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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첫 단추를 잘못 끼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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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첫 단추를 잘못 끼웠는가?

admin | 금, 2020/10/30- 02:21

서해상의 이번 공무원 피살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확인받아야하는 인식적 범위만도 크게 세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실체적 진실규명문제이다. 월북이냐, 아니냐. 시신을 불태웠느냐, 아니냐가 그 쟁점이다.

둘째는, 한반도에서 종전선언과, 더 나아가 평화협정 체결이 왜 중요한지가 명백히 가름된다하겠다.

셋째는, 인식이 위 ‘첫째는’, ‘둘째는’, 거기서 절대 멈춰 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줬다. ‘첫째는’, ‘둘째는’의 상황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원인이 바로 ‘셋째는’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분단체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숙명의 문제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달리는 이 분단체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또다시 우리는 언젠가 제2의, 제3의 일촉즉발의 위기정세를 계속 목도할 수밖에 없다.

분단체제는 그렇게 한반도에서 진정한 생명안전도, 종전선언도, 평화체제구축도 가둬놓는다. 분단체제하에서 평화가 관리되어질 수 있다는 것도 허구로 만들고, 분단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평화는 절대 불가능을 안내한다. 오직 평화담론체계(철학)에서 벗어나 분단극복을 전제한 평화체제수립에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이 글은 그 전제하에 시작된다.

이제까지 보여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통일 없는 평화’정책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이는 대중에게 ‘통일’ 하면 차근차근 분단체제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통일 없는 평화’가 가장 현실적이고 세련된 대안인양 착각한 것과 같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이 정부, 혹은 정당 담당자 및 담지자들이 갖고 있는 뿌리 깊은 반(反)북, 혹은 대북 우월의식의 결과이다.

그 결과가 역대 어느 민주당 정권보다도 많은, 3번의 정상회담을 이뤄냈으나 ‘사실상’ 파산된 남북관계는 회복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미국 때문에 그렇다고, 트럼프 때문에 그렇다고, 그렇게 미국과 트럼프 탓을 할 수도 있겠으나, 그 모든 것이 미국 탓일 수만은 분명 없어 보인다. 훨씬 더 이 정부와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능력과 의지 탓이 크다.

첫째, 미국의 견제와 압박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으나, 과거 DJ정부 때도, 참여정부 때도 있었다.

둘째, 그럼으로 그 변수‘첫째’로 남북 간의 약속 미(未)이행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대신, 역설적이게도 이 정부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셋째, 어쨌든 결과적으로 합의문을 내왔다면 이유불문 무조건 이행을 해냈어야 했다. 사인(私人)간의 약속도 함부로 깰 수 없거늘, 하물며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을 전 세계인과 7천만 겨레가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게 했거늘 그걸 이행하지 않는다? 그 어떤 변명과 합리화과정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해서 미국 뒤에 숨어 미국핑계로 약속 불이행을 정당화하고자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이 정부의 ‘비겁한’ 몸짓이다.

어디에서부터 그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졌을까?

첫째는, 이 정부 최고 수장인 문 대통령 자신의 대북철학 부재에서 출발한다.

문 대통령은 2018년 7월 예의 그 <신 한반도평화비전(베를린구상)>을 발표하면서 북을 향해 ‘체제를 보장할 테니 대화에 나서라’고 했다. 불필요한 역린(逆鱗)을 그렇게 건드렸다.

또 다른 예는,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2018.3.21.)

남북 간 평화공존을 강조한 것으로 믿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따로 또 함께(2국가 2체제)’로 해석할 여지가 남아서 남북 평화공존체제를 주창한 것과도 같다. 맥락을 빼고 직설하면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는 의지보다는 분단체제를 인정하고, 그 토대위에서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는 반(反)통일정책이다.

둘째는, 이 정부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보다 더 후퇴한 대북정책에서 그 원인이 확인된다.

하나,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국정좌표에 ‘통일’이 없다.

▶사실상 통일정책은 제로, 아무도 모르는 통일국민협약 추진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통일외교안보분야에서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3대 전략, 16대 국정과제(아래 첨부된 그림표 참조)는 아래와 같은데, 그 중 겨우 94번째에 ‘통일 공감대 확산과 통일국민협약 추진’이 있다. 그렇게 있으나 사실상 통일의 ‘통’자가 없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100대 과제 중 통일의 ‘통’자 들어가는 국정과제는 이 94번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국정과제에서 ‘사실상’의 목표인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은 선(先)비핵화전략에 남북관계를 종속시키는 결과 낳아

남북관계와 비핵화문제는 서로 상관성이 있지만, 차별성과 독자성도 분명 있다.

어떻게?

아시다시피 북핵문제는 남북 간 적대관계에서 출발된 문제라기보다는 ‘북미 적대관계’산물이다. 그럼으로 남북관계 문제를 북미관계 문제인 북핵문제 입구에 포박시켜 놓은 것은 ‘옳지’않은 전략(접근법)이 된다.

둘, 한반도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남북미의 문제이다. 하지만, 통일문제는 민족내부의 문제이다. 즉, 남북문제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남북문제를 풀어갈 때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문제의 핵심사안인 핵문제를 굳이 입구에 배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문제를 출구가 아닌, 입구에다 딱 갖다놓으니 남북문제가 절대 풀려질 수가 없다.

셋, 백번양보해 문재인 정부의 선평화체제이행론을 수용한다하더라도 남는 문제는 여전하다.

다름아닌, 그 입구에서 얘기되는 비핵·평화도 통일로 가기위한 비핵·평화라기보다는 오직 전쟁방지를 위한 군사적 평화담론범위를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언감생심 통일얘기를 할 수가 없다.

예는 아래와 같다.

“~나와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강조, 필자) 평화입니다.(<신 한반도 평화구상> 발표문 중에서)”라는 워딩도 결국은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6.15)선언 첫머리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고 밝히고, 또 선언 2항에서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해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로 발전시킨다고 명확히 하고 있으나, 문 대통령은 그러한 합의사항을 수행할 의사가 없다.

결론적으로 위 ‘하나’, ‘둘’, ‘셋’은 입구가 아닌, 출구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 즉 북핵문제를 입구에서부터 버티게 했으니 남북문제가 절대 풀려지지 않는다. 그 진전-북핵문제 진전 없는 남북관계, 분단문제, 통일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셋째는, 지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합의해놓고도 미국의 내정간섭 기제인 한미 워킹그룹을 생성시켜 그 합의를 무색케 했다. 9월에는 ‘동맹대화’까지 신설했다. 이쯤 되면 제2의 을사늑약이 미국과 체결된 꼴과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추진되었던 이산가족 상봉 및 식량지원(의료품 포함) 등도 기대만큼 충분히 추진되지 못하였다. 정치적 문제도 아닌, 인도주의적 문제인데도 적폐정부보다 더 못한 결과를 낳았다.

상징에 박근혜 정부가 촛불민심을 호도하기 위해 조작해낸 북경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이 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아니,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또 있다. 유엔 제재와는 별개로 전임 정권들의 ‘과도한’ 행정명령에 의해 이뤄진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도 복원시켜내지 못한다. 이는 이 정부가 말만 꺼내면 자신의 정부가 촛불의 토대위에 있다고 하면서 바로 그 촛불에 의해 축출된 적폐정부들의 분단적폐정책 하나도 청산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치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그걸 하지 않는다.

넷째는, 통일부가 ‘통일’을 얘기하지 못한다.

통일부가 ‘통일’을 얘기하지 못한다? 참 서글픈 현실이다.

부(部)는 집행단위를 뜻하다. 위원회와 같이 의견개진이나 의결하는 곳이 아니다. 최고통치권자의 철학과 그 정부의 국정과제에 대해 책임지고 집행하는 단위이다.

그런 통일부가, 그것도 수장인 장관이 강연이나 하러다니고, 그것도 평화얘기, 경제얘기(‘작은 교역’), 상황관리 얘기만 하고 있고, 또 이러저런 민원을 듣고(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검토해보겠다’이렇게 사실상의 NO하는 그런 부서의 수장 자리로 전락되어있다면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또 작금의 상황을 백번양보해 통일부를 이해한다하더라도 3대 전략, 16대 국정과제 중 유일하게 ‘통일’이 들어가는 것이 94번째에 해당되는 ‘통일 공감대 확산과 통일국민협약 추진’의 경우이다. 그렇다면 이것 하나만이라도 주무부서 답게 정말 열심히 추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출범 3년을 넘긴 지금, 추진되고 있다는 보도나 ‘소문’의 ‘소’자도 듣지 못한다.

대신, 통일부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것은 귀를 의심할 정도로 ‘전쟁반대’, ‘신경제지도’, ‘작은 교역’, ‘신평화비전’, ‘북핵해결’, ‘공동 코로나 방역’ 등 외교부나 국방부, 보건복지부, 경제관련 부처의 장들의 입에서 나와야 하는 워딩들만 듣고 있다.

