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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하구 생태조사와 한반도 평화 (1)

지역

한강하구 생태조사와 한반도 평화 (1)

admin | 목, 2020/11/19- 19:18

. 문제 제기접경지역의 생태계적 상호협력의 역동성

경계라는 말의 사전적 뜻풀이에 따르면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다. 접경지역이란 말 그대로 그 경계와 경계가 접하는 지역이다. 서로 다른 성격(체제와 국가)의 공간이 만나는 지역이다. 이 이질적인 경계 사이에는 통제가 존재하며 기준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넘나드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경계가 단절적인가 서로 협력적인가는 이 경계를 넘어 어떤 교류가 존재하는가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단절의 공간이 아니라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질적인 것이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작용할 경우 접경지역은 경계를 넘어선 역동성으로 상호침투와 융합이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분단으로 민족과 조국이 양분돼 있는 남북의 경계는 분단의 결과이자 분단을 재생산하는 핵심 공간이지만, 그러기에 경계가 만나는 접경지역에서의 상호협력과 소통은 분단을 넘어서는 바로미터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미 접경지역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남북연결 도로와 철도 개설 등으로 평화 정착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었다. 잠시 멈춰섰던 걸음을 이제 다시 내디뎌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성공단 금강산 등과 같은 접경지역에서의 협력은 남북당국간 정치적 협상과 회담의 결과이지만 그 과정은 남북 주민이 공동체적 질서를 구축해 삶의 과정에서 마음으로 좀 더 가까워지는 신뢰구축 작업으로 지속적으로 진행되야 할 것이다.

특히 임동근은 “접경지역을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정치적 역동의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각 부문을 연결하는 다기능(multi-function)을 수행하는 행위 주체의 등장과, 이들 간의 재화와 서비스의 흐름을 만드는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개성공단의 경우 남한의 기계와 북한의 노동력이라는 단순한 구도였지, 평양-개성-서울을 오고가는 네트워크의 진화는 고려하지 않았었다”고 비판했다. “에너지, 물자, 사람, 정보 등 생태계를 구성하는 흐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무엇’이 접경지역을 오고가며 기존에 불가능했던 역동성을 만들어 낼 것인가라는 ‘대상’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1】

 

. 남북 협력과 평화의 시발점으로서의 한강 하구

▣ ‘한강 하구’의 특수성- 경계의 소멸로서의 중립수역

○ 지리적 역사적 그리고 정치 군사적 의미의 한강하구

‘한강하구’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지리적 풍경적인 개념으로 임진강 한강 예성강이 만나는 조강(祖江, 염하를 포함)과 서해가 만나는 수역을 말한다. 그러나 흔히 이 지역을 한강하구로 부르는 것은 꼭 들어맞지가 않는다. 정왕룡 김포시 의원 같은 이들은 “예로부터 이 지역에 맞는 조강이라는 이름이 있으니, 한강하구라는 보통명사적 용어 대신에 조강이라는 원명칭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이곳은 임진강 예성강 등이 합쳐졌기에 더 이상 한강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이며, 그 범위도 한강과 임진강이 합수하는 지점부터 서해로 흘러나가는 유도까지, 혹은 넓게 보자면 예성강 부근까지 한강하구 일대를 가리키는 포괄적 용어였다는 것이다.【2】 게다가 남북분단으로 더 이상 사람이 갈 수 없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잊혀진 이름이 되었으니 그 명칭의 복원은 분단을 넘어서려는 것이기도 하다. 조강은 글자 그대로 할아버지 할머니의 강(祖江)이란 뜻으로, 흔히 총길이 514km에 달하는 한강이 조강에 이르러 그 수명을 다했다는 뜻에서 온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한강 하구라는 말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정치 군사적인 개념으로 정전협정상에 명시된 지역으로서의 의미다. 여기서 한강하구는 군사적으로 남쪽과 북쪽이 대치하는 적대적인 군사지역 가운데 정전협정 5항에 의해 규정된 수역이 된다. 정전협정은 이 수역을 한강 예성강 임진강이 흘러들어 만나는 수역으로 파주시 탄현면 만우리부터 서해 강화군 서도면 말도까지 67㎞로 구체적으로 명시해두고 있다.

정전 협정상에 규정된 이 ‘한강하구’(Han River Estuary)는 특별하다. 비무장지대(DMZ)의 다른 접경지역과 근본적으로 다른 한반도 유일의 중립수역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 제1조 5항은 다음과 같이 한강하구를 ‘군사분계선이 없는 자유항행 지대’로 규정하고 있다.

“한강하구의 수역으로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 하에 있고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 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간 선박의 항해에 이를 개방한다. 쌍방 민간선박이 항행함에 있어 자기 측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육지에 배를 대는 것은 제한받지 않는다.”

이 규정에 따르면 남북한의 민간선박은 한강하구를 자유 항행할 수 있고, 남이든 북이든 출항한 쪽이면 어디든 자유로이 입항할 수 있으며, 이는 정전협정에 규정된 육상의 비무장지대(DMZ)와 달리 한강하구가 중립지대(수역)라는 특수한 지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한강하구는 ‘한반도 남북 접경지대에서 군사분계선(MDL)이 그어지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다. 그럼에도 위 지도에서 보듯이 많은 지도들과 그래픽이 이곳에도 군사분계선을 그어놓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강하구 지역은 군사분계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자유항행을 보장하는 중립수역이다. 그런 점에서 보통 DMZ 바깥쪽에 설정되는 민통선도 한강하구에서는 법적 존재근거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 유엔사 관할권의 차등적 구조와 한강하구에 대한 법적 통제

정태욱 인하대 교수(법학)는 정전협정을 보면 유엔사의 이른바 군사통제에 근거한 관할권이 적용되는 비무장지대 및 접경지역의 범위는 이처럼 각 지역에서의 ‘군사적 필요’의 정도에 따라 차등적 구조로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접경지역, 즉 육상의 비무장지대, 한강하구, 서해5도 수역들에 대한 정전협정의 규정과 유엔사의 관할권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우선 비무장지대의 경우에는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정전협정 제1조 제1항)하기 위하여 민간인 출입과 왕래 자체를 금하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강 수역(한강하구)의 경우에는 ‘쌍방의 민용 선박의 항행에 개방’하고, 다만, 그 ‘항행규칙을 규정하는’ 차원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고 있다(정전협정 제1조 제5항), 또 서해 5도 수역에서는 바다 자체에 대하여는 직접적인 관할권을 정하지 않고, 다만, 섬들에 대한 군사통제만을 획정하고(정전협정 제2조 제13항 ㄴ목), 인접 해면을 존중하고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하게(정전협정 제2조 제15항) 하는 소극적인 차원에서만 관할권을 행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다르다. 한강하구도 여전히 군사통제구역으로 존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대해 정태욱 교수는 “군사적 통제구역이 되었다고 하여 그것을 유엔사 관할권 행사의 결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적인 통제 상태와 법적인 통제구역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강하구가 법적으로 통제구역으로 돼 있는 것은, 정전 협정상의 통제가 아니라 남한의 국내법적 통제인데, ‘군사기지 및 시설 보호법’(군사시설 보호법은 폐지) 상의 민통선, 그리고 해양수산부가 제정한 선박조업 안전규칙 등에 의한 어로한계선이 그것이다. 이는 남한 당국이 육상의 비무장지대와 동일한 원칙을 한강하구에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러한 국내법적 통제는 정전협정이나 유엔사의 관할과는 상관이 없는 것으로 우리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해제되거나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3】

