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19일은 남과 북이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를 채택한 지 2년째 되는 날입니다. 앞서 남북 정상은 온 겨레와 국제사회의 관심 속에 만나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 문제의 ‘운전대’를 우리가 잡고 이 땅에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항구적인 평화의 시대를 열겠다고 전 세계에 선언했고, 온 겨레와 약속했습니다.
2020.09.14.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행동 기자회견 (사진=한반도 종전 평화 캠페인) <출처: 참여연대>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 선언이 촉매제가 되어 북미 정상은 싱가포르에서 만나 새로운 북미 관계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실현해나간다는 데 합의하고,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 속에서 남북 정상이 다시 9월 평양공동선언과 군사분야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회담이 합의이행의 순서와 상응 조치에 대한 이견을 이유로 합의 없이 끝난 이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사실상 멈춰 섰습니다. 북미 간 협상이 교착되는 가운데 북한에 대한 미국 주도의 국제 제재는 더욱 엄격해지고 있고, 남북 간의 최소한의 교류 협력조차 번번이 가로막히면서 남북 간에도 합의가 이행되지 않는 현실을 둘러싸고 이견과 불신이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 6월에는 일부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계기로 남과 북의 군사적 긴장이 충돌 직전까지 치달아 남과 북이 맺은 군사분야합의서의 효력마저도 위태로운 위기 상황이 초래되었으며, 북한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현재 남북 간에는 대부분의 대화와 협력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심지어 코로나19, 장마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 같이 함께 마주하고 있는 재난에 관한 협력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대로 상황을 방치한다면 합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합니다.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는 수준을 넘어 한반도에는 새로운 차원의 군비경쟁과 위기가 일상화할 것입니다. 반목하고 대결하는 남과 북은 갈수록 심화되는 미중 간의 냉전적 대결의 대리전에 손쉽게 휘말리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한반도 주민들의 삶은 다시금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 크게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2017년의 위기를 넘어서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돌파구를 열었던 그 지혜와 결단력이 다시금 절실합니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주변국, 특히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실현해나갈 것을 확인하면서도, 남과 북이 합의하여 추진할 수 있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교류 협력만큼은 남과 북, 스스로의 힘으로 전진시켜나갈 것을 천명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과연 이 합의와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은 우리 정부와 시민의 판단보다는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전달되는 미국의 제재 위주의 처방에 묶여 있습니다. 한미워킹그룹은 정작 미국 조야에 조성된 북한에 대한 근본주의적이고 강퍅한 입장을 변화시키고 조율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자극적인 대남비난을 불편해하면서도, 정작 남북 간의 불신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는 제대로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군은 9.19 군사합의 이후에도 한미연합군사훈련을 규모만 축소한 채 지속하고 있고, 북한의 총 GDP 이상의 규모에 도달한 지 오래된 군사비를 매년 대폭 인상하면서 미국으로부터 공격적 신무기를 연이어 도입하고 있습니다.
북한과의 체제경쟁은 끝났다고 선언한 마당에, 코로나19와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에도 부족한 상황에서 이토록 많은 재원을 공격적 군비 확장에 투입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직 남북, 북미 간 합의가 파기된 것은 아니고, 소통과 연락이 완전히 단절된 것도 아닙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 희망을 살리자면 정부의 접근법과 정책이 지금과 달라져야 합니다.
한반도 문제를 우리가 주인이 되어 해결하겠다는 초심을 더욱 분명히 다지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남북 대화와 협력을 능동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여 일방주의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군사적 불신을 가중시키는 군사훈련이나 군비증강 정책은 자제하고 변경해야 합니다. 미국의 제재 일변도의 압박정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미국의 논리와 주장을 관성적으로 따르기보다 불가피한 차이는 국민 앞에 과감히 드러내고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톱다운 방식으로 당국 간 진행하는 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제 정부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야 할 한반도 주민 스스로 평화 만들기에 나서야 합니다. 냉전과 전쟁의 한가운데서 고통받는 것은 지난 70년으로도 충분합니다.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70년이면 충분하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고 함께 외칩시다. 우리의 평화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줍시다. 70년 이어온 한국전쟁을 완전히 종식시키고 이 땅에 항구적 평화를 가져올 평화협정을 조속히 체결할 것을 남북 정부와 미중 등 전쟁 당사국 정부에 촉구하는 한반도 평화 선언(Korea Peace Appeal) 서명운동에 함께 해 주십시오. 9월 평양공동선언 2년을 맞아, 오늘로부터 9월 26일까지 2주 동안을 한반도 종전 평화 집중 행동주간으로 정해 전쟁 종식과 한반도 평화를 향한 우리의 열망을 내외에 드러내 보여주고자 합니다. 한반도와 전 세계 시민 여러분의 지지와 참여를 호소합니다.
본디 우리나라도 제헌헌법 제정 당시 감사원 설치에서 미국 방식을 검토하였다. 미국 방식이란 의회에 감사원을 설치하고 감사원이 감사를 1년 내내 상시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인 한국의 특성으로 결국 미국 방식을 도입하지 않고 감사원(심계원)을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였다.
그리고 1962년 헌법에 감사원을 헌법기관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대통령 직속의 ‘명목상의’ 허울 좋은 헌법기관일 뿐이었다.
우리나라와 같은 이런 감사원은 지구상에 한국 외에 없다.
모든 감사보고서 일반에 공개, 독일 검사원
독일의 연방회계검사원은 헌법기관으로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등 어느 부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독일의 연방회계검사원은 1948년 제정된 독일연방기본법 제114조 제2항에 의하여 헌법상 최고기관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연방회계검사원 원장은 임기가 12년이고 단임제이며, 연방정부의 제청으로 연방의회에서 비밀투표로 선출하고 연방의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표를 득표한 자가 선출되고, 대통령은 선출된 자를 반드시 임명해야 한다.
공공기관 감사에 있어 연방회계검사원 및 그 직원의 임무 수행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문건은 요구일로부터 일정한 기한 내에 반드시 제출되어야 한다. 이때 자료제출 의무는 문서가 현존하지 않지만 정상적인 행정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경우에 있어 그 문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즉, 감사 대상기관은 요청한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료의 제출을 단순히 거부할 수 없고 이를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만약 감사직원의 정보요청 요구에도 불구하고 감사대상기관이 이를 무시하고 제출하지 않을 경우 감사직원은 즉시 이를 상부에 보고하여 직원회에서 조치를 결정한다. 감사 기준은 적법성, 경제적 효율성 그리고 능률성이다.
감사보고서는 모두 일반에게 공개된다. 이로써 일반 국민들의 감시가 활성화될 수 있고, 감사 직원에 대한 로비활동도 제한할 수 있다. 그리고 감사기관에 대한 개선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 감사원,모든 공공기관이 지출계산서와 증빙서류 제출, 전수 감사 효과
프랑스 감사원은 입법, 행정, 사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관으로 존재한다.
감사는 행정 각부 기관으로부터 모든 지출계산서 및 증빙서류 원본을 제출받아 실시한다. 원칙적으로 3~5년 동안의 회계집행 사항을 전수 감사하도록 되어있으나 실제로는 인력 및 시간적 제약으로 전체의 1/4 정도를 표본 추출하여 감사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계산서 및 증빙서류를 제출받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전수 감사를 받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프랑스 감사원의 구성원은 판사와 동등한 신분 보장을 받으며 봉급도 일반 공무원의 두 배 정도를 받는다. 이들은 권력이나 감사대상 기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오직 감사 업무의 성과에 의해서 자신의 고과(考課)가 평가된다. 자크 시라크와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도 일찍이 재무감사 직군으로 활동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이는 권력이나 감사대상 기관의 눈치를 살피지 않는 것이 사회적인 입신양명의 지름길로 인식되는 프랑스의 풍토를 그대로 반영하는 현상이기도 하였다.
미국은 회계감사원의 존재로 국가가 제대로 돌아간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은 원래 재무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입법부에 의한 행정부 견제 및 행정부의 국가운영 상태에 대한 감독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마침내 입법부에 이전되었다.
1921년 제정된 예산회계법 제7장에 의하여 회계감사원이 “권력에 대항하여 진실을 말할 의무를 가진 독립된 기관”으로 규정되어 설치되었다. 회계감사원장은 상하 양원 각각 5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에서 3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 동의를 거쳐 임명하며 임기는 15년 단임이다. 대통령은 추가 후보를 추천할 권한이 없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연방정부의 예산 지출과 운영에 대한 감사를 임무로 하며, 연방 정부의 예산을 사용하는 모든 사업과 활동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회계감사원 업무의 10%가 회계 감사이고 나머지 90%는 사업 평가가 차지하고 있다. 회계감사원의 감사결과는 수시로 모든 상하원 의원과 행정부에 제출된다. 그러므로 미국 의원들은 우리처럼 매년 시끄럽게 국정감사를 하지 않아도 이 감사보고를 통해 각 부처의 운영상황을 손금 보듯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의정활동을 펼친다.
회계감사원은 자료 접근권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거부할 경우에는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회계감사원의 권고는 4년 내 70%가 받아들여져 집행되고 있을 정도로 권위를 지닌다.
제대로 된감사원이 존재하면, 나라도 제대로 돌아간다
감사원이 진정한 감사원으로서의 위상을 지니려면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독립적인 기관으로 되거나 혹은 미국의 경우와 같이 의회 소속으로 되어야 한다. 의회 소속의 경우에도 ‘감찰’의 기능은 행정부에 그대로 남겨두면 된다. 참고로 미국은 행정부에 감찰국과 공직자윤리국을 설치하고 있다.
아울러 모든 공공기관에 대한 전수조사에 준하는 감사와 철저한 자료제출, 감사보고서의 완전한 공개 그리고 감사원장 임기의 연장 등 효율적이고 전문적인 감사 시스템을 도입, 강화하여 국제 기준에 부합시켜야 할 것이다.
미국의 선거 역사 상 국가의 방향과 생존 자체가 위태로웠던 전례를 찾아보자. 우선 1800년에는 애런버(Aaron Burr)와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접전을 벌였다. 애런 버는 여러 면에서 당대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라 할 수 있는, 독재를 향한 충동을 가진 파렴치한 인물이었다.
1860년 선거에서는 남북전쟁이 임박한 가운데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스티븐 더글러스(Stephen Douglas)와 대결했다. 대공황 와중에 실시된 1932년 선거도 있다. 당시 미국의 국운이 너무도 위태로워 누군가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에게 그의 경제 회복 프로그램이 실패하면 미국 역사 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라 경고하자, 그는 “이 프로그램이 실패하면, 결국은 나도 실패”라 답했다 전해진다.
현재 역사학자, 정치학자, 외교관, 국가안보전문가 등 여러 전문가 사이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벌이는 이번 대선의 결과가 이토록 중대한 역사적 기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1800년, 1860년, 1932년 당시 미국은 지금보다 훨씬 젊은 국가였지만, 오늘날 미국은 글로벌 체제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과거의 그 어떤 선거보다 중요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트럼프와 그가 만든 유해 세력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심하게 손상시켰고, 특히 코로나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한 데다가 공공연히 인종 갈등과 국가 분열을 독려했으므로 오는 11월 트럼프가 재선이 성공하면 244년간 이어온 미국의 법치국가 실험도 영원히 끝이라고 말한다.
첫 임기 동안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의회와 법원을 무시했고, 자신의 정치적 입맛에 맞게 외교정책을 왜곡했으며, 선거의 일반적인 규칙조차 무시하면서 공화당을 자신의 노리개로 삼았다. 그런 그가 다시 권력을 잡는다면 사실상 건국 이래 유지되어 온 견제와 균형의 파괴는 물론, 법 제도의 파괴가 정당화될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면“대통령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입증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은 결국 고대 로마와 그리스로 회귀하는 실패한 공화국 중 하나로 전락하고, 과거와 다른 민주주의 국가를 세웠다는 미국인의 자부심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우려에 공감하는 공화당원들도 많다 .이 중에는 멀리는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 시절부터, 근래에는 트럼프 정부에 이르기까지, 과거 공화당 정권에 몸담았던 고위 공무원들도 있다. 그들 중 일부는 트럼프의 재선은 미국 민주주의에는 곧 실존주의적 위협이라며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이자 ‘필멸의 공화국-로마는 어떻게 독재국가로 몰락했나(Mortal Republic: How Rome Fell Into Tyranny)’의 저자인 에드워드 왓츠(Edward J. Watts)는 “지금이 일종의 임계점”이라면서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미국 민주주의의 규칙과 규정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과거 공화국이 엉망이 된 방식을 답습하게 된다는 것이다. 왓츠는 바이든이 당선된다고 해도 미국의 재건에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선거는 의심의 여지없이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에 달려있는 이해가 너무도 크다.” 조지타운 대학교 정치학 교수이자 전 외교관이며, ‘고립주의-세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미국의 역사(Isolationism: A History of America’s Efforts to Shield Itself From the World)’의 저자인 찰스 쿱찬(Charles Kupchan)의 말이다. “1선 만으로도 충분히 나쁘다. 그런데 재선까지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유권자의 실수라 하기 어렵다. 미국인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천명하는 것이다.”
쿱찬은 이번 선거가 1800년과 1860년도의 선거보다 중대한 이유를 “19세기 당시의 미국은 세계의 최강대국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우리는 다른 나라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렇지가 않다. 한 국가가 이렇게까지 커지면 가야할 길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는 현재 역사의 지독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힘의 균형이 변화하고 있다. 냉전 후 일극체제에서는 상황이 제법 너그러웠다. 냉전 시대에도 미국은 베트남 등 지구촌 곳곳에서 실수를 저질렀지만, 세계를 완전히 망가뜨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 서구사회는 물질적 우위를 [중국과 아시아]에 잃었고, 정치적으로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역사적 이중고가 아닐 수 없다.”
실제 미국이 글로벌 체제의 안정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2020년 대선을 과거 거대 권력과 제국, 외교 등의 운명을 뒤바꾸고, 세계를 재편성한 주요 사건들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에게2020년은 역사적 순간이다. 세계 속 미국의 역할, 글로벌 체제의 구성이 모두 투표에 달려있다.”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이자, ‘두 세기 간의 자유국제주의 연대기-민주주의를 위한 세상(A World Safe for Democracy)’의 작가, 존 아이켄베리(John Ikenberry)가 말한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전후의 자유주의적 질서는 계속해서 무너질 것이며, 미국의 ‘체계적 역할’ 복귀만을 기다리는 미국의 민주주의 동맹 및 기타 동맹들도 각자 다른 계획을 세우기 시작할 것이다.”
당대 최고의 정치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하버드 대학교 조지프 나이(Joseph Nye) 역시 이들의 의견에 공감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최근 유럽의 동맹국 외교관이 한 말을 인용하며, “4년은 숨 죽여 살 수 있다. 그러나 8년은 너무 길다.”고 말했다.
NATO대사를 지낸 이보 달더(Ivo Daalder)는 트럼프가 또다시 당선되거나, (벌써부터 트럼프는 민주당이 사기를 쳤다며 비난하고 있고, 지난 9월말에는 평화적인 권력 이양 약속을 거부한 바) 선거에 이의를 제기하여 권력을 다시 잡는 경우, 이는 유럽과 서구사회의 공식적 결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유럽인이 알던 미국과 미국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미국이 완전히 동떨어지게 된다는 뜻”이다. 지난 4년간 트럼프는 유럽의 동맹국들을 조롱했고, 최근에는 수천 명의 주독 미군 철수를 홧김에 발표해버렸다. 나아가 달더는 미국 정부의 서툰 코로나 위기 대응이 유럽과 미국을 더더욱 멀어지게 했고, 서로에 대한 혐오감마저 진해졌다고 지적했다.
(지난8월, FP Analytics는 특별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 팬데믹 시대 각국의 대응 순위를 발표했다. 미국은 36개국 중 31위로 브라질, 에티오피아, 인도, 러시아 보다 낮은 순위에 그쳤다. 해당 보고서는 미국이 이렇게 저조한 결과를 보인 원인을 과학적 대응을 하지 못한 연방 정부의 무능, 비상 보건 관리 예산의 부족, 불충분한 공공의료 시설 및 병상, 제한된 채무 구제 등으로 꼽았다).
트럼프의 정부가 연일 이토록 최악의 성과를 보이자, 아이리시 타임즈(Irish Times)의 칼럼니스트 핀탄 오툴(Fintan O’Toole)은 지난 4월,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세계의 동정을 사고 있고, 이번에는 세계가 미국에 재난지원을 보낸다고 썼다.
다들러는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 대응이 이러한 혐오에 정점을 찍었다”면서 “정부의 대응을 보면 보건 인프라와 소득 불균형, 인종 문제 등 미국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제 미국은 우러러볼 대상이 아닌, 내려다볼 대상이 되고 말았다”고 말한다.
많은 정치 전문가와 학자들은 오는 11월 트럼프가 철저히 패배하고 그 결과를 인정하는 것만이 희망이라고 입을 모은다(물론 트럼프는 순순히 인정하지 않을 것임을 내비친 바 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세계와 역사에 별종, 독특한 기인으로 남을 것이다. 당을 막론하고 앞으로 트럼프처럼 맹목적 애국, 자아도취, 무능력을 갖춘 대통령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은 특유의 배척주의와 예외론적 거만함을 풍기며 글로벌 체제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시절보다 훨씬 온건한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성숙한)수준이 될 것이다.
해당 시나리오로 보면, 풍부한 국제 경험을 바탕으로 동맹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 다문화 가정 출신부통령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는 재빨리 트럼프가 저지른 최악의 실수들을 만회하며 미국의 U.S. 위신을 되찾을 것이다. 트럼프의 실수는 결국 코로나방역 실패, 정치 양극화, 경제, 글로벌 안정, 기후 변화 등, 바이든이 바로잡기로 약속한 모든 것이다.
트럼프는 수많은 국제협약을 파기하고, 제대로 대체하지는 못했다. 바이든은 이 점에 주목하여 즉시 이란 핵 합의와 파리 기후협약에재가입하고,이를 강화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협약은 바이든이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정부 부통령 시절 지지한 것들이기도 하다(공교롭게도 미국은 대선 다음 날인 11월 4일까지 탈퇴를 완료하기로 되어있다). 또한 바이든은 선거 공약에 따라 트럼프가 폐기한 중거리핵전략조약(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또는 INF)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오바마 시절 창설된 전략무기감축협정, 일명 뉴스타트(New START)의연장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트럼프는 당장이라도 해당 협정을 없애고 싶어하지만, 바이든 취임 후 몇 주 내에 만료될 예정이다).
