의 실제반응은 놀랍게도 타협적이고 차분하였다.

지난 8월5일 신화통신과 인터뷰를 통해 외교부장인 왕이는 ‘신냉전’이라는 개념을 단호히 거부하였으며, 어떤 수준이든 언제 어디서라도 대화를 통해 양국 간의 긴장을 완화시키자는 제안을 역으로 제시하였다.

이틀 뒤에는 중국공산당 최고위직으로 외교관계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양제츠 상무위원은 기고를 통하여 “역사를 회상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미중의 우호적 관계를 확고히 지키고 안정시키자”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양 상무위원은 닉슨 행정부에서 시작된 미국의 중국 포용정책이라는 전례의 신화를 치세우면서 모든 방면에서 양국의 호혜적 협력을 촉구하였다.

문제는 중국의 우의적 외교정책이 너무나 늦게 내용도 없이 제기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누구도 이러한 제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북경당국의 대화제안은 ‘소귀에 경읽기’ 식으로 워싱턴은 어떠한 대화도 중국측의 외교적 수사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중국 외교정책은 너무나 단순하게 해석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한다면 중국이 미국과 관계를 복원하기 위하여 다음의 3가지 사항을 전달하고자 의도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첫 째는, 중국은 미국과 냉전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은 과거의 소련이 아님을 분명히 했으며 패권국가인 미국을 대체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혔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희망을 담은 생각으로 양국이 함께 호흡을 맞추어 춤을 추어야 한다. 중국은 과거 미국과 소련을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갔던 냉전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고 미국에게 조언하고 있다.

왕이 부장과 양제츠 상무위원은 닉슨 대통령이 1972년 중국을 방문하였던 과거의 호시절을 다시 조명하면서, 양국의 이념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협력하며 공존한 사실을 확인시켰다. 이는 미국의 ‘4인방’이 던진 펀치를 태극권 방식으로 가볍게 피해가려는 대응이다.

두 번째의 메시지는 미국 독자적으로 냉전을 치를 수 없다.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5-eyes 국가들 즉 호주와 뉴질랜드 영국과 캐나다 등에게 중국은 미국과 새로운 냉전을 시작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알린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 타협적인 언어를 구사하면서, 미국이 반-중국 동맹을 형성하려는 의도를 무마하려고 한다. 중국의 냉전거부 노력은 왕이 부장이 유럽의 주요 국가들의 순방에 나선 것으로도 확인된다.

미국의 동맹을 자처하는 국가들은 ‘4인방’이 제시한대로 냉전의 시대로 진입할 것인지, 반대로 ‘4 인방’의 제안이 망상에 불과한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단기간의 대결을 통해서 장기판 방식의 승부(장군!)를 거는 반면에, 중국의 지도자는 바둑 방식의 셈법에 따라 향후 자신들의 위상에 유리한 경로를 찾아가고 있다. 이를 통하여 단기간의 이익을 포기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당장의 커다란 위험을 회피하는 개임을 추구한다.

마지막 세 번째의 메시지는 미중 간의 잠재적인 대결이 가져다 주는 위험에 대하여 국제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최근 미국대선을 앞둔 시기에 아시아-태평양에서 물리적 충돌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략적인 오판 혹은 군사적인 실수로 인하여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또는 대만해협 등에서 열전 또는 핵대결이라는 잠재적 위협이 존재한다.

중국 최고위직 외교관들은 중국이 가지는 인내의 한계선은 공산당의 규칙준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 보사부장관인 아지르가 대만을 공식 방문하면서, 중국은 대만해협을 둘러싼 대규모 군사훈련에 돌입하거나, 남중국해에 항공모함을 타격하는 미사일 시험을 감행할 수도 있다(편집자 주, 최근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유교적 전통에 의하면, 도덕적 기준(명분)을 상실하면 전쟁에서 패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팬데믹이 창궐하는 가운데, 국제적인 긴밀한 협력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중국은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자중지란에 빠져있다.

과연 중국이 상기 메시지들로써 미국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을까? 중국이 자신들이 의도하고자 하는 부드러운(점잖은) 방식으로 상황을 대응할 수 있을까? 오는 11월 미국 대선이 미중 관계의 향후 진행에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은 자칫 우발적 사고를 통해서 전쟁사태에 돌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출처 : 동아시아포럼EAF in ANU on 2020-09-01.

