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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경제전망과 재정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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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경제전망과 재정적 딜레마

admin | 목, 2020/08/20- 19:16

중국 정부는 올 2분기에 경제정책을 선택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재정적 수지에 문제가 발생하면, 공공분야의 재정이 심각하게 악화될 것이다. 팬데믹으로 세수가 줄어 들면서 이에 맞추어 재정지출을 줄인다면 성장률이 저하되면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북경발 : 코로나-19로 인하여 경제봉쇄가 취해졌던 지난 1분기의 중국경제는 전년대비 – 6.8%의 경제위축을 가져왔다. 그러나 우환 등 주요 도시의 봉쇄가 풀리면서, 경제는 정상을 되찾기 시작하고 있으며 2분기에는 전년대비 +3.2%의 성장을 보였다. 전문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이후 6%의 잠재성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반기에 상기의 예측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중국은 올 한해 2.5% 이상 성장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낙관적 성과를 실현하려면, 시장에서 수요가 살아나야 한다. 지난 몇 년간 국내의 수요부족으로 성장세가 위축되어 왔으며, 팬데믹 상황이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중국 GDP의 55%를 차지하는 국내소비는 사회소비의 기준으로 1분기의 3개월간에 19%가 줄어든 것에 더하여 2분기의 -3.9%가 추가되었다. 소비는 반드시 진작되어야 하며, 올해 남은 기간의 성장여부가 이에 달려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을 것이, 가계 부문에서는 지난 봉쇄기간 동안 소진되었던 저축을 다시 채우려 안달할 것(소비축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코로나-19에 타격을 받은 가계에 지원금을 제공해야 하는데, 소비를 진작시킬 만큼 재정적 여건이 만만치 않다.

중국의 수출과 수입이 2분기에 각각 3.0%와 3.3% 줄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순수비중이 1% 수준으로 수출의 성과여부가 하반기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한편 지난 1분기에 16.1%의 심각한 위축을 보였던 고정자산의 투자분야가 2분기에는 작으나마 양의 수치로 전환되었다. 올해 평균의 2.5% 성장을 실현하려면, 소비와 수출부진에 따른 보충하기 위해서 고정자산의 투자가 두 자리의 증가율을 보여야만 한다.

중국에 있어 고정자산에 대한 투자분야는 크게 세 영역으로 구성되는데, 부동산 분야와 제조업 그리고 사회간접자본 부문이다. 부동산 분야는 상반기에 1.5%의 성장을 보였고 하반기에는 5.0%를 시현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에 제조업 분야는 상반기에 -11.7%로 위축되었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의 회복이 어려울 전망이다.

따라서 고정자산의 투자에 두 자리 숫자의 성장을 보일 유일한 수단은 하반기에 사회간접자본 부문에 집중 투자를 하는 일이다. 이런 상황의 요구에 대해서는 중국은 이미 과거에 경험을 하였다. 서구의 외환위기를 맞이했던 2008년 11월에 연간 예산을 50%나 증가시키기로 결정하면서, 2009년 연간에 5,700억불을 사회간접자본의 부문에 집중 투자하여 경제를 촉진시킨 경험이 있다. 2018년에 들어서야 신중한 정책적 선택의 과정을 거쳐 사회간접 자본의 투자를 한자리 숫자로 낮추었다.

현재의 정책결정자들은 2008년 경제촉진책을 도입한 이후 발생한 후유증에 대하여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경험의 하나는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투자가 지방정부의 재량(LGFVs, local gov’t financing vehicles)으로 이루어지는 해당 지역은행의 대출방식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채권발행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아직 대규모의 간접시설에 지원할 재정적 여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중앙정부가 책임지고 대형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지난 연말 중앙정부가 GDP의 3.6%에 해당하는 5,370억불의 재정적자를 2020년의 목표로 설정하였으나, 이는 성장률이 5.4%이상을 실현한다는 전제에서 이루어 진 것으로 현재로는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고, 따라서 기존의 목표를 축소 조정해야 할 것이다. 만약 재정지출을 축소하지 않으면, 중국의 국가재정은 하반기에 급격히 악화될 것이다.

반대로 정부가 재정적자가 늘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지출을 줄이기로 결정한다면, 경제는 2.5% 이내의 성장을 보이게 될 것이고, 따라서 기대한 만큼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으면서 악순환적으로 재정적인 취약성이 심각하게 증대하게 된다.

이에 따라, 중국정부는 올 하반기에 재정운용의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만약 재정을 확장하면 공공재정의 분야가 심각하게 위협(적자)을 받게 될 것이고, 반대로 재정수입의 격감에 맞추어 긴축을 시행하면 성장율이 낮아지면서 민간경제에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중국의 중앙정부가 경제의 성장을 가속시키기 위하여 단호하게 재정확장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가 추가적인 대규모의 간접시설자본의 투자를 추진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여야 하며, 인민(중앙)은행은 이를 지원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양적완화QE 등 다양한 정책을 취하여야 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재정악화와 부채비율의 증가는 차후에 별도로 다루어야 한다. 중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등소평의 유명한 명제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 “성장(발전)만이 분명한 진리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중국당국은 경제부양책을 실시해야 한다.

출처 : 포린폴리시FP on 2020-07-27.

Yu Yongding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세계경제의 중국관련과 국제정치분야의 책임자를 지냈고 2004-2006년 간 중국인민은행에서 통화정책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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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번 글을 시작으로 2주에 1번씩 함께살기의 복지국가 5.0 기획칼럼을 게재합니다. 필진은 8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시재생, 도시계획, 주거환경, 현실정치, 공론장, 지방분권, 주거/문화정책, 노인복지, 사회사상, 복지국가이론, 사회보장정책, 건강정책, 영유아 돌봄, 청년정책, 세대갈등, 고용정책, 기후변화, 환경/에너지 정책, 행정개혁, 성평등 등 여러분야에 대해 심층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2010년대 초반 무상급식을 중심으로 복지국가는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복지국가의 강화를 주창하는 것은 식상한 일이 되어버렸다. 일부는 진보진영이 때가 되면 떠들어대는 지겨운 레퍼토리로 치부하기까지 한다. 현재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는 기본소득제 논의도 복지국가의 한계에 대한 지적을 발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를 둘러싼 논쟁은 깊이 있는 분석과 사유에 기반하기 보다는 한 철의 유행으로 다뤄버리는 현실이기에 씁쓸하다. 정말로 복지국가는 무용해졌을까? 현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낸 유럽에서도 복지국가가 이러한 대접을 받고 있을까? 더 나아가, 우리나라는 무용론이 적용될 만큼 복지국가였던 적은 있었던가?

 

통치패러다임으로서의 복지국가

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였던 적이 없다. 복지국가는 단순히 제도나 정책의 묶음이 아니라 한 나라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통치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의 논리와 가치들을 중심으로 나라를 조직∙운영했던 적이 없다. 단지 부수적인 것으로 아니면 어려움이 있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구성원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그때그때 이용될 뿐이었다.

패러다임은 패턴, 예시, 표본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παράδειγμα)에서 유래한다. 현대에 와서는,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 가치, 문제해결 방법 등의 총체’라는 의미로 사용된 후[1], 패러다임은 세계관, 사회관, 인간관, 믿음체계, 가치체계 등 보다 근원적인 요소들과 더불어 이들에 기반해 형성되는 문제의식, 문제해결의 방식과 도구, 제도와 정책 등의 요소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즉 하나의 영역이나 분야에 이러한 요소들이 지배적인 모습을 보일 때 패러다임이라 부르고 있다. 한 나라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것에도 이러한 패러다임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치패러다임이라 부를 수 있다.

통치패러다임은 한 나라를 통치하는 기준들에 대한 종합적인 틀이기에, 당연히 전 방위에 걸쳐 대부분의 영역에서 적용되고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복지국가가 ‘복지’와 ‘국가’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용어이기에, ‘사회복지를 제공하는 국가’라고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통치패러다임의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이해는 매우 단편적이며 표면적인 잘못된 이해이다. 복지국가는 통치패러다임에 의거해 복지국가의 사회정책, 경제정책, 문화정책 등을 자율적이면서 체계적인 논리와 기준들에 따라 수립하고 수행한다.

