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0년 9월 1일(화) 오전 10시 30분
장소 : 경실련 강당(4호선 혜화역)
– 기자회견 순서 –
◈ 제목 : 문재인 정부 전 현직 부처장관 부동산재산 분석
◈ 사회 :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
◈ 취지발언 :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
◈ 자료설명 : 서휘원 경실련 정책국 간사
◈ 질의답변 :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
경실련 분석결과 문재인 정부 3년 서울 집값은 임기 초 5.3억에서 1.8억 34% 상승하여 7.1억이 됐다. 그럼에도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서울 집값 상승률이 11%라는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서울 아파트는 지난 3년 52%가 상승했는데 김현미 장관은 14%라고 주장하지만 정작 자료나 산출근거는 공개하지 않는다. 이에 부동산정책 등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행정부 장관의 재산은 얼마인지, 경실련은 문재인 정부 전 현직 장관의 부동산재산을 분석해 발표한다.
분석대상은 문재인 정부 지난 3년간 청와대 인사 추천과 검증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했던 전 현직 장관 총 35명이 신고한 부동산재산 기준이다. 2018년에 신고한 장관은 17명, 2019년에 신고한 장관은 17명, 2020년에 신고한 장관은 18명이었다. 자료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관보 및 뉴스타파가 공개하고 있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데이터를 활용했다.
분석결과, 전 현직 장관 35명이 재직 당시 신고한 1인당 평균재산은 2018년 17.9억에서 2020년 25.9억으로 44.8% 증가했고, 부동산재산은 2018년 10.9억에서 2020년 19.2억으로 77.1% 증가했다. 2020년에 재산을 신고한 18명 중 부동산재산은 과학기술 최기영(73.3억), 행안부 진영(42.7억), 중소벤처 박영선(32.9억), 외교부 강경화(27.3억), 여성가족 이정옥(18.9억)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상위1,2,3위가 모두 고위공직자 재산 논란 이후에 신규 임명되어 2020년 재산을 공개한 경우로 부동산 투기 근절에 대한 청와대의 의지 부족과 안이한 인사 추천과 검증 등 시스템의 문제를 보여준다.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2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는 2018년 17명 중 7명(41.1%), 2019년 17명 중 6명(35.3%), 2020년 18명 중 9명(50%)으로 나타났다. 2020년에 신고한 18명 중 신고일 기준 다주택자 장관은 기재부 홍남기(2채), 과학기술 최기영(3채), 외교부 강경화(3채), 행안부 김부겸(2채), 보건복지 박능후(2채), 여성가족 이정옥(2채), 해양 문성혁(2채), 중소벤처 박영선(3채), 법무부 추미애(2채) 등 9명이었다. 이중 최기영 장관, 이정옥 장관, 강경화 장관 등 일부는 주택을 매각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2020년 재산 신고한 18명 장관이 본인 배우자 명의로 보유한 주택은 총 30채로 나타났다. 30채 중 수도권(서울 포함)에 25채가 편중(83.3%)되어 있으며, 가액으로는 217.7억 중 188.1억(86.3%)으로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신고 기준 강남 4구에 주택을 보유한 장관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1채),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서초구 방배동 2채), 김연철 통일부 장관(방배동 1채)이다. 이중 최기영 장관의 경우 방배동 1채를 2020년 4월 매각한 것으로 언론보도됐다.
고지거부나 등록제외도 장관 35명 중 14명(40%), 19건에 이르고 있어 재산축소나 은닉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큰 만큼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 고위공직자 중 부동산 부자와 다주택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경실련 분석결과에 대해 청와대와 정세균 총리 등은 고위공직자의 다주택 처분 등을 권고하였다. 언론에는 8월 31일자로 청와대가 다주택자 제로를 달성했다고 보도됐지만 이번 조사 결과 여전히 2020년 신고기준 공직자 중 부동산 부자나 다주택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의 부동산 투기 근절 및 공직자 청렴 강화에 대한 의지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판단된다. 이에 고위공직자에 대한 부동산 관련 엄격한 인사기준 마련, 공직자의 시세 기준 부동산재산 공개 및 고지거부 폐지 등 관련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첨부 : 문재인 정부 전 현직 장관 보유 부동산재산 분석
별첨1 : 부동산정책 관련부처 고위공직자 107명 부동산재산 상위 10위 및 다주택자 현황
별첨2 : 공직자윤리법 개정 관련 5개 정당 공개질의 사항
1. 경찰개혁네트워크는 2020년 7월 9일(목) 오전 10시 반,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을 개최했다.
2. 이날 기자회견에는 공권력감시대응팀(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다산인권센터,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인권운동공간 활, 인권운동사랑방, 진보네트워크센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등 경찰개혁네트워크 소속단체 대표자와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3. 경찰개혁네트워크는 이날 ▲민주적 통제의 강화 ▲경찰권한의 분산 ▲경찰권한의 축소의 3대 방향을 제시하고 경찰개혁을 논의할 때, 권한이 비대해진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안이 우선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방향에 따라 각각 ▲합의제행정기관으로서 경찰위원회의 실질화 ▲옴부즈만과 독립적인 감찰관 설치 및 국가인권위원회의 경찰감시 강화 ▲사법경찰과 행정경찰의 분리: 독립적인 수사청의 설치 ▲실질적인 자치경찰제도의 도입: 행정경찰 기능의 전면 이관 ▲정보경찰의 폐지 ▲보안경찰의 축소 등 6개의 제안이 제시했다.
4. 인사말에 나선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현재 경찰을 중심으로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경찰개혁 논의가 권력기관의 통제, 권한의 축소라는 기본방향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 대표는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수사종결권을 가져가게된 경찰은 이전보다 권한이 커졌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민주적 통제 방안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찰개혁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경찰개혁’의 미명하에 경찰의 권한과 조직만 키우는 제도화를 일방적으로 진행해서는 안된다며, 오늘 경찰개혁네트워크의 발표를 계기로 이제라도 시민사회와 함께 경찰개혁 방안에 대한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5. 이호영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총무위원장은 경찰권의 행사는 강제력을 수반하고 있어 언제든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민주적 통제’가 경찰개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권한이 확대된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시급히 논의되어야 할 의제라고 재차 강조하여 아래 두 가지 경찰개혁 방안을 제안했다.
▶ 제안1) 합의제행정기관인 경찰위원회를 실질화해야 한다. 현재의 경찰위원회는 자문기구에 불과하며 전면적인 개편을 통해 경찰의 인사, 예산을 통제하는 장관급 합의제행정기관으로 실질화해야 한다.
▶ 제안2) 옴부즈만과 독립적인 감찰관을 설치하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경찰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경찰에 의한 인권침해를 통제하는 내·외부 통제방안으로 옴부즈만은 단순민원처리를 넘어 경찰의 인권침해를 독립적으로 조사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경찰의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추가로 부여하여 경찰감시역할을 실질화해야 한다.
6. 이창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 검경개혁위원회 간사는 경찰은 대략 12만 명의 인력을 갖춘 거대한 조직이며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경찰권한의 분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비대해진 경찰권한이 경찰청장 1인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경찰권한을 조직 차원에서 분산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 제안3) 사법경찰과 행정경찰의 분리하는 독립적인 수사청의 설치가 필요하다. 경찰청장을 포함한 행정경찰이 수사사무를 담당하는 사법경찰을 지휘하고 있는 구조에서 경찰의 수사권한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지 대안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설치된 수사전담기구는 경찰청장의 수직적인 지휘체계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
▶ 제안4) 실질적인 자치경찰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자치경찰제도는 권한의 이양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경찰구조에서 비롯된 각종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다. 따라서 국가경찰의 권한과 조직의 대부분을 자치경찰로 이관되어야 하며 특히, 경비 등 행정경찰의 기능은 자치경찰로 전면적으로 이관되어야 한다.
7.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그동안 드러난 정보경찰의 다양한 폐해를 지적하며 경찰권한의 축소를 강조했다. 또한 국가정보원에서 이관이 논의되고 있는 보안수사와 관련하여 보안경찰의 축소를 요구했다.
▶ 제안5) 정보경찰은 폐지되어야 한다. 정보경찰이 수행해온 업무 중 많은 경우는 경찰 본연의 업무인 범죄수사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업무수행 범위를 넘어선 정보생산과 수집이 정권의 필요에 따라 진행되었다. 경찰의 정보활동을 존치하고 그 범위를 제한하는 방안은 대안이 될 수 없다.
▶ 제안6) 보안경찰의 축소가 요구된다. 기존의 보안국을 ‘안보수사처’로 승격하는 대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적절치 않은 방안이다. 새롭게 설치될 수사전담기구(수사청)에 담당부서를 설치하여 축소유지하는 방안으로 충분하며 보완 관련 업무 또한 수사와 정보의 분리라는 원칙에 따라 조직이 재편되어야 한다.
8. 경찰개혁네트워크는 현재 정부와 여당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찰개혁 관련 논의에서 시민의 목소리가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현재 제시되고 있는 경찰개혁 방안이 시민의 기본권 보장, 권력기관 권한의 축소보다는 경찰의 조직과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음을 우려했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없이 사실상 정부의 입장인 경찰법 개정안이 의원입법의 형태로 제출되었던 20대 국회의 사례를 지적하며, 경찰의 비대해진 권한에 통제, 권한의 분산과 축소라는 방향에 대해 재차 강조했다.