Kai He

호주 Griffith University의 국제정치학 교수이며, 당 대학의 아시아 센터 및 공공정책 연구소의 책임자이다

금, 2020/09/2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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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후임은 누가 될 것인가. 오는 9월 독일은 연방하원 선거를 치르고 새로운 총리를 선출한다.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집권 기독민주당(CDU·기민당)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지난 1월 당 대표로 선출된 아르민 라셰트(60)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상황이 간단치만은 않다. 당 대표로 선출되고 총선에서 승리한다고 반드시 총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셰트 대표의 인기가 그다지 높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일 슈피겔이 지난해 12월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을 꼽는 질문에서 라셰트는 31%로 11위에 그쳤다. 독일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에 이어 가장 높은 지지율인 60%를 얻은 정치인은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CSU·기사당) 마르쿠스 죄더 대표(바이에른주 총리)와 옌스 슈판 독일 보건장관이었다. 라셰트는 야당인 사회민주당(SPD·사민당) 총리 후보인 올라프 슐츠 재무장관(52%)과 같은 당 소속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51%)에도 지지율이 한참 미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함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온 기민-기사 연합에서는 대체로 다수파인 기민당 내에서 총리 후보가 선출돼 왔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죄더 기사당 대표가 사실상 총리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당 부대표로 선출된 슈판 보건장관 역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지지세를 등에 업고 차기 총리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라셰트 대표는 대표 선출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총리 후보 결정과 관련해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하지만, 결정을 할 때 유일한 근거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며 선을 긋고 있다.

 

라셰트의 도전, 기회와 위협

라셰트는 1961년 2월 벨기에와 네덜란드 국경에서 가까운, 독일의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아헨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가 벨기에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톨릭 신자이고 불어에 능숙하다. 아버지는 광부였다. 당 대표 출마 연설에서 그는 아버지가 광산 갱내에서 일하면서 동료들과 서로 믿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본과 뮌헨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1차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이후 저널리즘을 공부했으며, 주로 언론인으로 일했다. 바이에른 방송의 본 특파원을 지내기도 했다. 가톨릭 신문의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4년에 독일 연방 하원 의원에, 1999년에는 유럽 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2005년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정부 초대 세대·가족·여성·통합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특히 2017년 독일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전통적인 사민당의 텃밭이자 당시 메르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마르틴 슐츠 사민당 대표의 고향에서 승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라셰트는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로 불렸던 안네그레트 크람프 카렌바우어 전 기민당 대표가 지난해 초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연대 논란으로 사퇴하면서 당 대표에 나설 기회를 얻게 됐다. ‘차기 메르켈’로 불리던 바우어의 사퇴 이후 기민당은 지난해 4월 전당대회에서 대표를 선출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됐다. 당시 차기 총리 후보이자 대표로 유력하게 떠오른 인물은 프리드리히 메르츠였다. 보수 성향이 강하며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독일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킬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만약 그때 대표 선출을 했다면 라셰트가 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1년 사이 메르츠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부정하면서 당 대표 선거 연기가 자신이 대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폈고, 인기가 많이 하락했다. 해를 넘겨 올해 온라인으로 진행된 투표에서도 메르츠는 1위를 차지했다. 라셰트는 결선투표에서 이를 뒤집었다. 최종 단계에서 메르츠 당선 이후 혼란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다시 메르켈을 비롯한 중도파 쪽으로 다시 표심이 기운 셈이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지난 3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와 라인란트팔츠주 의회 선거에서 기민당이 역대 최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패배했다. 이 두 곳의 선거는 올해 연방 하원 의원 선거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여파가 컸다. 현직 주지사들의 인기에 따른 것이라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도 있지만 최근 악재의 영향도 있었다. 기민당의 니콜라스 뢰벨 의원이 중국산 마스크 중개 수수료를 받은 혐의로 사퇴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 영국에 비해 늦어지고 있는 독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상황이 유권자들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라셰트 역시 선출된 뒤 두 달만에 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차기 총리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도 조금씩 나오는 상황이다. 라셰트는 선거 결과에 대해 “기민당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메르켈의 공백을 기민당이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가 더 큰 문제다. 메르켈은 지난 15년 동안 유럽에서 독일의 위상을 높여왔다. 메르켈의 리더십 덕분에 오늘날의 유럽연합이 유지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민당의 현재 지지율 역시 ‘메르켈 보너스’라고 불릴 정도로 메르켈의 인기가 끼친 영향이 크다. 분석가들은 메르켈이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기민당의 인기가 약화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 조금씩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기민당의 지지율 하락은 라셰트의 총리 도전에도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포스트 메르켈, 독일의 행보는 어디로