그러니 일각에서는 통일부가 전쟁반대部, 분단유지部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거나, 존재감이 거의 0에 가까운 있으나 마나한 식물 집행단위라고 조롱한다.

자기 정체성과 위상정립이 절실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반도가 지정학적 숙명을 갖듯이, 분단도 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을 반드시 갖는다.

왜냐하면 분단으로 인해 불완전한 국가주권이 형성되어 있고, 국가구성원인 민족이 대립과 갈등으로 국력이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분단국가는 필연적으로 통일과 비례하지 않는 평화가 있을 수 없게 된다.

즉, 남북관계가 진전될 때만이 평화도 앞당겨 질 수 있다는 연관과, 통일의 진전 없이 평화 없고, 평화진전 없는 통일진전도 없다.

그럼으로 평화·통일정책은 수례의 두 바퀴와 같다. 절대 한쪽 바퀴로만 굴러갈 수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정부는 ‘평화’라는 한 바퀴로만 수례를 굴리려 하고 있다. 그러니 그 평화마저도 제대로 굴러 갈 수 없고, 악순환만 된다.

빠져 나와야만 한다.

가. 핵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시라. 북핵문제가 제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한반도평화체제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양보하더라도 한반도에서의 비핵화는 평화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나. 한반도문제는 평화의 관점으로, 남북문제는 통일의 관점에서 정책입안을 다시 짜야 한다. 즉, 한반도문제의 핵심은 평화체제와 비핵화이지만, 통일문제에 맞닿아 있는 남북관계는 민족공조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다.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연계시키지 않아야 한다. 다시말해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미국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4.27,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이 합의한 ‘자주’선언이 그 의미이다.

어떻게 YS보다도 못한 (촛불정부의) 대통령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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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양국체제적 발상을 가로막아왔던 심리적 억압 기제는 크게 외부에서 비롯된 것과 내부에서 비롯된 것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두 개의 억압기제는 일단 겉보기에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외적 억압은 상대를(즉 남은 북을, 북은 남을) 부정하는 쪽으로 작용한 반면, 내적 억압은 반대로 상대를 부정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분석해보면 이 두 개의 계기가 역설적인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강렬한 ‘분단(부정)의식=내적 억압’이 결과적으로 남북 두 국가 간의 적대를 심화시켜 국가기구의 외적 억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칸트의 정언명령이 곧잘 그러하다고 하듯, 당위는 그 당위가 강할수록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분단의식에 내포된 당위, 즉 분단부정의 당위 역시 그러했다. 남북은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는 당위는 과연 어느 정도나 실제로 남북이 하나로 되는 데 기여했을까. 분단사에서 결정적 사건인 6·25 전쟁부터 생각해보자. 통일의 당위는 당시 남북 모두 하늘을 찌를 듯 강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단의 고착이었다. 분단부정, 즉 통일에 대한 열정의 강도(强度)는 전쟁의 참혹도와, 그리고 그 결과로 생긴 분단의 고착도와 정확히 비례했다. 그때 심어진 적대와 원한을 아직까지도 다 지우지 못하고 있다. 통일을 외칠수록 통일에서 멀어지고, 분단극복을 외칠수록 분단현실이 강화되는 역설이 바로 2016년 겨울의 촛불 직전까지도 강력하게 작동했다.

당위의 정언성이 강하고 이념적일수록 그 당위의 실현을 저해하는 반대물, 장애물에 대한 부정과 억압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한반도에서 분단부정의 당위는 고도로 이데올로기적인 미소 냉전의 대립구조 안에서 작동했다. 따라서 그 당위의 정언성이 강해질수록 이데올로기적 순수와 오염의 이항 대립구도 역시 극도로 첨예해진다. 남과 북은 서로 전쟁을 한 군사적 적이자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적이다. 적은 휴전선 저 밖에도 있지만, 더욱 위험한 적은 내부의 적이다. 따라서 남의 체제는 내부의 적인 ‘빨갱이’를 탐색하고 제거하는 고도의 정화 기계이고, 북의 체제는 또한 내부의 적인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의 끄나풀, 간첩’을 색출하여 말살하는 고도의 검열 장치이기도 했다. 이 정화와 검열의 장치는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마음과 뇌까지를 점유하여(‘내 귀의 도청장치’) 그 지배를 완성한다. 이로써 분단의 골은 인간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까지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전면화된 분단체제는 커다란 고통과 함께 분단 현실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비판의식 역시 또 하나의 분단부정의 정언성에 기초한 당위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비판운동이 두드러지게 전개된 곳은 재야, 야당,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한국이었다.

한국의 역대 독재정권은 이러한 비판을 ‘이적’ ‘용공’ ‘친북’으로 몰아 탄압해왔다. 이들이 통치체제를 비판하면서 주장하고 있는 분단극복, 통일이란 결국 대치하고 있는 적의 편에 동조하는 통일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상황은 정치체제의 차이만 있을 뿐 남과 북에서 동형적으로 진행되어왔다. 분단체제란 이러한 분단체제 비판 세력을 식량으로 먹어치우면서, 즉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탄압하면서 자신의 몸체를 괴물처럼 더욱 키워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독재정권이 비판 세력을 ‘적’으로 상정하고 탄압하는 한, 극악한 탄압을 당하는 비판 세력 역시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독재정권을 ‘적’으로 상정하고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에 독재정권은 비판 세력이 자신을 ‘적’으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이적단체’에 불과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변해왔다. 이로써 상호를 적으로 간주하여 투쟁하는 상승적 순환 구조가 남과 북의 정권 사이에서, 그리고 남 내부와 북 내부 각각에서 형성되고 교차하면서 가속도를 얻어 작동한다.(이 책, 153쪽)

결국 분단체제란 분단의 부정, 즉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를 재생산하는 기묘한 체제였다. 이 기묘한 작동논리는 2중의 차원에서 전개된다. 먼저 남북의 분단체제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체제의 목적이 분단의 극복이다. ‘조국통일’, ‘북진통일’, ‘흡수통일’, ‘붕괴통일’, ‘통일대박’, 매한가지다. 모두 분단을 부정하고 자기 중심의 통일, 즉 ‘분단의 극복’을 표방한다. 이렇듯 분단체제가 분단을 부정하면 할수록 남북 양측에서 서로에 대한 의심과 대립과 적대의 힘, 즉 분단의 장력(張力)은 더욱 팽팽하게 당겨지는 물리학이 성립한다. 그러나 분단체제의 자기생산력이란 이것만이 아니다. 이렇듯 자기생산성을 갖는 분단체제의 기득 권력을 비판하고 맞서는 힘 역시 ‘분단극복’을 표방한다. 분단을 극복해야 분단체제가 종식될 것이니 당연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단체제는 바로 이렇듯 ‘분단체제극복’을 부르짖는 세력을 기다렸다는 듯이 체제비판 세력, 내부의 적, 간첩으로 낙인찍어 잡아들인다. 수많았던 기획된 간첩사건, 체제전복사건, 내란선동사건들이 그러했다.

분단체제의 적대적 장력은 이렇듯 서로를 외부·예외로 간주하는 남북 간에 형성될 뿐 아니라, 바로 남북의 내부에 외부·예외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겹2중’으로 형성된다. 이 ‘겹2중’이 맞물려 돌아가는 동력 구조가 분단체제다. 내부에 외부를 설정하는 이 ‘내부 적대’의 장치 마련을 통해 ‘외부 적대’의 동력을 증폭시키는 매커니즘이다. 분단체제란 이렇듯 강고할 뿐 아니라 교묘한 자기생산 – 재생산체제다. 70여 년이나 생명을 이어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애초에 문제는 분단을 부정하는 당위의 주체가 하나일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분단부정의 당위는 무엇보다 우선 분단부정의 또 다른 당위와 생사존망의 대결 상태로 빠질 수밖에 없다. 분단부정의 당위가 또 다른 분단부정의 당위를 부르는 구조였다. 이제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은 반복적 순환 사이클로 요약할 수 있다.