현대의 복지국가는 기존의 다른 유형의 국가, 예를 들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구성원이 하는 것을 그대로 놔두는, 특히 경제활동에 개입하지도 않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하지 않는 ‘야경국가 패러다임’을 교체하면서 대두되었다. 달리 말하면, 복지국가는 국민의 경제활동에도 개입하고 취약계층을 지원도 하며, 더 나아가 국민의 일상적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개입을 하는 국가이다. 즉 복지국가는 국가의 한 유형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재정 전 영역에서 동일한 기준과 방식으로 국가의 행위들을 규정하는 틀, 즉 통치패러다임을 구축한 국가이다. 이러한 통치패러다임의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는 아직 복지국가패러다임을 통치의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인정하는 국가가 아니다.

 

복지국가패러다임은 사회보장의 상대적 자율성에 기반한다

복지국가패러다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사회보장의 상대적 자율성이다. 사회보장은 인간은 생존유지, 인간적인 삶 그리고 자율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를 본래적으로 갖고 있으며 이 욕구를 사회적 연대의 방식을 통해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 자체로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는 객관적인 타당성을 갖고 있다. 다른 어떤 외부의 원인들로 인해 사회보장의 필요성이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자체에서 필요성이 도출되는 것이다.

이 존재이유가 침해되는 순간 인간의 삶은 불충분하게 되어 고통이 발생한다. 사회적 위험이란 바로 앞서 말한 근원적인 욕구들이 충족되지 않아서 고통이 발생한 상황을 말한다. 아파서, 마음 놓고 기거할 공간이 없어서,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서, 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이 너무 비싸거나 교육기관이 없어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명확하다. 고통의 해소를 추구하게 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혼자 힘으로 노력하는 방법도 있고, 주위 사람들과 힘을 합쳐 공동으로 해소하는 방법도 있다. 바로 후자의 방식이 사회적 연대의 방식이다. 공통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사회적 위험에 공동으로 대응하여 위험을 해소하는 것이다. 사회보장이란 바로 이 공동의 대응방식을 포함한다.

하지만 단순히 제도와 실천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욕구와 그것이 충족되지 않은 사회적 위험에 자신들도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는 잠재적 보편성에 기반한다. 즉 제도와 실천 이전에 인간이 나면서부터 갖고 태어나는 욕구와 그것의 미충족 가능성 그리고 그것에 대한 특정의 대응방식 등은 모두가 제도 이전에 인간을 구속하는 것들이다. 오히려 심층적인 요인들이 작동해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제도와 실천이 만들어진다. 사회보장이란 이처럼 보다 심층적인 요소들과 더불어 현실에서 관찰 가능한 제도와 실천들 모두를 아우른다.

다만 인간이 사회보장을 실현함에 있어서 외부 환경이 이를 도와주거나 방해한다. 예를 들어, 경제체계는 이 외부환경에 속하면서 사회보장의 실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9세기의 극단적 자본주의 경제체계는 사회적 위험을 발생시키고 이 사회적 위험에 대한 사회연대적 대응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외부요인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사회보장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다. 내적으로 그 존재의 이유와 발생의 원인을 갖고 있기에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외부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자율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사회보장의 실현을 제1의 목표로 삼는 국가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개인이나 1차 집단이 주로 담당했던 역할을 이제는 국가가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 그리고 그 충족의 방식이 사회적 연대의 방식인데, 이러한 욕구 충족과 충족의 방식에 대해 국가가 전면적으로 이를 관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득보장, 사회보험, 사회서비스 등을 관할하는 최종심급이 국가가 된 것이며, 경제 영역에까지 사회보장의 논리를 적용시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직간접적으로 국가의 용인이 있어야 가능하게 되었다.

 

적응의 원리와 복지국가의 업그레이드

복지국가는 내∙외적 환경변화에의 적응(adaptation)을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로 삼고 있으며, 이 원리에 의거해 복지국가는 19세기 말에 태동한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사회보장의 실현은 결국에는 주어진 현실의 환경 속에서 이루는 것으로, 상대적 자율성의 성격에 따라 외부의 요인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적응은 바로 이 영향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다.

적응의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근원적 욕구의 사회연대적 충족’이라는 목적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타당하다는 점이 재천명된다. 그리고 이 목적의 실현을 위해 선택한 기존의 방법과 도구들, 즉 제도, 관행, 실천 등이 목적 실현에 적절한 것인가를 심도 있게 고민한다. 그리고 보다 나은 다른 방법과 도구들이 없는지를 살펴본다. 그 결과 일부는 폐기하고 일부는 새롭게 선택된다. 이렇게 재구성된 방법과 도구들이 누수 없이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가, 즉 최대의 결과물들을 낳고 있는지를 재검토한다. 이 과정을 통해, 관료주의가 개선되고 제도의 최종 성과물과 애초에 상정한 목표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효율성을 갖추게 된다.

현대의 복지국가는 19세기 말의 1.0 버전부터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 경향의 확대에 적응한 4.0 버전까지 단계적으로 변화해 왔다. 19세기 전반기 내내 계속되었던 노동자들의 요구로 노동보호와 관련된 입법들이 19세기 후반부터 이뤄졌고, 1880년대부터 사회보험체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취약계층에 대한 자선적 의미의 보호가 19세기 말부터는 국가의 의무이고 국민의 권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위생, 전연병, 공중보건 등도 국가의 몫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복지국가 1.0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탄생했다.

태동기의 흐름은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사이에 또 한번의 큰 변화를 경험하며 복지국가 2.0이 만들어졌다. 독점자본주의 폐해의 확대 및 1차 세계대전의 경험은 내∙외적 환경변화의 대표적 요소들이다. 이에 적응하기 위해,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은 복지국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렸고,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하고 적용대상자의 범위 또한 넓혔다. 스웨덴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집권하여 가족정책과 주거정책 등에서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노동시장에서도 노사협의의 관행을 만들어냈다. 프랑스는 1930년대 인민전선이 집권을 함으로써 사회보장 제도들이 확대되었으며 미국에서조차 뉴딜정책과 사회보장법이 도입∙집행되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소위 ‘영광의 30년’을 보낸 복지국가 3.0이 형성됐다. 전쟁의 경험이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에 대한 사회보장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사전에 준비된 내용들은 입법의 과정을 거쳐 제도적인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의 복지국가는 분야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영역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성격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복지국가 3.0은 1970년대에 이르러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복지국가패러다임이 명실상부하게 통치패러다임으로 인정되고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경제환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새로운 생산모델인 ‘다품종 소량생산’이 널리 퍼지고 경제 자유화 및 금융 자유화가 일어나 자원의 국제적 이동이 커지게 되었으며 해외직접투자도 점차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 위험의 내용도 달라졌다. 불안정고용의 증가, 장기실업의 등장 및 대규모화, 근로빈곤의 발생, 한부모 가구의 증가,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각종 차별의 사회문제화, 도시환경의 낙후(도시재생 및 구역개발의 필요성 대두) 등, 소위 ‘신사회적 위험’이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들은 결국 각 나라가 구축한 복지국가 3.0의 문제해결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복지국가는 앞 서 2번의 적응능력을 보여주었듯 이번에도 적응에 들어갔다. 인적 역량의 강화를 강조하는 사회적 투자, 소득보장에 있어서의 최저소득보장체계의 강화, 중산층을 위한 복지의 상대적 축소 및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강화, 사회서비스의 민간제공주체로의 확대(즉 복지혼합), 사회보장의 지방분권 강화 등이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적응은 결국 복지국가 4.0 버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버전은 다시 새로운 환경변화에 직면하여 또 다른 적응의 압력에 노출되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압력을 가중∙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서의 복지국가의 위상

