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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의 집터에 표석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삼청동(三淸洞)’ 집터의 실제 위치는 ‘팔판동(八判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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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의 집터에 표석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삼청동(三淸洞)’ 집터의 실제 위치는 ‘팔판동(八判洞)’

admin | 수, 2020/11/11- 02:43

[식민지 비망록 63]

단재 신채호 선생의 집터에 표석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삼청동(三淸洞)’ 집터의 실제 위치는 ‘팔판동(八判洞)’

이순우 책임연구원

 

<조선총독부관보> 1910년 11월 19일자에 수록된 ‘경무총감부 고시 제72호’에는 안녕질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발매금지 및 압수대상 처분이 이뤄진 출판물의 목록에 신채호 선생의 저술인 『을지문덕(乙支文德)』과 『이태리건국삼걸전(利太利建國三傑傳)』이 포함된 것이 눈에 띈다.

김가진, 김경천, 김옥균, 김창숙, 남궁억, 노백린, 민영환, 백용성, 손병희, 송진우, 심훈, 여운형, 이동녕, 이상재, 이준, 이회영 6형제, 지석영, 지청천, 현상윤 ……
.
여기에 나열한 명단은 현재 서울시에서 해당 인물의 생가(生家) 또는 집터에 표석을 설치한 19군데 사례들의 목록이다. 여기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 사장인 영국인 어네스트 베델(Ernest T. Bethell, 裵說)과 김수영, 박인환, 전영택, 현진건 등 문인(文人)들의 경우를 다 합치더라도이 숫자는 겨우 스물 몇 건 정도에 머문다.
우리 근현대사를 통틀어 그 집터를 기억하고 업적을 기릴만한 훌륭한 인물이 고작 이 정도뿐일까 마는 행적평가, 지명도, 형평성 등과 같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역사인물들에 대한 표석의 설치를 무작정 늘리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런데 설령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업적과 상당한 역사 문화적인 평가를 지닌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해 당 인물의 집터에 표석을 세울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 집터의 위치가 어디인지 도무지 확인을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 선생의 경우가 딱 그러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3월 28일에 열린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표석분과 회의에서 ‘신채호 집터’ 표석설치에 관한 청원이 심의안건으로 상정되었을 때 해당 표석 설치 자체에 대해서는 참석 위원 모두의 만장일치로 공감하는 바였으나 집터의 위치를 특정(特定)하는 문제가 뒷받침되지 못하여 결국 아쉽게도 설치보류결정이 내려진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신채호가 살았던 집터의 위치를 정확하게 가려내지 못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이에 관해서는 우선 변영만(卞榮晩, 1889~1954)이 남긴 「단재전(丹齋傳)」(1936)의 한 토막을 옮겨보기로 한다.

 

나는 일찍이 장원서다리(掌苑署橋) 서쪽에 있는 단생(丹生)의 집을 방문하였다. 뜰 가운데 커다랗게 던져진 물건이 있고 우유통 대여섯 개가 수채구더기에 버려져 있었는데, 우유 찌꺼기가 흘러나온 것이 차마 볼 수 없었다. 방안으로 들어가니 단생이 분이 아직 식지 않아 나를 쳐다보고도 못본 척하였다. 내가 괴이히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단생은 아직 치솟은 화가 등등하다가 이에 말을 끊었다 이으며 급한 듯이 다시 천천히 말하기를 “관일(貫日)의 어미가 젖이 나오지 않으니 천하에 이런 여자가 있단 말이오? 내가 약간의 우유병을 구하여 대신하라고 주었더니, 그녀가 그것을 제대로 먹일 줄을 알지 못하고, 관일은 병이 들어 죽으려고 하기에 내가 모두 뒤져다가 버리는 참이오!”라고 한다. 말을 마치고 뛰어 일어나 또 무슨 일을 저지를 듯하였다. 나는 그를 억지로 붙들어 자리에 앉히고 갖은 말로 위로하여 겨우 무사하게 되었다.(하략)