물론 한강하구가 정전에 관한 국제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한강하구가 정전협정의 적용 대상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남북관계에서 한강하구는 무력 충돌의 위험 뿐만 아니라 70년대까지만 해도 적대행위가 빈발했다는 점에서 정전협정에서 한강 하구를 민간에 개방하였다는 사실만으로 그 구역에서 유엔사의 관할권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강하구가 유엔사의 관할 구역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허가권(관할권 행사)을 비무장지대에서의 그것과 같이 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태욱 교수는 이를 “민간의 평화적 이용권을 확인하는 협력적 확인행위”로 표현했다. 유엔사가 부속협의서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명시하기도 한 한강하구의 항행에 관한 정전협정 상의 민간선박 등록절차 등을 보건데 ‘금지를 해제하는’ 허가가 아니라, 단지 “자유의 행사를 인정하고 그것이 휴전체제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 주는 절차라고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4】

 

▣ ‘한강 하구’의 미래- 남북협력을 통한 ‘한강의 기적’

○ 한강하구의 특수한 지위와 남북 협력의 가능성

한강하구는 특별한 지위에 있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군사적 통제 아래 있는 육상에서의 비무장지대와 서해(동해) 수역에서의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남북간의 군사적 갈등과 비교해 본다면 접경지역에서의 남북 협력을 추진하는데 가장 적합한 독특한 지위에 있는 것이다.

국제법적으로 이러한 한강하구의 특수한 지위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선행적 실험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군사적 대결의 정전협정 체체를 넘어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이뤄가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미국(유엔사) 중국 등의 관할에서 남북의 관할과 합의로 바뀌어야 하며, 그런 합의 절차(평화협정 체결)가 요구된다. 예컨대 기존 정전협정상의 군사분계선(MDL)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 불가침 경계선’으로, 군사정전위원회는 기본합의서의 ‘남북군사공동위원회’로 바뀌고, 중립국감시위원회는 ‘한반도 평화관리 국제위원회’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그에 비한다면 정전협정 상의 한강하구는 이미 경계가 없는 중립수역이라는 지위에 있기에 그런 합의 이전에도 현재의 정전협정에 의거해 남북이 공동관리하는 데 합의할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정전협정 상의 이러한 특수한 지위는 한강하구 사업이 남북관계의 부침이나 안보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중립수역일 뿐만 아니라 북방한계선(NLL) 등 서해 동해에서의 경계 논란과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필요한 정치적 논쟁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인정되고 있는 항행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에 따라 강의 본래 기능을 되찾는 남북 공유하천으로 만들어간다는 방향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반해 서해 동해 등의 해역에서는 중립수역임에도 이른바 유엔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정한 북방한계선이 본래 취지와는 정반대로 남쪽이 북의 남하를 막는 군사적 남방한계선으로 고착화했으며, 이 북방한계선이 정전협정의 어디에도 근거가 없고 국제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이 ‘불법적인 선’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심각한 군사적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게다가 남쪽이 이 북방한계선을 실효 지배의 경계선으로 고수한다면 노무현 정부에서의 서해평화협력지대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 남북이 합의한 서해 해상에서의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의 범위를 설정하는 데 북이 동의할 수 있는 수역을 정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방한계선은 이처럼 서해에서의 평화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딜레마가 되고 있다.

한강하구에서의 협력에 관한한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접경지역 협력에서 남쪽이 중요시한 철도 도로 연결에 대해 북은 상대적으로 매우 소극적이었다. 대륙으로 가는 육로나 철도 연결은 남이 단절돼 있던 것이지 북은 늘 연결돼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임진강 예성강 등을 통한 서해로의 자유로운 진출, 해주 등 서해에서의 항행 자유 등은 북 또한 매우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한강하구의 이러한 정전협정 상의 특수한 지위 등 법적 지리적인 여건에 입각해 볼 때 한강하구야 말로 남북간에 가장 유망한 접경지역 협력 지대로 만들어가기 위한 적극적인 조처가 필요한 것이다.

한강하구는 예로부터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전략적인 요충이자 물류의 중심이었다.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시대에는 치열한 세력다툼의 전장이었고 고려, 조선시대에는 삼남지방의 물자를 실어나르는 주요교통로였다. 병인, 신미양요 때는 프랑스, 미국 군함이 오르내렸고 분단이전 까지만 해도 임진강 예성강 한강은 살아 쉼쉬며 이 지역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육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주요한 물길이었다. 그런 점에서 정전협정에서 한강하구 중립수역의 자유항행을 보장하고 있고, 한강(임진 예성강)이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주요 뱃길의 하나였다는 관점에서 이곳의 포구를 복원해 뱃길을 여는 사업은 본래의 강을 되찾아가는 일이자 분단을 넘어서는 본래 하나였던 삶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으로서 최우선적 과제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5】

 

○ 생물 다양성의 기수역(汽水域)이자 남쪽의 마지막 자연하구

생태 환경적으로 본다면 한강하구는 남쪽에서는 이제 마지막 남은 자연하구다. 특히 바닷물과 강물이 하루에 두번씩 교차하며 뒤섞이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이 지역은 기수역(汽水域)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공존하는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습지와 뻘 등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은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 경로의 주요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북의 황해 연안 지대와 함께 이곳은 연중 일부를 한반도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여타 대양주 아시아 지역에서 보내고 여름 번식기를 위해 시베리아 알래스카로 날아가는 세계적인 철새 이동경로의 하나다.

한강하구에는 예로부터 황복, 웅어, 농어, 새우, 뱀장어, 숭어 등이 풍부했으며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노랑부리 백로 등이 서식한다. 특히 황복과 웅어는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올려 보내는 귀한 물고기였다. 갈대밭에 서식하는 웅어는 환경파괴 등으로 많이 사라져버렸으나, 바다에서 잡히는 일반 복들과 달리, 강에서 잡히는 유일한 민물복어인 황복은 고가의 ‘황금물고기’로 지금도 임진강의 명물이 되고 있다. 특히 장어는 현재 한강하구 어민들의 주된 수입원이 되고 있다. 흔히 풍천(風川) 장어라고 하면 풍천이라는 지명의 장어로 혼동하는데 본래 풍천이라고 하는 지역 또는 마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닷물(짠물)이 하루에 두번씩 밀물로 들어올 때 바람이 함께 들어와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역을 풍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곳(짠물과 바닷물이 뒤섞이는 곳)에서 생산되는 장어를 바람이 함께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풍천 장어’라고 하는 것이다.