나아가 바이든은 역사상 가장 종합적인 무역 협약인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협약 (TPP) 등을 재건하고자 할 가능성이 있다(TPP는 트럼프가 발을 빼면서 그 규모가 작아졌지만,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 일본에 의해 숨통이 붙어있다). TPP는 공정하고 공개적인 무역 기준을 수용하도록 중국을 배제하고 압박하기 위해 설계된 바, 해당 협약을 통해 트럼프의 대립보다 큰 효과를 내는 동시에 계속해서 중국을 글로벌 체제 안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 지난 4년간 의회 역시 트럼프 식 편가르기, 수사, 비난 등으로 내상을 입고, 무력화와 양극화를 겪었다.새 대통령의 탄생과 함께 의회는 더욱 효과적으로 일하기 시작할 것이다 (특히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경우, 입법부의 교착상태는 끝이 날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시나리오에서도 모든 것을 트럼프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예컨대, 바이든도 쉽게 INF 조약과 TPP를 부활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반드시 민주당 내 진보주의 계파를 만족시켜야 하는데, 이들은 자유무역협정과 미군의 과도한 해외 주둔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바이든은 이미 기존의 것 그대로 TPP에 재가입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미국 내 생산 증대를 요구하는 “강력한 원산지 규정”을 갖추도록 재협상할 의향이 있음을 발표했다.
그는 또한 새로운 국제 무역 합의를 도출하기 전,국내 생산 장려를 위한 $4천억 달러 규모의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이니셔티브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트럼프는 중국이 미국 중산층의 일자리를 강탈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 규정을 악용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이에 따라 빌 클린턴 재임 시절, 민주당이 창설된 세계무역기구 역시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그리고 바이든 또한 트럼프처럼 지난 수년간 해외에서 미국의 역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오바마의 부통령으로서 아프간 내 미국의 군사 활동을 크게 반대한 바 있고, 이라크 철수를 앞당기도록 설득하기도 했다.
유엔의 날인 지난 10월24일,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온두라스가 공식적으로 참여하면서 자격기준인 50개국의 비준을 획득하여 실제규약의 조건을 갖추었다. 이제 90일이 경과하면 규약의 적용이 시작되고, 핵무기가 첫 사용된 지 75년 만에 이의 사용이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블법이 되는 것이다.
이는 국제규약의 역사에 있어 매우 소중한 금자탑이다. 핵무기금지조약TPNW가 비준되기 이전까지는 핵의 사용이 재앙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대규모 살상의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금지하는 국제적 규정이 없었다. 이제 TPNW가 유엔을 통해 국제사회의 비준을 받음으로써, 핵무기는 생화학무기와 더불어 대규모 살상무기로 규정되면서 이의 사용이 금지되는 것이다.
이를 추진해온 ICAN의 사무총장 Beatrice Fihn은 역사적 쾌거를 다음과 같이 환영한다 “이는 핵무기폐지에 새로운 장을 연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이들이 핵무기의 사용을 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우리는 기어코 이를 이루어 냈다.”
히로시마 원폭의 생존자인 Setsuko Thurlow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살아남은 일생 동안 핵무기폐지 운동에 헌신해 왔다 이번에 조약이 비준된 것에 대해 함께 노력해 온 모든 분들께 크나큰 감사를 보낸다.”
오랫동안 ICAN의 상징적 인물로 수십 년을 함께 활동해오면서 핵무기가 가져온 비인도적 결과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르쳐온 그녀는 비준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모두가 존중해온 국제적 규약이 우리의 주장을 수용한 첫 걸음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취를 세계도처에서 핵실험과 우라늄탄광, 그리고 극비의 시험과정 속에 고통을 받아온 희생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당연히 핵의 사용과 실험과정에서 살아남은 모든 희생자들은 Setsuko여사의 발언에 동참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계기를 마련하는데 공헌한 마지막 3개 국가들의 비준이 자랑스럽다. 동참한 50 개국들은 핵무기가 없는 세상을 실현하고자 진정한 정치 지도력을 발휘한 셈이다. 이들은 비준의 과정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으로부터 참여를 거부하라는 유례없는 압력을 받아 왔다.
AP가 역사적 순간의 전날에 입수한 최근의 서신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비준에 동참한 국가들에게 비준의 참여를 철회하고 이웃 국가들에게 불참을 강권하도록 직접적인 압력을 가해온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조약의 의무사항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동이다.
ICAN 사무총장 Fihn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역사적 규약이 법적 실효성을 갖도록 동참한 많은 국가들은 진정한 지도력을 보인 반면에, 동참한 국가들의 지도자에게 결정을 무효화시키려고 온갖 무모한 노력을 동원하는 것을 보면 본 조약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핵보유 국가들이 이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알 수 있다.” (실제 트럼프는 TPNW는 무효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였다).
이제 첫걸음을 띄운 셈이다. 국제규약이 실효를 발하면, 동참한 국가들의 정당들은 본 규약에 근거하여 실제적인 의무규정을 추가할 필요가 있으며, 규약의 금지사항을 이행해야만 한다. 동시에 규약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들도 실제적 압력을 느끼게 될 것이며, 기업단위에서는 핵무기에 관련된 활동에 참여를 배제하고 금융기구들은 핵무기 생산에 참여하는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중지하기를 기대한다.
과연 가능할까? 이미 600개의 파트너 기구들과 100개 이상의 국가들이 규약의 이행을 약속하고 있으며, 핵무기의 금지에 대한 지침을 적용하기로 결정하였다. TPNW라는 규약이 시행되면, 모든 시민사회와 민간기업들, 그리고 대학과 연구조직, 정부기관들이 핵무기가 금지되었다는 것을 인지할 것이며, 이제부터는 역사의 올바른 방향에 서야만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서해상의 이번 공무원 피살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확인받아야하는 인식적 범위만도 크게 세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실체적 진실규명문제이다. 월북이냐, 아니냐. 시신을 불태웠느냐, 아니냐가 그 쟁점이다.
둘째는, 한반도에서 종전선언과, 더 나아가 평화협정 체결이 왜 중요한지가 명백히 가름된다하겠다.
셋째는, 인식이 위 ‘첫째는’, ‘둘째는’, 거기서 절대 멈춰 서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줬다. ‘첫째는’, ‘둘째는’의 상황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본질적 원인이 바로 ‘셋째는’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분단체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숙명의 문제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달리는 이 분단체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고서는 또다시 우리는 언젠가 제2의, 제3의 일촉즉발의 위기정세를 계속 목도할 수밖에 없다.
분단체제는 그렇게 한반도에서 진정한 생명안전도, 종전선언도, 평화체제구축도 가둬놓는다. 분단체제하에서 평화가 관리되어질 수 있다는 것도 허구로 만들고, 분단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평화는 절대 불가능을 안내한다. 오직 평화담론체계(철학)에서 벗어나 분단극복을 전제한 평화체제수립에 박차를 가해야만 한다.
이 글은 그 전제하에 시작된다.
이제까지 보여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통일 없는 평화’정책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이는 대중에게 ‘통일’ 하면 차근차근 분단체제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통일 없는 평화’가 가장 현실적이고 세련된 대안인양 착각한 것과 같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이 정부, 혹은 정당 담당자 및 담지자들이 갖고 있는 뿌리 깊은 반(反)북, 혹은 대북 우월의식의 결과이다.
그 결과가 역대 어느 민주당 정권보다도 많은, 3번의 정상회담을 이뤄냈으나 ‘사실상’ 파산된 남북관계는 회복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미국 때문에 그렇다고, 트럼프 때문에 그렇다고, 그렇게 미국과 트럼프 탓을 할 수도 있겠으나, 그 모든 것이 미국 탓일 수만은 분명 없어 보인다. 훨씬 더 이 정부와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능력과 의지 탓이 크다.
첫째, 미국의 견제와 압박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으나, 과거 DJ정부 때도, 참여정부 때도 있었다.
둘째, 그럼으로 그 변수‘첫째’로 남북 간의 약속 미(未)이행이 합리화될 수는 없다. 대신, 역설적이게도 이 정부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보여줄 뿐이다.
셋째, 어쨌든 결과적으로 합의문을 내왔다면 이유불문 무조건 이행을 해냈어야 했다. 사인(私人)간의 약속도 함부로 깰 수 없거늘, 하물며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약속을 전 세계인과 7천만 겨레가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게 했거늘 그걸 이행하지 않는다? 그 어떤 변명과 합리화과정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해서 미국 뒤에 숨어 미국핑계로 약속 불이행을 정당화하고자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이 정부의 ‘비겁한’ 몸짓이다.
어디에서부터 그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졌을까?
첫째는, 이 정부 최고 수장인 문 대통령 자신의 대북철학 부재에서 출발한다.
문 대통령은 2018년 7월 예의 그 <신 한반도평화비전(베를린구상)>을 발표하면서 북을 향해 ‘체제를 보장할 테니 대화에 나서라’고 했다. 불필요한 역린(逆鱗)을 그렇게 건드렸다.
또 다른 예는,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2018.3.21.)
남북 간 평화공존을 강조한 것으로 믿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따로 또 함께(2국가 2체제)’로 해석할 여지가 남아서 남북 평화공존체제를 주창한 것과도 같다. 맥락을 빼고 직설하면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는 의지보다는 분단체제를 인정하고, 그 토대위에서 평화체제를 수립하려는 반(反)통일정책이다.
둘째는, 이 정부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보다 더 후퇴한 대북정책에서 그 원인이 확인된다.
하나,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국정좌표에 ‘통일’이 없다.
사실상 통일정책은 제로, 아무도 모르는 통일국민협약 추진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통일외교안보분야에서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3대 전략, 16대 국정과제(아래 첨부된 그림표 참조)는 아래와 같은데, 그 중 겨우 94번째에 ‘통일 공감대 확산과 통일국민협약 추진’이 있다. 그렇게 있으나 사실상 통일의 ‘통’자가 없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100대 과제 중 통일의 ‘통’자 들어가는 국정과제는 이 94번째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국정과제에서 ‘사실상’의 목표인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평화체제 구축’은 선(先)비핵화전략에 남북관계를 종속시키는 결과 낳아
남북관계와 비핵화문제는 서로 상관성이 있지만, 차별성과 독자성도 분명 있다.
어떻게?
아시다시피 북핵문제는 남북 간 적대관계에서 출발된 문제라기보다는 ‘북미 적대관계’산물이다. 그럼으로 남북관계 문제를 북미관계 문제인 북핵문제 입구에 포박시켜 놓은 것은 ‘옳지’않은 전략(접근법)이 된다.
둘, 한반도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남북미의 문제이다. 하지만, 통일문제는 민족내부의 문제이다. 즉, 남북문제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남북문제를 풀어갈 때는 한반도평화체제 구축문제의 핵심사안인 핵문제를 굳이 입구에 배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 문제를 출구가 아닌, 입구에다 딱 갖다놓으니 남북문제가 절대 풀려질 수가 없다.
셋, 백번양보해 문재인 정부의 선평화체제이행론을 수용한다하더라도 남는 문제는 여전하다.
다름아닌, 그 입구에서 얘기되는 비핵·평화도 통일로 가기위한 비핵·평화라기보다는 오직 전쟁방지를 위한 군사적 평화담론범위를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그러니 언감생심 통일얘기를 할 수가 없다.
예는 아래와 같다.
“~나와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강조, 필자) 평화입니다.(<신 한반도 평화구상> 발표문 중에서)”라는 워딩도 결국은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6.15)선언 첫머리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고 밝히고, 또 선언 2항에서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해 남북관계를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로 발전시킨다고 명확히 하고 있으나, 문 대통령은 그러한 합의사항을 수행할 의사가 없다.
결론적으로 위 ‘하나’, ‘둘’, ‘셋’은 입구가 아닌, 출구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 즉 북핵문제를 입구에서부터 버티게 했으니 남북문제가 절대 풀려지지 않는다. 그 진전-북핵문제 진전 없는 남북관계, 분단문제, 통일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셋째는, 지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민족자주와 자결의 원칙’에 합의해놓고도 미국의 내정간섭 기제인 한미 워킹그룹을 생성시켜 그 합의를 무색케 했다. 9월에는 ‘동맹대화’까지 신설했다. 이쯤 되면 제2의 을사늑약이 미국과 체결된 꼴과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도 추진되었던 이산가족 상봉 및 식량지원(의료품 포함) 등도 기대만큼 충분히 추진되지 못하였다. 정치적 문제도 아닌, 인도주의적 문제인데도 적폐정부보다 더 못한 결과를 낳았다.
상징에 박근혜 정부가 촛불민심을 호도하기 위해 조작해낸 북경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탈북 사건이 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아니, 해결할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또 있다. 유엔 제재와는 별개로 전임 정권들의 ‘과도한’ 행정명령에 의해 이뤄진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도 복원시켜내지 못한다. 이는 이 정부가 말만 꺼내면 자신의 정부가 촛불의 토대위에 있다고 하면서 바로 그 촛불에 의해 축출된 적폐정부들의 분단적폐정책 하나도 청산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치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 그런데도 이 정부는 그걸 하지 않는다.
넷째는, 통일부가 ‘통일’을 얘기하지 못한다.
통일부가 ‘통일’을 얘기하지 못한다? 참 서글픈 현실이다.
부(部)는 집행단위를 뜻하다. 위원회와 같이 의견개진이나 의결하는 곳이 아니다. 최고통치권자의 철학과 그 정부의 국정과제에 대해 책임지고 집행하는 단위이다.
그런 통일부가, 그것도 수장인 장관이 강연이나 하러다니고, 그것도 평화얘기, 경제얘기(‘작은 교역’), 상황관리 얘기만 하고 있고, 또 이러저런 민원을 듣고(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검토해보겠다’이렇게 사실상의 NO하는 그런 부서의 수장 자리로 전락되어있다면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또 작금의 상황을 백번양보해 통일부를 이해한다하더라도 3대 전략, 16대 국정과제 중 유일하게 ‘통일’이 들어가는 것이 94번째에 해당되는 ‘통일 공감대 확산과 통일국민협약 추진’의 경우이다. 그렇다면 이것 하나만이라도 주무부서 답게 정말 열심히 추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출범 3년을 넘긴 지금, 추진되고 있다는 보도나 ‘소문’의 ‘소’자도 듣지 못한다.
대신, 통일부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것은 귀를 의심할 정도로 ‘전쟁반대’, ‘신경제지도’, ‘작은 교역’, ‘신평화비전’, ‘북핵해결’, ‘공동 코로나 방역’ 등 외교부나 국방부, 보건복지부, 경제관련 부처의 장들의 입에서 나와야 하는 워딩들만 듣고 있다.
그러니 일각에서는 통일부가 전쟁반대部, 분단유지部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거나, 존재감이 거의 0에 가까운 있으나 마나한 식물 집행단위라고 조롱한다.
자기 정체성과 위상정립이 절실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반도가 지정학적 숙명을 갖듯이, 분단도 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을 반드시 갖는다.
왜냐하면 분단으로 인해 불완전한 국가주권이 형성되어 있고, 국가구성원인 민족이 대립과 갈등으로 국력이 소모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서 분단국가는 필연적으로 통일과 비례하지 않는 평화가 있을 수 없게 된다.
즉, 남북관계가 진전될 때만이 평화도 앞당겨 질 수 있다는 연관과, 통일의 진전 없이 평화 없고, 평화진전 없는 통일진전도 없다.
그럼으로 평화·통일정책은 수례의 두 바퀴와 같다. 절대 한쪽 바퀴로만 굴러갈 수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정부는 ‘평화’라는 한 바퀴로만 수례를 굴리려 하고 있다. 그러니 그 평화마저도 제대로 굴러 갈 수 없고, 악순환만 된다.
빠져 나와야만 한다.
가. 핵 딜레마에서 빠져 나오시라. 북핵문제가 제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한반도평화체제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 양보하더라도 한반도에서의 비핵화는 평화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나. 한반도문제는 평화의 관점으로, 남북문제는 통일의 관점에서 정책입안을 다시 짜야 한다. 즉, 한반도문제의 핵심은 평화체제와 비핵화이지만, 통일문제에 맞닿아 있는 남북관계는 민족공조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다.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에 연계시키지 않아야 한다. 다시말해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미국을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다. 4.27,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두 정상이 합의한 ‘자주’선언이 그 의미이다.
다만 낙관론자들의 희망처럼 이번 선거의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면, 그리고 트럼프가 낙선을 하더라도 문제는 트럼프라는 별종 한 명이 아니라, 더 이상 하나의 공화국으로서 또는 세계의 안전핀으로서 제 기능을 못하는 미국 자체라는 것이 밝혀져 다시는 미국이 완전한 신뢰를 얻을 수 없게 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더 큰 위협이다.
조지프 나이는 “유럽인들은 ‘1945년부터 의지해 온 이 미국이라는 나라가 ‘트럼프 아일랜드’처럼 뻔뻔해진다면, 그리고 양극화가 계속된다면, 2024년과 2028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어찌 알겠는가?’라고 자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트럼프의 신 고립주의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이의 지지를 받았고,이들의 지지는 여전하다. 찰스 굽찬은 그의 신간에서 미국이 국제주의를 받아들인 것 자체가 일탈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바이든은 물론 그 이후의 어떤 지도자도 과거의 외교정책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세계2차대전 후 부상한 국제사회, 조약 중심의 체제로 회귀하지 않을 것이다. 상원이 그렇게 표결하지 않을 것이다.”라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Chicago Council on Global Affairs)가 지난 9월 공개한 설문조사를 보면 미국의 역할에 대한 기존의 합의가 과거 어느 때보다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달더의 말을 빌리자면, 공화당의 “트럼프화”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과거 강대국들은 어느 시점에 도달하자 태만과 타락에 빠져 결국 몰락하거나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현재 미국 동맹국에게는 미국 공화국이 이러한 피치 못할 역사의 흐름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닐지 고민할 것이다.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등 여러 유명 현실주의 사상가들은 오랫동안 미국 스타일의 자유국제주의가 자멸의 씨앗, 즉 과도한 욕망을 품고 있음을 지적해왔다. 미어샤이머는 “자유주의의 중심에 활동가의 마음가짐이 아로새겨져 있다”면서 “모든 인간은 양도할 수 없는 일련의 권리를 가지고, 이러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다른 [국내]문제에 우선한다는 신념은 자유주의 국가가 외국에 개입할 만한 강력한 동기를 만들어낸다”고 썼다.
최근 수십 년간 미국의 대통령들은 당을 막론하고, 베트남, 보스니아,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정도는 달랐지만 모두들 이러한 충동에 굴복했다. 그리고 2016년, 트럼프는 민주당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알지 못한 한가지를 깨닫게 된다 .국내 문제만으로도 엉망인데, 글로벌 경찰 노릇까지 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난 유권자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빠른 세계화의 명목 하에 중산층이 사라지는 문제가 특히 심각했다. 바이든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트럼프는 미국의 깊은 전통, 건국 주역들이 가졌던 두려움에 주목했다. 그들은 도를 넘는 외세와의 갈등을 항상 경계했고, 트럼프 같은 선동정치인의 부상을 포함하여 미국의 자기파멸적 행동을 끊임없이 경계했다. 그 중에서도 1821년 존 퀸시 아담스(John Quincy Adams)가 한 말이 유명하다. “미국은 절대 미국 바깥의 괴물을 부수기 위해 나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성격 자체가 타락한다는 생각이었다.이에 “나라의 정책과 그 근본적 처세가 알지 못하는 사이 자유에서 폭력으로 변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2016년 봄, 트럼프 선거 캠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의 첫 외교정책 연설 중 “세계는 미국이 적을 찾아 해외로 나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이 존 퀸시 아담스를 의식한 모방이었으며, 전임 대통령들과 그들이 무분별하게 벌인 이라크 및 리비아 사태를 책망하는 것이었다고 귀띔했다.
