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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백선엽부터 곽낙원까지, 걸으면서 배우는 현충원 속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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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백선엽부터 곽낙원까지, 걸으면서 배우는 현충원 속 역사

admin | 수, 2020/11/18- 01:08

대전현충원서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개최

▲ 11월 15일 대전현충원에서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가 진행되었다. ⓒ 임재근
▲ 11월 15일 대전현충원에서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가 진행되었다. 독립유공자 제2묘역에서 걷기 행사를 마무리하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 임재근

백선엽, 김창룡 vs. 조문기, 곽낙원’

15일 오후 2시, 대전현충원에서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가 진행됐다. 올해로 3회를 맞고 있는 이 행사는 장군 묘역에 안장된 김창룡, 백선엽과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조문기, 곽낙원의 삶을 비교하는 이야기로 진행됐다.

▲ 장군 제1묘역(69번)에 안장된 김창룡의 묘역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해설사 ⓒ 임재근
▲ 장군 제2묘역(555번)에 안장된 백선엽의 묘역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해설사 ⓒ 임재근

김창룡은 대전현충원에 묻힌 일본군 헌병 오장(하사급) 출신의 대표적인 친일파이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책임자로 장군 제1묘역(69번)에 안장돼 있다. 김창룡의 묘는 현충일마다 파묘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등 이장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7월 10일 사망한 만주국군 중위·간도특설대 출신의 백선엽은 친일 경력으로 인해 대전현충원 안장 당시부터 반대가 거셌다. 백선엽은 지난 7월 15일 장군 제2묘역(555번)에 안장됐다.

▲ 독립유공자 제3묘역(705번)에 안장된 조문기 지사의 묘 앞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해설사 ⓒ 임재근
▲ 독립유공자 제2묘역에서 해설을 하고 있는 해설사. 오른쪽 묘가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 곽낙원 지사의 묘(772번)이고, 왼쪽의 묘는 뱀범 김구 선생의 장남 김인 지사의 묘(771번)이다. ⓒ 임재근

김창룡, 백선엽과 대비되는 인물로 선정된 이들은 독립유공자 제3묘역(705번)에 안장된 조문기 지사와 독립유공자 제2묘역(771번)에 안장된 곽낙원 지사다. 조문기 지사는 1945년 7월 24일 일제강점기 마지막 의열투쟁으로 널리 알려진 ‘부민관 폭파 의거’를 거행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2대 이사장을 지냈다.

곽낙원 지사는 독립운동가들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뒷바라지하면서 국내 및 중국에서 조국광복을 위한 항일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곽낙원 지사는 백범 김구 선생의 어머니이고, 곽낙원 지사의 묘 바로 옆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장남, 김인 지사의 묘(772번)가 자리했다.

본격적인 걷기에 앞서 장군 제1묘역 아래 주차장에서 개회식이 진행됐다. 개회식은 순국선혈 등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이들을 위한 묵념으로 시작됐다. 이날 개회식에서 인사말에 나선 광복회대전지부 윤석경 지부장은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고 이역만리에서 많은 고초를 겪으며 희생하신 애국지사들의 뜻은 자주독립이었다”며 “아직도 친일청산을 이루지 못하고, 남북이 분단된 현실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로서 죄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친일청산과 민족 통일을 이루는 데 여러분들의 참여가 큰 기여가 될 것”이라며,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에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에 앞서 주최 단체 대표자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광복회대전지부 윤석경 지부장,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대전본부 박규용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박해룡 지부장, 유성우리겨레한마음봉사단 황인식 단장, 진보당유성구위원회 강민영 위원장. ⓒ 임재근
▲ 정용래 유성구청장이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 임재근