남북이 이 지역의 생태 서식 실태를 파악하고 지켜나가기 위한 환경 생태적인 차원에서도 공동 관리와 보호를 위한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자연적으로 방치된 상태가 아닌 강의 수자원 기능과 수로 항행 기능이 보장되고 인간으로부터 차단된 자연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면서 생태적 가치를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보호하는 적극적 환경보호와 평화적 이용의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강하구 뱃길 및 주운 활성화, 포구의 복원, 한강과 서해의 연결, 홍수 방지와 같은 핵심적 사업은 생태환경 가치의 보존과 함께 병행될 필요가 있다.

 

○ 다시 시작하는 한반도 평화

한강하구의 평화는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고 남북관계가 개선돼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 이후에 가능한 사업이 아니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어려운 상황에서 상호 호혜와 신뢰의 구축을 통해 협력의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업이다. 즉 평화를 유지하고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사업으로서 의미가 있으며. 우선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민간 선박의 자유항행(뱃길 열기)을 그 맨 앞에 두려는 것은 앞서 살펴봤듯이 정전협정에서 이미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강 하구 중립 수역에 대한 뱃길 수로 및 생태 환경 조사는 이 자유 항행을 위한 선결 조건인 셈이다. 아울러 이 생태 환경 수로조사는 자체로 이 지역의 자유항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길을 열어가는 일이 길을 만들어가는 것인 셈이다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안전 조처 등 항로 개설에 필요한 절차와 관행을 확립해 정전협정이 보장한 민간선박이 오가게 된다면, 문재인 정부가 판문점 정상회담 이래 내건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구호에 걸맞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재의 북핵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유엔제재 아래서도 남북관계를 변화시키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수도권 장기발전 구상과 서해 해상 평화 벨트와의 연계

이러한 한강하구의 복원 및 남북의 평화적 활용은 남북간 긴장 완화 및 접경지역 남북교류협력 활성화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남쪽 내부의 관점에서 본다면 한강하구 주변 지역 사회들의 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북은 북대로 임진강, 예성강, 사천강을 통해 개성 등 황해도 내륙지역의 서해로의 출구를 확보하면서, 서해 NLL을 둘러싼 영해 논란을 우회해서 한강하구를 통한 자유항행으로 서해에서의 통항의 자유를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서해 5도와 인접한 군사적 긴장으로 인해 가로막혀 있던 강령 녹색시범구, 해주항 개발 등 황해도의 개발과 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국가균형발전 정책의 기조에서 볼 때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수도권의 과밀과 서울 집중을 완화하는 균형발전의 광역 수도권(메가 폴리스) 전략을 결합시켜 추진하는 비전이 될 수고 있을 것이다.【6】 지난 30년간 시행된 수도권 종합개발계획 및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정책과 규제의 성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대체적인 평가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인구와 산업의 분산이라는 정책목표 달성에 실패했고, 수도권과 지방이 모두 만족하지 못해서 국토 균형발전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다.

따라서 남한 유일의 자연하구인 한강의 옛 뱃길을 복원하여 분단된 한강(조강)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길은 넓고 길게 본다면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자, 반쪽이 아닌 남북을 아우르는 온전한 의미에서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1】 임동근 한국 교원대(국토지리학), 접경지역시군구협의회와 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주최, ‘2018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접경지역 협력’ 1세션(2018 남북정상회담 이후 경계를 넘어선 협력의 모색) 토론문. 2018년 6월 27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2】 정왕룡 김포시 의원, 신년특집 김포 통일시대를 꿈꾸다 <김포저널> 2015년 1월8일.

【3】 정태욱 인하대 교수(법학) ‘한강하구에 관한 유엔사의 관할권’, ‘7.27 한강하구 평화 배 띄우기 조직위원회’ 주최의 “한강하구의 평화정착과 생태‧평화적 발전전략” 토론회 발표문 2007년 6월20일.

【4】 한강 하구의 항행규칙은 제8차 정전협정 후속 합의서인 <한강 하구에서의 민용 선박 항행에 관한 규칙 및 관계사항(1953.10.3.)> 제6항 (민간에서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사용하여 온 한강 하구 수역 내에 성문화되지 않은 항행규칙과 습관은 정전협정에 저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쌍방 선박이 이를 존중한다)에 규정돼 있다. 이 항행규칙은 군사정전위에서 정했으며, 다른 비무장지대의 경우 민간인의 출입이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면, 한강하구는 규정에 근거해 등록된 민간선박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불허할 뿐 원칙적으로 항행을 허용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5】 생태 교란, 선박의 항행의 안전등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곡수중보 철거여부 문제도 생태적 관점만이 아니라 닫혀 있는 한강을 열어 온전히 복원하는 자유로운 항행의 관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이처럼 한강 및 수도권과 관련한 많은 사업계획 및 환경 생태관련 사업은 남북의 한강하구 공동관리의 관점에서 재검토되고 그런 방향에서의 장기 전망 아래 추진돼야 할 것임. 일단 당면 과제는 한강하구의 자유항행을 통한 한강 뱃길의 복원이라는 관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음.

【6】 김동성 외(2017). 『한강하구 평화적 활용을 위한 경기도 주요과제 연구』, 경기연구원, p. 174.

 

2020-06-05.

강태호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장, 전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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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 국민을 걱정했지만, 전 국민은 그를 걱정했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을 맞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능력은 빛을 발했다. 시민들은 코로나19 대응에서 가장 신뢰하는 기관으로 질병관리본부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정 청장의 머리카락은 점점 더 희끗희끗해져 갔고 얼굴은 까칠해졌다. 첫 브리핑 때 그는 깔끔한 재킷을 입었지만 이내 노란색 민방위복으로 바뀌었다.

정 청장은 코로나19 환자가 처음으로 국내에 발생한 1월19일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대개 오전 7시에 출근해서 밤 12시에 퇴근했다. 숙소는 질병관리청 옆 관사였다. 186일을 연달아 일한 뒤 7월24일 오후부터 25일까지 처음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그러나 다소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싶었던 코로나19는 8월 들어 또 다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세가 이어졌다. “5월 연휴로부터 촉발된 2차 유행이 진행되고 있다”며 경고한 정 청장의 말대로였다.

시민들은 다시 정 청장만 바라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 독립하면서 정 청장의 어깨도 더 무거워졌다. 정 청장은 취임사에서 “아직 우리는 태풍이 부는 바다 한가운데 있지만 질병관리청이라는 새로운 배의 선장이자 또 한명의 선원으로서 저는 여러분 모두와 끝까지 함께 이 항해를 마치는 동료가 되겠다”고 밝혔다.

 

메르스 때문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못 볼 뻔

정 청장은 1965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전남여고, 서울대 의대를 거쳐 서울대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의사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갈 수도 있었지만 정 청장은 공공의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작은 1994년 경기 양주시의 보건소였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그는 전염병 신고 기준을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1998년에는 질병관리본부의 전신인 국립보건원에 연구관으로 특채되면서 공직에 들어섰다.