1980년대의 이후 ‘복지국가의 위기’가 널리 회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축적된 사회보장에 관한 자료들은 복지국가의 ‘후퇴’보다는 ‘안정적 지속’을 보여준다. 일련의 변화는 있었지만 복지국가패러다임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는 않았다. 당시의 변화들은 GDP 대비 공적 사회지출이 대략 5% 정도 축소하는 결과를 나았다. 즉 복지국가의 합리화가 5%의 축소에 한정해 이뤄진 것이다. 특히 경제체계의 급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안정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2]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은 복지국가의 실효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 복지국가의 수준이 높을수록 팬데믹에 대한 대응 또한 잘 되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즉 2020년의 경제성장률은 그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이 국내외의 환경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 능력을 갖췄는지를 판단하는 종합지표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복지국가가 가장 잘 발달되었다는 북유럽 국가들 증 덴마크가 0.7% 증가하고, 핀란드와 스웨덴은 0.89% 하락했다. 이러한 수치는 다른 선진국들의 보인 2~5% 대의 하락과 비교한다면 매우 도드라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통계도 이와 유사하다. 북유럽 국가들이 0~3%대의 하락을 보인 반면, 다른 선진국들은 3~9%대의 하락율을 보였다. 결국 복지국가패러다임이 보다 공고히 자리잡은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더 높았다.

국제통화기금(IMF)는 각 국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실시한 예산사업, 재난지원금 등의 현금 지원, 세액감면 등과 같은 직접적인 지원을 ‘추가지출 및 기존 세액감면(Additional spending or foregone revenues)’ 항목으로 집계해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3] 이 자료 또한 복지국가패러다임 구축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북유럽 나라들의 직접지원은 GDP 대비 1~4%인 반면, 미국, 영국 등의 영미형 국가들은 14~16%,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대륙형 복지국가들은 7~11%였다.

결국, 북구형 복지국가들은 팬데믹이라는 응급상황에서 다른 유형의 국가들보다 국가의 지원이 매우 낮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은 더 좋았다. 이는 복지국가패러다임에 의거한 제도들이 촘촘히 구축되어 있어서 내∙외적 위기에 보다 더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복지국가는 평상 시에도 국민의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위기 시에도 별도의 추가비용 없이 국민의 일상적 삶을 보호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러한 증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가의 통치가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보여준다.

 

복지국가 5.0의 전면화 가능성 상승

서구 유럽에서의 코로나19 팬데믹은 복지국가의 위기대응 능력에 대한 인정을 넘어 새로운 업그레이드에 대한 여러 징후들을 낳고 있다. 복지국가의 후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나라인 영국에서조차 ‘복지국가의 복귀’가 언론상에 등장하고 있다.[4]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국가가 국민들에게 특히 중산층에게까지 여러 지원을 했고 이로 인해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올라가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 속에서 과거 황금기의 복지국가가 새롭게 재구축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복지국가 5.0 버전의 출발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복지국가 5.0의 등장은 1980년대 이후 형성된 복지국가 4.0이 해소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축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것들로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 여성의 경제참여 확대, 성평등의 제도화,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 및 정보에 대한 사회화, 지방 자치 및 분권의 공고화, 이민자의 사회통합 강화 등이 있다. 여기에 더해, 사회보장의 원리와 원칙이 경제영역에서 보다 더 확대되어야 한다. 그 동안 미뤄두었던 생산수단의 사회화, 기술 및 지식의 사회화, 생산과정에서의 경제적 민주주의 강화,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조직의 역할 증대, 더 나아가 사적 재산권에 대한 제한, 금융의 사회화, 화폐민주주의의 강화 등이 추가되어야 한다.

 

복지국가패러다임의 구축으로 복지국가 5.0을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사회에 내재된 여러 문제들을 표면화 시켰다. 사회보장의 기존 제도, 관행, 실천의 한계와 결함을 드러냈고, 지방자치단체의 역량 부족을 부각시켰다. 무엇보다도 IMF가 집계하는 직접지원이 GDP 대비 3.4%라는 점은 사회구성원에 대한 소득보장이 부실함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북유럽 나라들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어 위기상황에도 직접지원이 덜 필요한 반면, 우리나라는 그러한 기반이 없음에도 직접지원은 그들과 유사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팬데믹의 불가피한 소득결핍의 문제를 사회적 연대 방식이 아닌 개인과 가족의 자구방식, 특히 가계부채에 맡겼다. 이는 우리나라의 통치패러다임은 야경국가패러다임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위기는 기회이다’라는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미 유럽연합과 개별 회원국에서 나타나듯이,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존의 것을 넘어서는 발상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3개의 상이한 압력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다. 아직 복지국가 3.0을 완료하지 못했기에 이를 보완해야 한다. 복지국가 4.0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아직 맛보기 수준이다. 거기에다 다가오는 복지국가 5.0이 해소해야 할 것으로 상정되는 문제들은 아직 문제제기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복지국가의 구축은 매우 방대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통치패러다임의 새로운 구성을 위한 공론의 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서구복지선진국이 1945~1975년 사이 복지국가패러다임을 통치패러다임의 지배적 위치에 최종적으로 올려 놓은 그 작업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서구유럽의 경우 복지국가패러다임이 지배적 통치패러다임이 되기까지 거의 1세기가 걸렸다. 우리나라는 복지국가가 논의된 지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간 길들을 짧은 시간에 주파하는 저력을 보여왔다. 복지국가패러다임의 구축도 그러한 저력이 펼쳐져야 할 장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해야 할 때이다.

 

[1] . Thomas 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2nd E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0.

[2] . Paul Pierson, The Welfare State Over the Very Long Run, Zes-Working Paper No. 02/2011, 2011.

[3] . IMF, Fiscal Monitor Database of Country Fiscal measures in Response to the COVID-19 Pandemic, 2021/02/03 참고.

[4] . The Economist, “Covid-19 has transformed the welfare state. Which changes will endure? The pandemic may mark a new chapter in the nature of social safety-nets”, 『Briefing』, 2021/03/06.

 

이권능

정책연구소 함께살기 소장. 정치학도로 시작해 프랑스 파리제1대학과 그로노블정치대학(IEP de Grenoble)에서 사회정책을 전공한 후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연구실장으로 활동했음. 현재는 복지국가를 마을에서부터 만들기 위한 운동을 진행 중. 사회사상, 복지국가와 복지정치, 사회보장, 건강 및 요양, 복지도시 등을 사회성(the social)과 이론-실천의 통합 관점에 기반해 연구 중

목, 2021/08/1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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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유엔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직후인 1945년 10월 24일 미국의 적극적인 제안과 후원으로 설립되었다. 유엔총회, 안전보장 이사회, 유엔사무국, 경제사회 이사회 등 4개의 공식기구와 국제 원자력 기구, 식량농업기구, 유네스코, 세계은행, 세계보건기구 등 산하의 여러 전문기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2019년 현재 193개 회원국과 37,000 여명의 직원을 두고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주요 공여국인 미국의 상습적인 분담금 납입지연과 불이행 등으로 2019년 현재 수억 불이상의 채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래의 글은 유엔에 가하는 미국의 횡포와 압력의 실상을 소상히 밝혀주고 있다.”

유엔은 자금조달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마치 변덕스러운 회원들로 채워진 클럽처럼 유엔은 모든 회비가 제 때 들어올 것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일부 회원국들은 회비 지급을 미루고 있고 결제는 종종 실종된다. 미국의 경우, 현재 유엔 운영 예산의 약 22%를 담당하는데, 회계연도에 따라 10월 이후에야 회비지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더 큰 문제의 일면에 불과하다. 회비지급 보류는 유엔헌장 17조를 위반하는 사항으로 예산상 행위만큼이나 정치적이기도 하다. 이 조항의 중요성은 유엔의 운영비용을 “총회가 배정한대로 회원국이 부담한다”고 규정하는 데 있다.