[이 글의 원문은 김종하 간행, <산강재문초(山康齋文鈔)> (1957)에 수록되어 있으며, 국역 부분은 <단재 신채호 전집> 제9권(2008), 339쪽의 것을 재인용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관일(貫日)은 신채호가 늦게 얻은 아들의 이름이며, 그가 사다준 ‘수리표 연유(Eagle Brand 煉乳)’를 잘못 먹인 탓에 체하여 끝내 숨지자 이 일로 첫 부인인 풍양조씨(豊壤趙氏)를 친정으로 돌아가게 했다는 얘기가 그 아래에 채록되어 있다. 위에서 적은 것처럼 이 일이 벌어진 집의 위치는 ‘장원서다리 서쪽’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장원서(掌苑署)는 조선시대 원유(苑囿), 화훼(花卉), 과물(果物) 등을 관장하는 곳이며, 옛 성삼문(成三問)의 집터(화동 23번지 및 24번지 일대)에 자리하였다. 여기에서 이름을 따온 장원서다리는 안국동네거리 쪽에서 화개동을 거쳐 팔판동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삼청동 초입에서 삼청동천(三淸洞川)을 마주하여 건너는 지점에 놓여 있었다.

 

위) <중외일보> 1929년 7월 13일자에 수록된 수해관련보도에 함께 수록된 ‘장원서다리’의 옛 모습이
다. 변영만이 남긴 「단재전(丹齋傳)」이라는 글에는 신채호의 집이 ‘장원서다리의 서쪽에 있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아래) 지금은 하천이 복개되어 옛 모습을 가늠하기 어려우나 ‘삼청파출소’ 바로 앞 자리가 옛 장원서다리가 있던 지점이다. 이곳은 팔판동, 소격동, 화동의 세 지역이 겹치는 경계지점이기도 하다.

 

지금은 하천이 모두 복개된 탓에 그 흔적을 쉽사리 확인하기 어렵지만 옛 지도를 활용하여 그 위치를 가늠해보면 팔판동(八判洞), 화동(花洞), 소격동(昭格洞)의 세 지역이 겹치는 경계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지금의 삼청파출소(三淸派出所) 바로 앞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 다리의 서쪽이라 하였으므로 신채호의 거처는 넉넉잡아 팔판동 구역의 어디쯤에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욱 명확하게 집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록이 하나 남아 있는데 <대한매일신보> 1910년 4월 19일자에 게재된 ‘초가 문권 분실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시기는 신채호선생이 중국에 활동근거지를 마련하고 그곳으로 막 망명을 시도하려던 때와 정확하게 겹친다.

 

[광고(廣告)] 본인(本人)의 소유(所有) 초가(草家) 6간(間) 문권(文券)을 부지중(不知中)에 실(失)하였사옵기 자이광고(玆以廣告)하오니 수모습득(誰某拾得)하여도 휴지시행(休紙施行)하압. 경 북서 삼청동 이통 사호(京 北署 三淸洞 二統 四戶) 신채호 백(申采浩 白).

 

위) <대한매일신보> 1910년 4월 19일자에 수록된 신채호의 ‘초가문권 분실 광고’이다. 이것이 집터의 위치를 알려주는 핵심적인 자료인 것은 맞지만, 참으로 아쉽게도 이것만으로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사용된 지번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아무런 방도가 없는 상태이다.

아래) <광무호적(진장방)> 과 <토지조사부>의 명부가 일치하는 두 사례에 해당하는 지점을 <경성부일필매지형명세도)>(1929)를 표시한 내용이다. 이것으로 ‘옛 삼청동 2통 구역’이 지금의 ‘팔판동’에 속한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두 곳의 편차가 워낙 큰 관계로 신채호 집터의 위치를 가려내기는 매우 어렵다고 하겠다.