경찰개혁네트워크는 ▲경찰권한의 분산 그리고 자치경찰제도(7/15)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경찰위원회 실질화(7/22) ▲정보경찰 폐지와 보안경찰 축소(7/29)를 주제로 3차례의 연속 토론회를 추진하여 이를 통해 경찰개혁과 관련한 시민의 목소리를 수렴하겠다고 향후계획을 밝혔다. 끝.
경찰개혁네트워크와 이은주 국회의원(정의당,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은 2020년 7월 15일(수),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① “경찰권한의 분산 그리고 자치경찰제도”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진 경찰의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경찰개혁이 논의되는 가운데 경찰권 분산, 민주적 통제, 정보경찰 등 경찰개혁의 주요 쟁점에 대한 정부 입장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경찰개혁의 취지에 부합하는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마련되었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한상희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은 경찰개혁은 중앙집중형 권력구조의 문제, 정보·보안경찰의 문제, 지방분권형 경찰조직에 대한 요청 등 경찰이 현재 가지고 있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와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개혁에 따라 강화된 경찰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당면한 과제라고 밝혔다. 특히 한상희 위원장은 경찰개혁의 기본방방향은 권력을 분산시키고, 상호견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첫째, 사법경찰을 기존의 행정경찰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기능적인 분산과 둘째, 실질적인 자치경찰제를 도입하여 수직적으로 집중된 권한을 조직적으로 분리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상희 교수는 이어 사법경찰과 행정경찰을 분리하여 설치될 수사전담기구는 경찰청장의 수직적인 지휘체계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갖추어야 하고 경찰청장이라는 단독기관이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합의제행정기관인 경찰위원회의 민주적 의지에 의하여 통제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법경찰과 행정경찰을 분리와 관련한 정부·여당안은 경찰청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 경찰청장 수준의 정책적 판단이 국가수사본부의 사법적 판단에 우선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와 같은 방안은 사법경찰의 독립성 확보, 경찰권한의 분산이라는 경찰개혁의 취지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두번째 발제를 맡은 황문규 중부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치경찰제는 경찰개혁과제 중에서 첫번째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자치경찰로 이관할 기능이 정해져야만 그에 따라 경찰위원회의 실질화 등 경찰개혁의 다른 과제의 추진 정도를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황문규 교수는 ▲자치경찰사무로 분류한 “생활안전·여성청소년·교통·지역경비 등 주민밀착 민생 치안활동 및 이와 밀접한 수사”는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 자치경찰이 우선 처리하고, 국가경찰은 보충적인 지원 ▲생활안전(지구대, 파출소 포함), 여성청소년, 교통 등의 기능은 자치경찰로 완전히 이관(전환) ▲ 자치경찰로 이관 등 국가경찰의 조직, 기능, 관리자 축소 재편 ▲시·도경찰위원회의 역할 확대 등을 자치경찰제도와 관련한 향후 과제로 꼽았다.
한편 황문규 교수는 홍익표 의원안이 제시한 자치경찰제도에 대해서는 국가경찰의 외각조직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는 한편 치안사무의 인위적인 구분으로 인한 치안공백의 발생, 자치경찰의 초동조치권 부재, 경찰의 이중운영에서 오는 비효율 등을 제시하며 정부안의 한계를 지적하고 현재 자치경찰의 논의가 경찰분권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고 경찰고위직의 자리가 늘어나는 결과로 귀결되지 않을지 우려를 표했다.
이번 토론회는 박대식 경찰청 자치경찰추진본부 법제팀장(총경), 유주성 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최미경 국회 입법조사처 행정안전팀 입법조사관이 참여해 경찰개혁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경찰개혁 방안 모색 연속토론회는 7월 22일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경찰위원회 실질화”, 7월 29일 “정보경찰 폐지 및 보안경찰 축소”를 주제로 이어진다. 끝.
WP 호건 주지사, 내가 한국에서 진단키트 50만개를 구입한 이유 – 심각한 상황에서도 대책 없는 트럼프의 호언장담에 실망 – ‘한국의 사위’ 문대통령의 스스럼없는 호칭, 큰 의미 돼 – 트럼프의 한국 비판 발언, 방위비 협상 불만 표현한 가십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6일 매릴랜드 주지사 호건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Fighting alone (외로운 싸움)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에 딸린 I’m a ...
NI, 미국은 문정인 특보의 말에 귀 기울여야 – 미국의 ‘선해제 후보상’ 북한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 북한 문제 해결은 남북경제 강화와 협력 집중이 먼저 –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협력 미국과 안보리 제재에 발목 잡혀 내셔널 인터레스트지는 지난 16일 Time for America to Listen to Moon Chung-In(미국은 문정인 특보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는 제목의 Daniel R. ...
영국의 역사학자 제임스 브라이스(James Bryce: 1838~1922) 자작(子爵)은 1887년에 쓴 <미연방(The American Commonwealth)>에서, 캘리포니아는 “많은 측면에서 전체 연맹 중에서 가장 월등하고, 그 어떤 주 보다 세계에서 홀로 우둑 설 수 있는 위대한 나라의 성격을 지녔기에 내가 기꺼이 거주하고픈 주”라고 썼다.
그런 존재감과 자신감에 발로인지는 모르겠으나 코로나 19 이후 캘리포니아가 미심쩍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주지사인 뉴섬(Gavin Newsom)의 입에서 미합중국주의자라면 귀에 거슬릴만한 말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캘리포니아를 ‘주’(state)가 아닌 ‘국’(nation)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뇐다. 그의 표현으로는 ‘캘리포니아국’(California nation-state)이다. 원래부터 트럼프와 각을 세우고 있는 뉴섬 주지사가 코로나 이후 무능하고 무책임한 트럼프의 코로나 대처에 열불이 나서 트럼프에게 더 날을 세우려 그러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쨌든 주지사가 저런 말을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에 많은 매체가 주목하고 있다. 이것이 부담스러웠는지 뉴섬 지사는 4월 13일 자신의 발언은 세계 5위의 경제와 미국의 20여개 주를 합한 수 보다 많은 인구를 지닌 캘리포니아의 “규모와 범위”를 감안해 한 발언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한 발 물러섰다.(“Is California a Nation-State?,” New York Times, April 14, 2020).
그러나 바로 그 규모와 범위에 있어 존재감을 갖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주지사가 한 발언이기에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만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이것을 필두로 해서 불길한 조짐들이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는 미국이기에 그렇다. 그 불길한 조짐이란 바로 분열이다.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의 분열된 모습이 현재의 미국이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미국을 ‘미분열국’(The Un-united States of America)로 부르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낀다.
이참에 갈라서자
2001년부터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스티브 로페즈(Steve Lopez)는 지난 4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제목의 칼럼을 썼다. “코로나로 한 가지 분명해 진 사실: 이참에 갈라서자”(“Column: The coronavirus pandemic has made one thing perfectly clear: It’s time to split the country,” Los Angeles Times, April 22, 2020). 글의 요지는 간단하다. 코로나사태가 터지고 미국이 민낯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아직 정신 못 차리는 지도자(트럼프를 가리킴)와 미국인들이 즐비하다. 그걸 계속해서 보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더는 못 버티겠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젠 때가 된 것 같다. 연방을 해체하고 각자 갈라서자. 50개 주를 성향에 따라 3개 또는 2개로 나누자. 3개의 국가로 나눈다면 다음과 같이 이름 지으면 될 것 같단다. ‘미국우선공화국’(The Republic of America First: 트럼프의 외교정책 노선 “미국우선주의”를 빗댄 것), ‘신과 총의 연방’(The Commonwealth of God and Guns: 보수주의자들을 지칭한 것), 나머지 하나는 ‘오합지졸연합피난처’(The Federated Sanctuary of Huddled Masses: 구심점 없는 진보주의자들을 일컬음)로 맨 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에 수도가 위치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어쩌면 저렇게 이름을 그럴 듯하게 지었을까. 그러면서 당장 3개로 나누는 것이 어려우면 이른바 ‘레드스테이트’(공화당지지우세 주)와 ‘블루스테이트’(민주당지지우세 주)로라도 나뉘었으면 좋겠다며 이참에 확실히 이혼장에 도장을 찍자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변죽을 울리고 슬쩍 빠졌던 그 “캘리포니아국”를 아예 공식화하자며 칼럼을 맺는다. 미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해서 따로 살자는 것이다.
