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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산 심사? 이것을 예산 심사라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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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산 심사? 이것을 예산 심사라 하기 어렵다

admin | 화, 2020/11/10- 20:15

과연 우리 국회가 예산 심사를 하기는 하는 것인가?

 우리 국회의 경우 예산 심사에 겨우 두 달이 주어진다. 심지어 그 두 달도 사실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간 국회에서 실제로 여러 차례 예산 심사를 해왔다는 어느 의원은 필자에게 두 달 심사기간은커녕 의원들이 행정부로부터 회의 일주일 전에야 겨우 심사 자료를 받는데, 그것도 산더미처럼 많은 엄청난 자료로서(이것도 일 년 전의 그 자료에 단지 숫자만 바꾼 것이 태반이라 했다) 열람할 수도 없고 또 실제로도 거의 열람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이 의원에 의하면, 그렇게 하여 예산 심사에 들어간다 해도 의원들은 언론에 자기 이름 내기 위해 이미 매스컴에 소개된 예산 관련 사안 발언만을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지역구 관련 예산 발언만을 계속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행정부 공무원들은 “일 년에 3, 4일만 국회에 나가 수모 당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의원들 질문이 이어지는 회의장 뒤쪽에서 졸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사실 공무원들도 실제 예산 내용을 잘 알고 있지 못하다고 이 의원은 말했다). 이렇게 시종일관 그야말로 수박겉핥기식으로 진행되는 심사는 결국은 대부분 규정에도 없는 이른바 ‘소소위’에 넘겨져 예산의 구체적 내용이 아닌, 단지 “총액 규모를 얼마 깎자”라는 여야의 ‘보여주기식 숫자 싸움’으로 마무리된다. 이 와중에도 각 당 중진들을 비롯해 자기 지역구 예산 증액을 목표로 하는 ‘쪽지예산’이 횡행한다. 결산 분야는 더욱 심각해서 아예 관심도 없고 또 능력도 없다는 평가다.

 

쪽지 예산’, 국민 혈세에 대한 범죄

 예를 들어, 2014년도 예산안을 기준으로 국회 예결위원회가 감액한 3조 원 중 여당은 1조 6000억 원(55%), 야당은 1조 3000억 원(45%)을 나눠 가졌다. 즉, 겉으로만 보면 그토록 으르렁대기만 하던 여야가 사이좋게 그만큼의 증액 분을 챙겨간 것이다. 이는 다시 여야 예결위원들에게 배분된다. 각 위원들은 지역구 유지나 동료 의원들에게서 받은 예산 민원, 이른바 ‘쪽지 예산’을 슬쩍 끼워 넣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정부와 국회, 여당과 야당은 공생관계가 된다. 국민의 혈세가 이렇듯 허술한 과정을 거쳐 마치 ‘주인 없는 공돈’처럼 방만하게 사용되고 있다.

더구나 이 ‘쪽지 예산’은 계획성 없이 중구난방으로 결정된 것이 많아 대부분 사업타당성이 약하고 결국 집행조차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는 국민의 혈세에 대한 범죄라 할 수 있다. ‘쪽지 예산’은 즉시 폐지되어야 하고, 공식적인 문서화 절차를 밟도록 해야 한다.

 

국회는 예산 감액 권한밖에 없다

사실 우리 국회는 예산 조정의 권한이 없다. 오직 감액만 가능하다. 왜냐면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는 헌법 제57조의 규정 때문이다. 국회가 예산 조정을 할 수 없고, 기재부가 내놓은 예산안을 감액하는 것이 고작이니 기재부의 힘이 막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하여 국회는 감액한 그 예산으로 ‘쪽지 예산’이라는 편법을 일삼는 것이다.

결국 근본적으로 재정통제가 불가능한 현실이다. 국민들의 혈세는 이렇게 엉망으로 관리되고 낭비되고 있다. 그러니 나라가 나라가 아니게 된다.

 

예산에 관한 한, 철저히 통법부에 불과한 국회

우리나라 역대 국회의 행정부 예산안 수정은 겨우 1%에 그치고 있다. 99%가 그대로 통과된다. 이야말로 ‘통법부’의 전형적 모습이다. 또 국가 재정통제의 중요한 수단으로서의 국정감사는 모두가 인정하듯 그 실효성이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국회의 모습은 본연의 임무에 대한 직무유기이고, 국민주권주의 시대에 대한 배신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부패 사회’라는 낯부끄러운 오명을 떨치고 진정 새롭게 전진하기 위해 우선 국회가 국가의 재정 통제라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미국의 의회는 행정부 소속의 예산국에 비견되는 의회예산처(CBO)의 뒷받침에 의해 충실한 예산심의를 수행한다. 의회예산처는 의회 예산위원회에 경제 및 예산 전망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며, 각 상임위원회도 예산위원회에 예산 관련 입장과 추정치를 제출한다. 의회의 예산 심사 기간은 약 8개월에 이른다.

독일에서 예산안은 매년 9월 1일 의회에 제출되어 연방의회의 제1독회를 거쳐 (정당 소속의 정책위원을 포함하여) 전문성을 갖춘 예산위원회의 심사만 꼬박 3개월이 소요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본 회의에 회부되어 제2독회와 제3독회를 통해 의결된다. 프랑스 그리고 영국 등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최소한 3개월 이상의 심사 기간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중요한 점은 이들 나라도 행정부가 예산안을 작성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회계감사원에 의한 사실상의 ‘사전 감사’ 과정을 거쳐야 예산안이 작성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우리처럼 행정부가 독주하는 예산안이 아니라 의회와 회계감사원의 통제가 가능하게 된다.

결산 심사는 미국의 경우 별도의 심사제도가 없이 의회에 설치된 회계감사원에서 연중 상시적으로 실시하며,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영국은 독립된 회계검사원의 회계감사 보고서를 제출받아 시행한다.

국가 예산은 국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적 사안이다. 도대체 이 중요한 예산 심의를 언제까지 지금처럼 비체계적이고 무책임하게 운용해야 하는 것일까?

 

재정민주주의,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 재정을 통제해야 한다

국가 재정에 대한 통제는 당연히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이 통제해야 한다. 이는 국민주권주의 정신의 실현이고, 재정민주주의의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 행정부의 힘이 강한 것은 한마디로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인 것이고,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힘이 강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대통령이 이렇듯 ‘돈줄’을 쥔 행정부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회가 이를 전혀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돈줄’을 쥔 그 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원래 의회의 형성 자체가 행정부에 대한 재정통제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말은 이를 한 마디로 웅변하고 있다. 의회의 재정통제 기능을 정상적으로 확보하고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회계검사 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미국 회계검사원의 경우 회계검사 건의에 의해 2007년 기준 570억 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었다.

 

국회, “국민의 이름으로국가 재정통제의 임무를 수행해야

국회 예산 심사 기간은 확대되어야 하고, 예·결산 상임위원회의 위원 임기는 4년 임기로 전문화되어야 한다. 특히 예·결산 검토를 담당하는 ‘국회 전문위원’이라는 직위는 명실상부하게 각계의 전문가에게 개방되어 의원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전문적인 자문과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더구나 예ㆍ결산 검토보고는 이 분야에 대한 의원들의 전문성 및 시간 부족으로 일반 법안 검토보고에 비해 ‘국회 전문위원’의 주도권이 훨씬 강하다).

동시에 국회에 설치되어 있는 예산정책처가 명실상부한 예산 전문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정립함으로써 의원들의 예·결산 심사 활동을 효율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나아가 국회 소속의 회계감사원 혹은 국회와 긴밀히 연결되는 회계감사원을 기초로 국가 재정 통제라는 임무를 “국민의 이름으로” 수행해야 한다.

 

소준섭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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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을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장흥배 님이 1월 10일 ‘시장은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주제로 쓴 글의 일부를 아래로 다시 소개한다..

최저임금제의 의의는 임금 최저선의 결정(이라는 영역)에서 시장에 대한 사회의 우위를 확인한 것이다. (중략) 문재인 정부하에서 최저임금제의 역사적 의미는 시장의 힘을 극복하려는 것이었지, 이에 굴복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촛불항쟁, 여야 대선주자들의 공약 경쟁, 이를 통해 들어선 정부의 정책 수립을 통해 탄생한 최저임금 1만원이 가리키는 정책 방향은 공룡 재벌에 의해 망가진 공정거래 질서의 복원, 만약의 고용 위기를 상쇄할 과감한 복지와 소득재분배, 부동산 지대경제의 청산 등이었다. 요컨대 시장과 경제를 16.4%의 최저임금 인상이 수용될 수 있는 환경으로 개혁한다는 것이 인상을 결정한 사회적 합의의 요구였던 것이다. 달리 보면 이 모든 과제에서 허탕을 치고 역진하는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무력화하는 온갖 꼼수로 나가는 것은 예정된 수순일 수밖에 없다.