 

여길 보면 초가문권을 분실하여 이를 무효처리한 신채호의 주소지가 ‘경 북서 삼청동 2통 4호’라고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도입된 지번주소체계로 ‘어느 동 몇 번지’를 가리키는지를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집터의 위치는 여전히 밝혀내기가 어렵다.
이런 경우에 개략적인 위치라도 찾아보기 위해 곧잘 애용하는 것이 <광무호적(光武戶籍)>(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이다. 여기에 나타난 호주의 성명과 일제강점기 이후의 <토지조사부(土地調査簿, 임시토지조사국 작성)>(국가기록원 소장자료)에 기재된 소유자의 성명이 일치하는 것을 통해 지번의 위치를 가려낼 수 있고, 더구나 연번(連番)으로 일치하는 사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신뢰도는 매우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 위해 우선 <광무 10년 한성부 북서 진장방 호적(光武 10年 漢城府 北署 鎭長坊 戶籍)>에 기재된 내역을 살펴보았더니, 신채호 소유의 초가인 ‘삼청동 2통 4호’는 정식 주소지가 “한성부 북서 진장방 삼청동계 삼청동 2통 4호(漢城府 北署 鎭長坊 三淸洞契 三淸洞 二統 四戶)”가 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이 당시, 즉 광무 10년(1906년)에는 이 집의 호주가 체전부(遞傳夫)인 한주성(韓周成)이었던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광무호적>에 나타난 ‘통호(統戶)’의 부여방식을 보면, 각각의 동네마다 새로 번호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진장방’이라는 ‘방(坊)’ 단위에서 1통부터 35통까지 누적되는 것이 눈에 띈다. 이를 개략적으로 말하면 대개 1통에서 25통까지는 삼청동(팔판동 포함) 구역이, 26통 및 27통은 복정동(福井洞) 구역이, 그리고 28통에서 35통까지는 화개동(花開洞) 구역이 포진하는 형태였다.
또한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은 <광무호적>에 삼청동이라고 표시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지금의 ‘삼청동’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이다. 1914년 4월 1일에 일제가 전국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기존의 명칭이 바뀌거나 관할구역이 크게 조정되는 사례가 많았으며, 이 점에 있어서는 삼청동 일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총독부관보> 1914년 4월 27일자에 수록된 경기도고시 제7호 「경성부 정동(町洞)의 명칭 및 구역」을 보면 옛 진장방(鎭長坊)에 속했던 구역은 삼청동, 팔판동, 화동 등으로 관할구역이 흩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삼청동은 옛 삼청동과 팔판동 일부가 합쳐졌고 또한 팔판동은 팔판동 일부가 속하는 구역으로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듯하다. <광무호적(진장방)>과 <토지조사부>에 표시된 인명을 대조하여 정리한 작업결과물을 살펴보면, 이 지역의 경우 세(貰)를 든 사람들이 유달리 많은 탓인지는 몰라도 명단이 일치하는 사례들이 생각만큼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개략적인 추세는 분명히 확인되는데, 이를 통해 관할구역이 어떻게 변경 및 조정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광무호적(진장방)>(1906)과 <토지조사부>(1912)의 인명대조 결과자료