2006년부터는 보건복지부로 옮겨 혈액장기팀장을 맡았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당시 노연홍 복지부 보건의료정책본부장(전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이 ‘삼고초려’ 끝에 데려왔다고 한다. 정 청장은 처음에 연구원에 남아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연구원에서 복지부로 넘어와 행정을 하려는 사람이 많았지만 정 청장은 반대였다. 막상 자리를 맡은 뒤 업무 처리 능력은 탁월했다. 노 전 수석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정 청장이 업무를 맡은 이후 “대형 혈액사고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2009년에는 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을 맡아 신종플루 대응에 참여했다. 본격적으로 감염병 업무를 맡기 시작한 셈이다. 2014년부터는 다시 질병관리본부로 돌아왔다. 2015년에는 질병예방센터장을 맡았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는 정부 대책본부 현장점검반장으로서 역학조사 과정을 지휘했다.

메르스는 정 청장에게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16년 감사원은 메르스 방역 실패의 책임을 물어 보건의료 분야 공무원 9명의 중징계를 요구했다. 정 청장은 이때 정직 처분을 받았다가 나중에 감봉으로 한 단계 낮은 징계를 받았다. 과도한 징계 처분에 공직사회를 떠난 보건·역학 전문가들도 있었다. 정 청장 역시 자리를 떠났다면 지금의 그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정 청장을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에 임명했다. 당시 국장급이었던 정 청장을 차관급인 본부장에 임명한 것은 2단계를 뛰어넘는 파격 인사였다. 정 청장은 본부장으로 임명된 이후 역학조사관 충원, 진단 검사 및 동선 추적, 위기단계별 전략 등 신종 감염병 대응 전략을 착착 진행했다.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정 청장의 준비는 빛을 발했다.

전문가들도 정 청장의 능력에 신뢰감을 표한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질병관리본부 본부장을 제안 받은 정 청장이 자신에게 “너무 책임이 큰 자리라 두렵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고 말했다. “그때 놀랐습니다. 남자 공무원은 야망이 앞서서, 일단 수락하고 카리스마로 휘어잡는데… 이분은 책임질 생각부터 하시는구나. 정 본부장 리더십의 핵심은 ‘책임감’이에요. 그 자리에서 하루하루 책임의 기적을 이뤄가는 분이죠.”

박도준 전 국립보건연구원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정 청장에 대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우리나라 최고 방역 전문가”라며 “차관급은 보통 2년 이상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는 올해로 본부장을 맡은 지 3년이 됐다. 대체할 만한 전문가가 없다는 방증 아니겠나”라고 평가했다.

 

위기에 빛난 정은경의 브리핑

최근 한 현역 의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은경이 한 게 브리핑밖에 더 있냐”라고 비판해 논란이 됐다. 그럴 리도 없겠지만, 설사 ‘브리핑’밖에 없다고 해도 그 브리핑의 무게감은 컸다. 시민들은 정 청장의 말 하나하나를 무거운 신호로 받아들였다. 작가 김훈은 <한겨레>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그는 늘 현실의 구체성에 입각해 있었고, 당파성에 물들지 않았고, 들뜬 희망을 과장하지 않았으며, 낮은 목소리로 간절한 것들을 말했다. (…) 모두의 힘을 합쳐야 희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거듭된 호소는 가야 할 방향을 설득했다. 그는 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했는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말하기는 매우 희귀한 미덕이다. (…) 나는 날마다 정은경 청장이 하라는 대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같은 미증유의 상황은 종종 사람들이 이성적 판단을 하기 어렵도록 만든다. 방역의 최고 책임자가 우왕좌왕하거나, 팩트를 자꾸 바꾸거나, 상황에 따라 감정적인 기복을 보였다면 시민들은 더 불안에 빠졌을 것이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 총 책임자가 정 청장이었다는 사실은 행운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렇게 평가했다. “사람들은 정 본부장이 그 사실을 믿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정 본부장의 말을 사실로 믿었다.”

무엇보다 정 청장 스스로의 자세가 신뢰감을 줬다.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됐던 지난 2월, 정 청장은 머리 감을 시간도 아껴야 한다며 짧은 단발머리를 숏컷으로 다시 한 번 잘랐다. 브리핑 때 “1시간도 못 주무신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묻자 “한 시간보다는 더 잔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 세계가 정 청장과 한국의 방역에 찬사를 보낼 때도 자신의 치적에 대해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인터뷰는 가급적 피하고 ‘국민에게 보고한다’는 원칙으로 브리핑에 집중했다.

지난 5월 <시사저널>이 정 청장의 100일간 브리핑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정 본부장에 사용한 단어는 대개 감정이 배제된 ‘중립적 표현’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 이를테면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코로나19 검사 건수를 축소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단호한 어조를 취했다.

대신 그의 말 속에는 정확한 수치들이 가득하다. 확진자가 급증했을 때도, 한 자리로 줄었을 때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보냈다. 착오나 실수는 즉각 수정하고 모르는 부분은 ‘확인하고 알려드리겠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 발병 사태가 벌어졌을 때는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정 청장의 브리핑이 단순한 사실 전달만은 아니었다. 그는 “마스크 자국이 선명한 의료진의 얼굴을 떠올려달라”고 호소했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마음의 방역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특집 브리핑도 열었다.

이인숙 ‘플랫폼9 3/4’ 이사는 정 청장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을 5가지로 정리했다. 없는 것 5가지는 이렇다. “① 정은경이 없다 ② 희망고문과 과장이 없다 ③ 전문용어가 없다 ④ 뜨거움과 차가움이 없다 ⑤ 정치색이 없다” 있는 것 5가지는 이렇다. “① 데이터와 팩트가 있다 ② 잘못과 한계가 있다 ③ 부탁과 당부가 있다 ④ 공감과 감사가 있다 ⑤ 원팀이 있다” 어쩌면 쉬워 보이는, 기본적인 원칙처럼 보이지만 아홉 달 가까이 일관성 있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정 청장은 봉준호 감독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 오랜만에 확진자 수도 두 자리 수를 유지하는 추세가 계속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정 청장은 감염 위험을 경고하는데 주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등장하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는 문구를 인용해 타임지에 직접 정 청장에 대한 소개를 썼다. “정 청장의 성실성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질 가치가 있는 이야기,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와 맞서는 수많은 ‘정은경’들에게,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은 인류 모두에 영감을 주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청장은 지난 7월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종결되고 나면 무엇이 제일 하고 싶으냐는 당시 진행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일단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웃음) 국민들께서도 그러시는 것처럼 저희도 예전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 것 같습니다.” 하루 빨리 그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기 위해, 아마 시민들은 오늘도 정 청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참고자료

[시사저널 2020. 5. 1] 정은경 100일 브리핑 분석 – 상황은 흔들려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중앙일보 2020. 9. 16] 돈 안되는 시골의사로 26년…’코로나 헌터’된 문학소녀 정은경

[동아일보 2020. 7. 30] 186일 연속근무후 첫 휴가… 정은경 “집근처서 안전하게”

[WSJ 2020. 4. 4] Thank God for Calm, Competent Deputies

[한겨레, 2020. 9. 14] 김훈 거리의 칼럼 – 정은경

[조선일보, 2020. 2. 25] “머리 감을 시간도 아껴야” 숏컷한 질본본부장

[조선일보, 2020. 9. 13]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 “희망 버려야 살 길 생겨, 코로나 2~3년 더…생활 태도 바꿔라”