전례 없이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진영으로 나뉜 미국. 그래서 이 진영에 속한 주들끼리 따로 분리하자는 정서가 팽배해 있는 작금의 미국이다. <애틀랜틱>
유력 매체의 사설이 저렇게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지금 미국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상대방을 적으로 규정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이 패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방에 대해서는 신물이 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예 ‘쿨’하게 갈라서자는 말이 나올 터.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마스크가 가른 미국 정치 지형
1768년, 필라델피아의 변호사이자 정치가였던 존 디킨슨(John Dickinson, 1732~1808)이 남긴 유명한 말이 바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by uniting we stand, by dividing we fall)이다. 그 뒤 독립운동의 웅변가인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와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이 그 말을 인용해 유명한 연설을 한 뒤, 경구가 되다시피 한 저 문구는 250여년이 지난 지금 거꾸로 사용될 정도로 색이 바래버렸다. 왜냐하면 이제는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Divided we stand, united we fall)라는 말이 더 많이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갈라지자.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라고 제목을 단 <뉴욕메거진> 기사
그 정도로 지금 미국은 절망적으로 분열되었다. 물론 미국은 여러 인종이 모여 사는 소위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이니만큼 생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정치색이 달라 서로 갈등하고 증오하고 싸우기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디킨슨이 남긴 저 말처럼 통합해서 위기의 고비를 넘기곤 하였다. 그러나 앞서 내가 여러 번 지적했다시피 이번엔 양상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은 대선을 끼고 크게 3번의 거대한 분열의 양상을 보였다. 1860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은 노예제의 장래를 두고 싸웠다. 그것은 남북전쟁으로 이어졌다. 1932년 대선에서는 대공황의 대처방안을 놓고 진영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1980년 대선에서는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두고 진영간의 심한 갈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2020년 대선이다. 이번엔 무엇을 놓고 진영간 대립이 벌어지고 있을까? 힌트는 코로나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대번에 답을 댈 수 있었을 것이다. 답은 마스크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앞서, 어떤 이들은 코로나 사태와 조지 플로이드로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오는 걸 보면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진영 간의 극심한 대립)가 깨진 것 아니냐는 견해를 피력할 수도 있다. 미국의 정치매체 <더힐>이 그런 분석을 냈다. 전통적인 트럼프 지지층인 백인 가톨릭교도들의 지지가 지난 3월엔 60%였는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37%로 떨어진 것을 두고 코로나가 혹시나 정치적 양극화라는 거대한 빙산에 금을 가게 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Is the glacier of political polarization finally cracking?” The Hill, June 8, 2020). 그러나 내가 볼 때 이런 진단은 섣부른 것이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이렇다. 정치 진영 간의 골은 코로나 이전에도 이미 깊이 패어있었다. 즉 하루 이틀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과거에도 “확실히 갈라서자. 그게 우리가 사는 길!”이란 말이 계속해서 나왔던 게 저간의 미국의 사정이다.(“Divided We Stand: The country is hopelessly split. So why not make it official and break up?” New York Magazine, Nov. 14, 2018). 양쪽 진영끼리의 증오와 반목도 소외와 허탈을 느낄 정도로 극해 달해 있었다.(“Estranged in America: Both Sides Feel Lost and Left Out,” New York Times, Oct. 4, 2018).
물론 코로나로 트럼프 선호도가 약간 떨어진 듯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트럼프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5%로 정권 초기의 44%에 비하면 변함이 없다. 오히려 코로나가 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보여주는 조사도 존재한다. 이번에 양쪽을 가르는 것은 마스크에 대한 것이다. 카이저재단(Kaiser Family Foundation)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5월 현재 민주당지지자 89%가 집밖에서 마스크를 착용했고 공화당지지는 58%만 착용했다.(“Trump’s mockery of wearing masks divides Republicans,” Washington Post, May 27, 2020; “Face masks now define a divided America and its politics,” The Global and Mail, May 28, 2020; “How face masks are dividing America,” The Telegraph, June 12, 2020; “Is the glacier of political polarization finally cracking?” The Hill, June 8, 2020).
‘어떻게 마스크가 미국을 갈랐는가?’란 제목의 <텔레그래프>기사
어쨌든, 코로나 이전이든 이후든 분열된 정치적 지형은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내가 볼 때 이러한 갈등의 골은 시간이 갈수록 고조되면 됐지 사그라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 격화되고 있다.(“An Unprecedented Divide Between Red and Blue America,” The Atlantic, April 16, 2020). 이를 두고 여론조사기관 시빅사이언스(CivicScience)의 존 딕(John Dick)은 “정치적 종족주의”(political tribalism)가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며 “정치적 종족주의야말로 미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거의 다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라고 분석한다(“Face masks now define a divided America and its politics,” The Global and Mail, May 28, 2020). 한 마디로 ‘정치적 종족주의’는 미국이 갈기갈기 찢어져 분열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압축하는 용어인 것이다. 그러니 트럼프가 끝까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등장을 하고, 성공회 교회 앞에서 안에 들어가지도 않고 성경을 들고 사진 찍고 오는 장면을 대중에게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철저히 종족화 된 정치지형에서 자기 진영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략적 행위의 일환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는 남북전쟁
미국의 남북전쟁(1861~1865)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항의 시위가 남부연합을 역사에서 지우는 역사 전쟁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예제를 고수하려 했던 남부연합의 대통령과 장군들의 동상이 철거되거나 훼손되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Third Confederate statue toppled by protesters in Richmond in recent weeks,” Washington Post, June 17, 2020; “Confederate statues: In 2020, a renewed battle in America’s enduring Civil War,” Washington Post, June 12, 2020).
남부연합군의 깃발인 연합기도 퇴출될 운명에 놓여있다.(“Will the Black Lives Matter movement finally put an end to Confederate flags and statues?” USA Today, June 12, 2020). 미 해병대는 부대 내에서 연합기의 게양을 금지했다.(“U.S. Marine Corps Issues Ban on Confederate Battle Flags,” New York Times, June 6, 2020). 미 육군도 모든 부대 내에서 금지하는 명령을 발동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아울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은 남북연합의 지도자 이름을 딴 미군기지 10 군데의 명칭을 변경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Army reverses course, will consider renaming bases named for Confederate leaders,” Politico, June 8, 2020).
이런 일이 지금도 벌어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아직도 남북전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저렇게 남부 연합기가 사라지고, 남부연합군의 지도자와 병사들의 동상과 상징물들이 철거되고 훼손되는 것을 보면서 환호하는 이들도 있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람들도(이런 이들에게 요샛말로 ‘샤이’ 자를 붙여야하나? 물론 대놓고 불만을 표하는 KKK단 같은 극력백인우월주의자들도 있지만 말이다.) 적지 않게 있다. 그러니 연합기가 퇴출되고 동상들이 쓰러트려진다고 해서 미국인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동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이것은 그런 이들의 대표자인 트럼프가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미군 기지의 명칭 변경의사를 표명하기 무섭게 단박에 제동을 건 것을 보면 확실해 진다.(“Trump won’t rename Army posts that honor Confederates. Here’s why they’re named after traitors.” Washington Post, June 11, 2020; “Trump Might Go Down In History As The Last President of the Confederacy,” Washington Post, June 12, 2020).
경찰을 몰아낸 시애틀의 자치구(CHAZ) <출처: 복스>
심지어 현대 미국에서는 매우 보기 힘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시위대가 자치구(autonomous zone: 카즈‘CHAZ’라고 불림)를 선포한 곳도 있다. 워싱턴주 시애틀이다. 이들은 경찰을 몰아내고 경찰서를 점거한 뒤 현판을 “시애틀경찰서”(Seattle Police Dept.)에서 “시애틀민중서”(Seattle People Dept.)로 바꿨다. 사실상 무정부상태인 것은 맞지만 실질적으로 그 내부는 그렇게 무질서 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약간의 긴장감은 돌고 있지만 대체로 축제 분위기란다.(“Community, Not Anarchy, Inside Seattle’s Protest Zone,” Bloomberg, June 17, 2020; “Seattle’s newly police-free neighborhood, explained,” Vox, June 16, 2020). 분열의 끝에 이런 일종의 해방구까지 등장했고 해당지역의 주지사와 시장은 이들의 역성을 들고 있으니 실로 난세는 난세다.(“Trump claims ‘radical left’ has ‘taken over’ Seattle as he spends birthday at golf club,” The Guardian, June 14, 2020; “Capitol Hill Autonomous Zone becomes political flashpoint, as Durkan rebukes Trump’s message to ‘take back’ city,” Seattle Times, June 11, 2020).
분열 중인 미국
이런 분열은 단지 정치적, 인종적으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지역적으로도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런 분열과 갈등은 코로나 이전부터 점증되고 있었다. 지금은 거의 임계점에 달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을 크게 공간적으로 나누어 볼 때, 레드스테이트와 블루스테이트로 분할해 볼 수 있다.(“An Unprecedented Divide Between Red and Blue America,” The Atlantic, April 16, 2020). 그런데 이런 지형적 분류는 솔직히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다. 현재의 미국의 지역적 갈등 양상과 지형은 보다 더 복잡하다. 그리고 복잡성은 최근 수십여 년에 걸쳐 더욱 현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간적·지리적인 분열과 갈등의 양상은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파편화의 편재성이다. 분열과 갈등은 미국 전 지역에 고루 편재해 있다. 심지어 동일 지역 내에서조차 그러하다. 같은 주내에서도 농촌과 도시 지역간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Rural and Urban Americans, Equally Convinced the Rest of the Country Dislikes Them,” New York Times, May 22, 2018). 도시 외곽인 농촌지역 내에서도 지역 간에 양극화 현상이 보인다. 반목과 시기의 정서가 팽배하다.(“One County Thrives. The Next One Over Struggles. Economists Take Note,” New York Times, June 29, 2018). 또한 도시들 간에도 양극화가 진행 중에 있고(“In Superstar Cities, the Rich Get Richer, and They Get Amazon,” New York Times, Nov. 7, 2018), 같은 도시 내에서조차도 분열과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As Bloomberg’s New York Prospered, Inequality Flourished Too,” New York Times, Nov. 9, 2019). 가히 홉스(Thomas Hobbes)가 말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이란 유령이 미국을 집어 삼킨 것처럼 보일만큼, 그렇게 미국은 현재 분열 중이다.