세계사를 보면 스스로를 다른 국가와 다르다고 여긴 국가가 미국이 처음은 아니다. 그런 망상에 따라붙곤 하는 자만심 때문에 지나친 확장을 추구하다가 피폐해진 것 역시 미국이 처음은 아니다. 바이런(Lord Byron) 경은 “’현재는 과거의 반복/처음에는 자유, 그리고 영광—그러다가 추락하면/ 부와 범죄와 타락—그리고 야만”이라는 시를 썼다.
역사학자 왓츠(Watts)는 위의 시에 2천여년 전 로마 공화국의 몰락으로 되돌아가는 혼돈의 국가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2007년작, ‘우리가 로마인가?(Are We Rome?)’는 이라크 침략을 통해 아랍 세계의 민주화를 이루려던 조지 W. 부시의 끔찍한 시도에 대한 응답으로 쓰여졌다. 이 책을 읽은 쿨렌 머피(Cullen Murphy)는 “전략과 역사적 목적 등 모든 수준에서, 로마와 미국은 모두 자신의 방식의 세상의 방식이라 여겼다”는 감상을 남겼다. 미국의 건국 세대가 이상적인 공화국을 세우며 신의 손을 본 것처럼, 로마의 철학자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는 로마를 “서로 다른 제국과 인종을 통일하고,거칠고 섞이지 않는 목소리를 일치시키며, 인간에게 문화를 주고, 전세계의 조국이 되기 위해 신성한 섭리에 의해 선택된 땅”으로 보았다.
어디선가 본 듯 익숙한가?
고대 로마에서는 이러한 자만이 오만과 지정학적 과잉으로 이어져 종국에는 치명적 결과를 불러왔다. 고전으로 불리는 ‘로마제국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의 저자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로마의 쇠퇴는 과도한 거대 국가가 맞이하는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효과였다. 번영은 쇠퇴를 무르익게 했다”고 썼다. 미국은 외국인 혐오 때문에 빗장을 걸어 잠근 최초의 강대국이 아니다. 로마는 그 힘과 영향력이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 이민자와 외국인을 배척했다.
따라서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다 하더라도 미국인들은 더 이상 세계의 리더 역할을 원하지 않을 수 있고, 선조들의 생각과 자유주의적 국제 체제를 유지할 뜻이 없을 수 있다. 고대 로마의 부패한 평민과 귀족이 그랬듯이말이다. 미국의 교육 체제가 심각하게 무너진 지금, 많은 유권자는 글로벌 자유무역의 혜택을 이해조차 할 수 없으며, 어떻게 군사 동맹이 미국의 안전을 지키는지 (그리고 어떻게 직접 군대를 파견했을 때보다 비용도 적게 드는지) 또는 어떻게 미국이 국제 기구를 설립하고 지지하여 글로벌 과제를 해결해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미국의 글로벌 리더 역할에 대한 공감대를 회복하는 것이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게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전 대통령은 60년 전퇴임사에서 미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깨어 있는, 박식한 시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런데 그의 손녀이자 최근 ‘아이크는 국가를 어떻게 이끌었는가-How Ike Led’를 발표한 작가인 수잔 아이젠하워(Susan Eisenhower)는 한 인터뷰에서 많은 미국인들이 더 이상 세계 평화를 지키는 미국의 역할과 그와 관련한 근본적 질문을 묻지도, 답하지도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비극이다. 우리가 더 이상 세계 평화를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위해 평화를 지킬까? 그답은 썩 유쾌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 자체도 많지 않다.”
트럼프는 이토록 커다란 역사적 흐름의 원인이 아닌, 결과에 가깝다. 갑자기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를 들고 나타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주류 정치인의 형편없는 정책에 분노한 미국인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중국의 빠른 경제적 부상에 무신경했던 탓에 미국 중산층은 수백만 일자리를 잃었고, 이라크 침공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 (최근 퓨 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민주당과 공화당을 막론하고, 대다수의 유권자는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냉정한 시선에 공감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성공은 날로 복잡해지는 글로벌 체제와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유권자 간의 격차를 이용한 덕분이기도 하다(실제 2016년 선거 유세 중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을 사랑한다”고 떠들썩한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는 외국인 혐오와 신 고립주의를 조성했고, 곧 그러한 흐름을 탔다. 이러한 추세가 금세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트럼프는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며 지지자들의 분노를 선동하고 있다. 그의 지지층은 대부분 백인 중심의 배척주의자이다. 트럼프는 경찰 손에 흑인이 죽으며 발생한 소요 사태에도 자신을 치안에 앞장서는 대통령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는 시민들은 요청하지도 않은 연방군의 도시 진입을 명령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선보이는 치안은 카이사르(Caesars) 황제 시절, 전제 군주의 그것과 유사하다. 왓츠는 로마의 군주들은 공화정의 가면을 쓰고 독재자가 되었고, 순종적인 로마 시민은 로마의 조용한 파멸을 지켜봤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대 로마에서 일어난 일이 여전히 유효함을 배워야 한다. 강력한 국가는 민주주의적 또는 공화주의적 가치의 환상에 빠질 수 있다. 그러한 가치가 이미 오래 전 기능을 멈췄음에도 말이다.”
물론 역사적 유사점을 과대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최악의 제국주의에서도 미국은 고대 로마나 기타 실패한 공화국과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트럼프의 재선과 바이든의 당선이 불러올 결과 사이에도 분명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세계 무대에서 미국의 입장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쿱찬은“공약을 내세운 정책 자체가 극명히 다르다”면서 “1941년부터 오바마 정부까지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근본적 외교 정책이 다르지 않았다. 냉전시대에는 특히 비슷했고, 1990년대에는 약간 차이가 있기도 했다.여전히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대체로 자유국제주의적 전술을 고수하고 있다.그러나 트럼프는 진심으로 이 모든 것을 찢어버리려 한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바이든은 국내의 요구에 따라 글로벌 무대에서 미국의 역할을 최소화하면서도 기존의 구조를 유지할 것이다.
쿱찬은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에 달린 이해가 미국의 글로벌 역할이 큰 화두였던 1900년과 1920년선거와 닮아 있다고 지적한다.이들 선거의 결과는 180도 달랐다. 1900년, 당시 재임 중이던 공화당의 윌리엄 맥킨리 (William McKinley) 대통령은 미국을 하나의 제국으로 바꿔놓았다. 사실 상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하며 식민지 통치권을 갖게 된 덕분이었다. 그의 상대였던 민주당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은 뚜렷한 반 제국주의 어젠다를 가진 인물이었다. 쿱찬의 표현을 빌리자면 “맥킨리는 브라이언을 가뿐하게 이겼다”고 한다. 1920년에는 반대의 양상이 펼쳐졌다. 전쟁에 지친 미국인들은 나라를 세계 1차 대전으로 이끈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에도 진절머리가 났다. 민주당 출신의 윌슨 대통령은 세계 무대에서 미국이 큰 힘을 갖게 될 것이라 역설했다. 그러나 상원은 그가 제안한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가입을 반복해서 부결했다.
쿱찬의 책에는 윌슨이 “이번 선거가 곧 국제연맹에 대한 국민투표”라고 말하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자 워런 하딩(Warren Harding)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된다. 우리는 국제연맹과 관련된 그 무엇도 원치 않는다. 우리 미국인은 국수주의자이지, 세계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응답한다. 오늘날의 트럼프와 비슷하다는 것이 쿱찬의 설명이다.그리고 윌슨의 지목을 받은 후계자, 제임스 콕스(James M. Cox)는 하딩에게 패배하고 만다. 하딩은26%의 득표 차이로 이겼고, 이는 미국 역사 상 가장 일방적인 승리로 남았다.
그런데 이 역사에는 흥미로운 뒷얘기가 숨어있다. 당시 콕스와 함께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나섰던 이가 바로 프랭클린 루즈벨트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루즈벨트는 이후 화려하게 복귀해 미국의 국력과 명성을 재건했으며, 오늘날 미국이 전세계에서 차지한 리더십의 근간을 만들었다. 몇 달 후 선거에서 바이든이 당선되는 경우에는 그의 화려한 복귀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다음은 BuzzFeed에 실린 기사의 내용으로 두 명의 전문 정치학자들의 연구에 기초하여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전역에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대선의 결과와 상관없이 폭력이 난무할 것이라는 우려를 전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팬데믹과 항의시위가 겹쳐진 와중에, 트럼프의 사려없는 선동으로 폭력적인 각종 난동들이 벌어지고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폭발 진전의 화약통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코넥티컷 대학에서 진화인류학을 전공하는 Peter Turchin은 상황이 지금보다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Turchin은 정치스트레스지수 PSI(political stress indicator)를 개발하였는데 측정지표로 임금정체, 국가부채, 엘리트 간의 대결, 정부에 대한 불신, 도시화 수준 그리고 인구 노령화 등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모형에 따르면 불평등의 심화가 정치적 불안을 야기하는 정도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트럼프를 비난하는 경향이 심하지만, 트럼프가 현재처럼 심각해진 상황의 구조적인 원인은 아니다 라고 Turchin은 주장한다.
그의 모형에 따르면 2020년 말경에 정치적 불안이 정점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실질임금이 정체되거나 감소되어 왔으며, 부자와 빈민간의 격차가 심화되었고, 고학력의 젊은 세대가 과잉 배출되면서 공공분야의 부채는 더욱 증가하여 왔다. 역사적 견지에서 보면, 이러한 추이는 사회적 불안정을 촉발하는 징표이다. 1860년대 미국의 암흑시대였던 남북전쟁 직전의 PSI 곡선과 현재의 PSI 곡선은 닮은 꼴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상황은 제2의 내전을 예고하는 셈이고 2020년의 대선이 내전을 촉발하는 기점이 될 수 있다.”
The political stress indicator curve is similar to before the Civil War. /BuzzFeed News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사회학은 연구하는 Jack Goldstone은 한때 CIA에서 사회혼란에 대하여 연구한 바 있는 인사로 Turchin의 연구결과에 동의하고 있다. 그 역시 CIA의 연구과제로 사회혼란에 대한 모델을 만들고 있었는데 Turchin이 상기의 내용을 언급하기 전까지는 내용을 비공개로 유지하고 있었다.
Goldstone은 BuzzFeed 뉴스와 인터뷰에서 Turchin이 PSI지수로 밝힌 미국의 염려스런 미래상에 대하여 재확인하면서 설령 대선이 끝나 트럼프가 패하면서 조용히 물러난다고 해도 미국의 정치적 혼란이 종식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장 핵심적인 사항으로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미국시민들이 정부와 정치제도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요약하자면, 지난 수십 년간 누적되어온 좌절과 분노 그리고 불신이 이번 대선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대규모의 시민적 항의를 야기할 것이고, 이는 지난 일세기에 걸쳐서 가장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라고 Goldstone과 Turchin양인은 LA에 소재한 싱크탱크인 Berggruen 연구소가 발간한 최근의 보고서에서 언급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정치적 불안이 지속되면서 2020년대를 혼란의 시대로 몰아갈 것이라고 한다.
Turchin은 심각한 정치폭력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은 집단들이 미국의 제도가 매우 강고한 것으로 믿고 있지만 이는 근거가 없는 낙관이라고 비판한다. “현재 미국의 사회적 시스템은 매우 취약하다.”
The Fragile States Index of G7 countries. /BuzzFeed News
상기의 PSI지수만이 미국의 안정여부에 대한 경고를 보내는 것이 아니다. 워싱턴에 소재한 비영리단체인 평화기금 역시 유사한 지수인 국가취약지수 FSI(fragile state index)를 개발하여 왔는데, 이 지수는 해당국가가 경제적 고통, 난민의 유입, 인권상황 등에서 야기되는 압력과 더불어 폭력과 정치적 불안정을 평가하고 있다.
FSI에 의하면 미국은 아래의 사항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 테러와 조직폭력, 국가엘리트들의 집단이기주의, 각종 사회집단 간의 갈등.
그러나 미국이 점차 취약한 사회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기 그림의 곡선 추세는 현재 미국의 정치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대결양상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상기 연구의 결과에 따라 미국의 빈부격차로 내전까지 발전할 것인가에 대하여 전문연구자들 간에 의견이 갈라지는 한가지 이유는 대체로 빈부격차에 따른 내전은 가난한 국가에서 주로 발생하였다는 점이라고 스텐포드 대학의 정치학자인 James Fearon은 이야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전히 경제구조가 다원적이고 견실한 부자국가로서 미국이 내전 상황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태들, 특히 민주당 출신의 미사간 주지사인 Gretchen Whitmer가 코로나 방역을 위해 취한 조치에 반발하여 극우 민병대들이 그녀를 납치하고 살해하려던 기획이 밝혀지면서 미국사회가 내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충격을 던지고 있다.
대통령이 교체되는 순간이 미국의 정치체계를 대혼란에 빠뜨릴 위험이 잠재되어 있음에도 이런 맹점에 대하여 그 동안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입지를 다진 세월 동안 세계의 많은 나라는 불안과 낙관을 가지고, 미국 대통령들의 바통 터치 순간을 지켜봤다. 220여 년 전 미국은 세계 최초로 민주적인 권력이양을 경험했다.
그러나 작금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오는 11월에는 최악의 권력이양을 경험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이번 주 한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재선패배 시 평화롭게 대통령직을 인계할 것인지 묻자 그는 현장에서 답변을 피했다. 모든 일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트럼프이기에 이런 질문 따위엔 관심조차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그를 제외한 온 세상이 주목하는 문제이고, 또 미국인이라면 응당 신경써야 할 일이다.
미국은 베스트팔렌(Westphalian 현대적 주권국가 개념을 정초) 민족국가 시대의 첫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가주석의 권력을 선거를 통해 현직에서 차기의 당선자에게 이전하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고, 때문에 정치적 전환기, 즉 새로운 리더가 선출되는 시점과 실제로 권력이 이양되는 시점 사이에 간격이 발생했다.
군주제에는 섭정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국왕이 성인이 되기 전에는 친인척이나 법정 관료가 왕의 자리를 다스리는 것이었다. 미합중국에는 섭정이 없었다. 선거에서 패배했거나, 물러나기로 결심한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의 이름을 걸고 백악관을 통치하지 않았다. 다만, 차기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는 자신의 완전한 권력을 유지했다. 그런데 선거보다는 통치에 대한 규칙에 능통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통령 임기사이에 어색한 중간지대가 발생할 여지를 만들었다.
1797년 존 애덤스(John Adams)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뒤를 이어 미국의 제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당시, 미국 정치체제에는 꽤나 긴 지연이 발생하게 되었다. 애덤스는 1796년 12월 초 당선되었으나, 실제 취임은 이듬해 3월에나 이뤄진 것이었다. 이러한 시차는 18세기의 교통과 통신 속도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대통령을 직접 뽑지 않는 미국 선거제도의 산물이기도 했다. 미국의 선거제에서는 개별 주의 유권자가 특정 대통령 선거인을 뽑고, 해당 주의 선거인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다.
대통령의 정권인수 기간은 대공황이 닥친 이후, 6주가 짧아진 11주로 줄어 들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레임덕에 빠진 정권을 4개월이나 유지하는 것이 영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1933년 수정헌법 제20조가 비준되면서 대통령 취임일은 1월 20일로 변경되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어마어마한 동맹국과 세계 곳곳에서의 군사 및 첩보 활동, 즉시 발사 가능한 핵무기 등을 보유하면서 강대국이 되었다. 그러자 11주간의 대통령 인수기간도 너무 길게 느껴지고는 했다. 4년마다 번복되는 실책에서 그치지 않고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는 공백이 생기는 것이었다. 미국은 냉전시대 초에, 헌법수정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2선의 연임으로 제한하면서도 대통령직의 인수인계 기간을 줄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마도 계속 연방정부의 규모가 확대된 탓일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정권은 항상 더 많은 관료를 채용하기에 바빴다.
안타깝게도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면서 이러한 정책전환이 난관에 봉착하는 일이 잦아졌다. 여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왜 긴 대통령 인수기간의 공백이 미국과 세계에 문제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다.
첫째, 임기 후반에까지 새로운 족적을 남기려 노력하는 대통령들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대부분 외교 정책에서도 이어지기 때문에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들에게 여러 문제를 야기했다. 둘째, 기존 정권과 새 정권의 철학이나 스타일이 너무 다른 경우에는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던 초당적 국가 안보 업무가 흔들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이 공식 취임 전 분쟁을 일으키는 일이 드물게 발생하기도 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와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의 인수 기간은 전형적인 막바지 족적-남기기를 보여줬는데, 파멸에 가까운 결과를 불러왔다. 당시 아이젠하워는 임기 10개월을 남겨두고 오늘날의 콩고민주공화국 도미니카공화국 그리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가 통치하던 쿠바의 정권 교체를 위한 첩보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이들 중 무엇도 케네디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기 전 완료되지 못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에 패했음에도 아이젠하워 정부는 해당 첩보 활동을 중단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았다. 퇴임 전까지 작전 수행을 완료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첩보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예컨대, 케네디의 취임을 1주일 남겨둔 시점에 아이젠하워 정부는 독재자 라파엘트 루히요(Rafael Trujillo)를 암살하겠다는 도미니카 반정부 인사들에 무기를 제공하도록 승인했다. 그 결과 케네디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골칫덩이를 물려받았다. 쿠바의 경우, CIA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과테말라에서 쿠바 망명자들을 훈련 중이었는데 그 수가 속절없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케네디는 당장 조치를 취해야 했고, 이는 피그스 만(Bay of Pigs) 사건의 단초가 되었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동남아시아에서의 군사 개입도 확대하기로 했다. 소련이 라오스 내 공산주의 저항세력에 군수품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꾸준히 그 규모가 증가하고 있음을 알게 된 미국은 1961년 1월 중순에 라오스로 제트기와 조종사를 급파했다. 아이젠하워는 이 사태가 정권 교체 기간을 노린 소련의 시험임을 알았지만, 바로 반응했다. 하지만 그의 실수는 따로 있었다. 소련 군사가 죽을 수 있는 위험을 알면서도 라오스 정부가 제트기를 활용하도록 적극 장려하면서 소련발 항공기를 차단하는 미션을 준 것이다. 그 결과 케네디는 백악관에 입성하자 마자 엄청난 위기를 떠안아야 했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물러나는 정권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외교의 기준을 설정한 반면, 대선 이후 모호한 의사 결정으로 다음 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긴 예시들도 많다. 빌 클린턴(Bill Clinton)에 패한 아버지 부시(George H.W. Bush)는소말리아 내 식량 수송대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 개입을 허용했다.