분단부정의 당위 → 남북 적대의 심화 → 분단독재체제의 강화 → 분단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의 강화 → 분단부정의 당위의 강화

이 순환은 자꾸만 반복된다. 피하고 싶은 불쾌한 증상을 자꾸만 되풀이하는 반복강박과 닮아 있다. 이처럼 철저하게 외부와 내부를 완전히 포괄한 분단구조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위가 강할수록 반대의 결과를 낳는다는 정언명령의 역설은 분단체제 70년의 현실로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분단을 부정할수록 분단이 고착된다는 ‘분단(부정)의 딜레마’는 애초에 둘임을 부정했던 데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 딜레마를 끊으려면 둘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가 되자고 하면 오히려 하나가 되자는 둘이 우선 분명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고 애당초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의 발단이 되어왔다. 둘임을 인정하고, 하나가 되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 양국체제다. 이것을 하지 못하고 ‘분단(부정)의 딜레마’에 빠져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미 너무나 컸고 길었다. 북을 철저히 부정하면서 ‘통일대박’과 ‘종북몰이’를 양 손에 들고 휘둘렀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의 경험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 촛불혁명은 유신체제로 되돌아가려 했던 총체적 종북몰이, 블랙리스트 소동을 종식시켰다. 촛불혁명 이후 이 나라의 민심은 마치 긴 악몽에서 깨어난 듯 새로운 눈으로 현실을 보고 있다. 그리고 그 힘에 기초하여 2018년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선언, 평양 선언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어 대한민국 대통령이 평양에서 평양 시민들 앞에서 대중연설을 하였고, 머지않아 서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 시민들을 만나는 날도 올 것이다. 한 민족의 두 나라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통일로 가는 길을 준비하는 길로 접어든 것이다. ‘코리아 양국체제’, 다시 말해 ‘한 민족 두 국가의 평화체제, 공존체제’가 이미 현실로 시작된 것이다.

 

양국체제의 첫 번째 역사적 계기: 반쪽국가의식에서 양국의식으로

그렇지만 양국체제적 인식이 오직 촛불혁명과 판문점·싱가포르 선언을 통해서만 처음 생겨났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큰 변화에는 반드시 그에 선행하는 역사적·예비적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반에 연속적으로 벌어진 대형 사건들이 그러했다. 1987년의 민주항쟁과 1989~1991년 사이의 소련·동구권과 미소 냉전체제의 붕괴, 한소·한중 수교, 그리고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교환으로 이어진 초대형 변화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분단체제의 지반을 처음으로 크게 흔들었다. 세계 판도 전체가 크게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변화 속에서 분단의식도 크게 흔들렸다. 분단의식은 ‘반쪽의식’이기도 하다. ‘반쪽만으론 온전하지 못하다’, ‘나뉜 반쪽은 합쳐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생각이다. 반쪽의식에서 양국체제 발상은 나올 수 없다. 양국체제는 두 코리아를 각각 온전한 하나의 국가로 보기 때문이다. 온전한 국가란 ‘내부의 정당성’과 ‘외부의 인정’이라는 양 측면을 모두 갖추어야 성립한다. 남북이 이 두 근거를 어느 정도 갖추기 시작한 최초의 계기는 1991년의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교환이었다. 이 두 사건은 1987년부터 시작된 세계적 대변동의 연쇄가 낳은 종합적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세계사 차원에서는 미소 냉전구조의 붕괴가 주원인이었고, 국내적으로는 87년 시민항쟁이 열어놓은 민주화 지향의 강력한 여론이 있었다.

분단의식, ‘반쪽의식’으로 보면 남북의 국가는 ‘반쪽(만의) 국가’일 뿐이다. 우선 이러한 ‘반쪽국가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면 양국체제 발상은 생겨나기 어렵다. 그러나 반쪽국가의식에도 그만한 현실의 근거가 있었다. 냉전시대 남북 국가의 내적·외적 정당성 구조 자체가 온전하지 못하고 반쪽짜리로 보이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외적 측면부터 살펴보자. 어떤 국가에 대한 외부의 인정이란 국제사회의 인정, 외국과의 수교관계로 표현되는데, 냉전시대 남북의 국제적 인정, 수교관계는 실제로 ‘반쪽짜리’였다 할 수 있다. 한국(ROK)은 미국 영향권의 국가들과만, 반대로 조선(DPRK)은 소련 영향권의 국가들과만 수교하고 있었다.8 나머지 반쪽의 인정이 없었던 것이다. 남북 모두 외부 세계의 절반으로부터만 인정받고 있다는 ‘반쪽국가의식’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내적으로도 남북은 ‘반쪽국가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1948년 두 정부의 수립 이래 남북은 자신이 통일을 목적으로 세워진 일종의 ‘경과적인 국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자신만이 적통자(嫡統子)고, 자신이 주도하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두 국가 모두 자신이 이미 완결되었거나 완성되어 있는 국가라고 내세울 수는 없었다. 스스로 ‘반쪽국가’이고 따라서 ‘반쪽만의 정당성을 가진 국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반쪽국가의식’이 강할수록 통일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그래야 ‘반쪽국가’의 정당성이 충족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측이 모두 통일을 내세우고 자신만이 통일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통일은 말은 늘 좋지만 실제 의도는 상대를 소멸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냉전시대 남북의 통일정책들은 언어로 하는 전투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총탄을 교환하듯 오갔던 통일정책, 통일방안들이 오히려 통일을 멀게 했다는 것은 역설이라기보다 당연한 결과였다.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이러한 관성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유엔 동시가입과 기본합의서 채택을 주도했던 것은 한국의 노태우 정부였다.9 소련·동구권 붕괴 이후의 유리한 상황에서 상대를 인정해주더라도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북은 곤란한 상황이었다. 동구권 붕괴 이전까지 북은 유엔 동시가입을 반대해왔다. 통일 주도권이 자신의 편에 있다고, 자신만이 ‘조선반도’에서 유일하게 정통성을 가진 국가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정통성 없는 ‘남조선’ 정부를 굳이 유엔 동시가입을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해줄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러나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 중심의 ‘진영’이 무너져 국제무대에서 남과 북의 지지 균형은 한국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여기에 더해서 87년 개헌에 따라 대통령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한국 새 정부의 정통성을 (야권분열에 따라 군부 출신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 어려웠다. 이제 북은 예전처럼 한국 정부를 무작정 반대하거나 무시할 수 없었다. 체제 유지를 위한 새로운 방식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단국의 유엔 동시가입은 1973년 동서독의 선례가 있다. 그러나 동서독 상황이 1990년 급속한 흡수통일로 마감되었다는 사실이 북으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 한국과 수교하고(1990년) 중국이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지지하자(1991년 5월) 북도 입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동서독의 경우 1973년 유엔 동시가입과 1990년 흡수통일은 별개의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과 흡수통일을 혼동할 이유가 없다. 북은 북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을 하고 있었다. 그 판단의 중심에 물론 김일성 주석이 있었다. 불가피한 일이라면 오히려 이를 자신의 체제 보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살려보려 했다.

실제 유엔 동시가입이 북에 대한 국제적 공인을 담보하여 일방적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생각할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핵무기 철수 등 미국으로부터의 군사적 양보도 요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남북 대화가 최고조에 올랐던 1991년 하반기에는 다음 해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 취소가 결정되었고, 미국은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를 철수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로 인해 연말에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이뤄질 수 있었다. 북은 결단을 했고, 이로써 유엔 동시가입은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남북은 유엔 회원국이 되었다. 유엔 회원국은 회원국 상호의 주권을 인정하고 서로 침해하지 않는다는 유엔헌장을 준수해야 한다. 따라서 일단 형식 차원에서라도 ‘두 개의 코리아’가 온전한 국가로 공인된 것이다. ‘반쪽국가’가 아닌 ‘온쪽국가’로 인정되었고, ‘반쪽의식’ 자리에 ‘양국의식’이 생겨났다.

이는 <남북기본합의서>로 다시금 분명히 표현되었다. 3장 25조에 이르는 기본합의서의 핵심은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에 있다. 과거 냉전시대에도 주도권 경쟁 차원에서 그와 유사하거나 또는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구절들을 사용한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격과 방어 차원의 언어 공세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분명한 합의였다. 크게 달라진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해(利害)의 공통기반이 생겼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많았지만 당시 양측은 이 합의를 통한 공존 기조의 지속에 상당한 기대와 믿음을 공유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모두 크게 흡족해했다. 애초부터 각자의 적대적 체제를 오히려 강화하려는 목적을 숨기고 서로가 일시적으로 이용하였을 뿐이던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 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이 합의로 양국의 자체적·내적 정당성 근거 역시 분명 ‘반쪽국가’에서 각자가 충족된 정당성을 갖는 ‘양국체제’ 쪽으로 이동했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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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1/2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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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20/03/3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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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의 세 단계

2016년 10월 29일 시작된 대한민국의 ‘촛불집회’는 3차째인 11월 12일의 100만 집회에서부터 ‘촛불혁명’으로 전환되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자진퇴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함에 따라 이때부터 촛불광장의 요구가 국민에 의한 ‘하야’와 ‘퇴진’으로 분명해졌고 이 요구를 여러 미디어에서 받아 ‘촛불혁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듯 혁명적 요구를 장착한 거대한 대중행동은 이어 4차(11월 19일, 95만), 5차(11월 26일, 190만), 6차(12월 3일, 230만) 집회를 통해 국회의 대통령 탄핵 가결을 압박했고, 결국 국회는 12월 9일 찬성 234명, 반대 56명으로 대통령 탄핵을 가결했다. 이 ‘합헌적 혁명’의 경로는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 결정을 승인하고 대통령에게 파면 선고를 내림으로써 그 1단계가 완료되었다.