둘째 특징은, 대체로 그런 분열이 정치색과 맞물리는 경향이 더욱 더 짙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농간의 분열을 보자. 도농간의 분열은 사실 과거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그 강도가 더 세며, 정치적으로도 훨씬 더 강한 동조화 현상을 보인다. <도표>를 보면, 농촌지역과 도시지역이 갈수록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지지로 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농촌지역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가 서로 엇비슷하게 엎치락뒤치락하다가 2008년 이후 공화당지지로 완전히 돌아섰음을 알 수 있다.(“Rural and Urban Americans, Equally Convinced the Rest of the Country Dislikes Them,” New York Times, May 22, 2018).
더욱 뚜렷해지는 도농 간 정치색. 도시 지역은 갈수록 공화당 지지가, 농촌 지역은 민주당 지지가 강해지고 있다. <출처: 뉴욕타임스>
분열 뒤에 숨은 으스스한 그림자, 불평등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 분열이 이렇게 극대화되고 극력해지는가? 나는 그 기저에 불평등의 심화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은 앞서 언급했듯 여러 민족과 인종이 모여 사는 ‘도가니’다. 그만큼 이질적 사회다. 그런데 그런 이질적 요소를 통합시키는 뭔가가 반드시 있어야 서로 공존할 수 있다. 사회학자 파슨스(Talcott Parsons, 1902~1979)는 이것을 “가치의 일반화”(value generalization)라고 말했다. 그것은 상이한 여러 가치들을 뭉뚱그리고 한데 아우르는 상위의 가치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인종과 성별 보다는 인간이라는 개념을 더 우위에 두는 가치를 말한다.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미국에서 한국계, 일본계, 독일계 등의 다양한 민족적 배경의 범주가 있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뉴욕커(뉴욕시민), 보스터니언(보스턴시민)이 더 상위의 범주와 개념이다. 그리고 이들을 다 아우르는 일반화된 가치를 지닌 포괄적 개념과 범주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미국시민이다. 미국인들은 이 포괄적이고 일반화된 개념으로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자기의 민족적 배경은 희생하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이 각자의 민족적 뿌리를 고집하지 않고 희생하면서 얻으려 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아메리칸드림’이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희생해 봐야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미국인들에게 팽배하다. 그 명확한 증거가 바로 극심한 불평등이다. 그러니 통합과는 거리가 먼 분열된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상위 1%(제국)에게만 가능한 아메리칸드림. 나머지는 아메리칸드림이 뭔지 모르는 비참한 상태에 놓인 것이 바로 분열의 주된 동력이다. 그러니 그 애지중지 간직하고 자랑스러워하던 미국시민임을 내팽개쳐버려도 상관없다는 듯 미국을 해체하고 각자 갈라서자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실로 격세지감이다.
2007년(금융위기) 이후 인플레이션 감안한 재산의 변동 추이. 하위 90%는 2007년 보다 더 가난하다. 상승곡선을 탄 것은 상위 10%로 그들의 승승장구는 곧 불평등의 심화를 의미한다. <출처: 워싱턴포스트>
향후 관전 포인트
여기서 주의할 점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상식과는 달리 어떤 사람이 처한 위치와 정치적 선호의 대칭이 안 맞을 수 있다. 말하자면, 잘 사는 이가 보수, 못 사는 이가 진보, 이런 식이 아니라 거꾸로 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마치 우리나라의 강남좌파가 있고 오히려 저소득층에서 보수성향인 사람이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단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열의 양상, 반목과 갈등의 고조, 불만과 좌절의 급증은 불평등의 심화와 궤를 같이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불평등의 원인이 모두 상대편 진영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에 그 문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그릇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히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분열 뒤에 따를 전쟁 발발 가능성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집단 내에서 갈등이 고조될 때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는 전쟁이다. 내부 또는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 남북전쟁이라는 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치룬 전력이 있다. 이번에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극심한 분열의 최후 승리자는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분열의 당사자들은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두 처절한 피해자가 될 뿐이다. 그럼 일반 대중(국민)들이 서로 분열하면서 반목하고 증오하며 갈등하는 사이 그 뒤에서 웃을 이들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그들이 극심한 불평등을 유발한 자들이며, 이러한 분열(단순한 시위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을 뒤에서 교묘히 기획, 조정, 부추기는 자들이라고 추정한다. 그들은 겉으론 이런 모든 일에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화살을 저런 분열을 통해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리곤 자신들의 탐욕을 마음껏 충족한다. 나는 그들을 제국이라 부른다. 그들의 철칙이 있다. 이름하여, 분할통치(divide and rule)!
그런 제국엔 월가가 우두머리로 군림한다. 그런 월가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6월 8일자 사설의 제목은 “적들은 미국을 약하고 분열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다. 작금의 시위는 미국이 지속하는 강점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 준다”였다.(“Enemies See a Weak and Divided U.S.: But they’re wrong. The protests showed some of America’s enduring strengths.” Wall Street Journal, June 8, 2020). 미국의 시위를 그저 고질적인 인종차별의 문제로만 축소 왜곡하며 동시에 장점으로 추겨 세우고, 적에 대한 경고도 날리는 애국으로 살짝 분칠을 한 이 사설. 나는 여기서 제국들이 현재 미국의 분열을 관망하는 태도를 본다. 이것은 그야말로 무책임한 유체이탈화법의 태도다. 미국이 이 지경이 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주범과 그 하수인들이 자신들은 아무 상관없는 양 유체이탈화법을 쓰고 있는데서 나는 그들의 간악무도함을 본다. 그 말할 수 없는 가증스러움을….
박병욱 국립제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가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한 경찰위원회 실질화 방안 및 옴부즈만 설치 논의”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박병욱 교수는 검찰과 국가정보원에 대한 개혁의 반대급부로 경찰의 권한이 상당한 정도로 확대되거나 확대되리라 예상된다고 지적하며 한편,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 또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병욱 교수는 경찰의 권한이 강화되고 자치경찰제도의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변화의 과정에서 경찰의 민주적 통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적 통제의 방안으로 박병욱 교수는 경찰위원회 강화를 통한 경찰의 민주적 통제에 대해 설명했다. 의회에 의한 경찰통제는 통상적·보편적·민주적 통제의 방식이 될 수밖에 없는 반면, 경찰위원회는 보다 집중적·전문적·민주적 통제의 방식이라고 설명하면서 경찰위원회는 그 구성에 있어 민주성, 주민참여, 전문성 등 다양한 요소가 충분히 충족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경찰위원회에 요구해야 할 가치로서 정치적인 중립성을 꼽았다. 경찰위원회의 위원 구성에 국회에 추천권을 주고, 최소한 경찰청이 경찰위원회가 심의·의결한 사안을 위반하는 법규명령을 제정하거나 처분했을 경우, 이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병욱 교수는 자치경찰제도의 도입될 경우 시·도경찰위원회를 통해 이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시·도경찰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구성에서 민주성, 독립성이 담보되어야 하고 주민대표성,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병욱 교수는 시·도경찰위원회에 광역의원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기초자치단체협의회와 기초의회 협의회, 국가경찰위원회, 법원 등의 추천 과정 참여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경찰에 대한 외부통제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옴부즈만, 경찰위원회 등 여러 대안을 검토한 후 핵심적으로 “정치인 및 행정부, 특히 경찰 지휘관으로부터의 독립성이 담보된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가 보장되어야 하며, 통제기구에 대한 민원인의 접근가능성이 보장되며, 해당 기구의 적합한 조사권한 및 활동상에 대한 출판·공개권한, 시정요구 및 이에 따르지 않는 경우에 대한 제제방안으로서의 언론공표권한 등이 담보”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어 경찰위원회가 실질화되어 옴즈즈만으로서의 충분히 제기능하기 위해서는 ▲공정하고 독립적인 판단자의 역할 수행 ▲신속한 업무 수행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위상의 확보 ▲시민(민원인) 입장의 적극적 대변 ▲효과적인 권리 구제 등의 요소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경찰위원회가 위의 요소에 따라 작동할 수 없다면 영국의 IOPC(Independent Office for Police Conduct)형태의 별도의 독립적인 경찰외부통제기구를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호영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총무위원장,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이채영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과 사무관,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이 토론자로 참여하여 경찰위원회 실질화, 옴부즈만 도입,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 강화 등 경찰의 권한남용을 사전적으로 차단하고 발생한 인권침해를 사후적으로 조치하고 그 결과를 제도개선에 반영할 합리적인 대안을 논의했다. “끝”
더 네이션, 미국 전쟁 멘탈에서 평화 멘탈로 사고의 틀 바꿔야 – 한국과 미국 시민단체, 한국전쟁 종식 위한 평화 협정 촉구 나서 – 미국의 평화협정 반대 이유 ‘군사-산업-복합체’라는 세 단어에 함축 – 칸나 의원, 문대통령의 노력 지지 위해 코로나 끝나면 방한할 것 <더 네이션>지가 지난 7월 31일 팀쇼락 기자의 (We Need to Move From a Wartime ...