역사적으로 UN 외교정책과 조직의 개혁 문제는 부과된 회비를 줄이거나 보류하는 주요 사안들로 언급되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렇게 “부과된 회비”가 행정 비용, 평화유지 활동 및 다양한 프로그램에 쓰이는 비용을 부담하는 공식 정규 예산으로 편성되기 때문이다 .”

미국의 경우, 종전에는 기구 운영 비용의 약 40%를 부담해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따라서 UN 조직에 어떤 압력이 가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중반,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추방, 유보, 자격 부인 또는 어떤 식으로든 참여할 권리를 침해” 당하는 경우 “미국이 연간 분담금의 지급을 유보하면서 매달 8.34%” 축소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었다.

재정 지원 문제는 돈주머니를 걱정하는 미 의회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중요한 쟁점이었다. 수년간 위원회의 붙박이 역할을 한 제시 헬름스(Jesse Helms)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 미국이 유엔 회비를 전액 지불할지, 정시에 지불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불렸다. 그와 함께 조 바이든(Joe Biden) 상원의원은 UN에 전액을 지불 하기 위한 전제로 다양한 “기준들”을 준수하도록 압박하는 협상을 1997년 타결했다. 여기에는 불가피한 UN 직원의 감축, 감찰관과 사무총장 간의 적절한 보고 절차, 타 기관에 대한 자금지원 금지 항목이 포함됐다. 2000년 1월, 헬름스 의원은 수 십 년간 의심해왔던 조직인 이른바 그림자 정부에 대해 충고하고, 참견하며, 잘난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특히 UN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연설에서 독특한 인상을 준 한 미국 의원을 경험하는데, 그는 당시 UN 주재 미국대사였던 리처드 홀브룩(Richard Holbrooke)이었다. 유엔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내비치면서, 그의 목적은 이 기구에 대한 미국의 기여를 “빚쟁이”가 한 것으로 간주하는 비평가들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는 “유엔의 최대 공여자인 미국 국민의 대표로서, 우리는 투자에 대한 대가로 구체적 개혁을 요구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라고 공언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의 자금과 유엔 운영비 사이의 훈훈한 협상의 새 장이 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18년 9월,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에 대한 미국의 인도주의적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회복지 사업, 의료 및 교육 부문을 위태롭게 하는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Jared Kushner)는 이 조치의 타당성을 확신했다.

“이 기구는 부패했고 비효율적이며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18년 예산안에는 유엔 프로그램에 지원하는 미국 자금의 절반을 삭감하는 조치도 포함됐는데, 이는 특히 기후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 연방의회는 유엔평화유지활동 기부금 상한제 시행 안건에 동의했다.) 이와 같이 자금지원을 중단하여 유엔 기관들을 위협하고 압박을 가하는 사례는 여전히 미국의 관행으로 남아있다.

현재 회원국들이 유엔에 지불해야 하는 13억 달러 상당 중 미국이 체납한 금액은 10억 달러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 불량한 수치의 누적은 미국이 다른 회원국들에 불만을 토로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까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회원국들이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6월, 안토니오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사무총장은 5차 위원회의 예산 감독관들에게 급여와 물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명성과 운영 능력에 있어서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모든 회원국들이 분담비를 모두 제 때 지급하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금을 적소에 사용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

유엔은 5월 말까지 4억9200만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 이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파국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한계점에 다다랐으며, 우리가 이제 어떻게 하느냐가 앞으로 수 년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상황은 예상대로 악화됐다. 지난 10월 첫 주 월요일에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10월말 현금 보유고가 고갈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유엔 사무국 소속 37,000명의 직원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회원국들이 2019년 유엔 정기 예산 운영에 필요한 금액의 70%만 지불했다. 이는 9월말 2억3000만 달러의 현금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달 말까지 예비 유동자산 보유고가 고갈될 위험에 처했다.”

재정긴축 조치가 내려졌다. 컨퍼런스와 회의가 연기되고 있으며, 필수적이지 않다고 판단된 출장도 취소됐다. 유엔 대변인 스테판 두자릭(Stéphane Dujarric)은 회원국들에 압력을 가하며, 193개국 중 129개 회원국만이 “전 세계적으로 운영 중단을 초래할 수 있는 채무 불이행을 방지하기 위해 연간 분담금을 전액 지불했다”고 밝혔다. 유엔의 의미와 영향은 회원국들에 달려있으므로, 재원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면 세계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확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글로벌 리서치, 2019.10.11.

비노이 캄프마크(Binoy Kampmark)

케임브리지 셀윈 대학의 영연방 학자. 현재 멜버른 RMIT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글로벌리서치 및 아시아-태평양 리서치의 기고자로 활동 중이다.

 

More info.

추가 정보

심 심 위스곳(Sim Sim Wissgott), UN 분석가.

안토니오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10월 중 유엔의 재정이 고갈되고 있으며, 11월 직원들의 급여를 지급하려면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고 개발을 돕기 위해 설립된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가 어떻게 현금 부족에 시달리게 된 것일까? 유엔의 재정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그리고 왜 허리끈을 조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누가 유엔에 돈을 지불하는가? 193개 회원국은 모두 각 국가의 규모와 경제력에 따라 산출된 유엔의 전반적인 운용을 위한 연간 분담금을 지급하기로 되어 있다. 2019년 총 분담금은 28억5000만 달러로, 미국의 분담금(약 6억7420만 달러)이 가장 많이 책정됐으며 바누아투, 미크로네시아, 소말리아, 벨리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과 같이 국가의 규모가 작거나 빈곤한 경우 각각 최소 2만7883달러 만을 부담했다.

유엔의 재정 규칙 및 규정에 따르면, 이 자금은 해당 국가들이 그 해의 분담금을 통보 받은 후 “30일 이내 전액 지불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매해 지급 기한은 1월 31일이었다. 하지만 기한을 준수하는 회원국은 단 몇 십 개 국가들뿐이다. 2019년 10월 8일 현재, 유엔은 여전히 분담금의 약 30%에 해당하는 63개국의 기금 지급을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들의 전년도 미지급 연회비마저도 연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이번 주,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급여를 충당할 현금이 부족한 채로 11월을 맞이할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하며 국가들에 회비 지급을 촉구했다. 유엔이 10년 만에 가장 큰 적자를 기록하며 “우리의 업무와 개혁이 위기에 처했다”고 덧붙였다.

그 돈은 어디에 쓰이는가?

유엔의 정기 예산은 뉴욕의 유엔 본부뿐만 아니라 비엔나, 나이로비, 스위스 제네바 등지에서 통신과 정치, 인도주의 및 경제 업무 등을 운용하는 데 쓰인다. 르완다, 구 유고슬라비아와 같은 평화유지 활동 및 국제 재판소는 별도의 예산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현재의 적자 상황을 “유엔이 직면한 최악의 재정 위기”로 표현했으며, 이는 공석을 채우지 않고, 필수적인 출장인 경우만 허용하고, 회의를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등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유지 활동을 위해 따로 떼어 놓은 돈에서 자금을 빌려야 할 수도 있다. 유엔은 전 세계 4개 주요 센터와 아프가니스탄, 말리, 아이티의 현장 사무소에 3만7500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 유니세프, 유엔난민고등판무관과 같은 유엔 기관들은 자체 예산을 가지고 있다.

스테판 두자릭(Stephane Dujarric) 대변인에 따르면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올해 초 이미 상당한 수준의 비용절감 조치를 시작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유엔은 현재 약 6억 달러의 적자로 인해 전 세계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주요 연례 행사인 지난 달 총회를 개최할 수 없었을 것이다. 9월 말, 유엔의 적자는 2억3000만 달러였다.

브라질, 한국,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들은 분담 지급을 미루고 있다. 특히 유엔 총 예산의 3분의 1을 지급하는 상위 6개 회원국 중에는 미국만이 2019년 분담금을 전액 지불하지 않았다. .