당시에는 종료 시점이 특정되지 않은 인도주의적인 임무였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에 들어서는 전형적인 임무 변경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군사 개입의 정도가 무섭게 증가했다. 물론 부시가 이런 상황을 예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국가안보 정책을 마무리 짓는 시점에 종료일이 정해지지 않은 군사작전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러시아가 미국의 대선 선거운동에 개입했기 때문에 미국이 곧장 대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오바마가 러시아에 반격한 시점이 트럼프 시대로의 전환을 복잡하게 만든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두번째 문제는 권력을 이양 받을 차기 대통령 당선인에게서 발생한다. 물러나는 정부가 막바지 공을 세우려고 굳이 문제를 만들지 않더라도, 프로그램과 정책, 임무 등은 항상 진행 중이고, 이는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바통을 이어받는 쪽, 즉 당선인이 기존의 정책을 거절하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실제로 냉전 시대에는 기존에 진행 중이던 소련억제 정책을 포기한 정권이 6개에 달했다. 최근에는 테러와의 싸움에 다수의 정권이 개입했다.
1988년, 새롭게 정권을 잡은 부시 정부는 로널드 레이건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쌓아온 신뢰에 의심을 품었다. 정권교체로 행정부 내 관료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회의론은 계속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러한 회의론이 냉전의 종결을 방해하지도 않았고, 부시는 고르바초프의 완벽한 파트너가 되었다. 그렇지만 레이건과 부시의 정권 교체는 부시가 레이건 정부의 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처럼 매끄럽지는 않았다.
부시의 아들 조지 W. 부시의 바통 터치는 이보다 더 했다. 클린턴은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었던 아들 부시가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위협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부시 정부가 알 카에다(al Qaeda) 문제를 인지하고 현장에서 빈 라덴을 사살할 수 있는 드론 개발을 할 것인지 논의하기까지 9개월이 걸렸다.
해당 논의는 이후 프레데터-드론(Predator drone)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함께 구성한 9/11위원회는 2001년 테러 공격을 막을 수 없었던 것으로 결론을 냈지만, 부시 정부 초반에 잠시 알 카에다에 대한 감시를 늦춘 것이 미국의 전반적 테러 방지에 영향을 준 것은맞다.
비록 트럼프는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거부할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트럼프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는 지금, 정권 교체 기간에 발생하는 문제의 세번째 원인과 함께 어떻게 현 정부가 오바마의 바통을 놓쳐버렸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취임일이 오기도 전에 2016년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Vladimir Putin) 정권에 부과한 제재 조치를 약화하기 시작했다.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은 새로운 정부가 러시아를 좀더 너그럽게 바라볼 것임을 암시했고, 국가에 (그리고 자신에게) 화를 끼쳤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진다면, 자신의 성품과 그간의 행동으로 비추어, 심각한 정권 교체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다음달 트럼프가 대선에서 진다면, 자신의 성품과 그간의 행동을 볼 때 우리는 위에 언급한 세가지 중 특히 처음 두 가지 문제로 점철된 정권 교체를 보게 될 것이다. 백악관을 떠나기 전, 미국에 지극히 유해한 업무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월 주독미군의 철수를 결정한 것이나 반(反)중국 정서를 활용하는 행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트럼프는 남은 재임기간을 이용해 NATO를 뒤흔들고, 중국과의 관계는 더욱 망가뜨릴 수 있다. 다행히도 즉흥적인 미군철수나 중국제품에 대한 관세폭탄 등 재임 후반부에 내세울 수 있는 이니셔티브 대부분은 국제 신뢰를 재건하기 위한 고단한 과정에 부담은 주겠지만, 철회가 가능하다.
한편으로 트럼프의 고립주의적 면모를 보면, 그가 아이젠하워처럼 외국의 정권교체를 유도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해서 (바이든이 당선되는 경우) 바이든 정권의 첫 100일을 망가뜨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란 정권을 증오한다는 것, 트럼프 가족이 이스라엘 사우디 UAE 정부와 친밀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막판에 치명적인 이란 정책이 나올 수는 있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면 어렵기는 하지만 평화로운 미국의 정권 교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러나는 정부가 더욱 긴밀하게 정권 교체에 협조하도록 2016년 오바마가 서명한 법률이 처음으로 시험대에 설 것이다. 그런데 표차가 크지 않으면 트럼프는 부정 선거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고, 바이든 인수위원회에 협조하기 싫은 마음을 마구 드러낼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트럼프와 바이든의 정권 교체가 차기 정부의 지뢰밭임은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백악관에 새로 입성하는 정부는 급하게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은 유혹에 직면했다. 국가위기 국면이나 치열한 선거운동을 치른 뒤에는 더욱 그러했다. 외국의 지도자들, 특히 미국의 동맹국들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최대한 빨리 철회하도록 독려할 것이다. 반면 트럼프는 자신이 지난 2016년 그랬던 것처럼 바이든과 그의 인수위원회가 혹시 백악관의 권력을 약화하는 것은 아닌지 방해를 시도할 것이다. 바이든의 측근이라면 소셜 미디어와 트럼프의 주변 국가안보 조력자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의 목표가 될 가능성을 염두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가 설치지 않아도 국제사회는 이미 11월 미국의 대통령 교체 가능성을 두고 불안과 우려를 갖고 있다.
인수 기간 동안 바이든의 과제는 동시에 두 명의 대통령이 동시에 활동하지 않는다는 국가의 전통을 지키면서 전세계에 ‘미국의 귀환’을 알리는 일이다. 국내에서는 탈 트럼프화(De-Trumpification)를 조속히 이루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이미 드러나거나 고발된 정치범죄만 보면, 닉슨 정부와 트럼프 정부는 아주 비슷하다. 닉슨 행정부의 고위직들이 기소된 후, 포드 정부와 카터 정부는 의회와 함께 닉슨의 시대에 악용된 여러 제도적 문제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바이든은 트럼프 정부의 권력남용을 찾아내고 없애기까지 닉슨의 후임자들보다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1970년대에는 대통령 개인보다 헌법수호에 전념한 관료들이 다수 있었고, 이들이 포드 정권의 핵심 구성원이 되어 닉슨 정부의 오점을 청소했다. 그런데 오늘 백악관에는 새 정부와 의회에 그러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고위직 관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이들이 트럼프를 막판에 사면하고, 스스로 잘못의 증거를 은폐하는 인수기간이 예상된다.
탈-트럼프화 작업은 단순히 미국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현대사 최초로 실패한 정권의 청소 작업에 외교정책과 관련한 정치적 재정적 오남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탄핵 추진의 근거가 된 우크라이나 사태). 대통령 인수기간에 법률을 충분히 활용하여 트럼프 정부의 기록을 최대한 온전하게 지켜내는 것은 연방공무원과 공공이익단체 그리고 미디어 등의 몫이다.
트럼프가 굳이 설치지 않아도 국제 사회는 이미 오는 11월 미국의 대통령 교체 가능성을 두고 불안과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인수기간이 워낙 길고, 정책 입안자가 대거 교체되기 때문에 외교정책의 혼란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트럼프는 이미 앙심과 탐욕 그리고 무지를 바탕으로 미국정치의 전통을 차례로 시험했다. 11월 대선에 패배한다면, 4년 전 그랬듯이 이미 결함이 많은 대통령 인수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짙다. 다만,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가 부정행위를 저지를 것을 이미 예상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임기 사이의 중간지대를 더욱 엄격한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
출처 : 포린폴리시(ForeignPolicy) on 2020-09-24
Timothy Naftali(티모시 나프탈리)
CNN의 대통령 역사 전문가이자 작가로 최근 저서로는 탄핵:미국의 역사(Impeachment: An American History)가 있다
코로나와 대선 이후,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미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코로나19와 대통령 선거,
흔들리는 자본주의 제국의 향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전망한다!
코로나19로 세계사적인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강국 미국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코로나19와 대통령 선거의 향방 때문이다.
코로나19는 미국에게 가장 파괴적인 태풍, 퍼펙트 스톰이다. 강력한 태풍이 불면 모든 것이 날아가고 감추어졌던 흉물들이 드러나듯 코로나는 미국의 감추어졌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것이 현재의 미국을 단 한마디로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을 선망하던 외국인의 입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인의 입에서 그 말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포, 불안, 분노, 그리고 절망의 유령이 미국 전역을 휘감고 있다.
그 와중에 치러지고 있는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방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트럼프나 바이든은 이 사태를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현직 대통령과 전직 부통령인 그들은 이 사태에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가 알던 미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코로나19라는 퍼펙트 스톰으로 드러난 미국의 충격적인 실상을 파헤치며, 이제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가 아니라 ‘아메리칸 나이트메어(악몽)’의 나라가 되고 있음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북한지역의 선량한 시민들을 괴롭히는 동북아의 군사력과 제재를 강화하는 대신에, 미국의 차기 행정부는 지속적인 외교정책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조치를 통해 북한을 포용하고자 힘써야 한다.
미국 대선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북한의 핵무장능력이 점증되는 가운데 두 가지의 견해를 광범하게 제시받고 있다 : 북한을 통제하기 위하여 1) 폭력배를 합법화하고 포용할 것인가? 2) 아니면 더욱 제제를 강화하여 옥죌 것인가?
우선 상기의 견해들은 잘못된 이분법적 입장이다. 북한의 지도자를 만나면 성공이고 못 만나면 실패라는 판단은 미국정책의 실패를 보여 준다. 더구나 압박과 제재를 강화하면 북한이 못 견디고 핵무장을 포기할 것이라는 확신은 근거가 없다.
구체적인 성과를 얻으려면,, 차기의 행정부는 ‘한반도-비핵화’를 향해 전반적이고도 새로운 접근을 취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차기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한국전쟁을 종식시켜야만 한다. 대부분의 미국 시민들이 잘못 알고 있듯이, 70년 동안 진행중인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결된 적이 없으며, 단지 1953년 서명으로 합의된 허약한 휴전협정으로 중단되어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국제적인 요인 또는 도발적인 상황에 의해 다시 전면적으로 촉발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오바마와 트럼프 행정부 시절 공히 정치적 고립과 군사적 위협 그리고 제재를 혼합하여 북한에게 핵무기 계획을 포기하도록 강압하여 왔다. 그러나 오바마의 ‘전략적-인내(strategic-patience)’도 트럼프의 ‘최대-압박(maximum-pressure)’도 설정한 목표를 이루는데 실패하였다.
반대로 2018년 싱가포르 회담은 북미 간에 평화체제를 이루고 한반도를 비핵화하는 매우 긍정적인 조치이었다. 이후 북한은 군사력을 증강시켰지만, 더 이상 미사일 발사와 새로운 핵실험을 실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의 실패로 북민 간의 대화는 중단되었는데 이는 미국 내의 정책에서 북한을 포용하고자 하는 어떠한 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은 핵무장의 강화, 인권위반의 사례, 이산가족들의 고통, 제제로 인한 어려움 그리고 핵전쟁의 위험 등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모습이다.
비핵화가 협상의 주제로 선택된 배경은 2018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한 간에 평화의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선언을 이루었는데 다음과 같이 공표하였다 “한반도에서 이제 더 이상 전쟁을 없을 것이며 평화의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상기의 선언에 따라 남북 간에 경제와 민간차원의 협력을 이루면서, 정전협정을 평화합의로 대체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하여 이러한 화해의 노력을 무산시켰다.
북한지역의 선량한 시민들을 괴롭히는 동북아의 군사력과 제재를 강화하는 대신에, 미국의 차기 행정부는 지속적인 외교정책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조치를 통해 북한을 포용하고자 힘써야 한다. 외교전략은 북한에서 일방적으로 선사하는 선물이 아니라, 평화를 얻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워싱턴 당국은 북한과 대화하는 것을 억압적인 체제를 지원하는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북한을 무시하는 것은 길가에 떨어진 깡통을 발로 차는 격으로, 평양당국으로 하여금 핵무장과 군사력을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 시민 대다수는 북한과 같은 적국과는 군사적 충돌을 피하는 외교적 협상을 지지한다.
특별히 차기 행정부는 ‘모 아니면 도 all or nothing’ 개념을 버리고 비핵화와 평화를 전진시키는 단계적이며 상호적이고 실증가능한 조치들을 참을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에서 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제제를 완화시키고, 북미 간에 이산가족의 상봉을 추진하면서 상호간에 신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추가적인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시험을 중단하고 이에 보답으로 한미간에 일체의 군사훈련을 유보하면서 신뢰를 더욱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한국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 전쟁의 지속상태(정전)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는 모든 군사적인 위협과 긴장의 원인이며, 북한과 진정한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항이다.
다행히 기쁜 소식은 미국의 연방의회에서 북한과 평화협정이 비핵화를 향한 결정적인 조치라는 점을 이해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맺자는 하원 결의 152조에 대하여 현재까지 50명의 의원들이 동참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하원의 차기 외교위원회 위원장 물망에 오른 Brad Sherman, Joaquin Castro, 그리고 Gregory Meeks 의원들 모두 상기의 결의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핵무장의 강화, 인권위반의 사례, 이산가족들의 고통, 제제로 인한 어려움 그리고 핵전쟁의 위험 등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모습이다. 모든 사람들의 희망은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으로 평화와 비핵화로 다가가는 것이다. 이는 차기 미국의 대통령에 달려 있으며, 모든 미국인들은 그가 현명하게 선택하기를 압박해야 한다.
출처 : CommonDreams.Org on 2020-10-28.
Christine Ahn (크리스틴 안)
위민-크로스-디엠즈(WomenCrossDMZ)의 대표자이며, 한국전쟁의 정전상태를 종전협정으로 전환하는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재미동포 여성평화운동가이다. 그녀는 미국의 평화재단이 수여하는 2020올해의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지난 10월 7일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낙태법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2019년 4월 “형법의 낙태죄 조항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판결이 있었는데, 이에 대한 후속 조처였다. 그런데 정부의 개정안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충실히 따르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판결 이전으로 역행하는 내용이라는 것이 여성들의 반응이다.
이 정부의 근간이 되었던 촛불집회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낙태죄 반대 ‘검은 시위’가 시작되었고, 얼마 전까지도 현 정부의 주요 지지층이 20-30대 여성이었기 때문에, 현 정부의 이러한 역행은 선뜻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제기한 혜화역 시위 등과 관련하여 여론에서 소위 ‘20대 성 대결’ 담론을 확산시켰을 때에도, 현 정부는 주요 지지층이던 젊은 여성들을 나무라며 청년 남성층의 표를 지키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의 집요하고 헌신적인 노력으로 현재 n번방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형성되는 등, 청년 대중 페미니즘이 한국 정치에 미친 효과가 가시화되기도 했다.
한국의 젊은 남성들이 정치적 침묵을 지키는 경향이라면, 젊은 여성들은 정치적 주체화의 모습을 명료하게 보여왔다. 민주주의는 목소리의 정치이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닥친 집합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시민으로, 정치적 주체로 인식되기보다는 오히려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온갖 다양한 불평등이 겹쳐지고 누적되어 생겨나는 복잡한 불평등의 양상 속에서 유독 ‘성 대결’의 논리를 부각하는 언론의 관점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세력은 여성의 목소리를 먼저 탓하는 관성을 보여왔다. 마치 정치세력에 대한 청년 여성의 지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남성 표의 이탈만이 핵심적인 문제인 양 야단법석을 떨어왔다.
어쩌면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발표된 낙태법 개정안 역시, 최근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정부 여당이 생각해낸 묘수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또다시 여성을 도덕적으로 문제시함으로써 남성 표를 조금이라도 유지하겠다는, 구태의연할 뿐만 아니라 그 효과도 의심스러운 관성적 태도에 불과하다.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데 정치는 왜 계속 이런 관성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여성 표는 셈을 할 필요도 없는 휴짓조각이라고 보는 것인가, 아니면 낙태 합법화에 대한 여성의 요구가 소수 페미니스트의 허위의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 인구의 18% 정도를 이루는 천주교 교리로 한국 인구 전체를 설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천주교의 논리: 태아 생명 보호 대 여성의 권리
미국이나 한국은 천주교 신도가 다수를 이루는 사회가 아님에도, 낙태 문제로 가면 천주교 논리가 전면에 등장하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천주교 논리를 방패막이로 삼는 것인지, 아니면 이 문제에서는 천주교 논리가 보편적 가치를 갖는 것인지 판단해야 할 것이다. 천주교에서는 태아와 그 태아를 임신한 여성의 관계를 적대적인 것으로 설정한다. 낙태는 태아를 죽이는 것이고, 생명은 하나님의 소관이므로 제 몸 안에 있다고 해서 여성이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하나님이 인간 생명을 만들기 위해 잠시 빌린 그릇에 불과하므로, 여성에게는 주체적 결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개인의 ‘주체적’ 교리해석을 정당화한 개신교의 논리를 급진화한다면, 여성의 주체적 성경해석이 완전히 부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낙태 문제와 관련해서는 인구의 소수만을 차지하는 천주교의 논리가 늘 전면에 나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종교개혁과 발맞춘 근대 정치사상 역시 여성을 합리적 결정능력을 갖는 주체로 설정하지 않았다. 근대적 주체는 가족 속에서 여성을 ‘보호’한다는 남성이고, 여성은 남성의 가부장적 ‘보호’―라고 표현되는 ‘지배’―를 받으며, 사랑으로 가족에 헌신하는 사생활 속에 숨겨진 존재로서 규정되었다. 즉 여성은 사생활 속에서 신분제적으로 얽매인 존재였다. 따라서 여성의 ‘주체적’ 해석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은 애초부터 주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주체는 사생활의 주인이자 공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사람, 즉 가장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유교적 공동체주의에 기반해서 근대 개인주의를 죄악시해온 한국 사회에서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가 생명체를 낳고 낳는 우주의 중심 섭리로 재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여성의 몸은 ‘밭’이고 생명의 본질인 ‘씨’는 남성의 핏줄이므로, 여성의 몸은 역시 남성의 혈통집단이 잠시 빌린 그릇에 불과하다. 여성은 자기 몸속의 생명에 대해 어떤 결정권도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서양 중세 종교였던 천주교든, 서양의 근대적 정치사상이든, 한국의 유교적 공동체주의든 상관없이, 다소 일반적으로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해서조차 주체적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숙명적 존재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에서 유교의 논리가 매우 심각하게 약화하면서, 한국에서도 낙태 문제와 관련해서는 천주교 교리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여성이 이제는 사생활의 주인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공적 행위도 하는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이러한 논리가 유지되어야 하는가? 언뜻 보아도 이것은 모순적이다. 물론 여전히 여성이 가족이나 공적 영역 속에서 신분제적이라고 할 가부장적 규정에 얽매여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의 주체적 결정능력이 과도하게 요구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면 주체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는지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한다. 여성이 자녀 돌봄 부담으로 직업 세계에서 남성과 똑같은 방식으로 조직에 몰입하지 못하면, 여성의 개인주의적 태도나 선택이 문제로 지적된다. 여성은 신분제적으로 가부장제에 종속된 상태에서 완전히 풀려나지 못한 비자유인의 처지면서도 동시에 수퍼히어로와 같은 주체성 발휘를 요구받고 있다. 아마도 이처럼 여성에 대한 요구가 모순적이라서, 논리적 정당화가 아닌 ‘종교적’ 가치의 문제로 낙태 문제가 환원되는 경향이 계속될 것이다. 말하자면 천주교의 논리가 ‘세속적’ 생명권의 문제로 번역되면서, 낙태가 태아의 생명 보호 대 여성의 권리 간의 이분법적인 적대관계의 구도 속에서 다뤄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과 태아가 이렇게 적대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면, 여성에게 태아의 성장을 맡기는 것만큼 무책임한 일은 없을 것이다. 생명체의 적에게 생명체를 위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체를 여성의 폭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기술발전에 기대어 태아가 여성의 몸에서 성장하는 것을 최대한 단축해야 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출산과 함께 태아를 어머니로부터 격리하여 그때부터 ‘사랑방 교육’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자녀 양육과 돌봄은 여성의 일로 규정되어 있다. 이 모든 모순을 볼 때, 태아와 여성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 신념 또는 종교의 영역에 속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치는 그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 내에서만 유효하다. 대표적으로 다문화주의는 타 문화에 기이하게 보이는 문화도 문화상대주의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그런 가치의 인정은 해당 공동체 내부로 한정된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과연 우리 사회가 그런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인가?’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가치 공동체는 신분제적 귀속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선택의 문제, 즉 입장과 탈퇴의 문제이다. 출생과 함께 한국 사회에 귀속되었다고 해서, 한국 사회의 특정 공동체 질서로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가 더 이상 균질한 공동체가 아니라 가치 다원화 및 다양성 속에서 분화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법이 어떤 가치와 신념을 공동체적으로 강요한다면 그것은 헌법 질서에 어긋날 뿐이다. 이것이 낙태문제를 가치와 신념의 문제로 규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물론 기능분화한 현대 사회에서도 지켜져야 할 가치가 있다. 그것은 헌법적 가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헌범재판소는 낙태 문제에서 가치를 여성인권의 가치로 규정했고, 그것이 태아 생명과 적대적 관계에 있지 않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정부는 다시 근거가 불명확한 유사공동체적 가치―생명권 대 여성 인권의 이분법에서 생명권을 우선시하는―로 회귀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여성 인권과 태아의 생명권은 상호 적대적인가?