좌절로 가는 최저임금 1만원 실험에서 남아야 할 교훈이 있다. 지배계급은 언제나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에 따른 선택을 객관적인 시장의 힘에 의한 제약으로 위장한다는 것이다. (반작용적) 역효과 명제는 이를 통해 대중의 사고를 효과적으로 지배한다. 실상 신비한 시장의 힘으로 포장된 상자를 뜯어보면 재벌, 상가와 아파트 자산가, 상위 10% 고소득자들의 경제적 이권을 유지·확대하려는 (탐욕의) 이해가 대개의 내용물이다”

 

명쾌한 선언이다! 시장은 당연히 시민사회의 필요와 합의에 따라 작동하고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촛불의 이름을 앞세워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한국 사회의 모습은 시장논리와 경제성과라는 미명으로 극소수의 기득권층 탐욕이 합리적인 것처럼 포장되고 이들에 의해 전일적으로 지배당하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본인과 가족들의 패악행위 등으로 스스로 경영능력이 없음을 만천하에 노출한 조양호 대한항공 그룹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연기금 등 공공투자 지분의 주주권 행사(stewardship)를 유보하면서 오히려 수구언론과 보수진영에서 이를 마치 사유재산권과 경영권의 침해하는 것으로 오도하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명백하고 노골적으로 탈법과 불법을 저지른 이재용을 삼성이라는 한국 대표기업의 주주이자 경영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로 구속을 면책하고 석방하였다. 결국 대한항공과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집단들이 국민적 자산이 아니라 일개 가문의 전횡적 사유물이라는 것을 공인한 셈이다.

시민들에게서 수임한 개혁을 추진하는 대신 애매하게 삼성과 연대하며 황당하게 시장의 논리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지난 세월의 참여정부에 이어, 역시나 이익 방어에 노련한 기득권의 간교와 교언영색으로 포장된 예의 시장논리에 포획되고 투항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제 실현과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역사적 명제에서 말머리를 돌려 뒷걸음친 문재인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촛불과 시민을 정권의 명분과 장식용으로 운운해서는 아니 된다.

1924 pixabay
사진: pixabay

시장은 기본적으로 무죄이다. 문제는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작동하는 기득권과 자본의 탐욕과 이를 정당화하는 논리와 이데올로기와 매카니즘, 그리고 이에 조응하여 형성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구조가 문제이다. 이에 한걸음 더 들어가 시장이라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용어를 시장, 시장가격, 시장기구(역할), 시장경제 등으로 다시 세분하여 들여다 보고자 한다.

경제학 사전에 의하면 시장은 일군의 공급자와 수요간에 성립하는 재화 내지는 용역의 교환 또는 매매의 관계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역사적 흐름으로 볼 때 상품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는 교환 내지는 매매 행위가 특정 장소에서 이루어졌으나, 상품경제가 일반화된 이후에는 구체적 매매 행위에 더하여 개념적 추상으로서 시장이 존재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관계와 범위의 내용이 특정 장소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아담 스미스 이래 경제학의 핵심은 가치에 대한 논쟁과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에 관한 것일 것이다. 개념으로서 가치와 시장 가격 간에 존재하는 괴리에 대한 관점과 해석이 지난 수백 년간 서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경제 산업의 내용을 역동적으로 규정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는 다만 기업인으로서 30여 년간 실물 경제를 체험한 바탕으로 경제와 시장에 대해 기존의 논쟁과는 다른 의견을 만용스럽게 개진해 보고자 한다.

육체라는 유기체적 형태를 지닌 인간에게는 의식주의 해결이라는 절대적 필요가 존재하며 어떠한 상황과 조건에서도 이를 충족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비로소 해당 사회가 지속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는 국가단위의 시스템을 현대적 의미에서 복지의 사회안전망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수 차례의 산업적 혁명과정을 통하여 인류의 노동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고 기본적으로 의식주의 수요를 해결하면서, 이제 추가적으로 진행되는 생산(경제)활동은 역사의 흐름이라는 시간적 요소와 더불어 사회와 정치적 관계구조 속에서 상대적이며 개별적으로 형성되는 수요와 연동하여 다양하게 전개된다.

현장에서 물물교환과 단순한 매매가 이루어지던 시대를 지나 근대에 이르면 위에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시장과 사회적 권력구조 속에서 집단적 공급과 수요의 균형적 만남을 통하여 시장가격이 형성된다. 이때 시장이라는 구체적 또는 추상적 공간에서 현상적으로는 수급상황과 한계효용의 논리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지만, 실현된 가격이라는 현상 뒤에는 생산 및 공급의 수단과 유통망 기반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형성된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권력구조가 실제적인 힘으로 작동하게 된다.

현대의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알프레드 마샬이 제시하였듯이 일군의 공급과 수요에 의한 균형에 의해서 합리적으로 시장가격이 형성되고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규정된 인간들에 의해 한계효용적이고 판단논리적인 행위에 의해, 기존에 형성된 가격선이 수학의 법칙처럼 이동한다고 곧이 곧대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장가격과 변동은 사회평균 생산력에 의한 노동가치에 기반하되 혁신적 기제와 더불어 사회구조와 세력간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에 더하여 체제의 주류집단이 주도하는 미디어 매체의 홍보와 문화적 환경 속에서 개별적 집단적 심리 욕구가 인위적으로 형성되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의도하지 않은 수요를 촉발하게 만든다.

권력구조에 따라서 전개되는 시장 현실과는 별도로,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조건하에 수급 균형과 한계적 효용가치 이론이 작동하는 시장경제에서는 매체 또는 공간이라는 장소를 통하여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가격을 매개로 실제적인 수요가 보내는 신호를 확인하면서, 일차적인 수요와 공급에 대한 정보와 균형의 기능에 더하여, 경제적 유효 자원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결합시키는 역할과 기능을 갖게 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관점에 서면 20세기 전체주의적인 극우 파시즘과 극좌적인 스탈린 시대의 경제체제를 경험하였던 빈 학파의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적 이론과 입장이 일면 타당하고 이해할 만한 것이다. 혹독한 시대적 경험을 겪은 빈 학파의 입장에서 보면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핵심 사항으로 반드시 개인적 자유주의와 무제한적 사유재산권이 전제되어야 하며 국가의 역할을 상기 요소들을 보호하고 보장하는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 좀더 나가서는 인간의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면서 시장에게 만능의 능력을 부여하여 신과 동등한 위치까지 올려 놓는다. 이제 시장 만능주의는 ‘반드시 시장에 복종해야 하며 다른 대안은 없다(TINA’)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발전해 나간다.

반면에 폴라니와 케인즈 등의 입장에 서면 자본가들의 지나친 탐욕으로 자유시장의 기능이 실패하고 독점의 폐해가 커져가면서 사유적 자본의 자기조정과 이익실현이라는 매카니즘이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무리하게 강행하여 한편에서는 과잉생산물이 누적되는 반면에 식민지를 포함하여 빈곤과 결핍으로 탈진한 시장의 과소소비 상황이 겹치면서, 이러한 공황적 상황을 정치권력의 강제이던 군사적 물리력이던 국가단위 또는 연합적 지역단위에서 폭력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으로 파시즘이 태동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한마디로 파시즘은 탐욕 때문에 실패한 시장 기능을 강제적으로 작동시키면서 발생하는 반동적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시민들의 선택에 의해 위임된 정치적 강제력으로 잘못된 시장질서와 왜곡된 산업구조에 개입하고 수정을 시도하는 것은 정당하고 마땅한 일이다.

상기의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대치하는 가운데, 지난 백여 년간 경험을 통하여 되돌아 보면 시장기능과 시장경제의 역할은 결국 역사적 상황에 따른 사회적 정치적 관점과 입장의 문제로 다시 귀결된다. 마치 근대 정치철학의 출발점에서 공히 국가의 성립을 사회계약론으로 해석하면서도, 홉즈는 기존 질서의 권력자인 군주의 입장에 서고 로크는 신흥 유산자 계층의 편협한 이익을 옹호하는 논리를 전개하지만 루소는 모든 공민들의 참여와 합의에 의한 일반의지에 기초하여 근대적 민주주의를 주창한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 보게 한다. 판단의 기준은 ‘무엇과 누구를 위한 것 인가’ 이다.

이에 더하여 제3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의 생산성 격차에 따른 보몰 효과가 나타나고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절대적 경제력에 의해 달러에 기초하여 형성된 기존의 통화시스템에 미국경제가 위축되는 과정에서 심각한 비대칭성이 형성되면서 고전적인 경제와 통화의 이론에 괴리와 변종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무형재를 중심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출현과정에서는 기존의 시장경제 이론인 재화 및 서비스의 배타성과 경쟁의 논리 및 수확체감의 법칙 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금융과 산업변천의 경제사를 오랜동안 연구해온 건국대의 최배근 교수는 최근의 저작 ‘위기의 경제학? 공동체의 경제학!’을 통하여 (기존의) 경제학은 없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그에 의하면 현재의 경제적 위기는 지난 시기 공업화에서 벗어나는 탈공업화 과정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과다하게 금융산업에 의존하게 되었고 위에 언급한 달러 중심의 통화시스템과 금융산업이 미국의 패권과 결합하고 세계화를 통하여 전지구적 불균형과 극심한 소득불평등이 확대를 거듭하면서 양극화의 위기 상황을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적나라한 현실이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최교수는 인터넷 망과 ICT 기술의 기반을 전제하는 미래적 사회에서는 탈물질적인 무형재를 중심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이러한 무형재적 미래의 산업에는 혁신적 창의성과 자율성이 가치창출의 핵심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기존 경제와 산업의 영역에서 지배적 형태였던 소모적이고 경쟁적이고 배제적인 방식에서 탈피하고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협력과 공유라는 새로운 방식과 논리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혁신 역시 협력과 공동작업을 통해서만 실현가능하고 가치창출방식과 사업모델에도 다다익선의 가치체증의 법칙이 작동하면서 이타자리(利他自利)형 경제 모델과 법칙이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 역시 타인과 경쟁적인 지식축적의 암기형에서 협력을 기반으로 더불어 함께 과제를 인식하고 문제의 해결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며, 금융도 기축통화 중심과 중앙은행의 통제적 개입 방식에서 벗어나 블록체인과 플랫홈 공유를 통한 민주적이며 다원적인 시스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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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최배근 교수가 ‘공동체 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던지는 새로운 문제의식의 도전과 혁신적인 패러다임의 전망에 전적으로 지지하고 동의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항을 보완하여 지적하고자 한다. .