이에 따르면 진장방의 삼청동에 속한 구역 가운데 대개 1통에서 9통까지는 1914년 이후 ‘팔판동’으로 귀속된 지역이 압도적이고, 11통에서 25통까지는 ‘삼청동’으로 귀속된 지역이 월등히 많은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보면 결국 지금의 ‘팔판동’은 옛 팔판동에다 삼청동 구역 일부가 더해지면서 형성된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채호의 집터인 ‘옛 삼청동 2통 4호’와 가장 근접한 ‘옛 삼청동 2통 13호’와 ‘옛 삼청동 2통 14호’의 경우에 1914년에 각각 ‘팔판동 19번지’와 ‘팔판동 131번지’로 전환된 사실이 드러나는데, 이에 따라 신채호 집터의 실제 위치는 지금의 ‘삼청동’이 아닌 ‘팔판동’ 지역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욱 확실시된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소개한 변영만의 「단재전」(1936)에서 “장원서다리의 서쪽”이라고 적어놓은 구절과 그대로 일치하는 대목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자료만 가지고는 이 집터가 팔판동에 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뚜렷이 밝혀진 것이 없다. 더구나 <광무호적(진장방)>에서 추출할 수 있는 비교 가능한 자료가 두 건에 불과하고 그것도 각 소재지의 위치편차가 너무 큰 편이므로 집터일 가능성이 높은 지번(地番)의 후보군을 얼추 간추리는 것조차 힘든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너무도 아쉽지만 신채호 선생이 살던 ‘삼청동’ 집터는 장원서다리 서쪽에 있는 지금의 ‘팔판동’ 지역이라는 사실만 드러난 채 지번을 전혀 알 수가 없으므로 표석을 설치하기가 매우 곤란한 상태는 당분간 그대로 지속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탑골공원 건너편 인사동 초입에 새로 설치된 ‘박자혜 산파터’ 표석(2020.8.26)의 모습이다. 이 지점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신채호 선생이 사망할 당시 박자혜 여사가 살던 ‘인사동 122번지’의 집터가 있었으나, 이곳 역시 최근 도심재개발사업으로 땅을 파헤치는 통에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총독부관보> 1916년 11월 21일자에 게재된 총독부의원 간호부과(看護婦科) 졸업생 명단에 ‘박자혜’의 이름이 포함된 것이 보인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이러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의미 있는 대안의 하나로 부각된 것이 2020년 8월 26일에 설치 완료된 ‘박자혜 산파 터’ 표석이다. 박자혜(朴慈惠, 1895~1943)는 사립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기예과(1914년 졸업)를 거쳐 조선총독부의원 간호부과(1916년 졸업)를 나왔고, 이후 1920년에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연경대학(燕京大學) 의예과를 다니던 도중에 그곳에서 신채호와 만나 결혼한 사이였다. 이들 사이에 수범(秀凡, 1921년생)과 두범(斗凡, 1927년생) 두 아들이 있었고, 그 이후 남편 신채호가 상해(上海)로 돌아가야 하는 문제와 여러 가지 경제적 사정이 겹쳐 아내 박자혜는 2년가량의 동거를 마치고 홀로 국내로 되돌아 오게 되었다. 그 후 신채호 선생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경제적 궁핍을 이겨내기 위해 운영했던 것이 ‘박자혜 산파(朴慈惠 産婆; 인사동 69번지)’였던 것이다.

왼쪽) <동아일보> 1928년 12월 12일자에 수록된 「신채호 부인 방문기」에 함께 소개된 ‘박자혜 산파’의 모습과 ‘박자혜 인물사진’이다. 지붕위 간판에 ‘인사동 69번지’라는 주소 표기가 또렷이 드러
나 있다.

오른쪽) <조선일보> 1936년 2월 25일자에 실린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망관련 기사에는 ‘유골함을 들고 경성역에 도착한 박자혜 여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박자혜가 산파를 꾸려나가던 시절에 지극한 곤경에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1928년 12월 12일자 및 12월 13일자에 2회 연재된 「신채호 부인 방문기」에 잘 나타나 있다. 그 가운데 한 토막을 옮겨보면 이러한 내용이 눈에 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가운데 홀로 어린 아이 형제를 거느리고 저주된 운명에서 하염없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애처로운 젊은 부인이 있다. 시내 인사동(仁寺洞) 69번지 앞 거리를 지나노라면 산파 박자혜(産婆 朴慈惠)라고 쓴 낡은 간판이 주인의 가긍함을 말하는 듯이 붙어 있어 추운 날 저녁볕에 음산한 기분을 자아내니 이 집이 조선사람으로서는 거개 다 아는 풍운아 신채호(風雲兒 申采浩) 가정이다.
간판은 비록 산파의 직업이 있는 것을 말하나 기실은 아무 쓸데가 없는 물건으로 요사이에는 그도 운수가 갔는지 산파가 원체 많은 관계인지 열 달이 가야 한 사람의 손님도 찾는 일이 없어 돈을 벌어 보기는커녕 간판 붙여놓은 것이 도리어 남부끄러울 지경이므로 자연 그의 아궁이에는 불 때는 날이 한 달이면 4, 5일이 될까말까 하여 말과 같은 삼순구식(三旬九食)의 참상을 맛보고 있으면서도 주린 배를 움켜잡고 하루라도 빨리 가장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박자혜 여사는 밤이나 낮이나 대련형무소(大連刑務所)가 있는 북쪽 하늘을 바라볼 뿐이라 한다.