[김현정의 뉴스쇼 2020. 7. 3] 정은경 “국민이 백신입니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인숙의 새로운 발견19>‘닥터 코로나’ 정은경에게 없는 5가지, 있는 5가지

<신동아 2020. 3. 28> 정은경 본부장이 날마다 직접 브리핑하는 이유

 

황경상

토, 2020/10/1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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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라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미합중국이 지속적인 퇴보의 행각을 보이면서, 정치분석가들과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세계질서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벌써 고민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결국 중국이 제1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과 유럽이 걱정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는 반면에, 일부는 여전히 미래의 세계도 과거와 유사하며 코로나 위기는 예전의 질서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 서방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코로나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니다. 반중혐오감은 서구사회가 경제적 측면에서 점차적인 약세를 지속하고, 정치적으로는 포플리즘과 극우주의의 발호를 통제하지 못하는 무능함에 더하여, 수세기 동안 유지하였던 국제현안에 대한 자신들의 일방적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의 반작용으로 생겨난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위기는 서구사회의 구조적 약점과 자기분열을 현실로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번 위기는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충격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동양국가인 일본의 승리는 피식민지 인민들로 하여금 서구의 취약점에 눈을 뜨게 만들면서 혁명적 독립운동을 고무시켰다. 사안의 결과가 다르고 인종차별이 덜하기는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서구사회에 대한 국제적 회의를 증폭시키고 있다.

세계질서에 서방의 일방적 지배는 스페인의 아메리카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소위 재정복再征服(Reconquista)사건이라고 불리는 유태인과 무슬림을 서구사회에서 추방했던 15세기 말의 역사에서 출발하였는데, 이후 서구사회는 유럽의 문명에서 오리엔탈적인 요소와 비기독교적인 내용을 제거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은 인류사 전체에 대한 책임을 자임하고 나섰고, 이러한 자기확신을 백인우월주의라는 문명으로 전환시켜 발전하여 왔다. 이러한 백인우월주의 문화는 유럽의 이민자들이 세운 미국에게도 전파되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사이에 유색국가의 강력한 세력이 형성되면서, 이러한 확신에 대한 회의가 발생한다. 이에 따라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서구에 대한 회의가 점차 확산되면서 때로는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합중국은 자신의 역할로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면서, 소위 ‘자유세계 – free world’ 수호자로 임무를 수행하여 왔다. 대전 과정에서 명백한 두 개의 세력이 타협할 수 없는 이념을 기반으로 양축을 형성하여 왔는데, 전쟁의 결과로 유럽이 황폐하여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미합중국이 소비에트라는 가공된 또는 실존한 팽창주의에 맞서는 유일한 수호자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1991년, 후자의 붕괴로 인하여 미국이 경쟁상대가 없는 단극체제의 패자로 군림하는 계기가 형성되었고, 국제사회의 모든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모델로서 행위의 규칙을 결정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으며, 이를 두고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실제의 세계는 그의 선언보다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수십 년이 흘러 중국의 굴기가 이루어졌고, 이제 미국은 중국을 현존하는 위협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미국과 중국의 일대일 대결국면이 지구중력처럼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결국에는 미합중국이 모든 희생을 치르더라도 자신의 일방적 세계지배력을 유지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기에 이른다.

트럼프에 대한 문제와는 별도로, 반중전략에 대해서는 미국 내 양당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현실적 상황은 이와는 전혀 별개이며, 문제는 누가 패권을 차지하는가 또는 절대적 힘을 보유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세력의 재균형을 어떻게 형성하느냐는 점에 달려있다. 더구나 떠오르는 신형세력 특히 중국은 패권다툼이라는 주제에는 관심이 없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미합중국과 유럽국가들이 세계질서의 변화과정을 인정하고 국제적 현안들의 분담과 결정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대하여 타협하기는커녕, 지난 40여 년간 개혁을 통하여 성장해온 중국의 힘과 대결하는 과정에서 이미 낙후한 것이지만 지난 세기를 지배해온 소프트-파워조차 미합중국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대결과 제재 그리고 자신이 주도하는 동맹이라는 구조를 동원하여 중국을 억압하고자 한다.

어느 프랑스의 중국전문학자 역시 이와 비슷한 발상으로 최근 프랑스 일간지에 기고를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누가 반중 동맹을 주도할 것인가?”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유럽국가들 공히 비슷한 감정으로 미합중국과의 역사적 연대감을 유지해야 하며, 중국이 강력하여지는 원천을 봉쇄하여야 한다는 판단을 광범하게 공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자신들에게 화근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미래의 세계는 이전과는 매우 판이할 것이며, 부분적으로 오는 11월 미국 대선의 결과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보건의 위기는 미합중국과 유럽 그리고 중국 간의 신뢰에 지속적이며 상당한 차이를 가져올 것이다.

미국대선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양당간에 형성된 합의점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세력을 봉쇄하고자 하는 필요에 따라 모든 분야에서 격렬한 반중 캠페인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결국 미합중국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을 포함하여 국제사회의 신뢰를 재형성하는 일에 어려움을 격을 것이다. 유럽연합은 미국 행정부의 접근에 대하여 사안별 선택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서구의 쇠퇴는, 설령 트럼프가 재선되어 정치적인 혼란이 지속되더라도, 나쁜 방향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지난 수세기 동안 세계를 일방적으로 지배하여온 유럽과 미합중국은 여전히 상당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떠오르는 중국과 세력 재균형에 대하여 새롭게 대화하고 협상을 주도할 위치에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워싱턴의 과거식 협박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솔직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운데 대화를 진행하면서 복합적 대결과 투키디데스 함정과 같은 술수를 피해가야 한다. 혹시나 폭군스러운 트럼프가 재선되더라도, 중국과 유럽연합은 연대하여 미합중국에게 상기와 같은 대화의 필요성을 설득해 가야 한다.

 

출처: Syndicate via CGTN on 2020-06-18.

Lionel Vairon

현재 북경에 있는 국제관계 및 공공외교정책의 자문기구인 CEC Consultant 대표이며,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기자출신으로 캄보디아, 태국 그리고 이라크 주재 외교관을 역임했다

금, 2020/10/1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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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3차 유행을 예감하면서, 한국 역시 서구와 유사한 상황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반면에 서구 사회는 점점 더 명료하게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한계에 봉착하는 모습이다. 코로나 1차 유행 시에 서구의 ‘기본권’ 개념은 명료했고, 아시아의 ‘파시즘’적이거나 ‘독재’적인 문화를 비판하는 데에 거리낌 없이 동원되었다. 그런데 이제 구미에서 극우세력과 코로나 부정 세력 간에 연대가 커지면서, ‘기본권’ 개념은 점점 더 극우적으로 옹호되는 ‘묻지 마 자유’의 방향으로 오용되고 있다.