1. 경실련은 9월 28일(월) 11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국회의원의 후보등록시 재산허위신고 의혹과 관련해 선관위에 조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가집니다.
2. 지난 경실련의 8월 28일 조사결과, 21대 국회의원 175명(초선 154명, 재등록 21명)의 재산신고액이 후보자등록 때 공개한 금액(2020.3.26.)과 당선 이후 공개한 금액(2020.8.28.)의 차이가 총 1,700억원, 1인당 평균 10억원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 이에 경실련은 이 날 후보등록 재산신고 내역과 당선이후 재산신고내역 상 차이가 많고 정확한 사유가 불분명한 국회의원을 선별해 선관위의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국회의원 10명에 대한 추가 조사를 요청합니다.
4. 그 다음날인 9월 29일(화), 10시 30분에는 서울 중앙지검 앞에서 김홍걸 의원, 조수진 의원에 대한 검찰고발 기자회견을 진행합니다.
후보등록시 재산허위신고 의혹 선관위 조사요청
일시 : 2020년 9월 28일(월)
오전 11시
장소 : 중앙선거관리위원회(과천)
김홍걸, 조수진 의원의 재산허위신고 검찰고발
일시 : 2020년 9월 29일(화)
오전 10시 30분
장소 : 서울 중앙지검 앞(서초)
* 내일 9월 29일(화) 10시 30분,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김홍걸 의원, 조수진 의원의 허위 재산신고 의혹에 대한 검찰고발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많은 취재 부탁 드립니다.
1. 경실련은 9월 28일(월) 11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후보등록 시 재산신고 부실검증 관련 선관위의 조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2. 경실련은 8월 28일, 21대 국회의원 175명(초선 154명, 재등록 21명)의 재산신고액이 후보자등록 때 신고한 금액(‘20.3.26.)과 당선 후 신고한 금액(’20.8.28.)의 차이가 총 1,700억 원, 1인당 평균 10억 원 발생했음을 공개하였다.
3. 이에 경실련은 재산신고(후보등록-당선 후) 내역 중 신고액 차이가 크고, 변동 사유가 불분명한 국회의원 8명에 대해 중앙선관위의 추가 조사를 요청했다.
4. 국회의원 8명에 대한 중앙선관위 조사 요청 경위
(1) 지난 8월 28일 경실련의 조사발표에 따르면, 제21대 국회의원의 재산신고(후보등록-당선 후)를 비교에서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이 신고액의 큰 차이가 컸고, 10억 이상 차이가 있는 국회의원이 15명에 달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2) 재산신고 금액의 차이는 국회의원 후보자 등록 당시에는 「공직자윤리법」제10조의 2와 「공직선거법」제4조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재산내역을 신고하는데, 해당 규정은 를 통한 재산심사가 의무사항이 아니라 임의조항으로 되어 제대로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중앙선관위가 재산신고를 검증하지 않아 결국 후보자가 성실신고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보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3) 경실련은 재산신고액 차액을 대상으로 자체기준(전체재산 3억, 동산재산이 3억 이상 증가, 부동산 재산이 1건 이상 추가)을 적용하여, 재산의 허위신고 의혹이 있는 14명의 국회의원을 선별하였다.
– 이들 14명의 국회의원들에게 9월 22일부터 9월 25일까지, 재산내역 건수 및 재산 신고액 차이에 대한 소명을 요청하여 12명으로부터 해명을 받았다.(조수진 의원, 이주환 의원 제외)
– 국회의원들의 소명은, 대다수가 중앙선관위의 잘못된 안내와 개인의 불성실한 신고로 인한 차이로 드러났다.
(4) 경실련은 국회의원들의 소명자료를 검토하여 허위신고 의혹이 해소된 4명(강기윤․김은혜․서병수․송재호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은 제출한 소명자료를 토대로 허위여부에 대한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 김웅 의원(국민의힘)은 건물 신고건수 증가, 배준영 의원(국민의힘)은 부동산 신고가액 증가, 백종헌 의원(국민의힘)은 예금 신고액 증가 및 건물 신고건수 증가, 이용 의원(국민의힘)은 예금 신고액 증가, 이주환 의원(국민의힘)은 예금 신고액 증가 및 토지 신고건수 증가, 조명희 의원(국민의힘)은 토지 신고건수 증가, 최혜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건물 신고건수 증가, 한무경 의원(국민의힘)은 토지 신고건수 증가 등 중앙선관위의 적극적인 조사가 필요하다.
(5) 국회의원들의 소명에도 선관위의 추가조사가 필요한 이유는, 국회의원들의 소명과 선관위의 후보자등록 당시 방침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 선관위의 ‘정당 후보자를 위한 선거사무안내’에 따르면, 재산공개 시 토지나 건물 등은 소재지별로 면적과 가액을 기재하고, 부동산에 대해서는 소유권, 분양권, 임차권 등을 신고대상으로 적시하고 있다.
–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재산신고 차액의 이유를, ▲선관위의 안내에 따른 것 ▲실수로 누락 ▲실거래가 신고 등으로 소명했다. 특히, 일부의원이 실거래가를 반영으로 가액이 상승했다고 했지만 매수일자가 2018년 8월이므로 2020년 3월 후보자등록 시에도 법에 따라 공시지가가 아닌 실거래가로 신고했어야 했다.
5. 경실련은 자료조사 과정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공직자윤리법」제10조의 2에 따라 후보자의 재산신고 내역의 심사 권한이 있음에도 검증을 전혀 하지 않아 허위 재산신고를 방조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6. 경실련은 각 국회의원들의 소명으로는 허위 재산신고의혹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선관위는 국회의원들이 재산신고 차액 및 해명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 경실련은 「공직선거법」제272조의2(선거범죄의 조사등)에 근거하여 선관위가 책임을 지고 국회의원 8명의 허위재산 공개 의혹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여 공개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 검찰에 고발 등 적극적인 조치를 요청한다.
– 특히 부동산 신고대상 및 신고방법에 대해 선관위가 배포한 안내서에 따랐다는 국회의원들의 소명에 대해서는 선관위가 분명히 사실여부를 조사하여 밝히고 책임을 져야 한다.
7. 또한 경실련은 오늘 선관위 추가조사 요청 외 허위신고 의혹이 큰 김홍걸 의원과 조수진 의원을 「공직선거법」제250조(허위사실공표죄) 위반 의혹으로 내일(9월 29일, 10시 30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할 예정이다.“끝”.
최근 수조원대의 라임 및 옵티머스 펀드 사기와 관련하여 정치권 연루 의혹이 연일 제기 되고 있다. 최근, 라임펀드 재판과정에서 전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천만원을 전달했다는 증언이 있었고, 급기야 옵티머스 펀드 관련 내부문건에서 정관계 인사 20여명의 실명이 등장했으며, 청와대 전 행정관도 차명으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라임펀드의 피해규모는 1조 6,000억원, 옵티머스는 5,000억원 가량으로 금융소비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야기한 펀드 사기이다. 이미 이 사건들은 수개월 전부터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음에도, 진상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에 소극적인 검찰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검찰은 관련 증거와 진술을 검찰총장에게도 보고하지 않았고, 중요한 진술이 조서에 누락되었으며, 옵티머스 펀드 사기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는 이혁진 전 옵티머스 대표에 대한 신병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수사가 미진한 이유에 대해서, 최근 로비의혹에 거론되고 있는 힘 있는 여당과 정관계 인사들 때문이고, 최근 정부가 추진한 증권범죄합수단 폐지 등 검찰 직제개편과 인사 등 검찰개혁과 깊숙이 관련된 것이라는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이 이러한 의혹을 해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사모펀드 기획 및 모집, 부실운용과 판매 등과 관련한 정관계 로비의혹은 물론, 부실 운용 전반과 감독문제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수사하여 책임을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단죄하는 것이다. 특히, 사모펀드 로비의혹에 거론된 인사가 여권 정관계 인사가 다수 인 만큼 성역 없는 수사와 명백한 진상규명이 요구된다. 그리고 정부와 여당의 관련 인사들은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의혹이 제기되는 사건인 만큼 수사에 성실히 협조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특검 또는 국정조사를 통해 책임을 규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과거 DLF사태는 물론 최근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기 등 현 정부 들어 연이어 제기되고 있는 금융범죄 사건들로 금융시장과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가 매우 낮다. 정부는 금융소비자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금융감독정책의 개선에 나서야 하며, 검찰은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통한 책임규명으로 금융시장의 신뢰회복과 재발방지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대통령이 교체되는 순간이 미국의 정치체계를 대혼란에 빠뜨릴 위험이 잠재되어 있음에도 이런 맹점에 대하여 그 동안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입지를 다진 세월 동안 세계의 많은 나라는 불안과 낙관을 가지고, 미국 대통령들의 바통 터치 순간을 지켜봤다. 220여 년 전 미국은 세계 최초로 민주적인 권력이양을 경험했다.
