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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의 집터에 표석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삼청동(三淸洞)’ 집터의 실제 위치는 ‘팔판동(八判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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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 선생의 집터에 표석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삼청동(三淸洞)’ 집터의 실제 위치는 ‘팔판동(八判洞)’

admin | 수, 2020/11/11- 02:43

[식민지 비망록 63]

단재 신채호 선생의 집터에 표석을 세우지 못하는 까닭은?
‘삼청동(三淸洞)’ 집터의 실제 위치는 ‘팔판동(八判洞)’

이순우 책임연구원

 

<조선총독부관보> 1910년 11월 19일자에 수록된 ‘경무총감부 고시 제72호’에는 안녕질서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발매금지 및 압수대상 처분이 이뤄진 출판물의 목록에 신채호 선생의 저술인 『을지문덕(乙支文德)』과 『이태리건국삼걸전(利太利建國三傑傳)』이 포함된 것이 눈에 띈다.

김가진, 김경천, 김옥균, 김창숙, 남궁억, 노백린, 민영환, 백용성, 손병희, 송진우, 심훈, 여운형, 이동녕, 이상재, 이준, 이회영 6형제, 지석영, 지청천, 현상윤 ……
.
여기에 나열한 명단은 현재 서울시에서 해당 인물의 생가(生家) 또는 집터에 표석을 설치한 19군데 사례들의 목록이다. 여기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 사장인 영국인 어네스트 베델(Ernest T. Bethell, 裵說)과 김수영, 박인환, 전영택, 현진건 등 문인(文人)들의 경우를 다 합치더라도이 숫자는 겨우 스물 몇 건 정도에 머문다.
우리 근현대사를 통틀어 그 집터를 기억하고 업적을 기릴만한 훌륭한 인물이 고작 이 정도뿐일까 마는 행적평가, 지명도, 형평성 등과 같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부분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역사인물들에 대한 표석의 설치를 무작정 늘리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런데 설령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업적과 상당한 역사 문화적인 평가를 지닌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해 당 인물의 집터에 표석을 세울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 집터의 위치가 어디인지 도무지 확인을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1880~1936) 선생의 경우가 딱 그러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3월 28일에 열린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표석분과 회의에서 ‘신채호 집터’ 표석설치에 관한 청원이 심의안건으로 상정되었을 때 해당 표석 설치 자체에 대해서는 참석 위원 모두의 만장일치로 공감하는 바였으나 집터의 위치를 특정(特定)하는 문제가 뒷받침되지 못하여 결국 아쉽게도 설치보류결정이 내려진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신채호가 살았던 집터의 위치를 정확하게 가려내지 못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이에 관해서는 우선 변영만(卞榮晩, 1889~1954)이 남긴 「단재전(丹齋傳)」(1936)의 한 토막을 옮겨보기로 한다.

 

나는 일찍이 장원서다리(掌苑署橋) 서쪽에 있는 단생(丹生)의 집을 방문하였다. 뜰 가운데 커다랗게 던져진 물건이 있고 우유통 대여섯 개가 수채구더기에 버려져 있었는데, 우유 찌꺼기가 흘러나온 것이 차마 볼 수 없었다. 방안으로 들어가니 단생이 분이 아직 식지 않아 나를 쳐다보고도 못본 척하였다. 내가 괴이히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단생은 아직 치솟은 화가 등등하다가 이에 말을 끊었다 이으며 급한 듯이 다시 천천히 말하기를 “관일(貫日)의 어미가 젖이 나오지 않으니 천하에 이런 여자가 있단 말이오? 내가 약간의 우유병을 구하여 대신하라고 주었더니, 그녀가 그것을 제대로 먹일 줄을 알지 못하고, 관일은 병이 들어 죽으려고 하기에 내가 모두 뒤져다가 버리는 참이오!”라고 한다. 말을 마치고 뛰어 일어나 또 무슨 일을 저지를 듯하였다. 나는 그를 억지로 붙들어 자리에 앉히고 갖은 말로 위로하여 겨우 무사하게 되었다.(하략)

[이 글의 원문은 김종하 간행, <산강재문초(山康齋文鈔)> (1957)에 수록되어 있으며, 국역 부분은 <단재 신채호 전집> 제9권(2008), 339쪽의 것을 재인용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관일(貫日)은 신채호가 늦게 얻은 아들의 이름이며, 그가 사다준 ‘수리표 연유(Eagle Brand 煉乳)’를 잘못 먹인 탓에 체하여 끝내 숨지자 이 일로 첫 부인인 풍양조씨(豊壤趙氏)를 친정으로 돌아가게 했다는 얘기가 그 아래에 채록되어 있다. 위에서 적은 것처럼 이 일이 벌어진 집의 위치는 ‘장원서다리 서쪽’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장원서(掌苑署)는 조선시대 원유(苑囿), 화훼(花卉), 과물(果物) 등을 관장하는 곳이며, 옛 성삼문(成三問)의 집터(화동 23번지 및 24번지 일대)에 자리하였다. 여기에서 이름을 따온 장원서다리는 안국동네거리 쪽에서 화개동을 거쳐 팔판동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삼청동 초입에서 삼청동천(三淸洞川)을 마주하여 건너는 지점에 놓여 있었다.