우선 인간이 유기적 육체를 지닌 존재라는 조건으로 인하여, 자연재에 노동을 가하여 의식주의 수요를 해결하는 절대적 기초재와 인터넷 기반과 ICT 기술에 기반으로 새로이 형성되는 무형재를 구별하여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기초재 중에서도 의복은 대충 해결된 상태이지만 식량은 여전히 국가단위에서는 안보적 차원의 주제이고 개별적인 시민에게도 일상적으로 중요한 주제이다. 주거의 문제는 특히 투기가 극성을 부리는 한국사회에서는 사회 안전망으로서 복지의 핵심적 내용을 차지하면서 공공의 개입과 역할이 반드시 요구되는 영역이다. 양보할 수 없는 의식주의 전반적 영역에서는 고전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배타적 경합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형재 일반 역시 성격에 따라 섬세한 재분류가 필요할 것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 및 제공의 효율을 드높이고 자유의 가능성을 제고하는 역할이 있는가 하면, 제한된 인생의 시간을 사이버 공간에서 허비하고 무의미하게 하는 낭비성 또는 중독성의 문제를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제는 시장에서 표현되는 단순히 수치로만 평가해서는 안되며 인간적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데 주어진 역할을 하여야만 한다.

따라서 최교수도 언급하였듯이 경제학 또는 시장의 개념을 단순히 과거형으로 고전적 해석과 영역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이에 더하여 새로이 전개되는 조건과 상황에 응동하고 변화를 추구하고 내용을 확장하여야 한다. 마치 물리학에서 뉴톤의 법칙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그리고 또 다시 양자론으로 변신을 시도하듯이, 폴라니가 언급하는 복합사회(정치, 산업, 사회, 문화, 기술 등이 상호작용하는)속에서 조건과 상황에 따라 과거의 이론을 포괄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접근해야 할 것으로 본다. 역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한 시장논리이고 누구를 향한 경제이론인가 라는 근본적 질문에 응답해야 하는 것이다.

인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과학과 기술이라면 이도 역시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강제를 통하여 개입하고 전향적인 방향으로 유도하여야 한다. 과학과 기술에 중립성은 없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인터넷 환경이라는 공유재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공유경제를 명확히 구분해야 하며 구글과 폐북 그리고 우버 등에서 경험하였듯이 설령 이들이 인류에게 보편적인 편이와 효율성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기술 특성상 어마어마한 운용의 과정과 성과를 개인과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것에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공유기반의 소유와 운용의 과정에 공공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며, 실현된 운용의 성과를 시민사회 또는 인류가 함께 향유할 때만이 명실공히 공유경제라는 용어를 비로소 부여할 수 있다. 지혜와 합의가 필요한 영역이다.

미래에 전개되는 산업사회에서는 로봇과 AI에 의해 대부분의 반복적인 육체노동뿐만 아니라 단순한 정신적인 판단과 관리업무도 대체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론 진행 과정에서 새로운 직업과 일자리가 생기겠지만 숫자나 내용에 있어서 소멸되는 기존의 직업군을 모두 보충하고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이 기존에 있었던 산업혁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속도를 조절하여 실업의 충격을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단기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기존의 산업과 체계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자연스레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적 행위이다.

근본적으로 기존적인 계약방식의 전일적인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일자리의 개념을 바꾸어 가야 한다. 많은 학자들은 자본제 이전에 있었던 자기실현적 자영 형태의 농업과 수공업이라는 오래된 과거에서 새로움을 찾고자 한다. 미래 사회에서는 시장과 기업의 요구사항 대부분이 사회적 역사적 노동의 축적된 형태인 과학기술로써 해결될 것이다. 기존의 방식과 다른 ‘새로운 일자리’라는 개념의 도입은 기존 복지체계의 재구성, 기본소득의 도입 그리고 조세체계의 대변화를 요구하는 매우 광범하고 중요한 주제이기에 추후에 다시 언급해 보기로 한다.

결론은 인간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복합적 공간으로서 시민사회가 만능적 시장의 일방적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동물들은 자연의 법칙에 지배를 받고 진화하면서 살아 남았지만, 인간은 언어와 대화라는 방식으로 인위적인 합의와 협력을 통하여 역사를 이루어 왔고, 대자적인 질문과 성찰을 통해 누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발전을 이루고 자유의 범위를 확대하여 왔다.

시장은 신이 만든 만능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들이 일구어낸 매우 소중한 인공적 성과물의 하나이며, 따라서 시장은 시민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효율적 수단과 관계적 방식으로 작동해야만 한다. 시장이라는 이름과 논리로써 오히려 인간의 삶을 왜곡시키고 구속하려고 한다면, 정치적 영역에서 혁명을 일으켜서 폭군을 몰아내었듯이, 시장이라는 포장의 뒤에 숨어 있는 탐욕을 제거하고 기득권 체계를 전복시켜서라도 시장으로 하여금 시민사회에 풍요로운 삶의 조건을 제공하고 봉사하는 충복으로 역할을 다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시장은 인간사회에 봉사하는 유능하고 유용한 도구이어야 한다. 이것이 경세제민經世濟民이요, 제민지산制民之産의 요체이다.  2019-01-21.

목, 2019/01/2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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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벽의 바람

이병한 선생님, 두 번째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먼저 편지를 쓰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는 말을 듣고서 저도 덩달아 기뻤습니다. 뭔가 답답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요. 마침 엊그제 원불교대학원대학교의 김경일 총장님도 페이스북에서 비슷한 표현을 쓰셨더군요. “서구 근대문명이 들어올 때 위정척사나 개화파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동학류의 개벽에 대한 자리매김이 늘 고민이었는데 (『한국 근대의 탄생』을 읽으니) 이것을 풀어낼 단서를 찾아주신 것 같아 저도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아마도 전통(척사파)과 현대(개화파)라는 양분법으로 단절된 한국사상사에서 ‘근대’(개벽파)라는 연결고리를 찾으셔서 이런 표현을 쓰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뭔가 막혀있는 지금의 상황을 뚫을 수 있는 사상적 실마리는 역시 ‘개벽’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성환 사진2 유상용선생님과
유상용 선생님과~

실제로 요즘 제 주위를 보면 여기저기에서 개벽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한국 근대의 탄생』을 읽으셨다는 유상용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30년 동안 국내외에서 공동체운동을 하다가 개벽으로 돌아오신 분인데, 그 귀환의 심정을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고 계십니다: “나는 92년 이래로 정신과 물질이 고루 발달한 풍요로운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야마기시즘’을 현실사회에 실현하기 위한 실천과 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된 나의 ‘뿌리찾기’의 과정에서 시작된 탐구와 실천의 한 과정일 뿐이지 전부는 아니다. 뿌리찾기 과정에서 도착한 곳은 조선 정신의 용출인 개벽사상이었고, 그것을 사회화하기 위해 시도했던 것이 원불교사상을 기반한 새로운 사회 만들기였다. … 작년 말에 나는 다시 돌아왔다, <개벽>으로 -. 한국의 상황에서, 지금 여기로, 뿌리에서 올라오는 울림으로, 나의 느낌으로…”

이렇게 ‘다시 한국’으로 귀환하신 분과 원광대학교에서 6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30년 동안의 체험과 실천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으로부터 개벽학과 관련해서 많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령 동학은 일종의 한국인의 사상적 뿌리찾기로 해석할 수 있고,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개벽적 주체의 정립이며, 한살림은 생산성 중심의 과학농업에서 철학에 기반한 인문농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한 운동이다 등등… 유상용 선생님도 며칠 뒤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리셨더군요.

“요즘 동학‧증산‧원불교 관련 글들을 읽으며 그 때 선조들의 바람은 무엇이었는지, 시대적 과제와 자각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많이 읽고 떠올려 보았다. 특히 최제우 선생은 조선과 동양의 몰락을 감지하고, 유학이 당면한 과제를 알고, 기독교-서학의 내용이 의미있다는 것을 이해한 후에, 유학이 현상의 관찰에 머물러 초월을 몰랐고, 서학이 초월을 인간 밖에 두어 외화되었다고 판단하고서, 스스로 기도를 통한 초월적 체험을 시도하여 새로운 길을 열고, 양쪽의 모순을 극복한 ‘내안의 하느님을 모시는’ 시천주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전에도 비슷하게 생각했었지만, 조선 문명의 절실한 과제의 해결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이해하니 더욱 선생과 선조들의 마음이 가깝게 느껴진다.”

탁월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초월의 문제와 관련해서 동학의 입장에서 유학과 서학의 한계를 지적한 부분은 왜 개벽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사상사적으로 정확히 짚어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의 도움을 받으면 이 시대에 필요한 개벽학을 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유상용 선생님의 소개로 마침 익산에 오신 이남곡 선생님도 함께 만나뵐 수 있었습니다. 30년 전에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감옥에서 나온 뒤에 어느 사찰에 들어가서 「혁명에서 개벽으로」라는 글을 쓰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벽’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냐고 여쭤봤더니 “밝음을 창출하는 에너지”라는 한마디로 명료하게 정의해 주셨습니다. 어둠과의 싸움이나 정치적 투쟁이 아니라 “자기 안의 밝음을 신장시키려는 노력”이라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한국의 전통적인 ‘신명사상’과 장일순 선생의 ‘보듬는 혁명론’이 떠올랐습니다. ‘신명’이 바로 ‘밝음의 에너지’이고, ‘신명난다’는 말은 “밝은 기운이 나온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투쟁이나 저항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시키는 길은 밝음의 에너지로 상대를 보듬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남곡 선생님이 작년에 『논어: 삶에서 실천하는 고전의 지혜』의 개정판을 내셨다고 하는데, 이런 마인드로 『논어』를 독해하셨다면 저로서는 일종의 『개벽논어』와 같은 느낌이 듭니다.