그러나 작금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오는 11월에는 최악의 권력이양을 경험할지 모르겠다. 실제로 이번 주 한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재선패배 시 평화롭게 대통령직을 인계할 것인지 묻자 그는 현장에서 답변을 피했다. 모든 일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트럼프이기에 이런 질문 따위엔 관심조차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은 그를 제외한 온 세상이 주목하는 문제이고, 또 미국인이라면 응당 신경써야 할 일이다.
미국은 베스트팔렌(Westphalian 현대적 주권국가 개념을 정초) 민족국가 시대의 첫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가주석의 권력을 선거를 통해 현직에서 차기의 당선자에게 이전하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고, 때문에 정치적 전환기, 즉 새로운 리더가 선출되는 시점과 실제로 권력이 이양되는 시점 사이에 간격이 발생했다.
군주제에는 섭정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국왕이 성인이 되기 전에는 친인척이나 법정 관료가 왕의 자리를 다스리는 것이었다. 미합중국에는 섭정이 없었다. 선거에서 패배했거나, 물러나기로 결심한 대통령은 차기 대통령의 이름을 걸고 백악관을 통치하지 않았다. 다만, 차기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는 자신의 완전한 권력을 유지했다. 그런데 선거보다는 통치에 대한 규칙에 능통했던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통령 임기사이에 어색한 중간지대가 발생할 여지를 만들었다.
1797년 존 애덤스(John Adams)가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뒤를 이어 미국의 제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당시, 미국 정치체제에는 꽤나 긴 지연이 발생하게 되었다. 애덤스는 1796년 12월 초 당선되었으나, 실제 취임은 이듬해 3월에나 이뤄진 것이었다. 이러한 시차는 18세기의 교통과 통신 속도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대통령을 직접 뽑지 않는 미국 선거제도의 산물이기도 했다. 미국의 선거제에서는 개별 주의 유권자가 특정 대통령 선거인을 뽑고, 해당 주의 선거인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다.
대통령의 정권인수 기간은 대공황이 닥친 이후, 6주가 짧아진 11주로 줄어 들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레임덕에 빠진 정권을 4개월이나 유지하는 것이 영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1933년 수정헌법 제20조가 비준되면서 대통령 취임일은 1월 20일로 변경되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어마어마한 동맹국과 세계 곳곳에서의 군사 및 첩보 활동, 즉시 발사 가능한 핵무기 등을 보유하면서 강대국이 되었다. 그러자 11주간의 대통령 인수기간도 너무 길게 느껴지고는 했다. 4년마다 번복되는 실책에서 그치지 않고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는 공백이 생기는 것이었다. 미국은 냉전시대 초에, 헌법수정을 통해 대통령의 임기를 2선의 연임으로 제한하면서도 대통령직의 인수인계 기간을 줄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마도 계속 연방정부의 규모가 확대된 탓일 것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정권은 항상 더 많은 관료를 채용하기에 바빴다.
안타깝게도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면서 이러한 정책전환이 난관에 봉착하는 일이 잦아졌다. 여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왜 긴 대통령 인수기간의 공백이 미국과 세계에 문제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준다.
첫째, 임기 후반에까지 새로운 족적을 남기려 노력하는 대통령들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대부분 외교 정책에서도 이어지기 때문에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들에게 여러 문제를 야기했다. 둘째, 기존 정권과 새 정권의 철학이나 스타일이 너무 다른 경우에는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던 초당적 국가 안보 업무가 흔들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이 공식 취임 전 분쟁을 일으키는 일이 드물게 발생하기도 한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와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의 인수 기간은 전형적인 막바지 족적-남기기를 보여줬는데, 파멸에 가까운 결과를 불러왔다. 당시 아이젠하워는 임기 10개월을 남겨두고 오늘날의 콩고민주공화국 도미니카공화국 그리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가 통치하던 쿠바의 정권 교체를 위한 첩보 프로그램을 승인했다. 이들 중 무엇도 케네디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기 전 완료되지 못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이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에 패했음에도 아이젠하워 정부는 해당 첩보 활동을 중단하지도 축소하지도 않았다. 퇴임 전까지 작전 수행을 완료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첩보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예컨대, 케네디의 취임을 1주일 남겨둔 시점에 아이젠하워 정부는 독재자 라파엘트 루히요(Rafael Trujillo)를 암살하겠다는 도미니카 반정부 인사들에 무기를 제공하도록 승인했다. 그 결과 케네디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골칫덩이를 물려받았다. 쿠바의 경우, CIA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과테말라에서 쿠바 망명자들을 훈련 중이었는데 그 수가 속절없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케네디는 당장 조치를 취해야 했고, 이는 피그스 만(Bay of Pigs) 사건의 단초가 되었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동남아시아에서의 군사 개입도 확대하기로 했다. 소련이 라오스 내 공산주의 저항세력에 군수품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꾸준히 그 규모가 증가하고 있음을 알게 된 미국은 1961년 1월 중순에 라오스로 제트기와 조종사를 급파했다. 아이젠하워는 이 사태가 정권 교체 기간을 노린 소련의 시험임을 알았지만, 바로 반응했다. 하지만 그의 실수는 따로 있었다. 소련 군사가 죽을 수 있는 위험을 알면서도 라오스 정부가 제트기를 활용하도록 적극 장려하면서 소련발 항공기를 차단하는 미션을 준 것이다. 그 결과 케네디는 백악관에 입성하자 마자 엄청난 위기를 떠안아야 했다.
아이젠하워 정부는 물러나는 정권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외교의 기준을 설정한 반면, 대선 이후 모호한 의사 결정으로 다음 대통령에게 상당한 부담을 안긴 예시들도 많다. 빌 클린턴(Bill Clinton)에 패한 아버지 부시(George H.W. Bush)는소말리아 내 식량 수송대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 개입을 허용했다.
당시에는 종료 시점이 특정되지 않은 인도주의적인 임무였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에 들어서는 전형적인 임무 변경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군사 개입의 정도가 무섭게 증가했다. 물론 부시가 이런 상황을 예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으로 국가안보 정책을 마무리 짓는 시점에 종료일이 정해지지 않은 군사작전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러시아가 미국의 대선 선거운동에 개입했기 때문에 미국이 곧장 대응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오바마가 러시아에 반격한 시점이 트럼프 시대로의 전환을 복잡하게 만든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두번째 문제는 권력을 이양 받을 차기 대통령 당선인에게서 발생한다. 물러나는 정부가 막바지 공을 세우려고 굳이 문제를 만들지 않더라도, 프로그램과 정책, 임무 등은 항상 진행 중이고, 이는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바통을 이어받는 쪽, 즉 당선인이 기존의 정책을 거절하는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실제로 냉전 시대에는 기존에 진행 중이던 소련억제 정책을 포기한 정권이 6개에 달했다. 최근에는 테러와의 싸움에 다수의 정권이 개입했다.
1988년, 새롭게 정권을 잡은 부시 정부는 로널드 레이건과 소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쌓아온 신뢰에 의심을 품었다. 정권교체로 행정부 내 관료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회의론은 계속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러한 회의론이 냉전의 종결을 방해하지도 않았고, 부시는 고르바초프의 완벽한 파트너가 되었다. 그렇지만 레이건과 부시의 정권 교체는 부시가 레이건 정부의 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처럼 매끄럽지는 않았다.
부시의 아들 조지 W. 부시의 바통 터치는 이보다 더 했다. 클린턴은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었던 아들 부시가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의 위협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부시 정부가 알 카에다(al Qaeda) 문제를 인지하고 현장에서 빈 라덴을 사살할 수 있는 드론 개발을 할 것인지 논의하기까지 9개월이 걸렸다.
해당 논의는 이후 프레데터-드론(Predator drone)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함께 구성한 9/11위원회는 2001년 테러 공격을 막을 수 없었던 것으로 결론을 냈지만, 부시 정부 초반에 잠시 알 카에다에 대한 감시를 늦춘 것이 미국의 전반적 테러 방지에 영향을 준 것은맞다.