 

위) <중외일보> 1929년 7월 13일자에 수록된 수해관련보도에 함께 수록된 ‘장원서다리’의 옛 모습이
다. 변영만이 남긴 「단재전(丹齋傳)」이라는 글에는 신채호의 집이 ‘장원서다리의 서쪽에 있었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아래) 지금은 하천이 복개되어 옛 모습을 가늠하기 어려우나 ‘삼청파출소’ 바로 앞 자리가 옛 장원서다리가 있던 지점이다. 이곳은 팔판동, 소격동, 화동의 세 지역이 겹치는 경계지점이기도 하다.

 

지금은 하천이 모두 복개된 탓에 그 흔적을 쉽사리 확인하기 어렵지만 옛 지도를 활용하여 그 위치를 가늠해보면 팔판동(八判洞), 화동(花洞), 소격동(昭格洞)의 세 지역이 겹치는 경계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지금의 삼청파출소(三淸派出所) 바로 앞이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이 다리의 서쪽이라 하였으므로 신채호의 거처는 넉넉잡아 팔판동 구역의 어디쯤에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욱 명확하게 집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록이 하나 남아 있는데 <대한매일신보> 1910년 4월 19일자에 게재된 ‘초가 문권 분실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시기는 신채호선생이 중국에 활동근거지를 마련하고 그곳으로 막 망명을 시도하려던 때와 정확하게 겹친다.

 

[광고(廣告)] 본인(本人)의 소유(所有) 초가(草家) 6간(間) 문권(文券)을 부지중(不知中)에 실(失)하였사옵기 자이광고(玆以廣告)하오니 수모습득(誰某拾得)하여도 휴지시행(休紙施行)하압. 경 북서 삼청동 이통 사호(京 北署 三淸洞 二統 四戶) 신채호 백(申采浩 白).

 

위) <대한매일신보> 1910년 4월 19일자에 수록된 신채호의 ‘초가문권 분실 광고’이다. 이것이 집터의 위치를 알려주는 핵심적인 자료인 것은 맞지만, 참으로 아쉽게도 이것만으로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사용된 지번체계로 전환할 수 있는 아무런 방도가 없는 상태이다.

아래) <광무호적(진장방)> 과 <토지조사부>의 명부가 일치하는 두 사례에 해당하는 지점을 <경성부일필매지형명세도)>(1929)를 표시한 내용이다. 이것으로 ‘옛 삼청동 2통 구역’이 지금의 ‘팔판동’에 속한다는 사실은 확인되지만 두 곳의 편차가 워낙 큰 관계로 신채호 집터의 위치를 가려내기는 매우 어렵다고 하겠다.

 