근대적 주체 개념에서는 개인과 의존관계가 상호 명확히 분리되고 또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우리는 구미 사회의 코로나19 대응을 보며, 근대적 주체 개념의 한계를 목도하고 있다.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근대적인 자율적 주체 개념은 코로나19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인 상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바이러스의 영향력에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초반부터 지금까지 개인의 자유 제한을 정당화할 논리가 없어서, 구미에서는 사회적 봉쇄와 봉쇄를 푸는 단순하고 극단적인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는 감염병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해서 개인정보보호 문제가 충분히 공론화되지 못한 채 행정적 조치들이 서둘러 수행되는 등 인권 차원에서 미흡한 부분이 존재한다. 이것은 단순히 공동체주의적 미덕이라고 얼버무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인권 보호의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하듯이, 서구의 근대적 주체 개념에 대한 근본적 재고 역시 필요하다. 근대적 주체 개념, 특히 인간의 의존성을 완전히 삭제하고 완전한 자율성을 강조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세 방향에서 문제 제기가 존재했다. 하나는 공동체주의이다. 여기서는 기능분화한 현대 사회를 일정한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따라서 자칫하면 과거의 위계적 공동체로 회귀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현대의 기능분화한 사회 원리와 공동체적 가치 공유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페미니즘이다. 여기서는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공동체주의 역시 비판한다. 공동체주의에서 주장하는 ‘가치의 공유’를 가부장적 가치의 지배와 동일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제3의 관계주의를 주장하지만, 그것의 내용에 대한 청사진을 속 시원하게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생태적 관점에 서 있는 신유물론에서는 근대적 주체가 인간의 특권적 지위를 주장한다고 비판한다. 인간은 지구 위에서 다른 물질 및 생명체와 의존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데, 근대적 주체 개념은 인간을 물질과 무관한 정신적 존재로만 규정한다는 것이다.
공동체주의와 비교해서 페미니즘과 신유물론이 갖는 강점은, 관계적 존재론을 기존의 ‘공동체’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고 아직 그 내용이 결정되지 않은 수행적인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공동체주의는 경험적인 공동체 개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위계관계와 권위주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경험한 공동체는 늘 지배와 피지배의 위계관계를 공동체의 가치로 정당화하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가부장적이지 않은 공동체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페미니즘에서는 관계성 강조를 공동체주의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생태적 신유물론에서는 가부장적 지배보다는 비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강조한다.
임신한 여성과 태아의 관계는 명백히 근대적 개인주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일단 관계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근대적 주체 개념은 임신한 몸을 포괄할 수 없다. 임신이란 여성과 태아가 일정한 물질적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의 주체적 결정은 태아라는 생명체에 영향을 주고, 태아에 대한 담론적 규정은 여성의 주체적 결정에 영향을 준다. 여성과 태아는 상호관계 속에 위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관계는 인간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공동체의 개념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우선, 이들이 한 몸속에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것은 공동체 관계가 아니다. 공동체 관계는 물리적으로 분리된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태아는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관계는 공동체보다 생태적 신유물론에서 주장하는 관계성 개념에 훨씬 가깝다. 태아는 생명체이기는 하나 법적 인격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낙태 문제는 상호 적대관계 속에 있는 생명체와 인간 간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의존관계 속에 있는 생명체와 인간의 문제가 된다. 특히 하나의 몸으로 연결된 상호의존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주체적 결정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완전히 자율적인 주체의 결정과 다른 점은, 결정이 단순히 ‘자유’나 ‘권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책임’의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해러웨이는 낙태는 서로가 죽여야 하는 생물체들의 세계 속에서 등장하는 죽이기의 문제와 같다고 보았다. 생물체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먹이 등을 위해서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 이런 경우의 결정과 낙태의 결정이 유사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체와 불가피하게 연결된 타 생명체에게 응답하는 행위로서의 선택이다. 또 생명체 역시 주체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낙태는 이런 상호 응답의 관계 속에서 책임 있는 응답을 하는 것이다. 즉 낙태는 여성이 자신의 요구와 태아의 요구 모두에 응답하는 결정의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여성과 태아의 구체적 관계로부터 결정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것은 어떤 일반적인 해답을 외부로부터 제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생명체가 장차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특수성을 가졌다는 사실 역시 구체적으로 그 몸적인 관계를 체현하는 당사자가 응답할 문제이지, 외부로부터 특정 응답을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보면, 여성에게 낙태의 자유는 단순히 자율적인 개인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의존 관계 속에서 수행되는 주체적 결정의 문제가 된다. 따라서 여성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가치나 제도적 지원 등은 여성의 결정에서 고려되는 조건으로 작용할 뿐, 법적으로 강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15년에 진행된 이 인터뷰 내용은 세가지 의미에서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첫째, 신향촌건설 운동의, 흥미진진하면서도, 시대적 역설이 잘 드러나는, 초기 역사와 일화를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당시 장쩌민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공산당의 최고위급 간부들이 배석한 회의에서 원테쥔 선생이 삼농문제를 직보하여, 중국 정부의 주요 정책의제로 받아들여지게 된 장면은 상당히 극적인 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실제 중국 정부가 이를 받아 2005년부터 실행한 ‘신농촌건설’이 여전히 하드웨어적인 인프라 투자, 즉, 도시의 생산과잉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자 ‘발전주의’에 기반한 실천인데 반해서, 그에 앞서 진행된, 신향촌건설 운동은 농민과 청년지식인이라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고방식을 가진, 인문생태주의적인 실천이라는 것은, 당대 중국사회가 삼농문제를 받아들이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당시, 중국 정부의 신농촌건설은, 한국에서는 비판적으로 거론되는, 새마을운동을 상당히 참고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원톄쥔 선생은 삼농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그였음에도, 막상, 주류 사회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향촌건설운동은 20여년 가까이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이 글에서 주요하게 거론되는 량슈밍향촌건설 센터는 아직도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이 조직은 아직도, 베이징 교외의 매우 허술하고 영세한 시설속에서, 젊은 이상주의 청년 활동가들의 열정과 몇몇 선도적 민간/국제 기금의 지원으로 어렵게 운영되고 있다. 중국 NGO와 자선단체의 주류를 이루는 관방 혹은 대기업이 지원하는 거대 단체들의 지원을 통한 안정화는 여전히 요원한 일이다. 시진핑 정부의 ‘향촌진흥정책’이 보다 소프트웨어적인 관점으로 이행함에 따라서, 여건이 다소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대규모 자본이 투하되는 여러 정책 사업들에 신향촌건설 운동에 속한 풀뿌리 조직들이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경우는, 몇몇 기층 지방정부와 협력하는 실험적인 사업들을 제외하고는 제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역으로 지나치게 주류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으로 보이는 일부 참가자는 운동진영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은 20년에 걸쳐 다양한 배경과 입장을 가진, 수많은 참여자들이 등장하면서, 참가방법도 그만큼 폭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간난고투를 피할 수 없는, 순수한 민간사회의 운동노선과 사회적 자원을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영향력이 큰 주류 대중운동사이에서의 선택에 긴장과 고민을 늦출 수 없는 것은,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중국의 교육과 청년문제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국 교육은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은 매우 ‘신자유주의 체제하의 동아시아적’인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 특히, 이 인터뷰가 진행된 2015년보다 훨씬 심각해진, 2020년 현재, 대졸자들의 취업난, 학벌지상주의와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날 수 없는, 학력에 의한 계급분화문제 등이 있다. 최근, 급증하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우울증, 경쟁지상주의에 기반한 학교 폭력, 매우 이기적이고 원자화된, 명문대학 엘리트들의 행동 양태를 보면, 중국 일선一線도시의 청년들은 한국의 동시대 청년들이 ‘헬조선’이라고 자조적으로 한탄하던 암울한 시대의 문턱에 이미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특히, 80년대 출생한 대졸자들은, 폭등한 집값 때문에, 졸업직후, 거주하는 도시에 아파트를 마련했느냐 하지못했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중산층 진입여부가 갈라지게 됐다. 당연히, 90년대 이후 출생자라면, 애초에 자력으로 집을 구매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짐에 따라, 결국 부모의 경제 능력이 계층을 나누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주로 삼농의 관점으로 제도권 교육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제시 됐는데, 실제로, 중국에서도 고등교육 전단계에서는 소위 ‘대안교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현실은 별수 없이, 주류사회에서의 경쟁에 몰입하거나, 유학을 선택하는 이들이 더 많다. 원톄쥔 선생은, 최근의 인터뷰에서 향촌의 자연과 전통문화가 기반이 된, ‘자연교육’ 등을 보다 보편적 해결책의 방향성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번째, 원톄쥔 선생이 열망하는, 탈엘리트주의와 대중민주주의 추구,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이 신향촌건설의 사상적 노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상적 경향은 젊은 시절, 10여년에 걸친, 그의 하방(상산하향) 경험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현대 중국 사회의 격변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의 경험을 개인적인 비극과 고난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자양분으로 삼아, 현실에 기반한 지식과 활동으로 승화한, 몇몇 당대 중국 지식인들의 모습은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중요한 경험들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청년지식인들이 성장지상주의에 물든, 중국 주류 엘리트사회의 흐름을 좇지 않고, 신향촌건설 운동에 투신해, 이상을 좇아 분투하는 모습도 여기서 배운 바 적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 총서기는 2017년 중국공산당 19대 보고에서 향촌진흥전략을 추진함과 동시에 ‘일동양애一懂兩愛 (농업을 이해懂하고, 농민과 농촌을 사랑愛하는)’ 인재의 육성을 천명했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국가의 향촌진흥전략을 관철함에 있어서, 농민대중과 협력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는 일을 우리가 이미 수십년해왔기 때문이다. 향촌건설운동을 통해 길러내고 삼농문제에 이미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우수한 인재들이 이 시기를 맞아서, 생태문명체제개혁의 선봉에 서야 한다. 또 하나, 우리가 낡고 병든 현재의 교육체제안에서 이런 인재들을 키워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서구 분과학문의 교조주의와 학벌주의의 폐해와 맞서 싸워야 한다. 이런 의사과학적 형식주의가 유지하는 제도권 교육체제는 실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의 산물이고 여전히 겉만 번드르르할 뿐이다 ! 그러니, 향촌진흥의 앞날은 여전히 가시밭길이다.
1. 청년 자원활동가들이 열어가는 농촌지원하향운동의 시대적 배경
2001년 새로운 세기가 열리면서, 나는 (장쩌민)총서기가 주재하는 삼농문제 좌담회에 참석할 것을 통보받았다. 회의석상에서 총서기에게 직접 삼농문제를 보고했다. 그리고 중앙이 농업정책 방향을 바꿔 삼농정책을 중시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중, 나는 비교적 젊고 지위가 낮은 편이었기에, 더 단도직입적으로 주저없이 발언할 수 있었다. 나는 농촌의 형세가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했고, 삼농문제가 갈수록 악화되어 간다고 내가 기탄없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중앙의 리더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 총서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직접 책임지고 당신이 제기한 문제를 정치국에서 토론하겠소”. 나중에 중앙은 우리가 90년대부터 계속 외롭게 목소리를 높여온 삼농문제의 개념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삼농문제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기반이 된 배경이다.
<그림 1> 2004년부터 중국공산당 중앙과 국무원은 매년 1호 문건에서 삼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내어 놓고 있다.
원래 중국 정부는 90년대초부터 대략 10년간, 서방의 농업정책과 사상을 참고해서 농업문제에 임해왔다. 방향이 다르니, 방침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90년대 농업정책을 비판하면서, “눈에 숫자만 들어오고, 마음속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표현해왔다. 삼농문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여전히 ‘농업’을 일순위로 놓고, ‘농민’은 돌아보지 않았다.
삼농의 첫자리에는 바로 농민이 와야 한다. 중국이 장기적으로 진정한 사회의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농민조직화이다. 왜냐하면, 농민이야말로 중국의 원주민이고, 중국 인민의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농민의 생산, 생활과 자연생태의 결합은 매우 밀접한 것이고, 농민의 문화적 실천은 언제나 일종의 다양성의 원칙을 견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이야말로 삼농중 첫째자리에 놓이게 된다. 마음속에 사람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사람이 근본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농민이 지켜온 농업문명을 진흥시켜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과거와는 다른 방법이다. 과거에는 농업생산만을 중시했다.
두번째가 농촌이다. 실은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하려면, ‘농촌소멸’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을 반대해야 한다. 만일 농촌이라는 그릇이 없어지면, 우리가 오늘날 이야기하는 농업경제, 생산 그리고 농민이 문화전승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개념들은 근본적으로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그림 2> 원톄쥔이 편집장으로 일했던 <<중국개혁 (농촌판)>> (2002) 잡지는 신세기 향촌건설운동의 플랫폼과 선전기관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 요소가 삼위일체를 이룰 때, 형세가 안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농의 삼위일체적 지속가능성이 바로 농업의 지속가능성이다.
2001년부터, 중앙은 삼농문제를 주요 의제로 받아들이고 2005년 중국 공산당 16차 전당대회 이래 신농촌건설을 중요한 국가전략으로 삼았다. 이것은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고, 우리는 이런 기회를 이용해,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던 향촌건설을 재개했다. 향촌의 부흥이라고 부를만하다.
“마을(촌락)주의”는 1894년 청일전쟁 패배이후 장지엔張謇이 난통南通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실험지역을 만들고 실천할 때 내놓았던 구호이고 바로 향촌건설의 기본 이념이다. 민국시절 지식인들도 이를 신조로 삼아 1920~30년대에 농촌으로 내려갔다. 이 흐름에는 거대한 국제적 배경도 있다. 영문으로 번역하면 rural reconstruction인데 향촌 혹은 농촌의 재건으로 번역할 수 있다. 나중에 국민당이 대만으로 건너가서 역시 이 개념으로 대만에서 농촌부흥을 꾀하고, 농촌부흥위원회라는 국가 기구를 만들게 된다.
우리는 2001년부터 향촌건설을 재개하면서, 향촌재건, 향촌부흥, 향촌건설 대신, 향촌문명의 부흥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백년 운동사를 이어받기 위해, 최종적으로 향촌건설이라고 부르게 됐다. 또 민국 시절의 운동과는 차별화를 두기 위해 신향촌건설이라고 불렀다.
<그림 3> 중국개혁 편집장 원톄쥔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중앙정부에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상경한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2년).
당시의 대학생 청년 자원활동가들이 농촌지원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1년인데, 바로 중앙이 이미 삼농문제 개념을 받아들였던 그 시점이다. 하지만 각 지역과 부문은 아직 이를 소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반응이 뜨거웠다. 농민문제, 농촌문제와 농업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빌어, 우리는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농민들과 마주하고 협력할 것을 권했다. 삼농문제를 해결하려면, 삼농에 복무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중국 사회의 인민들이 그 흐름을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소수의 지식인들만 현실을 비판하고, 소수의 각성된 청년들만이 이에 호응한다면, 이는 소수만이 참여하는 소수의 일에 머물뿐이다. 일단 21세기 초에 전국민이 삼농문제를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때만, 규모를 갖추고 지속가능성을 가진 사회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이 향촌건설운동이 21세기초에 다시 시작된 배경이다.
2001년 다시 시작된 향촌건설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맥락 혹은 주요한 내용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이미 많은 청년 자원활동가들을 농촌으로 보내, 농촌의 조사, 연구, 지원 활동에 참여하게 한 것이고, 사회적으로 ‘신하방(상산하향)운동’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 과정속에서, 키워낸 인재들이 천천히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보내, 자신을 단련시키고 스스로 농촌의 우수한 인재로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일반적으로 서구적 모델을 차용하는 대학들은 이런 식으로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다.
<그림 4> 제1기 중국향촌건설교육, 스태프 (오른쪽: 류라오실劉老石, 중간: 치우졘셩邱建生)들과 농민이 함께 찍은 사진 (2003년 1월, 베이징).
2. 청년 지식인의 농촌지원 사명
2001년 신향촌건설 운동이 재개된 이래, 20세기 초반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활동가들은 농민을 움직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는 농민들이 조직화하여 스스로 협상을 할 수 있는 지위를 갖추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통해서만, 농민들은 사회계약의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농민조직이 없으면, 의견이 분산돼, 농민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한편 그 상대방인 사회의 다른 주체들도 수많은 각각의 농민과 계약을 맺을 수는 없다. 즉, 효율이 너무 떨어져서, 의미있는 사회적 계약관계를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시장경제는 계약이 기초가 되고, 이것을 신용경제라고 한다. 시장경제조건하에서 신용사회를 만들게 되는데, 농민이 조직화되지 않으면 이것의 성립이 불가능해진다.
<그림 5> 2003년 겨울방학기간 베이징사범대학에서 열린 제1회 전국대학생 농촌지원조사연구 교육과정 (앞열의 왼쪽 두번째: 류라오실 왼쪽 아홉번째: 치우졘셩, 세번째열 오른쪽 아홉번째: 원톄쥔).