뿐만 아니라 각종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금년 분 4억 달러에 육박하는 체납금을 포함하여 지급해야 할 총 납입액은 1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유엔에 상당한 자금 지원을 해온 것에 오랫동안 불평해왔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주의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자 하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는 지난 해 유엔총회에서 “세계주의의 이념을 거부하고 애국주의 원칙을 채택했다”고 말했다. 지난 달 그는 세계 정상들에 “모든 파트너들이 공정한 몫의 방위비 및 기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유네스코(UNESCO)의 반 이스라엘 성향 및 근본적 개혁의 필요성과 함께 “증가하는 체납금”을 언급하며, 유엔 산하 교육문화기구인 유네스코를 탈퇴했다.

미국은 자신들이 지원해야 했던 “과도한 분담”에 대해 불평하며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유엔 프로그램인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와 낙태 관련 유엔인구기금(UNFPA)에 대한 지원을 삭감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첫 주 수요일 트위터에 “그러니까 미국만이 아니라 모든 회원국들이 지불하도록 하라!”는 글을 올렸다.

수, 2019/10/2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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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해야 우리는 국회를 개혁할 수 있을 것인가?

‘국회’라는 말이 나오게 되면 누구든지 목소리를 높여 맹비난한다. 모든 사람들이 국회를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긴급하게 개혁할 대상 1호로 지목한다.

그러나 막상 우리 모두의 ‘사고뭉치 국회’를 과연 어떻게 개혁해나갈 것인가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정작 명쾌한 방안이 없이 수십 년 째 “그 밥에 그 나물”, 도돌이표 레토릭일 뿐이다.

국회 개혁, 이제 추상적이고 원론적이며 환원론적 논리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야 한다. 국회 개혁의 진실을 분석하고 실제적인 해결 방안을 도출해내야 한다.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쉬운 예를 들어보겠다.

학생의 본업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수업, 즉 학습이다. 그런데 만약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고 대리 수업을 한다든지 대리 시험을 본다면 어떻게 될까? 한 마디로 말해, 그것은 학생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학습과 수업을 하지 않고서 나가서 연애나 하고 패싸움하고 게임하고 놀 수밖에 없다. 패싸움 금지규정을 만들어본들 막을 수 없다. 수업을 하지 않고 시간이 남고 남아돌아서 날이면 날마다 패싸움하고 연애하고 게임하는데, 예를 들어, 패싸움금지법, 연애금지법, 게임금지법 등등을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본들 그것들을 막아낼 재간이 없다. 또 이러한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학생을 선발해본들 학생이 수업을 하지 않는 그 본질을 고치지 않는다면 선발된 그 좋은 학생들도 수업을 안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교사를 초빙한다고 해도, 수업을 하지 않는 그 자체를 고치지 않고서 왜곡된 이 상황을 결코 바꿀 수 없다.

동일한 논리로 나는 오늘 국회 문제의 핵심이 바로 국회가 국회의 본분, 즉 입법을 국회의원들 스스로 하지 않고 ‘방기’ 혹은 ‘피동적으로 배제’된 데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 국회처럼 이렇게 입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또는 ‘소외된’ 의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입법이야말로 의회의 본령이고, 이 본령을 방기한다면 그것은 이미 의회가 아니다.

 

인식하지 못하면,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해내지 않고서는 아무리 유능하고 의욕에 넘치는 국회의원을 선출해본들 모든 국민들이 바라마지 않는 ‘좋은 국회’, ‘신뢰받는 국회’로 발전할 수 없다. 그렇게 ‘입법’을 방기하는 객관적 조건을 바꿔내지 않는 한, 그 어떠한 좋은 선거법에 의해 좋은 인물을 선출해도 ‘좋은 국회’, ‘좋은 국회의원’이 나올 수 없다.

지금 ‘국회 문제’를 말하면, 모두 입을 모아 “지긋지긋한 정쟁(政爭)의 종식”을 말하지만, 의원들이 자신들의 본업인 ‘입법’에 몰두한다면 솔직히 ‘정쟁’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국회 문제의 ‘진실’이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 숨겨진 진실

얼마 전 국회의 한 의원실에서 ‘검토보고서’가 처음엔 찬성 취지였다가 중간에 부정 취지로 바뀌는 바람에 법안 통과가 무산되자 의원이 수석전문위원을 의원실로 불러 문제를 제기하던 중 보좌관과 입법조사관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빚어져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건은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깊은 불신의 영향으로 “국회의원의 갑질 사건”으로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사실이 있다.

해당 사건에서 수석 전문위원은 항의하는 보좌관의 태도를 문제 삼아 “건방지다”라고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은 그야말로 “갑중의 갑”으로 통하는 위상이다. 그런 ‘높으신’ 국회의원이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보좌관에게 “건방지다”라는 말을 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실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듯, 국회 수석전문위원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수석전문위원의 힘이 얼마나 센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 ‘검토보고서’가 바뀌는 바람에 결국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고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국회의원과 전문위원 중 과연 누가 입법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국회의원은 국민이 선출하여 입법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것이 곧 대의민주주의다. 그렇다면 국민이 입법권을 부여하지 않은 국회 전문위원은 어떻게 하여 이렇게 “국회의원보다 더 큰” 입법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일까?

이전 시기에 기업들은 재경부(지금의 기획재정부, 기재부)에 로비를 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국회에 로비를 한다. 기재부 관료에게 해봤자 다시 국회의 문턱에서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다시 반전이 존재한다. 바로 국회에 대한 로비에서 그 로비의 대상이 국회의원이 아니라 바로 ‘국회 전문위원’이라는 사실이다.

이들 국회 전문위원은 각종 법안만이 아니라 예산 심의에 대한 검토보고 권한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회 공무원인 예산결산위원회 수석 전문위원에게는 장관들이 머리를 숙이고 부탁한다. 나아가 국정감사 때 피감기관을 얼마든지 요리할 수 있기 때문에 가히 무소불위 ‘권력의 핵심’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국회 주변에서는 “(국회공무원인) 수석 전문위원이 초선 의원 5,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라는 말이 널리 퍼져있었다.

“일하지 않는 국회”, 이 말은 반만 맞는 말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금 우리 국회는 국민들의 불신 대상 1위다. 하지만 국민들은 비록 그렇게 불신을 받는 국회지만 입법이라는 본연의 업무는 미흡하지만 그럭저럭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입법이라는 의회의 본연의 직무 수행에 있어 우리 국회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왜곡과 비정상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나마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싫어할 경우 투표로써 심판할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 뒤에 가려져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권력 ‘국회 전문위원’은 알려지지 않은 숨은 권력이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본업인 입법에서 분리된 국회의원

오늘의 우리 국회를 명실상부 국민 의사를 대표하는 기구라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아마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완강하게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국회는 정확하게 민의를 반영하여 올바르게 구성되어 있을까? 그러나 한마디로 유권자의 민심은 국회 의석수에 정확하게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를테면 과반이 넘는 표가 사표(死票)로 되고 있고, 18세 청년들의 투표권은 계속 거부당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정당 득표율에 따라 국회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은 철저히 저지된 채 거대 정당들의 독과점 체제만이 군림하고 있다.

오늘 우리 국회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그야말로 첩첩산중 쌓여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어떠한 문제부터 풀어야 이 국회를 바꿔낼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 것인가?

시민운동은 이제까지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에서 입법건수 발의를 기준으로 삼아왔다. 이는 한 마디로 방향 착오다.

흔히 법률안에 대한 ‘검토보고’라고 하면 당연히 국회의원이 그 책임 주체가 되어 수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에 소속된 공무원들이 검토보고의 ‘준비’와 그 ‘발언’까지 모두 담당한다.

우리 국회법은 제58조에 “위원회는 안건을 심사할 때 먼저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듣고”라고 명문화하고 있다. ‘검토보고’란 국회의원이 제출하는 법률안에 대해 국회 공무권이 ‘검토’하는 것으로서 예·결산에 대한 검토도 모두 그들의 몫이고 권한이다.