축사에 나선 정용래 유성구청장은 “의사가 진단과 진찰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처방을 제대로 하지 못해 건강을 해치거나 심지어는 죽게 할 수 있듯이, 역사를 바로 안다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때 병들어 나아갈 것인지, 건강하게 나아갈 것인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라며 행사를 준비한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평화둘레길 행사는 장군 제1묘역을 출발해, 장군 제2묘역과 독립유공자 제3묘역을 거쳐, 독립유공자 제4묘역까지 약 2km 정도를 걸으며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의 마지막에는 독립유공자 제2묘역에서 묘비닦기를 하며 마무리했다.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는 광복회대전지부, 독립유공자유족회대전지회,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대전본부, 민족문제연구소대전지부, 유성겨레하나, 진보당유성구위원회, 유성우리겨레한마음봉사단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 개회식에서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이 노래 공연을 하고 있다. ‘놀’은 ‘격문’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를 불렀다. ⓒ 임재근
▲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 참가자들이 본격적인 걷기에 앞서 몸풀기 운동을 하고 있다. ⓒ 임재근
▲ ‘제3회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걷기’ 행사의 마지막에는 묘비 닦기를 진행했다. ⓒ 임재근

<2020-16-1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백선엽부터 곽낙원까지, 걸으면서 배우는 현충원 속 역사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이야기가 있는 ‘현충원 평화둘레길’ 함께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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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보도자료][다운로드][법관기피신청요약]

1. 민주언론을 위한 귀 언론사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 ‘민족문제연구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는 2019년 4월, 대리인단과 지원단을 구성하여 일본제철 주식회사 등 전범기업에 대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일부 사건에서 지난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불구하고,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거나 소멸시효가 도과되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의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의 권리구제는 현저히 지연되고 있습니다.

3. 최근 대리인단은 진행중인 일부 하급심 사건에서 향후 재판의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인지하였습니다. 대리인단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법관(이하 ‘이 사건 법관’)이 법관으로 임용되기 이전 강제동원 가해 일본 기업(일본제철 주식회사, JX금속 주식회사 등)의 소송대리를 사실상 전담해온 김앤장 법률사무소(이하 ‘김앤장’)에서 2003년부터 2017년까지 장기간 근무하면서 현재 소송의 일본 기업측 소송대리인 변호사들과 장기간 동료로 함께 근무한 사실이 있습니다. 김앤장은 강제동원 소송과정에서 ‘징용사건 대응팀’을 만들고 사법부, 행정부와 긴밀한 협의를 하는 등 재판절차에 부당히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 사건 법관이 진행하는 사건에서 피고 일본 기업측 소송대리인인 김앤장의 소속 변호사들 중 일부는 위 ‘징용사건 대응팀’의 일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 법관이 김앤장에 근무한 기간 동안 바로 위 ‘징용사건 대응팀’이 구성·운영되었습니다. 이에 강제동원 소송 유족측 대리인단은 2021. 9. 14. 이 사건 법관에 대한 기피를 신청했습니다.

4.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평균적 일반인으로서의 당사자의 관점에서 공정한 재판에 대한 의심을 가질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 법관에게 편파성이 존재하지 아니하거나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는 경우에도 기피이유가 인정됩니다(대법원 2019. 1. 4.자 2018스563 결정 등 참조). 대리인단은 기피 신청의 이유로 1) 이 사건 법관은 김앤장에서 장기간 근무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의 피고 일본 기업측 대리인 변호사들과도 일정한 유대관계를 쌓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2) 김앤장은 개별변호사를 넘어 회사 차원에서 강제동원 사건에 대해 대응팀을 꾸리고, 강제동원 사건 피고인 일본 기업들의 소송대리를 사실상 전담해왔기에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이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3) 현재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재판거래의 내용 중 사법부의 김앤장과의 부당한 유착이 존재하고, 이로 인해 재판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훼손된 상황이기에 강제동원 사건에서는 보다 엄격한 공정성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5. 재판의 공정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는 법원과 법관의 존립근거이자 재판의 대전제입니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 사건 법관은 담당 사건의 피고들 소송대리인들과의 특수관계가 의심되어 재판의 공정성 또는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부디 법원이 이 사건 법관에 대한 기피신청을 받아들여 강제동원 사건에 대한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21년 9월 14일
민족문제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화, 2021/09/1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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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인천 6월 항쟁의 중심지인 부평역 광장에는 ‘6월 민주항쟁 30주년 인천조직위원회’가 건립한 기념 표석이 자리 잡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지부장·김재용)는 12일 인천 부평역 일원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인천지역 6월 항쟁의 현장을 돌아보는 ‘87년 6월 항쟁 현장 탐방’ 행사를 개최했다.