여길 보면 초가문권을 분실하여 이를 무효처리한 신채호의 주소지가 ‘경 북서 삼청동 2통 4호’라고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도입된 지번주소체계로 ‘어느 동 몇 번지’를 가리키는지를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집터의 위치는 여전히 밝혀내기가 어렵다.
이런 경우에 개략적인 위치라도 찾아보기 위해 곧잘 애용하는 것이 <광무호적(光武戶籍)>(국사편찬위원회 소장자료)이다. 여기에 나타난 호주의 성명과 일제강점기 이후의 <토지조사부(土地調査簿, 임시토지조사국 작성)>(국가기록원 소장자료)에 기재된 소유자의 성명이 일치하는 것을 통해 지번의 위치를 가려낼 수 있고, 더구나 연번(連番)으로 일치하는 사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신뢰도는 매우 높다고 판단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 위해 우선 <광무 10년 한성부 북서 진장방 호적(光武 10年 漢城府 北署 鎭長坊 戶籍)>에 기재된 내역을 살펴보았더니, 신채호 소유의 초가인 ‘삼청동 2통 4호’는 정식 주소지가 “한성부 북서 진장방 삼청동계 삼청동 2통 4호(漢城府 北署 鎭長坊 三淸洞契 三淸洞 二統 四戶)”가 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이 당시, 즉 광무 10년(1906년)에는 이 집의 호주가 체전부(遞傳夫)인 한주성(韓周成)이었던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광무호적>에 나타난 ‘통호(統戶)’의 부여방식을 보면, 각각의 동네마다 새로 번호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진장방’이라는 ‘방(坊)’ 단위에서 1통부터 35통까지 누적되는 것이 눈에 띈다. 이를 개략적으로 말하면 대개 1통에서 25통까지는 삼청동(팔판동 포함) 구역이, 26통 및 27통은 복정동(福井洞) 구역이, 그리고 28통에서 35통까지는 화개동(花開洞) 구역이 포진하는 형태였다.
또한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은 <광무호적>에 삼청동이라고 표시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지금의 ‘삼청동’과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이다. 1914년 4월 1일에 일제가 전국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기존의 명칭이 바뀌거나 관할구역이 크게 조정되는 사례가 많았으며, 이 점에 있어서는 삼청동 일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총독부관보> 1914년 4월 27일자에 수록된 경기도고시 제7호 「경성부 정동(町洞)의 명칭 및 구역」을 보면 옛 진장방(鎭長坊)에 속했던 구역은 삼청동, 팔판동, 화동 등으로 관할구역이 흩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삼청동은 옛 삼청동과 팔판동 일부가 합쳐졌고 또한 팔판동은 팔판동 일부가 속하는 구역으로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듯하다. <광무호적(진장방)>과 <토지조사부>에 표시된 인명을 대조하여 정리한 작업결과물을 살펴보면, 이 지역의 경우 세(貰)를 든 사람들이 유달리 많은 탓인지는 몰라도 명단이 일치하는 사례들이 생각만큼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개략적인 추세는 분명히 확인되는데, 이를 통해 관할구역이 어떻게 변경 및 조정되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광무호적(진장방)>(1906)과 <토지조사부>(1912)의 인명대조 결과자료

이에 따르면 진장방의 삼청동에 속한 구역 가운데 대개 1통에서 9통까지는 1914년 이후 ‘팔판동’으로 귀속된 지역이 압도적이고, 11통에서 25통까지는 ‘삼청동’으로 귀속된 지역이 월등히 많은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보면 결국 지금의 ‘팔판동’은 옛 팔판동에다 삼청동 구역 일부가 더해지면서 형성된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채호의 집터인 ‘옛 삼청동 2통 4호’와 가장 근접한 ‘옛 삼청동 2통 13호’와 ‘옛 삼청동 2통 14호’의 경우에 1914년에 각각 ‘팔판동 19번지’와 ‘팔판동 131번지’로 전환된 사실이 드러나는데, 이에 따라 신채호 집터의 실제 위치는 지금의 ‘삼청동’이 아닌 ‘팔판동’ 지역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욱 확실시된다고 할 수 있겠다. 앞서 소개한 변영만의 「단재전」(1936)에서 “장원서다리의 서쪽”이라고 적어놓은 구절과 그대로 일치하는 대목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자료만 가지고는 이 집터가 팔판동에 있다는 사실 이외에는 뚜렷이 밝혀진 것이 없다. 더구나 <광무호적(진장방)>에서 추출할 수 있는 비교 가능한 자료가 두 건에 불과하고 그것도 각 소재지의 위치편차가 너무 큰 편이므로 집터일 가능성이 높은 지번(地番)의 후보군을 얼추 간추리는 것조차 힘든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너무도 아쉽지만 신채호 선생이 살던 ‘삼청동’ 집터는 장원서다리 서쪽에 있는 지금의 ‘팔판동’ 지역이라는 사실만 드러난 채 지번을 전혀 알 수가 없으므로 표석을 설치하기가 매우 곤란한 상태는 당분간 그대로 지속될 수밖에 없을 듯하다.

탑골공원 건너편 인사동 초입에 새로 설치된 ‘박자혜 산파터’ 표석(2020.8.26)의 모습이다. 이 지점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신채호 선생이 사망할 당시 박자혜 여사가 살던 ‘인사동 122번지’의 집터가 있었으나, 이곳 역시 최근 도심재개발사업으로 땅을 파헤치는 통에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조선총독부관보> 1916년 11월 21일자에 게재된 총독부의원 간호부과(看護婦科) 졸업생 명단에 ‘박자혜’의 이름이 포함된 것이 보인다.