이에 <피로사회>로 유명한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최근 유럽 언론에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다면 단지 코로나19 상황이라서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에 그러한 화해가 급조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기에는 1990년대 이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간의 대립이 매우 완강했고,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구별되지 않는 경향 역시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한병철이 새롭게 주장하듯이 공동체 정신이 자유주의의 전제라면, 공동체주의자들은 굳이 공동체주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를 옹호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비판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공교롭게도 정의로운 분배의 절차를 제도화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자 존 롤스였다.

따라서 코로나19로 구미에서 ‘기본권’이나 ‘자유’와 같은 근대 민주주의의 초석과도 같은 개념들이 ‘이기주의’나 ‘경제적 생존’과 동일시된다고 해서, 공동체주의자가 갑자기 자유주의를 옹호하기는 어렵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수렴이 아니라, 오히려 그도 저도 아닌 제3의 다른 원칙이 필요해진 것은 아닌가? 공동체주의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도덕적 가치의 사회적 통일성을 출발점으로 삼기 때문에, 추상적 절차에 기초하여 개인들의 권리와 연대를 조절하려는 ‘가치 다원주의’적인 자유주의와는 양립하기 어렵다. 아무리 가는 길이 급해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다.

필자가 최근 한 학술지에 투고했다가 수정 재심 요청을 받아 투고를 철회한 논문에서, 필자는 ‘공동체’의 개념이 아니라 ‘상호의존성’의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동체’는 사회 구성원이 동일한 가치를 공유함을 전제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분화해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 갈등’ 및 ‘가치 지배’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반면에 ‘상호의존성’은 가치와 무관하게 인간의 존재 조건, 즉 서로 돌봄이 필요한 개인들의 취약성이라는 조건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즉 어떤 가치로 어떤 형태의 공동체를 정당화하는가의 경험적 사실과 무관하게, 사회는 모종의 ‘연대’ 형태일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 원칙이다. ‘공동체’는 ‘상호의존성’의 조건에서 출현하지만, 그러한 조건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상호의존성’ 관계에 대한 특정 해석방식, 즉 ‘가치’에 의해 정당화된다. 따라서 특정 가치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서로 돌보는 연대의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아닌 ‘상호의존성’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자유주의가 공동체주의와 수렴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상호의존성’ 개념과 관련된다. 즉 자유주의에서는 사회적 연대를 ‘상호의존성’의 결과가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들의 자발적 협동 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공동체적 상호 돌봄’을 전제로 삼을 수 없으며, ‘합리적인 협동의 형태에 대한 자율적 합의’를 추구한다. 즉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가장 먼저 자유주의의 인간관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 아니라, ‘타인과 상호의존성 속에서 사는 개인’으로 개인의 개념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공동체’를 주장하려면 여기서 한 발 더 나가서, ‘가치의 공유’까지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그런 행보는 ‘가치 지배’라는 새로운 위계와 불평등을 초래한다. 따라서 ‘공동체’로 한 발 더 내딛는 행보를 생략하고, ‘상호의존성’에서 출발해서 민주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코로나19의 n차 유행을 통해 점점 더 명료해지는 서구 근대 민주주의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개인을 집합체나 타인과 분리해서 보는 ‘개인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분리를 ‘완전한 자율과 독립’으로 고정해서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오히려 ‘분리’는 순간순간의 ‘사건’들에 불과할 터인데, 그것을 영구적인 개인의 실체적 속성으로 정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에서 ‘책임’은 정언명령을 따르는 실천 이성 또는 개인의 합리적 성찰의 결과로 이해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들이 더 이상 정언명령을 따르거나 합리적일 수 없을 때, 자유주의 사회에서 책임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현재 구미에서 ‘자유’의 개념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극우적으로 오용된다. ‘경제적 생존’ 문제가 실천 이성의 정언명령이나 합리성보다 훨씬 더 시급하기 때문에, 책임 없는 자유가 ‘기본권’의 개념으로 주장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실천 이성을 장착해야 하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앞서 먹고 살아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인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 사는 방법을 제시하는 시장 논리는 ‘상호의존성’이 아니라 ‘적자생존’의 논리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 개념에 익숙한 한국 사회가 서구 자유주의에 거울이 되어주고 또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 개념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적인 서구 사회를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한다는 절충론적인 접근은 무의미하다. 한국 사회는 ‘가치 동일적 사회=공동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서, 서구 사회는 ‘자유주의적 개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상호의존성’이라는 인간 조건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를 기획하는 것이 두 사회 모두에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목, 2020/12/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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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후임은 누가 될 것인가. 오는 9월 독일은 연방하원 선거를 치르고 새로운 총리를 선출한다.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집권 기독민주당(CDU·기민당)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지난 1월 당 대표로 선출된 아르민 라셰트(60)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를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상황이 간단치만은 않다. 당 대표로 선출되고 총선에서 승리한다고 반드시 총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라셰트 대표의 인기가 그다지 높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일 슈피겔이 지난해 12월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을 꼽는 질문에서 라셰트는 31%로 11위에 그쳤다. 독일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에 이어 가장 높은 지지율인 60%를 얻은 정치인은 기민당의 자매정당인 기독사회당(CSU·기사당) 마르쿠스 죄더 대표(바이에른주 총리)와 옌스 슈판 독일 보건장관이었다. 라셰트는 야당인 사회민주당(SPD·사민당) 총리 후보인 올라프 슐츠 재무장관(52%)과 같은 당 소속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51%)에도 지지율이 한참 미치지 못했다.

전통적으로 함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온 기민-기사 연합에서는 대체로 다수파인 기민당 내에서 총리 후보가 선출돼 왔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죄더 기사당 대표가 사실상 총리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당 부대표로 선출된 슈판 보건장관 역시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지지세를 등에 업고 차기 총리 후보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라셰트 대표는 대표 선출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총리 후보 결정과 관련해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하지만, 결정을 할 때 유일한 근거가 아니라는 점을 안다”며 선을 긋고 있다.

 