인천광역시의 지원을 받아 ‘2021년 인천지역 역사현장 시민답사 프로그램’ 첫 번째 순서로 전행된 이날 행사는 안재환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가 해설을 맡았다. 답사단은 오전 10시 부평역을 출발해 백마장 입구-세림병원-부평경찰서-현 산곡역 앞을 거쳐 영아다방 앞까지 3시간 가까이 탐방을 이어갔다.

▲ 안재환 인천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가 ‘인천에서 벌어진 87년 6월 항쟁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6월 항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87년 1월 14일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다가 숨진 박종철 열사의 사망 사건이었다. 하지만 인천의 6월 항쟁은 한 해 전인 1986년 인천 전역에서 불꽃처럼 일어난 5.3 항쟁 때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

1년 뒤인 1987년 6월 10일,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주최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에서 개최된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와 때를 맞춰 부평역을 중심으로 대학과, 성당, 교회, 동인천역 등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가두시위가 전개됐다.

‘민주헌법쟁취 인천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이날 오후 6시 부평역 광장에서 개최한 궐기대회는 ‘장기집권 획책하는 군부독재 타도하자’는 대형 플랜카드를 앞세운 수천 명의 시위대가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웠다. 택시기사들은 경적을 울렸고 거리의 시민들을 박수를 보냈다.

상점 주인들은 빵과 음료수, 휴지를 건네며 너나없이 경찰에 쫓기는 시위대를 숨겨줬다. 경찰은 이날 집회를 빌미로 집회를 준비한 공동대책위 7명을 수배해 그중 안영근(전 국회의원)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 집행국장 등 12명을 구속했다.

인천 항쟁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6월 18일 부평구청 앞에서 열린 ‘호헌 철폐와 최루탄 추방을 위한 인천 시민대회’였다. 오후 6시가 되자 불어난 시위행렬은 2만 명을 넘어서 구청 부근과 인근 행복예식장 일대가 시위대로 넘쳐났다.

▲ 이남희 당시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투쟁부장이 6월 항쟁 당시 인천지역 노동자들의 투쟁을 소개하고 있다.

엄청난 시위대에 두려움을 느낀 경찰은 ‘부평만행사건’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700명이 넘는 시민, 학생, 노동자들을 연행했다. 주변 철마산으로 피신했던 시위대 일부는 청천동과 효성동 파출소를 공격하기도 했다.

전국 37개 도시에서 일제히 ‘범국민대회’가 열린 6월 26일 오후, 부평시장 골목에서 5백여 명의 시위대가 나무십자가를 앞세우고 구호를 외치며 ‘범시민 평화대행진’을 시작했다. 부평우체국과 백마장 사이의 부평로에서는 시민과 노동자, 학생 등 2천여 명이 도로를 점거하여 연좌시위를 벌였다. 가두의 시민들은 “최루탄을 쏘지 마라!”고 외치며 경찰의 무차별 폭력진압에 항의했다. 시위대 일부는 경찰에 연행되는 시민들을 구출할 만큼 놀라운 투쟁의지를 보였다. 안 이사는 “이날 부평역 인근에서부터 백마장 입구까지는 그야말로 ‘해방구’였다”고 회고했다.

▲ ‘6월 항쟁 현장 탐방’ 행사 참가자들이 인천 6월 항쟁 당시 집회 참가자들이 무더기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던 부평경찰서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두환 정권은 6월 항쟁이 벌어진지 19일 만에 굴복하고 말았다. 노태우는 ‘6·29 민주화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한다”고 발표하면서 인천 시민들의 항쟁은 마침내 승리로 마무리됐다.