대통령 탄핵 – 파면 이후 촛불혁명은 다음 단계인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5월 9일 치러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41.08퍼센트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국회 내 탄핵을 주도했던 야3당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68.66퍼센트(국민의당 21.41퍼센트, 정의당 6.17퍼센트), 촛불의 압박 아래 탄핵 지지로 돌아선 새누리당 이탈 세력의 지지율(6.76퍼센트)을 더하면 75.42퍼센트에 이른다. 유권자 4분의 3 이상이 탄핵지지 정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가운데 제1야당의 후보가 여유 있게 당선되어 정권을 안정적으로 교체한 이 대선 과정이 ‘합헌적 혁명’의 제2단계라 할 수 있다. 대선 이후 ‘촛불정부’가 들어선 이제 합헌적 혁명으로서 ‘촛불혁명’의 제3단계가 진행 중이다. 이 제3단계를 온전히 마무리하였을 때 촛불혁명은 비로소 완성·완수되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은 이렇듯 세 개의 단계를 경과하여 진행 중인 촛불혁명의 지향과 목표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목표와 지향은 무엇보다 우선 이 사건의 역사적 위치, 위상을 객관적으로 점검할 때 비로소 분명해질 수 있다. 그러한 위상이란 한국 현대사 속에서의 위상일 뿐 아니라, 동아시아사, 더 나아가 세계사 속에서의 위상을 포괄하는 것이 되어야 하겠다. 이 혁명이 어디쯤 있는 줄 알 때, 어디를 향해 가야 할지가 분명해진다.

2016~2017년 촛불혁명의 역사적 위상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한국 현대사 차원에서 볼 때 두드러진 점은 이번 촛불혁명이 1960년의 4·19 혁명과 1987년의 민주항쟁에 이은, 대략 30년 간격으로 터져 나온 거대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세 번째 분출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4·19도, 87년 민주화도 각각 이후 30년에 걸쳐 점차 그리고 결국은 강고한 독재로 귀결되고 말았다는 뼈아픈 사실이다. 거대한 민주적 열망을 냉혹한 독재체제가 회수하고야 마는 ‘마(魔)의 순환고리’ 또는 ‘독재의 반복고리’가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이번 촛불혁명도 꼭 같은 순환고리에 포획되고 말 운명인가? 촛불혁명의 완성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이 점을 심각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반복강박 증상과 매우 유사한 이 불쾌한 역사적 순환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질 때, 2016~2017년 촛불혁명의 제1과제는 바로 그 ‘마의 순환고리’를 분명히 끊어내는 것에 맞추어지게 된다. 반면 이러한 반복성과 그 뿌리 깊은 구조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지 못하면 촛불혁명은 다시 한번 자기혼란 속에 퇴행 소멸할 수 있다. 이것이 지난 60년간 한국 현대사에서 두 차례 반복된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의 작동’ 속에서 배울 점이다.

한국의 이번 촛불혁명의 두 번째 역사적 차원은 기존 민주주의 시스템이 세계 곳곳에서 한계와 오작동을 드러내고 있는 상태에서 유독 이를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돌파하는 새롭고 거대한 힘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한국의 촛불혁명에 세계가 놀랐던 이유다. 외국의 여러 주요 언론이 썼던 바와 같이 이번 한국에서의 촛불혁명의 에너지는 더 이상 ‘민주주의 선진국’의 발자국을 뒤따라가는 후발자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체와 퇴행에 빠진 세계 민주주의 상태에 새로운 활력을 일으키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보다 고양된 수준으로 이끌어가는 선도자의 힘이다.

끝으로 필자는 한국 민주주의의 이러한 선도적 에너지가 세계사의 단계가 ‘서구 주도 근대’ 단계를 넘어 ‘후기근대’로 들어서는 상황에서 표출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후기근대의 주요 특징의 하나는 일극중심 문명체제에서 다극균형 문명체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대변동은 커다란 기회와 위기를 함께 수반한다. 한국의 경우 한편으로 정상사회, 정상국가로의 전환의 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전환을 오히려 신냉전 기류의 고조를 통해 모면하려는 흐름이 생겨난다. 현재 북미 간의 비상한 군사적 긴장 고조는 여기서 비롯된다. 이러한 상황을 어떤 방향으로 풀어가느냐에 따라 동아시아만이 아니라 세계 전반의 안녕이 큰 영향을 받게 된다. 20세기적 또는 냉전적 행동패턴, 분단체제적 사고패턴과 과감하게 작별하는 새로운 발상, 담대하고 창의적인 접근이 긴요한 시점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촛불혁명은 한국 현대사에서 30년 간격으로 되풀이 되었던 ‘마의 순환고리’를 확실히 끊어야 하는 목표이자 과제를 가지고 있고, 이러한 목표는 세계사 차원의 거대한 지각변동에서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이 수행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과 깊이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목표, 과제, 역할은 단기적 시야에서는 포착되기 어렵다. 눈앞에서 쉴 새 없이 진행되는 현상에 매몰될 때 촛불혁명의 제3단계는 방향을 잃고, 이 속에서 앞서 언급한 ‘마의 순환고리’는 다시 한번 거대한 작동을 시작하게 될 수 있다.

이 장은 이렇듯 촛불혁명이 놓인 역사적 위상과 여기서 도출되는 목표에 대해 가능한 구체적으로 적시해보려 한다. 그것은 ‘독재의 순환고리 끊기’와 ‘코리아 양국체제의 정립’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 두 목표·과제가 긴밀히 연관된 것임도 이 글은 밝혀 보일 것이다. 이 두 과제의 달성은 진정 ‘체제전환’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고, 그럼으로써만이 이번 촛불혁명은 진정 그 이름에 부합하는 혁명으로 완성될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마(魔)의 순환고리’

4·19와 87년은 대한민국 정치사, 민주주의 역사의 기념비적 봉우리였다. 이제 2016~2017년의 촛불혁명은 이를 잇는 세 번째 봉우리가 되었다. 그러나 앞서 두 번의 봉우리가 세계의 주목과 경탄을 받았던 만큼, 그 역사적 대분출 이후의 역사는 독재의 깊은 골짜기로 거듭 굴러 떨어지곤 했다. 그리하여 ‘민주의 대분출과 독재로의 회수’라고 하는 매우 불쾌한 사이클이 한국 정치사에 30년 주기로 반복되어왔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실이 분명하게 그리고 널리 인식되게 된 데는 박근혜 정부의 등장과 귀결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이전 이명박 정부 출범은 참여정부 실패의 결과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독재 회귀의 큰 사이클에 대한 인식이 아직 대중적으로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은 박정희 체제로의 회귀라는 상징성이 강했고, 실제 재임 동안 그러한 회귀가 정부의 공공연한 이념공세의 형태로 추진되었다. 물론 이 사실의 확인은 87년 민주항쟁 이후 30년 사이클의 대미를 박근혜 정부의 유신 귀환 행태가 장식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뿐이다. 우선 박근혜 정부의 독재화 가속 현상은 최근 밝혀지고 있는 바와 같이 이명박 정부 시기의 전방위적 블랙리스트 정책(감시·배체 체제)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 이전 김대중 – 노무현 민주화 정부 10년도 독재 회귀의 큰 사이클을 결코 끊지 못했다. 그 연원은 멀리 87년 하반기 민주화 진영의 분열과 대선 패배로부터 기인하는바, 이 30년의 전체 흐름에 대한 조망은 이 글 4절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박근혜 정부가 대미를 장식했던 독재 회귀의 피날레 현상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부터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과 군 정보기관의 조직적이고 대대적인 선거 개입(이명박 버전의 ‘비상국가체제’의 작동)에 의해 출범할 수 있었다. 이렇듯 국가기관의 대규모 선거 개입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박근혜 정부는 유신체제를 연상시키는 매우 강압적인 방식(박근혜 버전의 ‘비상국가체제’ 작동)으로 종결했다. 그렇게 시작된 박근혜 대통령의 재임 기간은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무능과 불통·불감, 통진당 해체에서 보여준 냉전 극성기의 배제와 억압, 국정교과서 추진에서 보여준 시대착오적인 이념적 강압으로 시종 일관했다. 이러한 오만과 강압은 2016년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전통적 지지층마저 고개를 돌릴 만큼 무제약적인 것이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불통·불감, 억압·배제의 일방 통치와 오만에도 불구하고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은 다가오는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압승하고, 더 나아가 개헌선 이상의 여당 승리에 따른 제2의 유신 개헌 프로젝트가 가동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만큼 신 유신체제로의 회귀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인 것처럼 보였다. 때는 마침 87년 항쟁의 30주년에 임박해 있었기 때문에 87년의 민주주의의 희망찼던 큰 진전과 그 30년 이후 민주주의의 암담한 추락의 대비가 선명해질 수밖에 없었다.