 

이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 1936년 2월 21일 신채호 선생은 여순형무소(旅順刑務所)의 병감(病監)에서 홀연히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여순화장장에서 수습한 그의 유골은 박자혜 여사의 품에 안겨 경성역(京城驛)을 거쳐 고향인 충북 청주군 낭성면 관정리(忠北 淸州郡 狼城面 官井里)의 선영(先塋)으로 옮겨져 그곳에 묻혔다. 이를 테면 이곳 ‘박자혜 산파터’는 독립지사의 가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고난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부각되기에 충분한 장소가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박자혜는 비단 신채호의 아내라는 위상이 아니더라도 그 자신이 3.1운동 당시에 총독부의원 간우회(看友會)를 주도하여 만세 시위운동을 폈고, 그 후 여러 애국지사의 의열활동을 도운 공로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된 바 있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여성독립운동가의 위상과 역할을 재조명하는 의미에서도 표석 설치의 당위성과 의미가 아주 크다고 할 것이다. 다만, 못내 아쉽고 여전히 풀지 못한 일이지만 신채호 집터의 위치를 명쾌하게 규명할 수 있는 관련 자료가 서둘러 발굴되어 그 자리에 자그마한 표석 하나라도 남겨질 수 있는 기회가 빨리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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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 회비수입 26%
  • 모금수입 66.7%
  • 연구사업수입 6.7%
  • 기타수입 0.6%

지출
  • 인건비 48%
  • 일반관리비 7%
  • 연구사업비 35%
  • 기타비용 10%

구 분 금액(원) 누 계
1. 회비수입 15,838,000 79,825,000
일반회비 12,423,000 63,515,000
용인환경정의 회비 2,100,000 10,815,000
북부환경정의 회비 1,315,000 5,495,000
2. 모금수입 40,826,631 98,148,320
후원회비 5,058,131 58,622,520
일반모금 35,500,000 35,500,000
소셜모금 268,500 4,025,800
3. 연구사업수입 4,090,909 106,108,437
연구사업지원금 4,090,909 106,108,437
4. 기타수입 390,023 15,117,630
인세 0 61,580
잡수입 110,023 623,820
고용안정자금 0 13,152,230
일자리안정자금 280,000 1,280,000
참가비 0 0
수입 계 61,145,563 299,199,387
구 분 금액(원) 누 계
1. 인건비 22,502,000 117,479,250
급여 20,698,000 103,766,000
상여금 0 5,036,250
안식월급여 1,804,000 8,677,000
안식년급여 0 0
2. 일반관리비 3,511,191 17,510,170
복리후생비 161,800 788,510
세금과공과 489,764 3,888,073
사회보험부담금 2,675,230 11,643,630
소모품비 0 61,500
건물관리비(나루) 184,397 1,128,457
3. 연구사업비 16,306,060 26,152,003
여비교통비 88,600 88,600
도서인쇄비 1,073,600 2,916,000
행사비 4,243,743 6,363,813
통신우편비 50,229 461,042
시설지급임차료 693,000 882,100
홍보비 4,068,016 4,165,368
조사연구비 4,056,800 6,506,800
지급수수료 2,017,072 4,508,700
차량유지비 0 0
보험료(이행보증보험) 15,000 259,580
4. 기타비용 4,827,554 19,202,392
기부금 100,000 260,000
단체분담금 30,000 1,060,000
대출이자 878,794 4,421,502
사업비반환 0 0
참가비반환 0 0
회비반납 0 0
교육훈련비 30,000 90,000
경조사비 0 400,000
잡손실 0 0
용인환경정의 지원비 2,326,830 8,623,040
북부환경정의 지원비 1,461,930 4,347,850
지출 계 47,146,805 180,34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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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과잉소비를 부추기는 K-POP 문화, 6천만 장의 플라스틱은 어디로 가는가    