그리하여, 신향촌건설의 주요목표중 하나는, 농촌에 내려가 기층 농민들의 조직화를 돕는 것이었고, 이렇게 생겨난 농민조직들이 당시에 협동조합을 만들어 냈다. 이 과정은 정부에서 협동조합법을 제정하기 훨씬 전에 이루어졌고, 그 목적은 시장경제가 요구하는 계약관계를 성립시키는 기본적인 조직기초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런 주류의 관점에서 시작했지만, 우리는 당연히 농민들을 움직여야 했다.
다시 문제가 생겼다. 누가 농민을 움직일 것인가 ?
1980년대이래, 우리는 지속적으로 대학생들의 농촌방문 활동을 조직해왔다.
<그림 6> 2003년 1월 류라오실이 서남지역의 농촌지원방문단의 간부로서 농촌방문활동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당시 농촌정책수립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중앙서기처 농촌정책연구실이라고 불리던 곳이다. 내가 소속된 팀의 주요 임무중 하나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고무하는 것이었다. 특히 청년학생들을 조직해서 농촌으로 보내고, 농민과 결합시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농촌의 조사연구를 진행하면서, 현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또 한가지는, 청년의 열정과 능력을 활용해, 농민을 돕게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통해 크든 작든 농촌의 발전을 촉진하게 하고 싶었다.
80년대이래, 중앙의 농촌정책중 주요한 업무중 하나가 수많은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내려가 지원을 하는 활동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당시 내 상사는, 나중에 내 박사논문을 지도한 두룬셩杜潤生 선생이었는데, 그는 중앙재경업무 영도소조의 일원이었고, 동시에 중앙농촌정책 연구실의 주임이었다. 그는 당시에 이미 70세를 넘었는데, 노년에 접어든 혁명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희들의 주요한 임무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농촌으로 보내는 것이다. 만일 이를 성공시킨다면, 그렇게 청년학생들을 보낼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업적이다” 그때 두선생의 마음속에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80년대의 농촌정책은 상대적으로 유효했고, 농민들에게 환영 받았다. 그 당시의 1호문건을 지금의 1호문건보다 농민들이 더 좋아했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지식인 청년 학생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서, 현황과 민심을 제대로 살필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90년대에 들어와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구의 모델이 농업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도입됐다. 농민의 권익과 농촌발전문제는 경시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청년학생들을 농촌으로 내려보내겠다는 중앙의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21세기를 맞아, 중앙이 다시 삼농문제를 강조하기 시작한 이래, 다시, 청년학생들의 하향농촌지원활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어서 국무원영도하에, 이 흐름을 지지하고, 공개 서신을 보내는 형식으로 청년들의 농촌 지원 활동을 격려했다.
이때, 다시 농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스스로의 협상지위를 제고하며, 사회계약 관계를 안정시키고,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경제사회기초가 되도록 하기 위해, 누가 다시 농민들의 조직화 문제를 도울 것인가 ? 그래서 우리는 다시 대학생들을 훈련시켜 농촌으로 보내고, 80년대 농촌정책부문의 훌륭한 전통을 계승하여, 지식인, 청년학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삼농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독려했다. 그래서 농민조직화를 위해서 반드시 청년학생들이 농촌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림 7> 2016년 농촌지원하향, 제8회 여름 캠프.
<계속>
2015년 8월에 진행된 인터뷰내용으로, 2020년 동방출판사에서 출간된 <<향촌필기:신청년과 향촌의 생명대화 鄉村筆記:新青年與鄉村的生命對話>>라는 저서에 수록됐다.
이제 지구는 기후재앙을 불러올 티핑-포인트(변곡점)에 접근하고 있으며, 미래문명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극적인 개입의 조치가 요구된다. 비극적인 사태를 피하려면 생태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며, 기업의 지배구조, 금융시스템, 에너지 정책 등에 급진적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
런던 – 금년 초부터 코로나-19가 전파되면서 각국의 정부는 공공의료의 위기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봉쇄조치를 단행하였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세계는 다시 봉쇄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이번에는 전염병이 아닌 기후재앙을 방지하기 위해서 시행하게 될 것이다.
북극의 빙하이동, 미국 서부지역과 호주 등에서의 산불, 북해에서 나타나는 메탄의 유출 등 모든 신호들은 지구가 기후재앙을 불러올 티핑-포인트에 근접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미래문명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극적인 개입조치가 요구된다.
기후로 인한 경제봉쇄가 이루어지면, 사적인 차량운행이 제한되고, 육류소비가 금지되며, 에너지 절약을 위한 가혹한 처방이 내려지는 동시에, 화석연료 에너지분야 기업들의 조업 역시 중단될 것이다. 이런 극한적 상황을 사전에 피하려면, 우리는 현재의 경제구조를 대대적으로 변혁하고 자본제 시장을 다른 방식으로 운용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후재앙은 공공보건 그리고 팬데믹이 초래한 경제위기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후재앙과 공공보건 그리고 경제위기는 긴밀히 연계되어 있으며, 해법도 같은 선상에서 이루어진다.
코로나-19 자체가 환경파괴의 결과이며, 최근의 한 연구조직에서 이를 ‘인류세의 질병’이라고 명명했다. 더구나 기후변화는 팬데믹에 의해서 제기된 사회경제적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예를 들어 공공보건의 위기를 대응하는 정부의 능력을 저하시키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유지시킬 민간분야의 역량을 제약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확산시키는 촉매역할을 한다.
이런 사태의 진전은 사회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가치기준에 혼란을 일으킨다. 일상을 유지하는데 가장 절실하고 필수적인 일꾼들, 예를 들어 간호사와 슈퍼마켓의 점원들 그리고 배달부들이 저임금에 시달린다. 근본적인 변혁조치가 없으면, 기후변화는 현존(불평등)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기후위기는 동시에 공공의료의 위기이기도 하다. 지구온난화는 음용수의 질을 저하시키고 공기오염에 따라 호흡기관련 질환을 창궐하게 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2070년경에는 35억의 인구가 견딜 수 없는 고온의 지역에 거주할 것이라고 한다.
상기에 언급한 3가지 위기에 대처하려면, 기업의 지배구조와 금융정책 그리고 에너지 수습체계를 생태경제로 전환하는 재구성이 필요하며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해야만 한다. 1) 이해관계자 방식이 아닌 주주이해중심의 기업구조, 2) 적절하지도 정당하지도 못한 수탈적 금융정책, 3) 낡은 경제적 사고와 잘못된 가설에 기반한 정부운용 등이 이에 해당한다.
기업 지배구조는 주주의 이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반드시 이해관계자의 필요를 반영해야 한다. 포용적이며 지속가능한 경제를 실현하려면 공공과 민간 영역 그리고 시민사회의 참여적이며 생산적인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기업은 노동조합과 집단적 직원조직, 해당사회의 시민단체, 소비자 보호조직 등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민간기업들에게 특혜적인 보조금과 보증 그리고 구제지원을 줄여야 하며, 대신에 파트너-십을 구축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특정기업에게 구제지원을 해야 하는 경우, 필수적인 의무조건을 부여하여 세금이 단기의 사적인 수익이 아니라 생산적 영역과 장기적 공공가치를 실현하는데 투입하여야 한다.
현재의 위기극복 과정에서도, 프랑스정부는 르노 그룹과 Air France-KLM를 구제지원하는 조건으로 배기가스절감의 의무사항을 삽입시켰다. 프랑스 덴마크 폴란드 등은 오로지 세금회피를 위하여 해당국가에 등록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지원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으며, 2021년까지 자사주매입buy-back행위와 과다한 배당조치를 금지시켰다 유사한 사례로 미국에서는 코로나-구제지원법CARES에 의해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는 기업들에게 자사주매입의 행위를 금지시켰다.
이러한 의무조건의 부과는 기후위기의 관점과 경제적 견지에서 볼 때, 단지 조그만 단초에 불과하며 매우 불충분한 조치들이다. 정부의 구제지원 팩키지 내용을 살펴보면, 기업의 필요에 해당하지도 않고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Air France의 경우를 들어다 보면 배기가스 규제조항은 단지 국내선에만 적용될 뿐이다.
환경친화적이고 지속적인 경제회복을 실현하려면 더욱 과감한 조치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원을 낭비하는 기업들을 규제하는 세금조항의 도입을 고려할 수 있다. 인적자원(노동력)을 낭비하거나 해고하지 못하도록 기업단위 또는 국가차원에서 일자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팬데믹으로 인해 불공평하게 실직한 젊은 세대 또는 노령노동자층을 보호할 수 있으며, 산업적 침체로 고질화된 고통을 받는 일부 지역의 경제적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다.
금융제도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2008년 금융위기의 시기에 각국 정부들은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과잉유동성을 시장에 제공하였는데, 이러한 조치가 선의적 투자의 기회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부적절하게 (투기성) 금융시장을 받쳐주는데 투입되었다.
현재의 위기는 금융정책을 장기적 성장을 위한 생산적 방식으로 연계할 기회를 제공하여 준다. 이런 관점에서 장기적인 관점의 금융정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품수명이 25년 이상이나 되는 풍력터빈에 투자하는데 3-5년의 기간은 너무 짧으며, e-mobility와 자연림조성 프로그램 등 자연자원 개발 그리고 생태복원을 위한 간접시설의 투자에는 장기간의 금융조건이 필요하다.
일부 국가들 정부에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촉진정책에 착수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정부재정을 투입하는 경우 GDP지표보다는 안녕(복지)라는 지수에 기반한 폭넓은 목표를 지향하여 예산을 책정하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사회가치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국립투자은행을 설립하였다.
금융정책을 생태전환의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동시에, 우리는 그간의 환경을 파괴시켜온 금융분야의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네덜란드 금융기관들이 생명다양성에 반하여 투자한 행위가 58,000 제곱킬로(남한의 반) 면적의 원시자연을 파괴하였다고 추정한다.
시장은 절대로 스스로 생태적 전환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정부의 공공정책이 방향을 이끌어 가야 한다. 따라서 정부 역시 기업적 정신으로 민간 영역과 함께 혁신하고 위험을 부담하며 투자를 시행하여야 한다.
정책입안자들은 공공구매방식을 바꾸어, 기존의 공급자들에 의한 저가방식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행위자들이 무작위적crowd-in 방식에 따라 혁신적으로 참여하여 공공적 생태가치를 실천하도록 유도하여야 한다.
각국의 정부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시행하는 혁신과 투자의 금융기법을 습득하여, 정보기술의 혁신을 지원하는 폭넓은 산업정책을 펼쳐야 한다. 유사하게 유럽연합은 최근 유로-그린-딜과 신규 산업전략를 출범시키면서, ‘새로운 세대의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생태회복기금 7500억 유로를 책정하여 급격한 전환기구(Just-Transition-Mechanism)의 동력으로 작동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에너지정책을 재구성해야 한다. 제생에너지를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책이자 경제에 필요한 에너지를 안전적으로 공급하는 핵심전략으로 삼아야만 한다. 화석연료를 배제하고 이에 기반한 단기적 사업수익을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정책과 금융을 펼쳐야 한다. 재정적으로 강력한 기구인 은행들과 대학의 투자조직들은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포기해야 한다.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지 않으면, 탄소기반경제는 여전히 활개를 칠 것이다.
생태전환을 향해가는 출구의 창과 코로나-19 위기에서 탈출하는 치유적 회복을 실현하는 기회의 문은 조만간 닫힐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는 미래로 전환하기를 원한다면, 지속가능한 에너지의 사용과 ‘생태적으로 아름다운 삶-green-good-life’를 미래세대에게 넘겨주려면, 지금 당장 신속하게 움직여야만 한다. 여러 부문에서 급진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우리의 과제는 아직 우리가 선택할 시간이 남아 있을 때,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확실하게 쟁취하는 것이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0-10-04.
Mariana Mazzucato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혁신공공가치분과의 경제학 교수이며, 해당분야 연구센터의 설립자이자 현직 책임자이다. The Value of Everything: Making and Taking in the Global Economy그리고 The Entrepreneurial State: Debunking Public vs. Private Sector Myths의 저자이기도 하다
중국이 2060년까지 탄소중립화를 실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하여 서방을 놀라게 하였다. 시진핑 주석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은 탄소를 배출하던 국가가 탄소에서 탈출하는 급진적인 계획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이로써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정치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다.
시 주석의 선언에는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춘 전술적 동기가 숨어 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중국이 시주석의 독재에 대한 면제부라는 전략적 선전효과를 놀렸다거나 서방외교에 대한 양보라고 규정하는 것은 서방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며, 동시에 기후문제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국공산당 역시 다가오는 세기를 준비하면서 중국지도자들도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중국전략을 과거식으로 동서 간의 대립적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퇴행적 인식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유럽과 미국이 기후변화라는 공식(역할)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
2018년을 기준으로 보면, 미국과 유럽을 합쳐 8.9기가 톤의 탄소를 배출하였는데 이는 지구전체 배출량의 1/4수준에 못 미친다. 중국이 단독으로 배출하는 량이 생산량 기준으로 이를 넘어선 10.1기가 톤이며, 이 세 지역(유럽, 미국, 중국)을 모두 합치면 전세계 배출량의 딱 절반이다.
나머지 17.9 기가 톤은, 유럽과 미국의 배출량에 두 배가 넘는 것으로, 인도를 포함한 나머지 국가군들이 배출하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주요 3개 지역의 배출량은 정체되고 있는 반면에, 정확히는 미국은 조금 줄어들고 유럽은 정체상태이며, 중국은 아직도 미세하게 증가하는 중인데, 나머지 국가군들에서는 여전히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이다.
점점 더 많은 국가군들의 시민들이 중산층으로 진입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발전소를 늘려야 하고, 생활수준이 나아진 시민들이 자동차와 냉장고를 추가로 구매하면서 전체적인 탄소배출량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 결과로 이제는 주요 3개 지역만의 합의를 통해 탄소배출량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시점이 지난 셈이다. 서구와 중국 뿐만 아니라 인도 그리고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경제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국가들과 인구가 많은 파키스탄과 나이지리아, 그리고 화석에너지 생산국가들인 호주 캐나다 러시아 그리고 아랍산유국들도 탄소안정화 협약에 반드시 참여하여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의 제기가 지난 수 년간 국제기후 회의마다 논의되었으나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중국이 공식적으로 탄소중립화를 선언함으로써 모두가 참여하는 게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미국의 기후정책아 2015년에 파리에서 이루어진 기후협약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당시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은 지구온난화에 대처하여 상응한 조치를 취하는 것에 합의 하였지만, 사실상 파리협약은 기만적이었다.
당시 온도상승의 목표를 2도에 맞추고 실제로는 1.5도를 넘지 않도록 모든 국가들이 실행가능한 노력을 추진하는 것을 결의였지만, 탄소배출량을 강제로 할당하는 핵심 내용의 신관을 제거하였다. 그 결과, 형식적으로만 약속하면서 실제로 온도목표를 실현하는 데는 무기력한 모델로 전락하였다.
전 지구적 배출량은 이후 계속 증가하였다. 에너지공급의 혼합방식(energy-mix)을 전환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경제성장을 추구하다 보면, 에너지 효율을 상쇄하게 된다. 이에 더하여 트럼프가 파리협약에서 탈퇴를 결정한 것이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면서, 브라질과 호주 러시아 그리고 사우디가 계획에서 빠져나가는 구실을 마련해 주었다.
다행히 이에 대하여 지난 수년 간 풀뿌리 시민단체들이 매우 괄목할 만한 경고를 지속적으로 보내왔다. 핵심은 올해 들어서 미국의 탈퇴로 인한 결손을 유럽과 중국의 책임있는 실행으로 보상되고 있는가 하는 점에 있다.
시 주석의 공식선언은 모두가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2015년 당시에는 중국이 파리에서 합의한 배출량을 거부하면서 협약의 내용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미래에 가장 큰 비중을 담당할 주체가 이를 무시해버리면서,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어진 것이었다.
이제 북경당국이 자신 몫의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 동안 기후회담에서는 선진 경제권과 신흥국가군을 분리시키는 구획의 선으로 인하여 협상의 진척이 포기되어 왔다. 이 때문에 유럽이 패를 쥐고 미국과 동시에 인도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파리협약의 기초가 되는 주요 강대국가 간의 협상이 진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중국이 가담하면서 우리는 다극체제라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1980년부터 유럽과 미국은 기후를 지구적 현안으로 계속 제기하여 왔다. 그러나 이는 서방에서만 판단하고 분석하는 세계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중국과 인도의 경제규모가 전세계 GDP의 겨우 몇 퍼센트에 머물러 있었고 서방과 소련이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일군의 서방 과학자들이 매우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하면서 현재와 같은 지구기후에 대한 정치적 협상이 시작되었다. 197개 국가들이 유엔이라는 톨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하였고 소위 당사자기후회의GOP가 유엔총회와 유사한 회의를 구성하게 되면서 예처럼 복잡하고 성과없는 진행이 이루어져 왔다.
1997년에는 교토 기후협약이 성사되었지만, 중국과 인도가 중심이 된 신생국가군들에 의하여 근본적인 이해의 충돌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기후문제는 선진산업국가들이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에, 미국은 중국이 배제된 어떤 협약에도 서명을 거부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이 교토협약을 반대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물론 GOP회의에서 일부가 과학적 근거도 없는 황당한 입장도 제기하였는데 이러한 문제제기에는 엑손Exxon과 같은 화석연료의 기업들이 배후에 있었다. 결국 교토협약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각국 및 지구경제적geoeconomic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다.
탄소배출에 대한 과거의 역사와는 상관없이 중국이 미래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은 중국을 규제하지 않는 어떠한 협약도 비준하지 않으려 한다. 기후문제에 관하여, 중국과 인도의 입장에서는 기후정의(과거산업역사)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려 하는 반면에, 미국은 지구경제라는 종합적 입장을 고수하면서, 초강대국 간의 협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유럽이 우선 주도하여 중국과 인도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면서 제2의 교토협약을 일방적으로 만들고자 하였고, 이에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과 인도를 쌍무적 협상으로 중재를 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2015년 12월에 파리에서 기후에 관한 총회가 개최되었다.
2020년 이제 중국은 파리기후협약을 준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1990년 이래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당사자가 탈-탄소화를 시행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는 물론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지만 그 자체로서는 충분하지 않다. 북경당국이던 그 누구이던 탄소안정화에 참여한다는 것은 미국과 상관없이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당연히 지구의 모든 국가들이 모두 탈-탄소화를 의무적으로 참여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기구(tent)가 필요하다.
그런데 탈-탄소화를 추진하려고 해도, 관련된 국가들의 규모가 방대하고 성격들이 상이하다. 동시에 에너지 소비자들과 생산자들을 함께 포괄해야만 한다. 탈-탄소화 과정은 모두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지만, 의무할당 당사자들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일부 국가들은 자신들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것이다. 신생국가들이 이를 이행하는데 중국처럼 (재정)자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많은 국가들은, 부자이던 가난하던, 중국처럼 권위적 강제력을 가지고 전환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국내의 패자들을 억누를 정치적 기제를 갖고 있지 못하다.