4·13 총선의 결과는 사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렇듯 전혀 예상 밖에 조성된 여소야대의 상황이 박근혜 체제의 유신 회귀 질주를 멈추게 한 것도 아니었다. 총선 이후로도 전방위 블랙리스트 압박과 국정교과서 개정, 사드 배치, 일제 위안부 문제의 종결(소위 대못박기)을 위한 강박적 정책이 집요하고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10월 말 최순실 국정 개입·농단의 구체적 증거가 언론에 폭로되기 시작하면서 급전직하로 진행된 박근혜 정권의 극적인 몰락 역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독선·독주를 해도 철옹성처럼 견고해 보였던 박근혜 지지층을 단번에 해체해버린 11월, 12월의 거대한 대중행동은 자연스럽게 30년 전, 1987년의 거대했던 민주대항쟁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되살렸고, 많은 미디어가 이 대비를 부각시켰다. 1987년 역시 철옹성 같았던 군부독재체제가 그처럼 물러설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러한 경험과 기억의 중복 속에서 한국 정치사의 반복성은 평범한 국민대중의 인식 차원에서도 분명해져갔다.

그러한 반복의 시간에서 희열은 짧고 고통은 길기 마련이다. 희망의 짧은 시간은, 길고 둔중한 망각과 냉소와 자학과 고통의 시간에 묻히고 만다. 실제가 그러했다.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란 그렇듯 짧고 날카로운 희망과 압도적으로 길고 둔중한 절망의 시간의 반복 메커니즘을 말한다. 혹시나 이렇듯 확인된 반복성이 ‘아무리 어두워도 새벽은 또 오고야 만다’는 식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로 도치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중증 반복강박을 연상시키는 이러한 어두운 회귀 구조의 압도적인 불행과 불쾌와 고통에 주목해야 마땅하다. 역사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묘하게도 1960년 4·19, 87년 6월, 2016~17년의 세 개의 봉우리는 30년을 주기로 솟아올랐다. 또한 그 사이에 낀 두 개의 시기(1960~ 1987년과 1987~2016년)의 전개 양상, 즉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장기(長期) 메커니즘’의 작동은 구조적으로 매우 흡사했다. 이 패턴은 극과 극이 대체되는 것으로서, ‘제도 밖의 대중행동이 제도를 변화시키고 점차 보수화되는 제도를 다시금 제도 밖의 대중행동이 변화시킨다’라고 하는 기존 사회변동의 교과서적 일반론과는 매우 다른 특징을 보여준다. 우선 4·19나 87년 6월 대투쟁은 (이번 촛불혁명도 마찬가지다) 반전이 도저히 불가능하여 철옹성 같아 보이는 독재 상황, 즉 독재가 외적 구조만이 아니라 멘탈의 내면까지 깊게 장악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규모와 방식으로 매우 극적으로 분출하였다.

이 글이 주목하는 ‘마의 순환고리’란 이렇듯 정상적인 수준이나 패턴을 넘어서는 지극히 극단적인 독재 수렴 구조의 작동을 말하고, 이러한 극단적 패턴이 반복되는 배후에는 매우 특수한 한반도(코리아)의 상황이 존재한다. 이 강고한 순환고리의 ‘마성(魔性)’은 거대한 대중행동·민주열망이 제도 안으로 수렴되어 제도를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사회변동의 일반론이 작동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행동의 봉우리가 아무리 높고 거대해도 ‘마의 순환고리’ 자체는 끊기지 않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같은 패턴의 ‘독재수렴’이 반복된다.

그러한 ‘마성’의 효력을 마치 영구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한반도적 상황’이란 무엇일까. 2차 대전과 6·25 전쟁 후의 동서(동방/서방) 그리고 남북(코리아) 간의 극단적인 적대적 대립이 지정학적 꼭지점에 2중으로 중첩되어 있는 상황을 말한다. 그로 인해 ‘2중의 독재권’이 중첩하여 증폭하게 된다. 이는 극히 예외적 –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그렇듯 특이해 보이는 국가 독재권의 작동 원리가 근대 국가주권론의 일반론에서 반드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근대 국가주권론의 이론적·이념적 순수형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장 선명한 이론적 표현은, 필자가 아는 한,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에 의해 주어졌다. 그는 근대 국가주권의 핵심 권능과 표징이 국가 내외에 적(=예외)을 설정하는 권한(비상대권)의 독점, 즉 독재권에 있다 하였다.

냉전 시기 이 원칙은 국가 간이 아닌 동서 ‘진영’ 간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한 상황에서 슈미트적 의미의 국가주권의 배타적 권능(=독재권)이 가장 강력하게, 이론적으로 가장 순수한 형태로 표출되었던 곳이 한반도의 남북이었다. 남북의 두 국가가 하나의 주권을 두고 다투는 상황은 남북 상호를 절대적 적(=예외)으로 설정하게 함으로써 남북 각각의 주권이 절대성(=독재권)을 확보하도록 하였다. 진영 간 대립과 분단국가 간 대립이 가장 극단적 형태로 중첩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극단의 상황은 남북 내부에 정상적 정치 경쟁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카를 슈미트가 근대 국가주권 행사의 정화(精華)라고 보았던 최고통치자의 비상대권이 항시적·일상적으로 작동하는 ‘비상(非常)국가체제(permanent emergency state system)’, 그것이 남북한의 국가 상태였다.

한국의 경우 그러한 항시적 비상국가 상태에 파열구를 내고는 했던 것이 4·19였고 87년 6월 항쟁이었으며, 이번 촛불혁명이었다. 비정상 상태에서는 비정상이 정상이고, 정상은 비정상이 된다. 오직 그러한 비상 상태를 정지시킴으로써만 정상은 정상이 되고 비정상은 비정상이 된다. 즉 비로소 ‘정상 상태(normal state)’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현대사에서 세 차례의 민주 분출은 비상국가를 정상 상태로 되돌리려는 거대한 계기들이었고, ‘마의 순환고리’란 그러한 거대한 계기를 다시금 비상 상태로 되돌리려는 ‘마적(魔的) 시스템의 회복력’ 또는 ‘비상국가의 자기회복 시스템’이라 하겠다.

정상 상태란 우선 거대한 민주열망의 분출이 정상적으로 제도화되는 것을 전제한다. 이것이 제대로 된 민주화의 일차적 징표일 것이다. 그러나 4·19와 87년 이후 각 30년은 거대했던 민주열망을 정상적으로 제도화시키는 데 실패했던 시간이었다. 초기 얼마간은 과거 독재기에 비해 유사 민주화가 진행되는 듯 보이지만 이는 표피의 변화에 그치고 점차 비상국가체제의 독재·독점의 힘이 민주의 열망을 분산·둔화·왜곡시켜 결국은 몽땅 삼키고 만다.

한국 현대사에서 그러한 ‘마의 순환고리’가 지극히 강고하다는 것을 제대로 입증한 것은 4·19 이후 30년이라기보다 오히려 87년 이후 30년의 과정이었다. 왜냐하면 4·19 이후 30년은 세계적 동서 냉전이 맹렬하게 진행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비상국가 상태를 근본에서 종식시킨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87년 이후 30년은 동구권 붕괴와 소련 해체를 통해 동서 냉전이 종식됨으로써 한국의 비상국가체제를 강제하는 국제적 구속력이 크게 약화된 역사적 국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비상국가체제는 그 거대했던 87년의 민주 동력을 다시 한번 차근차근 회수하여 다시금 또 다른 독재체제로 회수하고야 말았다. 동서 냉전이 종식되었고 ‘북방정책’을 통한 대소·대중 해빙이 있었음에도 한국의 비상국가체제는 강고하게 지속되었던 것이다.

 

비상국가체제의 작동과 균열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의 핵심에 ‘비상국가체제’가 있다고 한다면, 우선 그 체제의 작동 방식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비상국가체제는 최고권력자의 독재권과 상당히 광범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기득권층과 동맹관계를 통해 작동한다. 최고권력자의 정치적 독재권은 사회 각 부면의 권력과 자원의 독점권·기회획득권을 기득권 상층에게 배타적으로 보장해줌으로써 비상국가의 지배동맹은 성립한다. 이 체제의 위기는 지배동맹의 균열·약화와 국민적 저항이 맞물렸을 때 발생한다.