 

2. 창조성과 도덕성

선생님의 편지에서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정신을 개벽하여 물질을 개벽하자!”는 역발상입니다. 저는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정신개벽은 ‘서구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최제우가 ‘중국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를 ‘다시 개벽’이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종래의 성학(聖學)을 술(述)하지 않고 동학(東學)을 작(作)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한국 근대의 시작으로 보았습니다. 적어도 사상사적으로는 이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중심주의나 민족주의로 나가자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 모든 ‘중심주의’로부터의 탈피가 정신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지요. 천도교나 원불교 경전에서 마음/정신의 최고 상태를 ‘자유심’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로운 마음/정신 상태가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새로운 생각, 새로운 학문, 새로운 동학을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다고 봅니다. 뭔가에 얽매여 있는 상태에서는 새로움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움’이 바로 이남곡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밝음’이나 한국사상에서 말하는 ‘신명’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유레카’와도 상통하고요. 아울러 이렇게 정신이 개벽되면, 즉 정신이 자유로워지만 창조적인 주체가 될 수 있고, 이렇게 창조성이 발현될 수 있을 때 새로운 물질개벽의 차원이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것이 ‘창조경제’이고, 인문디자인의 관점에서 본 정신개벽과 물질개벽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해석입니다.

조성환 사진2 새교포럼 박맹수 강연1
세교포럼 박맹수 강연(왼)

물론 정신개벽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자각하여 구세하자”는 자각정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난주에 창비빌딩에서 있었던 세교포럼에서 원광대학교 박맹수 총장님이 “문명전환기에 다시 보는 한국근현대사상”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셨는데, 이에 대해 세교연구소 고문이신 백낙청 교수님께서 이중과제론적 입장에서 코멘트를 하셨습니다. 원불교에서 말하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슬로건의 의의는 이 시대를 물질개벽, 즉 자본주의의 시대로 설정하고 그것에 대한 정신적 대응으로써 정신개벽을 주장했다는 데에 있고, 그래서 원불교에는 근대적응(물질개벽)과 근대극복(정신개벽)이라는 이중과제가 다 들어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 한마디에 그동안 말로만 듣던 백낙청교수님의 이중과제론의 내용이 명료하게 들어왔습니다. 아울러 원불교의 개벽론이 지니는 현대적인 의미도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물질개벽=자본주의”보다는 “물질개벽=과학혁명”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과학혁명과 자본주의가 현실적으로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강같습니다.

저는 이런 의미의 정신개벽을 나타내는 말이 개벽파가 주장한 ‘도덕’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월 최시형이 말하는 ‘도덕문명’(『해월신사법설』「기타」)이나, 소태산 박중빈이 말하는 물질문명과 대비되는 ‘도덕문명’(『대종경』 「교의품」 32장)이 그러한 예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정신개벽이라는 말에서 도덕성과 창조성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읽어내고 싶습니다. 도덕성이 원 문맥에 충실한 개념이고, 선생님이나 백낙청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자본주의라는 근대를 극복하는 정신적 태도나 삶의 자세라고 한다면, 창조성은 정신개벽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신을 개벽해서 물질을 개벽하자”는 선생님의 역발상에서의 정신개벽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성환 사진2 새교포럼 박맹수 강연2

 

3. 한국학과 신동학

마지막 부분에서 “동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신동학을 하자!”는 선생님의 제언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제가 ‘개벽사’라는 사상사 서술에 집착하는 이유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실천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이 실천이나 현장을 우선시하는 분들과 저 같은 연구자와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학의 틀을 바꾸고 싶습니다. 척사와 개화, 유학과 서학에 치우친 한국학에서 ‘척사-개화-개벽’이 천지인(天地人) 삼재처럼 균형이 잡힌, ‘유학-서학-동학’이 삼발이처럼 정립된, 그런 한국학을 그리고 싶습니다. 유학이 동아시아라는 전통적 배경이고, 서학이 세계라는 현대적 환경이라고 한다면, 동학은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재적 풍토입니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 소외되고 무시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현재적 풍토는 잊혀지고 무시된 감이 있습니다. 그것이 개벽이라는 근대였습니다. 이 폄하되고 경시된 한국적 근대에 대한 기억을 복원시키는 일이야말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균형잡힌 한국학이 정립되지 않으면 실천도 방향을 상실하리라 생각합니다. 개벽의 근대를 제외한 유학 중심의 ‘전통과 현대’라는 틀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동학을 연구하는” 것도 일종의 “동학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한국 근대의 탄생』의 출간을 인연으로, 한평생 실천현장에 몸담고 계셨던 실천가들을 만나 뵙고, 아울러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자극을 받고서, 저도 비로소 실천에 대한 필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도 새로운 ‘자각’이 생겨난 셈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25년이 문헌연구-사상연구에 치중했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25년은 실천현장에 계셨던 분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새로운 ‘학’의 정립과 실천에도 힘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4. 언어의 한계

마지막으로 맨 처음에 제기해 주신 ‘일본의 개벽’이니 ‘토착적 근대’에 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이번 답장을 마치고자 합니다. 당연히 지적하신대로 일본의 개벽파를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에는 개벽파라고 할만한 운동은 희미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도 동의하시는 바입니다. 다만 우리와 같은 개벽의 흔적이 있는지를 찾고 싶었고, 그것이 안도 쇼에키와 같은 사상가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코 한국 개벽의 원형이나 시작이 일본에 있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동학=개벽’의 가장 큰 사상사적 의의는 중국적 성인질서로부터의 탈피인데, 이런 주장을 안도 쇼에키가 이미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안도 쇼에키는 사회운동의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이것이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였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점이 제가 ‘근대=자본주의’와 등치시킬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세계’의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한국’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입니다(물론 한국은 세계 안에 있지만요-.). 그래서 근대의 기준이나 내용을 규정할 때에도 저로서는 중국(유학)과의 관계가 중요해지고요. 마치 서양 근대가 중세(신학)와의 관계 속에서 나왔듯이 말입니다. 단지 관점이 달라서 표현이 달라질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개벽’이라는 표현은 ‘한국의 근대’라는 표현과 유사하게 생각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즉 modern의 번역어로서의 ‘근대’라는 말을 한국의 ‘개벽’을 설명하기 위해서 차용해서, 그 상대적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서 ‘영성적 근대’니 ‘자생적 근대’라는 말을 썼듯이,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의 ‘개벽’과 유사한 현상을, 즉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이라는 현상을 일본사상사에서 찾아서 적용해 본 용어입니다. 그래서 서양의 근대와 한국의 근대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할 수 없듯이, 한국의 개벽과 일본의 개벽도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토착적 근대’니 ‘비서구적 근대’니 하는 용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시기에 굳이 ‘토착’이니 ‘비서구’니 하는 용어를 쓸 필요가 있느냐는 문제제기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적인 용어에 불과합니다. 서구중심주의를 상대화시키기 위해서요. 가령 김치가 한국의 토착음식이라고 할 때, 김치의 재료나 요소가 한국에만 국한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해외에도 김치가 보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치가 한국만의 음식이라는 뜻도 아니고요. 다만 김치라는 음식이 나온 고장이 한국이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존재론적으로는 모든 게 연결되어 있지만요. 토착적 근대니 비서구적 근대라는 말도 이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보편이니 지구화니 글로벌이라는 말에 의해서 놓칠 수 있는 한국이라는 로컬이나 지역이나 특수성이었습니다. 이것은 제 전공이 한국사상사이기 때문에 강조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랜만에 개벽에 대해 쓰고 나니 가슴이 후련해졌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개벽에 대해 호응해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힘이 납니다. 선생님을 비롯하여 여러분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금, 2019/01/25-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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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원도 화실로 들어오는 길에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1년 중 시월이 맘 때면 꼭 가서 만나고 싶은 나무다. 천 년을 살아온 이 은행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이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나는 이 나무 앞에 서서 두 손 모아 묵시로 노래 했다.

 

천년 나무 앞에서.

오전 내내 내린 비에도 안 떨어지네.

노랑 은행잎은 비바람에 지지도 않고

자기 때를 맞추어 지게 하려나 보다.

천년이 가도 의연한 은행나무여.

귀귀형용한 가지들마다 세월 비바람 사연들 다

받아 새기며 하늘 향해 두 팔 벌리니

나는 마침내 시월 상달에 대지신의 빛을 보았다.

노란빛으로 맞이하는 천신의례를 하노라.

여기 강원도 초입 문막의 신목은 따로 없구나.

반계리 천년 은행나무가 우주목이고 당산목 일세.

두 손 저절로 모아 모시나니

천년을 더 사시며 이 땅을 빛내소서.

자랑스런 새나라 새 땅 새사람 중원에서 빛나소서

칼럼_181102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 수령 1000년은 족히 되었다. 매년 10월 중순이면 잎이 노랗게 물들어 더욱 장관을 이룬다. 나무 높이 40미터, 둘레가 열명의 사람들이 팔을 벌려서야 겨우 잡힌다.