 

그런데 이 와중에 이러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의미 있는 대안의 하나로 부각된 것이 2020년 8월 26일에 설치 완료된 ‘박자혜 산파 터’ 표석이다. 박자혜(朴慈惠, 1895~1943)는 사립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기예과(1914년 졸업)를 거쳐 조선총독부의원 간호부과(1916년 졸업)를 나왔고, 이후 1920년에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연경대학(燕京大學) 의예과를 다니던 도중에 그곳에서 신채호와 만나 결혼한 사이였다. 이들 사이에 수범(秀凡, 1921년생)과 두범(斗凡, 1927년생) 두 아들이 있었고, 그 이후 남편 신채호가 상해(上海)로 돌아가야 하는 문제와 여러 가지 경제적 사정이 겹쳐 아내 박자혜는 2년가량의 동거를 마치고 홀로 국내로 되돌아 오게 되었다. 그 후 신채호 선생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경제적 궁핍을 이겨내기 위해 운영했던 것이 ‘박자혜 산파(朴慈惠 産婆; 인사동 69번지)’였던 것이다.

왼쪽) <동아일보> 1928년 12월 12일자에 수록된 「신채호 부인 방문기」에 함께 소개된 ‘박자혜 산파’의 모습과 ‘박자혜 인물사진’이다. 지붕위 간판에 ‘인사동 69번지’라는 주소 표기가 또렷이 드러
나 있다.

오른쪽) <조선일보> 1936년 2월 25일자에 실린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망관련 기사에는 ‘유골함을 들고 경성역에 도착한 박자혜 여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박자혜가 산파를 꾸려나가던 시절에 지극한 곤경에 처한 상황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1928년 12월 12일자 및 12월 13일자에 2회 연재된 「신채호 부인 방문기」에 잘 나타나 있다. 그 가운데 한 토막을 옮겨보면 이러한 내용이 눈에 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가운데 홀로 어린 아이 형제를 거느리고 저주된 운명에서 하염없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애처로운 젊은 부인이 있다. 시내 인사동(仁寺洞) 69번지 앞 거리를 지나노라면 산파 박자혜(産婆 朴慈惠)라고 쓴 낡은 간판이 주인의 가긍함을 말하는 듯이 붙어 있어 추운 날 저녁볕에 음산한 기분을 자아내니 이 집이 조선사람으로서는 거개 다 아는 풍운아 신채호(風雲兒 申采浩) 가정이다.
간판은 비록 산파의 직업이 있는 것을 말하나 기실은 아무 쓸데가 없는 물건으로 요사이에는 그도 운수가 갔는지 산파가 원체 많은 관계인지 열 달이 가야 한 사람의 손님도 찾는 일이 없어 돈을 벌어 보기는커녕 간판 붙여놓은 것이 도리어 남부끄러울 지경이므로 자연 그의 아궁이에는 불 때는 날이 한 달이면 4, 5일이 될까말까 하여 말과 같은 삼순구식(三旬九食)의 참상을 맛보고 있으면서도 주린 배를 움켜잡고 하루라도 빨리 가장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박자혜 여사는 밤이나 낮이나 대련형무소(大連刑務所)가 있는 북쪽 하늘을 바라볼 뿐이라 한다.

 

이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서 1936년 2월 21일 신채호 선생은 여순형무소(旅順刑務所)의 병감(病監)에서 홀연히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여순화장장에서 수습한 그의 유골은 박자혜 여사의 품에 안겨 경성역(京城驛)을 거쳐 고향인 충북 청주군 낭성면 관정리(忠北 淸州郡 狼城面 官井里)의 선영(先塋)으로 옮겨져 그곳에 묻혔다. 이를 테면 이곳 ‘박자혜 산파터’는 독립지사의 가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고난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부각되기에 충분한 장소가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박자혜는 비단 신채호의 아내라는 위상이 아니더라도 그 자신이 3.1운동 당시에 총독부의원 간우회(看友會)를 주도하여 만세 시위운동을 폈고, 그 후 여러 애국지사의 의열활동을 도운 공로로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197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된 바 있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여성독립운동가의 위상과 역할을 재조명하는 의미에서도 표석 설치의 당위성과 의미가 아주 크다고 할 것이다. 다만, 못내 아쉽고 여전히 풀지 못한 일이지만 신채호 집터의 위치를 명쾌하게 규명할 수 있는 관련 자료가 서둘러 발굴되어 그 자리에 자그마한 표석 하나라도 남겨질 수 있는 기회가 빨리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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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이연희