비록 트럼프는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거부할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트럼프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는 지금, 정권 교체 기간에 발생하는 문제의 세번째 원인과 함께 어떻게 현 정부가 오바마의 바통을 놓쳐버렸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취임일이 오기도 전에 2016년 대선에 개입한 혐의로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Vladimir Putin) 정권에 부과한 제재 조치를 약화하기 시작했다.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된 마이클 플린(Michael Flynn)은 새로운 정부가 러시아를 좀더 너그럽게 바라볼 것임을 암시했고, 국가에 (그리고 자신에게) 화를 끼쳤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진다면, 자신의 성품과 그간의 행동으로 비추어, 심각한 정권 교체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다음달 트럼프가 대선에서 진다면, 자신의 성품과 그간의 행동을 볼 때 우리는 위에 언급한 세가지 중 특히 처음 두 가지 문제로 점철된 정권 교체를 보게 될 것이다. 백악관을 떠나기 전, 미국에 지극히 유해한 업무를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월 주독미군의 철수를 결정한 것이나 반(反)중국 정서를 활용하는 행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트럼프는 남은 재임기간을 이용해 NATO를 뒤흔들고, 중국과의 관계는 더욱 망가뜨릴 수 있다. 다행히도 즉흥적인 미군철수나 중국제품에 대한 관세폭탄 등 재임 후반부에 내세울 수 있는 이니셔티브 대부분은 국제 신뢰를 재건하기 위한 고단한 과정에 부담은 주겠지만, 철회가 가능하다.
한편으로 트럼프의 고립주의적 면모를 보면, 그가 아이젠하워처럼 외국의 정권교체를 유도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해서 (바이든이 당선되는 경우) 바이든 정권의 첫 100일을 망가뜨릴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란 정권을 증오한다는 것, 트럼프 가족이 이스라엘 사우디 UAE 정부와 친밀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막판에 치명적인 이란 정책이 나올 수는 있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된다면 어렵기는 하지만 평화로운 미국의 정권 교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러나는 정부가 더욱 긴밀하게 정권 교체에 협조하도록 2016년 오바마가 서명한 법률이 처음으로 시험대에 설 것이다. 그런데 표차가 크지 않으면 트럼프는 부정 선거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고, 바이든 인수위원회에 협조하기 싫은 마음을 마구 드러낼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트럼프와 바이든의 정권 교체가 차기 정부의 지뢰밭임은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백악관에 새로 입성하는 정부는 급하게 새로운 시대를 열고 싶은 유혹에 직면했다. 국가위기 국면이나 치열한 선거운동을 치른 뒤에는 더욱 그러했다. 외국의 지도자들, 특히 미국의 동맹국들은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최대한 빨리 철회하도록 독려할 것이다. 반면 트럼프는 자신이 지난 2016년 그랬던 것처럼 바이든과 그의 인수위원회가 혹시 백악관의 권력을 약화하는 것은 아닌지 방해를 시도할 것이다. 바이든의 측근이라면 소셜 미디어와 트럼프의 주변 국가안보 조력자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의 목표가 될 가능성을 염두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가 설치지 않아도 국제사회는 이미 11월 미국의 대통령 교체 가능성을 두고 불안과 우려를 갖고 있다.
인수 기간 동안 바이든의 과제는 동시에 두 명의 대통령이 동시에 활동하지 않는다는 국가의 전통을 지키면서 전세계에 ‘미국의 귀환’을 알리는 일이다. 국내에서는 탈 트럼프화(De-Trumpification)를 조속히 이루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이미 드러나거나 고발된 정치범죄만 보면, 닉슨 정부와 트럼프 정부는 아주 비슷하다. 닉슨 행정부의 고위직들이 기소된 후, 포드 정부와 카터 정부는 의회와 함께 닉슨의 시대에 악용된 여러 제도적 문제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바이든은 트럼프 정부의 권력남용을 찾아내고 없애기까지 닉슨의 후임자들보다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1970년대에는 대통령 개인보다 헌법수호에 전념한 관료들이 다수 있었고, 이들이 포드 정권의 핵심 구성원이 되어 닉슨 정부의 오점을 청소했다. 그런데 오늘 백악관에는 새 정부와 의회에 그러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고위직 관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오히려 이들이 트럼프를 막판에 사면하고, 스스로 잘못의 증거를 은폐하는 인수기간이 예상된다.
탈-트럼프화 작업은 단순히 미국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현대사 최초로 실패한 정권의 청소 작업에 외교정책과 관련한 정치적 재정적 오남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탄핵 추진의 근거가 된 우크라이나 사태). 대통령 인수기간에 법률을 충분히 활용하여 트럼프 정부의 기록을 최대한 온전하게 지켜내는 것은 연방공무원과 공공이익단체 그리고 미디어 등의 몫이다.
트럼프가 굳이 설치지 않아도 국제 사회는 이미 오는 11월 미국의 대통령 교체 가능성을 두고 불안과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인수기간이 워낙 길고, 정책 입안자가 대거 교체되기 때문에 외교정책의 혼란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트럼프는 이미 앙심과 탐욕 그리고 무지를 바탕으로 미국정치의 전통을 차례로 시험했다. 11월 대선에 패배한다면, 4년 전 그랬듯이 이미 결함이 많은 대통령 인수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짙다. 다만,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가 부정행위를 저지를 것을 이미 예상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임기 사이의 중간지대를 더욱 엄격한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다.
출처 : 포린폴리시(ForeignPolicy) on 2020-09-24
Timothy Naftali(티모시 나프탈리)
CNN의 대통령 역사 전문가이자 작가로 최근 저서로는 탄핵:미국의 역사(Impeachment: An American History)가 있다
지난 24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재판부 판사 사찰 혐의 등 6가지의 사유로 ‘징계청구 및 직무배제명령’을 조치했다. 이에 윤석열 검찰총장은 25일 추미애 장관의 처분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에 직무정지 명령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접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서로 격한 대립 끝에 정치로 풀어야할 문제에 대하여 처분을 사법부에 맡기고 있다.
이번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파국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궁극적으로 책임이 있다. 대통령의 직위는 국가의 행정권을 담당하는 선출직 최고위자리로서 막강한 권력과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 현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에 대한 도덕성과 전문성 검증 등 인사검증과 업무활동은 모두 대통령의 동의와 묵인 하에 이뤄졌기에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추미애 장관은 검찰개혁을 자신의 역사적인 소임이라 하며 2020.1월에 취임하였다. 추 장관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추진하였으나 함께 개혁을 이뤄나가야 할 검찰로부터 절차와 명분의 정당성을 얻지 못하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하였다. 추 장관은 취임이후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권, 수사지휘 배제, 그리고 급기야 검찰총장이 직무에서 배제되어야만 하는 구체적이고 상당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채 법무부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직무정지 및 징계권을 발동함으로써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침해하는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검찰총장의 교체가 아닌 제도개혁을 통해 시스템을 개선해야 하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사라지고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진흙탕 싸움만 남게 되었다. 한편에서 정부와 여당이 검찰개혁으로 입법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출범도 하기 전에 법률 개정을 추진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검찰조직의 수장으로서 국민이 바라는 개혁에 부응하도록 검찰조직을 이끌어갈 자리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을 이끌어갈 적임자로 윤석열 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도 당부하였다. 그러나 검찰은 국민이 바라는 개혁에 적극 부응하기보다는 검찰청의 위상만을 고집하는 구태를 답습했다. 또한 윤석열 총장 자신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보를 단호히 중단하지도 않았다.
현재의 국정 파행은 문재인 대통령이 행정수반으로서 책임지고 조정하려는 책무를 회피하는 데에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벌어진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인사권-수사지휘 배제-검찰총장의 직무정지 및 징계권 발동 과정의 첨예한 갈등, 추장관의 검찰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와 밀어붙이기식 행정조치, 진영논리와 팬덤에 기댄 검찰 압박 그리고 검찰을 둘로 양분하여 세력관리 하기, 윤석열 총장의 검찰중심주의에 기반을 둔 비 개혁적 행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졸속입법 등 일련의 검찰개혁이란 이름으로 추진되었던 많은 과정에 대통령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경실련은 최근 검찰개혁을 두고 벌어지는 낯 뜨거운 싸움판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권자 국민의 피로도는 극도로 높고 더 인내하기 어려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국정책임자 문재인 대통령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를 하고 국민의 뜻을 물어야 한다. 대화하는 민주정치를 펼쳐야 한다. 아울러 그동안의 검찰개혁 과정을 평가하고 국민이 바라는 개혁의 방안을 제대로 제시하길 촉구한다.“끝”
우리 헌법 제12조 3항에는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규정은 곧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이다. 이러한 조항이 헌법에 규정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오늘 우리 검찰이 과시하는 뜨거운 ‘권력의지’는 이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조항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의 이 조항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헌헌법에는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명문화된 것은 바로 박정희 군사쿠데타 직후 이른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개정한 헌법부터였다.