 천 년이 지나도 싱싱한 나무로 살아있는 반계리 은행나무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것이 천 년을 넘게 살면 경이롭게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천 년을 내려온 사실에 대해선 눈길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당장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시대에 살기 때문인가 보다. 하지만 우리겨레는 천년을 넘게 이어온 문화가 많다.  장맛 발효음식, 온돌, 옹기, 금관, 굿, 풍물, 탈춤, 상두소리, 국악, 고구려 붓그림, 민화, 단오굿, 마을신화, 농요….. .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나열은 그만하고 천년의 무형문화가 우리 겨레의 뿌리문화가 되어 오늘의 현대 한국대중문화까지 영향을 주는 사실만은 확인하고 싶다. 우리겨레의 뿌리문화를 한마디로 특징을 말할 순 없지만 대체로 영성이 깊고, 신명이 나고, 한의 정서가 깃들고, 정이 많은 모성적 문화란 점은 그 동안 한국학에서 누누이 밝혀온 것들이다. 이런 문화를 한국의 심층문화라고 부른다. 전통문화는 시련의 역사 속에서 이렇게 ‘풍진 속 초탈’로 다져져 왔다.

 

이 심층문화는 아직도 충분히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제도로 정착되지도 않고 헝클어진 채로 있다. 최근에 와서 민족문화 중흥이라는 헌법정신 차원에서 일부가 우대 보존되는 것 같지만 편의적인 발상으로 선별된다. 만일 정상적인 문화강국의 정책이 일관성 있게 펼쳐진다면 한국문화의 세계화니 한류니 민족문화 수립이니 하는 것들에 장기적 계획과 비젼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심층문화는 홀대 당하여 비주류문화로 갇혀 있다. 그나마 심층문화를 창조력으로 끌어 올리는 민간인들 덕분에 한류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 한 복판에 예술인들과 전통장인들이 있다. 오늘은 한류의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BTS(방탄 소년단)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BTS는 한류문화의 세계진출 사례 중 가장 성공적인 경우로 꼽힌다. 유튜브 하루 조회수만도 4500만명이라는 신기록을 만들었고 미국 빌보드 챠트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그들의 공연을 보러 수천명의 미국민들(주로 소녀들)이 며칠씩 탠트를 치고 4회 연속 8만명을 관람을 기록하며 트유터 팔로워 16000, 유투브 조회수18000를 기록할 정도다. 그 의 노래는 이제 유럽 거리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되었다. 이건 일본 중국 노래가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 사회에서 이제는 서구유럽의 주류음악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틀즈의 팝음악이 서구유럽의 음악문화를 바꾼 것과 맘먹는 성공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비 영미권 음악이, 가사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노래로 서방 주류 음악방송을 타지 않고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인가? 그 이유를 찬찬히 찾아보자.

 

  1. BTS는 주류 언론과 방송 루트를 타지 못했다. 한국3대 메이저 음반회사에 끼어야 겨우 세계로 진출하는 구조인데 돈도 없는 방탄소년단은 유튜브를 활용했다.
  2. 유튜브에 팬덤을 형성하였다. 이는 열성팬들 인데 주로 세계 곳곳의 소녀들이다. 유튜브 조회 하루 사이에 4500만명을 조사해 보니 세계 곳곳에 골고루 널리 퍼져 있다. 주류 방송 체널을 무시하고 SNS로 일대일 소통을 하는 미디어로 꾸준히 영향을 넓혀 마침내 세계적인 주류음악을 창조했다.
  3. 음악적으로는 사우스 아프리칸 비트 음악 위로, 국악 장단과 탈춤과 추임새가 곁들고 트랩 구룹의 랩을 최신 유행의 EDM 리듬 소스가 받쳐준다. 아프리카 댄스 구아라구아라와 한국 춤이 섞이고 사바나와 북청사자놀이 이미지, 서브 컬쳐 그래픽 효과와 유라시아 건축과 한국건축양식이 섞여 백 이미지로 작동한다.- 방탄소년단 앨범 소개 글에서.
  4. 이 열성팬은 아미(ARMY)라고 명명하고 방탄소년단 측이 직접 소통하고 관리하며 관심을 저버리지 않는다. 댓 글로 반응 해주고 콘서트장에 초대장도 보내주고 생일 축하해 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직접 팬들과 소통을 한다.
  5. 아미들은 스스로 고립을 벗어나 스스로 동아리들을 구성하고 끼리끼리 이벤트를 만들어 BTS의 메시지를 공유하고 음악 행동에 참여하고 사회적 행동도 취한다. 이제는 세계시민들에게 위로와 치유의 영상음악이 되었다.
  6. BTS는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가 춤과 영상과 어울려서 종합예술을 만든다. BTS 뒤에는 스텝의 협업이 돋보인다. 작사 작곡 영상제작 안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는 데 가사가 특히 십대 소녀 소년들의 갈망에 부응한다. 영상은 환상적이며 칼춤이라고 할 정도로 집단적 카르스마와 리비도로 넘쳐난다.
  7. 서구인들의 반응들을 보자. BTS영상을 보면서 “걸리쉬하다, 뱀파이어다, 이런 집단무용은 처음 본다, 하나의 잘 짜여진 축제 같다, 축제기념 송 부르는 거 같다. 여러가지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 전자목소리와 진짜목소리가 혼재해, 라이브로 보고 싶다, 흰 호랑이와 불과 물과 폭풍과 모래 등 신화적 상징들을 영상에 잘 사용 한다, 나를 슬프게 하는 뭐가 있다”  갇힌 공간 속에서 웅크림과 거절의 몸부림, 절망을 넘어 해방의 몸짓들이 춤이 되고 이미지로 흐른다. 물론 랩과 힙합과 아프리카 토속춤과 탈춤이 혼재되어 있다. BTS의 미학은 동서고금의 축제미학이 화려하게 섞여 있으나 자기들이 주장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한 축제로 젊은이들의 해방을 노래한다.             
  8. BTS는 “저는 여러분의 희망이고 여러분은 저의 희망입니다.” 팬들과 늘 일체감을 강조한다. 세계의 젊은 소녀들의 현실과 미래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파고 든다. 젊은이들은 BTS를 보고 ‘나를 슬프게 하는 뭐가 있어서’ 그들 스스로 뭔가를 찾게 한다. 그것은 기성사회와 다른 심리적 전선을 치게 한다. 억압으로부터의 초월, 억압의 초월이다. 전자는 역사적 혁명이고 후자는 예술적 해방감이다. 미래에 ‘역사적 혁명’으로 진화 할지는 미지수 지만 ‘촛불혁명’이 필경 배경일 것이다.
  9. 동아시아3국의 다른 나라 청년들과 다르게 자유와 해방의 몸짓이 격렬하며 어딘지 슬픔과 격조(유럽 청년의 표현에 의하면 매너)가 느껴진다. 서구유럽 청년들이 유독 동양 삼국 중에서 한국의 아이돌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1세기 불확실성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미래가 막막한 세계의 청년들에게 세계의 정치 경제 체제는 아무런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사랑도 불안하고 더군다나 청년이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지 매우 불안한 시대이다. 한국 사회만 삼포세대니 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의 불안한 미래는 세계사적 현상일 것이다. 여기에 젊은 예술가들이 빛을 밝힌 것이다. 세계청년들에게 심리적 위로가 되는 가사와 희망의 노래와 초월적 이미지로 K-pop의 새 경지를 보여준다. 프랑스 미국 라이브 공연에서 아미들이 보여준 공연이 끝나고 마지막 보여준 모습은 눈물이었다. 이 눈물의 의미는 후회와 성찰의 눈물로 보인다.

 주류사회에 방해 받지 않는, 무한대로 열려있는 SNS를 수단으로 해서 세계의 젊은이와 직접 소통에 성공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시대적 특수성이 국가 경계를 너머 젊은 상상력으로 모이고 예술로 형상하여 가상적 현실을 이룬다. BTS의 가상현실- 유비코터스는 젊은이들의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청년들 스스로 만들어온 유비코터스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20년전 ‘붉은 악마’ 현상은 국가주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였으나, 이제는 발달된 SNS로 국경을 너머 세계의 젊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젊은 슬픔’을 극복하려는 힘이 결집하고 있다. 국가와 기성사회의 체제와 이념으로도 못 말리는 젊은이들의 신세계를 찾는 신성한 힘이 느껴진다. 방탄소년단과 아미는 현대신화를 창조하고 있었다.

 

 신화학을 집대성한 신화학의 거장 조셉 켐밸은 무수한 저서를 남겼다. 하루는 제자가 “선생님, 선생님은 신화 이야기를 책으로 많이 쓰셨는데, 신화란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인가요?” 라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신화는 신성한 힘입니다.”

 

 이 답변을 주목한다. 신화학은 20세기 인문학을 다시 종합 정리하는 21세기 인문학으로 포스트인문학이다. 20세기 인문학이 주제별로 쪼개고 쪼개서 분할 시키고 나니 인간, 자연, 우주의 유기체적 관계를 망실한 인간 중심적 학문이 되었다. 그것도 엘리트들의 아카데미즘으로 박사들만 양산시키며 세상을 하나로 보는 관점을 잃은 이기적 인간중심주의를 만연시켰다. 모든 인문학을 융합한 신화학에 와서 이 이기적 인간중심주의가 깨지기 시작한다. 선사시대 신화를 독해해봐도 그렇고 오늘날에 와서도 신화는 살아 있다. ‘신화는 신성한 힘이다’라고 한 것은 신화가 단지 과거 옛 이야기만 아니고 지금 내 안에도 있는 이야기다. 신성한 이야기라 할 적에 이것은 문학적 표현이지만 신화, 의례, 예술, 행위로 들어나는 신성한 힘을 다 뜻한다.