최근 일본의 WTO제소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와 관련, 국회에서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7월 8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지난 5월 21일 일본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관련, 일본산 수산물 수입제재 조치를 둘러싼 각종 쟁점에 대해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함에 따라 장하나 의원실과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차일드세이브, 한국YWCA연합회, 한살림서울 주최로 진행되었다. 장하나 의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이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 서영교 의원의 인사말과 함께 시작됐다. 토론장에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 문제가 국민의 먹거리 안전과 관련된 첨예한 사안임을 증명하듯,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caption id="attachment_151949" align="alignnone" width="3163"]ⓒ이연희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국회의원(좌),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김혜정 운영위원장( 우)  ⓒ이연희[/caption] 이날 토론회의 골자가 된 사안은 내용인 즉, 한국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원전 오염수 유출 등 방사능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됨에 따라 2013년 9월, ①후쿠시마 주변 8개현의 모든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②방사능이 미량이라도 검출될 경우에는 스트론튬 등 기타핵종 검사증명서를 요구하며, ③세슘 기준을 기존 370Bq/kg에서 100Bq/kg로 강화하는 내용의 임시특별조치를 시행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은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 양이 연간 8만여t에 달했지만 특별조치 시행 후인 지난해에는 3만t 전후로 수입량이 급감했다. 그러자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 식품·동식물 위생검역(SPS) 위원회 등에서 수산물 금수 조치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일본의 WTO제소 근거,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 평가 등 관련된 쟁점들을 논의하기 위하여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시민방사능감시센터 김혜정 운영위원장이 《일본 식품의 방사능오염과 한국 식품수입정책 문제점》이라는 주제로 첫 발제를 맡았다. 김혜정 위원장은 발제를 통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고 2013년 9.6특별조치가 이루어지기 이전까지 우리 정부 당국은 일본산 식품 수입에 대한 제한조치가 없었다”라고 지적하며, “9.6조치 이후 방사능식품에 대한 안전성이 확보 되었지만, 한국정부는 일본이 WTO에 제소하기 이전부터 ‘잠정적인 조치’라며 수입금지조치를 해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caption id="attachment_151953" align="alignnone" width="2829"]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이연희 발제를 맡은 김혜정 시민방사능감시센터 운영위원장 ⓒ이연희[/caption] 이어 김혜정 위원장은 “일본에서는 세슘이 불검출 된 사례가 많다고 얘기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일본의 세슘 기준치(kg 당 100Bq)의 절반인 50Bq 이하 검출량에 대해선 불검출로 공표하는 일본의 방사능오염 식품 정책 ‘스크리닝 법’에 대해 비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자체적인 조사 없이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자료와 정보에 의존하여 수입해제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WTO 제소 움직임에 대비한 민간 중심의 전문가위원회의 일본 현지조사도 일본 정부의 안내에 따라 단 2차례만 샘플 검사를 시행했으며 검사내용과 결과도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후쿠시마 오염 실태에 대해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다음으로 발제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소속 노주희 변호사는 한국 정부에 대한 일본의 WTO협정 위반 제소와 관련, 일본이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한국이 시행하고 있는 규제조치의 근거인 세계무역기구(WTO)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의 적용에 관한 협정(이하 'SPS 협정’)에서 정의한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SPS 조치’)임을 설명했다. 우선 SPS 조치와 관련, 한국은 방사성 물질 오염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조치에 관한 국제표준이 없다고 보고, 예외조항으로서 예방원칙에 근거한 잠정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잠정조치가 허용되는 기준은 제한적으로, 일본 정부는 한국의 잠정조치를 인정하지 않고 위험평가를 통한 과학적 증명이라는 요건을 포함하여 보다 훨씬 엄격한 요건이 적용되는 ‘국제표준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로 포섭하려고 하고 있다. ‘국제표준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최소한의 무역제한만이 가능하다는 내용의 비례원칙, 위험평가를 수반한 과학적 입증이 필요하다는 과학적 원칙과, 자의적이고 차별적인 해석이 불가능하다는 일관성 유지원칙, 다른 회원국이 회원국의 SPS 조치가 관련 국제표준에 근거하지 않거나, 그러한 국제표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명을 요구할 때에 해명을 제공해야만 한다는 내용의 해명 제공 의무와 같은 까다로운 절차가 수반된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잠정적 예방조치’의 경우에는 위에서 다루고 있는 엄격한 요건에서 면제된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예방원칙에 근거한 잠정조치를 정당화 하는 데 실패하고, 이러한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지 않은 또는 사안의 속성상 그렇게 대비하기 어려웠던 한국 정부로서는 WTO 분쟁에서 대단히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노주희 변호사의 판단이다. 노주희 변호사는 “SPS 규정과 관련, WTO에 제소된 사안들에 대한 판례는 거의 다 피소국이 패소하거나 타협하여 결론지어졌다”고 말하며, “한국 정부에 대해 일본이 강력하게 나오는 것은 전세계적인 일본산 수산물 규제 정책에 방어막을 깨려는 목적”으로,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공조와 최대한의 전문적 자료 수집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caption id="attachment_151950" align="alignnone" width="960"] ⓒ이연희 ⓒ이연희[/caption] 발제에 이어 식품의약품안전처 검사실사과의 이수두 과장, 방사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들의 모임 차일드세이브의 최경숙 대표, 한살림서울 식생활위원회 박준경 위원장, 토론회의 제목이 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잠정적 수입금지 조치의 쟁점과 정책과제』라는 정책보고서를 작성한 국회입법조사처 외교안보팀 정민정 조사관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수두 과장은 “식약처는 특별규제 이후 강화된 조치로 안전한 검역체계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히며, “정부는 규제를 해제한다고 공식적으로 공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이수두 과장의 발언 이후, 최경숙 대표는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고 4년 동안 시민 스스로가 감시센터를 설립하고 평범한 주부들이 방사능 지식인이 되어 애쓰는 동안 식약처를 비롯한 정부부처에서 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다”, 박준경 위원장은 “한살림과 같은 생협 등에서는 후쿠시마 이후 방사성물질 자주기준을 마련하여 식품을 공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안전한 먹거리 문제는 생협단체만 노력해야할 것이 아니다”라며 식약처를 비롯한 정부부처의 역할에 대하여 강한 어조로 질타했다. 이어 정민정 조사관은 조사연구서와 발언을 통해 “우리 정부는 미국·대만·중국·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도 이미 한국과 유사한 조치를 취하고 있고, 한국 내에서 방사능 피해자가 발생한다 해도 피해자가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등 근거를 들어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규제 조치의 국제법적 정당성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적발되고 있는 일본산 수산물 원산지 위장이나 허위표기 등을 막기 위해 검역 절차와 유통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객관적 위험평가를 위해 필요한 추가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WTO 제소에 동요되지 않는 장기적 식품안전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며 정부당국에 정책적 과제를 제시했다. 토론이 끝난 후에도 참석한 시민들과 패널들은 질의응답을 통하여 ‘방사능이라는 말 자체가 언어폭력’, ‘일본 사람들도 안심하고 먹는데 왜 우리가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는 언행을 보인 이재기 위원장 등 일본 방사능 안전관리 민간위원회의 부적절한 인사구성과, 정부부처의 책임 방기 등에 대해 질타하는 등 이날 토론회는 청문회를 방불케하는 날카로운 질의와 참석자들의 뜨거운 열기 속에 마무리 되었다. [caption id="attachment_151948" align="alignnone" width="640"]ⓒ이연희 ⓒ이연희[/caption]  
금, 2015/07/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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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차 정기총회 감사 인사말