라셰트의 도전, 기회와 위협

라셰트는 1961년 2월 벨기에와 네덜란드 국경에서 가까운, 독일의 가장 서쪽에 있는 도시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아헨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가 벨기에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톨릭 신자이고 불어에 능숙하다. 아버지는 광부였다. 당 대표 출마 연설에서 그는 아버지가 광산 갱내에서 일하면서 동료들과 서로 믿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본과 뮌헨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1차 사법시험에 합격하기도 했다. 이후 저널리즘을 공부했으며, 주로 언론인으로 일했다. 바이에른 방송의 본 특파원을 지내기도 했다. 가톨릭 신문의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4년에 독일 연방 하원 의원에, 1999년에는 유럽 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2005년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정부 초대 세대·가족·여성·통합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특히 2017년 독일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총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전통적인 사민당의 텃밭이자 당시 메르켈의 강력한 경쟁자였던 마르틴 슐츠 사민당 대표의 고향에서 승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라셰트는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로 불렸던 안네그레트 크람프 카렌바우어 전 기민당 대표가 지난해 초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 연대 논란으로 사퇴하면서 당 대표에 나설 기회를 얻게 됐다. ‘차기 메르켈’로 불리던 바우어의 사퇴 이후 기민당은 지난해 4월 전당대회에서 대표를 선출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됐다. 당시 차기 총리 후보이자 대표로 유력하게 떠오른 인물은 프리드리히 메르츠였다. 보수 성향이 강하며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독일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킬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만약 그때 대표 선출을 했다면 라셰트가 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1년 사이 메르츠는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부정하면서 당 대표 선거 연기가 자신이 대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폈고, 인기가 많이 하락했다. 해를 넘겨 올해 온라인으로 진행된 투표에서도 메르츠는 1위를 차지했다. 라셰트는 결선투표에서 이를 뒤집었다. 최종 단계에서 메르츠 당선 이후 혼란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다시 메르켈을 비롯한 중도파 쪽으로 다시 표심이 기운 셈이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지난 3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와 라인란트팔츠주 의회 선거에서 기민당이 역대 최저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패배했다. 이 두 곳의 선거는 올해 연방 하원 의원 선거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첫 시험대라는 점에서 여파가 컸다. 현직 주지사들의 인기에 따른 것이라며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도 있지만 최근 악재의 영향도 있었다. 기민당의 니콜라스 뢰벨 의원이 중국산 마스크 중개 수수료를 받은 혐의로 사퇴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 영국에 비해 늦어지고 있는 독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 상황이 유권자들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라셰트 역시 선출된 뒤 두 달만에 당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차기 총리에 적합한지에 대한 의문도 조금씩 나오는 상황이다. 라셰트는 선거 결과에 대해 “기민당의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메르켈의 공백을 기민당이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가 더 큰 문제다. 메르켈은 지난 15년 동안 유럽에서 독일의 위상을 높여왔다. 메르켈의 리더십 덕분에 오늘날의 유럽연합이 유지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민당의 현재 지지율 역시 ‘메르켈 보너스’라고 불릴 정도로 메르켈의 인기가 끼친 영향이 크다. 분석가들은 메르켈이 자리에서 물러날 경우 기민당의 인기가 약화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 조금씩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기민당의 지지율 하락은 라셰트의 총리 도전에도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포스트 메르켈, 독일의 행보는 어디로

라셰트의 총리 선출 여부는 메르켈식 국정철학이 계속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언론에서는 라셰트를 ‘메르켈의 충신’(도이체벨레) ‘메르켈과 연속성을 가진 후보’(가디언)라고 표현하고 있다. 라셰트는 메르켈 총리와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인 적도 없으며, 늘 메르켈의 편에 섰다고 알려져 있다. 2015~2016년에 걸쳐 메르켈 총리가 백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기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했지만, 라셰트는 끝까지 메르켈을 지지했다. 메르켈 역시 당 대표 선거에서 라셰트를 지지했다. 라셰트도 메르켈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강조하며 당 대표 선출 이후 “총리의 국정 운영이 안정적으로 마무리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라셰트는 ‘통합의 마이스터’라고 불린다. 중도 실용주의자로 알려져 있으며 기민당 내에서도 진보적인 편에 속한다. 다양성과 통합에서 독일이 얻는 이익이 많다는 메르켈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유럽의 안보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과 나토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독일의 성공을 위해서는 러시아와 관계를 맺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러시아의 천연가스는 독일의 친환경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전환 정책의 보완재로서 중요하기도 하다. 메르켈 총리가 유지해 온 친중정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라셰트 역시 독일 수출기업의 이익을 위해 중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 중국과의 가까운 관계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껄끄러운 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미국은 유럽연합이 최근 중국과 포괄적 투자협정을 체결한 일을 두고 불만을 품고 있다.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대중국봉쇄정책에 찬물을 끼얹은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협상을 주도한 것이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국인 독일이고, 메르켈 총리다. 라셰트 역시 친중, 친러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라셰트는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천연가스 수송관 사업에 대해 “재고의 여지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국은 이 사업이 자국 천연가스를 유럽에 판매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보고 반대하고 있다. 메르켈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지만, 때맞춰 새로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로서도 메르켈의 행보를 답습할 것으로 보이는 라셰트가 달갑게 보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누가 총리가 되든 복잡한 국제 역학관계에서 독일의 운신 폭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메르켈 시대가 끝나면서 그의 리더십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 대표 선거에서도 라셰트를 비롯해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들이 ‘가톨릭에 법학 전공, 서독 노스트라인-베스트팔렌 출신 남성’이라는 점에서 과거 서독 시절로 회귀했다는 말도 나왔다. 동독 출신의 여성 과학자라는 배경을 가진 메르켈과는 어떤 식으로든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헤르프리트 뮝클러 독일 훔볼트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메르켈이 보여준 깊이 경청하고, 인내심과 중재력이 뛰어나며, 믿을 수 없는 수용능력을 지닌 리더십은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티모시 가튼 애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메르켈의 퇴장은 독일 역사상 매우 좋은 시기의 끝”이라며 “메르켈은 우리가 경험한 가장 좋은 독일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잘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헝가리와 같은 사실상 독재 국가들에게 강한 면모를 보이지 못했고, 디지털/생태 전환에는 미온적이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기민당이 녹색당과 연합하게 되면 중국과 유럽의 신진 독재자들에게 강한 입장을 표시하면서 디지털/환경에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차기 연합의 형태가 차기 총리의 성향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녹색당은 기민당에 이어 지지율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참고자료

Wikipedia, Armin Laschet 인물정보 바로가기

[연합뉴스 2021.3.15.] 독일 포스트메르켈 선거개시…주의회 선거 2곳서 여당 패배 유력

[시사저널 2021.2.2.] 누가 라셰트를 ‘포스트 메르켈’이라 했나

[가디언 2021.3.15.] Questions over new CDU leader as Angela Merkel’s party slumps to defeats

[한겨레 2021.3.15.] 일 기민련, ‘메르켈 이후 선거 전초전’에서 뼈아픈 패배

[서울신문 2021.1.17.] 메르켈 떠나도 ‘메르켈 시대’

[경향신문 2021.1.17.] ‘포스트 메르켈’ 윤곽…라셰트, 여당 대표 선출

[조선일보 2021.1.18.] 獨 집권당 대표에 라셰트…’메르켈 후임’ 경쟁 본격화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1/18/2021011801949.html

[오피니언뉴스 2021.1.25.] 최수정의 유럽외교전 – 메르켈 보다 더 친러시아, 獨총리 후보 ‘라셰트’

[뉴욕타임스 2021.1.16.] A Step Toward a Post-Merkel World: Her Party Picks a New Leader — Again

[뉴욕타임스 2021.1.15.] Merkel’s Party to Choose New Leader, and Possible Successor as Chancellor

[연합뉴스 2021.1.23.] 라셰트 독일 기민당대표 “총리후보 결정, 여론조사에 의존 안해”

[연합뉴스 2021.1.18.] 홍콩매체 “독일 집권 기민당 새 대표 선출, 中에 긍정 신호”

[연합뉴스 2021.1.19.] 포스트 메르켈 체제 이끌 라셰트 기민당 대표…차기 총리 될까

[연합뉴스 2020.1.19.]포스트 메르켈 체제 이끌 라셰트 기민당 대표…차기 총리 될까

[문화일보 2021.1.26.] 라셰트 獨 기민당 대표 “노르트스트림-2 사업 재고 없다”

 

황경상

목, 2021/04/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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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우리는 현재 지식경제가 경제의 각 분야에서 섬과 프린지의 형태로 제약되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흔히 지식경제와 그 가장 친숙한 형태(소수의 세계적인 거대기업들과 주변부의 신생기업들이 추진하는 첨단기술산업)를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규모와 상관없이 어떤 기업이 그 운영방식을 달리 변경하지 않으면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 특히 컴퓨터와 기타 정보기술을 사용하여 복잡한 정보를 조직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경우에도 우리는 지식경제와 그 제품 혹은 서비스를 혼동한다. 이러한 지식경제의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이 새로운 생산방식의 잠재력 중 극히 일부를 포착할 뿐이라는 명백한 신호는 그러한 사용이 반짝했다가 곧 사라질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제공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그것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에서의 생산성의 일시적인 상승을 해명하는 데에 유용한 변화였다. 즉 정보관리를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디지털 기술을 채택하는 흐름이 일회적인 상승을 낳았다.