 

조셉 켐밸은 이어서 말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행위야말로 신화다.” 오늘의 과학과 인문학으로 풀리지 않는 신성한 힘의 기적 같은 일은 얼마든지 우리 주변과 나에게도 있다. 그렇다면 종교가 말하는 기적과 영성은 무엇인가. 물론 이것들은 고대 신화시대부터 진화하며 각 지역의 큰 종교로 변화하며 오늘에 이른다. 그러나 종교가 신성한 힘을 독점하면 할수록 그 ‘신성한 힘’을 잃고 말 것이다. 자연과 인류의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신화적 현상을 종교가 철기시대 빅갓(Big God)시대를 지나면서 지배적 독점을 한 결과 배타적 도그마 현상을 갖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 한 짝을 이루어 제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종교적 도그마는 해체되지 않는다. 아마 국가주의와 운명을 같이 할 때까지 ‘그들만의 종교’가 된다. 그래서 신화학적 관점으로 보면 오늘의 문화를 네 가지로 분류한다. 그들만의 신화를 갖고 사는 사람, 신화를 버린 유물주의자, 신화를 잊고 사는 세속주의자, 다시 신화를 갖는 자. 즉 재신화적 인간으로 분류한다. 그렇다. 재신화적 인간형은 배타적이고 유일신화적 종교적 도그마를 벗어나 내 안에 신성도 살리고 우주적 신성도 모시는 문화다원주의에서 산다. 세계시민을 지향하는 탈국가주의적 평화시민의 문화다. 인류가 창조한 ‘유일한 믿음의 신은 없다, 자기들이 믿고 의지하는 다양한 신화(원형문화)가 있을 뿐이다. 인류는 다양한 신화를 창조했듯이 저마다 스스로 신화를 창조한다.

 

 미래의 인간형은 세계의 젊은이들이 BTS의 노래를 따라 부르듯이 “Love Yourself, Love Myself”에 기초하는 인간형 사회일 것이다. 20세기 산업사회에 개개인을 도구로 사용했다. 그런 인간형을 기르기 위해 경쟁력 교육을 시켰다. 자기 스스로 행복을 노래해도 모자랄 판에 자학과 열등의식에 젖게 하는 성적순위 교육, 산업 일꾼 교육, 애국교육이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긍정하며 오직 나에게서 만이 희망이 있다. 희망은 나에게서 발견하고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 거기서 신화를 창조한다. 신화창조는 자기를 긍정하고 사랑하는 자기 원형 에너지로부터 만들어진다. 신성한 힘을 벗겨버리고 거대한 신의 한낱 피조물이고 국가와 사회의 모범이 되는 시민이 되는 것을 젊은이들은 거부하기 시작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BTS가 국가를 너머 서구사회까지 진출해서 당당히 세계주류가 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세계 젊음의 반란은 과거처럼 이데올로기에 맹종하는 혁명의 전사가 아니라 ‘문화 아미’가 되어가는 것이고 자기들의 신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칼럼_181102(1)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서울공원에서 열린 강명구 유라시아평화마라톤 환영문화제, 2018년 4월17일 유라시아의 절반을 달려온 강명구 마라토너를 환영하는 소년소녀들이 김봉준 작가와 타슈켄트 시민이 제작한 평화그림 깃발을 들고 환영하고 있다. 이곳 중앙아시아도 K-pop과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청년들이 많다.

그렇다면 “종교가 한계를 들어 낸 오늘날 신화를 주력은 누구입니까?” 라는 물음에 조셉 켐밸은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예술가입니다.”

 왜 그런지는 이 글에서 상세히 말하지 않으리라.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예술가란 무엇인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만 언급한다면 20세기가 이기적 인간중심주의 인본주의 시대였다면21세기는 포스트모던이즘의 다원주의시대로 간다. 감성과 영성이 리드하는 시대가 분명하다. 나의 행복은 내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된 다는 시민적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에 다원주의다. 세계의 젊은이들 중심으로 반란은 시작되었다. 그 젊은 마음들 속에 BTS가 잠시 꽂힌 것뿐이다. 이 거대한 세계청년의 문화반란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며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을 사냥하면서 유비코터스를 형성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딘가 현실공간에서 청년의 창조도시라도 만들 것인가.

 20세기 기성사회가 스스로 개혁하는 힘은 상실한 것 같다. ‘거짓 사랑’에 염증을 느낀 21세기 소년소녀들이 문화반란으로 꿈꾸는 ‘행복한 세상’을 목도하는 세상까지 왔다. 그러나 이런 가상현실적 현상은 당분간 계속 될 것이다. 촛불혁명도 다르지 않다. 시민이 꿈꾸고 이루려는 유비코터스 같은 현장을 한겨울 맛본 것이고 도로 20세기 국가주의 제도 속으로 들어가며 적폐청산을 하는 둥 마는 둥하며 ‘역사는 점진적 개혁’이라고 변명할 것이다. 이렇게 휩쓸고 한 세대를 걸친 문화전쟁을 세계는 열풍처럼 볼 것이다. 나는 기성세대에 별로 희망이 없다고 본다. 그렇게 되어 먹으며 살라왔고, 거기다 집을 짓고 시스템을 만들어 살아왔다. 청년의 반란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신화를 잃어 버렸다. 자기를 창조한 신성한 힘을 버린 채 굳어졌다.

젊음만이 희망이다. 그러나 무조건 젊음만이 희망은 아니다. 저 천년의 은행나무 앞에서 비손으로 빌었다. 젊음이 보이지 않는 오랜 미래를 볼 적에, 예술에 그치지 않고 가상공간을 너머 현실공간에 초월적 상상이 창조도시로 뿌리를 내릴 적에 천년의 나무처럼 인류 미래의 희망의 싹이 나기를 빌었다. BTS 는 보여주고 있는 세계 청년문화는 집단무의식이 의식화하는 영성이 깊고, 일상을 축제화하는 신명이 나고, 한의 정서가 깃들어 있지만 슬픔을 이기고 나가는 매너 있는 젊음이 있고, 자유와 평화를 몸짓으로 외치며, 정이 많은 모성문화란 점들은 분명히 보인다. 신세계 청년문화의 비젼이 보인다.  BTS는 시련의 역사 속에서 ‘풍진 속 초탈’한 세계인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금, 2018/11/0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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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영웅 너마저 ‘미투’를 외치고 있다. 그녀가 올림픽 스타이기 때문에 더 놀라는 것이 싫지만 스타마저도 당한다면 나머지는 오죽하랴라는 생각을 끌어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용기가 더 값지게 다가온다. 그녀가 스타의 신화와 눈부심으로 가려진 장막을 젖히고 민낯을 보여준 용기에 더 부끄럽다. 무대 전면만 보고 환호해 온 어른으로서 하루 이틀도 아닌 장기간의 ‘폭력’을 방치해 왔다는 공범 같은 느낌이 든다.

‘미투’와 ‘갑질’의 사례가 봇물 터지듯이 등장한다. ‘미투’를 외치는 비명은 ‘갑질’을 폭로하는 저항의 용기와 일맥상통한다. 한 끗발만 더 유리한 고지에 있어도 상대에게 무제한의 권력을 휘두르는 ‘갑질’은 ‘신분에서 계약’으로 이행했다는 근대사회의 논리가 허구인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왜 ‘미투’와 ‘갑질’을 함께 다루는 지 의아할지 모른다. ‘미투’의 문제를 성 대결의 특수성으로 잘 못 보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갑질’과 함께 다룬다. 그것은 사회발전의 지체가 응어리지고 곪아터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건이 오랜 동안 잠복되어 왔던 사건들이다. 수면아래 잠자던 또는 ‘침묵의 카르텔’ 속에 봉인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들어 준 작은 영웅들을 지켜주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내 아이를 위한 보호막을 일류학교 졸업장과 ‘갑질’할 수 있는 지위 획득이라고 생각하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가르쳐 왔다. 모든 사회문제에 눈을 감고 질주하라고 부추겨 온 어른으로서 젊은이들이 도처에서 마주치는 ‘갑질’의 폭력을 눈을 감고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갑을’관계는 모든 거래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설사 특정 상황에서는 갑이라고 해도 언제든 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갑질은 누군가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며 ‘사회문제’이다. ‘미투’와 ‘갑질’의 문제가 소송으로 귀결되고 있지만 해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대’와 사회적 합의 그리고 공론의 구성이 필요하다. 법정에서의 사실의 다툼은 가치 판단을 해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더 많은 폭로와 ‘함께’를 외치는 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일단 확인 시켜주는 의미도 있고 무엇보다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사막을 혼자 걷는 것과 누구라도 함께 걷는 것을 비교해 보면 ‘함께’가 주는 위안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면 예견된 일이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유보해도 좋다는 사회적 묵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권위주의 정권을 용인해야 한다는 담론이 오랫동안 정설로 자리 잡았다. 담론이 공론은 아니다. 냉전 속에 ‘열전’을 치르면서 ‘사회’ 또는 사회적이라는 단어를 금기로 만들었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경제성장 중심의 담론은 정치발전의 과제를 미루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심지어 민주정권 통치 기간에도 정치 발전의 성패는 경제발전에 의해 재단되는 것을 수용하는 분위기다. 정치발전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양보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담론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정치발전의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 정치발전은 이익집단의 무한 경쟁, 정치적 대표성의 이름으로 다당제에 대한 예찬 등으로 이해되는 중이다. 민주화가 표현의 자유, 사유재산권의 신성불가침, 시장의 자유로 해석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정책 결정의 공공성 구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당 이름이 변화무쌍 하여 정당의 정체성과 당명을 일치 시키는 것도 어렵다. 당원자격이 주어지는 방식, 당원과 선출직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이런 차원에서 정당 투표를 강화하려는 주장이 정치적 올바름인 양 제시되고 있다.