이번 촛불혁명도 마찬가지였다. 임기 2~3년 차에 들어 (특히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박근혜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한 실망, 회의, 반발이 누적되었음에도 대통령에 대한 30~40퍼센트에 이르는 ‘콘크리트 지지층’은 2016년 10월 말에 이르기까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40퍼센트에 이르던 지지율이 30퍼센트대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4·13 총선 이후였다. ‘친박 독선·독주에 대한 응징’으로 풀이된 총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신에 대한 지지율은 놀랍게도 콘크리트 밑바닥인 30퍼센트대를 굳건하게 유지했다.(아래 <그림 2>)

그러나 이 40퍼센트대에서 30퍼센트대로의 변화 과정에는 지배동맹의 균열과 약화라는 중대한 변수가 끼어 있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일단을 흥미롭게 정리해주는 기사가 JTBC의 최순실의 태블릿 공개 직전인 2016년 10월 23일 자 《미디어오늘》에 “조중동에게 노무현보다 박근혜가 최악인 다섯 가지 이유”라는 제목으로 떴다. 당시 조중동 기자들의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예사롭지 않다고 하면서 그 원인을 풀이한 기사다. 주요 내용은 2014년부터 시작된 ‘비선실세’ 의혹의 각종 보도에 대해 정부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것(그 소송의 주역은 김기춘·우병우다), 언론사 수익원을 (역시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막고 있다는 것, (조중동과 같은) ‘언론사’ 출신을 배제하고 (MBC, KBS와 같은) ‘방송사’ 출신만을 청와대가 애호하고 있다(=감투를 주고 있다)는 것 등이다.

이번 촛불혁명 과정에서 상세히 밝혀진 ‘비선실세’ 건은 이미 2014년부터 ‘문고리 3인방’ ‘정윤회’ 보도로 시작되었고, 2015년 초부터는(대통령 연두 기자회견 이후) 조중동이 한목소리로 대통령이 이 문제를 덮으려 한다고 비판해왔다. 권력과 자원을 조중동, 그리고 그들이 대변하는 사회 기득권층과 공유하고 대통령 개인의 사적 비선실세와만 나누려 하는 행태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었다. 권력 공유에 대한 묵언의 지배동맹, 계약을 위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항의였던 셈이다. 이러한 불만 표출에 대해 청와대는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고 예의 그(=박근혜 전대통령의) 매서운 표현 방식으로 응수했다(2015년 8월 21일).

중요한 점은 박근혜 정부와 조중동은 국내의 여러 이권에 대한 입장만이 아니라 국사교과서 국정화, 대중·대러시아 관계, 유라시아 외교, 일제 위안부 문제 합의 건 등 이념과 국제관계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미묘한 불일치와 마찰을 심심치 않게 보여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2015년경부터 서서히 눈에 띄기 시작하여 2016년 들어, 특히 4·13 총선 이후 빈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신 시절과 다름없는 구시대의 이념과 외교관, 정치행태를 점점 더 강하게 표출함에 따라 지배동맹의 이념 전선에도 균열과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방증하는 사례의 하나로 대통령이 ‘주류 언론’에 대해서조차 이념적으로 지극히 적대적인 언어를 사용했던 사실을 들어본다. 최근(2017. 8. 2) 삼성 이재용 특검 재판에서 나온 이재용 부회장의 증언이 그것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2월 15일 그를 청와대에서 독대하는 자리에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을 언급하면서 “(《중앙일보》 계열 언론사인) JTBC가 왜 정부를 비판하나”라 항의하고 홍 회장에 대해서는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이면 그럴 수가 있나’라며 ‘이적단체’라는 표현까지 썼다”고 하였다. ‘이적단체’란 ‘좌빨·종북’과 동급의, 한국의 비상국가체제가 비판 세력을 말살하고 정치적 독재권을 유지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던 지극히 폭력적인 언어다. 이제 그러한 정치적 비상(砒礵, 극독)을 삼성 – 《중앙일보》라고 하는 한국 보수의 대표적 주류 기관의 수장들을 대상으로 들이밀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지만 객관적인 상황은 국내 자본 그리고 온건 보수의 입장에서도 과거 유신 시절과 같은 강고한 구냉전적 자폐(自閉)와 대결 일변도의 정책이 결코 반갑지 않은 것이었다. 한미 동맹은 유지하되 동시에 중국·러시아를 거쳐 유럽·중앙아시아·중동이슬람권에 이르는 광대한 유라시아 통로에 자유롭게 진입하고 싶은 것이 해외 상대의 사업을 하는 층과 온건 보수층의 일반적인 심정이었다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라도 (이명박 정부 이후) 꽉 막힌 대북관계를 어떻게든 풀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과 대중·대러시아 정책은 이명박 정부 때보다 더욱 경직되어 있어 그런 방향의 유연한 타개를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웠다. 자본과 온건 보수의 입장에서도 불만과 우려가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갔던 것이다.

이렇듯 겉으로는 강고해 보였던 박근혜 체제의 보수동맹은 임기 중반(대략 2015년경)부터 내부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여 2016년 4·13 총선을 계기로 그 균열이 가시화되었고, 결국 2016년 10월 말 이후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백일하에 폭로되면서 정권이 급속하게 침몰하고 말았다. 기적처럼 되돌아온 거대한 대중행동이었다. 2008년 광우병 반대 촛불집회의 열기가 별다른 성과 없이 소진된 이후 심화되는 양극화와 ‘헬조선’의 현실 속에서도 무기력한 패배감과 냉소·자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민심이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다시 크게 경각하기 시작하여 결국 촛불혁명의 거대한 힘으로 되돌아왔다. 그리하여 2017년 5월 촛불혁명의 힘에 의해 새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이렇듯 크게 이완·약화된 비상국가체제를 완전히 역사의 뒷장으로 넘기고 이윽고 정상 상태의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인가. 4·19, 87년 항쟁, 이번 촛불혁명의 공통점은 권력 교체기에 권력 최고층의 도를 넘어선 독주와 권력 남용을 계기로 폭발했다는 데 있다. 기득권층의 일정 부분이 권력에서 소외·이반·이탈하면서 민주화의 요구가 압도적 민심이 되었다는 점도 같다. 그러나 앞서 두 차례의 거대한 대중행동(4·19와 87항쟁)은 비상국가체제를 종식시키는 데 결국 실패했다. 구 권력의 최고 담당층만을 밀어냈을 뿐, 비상국가체제를 작동시키는 구조와 논리, 이념을 종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비상국가체제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미래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마의 순환고리’가 몇 차례의 커다란 타격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부활하고는 했던 것은 우선 한국이 처한 역사적·지정학적 내외 조건의 구조적 강제 때문이지만, 동시에 그러한 강제의 힘을 별 수 없이 수긍하게 된 또 다른 수동적 민심의 (동의가 아닌) 수용이 있었기 때문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문제적이라 하더라도 상당 기간 존속해온 체제에는 나름의 현실 근거가 있게 마련이고, 그렇듯 오래 존속해온 것은 비판이나 반대만으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선 현실이 변해야 하고, 그렇듯 변화한 현실을 정확히 읽어야 하며, 새로운 현실에 걸맞은 분명한 방향 제시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그동안 운명처럼 받아들여왔던 ‘역사적·지정학적 내외 조건’이 크게 변하여 더는 옛 모습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의거했던 ‘비상국가체제’는 변화한 현실과 오히려 크게 부조화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랬을 때 새로운 현실에 맞는 새로운 사회의 방향도 선명해질 것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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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4/0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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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연방의회 의원의 입법 활동서면 인터뷰>

연방의회 바이에른 아욱스부르크 지역구 의원 울리케 바르 (Ulrike Bahr, 사회민주당•SPD) 의원실 답변으로 본 독일 연방의회의 입법과 의원의 역할:
상임위원회 법안 검토보고 및 토의과정을 중심으로

작성자: 지역구 보좌관 크라취(Kratzsch)

 <각 교섭단체는 상임위원회별로 주제에 따라 검토보고 의원을 둔다>

 

1. 연방의회의 한 의원이 공약사안 등과 관련하여 야심적인 법안을 발의하고자 하는 것을 상정하였을 때, 이 과정에서 의원, 의원실, 의회공무원 등이 어떠한 역할로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하는가?

답변:

a) 의원의 역할

바르 의원은 ‘가족위원회’(가족/노인/여성/청소년 위원회 약칭) 및 그 산하 ‘시민연대소위원회’ 상임위원이다. 추가로 보건위원회 및 가족위원회 산하 아동소위원회 대리위원이다(해당 상임위 및 소위 상임위원 궐석 시에 대리).

연방의회 의원들은 다양한 상임위 가운데 적절한 위원회에 배정받음으로써 전문정치가가 된다. 각 원내 교섭단체는 한 상임위 내에 전문 주제에 따라 각각 전문 검토보고 위원을 둔다. 바르 의원은 가족위원회에서 “아동‧청소년복지, 시민연대, 취약아동건강” 사안 등에 대한 전문검토 보고자이다.

법안이 연방의회에 발의되는 것과 관련하여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누가 발의자이고 어느 상임위가 주관 상임위인가이다. 그러므로 바르 위원의 경우, 가족부가 주관상임위이고 해당법안이 바르 의원의 전문검토보고 분야에 해당하는가가 관건이 된다.