- K-POP 업계 엔터사, 차트사 등 규제 마련 시급 -

  - 2022년 음반 판매량 7천장 돌파 예상, 버려지는 음반 쓰레기 속출 CD로 음악을 듣는 일이 거의 사라진 시대, 그러나 앨범 판매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21년 팔린 K-POP 가수들의 실물 앨범은 총 5708만 9160장으로 전년 대비 36.9% 증가했다. 2016년에 연간 판매량 1천만 장을 넘긴 후, 2017년 1693만 491장, 2018년 2282만 2245장, 2019년 2509만 5679장, 2020년 4170만 7301장 등 매년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올해 9월까지 집계된 음반 판매량만 해도 6천만 장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 연간 K-POP 피지컬앨범 판매량 (출처 : 써클차트)

그러나 판매된 6천만 장의 앨범이 곧 6천만 명의 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K-POP 팬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여러 장의 앨범을 사는 일은 공공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K-POP팬들이 여러 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것은 여러 장의 앨범을 소장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팬 사인회’와 ‘랜덤 포토카드’ 등의 특전과 구성품을 얻거나, 좋아하는 가수를 차트 상위권에 진입시키기 위함이다.  이러한 판매 전략은 과잉소비를 유도해 앨범 판매량을 매해 늘리고 있지만, 소장용인 한 장을 제외한 나머지 앨범들은 그대로 버려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비롯한 각종 SNS에서는 분리배출이 되지 않은 채 박스더미로 버려진 음반 쓰레기들의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 랜덤 포토카드, 전부 모으려면 수백장을 사야한다? 아래의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근래 출시되는 아이돌 앨범은 한 버전으로 그치지 않는 추세다. 한정판이나 스페셜 버전 등이 더해지면 이보다 더 다양한 버전이 출시되기도 한다. 게다가 판매처별로 포토카드나 포스터 등의 ‘판매처 특전’이 따로 출시되기 때문에 좋아하는 가수의 모든 구성품을 모으기 위해 적게는 열 장 내외부터 많게는 수백 장에 달하는 앨범을 구매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듣지도 않을 수백 장의 플라스틱을 구매하고 버려야 하는 피로와 죄책감까지 모두 K-POP 팬들의 몫이다.      

- K-POP 음반 버전 및 구성품 현황   

그 중 랜덤 구성품은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소비를 해야 하는 데에서 상당히 기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소비자보호법의 제3조에 따르면 소비자는 ‘물품 및 용역을 선택함에 있어서 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지닌다. 그러나 랜덤 구성품의 경우, 같은 값을 지불하고 음반을 구매해도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얻을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멤버별 포토카드의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경우의 수는 무한히 늘어나, 확률은 점점 더 낮아진다. 이러한 상황은 과잉 소비를 유도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소비자의 사행심을 불러일으킨다.      - 청소년 주류인 K-POP문화 속, 사행심 부추기는 랜덤 포토카드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의 ‘확률형 아이템 게임 이용이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변화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서 이승제, 이대영, 정의준은 ‘특별한 노력 없이 높은 가치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이용자에게 사행심을 부추길 수 있으며, 합리적인 재정적 판단을 내리는 데 방해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요행에 의한 이익 취득 혹은 물질적 보상에 따른 만족을 자주 접하게 되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게 된다면, 청소년들의 가치형성 과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일각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이 복권이나 도박과 동일한 기제를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행심 유발 또한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확률형 아이템은 사행적 요인의 두 가지 측면인 ‘우연성 여부’와 ‘재산적 가치’를 모두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뿐만 아니라, 1020 청소년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K-POP문화 속 랜덤 구성품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                