 

- 회장 한택근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제28차 민변 정기총회가 2015.5.30.-31. 양일간에 걸쳐 경주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번 총회는 132명의 회원과 60여명의 가족들이 참석하여 역대 최다 참석자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제28차 정기총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관심과 성원을 보내 주신 모든 회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총회 식전 행사에서는 모임이 ‘회원 1,000명 시대’를 열게 된 것을 자축하고, 모임의 진로를 모색하는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정기총회에서는 모임의 임원선출에 관한 회칙 규정을 정비하였고, 조직의 중·장기적 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발전기금 사용 승인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저희 집행부는 안건을 통과시켜 주신 회원들의 뜻을 받들어 모임의 발전을 위해 배전을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나아가 이번 정기총회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회원 분들의 뜨거운 열망과 헌신적 활동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참석한 모든 회원들이 일어나 ‘회원 천명 시대를 맞는 모임의 특별결의문’을 함께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민주사회를 향한 회원들의 결의를 서로가 확인할 수 있었던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회원 여러분,

 

우리 모임은 중대한 도전의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모임의 지속가능성과 발전을 담보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밖으로는 시대를 역행하는 권력기관에 맞서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인권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도전을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는 희망을 정기총회에서 보여주신 회원 여러분의 열망과 결의에서 찾고자 합니다. 집행부와 사무처는 회원 여러분의 헌신과 지혜가 샘솟을 수 있도록 하는 마중물의 역할에 충실하겠습니다.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고, 정의가 넘실대는 ‘민주사회’로의 여정은 한시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민변의 자랑스러운 선배님, 동료 및 후배 회원 모두 깊은 동지애로 함께 걸어갑시다. 그 길에 함께하는 모든 회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수, 2015/06/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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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발전차액지원제도(FIT) 입법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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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5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계는 지금, 핵사고의 위험을 벗어나기 위하여 탈핵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선진국인 독일 등 많은 국가들이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를 순차적으로 폐쇄하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고정적인 가격으로 매입해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차액지원제도(FIT)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제일 효과적인 제도로 알려져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를 채택하여 재생에너지를 확대해간다면 핵발전소와 기후변화의 주범 석탄화력발전소 또한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태양과 바람의 나라, 햇빛모아 탈핵하자!! - 이번 제 20대 국회에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는 발전차액지원제도(FIT)가 반드시 정책입법 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힘을 모아주세요 :D