사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극대화된 현실에서도 국민을 위해 진정성 있게 열과 성을 다하려는 국회의원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 입법과정에서 의원 개인이 높은 의욕을 가지고 아무리 열심히 해보려 해봐도 그 역할은 대부분 입법발의의 단계에서 끝나게 된다. 결국 현 국회는 근본적으로 의원의 의욕과 능력이 발휘될 수 없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아무리 똑똑하고 열의에 불타는 사람이라도 사실상 할 일이 없게 된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어느 누가 국회의원이 되어도 예외 없이 모두 아무 탈 없이 임기를 무사히 채울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한 지인은 초등학생을 국회에 갖다놔도 충분히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유치원3법’이나 ‘김용균법’ 등을 둘러싸고 의원들이 갑론을박, 거칠게 논란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의원들이 입법을 주도한다고 쉽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빙산의 일각’처럼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로 부각된 극히 일부 법안에만 해당될 뿐이다. 왜냐하면 현재 국회 입법은 법안 발의 그 단계에서 의원들의 개입은 사실상 종결되기 때문이다. 대다수 법안들은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법안 검토부터 모두 철저히 입법관료들의 손으로 넘어가 처리된다.

그리하여 결국 국회개혁의 핵심은 바로 국회의원들과 ‘분리’된 국회의 본업, 즉 입법 활동을 다시 ‘복원’하여 결합시키는 것에 있다. 즉, 입법의 전 과정을 국회의원이 그 ‘검토’부터 모두 ‘직접’ 수행하는 것이다.

화, 2020/01/1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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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진리라 함은 주체의 인식과 인식 대상이 일치할 때 그 인식 내용을 일컫는다는 근대철학의 진리개념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하여 근대철학은 신이 예정해준 진리를 벗어나서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이를 인식론이라고 부르게 됩니다만 당시 접근방식의 차이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을 따른 대륙의 합리론과 베이커가 이끌은 영국의 경험론으로 나누게 됩니다.

이후 진리의 획득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무렵 칸트가 나타나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하여 선험적 종합판단이라는 방법론을 통해 진리를 주관화하며 절대적인 진리를 획득하였다며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이루었다고 선언하게 됩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한계를 상호 보완하는 측면에서 종합을 시도하였을 뿐이지 절대적인 진리의 인식방법론을 완성한 것은 아니라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현대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진리는 인식론의 대상이 아니라 존재론의 영역으로 승격되면서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기에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근대의 인식론은 더 이상 존립할 토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특히 양자역학을 통하여 인식주체와 무관한 객관적인 대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식주체와 대상 또한 양자얽힘에 의해 상호 내재적으로 생성관계에 있어 인식주체를 배제한 대상에 대한 절대적인 기술을 불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후 과학철학의 발달에 힘입어 실재론이 힘을 잃고 토마스 쿤이 주도하는 비샐재론, 즉 존재에 대한 진리의 기술은 단지 잠정적인 담론에 불과하다는 패러다임이론이 등장하게 됨에 따라 절대적인 진리를 인식하거나 또는 절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라는 이론은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에 의하면 관찰이 대상을 창조한다고 보는데 이 이론을 포함한 코펜하겐 해석이 정통해석으로 받아들여진 오늘날 대상에 대한 관찰, 즉 인식작용은 단지 대상에 대한 앎이 아니라 대상을 창조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규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파악이론(특히 개념적)이나 지각이론의 상징적 연관개념을 통해 인식론을 존재론으로 흡수하여 버리게 되면서 진리의 절대성과 보편성은 불가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는데 이 또한 그가 아인쉬타인과 교류할 정도로 현대 물리학에 대한 소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진리에 대한 개념을 폐기해야할지 아니면 개념을 새롭게 정립해야할 지를 고민할 시점이 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즉, 근대의 진리개념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어버린 상황에서 진리라는 개념을 폐기하는 것이 타당한지 아니면 진리마저 폐기해버리면 무정부적인 세기말적 상황에서 인간은 중심가치가 없이 표류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리개념을 새롭게 정리하는게 타당한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진리를 논하기 전에 먼저 근∙현대의 철학적 존재론을 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고대 파르메니데스부터 근대 인식론까지 서구를 지배해온 존재론은 실체론인데 그 특징은 모든 존재는 실체(실체의 의미는 플라톤은 제1원인자, 자기원인자인 이데아라고 해석하였으나 근대철학자들은 타자와 내재적 관계가 없이 독립적으로 존속하는 존재)이기때문에 고정불변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인간은 이러한 실체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기 때문에(예를 들면 신의 계시) 존재론은 겨우 유명론 논쟁 외에는 터부시되어왔으며 오로지 주체가 실체인 대상을 있는 실상 그대로 파악하기 위한 인식론만 발달하게된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철학의 시조이자 실체론의 파괴를 시도했던 니이체와 하이데거를 거쳐 화이트헤드에 걸쳐 실체론은 폐기되기에 이르렀으며 결국은 반실체론인 생성론(이는 달리 합생이론, 사건론, 관계론, 과정론이라고도 불립니다)이 21세기의 새로운 존재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생성론의 입장에서는 존재라 함은 사건들의 연속적인 인과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

다시 말하면 시공간상의 사건들의 인과적 흐름을 존재라 부르기에 여느 존대도 다른 존재와 내재적 생성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가 없기에 우주는 하나라고 보게 됩니다.

하여 실체론에 기초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버리고 유기체적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생성론의 존재는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고 끝없이 상호작용하며 생성해가는 연속적인 사건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이러한 존재의 실상에 대한 파악은 주체나 객체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고 주체의 인식이 객체의 생성과정에 내재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기에 근대의 실체의 고정불변의 본질이나 속성 을 파악하려는 진리를 찾아내고자했던 인식론은 이제는 심리학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존재의 실상에 대한 앎으로서의 진리는 이제는 설 자리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진리의 개념을 바꾸어 진리를 추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체론이 폐기되었기 때문에 존재의 본질이나 속성을 알아내는 의미에서의 진리추구는 무의미해졌지만 즉, 성론의 입장을 따르게 되면 절대적 앎이 허구라는 것이 밝혀졌읍니다만 그렇다하더라도 생성의 작용원리와 생성의 목적은 인간사회의 가치규범의 근거로서 반드시 밝혀내야할 과제로 다시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되었기에 이러한 작용인과 목적인을 진리로 삼아 보편적인 지혜, 즉 직관지로 받아들여야만 뭇 존재의 질서와 평화가 가능해지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적인에 대해서는 오늘날 천체물리학과 복잡계이론의 성과를 반영하여 우주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자기 조직화를 목적인으로 받아들여 이를 인간사회에 부합되게 새롭게 재해석하여 우주 자체를 인간사회의 질서와 평화와 생명의 창조자로 받아들여야만할 것이며 나아가 작용인에 대해서는 현대물리학, 특히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과 불교사상과 복잡계이론에서 존재의 작용인에 대해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가 있는데 예를 들면 생성론의 연기법은 상호생성의 작용인을 제시하는데 중요한 예시가 된다할 것입니다.

특히, 현대과학은 자연의 존재법칙과 인간사회의 당위규범이 서로 전혀 별개의 원리로 작용하는 것이 깊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데, 예를들면 오늘날 인지과학에 의하면 생명의 중요한 요소인 마음을 단지 정보에 대한 통합적인 관리시스템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를 달리 표현하면 복잡계이론의 자기조직화 기능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따르면 산소원자와 수소원자와 합해서 반드시 물분자만을 만드는 것도 자기 조직화 작용이 있다고 볼 수 있기에 산소와 수소도 마음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나아가 인간사회와 다른 생명체의 집단간에는 변용modification이 필요한 양적인 차이는 있지만 똑같이 자기조직화와 창발작용을 하면서 복잡계를 유지하기에 근본적으로 구조적인 차이가 없다고 보기에 우주의 자연법칙과 인간의 사회규범 간에는 깊은 상관관계가 있기에 자연법칙으로부터 인문학적 존재론을 찾아내어 뭇 존재의 작용인과 목적인을 철학적으로 재구성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여 종교와 과학을 융합하여 새로운 21세기의 철학을 구축하여야할 것입니다.