대부분의 연정교섭단체의 법안은 해당 부처에서 준비되고, 내각(국무회의)에서 의결되어 의회에 발의된다. 이어서 연정 교섭단체는 법안의 변경 여부에 대하여 토의를 한다. 의원발의법안은 사실상 야당의원들이 발의하는 것인데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바르 의원이 찬성한 동성혼인허용법(민법개정)”을 사례로 본 당과 의원의 역할을 보자면)

연방의회가 열리는 매주 사회민주당(SPD)은 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의원총회를 개최한다. 여기에서 연방의회 본회의를 앞두고 논의될 법안과 의결될 법안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진다. 당에는 연방의회의 각 상임위원회 구성에 상응하는 원내 교섭단체 워크그룹(Arbeitsgruppe/AG)이 존재한다. 각 워크그룹 대표는 여기에서 현안의 내용과 각 상임위원회의 토의 및 표결 결과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이 과정에서 예컨대 바르 의원은 관련 상임위원회와 사회민주당 소관 워크그룹의 논증을 비교하여 어느 입장을 따를 것인지를 결정한다. 당의 표결 권고(당론)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 각 의원은 여기에서 자기 당의 모든 의원과 최고위원회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할 수 있다. 표 분산을 막기 위해서 당론 구속이 존재하는데, 원내 교섭단체는 의원총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해당 워크그룹 대표를 통해 소속의원들에게 표결권고(당론투표)를 전달한다. 하지만 의원들은 법적으로 이에 구속받지는 않는다.

매 상임위원회 회의가 있기 전에 당의 상임위원들은 소속 당 워크그룹과 만나, 상임위 회의에 대비한 논의를 한다. 검토보고자들은 상임위에서 토의될 사안에 대하여 정보를 제공하며, 여기서 의원들은 특정 사안이나 법안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당 소속 워크그룹이 상임위에서 법안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가 조율된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워크그룹이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주도하고자 하면 스스로 법안이나 의안을 작성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연정의 상황에 따라 연정파트너와 조율을 하고 각 교섭단체별 의결을 거쳐 상임위나 본회의에 회부되어야 한다.

검토보고자는 상임위에서 다른 교섭단체에 대하여 자기 교섭단체가 사안에 대하여 어떻게 결정하였는지에 대하여 설명한다. 예컨대 바르 의원의 검토보고 사안인 경우 바르 의원이 워크그룹 및 다른 동료의원과 원내 교섭단체의 제1 대화창구가 된다. 바르 의원은 검토보고에 충실을 기하기 위하여 유관 기관 및 활동가들과 수많은 면담을 진행한다. 물론 비판적 견해도 환영한다. 이로써 자신의 결정이 가능한 현실적이고 정의롭게 내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형성하기 위해서이다. 바르 의원은 교섭단체 내 워크그룹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판단과 평가 및 바람직한 수정사항 등을 다른 위원들에게 전달한다.

 

b) 각 의원의 보좌진

보좌진은 바르 의원을 위해 내용적인 작업을 한다. 문의사항에 대하여 리서치를 하고, (전문가) 소견을 청취하고, 간담회 일정을 준비하며 의원을 위한 현안보고서를 작성한다. 특정사안에 있어 불명확성이 존재하는 경우 바르 의원에게 완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보좌진이 활용할 수 있는 거대한 정보원으로서 예컨대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와 연방통계청 등이 있다. 보좌진들은 다른 의원실로부터 정보를 입수하기도 하며 소속 당 보좌진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c) 정당의 전문위원

사회민주당 원내 교섭단체에는 각 상임위에 상응하는 워크그룹에 최소한 1명의 전문위원을 배치하고 있다. 전문위원은 의원들과 보좌진들을 응대하여 법안 제출 및 토의 과정에서 이들을 내용적으로 지원한다. 전문위원들은 워크그룹 대표들과 밀접하게 공조한다. 각 의원실의 업무가 전문위원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할 수 있다. 전문위원들은 다른 원내 교섭단체들, 특히 연정 파트너와의 회합을 주선하여, 법안의 논쟁 부분을 적시에 인지하고, 필요한 경우 의견 조율이 이루어지도록 한다.

주나 지자체 의원 보좌진과의 공조는 이루어지지 않는데, 이는 법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민주당 당중심부도 사회민주당 원내 교섭단체와는 별도로 움직인다.

 

d) 연방의회 공무원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의 학술지원직(입법조사관)들은 현안들에 대한 정보를 중립적으로 의원들에게 제공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지 의원이나 의원실의 의뢰가 있는 경우에만 이루어진다.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각 의원실에 달려있다.

상임위원회를 위해 일하는 연방의회 직원들은 조직 관련 사무지원인력으로서 일한다. 이들은 의사규칙의 준수를 살피면서 회의록을 작성한다. 입법과정에는 내용적으로 일체 개입하지 못한다.

이와 달리 각 부처의 공무원들은 법안 작업을 하며 법안의 구성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들이 부처의 정치적 의지와 지시에 구속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법안 검토의원 아닌 다른 사람이 대리한다면, 그것은 의회라 할 수 없다>

 

2. 법안의 발의 및 상임위원회 토의 과정

a) 상임위원회 참석자: 상임위원회 위원

▪상임위 위원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 대리참석자가 지정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대리위원이 존재한다. 보좌진이나 입법조사관에 의한 대리는 불가능하다. 회의는 위원회가 선출한 위원장에 의해 진행된다. 위원장은 회의를 가능한 중립적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검토보고자는 각 원내교섭단체의 의원이며, 이들이 가장 먼저 법안과 의안에 대하여 발언을 한다.

▪연방의회 상임위원회 직원은 표결‧발언권이 없이 회의에 참석하여 회의진행을 지원하고 회의록을 작성한다.

▪연방정부 장관 및 차관 또는 부처의 대표단은 의원의 질문이 있는 경우 배석한다.

▪공청회 전문가는 해당 전문사안과 관련하여 초빙되어 의원들에게 해당 사안에 대하여 의견을 진술하고 질의응답을 한 후 해당 사안에 대한 토의가 끝나면 퇴장한다. 공개 공청회인 경우는 예외이지만, 일반적으로 상임위원회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연방의회학술서비스(입법지원실) 입법조사관의 경우, 미리 신청 등록을 한 경우 ‘등록된 게스트’로 상임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발언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b) 상임위원회 회의 진행

상임위원장에 의한 개회선언

▪의사일정의 소개

▪간사(일반적으로 워크그룹 대표)들이 회의 시작 전 진행일정에 대해 최종 합의: 당일 토의사항에 대한 연기라든지 표결 진행 등

▪검토보고자의 보고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원의 직무이며, 입법조사관(전문위원)이 대신할 수 없다. 상임위 위원이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경우, 반드시 대리위원을 지명하여야 한다.

 

c) 상임위 법안 토의 및 의결 과정

법안이 상임위에 도달하면 토의가 시작되는데, 각 원내 교섭단체의 입장을 표명하는 검토보고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토의가 이루어지며, 이는 연방의회 의사규칙이 정한 순서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진행된다. 모든 수정요청 사항은 위원회 다수결로 확인되어야 한다.

연정 원내 교섭단체들의 검토보고자들은 각 당 워크그룹 대표들과 때로는 부처 대표단과 회합을 갖고 위원회 표결을 준비하기 위하여 자체 검토보고자 회의를 갖는다. 종종 심야에 이르기까지 아주 오래 걸리는 토의과정에서 법안의 세부사항들이 연정 파트너들 사이에 조율되고 확정된다.

법안의 세부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위원회는 이에 대한 표결을 실시하며 본회의의결 권고안을 작성한다. 위원장은 결과를 접수한 후 직권으로 수정안을 본회의에 회부한다.

 

3. 법안발의자로서 본회의 의결과정에서 의원의 역할 여부?

사회민주당은 대연정 파트너이고 대부분의 법안은 각 부처에서 올라오며, 그 법안들의 토대는 연정협약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르 의원의 경우 소관 검토보고자로서의 지위에서 관련 법안에 대하여 코멘트를 하고 평가를 할 수 있다. 사전에 당 워크그룹에서 의견조율을 한 후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수정제안도 할 수 있다.

법안은 본회의에서 3회독을 거치며, 각 원내교섭단체가 본회의에서 법안에 대해 코멘트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 역할을 (상임위) 검토보고자인 의원이 담당한다.

<이 글은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학모 연구위원이 2018년 9월 독일 연방의회 아욱스부르크 지역구 의원 울리케 바르 의원실에 보낸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서 독일어 원문을 박학모 연구위원이 옮겼다.>

화, 2020/04/21-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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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해체 이후 근대 세계사는 새로운 단계인 후기근대(late modern age)에 접어들었다. 세계인이 이를 점차 실감하고 있는데, 촛불 이후 남북 코리아는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시간의 실감 속에서 최원식 교수가 《프레시안》 창간 17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글 「남북연합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강조하고 코리아 남북연합이 그 촉진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후기근대의 세계 상황이 두 코리아의 공존체제·평화체제를 가능하게 하고 있으니 이를 위한 내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평자로서는 동의하고 환영한다.