정치발전이 장기적인 집합적 저항을 통해 틀을 갖추어가는 반면 사회 발전의 과제는 ‘ 전통의 미화라는 가면으로 위장 되어 수면에 드러나지도 않았다. 법인의 성격을 띠는 회사가 주인 노예의 관계의 관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학교에서는 근대적 가치를 가르치고 헌법에서도 기본인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사회관계는 봉건제 이전의 노예제적 성격을 지닌다. 이 불균형 속에 발랄한 21세기의 미래 세대가 갇혀 있다. 그들의 단말마적인 외침을 외면한다면 미래는 없다. 사회발전을 기초로 정치 발전과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는 서구 근대사와는 반대로 선 경제 발전 정치발전 그리고 장기간 유보된 사회발전이라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터진 아우성이 바로 ‘미투’와 ‘갑질’의 폭로로 드러나고 있다.

이 폭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하는 가운데 이 외침은 지속적이었고 그 울림은 새로운 규범을 지구촌 차원에서 만들어 낸지 오래다.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수요 집회가 이제 26년을 넘겼다. 한주도 거르지 않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어진 전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죄요구는 국경을 넘었고 지구촌의 규범을 만들어 내었다. 전시 성폭력 문제가 국제 형사 재판소에서 반인권적 전쟁 범죄로 규정된 것이 2000년이다. 2000년 10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결의안 1325를 채택하였다.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이 평화프로세스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지구촌은 21세기를 맞아하였다. 성폭력피해자가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지구촌의 침묵의 카르텔을 깬 것은 ‘살아남은’ 할머니 들이었다. 이 기간 동안 할머니들은 소녀가 되어 갔다. 할머니가 ‘소녀상’으로 바뀌면서 성폭력 피해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싫은 입장에서는 소녀상을 치울 수 있는 물건으로 보았고 소녀상을 세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기억해야할 역사였다. 어느 해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온 날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영하 수십 도의 날씨에 일본 대사관 앞에서 소녀상을 철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천막을 치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았다. 시대의 과제를 그 때 그 때 해결하지 못하고 미뤄온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 생생한 기억 속에 떨리는 듯한 미투의 외침이 겹쳐 들려온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 그리고 드라마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 100년의 반성의 끝자락에서 폭로된 ‘미투’와 갑질은 100년 동안 미뤄온 사회발전의 지체된 과제를 이행하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이 명령을 외면하고 4차 산업의 화려한 어휘로 도피한다면 정말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는 없다.

화, 2019/02/0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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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류세와 개벽세

옳거니! 무릎을 쳤습니다. 가히 “개벽에 담긴 사상적 획기성으로 말하면 ‘근대’라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턱없이 모자랄 뿐만 아니라 공연한 오해를 사고 시비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동네북으로 전락한 ‘근대’에 견주자면 ‘개벽’은 싱싱하고 생생하며 팔팔하고 푸르른 개념입니다. 번뜩번뜩한 영감을 제기하고 팔딱팔딱한 활력을 제공합니다. 고로 한국사상사가 “개벽 전과 개벽 후로 양분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부디 그렇게 정공법으로 밀고 나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서구에서 고안된 고대-중세-근대의 작위적 시대구분에 연연할 것 없이, 개벽을 전후하여 사상의 획기를 긋는 편이 한층 그 실상에도 부합한다고 봅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을 참조해도 좋겠습니다. ‘근대’는 슬쩍 지워버리고 ‘개벽’을 슬그머니 전면에 띄우는 편이 전략적으로도 이롭습니다. 게다가 “유학과 서학을 시야에 넣으면서 세계주의 지향”을 보인 “독자적인 경전”을 산출했음은 이미 동학의 창도가 한국사를 넘어선 세계사적 사건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동서문명의 회통과 신문명 창조라는 21세기의 과제가 이미 ‘다시 개벽’의 외침과 깨침에 내장되어 있던 것입니다. ‘근대’와 씨름하며 진을 빼기보다는 사뿐하고 산뜻하게 개벽으로 쾌속질주할 것을 권장합니다.

옳다구나! 맞장구를 쳤습니다. “주자학이 동아시아를 700년 이상 이끌어 갔듯이, 그에 상응할 만한 개벽학이 요청되는 시대”라는 발상에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민주화 다음 단계로 “개벽화”를 제시한 것 또한 탁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로소 촛불 이후의 희뿌연 안개가 걷히고 1987년 이후의 출로가 희미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산업화는 개화의 전반전이요, 민주화는 개화의 후반전일 따름이었습니다. 게임오버, 구시대의 막이 진즉에 내린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산업화 세력의 앵콜이요, 문재인 정권은 민주화 세대의 커튼콜이었습니다. 하기에 저로서는 개발파와 개혁파의 저 아웅다웅이 신물이 나도록 지겹습니다. 개화우파와 개화좌파의 ‘적대적 공존’이 진물이 날만큼 지긋지긋합니다. 서둘러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프레임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교토대학의 “인류는 우주사회를 만들 것인가” 심포지움 포스터

단 주자학은 비단 동아시아에서만 천년 가까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송학의 서천’, 성리학이 서아시아부터 서유럽까지 계몽주의의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파만파 유라시아와 아메리카의 근대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중국과 조선과 월남을 일컬어 ‘잃어버린 근대성들’이라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근대로 치자면 동아시아가 원조이고 서유럽이 후발주자였습니다. 서세동점에 앞서 동세서진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다만 19세기 동서간의 대역전, 대분기가 일어난 것은 어디까지나 물질개벽의 소산입니다. 이 시점부터 지상 위에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에 지하자원을 포함한 지질학의 역사가 포개지기 때문입니다. 동서를 망라하는 인류세의 개창이라 하겠습니다. 하야 개벽파 선언과 개벽학 수립은 인류세를 개벽세로 반전시키는 지구적인 대업이자 우주적인 과제가 됩니다. 동서양은 물론이요 동반구와 서반구의 만인과 만물이 천심과 일심으로 합작하지 아니하면 일을 그르칩니다.

지난 백년처럼 개화세가 지속되어서는 한 세기 후를 장담키도 어렵습니다. 개벽세가 만세를 누리기 위해서는 백년대계부터 곧추세워야 합니다. 근간은 역시 학문이고 교육입니다. ‘SKY 캐슬’ 입시 교육만 병폐이고 적폐인 것이 아닙니다. 공교육도 사교육도 개화학이 독점하고 있습니다. 학교도 학원도 개화학이 득세합니다. 그래서 근대의 캐슬 안에 갇히어 있는 것입니다. SKY 대학이라 해서 별반 다를 것도 없습니다. 커녕 그 대학들이야말로 개화학의 아성이고 보루라고 하겠습니다. “大學”다움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대학의 첫 구절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무색한 공간입니다. 수신도 하지 않고, 평천하도 연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학교와 학원 사이 ‘개벽학당’이라는 새 길을 내기로 작당한 까닭입니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학부터 태평천하의 노하우까지 전수받는 경세학까지 장착한 군자와 보살을 대거 양성해야 하겠습니다. ‘나라사람’ 국민(國民=개화우파)과 ‘도시사람’ 시민(市民=개화좌파)을 지나 ‘하늘사람’ 천민(天民=개벽파)으로, 자신을 구원하고 지구를 구제하는 개벽세의 주체들을 키워나갑시다. 그 정도는 되어야 2019년을 ‘개벽화’의 원년으로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개벽학의 권장>

불교대학과의 간담회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개벽대학’을 표방하는 ‘개벽총장’ 박맹수 선생님과 제가 속한 동북아연구소의 염승준 소장 등과 동행했습니다. 리츠메이칸과 도시샤 등 교토에 자리한 여러 대학 관계자들을 두루 만났습니다. 불교대학의 다나카 총장과는 구면입니다. 작년 여름 처음 뵙고 서로 호감을 품었습니다. ‘인도의 개벽파’ 타고르가 세운 국제대학 비슈바바라티에서 공부한 분입니다. 산스크리트어와 벵갈어에 능합니다. 유라시아의 북방과 남방에서 유장하게 펼쳐졌던 불교 네트워크에도 해밝습니다. 자연스레 저의 천일여행에도 깊은 관심을 표하셨습니다. 동아시아는 물론이요 남아시아와 북아시아도 익숙하시니 척하면 척, 말이 잘 통한 것입니다. ‘방랑자’(放浪者)의 일본어 발음이 ‘호로샤’이지요. 그 분은 저를 ‘호로샤’라고 부릅니다. 어느새 집에서도 별명이 되었습니다.