중간규모의 에너지 기업들은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수출량을 유지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중소규모의 경제권을 형성하는 국가들은 조건없이 형성되는 저가의 에너지를 확보하는데 예민하다. 세계 전체로 보면, 매년 수십 수백 억 달러가 에너지의 보조금으로 투입되고 있으며, 이는 중간계층을 독려하는 중요한 사회정책으로 되어 있다. 세계전체적으로 여전히 수억 명의 인구가 전기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부유한 나라도 정책의 전환이 어려운 과제인데, 산업화 초기에 있는 국가들에게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탈-탄소화가 신속하고 광범하게 진행되면, 수백의 수익성 높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물론 서구의 엑손 같은 기업이 최상위를 차지하지만, 지난 수년 간을 통하여 탄소를 가장 극적으로 배출하는 상위의 10개 기업에는 인도기업들이 4개, 중국기업들이 2개, 그리고 호주 러시아 한국기업이 포함되어 있다. 스위스 국적의 시멘트회사도 제2 위를 차지하고 있다.
에너지는 국가자본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20개 기업군 중에, 12개 기업이 국가소유이다. 이란, 이라크, 멕시코, 알제리, 베네수엘라 등의 국유석유기업들은 단순히 기업체의 성격을 넘어서 국가경제와 정부제정의 기둥들이다.
따라서, 탈-탄소화를 추진하면서 에너지자립과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집단들의 연합에 대하여 걱정해야 한다. 유럽에서도 석탄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폴란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화의 일방적 시행에 거부하면서 유럽이 시행하려는 코로나의 회복를 위한 탄소세 협정을 무력화시키려는데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지중해 동부의 가스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둘러싼 극도의 긴장도 한 예이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에너지 수요가 팽창하는 터키의 경우에는 러시아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는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새로운 가스 자원을 갈망한다.
지구촌 전체가 일반적인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초강대국 간의 협의가 어려우면, 탈-탄소화의 추진이 가능한 국가들 간의 협상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G20가 매우 유효한 기구이다. 이의 역사적 배경이 기후정치와는 무관하게 탄생하였지만 21세기의 다극체제의 세계에서 서로 힘을 반영하면서도 협력하고 강제력을 법제화하는데 매우 적절한 형식이다.
G20의 출발은 남미의 부채위기와 1980년대의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비롯되었다. 1944년의 브레튼-우드 회의에서 합의된 창립정신에 따라 상기의 위기를 처리하였던 IMF는 당시에 미국과 유럽의 소수 국가들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그러나 탈냉전과 탈식민지의 시대에 있어서 소수의 지배국가들이 일방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대상국가의 주권을 잠식하는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점차 인식되어 가고 있다.
이에 G20라는 기구가 1990년에 세계경제를 관리함에 있어서 광범한 정치적 기반을 토대로 새롭게 구성되었다. 당시의 미국 재무장관이었던 서머스Summers가 차관이었던 가이드너Geithner와 독일 파트너인 코크-베저Koch-Weser와 함께 자격대상의 국가명단을 작성하였다.
인구숫자와 GDP를 적어 내려가면서, 프랑스와 남아공을 삽입하고 나이지리아와 스페인을 배제하였다. 결과는 기존의 G8 국가들과 소위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그리고 남아공)을 축으로 사우디와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그리고 터키가 추가되었다.
<계속>
출처 : 포린폴리시(ForeignPolicy) on 2020-10-17.
Adam Tooze
뉴욕에 있는 콜롬비아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이자, 유럽연구소 책임자이다 최근 금융위기와 기후재앙에 대하여 매우주목할만한 여러 권의 저작을 출간하였다
예전에는 대학 내부의 양극화 현상이 그리 심하지 않았고, 농촌 출신의 학생들이 상당수를 점했다. 이들은 자신의 고향의 가족, 친척, 이웃의 농민들이 사회적 약자이고, 농업과 농촌이 쇠퇴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 삼농이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알고, 대학내의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농촌 지원 동아리를 조직했다. 그때, 마침 중앙이 삼농문제를 중대 국가 전략으로 받아들이는 역사적 전환을 맞아, 동시에 우리는 신향촌건설을 통해, 농민위주로 움직이면서, 자연스럽게 수많은 청년학생들이 자발적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하향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두가지 과업이 신향촌건설의 키가 된다. 하나는 농민조직을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학생 동아리를 통해 농촌지원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것. 이 두가지가 시대배경하에 만들어진 신향촌건설 운동의 좌우 방향타였다.
2000년에 나는 농업부에서 국무원체제개혁사무소國務院體改辦로 자리를 옮겨, 중국경제체제개혁잡지사의 사장겸 총편집인 역할을 맡게 됐다. 나는 조직의 법인대표 신분을 활용하고 ‘중국개혁’이라는 매체의 플랫폼을 이용하여, 100년전 진행됐던 향촌건설을 부흥시키게 된다. 당시 삼농문제에서 내가 관심을 갖은 것은, 역시 주로 농민조직화와 청년농촌지원의 두가지 업무였고, 잡지사내에 농촌지원연구를 하는 소조직을 만들게 된다. 그렇게, 각지의, 향촌건설사업에 뜻을 둔, 젊은 지식인들이 모여들게 된다. 그중에는 톈진과학기술대학에서 온 류샹보劉相波라는 교수가 있었는데 (역자 주 – 농민들이 주로 그를 부르던 류라오실劉老石이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대학생농촌지원동아리를 만들고, 이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실제 활동에 힘을 많이 기울였다. 그와 함께 협력한 치우졘셩邱建生이 있었는데, 그는 주로 농촌에서 농민이 참가하는 커뮤니티대학社區大學(역자 주 – 대만에서 시작된 지역사회운동으로, 대만과 교류가 많은 푸졘성福建 출신인 치우졘셩 등이 이를 참고하여 푸졘성의 농촌마을에서 실험적으로 운영하였다), 협동조합 만들기에 힘을 쏟았다. 그들이 잡지사 농촌지원연구팀의 이 두가지 방면의 실체 책임자였다. 민국시절 량슈밍梁漱溟, 옌양추晏陽初, 루쭤푸盧作孚와 같은 선배들의 일을 이어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나중에 류샹보는 량슈밍향촌건설센터를 만들었고, 치우졘셩은 옌양추평민교육사상연구회를 만들었다.
<그림 8> 2004년 12월, 량슈밍 향촌건설센터가 베이징에서 정식으로 설립돼, 중국개혁 잡지사의 대학생 농촌지원연구 프로젝트를 이어 받게 된다. 전국 대학생농촌지원연구 십주년 토론회 겸 량슈밍향촌건설센터 설립5주년 행사(2009년)에서, 안휘성 푸양남탕흥농협동조합 발기인 량윈뺘오가 발언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말해, 우리의 프로젝트와 당시 주류 사회가 추진하던 시장화개혁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소위 당시의 ‘경제체제개혁’은, 시장화를 통해, 불가피하게 빈부격차를 확대할 수 밖에 없다. 또 시장화개혁은 필연적으로 시장의 조절 위기현상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시장경제는 어떻게 위기에 빠지는가? 사회적 약자를 돕는 구조를 파괴하고, 빈부격차를 확대시키기만 할 뿐, 좁히지 못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 양극화이다. 그래서, 중국은 이런 개혁과정에서 주로 도농이원화 구조를 통해, 명확한 도농간의 격차를 초래했고, 이는 객관적으로 드러난 결과이다. 당시 나는 월러스타인의 발언을 빌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행복한 도시는 다 엇비슷하다. 하지만 불행한 농촌은 각양각색의 불행한 양태를 보인다. “ 지금 생각해도 도농이원구조의 폐해를 드러낸 적절한 표현이다.
도시에 대량의 자본이 집중되면서, 그 효과로 도시 수입은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농촌의 세가지 생산요소 유출현상이 나타난다. 자금, 토지, 노동력 이 삼대 기본요소가 모두 장기적으로 대규모로 농촌에서 빠져나가고, 사람들은 농촌을 외면하게 된다. 어떤 영역이든, 삼대 요소가 장기적으로 빠져 나가면, 쇠락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종합적인 삼농문제를 간과하고, 주로 시장경쟁력을 중심으로 농업문제만을 강조하다 보면, 당연히 농민의 빈곤화, 농촌의 쇠퇴, 농업의 약화로 이어진다.
이것은 객관적 결과이고, 시장화를 통해 나타나게 됐다. 그러므로, 시장화 개혁을 주장하는 국무원체제개혁사무소의 목소리가 주류가 되어, 우리가 강조하는 삼농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일 이를 받아들이면, 자본이 도시와 산업으로 집중화 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개발 속도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발전주의가 주류 개혁이론과 개혁정책의 신념이 돼, 일반적으로 우리의 삼농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내가 주도하는 잡지사가 삼농 문제에 주목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당시의 주류 시장화개혁노선과 점차 갈등을 빚게 된다. 결과적으로 나도 그들의 눈밖에서 벗어나 주류 체제안에서 밀려나게 됐다.
<그림 9> 대학생 농촌지원활동 참가자들의 모습. 2000년 이래, 량슈밍향촌건설센터와 전국 240여개 농촌지원 관련 동아리들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였다. 10년에 걸쳐 전국 200여개 대학 300여개의 동아리를 훈련시켰다.
그외에도, 당시 전국의 매체가 시장화 개혁에 발맞추어, 독립 재정을 요구 받았다. 거기에다 벌어들인 소득중 일부는 다시 주관 기관에 관리비로 납부해야 했다. 관영 잡지사임에도 국가에서 전혀 재정지원을 하지 않았고, 스스로 돈을 벌어 살림살이를 꾸려야 했다. 경영 독립을 위해서는 결국 광고가 필요하고, 기업에게 손을 벌릴 수 밖에 없다. 즉, 자본가의 입맞에 맞는 기사를 생산해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백명의 잡지사 직원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 수 있나? 잡지사 내부의 편집자들과 기자들도 점차 농민 편에 서고자 하는 우리들의 논조에 반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우리 향촌건설 자원활동가들은 그렇게 다시 적수공권 상태로 시작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처음에는 잡지사의 자원을 활용했으나, 약자인 농민 편에 서려는 우리의 움직임은, 기업가들과 농민의 권익 보호 문제로 시끄러워지는 것을 싫어하는 지방정부의 반감을 샀다. 잡지사는 더 이상 광고를 실을 수 없게 됐고, 자금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됐다.
내가 잡지사에서 향촌건설 운동을 진행한 결과로, 외부 주류 세력의 반발을 샀고, 잡지 내부 인력의 밥그릇 걱정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잡지사 법인 대표였으나,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염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대표직을 사임하게 됐다. 그렇게 향촌건설은 다시 제도권에서 밀려 났다.
잡지사에 재직한 2001년부터 2004년 사이 대략 3년간, 향촌건설은 어쨌든 백년후 새출발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그후에 우리는 사회적 약자가 겪는 어려움을 스스로 체감할 수도 있었다. 2004년 전후로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잡지사에서 쫓겨 나면서, 의탁을 할 기관이 따로 없어졌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 다행히도 삼년간, 우리는 이미 전국 각지에서 상당수의 학생동아리를 키워냈고, 십여개의 농민협동조합을 만들어냈다. 대학생들은 청년 자원활동가로서 농촌으로 가서, 농민들과 협력하고 있었고, 이미 분위기가 무르익어, 우리는 객관적인 존재감을 가진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류샹보의 량슈밍향촌건설센터는 둥지를 잃었음에도 나름의 생존방법을 모색해 나갈 수 있었다. 당시 우리는 허베이河北성 띵定현의 자이청翟城마을에 옌양추향촌건설학교를 만들고, 치우졘셩의 옌양추평민교육연구회가 이곳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주로 마을안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림 10> 2003년 7월19일 옌양추향촌건설학원이 중국향촌건설의 발원지인 허베이성 띵현 자이청마을에 설립됐다. 이 학교는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교육’이라는 원칙을 지속할 수 있었고, 농민협동조합, 생태농업, 생태건축 등의 영역에서 실천과 교육, 연구를 실행했다.
량슈밍 향촌건설센터의 주업무는 대학생들이 교육에 참가하고 농촌으로 가서 지원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졌지만, 당시 사무실을 빌릴 여유가 없었고,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테이블을 놓아 둘 공간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베이징 교외지역에 자리를 잡았는데, 초기에는 안정되기가 힘들었지만, 이후에 후원기관들이 조금씩 생겨나서, 프로젝트 경비지원을 받고, 청년들이 장기적으로 농촌에서 실천하는 것을 지원하도록 자리잡았다. 이것이 농촌인재육성계획, 줄여서 인재계획이라고 부르는 프로젝트이고, 청년 자원활동가를 매년 농촌으로 보내서 일하게 한다.
이처럼, 당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나와 류샹보 모두, 이 운동이 ‘신시대상산하향운동’으로 발전해서, 지금과 같은 큰 사회적 흐름과 영향을 만들어 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4. 제도권 교육의 전복
청년 지식인들이 농촌으로 내려가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도록 독려하면서, 우선 이들 지식인들의 지식체계 자체에 대해서 고민해야 했다. 이들은 과연 농민들과 두 손을 맞잡고 협력할 수 있을 것인가 ? 이 문제는 청년, 학생들 혹은 교사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난 백년간의 산업화 역사의 유산이다. 산업화 시대의 교육은, 산업화의 요구에 부응할 수 밖에 없다.
산업화시대의 요구란 무엇인가 ? 내가 좋아하는 비유가 있다. 아마 채플린의 모던타임스란 영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영화속에서 생기넘치던 채플린이 컨베이어 벨트를 돌리는 기계에 맞춰, 표준화된 동작을 취하게 된다. 이 희극은 사람을 기계로 만드는 것을 비판하는데, 산업화 시대의 교육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기계화에 다름아니다.
소위 현대 교육은, 인류를 인력자원으로 보고, 인력자본의 도구로 삼는다.
<그림 11> 제1회 전국대학생 농촌지원연구 교류및 토론회 사진 (2004년 1월, 베이징) 2016년까지 베이징 량슈밍향촌건설센터는 23회에 걸친 대학생 농촌지원연구 교류회를 열었고, 누계 3,500여명의 우수한 청년 자원활동가를 키워냈다.
현대교육에서 중요한 이론중 하나가 교육을 도구로 삼는다는 것이다. 인력자원을 성인노동력자본으로 전환시키는 도구이다. 그렇다면 성인노동력자본이란 무엇인가? 산업자본에 협력하고, 산업자본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교육체계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의 기타속성, 사회속성, 자연속성 등을 최대한 약화시키고, 산업자본이 요구하는 인력자본 속성만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교육이 훈련시킨 청년학생의 지식구조는 근본적으로 농촌의 다원화된 사회적 존재 형성에 부적합하다. 왜냐하면, 농촌은 지역마다 특성이 상당히 다르고 농업은 자연, 자원, 기후, 지리 등의 조건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서, 농업 지식은 근본적으로 로컬화된 지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천차만별의 농업에 통일된 표준 지식체계를 적용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중심의 제도권 농업학문지식을 참고하는 것이 현재 큰 곤란을 겪고 있다. 젊은이들이 농업관련 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꺼리지만, 학문지식을 표준화하면 할수록, 이렇게 습득한 지식을 농촌에 가서 사용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농촌은 다양성이 기본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르침과 배움간의 대립과 갈등이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것에 대해, 학생들이나 학교를 탓할 수 없다. 그보다는, 산업화를 추구하면서 하나의 표준화된 지식체계를 좇아온 과거 백년 역사를 탓해야 한다. 중고등학교 교육도, 초등학교도 모두 표준화된 제도권 교재를 사용하고, 그것도 전국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교재를 사용한다. 이곳은 고산지역이고, 저곳은 비옥한 흑토, 또 여기는 붉은 흑, 저기는 황토, 이곳은 석회암 지역, 저곳은 해안가, 임업지대, 초원, 습지 이렇게 지역마다 로컬한 지식을 생산해야 하는데, 현재의 교육체계는 당연히 이의 실현이 불가능하다.
<그림 12> 제5회 전국농민협동조합조직포럼 및 량슈밍향촌건설센터 십주년 기념 촬영 (2015년 전국농업전시관).
그렇게, 우리가 청년지식인들을 조직해서 농촌에 갔을 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지식이 향토사회속에서 실천을 하려할 때, 무용지물임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게 첫번째 문제이고,
두번째 문제는, 90년대 후반부터 소위 교육 대약진을 시도하면서 이루어진 교육의 산업화이다. 애당초 원인은 당시의 생산과잉문제였다. 불경기속에, 대량의 청년들이 취업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정부가 정원을 늘려, 홍수예방을 위해 댐에 물을 고수위로 저장하듯, 잠재적 취업예비군을 학교에 잠시 머물게 했다. 당시 대학이 정원을 늘리기 위한 좋은 명분이 됐다. 그래서 과거의 전문대학이나, 직업훈련학교가 4년제 대학으로 승격이 됐다. 이러한 학교들은 4년제 대학으로서 학생들을 교육시킬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이 돼버렸다. 동시에 정부가 민간이 투자한 사립대학을 설립할 것을 독려했다. 이러한 사립대학들은 교육 산업화를 통해, 이윤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우후죽순처럼 학교가 생겨났다. 하지만, 당시에 준비된 교수 인원이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고등교육의 질은 저하하면서, 학비는 증가하는 악순환이 벌어졌다. 또, 저소득층인 농민과 노동자 자녀들의 진학률이 떨어졌다. 학력이 낮아서 다시 경제적 하층민이 양산되는 사회불평등과 이원화 구조가 심화됐다.
현재 중국에는 수천만명의 대학생이 있다. 매년 7~8백만명이 졸업하기 때문에 세계 최대규모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학생들이 졸업하자마자 실업자가 된다. 특히, 비명문대학 학생들이 그러하다. 이런 학생들은, 명문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함으로써, ‘신분상승’을 꾀하기도 한다. 하지만, 명문대학들은 이들에게 기회를 잘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입학력고사가 평생을 좌우하게 된다. 이런 시스템은 반드시 정부의 제도권 교육을 통해서 만들어 낼 수 있다. 엄격한 표준화 교육이 전제가 된다. 이렇게 중국의 학생들은 암기에 능한 사람들이 좋은 학교에 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혁신능력은 어느정도, 남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질, 또는,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하는데, 이런 학생들은 이렇게 융통성없는 과정을 거치는 제도권 교육에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교육계는 내부적으로 매우 심한 배타성을 지니게 된다. 교육계 내부에 양극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최고 명문대학에 정말로 우수한 인재가 입학할 수 있을까 ? 그저 암기능력이 좋은 학생이 훌륭한 학생인가 ?