목, 2019/11/28-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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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소련과 러시아

1) 소련 붕괴 25주년

1989년 12월, 미국과 소련은 정상 회담을 통해 “냉전이 끝났다.”고 선언하였다. 미국은 소련에 대한 봉쇄 정책을 종결짓겠다고 했고 소련은 핵무기 감축에 동의했다. 개혁과 개방이라는 소련의 새로운 대외 정책이 가져온 결과였다. 소련의 지도자 고르바초프는 앞으로 동유럽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선언하였고, 소련 내에서도 공산당 이외의 정당을 허용하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였다.

1989년 헝가리를 시작으로 동유럽 모든 국가에서 민중들이 봉기하였다. 공산당 정권은 무너졌고,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는 형태로 독일이 통일되었다. 1991년에는 소련이 러시아를 비롯한 14개 공화국으로 분리되면서 세계 최초 사회주의 혁명(1917년)을 통해 형성된 소련이 7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91년 12월 25일. 소련연방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사임 연설이다.

“독립국가연합이 창설됐기 때문에 저는 소련 연방 대통령으로서의 활동을 마칩니다.“

단 한 장의 간단한 성명서와 함께 소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르바초프

1991년 말,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레오니드 크라브추크, 벨라루스 대통령 스타니슬라우 슈슈케비치가 한자리에 모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더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는 데에 합의하였다. 그해 8월 모스크바에서 쿠데타 시도가 일어난 뒤 소련 공산당은 급격히 위축되었으며, 그 권력과 특권도 붕괴되었다.

옐친에게 소련과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불편한 존재로 남아 있었다. 전자를 없애면 후자도 자연히 따라서 사라지게 되며, 러시아 연방 내에서 옐친의 권력을 확고하게 해줄 것이었다. 그는 독립국가연합(CIS)이 소비에트 연방을 대체하고 세계에서 소련이 차지해왔던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 소속이었던 공화국 대다수, 특히 우크라이나는 CIS가 러시아에의 종속을 끝낼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다. 심지어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은 아예 CIS 가입을 거부하였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소련이 소유했던 힘의 상실을 아쉬워했고, 우크라이나가 영구적으로 떨어져나갔다는 사실을 수용하지 못했다. 러시아와 전 소비에트 연방 회원국들과의 관계는 항상 불편했으며, 이들 중 다수는 러시아가 자국의 내정에 간섭한다고 분노하였다. 이들 나라에 거주하는 2,500만 러시아인들은 하루아침에 외국인이 되어버렸으며, 종종 심각한 차별 대우를 받았다.

러시아 연방 내에 존속한 민족 가운데 일부도 독립 투쟁에 나섰다. 1994년 체첸이 독립을 선언하자 야만적인 전쟁이 발발하였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세력이 등장하여 인종 차별적인 폭력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지금도 전 소련 회원국들은 많은 러시아인이 잃어버린 제국을 되찾기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모스크바 거리2016년 12월 25일. 소련 붕괴 25주년을 맞아 필자는 모스크바 시민들을 만나 25년간의 변화와 소련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상당수 러시아 사람들 특히 노년층은 옛소련에 대해 강한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71살 루드밀라 쥬라블료바씨는 전직 회계사로 지금은 연금생활자이다.

그녀는 ”소련시절에는 모두가 평등했으나 지금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생겼다. 나는 즐거움과 미소, 행복함으로 소련시절을 회상한다. 우리는 빈곤하게 살았지만 서로에게 모두 친절했다. 그 친절함, 다정함이 그립다. 지금은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악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역시 연금생활자로 일자리를 찾고 있는 50대의 이리나씨는 ”나도 긍정적인 측면 때문에 소련시절을 때때로 그리워한다. 그 시절에는 국가가 우리를 필요로 하고, 우리가 국가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 느낌은, 국가가 일부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이다.“라고 심경을 털어 놓았다.

유럽부흥개발은행과 세계은행이 공동조사해 2016년 12월 14일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을 보면 옛소련시절 보다 현재의 삶이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러시아 사람은 전체의 15%에 불과했다. 현재의 시장경제 체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의 엘레나 포노마료바 교수는 ”소련이 붕괴된 후 사람들은 엄청난 부자들(super-rich)과 최빈층(super-poor), 극단적 사회 양분화는 물론 이른바 ‘신빈곤층(new-poor)’의 등장을 목도하며 고통스러워(괴로워)하고 있다. 신빈곤층이란 잘 교육받은 엔지니어, 의사, 선생님들이 돈을 많이 벌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 낙오자가 돼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러시아 문명은 결코 돈 만으로 평가받지 않았고 세계관이나 도덕성, 사회 정의 등으로 평가받았다.“라고 역설했다.

포노마료바 교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는 제국 경영, 세계 경영 국가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제 그 힘의 상실감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젊은 세대와 구세대 모두 러시아가 피터 대제가 이룩한 러시아 제국과 같지 않다는 점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국제적 위상도 예전같지 않다는 점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련을 회고하고 그때의 장점을 취하고 부정적인 측면은 바꾸기를 원하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이 푸틴 시대 들어 ‘강한 러시아’를 추구하는 정부 방침을 지지하는 것도 이같은 배경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냉전시절 세계의 절반에 영향력을 미치던 소련은 15개 나라로 조각났지만 최근에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등 독립국가연합(CIS) 내 5개국이 ‘유라시아 경제연합(EAEU)’을 결성하는 등 경제적 통합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또 ‘위대한 러시아 재건’을 부르짖는 푸틴 대통령이 등장한 이후에는 우크라이나 사태,크림반도 병합, 시리아 내전 개입 등 국제무대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양상이다. 여기에 푸틴이 최근 전략 핵무기 강화를 연설한데 대해 트럼프도 핵 능력 확장을 언급하고 나서 미-러간 핵 경쟁이 부활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2)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

2017년 11월.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을 맞은 해에 필자는 러시아 땅에 특파원으로 있었다. 100년이란 숫자가 던지는 무게감, 사회주의 및 혁명이란 단어가 한국사회에서 갖는 복잡성 등을 안고 필자는 혁명의 도시로 향했다.

2017년 11월 4일.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7일)을 사흘 앞두고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화려한 ‘빛의 축제’가 펼쳐졌다. 1917년 10월 혁명 때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이름은 페트로그라드)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에르미타주 광장

‘빛의 축제’는 황제가 살던 겨울궁전, 즉 예르미타시(에르미타주) 박물관과 구 참모본부 건물로 둘러싸인 ‘궁전 광장’에서 펼쳐졌다. 건물과 구 참모본부 건물이 대형 스크린으로 변한 것이다. 특히 구 참모본부 건물의 외벽은 6,700m²로 축구장 면적에 해당한다.

‘빛의 축제’란 건물 외벽에 직접 영상을 투영하는 이른바 ‘비디오 매핑’(video mapping)을 말한다. ‘비디오 매핑’이란 건물이나 조형물 등을 3D로 스캔한 뒤 표면의 굴곡에 따라 영상물을 제작해 해당 외벽에 직접 영상을 투영해 미디어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다.

빛축제 4월테제

구 참모본부 건물 외벽에는 1917년 혁명의 한 해가 13분 영상물로 압축돼 투영됐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는 굶주린 백성과 2월 혁명,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퇴위, 스위스 망명에서 돌아온 레닌의 혁명전술 4월 테제, 그리고 10월 혁명까지… 격동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순양함 오로라호예르미타시에서 볼 때 네바강 건너편에 전시돼 있는 순양함 오로라호에서도 현란한 3D 비디오 매핑이 시연됐다. 오로라호는 10월 혁명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오로라호에서 발사된 대포 한 발은 10월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오로라호에서는 1917년부터 지금까지 100년간의 역사가 압축적으로 소개됐다.