이제 촛불혁명과 판문점, 싱가포르 선언으로 그 가능성은 바로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촛불 직전인 2016년 5월 《프레시안》과 ‘다른백년’이 주관했던 4회 강연에서부터 평자는 공존체제, 평화체제보다 ‘양국체제’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공존체제나 평화체제는 ‘그냥 맞는 말’로 들릴 수 있다. ‘좋아.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공존과 평화를 이뤄낼 실제적 방법, 핵심고리가 중요한데, 이것이 ‘코리아 남북 양국의 주권국가(sovereign state)로서의 상호 인정’에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양국체제가 돼야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다. 양국체제란 양국 공존체제, 양국 평화체제의 줄임말이다. 공존과 평화를 실현할 양국체제가 남북연합의 바탕이 될 것도 자명하다.

발제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발제문은 ‘國際(inter-national)’보다 ‘民際(inter-civic)’를 중시하기에 통상 쓰는 ‘(남북)국가연합’이 아니라 국가를 빼고 ‘남북연합’이라 하는 듯하다. 국제(International)에 민간관계가 빠지는 게 아니니 민제라는 말이 굳이 따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국제와 민제가 따로는 아니겠다. 발제문이 언급한 한중일 관계만 하더라도 국제가 안 풀리면 민제도 어려워진다. 극적 사례는 1992년 한중 수교였다. 국제를 트니 민제가 크게 열렸다. 남북관계는 국제(이 경우는 inter-national이 아니고 inter-state가 된다)가 막혀 민제는 제대로 시작도 못하고 있다 할 형국이니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남북연합 논의에서도 국가(state) 대 국가(state)로서 남북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발제문은 그와 전혀 다르게 본다. 아래 문단은 관련 주장이 집약된 것으로 보이는데, 의외로 ‘양국론’에 대한 ‘경계 긋기’로 시작한다.

최근 세를 얻고 있는 양국론에 대해서도 경계를 그을 필요가 없지 않다. 양국체제론자들의 논의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탓에 단정하긴 어렵지만 남북은 일국도 아니지만 양국도 아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분단체제를 상정하지 않은 양국론과는 애초에 무관하다. 그렇다고 그냥 일국론도 물론 아니다. 정말로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不一不二]. 요컨대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을 설령 통일의 최종형태로 삼는다고 해도 그 연합이 두 나라의 단순 병치가 되기는 애시당초 그른 것이매 남북연합론은 주변 4강의 의심을 풀고 내부의 대국주의를 절약할 요체가 아닐 수 없다. 요컨대 남북연합론은 일국적 통일론과 양국적 반통일론을 가로지르는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다.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시종 비켜가고 있다. 일국도 아니고 양국도 아니라 한다. 과연 그런가?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one nation two states)이다. 둘이되 하나요, 하나이되 둘[一而二, 二而一]이다. 엄연한 사실이 그러함에도, 즉 이 두 개의 국가가 국제적으로는 모두가 널리 공인된 국가이면서, 막상 양국은 아직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문제요, 비정상 아닌가? 그러나 「발제문」은 거꾸로 본다. 이런 상태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여기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다. ‘불일불이(不一不二)’라 한다. 불일불이란 불가(佛家)의 진리관[中論]을 표현하는 높고 찬란한 언어다. 진리적 불일불이가 ‘분단체제’라는 개념에도 적용되고 있다. “분단으로 두 쪽이 난듯이 보여도 남과 북은 분단체제의 드러남으로 연계된바 …… ”라고 하였다. 분단체제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발제자의 ‘남북연합’이 “분단체제를 상정한 남북연합론”이라 하였다. 그동안 ‘분단체제’란 말은 압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이를 이렇듯 고도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용법이 일반인에게는 매우 낯설다. 분단체제는 남북이 적대하는 체제이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국가로서 인정하지 못해왔던 체제 아닌가?

거듭 말하여, 현실은 일 민족 이 국가 상태다. 체제 보장은 북미 간에만 아니라 남북 간에도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양국체제다. 과연 무엇이 분단과 분단체제를 영구화시켜왔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둘임을 부정했기 때문에, 둘을 부정한 채로 결코 하나이자고 했기 때문 아닌가? 둘이 서로 인정하는 것이 이 함정을 벗어나는 제1보다. 돌아가는 것 같지만 그것만이 바른 길이다. 『노자(老子)』 22장에서 “곡즉전 왕즉직(曲則全 枉則直)”이라 했던 게 양국체제의 취지와 닿아 있다.

양국체제 없이 남북연합이 제대로 될까? 국(state) 간의 際가 안 열렸는데 民 간의 際가 활짝 열릴까? 그렇듯 국제가 닫힌 채로 가능한 남북연합이란 어떤 것일까? 양국체제가 성립하고 안정돼야 비로소 그 두 국가(state) 간의 남북연합이든 국가연합이든,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비로소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촛불혁명, 그리고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선언으로 이제 양국체제는 목전의 현실문제가 되었다. 판문점, 싱가포르 회담 한참 이전부터 줄곧 강조해온 것처럼 종전과 북미 수교는 양국체제의 입구요 일부다.

양국체제란 1973년 <동서독기본조약> 이후의 동서독 관계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 <동서독기본조약>에서 양독(兩獨)은 서로를 국가로서 분명히 인정했고, 기본조약 이후 미국은 동독과 수교했다. 그 두 고리가 풀리면서 양독 관계는 안정됐다. 반면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이 둘 다 이루지 못했다. 유엔 동시가입으로 코리아 양국체제의 외적 모양새는 일단 시작되었지만 완성되지 못했다. 불완전하고 불균형했다. 그랬기에 그 경로는 금방 닫혔다. 반면 동서독의 양국체제는 안정적으로 지속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존속했다.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시 남북이 처해 있던 여러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낮은 수준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거꾸로 뒤집어서 그것이 마치 아주 높은 수준의 결과였던 것처럼 생각한다면 문제가 된다.

「발제문」의 ‘불일불이’ 구절을 읽으면서 연상을 금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서문의 유명한 “(남북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구절이다. 이 표현은 매우 외교적인 것인데, 이를 액면가보다 낮추어 읽는 것이 아니라(외교문서를 읽는 기본이다), 오히려 액면가보다 훨씬 높게 읽는 경향이 있었다. 마치 ‘남북은 국가 대 국가로 서로를 (아직 외적 조건과 내적 능력이 부족하여)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뜻이 높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은 애당초 두 국가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식이다. 그렇게 읽으면 이 구절은 마치 ‘우리가 지금 하나는 아니지만 결코 둘일 수 없다(불일불이)’라는 높은 이상에 남북 대표가 의기투합하여 ‘우리는 결코 두 국가가 될 수 없으니 이러한 불일불이의 상태에서 곧바로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통일로 직행하자’라는 뜨거운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표현한 것이 된다. 실제로 그런 오독들이 꽤 있었다.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연합이든 연방이든,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에 대한 답은 여태껏 듣지 못했다.

끝으로 ‘말이 아닌 말’을 일부러 만들어낼 필요는 없겠다. 위 인용문에서 “양국적 반통일론”이 그렇다. 앞서 설명한 대로 양국체제 없이는 공존체제도, 평화체제도, 남북연합도 담보되지 않는다. 양국체제 자체가 통일은 아니지만, 어떠한 경로보다 통일 촉진적이다. 양국체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바람직한 통일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반통일’일까? 또 이 말과 짝을 걸어놓은 “일국적 통일론”이란 뭘까? 진보진영에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안다. 북(DPRK) 역시 이 입장을 폐기한 지 오래됐다. 그럼 뭘까? 발제자의 뜻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런 게 있다면 우스꽝스런 무엇일 듯하다. ‘말이 아닌 말’을 만든 것으로 부족하여 실체 없는 허깨비와 짝을 붙여놓은 꼴이다. 왜 이래야 했을까? 양측에 ‘극단’을 세워놓고 중간에 끼어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은 때로 쓸 만하다. 단, 그 양쪽 입장이 단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그럴수록 자신의 입장이 힘을 받는다. 그렇지 않고 ‘말이 아닌 말’과 ‘대립 아닌 대립’을 세워놓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식이라면 별다른 의미나 성과가 없을 듯하다. 또 그렇듯 가로지르는 게 ‘중형국가적 분단해소론’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국가’는 어떤 국가이고(일 국가? 이 국가?), 여기서 ‘분단 해소’는 어떤 해소인지(분단체제의 해소? 분단의 해소?)도 궁금하다. 어쨌거나 지금 필요한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 사이의 ‘경계 긋기’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공통점을 모으는 일이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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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4/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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