- 랜덤 포토카드 판매 글 (출처:트위터)   

랜덤 구성품은 각 팬들의 수요에 따라 서로 교환되고 판매된다. 포토카드나 포스터의 경우, 원래 특정 값이 매겨져있지 않은 ‘구성품’인 만큼, 판매되는 값은 그야말로 ‘시가’다. 인기 있는 멤버의 희소성 있는 사진은 상대적으로 고가에 거래되고, 비교적 덜 주목받는 멤버의 사진은 저렴하게 거래된다. 우연성을 통해 얻은 보상으로 부가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랜덤 구성품’이라는 판매전략이 사행적 요인을 충족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더불어 재정 자립도가 낮은 청소년의 경우, 과소비 가능성과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비행을 저지를 가능성까지도 야기할 수 있다.       - K-POP 업계 엔터사, 차트사 등 규제 마련 시급 팬심과 사행심을 동시에 이용한 이러한 판매 전략은 앨범 판매량을 늘리는 동시에 음반 쓰레기를 대거 양산한다. 대부분의 앨범 케이스는 플라스틱 소재지만, 분리배출에 대한 내용이 분명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게다가 그 커버와 구성품 또한 대체로 코팅지로 이루어져 있어 재활용이 불가한 실정이다. 그러나 ‘종이류’로 분류되는 앨범 내 구성품 쓰레기들은 생산자 책임 재활용(EPR) 제도에 적용되지 않을뿐더러,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폐기물 부담금 또한 기획사들의 수익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리고 이마저도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불분명하다.  SM, IST 등 몇몇 기획사에서는 이러한 음반 쓰레기 문제와 관련하여 CD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디지팩 혹은 플랫폼 앨범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마케팅이 ‘그린워싱’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각 엔터사와 차트사들의 판매 전략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 첫번째 방안으로, 소비자보호법 제 3조에 따라 소비자가 앨범을 구매할 때, 그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해야한다. 랜덤 포토카드의 경우, 현재는 단순한 ‘서비스’의 영역을 넘어 소비자의 선택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상품의 가치를 갖고있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품을 판매해선 안 된다. 나아가 구성품을 얻기 위해 앨범을 구매해야만 하는 비정상적인 소비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선 구성품과 앨범을 분리하여 소비자들이 직접 원하는 굿즈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두번째로, 팬사인회와 팬미팅 등의 특전 제공에서, 무작위 추첨 과정의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줄세우기’ 문화는 앨범을 많이 구매한 순으로 특전을 얻게 되는 것을 뜻한다. K-POP 팬들 사이에서는 팬사인회에 가기 위해 구매해야하는 앨범의 특정 수량을 ‘팬싸컷’이라고 부를 정도로 무작위 추첨이라는 엔터사의 공지는 허구에 가깝다. 이러한 방식의 대량 구매 유도를 막기 위해선 무작위 추첨의 확률과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팬들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음반차트의 집계 기준을 확실하게 공개하고, 시스템을 전환하려는 노력 또한 필수적이다. K-POP 문화는 1020대 청소년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만큼 더욱 철저하고 엄격한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의 K-POP 문화는 아티스트 자체의 예술성보다 그들의 외형적 이미지만을 집중적으로 소비해, 팬들로 하여금 기형적 롤모델을 만들고, 팬들의 애정을 착취해 엔터사와 차트사 등의 기업이 이득을 취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과도하게 양산 된 쓰레기들은 지구를 오염시키고 기후위기를 앞당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적절한 법제화와 제재를 통해 건강한 음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K-POP 문화가 더욱 유의미하게 번성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목, 2022/11/1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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