* 문의: 환경운동연합 탈핵팀 (02-735-7067)

서명 주관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가톨릭환경연대, 경주핵안전연대,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나눔문화, 노동자연대, 녹색교통운동, 녹색연합, 대안교육연대, 동아시아탈원전자연에너지네트워크, 동해안탈핵천주교연대, 두레생협연합회,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언론시민연합,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방사능시대우리가그린내일, 보건의료단체연합, 불교환경연대, 사회민주주의센터, 사회진보연대, 삼각산재미난학교,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새날희망연대, 생명살림연구소, 생명평화마중물, 생태지평, 성미산학교,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시민평화포럼,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서울아이쿱생협,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에너지나눔과평화, 에너지전환, 에너지정의행동, 에코붓다, 에코생협, 여성민우회, 여성환경연대, 영광핵발전소안전성확보공동행동, 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영덕핵발전소반대포항시민연대, 원불교환경연대, 의료생협연합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학생행진, 정치소비자연대, 차일드세이브, 참교육학부모회, 참여연대, 천도교한울연대,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청년초록네트워크, 초록교육연대,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태양의학교, 평화를만드는여성회, 하자작업장학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YWCA연합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살림연합회, 합천평화의집, 핵발전소확산반대경남시민행동, 핵없는세상,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 핵없는세상을위한의사회, 핵으로부터안전하게살고싶은울진사람들, 행복중심생협연합회, 환경과공해연구회,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일, 2016/04/2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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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초청강연 후기

 

- 권오훈 회원

 

6월 25일 열린 민변 6월 월례회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초청강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민변통일위원회에서 주최한 이번 강연에서는 6. 15. 선언 15주년을 맞이하여 남북 관계의 현황과 과제에 대한 통일 문제 전문가 정세현 전 장관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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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1993년 문민정부 당시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 1998년 국민의 정부 당시 통일부 차관, 2002년 참여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면서 북한과의 장관급 회담 등 북한 문제에 관한 주요 실무를 직접 담당한 바 있습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장관급 회담 당시 남북 고위급 인사들의 발언 내용을 비롯하여 공동 선언에 대한 협상 과정 등 고위급 회담 당시의 뒷이야기들,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향후 예측 등을 정세현 전 장관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3명의 대통령이 진행한 통일 정책을 모두 수행한 정세현 전 장관은 통일 정책에 있어서는 김영삼 대통령 당시의 정책이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당시의 정책이 큰 차이가 없으며, 바람직한 통일 정책은 결국 북한과의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강조 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통일 정책의 핵심은 모두 6. 15. 선언에 담겨 있으므로, 진보나 보수를 불문하고 6. 15. 선언의 이행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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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통일 정책은 단순히 한반도에 있는 남북한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열강들의 치열한 정치, 외교적 대립 안에서 이해되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현재 미국과 G2를 형성하려 하고 있으며, 군사, 경제적으로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로도 외연을 넓히려 하기 때문에,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북한의 문제를 쉽사리 미국 및 일본 등에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따라서 남한도 중국, 미국 나아가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국들과의 외교적 조율을 통해 통일 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이러한 상황을 배제하다가는 통일 문제에서 주체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벌써 6. 15. 선언 15주년을 맞이했지만 통일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한반도 정세는 남북한 통일을 제외하고 논할 수가 없는 만큼, 통일에 대한 한국 정부, 나아가 국내 전문가들의 주체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정세현 전 장관의 강연을 통해, 남북 문제에 대해 다시금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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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 통일위원회에서는 남북법제팀, 국가보안법 연구모임 등 통일 관련 활동을 통해 북한 및 남한의 관련 제도를 이해하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통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회원 분들의 많음 참여 부탁 드립니다.

금, 2015/07/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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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 교수(고려대 행정학과,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저자) 초청

특별 강연 후기

 

- 김종환 회원(변시 2회)

 

 

‘아이쿠!’

월례회 강연 후기 작성을 부탁 받았을 때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생각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집중을 했어야 하는데…’라는 후회도 들더군요.