이번 빛의 축제를 총감독한 예카테리나 갈라노바는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를 재평가하고, 미래엔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빛축제 혁명

빛의 축제를 본 시민들은 대체로 혁명의 불가피성은 인정하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선 그다지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반응이었다. 모스크바 시민인 시스템 분석가 아나스타샤는 “나는 혁명에 대해 부정적이다. 당시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표출됐지만, 실상은 거짓이었다”라고 말했다. 연금 생활자인 루드밀라는 “이제 시대는 달라졌고 관점은 바뀌는 법이다. 혁명의 진행에 대한 많은 부분이 아직 논쟁 중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비카는 “최근에 황제 일가의 최후에 대해 읽었다. 혁명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황제 일가에게 벌어진 일들은 끔찍하다”라고 밝혔다. 다수의 시민들은 더 이상 혁명이나 혼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빛축제 황제 니콜라이

어쩌면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야 말로 러시아인들이 겪는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니콜라이 2세와 그의 일가는 1917년 혁명에서 총살됐지만, 소련 붕괴 후 2000년에 러시아정교회는 니콜라이 2세 일가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정치탄압의 희생양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100주년 기념 공산당 행사

혁명 100주년을 맞은 11월 7일 오후 러시아 공산당은 모스크바 중심가 거리를 행진했다. 레닌과 스탈린,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사진을 든 공산당원들이 푸시킨광장에서부터 마르크스동상이 있는 혁명광장까지 행진하며 혁명 100주년을 기념했다. 행진에는 이탈리아·스페인 등 80개 나라 공산당·좌파 정당 대표들도 함께했다.

혁명광장에서 열린 기념집회에서 쥬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당수는 “레닌과 스탈린의 20년 근대화는 우리나라의 능력을 70배 향상시켰다. 10월 혁명으로 탄생한 소비에트 국가는 전 세계 생산의 1/5을 생산했다. 나는 사회주의 깃발이 러시아와 전 세계에 휘날릴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연설했다. 쥬가노프는 7일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대선에 다시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이 5번째 도전이다.

볼셰비키의 맥을 이은 러시아 공산당은 현재 전체 450개 의석인 러시아 하원에서 42석을 차지해 집권당인 ‘통합 러시아당’(343석)에 이어 두 번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공산당 행진

공산당 소속 레베데프 하원의원은 혁명이 추구했던 사회주의 이념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공산당은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베데프 의원은 “공산당은 미래를 확신한다.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입당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일자리를 얻기 힘들고 소비에트 시절 주어졌던 각종 특혜들을 이젠 아무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대중의 30%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혁명에 대한 평가를 질문하자 레베데프 의원은 “혁명 이후 적군과 백군 간 내전이 벌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또 스탈린 독재 기간에 과도한 행동들이 있었다. 그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진보가 있었다. 우주개발에 나섰고,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대규모 건설로 국민의 85%가 무상으로 집을 받았다. 이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붉은광장 퍼레이드

11월 7일 오전. 모스크바의 심장부 크렘린궁 앞 붉은광장에서는 5,000명의 군인들이 참가한 군사퍼레이드가 성대하게 펼쳐졌다. 그런데 이 퍼레이드는 혁명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의 군사퍼레이드를 재현하는 ‘1941년 대독일 출정식 76주년 기념’ 열병식이었다.

모스크바로 진격해오는 독일 나치군과 전쟁 중이던 1941년 11월 7일, 소련은 군인들과 국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었다. 전제 권력을 무너뜨린 민중 혁명 대신, 나치 독일에 맞선 소련 국민과 군인들의 영웅적 애국정신을 기념한 것이다.

혁명 100주년을 맞았지만 러시아 정부 차원에선 이렇다 할 행사나 공식 성명조차 없다. 옛 소련시절에는 11월 7일을 휴일로 지정하고 붉은광장에서 대대적인 퍼레이드 행사로 혁명을 기념했다. 하지만 지난 2005년 러시아 당국은 11월 7일을 공휴일에서 제외하고 대신 16세기말 폴란드의 간섭으로부터 국가를 지킨 것으로 기념하는 11월 4일을 ‘국민통합의 날’이라는 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래서 올해는 11월 4일(토)부터 6일(월)까지 3일 연휴이건만 정작 11월 7일은 평일이다.

붉은 광장 행진

혁명 기념일인 11월 7일은 옐친 대통령 시절인 1995년에 ‘모스크바 자유의 날’(국민통합의 날)로 이름이 바뀌는 등 수난을 겪다가 결국 2005년에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소련 붕괴 후 90년대를 집권했던 옐친 대통령은 러시아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뿌리 내리면서, 여러 분야에 걸쳐서 러시아 혁명과 ‘소련 지우기’에 나섰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소련 붕괴 이후에도 당시 최대 야당으로 정치적으로 옐친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러시아 공산당을 견제하기 위한 측면이 컸다는 분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이 혁명 기념일에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본인이 2000년 이후 17년째 장기집권 중이기 때문에 ‘혁명’이란 단어 자체가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2014년 이후 계속되는 대러 서방 제재와 국제 유가 하락 등으로 악화된 경제난에 불만을 품은 반정부 민심이 혁명기념 분위기를 타고 반정부 시위 등으로 표출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 3월 26일 야권 운동가 나발니가 주도해 전국 80개 이상의 주요 도시에서 반부패·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는데, 그 이후에도 모스크바 등 대도시에서 간헐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지속되면서 푸틴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푸틴 대통령의 65번째 생일이었던 지난 10월 7일에는 그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000여 명의 시민들이 푸틴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푸틴은 또 2000년대 말부터 소련을 초강대국으로 이끌었던 스탈린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스탈린 재평가 작업’에 열을 올렸다. 푸틴은 스탈린을 앞세워 옛 소련시절의 영광을 기억하는 러시아인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미국과 유럽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스탈린과 같은 권위주의적 통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아직 공식 출마 선언은 안 했지만)해 집권 4기를 준비하고 있는 푸틴으로서는 이래저래 생각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혁명 100주년을 바라보는 러시아 사람들의 입장이 모호하다는 점도 이 같은 사회적 현상과 무관치 않다.

‘전 러시아 공론 연구센터’가 지난 10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10월 혁명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견해가 각각 46%로 나타났다. 즉 “누구의 관심 속에 혁명이 발발했느냐?”는 질문에 46%는 대중의 관심 속에 혁명이 일어났다고 확신한 반면, 다른 46%는 “소수 혹은 몇몇 크지 않은 단체에 의해 발발했다”고 응답한 것이다. 또 응답자의 92%는 “오늘날 러시아에 혁명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레바다 여론조사 기관의 구드코프 대표는 “대다수는 혁명이 불가피했다고 인식하지만 혁명의 결과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혁명의 이중성 때문에 여전히 러시아인들이 혼란스러워한다”고 말했다. 구두코프 대표는 “혁명은 소비에트 체제와 스탈린식 근대화, 급속한 산업화를 만들어냈다. 단기간의 변혁으로 소련을 핵무장한 슈퍼파워로 만들었고, 우주개발도 성공시켰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특권층, 관료주의가 득세하면서 결국 스탈린 독재로 이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공산당 행진 속 중국인들

러시아 내부 상황이 이런데 이 와중에 혁명 100주년을 맞아 러시아를 찾는 중국인들 이른바 ‘홍색 관광’(Red tourism)이 2016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 혁명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중국의 운명도 바꿔 놓았으니 중국인들에게는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레닌묘를 찾는 것 자체가 관광 이상의 의미, 즉 성지순례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러시아 관광 당국은 모스크바로부터 동쪽으로 약 720km 떨어진 볼가 강변의 소도시로 레닌의 출생지인 울리야놉스크에도 2017년 당시 6,000명의 중국 관광객들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했다.

사회주의 혁명 100주년. 20세기 최대의 체제 실험은 좌절된 것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사회적 불평등과 분배의 형평성 문제 등을 제기하면서 ‘자본주의의 방부제’ 역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주장도 있다.

수, 2019/12/04-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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