이번 만남의 화두는 단연 AI(인공지능)와 로봇이었습니다. 이미 인구감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로봇의 상용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에서 점점 인공(人工)이 인간(人間)을 대체해 갑니다. 시급하게 새로운 세계관과 인간관 및 가치관이 필요한 때라고 역설하셨습니다. 불교를 포함한 기성의 세계종교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를 숙고하고 계셨습니다. 저 또한 깊이 공감하는 주제입니다. 올해 제가 구입한 책 목록을 보노라면 자연과학 분야가 월등히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최근의 관심사도 아닙니다. 견문을 시작했던 첫 해, 2015년 여름부터 싹을 틔웠습니다. 선생님도 흥미롭게 읽으셨다는 두아라와의 인터뷰가 이루어진 곳이 8월의 싱가포르였습니다. “탈세속화와 재영성화”라는 화두를 얻은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 인터뷰를 마친 날 구글(Google)과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근무하고 있는 분들과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당시의 주된 화제가 바로 AI였습니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VR)이 펼쳐갈 미래에 대해 뜨거운 토론을 이어갔습니다. 문외한인 저로서는 긴가민가 솔깃하면서도 갸웃 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감하기까지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3월, 델리의 네루대학에 머물 무렵이었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연파하는 기사가 인도의 TV와 신문의 톱뉴스를 장식했습니다. 근대적 인간, ‘이성적 인간’의 근간이 허물어지는 세기적 사건이었습니다. 개화세의 티핑포인트요, 개벽세의 터닝포인트라 할 만합니다. 하기에 요즘 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전적 화두에 응답하기 위해서라도 철학이나 인문학 책을 읽기보다는 과학 책에서 훨씬 더 많은 영감을 얻는 편입니다.

그 변화의 최첨단에 서 있는 대학은 역시나 일본의 최고명문이자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인 교토대학이었습니다. 현 총장의 전공이 흥미롭습니다. ‘자연인류학’이더군요.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을 자연적 지평에서 지구적 수준에서 탐구합니다. ‘지구인간권과학’(地球人間圈科學)이라는 독특한 학술영역도 등장했습니다. 20세기의 신학자 테야르 드 샤르댕이 <인간현상>에서 직관적으로 설파했던 내용을 21세기에는 과학자들이 데이터와 테크놀로지로 연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빅뱅부터 그 빅뱅을 연구하는 ‘생각하는 생명’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지구사의 지평에서 인간을 탐구합니다. 신학과 과학이 아름답게 합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구적 인간’ 앞에서 ‘역사적 인간’은 가뭇없이 초라합니다. 제가 사회학에서 역사학으로 전향했던 이유가 200년 남짓한 ‘근대’라는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 사회과학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고작 일천년, 겨우 이천년의 역사학 자체도 안목이 짧고 시야가 좁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지구라는 혹성에 살아가는 생명의 역사로 간주하는 빅히스토리(Big History) 정도는 되어야 읽어볼 의욕이 솟습니다.

교토대학의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 심포지움 포스터

지구사의 시야에서 인간을 숙고하기에 현재의 민주주의 또한 형편없는 제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7년 만에 귀국해서 보니 혹자가 저를 ‘반(反)민주주의의 선지자’라고 비판하는 학술논문을 썼더군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반(半)민주주의자’이겠죠. 현재를 점유하고 있는 일국의 인간들만 대변하는 민주주의가 지구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의 ‘주권’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근대적인 정치제도가 인류의 대멸종을 앞당기고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조건과 운명을 생명적 차원에서 지질학적 역사에서 숙고하는 것이야말로 ‘정신개벽’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정신개벽’ 이후의 제도가 기성의 시장이나 국가에 안주할 수는 없다 하겠습니다. 시장과 국가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는 심층적 현실까지 가닿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심층적 현실은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체제나 이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의 지평을 넘어서는 그야말로 “개벽적 개안”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래서 저는 종종 “심층 민주주의”(Deep Democracy)라는 표현도 사용합니다. 그 심층 민주주의에서 ‘공공영역’은 인간과 인간 사이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물, 만물 사이의 공공영역을 창출해야 하는 것입니다. “포스트휴먼적 공공공간”이라고 세련되게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세계에는 이미 생물과 미생물과 무생물뿐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인공물까지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생물과 미생물과 무생물과 인공물까지 만물이 활물(活物)로 연결되는 울트라 하이퍼 네트워크 시대가 개막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공히 ‘행위자’로서 모시고 ‘주권자’로서 섬기는 새로운 민주주의가 절실하고 절박한 것입니다. 천도교 식으로 말하면 경물-경인-경천에 바탕하여 사물을 대의하는 의원과 인간을 대변하는 의원과 하늘을 대리하는 의원으로, 삼원제 민주주의가 필요한 셈입니다.

이처럼 만물의 공공영역을 창출하고 만물의 주권을 대의하는 민주주의를 일구어가는 배움이 “개벽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응당 일국학일 수도 없으며 인문학에 그쳐서도 아니 됩니다. 개벽학은 필히 지구학이자 미래학이어야 합니다. 원불교 식으로 말하자면 “과학과 도학이 병진”해야 합니다. 올 들어 익산에는 “개벽학 연구회”가 출범했습니다. 서울에서는 <개벽+>라는 신생 매체의 창간을 도모하는 준비위원회도 꾸려졌습니다. 저 또한 선생님과 함께 양쪽 모두에 한 발씩 걸치고는 있지만, 내심으로는 썩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아니 불만족스럽고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대개 철학자, 사학자, 신학자 등 인문학 전공자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는 ‘인문병신체’의 냉소를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합니다. 정신개벽은 물질개벽의 반대말이 아닐 것입니다. 물질개벽과 정신개벽은 상호진화해야 합니다. 물질개벽의 최첨단을 연구하는 분들과의 협업과 합작이 없다면 ‘개벽학’의 앞날 또한 그리 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3월부터 시작하는 개벽학당에서 <동경대전>과 <한살림선언>은 물론이요 인류세와 AI 관련 문헌까지 함께 읽으려고 작심한 까닭입니다. 기왕 원불교사상연구원이 ‘개벽학 연구회’를 발심했다면,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연구원 같은 곳과의 공동연구 등의 파격적 실험을 감행해 보면 좋겠습니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과 경물사상(敬物思想)을 함께 공부하고, 정신개벽(精神開闢)과 포스트휴먼(Post-Human)을 동시에 토론합시다. 개벽과 개화가 공진화해야만이 비로소 또 다시 개벽, 개벽 2.0도 완수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문명개화에서 신문명개벽으로

교토대학 오구라 기조 교수와 함께

선생님과도 연분이 깊은 오구라 기조 선생도 뵈었습니다. 촛불혁명 이후 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다시 개벽’의 흐름을 전달했습니다. 저는 일본에서도 그러한 움직임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기하여 일본의 새로운 방향 전환을 모색하는 사상과 세력이 없을까 쫑긋했습니다. 반응은 무척 회의적이고 부정적이더군요. 중국의 부상과 결부되어 미국 의존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으로 일본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대한 동경이 점차 짙어지는 모양입니다. 비유컨대 ‘다시 개화’의 향수병에 젖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금 일본이 재빨리 서세동점의 물결에 올라타 동아시아의 천하대란을 야기했던 지난 150년의 역사가 끝물에 이르렀음을 확인합니다. 실제로 제가 2-30대 때 즐겨 읽었던 <아사히신문>도 <세카이>도 언젠가 부터는 전혀 찾지를 않게 되었습니다. 후쿠자와 유기치의 <문명론의 개략>이나 <학문의 권장> 이래 문명개화 노선에서 그리 달라진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선창했던 학문이 바로 서학이요 개화학이었습니다. 개화학은 이제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공히 식상하고 진부합니다.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목하 21세기 동아시아의 변화를 추동하는 진원지는 한반도입니다. 천하대란을 태평천하로 반전시키는 이행의 허브 또한 우리가 터한 바로 이곳입니다. 지난 40년 중국의 개혁개방이 세계체제를 격변시켰다면, 앞으로 40년은 북조선의 개혁개방이 그 못지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 한반도의 북쪽과 동북3성과 동몽골과 동시베리아가 물질개벽의 최전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과 중국의 20세기형 ‘근대화’ 노선을 복제해서는 천만만만 아니될 것입니다. 한국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명개화에서 신문명개벽으로의 대반전을 우리가 앞장서야 합니다. 개화학에서 개벽학으로의 대전환을 우리부터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생명(生命)을 곧 혁명(革命)이자 천명(天命)으로 삼는 신문명을 창조하고 개창합시다.

21세기의 개벽학은 19세기 동학의 환생이자 부활일 것입니다. 19세기 서학의 독주에 동학은 좌초했습니다. 20세기 식민지의 궁여지책으로 동학은 신종교의 모습으로 변장했습니다. 천도교, 원불교, 대종교, 증산교 등 개벽종교의 형태로 식민기를 근근이 버텨낸 것입니다. 마침내 포스트-웨스트, 포스트-아메리카, 포스트-모던, 포스트-트루스, 포스트-휴먼 시대가 열리면서 동학의 가치가 만개할 수 있는 신시대, 뉴노멀의 국면에 진입했습니다. 19세기의 동학과 21세기의 개벽학을 잇는 연결고리에 자리한 사건이 바로 1919년의 3.1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학의 후생이 3.1혁명이요, 개벽학의 전생이 또 3.1혁명입니다. 하기에 말씀하신 것처럼 기미독립선언서는 결코 “개화파는 쓸 수 없는 문장”이었던 것입니다. 개벽사상의 특징과 특장이 기미년 만세운동의 구석구석마다 뚝뚝 묻어납니다. 진정 개벽의 눈으로 다시 읽어야 3.1운동의 진수를 맛볼 수 있고 진면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마침 저의 다음 서신이 3월 1일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한참 글을 쓰게 될 2월 25일부터 28일까지는 하노이에 있을 예정입니다. 곧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동학혁명 좌초 이래 ‘장기 20세기’가 저물어간다는 예감으로 저릿합니다. 마침내 ‘역사적 21세기’가 개막하는 듯한 실감으로 짜릿합니다. 새로운 역사, “다른 백년, 다시 개벽”도 이제부터입니다. 하노이에서 3.1혁명을 깊이 묵상하고 재음미하는 글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금, 2019/02/1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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