그렇지만 많은 깨달음을 주고 문제의식을 일깨우는 강연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제 소감을 말씀 드려 보려고 합니다. 질문/토론까지 2시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짧은 지면에 모두 요약하는 것은 제 능력 밖의 일이어서 제가 흥미롭게 느꼈던 부분을 위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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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알려져 있듯,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경제는 1차산업->2차산업->3차산업으로 그 중심이 이동하게 됩니다. 제조업 중심의 2차산업은 그 속성상 농어업과 같은 1차산업보다 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2차산업 중심의 경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2차산업이 생산성이 높다는 점은 기술이 발달할수록 2차산업은 더 적은 노동력으로도 같거나 더 많은 생산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2차산업에서 생긴 잉여인력이 서비스업과 같은 3차산업으로 옮겨 가게 됩니다. 문제는 서비스업은 일반적으로 생산성 증가가 2차산업에 비하여 더디다는 점입니다. 서비스업의 낮은 생산성 증가는 임금을 인상할 여지가 적어지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결국, 많은 노동자들이 생산성이 낮아 임금이 낮은 서비스업에 종사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1차산업->2차산업으로의 전환기(산업사회의 발전기)에는 생기지 않는데 이는 보통 2차산업의 생산성이 1차산업보다 높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소득도 증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3차산업이 중심이 되는 탈산업사회에서는 산업사회와 달리 근로빈곤(working poor)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은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서 비정규직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라고 합니다.(현대자동차의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과 맥도날드의 알바생을 자르는 것 중 어느 쪽이 쉬운지를 생각해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 결과, 탈산업사회는 낮은 경제 성장률과 질 낮은 고용(높은 실업률)이라는 양대 경제 문제를 떠안게 됩니다. 여기에서 복지 제도 확충의 필요성이 생기게 됩니다. 산업사회에서는 복지제도가 노령, 질병, 실업에 대한 대비를 중심으로 마련되는 것으로 충분했지만 워킹푸어가 대거 등장하게 되는 탈산업사회에서는 일하는 빈곤층을 위한 복지제도 강화가 중요해집니다. 특히 일하는 빈곤층과 관련하여 복지의 사각제도에 있는 청년층에 대한 복지 확대도 절실하다고 합니다. 복지제도의 강화는 복지인력 고용을 통해 사회 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여 실업률을 낮추는 장점도 가지므로 일거양득의 효과도 가집니다.(이와 관련하여, 김태일 교수님은 국가가 아닌 가족이 보육, 간호 등의 책임을 떠맡는 일은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비판하셨습니다.)(저 역시, 최근 가장 고용 증가 속도가 빠른 부문이 사회복지 영역이라고 들은 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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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복지 강화를 위한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 것인가? 교수님은 한국의 세율이 여전히 낮은(법인세뿐만 아니라 소득세도 마찬가지) 상황에서 복지 강화를 위하여 증세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보시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와 관련, 교수님은 노무현 정권 말기에 흑자재정 상태에 이르렀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재정 적자가 커지고 있는데 이것이 복지 제도의 확충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감세정책이 주된 원인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셨습니다. 증세와 관련해서 토론 시간에 부자증세와 보편적 증세 중 어느 쪽이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교수님은 부유층의 탈세를 막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복지제도 확충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므로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표명하셨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보시는 듯 했습니다.

 

강의를 듣고 지금의 저성장과 고실업이 범지구적 현상이고 피할 수 없는 트렌드라는 교수님의 지적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문제는 ‘헬조선’이 아니라 ‘헬지구’라는 말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수님은 서비스업의 경우, 한 단위직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수가 적으므로 파편화된 노동자들이 조직화되기 어려워 노동조합의 힘이 약화되고 따라서 노동자의 권익이 위협을 받게 된다고 언급하셨는데 그렇다면 이 상황을 탈피하는 추동력은 어떤 세력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진보 운동의 방식으로 이 현실에 대처할 수 있을까? 저로서는 답을 찾기 어려운 많은 의문과 우려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런 상황일수록 ‘시혜’ 개념의 복지가 아닌 경제발전과 사회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복지제도 강화가 필요하다는 교수님의 논지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세’에 대하여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많은 국민들에게 ‘내가 낸 세금이 나를 위해 쓰인다’는 신뢰를 통해 증세에 대한 동의를 얻어 낼 방법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이에 대해서는 뒤풀이 자리에서도 논의가 이어져서 증세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매우 치밀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유익한 강연을 들을 기회를 주신 김태일 교수님, 조세재정팀장 조수진 변호사님 그리고 후기를 통해 강연 내용을 돌아 볼 기회를 주신 (처음에는 살짝 귀찮았습니다만 곧 반성했습니다^^) 이유진 간사님 및 사무처 다른 간사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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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4/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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