라셰트의 총리 선출 여부는 메르켈식 국정철학이 계속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언론에서는 라셰트를 ‘메르켈의 충신’(도이체벨레) ‘메르켈과 연속성을 가진 후보’(가디언)라고 표현하고 있다. 라셰트는 메르켈 총리와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인 적도 없으며, 늘 메르켈의 편에 섰다고 알려져 있다. 2015~2016년에 걸쳐 메르켈 총리가 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기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했지만, 라셰트는 끝까지 메르켈을 지지했다. 메르켈 역시 당 대표 선거에서 라셰트를 지지했다. 라셰트도 메르켈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며 당 대표 선출 이후 “총리의 국정 운영이 안정적으로 마무리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라셰트는 ‘통합의 마이스터’라고 불린다. 중도 실용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기민당 내에서도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 다양성과 통합에서 독일이 얻는 이익이 많다는 메르켈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유럽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과 나토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독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러시아와 관계를 맺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는 독일의 친환경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전환 정책의 보완재로서 중요하기도 하다. 메르켈 총리가 유지해 온 친중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라셰트 역시 독일 수출기업의 이익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중국과의 가까운 관계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껄끄러운 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이 최근 중국과 포괄적 투자협정을 체결한 일을 두고 불만을 품고 있다.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대중국봉쇄정책에 찬물을 끼얹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협상을 주도한 것이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국인 독일이고, 메르켈 총리다. 라셰트 역시 친중, 친러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라셰트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수송관 사업에 대해 “재고의 여지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국은 이 사업이 자국 천연가스를 유럽에 판매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보고 반대하고 있다. 메르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지만, 때맞춰 새로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메르켈의 행보를 답습할 것으로 보이는 라셰트가 달갑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누가 총리가 되든 복잡한 국제 역학관계에서 독일의 운신 폭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메르켈 시대가 끝나면서 그의 리더십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 대표 선거에서도 라셰트를 비롯해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들이 ‘가톨릭에 법학 전공, 서독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 출신 남성’이라는 점에서 과거 서독 시절로 회귀했다는 말도 나왔다. 동독 출신의 여성 과학자라는 배경을 가진 메르켈과는 어떤 식으로든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헤르프리트 뮝클러 독일 훔볼트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메르켈이 보여준 깊이 경청하고, 인내심과 중재력이 뛰어나며, 믿을 수 없는 수용능력을 지닌 리더십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티모시 가튼 애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메르켈의 퇴장은 독일 역사상 매우 좋은 시기의 끝”이라며 “메르켈은 우리가 경험한 가장 좋은 독일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잘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헝가리와 같은 사실상 독재 국가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이지 못했고, 디지털/생태 전환에는 미온적이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기민당이 녹색당과 연합하게 되면 중국과 유럽의 신진 독재자들에게 강한 입장을 표시하면서 디지털/환경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차기 연합의 형태가 차기 총리의 성향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기민당에 이어 지지율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Armin Laschet 인물정보 바로가기

[연합뉴스 2021.3.15.] 독일 포스트메르켈 선거개시…주의회 선거 2곳서 여당 패배 유력

[시사저널 2021.2.2.] 누가 라셰트를 ‘포스트 메르켈’이라 했나

[가디언 2021.3.15.] Questions over new CDU leader as Angela Merkel’s party slumps to defeats

[한겨레 2021.3.15.] 일 기민련, ‘메르켈 이후 선거 전초전’에서 뼈아픈 패배

[서울신문 2021.1.17.] 메르켈 떠나도 ‘메르켈 시대’

[경향신문 2021.1.17.] ‘포스트 메르켈’ 윤곽…라셰트, 여당 대표 선출

[조선일보 2021.1.18.] 獨 집권당 대표에 라셰트…’메르켈 후임’ 경쟁 본격화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1/18/2021011801949.html

[오피니언뉴스 2021.1.25.] 최수정의 유럽외교전 – 메르켈 보다 더 친러시아, 獨총리 후보 ‘라셰트’

[뉴욕타임스 2021.1.16.] A Step Toward a Post-Merkel World: Her Party Picks a New Leader — Again

[뉴욕타임스 2021.1.15.] Merkel’s Party to Choose New Leader, and Possible Successor as Chancellor

[연합뉴스 2021.1.23.] 라셰트 독일 기민당대표 “총리후보 결정, 여론조사에 의존 안해”

[연합뉴스 2021.1.18.] 홍콩매체 “독일 집권 기민당 새 대표 선출, 中에 긍정 신호”

[연합뉴스 2021.1.19.] 포스트 메르켈 체제 이끌 라셰트 기민당 대표…차기 총리 될까

[연합뉴스 2020.1.19.]포스트 메르켈 체제 이끌 라셰트 기민당 대표…차기 총리 될까

[문화일보 2021.1.26.] 라셰트 獨 기민당 대표 “노르트스트림-2 사업 재고 없다”

 

황경상

목, 2021/04/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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