절대권력을 향한 유신권력과 검찰 권력의지의 결합
본래 ‘영장주의’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것이다. ‘영장주의’란 수사기관의 강제 처분은 반드시 법관에 의하여 사전에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서 인신구속을 수사기관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으며, 영장발부 권한은 법관에게 전속되어 있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 이렇듯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영장주의를 천명하는 헌법 조항에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유일한 영장청구 주체로서의 검찰’ 규정은 ‘영장주의’의 본질로부터 벗어난 것이며, 그 취지와도 필연적 관계가 없는 규정일 뿐이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이러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은 한국 외에 세계 어느 나라 헌법의 영장청구 조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규정은 박정희 유신헌법에서 한 발 더 나가 “검사의 요구에 의하여”로 다시 개정되었다. 검사의 영장청구 권한을 더욱 강화하고 상대적으로 법관의 영장발부에 대한 재량은 축소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는 결국 검찰의 권력 의지와 절대 권력을 행사하려는 박정희 유신 체제의 권력 의지가 결합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검사를 앞세워 영장제도를 배제한 조선형사령
검찰과 영장과의 깊은 관계, 그리하여 검찰이 지닌 그 뜨거운 권력의지의 기원은 멀리 일제 강점기의 조선형사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1912년 조선형사령을 제정했다. 그 핵심은 바로 영장제도의 배제로서 검사와 사법경찰에게 예심판사에 준하는 강제처분권을 부여한 것이었다. 세계 법률사상 일찍이 유례가 없는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일제는 조선의 식민지 지배를 위해 인신구속과 구금이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파악하였다. 그리해 조선총독을 정점으로 총독이 식민지 검사를 임명하고 그 하부 보조기관으로 사법경찰관을 배치하여 인신구속과 체포를 무소불위로 자행함으로써 식민지통치 권력의 극대화를 꾀했다. 이 조선형사령이라는 악법에 의해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이 희생되었다.
눈앞의 권력에만 매몰돼 민주주의의 기본에 눈감아온 정치세력
10·26으로 열린 1980년의 ‘서울의 봄’, DJ와 YS의 신민당은 당연히 자신들이 권력을 손에 넣을 것으로 낙관했다. 이들은 그리하여 헌법 개정에서 이 영장청구 조항도 중시하지 않고 단순히 유신 헌법의 “검사의 요구” 규정을 이전의 “검사의 신청”으로 돌려놓을 것만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당시 헌법 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대한변협은 “검찰의 신청이나 요구” 규정 자체를 삭제하고 단순히 “법관이 발부한 영장”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6월 항쟁으로 다시 헌법 개정의 기회가 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눈앞에 권력에만 급급했던 야당 정치권은 오직 직선제 하나만 고치면 권좌에 오를 것이라고 다시 ‘착각’하면서 헌법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았다. 문제의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의 독소 조항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라는 그야말로 미사여구의 수식어만 앞에 붙이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바꾸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다시 헌법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눈앞의 권력에만 도취된 채 우리의 국회는 결국 허송세월하면서 헌법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헌법 개정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리라.
이 땅의 정치세력은 항상 어김없이 눈앞의 권력에만 매몰된 채, 민주주의의 기본 체계, 국민주권주의와 국민 기본권에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도외시해왔다. 바로 이런 정치권의 자세와 태도 때문에 이 나라가 “나라도 아닌 나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엉터리 시스템”, “시민의 민주적 통제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의 이 왜곡된 비극의 족쇄는 언제나 풀릴 수 있을 것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여기에는 이른바 ‘진보민주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것은 엄동설한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굳굳히 광장을 지켜냈던 촛불시민들이었다. 하지만 그 항쟁의 과실은 고스란히 야당 정치세력에게 돌아갔다. 이후 시민들에게는 단지 선거 당일의 투표와 자신들에 대한 지지 그리고 상대당에 대한 반대만이 요구되었을 뿐, 더 이상의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허용되지 않았다.
대의민주주의는 요술방망이였고, 이 대의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정당’만 쥐고 있으면 누가 싸웠든 누구의 희생으로 획득되었든 권력은 언제나 그리고 철저하게 그들의 소유물이었다.
동지는 간 곳 없고, 탄식만 남았다.
‘대의 원리’에 근거하여 대표자만이 정책결정 권한을 독점한다
흔히 대의제는 민주주의와 등치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말하면 대의제는 하나의 통치기구의 구성 원리, 또는 국가의 의사 결정 원리로서 단지 민주주의의 하위 체계일 뿐이다. 그것은 권력분립, 선거제도, 정부 형태, 지방자치제도 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여러 형식 원리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용어법상 직접 민주주의는 직접 결정방식, 대의제의 간접 민주주의는 간접 결정방식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한편 의회민주주의란 의회 중심의 통치 질서에서 파악되는 것으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정부 형태와 관련된 개념이며, 이는 단지 대의제의 한 형식에 속할 뿐이다.
특히 선거로 선출된 의원은 특정 선거구민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대표하고 전체적인 공공복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대의제의 이론은 명령 위임을 부정하고 자유 위임을 주창하고 있는 바, 이는 시민 세력을 배제시키면서 그와 유리되어 결국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해왔다. 대의제가 지니는 이러한 성격은 프랑스와 영국 대의제의 역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결국 대의제라는 간접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고착되었다. 부르주아 세력은 국민세력을 동원하여 군주를 타도한 뒤 자신들의 정파 간의 무력적 권력 투쟁을 선거를 통한 정당 간의 권력 교대 혹은 경쟁이라는 ‘대의제’의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기제를 창출해낸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의원)는 특정 선거민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전체 국민을 위한 전체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국민에 책임을 지는 명령 위임을 배제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명령 위임을 배제시킨 바로 그 순간 선출된 대표자는 국민에 봉사하는 위치로부터 국민 위에 군림하는 위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대표자의 결정은 언제나 ‘전체 국민’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전체 국민’이라는 실체가 없는 관념적 존재일 뿐이다.
대의 관계에서 대표되는 실체는 없으며 대표하는 행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하는 행위와 대표자가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행위뿐이다. 그리고 대표자의 이러한 행위는 ‘전체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그리하여 국민을 구속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의제에서의 대표자란 더 이상 선거민의 단순한 대변자가 아니며 대리인(Agent)이나 수임자(Kommissar)도 아니다. 그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공명정대’하게 행동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그의 결정과 판단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힘으로부터도 독립되어야 한다고 주장된다. 물론 이러한 논리의 배경에는 탁월한 인물이 무지몽매한 국민의 의사나 명령에 따른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는 우월적 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국민들은 오직 자신들을 선출할 ‘권리’ 혹은 ‘자유’가 있을 뿐 통치는 자신들처럼 탁월하고 고귀한 사람들만이 담당할 고유 영역이다.
역사적으로 시민혁명은 부르주아혁명으로 마무리되었고 시민 세력은 탄압을 받아 그 힘을 잃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의제는 굳건한 통치원리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국민이 직접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대표자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하며, 따라서 당연히 통치자와 피치자가 별개의 존재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통치자와 피치자가 구별된다는 사실은 결국 대의제가 국민의 자기 통치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함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의제는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대의 기관을 통한 통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대의제에서 무엇보다도 대표자의 독립성 보장이 강조된다. 왜냐하면 대표자는 국가의사 결정에 있어서 항상 피치자(被治者)보다 탁월한 능력이 있으므로 대표자가 피치자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대표자의 올바른 결정에 장애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민의 특수 이익보다는 일반 이익 즉, 전체 이익이 존중되며, 무엇이 전체 이익인가에 대해서는 오직 대표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대표자에 대한 시민의 통제는 철저하게 관심 밖의 문제로 전락된다. 대중이란 기껏 무지몽매한 존재이므로 애초부터 일체의 정치적 권한을 줄 필요가 없거나 혹은 체제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어떠한 정치참여의 기회도 제공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리하여 대의제는 이른바 ‘대의 원리’에 근거하여 시민을 정치적 권한으로부터 배제시킨 채 대표자만이 정책 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게 됨으로써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은 명망가인 대표자에게 독점되었다. 결국 이러한 명망가 중심의 이른바 ‘명망가(혹은 명사, 名士) 민주주의’의 통치가 대의제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명망가에 독점된 이러한 배타적 결정권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에 기초하여 행사되기보다는 대표자 개인의 시각에서 그리고 자신들과 관련된 이익에 의하여 행사된다. 나아가 이들 대표자는 반드시 뛰어난 자질에 의하여 대표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 혹은 이른바 ‘이너서클’의 인간관계 그리고 그를 앞세운 배후 세력의 사회경제적인 힘에 의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 대의제가 지니는 이러한 성격은 과연 대의제가 사회 구성원 전체 이익의 공공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 즉 대의제 하에서 특수 기득권의 부분 이익(특수 이익)의 지배로부터 공적(公的) 업무의 공공성 보장이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대의제란 대표자의 활동에 따르는 위험성에 대한 담보가 오직 대표자의 양심과 인격에만 맡겨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그 대표자의 양심과 인격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익 추구로 변질된다(여기에는 선거와 당내 주도권 장악을 위한 갖가지 정치공학도 당연히 포함된다). 대의제가 지니는 근본적인 제도적 허약성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루소는 대의제 하의 국민은 대표자를 선출할 때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노예상태로 전락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직접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그러므로 대의제 민주주의는 공공선(公共善)이나 일반 의사의 지배가 아니라 정당 또는 정치인의 ‘부분 의사’가 지배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다. 다시 말하면, 현대 자유민주주의는 특정 집단의 이익과 가치가 특정 정당에 의하여 대표되는, 즉 ‘부분 의사’가 대표되는 정치 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소주의적’ 대의제 민주주의 개념은 민주주의 가치를 축소시켰으며,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결코 보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란 시민의 정치 참여에 의하여 자유, 평등, 정의라는 기본 가치를 실현시키고 시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시민의 통치 형태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정신을 정확하게 실현하는 방식은 바로 직접 민주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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