안 이사는 “인천지역의 6월 항쟁의 가장 큰 특징은 노동자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이라고 밝히고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민주화 발전과 사회운동의 비약적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찬흥 기자 [email protected]

<2021-06-13> 인천일보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인천지역 6월 항쟁 현장 탐방’ 행사 개최

월, 2021/06/1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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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지도로 푸젠성 천주의 설봉사 일대를 샅샅이 살피며 지형을 분석합니다.

독립운동가 김상윤 의사의 묘역을 찾아 나선 사람들입니다.

[박호균 /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성 지부 단원 : 우리 김상윤 선생님 고향이 경상남도 밀양이고 돌아가신 곳이 중국 푸젠성 천주시입니다. 여기까지 오셔서 돌아가셨습니다. 설봉사 자락을 확대하면서 이 넓은 땅의 어디에 산소를 지었을까.]

의열단 창립 단원으로 의열단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5인 참모부의 일원으로 활동한 초산 김상윤 의사.

지난 1920년대 수차례에 걸친 의열 투쟁에서 의열단 집단지도체제를 이끌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입니다.

이역만리 푸젠성 천주에서 의열단 재건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31세의 나이로 외로이 숨을 거둔 것으로 기록되어있지만,

정확히 언제, 어디서 생을 마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마지막 기록이 남아있는 설봉사가 유일한 단서.

민족문제연구소 광둥성 지부 단원들은 김상윤 의사의 묘역을 찾기 위해 선전에서 800km 떨어진 먼 길을 달려 푸젠성 천주의 설봉사를 찾았습니다.

[신광용 /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성 지부 단원 : (후손으로서 독립운동가분들에게) 빚을 많이 졌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돌아가셨는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까 일단 여기에 있는 사람으로서 한국인으로서 당연히 찾아 뵈어야 한다고 해서 찾는데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이들이 설봉사를 찾은 것은 지난 2월에 이어 벌써 두 번째.

당시 김상윤 의사의 묘역으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 좀 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했습니다.

[박호균 /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성 지부 단원 : 지난번 1차 탐사 때도 저희가 산소를 찾는다는 확률은 만 분의 1도 안 됩니다. 만 분의 1도 안 되지만 그래도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라도 하는 것이 선열들께 빚진 후손들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찾는다는 보장은 없더라도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계획입니다.]

지난 2015년 세워진 김상윤 의사 기적비를 들러 주변을 청소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능선을 따라 오르며 쉽사리 지나치기 쉬운 바위 하나하나 꼼꼼히 살핍니다.

다른 사람의 묘를 만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변을 청소하고 인사를 올립니다.

[박호균 /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성 지부 단원 : 이 산을 다니다 보니까 이 산에서 발견한 온전한 산소가 몇 기 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할아버지 조상 김상윤 할아버지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묘역의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리고 또 바삐 온 산을 누빕니다.

지난 2월 답사 때 찾았던 김상윤 의사 묘역으로 추정되는 곳.

잠시 쉬어가려고 10분쯤 머물던 곳에서 우연히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박호균 / 민족문제연구소 광동성 지부 단원 : ‘이 자리면 산소를 이쯤 쓰면 좋겠다’ 하고 가위 가지고 툭툭 두드리는데 돌멩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서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 누가, 이 넓이로 산소를 썼는데 비석에 이름 한 자 없이 산소를 지었을까, 그리고 그동안 봐 왔던 중국 산소의 형태는 절대 아닙니다.]

아직은 김상윤 의사의 묘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준비한 술 한잔으로 간소하게나마 차례를 지내봅니다.

설봉사의 스님들에게도 김상윤 의사에 대해 아는지 물었지만, 아쉽게도 당시에 대한 정보를 잘 몰라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향토사학자를 소개해주며 지속해서 산소 찾기에 협조해나갈 것을 약속했습니다.

[법도 스님 / 설봉사 주지 스님 : 사실 저희도 이전에 (김상윤 의사 묘역을) 계속 찾았습니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행방불명입니다.]

두 차례의 답사에도 아직 묘역을 찾지는 못했지만 동포들은 독립운동가 초산 김상윤 의사의 업적을 기억하며 계속해서 그의 흔적을 찾아갈 계획입니다.