우리는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참된 성격을 파악하려면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널리 보급되고 이러한 보급을 통해 심화되고 급진화되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은 넓고 다양한 경제활동 영역을 가로질러 펼쳐짐으로써 그 성격과 잠재력을 보여준다.

우선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지식경제는 생산활동의 수행에서 자본, 기술, 기술관련 역량 및 과학의 축적이다. 지식경제의 특징적인 이상은 제품과 기술뿐만 아니라 절차와 방법의 영구혁신(permanent innovation)에 있다. 지식경제는 특징적인 기술적 장비를 통해서 상품과 서비스의 또 다른 생산방법으로 그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지식경제는 자체적인 재발명을 지속하는 생산패러다임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러한 지식경제의 이상이 의미하는 바를 우선적으로 경영, 조정, 생산의 좁은 수준에서, 이윽고 세 가지 더 심층적인 속성들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성들은 지식경제를 지금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보급되고 급진화된 다음 존재할 수 있는 모습으로 기술한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제약적이고 상대적으로 피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지식경제는 대규모 생산과 ‘탈규격화’나 맞춤제작을 조화시키고, 생산계획의 일관성 및 추진력의 유지와 기업활동의 분산화를 조화시키는 관행이다. 이러한 성과들은 얼마나 많이 성취되는지에 따라 사소한 의미를 갖거나 혹은 중대한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기업 안에서 재산과 권력을 재편하지 않은 채 개인적 주도성과 팀워크를 위한 더 큰 여지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효율성의 부수적인 향상과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전략을 재현할 수 있다. 혹은 이러한 성과들은 업무조직과 궁극적으로는 재산체제에서 누적적이고 중요한 변화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산방식의 이러한 더 피상적인 특성들의 재현과 발전은 모두 내가 나중에 논의할 더 깊은 특성들의 진보에 따라 달라진다.

적층제조(3차원 프린터), 로봇 공학 및 더 일반적으로 유연하고 수리적으로 제어되는 기계도구는 가능한 변형을 탐구하면서 제품의 다각화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엄청난 다각화와 생산규모를 조합할 수 있게 한다. 생산활동과 실험과학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다양한 능력을 동원하고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기술적인 역량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3차원 프린터는 사용자가 제품의 개념과 실현 사이에서 신속하고 부단히 움직이는 것과 구체화 과정에서의 발견에 비추어 개념을 수정하는 것을 허용한다. 인공지능은 기계가 우리 대신에 수행할 수 있는 일(아직 반복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영역으로 우리가 전진할 수 있도록 이미 반복 방법을 터득한 것이라면 기계의 도움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명료화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생산규모와 탐험적인 제품 차별화 및 변형과 조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함께 작업하는 방식(기술적인 노동분업)을 변화시키는 것은 중요하다. 요체는 일관성과 추진력을 잃지 않고서 주도권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업무를 조직하든지 간에 개인이나 집단에 의한 분권적이고 재량적인 주도권의 장점들과 그러한 추진력과 일관성의 유지 사이에는 완전한 모순은 아닐지라도 녹록치 않은 긴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지식경제의 방식은 현재의 고립된 형태에서도 이러한 긴장을 해소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를 완화시킨다.

지식경제의 한 가지 방식은 업무의 조직방법에 대한 포괄적인 재량을 누리는 작업반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방식이다(예컨대, “도요타 생산방법”). 또 다른 방식은 이러한 팀들의 활동을 조정함으로써 작업반들과 반장들에 의한 생산계획의 협력적인 개발과 수정으로 중앙의 경영권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더 훌륭하게 개선의 기회를 확인하고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더 고차원적이고 더 유연한 형식을 낳는다.

기술만으로는 규모와 차별화의 결합 나아가 조정된 전진운동과 분산적인 주도권의 결합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 기술의 사용은 작업방식에서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경제의 제도적 안배와 생산작업 참여자들의 교육과 문화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 방향을 가리키는 관행과 태도로 밑받침되어야만 한다.

거의 무제한적인 제품 차별화 또는 맞춤제작과 규모의 결합은 자사제품의 수요를 외생적이고 불변적인 여건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신규수요, 신규소비자층, 신규시장의 창출을 추구하는 기업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방식을 전제한다. 상품과 서비스 등의 차별화에 대한 욕구는 소비자들이 새로운 선택지들에 대해 놀라워하고 대규모 시장 위한 제조업생산이 엘리트를 위한 장인생산의 특성을 일부 갖게 되며, 제조업과 서비스간의 구분이 붕괴됨으로써 탄력적일 수 있다. 선진적인 제조업은 서비스와 결부된 제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넓은 범위에서 결정(結晶)된 지적 서비스들로 구성된다.

분산적 주도권과 조정된 생산계획의 일관성 간의 화해는 업무조직에 대한 지휘통제 접근법과 양립할 수 없다. 그러한 화해는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생산과정 참여자들의 협력방식)에서 변화를 요구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사라져야만 한다. 생산계획은 집행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수정되어야만 한다. 감독역할과 집행역할의 차이를 완화시키는 것은 모든 전문화된 집행역할들을 상대화하는 것을 동시에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은 경직된 전문화는 개념의 수립과 집행 사이의 극명한 차이를 전제한다. 유동적인 내부 조직을 가진 작업반은 전문가를 대체한다. 기술적 노동분업의 성격에서 이러한 변화는 생산과 과학의 관계에서 더 심층적인 변화를 미리 보여준다.

경영과 생산 공학의 수준에서 다루어지는 국한된 지식경제의 외견상 피상적인 특징들은 결국 그렇게 피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한 특성들을 완전히 성취하려면 더 중요한 변화들이 요구된다. 그러한 변화들은 억압된 변혁적 잠재력의 존재를 암시한다.

지식경제가 경제 전반에 걸쳐서 입지를 구축하려면 지식경제는 고립된 전위 부문들에 제약되어 있는 대신에 지금으로서는 먼 장래의 약속에 불과한 권능들을 지속적으로 이행해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어야만 할 것이다.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보급과 그 급진화는 불가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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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5/2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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