그리고 중국의 대학교육은 90년대부터 서방의 교육 체제를 그대로 카피해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대학의 지도자들이 미국의 교과서를 그대로 수입, 번역할 것을 요구한다. 심지어 일본이나 한국, 유럽의 학문적 성과도 참고하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중국이 미국과 같은 사회인가 ? 교육 시스템의 변화는 이미 사회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고, 심지어는 국제사회에서도 비판을 받는다.
다시 정리해보자, 모두가 중국 교육이 제대로 된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왜일까? 첫째, 산업화와 관련이 있다. 표준화된 제도권 교육만을 실행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원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교육산업화가 초래한 악성 부채와 교육비 증가가 만들어낸 매우 복잡한 난맥상을 아직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제도권 교육으로 배운 표준화된 지식을 들고 농촌으로 갈 수 있을까? 농민들과 쉽게 협력할 수 있을까? 그래서 량슈밍향촌건설센터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후에는, 매년 농촌으로 갈 인재를 육성하는 계획을 실행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갈수록, 이런 고학력 청년들이 농민, 농촌, 농업과 어울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농의 객관적 필요와 고등교육 시스템이 배출한 인재의 능력 사이에는 상당한 갭이 존재한다.
이 일을 수행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많이 겪었다. 많은 기업가들이 내게 말한다. “원교수님, 이런 식으로 배출된 인재들이라면 얼마든지 저희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량슈밍 향촌건설 센터에서 지금까지 2백명이 넘는 인재를 육성했지만, 실제 수요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요소가 급진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젊은이들을 농촌으로 보낼 때, 우선 대학에서 배운 쓸모없는 지식은 한켠으로 치워두라고 요구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신들이 머리에 금테두르고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내가 명색이 대학생인데라며 이러쿵 저러쿵 하지 마라. 사실 머리 속의 지식들은 쓸모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발밑의 뜨거운 대지가 요구하는, 향촌생활에 적합한 것들이 아니다. 역으로 청년들이 일단 삼농의 요구에 맞출 수 있게 되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 특권의식 따위는 내려놓고 농촌에 가서, 농민들과 함께 뒹굴면서 일년을 보내고 나면, 무슨 일에 임하든,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림 13> 농촌지속가능발전 인재계획은 량슈밍향촌건설센터가 대학생 농촌지원조사연구내용으로 향촌건설 운동에 참가하는 청년들을 일년간 지원하게 된다. 2005년부터 매년 10여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가하고있다. 제1기 참가자들 교육과정 수료 (인민대학교).
이런 각도로 보자면, 량슈밍향촌건설센터의 농촌우수인재계획은 실질적으로 현재의 교육산업화가 만든 모순과 형식주의적인 제도권 교육체제가 만든 폐해에 대해서 일종의 돌파구를 여는 혁신을 일으킨 셈이다. 상대적으로 완전히 서구화되고, 표준화된 지식으로 제도권 주입식 방법을 통해 인력자본화한 교육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혁신이다. 오늘날 모두가 혁신에 참여하는 시대에, 정말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은 급진적 혁신이다. 인재계획은 사회의 광범위한 수요에 부응하는 인재를 배출하고 있으므로 이것이 진정한 교육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인재계획은 실천, 중국의 현실에 발을 딛고 농민과 결합된 ‘일동양애’형 인재의 교육방식이다.
5. 탈엘리트주의의 향촌건설
적수공권으로, 대사를 치르기 위해 나설 때, 균형을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성인이 되고, 이렇게 많은 일을 벌이고 다닐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사실, 나서고 싶지도 않았다. 만일 한 사업의 성패가 특정인 한명에게 달려 있다면, 이것은 매우 리스크가 큰 상황이다. 거버넌스 이론에 의하면, 이 사람을 제거해야 한다. 아니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시작할 때부터, 매우 명확한 집단적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수십년간 이렇게 많은 청년학생들을 동원해서 농촌의 삼농사업에 참여하게 하면서, 늘 생각해온 것이 있다. 이것은 어느 개인의 일이 아니라, 대중의 일이라는 것이다.
최근 강연에서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향촌건설의 큰 특징중 하나가 탈엘리트주의이다. 나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 우리 세대는 수많은 역사의 질곡을 경험했고, 적지 않게 고생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 남아 사회적 발언권을 갖게 된 사람들은 5%에 불과하다. 이중에는 대학에 진학한 이들도 있고, 외국으로 간 이들도 있고, 기업가가 되는 등, 모두 중국 사회의 엘리트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나머지 95%를 잊지 말아야 한다. 대다수의 동년배 지식인 청년들이 하방의 경험이 있다. 함께 대중운동에 참여했고, 나중에 도시로 돌아와서 일자리가 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나중에 정리해고를 당한 이들은, 저소득층으로 전락했다. 이게 95%가 겪은 일들이다. 승자가 된 5%는 주위의 95%를 잊어서는 안된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 95%에 농촌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는 많은 이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소망으로 말하자면, 탈엘리트주의 사회를 실현하고 싶다. 이를 실현할 여유가 없고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것에 탄식할 뿐이다. 나는 주위의 훌륭한 인재들에도 못미치고, 공부도 부족하다. 그래서 영원히 분투할 수 밖에 없다.
<그림 14> “즐겁게 생활하며 이상을 좇는다” — 량슈밍향촌건설센터 신청년공사 웹자보.
이 과정에서 나는 탈엘리트주의를 자각하게 됐고, 내 주위의 95%를 잊지 않게 됐다, 역으로 5%의 주류 엘리트 사상을 좇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의 사상을 인정하면, 세상의 재화를 인정해 버리게 된다. 이 부는, 엘리트 그룹이 사회를 이끌며 만들어낸 수익이다. 당연히 엘리트들이 독점하고 엘리트들이 분배한다. 그리고 엘리트들은 2차분배를 통해 남은 몫으로 약자를 지원한다. 이것이 제도의 역할이며 주류적 사고이다. 나는 여기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우리 엘리트가 승자가 됐지만, 이러한 방법밖에는 없을까? 더 공평하고 정의로운 방법, 공정한 방법이 없을까 ? 95%가 함께 누려야 할 부분을 엘리트가 독점하고, 그저 나머지를 다시 재분배해야 하나 ? 나는 이에 동의할 수 없기에 대중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일종의 다원성 공생 사회이다. 일종의 지속가능한 발전 방식이고, 인류의 생계와 생태가 결합된 생태문명이다. 이는 현재의 주류 사상과는 구별되는 대안적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향촌건설 사상이 일종의 탈급진화(역자 주 – 저자는, 서구적 산업화를 급진화로 표현한다. 그의 대표 저서 “100년의 급진”은 이를 뜻한다.)를 추구하게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옛 문명의 계승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삼성오신三省吾身, 음양지도陰陽之道,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같은 사상을 공부하는 것이다. 일단 탈엘리트주의를 받아들이면, 자연히 상대적으로 생태환경과 조화하면서, 지속가능한 포용적 발전사상도 인정하게 된다.
나는 성악설을 믿지 않는다. 사회에는 비록 수많은 악이 존재하지만, 사람됨을 갖춘다는 것은, 성악설을 믿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상선약수를 실천할 수 있다. 나쁜 짓은 사소한 일이라도 해서는 안되고, 선한 일은 사소한 것이라도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실현해 나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다… “세계는 우리의 것이고, 일을 이뤄내기 위해 우리 모두가 서로 의지해야 한다.”
G20는 원래 재무장관들간의 회합이었다. 그러나 2008년 북미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정상회의로 성격이 상향조정 되었다. 물론 참가국가들은 각자의 나름대로 현안을 가지고 있었고, 일부에서 이를 19세기식 ‘강대국들의 잔치’라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정확한 핵심이었다.
그 동안 개별국가들의 주권존중이라는 개념으로 중국과 인도처럼 인구가 수천 배에 달하는 국가들을 다른 약소국들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국제법의 논리를 만족시켜 줄지언정, 역량과 세력이라는 현실적인 차이를 외면하고 있었다.
G20기구가 기후정치의 미래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약소국을 배제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강대국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았기 대문이다. 기후정치에 적합한 기구를 탄생시키려면, 러시아, 사우디, 브라질, 인도네시아, 한국 그리고 터키 등의 참여가 중요하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이디오피아와 이집트, 나이지리아와 이란 등 인구대국을 과연 배제할 수 있을까? 기후재앙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심각한 협상을 진행하기 위한 포럼 형식의 기구로 G20가 아닌 G40가 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포럼이라는 기구를 창설하는 것과 별도로 강제력을 행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럽과 중국이 탈-탄소화를 강력히 추진하려면, 일련의 과정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역사에서 배울 수 있다면, 거대한 강대국의 세력조차 일방적인 영향력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며 제국이 배경이 되어 비공식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영향력은 해당국가(지역)의 실력자들과 이해를 조정해야 가능하며, 상당한 투자와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이점이 바로 중국이 일대일로BRI를 추진하는 이유이다.
2019년 기준으로 126개국이 중국이 주도하는 BRI에 참여하고 있다. 이는 전세계 인구의 2/3에 해당하며, GDP의 23%(중국을 제외한) 그리고 탄소배출량의 28%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화석연료 매장량은 전세계 총량의 75%에 해당하기도 한다.
산업선진국가들이 탈-탄소화를 진행한다 하더라도, 이들 BRI 참여국가군이 과거 중국식 모델로 탄소배출기반의 성장을 추구한다면, 2050년에는 이들이 배출하는 탄소량이 전세계 총량의 66%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결과로써 이들 국가들의 발전소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로 전세계의 온도가 3도 상승하면서 심각한 지구온난화에 빠져들 것이다.
다행히 북경당국은 처음부터 일대일로 사업을 환경친화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역사적인 유엔 연설에서 이에 대하여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중국이 탄소중립화를 BRI에 적용하느냐 여부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BRI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중국 중공업 산업체들의 로비가 예상되는데, 북경당국은 중국개발은행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개발은행 단독으로 BRI사업에 매년 400-45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연구기관의 추정에 의하면, 126개의 BRI 참여국가들의 경제와 산업개발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2도 범위 안의 온도상승이라는 계획으로 조정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11.8조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매우 엄청난 액수이지만, 코로나 충격을 경험한 현재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올 한 해의 팬데믹에 대응하는 전세계 재정투입의 누적 총액은 물경 7조 달러에 이르고 있다.
중국이 해외에서 진행하는 수조 달러 규모의 투자는 서방세계에게는 하나의 충격으로 다가온다. 몇 년 전에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독일 주도하여 마련한 ‘아프리카의 마샬 플랜’에는 매년 6000억 달러가 소요되는데 이를 공적 영역에서는 조달할 수 없었다. 계획된 사회-인프라 공사에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베를린 당국은 아프리카 해당국가들이 보유한 자연자원을 기반(담보)삼아 민간기업들이 참여하기를 희망하였다.
상기의 방식이 서방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문제는 투자에 대한 유인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내연기관의 자동차 수입을 제한하는 규제 등이 핵심이다. 동시에 중요한 것은 세계무역의 기반으로 동일한 탄소가격(세금)을 설정하여 적용하는 것이다. 우선 지역단위의 탄소가격계획을 시행하되, 이를 국경을 넘어선 탄소국경세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것을 국가단위의 조치가 아닌 다국적 전략으로 삼아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신흥국가들은 손쉬운 탄소기반의 생산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유럽은 지난 여름 중국에게 탄소세를 적용하자고 압박하였는데, 이는 시주석이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현재의 시장규모로 볼 때, 유럽은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력한 세력집단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향후 국제무역을 움직이는 동력축은 서방세계가 아니라 거대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개발 국가군들이다.
중국 역시 탄소세 방식을 검토하고 이다. 신흥국가들의 저임기반에서 생산한 상품을 수입하는 거대한 시장을 지닌 중국으로서는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만 하다. 만약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 탄소세를 채택하면, 전세계를 대상으로 에너지선택에 대한 거대한 압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석탄과 오일 또는 가스 대신에 태양광과 풍력을 사용하는 수출국들은 엄청난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고 당연히 상당한 수익이 따라올 것이다.
단기적인 수익과 가격에 초점을 맞추면 탄소세의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 있지만, 북경의 공산당국과 더불어 서방의 거대기업들이 전략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신호들이 보인다. 시주석이 유엔에서 기후행동100+라는 연설하기 일주일 전에, 47조 달러 상당의 투자자산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산업가스배출의 80%에 책임을 지고 있는 국제투자자들의 로비집단들이 161개의 거대 기업들이 탄소배출 제로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는지 여부를 감독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시주석의 연설과 이들의 선언은 그린운동에 대한 면피성의 성격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BlackRock과 Pimco 등 거대 투자자본들이 자본축적의 수익성은 결국은 안정적인 환경의 순환과 맞불려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으로 보여진다.
시진핑 정권과 마찬가지로 서방의 자본들은 환경의 위기를 정치적인 것과 동시에 물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래에 기후위기가 닥치면, 기후안정성을 훼손한 사려없는 기업들이 갑자기 사업권을 상실할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2020년 현재 항공산업들의 경험은 미래의 환경적 위기로 인해 사회적 대응으로 산업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유럽의 기후에 대한 책임과 약속에 기초하여 세계가 매우 중대한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기술의 변화, 정치권의 지도력, 가격적 인센티브, 그리고 투자자들의 압력 등이 탈-탄소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힘들이 스스로 작동한다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일이다.
우리들의 일상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화석연료체계는 단순히 기술과 이익에만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탈-탄소화는, 화석연료의 경제성을 우선적 순위로 설정하는 국제세력들과 지정학적 기반을 해체할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아직도 1970년의 순진한 실수처럼, 재생 에너지가 결국은 새롭고 부드럽게 분산적인 에너지 공급의 전환시대를 열어 가면서 정치도 이에 부응할 것이라는 낭만적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꿈을 목표로 삼는다 하더라도, 화석 에너지의 단단한 성채를 해체하는 강력한 행동이 필요하다. 이들은 순순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최근 Jason Barodoff가 탈-탄소화의 국제정치학이라는 저술에서 지적하였듯이, 전환의 진행과정은 매우 지난하며 비선형적으로 이루어 질 전망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가 그렇게 진행될 것이다.
현재 유럽과 중국은 탈-탄소화라는 의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들 누구도 미국이 지닌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미국 측에서 개혁적인 정책을 들고나와 추진하면, 인도와 중남미, 캐나다와 일본 등에서 탈-탄소화를 진행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 진다. 미합중국이 입장을 바꾸면, 트럼프의 반-기후정책이라는 역마차에 동승했던 호주와 브라질 등 보수정권들도 기꺼이 동참할 것이다.
미합중국은 화석연료 생산업자들과 관계에서 유일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미국 자신이 20세기의 화석연료기반 질서를 설계하고 안착시킨 장본인 국가이다. 현재 미국의 진보집단들이 새로운 그린뉴딜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처럼 민주질서를 회복하자고 주장하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설계한 세계는 오일과 석탄에 기반한 산업의 일방적 승리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20세기의 가장 왕성한 시기에 미국은 개입주의를 통하여 중동거점의 오일국가군, 오일기업들의 연합체, 미국안보기구들 그리고 중동의 지역정권들이 결집한 제국을 강고하게 구축하였다. 미국과 냉전동맹을 형성한 서구유럽과 동아시아 지역도 중동의 오일에너지라는 기반 위에서 발전을 이루었다.
요행히 1973년 오일 위기가 상기의 체계를 뒤흔들었으며, 미국행정부가 주도하여 기후변화와 재생 에너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Victor McFarland가 우리에게 오일파워에 대한 혁신적인 연구를 통해 우리를 일깨워 주었듯이, 결국에는 미국은 사우디와 동맹을 강화하였고, 카터는 독트린을 통하여 오일 에너지의 서방세계에 안정적 공급을 확약하였다. 이것이 이후 미국의 수십 년에 걸친 중동의 군사적 개입을 가져온 단초가 되었다.
이라크와 아프간의 파멸적이며 고비용의 전쟁에 싫증이 나고, 거대한 규모의 후레킹(세일가스)이라는 민간산업이 도입되면서 미국은 새롭게 거대한 전략과 기후정책을 수립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오바마 시절에 시작된 ‘에너지-자립정책’이라는 흐름이 너무나 안이하게 트럼프의 ‘에너지 지배’라는 방식으로 전환되어 갔다.
현존하는 화석연료의 파워게임을 넘어서 미합중국은 새로운 미개척지로 빨려 들어갔다, 러시아 천연가스의 대안으로 활성화된 LNG(세일가스)의 공급체계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자유의 원소들- molecules of freedom’이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그러나 최근의 원유가격 전쟁에서 목도하듯이, 후레킹 산업의 과다한 확장은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시켜 주기는커녕, 미국 경제의 새로운 취약점으로 반전되었다.
지금이 미합중국으로서 화석연료와 결별하고 새로운 (재생)에너지를 도입할 절호의 시기이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미국은 유럽과 중국과 연대하여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화석연료의 대부분을 현재의 상태로 보존하는 국제적 기구를 창설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당연히 화석연료로부터 탈구하는 국제지정학은 미국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세기에 유럽은 소련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소련으로부터 에너지 수입정책을 추진하였고(Nordstream-2 가스-라인은 이러한 역사의 결과물이다), 일본과 현재의 중국은 걸프 국가들의 주요한 수입국가이다.
주요 산유국가들은 여전히 엄청난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패기있게 자신들의 주도권을 선언하고 있다. 걸프 지역에서의 원유생산 가격은 너무나 저렴하여 사우디와 카타르는 자신들이 세계에 화석연료를 공급하는 마지막 국가로 끝까지 남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선언한다. 생산단가가 높아서 상황에 취약한 국가들, 예건데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 등이 일차적으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통해 새로운 (재생)에너지로 이동할 것이고, 탄소세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다. 대체로 2040- 2060 년간에 화석연료의 경제는 종말을 맞이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것은 일대의 혁명적 전환과정이며, 미합중국은 이의 개입을 조심스럽게 조정해가야 한다. 물론 에너지 분야에서 사우디와 러시아의 영향을 줄여가야 할 많은 이유들이 존재한다. 동시에 이에 동반하는 위험에도 조심해야 한다. 화석연료 산업분야를 마치 외통수에 몰린 적수로만 상대하면, 커다란 저항을 야기하면서 현재의 비틀거리는 산업체들도 살아남기 위하여 위험한 게임을 도모할 수 있다. 이렇게 대결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그린뉴딜을 녹색혁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까지 자극하게 된다.
그러나 과학자 그룹이 제시하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우선순위는 탈-탄소화의 전환이 될 것이다.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화석연료라는 투입된 자산과 투자를 새로운 저탄소라는 영역으로 유도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가장 긴급한 우선순위는 기후안정화에 대한 관심을 지구적으로 일반화시키는 일이다. 시진핑의 탄소중립화 선언으로 이제 서방세계는 북경당국과 함께 기후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 포린폴리시(ForeignPolicy) on 2020-10-17.
Adam Tooze
뉴욕에 있는 콜롬비아 대학교의 역사학 교수이자, 유럽연구소 책임자이다 최근 금융위기와 기후재앙에 대하여 매우주목할만한 여러 권의 저작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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