<2021-06-06> YTN 

☞기사원문: 독립운동가 초산 김상윤 의사 묘역 찾는 동포들의 여정

일, 2021/06/0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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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에 도서관 설립, 친일 청산 뜻 받듣다

신부공원에 건립된 임종국 선생의 흉상.

[중부매일 유창림 기자]친일 청산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임종국 선생(1929년 10월 26일~1989년 11월 12일) 기념관 건립 추진 프로젝트가 본격 추진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는 4천389명의 친일 행각을 파헤치고, 친일 인명사전의 토대를 마련한 임종국 선생의 뜻을 받들고 있다. 연구소는 후대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임종국 선생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공감대 형성을 위해 공청회 및 친일청산 역사문화 탐방을 추진 중이다.

중부매일은 임종국 선생의 발자취와 그의 뜻을 담은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의 활동 상황을 들여다봤다.

임종국 선생과 천안

임종국 선생./ 민족문제연구소 천안지회 제공

임종국 선생은 1929년 10월 26일 경상남도 창녕에서 천도교 지도자를 역임한 아버지 임문호와 어머니 김태강 사이의 4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성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광복을 맞았으며 1952년에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경제적 사정으로 2년 후 중퇴했고 이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 그는 문학평론 자료수집 과정에서 유명 작가들의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 행적들을 발견하고, 이에 분노하면서 본격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연구를 시작해 ‘친일문학론’을 저술했다. 특히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던 중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발견하고 무척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국 선생은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친일문학론에 올렸다.

친일문학론을 펴낸 임종국 선생은 만년(晩年)에 천안시 삼룡동과 구성동에 은거하면서 필생의 과업인 ‘친일파총서’ 편찬에 몰두하다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89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임종국 선생이 천안을 찾은 건 1980년으로 알려졌다. 당시 지병인 천식이 폐기종으로 전이되면서 요양이 필요했고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집필에 몰두하기 최적인 장소로 천안을 택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천안에 지은 집에 ‘요산재(樂山齋)’라는 이름을 달았으며 요산재는 친일반민족행위 연구의 성지처럼 불리고 있다.

그는 천안공원묘원 무학지구에 안장됐으며, 남긴 자료를 물려받은 것을 계기로 친일파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됐다.

그가 15년간 연구하고 수집한 친일파들의 이름, 주요 친일 행적을 메모한 ‘친일인명카드’는 훗날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됐다.

임종국 선생은 친일 연구의 이유로 “친일한 일제하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참회와 반성이 없었다는 해방 후의 현실이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발본색원의 과정이 없는 민족사회의 기강은 헛말이다. 민족사에서 우리는 부끄러운 조상임을 면할 날이 없게 되는 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마지막 살았던 구성동 옛집, 작은도서관 형태의 기념관이 목표

임종국 선생은 생애 마지막을 요산재에서 내려와 구성동의 한 주택에서 1년여 동안 지냈다. 연구소는 삼룡동에 위치한 요산재의 경우 길이 험해 접근하기 어렵다고 판단, 구성동 주택에 기념관 건립을 목표하고 있다. 이 단독주택의 주인은 자신의 집에 임종국 선생이 기거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연구소는 기념관 건립에 대한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되고 매입 및 기념관 건립비용을 확보했을 때 집주인과 협의를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념관은 작은도서관 형태로 계획하고 있다. 임종국 선생의 유품을 전시하는 것은 물론 도교육청과 연계한 학생 체험 프로그램 개발과 천안 역사문화 탐방코스도 운영할 예정이다.

연구소는 천안이 항일운동의 대표적인 지역이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공감대를 충분히 이끌 수 있다는 계산이다.

요산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살아생전 임종국 선생의 모습.

이를 위해 상반기 중 충청남도교육청과 임종국 선생 기념사업회 연대 사업으로 공청회를 준비하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들을 발제자로 참여시켜 여론을 환기하고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천안은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열사의 생가가 위치해 있다. 두 곳은 독립과 항일 정신이 깃든 명예로운 고장 천안을 대표하지만 항일 운동 관련 다른 역사적 장소의 관심을 떨어뜨린다는 그늘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소는 목천 동학군 세성산 전투현장 등 관심도가 미약한 독립운동 유적지와 임종국 선생을 매칭해 ‘친일청산 역사문화 탐방’도 기획했다.

탐방코스는 .삼용동 임종국 선생 요산재-목천 동학군 세성산 전투 현장-구미산 기념탑-아우내 독립운동 기념공원-입장 기미독립만세 기념공원-성거 망향의동산-신부동 천안평화공원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5월 22일 연구소 회원 및 가족을 대상으로 1차 탐방을 실시했으며 6월에는 시·도의원 및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9월에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2·3차 탐방을 실시할 예정이다.

연구소 김기태 국장은 “천안은 항일운동을 대표하는 유관순 열사와 4.1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순국하신 김구응, 최정철 열사, 그리고 입장 양대리 만세운동을 주도한 한이순, 황금순, 민금옥 등의 얼이 깃든 독립운동의 성지로 평가받고 있으나 독립기념관에 치중된 홍보와 미흡한 체험 프로그램으로 더 이상의 확장이 어려운 상태다”면서 “친일청산의 선구자이신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고 해방 후 왜곡된 근현대사를 제대로 바로잡기 위해 임종국 선생 기념관 건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창림 기자 [email protected]

<2021-06-06> 중부매일 

☞기사원문: 임종국 선생 기념관 건립 본격 추진

화, 2021/06/08-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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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길 역사화 전시회 ―

올해는 1979년 10월 16일 부마항쟁 제41주년을 맞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여 <사단법인 10 ․ 16 부마항쟁연구소> 가 주관하고 <사단법인 10․16 부마항쟁연구소>와 <금정문회회관>이 공동주최하는 ≪부마항쟁의 기억, 41년 展 ― 정성길 역사화 전시회≫가 열린다.

부마항쟁은 대한민국을 민주화의 길로 이끈 위대한 항쟁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산시민들은 부마항쟁을 잘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마항쟁의 역사를 올바로 아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정성길 화백

이번 <역사화 전시회>를 위하여 지난 2년여 동안 오직 화폭에 매달려 있었던 정성길 화백의 말이다. 정성길 화백은 1941년 진주 출생으로 10.16부마항쟁연구소 고문, 민족문제연구소 부산지회 고문을 맡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고 주관한 사단법인 10․16 부마항쟁연구소 정광민 이사장은 다음과 같이 인사말을 전한다.

부마항쟁 41주년을 맞이하여 정성길 화백님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어 참으로 뜻 깊게 생각합니다. 정성길 화백님은 누구보다도 부마항쟁의 의미를 귀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부산사람들이 정작 부마항쟁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 늘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정 화백님은 부마항쟁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난 2년간 힘든 작업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 사단법인 10·16 부마항쟁연구소 정광민 이사장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그에 걸맞은 관심과 열정, 그리고 인고의 노력을 요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전시회는 정 화백님의 그러한 열정과 노력의 산물입니다.

여기에 전시된 작품은 그 하나하나가 부마항쟁의 역사적인 장면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오늘의 이 그림들이 잊혀진 부마항쟁의 역사를 되살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전시회가 성사되도록 협조해주신 정미영 금정구청장님, 강창일 금정문화회관 관장님께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전시회에 깊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경향각지의 여러분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 전시회는 <2020년 10월 13일(화)부터 21일(수)까지> 9일간 <금정문화회관 소전시실>에서 개최된다. 개막식은 10월 13일 17:30부터 18:00까지 정미영 금정구청장, 박재호 국회의원, 변영철 변호사의 축사로 진행된다.▲기사제공 // 부울경뉴스 총괄본부장 임재도

김지량 | [email protected]

<2020-10-05> 부율경뉴스 

☞기사원문: ≪부마항쟁의 기억, 41년 展≫ 개최

화, 2020/10/06-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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